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사회주의 대중화로 버니 샌더스ㆍ민주적 사회주의를 내세우면 예상되는 폐해―자신이 까치인 줄 아는 비둘기인가? 비둘기가 되려는 까치인가?

 

정호영(회원)

 

 

[차례]

1.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1-1.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전 법무부 장관 조국

1-2. 사회적 자유주의의 사회주의

1-3.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생산자의 연합으로서의 사회주의

2. 제레미 코빈, 버니 샌더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2-1. 제레미 코빈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2-1-1. 영국 노동당에 맑스주의자는 입당이 안 된다

(파키스탄 맑스주의자 타리크 알리, 입당을 거부당하다)

2-1-2. 양당제에서의 자유주의 정당인 노동당

2-2. 버니 샌더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3. 미국 사회당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기원이 아니다

3-1. 미국 사회당: 사회당을 창당한 유진 뎁스

3-2. 미국 사회당: 사회당 좌파, 뉴딜(1933년-1939년)에 반대하다

3-3. 미국 사회당의 몰락: 전쟁으로 공황이 극복되다

3-4. 뉴딜은 케인즈주의, 독점자본 좌파의 통치 전략이다

3-4-1. 채만수 소장

3-4-2. 김성구 교수

4. 민주적 사회주의는 반공사회주의이다

4-1. 민주적 사회주의의 출발점: 루즈벨트의 복지 국가

4-2. 민주적 사회주의의 시조: 윤리적 사회주의자이자 반공사회주의자인

마이클 해링턴

4-3. 민주적 사회주의, 반공을 위해 러시아 혁명 해석에서 뜨로쯔끼를 수용하다

4-4. 민주적 사회주의, 반공을 위해 현실 사회주의 공격에

밀로반 질라스의 ≪새로운 계급≫을 수용하다

4-5. 민주적 사회주의, 수정자본주의론을 위해 카우츠키를 수용하다

4-6. 민주적 사회주의, 수정자본주의를 위해 노르딕 사회민주주의를

고민하다(예: 마이클 해링턴, 스웨덴 임노동자 기금을 고민하다)

5. 민주적 사회주의의 새 얼굴 ≪자코빈≫

5-1. ≪자코빈≫과 자유주의

5-2.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인 사회주의 ABC의 반공적 측면

5-3. 민주적 사회주의. 에릭 올린 라이트의 ≪리얼 유토피아≫.

반자본주의의 방법은 자본주의 침식시키기

5-3-1. 침식: 수정자본주의

5-3-2. 아래-아나키즘의 사회 중심적 전망

6.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그린 뉴딜과 한국에서의 그린 뉴딜

6-1.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그린 뉴딜과 한국에서의 수용은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6-2. 한국에서 지금 누가 그린 뉴딜을 수용하는가: 정의당과 민주당

7.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내세울

경우의 예상되는 폐해

7-1. 반북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내세워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해서는 안 된다

7-2. 미국의 처참한 수준과 버니 샌더스가 잡은 현실적인 목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7-3. 정의당 지지자들과 이재명 지지자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7-4. 민주적 사회주의로는 보수주의 vs 자유주의의 구도를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의 구도로 바꿀 수 없다

8. 결론을 대신하여

[덧붙이는 글] 보수주의자 좌파 토론회에 오다

 

 

먼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힐까 합니다. 저는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운동의 전망을 내기 위해 열린 좌담회와 토론회에 참석하거나, 그곳에 참석하지 못하면 인터넷으로 시청했습니다.1) 이 모든 토론회의 중심 단어는 사회주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월 17일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장 입구와 내부에 노동당에서 내건 현수막 사진을 페이스북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 현수막의 글귀는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을 만든 민주노총 동지들, 사회주의 정당 노동당과 함께합시다.

 

우리가 이 현수막의 문구를 보고 있는 지금은 2020년 2월입니다. 20년 전인 2000년 민주노총은 정당을 만들기로 결의하여 강령에 사회주의를 넣은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출범시켰고, 2004년 선거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습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 이 기억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미국의 대통령 후보 버니 샌더스가 사회주의 하겠다고 한다, 이제 한국도 사회주의 하자는 식의 황당한 선전이 돌고 있고, 민주노총에서 민주노총당을 만든다고 한다, 가능할까?란 이야기까지, 마치 민주노동당은 아예 우리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분위기입니다.

2월 23일 열린 소통과혁신연구소 주최의 한국 사회 미래 전망과 노동 운동의 과제 토론 시간에 참석자 한 분이 토론이 다 끝날 무렵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부터 말하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날 토론조차도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의견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습니다. 토론회를 보고 나니 각 단체마다 사회주의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토론장 밖에서의 사회주의 대중화에 대한 활동이 왜 달랐는가도 이전보다는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성과가 있다면 각 단체가 생각하는 사회주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날 노동 운동의 전망에 대해서 보수주의와 거의 동일한 입장을 내신 분이 한국 맑스주의자들의 조직 노선을 구축하자고 한 것도 사회주의에 대해 그분이 가진 개념이 거기 오신 다른 분들과 의견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가능한 발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은 제가 근래 다닌 토론회들에 오신 분들, 저처럼 페이스북 동영상으로 그 토론회들을 보신 분, 발제문을 따로 보신 분들이 보시기를 바라면서 글을 쓰겠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그 토론회들의 모든 내용보다는 (1) 2월 23일 열린 소통과혁신연구소 주최의 한국 사회 미래 전망과 노동 운동의 과제 중, 발제 1.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민플러스 김장호) 2. 한국 사회 구조 변혁을 위한 사회주의 대중화(사회변혁노동자당 이승철) 3. 사회주의와 한국 사회 운동의 과제(사회진보연대 한지원)에서의 토론 내용들과 (2) 그날의 토론회에서 나온 참가 단체들이 자신들의 사회주의에 대해서 좀 더 분명하게 해 준 것에 힘입어, 각 단체들의 그동안의 활동 내용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특히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사회주의 대중화로 내세우는 폐해에 대해서 생각해 오던 것에 대해 쓰겠습니다.

2월 10일 노동당 주최의 [박노자 교수 초청 좌담회] 세계 좌파 정당, 노동당의 역할과 가능성에서 박노자 교수께서 샌더스를 수정자본주의라고 명쾌하게 지적하신 것은 너무나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샌더스를 앞세워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미국이라는 지독한 반공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 민주당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본질을 바로 꿰뚫는 말이었습니다. 미국이야 매카시 선풍 이후 사회민주주의, 수정자본주의조차도 공산주의와 동의어가 된 나라입니다. 샌더스는 미국에서 내용상으로는 수정자본주의 하자는 주장을 민주적 사회주의를 하자고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하겠다면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버니 샌더스를 내세우는 것은 미 제국주의에 의식이 잠식당한 줄 모르고 있는 식민지 지식인들이 벌이는 비극적 이벤트입니다. 미국이 필요하다면 한(조선)반도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버니 샌더스를 내세워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하자는 주장들이 많습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전원은 주한 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대북 선제공격이 필요하면 하겠다고 했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도 예외가 아닙니다.2)

 

 

출처: 美민주후보 전원 미군 철수 반대 6명은 北선제 공격 찬성, ≪중앙일보≫, 2020. 2. 11.

 

1장, 2장, 3장에서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작업을 합니다.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사를 중심으로 사회적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지점을 짚어서 사회주의, 자유주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차이를 드러낼 것입니다. 4장, 5장에서는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반공사회주의임을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DSA,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역사를 통해서 드러낼 것입니다. 6장, 7장, 8장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라는 분들이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내세우는 폐해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1.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1-1.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2019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청문회에서 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전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다. 이는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의 틀 안에서 사회주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지금도 우리가 사회주의 정책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 경제를 존중하지만, 경제 민주화와 토지 공개념 등은 이론적으로 보면 사회주의 정책 가운데 하나로 본다.3)

 

조국을 전혀 지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이 발언을 듣고 사회주의란 말이 TV에서 나와서 눈물이 나올 뻔한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조국은 자신의 기준에서도, 제레미 코빈이나 버니 샌더스의 기준에서도, 모순된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조국의 사회주의는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와 동일한 사회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조국, 제레미 코빈, 버니 샌더스의 사회주의는 적극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입니다.

혹자는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봐도 19세기부터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탄생했고, 20세기 내내 자유주의는 반공을 기치로 사회주의와 대결해 왔습니다란 말을 하는데, 이 문장만으로는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사회주의인가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서는 저 문장이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다가 그가 영국 혁명 이후 자유와 평등의 대립이 정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18세기 후반-19세기 사회주의는 재산 소유권을 비판하며 평등의 문제를 전면에 제기한 자유주의 비판의 선봉장이었습니다라고 말을 더하는 것을 들으면,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에서 나온 소생산자의 사회주의/자유주의자의 사회주의/사회적 자유주의의 사회주의와 맑스의 사회주의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선 혼돈이 있다면 입장 자체가 명확해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국, 버니 샌더스와 같은 입장에 있는 분들은 자유주의이자 사회주의자의 길을 가시고,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자의 길을 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각자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면, 같이 진보 정당과 좌파 정당을 만들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2. 사회적 자유주의의 사회주의

우선 자유주의가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오랜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이론가인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주의 입장에서 사회주의를 논한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을 영국 급진주의 철학의 기관지 역할을 하던 ≪웨스트민스터 리뷰(The Westminster Review)≫에 실었고 이 글은 그의 사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이 번역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자유주의에서 나온 사회주의인지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나온 사회주의인지 혼동하고 계신 분들이 정치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시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혼동으로 인해 타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 잘못된 비판을 하시는 분들도 읽을 것을 권합니다. 이 책은 사회적 자유주의 입장에서 나온 사회주의의 고전입니다. 이 책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사회주의 원리를 도입하더라도 현존하는 소유 구조, 즉 자본주의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협동조합 소매점의 번창은 이러한 이익이 싼값을 손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큰 이점을 수반하면서 획득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그 이익 덕분에 그 업체가 소비자들에게 공급되는 모든 물건의 가격에 해당하는 것의 대부분을 되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해악 계급에 관한 한 효과적 처방이 이미 시행되고 있고, 그것은 사회주의 원리에 의해 제안되고 일부는 그것에 기초하고 있다 할지라도 현존하는 소유 구조와 모순되지 않는다.4) (강조는 인용자.)

 

밀이 말하는 현존하는 소유 구조는 자본주의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소유 구조/자본주의/근대 체제에 대한 고민의 원초적인 형태는 홉스-로크-루소로 이어지는 사회계약론에서부터 펼쳐집니다. 혹자는 루소가 재산 소유권을 부정해서 현실 앞에서 공허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며, 루소는 사회계약의 이유를 자유와 소유권에서 찾습니다.

 

사회계약을 통해 인간이 잃는 것은 자연적 자유와, 그를 유혹하고 그의 손이 닿는 모든 것에 대한 무제한적 권리다. 그가 얻는 것은 시민의 자유와,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이다.5)6) (강조는 인용자.)

 

근대가 시작된 이래 논의된 사회계약의 문제는 소유권을 지닌 개인(person)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루소가 각 개인이 참가하는 일반의지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계약으로 각 개인이 제대로 된 재산권을 확립하고 그에 기반하여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 것은 로크와 같았습니다. 루소가 소유권을 부정했다면 시민사회를 극복하고자 했던 칸트와 헤겔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소유권 문제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그룹인 자코빈의 사회주의 대중화 프로젝트인 사회주의 ABC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입니다. 이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소유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혹자는 자유주의를 경제사를 서술하면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듯, 사회사상사/정치사상사로 자유주의를 설명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유 개념을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인 소극적 자유와 ~로의 자유(freedom to)인 적극적 자유로 나눕니다.7) 이는 가장 기초 개념이기에 사상사를 서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근래에 출판된 사전에 있는 항목을 그대로 옮겨 오겠습니다.

 

정치 형태에서 적극적 자유는 집단성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성취한 것으로 사고되어 왔다. 아마도 루소의 자유에 관한 이론이 가장 명확한 형태일 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하나의 공동체가 일반의지에 의해서 사건들(affairs)에 집단적 통제를 행하는 과정의 참여를 통해서 성취된다. 좀 더 단순하게 하면, 민주적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스스로 결정한 사회이고, 그 사회의 구성원은 그나 그녀가 민주적 과정에 참여하는 정도만큼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극적 자유 개념의 개인적 적용도 있다. 예를 들면 정부는 개인들이 자기 충족적이고 자기실현을 성취할 수 있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흔히 말해 왔다. 복지 국가는 이 기반 위에서 방어되어야 하고 보편적인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이 된다.

한편 자유의 소극적인 개념은 제도적 자유―자유민주주의의 전형―의 자유주의적 방어로 간주된다. 예를 들면 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국가의 후견인적 개입이나 관습적(moral) 간섭에 반대하는 주장에서 그렇다. 물론 이것은 사적 소유권에 대한 방어를 행사하기도 한다. 이는 어떤 철학자들이 사적 소유는 필연적으로 소극적인 자유를 고양한다고 주장한 것이다.8) (강조는 인용자.)

 

사회 속에서 소극적 자유는 고전적 자유주의로, 적극적 자유는 사회적 자유주의로 구체화됩니다. 아시겠지만 개인의 사적 소유만이 강조되는 소극적인 자유만이 있을 경우에는 빈부 격차 등의 폐해가 따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현존하는 소유 구조에서 사회주의 원리가 제안되어도 된다고 한 사회주의의 의미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소극적인 자유만을 주장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원자적 개인주의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루소에 대한 오해에 이어서 공리주의에 대해서도 공리주의는 평등과 자유를 개인의 행복으로 통합하고, 행복을 효용으로 수량화한 후에 효용과 비용의 균형에서 공동체의 행복이 최대화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균형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됩니다라고 아주 단순화시킵니다. 그러나 공리주의를 저렇게 수량 운운으로 설명하는 것은 보수주의자나 하는 것이며, 보수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자들은 저 정도 수준은 넘어서 있습니다.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에 관한 논쟁9)을 보면 벤담조차도 그렇게 정의하기가 곤란합니다. 저런 이해로는 사회민주주의/민주적 사회주의가 나온 배경을 알 수가 없습니다. 길더라도 존 스튜어트 밀 연구자로 ≪존 스튜어트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10)를 내었던 이근식 교수의 말을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에 대해서도 수정을 가하였다.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개인은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법규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개인이었다. 이러한 원자적 개인주의를 비판하여 사회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개별성(개체성)과 함께 사회성을 강조하였다. 밀은 타인의 행복을 자기의 행복과 동일시할 때에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보았으며, 노동자의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제도의 문제이므로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의식향상과 함께, 토지소유의 제한, 엄격한 상속세의 실시, 노동조합의 육성, 협동조합의 건설과 같은 사회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 사회적 자유주의는 단지 사회를 떠나서 개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만을 인정할 뿐이지,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은 단연코 반대한다. 이들에게 여전히 궁극적인 가치는 개인만이 가지며, 자아실현(적극적 자유)이라는 목표를 개인이 달성할 수 있도록 개인능력이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라고 본다. 전체주의에서는 국가가 목표이고 개인이 수단인 반면, 사회적 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이 목표이며 국가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사회적 자유주의도 여전히 개인주의이며 자유주의이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영국 자유당의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보수당과 함께 교대로 집권하였던 자유당은 사회적 자유주의의 이념에 따라서 많은 사회개혁법을 제정하였다. 예를 들어 1906년에, 노동자배상법, 노동쟁의법, 중소농장려법, 노인연금법, 어린이보호법, 광부 8시간 노동법, 주택 및 도시계획법, 최저임금법, 직업알선법, 국민보험법을, 1913년에 노동조합법을 입법하였다. 오늘날 자유주의가 진보주의라는 뜻을 동시에 갖게 된 것도 사회적 자유주의 때문이다. 자유당은 노동당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보수당에 대립한 진보적 정당의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노동당이 등장한 1920년대에 들어와서는 자본가의 정당도 노동자의 정당도 아닌 애매한 성격으로 인하여 급속하게 쇠락하여 개혁정당의 주역을 노동당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 노동당으로 옮겨갔다.

이처럼 사회적 자유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역사의 무대 뒤로 물러났다고 볼 수 있으나, 사회적 자유주의의 이념과 정책은 그 후 영국의 노동당과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그리고 미국의 수정자본주의에 의하여 오늘날까지 그대로 계승되어 현대의 복지국가의 이념으로 아직도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18년 만에 보수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였던 영국 노동당 당수이자 수상(1997-2007)이었던 토니 블레어가 수상 취임 시 사회적 자유주의를 새로운 것인 양 들고나온 것은 생뚱맞은 느낌을 준다.11) (강조는 인용자.)

