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인터뷰] “노동조합 운동을 넘어서, 노동 운동으로”―천연옥 부산지회장 인터뷰

 

정리: 김해인(편집출판위원장)

 

 

올겨울 들어서 가장 따뜻했던 지난 2월 11일 오후, 요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활동 중인 천연옥 부산지회장을 지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날도 천 지회장은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13주기 추모 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회의에도 참석한 후 사무실로 왔다.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추모 집회’에서

 

 

김해인(이하, 김): 먼저 인사 부탁드릴게요.

천연옥(이하, 천): 안녕하세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기관지 ≪정세와 노동≫을 구독하시는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2018년부터 부산지회장을 맡고 있는 천연옥이라고 합니다.

 

김: 지회장 동지는,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였는지요?

천: 제가 (2개월 정도 학교에 다니다가 재수를 하고) 84년도에 대학에 입학했으니까, 80년대 학생 운동 세대였고, 학생 운동을 통해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80년대 말에 신발 공장을 조금 다니다가, 그 뒤에는 부산지역에 있는 지역 단체에서 활동을 했고요.

 

김: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 비정규위원장도 꽤 오래하셨고, 천 지회장이 비정규직 운동을 오래하신 걸로 아는데요.

천: 일하던 노동 단체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을 좀 해 가지고… 선배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후배들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으로 보는 운영 방식에… 후배라고 하더라도, 자기 인생을 걸고 운동을 하기 위해 활동을 하고 있는데, 구상은 자기들이 하고 실행은 우리들이 하는 그런 방식으로, 그러니까 활동가로서 대접해 주지 않는 것, 동등한 활동가로서 발언권이 없는 것 등등.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에서도 비민주성 이런 것들 때문에, 아무튼 안 좋게 그 단체를 그만두었고, 운동을 포기한 거죠, 92년쯤 당시에는.

 

이 부분에서 몇 년 전 있었던 모 단체(노조)의 사건이 떠올랐다. 거기는 상당히 큰 조직이긴 했지만, 천 지회장이 말하는 이런 문제 때문에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내부 상황을 폭로하며, 조직을 탈퇴하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까지 들어가면 그 사건의 진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단체 외에도 천 지회장이 말하고 있는 방식으로 여전히 여러 조직ㆍ단체들이 운영되고 있고, 이것은 우리 운동이 극복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천: 활동을 접고 보니, 학생 운동을 하느라 대학을 졸업 못 해서, 돈을 벌려고 하니까,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더라고요. 87년도쯤 민주화 투쟁 이후에 복학하라고 통지서가 왔었는데, 그때는 제가 살면서 대졸 졸업장이 필요할 거라 전혀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복학을 안 했었는데… 학사고시라고 대졸 검정고시가 있어요, 그래서 95-96년 공부를 해서, 97년 2월쯤 대졸 자격증을 따고, 그때부터 학습지(대교 눈높이)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한 5년간 학습지 교사를 했지요.

 

97년도에 눈높이 교사가 되었는데, 눈높이 교사가 노동자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천: 학습지 교사가 된 것은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서였고,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요. 97년도에 눈높이 교사가 되었는데, 눈높이 교사가 노동자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학습지라는 것이, 돈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고, 그때 당시 눈높이 국어 가격이 한 달에 2만 2천 원인가 했는데, 학원비ㆍ과외비에 비하면, 저소득층이 그나마 사교육에 동참할 수 있는 통로였어요. 그래서 내 딴에는 엄청 열심히 했는데. 그때 또 IMF가 터지고, 많은 사람들이 학원을 끊고, 학습지를 해서, 학습지가 당시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었어요.

 

천: 아무튼 이렇게 처음에는 학습지 교사가 노동자라는, 노동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학습지 노조가 생긴 거예요.

학습지 노조가 99년 재능에서 처음 생기는데, 이후에 대교 눈높이에도 노조가 생겼고, 그래도 내가 한때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내가 다니는 직장에 노조가 생기는데 가입을 안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노조에 가입했어요.

