노동사회과학연구소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을 준비하는 활동’에 대해 ― 과학적 세계관의 대중화를 위하여

김형균 │ 회원, 철도노동자

  1. 들어가며

 

모건 스탠리, 미연방준비제도(연준) 등은 듣도 보도 못한 미국의 2020년 2/4분기 경제 전망치를 제시하고 있다. 3월 22일, 조선일보 기사 한 토막을 보자.

 

“이제껏 본 적 없는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나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미 국내총생산(GDP)이 마이너스 30%, 심지어 50%까지도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이 22일(현지시각) 속속 발표됐다.”,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23일 ‘무제한 양적 완화’를 시행하고, 대출 기관 3개를 신설해 회사채까지도 매입하는 특별 조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세계 경제의 압도적 맹주인 미국 경제가 ‘독감’에 걸려 쓰러지면, 세계 경제는 ‘중병’ 수준의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국제통화기금 집계)에 달한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한국의 2대 수출국이다.”, “불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실업률이 2분기에 30%에 달할 수 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신영・신수지, “번지점프하는 美경제, 실업자 400만명 쏟아진다”, ≪조선일보≫, 2020. 3. 23.)

 

자본주의 위기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제국주의 국가에서부터 그 파열음이 굉장하다.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는 기술발전에 따른 생산력을 자본주의 생산관계로는 더는 담을 수 없다는 경보다. 국가독점자본이 공황 구제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더는 손쓸 수 없는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음이 분명하다. 역사발전의 물줄기를 순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는,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의 각성과 단결, 정치적 주체화다. 자본주의 정치・경제적 위기가 깊어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풍요롭고 평등한 노동해방・인간해방 세상이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적 붕괴, 제국주의 전쟁은 역사 과정을 가속화” 하게 될 것이다.

자본의 경제위기는 곧 노동자에게도 재앙으로 다가온다. 공황이 폭발하면 전 부면에 걸친 자본의 손실 전가 정책이 기업과 정부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한다. 1997년 경제・금융위기 이후, 한국자본주의는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경기변동의 안전판으로서 불완전 고용(비정규직)을 일반화했다.

이 때문에 정규직은 고용을 지키는 투쟁에 집중하고,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기 시작하면서 고용안정과 정규직화, 그리고 처우개선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기술발전에 따른 자동화・무인화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경제위기가 폭발함에 따라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도 그 처지가 계속 악화되는 방향으로 몰리고 있다. 그것은 전 세계적인 대공황에 진입하고 있는 객관정세에 비추어 더욱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로부터 강요받는 반복적인 방어투쟁(경제투쟁)에서 공세적인 정치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과학에 근거한 계급적・정치적 각성을 도모하고 조직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지양하기 위한 강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이 글은, 객관정세가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에 대한 각성과 정치적 단결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 대한 당연한 자각 때문에 쓰게 되었다. 특히 지배계급에 의해 주입되어 ‘존재를 배반하는 노동자 의식’은 어떻게 과학에 근거한 정치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사회변혁에 대한 전망을 가진 선진노동자들의 임무와 역할에 주목할 것이다. 이 글이 어떤 새로운 뭔가를 제기하거나 ‘특별한’ 주장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의 조건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역할과 임무를 새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

 

 

  1. 노동자의 계급의식정치의식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나?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은 어디로부터 와서 내면화되는가?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 대부분은 과학에 근거한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노동자들은 선거 시기에는 독점자본의 정치세력을 선출한다. ‘태극기 부대’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신념에 차서 흔드는 ‘깃발’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인식하지 못한다.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절대 다수 노동자 민중을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주요한 조건이다.

존재를 배반하는 이념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것이 되었을까?