 

노르딕 사민주의도 적극적인 자유주의입니다. 노르딕 국가 중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곳은 없습니다. 스웨덴의 첫 사민주의 정권인 한슨 정권은 케인즈주의가 나오기 전 케인즈주의 정책을 먼저 시행했다고 자랑합니다. 스웨덴 첫 사민주의 정권인 한슨 정권이 들어서기 전 열렸던 사민당 대회에서 국유화를 제기하는 주장들은 모두 부결되었습니다. 노르딕 사민주의를 대표하는 스웨덴 사민당의 한슨 정권은 국유화 문제를 제외한 채 복지 국가 수립에 들어갔습니다.12) 노르딕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 잘 정리한 글을 조금 길더라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민주의자는 전반적으로 적극적 자유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 소극적 자유주의의 입장에 서 있는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과는 달리 사민주의는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법적/제도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기본적인 사회적 재화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정부의 도움을 받아 보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민주의가 자유주의의 근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주의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개인으로 하여금 보다 완벽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러한 처방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개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요는 정부의 역할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가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소극적 자유주의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대해 적극적 자유주의는 정부의 역할을 보다 최대한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단지 적극적 자유주의에서 상정하는 최소한의 역할의 정도가 소극적 자유주의의 그것에 비해 크거나 넓을 뿐이다. 적극적 자유주의는 개인이 재산에 대한 소유 권한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교육 분야에 있어서도 동등한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상정하고 있다. 양자가 상정하는 개인의 자유의 범위는 서로 다르며 그 결과 정부가 상정하는 최소 역할의 개념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 사회주의가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평등한 세상을 추구했다면 자본주의는 정치적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경제 분야에서는 효율과 경쟁을 강조함으로써 자본축적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을 지향한다. 이에 비해 사회민주주의는 전체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틀을 유지하되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형평성을 제고하여 안정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도모하자는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13) (강조는 인용자.)

 

1-3.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생산자의 연합으로서의 사회주의

맑스와 엥엘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자신의 사회주의가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의 사회주의와 다르다고 선언했습니다. 맑스와 엥엘스는 ≪공산당 선언≫의 3장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에서 기존의 사회적 자유주의들의 사회주의―1. 반동적 사회주의 a) 봉건적 사회주의 b)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c) 독일 사회주의 혹은 진정한 사회주의 2. 보수적 혹은 부르주아 사회주의 3. 비판적 공상주의적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를 비판한 후, 자유주의에 기반을 두지 않는 새로운 사회 체제의 설계도를 제시했습니다.

≪공산당 선언≫은 지금까지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맑스와 엥엘스가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고 부르주아 혁명 당시에 부르주아들이 먼저 한 것입니다. 맑스는 기존 부르주아 이론과 자신의 이론을 명확히 구별한 것은 계급 투쟁의 존재 여부를 인정하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들의 존재와 생산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를 연결하는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에 관해서 말한다면 현대 사회에서의 계급들의 존재를 발견한 공로도 그 계급들 사이의 투쟁을 발견한 공로도 나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네. 부르주아 역사 서술가들은 나보다 훨씬 앞서 이러한 계급 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서술하였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 계급들의 경제적 해부학을 서술하였네. 내가 새로이 한 일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증명한 것이네. 1. 계급들의 존재는 생산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들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 2. 계급 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된다는 것; 3. 이러한 독재 자체는 단지 모든 계급의 지양으로 가는 그리고 계급 없는 사회로 가는 이행기를 이룰 뿐이라는 것.

계급들의 투쟁뿐 아니라 심지어는 계급들의 존재마저도 부인하는 하인쩬과 같은 무식한 자들은 다만, 자신들이 아무리 인간주의적인 체하며 목청 높여 떠들어댄다 하더라도 자신들은 부르주아지의 지배의 사회적 조건들을 역사의 최후의 산물로서, 역사의 궁극적 도달점으로서 간주하는 자들이라는 사실, 자신들은 부르주아지의 머슴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을 따름이네. 이 자들이 부르주아 통치 자체의 위대함과 과도적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이 머슴짓은 더욱더 역겨운 것으로 되어간다네.14) (강조는 인용자.)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독재는 계급 차별 일반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계급 차별이 근거하고 있는 전체 생산 관계들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생산 관계들에 조응하는 전체 사회적 연관들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사회적 연관들로부터 기인하는 전체 이념의 변혁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 경과점이다.15) (강조는 인용자.)

 

사회적 자유주의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개인에 대해서 맑스와 엥엘스가 어떻게 비판했는가를 아는 것은 사회적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보편적인 국가 제도에 관한 그 비판의 설명도 못지않게 교훈적이다. 이설명은 보편적인 국가 제도가 개개의 이기적인 원자들을 결집해야 한다는 것에 국한된다. … 시민사회의 이기적 개인은 그 무감각적 표상과 생명 없는 추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원자로, 즉 연관 없는, 자족적인, 무욕구적인, 절대적으로 충만한, 천복(天福)을 받은 존재로 착각할지 모른다. …16)

 

만약 인간이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다면, 사람들은 환경을 인간적인 것으로 형성하여야 한다. 만약 인간이 그 본성상 사회적이라면, 그는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사회 속에서야 비로소 전개하게 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의 힘을 개별적 개인의 힘이라는 견지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힘이라는 견지에서 가늠하여야 한다.17)

 

보편적인 국가 제도가 개개의 이기적인 원자들을 결집시켜 개개의 이기적인 개인으로 구성된 시민사회의 폐해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헤겔의 법철학을 그저 부여안고만 있을 뿐인 브루노 바우어 일당들을 향해 맑스와 엥엘스는 ≪신성가족≫(1845년)에서 개별적 개인에서 답을 찾지 말고 사회적 힘이라는 견지에서 답을 찾으라고 한 것입니다. 맑스와 엥엘스는 ≪공산당 선언≫에서는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개인에 대한 비판을 더 발전시키면서, 사회 성원의 1/10이 가진 사적 소유를 폐지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자본이 자립적이며 개성적인 반면에, 활동하는 개인은 비자립적이며 비개성적이다. 그런데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관계들의 폐기를 개성과 지유의 폐기라고 부른다! 그 말은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부르주아적 개성, 부르주아적 자립성, 부르주아적 자유의 폐기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의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들 내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자유로운 상업, 자유로운 판매 및 구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래가 없어지면 자유로운 거래도 없어진다. 자유로운 거래에 관한 미사여구들은 자유에 관한 우리 부르주아지의 다른 모든 호언장담과 마찬가지로, 다만 묶여 있던 거래나 중세의 예속된 시민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지만 거래의 공산주의적 폐기,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들 및 부르주아지 자체의 공산주의적 폐기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당신들은 우리가 사적 소유를 폐기하려 한다고 해서 놀라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의 현존 사회에서 그 사회 성원의 10분의 9에게서는 [이미] 사적 소유가 폐기되어 있다. 사적 소유가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이들 10분의 9에게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들은, 우리가 사회의 압도적 다수의 무소유를 필수 조건으로 전제하는 소유를 폐기하려 한다고 우리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신들은, 우리가 당신들의 소유를 폐기하려 한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한다.

당신들은, 노동이 더 이상 지본, 화폐, 지대로, 간단히 말해서 독점 가능한 사회적 힘으로 전화할 수 없게 되는 그 순간부터, 즉 개인적 소유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로 전화할 수 없게 되는 그 순간부터 개인은 폐기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당신들은 개인을 부르주아, 부르주아적 소유자 외에 그 누구로도 이해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18) (강조는 인용자.)

 

사회주의는 이러한 부르주아의 개인(person)을 폐기하면서, 생산자들의 연합을 세우는 것입니다. 생산자의 연합에 대해서 엥엘스는 다음과 같이 청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14. 문: 이 새로운 사회 질서는 어떠한 종류의 것이어야만 할 것인가?

답: 이 새로운 사회 질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산업 및 모든 산업 부문들 일반의 경영을 상호 경쟁하는 개별적 개인들의 수중에서 탈취해야만 할 것이며, 그 대신 이 모든 산업 부문들이 사회 전체에 의하여, 즉 공동의 부담으로 공동의 계획에 의거하여 모든 사회 성원의 참가하에 경영되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사회 질서는 경쟁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연합(Assoziation)을 가져다 놓을 것이다. 그런데 개개인에 의한 산업 경영은 사적 소유를 그 필연적 결과로서 가져왔으며 경쟁은 개별적 사적 소유자에 의한 산업 경영의 방식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적 소유는 개개인에 의한 산업 경영 및 경쟁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사적 소유도 마찬가지로 폐지되지 않으면 안 되며, 그 자리에 모든 생산 도구들의 공동 이용, 공동의 합의에 의한 모든 생산물들의 분배, 즉 이른바 재산 공유제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사적 소유의 폐지는 산업의 발전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사회 질서 전체의 변형을 가장 간결하고 가장 특징적으로 총괄하는 것이기도 하며, 따라서 사적 소유의 폐지는 정당하게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주요 요구로서 강조되는 것이다.19)

 

우선 여기에서 명확하게 해야 될 것은 사적 소유 철폐에 관련되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산업 및 모든 산업 부문들 일반의 경영에서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만 있지, 개인 소비재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사회주의는 (부르주아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경영들을 폐지하고 세우는, 생산자들의 연합이 들어서는 사회 질서입니다.

그렇다면 부르주아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사라지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은 어떻게 될까요? 맑스와 엥엘스는 푸리에가 인간의 원초적인 정념/열정과 인간의 노동을 연결했던 것20)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에 대해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밝혔습니다.

 

요컨대, 노동이 분화하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그에게 강제로 부여된 특정한 배타적인 활동 범위가 있게 되며, 그 누구도 이 범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각자는 사냥꾼이거나, 아니면 낚시꾼이거나 양치기 혹은 비판적인 비평가이며 그 누구든 자신의 생활수단을 잃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배타적인 활동 범위를 갖지 않고, 오히려 각자가 좋아하는 부문에서 자신을 육성할 수 있으니 여기서는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조절하며, 그 결과 나는 오늘은 이것을 또 내일은 저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사냥꾼, 낚시꾼, 양치기 혹은 비평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즐거움을 느끼는 대로 아침에는 사냥을, 오후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목축을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는 비평을 할 수도 있다.21)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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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학교 무상 급식이 논의되자, 전면 무상 급식은 공산혁명의 시작이다라는 말이 바로 나오는 국가에서 살다 보면 별것도 아닌 것도 다 사회주의라고 해서 용어상에서 엄청난 혼동들이 있습니다. 중간 정리하는 기분으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표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사회사상

소극적 자유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적극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원자적 개인주의

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정치경제 체제

자유방임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사회주의

사회주의자 입장

자유주의

사회주의

[사상, 정치 체제, 정치 지향 분류표 1]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졌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 글에서는 이제부터의 논의는 위와 같은 엄밀한 정의에 따라서 수정자본주의/사회민주주의를 사회주의와 구별하여 쓰도록 하겠습니다.

수정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는 같이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체성에 혼란을 가진 사람들이 수정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거나, 보수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 행세를 하면,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진 비극은 다시 반복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하겠다는 분들 중 수정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영국의 제레미 코빈, 버니 샌더스가 사회주의를 말한다, 우리도 사회주의를 하자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 제레미 코빈과 버니 샌더스가 주장하는 내용이 사회주의가 아닌 이유들을 쓰겠습니다. (1) 제레미 코빈, 버니 샌더스를 거론하면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만든 혼란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2) 제레미 코빈과 버니 샌더스가 수정자본주의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그래도 좀 명확해지지 않겠나 하는 바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2. 제레미 코빈, 버니 샌더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2-1. 제레미 코빈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영국 언론에서 사용되는 사회주의는 영국의 맥락에서 쓰이는 영국 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이지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이의 설명을 위해서 영국 노동당사나 노동 운동사를 거론할 필요가 있다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국내에 이미 많은 훌륭한 연구들이 나와 있고,22) G. D. H. 콜의 ≪노동자를 협업자로 인정하라≫23)도 곧 나오고, 거기에 장석준(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산업민주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해 논하는 해제를 쓴지라, 이 글에서는 영국의 사회주의사에 대한 역사적 추적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예로, 영국 노동당의 대표적 이론가인 타리크 알리와 제레미 코빈의 예를 들겠습니다.

 

2-1-1. 영국 노동당에 맑스주의자는 입당이 안 된다
(파키스탄 맑스주의자 타리크 알리, 입당을 거부당하다)

지금이야 타리크 알리는 영국 노동당 내 제레미 코빈 지지자들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이데올로그이지만, 파키스탄에서 이민을 온 알리가 영국 노동당에 가입을 시도했을 때, 그의 맑스주의/뜨로쯔끼주의 조직 활동 이력 때문에 영국 노동당은 그의 입당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타리크 알리는 노동당 입당을 위해서 노동당 좌파인 토니 벤과 면담을 했고, 토니 벤은 타리크 알리가 IMG(International Marxist Group)를 떠났는가를 재차 확인한 후 그의 입당을 지지했는데도 불구하고 거부를 당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맑스주의 정치학 이론가로 알려진 랄프 밀리반트가 토니 벤의 옆에서 이론적 고문 역할24)을 맡고 있었다고 해도 밀리반트 역시 신좌파이고 사회주의자는 아니었기에 노동당 활동이 가능했습니다. 밀리반트가 신좌파에서는 가장 왼쪽이기는 하나, 그 역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서는 정통좌파와는 다른 해석을 하면서 부정하는 신좌파였습니다. 신좌파인 랄프 밀리반트가 아무리 왼쪽에 서서 대중 조직을 강조했다고 하더라도 자유 위임의 대의제 정치에서의 최대치를 이야기한 것이지, 기속적 위임의 사회주의 정치로 나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25) 밀리반트는 밀리반트주의자이지 맑스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1970년부터 1995년까지 국회 의원이었던 닐 키녹 등의 당 지도부가 (타리크 알리가 소속되어 있던) IMG가 영국 노동당 내에 덫을 놓으려고 하고 있다. 알리를 받아들이면 신실하지 못한 자들의 난입이 이어질 것이다라는 이유로 그의 입당을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26) 이런저런 소동 속에서 1981년 12월 타리크 알리는 왜 나는 노동당에 가입하는가라는 글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당(SWP)의 크리스 하먼은 그가 영국 노동당에 가입하는 것은 맑스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알리의 노동당 가입에 대해서 이를 단순하게 전향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는 당선은 거의 되지 않지만 맑스주의를 내걸고 선거에 나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한국 기준에서 보면 IMG 또한 1974년 타리크를 총선에 후보로 내보낼 수 있는 제도권 정당이었습니다. 노선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이후에도 알리는 계속 뜨로쯔끼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90년에 유명한 뜨로쯔끼주의자들을 패러디하여 그들의 무능을 비꼰 Redemption27)이란 소설을 낸 후에는 뜨로쯔끼 운동과는 거리를 둔 듯합니다. 타리크 알리는 사회주의노동당(SWP)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기에 그가 속해 있던 IMG을 떠나 영국 노동당에 가입하겠다는 이유를 밝혔습니다.28)

요약하면 타리크 알리가 노동당에 가입하려고 하니, 빨갱이는 안 된다고 막은 당인 영국 노동당은 사회주의당이 아닙니다.

 

2-1-2. 양당제에서의 자유주의 정당인 노동당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는 너무나 무능한 자유주의라서 대처의 집권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때 68년 프랑스 학생 운동과 비교되기도 했던 77년 영국 펑크 운동의 중심에 있던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 조니 로턴은 영국의 양당제와 노동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펑크 시기에 사회주의는 영국에서 별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노동당은 아무런 흥미도 끌지 못했고 따분하기만 하였다. 보수당도 매한가지였다. 4년은 이 당, 다음 4년은 저 당하는 식으로 여기저기 정권만 바뀔 뿐, 사람들은 아무런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젊은이들―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은 정치라면 시간 낭비인 양 깨끗이 손을 털었다. 말 그대로 무관심의 구름이 피어올랐다. 물론 이야말로 보수당이 정확히 바라던 바였다.29)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에 진저리를 치면서 시작된 펑크 운동이 끝나고 79년 대처가 집권했습니다. 조니 로턴의 자서전인 ≪섹스 피스톨즈 조니 로턴≫은 펑크 등장 시기, 즉 대처 집권 이전의 영국 사회에 대해서 잘 나와 있습니다. 조니 로턴의 영국 사회에 대한 불평에서 보이듯 영국에서 보수당의 보수주의와 노동당의 사회주의는 그냥 <보수주의 대 자유주의>이지 <보수주의 대 사회주의>가 아니었습니다.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가 사실은 자유주의라는 것을 알고 보면, 왜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이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로 가는지가 명확해집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채만수 소장님은 ≪노동자 교양경제학≫에서 맑스주의 입장에서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에 대해서 짚었습니다.

 

그들은 주장합니다. 역사적으로 실패했고 그 결점과 한계가 분명한, 좌로는 사회주의, 우로는 자본주의를 넘어 제3의 길, 흑은 새로운 중도의 길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혹은, 사회주의의 경직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이념이라고! … 그런데, 그들이 그러한 20세기 사회주의를 지칭하면서 좌와 우를 넘는 제3의 길이나 새로운 중도를 얘기하게 되면, 그들은 그간에 자신들이 취해왔던 사민주의보다도 훨씬 더 좌측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제3의 길이니, 새로운 중도를 운운하며 지향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의 방향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말하는 좌측의 사회주의란, 다름 아니라, 그간 자신들이 걸어왔던 사민주의의 길, 즉 독점자본 좌파의 길을 의미합니다. 결국, 제3의 길이니, 새로운 중도니 하는 것은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추구해가고 있는 사민주의자들의 깃발일 뿐입니다.30) (강조는 인용자.)