그리고 2000년쯤에는 민주노동당 부산시당에서 선전위원장으로 ≪진보 부산≫ 이런 기관지도 만들고 있었고, 부산 북강서지구당에서 수석 부위원장도 하고 있었고, 지역 의견그룹인 <진보정치연구회> 회장도 하면서, 그런 활동들을 하고 있었는데, 눈높이 노조가 생겨 가지고, 2001년도에 노조에 가입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세상에, 부산에 대교 학습지 교사가 엄청나게 많은데, 조합원이 4명밖에 없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가입만 할 생각도 없잖아 있었는데, 노조 활동을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인 거예요. 조합원이 4명밖에 안 되니까.

 

천: 눈높이가 우체국 다음으로 지역에 조직이 많아요. 동네마다 우체국 다음으로 거의 새마을금고 수준으로… 그래서 부산에만 여러 수십 개나 되는 지점들이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고, 위탁 계약이었어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 대교출판에 강성 노조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사측이 이 노조를 깨면서, 학습지도 사업부제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운영했다고 해요. 물론 사업부제가 운영되기 전에 직원일 때도, 원래 눈높이 학습지는 성과급 체제로 운영되기는 했어요.

예를 들면, 1과목당 2만 원인데 수수료를 40%로 하면 8천 원이잖아요. 그럼 100과목이면, 80만 원 이렇게 임금이 책정되는데, 회원 10명을 늘리면 수수료를 41%로 하는 거예요. 그러면 82만 원이 되죠.

그래도 이때는 직원이었고, 4대 보험이 다 되고, 일반적인 노동자로서의 기본권도 다 있었는데, 사업부제를 시행한 거죠.

사업부제는 어느 한 지역을 당신이 사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LG 아파트 206동, 207동은 당신 교실이다. 그리고 그 교실에 대한 위탁 계약서를 작성해 가지고, 처음 입사를 하면, 제가 들어갈 때는 37%로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기존 직원들이 사업부제로 안 가려고 하니까 처음에는 수수료 55%를 주고, 다 사업부로 전환했어요. 그리고 기존 직원들이 힘들어서 그만두면 새로 계약하는 사람들은 37%로 시작하고요.

제가 입사했을 때는 이미 직원은 몇 명 없었고, 기존 직원들은 사업부제 교사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었어요.

 

천: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생긴 거죠. 우리 지점에 매주 월요모임이 있었는데, 저는 직원도 아니고, 노조도 못 한다고 하면서 무슨 월요모임이고! 하면서, 다른 지점에 선전전 하러 다녔죠. 그리고 전국 노동자대회 할 때, 목에 칼 쓰고, 비정규직 철폐 이런 것도 하고,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 운동 중에서도 내가 속해 있던 현장이었기 때문에, 특수고용을 먼저 시작하게 된 거죠.

 

이후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특위 간사, 여성연맹 부산지역 조직부장, 공공노조 부산공공서비스노조 사무국장, 공공노조 부산본부 사무처장, 민주노총 부산본부 부본부장ㆍ비정규위원장, 부산일반노조 수석 부위원장으로 활동

 

천: 그런데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2002년도 1월인가,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2002년 3월에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가요. 알고 보니까 뇌하수체 종양이라고, 뇌하수체가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기관인데, 여기에 이상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수술을 3번 했는데, 한쪽 눈은 실명을 하게 되고…

그때 비정규직 운동을 하면서, 일반노조 위원장 출신 정의헌 동지가 민주노총 부산본부 본부장으로 선거에 나가면서, 당선되면 비정규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하고, 저도 선거 운동을 같이하고 했어요. 그런데 정의헌 동지가 당선되고 2002년 1월부터 임기가 시작되었는데, 저는 아파서 병원에 있었죠. 그리고 8월부터 병원에서 나와 가지고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특위 간사를 했어요.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특위 간사로 활동하면서, 부산대 청소경비노조, 해양대 청소노동자노조 등 부산지역에서 최초로 청소용역 노동자 조직화에 기여하기도 했었죠.

 

천: 2003년에, 서울, 대구, 인천지역의 지하철 청소용역노조를 만든 여성연맹이 부산지하철을 조직하겠다고 민주노총 부산본부에 제안을 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2003년 1월 15일자로 여성연맹 부산지역 조직부장이 되었고, 2월 3일 부산지하철 청소용역노조를 띄우죠. 2월 6일 설립 신고증을 받았고요.

