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위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한 왜곡 ― 스딸린의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를 중심으로

 

김해인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집위원

 

 

[필자의 말] 이 글은 본래 토니 클리프의 ‘쏘련 국가자본주의론’ 중 군사적 경쟁이 쏘련에서 자본주의적 축적을 강제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과 쏘련에서의 임금노동의 존재에 관한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쏘련 국가자본주의론 비판(2)”의 보론으로 작성된 글이었다. 하지만 전체 글이 완성되지 못한 관계로,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주제를 다룬 보론 부분만 먼저 제출하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에게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

 

 

 

들어가며

 

뜨로츠끼에 의한 고의적‧악의적 왜곡

 

뜨로츠끼는 1936년의 작, ≪배반당한 혁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24년 4월 레닌이 죽은 지 3개월 후 스딸린은 “레닌주의의 기초”라는 팜플렛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하는 일은 한 나라의 노력만 있으면 된다. 이 점은 우리 혁명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을 위해서는 어느 한 나라 특히 우리처럼 농민국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여러 선진국 노동계급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글에 대한 논평은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이 실린 팜플렛은 시중에 유통되기도 전에 회수되었다.1)

 

뜨로츠끼는 여기서, 스딸린 역시 레닌 사후 처음에는 혁명의 국제적 성격을 말했다가 바로 다음 이것을 철회하고, 세계혁명에서 일탈한 ‘일국사회주의론’을 펼쳤다고 말하고 있다.

 

 

뜨로츠끼주의자들에 의한 왜곡의 반복

 

스딸린의 일국 사회주의론에 대한 뜨로츠끼의 왜곡은, 그의 충실한 추종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반복되고 있다. 먼저 국제볼세비키그룹(International Bolshevik Tendency, 이하 IBT)이 자신들의 한국어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는 “날조를 일삼는 스탈린 일당 재판(再版)”이라는 글의 제2장 “일국사회주의”를 보자.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었기 때문에 1924년 초 스탈린 자신은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어느 한 나라에서 부르주아 권력을 타도하고 노동계급 권력을 수립하는 것으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화라는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 여러 선진국 노동계급의 공동의 노력이 없이 어느 한 나라에서 이 임무가 완수되고 사회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물론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하는 데에는 한 나라의 노력으로 충분하다. 이것은 우리의 혁명 역사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을 위해서는 어느 한 나라 특히 러시아와 같은 농민 국가로는 불충분하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선진국의 노동계급들이 노력을 해야 한다.”(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1924년 5월)

그러나 같은 저서의 이후 판본에서는 이 부분이 정반대의 논조 즉 “완벽한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로 바뀌었다.2)

 

다음으로 또 다른 뜨로츠끼 그룹인 국제사회주의자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 이하 IS)의 존 몰리뉴가 쓴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2005) 중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앞서 말한 수정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탈린이 1924년 가을에 처음으로 공표한 일국사회주의론이다. 이 이론의 도입은 여러 각도에서 뜯어 볼 필요가 있다. 일국사회주의론은 어떻게 도입됐는가? 왜 도입됐는가? 그것은 어떤 사회세력의 이익을 대변했는가? 그것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먼저 스탈린이 일국사회주의론을 도입한 방식을 살펴보자, ‘일국사회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5년과 1847년에 이미 분명히 제시한 바 있고 레닌 역시 러시아 혁명과 관련해 줄기차게 강조했던 국제주의 입장과의 극적인 결별을 뜻했다. 그것은 또 스탈린 자신이 오래 전도 아닌 1924년 4월에 “레닌주의의 기초”에서 쓴 구절과도 모순됐다.

“사회주의의 주된 임무―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는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 몇몇 선진국 프롤레타리아의 공동 노력 없이도 이 임무를 완수하고 한 나라 안에서 사회주의가 궁극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가?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스탈린은 이 구절을 정반대로 고쳐 쓰고(“혁명이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 농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뒤에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또 건설해야만 한다”), “레닌주의의 기초”의 초판을 거둬들임으로써 이 모순은 해결했다.