 

맑스주의는 영국 노동당의 이념이 아닙니다. 영국의 맑스주의 활동가들이 아나키즘의 난동 속에서 침몰해 가는 동안,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는 영국이 말하는 급진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에서 페이비언 협회를 거쳐서 만들어졌습니다.31) 2016년에 북아일랜드의 맑스주의자 리차드 세이모어는 제레미 코빈의 부상을 다룬 책에서,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는 독일 사회민주당과 다르게 맑스주의와 연관이 없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자유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32)

영국에서는 상식이지만 이를 다시 강조한 이유는 제레미 코빈을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코빈이 원하는 것은 블레어가 제3의 길을 들고나오기 이전의 노동당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지,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제레미 코빈은 타리크 알리를 노동당에 입당시키려고 했던 벤 좌파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지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 우익들이 코빈을 맑스주의라 비난하며 색깔 공세를 펼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험담을 떠나면 코빈은 급진 좌익이라기보다는 밀리반트주의자33)이고, 코빈의 노동당의 정책인 노동당 공약집(Labour Manifesto)은 맑스주의자보다는 케인즈주의자에 가깝다는 평을 듣습니다.34) 벤 좌파의 막내였던 코빈은 신좌파인 밀리반트주의자입니다.

요약하자면 노동당의 사회주의자 제레미 코빈은 신좌익과 함께하던 수정자본주의자 집단인 벤 좌파 족보 안에 있고, 맑스주의가 아닌 케인즈주의에 더 가까운 신좌익 밀리반트주의자입니다.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2-2. 버니 샌더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2020년 2월 11일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1위를 거두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버니 샌더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라는 글을 ≪뉴욕 타임즈≫에 실었습니다. 기고문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에서 노인의료보험(medicare)이 처음 제안되었을 때, 당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사회화된 의료우리의 자유를 파괴할 것이라고 했다. 보편적 육아 혜택(universal child care)을 요청하는 이들이 있으면 공화당은 미국을 쏘련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고발할 것이다. 상황은, 버니 샌더스는 어떤 측면에서 보아도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우리 주요 산업의 국유화나 시장을 중앙 계획으로 대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가 사회주의라고 선언하는 것은 그저 선거 전략일 뿐이다. 그런데 이걸 계속 밀고 나가면 우익 중상가들에게 쉬운 먹이가 될 것이다. 샌더스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부르는 것은 부르주아들에게 충격을 주는 기쁨이 있는 개인적인 브랜딩이다. 이러한 방식은 그가 주 상원의원일 때는 나쁠 것 없는데 민주당 대통령 후보라면 다르다. 이러한 사회주의자라는 자기 묘사의 잘못된 오해는 트럼프 선거 운동에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35)

폴 크루그만이 저렇게 버니 샌더스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거야 폴 크루그만 개인의 판단이고, 버니 샌더스는 개인이 아니고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운동이라고 반박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버니 샌더스와 같은 노선인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젊은 피를 대표하는 정치인인 코르테스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사회주의자는 불가능하지만 민주적 사회주의자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36) 맞는 말입니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자유주의자의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민주적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자본주의자입니다. 자유방임형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수정자본주의자이지요.

이제부터는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을 거슬러 올라가서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이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를 점검해 보겠습니다.

 

 

3. 미국 사회당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기원이 아니다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두 개의 주요 전통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토머스 제퍼슨적, 앤드류 잭슨적 평등주의에 그 기원을 가지고 노먼 토머스(Norman Thomas)에게서 절정을 이루는 미국의 토착적 흐름인 이상적 사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19세기 중엽에 독일로부터 유입된 외생(外生)의 유럽적 맑스주의에 기초한 흐름입니다.37) 이 두 전통은 교차하면서 진행이 됩니다.

미국의 노동 운동사와 사회주의사를 공부하면 미국은 항상 예외적인 사례라고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미국에는 사회주의 정당이 성장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운동 초기부터 그 이유에 대해 분석하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엥엘스가 미국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논하면서 독일계 이주 노동자들이 좀 더 독일인 이주민 사회를 벗어나 미국 사회 내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한 것이나, 미국에서 사회주의 보급 순회강연을 했던 엘리노아 맑스가 쓴 ≪미국 노동 운동≫, 좀바르트가 미국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와 공생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논한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는가≫38)는 이 미국 예외주의에 대해서 논했습니다. 19세기 말의 미국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언급은 지금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논하는 데 굳이 논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나 좀바르트의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는가≫의 영역본 서문을 마이클 해링턴이 썼다는 것은 언급해야겠습니다.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그룹의 본격적인 시작을 연 마이클 해링턴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정당성을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출발부터 놓는 정통성 구축 작업을 했는데 이것도 그 작업의 일부입니다.

 

3-1. 미국 사회당: 사회당을 창당한 유진 뎁스

미국 사회당을 창당한 유진 뎁스는 앞서 언급한 제퍼슨적 전통과 맑스주의적 전통을 모두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미국 사회당의 창당 자체가 두 전통의 화학적 결합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맑스주의적 전통에 있는 미국판 독일 사회민주당을 창당하기를 원하는 독일계 이주민들과 제퍼슨적 민중주의 전통에서 서서 미국 금융자본을 공격하기 위해 있던 중서부 소농들이 창당한 인민당(peoples party)39)이 민주당에 흡수되고 나서도 인민당 정신을 이어가고자 했던 잔류파들이 힘을 합쳐서 사회당을 세웠습니다.

유진 뎁스는 미국 최초의 비숙련노동자 산별 노조인 전미철도노조(ARU)를 설립했습니다. ARU는 1894년 4월 그레이트 노던 철도 파업을 일으켜 요구 사항 대부분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뎁스는 또한 1894년 풀먼사 파업을 지도하였는데 미 연방정부가 파업 분쇄를 위해 군대를 투입하였고 이 과정에서 13명이 죽었습니다. 뎁스는 이로 인해 수감되었고 감옥에서 사회주의자가 되어서 나온 후 1901년 사회당을 창당하고, 1904년 대선, 1908년 대선, 1912년 대선, 1920년 대선에 미국 사회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1905년에는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을 설립했습니다. 1897년과 1904년에 미국 노조원의 숫자는 450,000명에서 2,073,000명으로 늘어나는 등 전투적 노동 운동이 펼쳐지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당은 성장해 갔습니다. 1914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그동안의 반전 결의를 모두 내던지고 전쟁 참전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유진 뎁스의 사회당은 전쟁 반대의 입장을 지켰고, 유진 뎁스는 1918년 징병에 반대할 것을 선동하여 투옥되었습니다. 이 선동 연설과 법정 진술은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영어 연설문으로 꼽히며, 하워드 진과 앤서니 아노브가 엮은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에 수록되었습니다.40) 민주당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은 유진 뎁스를 매국노라고 부르며 투옥했고, 이 때문에 1920년 유진 뎁스는 대선에 옥중 출마를 하였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100만 표 가까이 득표하여 사회당이 존재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사회당을 위해 한 마지막 봉사였고 사회당은 이후 계속 위축되어 갔습니다.

이런 경력들을 보면 유진 뎁스를 과격한 노동 운동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노동자, 농민들에게 유진 뎁스는 성서에 나오는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예언자 아모스였습니다. 자본주의를 성서에 나오는 돈의 신 맘몬이라고 부르던 뎁스가 다음과 같은 예언자적 연설을 할 때, 우리는 그가 프로테스탄트 공화국 전통에 자연스레 가닿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투쟁, 끝없는 투쟁. 수고하며 생산하는 이들과 착취자들 사이의 투쟁.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자 합니다. 저는 그들 사이에 태어났고 제 생애의 마지막까지 제 몫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이 아침에 크고 작은 공장에 있는 남자들을 생각합니다. 저는 하찮은 임금 때문에 그들의 삶에서 쫓겨나와 강제로 일하는 여성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체제에서 놓인 어린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그 아이들은 삶의 여리고 이른 시기에서부터 맘몬의 무자비한 손아귀에 잡혀서 유년기를 강탈당하고, 산업 감옥에 강제로 들어갑니다. 그들의 몸과 혼은 굶어 죽어 가지만 기계에게는 밥을 주고 있습니다.41)

 

민주적 사회주의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미국 건국 초기의 프로테스탄트의 공화주의 전통과 연결해서 보여 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유진 뎁스가 필요합니다. 유진 뎁스는 미국 민주당에 들어가 사회주의를 선전하기보다는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 운동을 했던 반면, 마이클 해링턴을 포함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사회당과는 다르게 미국 민주당을 지원하는 것으로 전략을 완전히 틀어 유진 뎁스와 다른 길을 가기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진 뎁스를 자신들의 계보 내로 넣습니다. 마이클 해링턴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오해는 피하고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프로테스탄트 전통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유진 뎁스를 끌어들여서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건국 초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였습니다.

 

동시에 스탈린주의에서 드러난 엄혹한 현실과 대중 사회에서 점점 증가하는 위험은 좌파 사상가들이 규모가 작은 공화국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작은 공화국이란, 토마스 제퍼슨이 민주주의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지목한 아테네적 이상이 담겨 있는 미국식 도시를 말한다. 20세기 초 위대한 미국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는 자신의 운동을 작은 공화국 건설로 표현했다. 이에 대해 닉 살바토레는 그들은 진지하게 공화적인 전통을 취했다. 또 개인의 존엄과 시민권이란 개념에 내재한 권력을 강조했다. 작은 공화국을 형성하는 방법론은 모호했지만 그들은 만약 사람들이 단결한다면 공화적인 전통의 생명력이 그 길을 인도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요약했다.42)

 

사회당은 전투적 노동 운동과 반전 활동으로 받은 탄압만으로 위축된 것이 아닙니다. 1912년 우드로 윌슨이 등장하면서 자유방임자본주의를 수정자본주의 쪽으로 조금 돌리면서 노조원들이 이탈해 갔습니다.

 

미국 사회주의 정당 운동사를 보면 1900년-1910년대 유진 뎁스의 사회당이 몰락한 것은 1912년 우드로 윌슨이 취임 후 기업 독점을 제재하고 공정한 경제, 공정한 임금을 보장해서 모든 계층의 사회적 향상을 추구하겠다는 신자유를 내걸기 시작하자 좌파 성향의 노조원들은 민주당으로 합류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것은 사회당의 세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43)

 

이는 노먼 토머스에 의해서 사회당이 다시 활력을 되찾은 후에도 더 크게 증폭되면서 반복된 역사입니다.

 

3-2. 미국 사회당: 사회당 좌파, 뉴딜(1933년-1939년)에 반대하다

유진 뎁스가 창당한 미국 노동자의 독자 정당인 사회당은 미국에 뿌리를 내렸지만, 1차 대전에서의 반전 활동, 러시아 혁명의 성공에 따른 반사회주의 공세로 활동이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미국 사회당에 활력을 넣은 이는 노동 운동가가 아니라 평화 운동가였습니다. 그는 1차 대전 반전 운동으로 사회당이 가혹하게 탄압받는 것을 보고, 1918년에 사회당에 입당한 노먼 토머스였습니다. 노먼 토머스는 입당한 지 불과 10년 후인 1928년부터는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대공황(1929년-1932년)이 시작되었고,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토머스는 빈곤에 맞선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윤을 좇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불하는 대신 실업자 가정에 긴급지원금을 지급할 것, 주 5일 노동, 실업보험제도를 정책으로 제시했습니다.44) 1932년 대통령이 된 루즈벨트는 사회당의 대선 공약들을 뉴딜 정책에 적극 반영하였습니다.

미국의 보수주의 세력을 대변하던 미국 자유동맹(America liberty league)은 루즈벨트의 이러한 행보들을 사회주의가 수영하는 동안 뉴딜 세력이 그들의 옷을 들고튀었다. 뉴딜은 계급 전쟁을 시작한다라고 비난하였지만,45) 루즈벨트가 뉴딜의 성과로 재선을 하자 해산해야만 했습니다. 이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미국 공산당의 포스터에게서 들어 봅니다.

 

1932년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1882-1945)가 파죽지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것은 대중이 공화당의 반동에 대해 분노를 표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대중은 그 후 수년에 걸쳐서 그 밖의 수많은 강력한 대중행동을 통해 이러한 분노를 철저히 표출했다. 30년대 초기부터 전개된 거대한 파업운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중에서도 1934년의 샌프란시스코 총파업은 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마침내 오픈샵 제도46)를 취하고 있던 대기업의 노동자들까지 조직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그들은 실업자, 흑인, 농민, 재향군인, 청년, 노인들 속에서 강력한 대중운동을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이례적으로 루즈벨트를 4번(1933년부터 45년까지)이나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자본가계급은 이렇듯 발전하는 근로대중의 운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부르주아와는 달리, 미국의 부르주아는 노동자계급을 지배하고 억압할 수 있는 강력한 사회민주주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 루즈벨트는 1933년 3월 4일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고 난 지 꼭 35일 후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경제제도의 붕괴, 자본가계급의 혼란과 공포, 노동자계급의 반항에 직면하여 루즈벨트는 곧바로 활발한 개혁운동에 착수했다. 뉴딜을 구성하는 그의 수많은 법안은 의원들이 읽을 틈도 없을 정도로 물밀듯이 국회로 쇄도했다. 그의 재임 중 최초의 100일 동안에 통과된 개혁법안 수는 남북전쟁 이후의 70년 동안에 통과된 법안 수보다도 많았다. … 뉴딜계획의 목적은 마지막에 완성된 모습에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① 엉망진창이 된 은행제도를 재건할 것, ② 붕괴상태에 빠진 기업을 거액의 대부 보조금으로 구제할 것, ③ 민간자본의 투자를 촉진할 것, ④ 인플레이션 경향을 야기함으로써 하락한 물가를 인상할 것, ⑤ 작물 재배 면적을 축소하고 작물을 파기함으로써 농업의 과잉생산을 극복할 것, ⑥ 농장 및 가옥의 소유자를 저당권 집행으로부터 보호할 것, ⑦ 공공사업을 일으킴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고 대중의 구매력을 증대시킬 것, ⑧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실업자에게 최저한의 구제를 해줄 것.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착취자들은 마침내 실시된 실업보험, 양로보험, 농장 및 가옥의 저당권 집행으로부터의 보호, 은행예금의 보증 등과 같은 이들 개혁입법에 의해 상당한 이익을 보았다. … 루즈벨트의 경제정책은 대체로 당시 세력을 얻고 있던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원리에 따랐다. 바로 이 시기에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루즈벨트는 그와 직접 접촉하고 있었다)는 자본주의하에서도 정부와 산업 투자(펌프의 마중물)를 증가시킴으로써 대량실업을 회피할 수 있다는, 아니 없앨 수조차 있다는 취지의 저작을 내면서 등장했다(1936년 출판된 J. M.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루즈벨트와 히틀러 모두 케인즈 이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루즈벨트가 주로 마중물 방법으로 공공사업을 채택한 데 비해, 히틀러는 군수생산과 전쟁준비라는 사악한 고용 증대 수단(현대에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평판을 받고 있는 수단)을 채용한 점이 서로 다르다. … 루즈벨트는 자유주의적 자본가이고 백만장자여서 그의 정책은 결국 독점자본에게 큰 이익을 주었다. 그의 뉴딜개혁들은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틀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고, 더욱이 전투적 노동자계급이 대담한 개혁을 수행하고 또 광범한 노동자계급 정당을 조직하는 것을 방해했던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뉴딜정책의 근본 목적이었다. 더욱이 루즈벨트의 케인즈주의 사상은 노동자계급 내에 (맑스주의를 물리치고) 위험한 개량주의의 씨앗을 뿌렸다. 이것은 아직도 극복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케인즈주의도 대량실업을 없앨 수는 없었다. ―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에도 무려 700만 내지 1,000만 명의 실업자가 있었다. 또 중남아메리카에 대한 루즈벨트의 선린정책도 제국주의적인 의미에서 큰 이익이 될 것이 명백해졌다. 나아가 그의 통치하에 독점자본가는 더욱 거대해져서 유례없는 거액의 이윤을 손에 넣었다. 제2차 대전 중에도 루즈벨트는 결코 미국의 제국주의적 기본 이익을 놓친 적이 없었다.47) (강조는 인용자.)

 

루즈벨트는 대통령이 된 후 사회당 대통령 후보였던 토머스를 백악관에 초청하는 등, 사회당에게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사회당은 엉망진창이 된 은행제도를 재건한 것에 신랄한 비판을 하였습니다. 경제 위기의 원인이 되는 은행을 국민의 세금으로 살려 준 것을 비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참전이 뉴딜을 통제 체제로 변질시킬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미국 사회당의 정책들이 뉴딜에 반영되면서, 사회당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935년 노동 운동 지원법인 와그너법이 통과되자 사회당계 노조들이 루즈벨트로 지지를 옮기고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은 187,342표를 얻어 창당 이래 최저 득표를 하였습니다. 미국의 뉴딜 개혁을 진보를 표방한 세력이 다수파를 형성해 사회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로 보는 크리스티 앤더슨은 다음과 같이 루즈벨트를 평가합니다.

