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료] 청산! 조선일보

 

* 지난 3월 5일, ≪조선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조선ㆍ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배포한 유인물입니다.

 

 

 

청산되어야 할 조선일보 치욕의 100년

 

꼭 백 년 전 오늘 조선일보가 창간되었다. 창간 100년을 맞은 조선일보는 예상대로 자화자찬, 자기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스스로를 ‘진실의 수호자들’이라고 자처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하며, ‘권력과 북한 독재 비판’을 주요업적으로 자랑했다. 그런데 이 자랑은 조선일보가 즐겨 비판하는 대상이 민주화 이후 언론탄압을 자행하지 않는 권력과 아무리 비판해도 뒤탈이 나지 않는 북한정권뿐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는 주장이다.

 

일제 총독부의 무단통치와 식민지 수탈로 폭발 발화점에 와 있는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이른바 문화통치로의 방향전환으로 1920년 3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발행허가를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3.1 운동으로 일어선 민초들의 투쟁의 결실이 1년 뒤 조선일보의 창간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1920년대 중반 민족주의, 사회주의 계열의 인사들이 언론본연의 모습을 지키려고 애쓴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관된 친일, 반민족적 보도를 통해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1940년 8월 10일까지 발간하고, “일본의 국책에 순응하여 폐간”했다. 폐간 사실을 알리는 ‘폐간사’에서조차 일제를 찬양하고, “폐간을 반대하는 것은 사사로운 정”이라며 조선총독부를 변호하기에 바빴다. “…본보는… 더욱이 동아신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 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숙야분려(夙夜奮勵)한 것은 사회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다… 신체제가 건설되려고 하는 이때에 신문 통제가 국책으로 수행되는 이상 우리는 이에 순응하는 이외에 다른 사정(私情)을 운위할 바가 아니다. 본보의 폐간도 이 점에 근거가 있다…” 도무지 강제 폐간으로 봐줄 수 없는 자진 폐간사일 뿐이다.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적 보도는 해방 후에 복간된 지면에서는 친 독재 반민주적 보도로 이어졌다. 1960년 4.19 혁명의 단초가 된 마산 학생 시민들의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조선일보는 “마산에 일대 소요사건 / 학생, 시민들 지서 습격하고 방화”라는 제목을 단 기사에서 시위대를 폭력집단으로 매도했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는 “공산 적의 위협 등 불행한 여건 하에서 보다 나은 입장을 마련하기 위해 감행된 것”이라면서 지지하고, 3선 개헌으로 박정희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아낌없이 축하”를 보냈으며, 유신독재체제가 들어섰을 때에는 “적절한 시기의 가장 알맞은 조치”라면서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한 하나의 탈각”이라고 지지했다. 5.18 광주민주항쟁 때는 4.19 당시 마산 시위대를 폭력집단으로 매도한 것처럼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면서 “난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광주학살의 책임자 전두환을 “나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책임감 강한 지도자”로 찬양한 것도 이 신문이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행태는 민족과 나라와 국민이 결정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얼마나 비열하게 조국과 국민들을 배신했는가 보여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에, 군사정권 시대엔 독재에 굴복하여 그 불의한 권력에 협력하고 부역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생과 시민들의 고난에 찬 민주화투쟁으로 독재정권을 물리친 후에는 어떻게 행동했던가? 조선일보는 국민들이 쟁취한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공짜로 얻어 누리며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 일제시대 이래 그들이 끊임없이 추구해온 것은 ‘특권’이며 ‘권력’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느냐의 관점에서 모든 사건을, 사실과 진실을 비틀어 여론을 오도해 왔다.

