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과 과제

 

채만수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장

 

 

착취와 억압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인류의 염원은 아주 오래다. 그러한 염원은 수많은 전설, 설화, 동화, 그리고 의적(義賊) 이야기 등을 통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을 뿐 아니라, 예컨대 ≪홍길동전≫의 ‘율도국’처럼 저항적 문학을 통해서 기록되어 오기도 했다. 그리고 또 실제로 여러 인민반란을 통해서도 표출되어 왔다.

하지만, 그렇게 꿈꾸어온 ‘이상사회’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경로의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짐이 없이 그야말로 유토피아적, 즉 공상적이었다. 그뿐 아니라, 예컨대 홍길동이 율도국의 ‘왕’이 되는 것처럼, ‘이상사회’ 그 자체의 상(像) 속에 계급사회의 여러 모습, 여러 모순, 위계(位階)가 무비판적으로 투영되어 있기도 했다. 이는 물론 무계급 평등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물질적인 조건과 기초가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었고, 사회의 구성 원리와 그 발전법칙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없었던 데에서 오는 당연한 역사적 한계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노동생산력과 그에 따라 심화돼온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격화되고 있는 계급투쟁은, 그리고 특히 19세기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회과학, 즉 사회구성과 그 발전법칙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무계급 평등사회를 공상적 염원에서 실현 가능한 현실의 문제로 전화시켰다. 그것을 현실적으로 전망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또 실제로 실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혁명과 그 건설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해오면서도 귀중한 성과와 교훈을 남겨오고 있다.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주체적 원인은 물론 경험의 부재, 즉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것이 전인미답의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사회의 건설, 그것도 인류사 최초로 이성과 의지에 기초해서 의식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거대한 사업에서 시행착오와 실패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사고 자체가 비이성적이고 공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1871년의 빠리 꼬뮌의 실패처럼 19세기에 인류가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 실패한 최대의 원인은 결코 그 건설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경험의 부재ㆍ부족이라는 주체적인 그것이 아니었다. 그 최대 원인은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있었던 자본, 특히 독점자본, 즉 제국주의의 여러 형태의 공격과 파괴공작 그것이었다. “하나의 사회구성은 모든 생산력이 완전히 한계에 달하도록 발전해버리기 전까지는 결코 몰락하지 않는다”1)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제국주의는 그 완강한 생명력과 거대한 경제적ㆍ국제정치적ㆍ군사적 위력으로, 그리고 또한 조작된 이데올로기의 압도적 위력으로 파괴적 압박과 공작을 가해 왔고, 바로 그 때문에 20세기 사회주의는, 귀중한 교훈과 거대한 성과를 남기면서, 그 대부분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치기 변증법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제국주의의 압력이나 파괴공작 등등은 ‘외적 모순’에 불과하다”고. 그리하여 그것을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와 붕괴의 최대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은 변증법적이지 못한 잘못된 주장이라고.

그들은 변증법을 얘기하고 ‘내적 모순’이니 ‘외적 모순’이니 하는 변증법적 용어를 구사하면서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언설, 그들의 논설은 전혀 변증법적이지 않다. 그들은 제국주의의 압력과 파괴공작, 이데올로기적 허위선전과 중상모략이, 그러한 ‘외적 모순들’이 어떻게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내부에, 그리고 전세계 노동자계급과 그 운동의 내부에, 따라서 반제국주의 노동자 투쟁의 국제적 전선에 어떤 ‘내적 모순들’을 생성ㆍ발전ㆍ소멸시켜왔는가를 구체적인 현실에 입각해서, 구체적인 현실의 발전상(發展像)에 근거해서 고찰하고 거기에서 판단과 결론을 이끌어내는 대신에 ‘내적 모순’이니 ‘외적 모순’이니 하는 앙상한 관념에 매달려 형이상학적 사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국가ㆍ사회 내부에 어떻게 계급투쟁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왜곡시켜 왔으며, 제국주의의 경제적, 특히 군사적 압력이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해야 할 20세기 사회주의 국가ㆍ사회 내부의 인적ㆍ물적 자원의 배분을 어떻게 왜곡시켜왔는가 등등에 대해서는 저들은 조그마한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저들은 자신들의 반쏘 책동이 반제국주의 노동자 투쟁 전선을 어떻게 분열시켰으며,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등등에 대해서는 조금도 반성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다.2)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제국주의의 압력이나 파괴공작 등등은 ‘외적 모순’에 불과하다”며,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혹은 적어도 주로 스탈린이나 ‘스탈린주의’에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제국주의의 선전도구로 전락해 있으면서도 스스로 ‘사회주의자’니, ‘공산주의자’니, “꼬뮌주의자”3)니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결정적으로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처럼 보였던 1917년의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을 기점으로 했던 20세기 사회주의가, 주지하는 것처럼, 소수의 지역과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20세기 마지막 10년을 남겨두고 실패로 끝난 마당에 ‘귀중한 교훈’과 특히 ‘거대한 성과’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특히 1990-91년에 발생한 쏘련의 해체와 그에 따른 역사의 대반전은 그 충격과 반향이 참으로 엄청난 것이어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역사의 종언”, 즉 ‘자본주의 체제의 최종적 승리’를 선언했고, 그들의 주장처럼 정말 “역사는 끝났다”는 듯이 수많은 ‘투사들’이 좌절하며 전향해갔다. 그리고 장기간의 반동기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서 이룩한 성과는 여기에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다.4) 그리고 특히 “쏘비에트연방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공헌과 우월성은 참혹한 파괴와 계속적인 방해 및 협박을 수반했던 제국주의자들의 전략 및 포위와 관련해서 판단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의 전략은 혁명적 노동자 정권의 여러 시기에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면서 나타났다(1918년과 1941년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직접 공격, 1946년에는 냉전의 선언, 중부유럽 및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관한 개개 차별화된 정치외교관계).”5)

그리고 쏘련이 해체된 후 그렇게 “역사의 종언”, 즉 그 최종적인 승리를 주장했던 자본주의 그 자체, 계급사회로서의 자본주의의 발전 그 자체가, 그 모순의 격화 자체가 수백만, 수천만, 수억의 노동자ㆍ인민을 실업과 빈곤,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이제 21세기 전반기야말로 인류사회가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되었음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인류는 지금 착취와 억압의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무계급 평등사회로 이행해 나아가느냐, 아니면 사실상 절멸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발전한 생산력이 이미 자본주의라는 생산관계와는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지 오래임을 여러 사태가 확연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종언”이니,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니 하는 저들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의 주장이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계급사회사의 최종적인 단계이며, 자본주의를 끝으로 인류의 계급사회사(階級社會史), 즉 “인간 사회의 전사(前史)”는 그 종언을 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일 뿐일 것이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맑스는 일찍이 이렇게 쓰지 않았던가!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는 사회적 생산과정의 최후의 적대적 형태인 바, 개인적 적대라고 하는 의미에서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사회적 생활조건들로부터 발생하는 적대라는 의미에서 적대적인 것인데, 그러나 부르주아적 사회의 태내(胎內)에서 발전하는 생산력들은 동시에 이 적대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이 사회구성과 더불어 인간 사회의 전사(前史)는 끝난다.6)

 

이제 자본주의의 현 단계를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21세기의 사회주의를 전망하면서, 그 혁명과 건설에 있어서의 조건과 과제를 간단히 보기로 하자.

 

 

1. 자본주의의 현 단계와 사회주의로의 이행

  ― 그 이행의 가능성과 절대적 필요성7)

 

1) 대공황의 역사적 의의

 

앞에서도 인용했지만, 맑스는 “하나의 사회구성은 모든 생산력이 완전히 한계에 달하도록 발전해버리기 전까지는 결코 몰락하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아직까지 자본주의가 완강하게 그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를 강제했던 것도 그 가장 깊은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의 내부에서 발전해온 생산력이 비록 그 한계점에 접근하여 수억의 노동자ㆍ인민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가고,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회주의를 추구하도록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생산력이 완전히 한계에 달하도록 발전해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이미 1920년대에 이미 “모든 생산력이 완전히 한계에 달하도록 발전해버려” 1930년대의 대공황이라는 사태를 맞았으나, 이때에 인류가 전면적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하지 못하고 제2차 대전이라는 인류사 최대ㆍ최악의 살육과 파괴를 허용하고, 그리하여 자본주의가 새로운 조건과 차원에서 다시금 그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을 계기로 사회주의로 전면적으로 이행하지 못한 대공황이 직접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을 낳았고, 자본주의는 오로지 제2차 대전이라는 그 거대한 살육과 파괴에 힘입어서 1930년대의 대공황을 극복했다. 그리고 그러한 엄청난 살육과 파괴라는 기초 위에서만 대전 후 1960년대까지의 이른바 ‘장기호황’, 혹은 ‘황금기’를 구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대공황이 대전을 낳았으며, 자본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살육과 파괴에 힘입어서 1930년대의 대공황을 극복하고 호황을 맞았다는 사실은 극우 중의 극우 ≪조선일보≫조차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세계적으로 정치ㆍ경제 위기를 확산시켜 제2차 세계대전이란 격변을 낳은 것처럼 전례 없는 이번 금융위기도 전쟁에 비견되는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고 퍼거슨 [하바드대: 인용자] 교수는 경고했다”8)거나, “1937년에 2차 경제위기가 다시 찾아왔다는 점에서 대공황의 궁극적 극복은 뉴딜정책이 아니라 2차 대전 발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9)는 등의 칼럼들, 더 나아가서는 “결국 10년이 넘는 경기침체에서 미국을 살려낸 1등 공신은 뉴딜보다는 전쟁(2차 대전)이었다는 게 다수 경제학자들의 평가”이며 “전쟁 덕에 제조업이 대호황을 누리는 계기를 잡았었다”10)는 등의 칼럼이 바로 그것이다.

