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엘리노아 맑스의 “여성 문제”

 

엘리노아 맑스(Eleanor Marx)ㆍ에드워드 에이블링(Edward Aveling)1)

해제ㆍ번역: 서의윤(회원)ㆍ정호영(회원)

 

 

 

[차례]

해제

1. 아나키즘의 난동 속에서 나온 엘리노아 맑스의 여성 문제

– 영국의 맑스주의 운동은 아나키즘의 난동 속에서 침몰해 갔다

– 엘리노아 맑스는 왜 자유주의 부르주아 매체인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맑스주의 여성론인 여성 문제를 실었는가?

– 엘리노아 맑스는 여성 문제에서 단호하게 맑스주의 입장을 드러낸다

2. 맑스주의는 남성 독재 사회에서 여성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남녀의 대오를 형성한다

덧붙이는 글. 엥엘스의 남성 독재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젠더 권력

 

엘리노아 맑스의 연보

 

여성 문제(1886년)2)

아우구스트 베벨의 ≪여성론≫

여성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남녀는 경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여성에게 자연스런 소명이란 없다

여성은 소수자이다

자본주의 가정은 끔찍하다

이혼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성교육이 필요하다

성별 분리는 나쁘다

정숙은 죄악이다

성매매는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바란다

미래의 여성

사회주의에서의 남녀

 

 

 

해제

 

엘리노아 맑스는 칼 맑스(Karl Marx)가 너는 나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꼈던 딸로 19세기 세계 노동 운동의 지도자였다. 그녀는 맑스의 유고를 수집 정리해서 ≪임금, 가격, 이윤≫ 등을 편집해서 내고, ≪자본론≫ 제1권 영어판, ≪자본론≫ 제2권, 제3권 독어판, ≪잉여가치학설사≫의 편집을 도왔다. 수정주의자가 되기 전 유럽 대륙의 사회주의자들이었던 카우츠키(Karl Kautsky)와 베른쉬타인(Eduard Bernstein) 저술을 영어로 번역하여 대륙의 사회주의 운동과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을 이은 것도 그녀의 탁월한 이론적 공헌이다.

엘리노아 맑스는 노동 운동가였다. 영국 실버타운의 가스 및 일반 노동조합을 지도하여 8시간 노동을 쟁취하고, 여성지부를 조직하여 여성지부의 서기장이 되었다. 실버타운의 여성 노동자 대표로 조합평의회에 출석했고, 여성 노동자들의 신망을 절대적으로 얻어 여성 노동자들에게 우리 어머니라고 불린 현장 활동가였다.

엘리노아 맑스는 클라라 쩨트킨(Clara Zetkin), 알렉싼드라 꼴론따이(Александра Коллонтай)와 같은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여성 운동가였다. 엘리노아 맑스는 1889년 제2 인터내셔날 첫 대회에서 클라라 쩨트킨의 여성 노동에 관한 연설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완벽하게 동시통역하였다. 입쎈(Henrik Ibsen)의 ≪인형의 집≫을 영어로 번역하여 여성 일반의 억압을 널리 알린 이도 엘리노아 맑스이다. 입쎈의 ≪인형의 집≫을 영국적 상식에 맞추어 좀 더 널리 보급하고자 이스라엘 쟁윌(Israel Zangwill)과 속편을 기획하기도 하였다.3) 1896년 독일 사회민주당 고타 대회에서 클라라 쩨트킨이 했던 연설을 영어권 사회에 알린 이도 엘리노아 맑스이다.4) 엘리노아 맑스는 여성 운동에서 통역, 번역 외에도 맑스주의자로서 여성 문제에서 활발하게 논쟁을 하였다. 일례로 ≪페미니즘의 사기(The fraud of feminism)≫(1913년)5)를 쓰기도 했던 미소지니스트(misogynist, 현재 한국에서 쓰는 용어로는 안티페미니스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인 어니스트 벨포트 백스(Ernest Belford Bax)6)와 1895년에 여성 문제 논쟁을 했다.7) 백스는 당시의 1세대 페미니스트 운동이 부르주아 여성들만의 참정권 운동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조차도 남성의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반대한 뼛속 깊숙이 미소지니스트였다. 엘리노아 맑스와 백스는 사회주의 정당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동맹(Socialist League)을 같이 만들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라고 내세우면서도 여성들의 권리 주장을 모두 부르주아 여성들의 사기라고 매도해 버리는 안티페미니스트인 백스와의 논쟁을 피하지 않았다. 엘리노아 맑스는 부르주아 여성들의 참정권만을 요구하던 1세대 페미니스트도 아니었고 페미니스트들과 분명하게 선을 그었지만,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한다는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부르주아 여성들의 참정권조차도 남성 권리에 대한 역차별8)이라고 주장하던 백스 같은 미소지니스트와는 단호하게 싸워 나갔다.

엘리노아 맑스는 뛰어난 여성 문제 이론가이기도 했다. 이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1886년 엘리노아 맑스가 베벨(August Bebel)의 ≪여성론≫에 대한 서평으로 쓴 여성 문제이다. 이 글은 베벨 책의 서평을 넘어서서 엘리노아 맑스의 독자적인 맑스주의 여성론이기도 하다.

엘리노아 맑스는 여성 문제에서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소명이란 없다, 여성은 소수자라는 주장을 통해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주장을 이미 선취했다. 그러나 엘리노아 맑스가 1886년 발표한 여성 문제에서 거둔 이론적 성취는 1949년 시몬 드 보부아르가 발표한 ≪제2의 성≫보다 반세기 이상 앞서 나갔다는 사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저작의 진정한 중요성은 사회주의 운동의 쇠퇴의 결과로 아나키즘이 창궐하던 당시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여성 운동에 대해서 맑스주의자로서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1. 아나키즘의 난동 속에서 나온 엘리노아 맑스의 여성 문제

영국의 맑스주의 운동은 아나키즘의 난동 속에서 침몰해 갔다

영국은 단 한 번도 맑스주의가 운동을 주도한 적이 없었다. 영국에서 사회주의의 의미는 맑스주의가 아니라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이고, 이의 기원을 따져 들어가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등의 빅토리아 시대의 자유주의에서 자라난 사회주의이다. 생산은 무시하고 분배를 중시하는 이런 영국식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존 스튜어트 밀 사후 ≪웨스트민스터 리뷰(Westminster Review)≫에 실렸던 그의 유고 ≪사회주의≫9)에 잘 나와 있다. 왜 영국에서는 맑스주의가 운동을 주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가를 한번 추적해 보자.

영국은 19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노동 운동인 차티스트 운동이 있었고, 1848년 혁명이 유럽을 휩쓸 때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은 570만 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을 제출했으며, 그해 4월에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시위는 분쇄되었지만 그 기세는 이어졌다. 차티스트 내에서도 맑스를 지지하는 혁명적 분파가 있었다. 맑스는 차티스트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들과 같이 활동을 하였다. 1853년 어니스트 존스(Ernest Jones)에 의해 지도되던 일단의 차티스트 운동은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를 모두 아우르는 대중 운동을 제시했고 정기적으로 소집되는 노동자 의회가 이를 지도하기로 했다. 맑스는 맨체스터에서 노동자 의회가 개최될 때 명예 대표로 초청되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어서, 대신 노동자 의회에 서한을 보냈다.10) 1856년 차티스트 내 혁명적인 분파들이 내는 ≪인민 신문≫ 창간 기념 축하회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11) 그러나 차티스트 운동이 요구하던 참정권이 실현되고 1871년 빠리 꼬뮌 이후 전체 유럽이 극심한 사회주의 탄압에 들어가면서 운동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에 하인드먼(Henry Hyndman) 등이 시작한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 맑스주의 운동이 있었지만 맑스에게조차도 지지를 받지 못했고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맑스는 하인드먼이 맑스의 ≪자본론≫을 수정 없이 요약한 책을 내고도 맑스의 이름을 숨겨서 대노했다. 엥엘스 또한 하인드먼에 대해서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엥엘스는 생의 마지막 시기에 가서야 엘리노아 맑스와 하인드먼의 공동 활동을 겨우 인정했다. 그러나 운동이 성장하지 않은 것은 맑스와 엥엘스가 하인드먼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인드먼의 언제나 가르치려고 하는 고압적인 자세와 조직 운영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서 노동자 출신의 케어 하디(James Keir Hardie)가 운영하는 독립노동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아 조직은 확장되었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독립노동당은 맑스주의가 아닌 기독교 윤리관에 기반을 둔 케어 하디가 지도하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하디의 독립노동당은 생산수단의 집단소유와 집단통제에 기초를 두는 사회주의 계획을 채택하였지만 맑스주의적 의미의 집산화는 아니었다. 근본적인 집산화가 아니었기에 이의 실현을 의회 내의 합법적인 활동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 당시 가장 대중적인 판매고를 자랑했던 사회주의를 내세운 블래치포드(Robert Blatchford)의 ≪클라리온(The Clarion)≫ 운동과 더불어, 하인드먼의 사회민주연맹(Social Democratic Federation), 케어 하디의 독립노동당은 영국 노동당의 창당으로 이어졌다.12) 이 과정에서 이 세 정파들은 모두 지리멸렬해지고 결국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가 영국 노동당 창당을 주도하게 된다. 당시 아나키스트 운동이 어떻게 영국의 맑스주의 운동을 잠식했는가는 페이비언 협회의 활동을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대륙에서는 인터내셔날 내에서 맑스와 쁘루동주의자들/바꾸닌의 갈등이 부각되었지만, 영국에서는 아나키즘과 맑시즘은 다 같은 사회주의로 묶여 있었다. 1884년 자신의 이념을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Anarcho-Socialism)라고 주장한 샬롯 윌슨(Charlotte Wilson)은 함스테드 역사 클럽(The Hampstead Historic Club)을 시작했다.