1천 명의 청소 노동자들 중에 17명이 가입된 상태에서 노조를 띄웠어요. 그때는 왜 그랬냐 하면, 복수노조가 없었을 때라, 사측이 노조를 탄압하는 방식이 현장에 무슨 움직임이 있다 싶으면, 유령노조를 먼저 띄우는 거였는데, 그러면 우리가 합법적인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길이 보장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때는 유령노조를 막기 위해서 소수지만 노조를 띄우자고 해서, 그렇게 했죠. 그렇게 해서 여성연맹 부산지하철 청소용역노조가 탄생하게 된 거죠.

 

천: 그런데 여성연맹에서 운영과 관련해서 조금 갈등이 있었고, 지하철 정규직하고 관계도 있고, 공공연맹으로 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왔고, 그래서 여성연맹을 탈퇴하고, 공공연맹으로 가게 되요.

공공연맹으로 갈 때, 공공연맹에서 요구했던 거 뭐냐면, 그때 공공연맹에서 한창 지역공공서비스노조를 논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하철 청소용역뿐만 아니라, 지역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조직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자. 지하철 말고 다른 공공부문 노동자들도,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그릇이 되어 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래서 노조 이름을 2006년 정도에 공공연맹 공공서비스노조로 바꿔요.

그랬는데, 공공연맹이 산별 전환을 하게 되고, 2007년부터 공공노조 부산본부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공공노조 부산본부 사무처장과 공공노조 부산공공서비스노조 사무국장을 겸임해서 활동하게 되었죠.

 

천: 그런데 2009년에 부산공공서비스노조가 공공노조를 탈퇴하고 지하철노조 서비스지부로 갔어요. 그래서 2009년 공공노조 부산본부 사무처장 임기가 끝났는데, 저는 돌아갈 현장이 없어진 거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지역의 노동전선 회원들 하고 의논도 하고 해서, 민주노총 부산본부 부본부장에 나가게 되었어요.

운동은 해야 하는데, 현장도 없고, 몸이라도 건강하면 진짜 현장에서 일이라도 하겠지만, 아무튼 지역에서 역할은 해야겠지 해서, 부본부장에 나가게 되었고, 2010년, 11년 민주노총 부산본부 부본부장으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2002년에 만들었던 비정규위원회(당시에는 비정규특위)가 제가 지하철 청소용역노조로 가면서 챙기는 사람도 없어서 유야무야되어 있었어요. 비정규위원장도 없고, 회의도 없고, 활동이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2011년도에 비정규위원회를 다시 만들고, 저는 비정규위원장을 맡게 돼요. 그래서 2011년은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위원장 겸 부본부장이었고, 이후 2012년부터 17년까지는 비정규위원장만 맡았고요. 2015년부터 18년까지는 부산일반노조 수석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했고요. 그리고 2019년부터 완전 프리하게 되고, 지금은 노사과연 부산지회장을 하고 있어요.

 

2017년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위원장 당시, 성북초등어린이집 문제 해결,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공공성 실현 촉구 결의 대회에서

 

현재, 노사과연 부산지회장, 부산지역 사회연대기금 만원의 연대 실무 운영위원,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공대위 소속 부산일반노조 이주사업 담당자로 활동

 

김: 요즘 지회장 활동하는 걸 보고, 누구는 분신술을 쓰냐고 할 정도로 동분서주, 종횡무진하고 계신데요.

천: 2018년부터 노사과연 부산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지회에서는,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세균무기추방 부산시민대책위, 풍산대책위, 국가보안법철폐 부산공동행동 등에 결합하고 있어요.

세균무기나, 풍산이나 대부분 활동들은 이미 ≪정세와 노동≫에 실려 있어서, 따로 말씀드릴 건 없을 듯하고요.

우리 지회 회원들은 제가 너무 밖에 일만 해서 내실을 못 다진다고 비판을 하곤 하는데, 저는 연대 활동이 중요하다고 보고,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업들 중에 우리 지회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는 연대 사업은, 국가보안법철폐 부산공동행동인데, 이 사업은 우리 지회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노사과연 부산지회를 중심으로 해서 진행되고 있어요.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째 되고 있는데, 많은 활동가들이나 단체들이 인정하고 있는 사업이에요.

