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서평]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를 읽고

 

 

서의윤 | 회원

 

 

* W. Z. 포스터,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 제1ㆍ2권, 동녘, 1988.

** 이 글은,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이 발행하는 ≪전선≫ 제115호에 실린 글입니다.

 

 

 

1. 이 책의 의의

 

운동을 하면서 때로는 서로 다른 사상적 배경들이 언어를 통해 설전으로 오고 가기도 하지만, 실천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상황에 접근하고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쏘련 붕괴 이후 현실에 대한 전망이 충격을 받으면서 그러한 실천적인 측면들이 모호해지거나 불신을 받게 되었다. 계급 투쟁이나 맑스-레닌주의가 힘을 잃어 가면서, 세계 전체를 보지 못하고 표면적인 부분에 주로 매몰되는 정체성 정치 등이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갈 수 있었던 것에도 일부 그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사상이 삶이라기보다는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인 의복이나 악세사리처럼 된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당이나 시민 사회에서 소속감을 찾지 못하고 아나키스트적인 입장에 서고 있다. 많은 진보적 사람들이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으로 운동의 목표에서 권력을 잡는 것을 제외시킨다. 그리고 모든 정세에서 권력과 질서에 대해 일단 의심과 불신을 보낸다. 반동적이든 아니든 그 성격과 상관없이 권력에 대한 저항은 매력적인 것, 보다 더 심각하게는 옳고 정당한 것이 되었다. 권력과 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분석은 개량으로 취급되면서도 막상 계급 투쟁은 희미해지고 표면적인 호불호가 난무하는 것은 서글픈 모순을 보여 준다.

우리 시대의, 혹은 미래의 혁명은 너무도 소원하다. 하지만 과거의 혁명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하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혁명과 사상 투쟁을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흐름과 그 맥락 속에 등장할, 혹은 등장해야 하는 혁명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국내외 문제들과 안건에 대한 분석의 기준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W. Z. 포스터가 지은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는 건조한 서술로 정보를 주는 데 멈추지 않고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생동감을 주는 책으로 큰 줄기와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2. 제1 인터내셔날

― 아나키즘과의 싸움

 

제1 인터내셔날 시기 이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분파들이 있었다. 이 책은 맑스주의자의 관점을 대변하면서 그러한 분파들을 유해하다고 부르고 있다. 그중 맑스주의와 대립하는 가장 큰 분파의 뿌리가 되는 것이 쁘루동주의이다. 쁘루동(P. J. Proudhon)은 상호부조조합, 즉 협동조합의 대체계가 확대되면서 국가와 자본주의를 대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이 점령하는 세상에서 투쟁을 회피하며 소부르주아 보수층의 의견을 대표하던 쁘루동주의에서는 국가 규모의 체제를 상상하지 못하고 계급 투쟁 수준의 깊이를 갖지도 못한다. 규모적인 부분에서 그것을 보완한 것이 라살주의이다. 라살(F. Lassalle)은 국가의 보조를 받는 협동조합망을 키워서 자본주의를 대체해 나간다는 발상을 냈다. 그렇기에 맑스주의에서 노동조합과 파업을 긍정하며 노동자가 투쟁을 통해 각성으로 가는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본 데 반해 라살주의에서는 노동조합과 파업을 부정한다. 점진적인 투쟁의 무위를 주장한 것은 바꾸닌주의이다. 바꾸닌(М. А. Бакунин)은 폭동을 통해 국가를 전복시키는 실제적인 투쟁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식이 긴급 행동을 과연 따라올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혁명이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강력한 정당 규모의 사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숙고가 없다.

