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레닌주의의 제 문제(7)(쏘련 공산당(볼쉐비끼) 레닌그라드 조직에 드림)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1. 레닌주의의 정의

2. 레닌주의의 주요 문제

3. 영구 혁명 문제

4.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5.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에서의 당과 노동계급

6.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에 관한 문제

7.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를 위한 투쟁 ㆍㆍㆍ<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7.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를 위한 투쟁

 

신반대파의 가장 주요한 오류는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에 대한 의구심이다. 내가 볼 때 이로부터 신반대파의 여타 모든 오류가 나오기 때문이다. 신반대파의 오류는 신경제 정책, 국가자본주의, 우리 사회주의 공업의 성격,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서 협동조합의 역할, 부농과의 투쟁 방법, 중농의 역할과 중요성 등의 문제에 걸쳐 있다. 이 모든 오류는 반대파의 가장 주요한 오류인 우리나라 자체의 힘으로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에서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승리를 의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나라에서 발전의 일정한 조건들 때문에, 주요한 농민 대중을 사회주의 건설의 과업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 국가 경제의 근간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주요한 농민 대중을 사회주의 건설의 과업에 끌어들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점에서 시작하여, 반대파는 우리나라의 발전 경로에 대한 그들의 이론으로 암암리에 나아갔다. 그들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는지 무의식적으로 했는지는 상관없다.

 

쏘비에트의 주요한 농민 대중을 사회주의 건설의 과업에 끌어들일 수 있는가?

 

소책자 ≪레닌주의 기초에 대하여≫에는 이에 관한 두 가지 기본 논점이 있다.

 

1) 쏘비에트 연방의 농민을 서구의 농민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세 번의 혁명 속에서 단련되었고, 프롤레타리아트와 나란히 또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하에 짜르와 부르주아 권력에 맞서 투쟁했던 농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힘으로 토지와 평화를 얻었고 그래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이 된 농민 ― 이러한 농민은 부르주아 혁명기에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선두로 하여 투쟁했고 그 부르주아지에게서 토지를 받은 그래서 부르주아지의 예비군이 된 농민과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정치적 친선과 협력의 중요성을 습득하였고 이 친선과 협력을 통해 자유를 얻은 쏘비에트 농민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경제적 협력을 위한 가장 우호적인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증명할 필요도 없다.

 

2) 러시아의 농업을 서구의 농업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서구의 농업은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길을 따라, 한쪽에서는 대지주계급과 사적 자본주의의 대소유지, 다른 쪽에서는 빈궁과 결핍, 임금노예 상태라는 농민층 내부의 격심한 분화라는 조건 아래서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길을 따라 발전하고 있다. 그러기에 거기에서는 붕괴와 몰락이 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그렇지 않다. 러시아의 농업은 쏘비에트 권력의 존재와 주요한 생산도구 및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서유럽의 길을 따라 발전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는 농업의 발전이 다른 길, 수백만 중소 농민의 협동화의 길, 국가가 저리 신용대출을 지원하는 대중적 협동조합이 발전되는 길을 통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레닌이 협동조합에 관한 여러 논문에서 올바르게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농업을 반드시 새로운 길, 즉 협동조합을 통하여 농민 대다수를 사회주의 건설에 끌어들이는 길, 집단주의 원칙을 처음에는 농업 생산물의 시장 영역에서 다음에는 생산 영역으로 점차 도입하는 길을 따라 나아가야 한다. …

 

논증할 것도 없이 농민의 대다수는 사적 자본주의의 대소유와 임금노예의 길, 빈곤과 몰락의 길을 거부하고 이러한 발전의 새로운 길로 열렬히 나아갈 것이다.1)

 

이 논점은 올바른가?

 

내 생각에 이 두 논점은 논쟁의 여지없이 올바르다. 신경제 정책이라는 상황에 있는 우리의 건설 시기 전체에 걸쳐 올바르다.

 

이 두 가지 논점은 레닌의 유명한 논제의 표현이다. 레닌의 논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사이의 유대이며, 농민 경제를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발전 씨스템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주요한 농민 대중과 함께 사회주의를 향해 진군해야만 한다는 것이며, 농민 대중을 광범위하게 협동조합으로 조직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동 노선이라는 것이고, 우리의 사회주의 공업이 발전하는 조건에서 협동조합의 순수한 발전은 … 사회주의 발전과 동일하다(제27권, p. 396을 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농민 경제의 발전은 어떤 경로로 갈 수 있으며 또 나가야만 할 것인가? 농민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가 아니다. 농민 경제는 그 압도적 다수를 고려한다면 소상품 경제이다. 그러면 농민의 소상품 경제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교차로에 위치한 경제이다. 소상품 경제는 자본주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현재 자본주의 나라들이 그렇다. 또는 사회주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방향이다.