맑스는 “지배계급의 사상은 어느 시대나 지배적인 사상”이라고 했다. 물질적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계급은 정신적 생산수단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맑스, ≪독일이데올로기≫)

국가는 공교육체계와 과정을 통해 반공, 안보, 질서, 국익, 국가경쟁력 등 지배계급의 이념을 가르치고 내면화시킨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모든 교육과정은 독점자본에 딱 맞는 인간을 육성하는 과정으로 짜여있다. 교육체계만이 아니다. 자본이 장악한 대중매체로부터 늘 ‘존재를 배반하는’ 판단의 근거를 주입 당한다. 독점자본의 ‘찌라시’는 매일 아침에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으로 배달된다. 공중파 TV와 라디오에서부터 조-중-동 등 종편 TV까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생산수단은, 노동자 민중을 대상으로 지배계급의 사상을 전 부면에 걸쳐 반복적으로 쏟아낸다.

이 사회가 계급 적대에 기초한 사회라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노동자 민중이 학살당한 한국현대사의 이면의 진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지배계급은 “객관적 진리로 포장된 지배세력의 관점 또는 이념”, “지배세력의 주관성을 노동자 민중에게 반복적으로 내면화”시킨다. 그리하여 지배계급의 사상은 지배적인 것으로 된다.

그렇다면 ‘계급의식’,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정치의식’은 무엇인가?

계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생산체계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 관계, 사회적 노동 조직 내에서의 역할 그리고 그 결과로 사회적 부에서 자신이 유용할 수 있는 몫의 크기 및 그 획득방식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 거대한 인간 집단을 계급이라고 한다.”(레닌) 계급 구별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어떤 경우든 한 인간집단이 생산수단과 맺는 관계이다. 모든 특징들은 이로부터 파생된다. 자본주의 생산 관계에서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누어진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불평등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착취의 관계이기도 하다.

계급의식이란, 일정한 생산관계에 놓인 계급의 공통된 이해 때문에 형성된 의식으로서 자기 계급의 연대성 기반이 된다. 맑스는 경제적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라는 객관적 조건에 의해 같은 위치를 점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즉자적(卽自的) 계급이라 부르고, 이러한 즉자적 계급이 계급의식을 통해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할 때 그것을 대자적(對自的) 계급이라고 불렀다. 즉자적 계급이 대자적 계급으로 전환될 때에 비로소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은 과학적 근거 위에서 형성된다는 점에서 여타 계급의 의식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계급의식・정치의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①노동자들이 전제정치, 억압, 폭력, 고약한 폐단 등의 모든 현상 형태에 대해서 그것이 어느 계급에 악영향을 끼치는가에 상관없이 반응하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노동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정치의식일 수가 없다. 또한, ②노동자들이 다양한 계급들의 지적・윤리적・정신적 생활의 모든 현상에서 그 계급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근로대중의 의식은 진정한 계급의식일 수 없다. 또한, ③노동자들이 모든 계급・계층・집단의 생활과 활동의 모든 측면에 대해 유물론적 분석과 유물론적 평가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진정한 계급의식을 가질 수 없다. ④노동계급의 의식과 주의력, 관찰력을 전적으로 또는 주로 노동계급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정치의식”, “진정한 계급의식”은 선진노동자(간부, 활동가)들이 마땅히 훈련되어야 할 자질로 읽힌다. 이러한 의식과 역량이 노동운동에서 압도적 조류를 형성할 때, 비로소 노동자계급은 전 민중의 정치적 구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이, 이상적인 사회주의자(활동가, 노조간부)의 자질을 호민관에 빗대어 말하는 내용을 보자.

 

“이상적인 사회주의자는 노동조합의 서기가 아니라, 전횡과 억압―그것이 어디에서 발생하건, 어떤 계급, 계층에 관계된 것이건 상관없이―이 ①드러나는 온갖 현상에 대응할 능력이 있는, 그리고 이 ②모든 현상을 경찰의 폭력과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하나의 그림을 종합할 능력이 있는, 또한 ③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과 민주주의적 요구를 표명하고 모든 사람에게 프롤레타리아트 해방투쟁의 전 세계적,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도 활용할 능력이 있는 그런 인민의 호민관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주장해도 충분치 않다”

 

노동계급의 정치의식은 어떤 경로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왜곡되고 쇠퇴하는지 1980년 이후 노동운동 경험을 통해 들여다보자.