국가보안법 철폐 부산 선전전 (2월 21일, 부산 서면)

 

천: 그리고 지하철 청소용역노조를 만든 사람으로서, 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곳에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연대하고 있고, 또 집회가 있을 때도 가고요.

 

부산지하철 청소 노동자 직접고용 투쟁 선전전 (1월 23일, 부산시청)

 

천: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는, 2013년에 생겼는데, 부산지역 사회연대기금 만원의 연대 실무 운영위원이에요. 해고자들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장기투쟁사업장 지원과 활동가들 의료비 지원 사업까지 하고 있어요.

해고자들 상황을 항상 살펴야 되고, 그래서 투쟁 사업장은 어디든지 가려고 하고, 항상 투쟁 사업장을 살펴보고,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를 물색하고, 그래서 필요한 동지가 있으면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항상 지역의 투쟁과 해고가 있는 곳에 제가 있는 거죠.

해고라는 것이, 사업장에서 가장 열심히 투쟁하는 사람이 해고되는 것인데, 조합원들이 해고자를 모른 척하거나 버리는 것은, 이거는 완전히 배신인데, 어쨌든 이 해고자들이 힘든 상황을 버티려면 생계비가 지원이 되어야 되는데… 쌍용차에서 스물 몇 명이 죽는 걸 보면서, 해고자들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 사업이 출발하게 된 거죠.

 

모범 사례, 아쉬운 사례, 그리고 평가

 

김: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 오셨고, 또 하고 계신데요. 혹시 기억에 남는 모범적인 활동이나 반대로 아쉬웠던 활동이 있으신지요?

천: 모범 사례를 생각해 보면, 2012년 비정규 실천단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요. 녹산 공단이나 대학 청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었어요. 보통 4명 정도가 모여 가지고, 일주일에 한두 번 부산에 있는 전 대학을 다 다녔어요.

유인물을 만들어 가지고, 부산지역 대학에 청소미화원 대기실을 돌면서, 노조를 만들자, 노조가 있어야 된다, 앞에서 말한 지하철 청소용역노조 사례를 들면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좋아졌다고, 노조 가입하자고 설득을 했지요. 그래서 신라대, 동의대를 조직했는데, 신라대, 동의대가 되고서는, 그 사례를 가지고 또 다른 대학에 가서 설득을 했어요.

그 사람들이 지금 부산지역 일반노조 대학지부인데, 일반노조의 주력이 되었지요.

비정규 실천단이라는 것이, 그전 민주노총에서 조직하는 것이, 상담소에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다시 말해서 앉아서 기다리는 조직화였는데, 실천단은 우리가 직접 뛰어들어서, 몸을 움직여서 하는 사례였고, 실제로 성과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어요.

 

천: 2017년도 상황인데, 그렇게 부산지역을 전체적으로 돌다가 부경대에서 노조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때가 문재인 정권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이 나왔을 때예요. 이 사람들이 60명이 한꺼번에 가입했으니, 신라대 30명, 동의대 30명, 일반노조 사업장이 보통 십여 명 정도니까, 엄청나게 큰 사업장이 되었죠.

그런데 2018년도에 정규직 전환이 되면서, 일주일 만에 노조를 탈퇴하고, 민주노총에서 탈퇴한 국립대 노동조합으로 갔어요.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조건으로 정규직 전환이 되었는데, 일반노조에서 부경대 담당자도 저였고, 교섭도 제가 갔고, 노ㆍ사ㆍ전문가협의회도 제가 했고, 간부 교육도, 조합원 교육도 제가 했는데, 정규직 전환 일주일 만에 탈퇴를 하니, 힘이 쫙 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일반노조 부위원장을 더 이상 못하겠더라고요. 2018년도에 임기가 끝나면서, 일반노조 부위원장을 그만두었어요.