 

무엇 때문에 농민 경제는 이렇게 불안정하고 독자적이지 못한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농민 경제가 분산되어 있고, 조직되어 있지 못하며, 도시 및 공업이나 신용 제도 또는 국가 권력의 성격에 의존하고, 마지막으로 농촌은 물질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 모두 도시를 따르며,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잘 알려진 사실에 기인한다.

 

농민 경제의 자본주의적 발전 방향은 농민의 극심한 계급 분화를 의미한다. 한 극단에서는 대규모 농장이, 다른 극단에서는 대중적 궁핍이 존재한다. 이러한 발전은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농촌과 농민 경제는 도시와 공업, 도시에 집중된 신용 제도와 국가 권력의 성격에 의존하고 있는데, 도시는 부르주아지와 자본주의적 공업, 자본주의적 신용 제도와 자본주의적 국가 권력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농민 경제가 필시 이러한 발전을 따라야 할 것인가? 물론 아니다. 정반대이다. 우리나라는 도시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며, 공업은 프롤레타리아트 수중에 장악되어 있다. 운송, 신용 제도, 국가 권력 등도 프롤레타리아트 수중에 집중되어 있으며, 토지의 국유화가 국가의 일반법으로 되어 있다. 도시가 농촌을 이끌고 가는데, 우리나라의 도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하고 있으며 경제의 모든 명맥을 장악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농민 경제는 그 발전에 있어서 다른 길, 즉 사회주의 건설의 길을 따르게 된다.

 

그것은 어떤 길인가?

 

그것은 수백만 소농 농가를 대중적으로 조직하여 다양한 협동조합으로 협동화하는 길이다. 분산되어 있는 소농 농가를 사회주의 공업 주위에 결속시키는 길이다. 이는 농민 사이에 집단주의 원칙을 적용하는 길인데, 처음에는 농산물을 판매하고 도시 제품을 농민 경제에 공급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까지 적용하는 것이다.

 

이 길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상황에서 발전할수록 피할 수 없는 길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판매의 협동화, 공급의 협동화, 마침내 신용과 생산의 협동화(농업 협동조합)는, 농촌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유일한 길이며, 광범한 농민 대중을 가난과 몰락에서 구해 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농민은 그 지위 때문에 사회주의적이지 않으며, 그래서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농민이 그 지위로 보아 사회주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농민 경제가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발전하지 못한다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농촌은 도시를 뒤따르고 도시는 사회주의 공업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농민은 그 지위 때문에 10월 혁명 때에도 사회주의적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수립되는 것도 결코 바라지 않았다. 당시 농민이 추구한 것은 지주 권력 폐지, 전쟁 종식, 평화 확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를 따랐다. 왜 그랬는가? 왜냐하면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는 것이 당시 제국주의 전쟁에서 벗어나 평화를 확립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밖에 다른 길이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다. 우리 당은 농민의 특수 이익(지주의 타도와 평화)을 국가의 일반 이익(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복종시켜 결합하는 기준을 알아냈고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농민은 사회주의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건설에 관해서도, 즉 농민을 이 건설의 궤도에 올려놓는 것에 관해서도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농민은 그 지위로 인해 사회주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농민은 사회주의적 발전의 길을 걸어야 하고 확실히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농민이 가난과 몰락에서 벗어나는 길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동맹, 사회주의 공업과의 연계, 농민 경제를 사회주의적 발전의 일반적 경로에 포함시키기 위한 농민의 대중적 협동화 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며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민의 집단적 조직화가 왜 꼭 협동조합인가?

 

왜냐하면 협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조직화 속에서 우리는 사적 이익 및 민간 유통 이익을 국가에 의한 감독과 통제에 결합시키는 기준, 즉 공동 이익에 복종시키는 기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2)(레닌) 이 기준은 농민에게 유리하며, 농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주요한 농민 대중을 이끌어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협동조합을 통해 농산품을 판매하고 농업에 필요한 기계를 구입하는 것이 농민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농민은 협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조직화의 길로 가야만 하고 당연히 갈 것이다.

 

농민 경제의 협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조직화는 사회주의 공업이 지도적 지위에 있는 조건하에서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소상품 농민 경제가 낡은 자본주의의 길, 즉 농민의 대량 몰락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전의 길, 즉 사회주의 건설의 길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농민 경제를 새로운 발전의 길로 이끄는 투쟁, 즉 주요한 농민 대중을 사회주의 건설의 과업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투쟁이, 우리 당이 직면하고 있는 긴급한 임무인 이유이다.