1980년 광주학살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한 열혈청년들이 많았다. 그 수가 전국적으로 1만에서 3만까지 추산한다. 당시에는 권장되었던 이른바 ‘시각 교정용 도서’라는 것들이 있었다.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 송건호 외 다수가 지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 등. 당시에 필자도 이런 책들을 대학생 친구로부터 권유받아서 읽었던 경험이 있다. 이외에도 조영래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조성오의 ≪철학 에세이≫ 등이 모두 87년 항쟁 이전에 시각교정용 도서 중에 일부다. 1987년 대투쟁 이후 다소의 정치적 공간이 열리자 사회과학 도서들이 대거 출판되었다. 한편으로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적 사회적 변혁론 논쟁이 소개되었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 후반까지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사회과학 학습 모임을 운영했다. 이러한 모임에서는 당해 사업장의 활동방안에 대한 논의와 학습을 병행했다. 구성원들의 이러저러한 직・간접 경험들은, 학습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재해석되었다. (당시 노동운동에 투신한 수많은 청년・지식인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지배계급의 지배적 이념에 포박된 노동자 의식은 한편으로 학습과 토론, 다른 한편으로 치열한 투쟁을 통해 각성되고 훈련되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6월 항쟁으로 만들어진 정치적 틈새를 통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 역사적인 투쟁은 ‘노동자 인간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생적’인 투쟁은 이후 변혁지향성을 분명히 하는데, 이는 학습과 토론을 통해 역사와 사회에 대한 초보적이나마 과학적인 인식을 확보한 선진노동자들의 ‘의식성’과 결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7년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 이념은 급속하게 조합주의・경제주의로 추락했다. ‘민주노조’ 운동이 변혁성을 상실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하나는 1991년 쏘련을 위시한 현실 사회주의의 패배를 계기로 사회 변혁적 활동들이 전망을 상실하면서 운동전선에서 퇴각하거나 전향했다. 이 때문에 노동운동은 과학적 사상・이론의 영향으로부터 단절되었다. 그러자 포스트-맑시즘이니 시민운동론이니 하는 몰 계급적 (소)부르주아적 사상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와 노동운동을 포위하는 형국이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1998년 경제위기에 따른 노사정 합의를 시발로 노동자 대중운동은 점차 개량주의・조합주의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이제 노동자 계급의식・정치의식은 어떤 경로로 어떻게 각성・발전할까? “계급적 정치의식은 외부로부터만, 즉 경제투쟁의 외부로부터만, 다시 말하자면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라는 영역의 외부로부터만 노동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레닌의 이 유명한 테제는 어떤 의미일까? 자발성과 의식성은 어떻게 결합되는 것일까?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국가기구(노동부, 경찰, 법원, 의회 등)가 자본가 편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계급의식의 ‘섬광’, ‘즉자적’ 계급의식이다. 그 번쩍이는 계급적 직관만으로는 자본주의 계급적대 사회에 대한 역사적・포괄적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역사와 사회를 전체적으로 볼 수 없는데 해방의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없다. 따라서 자생적 경제투쟁을 아무리 치열하게 해도 그것만으로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이 각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경제투쟁에서 획득하는 ‘즉자적’ 계급의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 자체로는 “계급적 정치의식”이 될 수 없지만, 그 각각의 본질적 연관에 대한 ‘정치적 재해석’이 주어진다면 달라진다.

