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이 달의 역사] 메이데이, 세계 노동절을 생각하며

 

 

심미숙 | 편집위원

 

 

 

임금 노동이 폐지되고, 실업자가 없는, 모든 인류의 생존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세상이 펼쳐진다면 노동자들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을까? 주어진 일, 임금 노동을 하루하루 해내고 국가와 지배계급이 부여한 임무와 책임에만 갇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는 일에만 허덕이며 살고 있는 노동자들은, 혹은 그조차도 불가능한 실업과 반실업의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들은 더 이상 그렇게만 살지 않아도 될 때, 모든 인민의 생존이 보장되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가 펼쳐질 때, 무슨 일이 가장 하고 싶을까? 생계를 위한 노동 말고 다른 어떤 일을 가장 하고 싶을까?

 

 

메이데이, 세계 노동절의 역사

 

봉건 제도를 몰아내고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독립 생산자였던 농민과 수공업자의 대다수는 공장으로 가서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잉여 노동의 착취, 이윤의 획득을 위해 자본주의 생산 체제는 그 임금 노동자들을 12시간에서 16시간을 넘어서는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았다. 6살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임금으로 노예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노동을 해야 했다.

 

이로부터 노동일의 단축, 노동 시간의 단축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었고, 12시간, 10시간 노동일을 쟁취하는 투쟁이 이어졌다. 1858년에 호주 건설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쟁취했고, 1864년에 설립된 국제노동자협회(제1 인터내셔날)는 1866년에 8시간 노동일을 정식 요구로 채택했다.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의 시위(1886년 5월 4일)

 

1886년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일을 요구하는 역사적인 전국 총파업을 일으켰다.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연이은 헤이마켓 광장에서의 항의 시위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되고,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검거되어 사형을 당했다. 그 투쟁을 이어서 1888년 12월에, 미국노동총연맹(AFL)은 1890년 5월 1일을 기하여 8시간 노동일을 위한 총파업을 다시 일으킬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1889년 7월 빠리에서 창립 대회를 개최한 제2 인터내셔날은, 그 결의를 지지하면서 이날을 노동자들의 국제적 시위의 날로 정했다. 각국의 노동자는 각각의 국가 당국에 대하여 노동일을 법률로 8시간으로 낮출 것과 제2 인터내셔날 창립 대회에서의 다른 결의 사항들을 실행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조직할 것을 결의한 것이다. 이후의 제2 인터내셔날 대회에서도 이러한 결정을 반복하여 노동절은 국제 노동 운동의 시위의 날로 고정되었다.1)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이 있었지만, 8시간 노동일을 세계적 표준으로 만드는 데 쐐기를 박은 나라는 쏘련이었다. 1917년 10월 혁명이 성공하고 러시아 쏘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세계 최초로 국가 법률로 8시간 노동제를 확립했다. 이에 미, 영, 프, 일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노동자들의 기본 요구를 짓밟고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배경 속에서 국제노동기구(ILO)가 국제연맹의 산하 기관으로 설립되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2년 후인 1919년 10월 국제노동기구 제1차 총회에서 1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제를 정하고, 이를 국제 노동 기준으로 확립했다.

 

 

한국과 프랑스의 노동일의 법과 현실

 

한국의 경우에도, 식민지 조선에서부터 노동ㆍ사회 운동 단체들은 8시간 노동제를 주요 요구로 내세워 투쟁했다. 해방 직전 임시 정부의 건국 강령에도 파업의 자유, 여공의 야간 노동 금지 등과 함께 8시간 노동제가 포함되는 등 주요 독립운동 단체의 강령에도 포함되어 있었고, 1945년 이후 해방 공간에서 활동했던 건국준비위원회 등 주요 사회ㆍ정치 단체의 강령 등에도 8시간 노동제가 포함돼 있었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이 1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던 것은 이 같은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다.2)

그러나 근로기준법 상의 1일 8시간 노동제는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1950년대에 한국의 제조업체 대부분이 1일 평균 10시간 정도의 노동을 요구했고, 섬유 공장ㆍ제약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 노동자들은 1일 12시간의 노동을 강요받았다. 1960-70년대에는 이러한 상황이 더욱 심화되어 세계 최장의 노동 시간을 나타냈다. 이후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제가 모든 사업장에서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시행되었으나, 세계 최장 시간 일하는 한국 노동자의 현실은 2020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여전하다. 이는 당사자가 합의하면 연장 근로를 할 수 있는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항상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고, 예나 지금이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연장 노동이나 휴일 노동을 통한 시간 외 근무 수당으로 부족한 생계비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3)

 

한편 프랑스는 주 39시간 노동제를 1982년에 추진했고, 주 35시간 노동제를 2000년 이후 시행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에도, 각종 예외 규정이 있어서 산업별, 기업별로 연장 근로 협약을 맺을 수 있게 돼 있어, 주 60시간 노동도 가능하고, 연장 근로 수당을 노사 합의로 감액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실은 주 35시간 노동제가 아니다. 또한 유럽연합은 2003년에 탄력적 근로 기간을 1년으로 명시하여, 유럽연합 회원국은 이에 따라 노동법을 다듬었고, 프랑스도 현재 탄력적 근로 기간이 1년이다. 이는 주 35시간이라는 적은 노동을 보충해 주는, 노동 유연성 장치이다. 프랑스 정부는 더 많은 노동 유연성 제고를 준비하고 있고, 이에 따라 앞으로 프랑스인들의 실제 노동 시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2020년에 생각하는 노동자들의 과제

 