1866년 제1 인터내셔날의 주네브(제네바) 대회는 운동은 미약하고 사상적 분파는 다양했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대회는 맑스와 엥엘스가 일군 과학적 사회주의를 퍼뜨리고 그것에 입각하여 실천하려고 노력했으며, 따라서 노동조합이 프롤레타리아 해방 투쟁에서 근본적이고 강력한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을 명시한 의의가 있다.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그 존재를 긍정하되 그것만으로는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 이때 나왔던 8시간 노동에 대한 요구 역시 역사가 증명하듯이 옳은 방향으로 설정된 강력한 투쟁은 분명한 목표의 쟁취를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터내셔날의 국제 연대 활동에 있어서 맑스는 민족 문제를 중심에 놓고서 아일랜드 문제에 있어서 민족적 해방을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인 조건으로 인정하는 방침을 마련하였고, 이는 이후 억압자와 피억압자 민족의 프롤레타리아가 취해야 할 지침이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났다. 독일 병력은 압도적이었고 전투는 독일의 승리로 끝났다. 독일이 빠리를 포위하고서도 머뭇거리고 있을 때, 띠에르(A. Thiers) 정부에 반대하는 인민들이 들고일어났고, 후대에 낭만적으로 모두가 기억하는 빠리 꼬뮌이 시작되었다. 맑스는 봉기가 시기적으로 이르다고 반대했으나 일단 일어나고 난 후에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고 인터내셔날은 가능한 모든 원조를 보냈다. 그러나 다양한 분파들로 조각나 있던 빠리 꼬뮌은 반동들을 재빠르고 강력하게 처단하지 못했고 프랑스 은행의 30억 프랑을 몰수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고립되어 있었다. 약점을 가지고 탄생했던 꼬뮌은 결국 무너졌지만 레닌이 말한 바와 같이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가장 위대한 모범이었다고 이 책은 맺고 있다.

이후 인터내셔날은 지배계급의 박해와 내부적인 분열을 한꺼번에 겪어야 했다. 이때는 맑스주의자와 바꾸닌주의자가 빠리 꼬뮌에 대한 제각기 다른 평가를 내리고 격하게 충돌했다. 무엇보다 각국의 노동자를 대표할 정당과 정치 활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바꾸닌이 이에 불복하면서 분열은 심해졌다. 바꾸닌주의자들은 혁명의 자연 발생성과 분권주의 원칙을 내세워 총평의회가 연락망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했고 맑스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중앙 집권 정책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맑스주의의 영향력은 또다시 대회를 장악했고 엥엘스의 제안에 따라 인터내셔날 본부는 미국으로 옮겨졌다. 미국에서 있었던 인터내셔날의 활동에 대해 이 책은 두 가지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하나는 맑스주의자들이 흑인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성 문제는 노동 문제와 함께 해결될 것이라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에 분파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참 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과 쏘련의 탄생으로 인해 참정권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여성의 지위가 급속히 발전한 것을 보면, 그것을 다만 좌익 분파적인 오류로만 여길 일은 아닐 것이며 세계적으로 운동이 발전해 가면서 그런 문제들을 극복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맑스주의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아나키즘은 그 분파적인 성격과 전략은 다양하지만,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중점을 두고 무엇보다 국가의 존재와 필요성을 부정한다는 데서 같은 줄기를 찾을 수 있다. 1872년 덴 하흐(헤이그) 대회에서는 바꾸닌과 기타 아나키스트 인물들을 제명했으나 이들은 오히려 또 다른 인터내셔날을 만들었다. 바꾸닌의 뒤를 이은 끄로뽀뜨낀(П. А. Кропо́ткин)은 자기 자신을 공산주의적 아나키스트라고 부르고 주적을 자본가계급이 아닌 국가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860년대 후반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자본주의는 급속히 성장해 갔고 프롤레타리아는 선거권을 획득해 가면서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즉각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을 주장하며 일상적인 노동자들의 경험과 발전과 투쟁을 무시했던 아나키즘은 결국 1870년대 이후 쇠퇴하여 말로만 혁명을 떠드는 지식인 집단, 맥락 없이 테러 활동을 자행했던 폭력 집단, 그리고 생디칼리즘의 전통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제1 인터내셔날은 강력한 노동조합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망을 내세웠던 맑스주의자들과 노동조합의 무익을 주장하고 정부의 원조를 목표로 했던 라살주의자들이 충돌하면서 1876년 막을 내리게 되었다.

 

 

3. 제2 인터내셔날

― 기회주의 및 생디칼리즘, 그리고 중간파의 등장

 

세계 자본주의가 끝을 모르고 확대되며 그와 함께 노동조합 운동과 파업도 한창 발전해 가던 중 1883년 칼 맑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889년에 엥엘스의 헌신적인 노력과 함께 제2 인터내셔날이 창립되었다. 그 사이 빠리 꼬뮌의 경험을 통해 각국에서는 사회주의 정당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 결과 독일의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사회주의 정당들이 생겨났다.