 

따라서 쏘련 공산당(볼쉐비끼) 제14차 대회의 결정은 올바르다.

 

농촌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기본적인 길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 공업, 국가 신용 기관 및 기타 중추 부문의 경제적 지도력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하에서 농촌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길이란 주요한 농민 대중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하여, 반드시 사회주의적 조직으로 발전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때 협동조합 내의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활용하고, 극복하고, 축출하여야 한다(≪중앙위원회 사업 총화 보고에 대한 대회 결의≫를 보라).3)

 

신반대파의 가장 큰 잘못은 농민이 발전하는 새로운 길을 의심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건 아래에서는 이 길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신반대파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사회주의로 가는 길로 농민을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이 우리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경제 정책의 이중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부정적 성격을 과장하며, 신경제 정책을 전적인 후퇴로 본다.

 

이런 이유로 우리 경제에서 자본주의적 요소의 역할을 과장하고, 사회주의적 발전 수단들(사회주의 공업, 신용 제도, 협동조합, 프롤레타리아트의 집권 등등)의 역할을 무시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국가 경제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레닌의 협동조합 계획의 올바름을 의심한다.

 

이런 이유로 농촌에서의 계급 분화를 과장하고, 부농을 무서워하며, 중농의 역할을 폄하한다. 중농과의 확고한 동맹을 확보하려는 당의 정책을 방해하려 시도하고, 농촌에서의 당의 정책에 관한 문제에서 보통 이리저리 동요한다.

 

이런 이유로 당의 엄청난 노력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은 노동자 농민의 광범한 대중을 공업과 농업의 건설에, 협동조합과 쏘비에트를 활성화 시키는 데,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에, 우리 국가 기구의 개선과 개조를 위한 투쟁에 이끌어 참여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당의 이러한 노력은 새로운 발전 단계의 특징이며, 이러한 노력이 없이는 어떠한 사회주의 건설도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 건설이 어려움에 직면하면 절망하고 당황해 한다. 우리나라의 공업화 가능성을 의심하고, 당의 변질을 운운하는 비관적인 허튼소리 등을 한다.

 

저들 부르주아지는 모든 것이 상당히 잘되고 있으나, 우리 프롤레타리아들은 모든 것이 상당히 나쁘다. 서유럽에서 혁명이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사업의 근거는 사라질 것이다. ― 이것이 신반대파의 일반적인 논조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청산주의 논조이다. 그런데 반대파는 무엇 때문인지 (아마도 농담으로) 국제주의 행세를 한다.

 

반대파는 신경제 정책이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지노비예프는 신경제 정책을 전적인 후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옳지 않다. 사실 신경제 정책은 사회주의적 요소와 자본주의적 요소 사이의 투쟁을 허용하여 자본주의적 요소에 대한 사회주의적 요소의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당의 정책이다. 사실 신경제 정책은 후퇴에서 시작했지만 후퇴 과정에서 우리의 힘을 재조직하여 공격으로 넘어가기 위한 목적이다. 사실 우리는 이제 몇 년째 공격하고 있고, 공격은 성공적이다. 우리 공업과 쏘비에트 유통은 발전하고 있고, 사적 자본은 축출되고 있다.

 

그런데 신경제 정책은 자본주의고, 전적인 후퇴라는 주장은 어떤 의미인가? 이 주장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이 주장이 시작된 잘못된 가정은 우리나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단지 자본주의의 부활, 단지 자본주의의 복구라는 생각이다. 바로 이러한 가정 때문에 반대파는 우리 공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의심한다. 바로 이러한 가정 때문에 반대파는 부농 앞에서 겁을 먹는다. 바로 이러한 가정 때문에 반대파는 농민의 계급 분화에 대한 부정확한 통계에 매달린다. 바로 이러한 가정 때문에 반대파는 중농이 우리나라에서 농업의 중심적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바로 이러한 가정 때문에 중농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레닌의 협동조합 계획을 의심한다. 이러한 가정만으로도 신반대파가 농촌 발전의 새로운 길, 즉 농촌이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는 길에 대해 의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부활이라는 일면적 과정이 아니다. 자본주의도 발전하고 사회주의도 발전하는 이중적 과정이다. 사회주의 요소와 자본주의 요소가 서로 대립 투쟁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 요소가 자본주의 요소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국영 공업이 사회주의의 토대가 된 도시에서나, 사회주의 공업과 연결된 집단적 협동조합이 사회주의 발전을 위한 주요 거점인 농촌에서나 논쟁의 여지없이 명백하다.