“노동대중의 활동을 끌어 올리는 것”에 대해서 레닌은, 경제적인 기초 위에서만이 아니라 “포괄적인 정치폭로의 조직화”를 강조했는데, “포괄적 정치폭로는 세계 사회민주주의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라고 했다. “즉각적으로 설명하는 생생한 실례와” “이러한 포괄적 정치폭로는 혁명 활동에서 대중을 훈련하기 위해서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조건”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의 경험은 ‘과학적・정치적 재해석’되는 과정을 통해 ‘포괄적 인식’으로 안내될 수 있다. 그것은 “노동대중의 활동을 끌어 올리는” 활동이고,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을 준비하는 활동’이고, 자생성에 의식성이 결합하는 지점이다. 그 수단이 곧 정치교육, 정치선동, 정치폭로를 조직하는 것이다. (“…모든 측면에 대해 유물론적 분석과 유물론적 평가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진정한 계급의식을 가질 수 없다.”)

원론적 논의에서 현실 노동운동으로 돌아와 보자! 과제가 너무 많다.

첫째는, 역사와 사상・이론 영역에 관한 것이다. 맑스-엥엘스, 레닌을 죽은 개 취급하는 현실 풍토에서 과학적인 역사와 사상・이론의 복원과 대중화 과제,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지양・발전의 관점에서 분석・연구하는 과제, 1990년대 초반에 중단되었던 변혁론을 지양・발전시키는 과제, 그리하여 정치활동의 준거가 되는 정치노선(강령), 조직노선, 전술과 그 현실성 확보의 문제, “이론적인 노력을 통해 자본주의적 지배 관계의 본질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과 대안질서의 밑그림을 만들어내는” 이론가들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둘째는, 투쟁을 강요하는 구체적인 정세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정확히 읽어내고”, 다양한 연단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에게 알림으로써 강요받는 경제적・생존권 투쟁을 노동자들이 과학으로 무장된 정치적 투쟁과 조직화로 발전시켜가게끔 하는 것”, 조직적・전략적 운동을 확대해 나갈 선진노동자 주체가 문제다. 당장은 활동가들 사이에 가능한 최대치의 협력을 통해 대중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활동가들의 훈련에 대해서는, 의식과 역량이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때문에 상향평준화(성장)를 도모하고, 전략적 과제에 대한 차이는 논쟁과 공동실천을 통해 좁혀 나가야 한다. 1980년대 노동운동에서 선진노동자들이 사회과학 학습을 당연시했던, 가능한 연단을 활용하여 정치선동을 조직했던 운동 문화를 오늘날 현실에 복원해내야 한다. 그 여러 면에서 설익었던 시대적 한계를 넘어 역사적 전진을 도모하는 길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전반까지, ‘민주노조 운동’ 경험을 살짝 들추어 내보자. 덧붙여서 해방정국에서 투쟁했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하 전평)의 실천적 지향을 잠깐 보자.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광범위한 ‘민주노조 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그 과정에서 건설되거나 한국노총에서 이탈한 단위노조 지역협의체들이 1990년 1월에 전노협을 결성했다. 전노협은 파쇼정권의 극악한 탄압에 맞서며 민주주의 쟁취와 사회변혁을 지향했다.

전노협은 강령에 “노동자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경제구조의 개혁과 조국의 민주화・자주화・평화통일을 앞당기는데 기여한다”라고 했고, 전노협 핵심구호를 ‘평등사회 앞당기는 전노협’으로 천명했다. 수없이 외쳐진 구호는, “노동운동 탄압하는 군부독재 타도하자!” “열사정신 계승하여 노동해방 쟁취하자!” 등이다. 또한, 민주노조를 가르는 기준을 대중화했는데, 그것이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 변혁 지향성이다. 전노협의 요구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집약해서 싸웠다. 노동자대회 때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각계각층을 대회조직위원회로 구성하여 전(全) 민중적 요구를 집약했다.

<전노협 진군가> 가사를 읽으며 당시 상황을 음미해보자.

