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관하여 (1957년 2월 27일)

 

마오쩌둥(毛澤東)

번역 ∣ 문영찬(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역자 주] 마오쩌둥은 1956년에 발생한 헝가리 폭동에 대해 많은 충격을 받았다. 헝가리 폭동이 일어난 것은 스탈린 사망 후에 후르시쵸프가 스탈린을 탄핵하고 이것이 세계적 차원의 정세변동을 가져온 것과 관련이 있다. 헝가리의 폭동에 대해 마오쩌둥은 적아의 모순과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구분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적아의 모순은 계급적 적대를 기초로 하는 적대적 모순이고 인민내부의 모순은 일종의 모순임에는 틀림없으나 적대성이 없는 모순이고 비적대적이라는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적대적 모순의 해결방법과 인민내부이 모순의 해결방법은 전혀 다르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모순은 적대적 모순으로서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을 타도하는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지만 인민내부의 모순은 이와 달리 토론과 교육, 설득의 방법을 통해 해결된다는 것이다.

인민내부의 모순에 해당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 내부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대립, 근로인민과 인텔리겐챠의 대립, 인민군중과 관료의 대립 등 여러 가지인데 이것들에 공통된 것은 폭력적 방법이 아니라 설득의 방법,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점진적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개념이 갖는 의의는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적 방법론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순론의 견지에서도 중요한데 왜냐하면 인민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바로 사회주의 건설, 사회주의의 발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서 이렇게 존재하는 인민내부의 모순에서 주요 모순은 무엇인가를 추출하는 것이다. 즉, 사회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 중에서 주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핵심을 움켜쥐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기본적인 모순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토대와 상부구조의 모순이라고 옳게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만 기본적 모순이고 사회주의 건설에서 주요 모순은 아니다. 주요 모순은 인민내부의 모순에서 추출될 수밖에 없는데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 도시와 농촌의 대립, 인민군중과 국가관료의 대립 등에서 추출될 수 있다. 여기서 도시와 농촌의 대립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의 공간적 표현이라는 엥겔스의 언급(≪반듀링론≫)을 염두에 둔다면 핵심적인 주요모순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임을 알 수 있다. 인민군중과 국가관료의 대립의 문제는 주요하게 관료주의와 투쟁의 문제인데 관료주의와 투쟁의 보다 근본적인 관점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의 상부구조에의 반영으로 파악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렇듯 마오쩌둥의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개념은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적 관점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는 것이고 나아가 그의 모순론과 결합하여 사회주의 사회의 원동력으로서 주요모순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문제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쏘련을 비롯한 20세기 사회주의 사회가 왜 발전이 정체되고 결국에는 붕괴되었는지를 해명하는데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의 문제를 옳게 해결하지 못하고 관료주의가 수정주의에 기반하여 뿌리를 내림으로써 발전이 정체되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상당히 부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악은 앞으로 건설할 21세기의 사회주의의 관건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의 극복전망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을 통하여 자본주의 사회가 물려준 계급사회의 흔적을 일소하고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비약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마오쩌둥이 이 글을 쓴 1957년의 상황은 중국이 반제반봉건의 신민주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사회의 전반적인 사회주의개조를 막 완성할 때였다. 따라서 이 글에는 당시 중국공산당의 기개와 자신감이 배어 있다. 어떠한 각오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고 민족부르주아지의 평화적 개조라는 중국 혁명의 특유의 문제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쏘련에서 후르시쵸프의 스탈린 탄핵이라는 국제정세의 변동은 중국에도 영향을 미쳐서 중국은 이 글을 쓴 직후부터 서서히 수정주의가 등장하여 유소기, 등소평 등이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에 대한 반발과 반격이 문화대혁명이었던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수정주의에 반대한다는 취지는 올발랐지만 그 과정에 드러난 좌편향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권력은 마오쩌둥 사망 후에 등소평 등 수정주의자에게 돌아간다. 이후 중국은 거침없이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었으며 이 글에서 드러나는 마오쩌둥의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은 짓밟힌 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앞으로 닥칠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에 대해 그리고 나아가 현재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문제를 언제나 구체적으로 사고하려는 자세, 변증법적 관점을 일관하여 적용하려는 자세, 그러면서도 광대한 인민군중의 관점에 비추어 항상 자신의 태도를 가지려는 자세 등 마오쩌둥의 진면목을 파악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글이다.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관한 것, 이것은 하나의 총괄적인 문제이다. 서술의 편리를 위하여 12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었다. 여기에서 또한 적아(敵我)모순의 문제를 말해야 하지만 그러나 중점은 인민내부의 모순문제를 토론하는 것이다.

 

1. 두 종류의 성질이 다른 모순

 

우리 국가의 현재는 공전의 통일적인 것이다. 자산계급(부르주아지-역자) 민주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는 또한 사회주의 건설의 성취는 신속하게 구중국의 면모를 바꾸었다. 조국의 훨씬 아름답고 좋은 장래가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인민이 혐오하는 국가의 분열과 혼란된 국면은 이미 사라져서 되돌릴 수 없다. 우리나라의 6억 인민은 지금 노동자계급과 공산당의 영도 하에, 일치단결하여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의 통일, 인민의 단결, 국내 각 민족의 단결, 이것이 우리의 사업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것의 기본적인 보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사회에서 이미 어떠한 모순도 없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순이 없다는 생각은 객관 실제의 꾸밈없는 생각과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의 앞에는 두 종류의 사회적 모순이 있는데, 이것은 즉 적아간의 모순과 인민내부의 모순이다. 이것은 성질이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모순이다.

적아간의 모순과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두 종류의 다른 모순을 정확히 인식하기 위하여, 마땅히 먼저 인민이 무엇이고, 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인민이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국가에서 그리고 각 국가의 서로 다른 역사적 시기에서, 서로 다른 내용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말하자면, 항일전쟁의 시기에, 일체의 항일하는 계급, 계층과 사회집단은 모두 인민의 범위에 속하였고 일본제국주의, 매국노, 친일파는 모두 인민의 적이었다. 해방전쟁의 시기에, 미제국주의와 그것의 앞잡이 즉, 관료자산계급, 지주계급 및 이 계급들을 대표하는 국민당 반동파는 모두 인민의 적이었다. 이 적에 반대하는 일체의 계급, 계층과 사회집단은 모두 인민의 범위에 속했다.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시기에서, 사회주의 건설사업을 찬성하고 옹호하고 참가하는 일체의 계급, 계층과 사회집단은 모두 인민의 범위에 속한다. 사회주의 혁명에 반항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적대시하고 파괴하는 사회세력과 사회집단은 모두 인민의 적이다.

적아간의 모순은 적대적 모순(對抗性的 矛盾)이다. 인민내부의 모순, 노동인민 간의 모순을 말하자면, 비적대적인 것이다.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 간의 모순을 말하자면 적대적인 일면 이외에 또한 비적대적인 일면이 있다. 인민내부의 모순은 현재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러나 혁명의 각각의 시기와 사회주의 건설의 시기에서 서로 다른 내용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의 조건 하에서, 소위 인민내부의 모순은 노동계급 내부의 모순, 농민계급 내부의 모순, 지식분자(지식인 혹은 인텔리겐챠를 가리킨다-역자) 내부의 모순, 노동자와 농민 양 계급 간의 모순, 노동자․농민과 지식분자 간의 모순, 노동자계급 및 기타 노동인민과 민족자산계급 간의 모순, 민족자산계급 내부의 모순 등등을 포괄한다. 우리의 인민정부는 진정으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부이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정부이지만 그러나 그것과 인민 군중 간에는 또한 일정한 모순이 있다. 이 종류의 모순은 국가이익 및 집체이익(집단적 이익-역자)과 개인이익 간의 모순, 민주와 집중 간의 모순, 영도(지도-역자)와 피영도 간의 모순, 국가기관의 어떤 사업인원의 관료주의 작풍과 군중 간의 모순을 포괄한다. 이 종류의 모순은 또한 인민내부의 하나의 모순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민내부의 모순은 인민의 이익에서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의 기초 위에서의 모순이다.

우리 국가 내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족 자산계급의 모순은 인민내부의 모순에 속한다. 노동자계급과 민족자산계급의 계급투쟁은 일반적으로 인민내부의 계급투쟁에 속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민족자산계급이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산계급민주혁명의 시기에, 그것은 혁명성의 일면과 타협성의 일면이 있었다. 사회주의 혁명의 시기에 그것은 노동자계급을 착취하여 이윤을 취득하는 일면과 헌법을 옹호하고 사회주의 개조를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일면이 있었다. 민족자산계급과 제국주의, 지주계급, 관료자산계급은 동일하지 않다. 노동자계급과 민족자산계급 간에는 착취와 피착취의 모순이 존재하는데, 이는 본래는 적대적인 모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구체적 조건 하에서, 이 두 계급의 적대적 모순은 만약 올바르게 처리된다면, 비적대적 모순으로 전화될 수 있고 평화적 방법으로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처리를 올바로 하지 못한다면, 민족자산계급에 대해 단결, 비판, 교육의 정책을 취하지 않는다면, 혹은 민족자산계급이 이러한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러면 노동자계급과 민족자산계급 간의 모순은 적아간의 모순으로 전화될 수 있다.

적아 간의 모순과 인민내부의 모순, 이 두 종류의 모순의 성질은 동일하지 않고, 해결의 방법 또한 동일하지 않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자는 적아를 분명히 하는 문제이고 후자는 시비(是非 옳고 그름-역자)를 분명히 하는 문제이다. 당연히 적아의 문제는 또한 일종의 시비의 문제이다. 예컨대 우리와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 등 이러한 내외의 반동파는 결국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의 문제, 역시 시비문제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인민내부의 문제와 성질이 다른 또 한 종류의 시비문제이다.

우리의 국가는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노농동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독재(專政: 중국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인민민주독재에서 독재라는 표현 대신에 전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역자)의 국가이다. 이 독재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독재의 제1의 작용은 국가내부의 반동계급, 반동파 및 사회주의 혁명에 반항하는 착취자를 억압하고, 사회주의 건설에 대해 파괴하는 자를 억압하는 것이며, 국내의 적아 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반혁명분자를 체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단죄하고, 일정한 시기에 지주계급분자와 관료자산계급분자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고, 그들에게 언론, 발표의 자유의 권리를 주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은 독재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다. 사회질서와 광대한 인민의 이익을 유지하고 옹호하기 위해, 도둑, 사기범, 살인방화범, 떠돌이 집단과 각종의 사회질서를 엄중하게 파괴하는 분자에 대해 또한 반드시 독재를 실시해야 한다. 독재는 또한 제2의 작용이 있는데 바로 국가 외부의 적의 전복활동과 가능한 침략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상황이 출현할 때에는 독재는 대외적으로 적아 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임무를 지는 것이다. 독재의 목적은 전체 인민이 평화로운 노동을 진행하여 우리나라의 건설을 현대공업, 현대농업 및 현대과학문화의 사회주의 국가로 되게 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누가 독재를 실시하는가? 당연히 노동계급과 노동계급 영도하의 인민이다. 독재의 제도는 인민내부에 적용되지 않는다. 인민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독재를 할 수는 없고, 인민 일부분으로써 다른 일부분의 인민을 억압할 수 없다. 인민 가운데의 범법분자는 또한 법률의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그러나 이것과 인민의 적을 억압하는 독재는 원칙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인민내부에서는 민주집중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우리의 헌법 규정: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여행, 시위, 종교신앙 등등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헌법은 또한 규정한다: 국가기관은 민주집중제를 실시한다, 국가기관은 반드시 인민군중에 의거한다, 국가기관의 사업인원은 반드시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 우리의 이 사회주의적 민주는 어떠한 자산계급국가도 가질 수 없는 가장 광대한 민주이다. 우리의 독재는 노동계급 영도의 노농동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독재로 불린다. 이것은 인민내부에서 민주제도를 실시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지만 그러나 노동계급은 공민권이 있는 전체 인민, 우선적으로 농민을 단결시켜서, 반동계급, 반동파 및 사회주의개조와 사회주의 건설에 반항하는 분자에 대해 독재를 실시한다. 소위 공민권이 있으면, 정치방면에서 바로 자유와 민주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자유는 영도의 자유(영도를 전제로 한 자유-역자)이고, 이 민주는 지도를 집중시키는 가운데에서의 민주이고, 무정부상태가 아니다. 무정부상태는 인민의 이익과 바람에 부합하지 않는다.

