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기고: 서평] 북에 대한 객관적 이해에서부터―≪분단을 뛰어넘어≫와 ≪김정일 코드≫를 읽고

 

김남기 | 학생

 

* 양은식ㆍ김동수 외, ≪분단을 뛰어넘어≫, 중원문화, 1988.

** 브루스 커밍스, ≪김정일 코드≫, 남성욱 역, 따뜻한손, 200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 사회에서 북에 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참으로 민감하고, 정치적으로 욕먹기 일쑤다. 한국(조선) 전쟁 발발 70주년인 올해 2020년은, 남북에 각각 다른 정부가 수립된 지 72년이 지난 해이기도 하고, 분단된 지 7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도 분단을 벗어나지 못한 한(조선)반도는 남북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고, 대한민국 땅에는 이 땅을 강제로 점령하고 분단시킨 미국의 군대가 북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최신식 무기를 보유한 채 아직도 주둔하고 있다. 이처럼 한(조선)반도 분단은 현재 남북의 민중이 직면해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쳤던 한국은 철저한 반공 국가였다. 북에 대한 어떠한 사실적 접근이나 객관적 접근도 국가의 물리적 탄압에 직면해야 했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이승만, 박정희식 반공 교육의 산물은 고스란히 민중들 속에 남았으며, 지금까지도 막대한 영향을 우리 사회에 끼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네이버에 올라온 뉴스 기사에 달린 사람들의 댓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북에 대한 댓글들 대다수가 북이라는 존재나 한(조선)반도 문제의 어떤 특정한 현상 그 자체를 이해하려는 모습보단,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지나친 타자화 및 반공주의적 악마화 내지는 희화화로 얼룩져 있다. 뿐만 아니라 광화문 근처에서 ‘박근혜 석방’을 외치는 태극기 세력들은 입만 열면 북에 대한 욕설과 비방을 외쳐 댈 뿐이다. 또한 어떤 고위직 탈북자가 쓴 책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며, 북에 대한 객관적 이해에 해를 끼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들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가 반공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국내 주요 시설들이 폐쇄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요즘 필자가 아주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다. 그 책은 198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교포들이 일가친척을 만나기 위해 북을 방문하며 남긴 회고록이고,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이 악마화의 대상으로 삼던 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북을 분석한 책이다. 바로 ≪분단을 뛰어넘어≫다. 이 책이 국내에 출판된 것은 서울 올림픽이 한창이던 1988년이고, 이 책에 등장하는 기행문의 연도는 대체로 1980년대 초반이다. 책에 등장하는 기행문이 집필되던 시기를 생각하면 당시 대한민국은 극단적 반공주의 사회였다. 그 시기 대한민국 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북의 모습은 아동용 반공 만화 ≪똘이장군≫ 정도의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북한’이라는 존재를 ‘머리에 뿔 달린 괴물’로 인식했다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상대방을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다.

 