 

키워드는 노동과 복지였다. 루스벨트의 자문 그룹 브레인트러스트의 책임자이던 레이먼드 몰리(Raymond Moley)에 따르면, 루스벨트도 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와그너법>의 혜택과 힘을 통해 노동자 표를 굳건히 하고, 실업수당과 노령연금을 제공하고, 풍부한 구호 자금을 진취적으로 집행하며, 각종 연설을 통해 계급에 호소함으로써 북부 대도시 지역의 거대한 대중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48)

 

크리스티 앤더슨은 사회당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 민주당을 대변하는 그로서는 사회당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미국 민주당만이 진보로서 언급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크리스티 앤더슨의 연구보다는 미국 사회주의 운동을 연구한 권기준의 다음과 같은 서술이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과 뚜렷한 차이도 보이지 않았던 사회당의 정강정책으로 루즈벨트를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큰 호소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대공황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새로운 정당의 등장을 환영할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 미국의 노동계급은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이해관계를 주요 현안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지향한 사회당을 선호하지 않았다. 대신 민주당의 뉴딜을 적극 환영하면서 공동보조를 취했다. 토머스를 비롯한 사회당의 계획은 오히려 민주당에 의해 대부분이 수렴되어, 결과적으로 뉴딜은 당시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성장 가능성을 봉쇄해 버린 셈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쟁점들이 정부에 의해 거의 수렴되자, 사회당의 세력은 급속도로 쇠퇴하였고 루즈벨트의 취임 이후에는 사회당 탈당자 수가 점점 늘어나 민주당으로 합류했다. 이것은 사회당이 대부분의 노조기반을 상실하는 원인이 되었다.49)

 

당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와중에 사회당이 민주당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미국 사회당의 이념 또한 루즈벨트의 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권기준의 연구를 같이 따라가 봅니다.

 

토머스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 내에서 경제적ㆍ사회적으로 불합리한 모순 개선시키려는 것을 전제하였다. 그래서 전략적 수단으로써 기존의 체제를 수용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더불어 사회당원들도 사회주의적 정책이 급진적이고 혁명적이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기존의 미국 경제체제의 개선과 수정을 요구하기는 하였지만, 맑스적 전통으로써의 체제 전복이 아닌 루즈벨트의 뉴딜정책과의 절충을 원했다.

단적인 예로써 1932년 토머스의 당시의 쟁점들(The Issues of the Day)이란 논문에서 그 당시 이념의 지배적인 경향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파괴가 아니라 그것의 실현을 추구하면서 이룩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토머스의 사회당이 당시 부패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체제유지를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30년대의 일부 지식인들은 실제로 사회당에 가입하여 사회비판활동을 전개했지만 그들 역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토머스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 사회의 결함과 폐단에 대한 광범위한 해부와 처방을 내렸지만 대부분이 체제 내의 개혁을 주장하는 데 머물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토머스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눈에는 미국 사회에서 진정한 사회주의는 현실성이 없는 이상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체제변혁을 이룩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한적인 사회주의의 실현을 추구하자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50)

 

요약하면 노먼 토머스의 사회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사회주의가 아니고 수정자본주의였고, 자유방임자본주의를 주장하던 보수주의였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물러나고, 수정자본주의를 전향적으로 도입하려는 루즈벨트가 들어서게 되자 미국 사회당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3. 미국 사회당의 몰락: 전쟁으로 공황이 극복되다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황의 극복은 뉴딜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채만수 소장님의 ≪노동자 교양경제학≫을 펼쳐 봅니다.

 

극복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 심각한 어폐가 있지만, 그럼에도 굳이 말한다면, 1930년대의 대공황을 극복하게 한 것은 뉴딜이나 나치즘 등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정상적인(?),혹은 일반적인 정책수단이 아니라 제2차 대전이라고 하는,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대규모의 파괴와 살육이었습니다. 물론 전쟁 혹은 전시경제라고 하는 것 역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한 형태, 그 비상한 형태이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1930년대의 대공황은 그렇게 제2차 대전이라고 하는 엄청난 파괴와 살육을 통해서 극복되었습니다.51)

 

루즈벨트가 4선이 가능했던 것은 뉴딜로 인해 공황을 극복해서가 아닙니다. 공황을 극복하게 만든 것은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나기 전의 뉴딜 정책은, 미국 민주당이 미국의 사회당, 공산당의 정책들을 받아들여서 인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뉴딜을 경과하고 나서 전쟁을 맞이하자 미국의 사회당과 공산당은 민주당 정부에 대해서 제대로 된 비판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회당과 같이 뉴딜 정책을 혹독하게 비판하던 공산당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반파씨스트 전쟁으로 보고, 독일 파씨스트들과 일본 군국주의를 우선 패배시킨다는 명분으로 입장을 선회하여, 루즈벨트 정부를 지원하게 됩니다. 토머스는 공산당의 이러한 입장 선회에 분노하였습니다.

 

3-4. 뉴딜은 케인즈주의, 독점자본 좌파의 통치 전략이다

뉴딜은 케인즈주의, 독점자본 좌파의 통치 전략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보면, 샌더스의 그린 뉴딜이 제2의 뉴딜, 즉 뉴딜의 재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뉴딜 정책의 사상적 기초였던 케인즈주의에 대한 비판을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채만수 소장님과 한신대 김성구 전 교수님으로부터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3-4-1. 채만수 소장

 

케인즈주의의 특징과 그 반노동자ㆍ반인민적 성격: 1930년대의 대공황을 계기로 그들의 관점에도 현실에 대한 실천적 대응에도 일대 변화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다름 아니라, 절체절명의 대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서 국가가 나섰던 것인데, 케인즈 경제학에 이르러 이제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도 자본주의적 생산에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모순, 그 구체적 표현으로서의 과잉생산이라는 고유한 내적 모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인정되고, 이 모순을 완화ㆍ치유ㆍ예방하기 위하여 국가가 재정 및 금융적 수단을 동원,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등 재생산과정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이론화되었던 것입니다.52) (강조는 인용자.)

 

3-4-2. 김성구 교수

 

장기 불황하에서 이윤율 조건은 개선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윤율 조건을 웬만큼 개선시켜도 장기 불황은 극복하기 어렵다는 게 지금 드러났잖아요. 신자유주의가 들어선 1980년대 중반부터 자본주의 세계의 이윤율이 분명히 개선됐어요. 그런데 신자유주의 지배하에서 자본가들의 이윤율 기대도 굉장히 높아졌죠. 그래서 지금 같은 수준의 이윤율하에서는 투자를 안 한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윤율 조건을 개선해서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거고, 더구나 그건 좌파가 주장할 수 있는 정책도 아니에요. 이윤율 조건을 개선시킨다는 건 지금도 살기 힘든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야 한다는 건데, 이건 좌파로선 안 될 얘기거든요. 그럼 케인즈주의를 다시 복원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있느냐, 이것도 가능하지 않아요. 케인즈주의라는 건 자본가들에게 양보를 요구하고 노동자들의 생존 조건을 개선시키는 타협 체제예요. 독점 자본과 금융 자본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확장 정책으로 수요를 창출해서 고용을 개선하는 역할을 국가가 떠안는 거죠. 그런데 1970년대 케인즈주의가 파산할 때보다 국가 채무 위기가 더 심각해진 상태에서 케인즈주의를 복원해 다시 경제를 장기 성장의 길로 가게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53) (강조는 인용자.)

 

지금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미국을 공황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한 것은 뉴딜이 아니라 전쟁이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은 그린 뉴딜을 내세워서 제2의 뉴딜을 하고자 합니다.

 

 

4. 민주적 사회주의는 반공사회주의이다

 

4-1. 민주적 사회주의의 출발점: 루즈벨트의 복지 국가

한국에 민주적 사회주의가 처음 소개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근 40여 년 전입니다. 1979년 어빙 하우(Irving Howe)가 민주적 사회주의의 기관지 ≪디센트(Dissent)≫ 창간 25주년을 맞아 그동안 가장 중요했던 글을 모아서 Twenty-five years of Dissent: an American tradition54)을 내었습니다. 1983년 민음사는 이 책의 1, 2부만 번역해서 ≪미국의 사회주의≫란 제목으로 책을 내었습니다.55) 사회주의 서적을 전혀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유사 사회주의 서적으로 국내에 처음 민주적 사회주의가 소개된 것입니다. 어빙 하우는 이 책을 편집하고 서문을 쓰면서 민주적 사회주의의 노선을 정확히 보여 주려고 하였습니다. (40여 년 전 유사 사회주의로 국내에 소개된 민주적 사회주의가 지금 샌더스 열풍에 같이 들뜨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회주의인 양 소개하는 것을 보니, 미국에서 유행이라면 바로 추종하는 식민지 문화 풍토에 대해 서글픔을 느끼게 됩니다.)

어빙 하우는 서문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의 기원으로 자신들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 운동을 한, 유진 뎁스와 노먼 토머스를 무리하게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1930년대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맞닥뜨려서 미국 사회당이 처했던 새로운 난제가 두 가지 있었고, 지금도 이 난제는 지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의 새로운 난제들이란 사실상 현대의 모든 정치사상들이 지녀 왔던 중대한 관심사들이었다. 즉 첫째는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통해 도입된 <복지국가>에 대하여, 그리고 둘째는 공포의 새 현상으로 나타난 스탈린주의적 전체주의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56)

 

어빙 하우에 따르면 사회당 우파들은 뉴딜 정책이 인민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막연히 믿었고, 당시 노먼 토머스를 압도했던 젊은 좌파들은 공황이 사회를 붕괴시킬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미 노먼 토머스를 압도하게 되었던 사회당의 보다 젊고 과격한 당원들에게 있어서는, 뉴딜 정책이 구사하는 특수한 수단들 중의 일부가 비록 소망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뉴딜이란 결국 병들고 불공정한 체제를 구제하기 위한 잡동사니에 불과한 것이었다. 루즈벨트의 여러 개혁들은 실업을 실질적으로 종식시키지도 않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기본적인 상황들을 변화시키지도 않았다고 그들은 지적했다. 그것은 타협이 있을 수 없는 논쟁이었다. 연로한 노동조합주의자들은 뉴딜이 여러 가지 중대한 개선들을 가져왔다고 보고 있었다. 이제 노동조합을 강화하고 수백만 인민들의 상황을 개선할 기회가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半)레닌주의적 이데올로기로 굳어 가고 있던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반드시 미국적 상황에 대해서만 대응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국경을 초월하는 사회적 붕괴가 도래할 때를 기대하며 국제적 전망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국제 자본주의 종말의 시대를 헤쳐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대공황, 파시즘의 대두, 유럽에 있어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붕괴 등이 그 충분한 근거를 마련해 놓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느낌이었다. 자본주의는 개혁될 수도 없고, 평화적으로 변화될 수도 없으며, 사회 혁명이 그 탈출구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러한 전망은 파시즘이 휩쓴 유럽의 경우에는 적합성을 지녔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심지어 대공황의 시대에 있어서조차도 전혀 적합성을 지니지 못했었다.57) (강조는 인용자.)

 

어빙의 1930년대 사회당 평가의 행간을 읽으면, 사회당 우파는 같은 수정자본주의자로서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에 끌려갔고, 사회당 좌파는 공황이 가져올 사회적 붕괴에 따른 사회 변혁을 생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당 우파도 사회당 좌파도 다 틀렸습니다. 공황을 극복한 것은 사회당 우파가 기대한 뉴딜도 아니고 사회당 좌파가 기대한 사회 변혁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이 공황을 극복시키고 루즈벨트가 4선이 가능하도록 하고 사회당을 몰락시켰습니다.

어빙은 전쟁이 공황을 극복하고 사회당을 몰락시켰다는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 버니 샌더스와 그린 뉴딜이 나오게 되는 그 경로를 여는 발언을 합니다. 다음 글은 앞서 인용한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회고해 보면 뉴딜이 기본적인 사회주의적 비관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중대한 진보였다고 인정하는 보다 유연한 사회주의적 자세도 있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어느 쪽에 대해서도 불가능했다. 아직 타협을 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생생하고 단호했으며, 늘어나는 개혁가들과 엄격한 이념가들을 가르는 사회주의의 고전적 구분이 이미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58) (강조는 인용자.)

 

1930년대에는 사회당 좌파와 우파가 타협이 불가능할 정도로 갈라져서 사회당이 몰락했지만, 지금은 뉴딜이 기본적인 사회주의적 비관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중대한 진보였다고 인정하는 보다 유연한 사회주의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어빙 하우는 40여 년 전에 주장했습니다. 이는 뉴딜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사회당의 자세를 완전히 버린 것입니다. 어빙 하우의 이 주장은 지금의 민주적 사회주의의 노선과 같습니다.

≪자코빈(Jacobin)≫에서 세스 애커먼는 루즈벨트의 뉴딜로 인해서 전투적 노동자계급이 대담한 개혁을 수행하고 또 광범한 노동자계급 정당을 조직하는 것을 방해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샌더스가 사회주의자가 아닌데 왜 사회주의자라는 주장을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뉴딜을 이야기합니다. 뉴딜을 논할 때 뉴딜을 비판한 미국 사회당 좌파보다는 사회당 우파의 관점을 취합니다. 뉴딜에 대한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평가는, 노먼 토머스가 그의 전기에서 루즈벨트의 경제 개혁이 민주당의 플랫폼보다는 사회당의 플랫폼을 반영했다고 평가한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정리가 됩니다.59) 이는 어빙 하우가 주장한 유연한 입장을 계승한 것입니다.

마이클 해링턴이 민주적 사회주의를 시작하면서 유진 뎁스와 노먼 토머스의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사회당 노선을 버리고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습니다. 뉴딜을 사회당의 플랫폼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제 이것은 민주당이라는 하드웨어에 뉴딜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올리는 것으로 자연스레 귀결됩니다.

답이 나왔습니다. 유진 뎁스와 노먼 토머스가 아니라, 미국 민주당의 루즈벨트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 민주적 사회주의의 갈 길이 됩니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과 정책은? 2020년 미국 민주당 후보로 나선 버니 샌더스와 그린 뉴딜입니다.60)

 

4-2. 민주적 사회주의의 시조: 윤리적 사회주의자이자 반공사회주의자인 마이클 해링턴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이 필수 도서 목록이라고 공개된 것을 보면, 마이클 해링턴(1928년-1989년)이 가장 위 칸에 올라가 있습니다.61)

노먼 토머스는 사회당을 대중 정당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사회당 내로 공산당 탈당파들, 뜨로쯔끼주의자들까지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이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사회당 내에서 부화되어서 세력을 키운 후 나중에 독립하게 된 배경이 됩니다. 매카시즘(1950년-1954년) 이후 뜨로쯔끼주의자들을 사회당 내에 받아들이면서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으로서의 사회당은 그 색깔을 잃어 가게 됩니다.

마이클 해링턴은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의 사실상의 시조입니다. 그는 짧게 가톨릭 노동 운동을 하다가, 제임스 P. 캐넌, 마틴 에이번과 함께 미국 뜨로쯔끼주의를 주도했던 막스 샥트만의 작은 뜨로쯔끼 조직 ISL(Independent Socialist League)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ISL은 1957년 미국 사회당에 흡수되었는데, 뜨로쯔끼주의자 막스 샥트만은 미국 사회당에서의 활동보다는 미국 민주당 지원을 중점에 두었습니다. 마이클 해링턴도 이때부터 막스 샥트만을 따라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미국 사회당의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활동보다는 미국 민주당 지지에 중점을 두게 됩니다.62) 마이클 해링턴이 1982년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를 결성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은 본격화됩니다. 마이클 해링턴은 입으로는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 운동을 한 유진 뎁스와 노먼 토머스의 사회주의가 자신의 사회주의라고 했지만, 일평생 민주당 내에서 좌익을 지향했습니다. 즉 그의 인생은 우리식 표현으로 하면 민주당 2중대 조직을 만들고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클 해링턴이 민주적 사회주의 DSA의 기원을 미국 사회당에서 찾아도 DSA는 DSA일 뿐입니다.

1962년에 미국의 빈곤 문제를 비판한 ≪또 다른 미국인≫이, 출판된 해에만 7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마이클 해링턴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1999년 ≪타임(Time)≫ 매거진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던 비소설 부문 책 10권에 선정되었습니다.

해링턴은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존 F. 케네디 정권에 의해 차출되어 복지 관련 자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빈곤 문제에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실업이다며, 뉴딜 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63)

그런데 ≪또 다른 미국인≫에서 그가 제시했던 것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면서, 이후 그 자신조차도 자신의 다른 저서에서 이 책을 언급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도 그 책은 여전히 유효하게 읽히는데, ≪또 다른 미국인≫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도덕적인 명료함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미국 사회당의 뎁스와 토머스가 계승했던 제퍼슨적 전통과 연결되어 공화당 지지자들까지도 ≪또 다른 미국인≫을 격찬하게 합니다. 부시 정권에 복무했던 극우 인사가 ≪또 다른 미국인≫으로 자기 세대 모두에게 영향을 준 마이클 해링턴을 버니 샌더스와 관련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64)하는 것이 가능한 것도, ≪또 다른 미국인≫이 사회주의 서적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구해야 한다고 윤리적으로 호소하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반공 국가인 미국에서 마이클 해링턴은 사회주의를 내세웠지만, 그의 사회주의는 자신이 반쏘ㆍ반공임을 강조한 후, 윤리에 호소하는 사회주의입니다.

