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본론≫의 이론적 성격과 이윤율 개념의 두 가지 규정에 대하여*

 

다카기 아키라(高木 彰)

번역ㆍ해제 | 김성구(한신대 국제경제학과)

 

 

* 출처: 高木 彰, ≪恐慌ㆍ産業循環の基礎理論硏究≫, 多賀出版, 1986, pp. 23-30(“≪자본론≫의 이론적 성격과 대상영역”) 및 pp. 307-316(“이윤율 개념의 두 가지 규정에 대하여”).

 

 

[해제]

 

다카기 아키라(高木 彰)의 한 저서로부터 부분 번역한 이 글은 ≪노동사회과학≫ 제1호(2008)에 실린 역자의 논문(“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재구성을 위하여”)을 보충하는 취지에서 싣는다. 역자는 그 논문에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은 이념적 평균에서 ‘일반적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다루고 있고, 따라서 이 법칙은 자본주의의 경향적 위기 또는 장기적 위기를 서술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하며, 그런 점에서 주기적인 산업순환에서 문제가 되는 ‘시장이윤율’의 변동 및 공황국면에서 ‘시장이윤율의 급락’과 이 법칙을 직접 관련지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즉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은 산업순환과 시장이윤율의 변동 속에서 경향적으로 실현되는 법칙으로서 시장이윤율의 급락에서 비롯되는 주기적 공황의 원인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념적 평균 하에 파악된 이 법칙의 현실적 전개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현실경쟁과 수급변화를 매개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 때에만 비로소 일반적 이윤율은 산업순환의 국면에서 변동하는 시장이윤율로 구체화되는데, 이에 대한 서술은 그러나 ≪자본론≫의 분석수준을 넘어간다. 이와 같은 방법론적 문제와 관련하여 일반적 이윤율과 시장이윤율이라는 두 가지 이윤율 개념에 대한 이해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주기적 공황론의 관련에 대한 통상적인 오해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高木 彰의 글은 바로 이에 대한 일본에서의 토론을 개관하고 있어 짧은 지면에도 불구하고 공황론의 토론과 발전에 대한 기여는 막대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高木 彰은 플랜 논쟁에서 ‘≪자본론≫=전반3부설’을 채택하고 ≪자본론≫에서 현실경쟁과 산업순환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여기 번역한 글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약간의 역자 해제가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자본론≫의 목표인 ‘근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의 해명’이 공황ㆍ산업순환의 분석을 포괄한다는 高木 彰의 주장, 그리고 이에 입각하여 하야시 나오미치(林直道), 이무라 기요코(井村喜代子) 등 구 정통파 다수파에 대해 행하는 비판은 플랜 논쟁의 성과에 비추어 볼 때 동의하기 어렵다.1) 맑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적 편제를 이상적 평균에서 서술하는 게 목적이라 하였고, 공황과 산업순환의 분석은 현실경쟁에 속하는 것이라 하여 ≪자본론≫의 계획 밖에 있다고 하였다.2) 高木 彰도 “≪자본론≫의 이론적 성격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념적 평균’에서의 자본제 생산을 고찰대상으로 한다”3)고 하는데, 이는 곧 高木 彰에 의하면 공황과 산업순환이 ‘이념적 평균’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즉 “≪자본론≫의 논리구성은 자본제 생산의 모순의 해명과, 그 모순이 어떠한 운동 형태에서 자신을 실현해 가는가를 ‘착란적 영향’을 제거해서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추상적인 규정들로부터 상향하는 논리로 전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의미에서 ≪자본론≫의 대상영역은 자본제 생산의 일반적 분석이며, 자본제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 범주들의 규정만이 아니라 ‘착란적 영향’을 제거한 ‘자본들의 운동 형태’도 고찰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자본론≫이 ‘자본일반’의 체계라는 것을 선험적으로 전제해서 ≪자본론≫에서는 공황ㆍ산업순환의 분석이 고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다 할 수 없다.”4) 高木 彰은 자본주의 생산의 일반적 분석, 이념적 평균을 착란적 영향들을 추상한 상태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조와 동태를 분석한 것으로 이해하고 동태에 대한 분석에 공황과 산업순업이 포함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로서 高木 彰은 로자 비판5)에서 자본주의 생산의 ‘현실의 운동’과 법칙의 운동 형태를 구별하고, 전자는 착란적 영향들에 의해서도 야기되는 것이지만 후자는 자본주의 생산에 고유한 법칙의 실현형태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실 경쟁의 문제를 주기적 순환의 형태 자체를 가져오는 경쟁과 일상적인 변동(산업순환의 구체적 운동)을 야기하는 경쟁으로 다시 구별하여 후자의 경쟁은 제외하고 전자의 경쟁은 자본주의 생산에 고유한 실현 형태를 가져오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일반적 분석, 이념적 평균에 들여오는 것이다. 高木 彰의 말을 그대로 가져오면, “이러한 의미에서 ‘공황과 주기적 경기교체’라는 자본제 생산의 운동 형태는 자본제 생산의 일반적 분석의 고찰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그것은 자본축적의 현실적, 구체적 운동으로서의 ‘공황과 주기적 경기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6) 그러면 이념적 평균은 공황과 산업순환을 통해 관철하는 자본축적의 평균적 경향, 평균적인 경로 뿐 아니라 그것을 가져오는 산업순환의 과정도 포괄하게 된다. 그러나 高木의 논리를 따른다면, 일상적인 착란과 변동을 가져오는 경쟁도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에 의해 규정되는 자본주의 생산의 고유한 운동 형태이며, 따라서 이를 착란적 요인이라 하여 자본주의의 일반적 분석으로부터 제외하는 것도 적절하다고 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런 경쟁 또한 일반적 분석에 포함해야 한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일반적 분석은 현실의 구체적인 변동 경로까지 다루는 게 되는데, 자본주의의 일반적 분석이란 맑스의 개념을 이렇게 확장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문제는 자본의 일반적 분석 또는 이념적 평균의 개념에서 경쟁의 여러 차원과 그 효과를 어떤 수준과 범위 하에서 포착하는가이다. 원래 맑스는 자본일반과 현실경쟁이라는 엄격한 추상 하에서 자본일반으로부터 서술하고자 하였지만, 서술과정의 진행 속에서 이러한 방법론적 추상을 지양하였고, 자본일반과 평균적인 수준에서 파악한 경쟁( 및 신용, 주식자본 그리고 나아가 토지소유와 임노동)을 결합하여 ‘자본의 일반적 분석’ 또는 ‘이념적 평균’이라는 새로운 구조개념 하에서 ≪자본론≫을 서술하게 되었다. 이 때 자본의 일반적 분석, 이념적 평균에 포함된 경쟁은 일반적 이윤율(평균이윤율)과 생산가격을 성립시키는 즉 가치법칙을 수정시키는 수준으로까지 전개된 것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생산의 균형을 상정하는 한에서의 경쟁의 파악인 것이다. 일반적 이윤율과 생산가격이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의(이윤율의 관점에서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 즉 재생산의 균형을 상정하는 개념이다. 이념적 평균에서 파악한 경쟁을 넘어가는 현실적 경쟁 즉 현실 경쟁을 통한 수요와 공급의 일상적인 불균형과 산업순환을 통해 전개되는 순환적인 불균형은 일반적 분석과 이념적 평균에 포함되지 않는다. 호황, 공황, 불황 등 산업순환은 재생산의 불균형 국면을 나타내는 것이고 따라서 이념적 평균이라 할 수 없다. 이념적 평균이란 일상적 변동과 산업순환을 통해 전개되는 자본주의의 현실적 경로를 추상 속에서 평균적으로 파악한 발전경향을 말한다. 이 경향은 산업순환에서의 불균형이 평균하여 상쇄된, 재생산의 균형에 조응하는 발전경로를 가리킨다.