이 시기는 첫째로 제국주의가 싹트는 시기로 자본주의가 급속히 성장해 가면서 나라마다 그 격차가 벌어졌다. 후에 레닌이 말했던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의 법칙이 설명하듯이, 과거에 앞서가던 나라들이 완만한 성장을 하는 동안 급속하게 그들을 따라잡는 과거의 후진국들에 의해 국가 간의 세력 관계는 변화하고 있었고 그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력뿐이었다. 전쟁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둘째로 숙련된 노동자나 노동 관료와 미숙련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유의미하게 벌어지면서 자본은 숙련 노동자들을 적극 이용하여 노동 운동을 와해시켰다. 즉, 우익 기회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성장을 달리던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조합 내에서 자본이 주는 떡고물에 붙어먹는 간부들과 노동 운동을 자신들의 출세를 위한 발판 정도로 여기는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을 낳았다. 이 책은 이 두 가지를 제2 인터내셔날을 관통하고 있는 기회주의의 흐름으로 지적한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판도에 적용해 보아도 낯설지 않다. 혁명은 요원하고 과학적 이론을 거대 담론이라 명하면서 거부하고 당장의 일상적이고 부분적인 투쟁에 몰두하게 되고, 국가를 그대로 둔 채로 그것을 프롤레타리아 해방 수단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개량주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우익들은 예를 들어 제2 인터내셔날의 성과이기도 한 5월 1일 노동절을 5월의 첫째 일요일로 변경하자고 주장하는 등 노동 운동의 전투적이고 고유한 성격을 희석시키는 데 앞장섰다. 가뜩이나 번창하는 우익에 비해 좌익 세력이 위축된 가운데 1895년 프리드리히 엥엘스가 세상을 떠났다.

아나키즘의 영향력은 생디칼리즘으로 내려왔다. 이들은 노동조합이 국가를 대체하리라 믿으며 혁명적인 전망을 꿈꿨다. 특히 프랑스는 쁘루동주의와 바꾸닌주의의 맥락을 이어 생디칼리즘이 강력했다. 프랑스의 생디칼리즘은 공산주의적 아나키스트인 페르낭 뻴루띠에(F. Pelloutier)에 의해 기반이 다져졌다. 이후 조르주 소렐(G. Sorel)은 생디칼리즘을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방점을 찍으며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도입하여 이후 이딸리아 파씨즘의 이데올로기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1900년 제2 인터내셔날의 5차 대회인 빠리 대회에서는 좌익과 우익이 대립하면서 그 틈을 타 카우츠키(K. Kautsky)의 중앙주의적 태도가 등장했다. 프랑스의 사회당이 부르주아 정당과 연정을 맺고 그중 밀랑(A. Millerand)이라는 자가 내각에 입각한 것에 대해, 이 중간파는 급진적인 언어로 무장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우익적인 결정에 따랐다. 말만 혁명적인, 그러나 현실을 핑계로 우익의 실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이 중간파는 지금까지 내려와 오늘날 노동 운동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민주주의 우익은 그 세력이 확고해져서 1904년 6차 대회인 암스테르담 대회에서는 베른쉬타인(E. Bernstein)의 수정주의가 쟁점이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 제국주의하에서 자본주의가 고도성장을 달리며 실질 임금이 향상된 것이 진보적인 성과였고, 혁명은 필요치 않으며 자본주의의 제도들을 선택적으로 이용하여 점진적으로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으며, 계급 투쟁이 아닌 계급 협조가 핵심이 된다. 인터내셔날은 그의 의견을 담은 의제를 거부하지만 베른쉬타인이 주장했던 내용은 제2 인터내셔날의 지배적인 개인들을 오염시켰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는 와중에 맑스주의는 러시아의 레닌에 의해 재건되고 구체화되었다. 레닌의 가장 큰 업적은 공산당을 이론적으로 그렸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조직해 낸 것이었다. 1905년 혁명이 일어났고, 노동 운동 내에서는 분화가 더욱 뚜렷하고 구체적이 되었다. 전선이 분명해진 것이었다.