 

4-3. 민주적 사회주의, 반공을 위해 러시아 혁명 해석에서 뜨로쯔끼를 수용하다

뜨로쯔끼주의는 미국 사회를 반공 사회로 만드는 데 가장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마이클 해링턴이 사회주의자로 활동을 시작했던 뜨로쯔끼주의 조직 ISL을 이끌던 샥트만이 평생 쓰고 모은 자료들은 앨버트 글로처 문서65)로 묶여서,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을 줄기차게 강조해 온 미국 극우 싱크 탱크인 후버 연구소66)의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다67)는 것은 미국의 극우들에게 뜨로쯔끼주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이클 해링턴을 뜨로쯔끼주의자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해링턴은 단지 공산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뜨로쯔끼를 채택했습니다. 대부분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하듯 그가 뜨로쯔끼주의로부터 받아들인 것은 반쏘ㆍ반공의 내용뿐입니다. 마이클 해링턴은 윤리적 사회주의자입니다. 이것은 그가 영국 노동당의 도덕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리처드 헨리 토니를 끌어들이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1차 대전 이전의 유토피아 사회주의 운동이 공상적이라거나 몰계급적이라는 취지의 비난을 기억한다면, 여기서 제안하는 윤리적 사회주의가 다소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사회주의에서는 이런 윤리적 사고가 중요하고, 동시에 조직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람시는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이 지점을 이해한 인물이다. 영국 사회주의자인 리처드 헨리 토니는 종교적으로 영감을 받은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그 지점을 포착했다. 토니는 프랑스 혁명 전통에서 등장하는 우애는 새로운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권력은 분산돼야 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해선 안 된다고 토니는 생각했다. 평등은 개인적 차원에서 정의일 뿐만 아니라, 국가 그 자체에 도덕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연대의 가치는 기본이고 소통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비전을 모든 진지한 사회주의 사상가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68)

 

마이클 해링턴이 뜨로쯔끼를 길게 자주 인용하는 이유는 뚜렷합니다. 그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마이클 해링턴의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의 앞표지를 보면 지금까지의 사회주의는 왜곡되었을 뿐이다란 문구가 있습니다. 책 내용을 참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든 표지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책 전반에 드러내고 있으며, 동시에 뜨로쯔끼주의에 기대어 아예 한 장으로 3장 가짜 사회주의 시대를 써서 현실 사회주의를 완전하게 부정했습니다. 8장 시장인가, 계획인가에서는 소목차를 1. 사회주의 시장도 존재할 수 있다. 2. 소비에트와 중국이 겪은 시장 딜레마. 3. 계획과 시장 모두를 활용했던 스웨덴으로 전개하여 현실 사회주의는 가짜이니 진짜 사회주의인 수정자본주의, 시장사회주의로 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사회주의를 책 전반에 걸쳐 군데군데 드러냈습니다.69)

마이클 해링턴과 그의 동료들은 신좌파에게도 적대적이었고, 매카시즘이 미국을 완전히 지배하던 시기에 사회주의를 주장한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에게도 적대감을 드러내었습니다. 1965년 어빙 하우는 ≪디센트≫에서, 신좌파인 ≪먼슬리 리뷰≫를 가리켜, 신좌파는 중국의 독재가 더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확신으로 끝난다. 꾸바에서 까스뜨로의 독재, 자유가 파괴된 것을 제대로 설명 못하고 있다70)고 공격합니다. 이것이 레오 휴버만과 폴 스위지가 꾸바에 관해서는 고전이 된 책들71)을 이미 낸 이후에 이루어진 공격이라는 것을 보면, 이들이 ‘반공’으로 보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이클 해링턴과 ≪디센트≫의 기본적인 입장은 현재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에게 이어집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필수 도서 목록에는 뜨로쯔끼의 ≪러시아 혁명사≫도 들어가 있습니다. 뜨로쯔끼는 반공사회주의인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에게, 반공에 대한 영감의 영원한 원천입니다.72)

민주적 사회주의가 나온 것은 미국이 혹독한 반공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식 사민주의를 언급만 해도 빨갱이 소리를 듣는 나라에서는 수정자본주의를 하려고 해도 발언권을 가진 시민이 되려면 반공이라는 것부터 먼저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마이클 해링턴이 평생 뜨로쯔끼를 들고 있던 것은 뜨로쯔끼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미국 사회 내에서 수정자본주의자로서 발언권을 가지기 위해서 뜨로쯔끼를 활용하여 반쏘ㆍ반공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4-4. 민주적 사회주의, 반공을 위해 현실 사회주의 공격에 밀로반 질라스의 ≪새로운 계급≫을 수용하다

그러나 반공을 하기 위해서는 뜨로쯔끼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2차 대전에서 쏘련이 나찌를 격퇴한 후 들어선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비판은 뜨로쯔끼주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민주적 사회주의자 그룹은 밀로반 질라스의 새로운 계급론73)을 수용합니다.

밀로반 질라스는 유고슬라비아의 권력 실세였다가 1954년에 축출된 후 ≪새로운 계급≫을 냅니다. 이 책은 최초로 동구의 공산주의자들을 새로운 계급이라고 불렀습니다.74) 이 책은 쏘련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복고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할지 몰랐던 어빙 하우 등의 민주적 사회주의자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것이었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반공을 위해 질라스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 내부에 단단히 박아 넣습니다.

 

스탈린주의는 그 자체 내에서 부르주아가 부활할 수 있거나 점차 민주주의로 변화되어 나갈 수 있는 징조들을 전혀 보여 주지 않았다. 관료체제는 자본주의와도 사회주의와도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그 자체의 이해관계를 지닌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변해 갔다. 질라스(Milovan Djilas)의 <새로운 계급>이라는 용어를 통하여 유명해진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결정적인 것은 재산의 소유형태(즉 국가화된 경제)가 아니라 소유 관계의 실체(즉 재산을 소유하는 국가를 누가 지배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75)

 

국내에서도 말하자면 공산당은 쏘련의 부르주아였습니다. 쏘련 경제는 형태만 바뀐 계급 경제였습니다. … 중국, 조선, 베트남 같은 국가들도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쏘련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체제는 아닙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하는 말은 밀로반 질라스의 ≪새로운 계급≫에서 나온 주장을 그대로 옮겨 온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민주적 사회주의자입니다.

 

4-5. 민주적 사회주의, 수정자본주의론을 위해 카우츠키를 수용하다

마이클 해링턴은 자신이 반공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면서, 실제로 제시하고 싶은 수정자본주의를 하나둘씩 풀어 나갔습니다. 스웨덴식 사회주의와 케인즈, 카우츠키, 베른쉬타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들을 조합한 새로운 사회주의를 제시하고 싶어 했습니다.76)

카우츠키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은, 지금도 ≪자코빈≫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코빈≫에 실리는 글들 중,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코르테스를 거론한 후, 오래 지나지 않아 오늘날의 사회주의자들이 카우츠키가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주장77)도 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1차 대전에서 겨우 빠져나왔으나, 다시 내전 속으로 들어가는 위기에 있던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퍼붓던 카우츠키78)를 러시아 혁명의 설계자로 만들려는 글은 그러한 노력의 일부라고 생각됩니다.79) 그러나 레닌이 카우츠키의 설계에 의해 러시아 혁명을 이끌었다면, 1918년에 카우츠키는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비난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근대화된 사람들은 그러한 가부장적인 체제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체제는 단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 비해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피지배자가 지배자와 동일한 지식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해방투쟁을 이끄는 계층이나 계급은 그런 통치 체제를 목표로 설정할 수 없으며 그것을 단연코 거부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를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근대적인 사회주의를 단지 생산의 사회적 조직화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사회의 민주적 조직화로도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회주의란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것으로 결합되어 있다.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란 없는 것이다.80)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가부장제라고 비난하는 카우츠키에 대한 비판으로 몇 달 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를 썼습니다. 기존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순수 민주주의 개념을 가지고 쏘비에트 정부가 거기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을 하는 카우츠키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배신자가 아니겠느냐는 것이 이 반박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의 통제장치 및 억압기구의 계급적 본질을 보지 못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하에서 자본가는 수천 번의 농간―이것은 순수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욱 교묘하고 효과적이다―에 의해 인민을 행정업무로부터, 출판의 자유로부터, 집회의 자유로부터 몰아낸다. 소비에트 정부는 인민, 특히 피억압 인민을 행정업무에 끌어들인 세계 최초의 (아니, 엄밀히 말하면 파리코뮨이 똑같은 일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두 번째의) 정부다.

… 소비에트는 근로피착취인민이 그들 자신의 국가를 가능한 한 모든 방식으로 조직하고 관리하게 하는 그들 스스로의 직접적 조직이다. 여기에서는 바로 근로피착취인민의 전위인 도시 프롤레타리아트가 대규모기업에 의해 대단히 훌륭하게 단결된다는 이점을 누리는 것이다. 즉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 수월하게 선거를 치르며 선출된 사람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이다.81)

 

카우츠키와 레닌 간의 이런 잘 알려진 논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사회주의가 카우츠키를 러시아 혁명의 설계자로 주장하는 것은, 수정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격상시키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4-6. 민주적 사회주의, 수정자본주의를 위해 노르딕 사회민주주의를 고민하다(예: 마이클 해링턴, 스웨덴 임노동자 기금을 고민하다)

마이클 해링턴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수정자본주의/시장사회주의로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 작업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선호하는 이론가들을 드러냅니다.

 

사회주의하의 합리적 가격들에 관한 그들의 요점은 설득력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탁월한 보수주의자 슘페터는 사회주의적 가격들은 한계 비용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영국의 페이비언주의자 크로슬랜드(Anthony Crosland)는 오직 사회주의하에서만 그러한 자본주의적 이론들이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브라슈(Philipe Brachet)와 같은 미테랑(Francois Mitterand) 주위의 몇몇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오늘날의 프랑스에서 어떻게 수행될 수 있는가를 상세하게 논의했다.82)

 

보수주의자 슘페터,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는 케인즈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크로슬랜드, 그리고 프랑스 대통령의 경제 이론가라? 미테랑은 사회당의 좌파 대통령이었지만 집권 후 긴축 정책을 실시하여 지지자들을 실망시킨 정치인입니다. 그가 언급하고 있는 이론가들은 사회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해링턴은 이들의 수정자본주의론을 검토하다가 1976년 스웨덴의 생산직 노동조합 중앙 조직인 LO가 제출한 임노동자 기금안83), 렌-마이드너 모델(Rehn-Meidner model)과 그와 유사한 네덜란드 사회주의자들84)에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임금의 일부는 생산성의 제고에서 오는 사회적 배당으로서 집단적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요원한 얘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바로 지금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법인들의 세금의 일부를 노동자가 관리하는 공제(共濟)기금의 주식으로 지불할 것을 제의함으로써 그러한 집단적 지불의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발전해 나아가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의 하나는 노동자들에게 공동의 이해관(利害觀)을 주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것은 노동자 개개인이 임금 인상 대신 주식을 받는 전통적인 주식 배당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지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웨덴에서는 이것은 이미 보수적인 대안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곧 생산성 향상에 의한 이득의 사회적 배당을 위한 제안인 것이다.85)

 

그러나 스웨덴의 임노동자 기금안이 유명무실해지자 민주적 사회주의는 이에 대해서 더 진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5. 민주적 사회주의의 새 얼굴 ≪자코빈≫

 

이런저런 모색을 하였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민주적 사회주의는 2008년 세계 공황이 닥치고 미국 인민들의 불만이 고양되고서야 다시 존재감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한 이미지 쇄신을 시도합니다.

 

5-1. ≪자코빈≫과 자유주의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공식적인 기관지로는 ≪디센트≫가 있지만, ≪디센트≫가 가진 기존 이미지로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쇄신시키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신좌파인 ≪먼슬리 리뷰≫까지도 반공의 입장에서 공격했던 것은, 현재의 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년에 4번 나오는 계간지로는 민첩한 대응이 힘들기에, ≪디센트≫의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기관지 역할을 할 새로운 매체를 내게 됩니다. 한 느낌과 함께,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 발행하여 쟁점 대응에 원활하도록 나온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새 매체가 ≪자코빈≫입니다.

≪자코빈≫이 2014년 정기 구독자 25,000명을 확보한 후, ≪자코빈≫ 편집장인 순카라는 ≪뉴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이딸리아 공산당과 유로코뮤니즘 이론에 관심이 있으며, 카우츠키의 ≪권력으로 가는 길≫도 읽는다고 하였습니다.86) 그는 ≪유럽 나우(EuropeNow)≫와의 인터뷰에서는 좌파의 대부분이 1917년 혁명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1976년 스웨덴에 대해서는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바스카 순카라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보다는 적극적 자유주의인 사민주의, 1932년부터 1976년까지 집권했던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87)

≪뉴레프트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자유주의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는 자유주의자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자유주의자들과 가능한 공동 행동을 계획한다고 답했습니다.88) 민주적 사회주의자로서는 ≪자코빈≫으로서는 사회주의로 낙인찍히는 것보다는 자유주의자와 활동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적 사회주의 자체가 자유주의이고 수정자본주의인데, 자유주의와 벽을 쌓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5-2.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인 사회주의 ABC의 반공적 측면

≪자코빈≫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기관지 역할을 하는 매체로,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을 위해, 출판과 쎄미나 지원도 합니다. ≪자코빈≫은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알려 나가기 위해서, 2월에 ≪99%를 위한 미래≫89)를 6월에 ≪사회주의 ABC≫90)를 냅니다.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ABC라는 기초 쎄미나를 개설하여, 사회주의에 관심 있는 이들을 모아서 조직을 확장하고자 합니다. 사회주의 ABC라는 이 쎄미나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교리들을 담아서 전달합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청년 날개인 YDSA(Young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웹사이트에서 쎄미나 스터디 킷을 제공하고 있고,91) 기초 교재인 ≪사회주의 ABC≫는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92)

≪사회주의 ABC≫는 사회주의 입문서입니다. 사회주의가 아직도 부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는 한국 같은 국가에서는 좋은 사회주의 입문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주의 사회가 되면 아끼는 개인 물건도 공유해야 하나?(바스카 순카라)란 질문을 한 후, 노(No).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적 소유가 아니라 사적 소유가 없는 세상을 원한다. 당신은 아끼는 물건을 계속 가질 수 있다와 같은 즉각적으로 핵심에 접근할 수 있는 13개의 문답으로 잘 구성한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반공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지금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내걸고 있는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이미 실현한 사회라는 것은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이 교재들은 자신들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기존 사고를 깰 생각이 전혀 없고, 자신들은 현실 사회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자신들은 현실 사회주의에 반대해 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이들은 기존 자본주의 체제와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배당효율, 즉 투입물이 총산출물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업들 사이에 할당되는 정도 등의 기준으로 보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식의 내용으로 채우고 있습니다.93) 이 내용의 서술도 기존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사회주의 체제와 비교해서 그렇게 효율적인 체제가 아니니까, 반자본주의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이 교재는 쓰딸린주의 사회가 지겨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94) 그리고 러시아 혁명 이후 새로운 문이 열렸는데, 쓰딸린이 권력을 공고화하면서 그 문이 닫혔다는 주장을, 뜨로쯔끼에 기대어서 서술했습니다.95) 사회주의 결말은 항상 독재 아닌가?란 장도 펼쳐 보겠습니다.

 

한 세대 동안 미국인들은 냉전에 관해 자유와 독재 진영의 싸움에서 자유 진영인 민주적 자본주의가 결국 승리한 것이라고 배웠다. 모든 조류의 사회주의는 소련의 범죄들과 동일시되었고 쓰레기 같은 생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많은 사회주의자는 좌익과 우익 모두의 권위주의에 일관되게 반대했다.96)

 

민주적 사회주의가 무엇인가를 단기간 내 파악하려면 ≪사회주의 ABC≫만큼 좋은 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ABC≫는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미국의 지배적인 분위기에 조응하여 자신들의 민주적 사회주의만이 사회주의라는 식으로 쓰였기에,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을 깨기 힘든 한국 같은 국가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할 수도 있기에 주의하면서 읽어야 할 교재입니다.

 

▲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기초 쎄미나 사회주의 ABC

 

▲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쎄미나 교재 ≪사회주의 ABC≫. pdf 파일로 무료로 배포된다.