따라서 ≪자본론≫에서의 축적론은 본질적으로 제1권 제7편, 제2권 제3편, 제3권 제3편 모두에서 경향의 분석에 한정되며, 일상적 변동과 산업순환의 분석으로까지 나가지 않는다. 제2권 제3편 재생산표식과 공황의 관계, 제3권 제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주기적 공황의 관련에 대한 공황론의 오래된 논쟁을 해결하는 단서는 바로 이와 같은 맑스의 방법론과 ≪자본론≫의 분석수준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있다. 물론 이념적 평균의 분석, 일반적 분석은 高木 彰이 말하는 바처럼 산업순환과 공황분석으로까지 경쟁을 구체화, 현실화해야 법칙의 구체적 실현형태, 전개형태를 분석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법칙의 해명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구체적인 경쟁분석으로의 상향의 과제는 맑스의 계획에 따르면 ≪자본론≫의 범위를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념적 평균으로부터 일층의 상향의 전개와 그에 따른 현실경쟁과 공황의 분석은 어디까지나 이념적 평균의 서술에서 전개된 공황의 기초적 규정들과 연관, 그 발전 위에서 산업순환과 현실 공황으로서 일층 전개되는 것이며, 따라서 ≪자본론≫의 체계 하에서 공황의 기초이론의 전개를 전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문제의 핵심은 다름아니라 ≪자본론≫ 체계 하의 공황론은 자본축적의 경향에서 파악되는 과잉생산공황으로의 경향을 분석하는 공황의 기초이론의 전개에 한정되며, 이를 넘어가는 현실의 과잉생산과 산업순환의 전개는 ≪자본론≫을 넘어가는 현실 경쟁의 분석 차원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高木 彰이 제3권 제3편 제15장(법칙의 내적 전개)에서 시장가격의 주기적 변동을 비롯하여 산업순환과 공황을 적극적으로 서술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은 올바른 시도라 하기 어렵다.

저자의 입론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랜 논쟁에 관한 저자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 자신이 이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31-105쪽.) 플랜 논쟁에서 高木 彰은 高木幸二郞을 따라 ≪자본론≫에서 자본일반의 지양과 이념적 평균으로의 변경을 주장하여 일본에서 ‘자본일반 지양설’을 대변하고 있다. 다음에서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연구자들 사이에는 ‘≪자본론≫=자본일반설’ 지배적이지만, 이 책에서는 ‘≪자본론≫=전반3부설’을 채용한다. 그것은 高木幸二郞에 의해 방법론적으로, 문헌고증적으로 주장된 것이다. ‘플랜’에서 전반과 후반을 이론적으로 구별해서 논한다는 구상에는 변화가 없다고 해도, 전반 부분에서 상정된 ‘3대계급의 경제적 생존조건’을 해명한다는 과제는 현행 ≪자본론≫ 체계에서 기본적으로 해명되고 있다. 맑스의 경제학 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고유의 ‘자본일반’ 구상이 변경되어 ‘자본들의 경쟁’을 그 안에 포함하게 되었지만, 그에 따라 ‘플랜’의 전반 3부문(‘자본, 토지소유, 임노동’)도 고유의 편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론≫ 전3부의 체계에 들어와 변경되었다.

高木幸二郞은 1862년 12월 28일자 쿠겔만 앞으로의 맑스의 편지에 의거해서 ‘원래 플랜에서 자본일반에 관한 한 1862년 12월 또는 1863년 1월에 확정적으로 일단락하고 있다’고 하고, 그 후 맑스의 ‘연구 내용의 현저한 확장’의 결과로서 ‘플랜’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65년 7월 31일자 엥겔스 앞으로 보낸 맑스의 편지에 의거해서 ‘맑스의 원래 플랜이 ≪자본론≫ 제3권의 초고 집필 중에 변경되어’, 원래 ‘자본일반’의 밖에 계획되었던 ‘경쟁’, ‘신용’, ‘주식자본’은 ‘기초적 부분이 현행 ≪자본론≫의 체계적 구성 중에 들어오고’, 그 때문에 ‘세계시장에서의 가장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경쟁과 신용제도로서는 체계 후반에서 세계시장론과 함께 주어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자본론≫ 체계로의 ‘자본들의 경쟁’의 편입에 대해서는 ‘현행 ≪자본론≫에서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정의 세 가지 관련 계기를 이루는 제1권 제7편, 제2권 제3편, 제3권 제3편의 서술체계 상의 지위를 확립함으로써 원래 플랜에서 의도했던 경쟁론의 기초적인 것이 ≪자본론≫의 범위 내의 것으로 되었다’고 하고, 그래서 ‘자본들의 경쟁’ 이하의 항목은 ≪자본론≫ 체계로 들어간 것과, ‘세계시장공황’으로서 총괄되어야 할 것으로 양분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공황론의 체계도 ≪자본론≫의 범위 내에서 주어진 ‘공황의 기초적, 일반적 규정들’과, ≪자본론≫의 체계 후에 속하는 ‘일층 구체적인 공황의 규정들’의 ‘총괄적 관련’에서 그 전체적인 구성이 주어지게 된다고 한다.”7)

구 소련권의 ‘자본일반 지양설’(구 동독의 얀, 뮐러 등)이 ≪자본론≫의 성립과정에서 자본일반으로부터 이념적 평균으로의 구조 개념의 변경에도 불구하고(즉 ≪자본론≫이 자본일반을 넘어 원래 플랜의 제1부 제2편 이하 제3부까지를 이념적 평균에서 포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플랜의 제1부 제2편 이하 제3부의 고유한 과제(후반 3부의 과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자본론≫ 이후에도 남아있다고 주장하는 것(플랜 불변설, 정확하게 말하면 부분 변경설)과 달리, 高木 彰은 자본일반의 이념적 평균으로의 변경과 함께 전반 3부의 과제가 기본적으로 ≪자본론≫에서 이행되었다고 하는 ‘≪자본론≫=전반3부설’(플랜 변경설, 정확하게 말하면 전면 변경설)을 제출하고 있다.(따라서 ≪자본론≫ 이후에는 후반 3부의 과제만 남는다.) 공황론과 관련하여 보면, 구 소련권의 자본일반 지양설이 ≪자본론≫에서는 현실경쟁과 신용 등의 고유한 분석이 추상되어 있기 때문에 산업순환과 공황의 분석으로까지 나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高木 彰은 ≪자본론≫에서 즉 자본의 일반적 분석, 이념적 평균에서 산업순환과 공황의 이론 전개를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6부 세계시장과 공황에서는 다만 구체적인 현실공황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즉 “‘플랜문제’를 이 책의 과제[공황과 산업순환론: 인용자]와 관련해서 말한다면, ‘자본일반’설은 ‘자본일반’편에서 공황의 필연성을 추상적, 일반적으로 논증한 위에서 ‘자본들의 경쟁’편에서 산업순환의 주기적 변동을 문제로 한다는 방식으로 이원론적으로 분리하여 공황과 산업순환의 문제에 접근할 것을 주장하며, ‘전반3부’설은 ≪자본론≫에 의거해서 공황을 기축으로 하는 산업순환의 운동을 추상으로부터 구체로 점차적으로 전개할 것을 주장한다.”8) ≪자본론≫에서 산업순환론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은 高木 彰에 있어 플랜 구상의 변경을 가져온 주요한 계기였던 만큼 그의 ‘자본일반 지양설’과 ‘≪자본론≫의 공황론=산업순환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플랜’ 구상의 변경을 야기한 계기는 1861-63년에 23책의 노트로서 집필된 ≪잉여가치학설사≫와, 1864-65년에 집필된 ≪자본론≫ 제3부의 초고이다. 전자에서는 생산가격의 성립이 그 주요한 계기였고, 후자에서는 산업순환적 관점에 의한 자본축적론의 재구성이라는 시각의 성립이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로 삼는 것은 그러한 ‘플랜’의 변경을 가능케 한 이론적 기반의 변경에 대해서다. ‘플랜’의 변경을 가능케 한 이론적 전제는 범주로서의 ‘자본일반’이 붕괴되고 자본주의 상이 ‘자본일반’으로부터 ‘이상적 평균’으로 변경된 것에 있다.”9)