 

이 클럽은 칼 맑스 클럽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맑스의 ≪자본론≫을 읽는 스터디 그룹으로 시작하였다. 시드니 웹은 이를 윌슨 부인의 경제학 차 모임이라고 불렀고 이 모임은 이후 페이비언들의 정책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시드니 웹, 버나드 쇼, 애니 베산트, 시드니 올리비어, 그래엄 왈라스 등 페이비언 협회의 초기 구성원들이 다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맑스를 읽은 후 다음의 한 해를 무정부주의를 공부하는 데 바쳤다. 그리고 모임의 이름을 프루동 클럽이라고 수정했다. 그 후에 이 모임의 이름이 보다 중립적인 함스테드 역사 클럽으로 개칭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이 클럽에 페이비언들만이 아니라 프랑스와 러시아의 망명자들이 있었으며 국가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이 뒤섞여 활동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13)

 

생산은 무시하고 분배를 중시하는 존 스튜어트 밀류의 영국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자들인 페이비언 협회는 이런 과정을 통해 아니키즘을, 구체적으로는 후기 쁘루동주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연합하라. 자유롭게 될 것이다라는 언명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주장하는 쁘루동의 후기 아나키즘14)은 소생산자들의 문제와 노동조합의 문제에 대한 해법들을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에게 제공해 주게 된 것이다. 영국 노동당 창당은 이렇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에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 요약되는 후기 쁘루동주의가 결합되어 나온 페이비언 사회주의가 주도하게 된 것이다. 결국 맑스주의자들은 대부분 걸러진 채 영국 노동당은 빅토리아 시대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정당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조국이 말한 나는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는 말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전혀 모순되는 말이 아니고 그는 자신의 이념에 맞는 발언을 한 것이다.)

 

엘리노아 맑스는 왜 자유주의 부르주아 매체인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맑스주의 여성론인 여성 문제를 실었는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글이 나온 1886년은 사회 운동에서 아나키즘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리노아 맑스는 여성 문제를 자신이 속한 사회주의 동맹(Socialist League)의 기관지인 ≪커먼윌(Commonweal)≫에 싣지 않고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실었다. 엘리노아 맑스는 원래 사회민주연맹(Social Democratic Federation)에 속해 있다가 사회민주연맹의 지도자 H. M. 하인드먼이 조직이 커지자 사회민주연맹을 의회 정당으로 전화하려고 한 것에 대한 반발로 탈퇴하고 사회주의 동맹을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등과 같이 결성하였다. 이를 생각해 보면, 엘리노아 맑스가 영국 의회 정치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생산해 내는 빅토리아 왕조 시기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매체인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글을 실은 것은 의외일 수 있다.15) 그러나 당대 영국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현명한 전술적 접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리뷰≫는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에 의해 창설되어 공리주의/영국 급진주의 철학파가 주도하던 잡지로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James Mill)이 정열적으로 이끌었고 존 스튜어트 밀도 주요한 활동을 한 잡지이다. 얼마 전 나온 벤담 연구서16)에서 벤담이 동성애를 지지했고 국고 보조에 의한 노동계급의 처지 향상을 옹호한 것을 알려 주고 있는데 자본주의가 체제 유지를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놀라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시대의 시각에서 보면 자유주의자들의 매체 중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매체였다. 이 매체에서 활동하던 존 스튜어트 밀은 1866년에는 1,499명의 서명을 받아 의회에 여성의 참정권을 건의했고,17) 1869년에는 아내 해리엇 테일러 밀(Harriet Taylor Mill)로부터 아이디어를 받아 쓴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을 출간했다. 그의 사후에 ≪웨스트민스터 리뷰≫는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의 사회주의론의 결정판인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를 싣기도 했다. 엘리노아 맑스는 제도권 언론 내에서 여성과 사회주의 관련되어 가장 대중적인 매체를 선택하여 맑스주의 입장에서 여성 문제와 사회주의를 선전하기를 원했기에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여성 문제를 실은 것이다.

 

엘리노아 맑스는 여성 문제에서 단호하게 맑스주의 입장을 드러낸다

엘리노아 맑스는 당대 운동의 주류가 되어 가는 아나키즘이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를 따라가지 않았다. 엘리노아 맑스는 여성 문제에서 단호하게 맑스주의 입장을 드러낸다. 연합하라, 자유롭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쁘루동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사적 소유를 유지하는 생산자들의 사회주의를 주장하지도 않고, 생산이 아닌 분배에 집중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존 스튜어트 밀류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와도 분명하게 선을 긋고 생산수단이 공동체의 자산인 사회를 주장한다.

엘리노아 맑스는 모든 인간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맑스주의자였다. 엘리노아 맑스는 여성 문제의 결론으로 베벨의 ≪여성론≫의 일부를 인용하였다. 베벨, 엘리노아 맑스, 쩨트킨, 꼴론따이가 맑스주의자인 이유는 모두 다음과 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싸웠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이 공동체의 자산인 사회, 성차별이 없이 전적인 평등을 인식하는 사회, 모든 종류의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향상이나 발견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 현재는 비생산적이거나 유해한 것으로 간주되는 활동을 하는 이들, 즉 나태하고 게으르다고 불리는 사람들 모두를 노동자로 만들고, 필요노동시간을 최소화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육체적 조건을 가능한 최고로 올리는 사회.

 

2. 맑스주의는 남성 독재18) 사회에서 여성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남녀의 대오를 형성한다

엘리노아 맑스는 차티스트 운동에서도 남성들보다 더 전투적으로 투쟁했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같은 계급의 남성들과 단결할 것을 외쳤다.

 

여성들이 남성들 이상으로 분기하여 당연한 임금 인상을 위해 단결하는 데만 그치지 말고 사회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같은 계급의 남성들과 더불어 투쟁하게 될 미래에 대비하여 단결해야 한다.19)

 

그리고 이를 위해 고무 공장 노동자들, 타이피스트, 봉제 업종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스스로를 불행한 인간 기계라고 여기는 타이피스트들 조합을 조직한 것은, 지난날 자신이 타이피스트로서 착취당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20)

엘리노아 맑스는 여성 문제에서 여성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남녀는 경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마리 M. 멀래니는 이를 근거로 여권 운동가/1세대 페미니스트와 엘리노아 맑스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분리한다.

 

엘리노아는 당시 영국의 여권 운동가들이 해답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쟁점들을 솔직하게 언급하는 측면만 보고 엘리노아 맑스에게 여권 운동가라는 칭호를 붙이는 데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여권 운동가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법적 정치적 개혁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를 연상시키지만 그녀의 입장은 자유주의와 분명하게 격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른바 선진적이라는 여성들의 사고가 경제라는 기본적 토대의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의 여성 해방은 선거권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엘리노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 참정권론자들의 요구가 특권 의식과 이기적 계급 의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초기의 여성 참정권론자들은 보통선거권을 요구했던 것이 아니라 참정권에 대한 성적 장벽의 제거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재산소유에 따르는 선거권의 제한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영국의 여성 참정권론자들이 주로 양성의 자본주의적 이용에만 주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 엥겔스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사회주의에 대한 그녀의 신념은 여권 운동에 대한 신념보다 우선했음을 알 수 있다.21)

 

1839년 인민헌장(Peoples Charter)을 내면서 시작된 차티스트 운동에 참가한 여성 차티스트 운동가들은 같은 계급의 남성들보다 자신들이 더 억압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굶주림과 경제적 억압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함께 투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22) 남성 차티스트들은 부르주아 여성들이 남성 노동자들인 자신들과 참정권 획득에서 경쟁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에 페미니스트 운동에는 거리를 두었다. 19세기의 페미니즘 운동은 성차별이 가장 심각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면서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라고 외치면서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전체 여성을 걸고 있었지만 실제는 부르주아 여성들만의 참정권을 요구하였다. 미국 참정권 운동에서 페미니스트들이 흑인 남성이 먼저 참정권을 얻어야 하는 것인지 여성이 먼저 참정권을 얻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다투고 있던 시기에, 맑스주의자들은 모든 인민의 참정권을 위해 투쟁했고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모든 인민의 참정권을 도입하면서 여성의 참정권도 같이 도입하였다. 19세기 엘리노아 맑스가 주도했던 맑스주의 여성 운동은 사회주의를 통해서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에, 여성 내 부르주아 여성들이 부르주아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한 페미니즘 운동을 넘어서야 했다. (부르주아 여성들인 1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서 시작된 사회에 있는 억압 중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이 가장 심하기에 여성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거의 기계적인 주장은 여전히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2020년 한국의 숙명여대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 위와 동일한 주장으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부르주아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해서 남녀적대를 생산/재생산하고 있을 때, 엘리노아 맑스는 여성 문제에서 억압받는 계급의 남성과의 단결을 강조하였다. 중간계급 일반은 노동자들에게 무관심하고 그들을 억압하지만 이들 중에도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철학자, 예술가, 시인들이 있다. 남성 일반은 여성을 억압하지만 여성들은 남성들 가운데에서 동지를 찾는다고 한 것이다.

 

여성은 더 나은 남성들 가운데서 동지를 찾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철학자, 예술가, 시인들 가운데서 동지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 일반에게서 어떤 희망도 볼 수 없으며 노동자들은 중간계급 일반에게서 어떤 희망도 볼 수 없다. (엘리노아 맑스, 여성 문제)

 

그리고 이러한 연대를 통해서 만든 사회주의에서 여성은 어떠한가? 남녀는 어떠한가?

 

분명한 것은 성별의 구분 없이 모두가 평등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독립적이 될 것이다. 여성들은 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기회에 있어서 남성들과 동등할 것이며, 남성과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면(그리고 얼마나 여성의 수가 그렇게 늘어날 것인지!) 공동체의 요구를 위해,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한 시간,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을 사회적 노동에 할애할 것이다. 그 후에는 자유로이 예술이나 과학에 매진하고, 가르치거나 글을 쓰고, 어떤 형식으로든 낙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성매매를 존재하게 만들었으며 오늘날 필수적인 것으로 만드는 경제적 조건들이 사라지면 그와 함께 성매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엘리노아 맑스, 여성 문제)

 

그리고 이러한 연대를 통해서 만든 사회주의에서 남녀는 어떠한가?

 

무엇보다 우리는 남녀 간의 관계를 망치는 여러 저주들 중 가운데 가장 큰 두 가지 저주가 사라질 것임을 확신한다. 그것은 바로 남녀를 서로 다른 존재로 대하는 것과 진실의 부재이다. 더 이상 남성을 위한 법과 여성을 위한 법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엘리노아 맑스, 여성 문제)

 

덧붙이는 글.

엥엘스의 남성 독재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젠더 권력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젠더 권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맑스주의를 왜곡하고 있다.

 

예컨대 맑스와 엥겔스의 주요 저작에서 여성은 부족민처럼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경계 지역에 불안정하게 존재한다. 그들은 결혼 생활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근원이 경제적 소유 및 재산 관계에 있음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성별 분업과 이성애를 자연적인 것으로 가정한다. 요컨대 그들은 여성의 종속을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로 파악했을 뿐,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젠더 권력 구조는 인식하지 못했다.23)

 

이에 대해서 비판을 하자면 맑스와 엥엘스가 여성의 종속을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로만 파악했다고 저렇게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엥엘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전혀 읽지 않고도 맑스와 엥엘스의 여성론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다는 과다한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고 엥엘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앞부분이라도 조금이라도 읽고도 저런 말을 하고 있다면, 맑스주의를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대체시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뿐이다.