극우 ≪조선일보≫와 그 필자들이 이렇게 1930년대의 대공황을 제2차 대전에 직접적으로 선행하는 원인으로, 그리고 제2차 대전의 파괴와 살육 “덕에 제조업이 대호황을 누리는 계기를 잡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들이야말로 주관적ㆍ소부르주아적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케인즈(주의)’가 어떻고, ‘칼 폴라니’가 어떻고,11) ‘북유럽의 사민주의’가 어떻고 하며 떠들어대는 얼치기 ‘진보적 지식인들’과는 거리가 먼 냉혹한 현실의식의 소유자들로서의 극우분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황, 특히 현재 전개되고 있는 것과 같은 대공황의 원인과 그 역사적 의의를 다시 진지하게 곱씹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줄잡아 5천만 명 이상을 도륙하고, 인류의 역사적 성과로서의 거대한 생산력, 생산시설을 도처에서 초토화시켰던 제2차 세계대전이 사회주의로의 전면적 이행에 실패한 1930년대 대공황의 직접적 산물이었던 것처럼,12) 현재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 혹은 어찌어찌하여 현 위기를 ‘무사히’ 넘긴다고 해도 이내 다시 필연적으로 밀어닥칠 수밖에 없는 대공황13) 역시 우리에게 ‘사회주의로의 전면적 이행이냐, 또 한번의 대전쟁 곧 인류의 사실상의 절멸이냐’의 선택을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14) 방금 위에서 본 것처럼, 극우적 혹은 부르주아적 논객들조차 “1930년대 대공황이 세계적으로 정치ㆍ경제 위기를 확산시켜 제2차 세계대전이란 격변을 낳은 것처럼 전례 없는 이번 금융위기도”, 즉 이번의 대공황도 “전쟁에 비견되는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공황 혹은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의 원인은 과잉생산이다. 물론 여기에서 과잉생산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결코 일부 풍차에 돌격하는 기사들이 대드는 ‘과소소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도 말했지만,15) 예컨대 이런 경우다. 1997년 말의 격렬한 경제위기 국면에서 자본과 그 언론이 위기의 원인을 어처구니없게도 ‘국민’의 이른바 ‘과소비’, 즉 ‘과대소비’, 혹은 ‘사치ㆍ방탕’이라며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던 정세에서,16) 내가 그 “위기의 본질은 과잉생산공황이고, 그 원인도 세계시장에서의 과잉생산ㆍ과잉축적이다”라고 맞받아쳤었다.17) 그런데 그때,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수호자”18)임을 자임하는 정성진 교수는 극히 저질의 종파주의적 동기에서 “한노정연[물론 나를 그렇게 지칭했다: 인용자]이 주장하는 과잉생산론의 경우, 이윤율 문제보다는 생산과 소비의 모순을 강조하기 때문에 과소소비설의 입장을 채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둥, “그런데 과소소비설은 마르크스의 공황론의 진수로 보기 힘들며, 마르크스 공황론의 역사에서 스탈린주의적 파국론으로 치우치는 등 중요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둥19) 돌진하고 나섰는데, 과잉생산공황론은 바로 그러한 기사님들께서 생각하시는 것과 같은 ‘과소소비설’이 아닌 것이다.

일백 수십 년 전에 이미 엥겔스는, 과소소비 공황론자 뒤링(Karl Eugen Dühring, 1833-1921)을 비판하면서, 공황의 원인을 과잉생산으로 파악하는 것과 과소소비로 파악하는 것은 어떻게 다르며, 과소소비설이 왜 그른 설인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대중의: 인용자] 과소소비는 수천 년 이래의 항상적인 역사적 현상인데, 과잉생산의 결과 공황이 되어 발발하는 판로의 전반적인 정체는 겨우 50년 이래에 보이게 된 것이라면, 이 새로운 충돌을 과잉생산이라고 하는 새로운 현상에 의해서 설명하지 않고 과소소비라고 하는 수천 년래의 현상에 의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뒤링 씨만큼의 속류경제학적인 피상성을 겸비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마치 수학에서 하나는 불변량, 하나는 변화하는 양인 2개의 양의 비율의 변화를 변화하는 양이 변화한다고 하는 것에 의해서 설명하지 않고 불변량이 이전대로라고 하는 것에 의해서 설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중의 과소소비는 착취에 기초하는 모든 사회형태의, 따라서 또 자본주의적 사회형태의 하나의 필요조건이지만,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형태가 처음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의 과소소비도 공황의 하나의 전제조건이고, 아주 옛날부터 인정되고 있는 것처럼 공황에서 어떤 역할을 연출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공황이 존재하는 것의 원인에 관해서도, 또 이전에 공황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원인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20)

 

그런데도 과잉생산에 대해서 얘기하면 그것을 저들이 곧바로 ‘과소소비’와 동일시하는 것은, 한편에서는 학자를 자임하는 저들의 지적 게으름을 드러내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엥겔스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저들이 “속류경제학적인 피상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엥겔스가 명확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대중의 과소소비는 착취에 기초하는 모든 사회형태의, 따라서 또 자본주의적 사회형태의 하나의 필요조건”이며, “그러므로 대중의 과소소비도 공황의 하나의 전제조건이고, 아주 옛날부터 인정되고 있는 것처럼 공황에서 어떤 역할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공황이 존재하는 것의 원인에 관해서도, 또 이전에 공황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원인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공황은 바로 산업혁명 이후의 노동생산력의 급격한 증대라는 사실을 조건으로 해서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이 노동생산력의 급격한 증대를 다른 말로 “공장제도의 돌발적이고 엄청난 확장 가능성”으로 표현하면서 이렇게 간단히 얘기한다.

 

공장제도의 돌발적이고 엄청난 확장 가능성과 세계시장에 대한 그 의존성은 필연적으로 열병과도 같은 생산과 그에 따른 시장의 과잉공급을 낳고, 그 시장의 수축과 더불어 마비가 나타난다.21)

 

공황의 원인으로서의 과잉생산이란 바로 이렇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즉 자본-임노동관계라는 적대적 생산관계에서 궁극적으로는 대중의 소비 능력에 의해서 제약되는 사회 전반의 소비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과잉생산이고,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증대한 노동생산력,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위에서 발전한 노동생산력에 의해서 비로소 현실화된 과잉생산인 것이다. 그러한 고도의 노동생산력과 적대적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간의 모순이 주기적으로 격화되면서 주기적인 과잉생산공황이 필연적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그 불행한 계급성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의 운동법칙에 관한 한 이미 불치의 백치가 된 대부분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물론 공황의 원인과 의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의 과잉생산의 필연성, 따라서 공황의 필연성을 부인하면서, 예컨대 이렇게 얘기한다.

 

대공황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 대공황은 경제정책의 실패가 원인이었으며, 경제정책이 변화되고서야 회복이 시작되었다. 중앙은행과 재정당국의 정책방향은 금본위제에 기반을 둔 것이었는데 … 거의 모든 주요 선진국의 지속적인 디플레이션 정책의 효과가 세계를 대공황으로 빠지게 한 것22)

 

바로 오늘날 상당수 ‘진보적 지식인들’을 포한한 많은 논객들이 ‘신자유주의’ 혹은 ‘규제완화’ 등 ‘고삐 풀린 자본주의’라는 정책들이 대공황을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사고이다.23) 그런데 그러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조차 전간기(戰間期)에, 즉 1930년대 대공황 직전에 노동생산성의 비약적 증대가 있었음을, 비록 전도(顚倒)된 방식으로지만,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실업자 수가 늘면서 취업자의 노동시간당 생산량이 계속 늘었으며, 그 속도가 1913-1929년에 1914년 이전의 수십 년간보다 훨씬 더 빨랐다(…). 전간기 동안 대대적인 기술혁신이 있었고 …24)

 

그 백치증 때문에 “생산성 증가 추세는 … 저성장과 불황은 ‘불가피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사람이 빚어낸 것이라는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한다”25) 운운하고 있지만 말이다.

저들의 증언에서 백치적인 헛소리를 제거하고 사실만을 취하여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대략 이렇게 될 것이다. ― “전간기 동안 대대적인 기술혁신이 있었”기 때문에 “취업자의 노동시간당 생산량이”, 즉 노동생산력이 “계속 늘었으며, 그 속도가 1913-1929년에 1914년 이전의 수십 년간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러나 시장, 즉 소비의 증대는 노동생산력의 증대 속도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 “실업자 수가 늘면서” 격화된 생산과 소비 간의 모순, 혹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와의 모순이 결국은 1930년대의 거대한 과잉생산으로 폭발했다. 게다가 당시 자본주의 국가의 화폐-통화제도는 “금본위제”, 즉 금태환제에 “기반을 둔 것”이었기 때문에 공황구제의 수단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더욱 “모든 주요 선진국의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을 수반한 “대공황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의 원인이 과잉생산이라는 사실은, 흉작(凶作)과 같은, 말하자면, 과소생산이 그 원인이었던 전(前)자본주의 시대의 경제위기와 그 원인과 성격만이 다른 게 아니라, 그 역사적 의의도, 따라서 그것이 제기하는 역사적 과제도 전혀 다름을 의미한다. 그 원인 및 성격이 다름에 따라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ㆍ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그 원인의 다름 자체가 역사적 발전단계의 다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에 흉작과 같은 과소생산이 경제위기의 원인이었던 경우, 그것이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제는 당연히 어떻게 해서든 생산을 증대시키는 것, 결국 노동의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류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식했든 못했든, 실제로 그러한 방식으로 그 과제를 수행해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의 원인이 과소생산이 아니라 과잉생산이라는 사실, 그것도 사회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그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궁핍한 처지에 있고, 심지어는 그 상당 부분이 노숙을 하며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고 굶주리고 있으며, 또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그 때문에 폐인이 되어가고, 병들어 죽고, 일가족 집단자살이라는 형태 등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생산의 때문에 생산을 멈추고, 생산시설을 파괴하고,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의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던져져야 한다26)는 사실은 전혀 다른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생산력의 증대가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착취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폐지하고 생산수단의 공동적 소유에 기초한 공동체적 사회의 건설이 이제 인류에게 부여된 주요한 역사적 과제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요 과제가 생산력의 증대에서 생산관계의 근본적 개편의 문제로 바뀐 것이다.

