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인터뷰] “노동자 스스로가 변혁의 주체로 서야 한다”―김형계 <노동전선> 대표 인터뷰

 

정리: 김해인(편집출판위원장)

 

<노동전선> 제14차 정기 총회에서 (2020년 5월 23일)

 

김해인(이하, 인): 독자 여러분들께, 간단한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형계(이하, 계): 안녕하십니까?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대표 김형계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서 ≪정세와 노동≫ 독자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인: 먼저 과거에 활동하셨던 이야기들로 오늘 인터뷰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계: 네, 그러죠. 저는 지금까지 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현장 운동, 대중 조직 운동을 해 왔는데요.

 

처음에는 대구 3공단 쪽에서 일을 했어요. 그때 교회 청년회 하고 연결되어서 학습도 하고 있었는데, 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주변에 노동조합들도 생기고, 거리 투쟁들도 일어나고 했어요. 그때 함께 투쟁도 나가고 그러면서, 노동 운동을 접하게 되었고요. 그러다가 활동가들이 전략 사업장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요청들이 있었고, 다시 말하면, 좀 더 규모가 있는 공장으로 가서, 노동조합을 조직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들이 있어서, 저는 달성 공단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구는 섬유 도시라, 보통 섬유 공장으로 많이들 갔는데, 저는 장래 산업 전망을 보면 금속 쪽으로 가는 게 맞겠다 싶어서, 달성 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 회사 쪽으로 갔어요.

87년 이후 당시는, 여러 현장들에서 노민추 활동이 다양하게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이미 공장에 들어갔던 학출 활동가들이 해고도 많이 되고, 한국노총 사업장에 들어가서 활동하다가 보면, 그때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조직 사건 이런 것들도 많이 터질 때라, 갑자기 사업장을 나와야 된다고 하면 나오기도 하고 그러면서, 여러 사업장들을 다니다가, 91년도에 들어간 곳이 상신브레이크였어요.

 

상신브레이크는 한국노총 사업장이었는데, 거기서 노민추를 구성하고, 노민추 활동을 했지요. 그때는 다들 정말 열정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노민추 조직원들이 퇴근해 가지고 밤에 조직 점검도 하고, 그때는 반드시 학습을 했거든요.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해서, 학습을 하고 나면 새벽이 되고, 그러면 다시 출근하고, 일이 터지면 유인물도 공장에 뿌리고 하면서, 정말 열정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말했던 것처럼, 노민추 하면 학습을 반드시 한다는, 그런 것이 있었어요. 그런 기본 학습을 통해서, 의식도 높여 가고, 활동력도 높여 가는, 그런 게 있었죠.

그리고 노민추는, 현장에 자생적으로 있던 사람도 있고, 정치 조직에 속한 사람도 있고 그랬는데, 정치 조직이 서로 달라도 기존에 있던 활동가들을 규합해서 공동으로 구성해서 활동했어요. 그때는 정치 조직, 활동가 조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든가 그런 것들은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활동가들이 현장을 중심으로 현장을 바꾸고 자본가와 싸워서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건설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현장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학습도 하고 그러면서 함께 활동했던 것 같아요.

또 당시에는 전노협에 대한 탄압이 엄청날 때라, 전노협 사업장들은 늘 투쟁 사안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노협 사업장에 대한 연대 투쟁, 사수 투쟁들도 했었죠.

현장에서는 노민추 활동가들이 대의원 활동을 하면서, 현장 통제 투쟁을 했었죠. 쉽게 말하면, ‘담배를 피우지 마라’, ‘화장실에 가지 마라’든지, 반장이 괴롭힌다든지, 장갑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든지, 이런 현장 통제 속에서의 조합원들의 불만 요소들을 점검해 가지고, 공동 요구를 잡아서, 노사협의회 안건으로도 올리고 그렇게 했죠.

