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영화평] 영화 ≪기생충≫; 비는 오고야 만다

 

박승원 | 회원

 

 

1. 영화가 끝나고

 

각개의 운동하는 화면들이 꼼꼼하고 조화롭게 배치된 이 대중오락 영화는 2시간 남짓 흘러 이제 마지막 장면이다. 좌우로 긴 화면은 천천히 아래로 움직이고 반지하 집의 창문 밖 새벽의 골목에 눈이 내린다. 창문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화면에 기우가 나타난다. 여전히 반 층 아래 그 자리에 앉아서, 자다 깨어난 부스스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전보를 다시 읽어 보던 기우는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쳐다본다.

 

그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럼 이만.

 

화면 바깥에서 마지막 대사가 들려오는 그때 기우의 눈시울에 고이는 눈물은 새벽의 끝나 가는 어둠 속에서 아득하게 반짝이고는 흘러내리지도 못한 채 화면은 암전된다.

 

극장에 밝은 조명이 켜지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지불한 입장료에 응당한 영화적 쾌감을 제공받은 관객들은 깊이 내면화된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불편의 감각을 가시화해 내고 그 형식으로 새로운 장르적 가능성까지 능숙하게 결합해 낸 이 완성도 높은 문화 상품의 가성비에 감탄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상영관 출구 앞의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빈 팝콘 상자와 콜라 컵들. 관객들은 멀티플렉스의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청년 알바생들을 지나쳐 영화관이 입점한 커다란 빌딩 밖을 나선다. 영화 체험이 끝나고 기억만을 간직한 채 영화 바깥 현실의 공기를 들이쉰다.

 

 

2. 영화 ≪기생충≫

 

 

영화 ≪기생충≫은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그리고 이듬해 외국어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며 65년 만에 두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두 번째 영화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시상자인 제인 폰다가 “패러사이트”라 외치자 천재 작곡가 정재일이 만든 영화 음악 ‘짜파구리’가 울려 퍼졌고 무대 위로 ≪기생충≫ 팀이 올랐을 때 줄곧 사회적 시선을 담은 장르 영화를 만들어 온 86세대의 섬세한 영화 작가는 환호했고, 문화를 만들어 파는 어느 재벌 기업의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로 감동을 전했다. 계급 갈등을 주요하게 다룬 이 영화에 투자한 자본가의 감격한 얼굴과 맨 앞줄에 앉아 박수 치며 호응하는 톰 행크스가 중계 화면에서 교차하고 시상식을 독점 중계했던 TV조선 프로그램 사회자의 저도 모를 환호성이 들려올 때 무대 위에는 한국인들이 가득 서 있었다. 그 생경한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와중에 한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남동생에게까지 감사의 말을 또박또박 전하고 있던 부회장 등 뒤에 서 있던 사람. 그곳에 기우가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리는, 나는, 그리고 ≪기생충≫은 영화가 처음 시작했던 그곳 반지하 집으로 기우를 되돌려 놓고는 지워질 리 없는 실패의 기억과 희망할 수 없는 미래의 짐 모두를 그에게 지우고 홀로 남겨 둔 채 영화 바깥으로 나왔다. ≪기생충≫은 이제 역사가 되었고 한국 영화의 위상은 달라졌다. 주 52시간의 노동 시간을 엄격히 지킨 영화가 ≪기생충≫뿐인 것도 아니지만 영화계 노동자 처우를 그나마 보통의 임금 노동자 수준으로 바꾸어 놓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남겨진 기우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 기택은 박 대표를 죽이고 스스로를 지하에 가두었고 여동생 기정은 더 가난한 사람에게 칼에 찔려 죽었으며 더 가난한 그 사람을 죽이고 전과자가 된 엄마 충숙은 딸을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가사 노동과 임금 노동을 병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무거운 현실의 무게를 영화 안으로 떠밀어 넣고 영화를 잊고 ‘영화는 영화일 뿐’일 테니 세상의 수많은 ‘기우’들과 ‘충숙’들은 어찌저찌 살아 내겠지 하며 천진한 얼굴을 하고 낙관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잔인한 현실을 카메라가 묵묵히 응시하면 그것을 영화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투쟁적인 능력이라 말하며 무거운 감정을 툭툭 털어 내고 영화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시니시즘은 쉽사리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 투쟁과도 같은 응시를 통해 절망 속의 일말의 희망이라도 건져 내겠다는 자세를 가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미처 보지 못했던 미약하게나마 낙관을 중얼거리는 장면이 영화 안에 있었다면 그것을 찾아보자. 영화를 다시 보기로 했다.