헝가리 사건1) 발생 이후,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은 기쁨을 느꼈다. 그들은 중국에서도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인민정부를 반대하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들의 이러한 희망은 인민군중의 이익과 상반되는 것이고 인민군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었다. 헝가리의 일부 군중은 국내외 반혁명 역량의 속임수의 영향을 받았고 그릇되게도 폭력행위를 사용하여 인민정부에 맞섰고 결과적으로 국가와 인민으로 하여금 손해를 보게 했다. 몇 주 동안의 소란은 경제방면에 손실을 주었고 장기간이 지나서야 회복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어떤 일부 사람들이 헝가리 문제에서 동요를 표현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세계의 구체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인민민주제도 하에서 자유가 너무 적다고 여겼고 서방의 의회민주제도와 같이 자유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들은 서방의 양당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는데, 하나의 당은 집권을 하고 있고 다른 당은 그렇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종류의 소위 양당제는 자산계급독재를 옹호하는 일종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절대로 노동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 실제상으로는, 세계에서 오직 구체적 자유, 구체적 민주만이 있을 뿐이고 추상적 자유, 추상적 민주는 없다. 계급투쟁의 사회 내에서는 착취계급이 노동인민을 착취할 자유는 있지만, 노동인민이 착취를 받지 않을 자유는 없다. 자산계급의 민주는 있지만, 무산계급과 노동인민의 민주는 없다. 어떤 자본주의 국가는 또한 공산당의 합법적 존재를 허용하지만 그러나 자산계급의 근본적 이익을 해하지 않는 것을 한도로 하는 것이고 이 한도를 초과하면 바로 불허한다. 추상적 자유, 추상적 민주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민주를 목적이라 생각하고 민주가 수단임을 승인하지 않는다. 민주라는 것은 어떤 때 보면 목적과 유사하지만 실제상으로는 단지 일종의 수단일 뿐이다. 맑스주의는 우리에게 민주는 상부구조에 속하고, 정치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결국 그것은 경제기초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자유 또한 이러하다. 민주․자유는 모두 상대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역사상 발생하고 발전한 것이다. 인민내부에서 민주는 집중과 대립하여 말하는 것이고, 자유는 규율과 대립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한 개의 통일체의 두 개의 모순되는 측면이고, 그것들은 모순된 것이며 또한 통일된 것이다. 우리는 일면적으로 한 측면만을 강조하고 다른 일면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인민내부에서는 자유가 없으면 안 되고 또한 규율이 없어도 안 된다. 민주가 없으면 안 되고 또한 집중이 없으면 안 된다. 이런 종류의 민주와 집중의 통일, 자유와 규율의 통일이 바로 우리의 민주집중제이다. 이런 제도 하에서 인민은 광범한 민주와 자유를 향유하고 동시에 또한 반드시 사회주의적 규율로써 스스로를 구속한다. 이러한 도리는 광대한 인민군중이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도가 있는 자유를 주장하고, 지도를 집중하는 하에서의 민주를 주장하는데, 이것은 어떠한 의미에서도, 인민내부의 사상문제, 시비의 판별문제가 강제적 방법을 사용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명령의 방법을 사용하여, 강제의 방법을 사용하여 사상문제, 시비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효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로운 것이다. 우리는 행정명령을 사용하여 종교를 소멸시킬 수 없고, 사람들을 강제하여 종교를 믿지 않게 할 수 없다. 사람들을 강제하여 관념론을 버리게 할 수 없고 또한 사람들을 강제하여 맑스주의를 믿게 할 수 없다. 무릇 사상의 성질에 속하는 문제, 무릇 인민내부의 쟁론에 속하는 문제는 단지 민주의 방법을 사용하여, 단지, 토론의 방법, 비판의 방법, 설득하고 교육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해결할 수 있을 뿐이고 강제적 방법, 억압하여 복종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해결할 수 없다. 인민은 효과적으로 생산을 진행하고 학습을 진행하고 질서 있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정부, 생산의 영도자, 문화교육기관의 영도자가 각종의 적당한 강제성을 띠는 행정명령을 반포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종류의 행정명령이 없다면 사회질서는 무법이 될 것이고 이것은 사람들의 상식이 이해하는 바이다. 이것은 설득하고 교육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인민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과 서로 보충하고 서로 어울리는 두 개의 방면이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정명령을 반포하는 것은 또한 설득과 교육을 수반해야 하고 단순히 행정명령에만 의존하는 것은 많은 상황 하에서 통하지 않는다.

1942년에 우리는 일찍이 인민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이러한 종류의 민주적 방법을 행했고 하나의 공식으로 구체화했는데, “단결―비판―단결”이라 불린다. 상세하게 말하자면, 단결의 바람으로부터 출발하여, 비판 혹은 투쟁을 경과하여 모순이 해결에 도달하게 하고, 새로운 기초 위에서 새로운 단결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 의거할 때 이것은 인민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하나의 정확한 방법이다. 1942년에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채용하여 공산당 내부의 모순, 즉 교조주의와 광대한 당원군중 간의 모순, 교조주의와 맑스주의 사상 간의 모순을 해결했다. “좌”경 교조주의가 이전에 채용한 당내 투쟁의 방법은 “잔혹한 투쟁, 무정한 타격”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릇된 방법이다. 우리는 “좌”경 교조주의를 비판할 때에, 이러한 방법을 채용하지 않았고 새로운 방법을 채용했는데, 즉 단결의 바람으로부터 출발하여 비판 혹은 투쟁을 경과하여, 시비를 분명히 하고 새로운 기초 위에서 새로운 단결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1942년 정풍의 시기에 채용한 것이었다. 몇 년이 경과한 후에 1945년 중국공산당이 소집한 제7차 전국대표대회의 시기에, 과연 전 당의 단결의 목적에 도달했고 그리하여 인민혁명의 위대한 승리를 획득했다. 여기에서 우선 단결의 바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만약 주관적으로 단결의 바람이 없다면, 싸우기만 하면 반드시 사정이 혼란되게 되고, 수습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것은 “잔혹한 투쟁, 무정한 타격”이 아닌가? 그러면 무슨 당의 단결이 있겠는가? 이러한 경험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식을 찾아냈다: 단결―비판―단결. 혹은 이전의 과오를 뒷날의 경계로 삼고 병폐를 치유하여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당 밖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 각각의 항일 근거지 내에서, 우리는 영도와 군중의 관계를 처리하고, 군과 민의 관계, 관(官)과 병(兵)의 관계, 몇 개 부분의 군대 간의 관계, 몇 개 부분의 간부 간의 관계를 처리했는데, 모두 이러한 방법을 채용했고 뿐만 아니라 위대한 성공에 도달했다. 이 문제는 우리당의 역사에서, 또한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27년부터 우리는 남방에서 혁명군대와 혁명 근거지를 건설하는 것을 시작했는데, 당과 군중의 관계, 군과 민의 관계, 관과 병의 관계 및 기타 인민내부의 관계를 처리하는 것에 관하여, 바로 이러한 방법을 채용했다. 그런데 항일의 시기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이러한 방법을 훨씬 더 스스로 깨닫는 기초 위에 세웠다. 전국의 해방 이후에, 우리는 민주당파와 공상계(工商界 공업과 상업을 하는 부문-역자)에 대하여 “단결―비판―단결”의 이러한 방법을 채용했다. 우리의 현재의 임무는, 바로 전체 인민내부에서 이러한 방법을 계속적으로 확대하고 더 좋게 운용하는 것이며, 모든 공장, 합작사(1950년대 중국에서 농업의 집단화의 한 형태, 초급합작사, 고급합작사 등으로 나뉘어졌다-역자), 상점, 학교, 기관, 단체, 총괄하여 말하면, 6억 인구에 대해 이러한 방법을 채용하여 그들 내부의 모순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반적 상황 아래에서, 인민내부의 모순은 적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에 처리가 부적당하고, 혹은 경계심을 잃어버리고, 마비되어 부주의하면, 또한 적대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통상은 국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것은 왜냐하면 사회주의국가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제도를 소멸시켰고, 인민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헝가리 사건이 보여주는 그러한 종류의 범위에 상당하는 넓은 적대적 행동은 내외의 반혁명적 요인들이 작용한 연고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특수하고 일시적 현상이다. 사회주의 국가 내부의 반동파와 제국주의자는 서로 공모하고, 인민내부의 모순을 이용하고, 이간질을 도발하고, 풍파를 일으키고, 그들의 음모를 실현할 것을 기도한다. 헝가리사건의 이러한 교훈은 모두가 주의할 가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적 방법을 채용하여 인민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 문제는 하나의 새로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맑스주의자는 종래에 무산계급의 사업은 단지 인민군중에 의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고, 공산당원은 노동인민 가운데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에 반드시 민주적이고 설득교육의 방법을 채용해야만 하고, 결코 명령주의적 태도와 강제수단을 채용해서는 안 된다. 중국공산당은 충심으로 맑스주의의 이러한 원칙을 준수한다. 우리는 여태까지, 인민민주독재 하에서 적아간의 모순과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이 두 종류의 성질이 다른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독재와 민주라는 이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방법을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것의 의미는 우리 당의 과거의 많은 문건 속에 그리고 당의 많은 책임 있는 사람의 발언 속에서, 일찍이 수없이 말해왔던 것이다. 나는 1949년에 쓴 “인민민주독재를 논함”에서 일찍이 말한 적이 있다: “인민내부의 민주 방면에 대하여와 반동파의 독재의 방면에 대하여가, 서로 결합하여, 그리하여 인민민주독재라는 것이다”, 인민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은 민주적, 즉 설득의 방법이고 강제의 방법이 아니다.” 나는 1950년 6월 제2차 정치협상회의에서의 연설에서, 또한 말한 적이 있다: “인민민주독재는 두 개의 방법이 있다. 적에 대해 말하면 독재의 방법을 사용하여, 즉 필요한 시기 내에서는 그들이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들을 강제하여 인민정부의 법률을 따르게 하고 그들을 강제하여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노동 중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개조하게 하는 것이다. 인민에 대해 말하자면 상반되는데, 강제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의 방법을 사용하고 즉, 반드시 그들이 정치활동에 참여하게 하고, 그들을 강제하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지 않고, 그들에게 민주적 방법을 사용하여 교육과 설득의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교육사업은 인민 내부의 자기교육 사업이고 비판과 자아비판의 방법은 바로 자기교육의 기본방법이다.” 과거에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민주의 방법을 사용하여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이 문제를 해결했고 또한 사업 중에서 기본적으로 이렇게 했고 많은 간부와 인민이 모두 실제적으로 이 문제를 이해했다. 왜 현재에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새로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과거에 국내외적 적아 간의 투쟁이 매우 첨예했고, 인민내부의 모순이 현재와 같이 이렇게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았던 연고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적아 간의 모순과 인민내부의 모순이라는 두 종류의 성질이 다른 모순을 분명히 판별하지 못하고 있고 쉽게 서로 혼동한다. 이 두 종류의 모순은 어떤 때는 쉽게 혼동된다는 것이 반드시 승인되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사업 중에서 일찍이 혼동했었다. 반혁명분자를 숙청하는 사업 중에서, 그릇되게도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파악했었고, 이러한 상황은 이전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다. 우리의 잘못은 확대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정책 가운데에서 반드시 적아를 분명히 할 것을 규정했었고 잘못했으면 바로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 철학은 대립통일의 규칙이 우주의 근본규칙이라고 여긴다. 이 규칙은 자연계, 인류사회 그리고 인간의 사상 가운데를 막론하고 모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모순하는 것의 대립은 한편으로 통일이고 한편으로 투쟁인데, 이로 인하여 사물의 운동과 변화를 추동한다. 모순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데, 그렇지만 사물의 성질이 다름에 따라 모순의 성질 또한 다르다. 어떤 구체적 사물을 들어 말하면, 대립하는 것의 통일은 조건적이고 일시적이고 과도적인데 즉 상대적이지만, 대립하는 것의 투쟁은 절대적이다. 이 규칙은 레닌이 분명히 말했다. 이 규칙을 우리나라에서 이해하는 사람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이 규칙을 승인하는 것은 하나의 일이고, 이 규칙을 사용하여 문제를 관찰하고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또한 하나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감히 우리나라 인민내부에 여전히 존재하는 모순을, 바로 이 모순이 우리의 사회 발전을 향해 추동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승인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회에 여전히 모순이 존재하는 것을 승인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모순 앞에서 몸을 사리고, 피동적 지위에 처하고 있다. 그리고 부단히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고 해결하는 과정 중에서, 사회주의 사회 내부의 통일과 단결을 날로 공고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반드시 우리나라 인민 중에서, 우선은 간부 중에서, 해석을 진행하고, 사람들을 사회주의 사회 가운데의 모순을 승인하는 것으로 인도하고, 뿐만 아니라 정확한 방법을 채용하여 이 종류의 모순을 처리하는 것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과 구사회의 모순, 예를 들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는 근본적으로 서로 같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은 극렬한 적대와 충돌을 표현하고, 극렬한 계급투쟁을 표현하고, 그러한 종류의 모순은 자본주의 제도 자체로써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사회주의 혁명으로써만 능히 해결할 수 있다.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은 또 하나의 일인데, 이것과 꼭 서로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적대적 모순이 아니며 그것은 사회주의 제도 자체를 통하여 부단히 해결을 얻을 수 있다.