(1절) 새날이 밝아온다 동지여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 기나긴 어둠을 찢어버리고 전노협 깃발 아래 총진군 / 잔악한 자본의 음모 독재가 판쳐도 / 새 역사 동트는 기상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 / 총파업 깃발이 솟았다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 노동자 해방의 그 날을 위해 이제는 하나다 전노협

(2절) 새날이 밝아온다 동지여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 지역과 업종은 모두 달라도 전노협 깃발 아래 총진군 / 갈라진 조국의 역사 외세가 판쳐도 / 새 역사 동트는 기상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 / 전국의 노동자 뭉쳤다 한 발 두 발 전진이다 / 노동자 주인 될 그 날을 위해 이제는 하나다 전노협

 

1945년과 그 이후 ‘해방정국’까지 거슬러 올라가 전평은 어떠했을까? 전평은 당시의 “해방정국”에서 생존권 등 노동력 판매조건을 둘러싼 투쟁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당시의 노동계급은 자신의 일상적인 이해를 확보하기 위해서 싸워야 했던 경제적 주체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변혁을 수행해야 했던 혁명적 주체”로서 활동했다는 점이다.

전평의 15개조 행동강령을 보면, 제반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요구를 전면에 내 걸면서도 노동자—농민의 연대를 추구하고, “인민공화국 절대 지지”하여 민족자결권 확보와 노동자 민중의 해방을 동시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투쟁했다. 미 제국주의와 대지주・신흥자본가 계급의 정치부대인 한민당(이승만) 세력에 맞서 해방투쟁의 중핵으로서 역할을 했다.

 

 

  1. 어떻게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는가?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이 계기가 되어 세계적인 경제공황이 촉발되자, 한국의 자본가단체는 즉각 그 손실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정책을 정부에 제안하고 나섰다. 반면,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투쟁계획을 발표하는 대신에 기자 브리핑을 자청하여 ‘노사정 대화’를 제안하고 나섰다.(4.17) 노동자들의 생존이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데, 5월 1일 메이데이 투쟁계획조차 전염병을 핑계로 대부분 취소하고 정부와 자본에게 ‘사회적 대화’를 요청한다?! 이것이 해고 대란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민주노총의 최고 지도부가 취하는 태도다!

이는 단적으로 한국노동운동이 19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비해서 얼마나 후퇴했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한편, ‘비정규직 공동행동’이라는 비정규직 투쟁 단위는 “모든 해고금지! 악 소리도 못내는 비정규직 긴급행동”이라는 제목으로 메이데이 투쟁계획을 추진하고 나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스스로 해방하기 위해 수행하는 계급투쟁에는 세 가지 근본유형이 있다. 그것은 경제투쟁, 정치투쟁, 사상(이데올로기)투쟁인데, 이것들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하나의 통일을 이룬다.” 다시 경제위기가 격화되면서 경제적・생존권적 투쟁은 곳곳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계급투쟁, 즉 경제투쟁・정치투쟁・이념투쟁이 어떤 계기로 어떻게 연관을 확보하는지 그 관계를 살펴보자. 주목해야 할 점은 투쟁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각성되고 훈련된 활동가(노조간부 등)의 역할이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제투쟁은,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노동자들이 그 물질적 상태를 유지・개선하기 위해 전개하는 투쟁이다. 임금인상, 단체협약 갱신, 해고자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인력충원, 성과연봉제 또는 직무급제 도입 저지, 노동법 개악, 노동 삼권 쟁취, 민주노조 사수, 공기업 사유화 저지 등이 그 예이다. ‘노동력 판매와 그 조건을 둘러싼 투쟁’이 곧 경제투쟁인 셈이다. 정치투쟁은, 노동자들이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지배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이는 노동자 권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형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정치투쟁은 노동자들이 자본가 계급의 정권을 전복하고 노동자권력을 세우는 투쟁만이, 즉 봉기만이 정치투쟁인가 하는 의문에 봉착한다.