경제과학27)에 약간의 지식만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공황, 특히 현재 전개되고 있는 것과 같은 대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그 안에서 발전해온 생산력이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이 양립 불가능성은 이 공황이 앞으로 필연적으로, 경제적 위기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격렬한 정치적ㆍ사회적 위기로, 특히, 대규모의 장기적인 실업과 반실업의 문제로, 그리고 그에 따른 격렬한 사회적ㆍ정치적 갈등과 대립ㆍ투쟁으로, 나아가 시장을 확보하고 사회적ㆍ정치적 갈등과 대립ㆍ투쟁을 외부로 배출하려는 독점자본ㆍ제국주의의 전쟁 책동 등으로 발전하고 폭발할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21세기 전반기가 대사회혁명의 시대이든가, 아니면 대전쟁―인류의 사실상의 절멸―의 시대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할 것이다.

대사회혁명이냐, 아니면 대전쟁 곧 인류의 사실상의 절멸이냐? 현재 인류가 이러한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있다고 하는 사실은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생산력, 특히 최근 30여 년 동안에 가히 비약적으로 전개되어온 과학기술혁명이 낳은 노동생산력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모순을 고찰해봄으로써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2) 현대 과학기술혁명의 성과와 자본주의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1970년대 이후 과학기술혁명이 그야말로 말 그대로 비약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 과학기술혁명을 직접적으로 자극한 것은 1970년대에 거듭해서 엄습했던 이른바 오일쇼크, 즉 석유파동이었지만, 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항상화되고 만성적인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독점자본 간 경쟁전의 격화였다. 항상화되고 만성적인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독점자본 간 경쟁의 격화라는 조건 속에서 보다 증대된 노동생산력을 통해서 값싸게 생산하고, 그리하여 생사의 경쟁전에서 살아남을 뿐 아니라 특별잉여가치, 초과이윤을 취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독점자본의 필사의 노력이 과학기술혁명으로서 나타났던 것이다.28)

그리고 이 과학기술혁명은 노동생산력을 참으로 비약적으로 증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나서, 이제는 재생산과정의 사실상 전면적인 자동화, 즉 재생산과정 전반에서 사실상 전반적으로 노동력을 배제하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다.

과학기술혁명은 과학과 기술의 사실상 모든 분야에 걸쳐서 전개되고 있지만, 오늘날 IT혁명, 즉 정보통신혁명으로 통칭되는 극소전자(ME, micro- electronics)혁명과 디지털(digital)혁명은 특히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서, 즉 극소전자혁명 및 그와 함께 전개되고, 삼라만상을 0과 1이라는 디지털로, 사실은 전기의 접속(ON)과 절단(OFF)의 일련의 조합으로 환원ㆍ통일시키는 디지털혁명을 통해서 노동생산력의 진정으로 혁명적인 증대, 즉 직접적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을 포괄하는 재생산과정의 사실상의 전면적 자동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29)

애초 이 자동화는 직접적 생산과정에서부터, 즉 공장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따라서 FA, 즉 공장자동화(factory automation)라고 불렸다.30) 그리고 만성적 과잉생산과 경쟁전이 더욱 격화됨에 따라서 과학기술혁명은 더욱 더 고도로 추구되고, 그에 따라 이러한 자동화는 그 영역이 사무실로까지, 즉 사무자동화(OA, office automation)로까지 확대되었으며, 마침내는 창고자동화나 대형 소매점의 POS(point-of-sales) 씨스템처럼 가히 판매 및 그 관리의 자동화라고 할 수 있는 데에까지 확대되면서 재생산과정의 전면적인 자동화에 사실상 접근해 가고 있다. 이는 인간이 그 물질적 생활수단을, 나아가서 음악이나 미술, 도서 등과 같은 정신적 생활수단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동을 통해서, 사실상 전면적으로 자동으로 생산할 수 있고 분배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과학기술혁명을 통해서 인간이 이렇게 생활수단을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동을 통해서, 사실상 전면적으로 자동으로 생산할 수 있고 분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류가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으로서 타고난 여러 자질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물질적ㆍ자연적 수단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즉, 인류가 “필연의 왕국”을 벗어나 “자유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물질적ㆍ자연적 조건을 충족시켰음을 의미한다.31)

이는 당연히 인류의 혁명적인 진보이고, 추상적으로는 인류의 ‘경사(慶事)’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속에서는, 즉 생산수단이 자본가라고 하는 사회의 소수 구성원들에게 사적(私的)으로, 즉 독점적ㆍ배타적으로 소유되어 있는 사회적 생산체제 속에서는, 더구나 그 본성상 사유화하고 상품화할 수 없는 인류의 지적 성과물, 일반적 노동32)의 성과의 상당 부분조차도 ‘특허권’이니 ‘지적 재산권’이니 하는 국가의 폭력장치를 통해서 사유화하고 상품화하는 현대 제국주의 속에서는, 그리고 또한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ㆍ붕괴되어 독점자본ㆍ제국주의에 대한 어떤 유효한 제어장치도 당분간 없어진 조건에서는33) 이 당연한 인류의 혁명적인 진보, 인류의 경사조차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인민에게는 당장은 더 없는 재앙(災殃)이다. 그리고 사실은 자본가계급에게도 물론 재앙(災殃)이다. 소생산자들은 갈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는데 노동자들은 더욱더 대량으로 실업자 및 반실업자로 길거리로 내던져질 뿐 아니라34) 취업 노동자들조차도 장시간 노동과 임금삭감을 포함한 제반 노동조건의 악화를 강요당하기 때문이고, 과잉생산 즉 생산과 소비 간의 모순이 격화되면서 공황은 더욱 격화되고 더욱더 많고 거대한 자본이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속에서 전개되는 과학기술혁명과 같은 노동생산력의 증대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일찍이 맑스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모든 방법은 개별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실행된다. 생산의 발전을 위한 모든 수단은 생산자의 지배 및 착취 수단으로 변하고, 노동자를 부분적 인간으로 불구화하고, 그를 기계의 부속물로 떨어뜨리고, 그의 노동의 고통으로써 노동의 내용을 파괴하며, 독립적인 힘으로써의 과학이 노동과정에 합체됨에 따라서 노동과정의 정신적인 힘을 그로부터 소외시킨다. 또 이들 수단은 그가 노동하는 조건들을 망가뜨리고, 노동과정 중에서 가장 편협하고 음험한 전제에 굴복케 하며, 그의 생활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전화시키고, 그의 처자를 자본이라는 쟈거노트(Juggernaut)의 수레바퀴 밑으로 내던진다.35)

 

언제나 그렇지만, 1920년대 당시 노동생산력을 혁명적으로 증대시키고 따라서 생산과정에서 살아 있는 노동, 노동력을 대량으로 배제했던 이른바 포드주의적 생산방법이 일반화되면서 발발했던 1930년대의 대공황이 특히 바로 그러한 사태였고, 최근 수십 년간의 과학기술의 결과 현재 다시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이 특히 바로 그러한 사태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는,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라고 하는 사회체제ㆍ사회구성 속에서 과학기술혁명을 통해서 발전해온 생산력이 더 이상 자본주의라고 하는 생산관계와 양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것이다.

맹목적인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노예, 경쟁력 지상주의에 빠진 누군가가 혹시 “아무리 그렇더라도 기술혁신을 더욱 가속화하여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생산과 고용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묻는다면, 그에 대해서는 한 일본 학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간접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엔고(高)ㆍ달러저(低) 등에 의해 생기고 있는 일본 경제나 개별기업의 곤란들을 의식하여 외곬으로 첨단기술의 도입→MEㆍOA합리화의 추진→경쟁력의 강화ㆍ회복을 지향하는 것은 첨단기술ㆍ첨단산업 영역의 경쟁력의 회복ㆍ향상→일본 경제의 무역ㆍ국제수지 흑자→대외무역ㆍ경제마찰의 부활→엔고의 재현→첨단기술ㆍ첨단산업 영역에 경사된 산업구조, MEㆍOA합리화의 한없는 진행 등의 악순환을 불러오고, 노동자 상태의 정체나 혼란으로 귀결될 것이다.36)

 

이미 20여 년 전의 발언이다. 그리고 사실상 전세계의 국가와 자본이 그렇게 경쟁력 지상주의를 추구해온 결과, “노동자 상태의 정체나 혼란” 정도가 아니라, 경쟁력 지상주의를 강제하는 자본주의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인류는 사회주의적 사회구성으로의 전면적인 이행, 즉 대사회혁명이냐, 아니면 1930년대의 대공황이 그렇게 귀결되었던 것과 같은 대전쟁, 그러나 핵무기라는 현대의 병기체제를 고려하면 이제는 인류의 사실상의 절멸을 초래할 대전쟁이냐 하는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혹은, 자본주의를 지양(止揚)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해야 할 절대적 필요성에 당면해 있는 것이다.

 

 

3) 과학기술혁명에 의한 생산의 자동화와 가치법칙

 

과학기술혁명의 결과 획득된 자동화 생산력이 자본주의의 폐지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불가피하게 하고 강제한다고 하는 사실은, 이미 다른 곳에서도37) 간단히 언급한 것처럼, 자본주의를 포함한 상품경제의 기본적ㆍ절대적 경제법칙인 가치법칙38)에 의해서도 설명된다. 아니, 입증된다.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을 배제하는 자동화된 생산은, 가치법칙에 따르면, 그 생산물을 무가치하게 생산하는 것이고,39) 따라서 그 생산물들은 상품으로서 교환될 수 없고 무상으로 분배되어야 하는 것인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에서는 그것들이 무상으로 분배될 수 없고, 따라서 가치법칙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 즉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폐지하여야만, 보다 적실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하고 생산수단을 공동체적으로 소유하는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해야만 그것들이 그 가치법칙에 따라서 무상으로 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추구하는, 즉 노동생산성을 증대시켜 노동자들의 필요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잉여노동시간을 증대시키는 자본의 운동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 즉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을 고도화시키며, 그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할수록 이윤율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 다시 자본의 경쟁전, 즉 특별잉여가치 곧 초과이윤을 획득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임으로써 낮아지는 이윤율을 보다 큰 이윤량으로 보상하려고 하는 경쟁전에 의해 매개됨으로써 주기적으로 과잉생산공황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꽤 널리 알려져 있다.40)

그런데, 일본식 표현이지만, “생력화(省力化)”를, 즉 생산과정에서의 살아 있는 노동력의 배제를 극한까지 추구하는 현대 과학기술혁명의 결과 인간 노동의 투입이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까지 축소되는 사실상의 전면자동화, 무인생산이 이루어진다면,41) 그러한 사실상의 전면자동화 곧 무인생산이 개별적이고 예외적인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것으로 된다면, 사태는 어떻게 될까?