사회주의 사회 가운데에는, 기본적 모순은 의연히 생산관계와 생산력 간의 모순이고 상부구조와 경제 기초 간의 모순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사회의 이러한 모순은 구사회의 생산관계와 생산력 간의 모순, 상부구조와 경제기초 간의 모순과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성질과 상황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의 사회제도는 구시대의 사회제도와 비교하면 우월성이 많다. 우월성이 없다면 구제도는 뒤집어질 수 없고 신제도는 수립될 수 없었다. 소위 사회주의 생산관계는 구시대의 생산관계와 비교할 때 능히 생산력 발전에 적합하고 생산력이 구사회에는 없었던 속도로 신속하게 발전하는 것을 가리키고 생산이 많아지고 인민의 부단히 성장하는 수요가 능히 점차적으로 충족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한다. 구중국은 제국주의, 봉건주의 그리고 관료자본주의 통치 하에서 생산력의 발전이 줄곧 매우 완만했다. 해방 전의 오십 년간에는, 동북지방을 제외한 전국은 강철의 생산이 줄곧 겨우 수만 톤에 불과했고 동북지방을 합한다면 전국의 최고 생산량이 역시 구십여만 톤이었을 뿐이다. 1949년에 전국 강철의 생산량은 겨우 십여만 톤이었다. 그러나 전국 해방이 불과 7년이 지났는데, 강철의 생산량은 이미 4백 수십만 톤에 달했다. 구중국은 기계제 생산이 거의 없었고 나아가 자동차 제조업과 비행기 제조업이 없었는데 그러나 이것들은 현재 모두 건립되었다. 인민이 제국주의, 봉건주의 그리고 관료자본주의의 통치를 뒤집은 후에, 중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자본주의로인가 아니면 사회주의로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이 분명하지 않다. 사실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했다: 오직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 사회주의 제도만이 우리나라 생산력의 도약적 발전을 촉진했는데, 이 점을 심지어 외국의 적들조차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제도는 이제 건립되고 있는 중이고, 여전히 완전히 완성되지 않았고 완전히 공고화되지 않았다. 공상업의 공사합영기업 중에서, 자본가는 여전히 이자를 취하고 있고 또한 여전히 착취가 존재하고, 소유제라는 점에 관해 말하면, 이 종류의 기업은 여전히 완전한 사회주의 성질이 있는 것이 아니다.2) 농업의 생산합작사와 수공업의 생산합작사는 일부분 여전히 반(半)사회주의적이다; 완전한 사회주의화된 합작사는 소유제의 어떤 다른 문제에서 여전히 계속적인 해결을 필요로 한다. 각 경제부문 가운데에서의 생산과 교환의 상호관계는 여전히 사회주의적 원칙에 따라 점차적으로 건립되고, 점차적으로 비교적 적당한 형식을 찾고 있다. 전인민소유제 경제와 집체소유제3) 경제 내에서는, 이 두 종류의 사회주의 경제형식 간에는 축적과 소비의 분배문제가 하나의 복잡한 문제이고, 또한 쉽게 한번에 완전히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총괄하자면, 사회주의 생산관계는 이미 건립되었고, 그것은 생산력의 발전과 서로 조응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완전히 완비된 것은 아니며 이러한 완전히 완비되지 않은 방면과 생산력의 발전은 또한 서로 모순된다. 생산관계와 생산력 발전의 이러한 종류의 한편으로 서로 조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서로 모순되는 상황을 제외하면, 또한 여전히 상부구조와 경제기초 간의 한편으로 서로 조응하고 다른 한편으로 서로 모순되는 상황이 있다. 인민민주독재의 국가제도와 법률은, 맑스-레닌주의를 지도로 삼는 사회주의 의식형태인데 이러한 상부구조는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개조의 승리와 사회주의 노동조직의 건립에 대해 적극적인 추동작용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산계급 의식형태의 존재, 국가기구 가운데의 어떤 관료주의적 작풍의 존재, 국가제도 가운데의 어떤 부분에서의 결함의 존재는 또한 사회주의적 경제기초와 서로 모순된다. 우리는 이후로 구체적 상황에 의거하여, 계속하여 위에서 말한 각종의 모순을 해결해가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모순을 해결한 후에는, 또한 새로운 문제, 새로운 모순이 출현하고, 또한 사람들이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객관적으로 장래에 장기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생산과 사회적 수요 간의 모순이 있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항상 국가계획을 통하여 조절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나라는 매년 한 차례의 경제계획을 하는데 축적과 소비의 적당한 비례에 의거하여, 생산과 수요 간의 균형을 구한다. 소위 균형은 바로 모순의 일시적인, 상대적인 통일이다. 1년이 지나면, 전체적으로 말하면, 이 종류의 균형은 모순의 투쟁에 의해 타파되고 이 종류의 통일은 변화하고, 균형은 불균형으로 되고 통일은 불통일이 되고 또한 제2년의 균형과 통일을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경제, 계획경제의 우월성이다. 사실상, 매 달 매 계절마다 국부적으로 이런 균형과 통일이 타파되고 수요가 국부적인 조정을 만들어낸다. 어떤 때에는 주관적인 안배가 객관적 상황과 부합하지 않고 모순을 발생시키고, 균형을 파괴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류라고 불리는 것이다. 모순은 부단히 출현하고 또한 부단히 해결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물의 발전의 변증법적 규칙이다.

현재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혁명시기의 대규모적인 폭풍우가 몰아치는 식의 군중 계급투쟁은 기본적으로 끝났지만 그러나 계급투쟁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광대한 군중은 한편으로 신제도를 환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제도가-역자) 습관이 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고 정부의 사업인원의 경험이 아직 충분히 풍부하지 않고 일정한 구체적인 정책 문제에 대하여 마땅히 계속하여 고찰하고 탐색해야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는 여전히 계속적으로 건립되고 공고화되는 과정을 필요로 하고 인민군중은 이 신제도에 대해 여전히 습관화의 과정을 필요로 하고 국가사업인원은 학습과 경험을 취득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러할 때에, 우리는 적아 모순과 인민내부의 모순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을 제출했고,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를 제출했고, 전국의 각 민족 인민을 더욱 단결시킴으로써 한 차례의 새로운 전쟁을 진행해야 한다― 자연계를 향한 전쟁의 개시, 우리 경제의 발전, 우리 문화의 발전, 전체 인민이 비교적 순조롭게 목전의 과도적 시기를 건너고 우리의 신제도를 공고화하고, 우리의 신국가를 건설하는 것, 바로 이것이 충분히 요구되는 것이다.

 

 

2. 숙청문제

 

반혁명분자를 숙청하는 문제는 적아모순의 투쟁 문제이다. 인민 내부에서 어떤 사람들은 숙청문제에 대한 관점이 또한 서로 동일하지 않다. 두 종류의 사람들의 의견이 우리의 의견과 서로 같지 않다. 우경향의 사람들은 적아를 나누지 않고 적을 아라고 여긴다. 광대한 인민이 적의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그들은 도리어 친구라고 여긴다. 어떤 “좌”경 사상의 사람들은 적아모순을 확대하고 어떤 인민내부의 모순을 적아모순이라고 간주하며 어떤 본래는 반혁명이지 않은 사람을 반혁명이라고 간주한다. 이 두 종류의 관점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모두 숙청문제를 정확히 처리할 수 없고 또한 우리의 숙청문제를 정확히 고려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숙청사업을 정확히 고려하기 위하여 우리는 헝가리 사건이 우리국가에 미친 영향을 돌아보아도 좋다. 헝가리 사건이 발생한 후에, 우리나라의 일부분 지식분자 가운데에는 어떤 동요가 있었지만 그러나 어떠한 바람도 일으키지 못했다. 이것은 무슨 원인 때문인가?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우리가 상당히 철저하게 반혁명을 숙청했다는 것이라고 응당히 말해야만 한다.

