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기고: 서평] 사회주의 국가 쏘련의 업적과 해체 과정을 되돌아보며―≪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를 읽고

 

김남기 | 학생

 

 

* 바만 아자드,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사회주의 국가 쏘련을 해체시킨 요인들≫(제3판), 채만수 역, 노사과연, 2009.

 

 

199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사건은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미국과 더불어 냉전 시대를 장식하던 사회주의 종주국인 쏘련(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15개의 국가로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쏘련이 내세운 사회주의가 끝나는 것으로 민중들에게 인식되었다. 네오콘적 사고를 가진 일본계 미국인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신의 저서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 냉전 종식 이후, 세계가 미국 등 서방 자유민주 진영의 주도로 큰 전쟁이나 대립 없이 평화를 이어 나가고, 자유민주주의적 체제에서 더 이상의 체제 발달 없이 사회가 유지될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폭력성이 드러나는 망언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쏘련의 해체는 사회주의가 실패 혹은 패배하고, 자본주의 미국이 성공 혹은 승리한 사건 내지는 역사로 간주됐다. 이것은 대한민국 386 운동권에게도 해당이 되는 얘기였고, 쏘련이 해체되는 모습을 본 운동권들은 자신들이 추구했던 맑스-레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방향으로 수정하는 쪽을 택했었다. 아주 극단적으로는 사회주의에서 반공주의로 복귀하는 반동의 길을 걷는 이들도 분명 적잖게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뜨로쯔끼주의를 일부 수정한 영국의 토니 클리프식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쏘련의 해체는 많은 이들에게 사상적 변화를 주었고, 그런 변화는 아주 나쁜 의미에선 반동주의나 수정주의로의 회귀이기도 했다.

 

그러나 쏘련의 해체는 그것의 해체를 직접 보지 못했거나, 해체 과정을 겪던 당시에는 그것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저 막연히 사회주의 그 자체를 실패의 역사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인식 속에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미 제국주의의 교만한 정치사회 공작의 영향도 분명히 있었다.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선전을 통해 주장하고 세뇌시키는 것과는 달리 쏘련은 쉽게 해체될 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냉전 시기의 쏘련은 미국 다음으로 강한 군사력을 유지했고,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기도 했으며,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반제국주의 투쟁을 지원하기도 했다. 사회주의자 바만 아자드가 집필한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Heroic Struggle! Bitter Defeat)≫는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쏘련이 제국주의자들과 자본가들이 얘기하는 것과는 달리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서방측 자료와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증명한다.

 

쏘련의 흥망과 해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쏘련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쏘련은 천재적인 지도자 블라지미르 레닌과 볼쉐비끼 당의 지도 아래 1917년 10월 사회주의 혁명으로 탄생했다. 이 혁명은 러시아 제국이 참전했던 제1차 세계 대전 와중에 일어났고,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과 볼쉐비끼는 각종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정책들을 펼쳐 나갔다. 볼쉐비끼 혁명으로 탄생한 사회주의 국가는 1918년 14개의 제국주의 연합군과 짜르 체제를 복고하려는 반혁명 군대의 군사적 공격으로 내전에 직면하게 됐고, 볼쉐비끼는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내전에서 승리한 혁명 지도부는 신경제 정책으로 경제를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노력으로 쏘련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의 경제 상황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한 이후, 당내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이오씨프 쓰딸린이 집권하게 된다. 쓰딸린은 기존의 신경제 정책에서 급진적 공업화 노선으로의 이행을 추진했다. 쓰딸린의 공업화 노선으로 쏘련은 경제 규모에서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 됐고, 군 현대화를 통해 군사 강국이 되었으며, 1941년 나찌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영웅적인 투쟁을 통해 파씨즘을 무찌르고 전 세계를 구해 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치른 피해를 전후 복구를 통해 회복하고, 1950년대에는 미 제국주의와 견줄 수 있는 힘을 길렀다. 1953년 쓰딸린 사망 후 정권을 잡은 흐루쇼프는 쓰딸린 격하 운동을 전개하며, 일종의 새로운 도전을 해 보려 했지만, 쓰딸린에 대한 감성적인 비판에만 치중했던 나머지 중공업 정책에서 지나치게 경공업과 소비를 중시하는 노선으로 갔다. 정치 경제적으로 수정주의를 택한 흐루쇼프의 노선은 결과적으로 쏘련 내의 빈부 격차와 낮은 경제 성장률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와의 갈등을 초래했다. 그래도 흐루쇼프의 시대는 전후 복구의 혜택을 받아서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쓰뿌뜨니크호를 탄생시켰고,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탄생시키는 고무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했었다.