≪정세와 노동≫ 제157호에 실었던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의 해제에서도 이미 인용한 바 있는 엥엘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다시 인용하여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이 맑스주의의 완전한 왜곡인 것을 재확인해 보자.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자는 가정에서도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어 여자는 자기의 존귀한 지위를 상실하고 노비로,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순전한 산아도구로 전락했다. 여성의 이와 같은 굴욕적인 처지는 특히 영웅시대의, 특히 고전시대의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노골적이었는데, 나중에 점차 경감되어 그럴듯하게 꾸며졌으며, 때로는 조금 완화된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그러한 처지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확립된 남성 독재의 최초의 산물은 당시 발생하고 있던 가부장제 가족이라는 중간 형태이다.24)

 

이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이 맑스와 엥엘스는 여성의 종속을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로만 보지 않는다. 고대에 모권이 전복되고 계급의 발생과 더불어 남성 독재가 시작되었고 자본주의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남성 독재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를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위와 같이 사용하는 젠더 권력이라는 비과학적 개념으로 대체해서 써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사실상 맑스주의 용어들로 포장을 한 래디컬 페미니즘일 뿐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젠더 권력은 여성이 생물학적 이유로 태초부터 억압받았다는 몰역사적 주장에서 출발한 용어이기 때문에 맑스주의자들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을 가리키고자 한다면 엥엘스가 사용한 남성 독재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를 제안해 본다.

 

 

엘리노아 맑스의 연보23)

 

1855년 1월 16일, 칼 맑스(Karl Marx)와 예니 폰 베스트팔렌(Jenny von Westphalen) 부부에게서 태어남. 맑스 부부는 본래 딸 넷,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중 셋은 어려서 죽고, 샤를 롱게(Charles Longuet)와 결혼한 예니(Jenny, 어머니와 이름이 같다), 뽈 라파르그(Paul Lafargue)와 결혼한 라우라(Laura), 그리고 엘리노아(Eleanor) 세 딸만 남음. 엘리노아는 어릴 적 너무나 병약하여 다섯 살까지 우유만 먹었고 열 살까지도 우유가 주식이었음.

1867년, 칼 맑스의 ≪자본론≫ 제1권 출판됨.25)

1871년 5월, 16세의 나이로 언니 예니와 함께 세 번째 아이를 출산한 언니 라우라와 뽈 라파르그 부부를 방문하러 프랑스로 여행을 떠남. 라우라와 라파르그 부부는 빠리 꼬뮌 패배 후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피신하였음. 예니와 엘리노아는 런던으로 돌아오다가 인터내셔날의 밀사로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에서 활동했다는 혐의를 받고 곤경을 치루고 풀려났음. 이후에도 맑스의 집에는 빠리 꼬뮌 참가자들이 줄을 이어 방문했음.

1876년, 당시 약혼자였던 빠리 꼬뮌의 망명자 리사가레(Prosper Olivier Lissagaray)의 ≪1871년 빠리 꼬뮌의 역사≫26)를 번역함. 최종 감수는 칼 맑스가 했음.

1881년, 어머니 예니가 사망.

1883년, 언니 예니가 39세의 나이로 사망. 두 달 뒤에 아버지 칼 맑스도 사망.

1881년, 헨리 메이어스 하인드먼(Henry Mayers Hyndman)이 민주연맹(Democratic Federation)을 결성함.

1883년, 민주연맹에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가입. 이 해에 바꾸닌(Михаил Бакунин)의 ≪신과 국가≫가 출판됨.

1884년 1월,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가 창립됨.

1884년 여름, 엘리노아는 세 아이를 둔 유부남인 에드워드 에이블링(Edward Aveling)과 동거를 시작. 민주연맹은 사회민주연맹(Social Democratic Federation)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회주의적 성향을 분명히 함.

1884년 12월, 엘리노아, 에이블링, 윌리엄 모리스는 함께 사회주의 동맹(Socialist League)을 창립. 민주연맹의 지도자 H. M. 하인드먼이 조직이 커지자 사회민주연맹을 의회 정당으로 전화하려고 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음. 엘리노아 맑스는 대륙의 맑스주의자들과 영국의 맑스주의자들을 잇는 다리가 되었음.

1885년, 윌리엄 모리스가 사회주의 동맹의 기관지 ≪코먼윌(Commonweal)≫을 창간하자 필진으로 활동함.

1886년,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보바리 부인≫을 번역함.27) 영역판 서문에서 이 강한 여성은 세상에서 분명하게 자신이 설 장소가 있고, 분명하게 자신이 할 일이 있다고 느낀다라고 썼음.

≪자본론≫ 제1권 영어판이 사무엘 무어(Samuel Moore)와 에이블링의 번역, 엥엘스(Friedrich Engels)의 책임 감수로 출판됨. 엘리노아 맑스는 인용문들을 점검하여 영국의 저자들과 청서들로부터 맑스가 독일어로 번역, 인용한 수많은 문구들의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을 했음.28)

끄로뽀뜨낀(Пётр Кропо́ткин)이 영국에 도착하여, 샬롯 윌슨(Charlotte Wilson) 등과 함께 프리덤 그룹(Freedom group)을 만들어, 기관지 ≪자유(Freedom)≫를 발간함.

1887년, 사회주의 동맹 안에서 의회를 강조하는 분파에 대응하여 아나키즘 경향이 대두함.

1888년, 사회주의 동맹 안에서 의회를 강조하는 분파가 추방됨.

1889년 3월, 가스 및 일반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집행위원을 맡음으로써 신노동조합 운동(New Unionism)의 서막을 열었음. 신노동조합 운동은 미숙련 노동자들을 조직함으로써 노동자의 혁명적 잠재력을 일깨우고자 했음. 가스 및 일반 노동조합은 완전고용 상태의 호황에서 파업을 선언하여 8시간 노동제의 요구를 관철했음. 조합 결성을 주도한 윌 손(Will Thorne)은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던 사람으로 이후 엘리노아 맑스와 함께 조합 활동을 하면서 읽고 쓰기를 배웠고 그녀의 장례식에서 이에 대해 말하면서 크게 울었다고 함.

1889년 8ㆍ9월, 런던 부두 파업(London Dock Strike)이 발생함. 미숙련자들의 노조가 조직되고 파업 일어나면서 신노동조합 운동은 활기를 띠어감.

헨리 시모어(Henry Seymour)가 ≪혁명 리뷰(The Revolutionary Review)≫를 발간하여 아나키즘 세력 확장에 나섰고, 사회주의 동맹 평의회에서는 아나키스트가 다수가 됨.

1890년, 윌리엄 모리스와 해머스미스(Hammersmith) 지부가 이탈하면서 사회주의 동맹은 쇠락함.

1895년, 미소지니스트인 백스와 여성 문제에 대한 논쟁을 함. 맑스 사후 아버지의 역할을 했던 엥엘스가 사망.

1896년, 독일 사회민주당 고타 대회에서의 클라라 쩨트킨(Clara Zetkin)의 연설에 대한 보고를 함.

1890년, 엘리노아 맑스는 하이드 파크에서 메이데이 연설을 하였음. 엥엘스가 베벨(August Bebel)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엘리노아 맑스의 도움을 받은 영국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음. 엥엘스는 이러한 차티스트 운동 3세대의 성장에 따라 영국 운동에 대해서 낙관론을 조금씩 가지기 시작했음.

1891년, 제2 인터내셔날 브뤼셀 대회에서 가스 및 일반 노동조합 대표로 참가하여 영국 및 아일랜드의 노동 운동에 관한 보고 연설을 함. 미국에 맑스주의 운동을 전파하러 강연 여행을 함. ≪인형의 집≫ 속편을 씀.

1893년 1월, 독립노동당 창당. 엘리노아 맑스는 창당 대회에 참가하나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의인 역할에 만족했음.

1895년, 쁠레하노프(Георгий Плеханов)의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를 번역하고 서문을 썼음.29) 당시 영국 사회주의 운동 내 만연한 아나키즘 경향과의 대결을 위한 것이었음.

1898년 3월 31일, 43세를 일기로 사망. 사인은 청산가리를 이용한 자살. 자살의 이유는 에이블링에 대한 배신감이었음. 에이블링은 별거 중이었던 아내가 벌써 6년 전에 죽었고, 그 뒤 에바 프라이(Eva Frye)라는 24세의 여배우와 몰래 정식 결혼을 했음. 그러고도 에이블링은 엘리노아와 한집에 살면서 같이 일하고 같이 여행을 다녔던 것. 에이블링은 화장한 엘리노아의 유골을 거두지 않았고, 작은 항아리에 담겨 이곳저곳을 떠돌던 그의 유골은, 1956년 맑스 일가의 무덤이 새로 만들어질 때 비로소 안식처를 얻게 되었음.30)

 

 

여성 문제(1886년)

 

아우구스트 베벨의 ≪여성론≫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이 쓴 저서인 ≪여성―과거, 현재, 미래≫가 독일어와 영역본31)으로 출간된 것은 여성 문제에 관한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을 설명하려는 시기적절한 시도이다. 이 작품은 독일과 영국에서 환영을 받았고 이를 통해 그러한 시도가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적대자들이 애써 우리를 오해하거나 우리가 그런 오해를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굴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본 글의 저자들은 영국 대중들이 특유의 공정함을 갖추고서 자칭 사회주의자들의 관점과 주장과 결론에 공평하게 귀 기울여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영국 대중들이 결론에 관해 어떤 의견을 보이더라도 최소한 거기에는 기본적인 지식이 들어 있을 것이다. 또한 본 글의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함께 생각하고 일하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일 때라야 가장 좋다고 생각해 왔다. 이후 나올 내용에서 저자들은 두 명의 개별적인 사회주의자로서 자신들의 의견을 게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저자들은 이 의견들이 영국과 유럽, 그리고 미국에 있는 동료 사상가들과 동료 노동자들 대다수에게 공감을 받으리라 믿으면서도, 결코 제시되는 논제들 전부 혹은 어떤 특정한 하나라도 그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란다.