그런데 어용 사업장이라, 노사협의회를 통해서 그런 것이 잘 되지는 않았고, 실제로는 잔업 거부 등 현장 투쟁을 통해서 해결했는데요. 그때는 현장 활동가들 잡아내려고 감시들이 굉장히 심해서, 우리는 안 드러나면서도 조합원들과 유기적으로 활동하려고 했어요. 안 그러면 보통 학출들은 쫓겨나요. 자기를 안 드러내면서 조합원들과 같이 호흡하는 방식은, 예를 들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 각 부서에서 토론을 해 가지고 조합원들의 요구로 만드는 거죠, 그러면 노조 집행부가 안 해도, 실제로 어떤 문제에 대해 조합원들이 들고일어나 잔업 거부를 하고 해도, 조합원들이 다 나선 거라, 누가 어떻게 했는지가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에 못 잡아내죠.

아무튼 당시에 이렇게 노민추를 만들고 활동을 했어요.

 

인: 그 이후 활동도 계속 이야기해 주시지요.

계: 네,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노민추 후보로 위원장 선거에 나갔고, 당선이 되었어요. 위원장에 당선된 후에 집행부를 꾸리고, 당시 전노협 사업장이었던 대동공업, 대우기전 하고, 민주파가 당선된 대한중석, 상신브레이크가 달성공투위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94년에 달성 4사가 함께 임단투 공동 출정식을 하고, 파업에 들어갔지요. 달성 4사가 함께 파업에 들어가니까, 검찰 공안부하고, 군수, 경찰서장 등이 기관장 대책회의를 하고, 저기서 불법 파업을 하고 있다고 주민들에게 유인물도 뿌리고, 경찰은 공장을 봉쇄해서, 우리가 공장 밖을 못 나왔어요.

그리고 공권력이 들어와 가지고 구속이 되었는데, 석방되고 95년인가 해고되고, 그 뒤에 전노협 대구노련 조직국장도 했고, 대구노련에서 민주노총 준비위를 띄우고, 대구 지역에서 금속연맹 추진위 상근도 하다가, 2003년에 금속노조 3기 사무처장으로 올라왔죠.

 

전국회의, 중앙파, 현장파의 연합집행부로 구성된 금속노조 3기 집행부(좌측에서부터 김창한 위원장, 손송주 수석부위원장, 김형계 사무처장)

 

당시에 산별 투쟁과 관련해서, 먼저 최저임금 투쟁을 보면, “산별 협약 최저임금을 만들기 위해서, 산별노조가 최저임금 투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하나가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하되, 이것은 총자본과의 문제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총전선이 필요하다. 금속이, 보건 등 다른 산별들과 함께, 민주노총 최저임금 요구를 걸고, 총전선을 세워야 한다”는 게 있었죠. 우리는 후자의 기조로 갔죠.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국 사회에서 산별노조 혼자 자기 산별 협약 만드는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산별이 좀 더 크게 단결해 가지고, 총노동 전선을 제대로 세워서, 사회 전체적인 자본과의 전선 속에서 총노동 전선을 세우면서, 노동이 진출하는, 이런 것이 산별노조의 기조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입니다. 이것은 최저임금 투쟁뿐만 아니라, 다른 투쟁에서도 마찬가지이죠.

그런데 이후에 그런 것들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최저임금 투쟁이 최저임금 단위의 투쟁으로 되어 버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산별이 원래 더 크게 뭉쳐 가지고, 전체 사회적인 의제를 가지고, 전체 계급의 투쟁을, 총노동 전선의 투쟁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산별로 더 크게 갇혀 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다음으로, 2003년 당시는 노무현 정권의 노동 탄압으로 열사 정국이 발생했던 때였어요. 배달호, 이현중, 김주익, 곽재규, 이해남 열사 등등 열사 투쟁이 있었죠. 그래서 금속에서는 손배가압류 이런 것들은 정치 파업으로 가져가서, 이 노동 탄압을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열사 정국을 돌파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민주노총의 총파업으로까지 나아갔었죠.