당연히 우리국가의 공고함은 우선 숙청에 기인하지 않는다. 우리 국가의 공고함은 우선 우리가 수십 년의 혁명투쟁을 통하여 단련된 공산당과 해방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 수십 년의 혁명투쟁을 통하여 단련된 노동인민이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우리의 당과 군대는 군중 속에서 생겨난 뿌리가 있는 것이고 장기간의 혁명의 화염 속에서 단련되어 왔고 전투력이 있다. 우리의 인민공화국은 혁명근거지를 통하여 점차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고, 돌연히 건립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어떤 민주인사는 동일하지 않은 단련을 받았고 우리와 같이 환란을 나누었다. 어떤 지식분자들은 제국주의와 반동세력에 반대하는 투쟁의 단련을 경험했고 많은 사람들이 해방 이후에 적아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상개조를 경험했다. 이외에 우리국가의 공고함은 우리의 경제 조치가 근본적으로 정확하고 인민생활이 안정적이고 뿐만 아니라 점차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우리의 민족자산가계급과 기타 계급에 대한 정책이 또한 정확한 것이다 등등. 그러나 우리가 반혁명을 숙청하는 방면에서의 성공은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 국가의 공고함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의 대학생들은 비록 많은 사람이 비노동인민 가정출신의 자녀들이지만,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 애국적이고, 모두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그들은 헝가리 사건의 시기에 동요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민족자산계급 또한 이러하다. 노동자와 농민 기본군중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해방 이후에 우리는 한 무리의 반혁명분자를 숙청했다. 어떤 엄중한 죄행을 범한 반혁명분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이것은 광대한 군중의 요구였고 이것은 장기간에 걸쳐 반혁명분자와 각종의 악질토호에 의해 억압받은 광대한 군중을 위해서였고 또한 생산력을 해방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만약에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인민군중은 머리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1956년 이후부터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전국에 대해 말하면, 반혁명분자의 주요 역량은 이미 숙청되었다. 우리의 근본임무는 이미 생산력을 해방하는 것으로부터 변화하여 새로운 생산관계 하에서 생산력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오늘날의 정책이 오늘날의 상황에 적합하다는 것을, 과거의 정책이 과거의 상황에 적합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늘날의 정책을 이용하여 과거의 안(案)을 뒤집으려 생각하고, 과거 숙청사업의 거대한 성취를 부정하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고 이것은 인민군중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숙청사업은, 성취가 주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또한 오류도 있었다. 지나친 것, 누락된 것이 모두 있다. 우리의 방침은 다음과 같다: “반항이 있으면 반드시 숙청하고, 오류가 있으면 반드시 바로 잡는다.” 우리의 숙청사업 중에서의 노선은 군중이 숙청하는 노선이었다. 군중노선을 채용하고서, 사업 중에 당연히 탈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러나 탈은 비교적 적은 것이고 오류는 비교적 용이하게 바로잡을 수 있다. 군중은 투쟁 가운데에서 경험을 얻었다. 하는 것이 정확하면 정확한 경험을 얻었다. 잘못을 범하면 잘못을 범한 경험을 얻었다.

숙청사업 가운데에서 무릇 이미 발견한 잘못에 대해 우리는 이미 바로잡는 절차를 채용했거나 혹은 채용하고 있는 중이다.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일단 발견하면 우리는 바로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원래 어떤 범위에서 잘못된 것은 마땅히 어떤 범위에서 바로잡는 것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금년 혹은 내년에 숙청사업에 대해 전면적인 검사를 한 차례 제기하였고, 경험을 총괄하여, 잘된 것을 북돋우고 왜곡된 것을 타격할 것이다. 중앙은 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와 정치협상회의 상임위원회가 주관하고 지방은 성과 시의 인민위원회와 정치협상회의 위원회가 주관한다. 사업을 검사할 때에는 우리는 광대한 간부와 적극적 분자에게 찬물을 끼얹지 않고 그들을 도울 것이다. 광대한 간부와 적극적 분자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오류를 발견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다. 공안부문, 검찰부문, 사법부문, 감옥, 노동개조의 관리기관을 막론하고 모두 이러한 태도를 채용해야 한다. 우리는 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의 위원, 정치협상회의 위원, 인민대표, 무릇 가능한 사람은 모두 이러한 검사에 참여할 것을 희망한다. 이것은 우리의 법률제도를 건전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반혁명분자와 기타 범죄분자를 정확히 처리하는 것에 대하여, 도움을 줄 것이다.

목전의 반혁명분자의 상황에 관하여, 이렇게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여전히 반혁명이 있지만, 그러나 많지는 않다. 우선 여전히 반혁명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미 (반혁명이-역자) 없어졌고 천하는 태평해졌으며, 베개를 채워서 머리를 높게 하고 잠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은 여전히 있다는 것이고(당연히 한 개의 지방마다 한 개의 단위가 모두 있다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계속하여 그들과 투쟁해야 한다. 숙청되지 않은 암약하는 반혁명분자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반드시 기회를 타서 난을 일으킬 것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미제국주의자와 장개석 집단은 언제나 우리가 있는 여기로 특무를 파견하여 파괴활동을 벌이고 있다. 원래의 반혁명분자는 숙청되었지만, 그러나 새로운 반혁명분자가 출현할 수도 있다. 우리가 경계심을 잃어버린다면, 그러면 커다랗게 속을 것이고 큰 고생을 할 것이다. 어떤 지방을 막론하고 반혁명분자의 소란이 출현하면, 마땅히 견결하게 그것을 소멸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국을 말하면 반혁명분자는 확실히 적어졌다. 만약 현재에도 전국에 매우 많은 반혁명분자가 있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의견은 틀린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결과는 난을 일으키는 것이다.

 

 

3. 농업합작사 문제

 

우리나라는 5억여의 농업인구가 있고 농민의 상황이 어떠한가하면, 우리나라의 경제의 발전과 정권의 공고함에 대하여 관계가 극히 크다. 우리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좋다고 여긴다. 합작화는 완료되었고, 이것은 우리나라의 사회주의공업화와 개체 농업(개인적 영농하는 농민-역자) 경제 간의 커다란 모순을 해결한 것이다. 합작화가 신속하게 완성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다행히도, 탈이 조금 있었지만, 크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건전하다. 농민생산은 매우 열심이고 비록 작년의 수해와 가뭄, 바람피해가 과거의 몇 년 중에서 가장 큰 해였지만 그러나 전국의 양식은 의연히 증대했다. 현재 어떤 사람은 도리어 합작화가 옳지 않고, 합작화는 우월성이 없다고 말하면서, 조그마한 태풍을 불어댔다. 합작화는 도대체 우월성이 있는가 없는가? 오늘 회의장에서 발표된 문건 속에는, 허뻬이성 준화현 왕구워번 합작사에 관한 자료가 있는데, 여러분이 볼 수 있다. 이 합작사가 소재하는 지방은 산지인데, 역사적으로 매우 가난했고, 해마다 인민정부에 의지하여 양식을 구제받아 왔다. 1953년에 합작사를 만드는 것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가난뱅이 합작사”라고 불렀다. 4년간의 간고한 분투를 통하여, 해마다 좋아졌고 절대 다수의 사원이 양식이 남아도는 가정이 되었다. 왕구워번 합작사가 능히 할 수 있었던 것을 다른 합작사도 정상적인 상황 하에서 마땅히 할 수 있고 혹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마땅히 해야만 한다. 이러한 점을 보건대, 합작화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그러한 사람들의 의견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합작사는 반드시 간고한 분투 속에서 건립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어떠한 새로 생기는 사물의 성장은 모두 간난곡절(매우 어려운 상황-역자)을 경과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업에서 간난곡절을 겪지 않으려고 하거나 최대의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모두 순풍에 돛을 달거나 쉽게 성공을 얻으려는 것, 이러한 종류의 생각은 단지 환상일 뿐이다.

합작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인가? 절대 다수의 빈농과 중하층의 농민(中下農)인데 그들은 농촌 인구의 70% 이상을 점한다. 나머지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또한 합작사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다. 진정으로 불만족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상황에 대해 분석하지 않고, 합작사의 성취와 결점 및 결점이 만들어낸 근원에 대하여 전면적인 고찰을 하지 않고 국부적이고 일면적인 것을 전체로 삼는데, 이것은 어떤 사람들 가운데에서 소위 합작사는 우월성이 없다는 작은 태풍을 일으키는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있어야 합작사가 공고해질 수 있는가, 합작사가 우월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의논이 비로소 결말을 지을 수 있는가? 많은 합작사의 발전의 경험에 근거해 보건대, 대략 5년을 요구하고 혹은 좀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현재, 전국 대다수의 합작사는 겨우 1년여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그들이 매우 좋기를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내가 보건대, 제1차 5개년 계획기간 내에 합작사의 건설을 완성하고 제2차 5개년 계획기간 내에 합작사가 공고함을 얻는다면, 그러면 매우 좋은 것이다.

합작사는 지금 점차적으로 공고화되는 과정을 경과하고 있다. 그것은 아직 해결을 요구하는 모순이 있다. 예를 들면 국가와 합작사 간에서, 합작사 내부에서, 합작사와 합작사 상호 간에서 모두 해결을 요구하는 모순이 있다.

우리는 항상 생산문제와 분배문제 상에서 위의 모순을 처리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생산문제에서, 한편으로는 합작사 경제는 국가의 통일된 경제계획의 지도에 복종하고, 동시에 국가의 통일된 정책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하에서 스스로의 일정한 융통성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합작사에 참가하는 각 가정은 자류지(농업의 집단화를 완성한 후에도 여전히 각 가정은 소규모의 채마밭과 가축을 기를 수 있었는데 각 가정에 배분된 땅을 자류지라 한다-역자)와 기타 일부분의 개체경영의 경제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적당한 계획 이외에는, 모두 합작사 혹은 생산대의 총괄적인 계획에 복종해야 한다. 분배문제에서 우리는 반드시 국가이익, 집체이익 그리고 개인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의 세수, 합작사의 축적, 농민의 개인적 수입이라는 세 방면의 관계에 관하여 반드시 적당히 처리하고, 언제나 주의하여 그 가운데의 모순을 조절해야 한다. 국가는 축적을 필요로 하고, 합작사는 또한 축적을 필요로 하지만, 그러나 모두 지나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농민들이 정상적인 수확 하에서, 생산을 증가시키는 가운데 매년 점차적으로 개인 수입을 증가시키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농민이 고생한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의견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한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제국주의와 그들의 대리인들에 의해 백 년 동안이나 억압과 착취를 당하여서, 가난한 국가가 되어서, 농민의 생활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지식분자의 생활수준 또한 모두 낮다. 수십 년이 지나면, 간고한 노력을 통하여, 비로소 전체 인민의 생활수준이 점차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이렇게 “고생스러움”을 말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다. 다른 한 측면을 말하면 맞지가 않다. 말하자면, 해방된 7년 이래로, 농민의 생활은 개선이 없었고 단지 노동자의 생활만이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노동자와 농민의 생활은 극히 소수를 제외하면, 모두 이미 어느 정도의 개선이 있었다. 해방 이래로 농민은 지주의 착취를 면하였고 생산은 매년 점차적으로 발전했다. 양식을 예로 든다면, 1949년에 전국의 생산량은 겨우 2천1백 수십억 근이었는데 1956년에는 양식의 생산이 3천6백 수십억 근에 달했고, 거의 1천5백억 근이 증가했다. 국가가 거둬들인 농업세는 중하지 않아서, 매년 겨우 3백여억 근일뿐이었다. 매년 정상가격으로 농민으로부터 사들인 양식은 단지 5백여억 근일뿐이었다. 두 개의 항목은 합하여 8백여억 근이다. 이러한 양식 판매는 농촌과 농촌 부근의 도시(集鎭 농촌 주변의 비농업인구의 거주지역-역자)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절반 이상을 점했다. 이렇게 볼 때, 농민생활이 개선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몇 년 내에 준비하여, 징발하는 양식과 구매하는 양식의 수량을 대체로 8백 수십억 근의 수준에 고정시키고, 농업이 발전을 이룩하고, 합작사가 공고함을 얻고, 현재 여전히 존재하는 농촌 중의 작은 부분의 양식이 부족한 가정을 다시 부족하지 않게 하고, 전문적으로 경제작물을 경영하는 어떤 농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양식이 남는 가정 혹은 자급하는 가정으로 변화시키고, 농촌 중에서 빈농을 사라지게 하고, 전체 농민이 중농 혹은 중농 이상의 생활수준에 도달하도록 할 것이다. 간단히 농민의 매 사람의 매년의 평균 소득과 노동자의 매 사람의 매년의 평균소득을 서로 비교하면, 하나는 낮게 말하고 다른 하나는 높게 말하는데 이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은 농민과 비교할 때 많이 높지만, 농민의 생활비용은 도시 노동자와 비교할 때 또한 절약되는 것이 많아서, 그리하여 노동자가 특별히 국가의 우대를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부분의 노동자의 임금 및 어떤 국가기관 사업인원의 임금은 어느 정도 높은데, 농민이 보기에 불만족하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며 상황을 숙고하여 타당한 조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4. 공상업자(工商業者) 문제