미국의 ‘노동자세상당(Workers World Party)’의 창건자인 쌤 마씨(Sam Marcy)42)의 얘기를 우선 들어보자.

 

부르주아 언론은 고도의 기술에 대한 경탄으로, 그리고 거의 완전히 자동화되어 있는 공장들에 로봇이 도입되고 있는 데에 대한 경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적 운동법칙의 극히 중요한 요소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로봇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오래 전에 맑스가 논증한 것처럼, 기계 혹은 불변자본은 과거의 노동과 과거의 잉여가치의 결과이다. 이윤은 기계 자체로부터는 생기지 않는다.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맑스의 용어로는 가변자본으로 알려져 있는, 노동자의 노동이고, 이윤은 거기에서 나온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임금으로 받는 것보다 커다란 가치를 생산하고, 그것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그들의 노동의 지불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로봇은 노동자가 아니다. 로봇은 고정자본 혹은 불변자본이고, 그것은 이윤을 생산하지 않는다. 오직 지불되지 않는, 즉 부불(不拂)의 인간노동만이 이윤을 생산한다.43)

그렇다. 로봇을 비롯한 어떤 자동화된 생산시설도, 혹은 어떤 과거의 노동도 잉여가치를, 따라서 이윤을 생산하지 않는다. 오직 살아 있는 노동만이 잉여가치를, 이윤을 생산한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사실은 로봇을 비롯한 어떤 자동화된 생산시설도, 혹은 어떤 과거의 노동도,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치 그 자체를 생산하지 못한다. 살아 있는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본주의적 생산은, 경쟁이라는 외적 강제 때문에, 그것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의 물질적 생활수단들을, 그리고 나아가서 이 물질적 생활수단들을 생산하는 수단들을 갈수록 무가치하게 생산함으로써 발달한 상품생산체제로서의 자신은 물론 상품생산체제 일반을 폐기하지 않을 수 없는 물질적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초인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영구적으로 폐지할 수 있고, 또 폐지해야만 하는 조건이 성숙해 있다.

왜냐?

이미 150여 년 전에 맑스가 언명하고 있는 바를 보라!

 

노동자의 절대수를 줄이는, 즉 국민 전체에 있어서 실제로 보다 적은 시간에 총생산을 할 수 있게 하는 생산력의 발전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구의 다수를 폐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시 자본주의적 생산의 독특한 제한이 나타나고, 또 자본주의적 생산이 결코 생산력의 발전이나 부의 생산을 위한 절대적인 형태가 아니며, 오히려 일정한 시점에서 그 발전과 충돌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나타난다. 부분적으로는 이 충돌은 노동자 인구의 이런저런 부분이 낡은 취업양식으로는 과잉으로 되는 데에서 기인하는 주기적인 공항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한계는 노동자들의 남는 시간이다. 사회가 획득하는 절대적인 과잉시간은 자본주의적 생산과는 어떤 관계도 없다. 생산력의 발전이 자본주의적 생산에 중요한 것은 단지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잉여노동시간을 증대시키는 한에서이지 그것이 물질적 생산 일반을 위한 노동시간을 축소하기 때문이 아니다.(강조는 인용자)44)

“노동자의 절대수를 줄이는, 즉 국민 전체에 있어서 실제로 보다 적은 시간에 총생산을 할 수 있게 하는 생산력의 발전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구의 다수를 폐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 다름 아니라, 바로 전면적인 자동화, 무인생산을 지향하고 있고, 또 그것을 사실상 가능하게 하고 있는 오늘날의 과학기술혁명의 귀결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순환적 공황의 국면에서는 물론이고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는 회복기ㆍ번영기에조차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니, 감량경영(downsizing)이니, 노동유연화니 하며 노동자를 대량으로 폐기하고 있고 비정규직화하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2.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조건

 

이상에서 고찰한 것은 착취에 기초한 사회로서의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할 수 있게 하고, 또 무엇보다도 이행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게끔 하고 있는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이었다.

그런데 그 이행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자본주의 주요 국가들의 노동자계급은 사실상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현재 극히 취약한 상태에 있다. 이는, 그 이행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객관적ㆍ물질적 조건을 고려하면, 인류가 지금 대단히 위태로운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고, 따라서 그 주체적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선진 노동자들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작은 위안이 있다면, 인류가 제1차 대전, 제2차 대전이라는 참화를 겪으면서 얻은 일반적인 교훈, 즉 다시 한번 더 그러한 대전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일 것이다. 바로 이 교훈 때문에, 예컨대, 시도 때도 없이 성조기가 휘날리고, 자국이 약소국을 상대로 제국주의적인 침략을 감행할 때마다 침략 정권과 대통령의 인기가 치솟는, 가히 국가주의ㆍ애국주의의 도가니인 미국에서조차 언제나 반전(反戰)시위, 반전투쟁이 벌어지고, 특히 전쟁이 장기화되고 확전되기라도 하면 그 반전시위ㆍ반전투쟁이 대대적으로 확산될 터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사회ㆍ역사의식, 계급의식이 고양되어 투철하지 못하고, 그들이 그러한 계급의식으로 조직되지 못한다면, 저 역사적 교훈도, 그에 기초해서 벌어지는 반전시위ㆍ반전투쟁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덧없이 무너질 것임은 그 자체로서 자명하다 할 것이다.

아무튼 다시 우리의 주제로 돌아가면, 자본주의 주요 국가의 노동자계급이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극히 취약한 상태에 있는 것은, 단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1950년대 중반 이후 그들의 혁명성ㆍ전투성이 현저히 후퇴되면서 심화돼온 현상인데,45) 이는 주로 다음과 같은 원인과 사정에 의한 것일 것이다.

(1)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혹은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제국주의의 적극적인 정치적ㆍ사회적 대응. ― 특히 사민주의적 사회복지제도와 반공 이데올로기 선전의 강화.

(2) 제국주의의 그러한 대응의 일환으로 확립된 소위 사민주의적 사회보장제도에의 노동자계급의 안주. ― 특히 노동운동의 경제주의ㆍ조합주의로의 타락과 자본주의 주요 국가의 공산당ㆍ노동당의 자본주의 체제내화, 혹은 사실상의 사민주의 정당화, 즉 독점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좌파 정당화.

이 소위 사민주의적 사회보장제도는 물론 사민주의자들 혹은 사민주의 정당의 자발적인 이니셔티브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 아니라,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쏘련의 발전에 고무 받은 노동자ㆍ인민이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게 된 데에 대한 독점자본가계급 좌파의 대응이었다.46) 그 때문에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인민대중이 그에 안주함에 따라서, 즉 혁명성을 상실함에 따라서 1960년대 이후 그것들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쏘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된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그 후퇴는 가속화되었다.

참고로, 기존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나 언론이, 그리고 또 그들 스스로가 아무리 그들(자신들)을 가리켜 ‘좌파’라고 칭하고 있더라도, 1990년대 이후에는 이미 “제3의 길”이니, “새로운 중도”니 하는 깃발을 들고 사실상 극우정당화했다는 사실도 여기에 부기해둬야 할 것이다.

(3)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등등 새롭게 개발되거나 강력해지고, 광범위하게 보급된 대중매체를 통한 독점부르주아지의 전방위적인 이데올로기 조작과 그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무방비 상태, 혹은 피(被)흡입.

한편에서는 심리전 전문가들이 중상 모략적인 정보를 조작ㆍ날조해내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업주의적 대중매체들이 그것을 극화함으로써 반공주의를 대중의 감성화 해왔다. 그리하여 일찍이 3S(sports, sex, screen)로 불렸던 이들 대중조작 수단을 통해서 제국주의는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무장해제시켰을 뿐 아니라, 그들 수단을 동원한 지속적이고 고도로 심리적인 반공책동을 통해서 노동자ㆍ인민 대중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에까지, 즉 반노동자계급적ㆍ반공적으로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재무장을 시키는 데에까지 성공했다.

그리고 독점자본의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승리와 노동자ㆍ인민 대중의 정치ㆍ이데올로기상의 반노동자계급적ㆍ반공적 재무장에는 ‘서유럽 맑스주의자들’을 포함한 소부르주아적이고 반공주의적인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도 커다란 몫을 담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컨대 오늘날 폴라니가 어떻고, ‘녹색 뉴딜’이 어떻고, ‘사회적 기업’이 어떻고, ‘경제 정의’가 어떻고, ‘규제 강화’가 어떻고 하고 떠들고 있는 것처럼, 아래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사상을 거세시키고 왜곡하면서 언제나 그 전망을 체제 내에 철저히 가두어왔다.

(4) 이미 정치적ㆍ조직적으로 무력해진 상태에서 가해진 신자유주의 공세와의 주요 투쟁에서의 패배와 그에 따른 좌절감, 심화된 무기력증.

(5)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의 해체ㆍ붕괴로 인한 절대다수 선진노동자들의 정치적ㆍ역사적 좌절감과 반쏘ㆍ반공주의가 발호하는 대반동의 시대 도래.