이후 2004/2005년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 때는, 노사정위 참여를 가지고 논란이 벌어졌죠. 대의원대회에서 현장파들이 이것을 막기 위해, 의사봉도 뺏고, 단상도 점거하고 그랬지요.

이렇게 노무현 정권의 노동 탄압, 열사 정국, 파견제ㆍ기간제법 개악 등등이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렇게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민주당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 노동의 판단이 일관되지 못하고 다시 저쪽으로 넘어가고 하는 게,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그때 이데올로기적으로 만들어졌던 게 귀족노조 프레임인데, 저들은 그 프레임으로 노동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방식을 썼어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인: 이제 현재로 와서요. <노동전선> 대표로서 <노동전선>의 전망에 대해 짧게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계: 총노동 전선과 노동 해방 정신이 희석되어 있다가 보니까, 민주노총의 규모와 사회적 역할은 커졌는데, 사회적 존재감은 오히려 약화되어 버린 지금의 현실은, 크게 극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노동전선>은 앞에서도 말했던 민주노조 운동의 투쟁 속에서, 활동가들의 전국적 결집과 변혁지향성, 이름 그대로 ‘현장실천’과 ‘사회변혁’을 모토로 하고, 그게 노조 간부로서 조합 안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자기 노조 밖에서 전국화된 조직으로 역할을 하고, 이러한 노동 운동을 다시 현장에 접목하고, 그것으로 민주노총 등 노조들이 계급적 투쟁을 해 가게 하는 걸 목표로 했다고 봐요.

<노동전선>의 창립을 보면, 활동가 단위의 정치 조직들의 역할도 있었겠지만, 현장에서 투쟁해 왔던 단위들의 자연발생적 요인들도 컸죠. 전국적 계급적 투쟁을 실제로 수행하기 위한 전국적 결집, 이것은 상당한 정치적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봐요. 그게 이전의 <현장조직 대표자회의>로 드러났던 것인데, 여기서는 노동자들이 자체적 구심점, 지도 구심점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면서 흩어져 버렸고, 그래서 한동안은 각 정치 조직으로 분화되어 있다가, 2007년 다시, 여전히 각 정치 조직은 있지만, 현장을 기반으로 하되 변혁적 전망을 가진 전국적 활동가 조직이 요구된다는 것을 가지고, <노동전선>이 출범을 했죠.

출범 이후 굴곡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장조직 대표자회의>가 지속적 자기 힘으로 가지 못했는데, <노동전선>은 어땠는가 보면, 내부에 여러 정치 조직이 있지만, 안에서 얼마든지 합의해서 전략 전술을 펴고, 변혁지향성을 강화해 가면서 전체 운동을 만들어 갔는가라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과연 그래 왔는가 싶어요.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각각의 정치 조직으로 분화되는 것을, 거의 10년 가까이 겪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럼에도 현장의 동지들이 끝까지 <노동전선>을 지켜오면서 지금까지 오고 있는데요.

내부적으로는 보면, 산별 모임, 현장 모임, 정치 단체로 가기도 하고 그런데, 이러한 현실이 중요한 정세 국면에서의 좌파 약화, 계급적 운동의 약화라든가, 노동자들의 정치적 진출도 분화되어 버리는, 다시 말하면 <노동전선>이 어렵게 된 것만큼, 전체의 기준에서 혹은 민주노총 기준에서 보더라도, 좌파 운동이 약화되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 이러한 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과제인데, 결국 한국 노동계급 운동이 전국적 결집과 정치적 중심성을 회복하고, 다시 노동 해방의 자신감을 세워 가면서, 또 변혁지향성을 가지고 정치적 진출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인데, 저희 <노동전선>도 이러한 것을 세워 가는 데 끊임없이 복무하려고 합니다.