필자로서는 플랜 논쟁과 공황론에서 高木 彰의 테제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본론≫=전반3부설’을 주장하는 우노(宇野弘藏)학파와 달리 구 정통파의 전통에 따라 주기적 공황을 과잉생산(과 과잉생산에 기인하는 과잉자본)의 문제로 파악하고 현실경쟁 속에서 과잉생산이 누적되고 공황으로 폭발하는 메커니즘을 해명하고 있다. 이는 우노학파가 이념적 평균에서 ≪자본론≫에 포괄된 경쟁, 즉 경쟁일반으로써 원래 플랜의 경쟁론의 과제가 모두 이행되었다고 보고, 즉 ≪자본≫ 이후에도 남은 현실경쟁론의 과제를 부정하고(이런 의미에서 우노학파의 전반3부설에서는 ≪자본론≫이 원래 플랜의 전반3부를 모두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으로써 가치법칙의 작용을 일면적으로, 균형론적으로 파악하여 산업순환에서 전개되는 가치와 가격의 순환적 괴리 및 과잉생산의 누적과정을 전개할 수 없었던 것에 반해, 高木 彰은 ≪자본론≫에서 경쟁일반뿐 아니라 현실경쟁 또한 포괄되는 것으로서 이해하여 현실경쟁에서 공황과 산업순환이 전개되도록 ≪자본론≫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고(말하자면 ≪자본론≫을 진정한 전반3부로 파악하는 테제, 즉 ≪자본론≫은 전반3부를 남김없이 포괄한다는 테제), 그럼으로써 ≪자본론≫에서 가치법칙의 작용을 불균형론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념적 평균의 가치ㆍ생산가격 개념에서 파악되는 가치이윤율과, 시장가격 개념에서 파악되는 시장이윤율의 개념을 방법론적으로 구별하여, 이념적 평균에서 파악하는 자본축적의 경향과, 현실경쟁에서 파악되는 이 경향의 현실적 전개형태 즉 산업순환을 구별하고 그 연관을 분명히 함으로써, 과잉생산공황론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가치법칙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과잉생산이 가능한가, 산업순환을 통해 어떻게 가치법칙이 관철하는가 하는 문제)을 올바로 해결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렇게 보면, 구 정통파 내에서 플랜 논쟁에서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황론의 문제에서는 동일하게 과잉생산공황론으로 귀결되는 바, 구 정통파의 자본일반 지양설( 또는 자본일반 확장설)과 高木 彰의 자본일반 지양설 양자에서의 문제는 이 과잉생산공황론을 ≪자본론≫을 넘어 현실경쟁과 신용의 분석에서 전개하는가 아니면 ≪자본론≫의 수준에서 전개하도록 ≪자본론≫을 재구성해야 하는가 하는 차이의 문제로 남는다. 이 차이는 정치경제학비판체계 플랜과 ≪자본론≫의 관계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중요한 쟁점이지만, 과잉생산공황론의 구성에서 내용상의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번역해 싣는 高木 彰의 글 중 산업순환과 공황을 ≪자본론≫에서 전개해야 한다는 취지의 ‘1. ≪자본≫의 이론적 성격’에는 문제의 여지가 있지만(그럼에도 저자의 입장을 개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절이 필요하다), ‘2. 이윤율 개념의 두 가지 규정에 대해서’는 공황론에 대한 저자의 중요한 기여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아울러 이 글은 이윤율저하설을 주장하는 영미권의 문헌들(B. 파인과 L. 해리스, G. 뒤메닐, R. 브레너 등)에 의존해서 공황론을 전개하는 국내의 연구경향(김수행, 윤소영, 정성진 교수 등)을 고려할 때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영미권 문헌들은 근본적으로 플랜 논쟁과 공황론 간의 이론적 관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방대한 문헌사적 연구에 대한 검토도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 때문에 이들의 ≪자본론≫ 이해는 정치경제학비판 6부작 플랜과 단절되어 있으며, 그 결과 ≪자본론≫의 이론적 성격도 올바로 이해될 수 없었다. ≪자본론≫ 제3부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입각해서 주기적 공황론을 주장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론적 제한성에서 비롯되는 대표적인 오류의 하나이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 ≪자본론≫의 이념적 평균에서 파악한 법칙으로서 경향적인 장기의 법칙이라는 것, 이 이념적 평균의 법칙은 현실경쟁과 산업순환의 분석에 매개되어서만 현실적 이윤율의 변동과 주기적 공황으로 전개된다는 것, 현실경쟁과 산업순환 속에서 비로소 과잉생산이 형성, 누적되고 이렇게 시장가격에서 표현된 이윤율의 급락으로 인해 현실공황이 발생한다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장기적 이윤율의 하락과 순환적인 이윤율의 변동, 장기적인 위기와 주기적인 공황 그리고 일반적 이윤율과 시장이윤율에 대한 이들의 혼동 및 그것이 기초하고 있는 이론적 오류에 대해 高木 彰의 이 글은 훌륭하게 정정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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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론≫의 이론적 성격과 대상영역

 