 

흐루쇼프의 수정주의적 노선은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경쟁에서 해 오던 군사 경쟁의 문제점을 해결치 못했다. 그리고 흐루쇼프 이후의 쏘련 지도부는 사회주의의 최종 승리를 선포하고, 미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포기하거나 유보하려는 쪽으로 노선을 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쏘련이 가지고 있던 내부의 문제점은 사라지지 않았고, 외부적으로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의 정치 공작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그 시기 쏘련은 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 구조에 필요한 변화를 가하고 그 객관적 조건에 조응하는 사회 경제적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그 성장과 발전에 의해서 야기되는 주기적인 위기를 또한 어떻게든 극복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의 쏘련은 아니었다. 1980년대 브레쥐네프 이후 안드로뽀프가 쏘련 내부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소위 인간의 얼굴을 했다고 알려진 고르바쵸프는 그런 내부 문제 해결을 얘기하며 1985년 뻬레쓰뜨로이까를 단행했다. 하지만 고르바쵸프가 행한 뻬레쓰뜨로이까는 쏘련이 추구해 오던 사회주의 그 자체에 대한 포기를 뜻했다. 이것은 결국 사회주의 그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부정과 일탈이 결과적으로는 보리쓰 옐찐이라는 반혁명적 반동주의로 이어졌고, 1991년에 이르러 사회주의 국가 쏘련의 해체를 불러온 것이다.

 

쏘련 해체 원인에는 분명 내부적인 요인이 있었다. 그런 내부적인 해체 원인은 흐루쇼프 때부터 점차 생기기 시작했고, 브레쥐네프 지도부에서도 생겨났으며, 1980년대 고르바쵸프에 와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는 결국 사회주의와 맑스-레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옐찐의 반동주의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저자 바만 아자드는 이러한 내부적인 문제를 논리적으로 지적하며, 이것은 쏘련 지도부가 정책의 방향만 잘 잡았다면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아자드의 주장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게 필자에게 다가왔다. 그는 쏘련 사회주의의 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사회주의의 위기는 성장의 위기였지 실패의 위기가 아니었다. 그 발전의 각 단계에서 사회주의는 계속적인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서 생산력의 발전 단계에 맞추어 사회적ㆍ경제적 생산관계를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성장의 위기를 사회적ㆍ정치적인 위기의 객관적인 장으로 바꾼 것은 쏘련 공산당의 주체적인 오류와, 사회주의 내부에서 새롭게 발전한 생산력에 맞추어 생산관계를 재조정하기 위한 시의적절한 행동의 결여였다.1)

 

그런데 쏘련 해체 원인은 비단 내부적인 문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은 외부적인 문제도 분명히 작용했다. 저자 바만 아자드는 냉전 시기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 쏘련을 해체시키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다고 주장한다. 냉전 기간 중에 미국 정부는 수만 명의 스파이를 고용하여 스파이 활동과 기타 대쏘련 파괴 활동을 벌이는 데에 연간 150억 달러나 사용했다.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 미국은 쏘련의 경제 성장의 감속을 틈타 제국주의의 반사회주의 선전 공세 및 파괴 공작과 더불어, 위기를 심화시키고 그 위기를 정치적 수준으로까지 부상시키는 물질적인 기초를 창출했다.

 

이렇게 쏘련은 내부적인 문제와 외부적인 문제로 인하여 해체됐다. 그러나 미국의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의 실패를 주장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항상 무시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쏘련 인민이 쏘련 해체를 바라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1991년 3월 쏘련 존속에 관한 국민 투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물론 아르메니아와 발트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몰도바는 참여를 거부했기에 그곳에선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전국적인 투표의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투표율 80%를 보였던 이 투표에서 77.4%가 쏘련의 유지를 찬성했다. 그리고 연방 해체 이후인 현 러시아에서도 70% 이상의 러시아 인민이 쓰딸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쏘련의 해체를 아쉬워한다는 점은 쏘련 해체가 결코 민중의 염원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이 책을 통해 쏘련에 대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실은 바로 사회주의 국가 쏘련이 제시한 복지와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개념이다. 쏘련이라는 나라 자체가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탄생한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쏘련 체제는 민중에게 높은 복지 제도를 제공했다. 이러한 복지 제도는 쓰딸린이 서방의 기준으로 연 12-14%의 성장을 보일 시기부터 제공된 것이었다. 1928년에서 1956년까지 3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쏘련의 공업 생산은 연평균 12.7%나 성장하여 1928년의 770%나 되는 수준에 도달했다. 국민총생산은 연율 15% 이상이나 성장했고, 문맹은 일소되었으며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이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 또한 파괴적인 파씨스트와의 전쟁 이후에도 쏘련은 소비재의 생산을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 5.8%의 비율로 소비재 생산이 확대되었으며, 1947년엔 전시에 실행하던 배급제를 폐지하는 성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한 소위 수정주의로 불리는 흐루쇼프와 브레쥐네프 때도 평균 8%의 경제 성장률을 보였고, 이것은 미국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보다 두 배나 높은 수치였다.