책에 등장하는 회고록 대부분은 북에 일가친척을 둔 사례가 많기에 책을 읽다 보면 수많은 사람의 가족사를 보게 된다. 회고록을 집필한 사람들 대다수가 혼자서 월남하거나 한국(조선) 전쟁 당시 전쟁의 혼란 속에서 월남하게 된 사례인데, 그들의 스토리를 읽다 보면 한(조선)반도 분단 체제가 개인에게 어떠한 상처와 아픔을 주었는지 알게 된다. 북에 사는 사람들 또한 이런 아픔과 상처가 있다. 이러한 상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분단 모순의 극복과 민족 통일이 왜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책을 보다 보면 북쪽 사람들도 당시 남쪽의 민주화 운동과 박정희, 전두환 군사 독재의 폭력성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북쪽 사람들도 민족의 통일을 꿈꾸는 문익환 목사를 높게 평가하고 있고,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 또한 남쪽에서 전개되는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회고록을 책에 실어 준 사람 중에는 북측의 지식인들과 여러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들의 대화를 보다 보면 대체로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주체사상에 관한 얘기에선 교포 측의 질문에 북측 인사들이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서 교포 측 사람들이 북의 주체사상 그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폄하하지는 않았다. 필자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설사 남북의 인민들이 추구하는 사상이나 생각이 다를지라도 상호 존중이 있으면 양측 간 교류나 협력에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사실 1960년대 북의 지도자 김일성이 만든 주체사상은 극우 세력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세력들 사이에서도 여러 관점들이 존재하고, 비판받기도 한다. 필자는 감히 주체사상에 대해 어떤 맹목적 폄하를 할 생각은 없다. 물론 필자는 주체사상 그 자체를 이상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지만, 냉전 시기 국제 정세라는 복잡한 변화와 맥락 속에서의 객관적 이해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체사상을 논하기 위해선 우선 그 사상의 등장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주체사상이 북에서 등장하던 1960년대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쏘련과 중국 사이에, 수정주의 논쟁을 시작으로 국경 분쟁과 외교 분쟁이 있었다. 또한, 동남아시아에선 미국의 침략으로 베트남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몇몇 국가들은 제3 세계라 하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고자 했었다. 대표적인 국가로는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인도, 캄보디아 등이 있다. 극우 세력들이 아는 것과는 달리 북도 1960년대에는 중국과 쏘련 사이에서 그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았고, 때로는 중국과 쏘련을 대상으로 거침없는 비판을 하기도 했었다. 또한 북은 한국과 미국의 군사적인 견제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주체사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주체사상은 북이라는 존재가 미 제국주의에 맞서 사회를 단결시키고, 자력갱생 씨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 맥락을 생각해 봤을 때, 주체사상 그 자체에 동의를 하건 동의하지 않고를 떠나서, 주체사상을 ‘냉전과 중쏘 갈등 그리고 미국의 군사 및 경제적 압박 속에서 사회를 단결시키고 생존하기 위해 반제국주의와 자주적인 기치를 걸고 만들어 낸 시대사적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이 주체사상의 그러한 역사적 배경과 흐름 그리고 그 나름의 성과물을 인정하고 이해했기에, 주체사상에 대해 전혀 공부해 본 적이 없는 필자 또한 책을 읽으며 이와 같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필자가 이 책에서 알 수 있었던 또 따른 사실은 ‘북의 남침 준비는 허황된 거짓말’이라는 사실이다. 반공주의에 심취한 사람들은 대체로 북이 적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시각은 1950년에 시작되었던 한국(조선) 전쟁의 경험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과는 달리, 북은 1970, 80년대부터 남쪽을 무력으로 접수하겠다는 생각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 시기부터 북은 상호 존중하며 교류와 협력에 매진하는 느슨한 남북연방제 통일을 추구했다. 즉 북은 통일 방법론에서 상호 체제가 존재하며 양측 주민들이 자유롭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남북연방제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북연방제 얘기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6ㆍ15 남북 공동 선언”의 핵심이기도 하다. 거기다 1970, 80년대 기준으로 북은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미국은 북의 남침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항공모함 몇 척과 수많은 핵무기 그리고 최신식 무기들을 북을 타겟으로 배치했었다. 이 말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으로 상대방을 위협하는 세력은 북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북이 적화 통일의 야욕이 있다는 주장은 반공주의자들만의 허황된 거짓말인 데 반해, 북이 주장하는 남북연방제는 한(조선)반도 평화 통일에 있어서 남북 모두에게 필요한 가치이고 정신이다.