다 제가 조직 관리를 잘못한 거겠죠. 또 거기서도 달콤하게 이야기를 했겠지요. 시간이 지나서 들은 이야기는, 노조를 통해서 얻었던 것들은 다 예전으로 돌아갔다고 하더라고요. 직접고용이 되었다는 것뿐이지, 근로 조건은 예전 노조 없을 때하고 비슷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아쉬웠던 사례예요.

 

천: 제가 대학 청소 노동자들을 비교적 조직하기 쉬웠던 거는, 지하철 청소용역노조 사무국장을 5년을 한 경험이 있어서,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정서라든지, 애로점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것들이 노조를 통해서 어떻게 바뀔 수 있다는 대안을, 확신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인데요.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그냥 노조 합시다 하면, 이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그걸 구체적으로 못 끄집어내죠. 그런 측면에서 내가 조금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봐요.

다시 말하면 조직화에 있어서는, 조직 대상에 대한 이해도, 즉 그들이 어떤 상황에 있고, 무엇이 가장 힘든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노조가 만들어지면 어떻게 바뀔 수 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주는 것도 중요하고요.

 

천: 공단 조직 사업은 또 달라요. 우리가 녹산 공단을 2011년부터 가 가지고, 한 7년을 했는데, 유인물 뿌리고, 권리 수첩 나누어 주고, 실태 조사하고, 별짓 다했는데, 금속노조 녹산지역지회가 작년(2019년)에야 생겼어요.

한 100명이 있는 공장이 있으면, 5인 미만을 적용받으려고 다 여러 수십 개의 소사장제로 쪼개져 있어서 엄청 복잡해요. 그래서 제가 비정규위원장 할 때, 금속노조에서 늘 하는 말이 이만큼 돈을 퍼부었으면 뭔가 성과가 있어야 되는데, 여기 말고 다른 데 투자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죠. 느그는 맨날 성과급 반대하면서, 왜 느그는 성과주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대? 이건 노동 운동이 기본적으로 해야 될 일이고, 성과가 나면 더 좋지만, 안 나도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라고요.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고 봐요. 이게 꼭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야 성과가 있는 게 아니라, 또 조직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성과가 없는 게 아니라, 이것은 민주노총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으로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양질전화의 법칙이 있는데, 아직 물이 끓을 때가 안 되었는데, 왜 물이 안 끓느냐고 하면… 어쨌든 열심히 씨앗을 뿌리면 언젠가는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만두고 난 뒤에 2019년도에 녹산지역지회도 만들어졌잖아요. 최소한 민주노총이라면, 그런 걸 성과주의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안 맞다고 생각해요.

 

 

2019년, ‘민주노총 부산본부 투쟁사업장 연대의 날’에서

 

여성 문제

 

김: 지회장은 요즘 맑스주의 여성론과 관련해서 글도 많이 쓰시고, 노동전선 등에서 강의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시고 계신지요?

천: 맑스주의 여성론에 대해 서평도 쓰고, 강의안도 작성하고 있는데요. 기본 관점은 페미니즘이 여성 해방론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 남성에 대립하는 여성을 전제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자본에 대립하는 남녀 노동자의 단결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여성 억압의 기원이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아니라 사적소유의 발생에 의한 사회의 경제적 발전에 기원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성 문제의 해결은, 클라라 쩨트킨, 로자 룩셈부르크,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와 같은 선배 여성 혁명가들이 이론과 실천에서 증명했듯이, 자본주의의 극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우리 운동의 과제와 전망

 

김: 이제 인터뷰의 마지막 주제인데요. 지회장이 활동을 하시면서 느꼈던 우리 운동의 문제들을 한번 이야기해 볼까 해요.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생각하고 계신 게 있으신지, 그런 이야기들도 들어 보려고 합니다.