 

5-3. 민주적 사회주의. 에릭 올린 라이트의 ≪리얼 유토피아≫. 반자본주의의 방법은 자본주의 침식시키기

민주적 사회주의가 현재 내걸고 있는 반자본주의는 사회 변혁이 아니라 수정자본주의입니다. 에릭 올린 라이트의 개념으로는 자본주의 침식시키기(Eroding capitalism)입니다. ≪자코빈≫에 실린 글들 중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해서 잘 설명하는 글이 있습니다. 에릭 올린 라이트가 기존의 자신의 작업인 ≪리얼 유토피아≫의 내용을 최대한 쉽게 요약해서 전달하는 어떻게 반자본주의자가 될 것인가입니다. 에릭 올린 라이트는 자본주의 침식시키기로 반자본주의를 같이하자고 주장합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해악이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말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가 불필요한 해악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 표현은 자본주의가 제거할 수 있는 인간의 고통을 영속화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본주의는 승자와 패자를 낳는 씨스템이며, 기득권을 통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지는 체제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가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는 큰 해악을 낳지만 동시에 성장을 이뤄 내고 이익을 창출한다. 나는 큰 해악 없이 자본주의 안에서 이익을 얻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침식시키는 것은 환상이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길들이기라는 사회민주주적인 이념과 결합할 때만 이 말이 그럴듯해진다.

우리는 아래-아나키즘의 사회 중심적 전망위-국가 중심적 사회민주주의 전략을 연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좀 더 침식시키는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길들여야 하고 자본주의를 길들이는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침식시켜야 한다. 우리가 이 두 가지의 반자본주의의 경향을 연결하도록 돕는 것이 리얼 유토피아이다.97) (강조는 인용자.)

 

여기에서 새로워 보이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침식아래-아나키즘의 사회 중심적 전망입니다. 위-국가 중심적 사회민주주의 전략은 독일 사회민주주의나 노르딕 사회민주주의에서 이미 진행하고 있는 것이고 에릭 올린 라이트는 침식아래-아나키즘의 사회 중심적 전망의 개념을 더해서 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5-3-1. 침식: 수정자본주의

침식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지표가 비ㆍ하천ㆍ빙하ㆍ바람 따위의 자연 현상으로 깎이는 일입니다. 자본주의 침식시키기의 의미는 결코 권력을 잡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체제를 바꿀 의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에릭 올린 라이트는 침식을 ≪자코빈≫에서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성미산 마을을 방문한 후 한 인터뷰에서도 이미 주장한 바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과 관련해 두 가지 고전적 관점이 있었다. 길들이기(Taming)와 타파하기(Smashing)다. 전자는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이고, 후자는 혁명적 관점이다. 당신은 여기에서 넘어서기(Transcending)를 덧붙인 것으로 아는데.

아니다. 넘어서기는 옛 버전이다. 침식하기(Eroding capitalism)다. 침식이란 말은 안에서 바스러뜨린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제 내부에서 나타나 서서히 봉건질서의 토대를 침식했다. 봉건제는 특정 시기에 페달이 부러진 게 아니라 용해됐다. 자본주의와 시장이 그렇게 했다. 사민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아스피린적인 처방을 내린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아스피린에 점점 내성을 지니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두통을 겪고 있다. 98)

 

2018년 8월에 쓴 최후의 저술 ≪21세기에는 어떻게 반자본주의자가 될 것인가≫의 서문에서, 그는 이 책이 ≪리얼 유토피아≫와 연결된다고 밝히고 시작하였습니다. 이 서문은 그의 유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서문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습니다.

 

이 책에서 나는 민주적 시장사회주의를 찬성하는데, 이를 경제 민주주의의 급진적 형태로서 이해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21세기 민주사회주의자가 되는 방법≫이라는 제목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의 주장의 많은 부분이 자본주의에 반대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보다 포괄적인 반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나의 주장이 적어도 일부 사람들에게 급진적 사회주의 경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넘어 실현 가능한 목적지에 대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시키기를 희망하지만, 이 책이 이미 그 전망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만 관련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99)

 

에릭 올린 라이트는 그의 반자본주의는 시장을 인정하는 사회주의라고 하면서 사실상 사회주의와는 완전히 선을 그었습니다. 당신들이 회의하고 있는 사회주의는 시장을 부정하고 계획을 중심에 둔 사회주의이고, 우리는 시장을 부정하지 않는 시장사회주의자이니 안심하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릭 올린 라이트는 반자본주의자가 되자고 하지만 사실은 수정자본주의자가 되자고 한 것입니다.

 

5-3-2. 아래-아나키즘의 사회 중심적 전망

에릭 올린 라이트는 현재 세계의 사회 운동에 아나키즘적 경향이 있는 것을, 21세기의 첫 십 년에 반자본주의의 가장 동적인 형태가 사회 운동 속에 닻을 내렸는데, 강력한 아나키스트 경향으로 드러난다. 이는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100)라고 환영하고 있으나, 사실 새로운 것을 보태는 것은 없습니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구호는 2004년 세계 사회 포럼의 구호였습니다.

침식이나 아나키즘의 사회 중심적 전망이나 내용에서는 새로운 것은 없고, 리얼 유토피아의 브랜딩 작업으로 들어온 개념 같습니다.

바스카 순카라는 2019년 ≪사회주의자 선언≫101)을 내었는데, 이 책의 9장인 어떻게 이길 것인가(How to win)가 가장 중요한 장 같습니다. 이 장에서 바스카 순카라는 좌파 정치의 길고 복잡하고 다양한 영감을 주면서도 우울한 역사에 토대를 둔 로드맵을 제공합니다. 주의해서 읽고 배울 부분들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바스카 순카라의 ≪사회주의자 선언≫은 당장의 미국 대통령 선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쓴 것이기에 사실상 지금 시점에서는 예언서와 다를 바 없어 보이고 또 다른 브랜딩 작업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6.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그린 뉴딜과 한국에서의 그린 뉴딜

 

6-1.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그린 뉴딜과 한국에서의 수용은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그린 뉴딜은 사회주의자 샌더스가 처음 제시하는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세계는 평평하다≫란 끔찍한 신자유주의 찬양 서적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08년에 낸 책 ≪코드 그린―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처음 제시된 그린 뉴딜에 새로운 포장을 입힌 것입니다.102) 사회주의자가 아닌 제러미 리프킨도 새로운 지식 상품으로 ≪글로벌 그린 뉴딜―2028년 화석 연료 문명의 종말, 그리고 지구 생명체를 구하기 위한 대담한 경제 계획≫을 내놓았습니다.103) 자본주의 최전선에 있는 애플과 구글은 신재생 에너지만 사용합니다.104) 그린피스가 기후 변화를 멈출 대통령 후보들의 순위를 매기고 관련 설명을 링크한 사이트를 보면, 민주당의 모든 후보가 그린 뉴딜을 정책으로 내고 있습니다.

샌더스 측에서는 그린 뉴딜을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전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105) 이것은 선거 공약에서 2000만 개의 일자리 창출 및 대규모 R&D 투자의 형태로 제시됐는데, 여전히 성장주의에 기대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보통 사회주의와 연관 짓는 은행과 철도, 다른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버니 샌더스의 그린 뉴딜 정책이 그중 가장 진보적으로 보이기는 하나,106) 억만장자들이 지지한다는 민주당의 후보였던 부티지지도 그린 뉴딜에 관한 공약들을 내놓고 있고, 악명 높은 전 뉴욕시장이자 미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인 마이클 블룸버그조차도 그린 뉴딜을 정책으로 내놓았습니다.107) 샌더스의 그린 뉴딜을 사회 변혁으로 오해해서 이를 사회 변혁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린 뉴딜은 경제 성장을 위해 미국 민주당이 내놓은 공약이지, 샌더스만의 공약도 아닙니다. 물론 샌더스로서는, 진보적인 학자인 나오미 클라인이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비공식 기관지에서 자코빈 시리즈로 낸 그린 뉴딜에 관한 책에서 추천하는 서문을 쓰고,108) 그가 내놓은 정책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준 것109)에서 부티지지와의 차별성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하면, 그린 뉴딜에서 중요한 것은 뉴딜이지, 그린이 아닙니다. 그린 뉴딜은 사회주의자 샌더스만의 사회 변혁 정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해 제시되는 민주당의 필수 정책이고, 공화당도 검토 중인 정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6-2. 한국에서 지금 누가 그린 뉴딜을 수용하는가: 정의당과 민주당

스탠퍼드ㆍUC 버클리 대학 공동연구팀이 발표한 한국에서 그린뉴딜 에너지 정책이 전력공급 안정화와 비용, 일자리, 건강, 기후에 미칠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2050년까지 에너지 구조를 100% 재생 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일자리 144만 개 이상이 순증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110) 일간지에서도 정의당의 행보를 보도합니다. 그린 뉴딜은 환경보다 경제 비중이 높은 정책이다. 총선 공약으로 그린 뉴딜을 들고나온 정의당이 그린 뉴딜 경제전략으로 네이밍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의당은 재생에너지 전환과 탈탄소 인프라 구축, 200만 호 그린 리모델링, 전기자동차 시장 활성화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라 보도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 탱크인 민주연구원도 2019년 3월 이미 관련 보고서를 내었고, 민주당은 신중하게 공약을 준비 중입니다.111)

정의당이 샌더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그린 뉴딜 정책을 내놓았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런 주장을 하게 되면, 우리가 샌더스로부터 그린 뉴딜을 도입해서 변혁 정책으로 발표하려고 하는데, 왜 사회주의자도 아닌 정의당이 이런 발표를 하느냐고 불평하는 모양새로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의당은 그래도 원내 정당인데,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한 그린 뉴딜 정도의 트렌드 정도야 샌더스의 영향이 없더라도 따라가고 관련 정책들을 만들 능력이 있습니다. 이미 2019년 11월 8일에 그린뉴딜위원회 1차 토론회: 그린뉴딜 다른 성장을 위한 미래와의 동맹을 전문가들과 함께 열었으며,112) 관련 자료들과 정책안들을 내놓았습니다.

정의당 지지자 안병진 교수는 유진 뎁스에서 샌더스에서 이르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의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 준 후, 샌더스와 코르테스를 심상정과 장혜영으로 비교했습니다.113) 가능한 비교입니다. 자유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자유주의자 심상정이 자유주의자 버니 샌더스처럼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할 이유도, 또 정의당의 젊은 자유주의 정치 신인이 코르테스가 되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들은 다 같은 자유주의자이니까요.

 

 

7.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내세울 경우의 예상되는 폐해

 

7-1. 반북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내세워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해서는 안 된다

버니 샌더스는 이북의 핵과 미사일 시험을 막기 위한 군사적 선제공격을 검토할 것이냐는 ≪뉴욕 타임스≫ 설문에도 그렇다고 답했습니다.114) 한(조선)반도에서 미국이 필요하다면 전쟁을 하겠다는 미국의 자유주의자인 버니 샌더스가 브랜딩 작업으로 스스로를 사회주의라고 한 것을 믿고, 사회주의 대중화의 일환으로 버니 샌더스처럼 우리도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은 희극입니다.

 

버니 샌더스는 근본적으로 반공주의자입니다. 꾸바는 샌더스에게 2016년 선거에서도 이번 2020년 선거에서도 그가 반공이냐 아니냐를 묻는 바로미터입니다. 샌더스는 과거 꾸바의 의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 때문에 2016년 선거에서도 2020년 선거에서도 계속 반공이냐 아니냐 하는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입장은 2016년이나 2020년이나 같습니다. 자신이 꾸바의 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한 적이 있지만, 자신은 꾸바가 독재 전제정이고, 꾸바의 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버니 샌더스처럼 우리도 사회주의 하자고 했는데, 혹시라도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싸드를 몇 개 더 배치하겠다고 나오면 뭐라고 할 것입니까?

샌더스가 미국에 한국의 의료보험 수준이라도 도입하고 싶어서 저렇게 반공을 하면서 자신을 방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국에서 반공ㆍ반북주의자 샌더스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추켜세우면서 이제 우리도 샌더스처럼 사회주의 하자고 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버니 샌더스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비판은 2015년에 이미 노동자세계당(WWP)에서 있었습니다. 그중 중요한 이유는 그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지지하는 것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영토로 이스라엘의 확장을 충실하게 변호한 행적이 있다.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샌더스의 지지는 사회주의의 부정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115)

 

7-2. 미국의 처참한 수준과 버니 샌더스가 잡은 현실적인 목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 2011-201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인간 똥 발견 건수 증가 추이

ⓒOpentheBooks.com

 

미국은 집값 폭동으로 쫓겨난 노숙자들이 길에서 대놓고 용변을 보는 것이 사회적 재난으로 일상화된 나라입니다.116)

이런 처참한 나라인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는 의료보험, 그린 뉴딜, 교육, 작업장 민주주의, 주택 문제에 대해 많은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117)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의 정책들을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압축해서 말하면 한국의 의료보험 수준이라도 성취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수정자본주의공산주의라고 하는 국가인 미국에서, 수정자본주의 해 보겠다고 하면서 들고나온 게,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입니다. 저는 미국 인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려는 샌더스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가 샌더스에서 배우자고 한다면? 글쎄요.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이루겠다는 목표를 한국은 87년 6월 항쟁 이후 달성했는데,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에서 무엇을 배울 게 있을까요? 한국의 좌파 정당 운동을, 한국의 의료보험 수준에라도 우선 도달해야 한다는 샌더스 수준으로 격하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매카시 선풍 이후 북구 사회민주주의조차도 공산주의라고 비난하는 미국의 분위기에서,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샌더스의 공약을 현실적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샌더스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습니다.118) 그나마 샌더스가 사회가 개인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적 자유주의/자유주의자의 사회주의라도 제시하고 있는 유일한 후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샌더스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임기 내에 한국의 의료보험 정도의 복지를 펼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현실주의자입니다. 공화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이던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수정안을 가장 많이 통과시킨 정치인이 버니 샌더스입니다. 이것은 그가 당선이 되더라도 지금 내거는 공약을 다 정책으로 만들기보다는,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타협을 해 나갈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119) 어쩌면 우리는 오바마를 한 번 더 만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항상 민주당 2중대로 움직여 왔던 민주적 사회주의자는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로 나설 때 오바마를 지지했습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저는 미국의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배설물이 쌓여 가는 도시에서 제대로 잘 곳도 없이, 병들어 죽어 가는 미국 시민들로서는 꼭 필요한 운동입니다. 미국이 한국 정도의 의료보험 수준에라도 어서 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버니 샌더스처럼 우리도 사회주의 하자고 했는데, 혹시라도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그가 자유주의자로서 오바마처럼 미국 대통령이 원래 하던 대로 해 나가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7-3. 정의당 지지자들과 이재명 지지자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한국에도 에릭 올린 라이트와 같은 노선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석적 맑스주의자120) 에릭 올린 라이트 지도하에서 학위를 받고 에릭 올린 라이트의 계급론에 기반하여 노동 운동에 대한 학술 연구121)로 ‘노동과 자본, 상생의 길’122)을 찾고 있는 조돈문 교수가 그중 한 명입니다. 조 교수는 정의당과 연동되는 노회찬 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합니다.123)

정의당 내에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거는 의견 그룹들이 있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124), 청년당원 모임 모멘텀125)이 있고, 이들은 얼마 전 비례대표 후보로 양경규 정의당 사회연대임금 특별위원장126), 임푸른 후보를 지지 후보로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케인즈주의적 정책을 내세우고 자신들의 신념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비난받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다수 청년을 위한 진보정치선언”127)을 한,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와 거의 일치하는 의견 그룹인 ‘진보너머’128)도 있습니다. 이러한 의견 그룹들의 활동은, ‘심상정의 정의당’을 뛰어넘는 ‘사민주의 정의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도 강령에 채택하지 않은 정당이기에, 보수 야당과 사실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저는 정의당 내에서 수정자본주의/사회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분들이 있으면 반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인 한국129)에서 올로프 팔메(Olof Palme)130) 같은 사회민주주의자가 한국에도 등장한다면 좌파 정치가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팔메는 재임 기간에 공공의료 정책을 강화하고, 장애인, 저임금노동자, 한부모가정, 노인들을 위한 복지를 강화하여, 스웨덴 복지를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수준으로 올렸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전을 일으킨 미국을 비판했고, 제국주의 핵 확산 방지에 노력했으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했고, 꾸바 혁명을 지지했습니다. 팔메 같은 사회민주주의자가 나온다면 반길 일입니다.

흙수저 출신 비주류 사이다 정치인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들도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합니다. 이재명 후원회 공동회장인 목수정 작가가 ≪99%를 위한 미래≫의 추천사를 썼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친이재명파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닌데, 누군가가 쓴 문구 하나 물고 늘어지면서 누군가를 개량으로 비난하면서 자신들만이 사회주의인 양 주장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명확하게 서로가 정체성을 가진다면 같이할 수 있는 일들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적극적 자유주의가 너무나 없습니다. 그러니 적극적 자유주의로 정체성을 잡으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이나 비정규 투쟁이라도 같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적극적 자유주의자로 정체성을 잡고서, 정의당이나 민주당(친이재명파)에 집단 입당하여, 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같은 좌파로서 좌파 정당 운동을 하자면서, 버니 샌더스의 자유주의를 따라서 사회주의를 하겠다거나, 혹은 버니 샌더스의 슬로건인 사회주의 ABC를 내세우는 것은 운동을 하향 평준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미국 사회당은 유진 뎁스 시기에는 우드로 윌슨이 신자유를 들고나오자 몰락하기 시작했고, 노먼 토머스 시기에는 루즈벨트가 와그너법 등 뉴딜 정책을 들고나오자 몰락했습니다. 우리가 미국 사회당―유진 뎁스, 노먼 토머스의 사회당―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계급적 입장을 확고히 하지 않는 노동자 정당은 우파가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바로 몰락한다는 것입니다.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로 사회주의를 대중화하겠다면, 정의당 지지자들과 이재명 지지자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을 것입니다란 말이 심한 말로 들릴 수도 있는 것 압니다. 그러나 좌파가 정의당과 차별성을 가질 수 없다면, 좌파의 좌파 정당으로의 결집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한 말이라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입장이 뚜렷하지 않은 좌파 정당은 우파 정당이 좌파 색채를 조금이라도 띠면 정체성을 잃어버리기에 바로 몰락할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한 말입니다.

