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2020년 제16차 정기 총회 인사말을 대신하여] 엄중한 정세는 과학적 대응을 요구한다

 

채만수 | 소장

 

 

 

그 높은 전염력과 치사율 때문에 정관에 규정된 총회 일정까지도 늦추어야 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역병으로부터 안전하게 건강을 지키고 이렇게 만나게 된 우리 회원 여러분, 정말 반갑고 고맙습니다. 특히 2월 18일 이후 폭발적으로 확산된 신천지 바이러스 사태로 극도의 공포가 지배했을 것임에 분명한 대구ㆍ경북 지역의 회원 여러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모두가 다 아시고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격발한 나라 안팎의 정세는, 대역병 그 자체도, 격발된 대공황도 참으로 엄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엄중하면 엄중할수록, 그에 대한 대응, 특히 우리 노동자계급으로서는 격발된 대공황에 대한 대응도 당연히, 미봉적ㆍ임기응변적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근본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응이 과학적이고 근본적이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진보적 가공자이자 전달자인 소부르주아 진보지식인들의 진보적 언설과 진보적 정책ㆍ방책들을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그럴듯하게 가공하여 그것을 노동자계급 속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그들 지식인들이 노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인사말에서 앞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엄중한 정세 속에서는 바로 이 점, 즉 이른바 진보지식인들의 진보적 언설과 진보적 정책ㆍ방책들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합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말해 두자면, 코로나 바이러스나 그로 인한 대역병은 지금 당장 그것대로 엄중하지만, 그것이 격발한 이번의 공황에 관한 한, 그것이 엄중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요인은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나 그로 인한 대역병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것들이 아무리 결정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위기를 격발한 계기적 요인이고, 다만 극적일 만큼 급성적으로 폭발하도록 한 요인일 뿐입니다.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논객들은, 다 아시는 것처럼, 대개가 이 위기의 엄중성이 COVID-19로 명명된 이번 대역병의 규모와 지속 기간에 달려 있는 것처럼 떠들어 댑니다. 하지만 그것은 계급적 이해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본능과 인식의 비과학성의 발로지요.

부르주아지는 그 계급적 본능 때문에, 주기적으로 반복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증폭되어 가는 위기, 즉 공황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에 내재하는 모순의 폭발이며 그 생산양식에 내재하는 법칙의 필연적 관철임을 짐짓 외면하며 은폐합니다. 그러면서 공황 그것은, 예컨대 이번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역병과 같은, 우연적인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인 것처럼 강변합니다. 얼마 안 가서 터진 미국의 엔론(Enron) 사태로 금세 무색해졌지만, 아니 엔론 사태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파렴치했던 주장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1997ㆍ98년에 한국을 포함하여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격렬한 외환ㆍ금융 위기가 폭발했을 때에도, 세계의 저명한 부르주아 학자들ㆍ논객들께서는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모순의 폭발, 그 내재적 법칙의 발현이 아니라, 아시아의 정실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한겨레≫의 당시 이봉수 경제부장님 같은 분께서는 심지어 ~ 꼴 날라 어쩌구 하면서 분수를 모르는 국민의 사치가 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을 잊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미국의 이른바 써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에 의해 본격화된 2007ㆍ08년의 공황도 그 원인을 시행착오적인, 따라서 필연적이지 않은 정책 실패 따위로 설명하는 것이 부르주아적 지성입니다. 비과학으로서의 오늘날의 부르주아 경제학, 그 사회과학이 그 형식에서 정교해지면 정교해질수록, 심오해지면 심오해질수록, 그 계급적 성격과 본능은 더욱더 진해지고, 그리하여 그 지성이란 것은 사실상 백치적 지성으로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부르주아지의 그러한 백치적 지성은, 예컨대, 광란하는 태극기 부대 등에는 그 극히 조악한 형태로 극히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라도, 약간의 계급의식이라도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론과 주장이 정교하고 심오하면 정교하고 심오할수록, 그 이해 불능의 정교함과 심오함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조악하면 조악할수록, 그것이 내뿜는 진하디진하고 노골적인 계급적대성 때문에 그러한 것이지요. 비근하게, 조ㆍ중ㆍ동ㆍ문ㆍ매… 등등의 극우언론이 적어도 의식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칭 진보적 지식인들의 진보적 언설과 진보적 방책ㆍ정책ㆍ전략ㆍ전술 등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들은 그들의 이른바 진보성 때문에, 의식 있는 노동자 일반에게뿐 아니라, 그 지도적 최상층부, 그 대중 조직의 중심에조차, 그리고 심지어는 혁명적 혹은 변혁적 노동자 조직ㆍ단체를 자임하는 조직들에서조차 상당히 막강한 영향력, 상당히 막강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한미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칭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사실은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계급적 한계 때문에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비과학적ㆍ반동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대신에, 그에 종속ㆍ지배되어 그것을 소화하기 좋은 형태로 달콤하게 진보적으로 가공하여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 대~한미국에서는 독점자본의 일반적 이데올로기 지배에 더하여 특히 국가보안법의 영향으로 적지 않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심지어 혁명적변혁적 어쩌구, 마르크스(주의) 어쩌구 요설(妖說)을 떨면서, 음양으로 국가보안법의 효자 노릇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혁명적 반자본주의 사상ㆍ이론으로 위장한 각양각색의 뜨로쯔끼주의나 이른바 좌익공산주의 등이 많은 경우 그들의 이론적 자산이지요.