 

책 ≪분단을 뛰어넘어≫의 또 하나의 장점을 얘기하자면, 이 책이 북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을 의도적으로 배척하고자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책 서문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집필된 책이지, 북의 단점까지 다 옹호하자는 차원에서 집필된 책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위에 상술했던 주체사상에 대한 얘기가 그렇다. 회고록을 집필한 분들은 북에서 어버이로 떠받드는 김일성 주석에 대해, 그의 항일 투쟁 이력과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 및 민중의 단결이라는 장점은 높게 평가함과 동시에, 북측 인민들이 지나치게 김일성주의를 맹신하여 다른 세계와 단절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주체사상에서 얘기한 ‘우리 것’을 강조하다 보니 베토벤이나 모짜르트까지 배척하여 다른 것을 배우지 못하는 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북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이해하며 비판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점에서 필자는 이 책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나온 북의 큰 장점을 말하자면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 체계다. 비록 1990년대 북은 소위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최소 수십만이 아사하는 사태가 일어났지만, 그 이전인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사회주의적 가치인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의 혜택을 받은 인민들이 매우 많았다. 우선 북의 교육 씨스템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국가가 모든 걸 지원하는 씨스템이다. 대학교 학비가 존재하지 않고, 기숙사 비용은 국가에서 보조금을 주는 형식으로 지원해 준다. 의료의 경우 시설이 많지 않다는 단점이 있지만, 최소한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일은 없다. 웬만한 치료는 거의 다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북의 이런 제도는 경제적으로 열악하지만 지금도 존속되고 있다. 책에 나온 1980년대 북의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는 확실히 본받을 부분이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읽기 1년 전, 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은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라는 책의 저자로 1980년대 운동권들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가 집필한 ≪김정일 코드(North Korea: Another Country)≫다. 브루스 커밍스가 ≪김정일 코드≫라는 책을 집필한 건 2004년도였다. 그때는 미 제국의 오만함으로 일어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점이었고, 그런 오만함과 힘의 논리로 바라보던 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책이 집필되었다.

 

브루스 커밍스가 쓴 ≪김정일 코드≫에 따르면 미국의 지배계급은 이라크를 침공하고 북에게 제국주의적인 압박을 가하면서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북의 지도자 김정일 위원장을 ‘폭군 혹은 핵폭탄 제조에 미쳐 있는 미치광이’로, 북을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국가인 양 묘사했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김정일은 쓰딸린주의자고 독재자이며 인민들은 생각지도 않은 채 핵폭탄 개발에만 정신이 팔린 미치광이였다. 그러나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의 네오콘들이나 대중 언론들이 내세우는 이런 논리에 반론을 제시하고, 북이라는 사회가 왜 군사화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증명해 낸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가 내린 결론은 미국 네오콘과 지배계급들이 내세운 논리는 자국 중심적인 논리이며, 사실 관계까지 왜곡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그리도 지적했던 북의 핵 개발과 북미 관계가 긴장되는 시기 북이 외치는 노골적인 선전 구호는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전략 전술인 것이다. 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북의 핵 개발에는 그들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이해 가능한 이유가 있다. 1991년 쏘련의 해체와 동유럽 공산권의 해체는 북에게 있어서 크나큰 경제적인 타격을 입혔다. 당시 사회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거라 믿었던 미국은 북 또한 동유럽처럼 망할 거라 예상했었고, 1994년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실제로 북을 침공할 계획까지 준비했었다. 1991년 걸프 전쟁에서 미군에게 궤멸당하는 이라크군의 모습을 보며 북의 김정일로서는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이고, 2000년대 초반 부시가 북,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 주장하면서 2003년 이라크를 재침공하는 것을 본 북으로서는, 핵무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즉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북의 핵 개발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다.

 

이와 동시에 책 ≪김정일 코드≫에서, 북의 대공 방어 체계 강화 및 대륙 간 탄도 미사일 개발을 한국(조선) 전쟁 당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연관 지어 설명한 것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1950년 한국(조선) 전쟁 시기 북은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미 공군의 폭격을 경험했다. 당시 북이 겪은 트라우마는 대공 미사일 방어 씨스템의 강화로 표출됐고, 북이 대공 씨스템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커밍스의 주장은 김정일의 북은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군사력을 강화해 왔다는 것이지만, 미국은 경험론에 입각하여 행동한 북을 전략 전술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조선) 전쟁을 단순히 ‘잊혀진 전쟁’으로만 치부하는 미국과 미국인들이 시각에도 상당히 기인한다. 이처럼 북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방어 체계 강화 및 매체에서 보여 주는 노골적인 선전 구호는 충분히 전략 전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미국의 네오콘들이 이를 이해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전략 전술이다.