노동 운동 진영의 배반적인 모습은 식민지 및 민족 문제와 전쟁 문제에서 드러났다. 19세기 후반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은 강대국이 세계를 식민화하는 것을 문명과 진보의 입장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사회주의적 식민지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1907년 제7차 쉬투트가르트 대회에서 등장한 결의안에는 대회는 식민지 정책을 원칙적으로, 또한 언제 어디서나 배격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도 그것은 문명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행히 사회주의적 식민주의에 관한 구절은 삭제되었으나 이 수정된 결의안은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다수의 사회주의 정당에서 민족배외주의 형태로 지속되었으며 특히 미국에서는 숙련 노동자들이 이주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경우가 상당했다.

전쟁의 위협에 맞서는 파업과 반란의 필요성에 대한 결의안도 나왔다.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R. Luxemburg)가 개입하여 전쟁에 맞서기 위해서는 총파업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수정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이는 1912년 제9차 바젤 대회에서도 그 맥락을 이어갔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와 세르비아를 제외한 제2 인터내셔날 내의 대부분의 정당이 조국을 내세우며 전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전쟁 반대를 위한 총파업을 열렬히 주장했던 프랑스의 생디칼리스트도 역시 사회당을 따라 전쟁을 지지했다. 독일의 중간파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조국 방위를 위해 전쟁에 끌려가는 듯한 태도를 취하며 전쟁을 지지했다.

이 책은 제2 인터내셔날을 사회민주주의 우익에 먹혀 버린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시기로 평가한다. 민족과 전쟁 문제에서 배반을 했고, 명확한 강령과 확고한 조직력을 저버렸으며,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노동계급의 운동을 방해했던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우익의 전통은 이후 제2 인터내셔날의 부활로 이어졌고, 중간파는 제2.5 인터내셔날로, 공산주의는 러시아 혁명 직후 제3 인터내셔날인 공산주의 인터내셔날, 즉 코민테른으로 이어졌다.

 

 

4. 제3 인터내셔날(코민테른)

― 안팎의 전쟁

 

러시아 혁명은 최초의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현실적인 체제를 낳았고, 그 안에서의 사상적 충돌은 더욱 심해졌다. 코민테른 2차 대회를 전후하여 레닌은 ≪좌익 공산주의―소아병≫이라는 저서를 통해 좌익 분파주의를 비판했으며, 공산주의 인터내셔날의 가맹 조건으로 21개조를 작성하여 중간파 및 우익들이 코민테른에 합류하는 것을 막았다. 좌익 분파주의자들은 혁명만을 신성시하여 시간을 들여 프롤레타리아를 조직하고 지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이들은 의회 정치 및 선거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노동조합 활동도 거부했다. 현실에 기반을 둔 실천이 아니라 명분만을 내세우면서 현실 투쟁에 해악을 끼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뜨로쯔끼가 브레쓰트-리또프쓰크 강화 협정에서 조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여 종전을 미루면서 전쟁을 계속 끌었던 것이 있다. 1920년에 열린 코민테른 2차 대회는 민족과 식민지 문제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제국주의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하며, 피억압 민족의 저항을 흐리기 위한 전술로 허울뿐인 독립을 인정하기보다는 선진 자본주의의 프롤레타리아가 지도하는 가운데 피억압 민중들이 공산주의로 이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민테른 3차 대회는 중간파들이 제2.5 인터내셔날, 즉 빈 인터내셔날을 결성한 직후인 1921년에 열렸다. 3차 대회 안에서 열린 제2차 국제 여성회의에 제출된 레닌의 테제는 여성을 위한 특별 요구를 인정하면서도 여성 문제만이 따로 특별히 존재한다는 견해를 부정하여, 여성의 근본적 이익은 프롤레타리아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말했다.1) 코민테른에서 활발한 지도 활동을 펼쳤던 클라라 쩨트킨 등의 역사를 살펴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담론에서 말하는 페미니즘과 맑스-레닌주의에서 애초부터 주장했던 여성 해방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3차 대회는 협동조합 운동에 대해서도 명확성을 기하여, 협동조합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공상을 부정하고, 협동조합을 노동자계급 세력의 정치적 부문 및 노동조합적 부문과 통합하도록 요구했다.2)

레닌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1922년 4차 대회에서 노동자 통일전선 방침을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우익의 맥을 잇고 있는 제2 인터내셔날과 중간파의 제2.5 인터내셔날과의 공동 행동 또한 제안되었다. 당시 자본은 점점 파씨즘으로 향하고 있었고 공산주의는 대중 안으로 들어가 대중의 눈높이에서 조직과 지도를 행할 필요가 있었다. 독일과 영국에서 공산당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통일전선을 제안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공산주의의 배신이나 타협으로 오해되고 있다.