공황ㆍ산업순환론의 과제는 자본제 생산이 산업순환의 운동을 그려가면서 생산력의 상승을 가져오며 하나의 역사적 경향성을 나타낸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 그럼으로써 ‘근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해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자본론≫이 해명하고자 ‘최종목적’으로 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공황ㆍ산업순환론에 특별한 고유의 방법이 있는 게 아니고, ≪자본론≫의 방법 그 자체가 공황ㆍ산업순환론의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론≫의 전개를 충실히 따라간다면 저절로 공황ㆍ산업순환의 기초이론이 구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자본론≫체계를 공황ㆍ산업순환론의 시각으로부터 재구성하는 게 필요하다. 어떻든 공황ㆍ산업순환의 기초이론은 경제학의 기초이론 중 한 항목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고, ≪자본론≫의 최후의 항목으로서 전개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론≫에 의거해서 공황ㆍ산업순환론을 구축하려는 경우, ≪자본론≫ 그 자체의 이론적 성격,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이론영역에 대해 미리 확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 ≪자본론≫에서 공황ㆍ산업순환의 기초적 규정들이 분석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자본론≫의 재구성에서도 공황ㆍ산업순환의 기초이론을 전개할 수 없다. 공황론 연구에서 ‘플랜문제’가 논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본론≫의 이론적 성격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념적 평균’에서의 자본제 생산을 고찰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다수 자본의 존재가 처음부터 전제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착란적 영향들을 제외하고 과정의 순수한 진행을 보증한다는 조건 하에서 자본제 생산의 구조와 동태를 고찰하는 것이다. 자본제 생산의 일반적 연구에 있어 우연적인 것, 비본질적인 것을 추상하고 이론상의 단순화를 전제할 것이 필요하며, 이렇게 함으로써만 자본제 생산에 내재적인 법칙들의 석출과 그 전개 형태를 해명할 수 있다. 이 때 자본제 생산을 순수하게 고찰한다는 것은 자본제 생산의 동태에 대한 고찰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축적의 동적 자태는 자본제 생산에 대한 착란적 계기들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고, 자본제 생산 그 자체의 전도성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론 II, III에서 ≪자본론≫의 이론적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를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서는 ≪자본론≫에는 고유의 공황 분석, 산업순환 분석이 사상되고 공황ㆍ산업순환론은 이른바 개별적 연구라고 하는 井村喜代子의 입론을 검토해서 문제의 소재를 명확히 하도록 한다.

井村은 ≪자본론≫은 [확장된: 역자] ‘자본일반’의 체계이며, 그 ‘분석대상, 분석과제’는 “자본제 생산의 기초적 범주들, 기초적 구조, 기본적 법칙들, 모순들 그 자체의 해명”에 한정되고, “자본들의 ‘현실적’ 경쟁, 상대적 과잉인구 및 임금 등의 ‘현실적’ 운동, 일반적 상품시장에서의 부단한 변동, 산업순환의 변동과 공황” 등은 ‘사상’된다고 한다.10) ≪資本論≫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이 그 자체로서 해명되고 있고, 이 ‘법칙들’이 “어떻게 관철되는가” 하는 문제는 분석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11) ≪자본론≫에서 ‘현실의 운동’, ‘산업순환의 변동과 공황’ 등에 대한 언급이 발견되지만, 그것은 ‘법칙들’이 ‘현실의 운동’, ‘현실의 경향’을 통해 관철되는 것, ‘현실의 운동’이 그것에 평균화되는 것, ‘현실의 운동’, ‘현실의 경향’을 ‘지배하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자본론≫에서 논하고 있는 ‘현실의 운동’, ‘현실의 경향’은 ‘법칙들’과 관계하는 한에서 문제로 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고, “자본제 생산의 기본적 법칙과 모순을 명확히 하는 데 필요한 한에서” 그러한 것이며, 따라서 “거기에 산업순환론, 공황론이 있다고 보는 것은 오류이다”라고 한다.12) 그래서 井村은 “자본제 생산 고유의 생산력발전과 자본축적 과정의 특질 및 모순을 명확히 하는 위에서 돌연한 일시적인 변동 및 산업순환의 변동과 공황의 존재를 전제하여 그것과의 관련에서 문제를 파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며13), “‘자본의 내적 본성’, 자본제 생산의 기본적 특질 및 모순 그 자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 그 목적에 필요한 한에서 돌발적이고 일시적인 변동 및 산업순환과 공황의 존재를 전제해서 그것과의 관련에서 문제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14)

여기서의 문제는, 井村이 ≪자본론≫에서 공황 및 산업순환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 해도,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을 명확히 하는 한에서 그것과의 관계에서 논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고 하는 점이다. ‘내재적 법칙들’과의 관계에서 공황 및 산업순환의 기초적 규정들을 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내재적 법칙들’을 그 자체로서 명확히 하기 위해 무슨 이유로 수요공급의 변동 및 산업순환의 변동을 문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재적 법칙들’의 운동 형태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자본제 생산의 동태에 관한 것이 문제가 된다. 자본제 생산의 고유한 모순은, 그 모순이 지적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어떠한 운동 형태에서 자신을 실현하는가가 명확히 됨으로써 완전한 의미에서 해명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내재적 법칙’들의 운동 형태, 모순의 실현형태에 관한 문제가 다름 아닌 공황ㆍ산업순환의 기초적 규정들인 것이다. 자본제 생산의 모순된 본성이 그 자체로서 해명되었다면, 그 위에서 그것과 동일한 논리차원에서 그것이 어떠한 운동 형태에서 자신을 실현해 가는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자본제 생산의 법칙들에 대한 해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재적 법칙들’ 및 모순의 운동 형태, 실현 형태를 확정하는 것은, ‘내재적 법칙들’ 및 모순을 그 자체로서 해명하는 것의 단순한 보완작업이 아니다. ‘내재적 법칙들’의 해명에 ‘필요한 한’에서 동태론을 언급한다는 것은, 그 언급을 빠뜨려서는 ‘내재적 법칙들’의 해명 그 자체가 충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본제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의 해명과 그 실현 형태의 확정은 같은 차원에서 수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론≫에서 공황ㆍ산업순환의 규정들에 대한 언급은 단지 보완적인 의미, 연관에 대한 단순한 지적이라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 그 언급을 하지 않으면 자본제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의 해명이 완전할 수 없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자본론≫의 논리구성은 자본제 생산의 모순의 해명과, 그 모순이 어떠한 운동 형태에서 자신을 실현해 가는가를 ‘착란적 영향’을 제거해서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추상적인 규정들로부터 상향하는 논리로 전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의미에서 ≪자본론≫의 대상영역은 자본제 생산의 일반적 분석이며, 자본제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 범주들의 규정만이 아니라 ‘착란적 영향’을 제거한 ‘자본들의 운동 형태’도 고찰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자본론≫이 ‘자본일반’의 체계라는 것을 선험적으로 전제해서 ≪자본론≫에서는 공황ㆍ산업순환의 분석이 고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다 할 수 없다.

그런데 자본제 생산의 ‘현실의 운동’, ‘현실의 경향’은 자본제 생산이 그리는 운동 형태와는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자는 착란적 영향들에 의해서도 야기되는 것이며, 그에 반해 후자는 [여기서 문제로 하는 공황ㆍ산업순환의 형태처럼: 역자] 자본제 생산에 고유한 모순의 실현 형태인 것이다. 양자를 동일시함으로써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제 생산의 일반적 분석의 고찰대상으로부터 공황ㆍ산업순환의 기초규정들의 고찰을 제외하였다. 로자는 자본제 생산의 일반적 분석의 방법에 대해 다음처럼 지적하고 있다.