 

자본주의의 완전한 부활은 불가능하다. 이는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공업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에 있으며, 운송과 신용이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의 계급 분화는 이전과 같은 차원에서 진행될 수 없다. 중농은 아직 농민의 주요 대중을 이루지만 부농은 이전의 힘을 회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토지가 국유화되어 매매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의 상업 정책, 신용 정책, 조세 정책, 협동조합 정책은 부농의 착취자적 경향을 억제하면서 농민 대중의 복지를 증진하고 극단적 불평등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부농과의 투쟁은 부농에 대항하여 빈농을 조직하는 낡은 노선에 따라 수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부농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트 및 빈농과 중농 대중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새로운 노선에 따라서 수행되고 있다. 이는 별개의 문제이다. 반대파는 이 둘째 노선의 부농과 투쟁하는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반대파는 농촌 발전에 있어 낡은 길을 향해 가고 있다. 즉 부농과 빈농이 농촌의 기본 역량이었고, 중농은 점차 사라지고 있던 때의 길로 잘못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반대파는 협동조합이 국가자본주의의 한 변종이라고 하면서 레닌의 소책자 ≪현물세≫4)를 인용하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협동조합을 사회주의적 발전의 중요한 발판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여기서도 반대파는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1921년에는 적절하고 충분한 것이었다. 이때 ≪현물세≫가 집필되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발전된 사회주의 공업이 없었다. 레닌도 국가자본주의를 우리 경제의 기본적인 경영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국가자본주의와 연관시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이제 부적절하게 되었으며,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때 이래 시대가 변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주의 공업은 발전하였으나 국가자본주의는 예상만큼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제 협동조합은 천만이 넘는 조합원이 있고, 사회주의 경제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레닌이 ≪현물세≫가 발표된 지 2년이 지난 1923년에는 다른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생각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레닌은 우리나라의 조건 아래서 협동조합은 언제나 사회주의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생각했다(제27권, p. 396을 보라).

 

이러한 이유가 아니라면 그 2년 동안 사회주의 공업은 성장하고 국가자본주의는 필요한 정도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레닌이 협동조합을 국가자본주의와 연결시키지 않고 사회주의 공업과 연결시킨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협동조합의 발전 조건은 변했다. 따라서 협동조합 문제에 대한 접근도 역시 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기 주목할 만한 구절이 있다. 레닌의 소책자 ≪협동조합에 대하여≫(1923)에서 인용한 것이다.

 

국가자본주의 아래서 협동조합 기업이 국가자본주의 기업과 다른 점은 첫째, 민간 기업이라는 점, 둘째, 집단적 기업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현 체제 아래서는 협동조합 기업은 자본주의적 민간 기업이 아니며, 집단적이라는 점에서 사회주의 기업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협동조합 기업의 기반인 토지와 생산수단이 국가, 즉 노동계급에 속하기 때문이다(제27권, p. 396을 보라).5)

 

이 짧은 인용문에서 두 가지 큰 문제가 해결되었다. 첫째로, 우리의 현 체제가 국가자본주의가 아니라는 것, 둘째로, 우리의 현 체제와 연결된 협동조합 기업은 사회주의 기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명백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레닌의 이 소책자에서 한 구절을 더 인용하자.

 

… 우리에게 있어서 협동조합의 순수한 발전은 (위에서 언급한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사회주의의 발전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같은 책).

 

소책자 ≪협동조합 대하여≫에서는 협동조합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신반대파는 이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주도면밀하게 묵살하면서 사실에, 명백한 진리에, 레닌주의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자본주의와 연결된 협동조합과 사회주의 공업과 연결된 협동조합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현물세≫와 ≪협동조합에 대하여≫ 사이에 심연이 가로막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그런 결론은 옳지 않다. 예를 들어 ≪현물세≫의 다음 구절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협동조합을 평가하는 문제에서 ≪현물세≫와 ≪협동조합에 대하여≫ 사이에는 불가분의 연관이 있다. 다음을 보자.

