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배반당한 사회주의: 쏘련 붕괴의 배후(20)

 

로저 키란(Roger Keeran)ㆍ토마스 케니(Thomas Kenny)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서문

1. 서론

2. 쏘련 정치에서의 두 가지 경향

3. 제2경제

4. 약속과 불길한 예감, 1985-86

5. 전환점, 1987-88

6. 위기와 붕괴, 1989-91

7. 결론과 영향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8. 끝 맺음말 ― 쏘련 붕괴의 설명들에 대한 비판

 

 

7. 결론과 영향(3)

 

엥엘스는 사회가 생산수단을 장악하면 상품 생산이 종식되고, 생산자가 생산품을 지배한다고 했다. 엥엘스는 후자가 전자에서 어느 정도 신속하고 자동적으로 흘러나온다고 잘못 판단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들은 사회주의 이후의 역사적 단계인 공산주의를 시장이 없는 사회로 예상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전망은 맑스주의 사회 해방에 대한 이해의 중심이 되어 왔다. 공산주의란 풍요로운 상황에서 자유로운 인간들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시장에 지배되는 맹목적으로 노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집단적 계획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상품 생산을 비판했다. 상품 생산은 생산자들이 자신이 생산한 생산품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단계의 계획 경제가 갖는 가장 큰 강점은 생산자들이 자신의 노동 생산물에 대한 통제력을 단계적으로 되찾는다는 것이었다. 결국에, 공산주의하에서, 맹목적이고 무정부주의적 시장의 힘이 아니라, 의식적인 인간들이 경제 발전의 성격과 속도를 완전히 결정할 것이다.

흐루쇼프 이전까지, 쏘비에트 연방은 시장의 역할을 강하게 제한하는 투쟁을 했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 전후 나찌 침략으로부터의 복구가 완료되기 전에 쏘비에트 지도자와 경제학자들 사이에 커다란 실천적 의미를 가진 이론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니꼴라이 보즈네쎈쓰끼가 이끌었다. 그는 시장 관계의 광범위한 사용을 주장했다. 그리고 논쟁은 이미 간행했어야 할 쏘비에트 정치 경제학 교과서를 준비하기 위해서도 촉진되었다. 쓰딸린은 다양한 논쟁을 정리했다. 사회주의 건설 법칙은 객관적이다. 인간 행동은 사회주의 경제 법칙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 행동은 이러한 경제 법칙의 작동 범위를 제한할 수는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사회주의에서의 상품 생산은 일정 기간 동안, 자본주의를 끌어들이지 않고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상품 생산은 자본주의적 조건하에 있는 것처럼 무한한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도 아니다. 엄격한 범위 내에서 제한되어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계 트랙터 사업소(MTS)를 집단 농장에 판매하는 것에 반대했다. 여러 가지 실천적 이유와 판매가 상품 생산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이미 획득한 농업의 산업화 수준을 후퇴시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관점에서, 쏘련 경제에서의 상품 생산은 개인적 소비의 영역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생산품 교환소의 발전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비상품 경제 원리가 1952년에 존재하고, 발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1)

1952년의 쏘비에트 논쟁은 사회주의 장기 전략에 대한 투쟁이었다. 쓰딸린의 상품-화폐 관계와 사회주의하에서 가치 법칙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에서의 상품의 본질이 변형될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 상품이 있을 수 있다면, 쏘련 공산당 지도부 중 일부가 사회주의에서 시장을 전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논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발전할 때 엄격한 범위 내에서 시장을 제한하는 정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쓰딸린은 이 길을 거부했다.

