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신년사를 대신하여] 2020년, 부르주아 정치와 노동자계급

 

채만수 | 소장

 

 

새해 벽두부터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제가 이라크를 공식방문 중이던 이란의 군사령관 등을 폭격해 암살했다는 끔찍한 소식이 전해왔을 때, 그리고 이란과 미제가 보복과 재보복을 다짐하고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 또 하나의 큰 전쟁? 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유동적이긴 하지만, 사태는 이란이 이라크 내의 미군기지 두 곳을 보복공격한 것을 끝으로 일단은 수습돼가고 있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이란이 보복할 경우, 문화유적들을 포함, 이란의 52곳을 비대칭적으로 재보복하겠다며, 즉 이란의 보복공격에 그 몇 배로 대대적으로 재보복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던 트럼프가, 막상 보복을 당하고 나서는, 전쟁 대신에 경제보복을 확대ㆍ강화하겠다며,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분명 애초에 이란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각오ㆍ계획이 없었다면 저지르지 않았을 범죄를 저질러놓고는, 그는 왜 꼬리를 내렸을까?

이런저런 다양한 분석들이 제출되고 있지만, 대개는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시각 때문에 그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대체로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회의 전쟁반대 결의안 발의나 유럽 등지의 각국 정부 등의 태도ㆍ비난 등은 중시하되, 노동자ㆍ인민의 계급투쟁은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의 성격이 어떻고, 재선전략이 어떻고, 전쟁에도 품격이 있어서 어떻고 하며, 분석해나가시는 걸 보자면, 그 분석의 과학성에 그저 탄복할 뿐이다.

그러나 미제가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과의 하나인 드론 폭격을 통해 바그다드 공항에서 이라크를 공식방문 중이던 이란의 군사령관 등을 암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보도에 따라 70개라고도 하고, 80개라고도 하는, 미국의 주요 대도시들에서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노동자ㆍ인민이 즉각 전쟁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시위 참가자들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행동이 일종의 계급투쟁임을 필시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사자들이 당장은 의식하든 못하든 그들의 시위는 제국주의적 침략에 반대하는, 군산복합체라는 살육과 파괴ㆍ전쟁으로 치부하는 독점자본의 전쟁 야욕에 반대하는 계급투쟁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현 시기 미국을 비롯한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실상 극도로 발달한 모순을 고려할 때, 그 계급투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그것이 어떤 폭발력을 가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또한 분명하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부담, 즉 정식으로 개전도 하기 전부터 시작된 노동자ㆍ민중의 전쟁반대라는 부담을 안고서, 다시 말하면,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그러한 계급투쟁의 위험을 안고서 어떻게 쉽사리 전쟁에 나설 수 있겠는가?

 

그건 그렇고, 2020년 올해는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해 우리 연구소가 출범한 지 만 15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바로 만 15년이 되는 이 해에 우리는 공교롭게도, 우리가 출범할 당시의 노동운동 진영 내의 정치적ㆍ이념적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노동자계급 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독자성을 다시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 다름 아니라,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정치에 대해 가져야 할 노동자의 관점 및 태도와 관련하여!

새해 들어,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선진노동자들로부터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는 4월로 예정되어 있는 총선과 관련하여, 혹은 그 총선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많은 단체들이 그 문제로 고심하고 있기도 하다.

그 문제에 관한 한, 서슴없이 강조하고 싶다: 모든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정치집단에 대한 어떤 기대도, 어떤 환상도 다 버려라. 그리고 노동자계급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적ㆍ조직적 활로를 모색하라고.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자계급 운동의 현재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타산하지 못하거나 타산하려 하지 않고 허풍을 치며 경거망동하면서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분자들도 물론 일부 없진 않으나, 그보다는 지배적인 두 부르주아 정치집단 중에서 소위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데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 있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2004년 봄 국회가 대통령 노무현을 탄핵하기 전 수개월 동안 선진노동자들이나 진보적 지식인들은 당시의 정국을 열사 정국이라고 규정하면서 노무현 정권을 규탄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으로써 항거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참여정부라는 간판을 내건 노무현 정권의 정책은 반노동자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노무현 정권에 대한 탄핵이 국회에서 결의되자, 좌파연하던 진보적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물론이요 수많은 선진노동자들이 태도를 표변, 탄핵 반대!를 부르짖고 나섰고, 그러한 태도를 비판하는 데에 대해서 적대하고 나서지 않았던가? 우리 연구소가 따로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배경인데, 아무튼 그러한 탄핵 반대!에 대한 참여정부 혹은 노무현 정권의 보답은 무엇이었던가?