“주기적인 경기교체와 공황이라는 주기적 순환은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그러나 경기의 주기적 교체와 공황은 정말 재생산의 본질적 계기지만,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문제 그 자체를, 즉 그 독자적 문제를 제출하는 것은 아니다. … 주기적인 경기교체와 공황은 자본주의적 경제방법 하에서의 특수한 운동 형태이지만, 그러나 운동 그 자체는 아니다.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문제를 순수한 자태로 제출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히려 바로 이 주기적인 경기교체와 공황을 도외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15)

로자는 공황과 주기적 경기교체는 자본제 생산의 운동의 ‘특수한 형태’이지만 ‘운동 그 자체’는 아니라 하고, 자본제 생산의 일반적 분석에서는 ‘도외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제 생산의 ‘운동 그 자체’는 추상적 규정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해도 ‘공황과 주기적 경기교체’ 이외에 어떤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자본제 생산의 운동의 ‘일반적 형태’이며, 결코 그 운동의 ‘특수한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제 생산을 ‘순수한 자태’로 고찰한다는 것은 그러한 운동의 일반적 형태도 고찰하는 것이다. 확실히 자본제적 재생산의 기구를 ‘순수한 자태’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운동’은 사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범주 규정들, 구조적 관련을 명확하게 하는 한에서만 그러한 것이다. 이들 범주 규정이 해명되었다면, 다음에 이것들이 어떠한 운동 형태에서 전개하는가가 문제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황과 주기적 경기교체’라는 자본제 생산의 운동 형태는 자본제 생산의 일반적 분석의 고찰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그것은 자본축적의 현실적, 구체적 운동으로서의 ‘공황과 주기적 경기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어서 井村은 상대적 과잉인구론과 ‘자본주의적 생산의 제한’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상에서 서술한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井村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성에 대한 해명에서는 자본축적의 일시적인 변동 및 산업순환의 변동이 존재하는 것을 대전제로 해서 서술을 전개하고, 그것들과의 관련에서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성과 그 운동을 파악하며”16), 그 같은 모습으로 상대적 과잉인구의 고찰이 행해지는 곳에서 “맑스가 상대적 과잉인구를 파악하는 특징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17)

여기서 상대적 과잉인구론을 논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본론≫ 제1권 제7편 제23장의 논리구성 상의 특징을 명확히 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제23장 제3절에서만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성이 논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 과잉인구는 변화하는 자본의 증식욕구에 따라 언제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인간재료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노동력인구의 저장 풀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제23장 전체에서 문제로 되는 것은, 자본관계의 확대재생산이 기구적으로 성립하고 그럼으로써 자본의 임노동 지배가 확립한다는 것이지만, 그것을 실체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은 자본축적의 증대에 따라 형성되는 상대적 과잉인구다. 그것은 특히 제23장 1-3절에서의 문제다. 제1절에서는 자본축적과 임금의 운동이라는 자본제 생산의 기본적 두 계기만을 취함으로써, 자본제 생산 그 자체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생산력수준 하에서 임금상승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고 총자본의 증대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그 때문에 자본축적의 운동은 산업순환의 운동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산업순환의 ‘기본형태’를 보인다는 것이 명확하게 된다. 그것은 자본제 생산 하에서 노동력의 상품화가 유지되기 위한 기구의 운동 형태를 추상적으로 명확히 한 것이다. 그에 반해 제2절에서는 자본축적은 자본의 유기적구성의 고도화와 함께 상호 촉진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노동력의 유리와 흡수 규모의 확대로서 자본축적이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 제1-2절의 결론을 전제함으로써 자본축적의 동태과정에서 자본의 유기적구성 고도화 쪽이 총자본의 절대적 확대보다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고 상정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제3절에서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성을 논증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축적이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성을 필연케 한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노동력의 상품화 기구가 실체를 갖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 때문에 상대적 과잉인구론에서 산업순환의 운동은 전제라고는 해도 그것은 제1절에서 기본적으로 해명되고 있기 때문에 전제된 것이다. 단지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성과 그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산업순환의 동태가 전제되었다는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니다.

井村은 ≪자본론≫ 제3권 제15장의 서술에 대해 “맑스는 ‘극단적 전제’ 하에서 ‘절대적인’ ‘자본의 과잉생산’을 상정하고, 그로부터 ‘재생산과정의 현실의 정체와 착란’과 과잉인구 발생을 설명한 위에서, 이러한 자본과잉과 인구과잉이 병존한다는 기묘한 사태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를 문제로 하였으며”, “기묘한 사태의 기본적인 파악 방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18) 거기서는 자본제 생산의 고유한 모순의 발현이라는 주기적 공황에서 생기는 사태가 다루어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확인되는 데 머무르고 “산업순환의 분석, 공황의 분석이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19)

제15장에만 의존하는 한, 井村과 같은 지적도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제13장과의 관련에서, 또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 전체와의 관련에서 문제로 한다면, 제15장에서 시장이윤율의 운동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공황ㆍ산업순환의 기초적 규정들이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장이윤율의 순환적 변동과정을 통해서 일반적 이윤율의 동태가 야기되는 것이지만, 그러한 시장이윤율의 변동을 야기하는 것은 시장가격의 주기적 변동이다. 그 때문에 제15장의 서술은 시장가격의 주기적 변동의 기구를 해명하는 것으로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시장가격의 주기적 변동이 시장가격의 ‘단순한 진동’, 우연한 변동과도 다른 것으로서 상정되기 위해서는 그 해명은 제15장에서 행해져야 한다. 이는 제15장의 서술이 그러한 것으로서 충분하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제3편의 구성이 현행 ≪자본론≫ 구성 같은 것으로 좋은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검토할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제15장에서 단지 자본제 생산에 고유한 모순의 ‘기본적인 파악방향’만이 과제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제15장에서 시장이윤율의 주기적 변동과정이 생산력의 증대를 야기하는 것으로서 확정되어야 그 결과 생산력 상승에 의한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를 자본제 생산의 운동법칙으로서 논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도 자본축적의 산업순환적 변동의 분석을 매개함으로써만 정립될 수 있다. 공황ㆍ산업순환의 운동 문제는 결코 부수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고, ‘법칙’을 명확히 하는 한에서 논해질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도 아니다.

 

 

2. 이윤율 개념의 두 가지 규정에 대하여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하 ‘법칙’으로 약기한다)은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 과정을 나타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표현”20)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본제 생산에서 “가장 곤란한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법칙”이며, 역사적 견지로부터 보아 “가장 중요한 법칙”21)이다. 맑스는, ‘법칙’은 그 자체로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로부터 하나의 자명한 필연성”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며, “아주 간단”한22)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이제까지의 경제학은 어느 것도 이 법칙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23) ‘법칙’은 “이제까지 이해되지 않았고 더구나 의식적으로 언명되지도 않았다”고 한다.24) A. 스미스 이래 모든 경제학은 이윤율이 점차적으로 저하하는 경향성을 나타내는 이 “법칙의 불가사의한 해결을 둘러싸고 선회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스미스 이래 여러 학파간의 상위는 이 해결을 위한 시도의 상위에 있다”고 한다.25)

그러나 맑스에 있어서도 ‘법칙’의 성립을 기구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그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법칙’을 본래적 의미에서 정식화하는 것은 1860년대 후반 이래 맑스의 경제학 연구의 주요한 과제이기도 했다. ‘법칙’의 성립을 기구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이윤율저하의 기축선이 생산력 발전에 있다는 점을 본질적으로 논증한 위에서, 그 생산력 상승의 현실적 과정은 산업순환 과정에서 개별 자본들의 보다 커다란 특별잉여가치의 추구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최신 기계설비의 도입에 의해 야기된다는 것, 그러나 개별 자본들에 의한 생산력 상승이 일어나는 과정은 경향적으로 저하하는 일반적 이윤율과는 구별되는 시장이윤율의 변동과정이라는 것, 그러한 산업순환의 운동을 통해서만 사회적 총자본의 생산력 상승이 달성되어 간다는 것, 그리고, 사회총체로서 생산력 상승에 의한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라는 상황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제한성과 한계성을 나타내는 것임을 논증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법칙’은 ≪자본론≫ 제1권 제7편의 ‘자본축적의 일반적 법칙’과 마찬가지로 3단계적 논리 구성에서 정식화가 행해져야 할 것이다.