1924년 코민테른 5차 대회가 있기 전, 우익의 제2 인터내셔날과 중간파의 제2.5 인터내셔날은 보다 우익적인 경향을 가지고 통합되었다. 5차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맑스-레닌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통일전선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한 강조점을 제시했다. 통일전선은 사회민주주의와의 연합이나 그로의 투항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지키며 노동자 속으로 들어가 노동자를 조직해 내고 동원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정부라는 슬로건의 이론적 근거를 분명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볼쉐비끼화 사업 또한 강조하였다. 역사의 배반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진짜 사회주의라고 주장했고, 자본주의의 사상적 영향력은 쏘련이 세워지고 확고한 원칙에 따른 투쟁의 결과가 드러난 후에도 여전히 강력했다. 원칙에 따라 조직된 공산당의 힘이 강조되어야 했고, 러시아에서 뜨로쯔끼 등이 배제된 것을 포함하여 각국에서 기회주의자들과 오염된 분자들이 축출되었다.

1928년 코민테른 6차 대회가 열리기 전, 뜨로쯔끼가 이끄는 반대파 운동이 러시아 내에서 공산주의의 존립을 둘러싼 도전을 시도했다. 뜨로쯔끼는 일국 사회주의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세계적인 공산화를 위해 각국 부르주아 정권과의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국내외 혁명 투쟁 강화를 외쳤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사회주의의 실현을 이뤄낸 것은 그들이 관료주의라고 비난했던 쓰딸린과 당의 힘이었다. 그 힘은 6차 대회에서 최초로 완전한 강령을 채택하고, 맑스, 엥엘스, 레닌에서 쓰딸린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문서화했다. 또한 분명해져 가고 있던 2차 대전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식민지 투쟁에 있어서도 개량주의의 위험을 비판했다.

발전과 안정의 최고점을 찍었던 자본주의는 1929년에 대공황을 시작으로 파멸을 맞았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일찍이 반복적으로 경고했던 바였다. 케인즈주의는 독일에서는 나찌즘으로 미국에서는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으로 현실화되었다. 루즈벨트는 민중이 원하면 미국은 들어준다는 이미지를 형성하였고 미국 대중들은 노동자계급 정당을 조직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되었다. 또한 1913년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깔면서 생산력을 더욱 증대시켰고 따라서 강화된 노동 강도를 무마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일당 5달러를 주었다. 그에 따라 노사 협조가 제도화되고 노동 운동이 힘을 잃으면서 공황의 책임을 노동자들이 온전히 지게 되었다. 반면 이 시기는 쏘련의 사회주의가 쓰딸린의 지도하에 제1차 5개년 계획을 달성해 낸 기간이기도 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보여 주는 차이는 분명했으나, 문제는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쏘련 역시 군사 기구에 힘과 자원을 쏟아부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쏘련은 국제 반파씨스트 평화전선을 제안하고 세계 대전을 막고자 노력했고, 프랑스에서 통일전선, 오스트리아에서 무장 투쟁 등을 통해 격렬하게 투쟁했다.

1935년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는 파씨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돌아보고 각국에서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통일전선, 즉 인민전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혹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회민주주의자들과의 협조가 아니라 공산주의의 정치적인 일관성을 가지면서 계급 투쟁의 강령을 유지하며 기회주의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민중 동원이었다. 그러나 이는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 스페인 인민전선을 통해 드러났던 것처럼, 내부적 약점 또한 가지고 있었다. 우익 분자들의 방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나키스트와 뜨로쯔끼주의자들이 규율과 조직을 거부하면서 투쟁에 혼란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이는 내전의 패배를 불러왔다. 게다가 비파씨스트 국가들은 독일, 일본, 이딸리아 인구의 3배였고 모든 면에서 월등하게 이 국가들에 앞서 있었으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파씨즘이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을 내버려 두고 있었다. 결국 2차 대전이 일어났다.