노동 운동과 자본주의의 역사는 하루 8시간 노동을 향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2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하루 8시간 노동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기준이 된 지도 100년 가까이 흘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그저 법적인 것, 선언적인 것일 뿐,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보여 주고 있다. 노동자들은 언제나 생계비에 못 미치는 임금에 허덕이며 장시간의 노동, 연장 노동과 휴일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물론 동시에 실업과 반실업이 만연하고 있다. 이것은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 주기인 공황기에는 필연적으로 더욱 만연해지는 현상이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고통 속에서 살거나, 실업과 반실업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올해 노동절 집회는 코로나19로 인해 곳곳으로 분산되어 소규모의 기자 회견과 선전전, 온라인 방송 등으로 진행되었다. 주요 구호는 해고 금지, 모든 노동자의 고용 보험 가입, 총고용 보장 쟁취, 생계 소득 보장과 사회 안전망 확대, 계급 연대와 사회 연대 실현, 안전사고 재발 방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이었다. 그런데 이 구호들은 문재인 정부와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진보 언론이 내세우는 처방과 거의 같다. 과연 어떻게,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까?

 

≪한겨레≫ 신문은 5월 3일 자 사설에서 전 국민 고용 보험 확대는 늦은 감이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노동절 사설에서 노동자들의 작업 중지권을 인정하고, 안전 문제를 도외시한 사업주와 공무원의 직무 유기를 엄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처리할 때가 됐다. 결코 몰랐던 일도 아니다. 절감한 문제를 고치고, 노동자의 땀이 가정과 국가를 지키고 있음을 잊지 않는 노동절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2020년 노동절 즈음하여 한국의 노동자들이 진정 절감(切感)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노동절 하루 전날 38명의 노동자가 희생된 이천 물류 창고 화재 참사 당시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9개 업체에 소속된 78명의 하청,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는 사실에서, 우리 노동자들이 절감해야 하는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일까? 곳곳에서 산업이 흔들리고, 실업자가 급증하고, 민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말 그대로 경제 전시 상황4)에서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절감해야 할까?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결코 노동자의 삶이 크게 나아질 수 없다는 것, 이 체제가 유지되는 한 노동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실업ㆍ반실업의 끔찍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하루 빨리 노동자들이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생산력과 생산물의 실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노동자들이 절감해야 할 인식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노동자들이 사회를 다시 조직하고 운영하려면, 그래서 노동자들이 하루 빨리 이 세상 모든 좋은 것을 누리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폐지, 자본주의 철폐를 결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실현 가능함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실천의 전망과 계획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의, 그것도 피착취 노동의 의무만을 다하던 삶에서 근본적인 권리와 행복을 찾는 삶으로 노동자계급은 하루라도 빨리 나아가야 한다. 1886년 5월 1일에 미국의 노동자들이 불렀던 아래의 노래를, 이제 노랫말을 바꾸어, 한국과 세계의 노동자들이 다시 함께 불러야 한다.

 

우리도 이제 노동일은(→임금 노동은) 않을 테야

일해 봐도 보람도 없는 그런 일은 않을 테야

겨우 연명할 만큼 주면서 생각할 틈도 안 주다니

진절머리가 난다네

우리도 햇볕을 보고 싶다네 꽃 냄새도 맡아 보고 싶다네

하나님이 내려 주신(→자연의) 축복인데 우린들 아니 볼 수 없다네

우리는 여덟 시간만(→두세 시간만?5)) 일하려네

조선소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점포에서

우리는 힘을 길러 왔다네

우리 이제 여덟 시간만(→두세 시간만?) 일하세

여덟 시간은 휴식하고

남은 여덟 시간으로(→열서너 시간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세

(1886년 5월 1일, 미국의 노동자들이 시가행진 때 부른 노래)

노사과연

 

 


 

1)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는 현재, 9월 첫째 월요일을 Labor Day로 기념하고 있다. 당시 미국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의 역사를 지우고, 미국의 노동 운동이 국제적인 노동 운동과 연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연결 고리를 의도적으로 자르려고 날짜를 옮긴 것이다.

 

2) 한국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당시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하에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약 2000여 명의 노동자가 모여 “노동 시간 단축, 임금 인상, 실업 방지” 등을 주장했다. 이후 1945년 해방 직후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1946년 20만 노동자가 참여한 가운데 메이데이 기념식을 성대히 치렀다. 1957년 이승만은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반공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되도록 하라”고 대한노총에 지시했고, 이에 대한노총 결성일인 3월 10일로 노동절이 변경됐다. 5ㆍ16 쿠데타 이후 1963년에는 이름마저 노동절에서 근로자의 날로 바뀌었다. 1989년 삼엄한 경찰의 원천 봉쇄를 뚫고 연세대학교에 모인 전국의 5천여 노동자와 청년들은 전야제를 갖고 4월 30일 세계 노동절 기념 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매년 노동절 기념 대회를 개최했다. 1994년 정부는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근로자의 날을 바꿨으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명칭은 그대로 근로자의 날이다.

 

3) 또한 한국의 노동 현실은 최근 1주일이 5일이냐, 7일이냐? 즉, 토ㆍ일요일 등 휴일의 근무는 연장 근로에 포함되나? 포함되지 않나? 하는 황당한 논란을 겪어야 했고, 현재는 ‘1주일은 7일이라는 해석’을 포함하는 주 52시간 노동제를 법제화했고,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 탄력 근로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 직전에 있다.

 

4) ≪동아일보≫ 5월 5일 자 사설에서 인용함. 이 사설에서는 동시에 “탄력 근로제 단위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이번 29일로 종료되는 20대 국회를 넘기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처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5) 4차 산업 혁명의 시대, 생산의 거의 모든 분야로 무인 자동화 씨스템이 도입되는, 거대한 생산력을 가진 지금의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하루 두세 시간의 노동만으로도 모든 인류가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 체제만 아니라면, 생산 수단과 생산물의 사적 소유만 철폐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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