우선 이 담론의 대상인 그 작품에 대해 한두 마디 하고자 한다. 베벨은 노동자이고, 사회주의자이며, 독일 제국의회(Reichstag)의 일원이다. 그가 쓴 ≪여성론≫은 독일에서 금지되었다. 곧바로 그 책을 구하기가 어려워졌으며 또한 그 책을 구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났다. 독일의 언론들은 신문을 통해 ≪여성론≫을 거의 저주하다시피 했고 그 모든 악들을 베벨의 탓으로 돌렸다. 베벨의 위치와 인성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 책이 가진 영향력이 어떤지, 그리고 이러한 공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둘 다 이해할 것이다. 베벨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창시자 중 한 명이자 칼 맑스 경제학의 뛰어난 선구자이고 독일 내에서 가장 탁월한 웅변가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서는 신뢰를 자본가와 귀족들로부터는 증오와 두려움을 받고 있다. 그는 친구든 적이든 그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물론 베벨에게 한창 비방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가 받고 있는 그러한 혐의들은 악의적이며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베벨이 쓴 최근작의 영어 번역본은 일부 사람들에게서 혹평을 받았다. 이 비평가들의 분노가 만약 영어 번역본을 발간한 출판인들이 저지른 막대한 부주의를 향해 있었더라면 그것은 적절했을 것이다. 쮜리히에서 인쇄된 독일어판이 오류 하나도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영어판에서 보이는 부주의는 더 명확하고 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번역자인 해리엇 B. 애덤스 월터 박사(Dr. Harriet B. Adams Walther)에게는 비난을 돌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월터 박사의 번역은 경제학 용어에 대한 생소함으로 인해 군데군데 불명확하고 무엇보다도 복수형의 사용을 하지 않은 점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꽤 잘 되었다. 하지만 이 영어 번역본은 활자, 철자, 구두점에서 오류로 가득하다. 164쪽밖에 안 되는 책에 최소한 170개가 넘는 실수가 있다는 것은 진실로 너무 심한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의 초반에 나오는 역사적인 부분은 다루지 않는다. 그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긴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의 남녀 관계와 곧 도래할 것이 틀림없는 변화에 대해 할애할 양이 너무 많아서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또한 역사적인 부분은 이 책에서 그다지 잘된 부분은 아니어서, 여기저기에 오류가 눈에 띈다. 여성 문제의 이 특정 분야에 관해 읽어 볼 만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책으로는 프리드리히 엥엘스(Friedrich Engels)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 있다.

베벨과 일반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에 따르면 사회는 불안정하고 동요된 상태에 있다. 그 불안정함은 썩어 가는 덩어리의 불안정함이고 그 동요는 부패로부터 나온 동요이다. 붕괴라는 단어가 가진 두 가지의 의미가 모두 다 목전에 있다. 즉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종말,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사회의 종말이 세기가 아니라 년으로 셀 수 있는 미래에 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종말이란 사회를 더 단순한 형태로, 심지어 원소로 분해하는 것, 그리고 새롭고 더 나은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는 도덕적으로 파산했으며, 이 끔찍한 도덕적 파산은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흉흉하게 드러난다. 상상력 앞으로 어음을 발행함으로써 그 충돌을 미루려는 노력은 소용이 없다. 우리는 그 사실들을 목도하고 있다.

 

여성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남녀는 경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 이러한 사실들 중에서 남녀 관계를 고려하는 데 있어서 평범한 남녀가 제대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또한 여성의 더 많은 자유를 위한 투쟁에 자신에 삶을 바쳐 온 뛰어난 남성과 여성들조차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경제 문제이다. 여성의 지위는 복잡한 우리의 현대 사회 안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토대 위에 놓여 있다. 베벨이 이 점만 고수했더라면 그의 책은 가치 있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여성 문제는 사회 전반의 구성의 한 면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쓴 ≪학문의 진보≫ 제1권을 인용해 보겠다. 특정 기예들 및 과학들로의 분할이 이루어진 뒤에는, 보편학 혹은 제1 철학을 포기해 온 오류가 그것이다. 이러한 오류에 빠지면 학문의 진보는 중단될 수밖에 없다. … 어떠한 과학에서든, 만일 우리가 오직 그 특정 과학의 지평에만 머문 채 보다 높은 과학으로 상승하지 못한다면, 그 과학의 보다 넓고 깊은 수준에 도달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하겠다.32) 남성(그리고 여성)이 보편성을 저버렸을 때 이 오류는 실로 그저 짓궂은 농담 이상의 것이다. 그건 병이다. 즉, 방금 인용한 구절이 말하고 있는 설명을 사용하자면, 우리 현대 사회의 경제 속에서 원인을 찾지 않은 채로 여성에 대한 대우 문제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몸 전체의 일반적인 상태를 조사하지 않고서 환부만 치료하는 의사와 같다.

이 비판은 성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모든 토론을 조롱하는 일반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보다 고상한 본성을 가진 성실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 여성들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상황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고 절박해 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이들이 바로 그 완벽하게 정당한 목표인 여성 참정권을 위해서 싸우고, 남성들의 비겁함과 잔혹함에서 나온 괴물인 성병관리법(Contagious Diseases Act)33)의 폐지를 위해서 싸우고, 여성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 싸우고, 여성들에게 대학의 문을 열기 위해서 싸우며, 학문적 직업에 더하여 교사로부터 판매상에 이르는 모든 직업이 여성에게 허용되게 하기 위해서 싸우는 그 뛰어나고 부지런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되기만 한다면야 좋은 일들이지만, 우리는 이와 관련된 세 가지 것들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첫째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부유한 계급 출신이라는 비판이다. 유일하게 성병관리법 폐지 투쟁을 제외하고는 이 다양한 운동에 눈에 띄게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 중 노동계급에 속한 여성들은 거의 없다. 영국에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로 되는 더 큰 운동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은 말이 나올 것을 각오하고 있다. 분명히 사회주의는 현재 이 나라에서 그저 문예 운동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 경계에는 노동자 남성들이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비판에 대해서 독일에서는 상황이 다르며 심지어 영국에서도 사회주의가 노동자들 사이에서 퍼져 가기 시작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이러한 우리의 진보적인 여성들의 생각들이 전부 재산, 혹은 감성이나 직업 문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들 중 어떤 것도 이를 통해 그 세 가지의 경제 기반은 물론이고 사회 자체의 경제 기반도 규명하지 못한다. 여성 해방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경제적 특성들에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여성을 지지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글과 연설을 살펴보면 그들이 사회의 진화에 대한 연구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보기에는 주장의 방향이 틀리고 결론이 부정확하다고 판단되는 정통 정치경제학조차 제대로 습득하지 않은 듯하다.

세 번째 비판은 두 번째 비판에서 이어진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진보주의자들 학파는 오늘날의 사회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제안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하는 일에는 가치가 거의 없다고 본다. 우리는 재산을 가진 여성들만이 아닌 모든 여성들이 투표를 할 수 있기를, 성병관리법이 폐지되기를, 모든 직업이 양성에게 활짝 열리기를 지지할 것이다. 남성과 관련하여 여성들의 현실적인 지위는 중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생존 투쟁이 더욱 힘겨워진 것에 대한 결과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성병관리법을 제외하면 이들 중 어떤 것도 양성 관계에서 그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이 모든 관점들을 종합했을 때 앞으로 올 엄청난 변화가 보다 쉽게 얻어질 것임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궁극적인 변화는 훨씬 더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때라야 그 결과로서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더 큰 사회적 변화 없이는 여성은 결코 해방될 수 없다.

여성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가고자 애쓰는 사람들조차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다. 바로 노동계급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들처럼 여성의 지위는 무자비하게 격하되어 있다. 노동자들이 한량들의 조직된 폭거의 산물이듯, 여성들은 남성들의 조직된 폭거의 산물이다. 이 사실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노동계급뿐 아니라 여성들에게 있어서 이 고난과 문제들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우리 사회의 현 조건에서는 실질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지금까지 행해진 것들은 비록 어떤 성과를 뽐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치료가 아닌 완화제일 뿐이다. 여성과 직접 생산자라는 피억압계급은 둘 다 자신들의 해방은 스스로에게서 나올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성은 더 나은 남성들 가운데서 동지를 찾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철학자, 예술가, 시인들 가운데서 동지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 일반에게서 어떤 희망도 볼 수 없으며 노동자들은 중간계급34) 일반에게서 어떤 희망도 볼 수 없다.

 

여성에게 자연스런 소명이란 없다

여성의 상태에 대해 숙고해 보기 전에 먼저 이 경고의 말을 해야겠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는 사실에서 이것의 진실을 엿볼 수 있다. 현재에 대해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것들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과장되게 보일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공상적으로 보일 것이며, 우리가 말하는 것 전부가 위험하게 들릴 것이다. 교양인들에게 있어서 여론이란 여전히 남성만의 의견이며 통상적인 것들이 곧 도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여성 특유의 무력감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고려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여성의 자연스러운 소명을 상술한다. 전자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람들은 특정한 때의 여성 특유의 무력감은 우리 현대적인 삶의 건강치 못한 조건들 때문이며 그러한 조건들에 의해 대개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합리적인 조건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완전히 또는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여성의 자유를 말하면서 입심 좋게 떠들던 모든 것들이 여성의 노예 상태 문제에 대해서 얘기할 때면 편리하게 무시된다는 사실도 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자 고용주들이 임금을 전체적으로 하락시키기 위해서만 여성 특유의 무력감을 얘기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게다가 생활수단으로 받게 되는 노동자의 생산물의 양에 자연적인 한계가 있음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생산의 자연법칙이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소명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첫째로 여성의 소명이란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을 꾸리며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고, 둘째로 잉여가치의 생산은 자본의 생산에 필수적인 예비 단계이며, 셋째로 노동자가 생활수단으로 받는 양은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라는 이 사실들은 운동의 법칙과 같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그것들은 마치 관습적으로 외교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지 사회의 일시적인 관습일 뿐이다.