그 후에 흐루쇼프가 나타났다. 1953년 이후 친시장적 정치사상으로의 전환이 있었고, 경제 이론의 원칙 전환2)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여기에는 너무 빤한 난제 하나가 드러났다. 사회주의에서 시장 관계의 이용을 확대하고자 한 이들은 맑스주의 이론의 주요소를 폐기했다. 즉 사회주의 이후의 먼 역사적 단계인 완전한 공산주의에는 시장이 없다는 공인된 이론을 포기한 것이다. 맑스주의 창시자들은 완전한 공산주의는 시장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사회주의 단계에서 시장을 최대한 이용하고 다음 단계에서 갑자기 시장이 없어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비켜 간 한 가지 사례는 1969년 흐루쇼프와 친분이 있던 경제학자 루먄쩨프(A. M. Rumyantsev)의 ≪공산주의 정치 경제학의 범주와 법칙(Categories and Laws of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sm)≫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상품-화폐 관계(시장)의 이용이 완전한 공산주의로의 진보를 가속화한다는 개념과 사회주의는 완전한 공산주의로 성장한다는 개념을 긴 글 속에 감추어 다소 애매하게 처리했다. 그러면서 마지못해 발전의 현대적 단계에서 사회주의 정치 경제의 이러한 가장 복잡한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이론 논쟁은 허용했다.3) 친시장적 전환은 흐루쇼프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됐다. 브레쥐네프 시대의 후기 교과서, ≪정치경제학: 사회주의≫(1977)에는 상품-화폐 관계는 공산주의 단계에서 고사할 것이라고 한 단락 정도로 언급되고 만다. 어떻게 고사할 것인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안데쉬 오슬룬드(Anders Aslund)4)는 1960년대에 쏘비에트 경제학자들이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 데 주목했다. 상품주의자와 반상품주의자이다. 다시 말해 상품-화폐 관계의 활용을 증가시키는 데, 즉 시장을 확대하는 데 찬성하는 진영과 반대하는 진영이다. 1985년 이전 적어도 10년 동안에, 많은 쏘비에트 연구 단체와 다른 여러 학문계를 장악한 사회 과학자들은 칼 맑스보다 폴 사무엘슨에 더 끌리고 있었다.5) 이들 중 한 명은 따쨔나 자쓸라프쓰까야(Tatyana Zaslavskaya)6)인데, 그의 스승인 V. G. 벤줴르(V. G. Venzher)은 기계 트랙터 사업소(MTS)를 집단 농장에 판매하자고 하였다가 쓰딸린이 반대한 적이 있다.7) 자쓸라프쓰까야는 고르바쵸프의 친시장 개혁에 일찌감치 영향을 주었고, 그의 지지자들에게 거의 마지막까지 영향을 미쳤다. 쏘비에트 경제 사상의 두 가지 경쟁적 흐름에는 눈에 띄는 연속성이 있었다.

유리 안드로뽀프는 경제 개혁을 하는 데 자신의 길이 아직 이론 및 실천에서 해결할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노동 생산성 향상을 빠르게 할 방법에 대한 적절한 이론이 부족하고, 중앙 계획하에서 가격을 결정할 명확한 방법이 없다고 한탄했다.8) 그는 자신의 접근 방식이 사회를 서로 경쟁하는 독립적인 기업들로 나누는 무정부적 노동조합주의(anarcho-syndicalism)로 기운 부하린의 사상보다는 낫다고 보았다.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패런티(Michael Parenti)는 쏘비에트 산업을 혁신하기 위한 장려책의 여러 문제점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관리자들은 혁신으로 지위가 위태롭게 되거나, 위험 감수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계획된 생산 목표를 달성하라는 압박은 실험과 더 나은 기술을 도입하려는 의욕을 꺾었다. 반면에 품질을 저하시키는 동기는 자극했다. 운영을 잘하여 계획을 충족하거나 초과 달성한 공장들은 종종 더 많은 작업량이 부과되어 곤란을 겪었다.9) 이 문제들은 계획과 관리에 있어 확실히 고질적이고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쏘비에트의 반혁명은 남아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991년 이후 사회주의 국가10)는 4개 나라, 중국, 꾸바, 베트남, 조선이 남아 있었다. 이들 나라는 시장을 받아들이라는 제국주의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 단체(WTO, IMF, 세계은행)에 항복하고, 국경 내에 서구 기업이 투자할 특별 구역을 만든다면, 서구의 대출과 서구 시장에 대한 접근, 그리고 기술 이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4개국 모두 경제 전쟁의 선봉인 미국에 응전해야 했다. 대부분 머리에 총구가 겨눠져 있었다. 시장과 기업에 여러모로 굴복해야만 했다. 이는 정말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쏘련 붕괴의 핵심적 교훈은 시장 관계는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초기에 사회주의 국가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시장을 제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농업만은 예외적이었다. 쏘련의 농촌은 사회주의 관계로의 이행이 천천히 수행되는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반면에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은 농업 집단화를 서둘러 추진하고는 주춤했다. 중국은 쏘련이 종식되기 훨씬 전인 1978년에 농업을 다시 민영화하는 개혁을 했다. 농업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다.11) 그 후 중국은 해외 무역과 산업에 대한 개혁에서는 농업보다 완만한 속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사회, 정치, 경제에는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12) 사회주의 꾸바에서는 농업 개혁이 매우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1989-91년 쏘비에트와의 무역이 중단되고 원조가 끊긴 것이다. 섬나라에서는 자급자족과 심각한 위기에 적응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가 필요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국영 농장의 노동자들을 협동 농장의 소유주가 되게 하였다. 이러한 개혁 조치 이후 생산량이 상당히 증가했다.13) 오늘날에도 꾸바의 일부 사람들은 이 특별한 시기를 강요되고 아주 위험한 긴급 상황에서의 퇴보로 보지 않고, 환영할 만하고 건전한 장기적인 발전 과정으로 해석한다. 꾸바의 최고 경제, 계획 당국은 훌륭하게도 자유로운 논쟁을 기꺼이 허용하면서도, 그것이 (쏘련이나 중국과) 유사한 역사적 경향이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시장에 대한 실험이 모두 쏘비에트 종식 이후 절박한 필요성이나 고조된 서구의 압력에 의해 야기된 것은 아니다. 두 개의 혁명계급, 두 개의 노선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중국에서 시장에 대한 양보는 극단적이고, 사회주의의 미래는 회의적이다. 해리먼 학회 라잔 메논의 1994년 논문에 따르면,