대략 기억하는 바로도, 일체의 경제ㆍ사회정책이 삼성경제연구소의 손아귀에서 나온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그 정권은 반재벌ㆍ반자본적이어서, 그 정책들은 노동법의 개악에 의한 비정규직의 제도적 확대, 필수유지업무제도 등의 도입에 의한 파업의 무력화 등등, 극히 친노동자적이지 않았던가?

1996년 말-97년 초의 전국적인 파업투쟁을 통해 그 시행을 정지시켰던, 김영삼 정권의 개악 노동법을 되살려 비정규직을 제도화한 김대중 정권이나, 현재, 예컨대, 이 엄동설한에 한데서 농성을 해야만 하게 하는 등, 그 친노동자성ㆍ친인민성을 여러모로 절실히 체험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는 새삼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데도 지금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물론 수많은 선진분자들조차도 그래도 극우세력보다는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총선국면을 마냥 그냥 보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고 고심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정부에 대한 실망ㆍ배신감은 지금까지의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총선국면을 마냥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총선국면엔 당연히 총선국면에 어울리는 활동을 해야 한다.

대저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민주세력은 이미 저 극우세력과 정권을 주고받으며 경쟁할 만큼 충분히 성장해 있다. 뿐만 아니라 저들 민주세력은 자신들이 사실은 저 극우세력과 한 뿌리의 쌍생아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 김영삼 세력의 3당 합당, 김대중 세력의 김종필의 자민련과의 연합정권, 노무현 정권의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 구성 제안,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의 총선 후 협치내각 구성 구상, 기타 수많은 거물 정치인들의 여야 당 넘나들기, 등등등.

극우세력을 극복하겠다고 노동자계급이 저들 민주세력의 곁에 서야 할 이유는 이미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총선국면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진노동자들 먼저 스스로 일체의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정치집단들에 대한 어떤 환상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는 소위 민주적인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정치집단들에 기대고, 기대를 걸어봤자, 이미 절실히 경험해온 것처럼, 노동자계급에게는 어떤 이득도 없으며, 노동자계급 자신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독자적ㆍ자주적으로 진출할 때에만 활로가 열린다는 것을 노동자 대중에게 선전하고 각인시키는 기회로, 모두가 정치적으로 민감해지는 총선국면을 활용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현 역량을 타산해볼 때, 그것이 바로 이번 총선국면에 어울리는 최선의 실천일 것이다.

일체의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정치집단들에 대한 어떤 환상도 버려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 정치적 냉소주의를 선동한다며 시비를 걸고 나서는 인물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비ㆍ사고ㆍ관점은 전적으로,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짐짓 무시하면서 자신을 사회의 대표로 내세우는 부르주아지와, 이념적으로 무원칙하게 그에 예속되어 있는 소부르주아지의 그것이다. 실제로 총선 등 부르주아 정치제도, 부르주아 선거제도 자체가, 다름 아니라, 부르주아들을 사회의 대표로서 뽑는 제도 그것인바,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그에 대한 냉소주의ㆍ부정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일체의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정치집단들에 대한 어떤 환상도 버리는 냉소주의는, 결코 정치 일반에 대한 냉소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ㆍ지배체제를 민주주의라는 기만적인 이름으로 재생산하는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와 부정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일체의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정치집단들에 대한 어떤 환상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 자신의 독자적ㆍ자주적인 정치적 침로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이번 총선국면을 이러한 인식을 대중화하는 기회ㆍ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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