 

우리나라의 사회제도의 개혁은, 농업 합작화와 수공업 합작화 이외에, 사영(私營)공상업이 공사합영(公私合營)기업으로의 개조와 변화가 또한 1956년에 완성되었다. 이 일이 이렇게 신속하고 순조롭게 되었던 것은, 우리가 노동계급과 민족자산계급 간의 모순을 인민내부의 모순으로 보고서 처리한 것과 밀접히 서로 관련되어 있다. 이 계급모순은 완전히 해결되었는가? 아직 아니다. 아직 상당한 시간을 경과해야만 비로소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어떤 사람은 말한다: 자본가가 이미 개조되어 노동자와 차이가 없어졌고 다시 개조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말한다: 자본가는 노동자에 비해 더 고명하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만약 개조가 필요하다면, 왜 노동자계급은 개조하지 않는가? 당연히 옳지 않다.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 중에는, 사람마다 개조를 필요로 하고 착취자가 개조되어야 하고, 노동자 또한 개조되어야 하는데, 누가 노동자계급이 개조될 필요가 없다고 하는가? 당연히 착취자의 개조와 노동자의 개조는 두 종류의 성질이 다른 개조이며 혼란시켜서 말할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은 계급투쟁 가운데에서 그리고 자연계와 투쟁 가운데에서 전체 사회를 개조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개조한다. 노동자계급은 반드시 사업 중에서 부단히 학습하고 점차적으로 스스로의 결점을 극복하고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우리에 대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매년 일정하게 진보하고 있고, 말하자면 매년 모두 개조되고 있다. 나에 대해 말하면 이전에는 비맑스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고 맑스주의는 후에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책에서 맑스주의를 일정하게 학습했고 초보적으로 스스로의 사상을 개조했으나, 그러나 주요한 것은 역시 장기간의 계급투쟁 가운데에서 개조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하여 학습해야만 비로소 다시 일정한 진보가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낙후될 것이다. 설마 자본가가 그렇게 고명하다면 오히려 다시 개조해야 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중국의 자산계급은 현재 이미 양면성이 없어졌고 단지 일면성만이 있다. 이것은 사실인가 아닌가? 사실이 아니다. 한 측면에서는, 자산계급분자는 이미 공사합영기업 가운데의 관리인원으로 변화하였고 착취자에서 스스로 일하여 먹고사는 노동자로 전환하는 과정 중에 있다. 다른 한 측면에서는, 그들은 현재 공사합영 기업 가운데에서 이자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그들의 착취적 본성이 탈피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사상․감정, 생활습관과 여전히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 이미 양면성이 없게 되었다고 어찌 말할 수 있는가? 이자를 받지 않게 되고, 자산계급의 모자를 벗어버리더라도 여전히 상당한 기간 계속하여 사상개조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자산계급이 이미 양면성이 없어졌다면, 그러면 자본가의 개조와 학습의 임무는 또한 없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공상업자의 실제 상황과 부합하지 않고 공상업자 대다수의 바람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마땅히 말해야 한다. 과거 몇 년 동안, 대다수의 공상업자들은 모두 학습을 원했고 뿐만 아니라 현저한 진보가 있었다. 공상업자의 철저한 개조는 필수적으로 사업 가운데에 있어야 하며, 그들은 마땅히 기업 내에서 직원들과 함께 노동하고 기업을 자아개조의 기지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학습을 통하여 자신의 어떤 낡은 관점을 바꾸는 것은 또한 중요하다. 공상업자의 학습은 마땅히 스스로 원하는 것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 많은 공상업자가 학습반에서 수십일 동안 학습하고 공장으로 돌아가서 노동자군중과 정부대표와 훨씬 더 많은 공동의 대화를 했고 공동작업의 조건을 개선했다. 그들은 계속적인 학습, 계속적인 자기개조가 그들에 대해 이익이라는 것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이해했다. 방금 말한 그러한 종류의 학습이 필요 없다는, 개조가 필요 없다는 의견은 또한 공상업자 대다수의 의견을 대표할 수 없고 단지 소수의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5. 지식분자 문제

 

우리나라의 인민내부의 모순은 지식분자 가운데에서 또한 표현되었다. 과거 구사회를 위하여 복무하던 수백만의 지식분자는 현재 신사회를 위해 복무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여기에 그들이 어떻게 신사회의 수요에 적응하고 우리가 어떻게 그들이 신사회의 수요에 적응하도록 도울 것인지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것은 역시 인민내부의 한 개의 모순이다.

우리나라의 지식분자의 대다수는 과거 7년 가운데에서 이미 현저한 진보를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제도에 찬성을 표시한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은 힘써 맑스주의를 공부했고 어떤 일부분의 사람은 이미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이 부분의 사람은 현재는 비록 소수이지만, 그러나 점차 증대되고 있다. 당연히 지식분자 중에 어떤 사람은 현재 의연히 사회주의를 회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데 이 부분의 사람은 단지 소수를 점한다.

우리나라의 어렵고도 방대한 사회주의 건설 사업은 가능한 한 많은 지식분자가 그것을 위해 복무할 것을 필요로 한다. 무릇 진정으로 사회주의 사업을 위해 복무하기를 원하는 지식분자에게 우리는 응당 신임을 주어야 하고 근본적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고 그들이 각종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야 하고 그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의 재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많은 동지들은 지식분자와 단결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고 생경한 태도로 그들을 대하고 그들의 노동을 존중하지 않고, 과학․문화 사업 가운데에서 간섭해서는 안 되는 사무에 부적당하게 간섭한다. 이러한 모든 결점은 필히 극복해야 한다.

광대한 지식분자는 비록 이미 진보가 있었지만, 그러나 이로 인해 스스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신사회의 수요에 충분히 적응하기 위하여, 노동자․농민과 일치단결하기 위하여, 지식분자는 필히 계속하여 스스로를 개조하고 점차적으로 자산계급의 세계관을 포기하고 무산계급의, 공산주의의 세계관을 수립해야 한다. 세계관의 변화는 근본적인 변화이고 현재 다수 지식분자는 이미 이러한 변화를 완성했다고 여전히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지식분자가 계속 전진하고, 스스로의 사업과 학습의 과정 중에서 점차적으로 공산주의 세계관을 수립하고 점차적으로 맑스-레닌주의를 학습하고 점차적으로 노동자․농민과 한 덩어리가 되고 그리고 중도에 멈추지 말아야 하고 더욱이 뒤를 향해 후퇴하지 않기를 희망하는데, 후퇴는 출구가 없다. 우리나라의 사회제도는 이미 변화했기 때문에 자산계급 사상의 경제적 기초는 이미 기본적으로 소멸되었는데, 이것은 많은 수의 지식분자의 세계관이 변화의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이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관의 철저한 변화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우리는 마땅히 인내심을 갖고 사업을 해야 하고 조급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 반드시 어떤 사람은 사상에서 시종 맑스-레닌주의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고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데 이런 부분의 사람에게는 가혹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되고 단지 그들이 국가의 요구에 복종하고, 정상적인 노동에 종사하도록 하고 우리는 마땅히 그들에게 적당한 노동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식분자와 청년학생 가운데에서 최근 일정한 시기에 사상․정치사업이 약화되었고 일정한 편향이 출현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어떤 정치, 어떤 조국의 앞날, 인류의 이상과 같은 것은 모두 관심의 필요가 없다. 맑스주의 같은 것은 한때 유행했지만 현재는 그렇게 유행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현재 사상․정치사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식분자와 청년학생을 막론하고 모두 노력하여 학습해야 한다. 전공을 학습하는 것 이외에 사상적으로 진보가 있어야 하고 정치적으로 진보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맑스주의를 학습하고, 시사정치를 학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정치적 관점이 없다면, 바로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 과거의 사상개조는 필요한 것이었고 적극적인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방법상에서 조잡함이 있었고 어떤 사람을 상하게 했는데 이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결점은 이후에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사상․정치 사업은 각 부분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공산당이 마땅히 주관해야 하고 청년단이 마땅히 주관해야 하고, 정부의 주관부문이 마땅히 주관해야 하고, 학교의 교장과 교사는 더욱 마땅히 주관해야 한다. 우리의 교육 방침은 마땅히 교육자가 덕의 육성, 지혜의 육성, 체력의 육성 등 몇 가지 방면에서 발전을 획득하고 사회주의를 깨달은 문화적인 노동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근검절약하여 나라를 세우는 것을 제창해야 한다. 우리의 나라는 현재 아직은 하나의 매우 가난한 나라이고, 뿐만 아니라 단시간 내에 근본적으로 이러한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전체 청년과 전체 인민이 수십 년 내에 단결하고 분투하여 스스로 두 손을 사용하여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을 전체 청년들이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주의 제도의 건립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경계에 도달하는 길을 개척해 주었지만 그러나 이상적 경계의 실현은 우리의 근면한 노동에 의존한다. 어떤 청년은 사회주의 사회에 도달하면 마땅히 어떤 것도 모두 좋게 될 것이라고, 힘쓰지 않아도 이미 완성된 행복한 생활을 향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이것은 실제적이지 못한 생각이다.

 

 

6. 소수민족 문제

 

우리나라의 소수민족은 3천 수백만 명인데 비록 전국 총인구의 6%를 점하지만, 거주하는 지구는 광대하여 전국 총면적의 50-60%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한족과 소수민족의 관계는 반드시 좋아야 한다. 이 문제의 관건은 대한족(大漢族)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지방민족주의가 존재하는 소수민족 가운에서는 마땅히 동시에 지방민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대한족주의 혹은 지방민족주의를 막론하고 모두 각 민족 인민의 단결에 불리한데, 이는 마땅히 극복해야 하는 일종의 인민내부의 모순이다. 이 방면에서 우리는 이미 일정한 사업을 했고 대다수의 소수민족 지구에서 민족관계는 비교적 이전보다 커다란 진전이 있었지만 그러나 의연히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일부분의 지구에서는 대한족주의와 지방민족주의가 엄중하게 존재하는데, 반드시 충분한 주의를 해야 한다. 각 민족 인민의 수년 동안의 노력을 통하여, 우리나라 소수민족 지구의 절대다수는 이미 기본적으로 민주개혁과 사회주의 개조를 완성했다. 티벳은 아직 조건이 성숙하지 않아서, 아직 민주개혁을 진행하고 있지 못하다. 중앙과 티벳 지방정부의 17조 협의에 의거하여, 사회제도의 개혁은 반드시 실행해야 하지만, 그러나 언제 실행할 것인지는 티벳 대다수 인민군중과 지도인물이 실행해도 좋다고 여기는 때를 기다리고 나서 비로소 결정을 내올 수 있는데 성급해서는 안 된다. 현재는 이미 제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에는 개혁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제3차 5개년 계획 기간 내에 개혁을 실행할지 말지는 그때에 상황을 보고 나서 결정할 수 있다.4)

 

 