경제투쟁은 자본주의사회의 생산관계, 소유관계, 생산양식을 변혁하지 못한다. 경제투쟁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광범위한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 전반의 과정이 ‘노동자계급의 정치학교’로서 기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경제투쟁이나 노동조합 활동이 자동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학교’로 기능하지 않는다. 매 시기 투쟁 과정에서 목적의식적인 경제적・정치적 폭로와 정치교육이 수행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계급의식・정치의식이 고양되는 ‘정치학교’로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활동’이 결합됨으로써 경제투쟁은 이데올로기(사상)투쟁・정치투쟁과 유기적인 연관을 확보하고 통일된다. 그 결과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각성’과 ‘훈련’을 통해 단결과 연대를 확대하고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투쟁의 범주는 노동자계급이 정치권력을 둘러싼 투쟁만이 아니라, 그러한 ‘정치투쟁을 준비하는 활동’ 전반을 포함해야 한다. 그것이 곧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 이자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이다.

경제투쟁을 수행하면서 노조 지도력(활동가)이 어떤 투쟁성과에 주목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나, 그것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그들의 투쟁들의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전과(戰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더욱 더 확대된 단결이다”, “…계급으로 단결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 지배계급으로 만들고, 또 지배계급으로서 낡은 생산관계들과 아울러 계급대립의 조건들과 계급 일반을 폐기하게 될 것이고, 또 이를 통해 계급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배도 폐기하게 될 것이다”

경제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늘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수없이 반복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노동자들의 투쟁을 몇 가지만 나열해보자. 임금 투쟁, 단체협약 투쟁, 부당인사 관련 투쟁,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공장이전과 인수합병에 따른 노동조건과 고용문제를 둘러싼 투쟁, 노조파괴 공작에 맞선 민주노조 사수투쟁, 성과급제 또는 직무급제 도입 저지투쟁, ILO협약에 따른 노동3권 쟁취투쟁, 탄력근로제 등 노동악법 개악 저지 투쟁, 공기업 사유화 저지투쟁, 해고자복직 투쟁, 감원과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 등.

그런데 이러한 투쟁성과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라!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나, 그것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지 않는가? 노동자들은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 투쟁을 조직하지만 패배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직접적인 전과(戰果)”는 미미하거나 없더라도 “노동자들의 더욱 더 확대된 단결”을 이루어 냈다면 패배한 투쟁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투쟁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투쟁에서 “직접적인 전과”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투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성과는 직접적인 전과(戰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더욱 더 확대된 단결”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투쟁 과정에서 정치투쟁을 준비하는 활동의 요체는 무엇인가?

투쟁을 준비・진행・마무리하는 전 과정에서, 각급 지도력과 노동자 대중으로 하여금 정신무장과 훈련과정이 되게끔 지도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하나는 자본과 국가기관의 기만적인 논리, 그리고 모든 악폐와 그 계급적 본질을 구체적으로 폭로하는 것, 무엇보다 합리성을 가장하여 노동자들의 판단을 흐리는 기회주의 세력의 반(反) 노동자적 관점을 폭로하여 무력화시키고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계급 사이의 상호 관계’와 ‘지배계급의 계급적 성격’, 그리고 노동자 계급적 실천의 목표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자각을 발전시킨다. 이는 대중의 정치의식을 확장하는 유일한 길이자 단결을 확대하는 요체가 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활동이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을 준비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대중조직 활동 전반에서 각성된 지도력이 수행해야 할 정치활동의 핵심이다. 물론 이러한 경제투쟁 속에서의 정치활동은 목적의식적인 활동을 조직할 수 있는 지도력의 존재가 중요하다. 전국적 차원에서 전면적인 정치선동의 조직화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구심이자 혁명의 참모부로서 당적 질서 또는 그 건설과제와 직결되어 있다.