이 대공황의 정세 속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진보적 주장ㆍ방책은, 국가의 계급성을 침묵으로 망각ㆍ은폐한 그것들입니다. 예컨대, 파산에 임박한 재벌ㆍ대기업들을 국유화하자는 주장, 그리고 제반 공공성 강화 주장, 그리고 소위 기본소득론 등등입니다. 부르주아 국가를 이용해서 무언가 활로를 찾고자 하는 이러한 주장들은, 노동자계급 운동 내외의, 그리고 강단의 진보적 지식인ㆍ활동가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부르주아 논객들의 일부에 의해서도, 이미 광범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기본소득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소위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형태로 실현(?)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기본소득당 등을 위시하여 그동안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장해 온 형태도 아니고, 그보다 한술 더 뜬 허경영의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주장하는 액수나 형태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저 절박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데에서 나온 것이고, 일부 부르주아 정치인들이나 언론이 포퓰리즘이라며 질타하는 것처럼, 선거 국면에서 민심을 홀리기 위한 것이며, 그것도 그야말로 시쳇말로 언 발에 오줌 누는 듯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양쪽 다, 봐라, 우리 말이 맞잖아!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부르주아 국가를 통해서 무언가 활로를 찾겠다는 발상,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비유컨대, 가축을 사육하는 인간이 가축에게 꼴을 먹이고, 사료를 먹일 때, 그것은 그 가축들을 위해서입니까? 키워서 잡아먹는다든가, 부려먹는다든가, 우유를 짜낸다든가, 그것들이 낳는 알이나 새끼들을 내다 판다든가 하는 무언가 다른 목적을 위해서입니까?

예, 부르주아지, 부르주아 국가도 상황에 따라서는, 국민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위해서, 어떤 기본소득이든, 사회복지든, 일정액의 최저임금이든, 일정률의 고용이든, 무언가 보장하고 시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물론 극히 제한적이고, 한시적인 그것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정말 노동자들을 위해서입니까?

바보가 아니고서야, 노동자로서는 결코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극히 제한적인 그 모든 시혜는 실은 위기에 처한 자본이 노동자들을 회유ㆍ포섭하여 그들을 영원히 자본의 임금노예로 묶어 놓기 위한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 국가를 통해서 무언가 활로를 찾겠다는 발상,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는, 다름 아니라, 세상 물정 모르는 무지의 발로든가, 아니면, 노예근성의 발로인 것입니다. 예컨대, 소위 국유화 혹은 국유기업과 관련하여, 일부에서, 국유기업운영위원회 설치 요구 운운하지만, 그렇다면, 예컨대, 노사정위원회도 노동자계급이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의 이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부에서 발전한 생산력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는 더 이상 양립하기 어려울 만큼 고도로 무르익은 조건에서 발발했다는 점을 특히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공황이 유달리 엄중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즉 사실상의 무인생산을 고도로 달성한 과학기술 혁명, 저들이 자랑하는 제4차 산업 혁명, AI(인공지능) 혁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재생산과정의 전면적 자동화, 무인생산이 어떻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양립할 수 있겠습니까? 생산수단과 생산력 발전의 성과는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독점하면서, 사회를 구성하는 절대적 다수는 무산(無産)의 임금노예로 존재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어떻게 양립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심상찮은 공황에 임하면서, 표면의 요란한 금융 현상에 정신을 빼앗기는 대신에, 바로 이러한 관점을 견지할 때에만, 그 대응도 과학적ㆍ근본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제16차 총회는 바로 이 점을 재확인하면서, 과학적ㆍ근본적 대응의 모색을 다짐하고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노사과연

 

채만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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