그리고 여기에서도 역시 ‘서유럽 맑스주의자들’을 포함한 소부르주아적이고 반공주의적인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물론, 노동자계급운동 내부의 여러 갈래의 반쏘 종파주의자들이, 스스로 그 역할을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사실상 독점자본의 악질적 반공선전, 반공 캠페인의 앞잡이가 되어 상당한 역할을 해왔고, 또 지금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참고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를 목도하면서 ‘전망’이 안 보인다면, 다음과 같은 지적과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건설은 진로의 역전과 자본주의로의 후퇴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그것은 낡은 자본주의적 관계의 잔재에 대항하여 새로운 공산주의적 관계의 전면적 발달을 둘러싼 싸움의 패배이다. 그와 같은 후퇴는 사회의 발전에서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모든 경우 그 역사상 일시적인 현상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곧바로 강고한 것으로 된 그런 사회구성체는 없었다는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의 이행이라는 발전과정은 곧 바로 진행하는 상승과정은 아니다. 이런 것은 자본주의의 보급 역사 그 자체에서도 볼 수 있다.47)

 

임노동과 자본의 관계라고 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역사적으로 새로운 형태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14세기 후반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제노바, 베네치아 등)에서 등장하였고 확대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것들은 더 고차적인 발전단계로 이행하여, 지배적으로 될 수 없었고 그 결과 봉건관계로 후퇴하게 되었다. 그 후 16세기에 영국과 홀란드(Holland)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발달하고 부르주아지가 제1선에 등장하여 일련의 부르주아 혁명에 이르게 되고 봉건계급과의 대립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서 결국 부르주아 계급은 19세기에 와서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쏘비에트연방 과학아카데미의 ≪세계의 역사≫ C2권, p. 943-983에는, 이탈리아북부의 도시들에서의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대과정이 상술되고 봉건관계의 회복과 지배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쇠퇴와 전복의 과정에 대해서도 서술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도달해 있던 정도를 나타내는 특징은 고용되는 육체노동자와 부르주아 숙련공이나 상인, 은행가 사이에서 봉기나 공격을 포함한 격렬한 계급대립이 일어났다고 하는 점이다. 특징적인 사건은 1343년에 피렌체(Florence)의 직물 제조 작업장에서 4000명의 노동자가 일으켰던 봉기에 관한 것이다. 15세기에는 제조업은 제한되어 있어 부유한 도시주민은 자금을 농업활동에 투자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적 관계의 후퇴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13세기에 일부의 도시에서 농노제가 폐지되든가 완화되든가 하였으나, 15세기 후반에는 농노제로의 회복이 생겨났다는 점이다.(C 2권, p. 962-96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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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진실로 맑스-레닌주의적인 사상ㆍ이념과 운동도, 대개는 비록 가는 흐름으로서이긴 하지만, 세계 도처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고, 또한 부활ㆍ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전반적 위기가 재격화된 시대의 자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적 착취ㆍ억압과 대반동은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움직임, 새로운 투쟁을 자극하며 불러오고 있고, 특히 현재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것이 계기가 되어 21세기 전반기가 대반동의 시대로부터 대혁명의 시대로, 혹은 최악의 경우에는 인류 절멸의 시대로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과 상황 속에서 맑스-레닌주의적인 사상ㆍ이념뿐 아니라 맑스-레닌주의적인 노동자 정치조직을 획득해내고 강화하는 것, 그것은 오늘날 선진노동자들에게 부과된 지극히 어려우나 그만큼 긴요ㆍ긴급하고 또한 그만큼 영광스러운 역사적 과제, 임무일 것이다.

 

 

3.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과 과제

 

이제 21세기 사회주의는 어떠한 사회가 될 것이며, 될 수 있는가를 간단히 보기로 하자.

 

1) 사회주의의 조건과 특징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맑스나 엥겔스는 공론적(空論的) 망상가가 아니라 그야말로 철저한 현실주의자, 과학자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아직 당면의 절실한 탐구대상이 아니었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사회상(社會像)이나 그 운동법칙에 대해서는, 그 대략의 원칙과 얼개에 대해서만 간단한 밝혔을 뿐, 많은 글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그들의 서술은 그들이 그렇게 발언을 절제하면서 남긴 것인 만큼 그만큼 그 내용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많은 부분은 ≪자본론≫을 위시한 그들의 여러 주요 저작 속에 산재해 있고, 또 어떤 부분들은 대표적으로 엥겔스의 “공산주의의 원리”(1847)나 맑스의 “고타강령 비판”(1875)처럼 독립적인 문헌으로 존재하는데, 여기에서는 “고타강령 비판”을 중심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조건과 특징에 대해서 간단히 보기로 하자.

 

(1)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생산물의 존재 형태

맑스는 그의 주저(主著) ≪자본론≫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富)는 ‘상품의 거대한 집적(ungeheure Warensammlung)’으로 나타나고, 개개의 상품은 그 원소형태(Elementarform)으로서 나타난다”49)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는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대부분이 상품으로서 나타나고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고, 그 때문에 상품교환을 통해서만 그 생산 노동이 사회적 노동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생산물의 존재형태는 전혀 다르고, 이에 대해서 맑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생산수단의 공유를 토대로 하는 협동조합적 사회의 내부에서는 생산자는 그 생산물을 교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는 생산물에 지출된 노동이 이 생산물의 가치로서, 즉 그 생산물의 물적 속성으로서 나타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달리 개개의 노동은 이미 간접적으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총노동의 구성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50)

 

그리고 이렇게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서 나타나지 않는 사회에는 당연히 화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옛 쏘련의 루블(rubl’)이 본래적 의미에서의 화폐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이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주요한 생산수단이 국유 내지 협동조합적으로 소유되어 있던 쏘련에서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사회에 제공한 노동에 비례하여, 사회적으로 저장된 소비수단으로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그것을 청구하는 수단, 혹은 노동증명서와 같은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화폐 특유의 유통, 즉 최초의 구매자=지불자로부터 손과 손을 바꾸면서 계속 멀어져가는 특유의 운동도 하지 않았다.

물론 쏘련에서는 아직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 그리하여 생산물 전체를 계획적으로 생산할 수 없었고 분배할 수 없었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보장했던, 채마밭에서의 생산물이나 가금(家禽) 등의 비자본가적 상품생산이 극히 부차적인 경제제도로 존재했고, 루블이 거기에서 가치의 척도 및 유통수단으로 기능했기 때문에 그러한 한에서 그것은 화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51) 그러나 화폐로서의 루블의 기능은 쏘련 경제 전체에서 루블이 수행한 기능 전체에 비하면 양적으로도 그 의의에서도 극히 부차적인 것이었고, 또 소멸해가도록 예정된 과도기적인 것52)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상품으로서 나타나지 않는 사회주의ㆍ공산주의에서의 노동생산물은 어떻게 분배되는가?

생산수단의 생산과 분배는 사회 전체의 당장의, 그리고 장래의 필요를 고려한 과학적 계산의 결과에 따라 계획적으로 이루어질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소비수단들에 관해서는?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 (=협의의 ‘사회주의’) 사회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협의의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그 분배원칙이 다른데, 이에 대해서는 맑스의 “고타강령 비판”를 참고해야 할 것이다.

 

(2)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협의의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소비수단의 분배

이에 대해서 맑스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 자신의 토대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반대로 이제 겨우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태어났을 뿐인 공산주의 사회 …, 따라서 이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점에서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 공산주의 사회가 태어난 모태(母胎)인 구 사회의 모반(母斑)을 아직 지니고 있다. 따라서 개개의 생산자는 그가 사회에 제공한 것과 정확히 같은 만큼의 것을 ―[사회의 사회적ㆍ경제적 필요에 따라: 인용자] 공제한 후에― 되돌려 받을 것이다. 개개의 생산자가 사회에 제공한 것은 그의 개인적 노동량이다. … 개개의 생산자는 이러이러한 노동(공동의 기금을 위한 그의 노동분을 공제한 위에서)53)을 제공했다고 하는 증명서를 사회로부터 받고, 이 증명서를 가지고 사회적으로 저장된 소비수단 중에서 같은 양의 노동이 소비된 소비수단을 인수한다. 개개의 생산자는 자신이 하나의 형태로 사회에 제공한 것과 같은 노동량을 다른 형태로 반환받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명백히, 상품교환이 등가물의 교환인 한에서 이 교환을 규제하는 것과 같은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내용도 형식도 변화되어 있다. 왜냐하면, 변화된 상황 하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노동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할 수 없고,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적 소비수단 외에는 아무것도 개인소유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 소비수단이 개개의 생산자 사이에서 분배될 때에는 상품등가물의 교환의 경우와 동일한 원칙이 지배하고, 하나의 형태의 노동이 다른 형태의 동등한 양의 노동과 교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평등한 권리는 아직 역시 ―원칙적으로― 부르주아적 권리이다.54)

 

이렇게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에서는 “개인적 소비를 위한 사회적 생산물의 대부분은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즉] 필요가 아니라 노동에 의거해서 분배된다.”55) 그리하여 이러한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 아래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한다.”56) “그러나 이러한 결함은 오랜 산고(産苦) 끝에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갓 태어났을 뿐인 공산주의 사회의 제1단계에서는 불가피하다. 권리는 사회의 경제구조 및 그것에 의해서 제약되는 문화의 발전보다도 더 높을 수는 없기”57) 때문이다.

(3)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협의의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소비수단의 분배

이에 비해서, 사회주의가 발달하여 높은 단계로, 즉 본래적 의미의 공산주의 사회로 진입하면, 소비수단의 분배원리는 전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맑스에게서 들어 보자.

 

공산주의 사회의 보다 높은 단계에서는, 즉 개인이 분업에 노예적으로 예속되지 않게 되고, 그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없어진 후, 노동이 단순히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노동 그 자체가 제일의 생활욕구로 된 후, 그리고 개인의 전면적인 발전과 더불어 또한 그의 생산력도 증대하고 협동적(genossenschaftlich) 부(富)의 모든 원천이 한층 풍부하게 흐르게 된 후에는 ― 그때에야 비로소 부르조아적 권리의 협소한 지평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사회는 그 깃발에 이렇게 쓸 수 있다: 각자는 그의 능력에 따라서, 각자에게는 그의 필요에 따라서!58)

 

 

2) 고도의 생산력과 사회주의

 

“각자는 그의 능력에 따라서, 각자에게는 그의 필요에 따라서!”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부르주아 사회이고, 따라서 당연히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 따라서 생산력도 고도로 발전해 있고 또 사회 구성원도 공산주의적 새로운 인간형으로 개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에게는 그의 필요에 따라서”, 즉 ‘필요’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욕심에 따라서’, 혹은 욕심껏 분배한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서는 우선, ‘사회 구성원이 공산주의적 새로운 인간형으로 개조되어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소위 인간성을 고정 불변의 것으로 보는 추상적 인간관, 특히 개개인의 이기심이야말로 사회의 발전을 추동하는 힘으로 보는 부르주아적 인간관, 사회경제관념은 배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아마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염려가 멎지 않을 터이다. 하나는, 견물생심(見物生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무리 “개인의 전면적인 발전과 더불어 또한 그의 생산력도 증대”했다고 하더라도, “각자는 그의 능력에 따라서”라고 한다면, 즉 사회구성원에게 어떤 형태의, 노동의 의무나 강제도 가해지지 않는다면, 필요한 물질적 생활수단이 충분히 생산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그것일 것이다.