7. 여러 방면의 일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돌볼 것,

   적당히 안배할 것

 

여기서 말하는 ‘여러 방면의 일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돌볼 것’은 6억 인구의 ‘여러 방면의 일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돌볼 것’에 대해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의 계획을 작성하는 것, 일처리, 생각하는 문제는 모두 우리나라의 6억 인구라는 점으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절대로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에 이 점을 제출하는 것인가, 설마 우리나라가 6억 인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인가?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그런데 일을 시작할 때 어떤 사람은 잊어버리고 있고 마치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고, 원이 축소되어서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작은 원주의(小圈子主義)’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다음의 생각과 저촉되는 것이다: 일체의 적극적 요소를 움직이고, 일체의 단결가능한 사람을 단결시키고,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소극적 요소를 적극적 요소로 전화시키고, 사회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이 위대한 사업을 위하여 복무하게 한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이 시야를 확대하고, 진정으로 우리나라가 6억 인구라는 것을 승인하고 이것이 하나의 객관적 존재이고 이것이 우리의 본전이라는 것을 승인할 것을 희망한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많은데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물론 또한 곤란한 점도 있다. 우리의 각 방면의 건설사업은 또한 활기차게 발전하고 있는데, 성적이 매우 좋지만, 그러나 목전의 사회의 대변동의 과도적 시기에, 곤란한 문제도 역시 매우 많다. 한편으로 발전하고 한편으로 곤란이 있고, 이것은 모순이다. 어떠한 모순이든지 응당 해결해야 할뿐만 아니라 또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방침은 ‘여러 방면의 일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돌볼 것’ 그리고 적당히 안배할 것이다. 식량문제, 흉년문제, 취업문제, 교육문제, 지식분자문제, 각종의 애국역량의 통일전선 문제, 소수민족문제, 그리고 기타 각종의 문제들은 모두 전체 인민이 ‘여러 방면의 일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돌볼 것’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바로 때에 맞고 장소에 맞는 실제 가능한 조건을 살피고 각 방면의 사람들이 협의하고 각종의 적당한 안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다는 것, 사람이 낙후되어 있다는 것,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싫어해서는 안 되고 문을 밖으로 밀고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일체의 사람, 일체의 일을 모두 정부가 포괄해야한다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많은 사람, 많은 일은 사회단체가 방법을 생각하고, 군중이 직접 방법을 생각하고 하여서, 그들이 능히 매우 많은 좋은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 방면의 일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돌볼 것’, 적당히 안배할 것이라는 방침 내에 포괄되는 것이며 우리는 마땅히 사회단체와 각지의 군중이 이렇게 하도록 지도해야만 한다.

 

 

8.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 장기공존,

   상호감독에 관하여

 

백화제방, 백가쟁명, 장기공존, 상호감독이라는 이 몇 개의 구호는 어떻게 제출된 것인가? 그것은 중국의 구체적 상황에 근거하여 제출된 것이고, 사회주의 사회에서 의연히 각종의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는 기초 위에서 제출된 것이고, 국가가 신속하게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절박한 요구에서 제출된 것이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방침은 예술의 발전과 과학의 진보를 촉진하는 방침이고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문화의 번영을 촉진하는 방침이다. 예술상의 상이한 형식과 풍격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고 과학상의 상이한 학파가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다. 행정역량을 이용하여 하나의 풍격, 하나의 학파의 보급을 강제하고 다른 하나의 풍격, 다른 하나의 학파를 금지하는 것을, 우리는 예술과 과학의 발전에 해로울 수 있다고 여긴다. 예술과 과학 가운데의 시비문제(옳고 그름의 문제-역자)는 마땅히 예술계와 과학계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하여 해결해야 하고, 예술과 과학의 실천을 통하여 해결해야 하지, 간단한 방법을 써서 해결하면 안 된다. 정확한 것, 잘못된 것을 판단하기 위하여 종종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상 새롭고 정확한 것은, 시작될 때는 종종 다수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단지 투쟁 속에서 구부러지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정확한 것, 좋은 것을 사람들은 시작할 때는 종종 그것들이 향기 나는 꽃이라는 것을 승인하지 못하고 반대로 그것들을 독이 있는 풀이라고 간주한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계의 학설, 다윈의 진화론은 모두 일찍이 잘못된 것으로 간주되었고 모두 간고한 투쟁을 거쳤다. 우리나라의 역사상에도 이러한 사례가 많이 있다. 구사회와 비교하면, 사회주의 사회 가운데에는 새롭게 생겨나는 사물의 성장조건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고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새롭게 생겨나는 힘을 억압하고, 합리적 의견을 억압하는 것은 의연히 항상 있는 일이다. 억압할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판단이 분명치 않아서이더라도 역시 새롭게 생겨나는 사물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학상, 예술상의 시비에 대하여, 응당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제창하고, 경솔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과학과 예술이 비교적 순조롭게 발전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맑스주의는 또한 투쟁 가운데에서 발전해온 것이다. 맑스주의는 처음에는 많은 공격을 받았고 독이 있는 풀이라고 생각되었다. 현재 그것은 세계상의 많은 곳에서 계속하여 공격을 받고 독이 있는 풀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맑스주의의 지위는 달라졌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비맑스주의적 사상이 존재하고 또한 반맑스주의적 사상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비록 사회주의 개조는 소유제 방면에서 말하면 이미 기본적으로 완성되었고 혁명시기의 대규모의 폭풍우 같은 군중 계급투쟁은 이미 기본적으로 끝이 났지만 그러나 뒤집어진 지주매판계급의 잔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자산계급이 여전히 존재하고, 소자산계급은 막 개조되고 있다. 계급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간의 계급투쟁, 각 파의 정치역량 간의 계급투쟁, 무산계급과 자산계급간의 의식형태 방면의 계급투쟁은 역시 장기간의 곡절이 있는 어떤 때는 심지어 격렬해지기도 한다. 무산계급은 자신의 세계관에 의거하여 세계를 개조하고 자산계급은 자신의 세계관에 의거하여 세계를 개조한다. 이 방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누가 이기고 누가 질 것인지는 여전히 진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전 인구 중에서 혹은 지식분자 중에서를 막론하고 맑스주의자는 소수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맑스주의는 의연히 반드시 투쟁 가운데에서 발전한다. 맑스주의는 반드시 투쟁 가운데에서 비로소 발전할 수 있는데, 과거에 이러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 이러하고, 장래에 또한 필연적으로 이러할 것이다. 정확한 것은 총체적으로 보면 잘못된 것과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진정한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은 총체적으로 보면 거짓된 것, 나쁜 것, 추한 것과 서로 비교되어 존재하는 것이고 서로 투쟁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어떤 잘못된 것이 인류에 의해 보편적으로 버려지고, 어떤 진리가 인류에 의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때에, 더욱더 새로운 진리는 또한 새로운 잘못된 의견과 투쟁을 한다. 이러한 투쟁은 영원히 완결될 수 없다. 이것은 진리의 발전의 규칙이고 당연히 맑스주의 발전의 규칙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의식형태 방면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질 것인가의 투쟁은, 여전히 상당히 긴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은 자산계급과 구사회로부터 나온 지식분자의 영향이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장기간 존재하고 계급의 의식형태로서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장기간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형세에 대하여 인식이 부족하다면 혹은 근본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그것은 절대적인 잘못을 범하는 것이고, 필요한 사상투쟁을 가볍게 여길 수 있다. 사상투쟁은 기타의 투쟁과 같지 않은데, 그것은 폭력적 강제적 방법을 취할 수 없고 단지 정치한 이치를 말하는 방법만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사회주의는 의식형태의 투쟁 가운데에서, 우월성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정권의 기본역량이 무산계급 영도하의 노동인민의 수중에 있다. 공산당은 강대한 역량과 매우 높은 위신을 갖고 있다. 우리의 사업 중에서 비록 결점이 있고, 착오가 있을지라도, 그렇지만 매 한 사람의 공정한 사람은 모두 볼 수가 있고, 우리는 인민에 대해 충성을 다하고 있고 우리는 결의가 있고 인민과 함께 조국건설을 완성할 능력이 있고 우리는 이미 거대한 성취를 획득했고 뿐만 아니라 계속하여 더 거대한 성취를 얻을 것이다. 자산계급분자와 구사회로부터 나온 지식분자의 절대 다수는 모두 애국적이고 그들은 나날이 발전하는 사회주의 조국을 위해 복무하기를 원하고 뿐만 아니라 만약 사회주의 사업을 떠난다면, 공산당 영도하의 노동인민을 떠난다면, 그들은 의지할 데가 없고 어떠한 밝은 앞날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우리국가 내에서는 맑스주의가 이미 대다수 사람들에 의해 지도사상으로 승인되었는데 그러면 그것에 대하여 비판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닌가?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 맑스주의는 과학적 진리이고 그것은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만약 맑스주의가 비판을 두려워하고 만약 비판하여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러면 맑스주의는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사실상, 관념론자는 매일같이 각종의 형식을 사용하여 맑스주의를 비판하고 있지 않는가? 자산계급사상, 소자산계급사상 그리고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포함하여, 각종 형식을 사용하여 맑스주의를 비판하고 있지 않는가? 맑스주의자는 마땅히 어떤 사람이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맑스주의자는 사람들의 비판의 가운데에 있어야 하는데, 바로 투쟁의 폭풍우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자신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진지를 확대해야 한다. 잘못된 사상과 투쟁하는 것은 천연두를 놓는 것과 비교될 수 있는데 천연두 백신의 작용을 통하여, 사람의 몸은 면역력이 증강된다. 온실에서 배양된 것은 강대한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실행하는 방침은 맑스주의의 사상계에서 영도지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이러한 지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비맑스주의 사상에 대해 어떤 방침을 채택해야 하는가? 명백한 반혁명분자, 사회주의사업을 파괴하는 분자에 대해서는 일을 분명히 처리하고 그들의 언론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옳다. 인민 내부의 잘못된 사상에 대해서는 사정은 동일하지 않다. 이런 사상을 금지하고, 이런 사상에 대해 어떤 발표의 기회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인민내부의 사상문제에 대하여 정신세계의 문제에 대하여 간단한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은 효과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해롭다. 잘못된 의견을 발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의견이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의견이 만약에 온실에서 배양되어 나온 것이라면, 만약에 바람과 비를 겪지 않았다면, 면역력을 얻지 못했다면, 잘못된 의견을 마주쳤을 때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토론의 방법, 비판의 방법, 설득의 방법을 취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정확한 의견을 발전시키고, 잘못된 의견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산계급, 소자산계급, 그들의 사상의식은 반드시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다. 틀림없이 정치문제와 사상문제에서 각종의 방법을 써서 완강하게 그들 자신을 표현한다. 그들이 반영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억압의 방법을 써서 그들이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들이 표현하도록 하고, 동시에 그들이 표현할 때에, 그들과 토론하고 적당한 비판을 진행해야 한다.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우리는 마땅히 각종각양의 잘못된 사상을 비판해야 한다. 비판을 하지 않고 잘못된 사상이 도처에 범람하는 것을 보고 있고, 마음대로 그들이 시장을 점령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다. 잘못이 있으면 비판을 해야 하고 독이 있는 풀이 있으면 투쟁을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비판은 마땅히 교조주의이어서는 안 되고, 마땅히 형이상학이어서는 안 되고, 마땅히 힘써서 변증법적 방법을 구해야 한다. 과학적인 분석이 있어야 하고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교조주의적 비판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일체의 독이 있는 풀에 반대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신중하게 무엇이 독이 있는 풀이고 무엇이 향기 나는 꽃인지를 판별해야한다. 우리는 군중과 함께 신중하게 향기 나는 꽃과 독이 있는 풀을 판별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뿐만 아니라 함께 정확한 방법으로 독이 있는 풀과 투쟁해야 한다.