그러면 다음으로 스탈린은 왜 1924년에 일국사회주의론을 도입했는가? 그것은 명백히 1923년의 독일 혁명 실패와 그에 뒤이은 자본주의 상대적 안정화에 대한 대응(패배주의적 대응)이었다. 안 그래도 세계혁명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스탈린은(그는 볼셰비키 지도자들 가운데 우물 안 개구리로는 단연코 1인자였다) 독일혁명 실패를 계기로 세계혁명을 완전히 버린 자식 취급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스탈린이 예로부터의 국제주의를 지지한다는 입에 발린 말을 뚝 그치게 된 이유가 설명이 안 된다. 앞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일국사회주의가 당시에 러시아를 지배했던 관료 집단의 요구 및 갈망과 딱 맞아떨어졌다는 데 있다. 관료들은 국제혁명이라는 모험으로 골머리를 앓게 되는 일 없이 매사가 평소대로 굴러가기를 열망했다. 아울러 그들은 자기네를 결집시켜 줄 기치와 자기네의 목표를 규정하는 구호를 필요로 했다.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일국사회주의는 “관료의 정서를 명확히 표현했다. 관료들이 사회주의의 승리를 말할 때 그것이 뜻하는 바는 그들 자신의 승리였다.” 일국사회주의론은 1917년에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가 노동자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구실을 관료들에게 했던 것이다.

앞에서 봤듯이, 스탈린은 그의 새 이론을 최대한 조용하게 도입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이론은 지향점의 결정적 전환을 뜻했고, 이 전환은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적대적인 자본주의 세계에 직면해 고립돼 있었다. 내전에 개입했을 때 이미 알아봤듯이 자본주의 세계는 혁명의 숨통을 조이고 싶어 안달했고, 레닌이 강조했듯이 경제․군사 면에서 신생 노동자 국가보다 여전히 더 강력했다. 혁명의 초기 몇 년 동안의 전략―레닌과 트로츠키의 전략―에 혁명을 결연하게 군사적으로 방어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성패는 궁극적으로 세계자본주의를 내부에서 전복할 국제혁명을 북돋우는 데 달려 있었다. 일국사회주의 정책은 강조점을 바꿔 놓았다. 즉, 혁명 방어의 성패를 국제 계급투쟁에 거는 것이 아니라 일개 국민국가 소련의 힘에 건다는 것이었는데, 이 결정에는 그것 나름의 무자비한 논리가 있었다.3)

 

이상의 두 조직은 서로 뜨로츠끼의 충실한 계승자임을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는 뜨로츠끼의 전통에 따라 쏘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고 있고, 후자는 자신들의 말에 따르면 뜨로츠끼의 전통을 발전시킨 결과 쏘련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양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조직은 공히 스딸린의 소위 ‘일국사회주의론’을 세계혁명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하며 이것의 의미를 왜곡하고 있고, 동시에 이것을 관료주의와 더불어 쏘련에서 사회주의가 타락한 혹은 패배한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4)

 

 

무지에 의한 왜곡의 반복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은, 뜨로츠끼의 충실한 계승자임을 내세우지 않는 그룹들 속에서도 당연한 진실인 양 반복되고 있다. 즉, 뜨로츠끼의 주장 그리고 뜨로츠끼주의자들의 그것들은 적어도 현재 한국의 ‘운동권’ 내에서 그 진위 여부에 대한 의심 없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해방학생연대(이하 노학연)는 자신들의 정치신문 ≪활동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24년 1월에 레닌이 죽은 뒤 ‘레닌주의’의 정통성을 자임하며 권력의 후계자로 나선 스탈린 또한 처음에는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성격을 얘기하였다.

“어느 한 나라에서 부르주아 권력을 타도하고 노동계급 권력을 수립하는 것으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인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 여러 선진국 노동계급의 공동의 노력이 없이 어느 한 나라에서 이 임무가 완수되고 사회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하는 데에는 한 나라의 노력으로 충분하다. 이것은 우리의 혁명 역사에 의해 입증되었다.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을 위해서는 어느 한 나라 특히 러시아와 같은 농민 국가로는 불충분하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선진국의 노동계급들이 노력을 해야 한다.” (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초판, 1924년 5월)

그러나 스탈린은 그해 가을, 같은 저서의 이후 판본에서 이 내용을 삭제하고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 그리고는 농민을 이끌면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으며, 또한 당연히 건설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논리를 끼워 넣었다.