 

7-4. 민주적 사회주의로는 보수주의 vs 자유주의의 구도를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의 구도로 바꿀 수 없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좌파의 사회주의 대중화 방법이 아닙니다. 사회주의 ABC, 버니 샌더스를 내세워서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들의 운동 방식을 한국에 수입하려는 분들이, 정의당과 민주당 등 기존 정당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새로운 경향이 아닙니다. 다만 지독한 반공 국가인 미국에서 수정자본주의를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는데, 최대한 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나름 새로운 포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버니 샌더스를 프론트맨으로 내세우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는 세상을 전복하겠다는 (미국인들 기준에서의) 과격한 사회주의자들 아닙니다. ≪자코빈≫은 이러한 자신들의 사상을 대중화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ABC 쎄미나를 조직하고,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서 대통령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자본주의를 침식시키고, 길들여서 오래오래 쓰겠다는 수정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식으로 한번 표현해 보면, 수정자본주의자인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반자본주의로 마케팅 컨셉을 잡아서, 미국 대통령 후보까지 낼 수 있을 정도로, 지식 상품 패키지 개발에 성공한 것입니다.

 

 

8. 결론을 대신하여

 

이 글은 각자 다른 사회주의 개념으로 인해서 사회주의 대중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부터 말하자라는 생각에서 쓴 글입니다. 글 서두에서 제시했던 [사상, 정치 체제, 정치 지향 분류표 1]을 지금까지 진행해 온 논의에 맞추어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할까 합니다.

 

 

사회사상

소극적 자유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적극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원자적 개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정치경제 체제

자유방임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독일 사민주의,

노르딕 사민주의,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

영국 노동당 제레미 코빈의 사회주의)

사회주의

언론 용어

보수주의

(미래통합당)

자유주의

(민주당)

진보정당

(정의당)

 

우파 언론

(사회 일반의

오해)

우파

좌파

좌파 언론

(사회주의자의

입장)

우파

좌파

김성구 교수

신자유주의

케인즈주의

사회주의

채만수 소장

케인즈주의 우파

케인즈주의 좌파

사회주의

노동당의

정당 분류

보수정당

진보정당

(정의당)

좌파정당

(노동당)

향후 전망

보수주의

(미래통합당,

민주당)

자유주의

(정의당 우파)

진보정당의 출현 + 좌파정당의 발전

[사상, 정치 체제, 정치 지향 분류표 2]

 

이 표에서 추가로 설명을 드릴 부분은 노동당의 정당 분류라는 항목입니다. 이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노동당 대표의 간담회를 보도한 기사에서, 다음 부분을 읽고 넣은 항목입니다.

 

현린 대표는 대규모 탈당 사태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정당을 지켜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는 복지를 강화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완전히 다른 체제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 차윤석 사무총장은 사민주의 진보정당과 사회주의 좌파정당은 서로 노선이 다르므로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민주노총이 이 점을 유의할 것을 요청했다.131)

 

적극적 자유주의자와 수정자본주의자가 사회주의를 남발해서 혼돈이 온 것만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혼돈은 사회사상으로서의 적극적 자유주의와 정치경제 체제로서의 수정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를 모르는 데서 왔습니다. 노동당은 그 혼돈을 명쾌하게 정리하면서 정확한 이름을 쓰자고 제안한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보수주의자 좌파 토론회에 오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단 하나 이윤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체제가 사회주의든지 자본주의든지, 체제의 성공 여부는 이윤율이 하락되느냐 아니냐로 봅니다. 자본의 이윤율 하락을 걱정하기에 임금 인상 투쟁을 반대합니다. 그리고 결국 정규직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연대 임금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이윤율을 걱정하는 이들을 보니 떠오르는 말이 있었습니다. 자본과 결탁하는 이유를 대는 사람들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달라도 조화를 이루는 관계,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하더군요.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G. D. H 콜의 ≪노동자를 협력자로 인정하라≫를 옮기고 해제를 썼습니다. 이 해제는 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론을 중심으로 산업민주주의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습니다. 이 해제에서 장석준 기획위원은 유럽의 연대 임금제가 자본 권력을 강화시켜 주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고, 연대 임금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돌프 마이드너의 임노동자 기금 구상이 나왔고, 최근 영국 노동당의 포용적 소유 기금(Inclusive Ownership Fund)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장 기획위원은 연대 임금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한편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안정적으로 장기 집권하고 있던 스웨덴에서는 노동조합이 복지 국가의 성공(실패가 아닌)에 따른 새로운 모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가령 고수익 기업, 저수익 기업 가릴 것 없이 모든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을 (산업별 협상보다 상급 수준인) 경총-노총 협상에서 일률적으로 결정하는 연대 임금제가 그러한 모순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연대 임금제 덕분에 스웨덴 제조업 노동자들은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었지만, 또한 바로 이 제도 때문에 고수익 기업에서 자본 권력이 급속히 강화되는 현실을 목격하기도 했다. 고수익 기업 노동자들이 연대 임금제에 따라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만큼 해당 기업 주주들이 초과이윤을 챙겨간 것이다. 그 결과, 스웨덴은 노동 운동의 힘도 강력하지만 거대 자본가 가문의 권력 역시 막강한 나라가 됐다.132) (강조는 인용자.)

 

2차 대전 후 자본주의 황금기에 가능했던 유럽의 연대 임금 정책을 공황 시기의 한국에서 하자는 건, 자본가의 이윤을 최대한 보장해 주겠다는 것 외에 무슨 다른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유럽 사회민주주의는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금이 가기 시작하다가, 최근에는 급격히 붕괴되고 있으며 극우들이 약진하고 있습니다.133) 이제 유럽에서도 불가능해져 가는 사민주의적 정책이 한국에서 가능하다고 믿는 건,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기획재정부에서 연대 임금 도입을 고민한 것은 2017년부터입니다. 정부가 가장 좋은 대화 상대인 분들이 왜 노동 운동에 와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노동 운동에 몸담고 있어야 정부가 상대를 해 줄 것이니, 노동 운동에서 연대 임금을 주장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이윤율 하락을 걱정하면서 연대 임금을 주장하는 입장, 우리는 이런 입장을 자본의 입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본의 입장에 선 자유주의자가 한국 맑스주의자들의 조직 노선 구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은 전후 유럽의 호황기를 배경으로, 중앙-산별 교섭이 제도화된 상황에서 가능했던 연대 임금 정책을, 유례없는 불황기를 맞은 현재 한국의 민주노총에 적용하려고 했던 것은 정세적으로 오판이었을 수 있지만 연대 임금(연대 고용)은 이념이 사라진, 몰정세적인 노동자 운동을 비판하기 위한 매개도 될 수 있기에 연대 임금이라는 투쟁 의제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건 우리는 무슨 말을 해도 절대 안 틀린다. 한국 맑스주의자들의 조직 노선 구축을 틀리지 않는 우리가 지도할 것이니, 틀린 너희들은 따라오라고 속마음을 먹고 있는 것을 다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노사과연

 노사과연

 

 


 

1)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조선 ‘우리식 사회주의’(주최: 소통과혁신연구소)’, 2019년 12월 15일; ‘2020년 총선, 좌파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주최: 노동당)’, 12월 20일; ‘쿠바 사회주의-베네수엘라 상황, 베트남 사회주의와 도이모이 정책(주최: 소통과혁신연구소)’, 2020년 1월 19일; ‘[박노자 교수 초청 좌담회] 세계 좌파 정당, 노동당의 역할과 가능성(주최: 노동당)’, 2월 10일; ‘한국 사회 미래 전망과 노동 운동의 과제(주최: 소통과혁신연구소)’, 2월 23일.

이 중 ‘박노자 교수 초청 좌담회’는 노동당 페이스북으로, ‘한국 사회 미래 전망과 노동 운동의 과제’는 소통과혁신연구소 페이스북으로 보았습니다. 좌담회나 토론회를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로 생중계한 후 이후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것은 근래 생긴 아주 좋은 문화 같습니다.

 

2) “美민주후보 전원 “미군 철수 반대” 6명은 北선제 공격 찬성”, ≪중앙일보≫, 2020. 2. 11. <https://news.joins.com/article/23703206>

 

3) “조국 “자유주의자 동시에 사회주의자…사회주의 정책 필요”, ≪연합뉴스≫, 2019. 9. 6. <https://www.yna.co.kr/view/AKR20190906173000001>

 

4)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 정홍섭 역, 좁쌀한알, 2018, p. 81.

 

5) 같은 곳.

 

6)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김영욱 역, 후마니타스, 2018, p. 30.

 

7) 이사야 벌린, “자유의 두 개념”,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헨리 하디 편, 박동천 역, 아카넷, 2014.

 

8) 온라인으로 공개된 “Positive and Negative Liberty”, ≪Stanford Encycolpedia of Philosophy≫, Thu. Feb. 27, 2003(First published)/Tue. Aug. 2, 2016(substantive revision)의 일부를 옮겨 봅니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liberty-positive-negative/>

 

9) 공리주의에 대한 저런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야 소극적 자유주의와 적극적 자유주의가 이해된다. 제러미 벤담ㆍ존 스튜어트 밀,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정홍섭 역, 좁쌀한알, 2018.

 

10) 이근식, ≪존 스튜어트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 기파랑, 2006.

 

11) 이근식,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 <17>자본주의 경제정책의 변천3: 사회적 자유주의”, ≪프레시안≫, 2011. 11. 6. <http://pressian.com/m/m_article/?no=4216#08gq>

 

12) 미야모토 타로, ≪복지국가 전략―스웨덴 모델의 정치경제학≫, 임성근 역, 논형, 2003, p. 65.

 

13) 이연호, “노르딕 사민주의의 이론적 이해”, ≪통일연구≫ 제15권 제1호, 2011, pp. 29-30.

 

14) 칼 맑스, “맑스가 뉴욕의 요제프 바이데마이어에게(1852년 3월 5일)”,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이하 ≪저작 선집≫) 제2권, 박종철 출판사, pp. 497-498.

 

15) 칼 맑스,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저작 선집≫ 제2권), p. 94.

 

16)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신성 가족≫(≪저작 선집≫ 제1권), p. 109.

 

17) 같은 책, p. 122.

 

18) 칼 맑스, ≪공산주의자당 선언≫(≪저작 선집≫ 제1권), p. 415.

 

19)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의 원칙들”, ≪저작 선집≫ 제1권, p. 329.

 

20) 푸리에, ≪어소시에시션, 열정, 기본소득≫, 좁쌀한알, 2020(근간).

 

21) 카를 마르크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제1권, 이병창 역, 먼빛으로, 2019, pp. 72-73.

 

22) 김명환, ≪영국 사회주의의 두 갈래 길≫, 한울, 2006.; ≪영국의 위기와 좌우파의 대안들―사회주의, 보수주의, 파시즘(1880-1930년대)≫, 혜안, 2008.;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길드 사회주의: 노사민 합의의 민주주의(1900-1920년대)≫, 혜안, 2009.; ≪영국 노동불안기 연구―영국사의 전환점(1911-1914)≫, 혜안, 2011.; ≪영국 자유주의 연구≫, 혜안, 2013.; ≪영국 무정부주의 연구≫, 혜안, 2018.; G. D. H. 콜,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 김철수 역, 책세상, 2012.; 최재희, ≪영국 노동당 창당기 사회주의 진영의 민주주의관≫, 고려대 박사 논문, 2001.

 

23) G. D. H. 콜, ≪노동자를 협업자로 인정하라≫, 장석준 역, 좁쌀한알, 2020(근간).

 

24) 장석준ㆍ우석영, “17.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세기판 이중권력 렐프 밀리밴드의 이중 민주주의”,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 책세상, 2019.

 

25) Ralph Miliband, “Lenin’s the State and Revolution”, Socialist Register, Vol. 11, 1970. 당시의 논쟁에 대해서는 푸코 연구자의 시각에서 개략한 것이 있습니다만 지식 상품 시장 종사자가 아니라면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Mark G. E. Kelly, “2. Lenin: The Invention of Party Governmentality 4) Alternative Explanations”, For Foucault: Against Normative Political Theor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18.

 

26) Alex Goodall, “Jeremy Corbyn, Tariq Ali and the Battle of Hornsey”, Medium, Sep. 28, 2015. <https://medium.com/@DozeyHoplite/jeremy-corbyn-and-the-battle-of-hornsey-16ed9600ca67>

 

27) Tariq Ali, Redemption, Picador, 1990.

 

28) Tariq Ali, “Why I’m Joining the Labour Party”, December 1981. <https://www.marxists.org/archive/harman/1981/12/ali.htm>

 

29) 조니 로턴, ≪섹스 피스톨즈 조니 로턴≫, 정호영 역, 노사과연, 2008, pp. 430-431.

 

30)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정치경제학 원론에서 신자유주의 비판까지≫(제6판), 노사과연, 2013, p. 649.

 

31) 엘리노아 맑스, “엘리노아 맑스의 “여성 문제””, 서의윤ㆍ정호영 해제ㆍ번역, ≪정세와 노동≫ 제159호(2020년 2월); 김명환, ≪영국 무정부주의 연구≫.

 

32) Richard Seymour, “3. Labour Isn’t Working: Whatever Happened to Social Democracy? ‘The advanced wing of Liberalism’”, Corbyn: The Strange Rebirth of Radical Politics, Verso, 2016.

 

33) Stephen Bush, “Far from being a left-wing radical, Jeremy Corbyn is slouching towards Milibandism”, New statesman, March 30, 2017. <https://www.newstatesman.com/politics/uk/2017/03/far-being-left-wing-radical-jeremy-corbyn-slouching-towards-milibandism>

 

34) George Eaton, “Labour’s manifesto is more Keynesian than Marxist”, New statesman, MAY 16, 2017. <https://www.newstatesman.com/politics/june2017/2017/05/labours-manifesto-more-keynesian-marxist>

 

35) Paul Krugman, “Bernie Sanders Isn’t a Socialist. But he plays one on TV. That’s a problem”, The New York Times, 2020. 2. 13. <https://www.nytimes.com/2020/02/13/opinion/bernie-sanders-socialism.html>

 

36) “[MTP Daily] Can You Be A Democratic Socialist And A Capitalist? ‘It’s Possible’”, MSNBC, Feb. 7,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esLJRHU-GvA&fbclid=IwAR0yqtHISUGtnMtkMcL_FB2YU1qjfRVkQTIwX813dsuU95wYdyDVZf7PPJw>

 

37) 김동근,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 과정과 정치사상적 특성”, ≪來山 琴種友 敎授 華甲紀念論文集≫, 1991, p. 21.

 

38) Werner Sombart, Why Is There No Socialism in the United States?, Translated by Patricia M. Hocking, forwarded by Michael Harrington, New York Press, 1976.

 

39) 안윤모, ≪미국 민중주의의 역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06. 이 책의 목차를 보면 포퓰리즘 운동의 전통을 대략 알 수 있습니다. 제1장 민중주의의 뿌리. 1. 제퍼슨과 민중주의 전통 2. 페인과 민중주의 사상 3. 잭슨의 민중주의 / 제2장 농업적 민중주의 1. 농민의 불만 2. 농민 반항 운동 / 제3장 민중당의 창당과 쇠퇴 1. 민중당의 창당 2. 오마하 정강 3. 민중당의 쇠퇴 / 제4장 민중주의 운동과 사회 세력 1. 흑인 문제  2. 노동자 문제 3. 유태인 문제

 

40) 하워드 진ㆍ앤서니 아노브 편, “제14장 세계 대전에 대한 저항. 유진 뎁스의 반전 연설(1918년), 캡톤 오하이오 연설, 법정 진술”,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미국사에 감춰진 저항과 투쟁, 자유와 해방의 언어들≫, 황혜성 역, 이후, 2011.

 

41) Eugene V. Debs, Eugene V. Debs and Jesus of Nazareth, Winnipeg Labor Church, 1917/1918, p. 4.

 

42) 마이클 해링턴,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 김경락 역, 메디치, 2014, p. 406.

 

43) 권기준, “20세기 초 미국 사회주의 정당의 배제과정. 1. 진보 혁신주의 시기: 1900년대-1910년대. 2) 쇠퇴 및 배제의 과정”, ≪미국 사회주의 정당의 구조적 배제요인≫, 경북대 정치학과 석사논문, 2005.