 

이권 기업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대규모 생산의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이행이다. 소소유자 협동조합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소생산에서 대규모 생산으로의 이행이다. 이 이행은 복합적 이행이지만 일단 성공하면 보다 광범한 인민 대중을 포괄할 수 있다. 이 이행은 낡은 전(前) 사회주의적 관계의 보다 깊고 집요한 뿌리를 뽑아 버릴 수 있고, 모든 혁신에 저항하는 전 자본주의적 관계의 가장 완강한 뿌리를 뽑아 버릴 수 있다(제26권, p. 337을 보라).6)

 

이 인용문에서 아직 사회주의 공업이 발전하지 않았던 ≪현물세≫ 시기에 레닌이 가졌던 견해를 볼 수 있다. 레닌은 성공하면 협동조합이 전 사회주의적 관계, 즉 자본주의적 관계에 대항하는 강력한 투쟁 수단으로 전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사상이야말로 이후 소책자 ≪협동조합에 대하여≫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신반대파는 협동조합 문제를 맑스주의적 방법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협동조합은 다른 현상들, 즉 (1921년의) 국가자본주의나 (1923년의) 사회주의 공업과 연관된 역사적 현상이다. 그런데 신반대파는 협동조합을 어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 즉 물자체로 보고 있다.

 

반대파는 이 때문에 협동조합 문제에 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협동조합을 통해 농촌이 사회주의로 발전하는 길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낡은 길, 즉 농촌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로 후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사회주의 건설의 실천적 문제에 대한 신반대파의 대략적 입장이다.

 

결론은 하나뿐이다. 반대파의 노선(이를 노선이라 할 수 있다면), 동요와 혼란, 우리 사업의 근거에 대한 의심, 어려움 앞에서 놀라 허둥대는 모습, 이러한 것들은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적 요소들에 대한 굴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신경제 정책이 전적인 후퇴라면, 만약 국가 공업의 사회주의적 성격이 의심스럽다면, 만약 부농이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만약 협동조합에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면, 만약 중농의 역할이 점차 감소한다면, 만약 농촌 발전의 새로운 길이 의심스럽다면, 만약 당이 대부분 변질되고 서유럽에서 혁명이 아직 멀었다면 ― 그렇다면 도대체 반대파의 무기고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적 요소와의 투쟁에서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싸울 것인가? 시대의 철학7)만을 가지고 전투에 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반대파의 무기고(이를 무기고라 할 수 있다면)는 분명히 보잘 것 없다. 왜냐하면 그 무기들은 전투를 위한 것도, 더욱이 승리를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당이 그러한 무기를 가지고 싸운다면 당은 순식간에 패배하여,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 요소들 앞에 그저 굴복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제14차 당 대회의 다음과 같은 결정이 절대적으로 올바른 이유이다. 14차 당 대회는,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를 위한 투쟁은 우리 당의 기본 임무이다,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의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근거에 대한 의구심과 투쟁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사회주의적 기업 형태(레닌)인 우리 기업을 국가자본주의 기업으로 보려는 시도와 투쟁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건설, 특수하게는 사회주의 공업 건설에 대해 대중이 의식적 태도를 취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다만 경제의 사회주의적 요소의 성장을 방해할 뿐이며 자본이 사회주의적 요소와 투쟁하는 것을 쉽게 할 뿐이다, 따라서 대회는 레닌주의에 대한 이러한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 광범위한 교육 사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고 결정하였다(쏘련 공산당(볼쉐비끼) 중앙위원회 보고에 대한 결정을 보라).8)

 

쏘련 공산당(볼쉐비끼) 제14차 대회의 역사적 의의는 신반대파의 오류를 철저히 폭로할 수 있었다는 데, 반대파의 의심과 불평을 배척한 데, 사회주의를 향해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제시한 데, 당에 승리의 미래를 열어 준 데, 그럼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를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에 대한 불패의 신념으로 무장시킨 데 있다.

 

1926년 1월 25일

 

이오씨프 쓰딸린, ≪레닌주의의 제 문제≫,

모쓰끄바와 레닌그라드, 1926.

노사과연

 

 


 

1) J. V. Stalin, Works, Vol. 6, pp. 137-138, 140, 141.

 

2) V. I. Lenin, Works(4th Russian edition), Vol. 33, p. 428.

 

3) “Part II”, Resolutions and Decisions of C. P. S. U. Congresses, Conferences and Central Committee Plenums(쏘련 공산당 대회, 협의회 및 중앙위원회 총회의 결의안과 결정), 1953, p. 78.

 

4) V. I. Lenin, Works(4th Russian edition), Vol. 32, pp. 308-343.

 

5) 강조는 쓰딸린.

 

6) 강조는 쓰딸린.

 

7) “시대의 철학”은 지노비예프가 1925년에 쓴 반당적인 글의 제목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J. V. Stalin, Works, Vol. 7, pp. 385-388.

 

8) “Part II”, Resolutions and Decisions of C.P.S.U. Congresses, Conferences and Central Committee Plenums(쏘련 공산당 대회, 협의회 및 중앙위원회 총회의 결의안과 결정), 1953, pp. 75, 77.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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