 

그렇다면 북을 전략 전술과 이성의 눈으로 바라본 저자 커밍스는 북을 이해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브루스 커밍스는 북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것이지, 북에 대한 비판을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북이라는 사회가 자국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하고, 북에 놀러 오는 관광객들이 보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며, 강제 수용소와 같은 곳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하며 이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으로 탈출한 일부 탈북자들이 하는 증언들이 사실 관계에 있어서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며, 이러한 증언들이 북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브루스 커밍스는 ≪김정일 코드≫에서 우리가 북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것들과 적대심으로만 봐서 보지 못했던 것들 혹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바로잡아 준다.

 

브루스 커밍스가 집필한 ≪김정일 코드≫에서 김일성의 항일 투쟁사를 다룬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반공이 강요되던 박정희, 전두환 시기에는 항일 투쟁을 한 김일성은 북의 김일성이 아니라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고, 이미 학계에서는 김일성의 항일 투쟁 경력을 인정하고 있다. 브루스 커밍스 또한 김일성의 항일 투쟁사를 인정하고, 그 부분에서만큼은 정통성을 매우 인정하고 있다. 커밍스가 집필한 ≪김정일 코드≫에 따르면, 북의 지도자 김일성은 1931년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를 침공했을 때부터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그는 1933년 동녕현성 전투에서 중국군 사령관을 구했고, 그 이후 일본군을 상대로 여러 전투를 치르면서 백두산 근처에 항일 근거지를 형성했다. 1937년에는 국내로 진격하여 작전을 펼친 보천보 전투를 전개했고, 이후 일본군의 집요한 토벌과 고립 속에서도 전투를 치러 나갔으며, 1940년 홍기하 전투에서 추격해 오던 일본군 마에다 부대에 맞서 싸워 100명 이상을 사살하고 섬멸해 버리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홍기하 전투를 “피델 카스트로가 몬카다 병영을 공격한 전설적인 전투보다 규모면에서나, 그 비중에서나 훨씬 의미가 큰 승리였다”고 주장한다. ≪김정일 코드≫는 북의 지도자 김일성의 항일 투쟁 경력을 사실 그대로 집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출간된 ≪분단을 뛰어넘어≫와 2000년대에 브루스 커밍스가 집필한 ≪김정일 코드≫는 북이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명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런 좋은 책이 지금 기준으로 보았을 땐, 너무 오래된 책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북의 모습, 상황과는 동떨어진 부분도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김정일 코드≫에서는 유교적 전통주의라는 시각에 근거하여 김정일의 후계자는 그의 첫째 아들 김정남이 될 거라 주장했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현재 북의 지도자는 김정일의 첫째 아들 김정남이 아닌 막내아들 김정은이다. 그리고 ≪분단을 뛰어넘어≫에서 회고록을 집필해 준 사람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와 한국(조선) 전쟁 시기를 겪은 사람들이다 보니, 오늘날의 우리와는 정서적으로 좀 다를 수 있다. 책에서는 민족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민족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치더라도 과연 그 시기의 민족이라는 가치가 2020년을 맞이한 신세대들에게 어느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는 또 다른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두 권의 책은 북이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보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이고, 독자들이 한(조선)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깨닫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일 문제에 관해 얘기하자면, 어느 한 체제로의 일방적 흡수 통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상호 존중과 이해라는 가치 아래 진행되어야 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남북연방제라는 가치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연방제 통일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선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멈추었던 개성 공단을 재개하고, 남북 간의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는, 한(조선)반도를 강제로 점령하고 분단을 고착화시킨 미 제국주의 군대의 철수도 목표로 삼고, 통일 운동과 더불어 여러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이러한 투쟁과 통일 운동의 시작점은 북에 대한 객관적 이해부터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권의 책처럼 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남북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분단을 뛰어넘어≫와 ≪김정일 코드≫를 통해 얻어야 할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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