 

44) 장석준ㆍ우석영, “16. 20세기의 버니 샌더스 노먼 토머스의 좌파정당운동”, 앞의 책, p. 258.

 

45) James MacGregor Burns, “Chapter XII. Thunder on the Right, Roosevelt and the Radicals”, Roosevelt: The Lion and the Fox(1882-1940), Open Road Integrated Media, 2012.

 

46) [인용자 주] 오픈샵 제도.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그 회사의 노동조합에 대한 가입 여부를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제도.

 

47) W. Z. 포스터,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 제2권, 편집부 역, 동녘, 1987, pp. 154-156. 케인즈주의에 대한 비판은 John Eaton, Marx against keynes, Lawrence & wishart Ltd., 1951.; Irina Osadchaya, Keynesianism today, progress, 1983.; Paul M. Sweezy, Keynesia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capitalism, cornerstone publications, 2002.; Paul Mattick, Marx and Keynes: The Limits of the Mixed Economy, Boston: Extending Horizons Books/Porter Sargent Publisher, 1969.

 

48) 크리스티 앤더슨,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미국의 뉴딜 연합(1928-36년)≫, 이철희 역, 후마니타스, 2019, p. 207.

 

49) 권기준, 앞의 책, pp. 52-53.

 

50) 같은 책, p. 51.

 

51) 채만수, 앞의 책, p. 620.

 

52) 같은 책, p. 634.

 

53) 김성구, ≪경제 무식자, 불온한 경제학을 만나다≫, 나름북스, 2016, pp. 68-69.

 

54) Irving Howe(ed.), Twenty-five years of Dissent: an American tradition, New York: Methuen, 1979.

 

55) 어빙 하우 외, “서론. 미국 사회주의의 역사와 지향”, ≪미국의 사회주의≫, 김종심 역, 민음사, 1983.

 

56) 같은 책, pp. 9-10.; Milovan Djilas, The New Class―An Analysis of the Communist System, Thames and Hudson, 1957.

 

57) 어빙 하우 외, 앞의 책, p. 11.

 

58) 같은 책.

 

59) Seth Achkerman, “Why Bernie Talks About the New Deal”, Jacobin, 2019. 6. <https://www.jacobinmag.com/2019/06/new-deal-socialism-bernie-sanders-democratic-primary>

 

60) 이제 적나라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Seth Achkerman, ibid.

 

61) “Reading List for Democratic Socialists”. <https://d3n8a8pro7vhmx.cloudfront.net/dsausa/pages/1034/attachments/original/1415154412/ReadingListforDemSocialists.pdf?1415154412>

 

62) https://en.wikipedia.org/wiki/Michael_Harrington

 

63) Maurice Isserman, “Michael Harrington: Warrior on Poverty”, The New York Times, 2009. 6. 21. <https://www.nytimes.com/2009/06/21/books/review/Isserman-t.html>

 

64) Alan Steinberg, “Bernie Sanders is No Michael Harrington”, Insider NJ, 2020. 2. 26. <https://www.insidernj.com/berne-sanders-no-michael-harrington/>

 

65) “Register of the Albert Glotzer papers”. <http://oac.cdlib.org/findaid/ark:/13030/tf1t1n989d>

 

66) 희망제작소, “[미국 서부의 싱크탱크들] (1)후버 연구소(Hoover Institution)”, 2008. 9. 17. <https://www.makehope.org/미국-서부의-싱크탱크들1후버-연구소hoover-institution/>

 

67) Alan Steinberg, op. cit.

 

68) 마이클 해링턴, 앞의 책, p. 401.

 

69) 마이클 해링턴, “3장 가짜 사회주의 시대 / 8장 시장인가, 계획인가”, 같은 책.

 

70) Irving Howe, “New Styles in Leftism(1965)”, Nina Howe(Editor), Morris Dickstein(Foreword), A Voice Still Heard: Selected Essays of Irving Howe, Yale University Press, 2014, pp. 53, 69.

 

71) Leo Huberman & Paul M. Sweezy, Cuba, Monthly review press, 1960.; Leo Huberman & Paul M. Sweezy, Cuba: Anatomy of a revolution, Monthly review press, 1961(번역서: 레오 휴버만ㆍ폴 M. 스위지, ≪쿠바 혁명사≫, 편집부 역, 지양사, 1984.).; Leo Huberman & Paul M. Sweezy, Socialism in Cuba, Monthly Review press, 1969.

 

72) “Reading List for Democratic Socialists”에 든 러시아 혁명 도서 목록을 그대로 옮겨 옵니다. Alexander Rabinowitch, The Bolsheviks Come to Power; Carmen Sirianni, Workers’ Control and Socialist Democracy: The Soviet Experience; Samuel Farber, Before Stalinism; Leon Trotsky, History of the Russian Revolution; Tariq Ali(ed.), The Stalinist Legacy: Its Impact on 20th-Century World Politics. 1932년과 33년에 우끄라이나에서 농민 기근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서술 등을 한 파버의 책은 학술적으로 논란이 있음에도 읽히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반공이니까요.

 

73) Milovan Djilas, op. cit.

 

74) R. C. Hall, War in the Balkans: An Encyclopedic History from the Fall of the Ottoman Empire to the Breakup of Yugoslavia, 2014, p. 262.

 

75) 어빙 하우 외, 앞의 책, pp. 19-20.

 

76) 마이클 해링턴, “9장 비전을 가진 점진주의”, 앞의 책.

 

77) Eric Blanc, “Why Kautsky Was Right (and Why You Should Care)”, Jacobin, 2019. 4. <https://www.jacobinmag.com/2019/04/karl-kautsky-democratic-socialism-elections-rupture>

 

78) Karl Kautsky, Terrorism and Communism: A Contribution to the Natural History of Revolution, 1919. <https://www.marxists.org/archive/kautsky/1919/terrcomm/>

 

79) Lars T. Lih, “Karl Kautsky as Architect of the October Revolution”, 2019. 6. <https://jacobinmag.com/2019/06/karl-kautsky-vladimir-lenin-russian-revolution>

 

80) 카를 카우츠키, ≪프롤레타리아 독재≫, 강신준 역, 한길사, 2006, p. 59.

 

81)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허교진 역, 소나무, 1991, pp. 35-36.

 

82) 마이클 해링턴, “미국 사회주의자들의 과제”, 어빙 하우 외, 앞의 책, p. 62. 원문은 ≪디센트(Dissent)≫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Michael Harrington, “What Socialists Would Do in America―If They Could”, 1978. <https://www.dissentmagazine.org/article/what-socialists-would-do-in-america-if-they-could>

 

83) 신정완 지음,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사회평론, 2012. 책이 두꺼워서 다 읽기 부담이 되시는 분들, 읽기 전 내용을 파악하고 읽고 싶은 분들은 신정완 교수가 내용을 직접 요약한 글을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https://soriarchive.s3.amazonaws.com/1/1340277876.pdf>

 

84) 어빙 하우 외, 앞의 책, pp. 74-76.

 

85) 같은 책, p. 67.

 

86) Bhaskar Sunkara, “Project Jacobin”, New Left Review, Vol. 90, November-December 2014, p. 36.; Karl Kautsky, The Road to Power, 1909. <https://www.marxists.org/archive/kautsky/1909/power/>

 

87) “The Social Democratic Road to Socialism: An Interview with Bhaskar Sunkara”, EuropeNow, 2019. 7. 3. <https://www.europenowjournal.org/2019/06/10/the-social-democratic-road-to-socialism-an-interview-with-bhaskar-sunkara%ef%bb%bf/>

 

88) Bhaskar Sunkara, op. cit., p. 40.

 

89) 바스카 순카라ㆍ세라 레너드 편, ≪99%를 위한 미래≫, 황성원 역, 동녘, 2017.

 

90) 바스카 순카라ㆍ에릭 올린 라이트 외, ≪사회주의 ABC≫, 한형식 역, 나름북스, 2017.

 

91) https://y.dsausa.org/school-of-socialism/what-is-socialism-the-basics/

 

92) https://s3.jacobinmag.com/issues/jacobin-abcs.pdf

 

93) 세스 애커먼(Seth Ackerman), “11. 우리가 원하는 미래”, 바스카 순카라ㆍ세라 레너드 편, 앞의 책, p. 248.

 

94) 대니 캐치, “14. 사회주의 사회는 단조롭고 지루하지 않을까?”, 바스카 순카라ㆍ에릭 올린 라이트 외, 앞의 책, p. 139.

 

95) 같은 책, p. 144.

 

96) 조셉 M . 슈워츠, “6. 사회주의의 결말은 항상 독재 아닌가?”, 같은 책, p. 45.; 대니 캐치, 같은 책, p. 139.

 

97) Erik Olin Wright, “How to Be an Anticapitalist Today”, Jacobin, 2015. 12. <https://www.jacobinmag.com/2015/12/erik-olin-wright-real-utopias-anticapitalism-democracy/>

 

98) 에릭 올린 라이트, “서울 성미산 마을은 ‘리얼 유토피아’의 한 증거”, ≪한겨레≫, 2014. 7. 2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7855.html#csidx9d7aed363ba32b883f3b4303e27789a>

 

99) Erik Olin Wright, How to Be an Anticapitalist in the Twenty-First Century, Afterword by Michael Burawoy, Verso Books, 2019.

 

100) Erik Olin Wright, “Strategic configurations”, ibid.

 

101) Bhaskar Sunkara, The Socialist Manifesto―The Case for Radical Politics in an Era of Extreme Inequality, Hachette Book Group, Inc., 2019.

 

102) 윤태환, “‘그린뉴딜’에 대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 ≪브런치≫, 2019. 2. 9.

 

103) Jeremy Rifkin, The Green New Deal: Why the Fossil Fuel Civilization Will Collapse by 2028, and the Bold Economic Plan to Save Life on Earth, St. Martin’s Press, 2019(번역서: 제러미 리프킨, ≪글로벌 그린 뉴딜≫, 안진환 역, 민음사, 2019.).

 

104) “미래 유망기술 ⑤ 에너지 전환과 신산업. 신재생에너지만 쓰는 애플과 구글”, ≪사이언스타임즈≫, 2019. 1. 8. <https://www.sciencetimes.co.kr/news/신재생에너지만-쓰는-애플과-구글>

 

105) “AOC chief of staff confirms: Green New Deal was not really about the climate”, Washington Post, 2019. 9. 11. <https://www.washingtonexaminer.com/news/aoc-chief-of-staff-confirms-green-new-deal-was-not-really-about-the-climate>

 

106) “Bernie Sanders’s aggressive climate change strategy: 5 things to know”, Vox, 2020. 1. 16. <https://www.vox.com/2020/2/19/21142923/bernie-sanders-climate-change-policy-plan-2020>

 

107) 그린피스에서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그린 뉴딜 정책을 소개하고 순위를 매긴 사이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greenpeace.org/usa/climate2020/

 

108) Kate AronoffㆍAlyssa BattistoniㆍDaniel Aldana CohenㆍThea Riofrancos, A Planet to Win: Why We Need a Green New Deal, Forword by Naomi Klein, Verso Books, 2019.

 

109) “Naomi Klein: Bernie Sanders’ Green New Deal plan is our best hope”, Salon, Feb. 21, 2020. <https://www.salon.com/2020/02/21/naomi-klein-bernie-sanders-green-new-deal-plan-is-our-best-hope/>

 

110) “한국, 100% 재생에너지로 바꾸면 30년간 일자리 144만개 늘어”, ≪연합뉴스≫, 2020. 2. 19. <https://www.yna.co.kr/view/AKR20200218159400004?section>

 

111) “‘그린 뉴딜’ 열풍…왜 한국만 잠잠할까”, ≪경향비즈≫, 2020. 2. 23.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002230911001&code=920100&www=>

 

112) http://www.justice21.org/newhome/board/board_view.html?num=122270

 

113) 안병진, “[정동칼럼] 샌더스와 코르테스, 심상정과 장혜영”, ≪경향신문≫, 2020. 2. 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162009005&code=990308&fbclid=IwAR0YmaVUH2DcZoyydEXon7fggMjoyotkKZSmaH8HTgCqXN-60HUQdVIWsIs>

 

114) “샌더스 “美ㆍ동맹방어 군사력 사용”…트럼프 “샌더스 후보될 것””, ≪중앙일보≫, 2020. 2. 24. <https://news.joins.com/article/23713603>

 

115) 대니 하이팡(Danny Haiphong), “왜 버니 샌더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닌가: 혁명적 사회주의를 옹호하며(WWP, 노동자세계당)”, ≪노동자정치신문≫, 2016. 2. 28. <http://mlkorea.org/v3/?p=1218>

 

116) 김광기, “[김광기의 ‘인사이드 아메리카’] 제국이 그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 ④ 미국의 도시들이 사라지고 있다Ⅰ”, ≪프레시안≫, 2019. 11. 7.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64487>; “제국이 그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 ⑤ ‘제국’ 미국의 집값 폭등과 노숙자 대란”, ≪프레시안≫, 2019. 12. 6.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68713>

 

117) https://berniesanders.com/issues/ (2020년 2월 14일 접속.)

 

118) Robin Urevich, “BERNIE SANDERS AND THE ART OF THE NEW DEAL”, Capital & Main, February 2, 2020. <https://capitalandmain.com/bernie-sanders-and-the-art-of-the-new-deal-0202>

 

119) “Bernie Sanders was the roll call amendment king from 1995 to 2007”, Politifac, March 24, 2016. <https://www.politifact.com/factchecks/2016/mar/24/bernie-s/bernie-sanders-was-roll-call-amendment-king-1995-2/>

 

120) Erik Olin Wright, “Chapter 8. what is analytical Marxism”, Interrogating Inequality: Essays on Class Analysis, Verso, 1994.

 

121) 조돈문, ≪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사회학≫, 후마니타스, 2011.

 

122) 조돈문, ≪함께 잘사는 나라 스웨덴―노동과 자본, 상생의 길을 찾다≫, 사회평론아카데미, 2019.

 

123) “[인물 인터뷰]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과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시사주간≫, 2019. 12. 14. <https://www.sisaweekl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01>

 

124) 정의당 민주적 사회주의자. <https://www.facebook.com/leftwing2019/>

 

125) 정의당 청년당원모임 모멘텀 <https://www.facebook.com/justicemomentum/>

 

126) 정의당 양경규 <https://www.facebook.com/yangandhope>

 

127) https://www.notion.so/6d2a0f2243304bc0878826d646d1cfd1

 

128) https://www.facebook.com/jinboneomeo2016/

 

129) “1. 한국사회운동에서 고려해야 할 2가지 지점 1) 한반도적 시각과 반국적 시각 2) 세계적 관점과 일국적 관점”(김장호 민플러스 편집국장,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pp. 1-4)은, 큰 맥락에서 한국 사회의 성격에 대해서 잘 짚고 있습니다.

 

130) ≪인터:뷰≫는 좌파적 입장에서 국제 정세를 분석해서 들려주는 팟캐스트입니다. 4회에 걸친 에피소드로 <안 선생의 노르딕 되감기>를 방송했습니다. 이 중 2회로 팔메의 생애를 다루었습니다.

1회. 노르딕 되감기 북유럽 5국 살펴보기 <https://www.facebook.com/InternationalXReview/posts/8505114218251>

2회 간추려 듣는 울로프 팔메 연대기 <https://www.facebook.com/InternationalXReview/posts/850511995158470>

3회 화이트 노르딕의 위선 <https://www.facebook.com/InternationalXReview/posts/867088093500860>

4회 복지 국가의 어둠 <https://www.facebook.com/InternationalXReview/posts/868861586656844>

 

131)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김명환 위원장, 노동당 현린 대표와 간담회”, ≪노동과 세계≫, 2020. 1. 13.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51125>

 

132) 장석준, “해제. 4. 콜의 산업민주주의론에 대한 평가와 재음미”, G. D. H. 콜, ≪노동자를 협업자로 인정하라≫(원서: G. D. H. Cole, The Case for Industrial Partnership, London: Macmillan, 1957.).

 

133) 앞서 소개한 4회에 걸친 에피소드 <안 선생의 노르딕 되감기> 이외에도 ≪인터:뷰≫에서 계속 방송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팟빵 앱에서 아래 에피소드 이름으로 검색 가능합니다.

인터:뷰 국제소식통 2018. 11. 유럽 1부 혼돈의 유럽정치와 지형 변화 <https://www.facebook.com/InternationalXReview/posts/966082993601369>

인터:뷰 국제소식통 2018. 11. 유럽 2부 화난 작은 덴마크와 카오스 영국 <https://www.facebook.com/InternationalXReview/posts/966754953534173>

인터:뷰 국제소식통 2018. 12. 덴마크, 쇼비니즘 복지국가 <https://www.facebook.com/InternationalXReview/posts/990272624515739>

인터:뷰 국제소식통 2019. 4. “핀란드 노동시장의 깡패” <https://www.facebook.com/InternationalXReview/posts/1066170103592657>

인터:뷰 국제소식통 2019. 12. 미국의 대독 제재와 핀란드 총파업 <https://www.facebook.com/InternationalXReview/posts/1250005501875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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