스탈린이 1924년에 세계사회주의 혁명전략을 일국사회주의론으로 변질시키기 시작했다면, 1926년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는 자신의 일국사회주의론을 최종적으로 변형하고 수정했다. 여기서 스탈린은 소련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련에서의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 가능성은 세계혁명의 문제와 관련이 없으며, 단지 제국주의의 위협으로 소련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만 다른 나라들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5)

 

나찌 독일의 선전성 장관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다가 계속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쏘련과 동구사회주의의 붕괴 후, 한국에는 일련의 ‘청산주의’․‘기회주의’의 흐름이 나타났고, 저들은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수많은 뜨로츠끼주의 경향의 책들을 번역․소개하면서 이것을 자신들의 ‘청산주의’․‘기회주의’를 가리는 근거들로 사용했다. 동시에 대중들은, 기왕의 반공주의적 거짓말들에다가 저들의 끊임없는 거짓말까지 더해져,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오도된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거짓말은 계속 되풀이되고 확대 재생산되어, 괴벨스의 말처럼 이제는 완전한 진실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진실이 되어버린 수많은 거짓․왜곡들 중 하나인 스딸린의 소위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런데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하나 확인해둘 것이 있다.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한 왜곡은, 저들의 수많은 왜곡․거짓말들 중 하나일 뿐이며, 따라서 우리 머릿속에는 더 많은 왜곡들과 거짓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상기하며,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이 글을 읽어주시길 당부 드린다.

 

 

스딸린의 “레닌주의의 기초”, 진실은 무엇인가?

 

레닌주의의 기초의 초판과 제2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스딸린의 “레닌주의의 기초”는, 그가 스웨르들로프 대학에서 했던 강연 내용을 ≪쁘라브다≫지가 자신의 지면에 게재하면서 최초로 발표되었다.6) 그해 5월, 레닌에 대한 스딸린의 회상록과 이 강의록을 묶어 ≪레닌과 레닌주의에 대하여≫라는 팜플렛이 출간되었다. 여기에서(즉, 초판에서) 스딸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일국에서 부르주아 권력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수립은 아직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의 중요한 과제인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는 여전히 완수되어야만 한다. 여러 선진적인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공동으로 노력하지 않고서 일국에서 이러한 과제가 완수되고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가 획득될 수 있는가?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의 노력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은 우리 혁명의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를 위해서는 한 국가, 특히 러시아와 같은 농업국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 선진적인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력들이 필요하다.7)

 

그런데 스딸린은 그해 가을 출판된 제2판에서 몇몇 문장들을 수정한다. 그 수정된 것들 중에는 앞의 뜨로츠끼주의자들과 그것의 영향을 받은 활동가들이, 스딸린이 “레닌주의의 기초” 제2판에서 세계 혁명을 배신하는 ‘일국사회주의론’을 주장했다는 근거로 삼고 있는 다음의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농민을 지도하여 뒤따르게 한 연후에야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비로소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해야만 한다. …8)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바대로, “레닌주의의 기초”의 초판과 2판의 내용은 약간 다르다. 여기까지는 저들은 말이 진실이다. 그런데 그래서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스딸린이 이 문구를 넣기 위해 “이 글이 실린 팜플렛”이 “시중에 유통되기도 전에 회수”했고(뜨로츠끼), 그래서 이 부분은 “정반대의 논조”로 바뀌었으며(스파르타쿠스동맹), 이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5년과 1847년에 이미 분명히 제시한 바 있고 레닌 역시 러시아 혁명과 관련해 줄기차게 강조했던 국제주의 입장과의 극적인 결별을 뜻”하는 것이고, “스탈린 자신이 오래 전도 아닌 1924년 4월에 “레닌주의의 기초”에서 쓴 구절과도 모순”되는 것(존 몰리뉴)인가? 또한 이것은 스딸린이 “처음에는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성격을 얘기”했다가, “정반대의 논리를 끼워 넣”은 증거(노학연)인가?

결코 아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들이 말하고 있는 “레닌주의의 기초” 제2판의 이 구절을 전체를 인용하고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바로 뒤에 이어지는 구절까지 인용해 보자.

 

그러나 일국에서 부르주아 권력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수립은 결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농민을 지도하여 뒤따르게 한 연후에야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비로소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획득할 것이라는 것을 뜻하는가? 즉, 이것은 오직 일국의 힘만으로 사회주의를 공고히 하고, 간섭에 반대하고 또한 필연적으로 복고에 대항하여 최종적으로 그 나라를 완전히 보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것을 위해서는 적어도 여러 국가에서의 혁명의 승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들의 혁명을 진전시키고 지원하는 것은 승리한 혁명의 필수적 과제이다. 그러므로 일국에서 승리를 거둔 혁명은 스스로를 자급자족하는 실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앞당기는 지원세력이나, 수단으로 간주해야 한다.

