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산
* 이철산, ≪강철의 기억≫, 삶창, 2019, pp. 62-63.
파업이 끝나자 처음 알았지 우리 노동의 놀라운 가치
삼십 년 동안 한 달 이백만 원 남짓 고스란히 모아도 어림없는
한 달 파업의 가치 놀라운 가치
수백 억 손해배상 청구서와 수십 명 해고통지서
처음 라인을 멈추고 기계를 멈추고 공장을 세우고
공장을 지키면서 시작한 싸움 한 달 동안의 파업
손때 묻은 기계를 세우고
몽키스패너 대신 노동조합 깃발을 들면서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최저생계비와 일자리 보장
재벌들이 경제를 망쳐도 노동자 탓
비리와 부정으로 세상이 썩어도 노동자 탓
평생 공장에서 일만 했던 노동자 탓
세상 허물 다 노동자 탓이라 몰아도 눈감았지만
삼십 년 노동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세상
쫓겨난 자 노여움에 공장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남은 자 부끄러움에 쫓겨 돌아가는 오늘
우리는 몰랐네
평생 부품에 묻혀 기름때에 절은 노동의 가치
모두가 외면했던 우리의 가치
하루를 멈추고
기계를 멈추고
세상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존중되는 놀라운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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