 

중국의 개혁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언급을 회피할지라도, 중국 공산당이 걷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 자율성이 증가하고 있는 해안 지역 그리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부패한 사상에 노출된 지식인들과 무기한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14)

 

2001년 7월, 중국 공산당 수뇌부는 자본가들의 중국 공산당 가입을 허용하도록 요구했다. 민족 부르주아지 일부가 중국 혁명에 참여했고, 초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였지만, 새로운 자본가계급에 대한 최근의 입장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중국은 본질적으로 거대하고 확장된 신경제 정책(NEP)15)을 추구하고 있다. 머잖아 이 정책의 정치 경제적 모순은 1928-29년의 쏘련이 그랬던 것처럼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의 집권 공산당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투쟁의 정치적 결과는 21세기의 가장 중대한 것들 중 하나임이 확실하다.

1991년 이후 쏘련에서의 자본주의 복원은 침체와 마피아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를 의미했다. 러시아와 쏘련에 속했던 지역들에서의 자본주의 복원은 여전히 안정적이지 않다. 초국적 자본은 탈쏘비에트 러시아를 절름발이의 의존적인 자원-추출 지대로 만들었다. 심지어 원자력 사고의 위험, 인종 전쟁 및 국가 분열의 위험에 처하게 했다. 학자들은 미국이 그다지 염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여러 관점에서 지적했다.16) 1940년대 후반과 비교하면 훨씬 더 명확하다. 그때 걱정이 많았던 미국의 지배층은 서유럽 자본주의의 안정화 계획인 마샬 플랜을 위해 많은 법안을 상정했었다.

이전의 고르바쵸프 지지자들은 탈쏘비에트 체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전망이 어떤지에 대해 토론한다. 고전 공포 영화 ≪악마의 씨(Rosemarys baby )≫에서처럼, 탈쏘비에트 신생아는 끔찍하다. 그것이 정말 아기라 해도, 그것을 본 사람들은 자신의 씨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 비참한 작은 생물은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코츠(Davide Kotz)17)는 탈쏘비에트 러시아 자본주의는 결코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한다. 이전 국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나온 비자본주의 포식적/약탈적 제도라는 것이다. 로이 메드베제프(Roy Medvedev)와 같은, 다른 이들은 자본주의 혁명이 러시아의 파멸적 운명이 되었다고 말한다.18)