우리가 교조주의를 비판할 때에는 반드시 동시에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에 주의해야 한다. 수정주의 혹은 우편향 기회주의는 일종의 자산계급 사조인데, 그것은 교조주의에 비해 훨씬 더 위험성이 있다. 수정주의자, 우편향 기회주의자는 입으로는 맑스주의에 머리를 숙이지만, 그들은 또한 거기에서 “교조주의”를 공격한다. 그러나 그들이 공격하는 것은 바로 맑스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들은 유물론과 변증법을 반대하거나 혹은 왜곡하려하고, 인민민주독재와 공산당의 영도를 반대하거나 혹은 약화시키려 하고 사회주의 개조와 사회주의 건설을 반대하거나 혹은 약화시키려 기도한다. 우리나라 사회주의 혁명이 기본적인 승리를 획득한 후에, 사회에서 아직 일부분의 사람은 자본주의를 회복하려는 꿈을 꾸고 있고, 그들은 각 방면에서 노동계급을 향해 투쟁을 진행하려 하고, 사상방면의 투쟁을 포괄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에서 수정주의자는 바로 그들의 가장 좋은 조수이다.

백화제방, 백가쟁명이라는 이 두 가지 구호는, 글자를 보면, 계급성이 없어서, 무산계급이 그것들을 이용할 수도 있고 자산계급이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고 기타의 사람들도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 소위 향기 나는 꽃과 독이 있는 풀에 대해, 각각의 계급, 계층과 사회집단이 또한 각자의 관점이 있다. 그러면, 광대한 인민군중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무엇이 오늘날 향기 나는 꽃과 독이 있는 풀을 판별하는 기준인가? 우리나라 인민의 정치생활 가운데에서, 마땅히 어떻게 우리의 언론과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가? 우리가 생각하건대, 우리나라의 헌법의 원칙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의 최대다수 인민의 의지와 우리나라의 각 당파가 여러 차례 선포했던 공동의 정치적 주장에 근거하여야 하는데, 이런 종류의 표준은 다음과 같이 대략 규정할 수 있다: (1) 전국의 각 민족과 인민을 단결시키는 데 유리하고 인민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닐 것; (2) 사회주의 개조와 사회주의 건설에 유리하고 사회주의 개조와 사회주의 건설에 불리하지 않을 것; (3) 인민민주독재를 공고히 하는 데 유리하고 이 독재를 파괴하거나 혹은 약화시키지 않을 것; (4) 민주집중제를 공고히 하는 데 유리하고 이 제도를 파괴하거나 약화시키지 않을 것; (5) 공산당의 영도를 공고히 하는 데 유리하고 이 영도를 벗어나거나 약화시키지 않을 것; (6) 사회주의의 국제적 단결과 전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인민의 국제적 단결에 유리하고 이 단결에 손해가 되지 않을 것. 이 6개 항의 표준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의 길과 당의 영도 두 개 항이다. 이러한 표준을 제출하는 것은 인민이 각종의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며 이런 토론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표준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도 의연히 자신의 의견을 제출하여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명확한 표준이 있고 비판과 자아비판이 정확한 궤도를 따라서 전진하도록 할 수 있고 이러한 표준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언론행동이 정확한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고 결국 향기 나는 꽃인지 독이 있는 풀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이것은 일정한 정치적 표준이다. 과학의 논점이 정확한가 잘못된 것인가, 예술작품의 예술 수준이 어떠한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각자의 표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6개 항의 정치적 표준은 어떠한 과학예술의 활동에 대해서도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설마 어떤 이익이 되는 과학예술 활동이 이 몇 개 항의 정치적 표준에 위반할 수 있는 것인가?

이상의 말한 바의 관점은 모두 우리나라의 구체적 역사적 조건에서 출발한 것이다. 각각의 사회주의 국가와 각국의 공산당의 상황은 동일하지 않다. 이렇게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반드시 중국의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기공존, 상호감독” 이 구호는 또한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의 산물이다. 이 구호는 또한 돌연히 제출되어 나온 것이 아니고 그것은 이미 수년간의 성숙을 경과했다. 장기공존의 사상은 이미 오랫동안 존재해온 것이다. 작년까지 사회주의제도는 이미 기본적으로 세워졌고 이 구호는 명확하게 제출되었다. 왜 자산계급과 소자산계급의 민주당파가 노동계급 정당과 장기공존한다는 것인가? 이것은 확실하게 일체의 인민을 단결시켜 사회주의 사업에 종사하는 데 힘쓰는 것에 속하기 때문이며 인민의 신임을 얻은 당파에 대해 우리는 그들에 대해 장기공존의 방침을 취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1950년 6월 제2차 정치협상회의 상에서, 이미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누구든지 진정으로 능히 인민을 위하여 힘을 쓴다면, 인민이 여전히 곤란한 시기에 확실히 도움을 준다면, 좋은 일을 한 것이고, 또한 일관되게 그렇게 해나가고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러면 인민과 인민의 정부는 그를 필요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그에게 생활의 기회와 힘을 쓸 기회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기서 말한 것은 또한 각 당파가 장기공존할 수 있는 정치적 기초가 된다. 공산당과 각 민주당파의 장기공존, 이것은 우리의 바람이고 또한 우리의 방침이다. 각 민주당파가 능히 장기공존해갈 수 있는지는 공산당만의 일방적인 바람으로써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민주당파의 스스로의 표현을 보아야 하고 그들이 인민의 신임을 얻는지를 보아야 한다. 각 당파가 상호 감독한다는 사실은 또한 오래전에 존재했고 바로 각 당파가 상호 의견을 제출하고 비판을 하는 것이다. 소위 상호 감독이라는 것은 당연히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공산당이 민주당파를 감독할 수 있고, 민주당파가 또한 공산당을 감독할 수 있다. 왜 민주당파가 공산당을 감독할 것을 허용해야 하는가? 이것은 하나의 당은 한 사람과 같아서, 귓가에 서로 다른 소리를 들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요하게 공산당을 감독하는 것은 노동인민과 당원 군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파가 있는 것은 우리에게 더 이익이 된다. 당연히 각 민주당파와 공산당이 상호 간에 제기한 의견, 행한 비판은 또한 우리가 앞에서 말한 6개 항의 정치적 표준과 합치하는 상황 하에서만, 상호감독의 적극적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 민주당파가 주의하여 사상을 개조하고 공산당과 한 길로 장기공존을 쟁취하고 상호감독하고 이로써 신사회의 수요에 적응하기를 희망한다.

 

 

9. 소수가 소동을 일으키는 문제에 관하여

 

1956년에 개별 지방에서 소수의 노동자와 학생이 파업하고 휴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킨 것의 직접적 원인은 어떤 물질상의 요구가 만족을 얻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요구는 어떤 것은 마땅히 해결해야 하고 그리고 해결이 가능한 것이며 어떤 것은 부적당하고 요구가 너무 높은 것이며 일시에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소동이 발생한 것의 더 중요한 요소는 역시 영도 상의 관료주의이다. 이 관료주의의 잘못은 어떤 것은 상급기관의 책임 때문이고 전적으로 아래의 탓이 아니다. 소동이 난 것의 또 하나의 원인은 노동자, 학생에 대하여 사상․정치교육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1956년에 소수의 합작사 사원이 소동을 일으킨 사건의 주요한 원인 또한 영도 상의 관료주의와 군중에 대한 교육의 결여였다.

마땅히 다음을 승인해야 한다: 어떤 군중은 왕왕 눈앞의 것, 국부적인 것, 개인의 이익에 주의하기 쉽고, 반면에 오래 걸리는 것, 전국적 성격의 것, 집단적 이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적지 않은 청년이 정치경험과 사회생활경험의 결여로 인해, 구중국과 신중국을 비교하는 데 능숙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인민이 일찍이 어떤 고난의 투쟁을 겪어서 비로소 제국주의와 국민당 반동파의 억압을 탈피했는지를,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어떤 장기간의 힘든 노동을 경과하는지를 절절하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렇기 때문에, 군중 가운데에서 언제나 생동하고 절실한 정치교육을 할 필요가 있고 뿐만 아니라 마땅히 언제나 발생한 곤란을 그들에게 진실되게 설명하고 그들과 함께 어떻게 곤란을 해결할지의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소동을 일으키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인민내부의 모순은 “단결―비판―단결”의 방법을 사용하여 해결할 수 있고 또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일정한 손실을 초래하고 사회주의 사업의 발전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광대한 인민군중이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그들이 매우 규율 있고 매우 도리를 이해하고, 결코 이유 없이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결코, 우리나라에서 이미 군중이 소동을 일으키는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마땅히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1) 근본적으로 소동을 일으키는 원인은 소멸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관료주의를 극복해야 하고, 매우 잘 사상․정치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합당하게 각종 모순을 처리해야 한다. 이 항목을 행하기만 하면 일반적으로 소동을 일으키는 문제는 발생할 수 없다. (2) 만약에 우리의 사업이 잘못되어서 소동이 발생하면, 그러면 응당히 소동을 일으킨 군중을 정확한 길로 인도해야 하고, 소동이 일어난 것을 이용하여 사업을 개선하고, 간부와 군중을 교육하는 일종의 특수한 수단을 써서 평소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일어난 소동에 대해 처리하는 과정 중에서는 마땅히 세밀하게 사업을 진행해야 하며, 간단한 방법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며 “경솔하게 중지”해서는 안 된다. 소동을 일으킨 주모자에 대하여, 형법을 위반한 분자와 현행의 반혁명분자가 마땅히 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경솔하게 해고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이렇게 큰 나라에서는, 소수의 사람이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놀랄만한 것이 아니며, 도리어 우리가 관료주의를 극복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사회에는 또한 소수의 어떤 사람이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방침을 이용하고 왜곡하여 고의로 무리한 요구를 제출하여 군중을 선동하고 혹은 고의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일을 만들고 사회의 정상적 질서를 파괴한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우리는 결코 그들을 내버려 두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반대로 반드시 필요한 법률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 이런 사람을 징벌하는 것은 광대한 군중의 요구이고 징벌하지 않은 것은 곧 군중의 바람을 위반하는 것이다.

 

 

10.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할 수 있는가 없는가?

 

내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 사회 가운데에는, 군중이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나쁜 일이고 우리가 찬성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후에, 또한 우리가 교훈을 받아들이고,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간부와 군중을 교육하는 것을 촉진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해 말한다면, 나쁜 일이 또한 좋은 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소동은 이중성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이용하여 일체의 소동을 대할 수 있다.

헝가리사건은 좋은 일이 아니고 이것은 모든 사람이 명확히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이중성이 있다. 헝가리의 동지들이 사건의 발생 과정 중간에 처리를 정확히 하여서, 결과는 헝가리 사건이 나쁜 일에서 좋은 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헝가리는 현재, 과거에 비해 공고해졌고 사회주의 진영 각국은 모두 교훈을 얻었다.

똑같이 1956년 하반기에 발생한 반공반인민적인 세계적인 풍조는 당연히 나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각국의 공산당과 노동계급을 교육하고 단련시켰고 이것은 좋은 일로 변화하였다. 많은 나라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러한 풍조 속에서 당을 나갔다. 일부분의 당원이 당을 나갔고 당의 사람 수가 줄어들었는데 당연히 나쁜 일이다. 그러나 또한 어떤 면에서는 좋은 점이 있는데, 동요분자가 계속 해쳐나가지 않고 탈퇴한 반면, 대다수의 견고한 당원은 더욱더 잘 단결하고 분투한 것이 왜 좋지 않은가?