후자에 관해서 먼저 말하자면, 이렇다.

우선, 착취에 기초해 있고, 사실상 이기적 동기가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아무런 대가를 바람이 없이 혹은 자신의 봉사ㆍ헌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람 그 자체만을 대가로 수많은 사람이 사회에 대해서 봉사ㆍ헌신하고 있고, 심지어 자신을 희생하고 있으며, 또 봉사ㆍ헌신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물며 착취가 폐지되고 평등한 사람들의 우애와 사랑이 사회를 지배한다면, 부르주아 사회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ㆍ헌신의 노동에 나설 것이다.

다음에는, “노동이 단순히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노동 그 자체가 제일의 생활욕구로 된 후”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예나 감옥의 죄수들은 노골적인 강제에 의해서 노동은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노예는 경제적 강제에 의해서 노동은 한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노동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감옥의 미결감이나 독방에서, 혹은 드물게는 징집된 군대의 ‘보충대’에서도, 겪는 것이지만, 아무 할 일도 없이 방치되는 것의, 혹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이 강제되는 것의 견디기 어려운 무료함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노동의 생활욕구이다!

계급사회의 소수 착취자들은 물론 전혀 노동하지 않고 살 수 있다. 고도의 소비ㆍ향락의 능력을 과시하면서! 즉, 갖가지 소비ㆍ향락, 즉 타락행위가 노동을 대신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이 가능한 것은 물질적으로는 그들이 착취자이기 때문에 가능할 터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바로 착취자로서 인간을 배려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발달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착취자도 인정되지 않고, 따라서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야수 같은 심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하고자 하는 생활욕구를 대체할 어떤 활동도 없다.

따라서 사실상 ‘무인생산’을 운위할 정도로 노동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한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봉사ㆍ헌신 노동과 생활욕구로서의 노동만으로도 사회구성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물질적 생활수단을 생산할 수 있다고 일단 얘기할 수 있다.

한편, 견물생심?

그것은 시장이 발달한 상품생산 사회에서의 인간성의 일면일 뿐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생산물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가, 즉 질적(質的)으로는 무차별하고 양적(量的)으로만 차이가 있는, 그러나 동시에 아무리 많은 양(量)일지라도 그 자체로서 한계가 있는 교환가치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만큼 인간의 욕심이 한도 끝도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수조, 수십조, 수백조의 재산을 가진 자본가들이 끝없이 더 많은 재산을 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사회는 상품생산 사회가 아니며, 따라서 시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는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가 관심의 대상이고, 그러한 한에서 ‘욕심’은 그 자체로서 극히 작은 범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제 의구심은 해소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과학기술혁명의 결과로서 사실상의 무인생산을 현실적으로 실현해가고 있는 현재의 고도의 생산력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고도의 자동화 생산력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이다. 더구나 재생산과정의 전반적 자동화가 운위되고 있을 정도로 고도의 생산력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위한 생산력이라는 일반적 조건은 물론, 어떠한 의미의 강제노동도 필요치 않을 정도의, 즉 헌신적 노동과 “그 자체가 제일의 생활의 욕구”가 될 노동만으로도 필요한 노동을 충분히 수행되고도 남을 정도의 생산력이 획득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3) 제1의 과제
   ―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소유관계의 확립

 

제1의 과제는 당연히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소유관계의 확립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은 사회주의 혁명 그 자체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혁명을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고도의 계급적 정치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하고, 또 견고하게 조직되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이러한 정치의식과 조직으로 혁명에 성공한다면,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확립은 바로 그 직접적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제는 다시, 앞의 제2절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조건’에서 논한, 노동자계급의 현재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그리고 조직적 취약성을 극복하는 것으로 환원된다. 아니, 바로 그것이 현시기에서의 선차적(先次的)인 과제이다.

20세기 후반기에는 특히, 그리고 21세기 초인 지금에도 ‘노동자 혁명운동’으로 위장된 여러 갈래의 소부르주아적 극좌운동이 제국주의의 반공 정치공작과의 사실상의 직ㆍ간접적인 교감 하에, 그리고 전반적인 반동화 조류 속에서, 혁명적 노동자계급운동을 파괴ㆍ분열시켜 왔다. 이들 조류는 대개 좌익 강경파 혹은 극좌적인 형태를 띠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수의 순진한 청년ㆍ학생, 젊은 노동자들을 유혹하면서 노동자계급운동 속에 침투해 있고, 그 때문에 그만큼 위험하며, 그 척결ㆍ극복도 난제로 되어 있다.

한편, 고도의 정치의식과 조직으로 혁명에 성공한다면,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확립은 바로 그 직접적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20세기의 경험, 쏘련에서의 경험은 혁명(1917년) 후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확립에 착수(1928-29년)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주지하는 것이겠지만, 다름 아니라, 제1차 대전에 의한, 그리고 제국주의의 간섭ㆍ침략 전쟁에 의한 생산력의 파괴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세 가지 이유에서 20세기의 경험과는 다를 것이다.

첫째로는, 21세기에는 그러한 파멸적인 전쟁, 거대한 파괴를 거치지 않고 기본적으로, 혁명과정에서 불가피할 계급 간 충돌로 약간의 손실은 불가피할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는 고도의 생산력을 보유한 채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공할 핵무기 체계 하에서 제1차 대전이나 제2차 대전과 같은 대전쟁을 허용한다면, 그것은 혁명의 성패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사실상의 절멸의 문제로 될 것임은 이미 얘기한 대로이다.

둘째로는, 게다가 20세기 전반기에는 그 특유의 역사적ㆍ국제적 조건 때문에 러시아나 중국 등처럼 자본주의적 발전, 따라서 노동생산력의 발전이 뒤떨어져 있던 국가ㆍ지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였으나, 21세기 전반기에는 자본주의가, 따라서 노동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한 국가ㆍ지역에서부터, 혹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국가ㆍ지역에서 먼저 발생하더라도 이들 국가ㆍ지역이 곧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한편에서는 이들 자본주의가, 따라서 노동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한 국가ㆍ지역이야말로 오늘날 무인화 과학기술혁명이 가장 진전되어 계급 간의 모순이 가장 심화되어 있고, 따라서 아직 비록 잠재적이지만 격렬한 계급투쟁의 가능성이 가장 성숙해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저들 독점자본이 미친 듯이 추구하고 자랑해온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화 혹은 ‘지구화’ 되어 있어서, 즉 그 재생산 연관이 극히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59) 어느 한 주요한 국가ㆍ지역에서의 혁명은 다른 국가ㆍ지역으로 연쇄적으로 파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전반기의 사회주의 혁명이 발달한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일 것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21세기에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좌절시키려던 제국주의의 간섭ㆍ침략 전쟁과 같은 것은 없을 것이며, 일단 혁명이 성공하면 그 후의 행로가 그만큼 순탄할 것임을 의미할 것이다.

셋째로는, 20세기의 경험과 교훈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20세기의 경험과 교훈을 인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 때문에, 그리고 반쏘적이며, 따라서 그것을 단호히 부인하려는, 혹은 ‘타산지석’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에서 바로 그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참고로, 일부 선의의 소부르주아적 몽상가들 중에는 말하자면 ‘풀뿌리’ 협동조합(운동)이나 ‘생산 공동체(운동)’, 혹은 ‘생활 공동체(운동)’ 등이, 시간은 걸리고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사회 일반의 사회주의로 성장ㆍ전화할 것으로 믿으면서 거기에 ‘투신’ 혹은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도 협동조합적 공장이나 ‘공동체’ 같은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실제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그 자체로서 사회주의 사회로 성장ㆍ전화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한에서만, ‘자유민주주의’를 과시하는 장식물로 머무는 한에서만, 허용되고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또 다른 과제
   ― 협동조합적 사회에 적합한 도덕적ㆍ정신적 품성

 

앞에서는, 이미 달성한 고도의 자동화 생산력이, 사회주의와 생산력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를 위한 생산력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것이며, 20세기와는 다른 조건 때문에 일단 주요 국가와 지역에서 혁명이 성공하기만 하면 곧바로 그리고 순탄하게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건설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단히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들의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사회에 적합한 도덕적ㆍ정신적 품성의 형성 없이는 그 사회가 원만히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혁명과정 자체가 사회구성원들의 정치적ㆍ도덕적ㆍ정치적 품성을 크게 고양시키고 사회주의적으로 변화시킬 것이지만, 동시에 구 지배계급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저항도 격렬할 것이고 재생산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폭력적, 군사적인 방법으로도 표출될 것이다. 또한 노동자계급 자신 역시 장기간의 계급사회에서 몸에 밴 습관상의, 그리고 이데올로기상의 유습ㆍ잔재가 쉽게 사라지지는 결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구 지배계급의 저항을 제압ㆍ분쇄하고, 그들을 교화하는 데에 필요한 조치가 반드시 취해져야 할 것이고, 동시에 노동자계급 자신 또한 상당 기간의 사회적 학습과 의식적 노력을 통해서 부르주아 사회의 유습과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간성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청산해야 할 부르주아적 유습은, ① 불필요한 탐욕, ② 비협동적ㆍ이기적 사고와 생활태도, ③ 정치적 피동성 등일 것이다. 더불어, 앞에서 언급한 ‘노동자 혁명운동’으로 위장된 여러 갈래의 소부르주아적 극좌운동의 유습과 잔재 역시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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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에서는 결국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길거리로 내던져지고 있는, 폐기되고 있는 1천여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결사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전국의 많은 노동자ㆍ민중이 물심양면으로 그에 대한 지지ㆍ성원을 보내고 있다.