 

조선일보의 이런 행태가 1백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죄과를 한 번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신문의 친일 반민족행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미쓰비시의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보상판결이 나오자 일본이 경제보복으로 응수하는 등 한 일간의 갈등이 악화되던 때, 이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이 신문이 진짜 한국의 신문인가 하는 원초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라고 보도된 지난 해 7월 4일자 기사의 일본어판 제목이 난데없이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로 둔갑한 것은 일본의 독자들을 의식한 이중 플레이의 전형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이 지난 2월 발간한 ‘조선ㆍ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최악보도 100선’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자랑하는 100년의 역사는 사실은 그들조차 숨기고 싶었을 치욕의 100년사에 다름 아님을 증언해 준다.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남긴 치욕의 기록들은 현대판 분서갱유라도 일으키지 않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양심을 지키는 수많은 후진들에 의해 두고두고 새롭게 들춰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늘어놓는 자화자찬이 어떤 헛소리인지를 생생하게 증언해 줄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거짓과 배신 행각이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고, 극소수의 가진 자와 절대다수인 민중의 갈등을 최악의 상태로 몰아갈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회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위험마저 안고 있다. 100년 동안 이어져 온 이들의 거짓과 배신 행각은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청산의 첫걸음은 100년의 죄악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과이다. 그리고 극소수 기득권자들의 편에 서서 대다수 민중을 적대시하는 현재의 논조에서 과감히 벗어남으로써 반성과 사과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을 주창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45년 전 조선과 동아의 기자들이 자유언론의 실천을 외치며 궐기했던 일을 떠올린다. 신문사 앞에 모여 무기력한 언론을 비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당시의 기자들에게는 시대의 요구를 담은 천둥소리로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의 조선, 동아일보 기자들에게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깨어있지 않은 기자들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사회를 병들게 할 뿐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젊은 기자들이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인식하고, 언론을 바꿔야 한다는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 우선 언론이 바뀌고, 이 언론에 의해 세상이 바뀌게 될 것이다.

 

2020년 3월 5일

조선ㆍ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

 

 

조선일보의 부끄러운 100년 앞에 맞서온 조선투위 45년

 

2020년 3월 6일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가 45주년을 맞는 날이다. 45년 전 언론의 자유를 외치면서 사실과 진실 보도를 주장하며 투쟁하던 조선일보 기자들이 집단적으로 해직되어 언론 현장에서 추방된 날이다.

 

1975년 3월 6일 조선일보기자들은 국민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사실과 진실을 더 이상 묵살해서는 안 된다고 조선일보사 발행인에게 요구하면서 농성투쟁을 벌였다. 박정희 독재권력의 압력을 거부하고, 금기를 깨어 조선일보를 정론지로 만들라고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다. 금기를 깬다는 것은 단 한 줄의 기사로도 보도하지 못했던 지식인, 종교인,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더 이상 묵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가난과 인권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노동운동에 대한 가혹한 탄압도, 권력의 비리와 부패 문제도 마땅히 다루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오랜 동안 국민들이 알아야 할 중대한 뉴스들을 전혀 보도하지 못하여 언론인으로서 양심의 고통을 겪어왔던 기자들이 마침내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터드린 절규였다.

 

이러한 기자들의 요구에 조선일보사는 어떻게 대답했던가? 기자들을 대거 파면하는 것이 그 대답이었다. 3월 6일부터 농성투쟁을 시작한 기자들이 회사 밖으로 끌려나오기까지 6일 동안 잇따라 파면시킨 기자가 32명에 이르렀다. 가히 기자 대량학살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이 32명의 해직기자가 만든 단체가 조선투위다. 같은 시기에 동아일보에서 치열한 언론자유수호투쟁을 벌이던 113명의 기자와 방송인들이 결성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역시 강제해직이라는 기자 대량학살로 인한 결과이다. 대량학살 후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조선투위와 동아투위는 오늘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이다.