현재 여성의 지위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수천 번 반복되었던 이야기다. 하지만 몇몇 익숙한 지점들을 다시 강조하고 조금은 낯선 지점들 한두 가지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모든 여성과 관련된 일반적 개념이다. 여성의 삶은 남성의 삶과 일치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들의 삶은 서로 교차하지 않으며 대개는 서로 접촉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의 삶은 성장이 멈췄다. 칸트(Immanuel Kant)가 말했듯이 남성과 여성은 결합되었을 때 온전하고 전체적인 존재를 구성한다. 즉 한 성이 다른 성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각 성이 온전하지 않으며 한 성이 가장 통탄할 정도로 미완성이라면, 그리고 전체적으로 남녀 모두가 현실적이고 철저하고 지속적이며 자유로운 정신적 교류가 없다면, 그 존재는 온전하지도 전체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둘째, 단지 특정한 수이긴 하지만 상당히 많은 여성들과 관련된 특별한 개념이다. 어떤 직업들이나 삶의 습관들이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의 과 얼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꼴사나운 주정뱅이들은 걸음걸이와 관상으로 알아볼 수 있다. 거리나 공공건물에서, 그리고 지인들 사이에서 미혼의 여성들이 소위 말하는 어느 정도의 나이를 넘어섰다는 것을 판단할 때 우리들 중 몇이나 머뭇거린 적이 있던가? 미혼 여성에게 예민한 작가들이 특유의 세심한 아이러니로 불확실하다고 부르는 그 나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혼 남성과 기혼 남성은 구분하지 못한다. 여기서 비롯되는 그 다음 질문을 던지기 전에 미혼인 여성들이 차지하는 끔찍한 비율을 되새겨 보자. 예를 들어 1870년 영국에서는 41퍼센트의 여성이 미혼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질문은 단순하고 정당하면서 동시에 그 대답을 들으면 불쾌해지는 그런 질문이다. 어쩌다 우리 여성 자매들은 그들의 주조에 따라 잃어버린 본능, 뻣뻣해진 애정, 부분적으로 살해된 본성이라는 낙인을 지니게 되었는가? 어떻게 보다 운 좋은 남성 형제들은 그런 낙인을 갖지 않을 수 있었나? 여기에는 명백하게 자연법칙이란 없다. 남성들이 가진 이 허가증, 남성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나 여성들은 무겁게 짓누르며 수많은 고귀하고 신성한 결합을 막는 이것은 필연적으로 우리 경제 체제의 결과물이다. 결혼 생활은 도덕과 마찬가지로 상업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사업 계약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친구를 비방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며, 우리의 결혼은 사업적 거래가 되었다.

우리가 여성 일반을 고려하든지 아니면 우울한 요구에 따라 영원한 처녀성을 지닌 슬픈 자매애만을 얘기하든지 우리는 개념과 이상에의 요구를 매한가지로 볼 수 있다. 이 역시 남성에게 의존하고 있는 경제적 지위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생산자로서의 권리를 수탈당해 온 것처럼 여성들도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수탈당해 왔다. 각각의 경우에 그 방법은 착취를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 즉 힘이다.

 

여성은 소수자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소수자이다. 미천한 남편은 아내를 질책할 수 있다. 자녀들에 관한 모든 결정권은 남편에게 있으며 언제 젖을 떼는지까지 남편이 결정한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은 남편이 관리한다. 아내는 남편의 동의 없이는 계약을 할 수 없고 정치 협회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지난 몇 년간 영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훨씬 더 잘 관리되어 왔다는 사실과 최근의 변화는 여성들이 자체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임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독자들은 영국 여성들이 미혼이든 기혼이든 간에 새로 더해진 이 모든 시민권을 가지고도 관행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남성에게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른 문명국들도 상황이 더 나을 바가 없다. 이상한 예외는 러시아로, 러시아 여성들은 유럽의 다른 어디보다도 사회적으로 더 자유롭다. 프랑스의 상층 중간계급 여성들은 영국보다 더 불행하다. 하층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여성들은 영국이나 독일보다 상황이 더 낫다. 하지만 나란히 붙어 있는 민법(Code Civil) 340조와 341조를 보면, 여성에 대한 불의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La recherche de la paternite est interdite and La recherche de la maternite est admise(부권 검색은 금지되어 있으나[역자: 340조] 모권 검색은 허용되는 것이다[역자: 341조]).

사실로부터 직시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아테네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가 했던 말이 진정 오늘날 우리 영국의 중간계급과 상류계급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적법한 자녀들과 충실한 집안의 관리자를 들이기 위해 결혼한다. 우리는 첩들을 하녀로 두어 매일 찾아본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의 기쁨을 위해서는 헤타이라이(Hetairai)를 찾는다. 아내는 여전히 자녀를 낳고 집안을 간수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자신의 나쁜 쾌락을 좇아서 살아가고 사랑을 한다. 이를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결혼 제의는 애정의 첫 표현으로서 남성만이 먼저 해야 한다는 엄격한 사회 규정을 여성에 대한 또 다른 부정으로 들고자 할 때면 우리와 논쟁을 하려 든다. 이는 아마도 보상의 원칙에 따른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면 보통 바치는 건 여성들이고 쌓아 두는 것은 남성들 몫이다. 이것이 자연법칙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의 셰익스피어가 보여 주었다. 사회에 얽매이지 않으며 페르디난드에게 당신이 나와 결혼한다면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될 것이고, 결혼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하녀로 죽겠지요라고 말하는 미란다,35)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에 나오는 헬레나, 그리고 헬레나를 루시용에서 빠리와 피렌체로 데려온 애인 버트람은 콜리지(Samuel Coleridge)의 말처럼 셰익스피어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들이다.

 

자본주의 가정은 끔찍하다

우리는 결혼이 상업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이미 말한 바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는 물물 교환 거래이며,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방식과 수단의 문제가 당연하게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류계급들 사이에서 그 거래는 상당히 노골적으로 행해진다. 런던의 잡지인 ≪펀치(Punch)≫에 나오는 만화의 고르기우스 마이더스 경(Sir Gorgius Midas)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그 잡지의 성격을 보면 그 그림들이 드러내는 모든 공포스러운 것들은 죄가 아니라 사소한 결점으로 그려진다. 하층 중간계급에서는 많은 남성들은 간절해지기 전까지는 가정생활의 기쁨을 부정하며,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책을 가장 좋은 대목에서 닫아 버린다. 그 끔찍한 rerum angustarum domi(가정생활의 좁은 경계) 때문이다.

우리의 결혼 제도가 가지고 있는 상업적 본성의 또 다른 증거는 사회의 다양한 계층에서 혼인을 하는 관례적인 시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삶의 주기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몇몇 특권층 개인들, 왕과 왕족, 귀족들은 자연스럽게 결혼할 시기가 되면 결혼을 한다. 노동계급의 다수는 자연스러운 시기인 젊은 시절에 결혼을 한다. 그 나이 때에 틈틈이 성매매를 이용하는 미덕 있는 자본주의자는 오입쟁이의 부덕함을 장황하게 떠벌리고, 생리학 및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무시무시한 자본주의 체제조차도 당연하고 정상적인 본능 하나를 부수지 못했다는 사실을 흥미로운 증거로 얘기한다. 하지만 이들 둘 사이는 사회 계층으로 갈라져 있으며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결합은 젊음이 최고조를 찍은 후 열정이 식어갈 때라야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이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 준다. 사회는 남성들이 성적 본능을 만족시킬 방법들을 제공하고 인정하고 합법화한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미혼인 형제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거나 무도회장에서 함께 춤을 추고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남성들에게는 용인되는 그런 행동을 한다면 바로 그 사회가 이를 가리켜 천하다고 한다. 또한 평범한 시기에 결혼한 노동계급들에게조차 현 체제하에서 여성의 삶이란 남성보다 더 고되고 짜증 나는 것이다. 낡은 전설의 약속처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36)가 현실화될 뿐 아니라 더 연장된다. 여성은 진통과 슬픔과 다를 바 없이 수년간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휴식으로 스스로를 달래지 못하고 희망으로 미래를 밝히지 못한다. 남성은 노동으로 인해 지쳤을지 모르나 그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 시간이 있다. 여성은 잠이 들 때까지 일한다. 자녀가 어린 경우 여성의 수고는 밤늦게까지 혹은 밤새도록 계속된다.

혼인이 이뤄질 때 모든 것은 한쪽에 유리하고 다른 쪽에는 해롭다. 어떤 사람들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결혼은 현재 법에 의해 인정되는 유일한 농노의 실제 형태라고 쓴 것에 놀라워한다. 우리에게 놀라운 것이란 그가 이 농노를 경제적인 문제 즉 우리 자본주의 체제의 결과로 보지 않고 정서적인 문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여성은 결혼한 후에도 결혼 전처럼 억눌림을 받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여성의 간통은 죄악이나 남성의 경우에는 경미한 실수이다. 남성은 간통을 이유로 이혼을 할 수 있으나 여성은 불가능하다. 여성은 (예를 들어 육체적인) 잔혹 행위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과 결과들이 이어지면서 그렇게 이루어지고 그렇게 수행된 결혼은 굳이 말하자면 성매매보다 못하게 보인다. 그러한 결혼을 신성하다거나 도덕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 모독이다.

 

이혼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이혼이라는 주제가 던져지면, 우리는 사회와 사회를 구성하는 계급들뿐 아니라 개인들이 드러내는 자기기만의 예시를 볼 수 있다. 성직자들은 늙은이를 어린 사람과, 악한 이를 덕 있는 사람과, 누구를 어떤 사람과도 결혼시킬 준비와 자세가 되어 있으며 어떤 광고들이 말하는 바처럼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성직자들이 이혼에 대해서는 가장 근엄한 표정을 들이댄다. 그들이 거듭 승인한 그런 불일치적인 결합에 대항하는 것은 신민의 자유에 대한 간섭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이혼을 용이하게 하는 어떤 것에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신민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다. 이혼은 어떤 경우에도 복잡한 문제인 데다가 이 문제 전체가 일단은 현재 상태와의 관계 속에서, 둘째로는 미래의 사회적인 상태와의 관계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실로 더욱 복잡해진다. 많은 선진적인 사상가들이 이혼을 보다 더 용이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이혼이 최소한 결혼만큼은 쉬워야 한다고, 서로를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계약이 취소할 수 없거나 엄격하게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성격이 일치하지 않고 깊은 희망을 실현할 수 없고 실제로 싫어하는 것으로도 이혼의 충분한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는 이혼의 조건들이 남녀에게 모두 동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것은 훌륭한 주장으로, 남녀의 경제적 입지가 서로 같다는 가정하에서는 실현 가능할 뿐 아니라 정의로울 것이다. 하지만 남녀의 경제적 입지는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주장에 이론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현재 우리의 체제하에서 실질적으로 적용된다면 그 결과는 대부분의 경우에 여성들에게 훨씬 더 불공정할 것이라고 믿는다. 남성은 그것을 이용할 수 있지만, 여성은 개인적인 자산이 있거나 생계수단이 있는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다. 남녀의 결합을 취소하는 것은 남성에게는 자유이지만 여성에게는 본인과 자녀들의 굶주림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사회주의 정권에서는 이혼에 동일한 원칙이 적용될 것인가? 우리의 답은 이렇다. 남성과 여성의 결합은 앞으로 설명될 바와 같이 이혼의 필요를 없앨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성교육이 필요하다