이 투쟁이 기본적으로 승리로 끝날지, 패배로 끝날지, 혹은 일정한 타협으로 끝날지, 그것은 지금 누구도 점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설령 철저한 패배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저들 독점자본ㆍ제국주의의 승리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설령 철저한 패배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노동자계급의 패배는 극히 단기적일 뿐, 종국적인 패배자는 저들 독점자본ㆍ제국주의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21세기 전반기에 자본주의가 처한 상황이다.

 


 

1) K. 맑스, ≪경제학 비판≫(1859), MEW, Bd. 13, S. 9.

 

2) 국제 노동자계급운동 내부의 대표적인 반쏘주의에 대해서는 토니 클라크(Tony Clark)의 “트로츠키주의란 무엇인가―트로츠키의 주요 이론적 가정들에 대한 비판”(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 ≪노동사회과학 제1호, 공황과 사회주의≫, 노사과연, 2008, pp. 293-377) 및 이 책 ≪노동사회과학 제2호, 사회주의: 20세기와 21세기≫에 함께 수록된 김해인의 “‘쏘련국가자본주의론 비판’을 위한 시론(始論)”를 참조.

 

3)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상당수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특히 스스로를 “꼬뮌주의자”니, “코뮌주의자”니, “코뮨주의자”니 하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왜 ‘공산주의자’라는 전통적인 번역어를 거부하면서 ‘구태여’ 자신들을 그렇게 규정할까? 그것은, 주지하는 것처럼, 다름 아니라 자신들이 반쏘ㆍ청산주의자들임을, 바로 대반동의 시대의 일익을 담당하는 어릿광대 같은 반동적 지식인들임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4) 20세기 사회주의가 이룩한 성과에 대한 간단한 서술로는,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집필, 김성칠 역,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정세와 노동≫ 제46호, 2009. 5., 노동사회과학연구소, pp. 72-76) 및 바만 아자드 저, 채만수 역,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사회주의 국가 쏘련을 해체시킨 요인들≫(증보판, 노사과연, 2007)의 제1장 참조.

 

5)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김성칠 역,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 p. 76.

 

6) K. 맑스, 같은 곳.

 

7) 본래라면, “이행의 가능성과 그 필연성”으로 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의 대공황기에 인류가 전면적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데에 실패함으로써 현재 인류는 자칫 인류의 사실상의 절멸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량의 핵무기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그 “필연성”이 “절대적 필요성”으로 전화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8) 이용수, “‘악의 축’보다 더 위험한 ‘격변의 축’: 종족 갈등·강대국 영향력 퇴조에 금융위기 직격탄”, ≪조선일보≫ 2009. 2. 18.

 

9) 장용성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 교수(美로체스터대 교수), “뉴딜정책, 절반은 실

   패였다”, ≪조선일보≫ 2009. 4. 4.

 

10) 송희영 논설실장, “루스벨트의 뉴딜, 이명박의 뉴딜”, ≪조선일보≫ 2009. 1. 17.

 

11) 지난 3월 ≪한겨레≫는 정태인, 홍기빈 등과 같은 ‘진보적 지식인’으로 명성이 높은 교수, 학자들을 동원하여 이 경제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이론적ㆍ정책적 영감을 주는 구세주로서의 칼 폴라니 띄우기 캠페인을 벌였는데, 폴라니의 소부르주아적 몰과학성에 대한 간단한 폭로로는, 김건우, “칼 폴라니 비판을 위하여”(≪정세와 노동≫ 제47호, 2009. 6., pp. 174-85) 참조.

 

12) 수천만 명을 살육하며 대파괴를 가져왔던 제1차 세계대전 역시, 1930년대의 그것에는 못 미치지만, 그에 선행한 대공황의 직접적 산물임을 물론이다.

 

13)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주요 자본주의 강국들은 IMF, 세계은행, 유럽중앙은행, 나토 등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여러 국제기구들을 이용하거나,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UN을 조종하면서 현재 상황의 ‘해결’에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저들의 해결책 그 자체가 새로운 공황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며, …” (편집부 역, “제10차 공산당ㆍ노동당 국제대회 상파울로 선언 ― 사회주의가 대안이다!”, ≪정세와 노동≫ 제46호, 2009. 5., p. 68; 원문은 http://inter.kke.gr/News/2008news/2008-11-10imcwp)

 

14) 바로 앞의 각주에서 인용하고 있는 “제10차 공산당ㆍ노동당 국제대회 상파울로 선언 ― 사회주의가 대안이다!”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 갈림길이라는 무대에 서 있다. 거기에는 두 개의 상반된 경향이 등장한다 ― 한 쪽 길에는 평화와 주권, 민주주의와 노동자ㆍ민중의 권리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놓여 있다. 다른 편 길에는 노동자ㆍ민중의 해방을 위한, 사회적 진보와 평화를 위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과 전진의 무한 잠재력이 놓여 있다.” 그러나 사회혁명으로 가지 못한 1930년대의 대공황이 제2차 대전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핵무기라는 현대의 무기체계를 생각하면, 현대 인류가 처할 수 있는 위기는 “평화와 주권, 민주주의와 노동자ㆍ민중의 권리에 대한 심각한 위협” 정도가 아닌 훨씬 더 심각한 그것일 것이다.

 

15)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전면개정판), 노사과연, 2006, pp. 374-77.

 

16) 당시 자본과 그 언론의 이러한 공세가 얼마나 전면적이었던가 하는 것은, ≪한겨레≫조차 당시 경제부장 이봉수(현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한겨레≫ 시민편집인)의 “한국 꼴 난다”는 칼럼(1997. 11. 26.)을 통해, 국민들의 “분수를 모르는 짓거리”가 위기의 원인이라며 그 공세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7) “위기의 본질은 과잉생산공황이고, 따라서 그 원인도 세계시장에서의 과잉생산ㆍ과잉축적이다. … 한국 경제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국제수지의 적자 누적과 몇몇 거대기업군(재벌)의 도산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누증인데, 이 양쪽 모두 현 시기 자본주의 세계시장의 극대화된 생산과잉의 직접적인 결과이다.”(채만수, “현시기 외환/금융위기의 배경과 의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지식인연대 정세토론회 자료집 ≪한국 경제의 현황과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1997. 12. 14., p. 13.)

 

18) 정성진,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책갈피, p. 11.

 

19) 같은 책, p. 176.

 

20) F. 엥겔스, ≪반뒤링론≫(Herrn Eugen Dührings Umwälzung der Wissen- schaft, 1878), MEW, Bd. 20, S. 266.

 

21)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476.

 

22) 찰스 페인스틴ㆍ피터 테민ㆍ지아니 토니올로 저, 양동휴ㆍ박복영ㆍ김영완 역, ≪대공황 전후의 유럽경제≫, 동서문화사, 2000, p. 16.

 

23) 이들 ‘진보적 지식인들’의 혹세무민의 헛소리들과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채만수, “새로운 대공황과 그 역사적 의의”, ≪노동사회과학 제1호, 공황과 사회주의≫, pp. 13-43 참조.

 

24) 같은 책, p. 31.

25) 같은 곳.

 

26) 미국은 이 시대의 최대의 강국, 부국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수년 전 카트리나라고 하는 대형 폭풍이 불어오자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났다. 그 희생자들은 대부분이 뉴올리언즈의 가난한 흑인들이었는데, 그들이 그렇게 희생되게 된 주요 원인의 하나는 타고 대피할 차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나라에서 오늘날 자동차의 과잉생산으로 ‘빅3’로 불리며 세계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던 GM, 크라이슬러 등이 파산해가면서 거대 생산시설들이 폐기돼가고 있고, 수만 명, 아니 그 파급효과까지 고려하면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길거리로 내던져지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파산과 그에 따른 대량 정리해고는 물론 그러한 사태의 한국판이고!

 

27) 응당 ‘경제학’이라고 써야 하지만, 이 불행한 반동의 시대에는 비과학으로서의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이 이른바 “주류 경제학”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경제과학’이라는 조금은 어색한 용어를 쓴다.

 

28) “번영기를 제외하면, 시장에서의 개별적인 점유몫을 둘러싼 자본가들 간의 격렬하기 그지없는 투쟁이 미친 듯이 벌어진다. 이러한 몫은 생산물이 얼마나 저렴한가(Wohlfeilheit des Produkts)에 비례한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노동력을 대체하는 개량된 기계와 새로운 생산방법을 사용하는 데에서의 경쟁 외에,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 밑으로 강제로 내려누름으로써 상품의 저렴화가 추구되는 시점이 매번 나타난다.”(≪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476.)

     “가격하락과 경쟁전은, 어떤 자본가에게나 자극을 주어서, 새로운 기계, 새로운 개량된 노동방법, 새로운 조합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총생산물의 개별적 가치를 그 일반적 가치 아래로 낮추게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소정의 노동량의 생산력을 높이고, 불변자본에 대한 가변자본의 비율을 낮추며, 그와 더불어 노동자를 유리시키고, 요컨대, 인위적인 과잉인구를 만들어내도록 했을 것이다.”(≪자본론≫ 제3권, MEW, Bd. 25, S. 265.)

 

29)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micro-electronics)에 의한 기술혁신을 신기술이라고 불러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용자] 산업 로봇이나 무인화 공장의 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기술에서 볼 수 없는, 살아 있는 인간 노동력을 가능한 한 생산과정으로부터 추방할 수 있는 성질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劍持一巳, ≪マイコン革命と勞動の未來≫, 日本評論社, 1983, p. 213.

 

30) 극히 불완전 자료지만, 다음 표는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특히 1980년대부터 자본주의 주요 국가들에서 자동화가 가장 먼저 시작되었던 제조업 부문의 취업노동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국가의 제조업 고용지수 및 완전실업률(%) 추이    

 

 일  본

 미  국

 서  독

 영  국

프 랑 스

1975

고용지수

실업률

  100.0

  (1.9)

  100.0

   (8.3)

  100.0

   (4.7)

  100.0

   (3.9)

  100.0

   (3.9)

1980

고용지수

실업률

   95.4

   (2.0)

  110.7

   (7.0)

  101.1

   (3.8)

   92.2

   (6.8)

   97.0

   (6.4)

1984

고용지수

실업률

   98.4

   (2.7)

  106.9

   (7.4)

   89.8

   (9.1)

   74.2

  (13.1)

   87.5

  (10.1)

  출처: ≪社會政策學會年報 第30集, 先端技術と勞動問題≫, 御茶の水書房, 1986, p. 9,

        ‘表 I-1’에서 재작성.