틀림없이, 오늘날의 러시아 체제는 유례없이 기생적이고, 기형적이며, 나약하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확실히 자본주의로 전환됐다. 물론 많은 문제가 있지만,19) 구쏘련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사회악의 모습은 아니다. 사회주의를 되돌릴 수 있었던 것처럼, 신자본주의도 되돌릴 수 있다. 러시아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심해지고, 제국주의가 개의치 않으며, 러시아 좌파가 현실적 전략을 중심으로 결집할 수 있다면, 사회주의 복원이 다시 의제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결국,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정당은 다른 어떤 단일 정당보다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왜 쏘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는 그렇게 나약했는가? 물으며, 많은 사람들이 고뇌에 차 있다. 내부로부터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체제는 실제보다 더 강하게 보인다. 따라서 예측치 못한 몰락은 더욱 충격적이었고 혼란스러웠다. 비슷한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해 보자. 미국 자본주의가 1929년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왜 쏘비에트 사회주의는 고르바쵸프 시기에 살아남을 수 없었는가? 당시 미국 자본주의는 40%의 대량 실직, 10년간의 침체를 야기한 경제 붕괴 기간이었고, 장기간의 공화당 지배가 끝난 때였다. 미 자본주의는 이를 극복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성장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답은 다음과 같다. 주관적인 요소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질적인 차이는 자본주의는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주의는 (의식적으로) 건설한다라는 말 속에서 포착할 수 있다. 진부한 비유의 위험을 감수하고 말하자면, 두 체제는 뗏목과 비행기에 비교된다. 자본주의라는 뗏목에서 배를 조종하는 뱃사공은 단지 여울, 급류, 폭포만 피하면 된다. 대체로, 강의 흐름이 뗏목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 그것은 간단하고 자동적인 체제이다. 단지 느슨한 감독만이 요구된다. 커다란 실수들은 보통 위험하지 않다.

사회주의라는 비행기는 훨씬 더 우월한 교통수단이다. 범위, 방향과 조작의 자유도, 속도는 뗏목을 훨씬 능가한다. 그러나 비행기는 물리학과 공기 역학, 예측, 계획, 과학, 훈련, 지상 근무원, 레이더 등의 원리를 의식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거대한 사회적 분업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씨스템이다. 이 씨스템은 조종이라는 주관적 측면이 뗏목의 경우보다 교통수단의 안전에 훨씬 더 중요하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데 있어 큰 실수는 드물기는 하지만 종종 치명적이다. 잘못을 용인할 여지는 훨씬 적다. 그러나 비행기가 때때로 추락한다는 사실이 뗏목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어느 비행기가 더 잘 설계되었는지, 어느 비행사가 더 잘 운행했는지 등의 비행기 안전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사회주의 건설 법칙과 자본주의 발전 법칙은 전혀 다르다. 자본주의 법칙은 맹목적이다. 목적의식적이지 않고 중력의 법칙처럼 움직인다. 강의 흐름에 따라 뗏목을 떠내려 보내면 그만이다. 사공이 무엇을 하든 흘러가게 마련이다. 반면 사회주의 법칙은 객관적이지만, 중력과 추진력, 양력, 항력과 같은 힘들을 지배하는 법칙을 숙달하고 이용하는 설계자와 그러한 기초 과학에 근거한 기술에 능숙한 조종사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고르바쵸프의 지도력은 실수투성이인 후버가 미국 자본주의에 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피해를 사회주의에 줄 수 있었다. 쏘비에트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주의 경제 법칙은 자생적이고, 무정부적으로 작동하는 힘을 중단시키고, 사회가 사회의 이익에 따라 목적의식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 법칙을 무시하게 되면 경제에 있어 어려움과 불균등, 불균형을 … 야기하고, 행동의 조화 및 사회단체와 노동단체의 동지적 협력을 약화시킨다.20)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1) 이오씨프 쓰딸린(Joseph V. Stalin), ≪선집(Selected Works)≫, Davis, California: Cardinal Publishers, 1971, p. 324.

 

2) 모리스 돕(Maurice Dobb), ≪1917년 이후 쏘비에트 경제 발전(Soviet Economic Development since 1917 )≫,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68, p. 334; Meek, p. 282.

 

3) 루먄쩨프(A. M. Rumyantsev), ≪공산주의 정치 경제학의 범주와 법칙(Cat-egories and Laws of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sm)≫,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69, p. 225.

 

4) 안데쉬 오슬룬드(Anders Aslund), ≪경제 개혁을 위한 고르바쵸프의 투쟁(Gorbachev’s Struggle for Economic Reform)≫, Ithaca: Cornell, 1989, p. 4.

 

5) 데이비드 코츠(David M. Kotz)ㆍ프레드 위어(Fred Weir), ≪위로부터의 혁명(Revolution from Above)≫, New York: Routledge, 1997, p. 67.