천: 우리는 노동 운동을 하는 것이지, 노동조합 운동을 하는 게 아닌데요. 노동 운동 속에서 노동조합 운동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을 가장 대중적으로 조직하는 쉬운 조직 형태가 노동조합이고, 그 노동조합을 통해야 조직적 노동 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 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한 학교로서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노동조합 운동은 진짜 조합주의, 경제주의 때문에, 노동조합 자체가 목적이고 그냥 임금만 몇 푼 올리면 끝이잖아요. 특히 비정규직들은 처지가 너무 열악하다 보니까 조그마한 떡고물에도 쉽게 무너져요. 정규직이 되면 끝나는 사례들도 많고요…

 

천: 내가 부산지역에서 노조 간부들 하고 만날 때, 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부산지회장으로 활동하느냐, 8년이나 본부에서 일을 했고, 일반노조에서도 부위원장으로 계속 활동할 수도 있고, 본부에서도 같이 일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부산지회장으로 활동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노동조합 운동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만 했을 때는, 조합주의, 경제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고, 노동자계급 의식을 가져야만 되는 거잖아요. 또 이 노동자계급 의식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생기는 거고요. 그래서 노동자계급 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학습을 하는 조직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부산지회가 쎄미나를 2006년부터 했는데, 10년 이상이나 일주일에 한 번씩 학습을 했다는 게, 나는 부산지회가 정말 대단한 거라 생각해요. 또 그렇게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뭐든 잘할 수 있는 거지. [여러 동지의 실명이 거론되었는데, 여기서는 생략한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그런 활동가가 된 거지요.

 

천: 노동조합 운동이라는 문제가, 현상으로 드러나는 게 어떤 거냐면, 예를 들면 20대부터 정년퇴직할 때까지 노조 활동을 했던 사람이 퇴직을 하고 나면 태극기 부대가 되는 거예요. 물론 태극기 부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의식이 하나도 변화가 없고, 집에 가면 가부장적 아버지, 남편, 그대로이고. 노동조합 운동을 그만큼 했으면 퇴직을 하고 나면 다른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그냥 그런 사람과 똑같이 살고 있다는 거지요. 그렇게 해 가지고 이 세상이 바뀌겠느냐고요.

노동조합 운동도 옛날에는 노동조합 하나 만들려면,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몇 달씩 골방에 처박혀 가지고, 노동법도 연구하고, 노동자의 철학 이런 공부도 하고, 노동조합 일상 활동 어떻게 할 것인가 공부도 하고, 그렇게 힘들게 노동조합을 띄웠는데, 지금은 산별노조 시대에 있는 노조에 가입만 하면, 지부/지회가 되지, 그런 식으로 노조가 되다가 보니까, 또 실무는 상근자들이 실무자들이 다 해 주지, 그러니까 조합원들이 굉장히 수동적으로 되는 거예요. 그래서 노동자들의 계급 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참 부족한데, 민주노총이 그런 부분에 대단히 신경을 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리고 교육을 한다고 해도 내용도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요.

그래서 지금 현재 노동조합 운동이 조합주의, 경제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의식을 향상시키는 학습이 정말로 필요하다. 나라도 노동 운동의 정치적 이론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활동을 열심히 하자 하고 있어요.

 

천: 노동해방 세상으로 나아가야죠.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서 변혁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인데, 지금 4차 산업 혁명을 보면, 물질적 조건, 객관적 조건은 차고 넘친다 말이죠. 더 이상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감당할 수 없는 생산력 수준이라는 것이 4차 산업 혁명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혁명이 안 일어나고 있느냐? 저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 주체들은 다 뭐하고 있느냐?

모든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특히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언론과…. 이런 것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어제도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았다고 생난리를 치던데. 저는 이 영화도 아주 세련된 반동 영화이고, 빈부 격차를 전혀 위험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본가들이 정말 박수 칠 만한 영화다. 그래서 아카데미상도 주는 거다 생각해요. 그런 이데올로기가 판치는 세상인데, 노조 간부들조차도 ≪기생충≫! 아카데미! 하는데, 제가 속이 뒤집어져 가지고…

천: 어쨌든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깨야 하고, 그리고 그중에 하나가 국가보안법 철폐 이런 것들이 포함되는 건데요. 아무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깨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노동자계급의 의식, 노동자계급의 사상, 이런 것을 다시 복원시키고, 온갖 거짓말과 왜곡으로 알려진 위대한 인류의 역사,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의 쏘련의 역사, 이런 것에 대한 진실도, 쓰딸린주의라고 매도를 당하고 있는 우리이지만, 알려 내는 것, 이런 것들이 지금 현재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노사과연의 역할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걸 위해서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말씀을 드려 봅니다.

노사과연

 

김해인 편집출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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