1943년 전쟁의 한가운데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날이 해산했다. 지속적으로 공산주의 인터내셔날을 공격해 왔던 뜨로쯔끼주의자들은 이번에는 그 해산을 배신이라고 부르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각국의 노동자당은 성장해 있었고 코민테른은 낡은 형태의 조직이 되어 있었다. 쓰딸린이 이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코민테른의 해산은 러시아가 각국의 외부 세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길이며 코민테른을 꺼려하는 서유럽과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데 장애를 제거하는 길이었다. 레닌의 지도와 쓰딸린의 실행으로 펼쳐졌던 공산주의 인터내셔날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쏘련은 독일 파씨즘 세력을 물리치고 2차 대전을 끝냈다. W. Z. 포스터는 이 책을 통해 공산주의 인터내셔날의 성과로, 노동자계급을 맑스의 이론으로 재무장시킨 점, 각국의 공산당을 키우고 훈련한 점, 장기간에 걸쳐 투쟁을 전개한 점을 들고 있다.

 

 

5. 인터내셔날 이후와 현재

―  갑작스러운 사회주의 전망의 상실

 

생산은 늘어 가고 시장은 축소되어 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자연스럽게 군수 산업에 의존하게 되었고,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갈래로 갈라졌다. 유럽의 중부와 동부에서는 인민민주주의 정부들이 들어섰다. 인민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좀 있으나 근본을 공유하여 토지 개혁, 주요 산업의 국유화, 경제 개발 계획, 무역에 대한 관리 등의 방침을 채택했다. 또한 유럽 각국에서 공산당이 성장하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게다가 아시아를 포함한 기존 식민지 국가들은 투쟁의 결과 혹은 지배 세력이 형식적인 독립을 허한 결과 자본-제국주의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쏘련이 원폭을 소유하면서 미국의 세계 전쟁 계획에 제동이 걸렸고 그 결과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NATO가 조직되었다. 중국은 마오쩌뚱의 지휘 아래 혁명을 거치고 인민민주주의에 안착했다. 미국 부르주아들은 중국 공산주의를 개량주의로 치부했으나 실제로 중국 공산주의는 맑스, 엥엘스, 레닌, 쓰딸린의 전통을 훼손하지 않고도 중국에 맞는 투쟁을 펼쳐 냈다. 이 책은 냉전의 정세를 소개하며 사회주의의 밝은 전망을 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그 다음 이야기를 알고 있다. 쏘련이 무너지면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이 함께 상실되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새로운 적으로 등장한 중동 각국과 이슬람 세력은 빠른 속도로 추악한 적의 이미지에 잠겨 가고 있으며, 이는 이슬람 세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서도 서구의 사상을 추종하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우익들은 자신들이 옳았다고 풍악을 울리며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고, 노동 운동 내의 사상적 충돌도 다시 전개되었다. 언제나처럼 그것 봐라,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틀렸다라고 말하는 뜨로쯔끼주의의 전통은 좌파 내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아나키즘은 권위를 부정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젊은이들을 여전히 끌어모으고 있다. 그 모든 소위 구좌파에 신물을 느낀 신좌파의 전통이 1968년 빠리에서 촉발되어, 거대 담론을 부정한다는 명분하에 전 세계와 인류보다는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추고 과학적 분석보다는 감성적 공감을 추구하며 실천적 투쟁보다는 인정 투쟁이 중시되는 부문 운동, 정체성 정치, 정치적 올바름 등으로 운동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때 권력을 잡았던 사회주의의 실패는 권력이란 말만 들어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권력에 대한 저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운동 순결주의를 낳았다. 현실의 사회주의를 긍정하는 것은 그나마 맥을 이어 오고 있는 맑스-레닌주의, 즉 쓰딸린주의뿐이다.

오늘날 사상과 지식은 실천과 삶의 기둥이 아니라 소유와 평가의 대상에 머무른다. 현실적 전망을 잃어버린 우리는 체제에 대한 비판을 말로 풀어내는 유희에 익숙해 있다. 그리고 권력을 쟁취하려는 노력들은 그 성격에 상관없이 부정된다. 그러나 현실적인 근거는 다를지라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상적 충돌과 투쟁의 면모는 과거에 비해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권력 쟁취 투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이다. 여전히 각자 서로를 개량으로, 기회주의로, 좌익 분파주의로, 공상가로 부르며 자신들이 진정한 투쟁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의 부분적인 투쟁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과거와 이어지는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실천하는, W. Z. 포스터와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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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 Z. 포스터, 앞의 책, p. 85.

 

2)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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