‘법칙’의 정식화에 있어 맑스는 스미스의 이윤율저하론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들였지만, 스미스의 이윤율저하론을 본래적으로 극복함으로써만 자신의 독자적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정식화할 수 있었다. 여기서 먼저 스미스의 이윤율저하론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한다. 스미스의 경제학을 방법적으로 특징짓는 것은 ‘본질통찰적인 고찰’과 ‘현상기술적인 고찰’이라는 두 가지 연구방법의 공존이다. 그러한 특유한 연구방법은 스미스의 이윤율저하론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즉 ≪국부론≫에서는 이론적 성격을 달리하는 두 가지 이윤율저하론을 끌어낼 수 있다. 그것은, 분업을 기축으로 하는 생산력 전개에 의한 자본축적의 장기적 과정에서 이윤의 ‘자연율’의 저하에 관한 것과, 자본축적의 단기적 과정에서의 시장이윤율의 저하, 특히 경쟁에 의해 야기되는 특별이윤의 소멸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 이윤율 개념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고, 더구나 이윤의 ‘자연율’과 시장이윤율의 동태가 무매개적으로 ‘병존’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이윤율을 결합하는 것은, 스미스에게는 결코 인식될 수 없었던 산업순환의 운동기구인 것이다.

스미스의 이윤율저하론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맑스의 과제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스미스에서의 두 가지 이윤율의 이론적 관계를 명확히 함으로써만 ‘법칙’의 성립 기구를 명확히 할 수 있다는 점을 함의하고 있다. 맑스는 ‘법칙’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그룬트리세≫의 집필 단계에서 정식화하고 있지만, 그러나 생산력 상승에 의한 이윤율저하가 현실적으로 어떠한 운동기구를 통해 성립하는가에 대해서는 ≪자본론≫에서도 최종적으로 완성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법칙’ 정립의 기구적 해명에서 약간의 실마리를 주는 것이 제15장이다.

여기서는 우선 ‘법칙’을 기구적으로 정립함에 있어 불가결한 이론적 전제를 이루는 일반적 이윤율과 시장이윤율이 어떠한 구별과 관련에서 이해되어 왔는가에 대해 보도록 한다.

맑스에 있어서도 이윤율의 동태가 문제될 때 이윤율 개념에 대해 두 가지 구별이 행해진다. 그 점에 대해 보도록 하자.

“여러 생산부문의 실제 이윤율에는 끊임없이 커다란 변동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 이윤율의 현실의 변화는, 특별한 경제적 사건에 의해 예외적으로 야기된 것이 아닌 한, 매우 긴 기간에 걸친 많은 진동, 즉 고정되고 평균되어서 일반적 이윤율의 변화가 되기까지에는 긴 시간이 걸리는 많은 진동의 결과가 훨씬 뒤에 나타난 것이다.”26)

여기서는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으로서 “여러 생산부문의 실제의 이윤율”과 “매우 긴 기간”에서만 변화하는 일반적 이윤율이 명확하게 구별되고 있다. 전자는 산업순환의 국면에서 시장가격의 변동에 규제되어 변동하는 시장이윤율을 의미한다. 그에 대해 후자는 “경향적으로만 작용”하고27)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28) 일반적 이윤율은 “경쟁상의 여러 운동과 관계없는 이윤율”이다.29) 양자는 이윤율이라는 것으로 일괄해서 고찰해서는 안 되고, 자본축적을 분석하는 시각의 구별에 대응해서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맑스 자신이 ≪자본론≫ 제3권 초고를 집필할 당시(1865년 경) 일반적 이윤율의 변화가 “매우 긴 기간”에서의 여러 변동의 결과로서 나타난다는 것을 자본축적의 순환적 변동의 문제로서 이해하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일반적 이윤율의 변동이 완만한 이유로서 맑스는 각 생산부문에서의 변동들이 상호 중화되고 상쇄되는 것이라 한다. [말하자면 산업순환 과정에서의 국면별 현실의 시장이윤율의 변동이 시간에 걸쳐 1 순환의 평균으로서 관념화되는 것으로서 일반적 이윤율과 그 변동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문별 현실이윤율의 온갖 변동들이 시간에 걸쳐 공간 상 횡적으로 상호 상쇄되어 평균화되는 것으로서 일반적 이윤율과 그 변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역자.] 즉 “개개의 생산부문에서의 여러 변동의 돌발성 및 다면성 그리고 형용색색으로 다른 지속 기간 때문에 변동들의 일부분은 시간적으로 차차 상쇄되며, 가격상승에는 가격하락이 이어지고, 또 반대로 하락에는 상승이 이어져서 변동들은 국부적인 것 즉 특수한 생산부문에 한정된 것으로 남고, 마지막으로 몇 갠가의 국부적인 변동이 서로 중화되어 버린다.”30) 더구나 각 생산부문으로의 총자본의 배분이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도 일반적 이윤율의 변동이 완만한 이유라 하고 있다.

여기서 명확한 것처럼 맑스는 시장가격의 운동에 대해 “가격상승에는 가격하락이 이어지고,” “가격하락에는 가격상승이 이어진다”고 파악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시장가격의 운동에 대해 끊임없이 변동하는 것과 주기적으로 변동하는 것을 이론적으로 구별한다는 분석시각은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 이윤율의 변동이 완만한 것은 시장가격의 주기적 변동과정을 통해서 일반적 이윤율을 규정하는 계기들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업순환의 운동기구의 해명을 통해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가 논증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맑스에 의해 “가격상승에는 가격하락이 이어지고,” “가격하락에는 가격상승이 이어진다”고 하는 것에 불과한 시장가격의 변동을 주기적 변동으로서 자본축적의 순환적 과정에서 재구성할 것이 필요하다.

이윤율의 운동에 대해 일반적 이윤율과 시장이윤율로 구별하는 것은, 자본축적의 운동을 장기적 과정과 단기적ㆍ순환적 과정으로서 두 측면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일반적 이윤율의 규정에서 이론적 성격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윤율의 운동을 전개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이제까지의 혼란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 점에 대해 보도록 하자.

‘이윤율저하경향’에서 일반적 이윤율과 시장이윤율이라는 두 가지 운동을 보려고 한 논자는 P. M. 스위지이다. 스위지는 공황의 원인에 관해 “맑스가 다른 두 개의 완전히 별개의 원인에 의한 수익성의 저하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두 개는 “①가치로 측정한 임금의 증대 결과로서 잉여가치율의 저하, ②가치대로의 상품판매가 일정한 사정 하에서는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라 한다.31) 여기서 ①은 ‘이윤율의 저하경향과 관련되는 공황’이라는 것과, ②는 ‘실현공황’이라는 것과 관련된다. 스위지는 ‘실현공황’을 과소소비설로서 문제로 삼고 있지만, 여기서의 이윤율의 변동 문제는 시장이윤율의 동태에 관한 것이다. 스위지에 있어 ‘실현공황’이 시장이윤율의 동태로서 논해졌다면, 그것과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와의 관련성을 쫓아가는 것도 가능하였다.