 

 

3. ‘묻지마흉기난동사건’

 

휴일 대낮에 서울의 고급 주택가 한복판에서 발생한 ‘묻지마흉기난동사건’. 영화 속 뉴스에 따르면 사건 당사자인 노숙인이 현장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범행의 동기조차 알 수 없고 박 대표를 살해한 용의자 김 씨는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도무지 만나기 힘들어 보이는 노숙인(근세)과 평소 온화한 성품으로 알려졌던 김 씨(기택), 그리고 IT기업 CEO 박 사장은 어떻게 그날 고급 주택가 한복판에 일제히 모였다가 모두 죽거나 사라질 수 있었나.

 

반지하 집에 사는 실업자 가족은 언덕 위 부자 가족에게 위장으로 취업하고 그 바람에 직장을 잃은 가정부는 저택 지하실 아래 비밀 공간에 남편을 숨겨 두고 있었다. 부자 가족이 캠핑을 떠난 언덕 위 저택에서 조우한 가난한 가족과 더 가난한 가족. 그들이 이판사판 육탄전을 벌일 때 부자 가족이 불시에 들이닥치며 한 지붕 아래에 세 가족이 뒤섞인다. 부자 가족의 저택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난한 가족 간의 몸싸움은 지독하고 불길하다.

 

영화는 종의 세계에 수직으로 구축된 각각의 층위에 세 가족을 위치시킨 뒤 그 세계를 거듭 압축시켜 나감으로써 가난한 존재가 더 가난한 존재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 부산물들이 가장 밑바닥에서 차올라 한 점의 시공간 위로 쏟아져 결국 폭발하게 한다. 충숙의 뒷발차기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어 가는 문광, 그녀의 남편 근세는 기우의 머리에 산수경석을 마구 찧은 뒤 칼을 빼 들어 기정을 죽인다. 기정의 엄마 충숙은 근세를 바비큐 칼로 찔러 죽이고 그 와중에 죽어 가는 근세의 ‘냄새’를 맡고 역겨워하는 박 사장을 기택이 죽인다.

 

최후의 살인. 이 가난한 이들의 폭력 릴레이 맨 마지막 차례에 기택은 박 사장을 죽인다. 영화는 이 사건을 ‘몰락한 중산층 가장이 자본가를 죽였다. 그것 봐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 식의 사회적 은유의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사건으로 영화 속 수많은 폭력들의 맥락 안에 둔 뒤 끊임없이 아래로 향하는 폭력의 본래적 성질이 일순간 뒤집힐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4. 가장 아래로 스며든 빗물이 바닥부터 차오를 때

 

모든 사건은 비가 내리면서 시작됐다. 텅 빈 저택 거실에 모여 앉아 비가 내리는 정원의 운치를 만끽하며 종류별 위스키를 마시던 기우 가족에게 비를 쫄딱 맞은 문광이 찾아오고 폭우로 인해 계곡물이 붇는 바람에 캠핑이 취소된 박 사장 가족도 그때 돌아온다.