미래를 고려하는 마지막 두 가지를 다루고자 한다. 여기에는 전에 있었던 그 어떤 것에 대한 것보다 더 적대적인 평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지점은 이미 가볍게 언급된 바 있다. 하나는 성적 본능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성적 본능을 다루기 위해 사회가 채택한 방법 전체가 온전히 잘못된 것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우리 아이들은 아이를 어떻게 가지고 낳게 되는지를 질문할 때마다 계속 침묵을 강요당한다. 그 질문은 심장 박동이나 호흡의 움직임에 관한 질문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심장 박동이나 호흡에 대한 대답만큼 임신과 출산에 대한 대답도 쉽고 분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마도 정확하게 언제라고 규정할 수는 없으나 질문에 대한 대답 안에 포함된 생리학적인 설명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몸의 어떤 기능에 대해서라도 잘못된 것이 가르쳐져야 하는 시기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자라나면서 성관계라는 주제 전체가 비밀에 쌓인 수치스러운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그 아이들이 불건전하고 과도한 호기심을 보이는 이유이다. 성관계에 대해 지나친 관심이 쏟아지고 오랫동안 만족되지 못하거나 완전히 만족되지 못하여 병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재생산 기관들은 소화 기관만큼이나 부모와 아이들이 솔직하고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에 대한 반대가 생리학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천박한 편견으로, 최근 한 부모가 학교 위원회 회장에게 보낸 한 편지를 통해 가장 잘 표현된 편견이다. 제발 내 딸에게는 은밀한 곳에 관한 어떤 것도 가르치지 말아 주세요. 그것은 그 애에게 도움이 안 되며 무례한 일입니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이 문제에 있어서 부모님, 선생님, 심지어 하인들에 의한 진실의 은폐나 행위의 암시로 인해 고통받아 왔는가? 우리 각자가 솔직하게 어떤 상황에서 누구의 입을 통해 우리가 부모됨에 대한 진실을 처음 알게 되었는지 말해 보자. 그리고 그것은 아기를 낳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이를 신성하다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어머니는 진통을 겪음으로써 성을 가르칠 신성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나 어머니로부터 그 사실을 듣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또한 우리는 이 문제들에 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해롭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이사벨라 비처 후커 여사(Mrs. Isabella Beecher Hooker)37)를 인용한 베벨을 다시 살펴보자. 자신의 출생을 알고 싶어 하는 8세 된 아들의 끈질긴 질문에 대해 그에게 동화를 지어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실대로 솔직히 말해 주었다. 그 아이는 아주 주의 깊게 그 이야기를 듣더니 어머니가 자신의 출생 때문에 얼마만 한 고통과 수고를 겪었는지 알게 된 그날부터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아이처럼 상냥하고 존경스럽게 자신을 따르며 다른 부인들에게도 그렇게 하더라는 것이다.38) 최소한 한 여성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그 모든 진실을 얘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얘기를 들은 아이들은 전보다 더 깊이, 그리고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

 

성별 분리는 나쁘다

우리는 잘못된 수치심과 잘못된 은밀함에 저항한다. 그러한 수치심과 은밀함으로 인해 아이가 탁아소에서 나오면서부터 성별 간의 불건전한 분리가 시작되어 땅에 묻히는 날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농장 이야기≫를 보면 린들이 이렇게 부르짖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평등했어요. 간호사의 무릎 위에서 갓 태어난 아기로 누워 있을 때. 우리는 다시 평등해질 거예요. 영원한 잠에 들기 위해 입이 막히게 될 때에.39) 이러한 분리는 학교에서도 일어나며 심지어 몇몇 교회에서는 그러한 체제가 은밀하게, 그러나 널리 퍼져 있다. 물론 그것이 최악의 형태로 드러난 것은 수도원과 수녀원이라는 비인간적 기관이다. 하지만 동일한 악이 그나마 보다 덜 악의 있는 형태들로 발현된 것들은 전부 비인간적이다.

평범한 사회에서도 남학생들에 대한 억압적 조치 등, 성별 간의 상호 교류를 가로막고 있는 제약들이 있으며 이는 짓궂은 장난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제약들은 관습적인 대화 주제에서 특히 위험하다. 비록 남성들 스스로는 인지하지는 못할지라도 중간계급과 상류계급 사회의 흡연실에서 오고 가는 대화 등에서 그러한 제약의 결과를 볼 수 있다. 오직 순수한 정신을 가졌거나 최소한 그것을 추구하는 남녀들이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서로를 솔직하게 마주하고 성적 문제에 관해 모든 측면에서 논의를 할 때라야 이 문제에 어떤 희망이라도 보일 수 있다. 동시에, 거듭 말하듯이 이 모든 문제의 기반은 경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자신의 저서인 ≪여권의 옹호≫40)를 통해 일생 동안 계속되는 성별 분리가 아닌 이러한 성별의 뒤섞임을 부분적으로나마 전달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들이 동등한 교육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남성들과 같은 학교와 대학을 다니면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또한 남녀는 유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서로 섞여서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요구는 존 코디 제프레슨 씨(Mr. J. C. Jeaffreson)의 최근 집필에서 눈엣가시인 것이다.41)

아우구스트 베벨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성별 분리로부터 나온 성별 구분의 극단적인 형태 두 가지가 바로 여성적인 남성과 남성적인 여성이다. 평범한 사람들조차 이들을 보면 그 부자연스러움에 대해 완벽히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느끼며 물러서게 된다. 여러 번 언급했던 이유로 여성적인 남성이 남성적인 여성보다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는 양성 관계들을 부자연스럽게 다루고 있고 그 때문에 이러한 두 가지 유형은 병적인 형태들을 철저하게 규명하지 못한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그 병적인 정숙함이 세 번째, 정신 이상이 그 네 번째 형태이다. 다섯 번째는 자살이다. 정신 이상의 경우 몇몇 수치들, 자살은 그 조짐을 살펴볼 것이다. 일단 자살을 먼저 살펴보자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16세에서 21세 사이에 자살을 한다. 물론 상당수는 우리 사회 체제가 범죄의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린 임신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성적 본능이 충족되지 않아서이다. 이는 종종 실연이라는 완곡어법에 가려진다. 아우구스트 베벨의 영역본 47쪽에는 다음과 같이 정신 이상에 관한 수치들이 나온다. 하노버, 1881년, 미혼자 457명에 정신병자 1명, 기혼자 1,316명에 정신병자 1명; 작센, 1백만 명의 미혼 정상 여성에 260명의 미혼 정신병자, 1백만 명의 기혼 정상 여성에 125명의 기혼 정신병자; 프로이센, 1882년, 1만 명의 주민마다 32.2명의 미혼 남성 정신병자, 9.5명의 기혼 남성 정신병자, 29.3명의 미혼 여성 정신병자, 9.5명의 기혼 여성 정신병자.42)

 

정숙은 죄악이다

모든 남성과 여성들은 성을 죽이면 항상 재앙이 뒤따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극단적인 정열은 병이다. 하지만 그 반대 극단으로 건강하고 자연적인 본능을 희생시키는 것 역시 병이다. 양극단에 있는 것은 어느 쪽이나 불쾌하다는 것은 로잘린드가 아덴의 숲에서 조울증에 빠졌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43) 그래도 수천 명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지옥의 불구덩이를 지나 우리 사회 체제라는 몰록신44)에게로 나아간다. 수천 명의 여성들이 속임수에 빠진 채 달마다 해마다 돌아오지 않는 청춘의 오월을 빼앗기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 그리고 여기서는 누가 되었든지 간에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도 주장하고 있는 바는 정숙이란 건강하지도 신성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정숙으로 인해 모든 본능에 대한 억압이 아이를 갖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것을 범죄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범죄는 다른 모든 범죄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피해자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범죄를 저지르고 또 고통을 받도록 유발하는 것이다. 여기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작품 하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가 적은 ≪맵 여왕(Queen Mab)≫45)에의 주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정숙이란 소수의 몇 명이 법에 따라 독점하는 수도사적이고 복음주의적인 미신으로, 가정 내 행복의 근간을 흔들고 인류의 반 이상을 비참함 속에 밀어 넣기 때문에 자연 본성에 대해서 비지성적인 호색보다도 더 큰 죄악이다. 마지막으로 이렇듯 가장 중요한 관계에서, 우리는 이러한 제약은 남성보다 여성들을 더 고통받게 한다는 사실을 거듭 증명하고 있는 의학적 증거들을 불러오고자 한다.

 

성매매는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이 글의 결론부로 가기 전에 또 하나 짚어야 하는 점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체제의 필연적인 결과물인 성매매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성매매라는 악은 몇몇 유럽 국가들에서 인정되고 합법화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덧붙일 것은 성매매를 주로 지지하는 것은 중간계급이라는 자명한 사실뿐이다. 물론 상류계급(귀족)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 흉측한 제도의 대들보는 그 잘난, 존경할 만한, 가장 덕망 있어 보이는 자본가다. 이는 거대한 부의 축적과 사치의 결과적인 습관만은 아니다. 자본에 기반을 둔 사회는 자본주의적인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하며 그러한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최악의 결과물인 성매매는 바로 그 계급에 의해 주로 지지를 받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가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덕에 주목하게 만든다. ≪펠 멜 가제트≫46)를 통해 익숙해진, 특별한 경우에 언급되는 그 주장이 성매매에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성매매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낳은 사회적 조건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자정 회의(Midnight meetings)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 등, 이 끔찍한 문제를 풀기 위한 모든 선의의 시도들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그 노력들이 헛된 것이었음을 절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잉여 노동 인구와 함께 범죄자들과 말 그대로 안타깝게 버림받는 여성들을 만들어 내는 그 생산 체제가 지속되는 한 그런 노력들은 계속 헛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것, 이 자본주의 생산 체제를 없애면 성매매 또한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바란다