총괄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반드시 전면적으로 문제를 보아야 하는데, 사물의 정면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그것의 반대 면을 보아야 한다. 일정한 조건 하에서, 나쁜 것이 좋은 결과를 내올 수 있고 좋은 것이 또한 나쁜 결과를 내올 수 있다. 노자는 2천여 년 전에 말한 적이 있다: “화는 복에 기대고 복은 화에 숨어있다.” 일본이 중국을 타도하고 일본인은 승리를 외쳤다. 중국은 대부분 점령되었고, 중국인은 패배했다. 그러나 중국의 패배 이면에 승리가 포함되어 있었고 일본의 승리 이면에 실패가 포함되어 있었다. 역사는 이렇게 증명되지 않았는가?

현재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모두 제3차 세계대전이 붙을 수 있는가, 아닌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또한 정신을 준비해야만 하고 또한 분석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평화를 지지하고 전쟁을 반대한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필히 전쟁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일체의 “소동”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것이다. 제1항은 반대한다는 것, 제2항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쏘련이 출현했고 2억의 인구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진영이 출현했고 합쳐서 9억의 인구가 되었다. 만약에 제국주의자가 필히 제3차 세계대전을 시작한다면, 판단할 수 있는데, 그 결과는 반드시 수억의 인구가 사회주의 측으로 돌아설 것이고 제국주의의 남아 있는 기반은 적어질 것이고 또한 전체 제국주의제도가 전부 붕괴할 수도 있다.

모순되는 대립의 쌍방이 상호 투쟁하는 결과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상호전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 여기에서 조건이 중요하다. 일정한 조건이 없다면 투쟁하는 쌍방은 모두 전화할 수 없다. 세계상에서 자신의 지위를 변화시키기를 가장 바라는 것은 무산계급이고 그 다음이 반(半)무산계급인데 왜냐하면 한 측은 소유가 없고 한 측은 또한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이 조종하는 연합국(UN-역자)의 다수표와 통제하는 세계의 많은 지방이라는 국면은 단지 일시적인 것이고 이 국면은 전체적으로 하루에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중국의 가난한 나라라는 지위와 국제 상에서 권리가 없는 지위는 또한 변화를 시작할 수 있고 가난한 나라는 곧 부유한 나라로 변화하고, 권리가 없는 것은 곧 권리가 있는 것으로 변화한다―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조건은 사회주의제도와 인민이 일치단결하여 분투하는 것이다.

 

 

11. 절약에 관하여

 

나는 여기서 절약의 문제에 대해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대규모의 건설을 진행하려하지만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빈궁한 국가이며 이것은 하나의 모순이다. 전면적으로 오래 지속하여 절약을 시행하는 것, 이것이 이 모순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1952년에 “3반”운동 중에, 우리는 독직, 낭비와 관료주의에 반대했는데, 그런데 독직을 반대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1955년에 절약을 제창했는데, 중점은 비생산적인 기본건설 가운데에서 지나치게 높은 표준에 반대했고 공업생산 가운데에서 원료를 절약하는 것은 성적이 매우 컸다. 그때에 절약의 방침은 아직 국민경제 각 부문 가운데에서 열심히 추진되지 못했고 또한 일반적 기관, 부대, 학교, 인민단체 가운데에서 열심히 추진되지 못했다. 금년에 전국 각 방면에서 절약을 제창하고 낭비를 반대했다. 우리는 건설사업에 대하여 여전히 경험이 부족한 상태다. 과거 몇 년 동안 커다란 성취가 있었고 동시에 낭비 또한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점진적으로 일련의 대규모의 현대화 기업을 골간으로 건설해야 하는데 이 골간이 없다면 우리나라가 수십 년 내에 현대화된 공업강국으로 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수 기업은 마땅히 이렇게 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더 많이 중소형 기업을 건설해야 하고 뿐만 아니라 충분히 구사회가 물려준 공업적 기초를 이용하고 힘써서 절약하고 비교적 적은 돈으로 비교적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작년 11월 중국공산당 2차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더 중점을 두어서 절약을 시행하고 낭비를 반대하는 방침을 제출한 이후, 몇 개월이 지났는데, 이미 효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번의 절약 운동은 반드시 철저하게 오랫동안 진행되어야 한다. 낭비에 반대하는 것은 기타의 결점과 착오를 비판하는 것과 같이, 얼굴을 씻는 것과 유사하다. 사람은 모두 매일 얼굴을 씻지 않는가? 중국공산당, 민주당파, 무당파 민주인사, 지식분자, 공상업자, 노동자, 농민, 수공업자, 총괄하여 우리 6억 인구는 모두 증산과 절약을 시행해야 하고 겉치레와 낭비에 반대해야 한다. 이것은 경제상에서 중대한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상에서도 중대한 의의가 있다. 우리의 많은 사업인원 가운데에는 현재 일종의, 군중과 고락을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고 개인의 명리를 염두에 두기를 좋아하는 위험한 경향이 자라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안 좋은 것이다. 우리는 증산과 절약 운동 중에서 기관을 간소하게 하고 간부를 하방하고 상당히 큰 일련의 간부의 생산으로의 회귀를 실시해야 하는데, 이것은 이 위험한 경향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전체 간부와 전체 인민으로 하여금 언제나 우리나라가 하나의 사회주의 대국이지만 그러나 하나의 경제가 낙후한 빈국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은 하나의 커다란 모순이다. 우리나라가 부강하게 되는 것은 수십 년의 간고한 분투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그중에는 절약을 시행하고 낭비를 반대하는 것을 포함하여 이러한 것이 근검절약의 건국의 방침이다.

 

 

12. 중국공업화의 길

 

여기서 말하는 공업화의 길의 문제는 주요하게는 중공업, 경공업 그리고 농업의 발전의 관계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건설은 중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것인데 이것은 반드시 긍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충분하게 농업과 경공업을 발전시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하나의 큰 농업국이고 농촌인구가 전국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공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반드시, 농업을 발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공업이 비로소 원료와 시장이 생기기 때문이고 비로소 강대한 중공업을 건립하기 위하여 비교적 많은 자금을 적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공업과 농업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농업이 없다면, 경공업이 없다. 중공업은 농업을 중요한 시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 점을 지금, 사람들은 분명히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의 기술개혁이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농업의 날마다의 현대화, 농업에 사용될 기계, 비료, 수리건설, 전력건설, 운수건설, 민간용 연료, 민간용 건축재료 등등이 날마다 증대하기 위해서, 중공업이 농업을 중요한 시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제2차 5개년 계획과 제3차 5개년 계획 기간에 만약 우리의 농업이 훨씬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고, 경공업이 상응하여 훨씬 더 많은 발전을 하게 한다면, 이것은 전체 국민경제의 발전에 대해 좋은 점이다. 농업과 경공업이 발전하면 중공업은 시장이 생기고 자금이 생기는데 그것은 훨씬 더 빨리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보건대 공업화의 속도가 조금 늦어지는 것 같지만, 그러나 실제상으로는 늦어질 수 없고 혹은 도리어 조금 빨라질 수 있다. 3개의 5개년 계획을 거쳐 혹은 다시 약간의 시간을 경과하여, 우리나라의 강철 생산량은 의연히 해방 전의 최고 생산량 즉, 1943년의 90여만 톤에서 2천만 톤으로 혹은 훨씬 더 많이 발전했다. 이리하여 도시와 시골의 인민이 모두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경제문제에 대하여 오늘은 말할 것을 많이 준비하지 않았다. 경제건설에 대하여 우리는 경험이 결핍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겨우 7년을 경과하였고 여전히 경험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혁명에 대하여 우리는 처음에는 경험이 없었고, 곡절을 경과하여, 경험을 얻었고 이후에 비로소 전국의 승리를 얻었다. 우리는 경제건설의 방면의 경험의 취득에서 혁명경험을 취득하는 시간과 비교하여 일정하게 단축시켜야 하고 동시에 너무 큰 대가를 치러서는 안 된다. 대가는 언제나 필요하지만, 혁명시기에 지불했던 대가처럼 그렇게 크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 문제 상에 존재하는 모순에서 즉,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객관적 규칙과 우리의 주관적 인식 간의 모순에서, 이것은 실천 중에서 해결할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모순은, 사람과 사람 간의 모순으로 표현되는데, 즉 비교적 정확하게 객관적 규칙을 반영하는 사람과 비교적 부정확하게 객관적 규칙을 반영하는 사람 간의 모순이며 이렇기 때문에, 인민내부의 모순이다. 일체의 모순은 모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의 임무는 가능한 한 정확히 그것을 반영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공업국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쏘련의 선진적 경험을 열심히 학습해야 한다. 쏘련이 사회주의를 건설한 것은 이미 40년이 되었고 그것의 경험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것이다. 사람들은 보아야 한다. 누가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중요한 공장의 설계와 장비를 주었는가? 미국이 우리에게 주었는가 아닌가? 영국이 우리에게 주었는가 아닌가? 그들 모두는 주지 않았다. 쏘련만이 이렇게 했는데 왜냐하면 그것만이 사회주의 국가이고 우리의 동맹국가이기 때문이다. 쏘련을 제외하고 동구의 일부 형제국가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완전히 맞는데, 일체 국가의 좋은 경험은 사회주의 국가이건, 자본주의 국가이건 모두 배워야 하고 이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주요한 것은 역시 쏘련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학습에는 두 가지의 태도가 있다. 하나는 교조주의적 태도인데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용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좋지 않다. 또 하나의 태도는 학습할 때에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합한 것을 배우고 즉, 우리에게 유익한 경험을 흡수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필요로 한다.

쏘련과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것, 일체의 사회주의 국가와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기본방침이고 기본적 이익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및 일체의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와 인민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그들과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두 종류의 역량의 단결이 있게 되면, 우리는 고립되지 않는다. 제국주의국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또한 그곳의 인민과 단결해야 하고 뿐만 아니라 그 나라와 평화공존을 쟁취해야 하고 장사를 하고, 발생 가능한 전쟁을 억제해야 하는데 그러나 그들에 대해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된다.

 


 

1) (역주) 헝가리에서 1956년 10월부터 11월까지 발생한 반정부 정치사건.

 

2) (역주) 공사합영은 민족자본가계급을 사회주의로 개조하는 방안이었는데 민족자본가가 자신의 자본을 출연하여 국가와 합동하여 기업을 운영하는 것으로서 자본가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의 대가로 일정기간 이자를 받는 형태였고 자본가의 경영능력은 국가를 위해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민족자본가계급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고 사회주의 개조의 길을 밟은 것은 공산당의 압도적 힘 때문이었고, 착취계급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들 민족자본가계급은 이후 등소평에 의해 소생되어서 현재의 중국 자본주의의 지배계급으로 전화하였다.

 

3) (역주) 전인민소유제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유를 가리키는 것이다. 국유가 전인민소유제의 법적 형식이라면 전인민소유제는 일종의 생산관계의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사회주의 사회에는 협동조합적 소유가 농업과 수공업에서 존재했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집체소유라고 번역하고 있다.

 

4) (역주) 티벳은 1957년 당시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진주한 상태였지만 봉건제도 하에서 제정일치의 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티벳의 개혁을 평화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는데 티벳의 지배계급인 지주계급은 몇 년 후에 미국 CIA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이 진압된 후에 비로소 티벳에서는 민주개혁과 사회주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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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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