 

인: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주제로, 한국 노동 운동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계: 제가 볼 때는, 우리가 과거에 ‘노동 해방’ 이렇게 했던 것들이 희미해지고, 다시 말하면 사회 과학적, 계급적으로 사회 제 현상을 설명하고, 사적 소유 철폐, 임노동 철폐,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정당, 뭐 이렇게 분산되어 버리고 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전망과 변혁성의 상실이고, 현장의 노동자가 주체로 서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현장의 노동자가 주체로 서 있지 못한 정치적 실험들이 과연 변혁에 복무할 수 있는 것인지, 노동자 중심성을 세워 내야 정치적 전망들을 열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우리 <노동전선>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국화, 조직화가 약하다 보니까, 중요한 국면들에서, 자본주의 모순의 여러 문제들에서, 노동자계급이 해야 할 역할들에서, 취약성을 많이 드러내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촛불 같은 케이스를 되돌아보면, 민주노총이 박근혜 퇴진 투쟁의 선두에 나섰지만, 최소한 촛불 민주 정부라도 세워 가야 했는데, 기존 부르주아 권력으로 성과가 다 넘어가는 이런 것을 보면, 사실은 노동계급 운동이 자기 역할을 다 못했고, 자기 전망을 세우지 못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노동자계급이 국가 권력에 대한 자기 목표 이런 것들을, 정치적이든 뭐든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주체적인 측면들이 약했던 게 아닌가, 퇴진 투쟁에 참여한 대다수가 노동자였지만, 노동 운동 단위에서 그런 전망들을 세워내고, 그것을 가지고 공동 전선을 치고, 한국 사회의 민중들의 요구를 분출해 내고 견인차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무기력했던 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나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노동 운동에서 변혁지향성을 가진 정치 조직들의, 계급 운동에 복무하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이런 것이 구축되지 않으면, 계속 위기가, 또 기회가 와도, 자기 역할을 못 해내는 게 반복될 것이라고 봐요.

그리고 이때, 전국의 활동가들이 내부에서 서로 달라도 합의를 해 가면서, 하나의 방침을 만들어 가고 했던 <노동전선>의 기존 활동이, 내부 민주주의 문제라든가, 민주 집중제의 문제에서, 그리고 근본 지향의 문제가 그렇고, 또 활동 양식에서의 종파주의 문제가 그렇고, 그래서 앞으로 노동자들이 계급 대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전국적으로 단결하는 데, 또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진출하는 데, 이런 <노동전선>의 경험과 사례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두 번째는, 우리가 왜 약화되어 왔느냐는 것의 원인을 짚어 보면서 생각해 보면, 정치와 현장을 분리해 버리는 문제, 대표적으로 ‘경제는 민주노총이, 정치는 진보정당이’ 하면서, 이 둘을 분리시켜 온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정치 주체가 노동계급이라는 분명히 하고, 그래서 현장과 사회가 연결되는 형태로 세력화를 하고, 노동자를 중심으로 전 사회적 과제를 밀고 나가는 것을, 실패해 오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한국 정치 운동의 맹점이, 노동자들의 진출이 거꾸로 지체되었던 요인이지 않았나 합니다.

 

세 번째, 그러면 이것을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나 하는 거예요. 그것은 한편으로 노동자들이, ‘내가 변혁의 주체’라는 것이 약했다는 거예요. 앞으로 계급정치 노선을 어떻게 세워 가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토론들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저는 노동자들이 현장에 기반해서 변혁성을 잃지 않고 가면서, 스스로 주도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결정력을 만들어 가는 그런 정치세력화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회를 변혁하는 방향으로 가야죠.