레닌은 “모든 나라의 혁명을 진전시키고 지원하고 일깨우기 위해 일국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행하는 것이 성공한 혁명의 과제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간결하게 표현했다(Lenin Works, Vol. 23, p. 3259)). (강조는 인용자)10)

 

저들이 생략하고 있는 뒷부분은, 초판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고 결국 같은 논지의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약간의 수정을 위해서, 즉 “사회주의의 중요한 과제인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는 여전히 완수되어야만 한다”(초판)를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농민을 지도하여 뒤따르게 한 연후에야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비로소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해야만 한다”(제2판)로 수정하기 위해, 책 전체를 “회수”해야 했을까? 자신들이 스딸린이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 문장의 바로 뒷부분들은 이렇게 그대로 두고 있는데 말이다.

스딸린이 이 책들을 회수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는 없으나,11) 분명한 것은 그 내용이 “정반대”라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왜곡이고 날조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그것을 “회수”했다는 둥(뜨로츠끼), “초판을 거둬들임으로써 이 모순은 해결했”고, “새 이론을 최대한 조용하게 도입했다”는 둥(존 몰리뉴), “이 내용을 삭제하고” “정반대의 논리를 끼워 넣었다”는 둥(노학연) 하는 것은, 스딸린이 자신의 이전 논리를 감추고 새로운 논리(일국사회주의론)를 발표했다는 말인데, 이 역시 완전한 날조이다.

첫째, 이 글은 이미 ≪쁘라브다≫지에 연재되었다. 초판만 거둬들인다고 해서 자신이 발표했던 글이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둘째, 저들이 말하고 있는 소위 ‘일국사회주의론’은 초판과 제2판에 공히 서술되어 있다. 즉, ‘일국사회주의’와 관련되는 부분은 제2판에서 수정되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초판에서도 명확한 구절들로 존재하고 있고 제2판에서도 저들의 말하고 있는 그것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즉, 정반대로)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셋째, 스딸린은 초판의 내용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글에서 그것을 다시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 정식이 이후의 글들에서 어떤 이유로 보다 명확한 의미를 위해, 일정하게 수정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넷째, 초판과 재판은 동일한 논리 하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여기에 포함된 정식은 이후 스딸린의 글들에서 보다 명확한 의미로 계속 표현되고 있다.

이 중 첫째 부분은 상세히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상식의 문제이고, 나머지 부분은 상술이 필요할 듯하다. 그럼 이 부분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일국사회주의론’은 초판과 제2판에 공히 서술되어 있다

 

‘일국사회주의론’이 “레닌주의의 기초”의 초판과 제2판에 공히 서술되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미 스딸린의 배신이 초판에서도 드러난다는 뜻인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국사회주의론’의 내용에 관한 문제, 즉 넷째 부분과 연결되는 것이 때문에 후술하기로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룰 문제는, 저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일국사회주의론’이 초판과 제2판에 동일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는 스딸린이 “초판을 거둬들임으로써 이 모순은 해결했”고, “새 이론을 최대한 조용하게 도입했다”는 둥(존 몰리뉴), “이 내용을 삭제하고” “정반대의 논리를 끼워 넣었다”는 둥(노학연) 하는 것들이, 완전히 잘못된 주장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은 스딸린의 글에서 앞서 인용한 구절의 바로 앞 구절12)이다. 이 구절은 초판과 제2판에 공히 서술되어 있다.

 

… 이전에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선진 국가, 또는 최소한 대다수 선진 국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행동이 필요하다는 가정 하에서 일국에서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제 이러한 관점은 더 이상 사실에 부합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승리의 가능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조건하에서 각각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지닌 발전의 불균등성과 발작성, 필연적으로 전쟁을 초래하는 제국주의 내부의 종말적 모순의 격화,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혁명운동의 성장— 이 모든 것이 개개 국가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필연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혁명의 역사는 이를 직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타도는 어떤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조건이 존재할 때만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으며, 이것이 결여되어 있는 곳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이라는 문제는 있을 수조차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13)

 

그리고 이 구절은 그러한 조건들을 논하고 있는 레닌의 글(≪‘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로 이어지고, 바로 뒤이어 우리가 앞서 본 다음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일국에서 부르주아 권력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수립은 결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 이것을 위해서는 적어도 여러 국가에서의 혁명의 승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들의 혁명을 진전시키고 지원하는 것은 승리한 혁명의 필수적 과제이다. …14)

 

즉, 저들이 말하는 소위 ‘일국사회주의론’은 초판이든 제2판이든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개 국가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필연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저들의 말과는 정반대로 스딸린은,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적어도 여러 국가에서의 혁명의 승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다른 나라들의 혁명을 진전시키고 지원하는 것은 승리한 혁명의 필수적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일국에서 승리를 거둔 혁명은 스스로를 자급자족하는 실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앞당기는 지원세력이나, 수단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저들이 말하고 있는 스딸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그 일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스딸린이 이러한 ‘일국사회주의론’을 주장하기 위해 초판과 제2판에 어떠한 장난을 칠 필요도 없었으며 그가 말하고 있는 의미의 ‘일국사회주의론’은 저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초판과 제2판에 동일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스딸린이 초판의 내용을 자신의 입으로 밝히고 있는 부분을 보자.