여기서 우리의 결론이 나온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일 태양이 뜬다는 것만큼 그것이 올 것이 분명한, 바로 그것은 무엇인가? 이미 코앞에 닥쳤다고 믿어지는 사회의 발전적 변화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결과로서 우리가 예측하는 여성의 지위 변화는 어떤 것들인가? 예언을 하겠다는 생각은 접어 두도록 하겠다. 일련의 현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통해 추론하는 사람은 그 결과로 나오는 필연적인 사건을 예언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그 확실성에 대해 장담할 수 있는 것 이상은 예단할 수 없다. 자유로운 토지 소유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영국과 독일 사회는 봉건 체제에 굴복했고, 다시 봉건 체제는 자본주의에 굴복했으며, 따라서 이전 체제들과 마찬가지로 영구할 리 없는 자본주의 체제 역시 사회주의 체제에 굴복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노예제가 농노제로 넘어가고, 농노제가 오늘날의 임금 노예제로 넘어갔듯이, 임금 노예 체제도 모든 생산수단이 노예 소유주도, 농노의 영주도, 임금 노예의 고용주인 자본가에도 속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그런 상태로 이행할 것이다. 으레 그러한 냉소나 조소에 대해서 고백하건대, 초기 자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세운 체제의 구체적인 형태로 들어갔을 때만큼이나 우리 역시 사회가 사회주의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는 모든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 준비되지 않다. 이 길의 끝에 있다고 믿는 사회의 조건 안에서 세부적인 것들이 정확히 어떨 것인지를 저속하게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흔하지만 너무도 부당하며 이를 통해 그 사회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다. 새롭고 위대한 진실을 상세히 늘어놓는 사람들이나 그 추종자들은 그 모든 진실을 궁극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뉴턴이 발견한 중력을 적용하여 해왕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중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같은 것이지 않을까? 혹은 본능이 어떤 어려움들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부정하는 사람들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즉 언제나 아무 내용 없이 무심한 태도로 생산수단의 사회화에서 온갖 문제와 비참함이 발생할 거라 주장하면서 그 때문에 오늘날 부패한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더 심각한 상태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 실현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 베벨을 살펴보면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그의 저작이 이끄는 바에서 시작하여 우리 자신의 사유를 펼쳐 왔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해서도 기꺼이 감사하게 그를 다시 인용하고자 한다.

생산수단이 공동체의 자산인 사회, 성차별이 없이 전적인 평등을 인식하는 사회, 모든 종류의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향상이나 발견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 현재는 비생산적이거나 유해한 것으로 간주되는 활동을 하는 이들, 즉 나태하고 게으르다고 불리는 사람들 모두를 노동자로 만들고, 필요노동시간을 최소화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육체적 조건을 가능한 최고로 올리는 사회47)가 그것이다.

우리는 토지와 다른 모든 생산수단에서 사유화된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이를 향한 첫걸임을 우리 자신에게는 물론 우리의 적대자들에게도 숨긴 적이 없다. 이와 함께 지금과 같은 형태의 국가는 소멸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국가 권력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우리가 원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그 뒤를 이은 상태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현재 국가란 현재의 소유 상태와 사회 규율을 유지하기 위한 강제적 조직이다. 국가가 대변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월급을 주는 자리를 다투어 차지하려고 하는 소수의 중간계급 및 상류계급들이다. 굳이 추한 역사적 집단을 가리키는 국가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면, 사회주의의 국가는 노동자 집단의 조직된 역량이 될 것이다. 국가 관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낫지도 더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비통함을 주며 대부분의 경우 그 비통함의 경제적인 원인도 알지 못한 채 고뇌하게 만들었던, 머리를 쓰는 노동과 손을 쓰는 노동 사이의 대립, 즉 예술과 노동 사이의 분열 역시 사라질 것이다.

 

미래의 여성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미래의 여성이 갖는 지위, 그래서 결국 인류의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한두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또 다른 것들은 우리 각자가 각각의 지점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은 있겠지만 사회가 발전해 갈 때야 비로소 명확하게 결정지어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성별의 구분 없이 모두가 평등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독립적이 될 것이다. 여성들은 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기회에 있어서 남성들과 동등할 것이며, 남성과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면(그리고 얼마나 여성의 수가 그렇게 늘어날 것인지!) 공동체의 요구를 위해,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한 시간,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을 사회적 노동에 할애할 것이다. 그 후에는 자유로이 예술이나 과학에 매진하고, 가르치거나 글을 쓰고, 어떤 형식으로든 낙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성매매를 존재하게 만들었으며 오늘날 필수적인 것으로 만드는 경제적 조건들이 사라지면 그와 함께 성매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에서의 남녀

사회주의 국가에서 일부일처가 될지 다부다처가 될지는 개인적인 의견에 한정되는 세부 내용이다. 그 질문은 자본주의 체제의 뿌연 안개와 유독한 기운 안에서 해결되기에는 너무 방대하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일부일처제가 일상적이 될 것이라고 본다. 남녀의 수는 대략 비슷하며, 두 사람의 삶이 온전히, 조화롭게, 오래도록 뒤섞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거의 볼 수 없는 그러한 이상을 위해서는 최소한 네 가지의 것들이 필요하다. 바로 사랑과 존중, 지적 유사성, 그리고 생활필수품에 대한 운용력이다. 이 네 가지 각각이 지금 우리가 살아 내고 있는 체제보다 앞으로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체제에서 훨씬 더 실현 가능하다. 마지막 조건, 즉 삶에 필요한 것들을 운용하는 능력이 나머지 모두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입쎈(Henrik Ibsen)이 헬메르로 하여금 노라에게 말하게 했던 바처럼, 꾸고 빚지는 집안에는 어떤 부자유하고 아름답지 못한 무엇이 오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꾸고 빚지는 것은 그 사람이 공동체의 일원이며 혼자서 싸우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지적인 유사성은 어떤가. 남녀 모두를 위한 동등한 교육이 주어지고 남녀가 서로의 곁에서 함께 자라며 마침내 혼인을 하게 되면 지적인 유사성은 한층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반동적인 생산물인 앨프리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사우보(思友譜, In Memoriam)≫에 나오는 젊은 여성은 자신이 말했던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할 뿐이라는 말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 사회라는 상업적 체제의 산물인 죄악과 잘못들로 인해 부족하고 사라져 버린 사랑과 존경은 더 쉽게 찾아오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남녀 간의 계약은 어떤 공무원도 끼어들지 않는, 순전히 사적인 성격의 것이 될 것이다. 여성은 더 이상 남성의 노예가 아니라 동등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혼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일처제가 가장 알맞은 사회 형태라는 우리의 의견이 맞건 틀리건 간에, 어쨌든 관계에 있어서 최상의 형태가 선택될 것이며 그것은 분명 현재 우리보다 더 무르익고 풍부한 지혜에 의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 선택이란 것이 오늘날 슬픈 우리 시대의 매매혼과 일부다처제가 아님을 확신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남녀 간의 관계를 망치는 여러 저주들 가운데 가장 큰 두 가지 저주가 사라질 것임을 확신한다. 그것은 바로 남녀를 서로 다른 존재로 대하는 것과 진실의 부재이다. 더 이상 남성을 위한 법과 여성을 위한 법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만약 미래의 사회가 오늘날 유럽 사회와 마찬가지로 남성이 아내 외에도 정부를 두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다면, 분명 여성 쪽에서도 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영국의 거의 모든 가정생활을 조직적인 위선으로 만드는 그 지속적인 거짓말, 흉측한 위장술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공동체가 성숙하게 숙고하여 내린 의견에 따라 최선이라고 판단된 것은 무엇이든지 공정하고 공개적으로 수행될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오늘날에는 거의 하지 못하는 것, 즉 서로의 눈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분명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함께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의 마음속에서 서로를 찾고 서로의 눈에서 자신의 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노사과연

 

 


 

1) 많은 이들이 이 글을 맑스의 딸인 엘리노아 맑스의 글로 간주하며 에이블링과의 공동작으로 보지 않는다. 엘리노아 맑스는 평생 정열적으로 여성 문제에 대해서 논쟁을 했고, 여성 노동자들 조직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조직했던 맑스주의자이다. 에드워드 에이블링은 공동 필자로 명기되었지만 엘리노아 맑스의 삶을 파괴하였다. 많은 이들이 집필 당시에도 엘리노아 맑스가 자유 결합한 동반자로서 에이블링에 대해서 가지는 선의에 의해서 에이블링을 공동 필자라고 발표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옮긴이는 엘리노아 맑스 생전에 에이블링과 공동 필자로 이 글을 발표한 것을 존중하여 에이블링을 공동 필자로 두기로 한다.

 

2) 원문에는 소제목들이 없으나, 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옮긴이가 소제목을 단 것이다.

 

3) Eleanor Marx Aveling, “A Doll’s House Repaired”, 1891. <https://www.marxists.org/archive/eleanor-marx/1891/dolls-house-repaired.htm> 이 속편에서 노라는 남편의 훈계에 따라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남편 헬머는 아내를 버릴 수도 있지만 체면을 유지하고자 오빠와 동생 사이로 한집에서 사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다. 노신은 노라가 집을 나가서 갈 곳이 없어 창녀가 되었다는 영국인이 쓴 희곡도 있다고 알려 주면서 여성인 노라의 문제는 경제권의 문제가 가장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노신,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이욱연 편역, 도서출판 창, 1991, pp. 70-80. 현재에도 노라의 패러디는 계속되고 있다. 엘프리데 옐리네크, ≪노라가 남편을 떠난 후 일어난 일 또는 사회의 지주(支柱)≫, 강창구 역,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3.

 

4) “Eleanor Marx’s report on Clara Zetkin at the Gotha Congress”, 1896. <https://www.marxists.org/archive/eleanor-marx/1896/10/gotha.htm>

 

5) Ernest Belfort Bax, The fraud of feminism, Grant Richards Ltd, 1913.

 

6) E. Belfort Bax, “Mr. Belfort Bax Replies to his Feminist Critics”, The New Age, 8 August 1908(Retrieved 3 January 2013). <https://www.marxists.org/archive/bax/1908/08/reply-feminists.htm>

 

7) Eleanor Marx, “Exchange with Bax, on the woman question”, November 1895. <https://www.marxists.org/archive/eleanor-marx/1895/11/bax-exchange.htm>

 

8) 이 미소지니스트는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조차도 반대하여 1896년에 ≪남성의 종속(Subjection of Men)≫을 쓰기까지 했다.

 

9)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 정홍섭 역, 좁쌀한알, 2018.

 

10) 칼 맑스, “노동자 의회에 보내는 서한”,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2권, 박종철출판사, 1992.

 

11) 칼 맑스, “1856년 4월 14일 런던 󰡔인민 신문󰡕 창간 기념 축하회에서의 연설”, 같은 책.

 

12) 영국 노동당에서 맑스주의자들이 배제되어 가면서 영국 노동당이 창당되는 과정을 알아보려면 최재희, ≪영국 노동당 창당기 사회주의 진영의 민주주의관≫, 고려대 사학과 박사 논문, 2001. 하인드먼의 사회민주연맹, 케어 하디의 독립노동당, 블래치포드의 ≪클라리온≫ 운동이 모두 지리멸렬해 가는 과정이 잘 나온다. 이를 읽으면 페이비언 협회가 영국 노동당의 주축이 되는 배경을 알 수 있다.