 

히틀러의 침략으로 일어났던 독쏘 전쟁에서 쏘련은 4년간의 투쟁 끝에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때 쏘련이 치른 과정은 참으로 끔찍했다. 2700만이나 되는 쏘련 사람이 전쟁으로 죽었고, 쏘련에서 가장 공업화된 지역의 1710개 도시와 7만 곳 이상의 농촌 마을이 나찌 독일군에게 약탈당하고 불탔다. 3만 2천 곳의 공업 설비와 6만 5천 킬로미터의 철도가 파괴되고, 9만 8천 개의 협동조합과 5천 개에 가까운 국영 농장과 트랙터나 농업 기계 창고가 약탈당했으며, 수만 개의 병원, 학교, 예술학교, 고등교육기관, 도서관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히틀러의 침략으로 쏘련이 입은 물질적인 피해 6800억 루블을 포함하여 쏘련의 전쟁 피해는 총계 2조 6천억 루블이나 됐다. 이런 상태에서 쏘련은 위에 상술했듯이 전후 복구를 했고, 1972년까지 연평균 8%의 경제 성장률을 보였으며, 이런 상황에서도 모든 시민에게 기본적인 필수품을 공급한다고 하는 중대한 책임, 다시 말해 자본주의 국가에는 존재하지 않는 책임을 쏘련은 항상 책임지고 있었다. 즉, 이러한 상황에서도 쏘련은 자본주의 국가는 책임지지 않는 책임을 수행함과 동시에 군사력을 강화해 가며 미 제국주의와 투쟁해 나갔다. 이것만 보더라도 쏘련이라는 국가가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날 정도로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만 아자드의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를 통해 필자는 쏘련이라는 국가의 강력함과 그들이 추구하고 또는 실천했던 너무나 소중한 인간적 가치를 감동적으로 알 수 있었다. 1991년의 쏘련 해체를 보고 사회주의 그 자체를 실패한 사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지금도 너무나 많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사회주의 그 자체를 실패로 보는 사람들 중엔 오로지 반공주의라는 편협한 이데올로기적 틀에 갇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수준 낮은 반공주의자들이 분명 많지만, 소위 진보를 추구하는 이들 중에도 적잖게 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사회주의는 실패하지도 않았고, 분명히 존재했으며, 쏘련 사회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많이 실현했다라고 말이다.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다.

 

자유주의자 및 부르주아 계급의 일부 분자를 포함한 많은 선의의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모두, 사회주의는 이론상으로는 대단히 좋지만, 현실에서 실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라는 말을 들어 왔다. 이러한 주장은 80년간의 사회주의 모델의 실패라는 명제로부터 겨우 한 걸음 논리적으로 전진하는 것인데, 그것도 이 명제의 제안자들은 결코 내딛으려 하지 않을지 모르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패배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내딛으려고 하는 그러한 한 걸음이다. 이야말로 그러한 주장의 뒤에 잠복해 있는 궁극적인 위험인 것이다.

그러나 80년간의 사회주의 모델의 실패라는 명제를 열렬히 신봉하는 계급적 적들은 결코 공상가들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그들은 현실을 아주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환멸에 빠진 새로운 공상가들과는 달리 그들은 과거에 사회주의가 존재했음을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사회주의가 미래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을 저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과거에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근로 인민이 믿고, 그리고 다름 아니라 현실에서의 그 존재 자체가 사회주의의 피할 수 없는 고유한 결함, 즉 자본주의 자체보다 훨씬 더 나쁘고, 그리하여 어떠한 미래도 없는 결함을 증명해 왔다고 믿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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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만 아자드, 같은 책, p. 173.

 

2) 같은 책, pp.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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