정치폭로・정치교육은 모든 수단과 계기, 연단(정치신문, 노보, 잡지, 연설, 교육이나 강연, 정치토론, 학습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일상시기에는 조합원 또는 간부교육을 정기적으로 배치하여 정치교육을 할 수 있다. ‘노동운동사’,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노동조합과 운영원리’ 등 어떠한 과목이라도 모두 정치교육의 재료가 된다. 덧붙여 노동조합은 간부육성을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교육에서 심화학습까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간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파업투쟁을 전개할 경우, 그 준비와 진행하는 전 과정에서 ‘노동자의 정치학교’가 될 수 있도록 투쟁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운영해야 한다. 폭로와 교육만이 아니라 일사 분란한 조직적인 실천(의사결정과 집행)을 전개하는 과정이 지도력과 조직력을 강화하는 과정이 되도록 운영해야 한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더욱 더 확대된 단결”이라는 조직적 성과로 귀결되도록 해야 한다.

  1.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의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경제투쟁이 국가권력과 대립하거나 국가를 상대로 전개된다고 해서 모두 정치투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투쟁이 ‘노동력 판매조건의 개선’에 한정할 때 경제주의이고 개량주의가 된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투쟁은 다는 아니지만 대체로 국가권력과 대립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는 경제적인 투쟁조차 모두 국가권력(총자본)과 대립하는 양상으로 전환되었다. 계급투쟁이 격화되자 지배계급은 위기관리 체제를 정비했다. 자본가들은 6개 자본가 단체가 참여하는 경제단체총협의회을 결성하고 정치권은 3당 합당을 통해 지배체제를 강화했다. 그리하여 임금인상 투쟁조차 총액임금제니 임금가이드라인이니 하는 정부 지침과 부딪혀야 했다. 단위 사업장의 자본가는 총자본의 지침을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어떤 결정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노동자 투쟁들은 상당한 규모로 치열하게 전개되어도 속전속결로 끝내지 못하고 장기투쟁으로 전환되곤 했다.

경제투쟁에서 국가권력과 대립하는 문제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일정 단계에서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이 단일한 작동 구조로 결합한 것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독점적 초과이윤 수취를 보장하고, 독점자본의 지배를 공고화하며, 필연적인 계급투쟁의 격화를 국가개입을 통해 해결하는 등 자본주의의 구제를 목표로 작동하는 독점자본의 위기관리 체제이다.

이러한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투쟁은, 경제투쟁의 수행조차 국가권력과 대립을 형성하면서 진행된다. 그뿐만 아니라 생산과정 외부에서 민중에 대한 수탈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다양한 요구투쟁이 국가권력과 접점을 이루면서 전개한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신식민지 파시즘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특성은 경제투쟁이 정치투쟁으로 쉽게 전화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경제투쟁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반노동자・민중적 본질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투쟁이 국가와 대립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정치투쟁으로 전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투쟁 과제와 정치투쟁의 관계에 대해서 보자.

레닌은 ≪맑스주의의 회화와 경제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는 정치적 반동에 조응하며 일체의 민주주의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정치적 반동성은, 대중에게 민주주의 투쟁의 요구를 불러일으키고, 민주적 제 요구는 정치투쟁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내포할 뿐 아니라 정치폭로의 매개가 된다. 예컨대, 국가권력의 파쇼적 전횡에 맞선 투쟁과정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독재)의 본질과 그 한계를 낱낱이 폭로할 수 있다는 점, 그리하여 대중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절대다수의 실질적인 민주주의 요구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결사를 근본적으로 봉쇄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시켜야 한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은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대중의 민주적 지향을 국가권력과의 적대적 인식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이러한 활동은 정치투쟁으로 발전하기 위한 ‘예비적 준비’로서 의미이다. 대중의 민주적 지향은 물론 당적 조직의 강령과 전술이라는 방향성을 견지하는 정치선동과 정치폭로와 결합함으로써 정치투쟁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전국적 차원의 전술운용의 문제는 ‘변혁운동의 참모부’, 즉 노동계급의 당적 질서 또는 당 건설 과제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주의’와 ‘정치주의’의 양 편향이 갖는 문제점을 살펴보자.