스위지의 ‘이윤율의 저하경향과 관련되는 공황’에서는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가 공황의 원인이라고 한다. 그것은 “가치체계는 그대로 놓고 잉여가치율 및 자본의 유기적구성의 변동을 문제”로 함으로써 해명한다는 것이다.32)그러나 스위지는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점”으로서 “이윤율저하경향은 가치법칙의 조건들이 완전히 충족되고 있다는 가정 하에 도출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모든 상품은 분석 전체를 통해 균형가치로 판매된다고 가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윤율의 저하는 가치체계에서의 불균형의 징후가 아닌 것이다”라고 말한다.33)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는 그 자체로서는 결코 사회적 재생산과정에서의 불균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일반적 이윤율은 “장기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경우 이윤율의 변화는 완만하고 “이윤율의 완만한 변화는 공황의 문제와 거의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장기적으로는 무엇이 정상인가에 대한 자본가의 생각도 변화하기 때문이다.”34) 일반적 이윤율이 자본축적의 장기적 과정의 운동에 관한 것인 한, 그 저하가 산업순환의 특정한 국면에 관계하는 공황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지는 일반적 이윤율이 임금등귀에 의해 저하한다면, 공황이 야기된다고 한다.

그런데 스위지가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를 야기하는 원인으로서 문제시하고 있는 임금은 개념적으로는 노동의 가격이 아니고 노동력의 가치이다. 노동의 수요공급관계에 의해 규제되는 노동가격의 변화는 일반적 이윤율에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스위지는 노동력 가치가 증대했기 때문에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가 야기된다고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리카도적인 이윤율저하론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자본축적의 장기적인 운동과정에서 노동력 가치의 증대가 야기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경우 그 노동력 가치의 증대에 의해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가 야기되는가 아닌가는 결론낼 수 없을 것이다. 스위지가 공황을 일으키는 수익성 저하의 원인으로서 임금의 등귀를 상정하는 경우, 여기서의 수익성이란 사실 일반적 이윤율이 아니라 시장이윤율인 것이다. 일반적 이윤율을 본래적인 일반적 이윤율과 시장이윤율의 두 가지 면에서 파악한 것에 스위지의 혼란이 있었다.

그래서 스위지는 다음처럼 결론짓는다. “곤란의 연쇄는 축적율로부터 고용량으로, 고용량으로부터 임금수준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상적인 폭 이상의 이윤율의 하락은 축적을 저지하고 공황을 유발시키며, 공황은 불황으로 전화하고, 마지막으로 불황은 축적율의 가속화에 유리한 조건을 다시 창출한다.”35) 여기서 축적을 저지하는 그러한 이윤율의 하락은 임금상승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노동가격의 상승이며 그로 인한 시장이윤율의 하락이다. 스위지에 있어서는 시장이윤율과 일반적 이윤율의 이론적 구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본래 시장이윤율에 속해야 할 문제가 일반적 이윤율의 문제로서 논해지고 있다.

高木幸二郞은 경향적 저하를 나타내는 일반적 이윤율을, “장기적 경향으로서 그 저하가 나타나는 이윤율은 가치기준에서 제기된 문제범주에 속하고 자본주의 발전에 따르는 체제적” 성격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36) “체제적 이윤율”이라 하고, 산업순환의 동태과정에서 가격동태와의 관련에서 나오는 실현이윤율을 “순환적 이윤율”이라 하며, “이윤율에서의 이 구별을 명확히 하는 것”은 ‘법칙’과 공황ㆍ산업순환의 관련을 문제로 하는 경우에 “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37) 더구나 양자의 관계에 대해 “후자는 전자의 현실적 운동을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것, ‘경향적 저하법칙’에서의 내적 모순의 전개는 일반적 이윤율의 순환운동을 만들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을 관철하는 것”이라 한다.38) ‘순환적 이윤율’의 운동 형태를 통해서 ‘법칙’이 관철되어 간다는 것이며, 산업순환은 그 ‘순환적 이윤율’의 변동에 다름 아닌 것이다. ‘체제적 이윤율’은 감성적인 것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념적으로 표상될 수 있는 데 그치는” 것이지만, 이에 반해 ‘순환적 이윤율’은 “산업순환 운동의 일정 국면에서 하나의 현상”에 관한 것이며, 그 경우에 “가격의 가치로부터의 괴리”, 따라서 시장가격의 변동이 중요한 문제를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39)

그래서 ‘순환적 이윤율’의 주기적 변동 과정과 그 동태에서 ‘체제적 이윤율’이 저하경향을 실현해가는 것으로서 ‘법칙’의 성립기구가 상정되는 것이며, 그것은 ‘법칙’의 정식화에 있어 필연적으로 ‘가치와 가격의 괴리’, ‘수요공급의 불균형’, 따라서 ‘자본들의 경쟁’의 전개를 불가결한 일환으로서 설정하는 것을 상정한다. ‘자본일반’의 방법적 한정 하에서도 ‘근대 부르주아사회의 내적 기구’가 천명되고 ‘법칙’을 끌어낼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러한 상정 하에서 ‘법칙’의 성립기구는 하등 명확히 될 수 없다. ‘법칙’ 그 자체의 성립 기구를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자본들의 경쟁’이라는 이론적 전제하에서다. ≪자본론≫에서의 ‘자본들의 경쟁’은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한에서 부수적으로 전개된다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 ‘법칙’의 성립 기구의 해명에서 기본적 계기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계속해서 高木幸二郞은 ‘법칙’의 논리 구조에 대해 ≪자본론≫ 제3권 제3편에서는 “우선 일반적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라는 감성적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기본적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다음에 이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에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관철되어 가는 현실적 운동양태의 설명으로 나가고 있다”고 한다.40) 즉 ≪자본론≫ 제3권 제13장, 14장에서는 “구조적, 체제적 견지”의 분석에 중점이 놓여지고, 제15장에서는 ‘동태적 견지’의 분석에 중점이 놓여 진다는 것이다. 제13장에서는 “일반적 변동을 구별해서” 논의가 전개되는 데 반해, 제15장에서는 자본축적과 이윤율 변동의 상호 규정적 관계가 문제로 되고, 축적과정에서의 자본제 생산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가 문제가 된다. 그러하다면, 이 분석시각의 상위, 논리적 위상의 상위를 확정하는 전제 위에서 제3편 전체를 관철하는 것으로서 자본제적 생산양식의 ‘역사적ㆍ일반적 성격’이 귀결될 것이다.

물론 제15장의 논리 차원에서 ‘순환적 이윤율’ 즉 시장이윤율의 동태를 고려한다고 해도, 그것은 “현실의 산업순환에서 다른 구체적 현상들과의 전면적 관련 하에 고찰한다”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인 또 역사적인 경향으로서 이윤율저하의 ‘법칙’이 상품의 과잉생산과, 따라서 또 자본의 과잉생산을 형성하는 계기들에서 내적 모순의 발현 형태를 발견하면서 어떻게 그것에 적응한 순환적 이윤율의 운동을 전개하는가”를 해명하는 것이라 한다.41) 바꿔 말하면 그것은 시장가격의 주기적 변동을 기구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며, 시장가격론의 기본적 고찰에 속한다.