 

13) 김명환, ≪영국 무정부주의 연구≫, 혜안, 2018, p. 62.

 

14) “Robert Graham’s introduction to General Idea of Revolution”, Retrieved 24 November 2010, p. 21. <dwardmac.pitzer.edu> 머레이 북친은 아나키즘의 역사를 다룬 책인 Murray Bookchin, The Third Revolution, Vol. 2, 1998에서 로버트 그래험의 이 글이 쁘루동의 사상을 가장 잘 소개했다고 하였다.

 

15) 엘리노아 맑스가 이 글을 내고 난 다음 해에 소유자가 바뀌면서 저널의 성격은 자유주의자로서 가지는 진보성조차도 상실하게 되었다.

 

16) 강준호, ≪제러미 벤담과 현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9.

 

17) 당시의 영국 정치 속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알려면 다음을 참조하라. 이남희, “제9장 자유주의의 모델로서의 영국 의회 개혁”, 이혜령 외 16인, ≪유럽 바로 알기≫, 지식의 날개, 2006.

 

18) 이 개념에 대해서는 “덧붙이는 글”에서 설명하겠다.

 

19) 마리 M. 멀래니, “제3장. 엘리너 마르크스 비극적 여성혁명가”, ≪여성과 혁명운동≫, 장정순 역, 두레, 1986, p. 134에서 재인용.

 

20) 스즈키 주시치, ≪엘리노어 마르크스≫, 김욱 역, 프로메테우스, 2006, p. 284.

 

21) 마리 M. 멀래니, 앞의 책, p. 141.

 

22) 같은 책, p. 116.

 

23) 박미선, “해제: 현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역사와 교차성 이론”, 낸시 홈스트롬 편, ≪사회주의 페미니즘≫, 유강은 역, 따비, 2019, p. 756.

 

24)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김대웅 역, 두레, 2012, pp. 94-95.

 

25) 엘리노아 맑스의 전기는 다음과 같다. 스즈키 주시치, ≪엘리노어 마르크스≫, 김욱 역, 프로메테우스, 2006.; Yvonne Kapp, Eleanor Marx(Vol. 1)―Family life 1855-1883, Virago, 1972.; Yvonne Kapp, Eleanor Marx(Vol. 2)―The Crowded years 1884-1898, Lawrence and wishart, 1976.; Rachel Holmes, Eleanor Marx: A Life, New York: Bloomsbury USA, 2015.; Siobhan Brown, Rebel’s Guide to Eleanor Marx, Bookmarks Publications, 2015. 일반적으로 읽히는 것은 스즈키와 이본느의 책이고 그 역사적 정확성에 있어서 호평을 받는 것은 스즈키의 전기이다. 이 연보에서 아나키즘과 관련된 부분은, 김명환, 앞의 책, p. 53을 참조하였다.

 

26) Prosper Olivier Lissagaray, History of the Paris Commune of 1871, 1876. (Gutenberg Project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27) https://en.wikisource.org/wiki/Madame_Bovary_(Marx-Aveling_translation)

 

28) 칼 맑스, ≪자본론≫ 제1권 제1분책, 채만수 역, 노사과연, 2018, p. 43.

 

29) G. V. Plekhanov, Anarchism and Socialism, Minneapolis: New Times Socialist Publishing Co., 1895. <https://www.marxists.org/archive/plekhanov/1895/anarch/index.htm>

 

30) 에이블링이 평생에 걸쳐 엘리노아 맑스에 행한 악마짓거리를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라. 스즈키 주시치, “12. 파국”, 앞의 책.; 마리 M. 멀래니, “제3장. 엘리너 마르크스 비극적 여성혁명가”, 앞의 책, pp. 144-147.

 

31) 베벨은 1877-78년 프로이센 군국주의 반대 발언으로 6개월간 투옥되었을 때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1879년 ≪여성과 사회주의(Die Frau und der Sozialismus)≫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출판 당시에는 180쪽의 짧은 분량이었다. 엘리노아 맑스가 1886년의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어판은 1884년 엥엘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의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베벨은 1884년 엥엘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 나온 후 이 책에 대한 대폭 수정에 들어갔고, 1890년 사회주의 진압법이 폐지된 후에는 대폭 수정된 19판을 내었다.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10년에 나온 50판이다. 1913년 베벨 사망 시에는 5개국어로 번역되었고 현재는 5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엘리노아 맑스가 언급하고 있는 이 책의 영어판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다. August Bebel, Women in the Past, Present, and Future, H. B. Adams Walther, London: Reeves, 1885, San Francisco: G. Benham(US Edition), 1897.

 

32) 프랜시스 베이컨, ≪학문의 진보≫, 이종흡 역, 아카넷. 2002, p. 78.

 

33) 1864년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으로 군대에서 성병의 관리법이다. 이 법은 경찰이 여성이 성매매를 한다는 의심이 들면 체포할 수 있고 강제로 검사를 한 후 폐쇄된 병동에 가두어 둘 수 있게 하였다. 이 법이 내세우는 아내와 아이들을 지킨다는 명분 뒤에는 ‘건강한’ 창녀를 군대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34) [편집자 주] 이 글에서 말하는 중간계급(middle class)은 자본가계급, 즉 부르주아지를 의미한다.

 

35)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The Tempest)≫에 나오는 내용이다.

 

36)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신에게 들은 말이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창세기 3:16-17.)

 

37) 이사벨라 비처 후커(Isabella Beecher Hooker).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의 이복 언니이기도 하다.

 

38)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 이순예 역, 까치, 1990, p. 327.

 

39) Ralph Iron(Olive Schreiner), The story of an African farm: a novel, Chicago: M. A. Donohue, 1883, p. 231. 남아프리카 백인 여성 작가인 올리브 슈라이너가 1883년 발표한 데뷰작으로 첫 번째 여권주의 소설들 중 하나로 꼽히며 작중 인물인 린들(Lyndall)은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여권주의의 형상이다. 올리브는 1911년에 발표한 ≪여성과 노동(Woman and Labour)≫에서 사회주의와 성평등에 대한 예언자적 모습도 보여 주었다. 그녀는 엘리노아 맑스의 친구이기도 하다.

 

40) Mary Wollstonecraft,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St. Paul’s church yard, 1792. 번역서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 손영미 역, 연암서가, 2014.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아나키즘 운동의 선구자인 윌리엄 고드윈과 결혼하였다. 1797년 그녀는 딸을 낳고 난 후 11일 뒤 사망하였다. 다음 해 고드윈이 쓴 그녀에 대한 회고록(Memoir)이 나왔는데 고드윈은 사랑을 담아 썼지만 고드윈과 결혼하기 전 낳은 사생아 이야기 등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그녀의 삶을 공개해 버려서 혹독한 비난에 말려들게 하였다. 그녀와 고드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결혼한, ≪프랑켄쉬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이다.

 

41) John Cordy Jeaffreson, “Chapter 2. Mary Wollstonecraft”, The Real Shelley. New Views of the Poet’s Life, Vol. 2, London: Hurst and Blackett, 1885. 이 책 곳곳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언급하나, 특히 이 장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42) 현재 우리가 보는 50번째 판에는 이 내용은 사라졌다. 50번째 판에서는 정신병자에 대해서 언급되기는 하나, 남녀의 뇌 무게 차이를 통해서 남녀의 신체적 정신적 자질의 우위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비판하기 위해서 정신병자의 뇌 무게가 무겁다는 당시 통설을 잠시 언급할 뿐이다. 아우구스트 베벨, “제14장 교육을 위한 여성의 투쟁 3. 남녀의 신체적, 정신적 자질의 차이”, 앞의 책, p. 273.

 

43)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로잘린드는 궁정에서 쫓겨나 남장을 하고 아덴의 숲에서 살았다. 올란도는 남장을 하기 전인 로잘린드를 보고 한눈에 반했지만 남장을 한 로잘린드를 알아보지 못한다. 남장한 로잘린드는 올란도에게 자신을 상대로 고백 연습을 시킨다. 그렇게 지내던 시기에 로잘린드는 조울증에 빠진다. 이후 올란드가 사자와 싸우다 부상을 입자 정체를 드러내고 올란도와 결혼을 한다.

 

44) 몰록(Moloch). 바빌로니아에서 명계의 신, 가나안에서는 일월성신으로 알려진 신이다.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열왕기하 21:5-6.) 아이들을 불에다 바치는 인신공희를 요구하는 신이기에 무자비한 희생을 요구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45) Percy Bysshe Shelley, Queen Mab; A Philosophical Poem; With Notes, london, 1813. 후에 장인이 되는 윌리엄 고드윈의 사상적 영향력 아래 정치적 이상을 담아서 쓴 시로 1813년 발표되었다. 이 시를 발표한 무렵 메리 고드윈과 친해져서 3년 뒤 결혼한다.

 

46) ≪펠 멜 가제트(Pall Mall Gazette)≫. 탐사 보도를 개척한 언론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보면 셜록 홈즈가 광고를 내는 신문으로 되어 있다. 편집장 W. T. 스테드(W. T. Stead)가 활동하던 시절에 “저널리즘에 의한 정부”를 주장하였고 구체적인 성과로는 아동 성매매 근절, 성적 동의의 연령을 13세에서 16세로 올리는 법안을 통과하는 데 기여를 했다.

 

47) August Bebel, “2부 현재의 여성” 중 “여성의 상업적 지위, 정신 능력, 공동체의 다윈주의와 사회적 조건”, op. cit., p. 83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가 보는 50판에는 이 구절 그대로는 없다. 50판까지 오면서 많은 부분들이 개정되면서 풍부해졌다. 이 개정 과정을 알기 위해서 50판의 “4부 21장 사회주의 사회의 기본 법칙들”에서 “7절 누구에게나 균등한 노동의 의무” 중 “게으름뱅이”에 관한 구절을 보자. “해고된 뒤로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결국 건달이 된 사람이나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성장하여 타락한 사람을 사회에서는 “게으름뱅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돈방석 위에 앉아 무위도식과 사치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을 두고 게으름뱅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큰 무례를 범하는 일이다. 그들이야말로 반드시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새로운 사회에서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삶의 조건하에서 자신을 계발하고 또 누구나 각자 자신의 소질과 재능에 알맞는 분야에서 일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별 성취도의 차이는 아주 미미한 정도에서 그친다.”(아우구스트 베벨, 앞의 책, pp. 42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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