 

6) 따쨔나 자쓸라프쓰까야(Tatyana Zaslavskaya), ≪제2의 사회주의 혁명, 대안적 쏘비에트 전략(The Second Socialist Revolution, an Alternative Soviet Strategy)≫,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0, ix.

 

7) 쓰딸린(Stalin), p. 368.

 

8) 유리 안드로뽀프(Yuri Andropov), “쏘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한 연설(Speech at the CPSU Central Committee Meeting)”, 1983년 6월 15일, Moscow: Novosti Press Agency Publishing House, 1983, p. 22.

 

9) 마이클 패런티(Michael Parenti), ≪검은셔츠단과 빨갱이(Blackshirts and Reds)≫, San Francisco: City Lights, 1997, pp. 60-61.

 

10) 라오스를 목록에 추가할 수도 있다. 라오스는 맑스-레닌주의 정부가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하고 있고, 차후에 사회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발전은 엄청난 장애에 막혀 있다. UN은 라오스를 “가장 발전하지 못한” 나라로 지정했다. 물론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도차이나 전쟁 중 미국의 야만적인 폭격에 어느 정도 기인한다. 1986년부터 인민혁명당(LPRP)이 이끄는 라오스는 이웃인 베트남과 보조를 맞추며, 공공 부문, 외국 부문, 국내 민간 부문으로 이루어진 다층 경제를 창출하기 위한 갱신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라오스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 부분적인 통합을 추구해 오고 있다. 라오스의 공식 웹사이트 <http://www.laoembassy.com> 참고.

 

11) 칼 리스킨(Carl Riskin), ≪중국의 정치 경제(China’s Political Econom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p. 290.

 

12) 알 사르기스(Al L. Sargis), “중국 사회주의 초급 단계의 이념적 경향과 개혁 정책(Ideological Tendencies and Reform Policy in China’s Primary Stage of Socialism)”, ≪자연, 사회 그리고 사상(Nature, Society, and Thought)≫, Vol. 11, no. 4, 1998, p. 396.

 

13) 호세 벨 라라(Jose Bell Lara) 편집, ≪1990년대 쿠바(Cuba in the 1990s)≫, Havana: Instituto Cubano del Libro, Editorial Jose Marti, 1999, p. 111, p. 87.

 

14) 라잔 메논(Rajan Menon), “사후 평가: 쏘비에트 붕괴의 원인과 결과(Post-Mortem: the Causes and Consequences of the Soviet Collapse)”, ≪해리먼 리뷰(The Harriman Review)≫, Vol, 7, nos. 10-12, 1994, p. 9.

 

15) 도메니꼬 로쉬르도(Domenico Losurdo), “역사로부터의 도피인가? 자아비판과 자아경멸 사이의 공산주의 운동(Flight from History? The Communist Movement between Self-criticism and Self-contempt)”, ≪자연, 사회 그리고 사상(Nature, Society, and Thought)≫, Vol. 13, no. 4, 2000, p. 498.

 

16) 스티븐 코헨(Stephen F. Cohen), ≪실패한 성전: 미국과 쏘비에트 이후 러시아의 비극(Failed Crusade: America and the Tragedy of Post-Soviet Russia)≫, New York: Norton, 2001, p. 208.

 

17) 데이비드 코츠(David M. Kotz), “러시아는 자본주의화 되고 있나?(Is Russia Becoming Capitalist?)”, ≪과학과 사회(Science and Society)≫, Vol. 65, no. 2, summer 2001, pp. 157-181.

 

18) 로이 메드베제프(Roy Medvedev), ≪탈쏘비에트 러시아(Post Soviet Russia)≫,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2000, p. 51.

 

19) 이안 피셔(Ian Fisher), “폴란드가 어려운 시기에 놓이면서 자본주의가 공격을 받다(As Poland Endures Hard Times, Capitalism Comes under Attack)”, New York Times, 12 June 2002/14 July 2002, <http://query.nytimes.com/search/article-page.html?res=9F0DE5DF163CF931A25755C0A9649C8B6>

 

20) 꼬즐로프(G. A. Kozlov) 편집, ≪정치 경제학: 사회주의(Political Economy: Socialism)≫, Moscow: Progress, 1977, pp.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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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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