경제주의・조합주의적 정치활동관은 직접적인 이익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 경향은 경제투쟁이 어떠한 매개 없이 곧바로 정치투쟁으로 발전한다는 관점을 갖는데, 이는 자생성과 의식성의 결합의 문제, 대중성과 지도성의 결합의 문제, 노동운동과 과학적 사회주의와의 결합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관점이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 문제로 국한되어진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이 자신을 권력의 주체로 조직해야 한다는 원칙은 실천과정에서 기각되어 버린다. “직접적인 전과(戰果)” 에만 집착한 나머지, “때때로 승리하나, 그것은 단지 일시적일 뿐”인 투쟁의 반복과정에서 지치고 전망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노동자 의식은 자본의 이념에 포박된 채 개별화되고 투쟁해야 할 때 싸울 수 없는 조직으로 전락한다.

반면 정치주의는 모든 투쟁을 정치적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문제로 대체한다. 이러한 정치활동은 대중을 정치전선으로 동원하는 것을 정치활동이자 정치투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주의와 대립하는 것이지만, 경제투쟁에서 대중운동의 생장점을 발견하고 정치활동을 결합해야 할 내용을 간과하고 대중투쟁에서 정치투쟁을 준비시키는 데 무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은 대체로 현실에서 맹동주의로 나타난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투쟁에 대한 관점은, 경제적 대중투쟁이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주・객관적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기반 해야 하는데, 계급투쟁의 양상 속에서 그 발전의 구체적 계기를 포착하고 그것과 올바른 정치활동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1. 나가며

 

자본의 축적위기는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동시에 국가독점자본주의 간 경쟁과 탐욕은 언제든 지구촌을 잿더미로 몰아갈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을 만든다. 혁명을 통한 역사발전이냐, 세계대전을 통한 인류 절멸이냐 하는 귀로에 선 시대이다. 노동자 민중에게 강요하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 ‘풍요롭고 평등한’ 해방세상의 길은 오직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길뿐이다.

‘지배계급의 지배적인 사상’, ‘존재를 배반하는’ 이념과 정치의식으로는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과학에 근거한 사상으로 역사와 사회를 읽어내야 한다. 그러한 통찰을 확보하고 있는 지식인과 노동운동의 선진부위들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1990년대 초반에 사실상 중단되었던 사상・이론적인 연구와 논쟁이 다시 점화되어 NL-PD로 표현되는 미완성의 사상・이론의 지양・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리하여 합목적적인 정치노선, 조직노선, 전술노선과 그 현실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현실운동 속에서 운동의 선진부위로 하여금 이데올로기적 성장・분화를 지속적으로 촉진해야 한다.

세계적 경제공황은 한국의 국가독점자본에게도 비상이다. 총선이 끝난 지금, 노동자를 향한 고통전가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기업도산과 정리해고에 따른 해고대란만이 아니다. 국가와 자본은 폭력적으로 혹은 헤게모니적으로 그것을 관철하려 할 것인데 비상한 대응태세가 시급하다. 국가와 자본의 계획과 내용을 파악하고 그 본질적 의도와 영향을 구체적으로 폭로하면서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노사정 대화를 통한 해결이니, 회사 살리기 같은 투항주의・기회주의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폭로하고 아래로부터 광범위한 단결과 투쟁 전선을 조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노조간부나 활동가들은 가능한 한 최대치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공동의 과제에 대해서는 효과를 극대화하고, 견해 차이에 대해서는 토론과 비판을 통해 차이를 해소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실의 노동운동에서 이념적 지형은 조합주의・관료주의・출세주의・투쟁회피주의・보신주의・개인주의 등 온갖 반(反) 노동자적 조류가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노동운동 내부에 저들 조류를 압도하는 혁명적 조류를 만들어내는 것”이 절대적인 과제다.

‘20세기 사회주의가 제2차 제국주의 전쟁 과정에서 형성되었듯이, 21세기 자본주의의 모순은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극복될 것이다.’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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