斉藤道愛는 이윤율저하의 운동을 ‘장기적, 경향적 측면’과 ‘단기적, 순환적 측면’으로 구별할 것을 주장한다. 斉藤은 이 구별의 의의는 “일반적 법칙과 특수일반적 형태의 자본축적과정에 대한 작용의 차이”에 있다고 한다.42) 그래서 ‘법칙’은 “자본의 치부충동을 장기적ㆍ경향적 관점으로부터 획득한 자본논리의 일반성에서 파악한 것이고, 그러한 ‘자본의 일반성’에서는 “자본의 운동과 이윤율 변동의 상호관계가 여하한 내적 과정을 거쳐 전개하는가 하는 보다 구체적 과정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한다.43)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경기국면에서 나타나는 단기적 이윤율의 저하와는 개념적으로도 시간적으로 다른” 것으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며44), “그 자체는 공황의 필연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경기순환의 한 주기를 넘어가는 것 같은 장기적, 경향적인 역사적, 일반적 법칙”으로 이해해야 한다.45)

이윤율의 운동을 두 가지로 구별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러나 그 양자를 여하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가가 중요한 것이지만, 斉藤에게는 그 점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렇다기보다도 산업순환의 각 국면에서 야기되는 단기적인 이윤율저하가 “시장가격의 변동, 임금율의 변동, 상대적 과잉인구, 이윤율과 이자율의 대항관계 등에 의한 보다 구체적인 특수한 요인들의 결합 하에 나타나는 모순의 단기적 형태”로서 규정하고 있고46), 그래서 단기적 이윤율의 변동은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에서의 ‘법칙’과 동일한 논리차원의 것이 아니라 신용론의 전개도 전제하는 논리차원의 것이라 한다. 즉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가 논증된 위에서,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모습으로 시장이윤율의 동태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며, 일반적 이윤율과 시장이윤율은 ‘자본일반’과 ‘자본들의 경쟁’의 관계로서 기계적으로 분리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윤율저하의 운동을 두 가지로 구별하는 것에 일정한 의의가 있었던 것은, 단기적 이윤율의 동태를 통해 장기적 이윤율의 저하가 확정된다는 것이었고, ‘법칙’이 기구적으로 해명된다는 것에서 그러하였다. 단기적 이윤율이 장기적 이윤율의 운동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면, 그 단기적 이윤율의 동태도 ‘법칙’의 확립과 직접적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 때문에 斉藤에 있어서는 ‘법칙’과 공황의 관련에 대해서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자체’로부터 “공황, 불황의 순환과정은 논할 수 없다”는 부정적 측면만이 일면적으로 강조되었다.47)

시장이윤율의 주기적 변동과정을 통해 생산력의 상승이 달성되고 장기적으로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가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러한 기구의 해명에서만 시장이윤율과 일반적 이윤율의 관계도 명확히 될 수 있다. 그런데 시장이윤율의 동태는 시장가격의 주기적 변동과정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즉 시장가격의 ‘돌연한’, ‘급속한’ 저하에서 ‘상품의 과잉생산’의 형성이 현재화되고, 자본의 과잉생산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가격의 운동을 문제로 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 때문에 ‘법칙’이 논증되기 위해서는 한편에서는 자본축적의 장기적 과정에 관한 것으로서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가 생산력 상승을 전개하는 기축으로서 이념적으로 명확히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축적의 단기적 과정에 관한 산업순환의 운동과정에서 시장가격의 주기적 변동, 시장이윤율의 주기적 변동의 기구가 해명되어서 그 시장이윤율의 주기적 변동과정을 통해 생산력의 상승이 달성되는 것을 논증한다는 2단계적 작업이 논리적으로 필요하다. 자본제 생산 하에서는 개별자본들에 의한 생산력의 상승을 전제로 해서만 사회적 총자본의 생산력 상승이 가능한 것인데, 그러한 특수한 생산방법 하에서는 사회적 총자본의 생산력수준의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불연속적인 변화밖에 상정할 수 없고, 장기적 분석시각에서만 연속적인 변화를 상정할 수 있다.

 


 

1) 플랜 논쟁과 관련해서는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9호에 실린 역자의 논문(“정치경제학비판 플랜과 ≪자본≫: 이른바 플랜 논쟁에 대하여”)을 참조바란다.

 

2) MEW, Bd. 25, S. 839. (김수행 역, ≪자본론≫ III(하), 비봉, p. 1011.)

 

3) 高木 彰, ≪恐慌ㆍ産業循環の基礎理論硏究≫, pp. 23-24.

 

4) 같은 책, p. 26. 강조는 역자.

5) 같은 책, p. 27.

6) 같은 곳.

7) 같은 책, pp. 45-46.

8) 같은 책, p. 49.

9) 같은 책, pp. 49-50.

 

10) 井村喜代子, ≪≪資本論≫の理論的展開≫, 有斐閣, 1984, p. 4.

 

11) 같은 책, p. 6.

12) 같은 책, p. 13.

13) 같은 책, p. 12.

14) 같은 책, pp. 12-13.

 

15) R. Luxemburg, ≪資本蓄積論≫(上), 岩波書店, 1934, pp. 15-16.

 

16) 井村喜代子, 같은 책, p. 17.

 

17) 같은 책, p. 19.

18) 같은 책, p. 21.

19) 같은 책, p. 22.

 

20) Das Kapital, Bd. 3, S. 223. (≪자본론≫ III(상), p. 255.)

 

21) Grundrisse, S. 634.

 

22) Das Kapital, Bd. 3, S. 223. (≪자본론≫ III(상), p. 255.)

 

23) 같은 곳.

 

24) Grundrisse, S. 634.

 

25) Das Kapital, Bd. 3, S. 223. (≪자본론≫ III(상), p. 256.)

 

26) Das Kapital, Bd. 3, SS. 175-176. (≪자본론≫ III(상), p. 196.)

 

27) Das Kapital, Bd. 3, S. 249. (≪자본론≫ III(상), p. 286.)

 

28) Das Kapital, Bd. 3, S. 380. (≪자본론≫ III(상), p. 448.)

 

29) Das Kapital, Bd. 3, S. 872. (≪자본론≫ III(하), p. 1050.)

 

30) Das Kapital, Bd. 3, SS. 178-179. (≪자본론≫ III(상), p. 200.)

 

31) P. M. Sweezy, 都留重人訳, ≪資本主義發展の理論≫, 新評論社, 1967, p. 182.

 

32) 같은 책, p. 179.

33) 같은 책, p. 178.

34) 같은 책, p. 182.

35) 같은 책, p. 190.

 

36) 高木幸二郞, ≪恐慌論体系序說≫, 大月書店, 1956, p. 345.

 

37) 같은 책, pp. 345-346.

38) 같은 책, p. 338.

39) 같은 책, p. 338.

40) 같은 책, p. 339.

41) 같은 곳.

 

42) 斉藤道愛, “≪資本の絶対的過剩生産≫と≪人口法則≫ -利潤率の傾向的低落の法則との連繫を中心に-”, ≪経済学季報≫(上) 18-1, 1968, p. 169.

 

43) 같은 글, p. 166.

44) 같은 글, p. 167.

 

45) 斉藤道愛, “利潤率の傾向的低落法則について”, ≪経済学季報≫ 17-1, 1967, p. 136.

 

46) 같은 글, p. 144.

 

47) 斉藤道愛, 같은 글, ≪経済学季報≫(上) 18-1, p.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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