 

“현재 날씨는 맑다 오버 움직이는 구름은 있으나 비구름은 아니다 오버.” 영화의 등장인물 중 가장 어린 일곱 살 다송이의 예측을 간단히 배신하고 내리는 비는 한 지붕 아래에 세 가족을 구겨 넣는다. 박 사장 저택 정원의 배수 체계는 워낙 완벽해서 제아무리 미제 텐트일지라도 폭우 속에 그 안에 혼자 자는 일곱 살 아들을 두고도 섹스를 하고 ‘떡실신’할 수 있을 정도이다. 기우 가족이 간신히 저택을 빠져나왔을 때 카메라에 담긴 부자 동네 배수로에 흐르는 콸콸대는 물길은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고, 비가 오면 흘러올 자리마다 있어야 할 배수로는 반지하 집이 있는 가난한 동네에 박할 수밖에 없다. 기우 가족이 도착한 집은 가슴까지 물이 차올랐고 그나마 계단 위에 있던 변기조차 똥물을 내뱉는다. 끊임없이 아래로 향하는 성질을 띠는 이 물질은 반지하 집 바닥에서 차올라 역류하기 시작한다.

 

일순간에 토대가 무너져 버린 뒤 세상은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 부자라서 착하다던 그들의 선한 미소는 모든 것을 잃은 위장 취업자 가족에게 미소 짓기를 강제한다. 이 협박과도 같은 강제의 작동 원료는 임금이다. 우리는 너희들의 목숨을 틀어쥐고 있다 웃어라! 어제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지만 빗물은 가장 아래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자의 의복 섬유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 바짝 마를 틈도 없이 그곳에 곰팡이를 키운다. 가난한 자의 몸에 배인 ‘지하철 타는 분들한테 나는 특유의 냄새’는 기어코 넘을 듯 말 듯 했던 선을 넘고 끊임없이 아래를 향해 재생산되던 폭력은 역류한다. 그때 그곳에서 ‘묻지마흉기난동사건’이 발생한다.

 

 

5. 살아남은 아이

 

95년생 김기우는 살아남았다. 이 모든 일을 자기 탓으로 돌린 젊은 청년은 산수경석을 가슴에 꼭 안고 구부정한 걸음으로 지하실의 더 가난한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내려갔다. 하지만 도로 빼앗긴 산수경석에 두 번이나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바닥 위 서서히 퍼져 가는 핏물은 쓰러져 있던 그를 분명히 죽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는 기적처럼 기우를 살려 냈다. 영화는 잔인하게도 반지하 집으로 그를 되돌려 놓고 아버지와 누나를 빼앗았으며 지난날의 실패와 앞으로 다가올 불안의 미래를 모두 그에게 지웠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어쩌면 어떻게든 그를 살리기 위한 2시간 동안의 고군분투였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 그 눈 내리는 새벽에 카메라 렌즈를 빤히 보는 기우의 눈과 마주친 관객들은 희미하게 반짝이고 마는 그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보지 못한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카메라가 응시한 불편한 현실이 영화 바깥으로 불쑥 삐져나왔지만 영화관을 나서는 이들이 세상을 갑자기 달리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극장 불이 켜져도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기 전까지 영화는 끝난 게 아니다. 상영관 출구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 때 스크린을 타고 올라가는 수많은 ‘기우’의 이름들. 그들은 언덕 위 저택 정원에 꼼꼼히 잔디를 심었고 고공에서 물을 뿌리면서도 반대편에 숨어서 빛을 쏘아 빗방울이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또 그들은 고양시에 있는 폐정수장터의 수영장 위에 반지하 집과 가난한 골목을 지어 올렸고 그곳에서 온몸을 적셔 가며 가장 아래에서 차오르는 빗물을 만들어 냈다. 영화 속 홀로 남겨진 기우와 영화 바깥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 어딘가에서 자다 깬 새벽에 홀로 눈물 흘렸을지 모르는 그들의 수많은 이름들이 흰 눈 오르듯 스크린에 새겨져 올라가고 그때 세심한 영화 작가가 직접 작사하고 주인공 기우의 목소리로 불리는 노랫말이 들려온다.

 

길은 희뿌연 안개 속에 / 힘껏 마시는 미세먼지 / 눈은 오지 않고 비는 오지 않네 / 바싹 메마른 내 발바닥

매일 하얗게 불태우네 / 없는 근육이 다 타도록 / 쓸고 밀고 닦고 다시 움켜쥐네 / 이젠 딱딱한 내 손바닥

차가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 마른하늘 비구름 조금씩 밀려와

쓰디쓴 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 빨간 내 오른쪽 뺨에 이제야 비가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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