 

31) “맑스의 시대에는 유토피아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실제적인 것으로 되었다. 만일 발달한 서양의 국가들만을 따로 떼어내 생각한다면 (명백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만, 여기서는 논쟁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 우리는 오늘날 이미 질적으로 다른 사회로의 이행을 위해 기술적으로 성숙해 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회에서는, 맑스가 표현한 것처럼, ‘이제 소수의 여가가 인간 두뇌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지 않는 것처럼, 다수의 잉여노동이 더 이상 일반적 부의 발전을 위한 조건이 아닐 것이다.’”(Daniel Singer, “Europe’s Crisis”, Monthly Review, Vol. 46 No. 3, Jul.-Aug. 1994. p. 94.)

 

32) ≪자본론≫ 제3권, MEW, Bd. 25, SS. 113-14.

 

33) “현 단계, 즉 생산이 자동화되고 통신이 발달한 소위 ‘디지탈’ 시대 혹은 ‘정보’ 시대는, 과거 자본주의 하에서의 기술의 모든 질적 발전이 그랬던 것처럼, 계급의 힘 관계를 당분간 자본가들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변화는 그런데 쏘련의 붕괴에 의해서 그리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경제적ㆍ정치적 힘이 전세계적으로 강화됨으로써 더욱 악화되었다.”(Fred Goldstein, Low-Wage Capitalism: colossus with feet of clay―what the new globalized, high-tech imperialism means for the class struggle in the U.S., World View Forum, 2008, p. 76.)

 

34) “이제 오랜 기간 동안, 호황기에조차 고용은 뚜렷이 회복되고 있지 않다. 단지 실직자들의 행렬이 무자비하게 길어지는 것을 잠시 동안 저지할 뿐이다. 그러한 현상은 이제 더 이상 젊은이나 여성이나 블루칼라 노동자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중간계급을 포함해서 모든 주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Daniel Singer, 같은 글, p. 93.)

     “주당(週當) 노동시간을 급격히 줄여야 할 필요성에 관한 논쟁이나 과거에 싸움을 통해서 획득한 노동자 보호수단을 국제시장에 의해 강제된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탈취해야 할 필요성에 관한 논쟁 등, 서로 짝을 이루는 이들 논쟁은 서유럽의 대량의 실업이 일시적인 현상 즉 경기순환상의 한 국면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고 우리의 천재적인 기술과 바보 같은 사회조직간의 모순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증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같은 글, pp. 86-87.)

 

35) ≪자본론≫ 제1권, S. 674.

 

36) 淸山卓郞, “先端技術と勞動問題”, ≪社會政策學會年報 第30集, 先端技術と勞動問題≫, 御茶の水書房, 1986, pp. 14-15.

 

37) 채만수, 같은 책, pp. 621 이하, 특히 pp. 637-39.

 

38) 여기에서 말하는 가치법칙이란 물론 노동가치론에 기초해서 파악되는 그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맑스에 의해서 자본의 이윤이란 부불(不拂)의 잉여노동, 즉 착취한 노동임이 과학적으로 폭로된 이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 노동가치론을 부정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이른바 ‘한계효용설’ 등 갖은 설(說)들을 내세웠으나 결국 모두 헛소리임이 드러나 파탄에 이르렀고, 결국은 일체의 가치론을 포기하고 가격 현상만을 다루어온 지 이미 오래이다.

 

39) 참고로, 이 반동의 시대에는, “이제 자본은 더 이상 더 많은 노동력의 동원이 곧 더 큰 가치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새로운 생산방식을 계발(원문대로!)”(임영일, “공황기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편, ≪연대와 실천≫, 1998. 8., pp. 6-7)했다는, 즉 과학기술혁명의 결과 이제는 ‘적은 노동력의 동원’으로도 ‘큰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또 “맑스의 전례에 따라”, 물론 돈키호테의 ‘풍차’에 따라서, 자동화 생산을 “자본에 의한 ‘노동의 기계적 포섭’이라고 명명…. 그리고 … 이처럼 노동의 기계적 포섭을 통해 자본이 새로이 착취하게 된 잉여가치를 ‘기계적 잉여가치’라고 명명”(이진경[본명 박태호], “노동의 기계적 포섭과 기계적 잉여가치 개념에 관하여”, 맑스코뮤날레 조직위원회 편, ≪지구화 시대 맑스의 현재성≫ 제1권, 문화과학사, 2003, p. 475)한다는 ‘맑스주의자’, 아니 ‘코뮌주의자’도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 덧붙여야 할 것이다. 채만수, 같은 책, pp. 633-36 참조.

 

40) 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이 법칙의 내적 모순의 전개에 의한 주기적 과잉생산 공황에 대해서는, ≪자본론≫ 제3권 제3편 및 김수행, “현재의 장기불황과 마르크스 공황론”(≪진보평론≫ 제29호, 2006년 가을, pp. 10-34), 김성구,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재구성을 위하여”(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 ≪노동사회과학 제1호, 공황과 사회주의≫, 노사과연, 2008, pp. 55-76) 참조. 참고로, 정성진 교수는 여러 글에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으로부터 무매개적으로 공황을 도출하면서 “장기파동” 운운하는데, 이는 그의 사고가 비변증법적이며, 따라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도 공황도 깊이는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경제과학의 가장 기본적ㆍ기초적 범주의 하나인 ‘노동생산성’을, 천박한 비과학으로서의 부르주아 경제학에 따라서, “부가가치/종업원수”(정성진,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책갈피, p. 130)로 규정하는데, 즉 노동생산성은 언제나 사용가치의 생산에만 관계하는 것이어서 그것이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양의 노동은 가치생산물, 즉 ‘부가가치’는 증대시키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노동생산성의 상승으로 동일한 양의 노동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듯이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경제과학의 기초에 대해서조차 무지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41) 이러한 사실상의 전면자동화, 무인생산은 단순한 가정(假定)이나 먼 미래의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러한 전면적 자동화, 무인생산이 전형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제조업에서의 사례는 사실상 수도 없이 보고되고 있거니와, 심지어는 국내의 축산업에서조차 다음과 같은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사육우가 1백 마리로 늘어난 지난 78년 목장을 경기 가평으로 옮겼다. 6만 평 규모지만 풀을 심고 소를 다루는 일은 모두 컴퓨터로 자동화, 인부 2명으로 거뜬히 처리한다.”(이명재 기자, “‘창립60돌 서울우유’ 55년 가업 잇는 ‘우유3代’”, ≪동아일보≫ 1997. 7. 11.)

 

42) 그는 애초에 트로츠키주의자로서 출발했으나 트로츠키주의의 반동적 성격을 알게 되자 이를 청산하고 맑스-레닌주의자로 종생(終生)한 사람이다.

 

43) Sam Marcy, High Tech, Low Pay, WW Publishers, 1986, p. 67. (Fred Goldstein, Low-Wage Capitalism: …, p. 83에서 재인용.)

 

44) ≪자본론≫ 제3권, MEW, Bd. 25, S. 274.

 

45)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인권과 평화, 생태 문제에 관한 의식과 그것들을 지키려는 운동이 고양되어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일면적인 것은 아니지만!

 

46) “사회주의 나라들에서의 노동자의 성과는 몇 십 년이 흘렀어도 평가의 기준이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운동이 성과를 획득하는 데에 공헌했다. 제2차 대전 후에 형성되었던 국제적인 힘 관계로 인해 자본주의 나라들은 투쟁의 혁명적 방침을 억압하고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흡수ㆍ동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일정 정도의 양보를 하고,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스 공산당 중앙위원회, 김성칠 역,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 p. 73.)

 

47)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김성칠 역,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 p. 78.

 

48) 같은 글, pp. 78-79.

 

49)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49.

 

50) ≪고타강령 비판≫, MEW, Bd. 19, SS. 19-20.

 

51) “[공산주의의 최초의 낮은 단계에는: 인용자] 집중화된 생산수단은 사회화되나, 최초에는 아직 상품-화폐관계가 존재하기 위한 기반을 이루는 그런 개인 및 소집단의 소유형태가 잔존해 있다.”(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김성칠 역,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 p. 77.

 

52) 물론 역사현실에서는 1960년대 이후, 특히 1980년대 이후 수정주의가 도입되어 성장하고, 그에 따라 상품경제가 성장하면서 사태가 초기 사회주의 건설자들이 예정ㆍ지향했던 방향과는 거꾸로 전개되었지만 말이다.

 

53) 개인에 분배되기 전에 경제적ㆍ사회적 필요상 사회적 총생산물로부터 공제되어야 하는 부분은, 맑스에 의하면, 다은과 같은 두 그룹이다. 제1 그룹: “① 소모된 생산수단을 대체해야 할 보전분(補塡分), ②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추가부분, ③ 사고나 천재지변에 의한 재해에 대비하는 예비적립 혹은 보험적립.”(≪고타강령 비판≫, MEW, Bd. 19, S. 19.), 제2 그룹: “① 직접적으로 생산에 속하지 않는 일반관리비. 처음부터 이 부분은 오늘날의 사회에 비하면 아주 크게 축소되고, 새로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더욱더 감소된다. ② 학교나 위생설비 등과 같은 여러 욕구를 공동으로 채우기 위해서 할당하는 부분 ― 처음부터 이 부분은 오늘날의 사회에 비하면 크게 늘어나고, 새로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더욱더 늘어난다. ③ 노동 불능자를 위한 기금.”(같은 곳.)

 

54) ≪고타강령 비판≫, MEW, Bd. 19, S. 20.

 

55)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김성칠 역,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 p. 77.

 

56) 같은 곳.

 

57) ≪고타강령 비판≫, MEW, Bd. 19, S. 21.

 

58) 같은 곳.

 

59) 물론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 즉 위기의 단절효과를 주장하는 당나귀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채만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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