그럼 그것을 누가 할 것이냐?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작업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제대로 서야, 제 정당이라든가 이런 부분들도 계급 운동에 제대로 복무할 수 있는 길들이 확장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노동전선>이 노동자들이 스스로 전국적 결집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고, 민주노총의 혁신의 문제든, 민주노총을 계급화하는 문제든, 정치적 진출의 문제든, 제반 문제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데, 노동자들이 스스로 전망을 찾고, 스스로 일어선 것을 가지고, 단결을 도모하고, 변혁적 실천들을 강화해 가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그런 운동에 <노동전선>이 복무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바로 노동자 중심성을 세워 가는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 <노동전선>도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라는 말처럼, 사상 학습을 통해 자기 전망을 세우고, 주체를 형성하는 과제를 중심에 두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활동가들도 전망의 상실의 문제가 가장 크고, 그래서 주체가 약화된 게 큰 문제이고, 그래서 지금 민주노총의 차원에서 보면, 민주당이 현장까지도 장악해 들어오는 그 정도의 위기로 가고 있는데, 활동가들이 현장에 기반하되, 전국적 시야를 가지고, 자기 노조 밖에서 자기 활동 내용을 정립하고, 다시 노조로 가서도, 단순히 노조 선거라든가 임금 인상 투쟁이라든가 이런 데만, 눈앞의 싸움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싸움을 하더라도 사회적 연관성 속에서 투쟁을 만들어 가고, 그런 것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노조 간부가 우선이 아니고, 실제로 활동가적 부분으로 세워 가고 해야지, 민주노조 운동도 좀 더 변혁성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부탁드려 볼까요?

계: 저는 노동 운동의 기준으로, 비정규직 운동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 운동의 기준에서는, 정규직 운동과 비정규직 운동이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고 봐요. 자본은 자신들의 이윤 축적을 위해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율을 높일 수밖에 없고, 이런 것에서 노동을 통제하기 위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있고, 앞으로 4차 산업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더욱 확대 강화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이것은 자본의 전략이고, 사회 체제가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러한 문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체제하에서, 정규직 운동으로 한계되어 있는 지점들이 더 많다고 봐요. 그러나 그러면 비정규직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어떻게 계급적 단결을 할 것인가, 즉 비정규직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거꾸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계급적 운동으로 복귀하도록, 운동적 지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정규직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비정규직 운동과 같이해 가는, 이런 것들을 재정립해 가야 한다, 즉, 계급적 단결의 기준과 전망을 가지고 이 사회 체제에 맞서는 똑같은 노동자라는 사상적 기반을 실제로 만들어야 계급적 단결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봐요.

비정규직 운동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 운동적 내용으로 같이 토론하고 방향을 잡는, 이런 방향으로 가야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 이렇게만 가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 비정규직 운동도 좀 더 계급화된 운동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토론들도 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왜냐하면 똑같거든요. 정규직 노조도 자신의 생존권 때문에 임단협 투쟁을 하고, 비정규직도 불안정 고용이나 임금을 가지고 투쟁을 해 가는데, 그러면 이 수준만 가지고는 서로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대공장 같은 곳에서 들어 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니까 조합 활동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 일들이 많다는 거예요.

물론 이것은 탓할 문제는 아니고, 어떻게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이 사회 체제에 맞서 같은 노동자로서 서로가 토론하고 상호비판하면서, 단결해 갈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죠. 비정규직만의 단결, 정규직을 마타도어 하는 비정규직 운동, 이렇게 가서는 비정규 운동이 발전해 가기 어렵지 않나 합니다.

 

인: 끝으로, 정리 겸 하시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계: 좌ㆍ우를 떠나 가지고, 싸드, 한(조선)반도 평화, 제국주의 문제, 국가보안법 등 같이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봐요. 사실 전쟁이 나면, 제일 많이 죽는 게 노동자예요. 그래서 이런 문제들은, 정말 좌ㆍ우를 떠나서 단결하고 실천해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 경제 위기가 앞으로 전 사회적 위기로 되고, 그 피해가 전 민중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관련해서, 민주노총이든 제 좌파 단위든, 같이 투쟁할 수 있는 계획들을 내고, 정말 사회 체제를 바꾸기 위한 투쟁으로, 이 우경화된 사회를 좌경화된 사회로 바꾸지 않으면 전망이 없다고 봐요.

지금은 이런 시급한 정세가 아닌가 하고, 우리도 이 부분에서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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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인 편집출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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