 

1975년 봄 조선과 동아에서 일어난 이 끔찍한 사건이 있은 후 우리나라는 기나긴 ‘언론 암흑시대’로 들어갔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비롯한 모든 언론사들은 박정희 정권에 완전히 굴복하고 권력에 편입되어 그 권력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으며, 독재권력을 유지시켜주는 홍보수단이 되었다. 이른바 ‘제도언론’의 시대로 들어간 것이다. 여러 신문사들이 만들어낸 신문지면이 판박이처럼 거의 다 똑같아졌다. 우리 사회에서, 세계에서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그리고 말조차 할 수 없는 캄캄한 ‘언론 부재 시대’를 살아가게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조선투위는 조선일보사가 어떤 언론사인가를 말해주는, 다시 말해 그 정체를 드러내주는 살아 있는 ‘증인’이다. 우리 가운데 3분의 1이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남아 이 신문의 거짓을 증언하고 있다. 언론의 생명인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을 쫓아낸 언론사가 어떻게 ‘언론사’일 수 있느냐고 거듭 묻고 있다. 우리는 조선일보의 100년 가운데 45년을 조선일보와 맞서면서 이 신문이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보아 왔다. 우리는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조선일보가 이 쿠데타를 어떻게 지지했던가를 알고 있다. 박정희가 3선 개헌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아낌없이 축하”를 보내는 것을 보았으며, 유신체제를 강행했을 때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라면서 이를 환영하는 것을 몸소 지켜본 바 있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등장했을 때는 이를 환영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광주시민들을 ‘폭도’라고 불렀으며, 수많은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을 “자상한 지도자적 자질”을 갖춘 사람, “도덕성, 성실성 높고 진취력 강한” 정치지도자라고 찬양하는 것도 보았다.

 

회사 측으로부터 ‘조선일보는 민족지’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던 우리는 해직당한 후 이 신문이 일제시대에 그와 정반대로 조국에 반역하는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민족을 배신하고 조국을 파멸로 몰아가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를 누를 수 없었다. 가혹한 일제 식민통치 아래에서 우리 국민들이 고난을 겪으며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간절히 원하고 있을 때 일본 왕실을 찬양하고, 일본 식민통치를 지지하며, 일제의 침략전쟁에 우리 국민들과 젊은이들을 내몬 사실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조선일보야말로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었을 터인데도, 이를 참회하고 사죄하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감히 ‘민족지’라고 내세울 수 있었단 말인가?

 

무릇 참된 언론이라면 그 언론은 반드시 올바른 시대정신을 찾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시대에 민족과 나라와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미래가 무엇인지 올바로 보고 그것을 구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최대 염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나라의 독립과 해방이었고, 군사독재시대 우리 국민들의 간절하게 열망한 것은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런 국민들의 염원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이를 배신하고 시대의 사명을 거스르면서 정반대로 일제와 독재정권에 협력하고 부역했다.

 

문제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이런 행태가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된 후에도, 군사독재시대가 끝난 후에도 이 신문이 국민들 앞에, 역사 앞에 사죄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한 나라와 민족이 끔찍한 고난의 시대, 암흑시대를 살았다면 그 시대를 기억하고 성찰하고 반성하여 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렇게 하도록 만들지도 못했다. 그 결과 반민족 친일 행위가 아직도 거리낌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2019년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를 하면서 경제전쟁을 시작했을 때 조선일보가 보여준 보도 행태가 그 한 예이다. 이 신문은 한 일본어판 기사에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라는 제목을 달아 이 신문이 어느 나라 신문인지 아연케 하고, 우리 국민들의 얼굴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언론의 생명인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을 대량 해직시켜 언론 현장에서 추방했던 언론사가, 독재에 부역하면서 민주주의를 부정했던 언론사가 한마디의 사죄도 없이 감히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 45년 동안 한국의 언론을 지켜보며 양심적인 언론인들이 힘을 모아 사내의 부당한 간섭과 보도지침을 거부하고 언론을 바로 세워보려는 언론자정운동, 저항운동을 일으켜주기를 기다려 왔다. 그러나 ‘주류’를 자처하는 극우 보수 언론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것은 끝도 없는 기나긴 ‘침묵’뿐이었다. 우리는 아직도 조그만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민의 힘으로, 국민들의 힘으로 이 잘못된 언론을 바로잡는 길밖에 없다. 그 밖에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오늘의 이 거짓된 언론, 사이비 언론의 정체를 바로 보고 거부하는 운동을 우리 국민들이 함께 적극 펼쳐주실 것을 호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0년 3월 6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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