 

 

스딸린은 “레닌주의의 기초” 초판의 내용을 숨기지 않았다

 

저들의 말처럼 “정반대의 말을 끼워 넣기 위해”, 초판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앞서 두 번에 걸쳐 충분히 밝혀졌다. 그럼 이것은 왜 수정되었는가? 우리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 정식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으며 또한 어떤 상황에서 수정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살펴본 연후에, 논의를 좀 더 진전시켜 스딸린의 다른 글들에서 이 정식이 어떤 형태로 보다 명료하게 표현되고 있는지도 살펴보려 한다.

그런데 이것들을 서술하기 전에,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것은 상식인데, 책은 본래 초판과 제2판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초판과 동일하게 다시 나온 책은 초판 2쇄라고 해야 한다. 그 다음 다시 출간하면 초판 3쇄, 4쇄, 이렇게… 그런데, 초판에 일정한 오류가 있다면 이것을 수정하고 다음 판을 찍으면 된다. 이것이 제2판, 제3판, 제4판…이다. 책이 출판된 이후 필자가 자신에게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이때 그/그녀가 학문적으로 정직하다면 이러한 오류를 인정하고 자신이 인식한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전에 서술했던 오류를 완전하게 수정해서 새로운 개정판을 낼 수도 있고, 혹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분야의 발전에 따라 그 변화되고 발전된 부분을 수정‧보완한 것을 출간할 수도 있고, 또는 외부적 변화와 상관없이 필자 스스로의 경험과 연구 성과에 따라 이전에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할 수도 있다. 이것이 개정판이다.

1926년 2월, 스딸린은 논문집 ≪레닌주의의 제문제≫를 출판하는데, 여기에는 같은 해 1월에 새로 쓴 “레닌주의의 제문제”를 비롯해, “레닌주의의 기초(제2판)”, “10월 혁명과 러시아공산주의자들의 전술”, “러시아 공산당(볼) 제14차 대표자회의의 사업결과”, “질문과 답변”이 수록되어 있다. 이 모든 저작들은 ““레닌주의의 기초”에서 설명된 기본 테제들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 논문집은 “레닌주의의 문제들에 관한 단일하고도 통합된 저작”15)이라고 스딸린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논문집과 “레닌주의의 기초”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팜플렛 “레닌주의의 기초”는 본 저작집의 기본적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로 보아야 한다. 이 팜플렛은 약 2년 전인 1924년 5월에 처음 출판되었다. 그것은 본 저작집에 재판(second edition)으로 실려 있다. 이 2년 동안에 많은 물이 다리 아래로 흘렀다. 즉 당은 두 차례의 논쟁을 겪었고 레닌주의에 대한 수많은 팜플렛과 입문서과 입문서가 출판되었으며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실천적 문제들이 전면에 제기되었다. 당연히 그 팜플렛이 발표된 이래 발생했던 논쟁들의 결과뿐만 아니라 이 2년 동안 제기된 새로운 문제들도 과거의 팜플렛에서는 다루어질 수 없었다. 또한 우리들의 건설사업의 구체적 문제(NEP, 국가자본주의, 중농문제 등)가 “레닌주의의 기초를 간략히 요약한” 조그만 팜플렛으로는 충분히 다루어질 수 없었던 것 역시 당연했다….16)

 

이후 이러한 관계에 있는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는 항상 같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이 “레닌주의의 제문제”에는 “레닌주의의 기초”의 예의 정식이 초판에서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즉, 스딸린은 여기에서 저들이 ‘일국사회주의론’의 도입을 위해 고쳤다고 하는 바로 그 구절을, 수정 전 내용(즉, 초판) 그대로 재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앞의 또 다른 정식(앞서 살펴본 초판과 제2판에 공히 들어있는 정식)과의 관련 속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밝히고 있으며, 나아가 이 정식이 어떤 상황에서 불충분하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보다 명료하게 수정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스딸린이 “초판을 거둬들임으로써 이 모순은 해결했”고, “새 이론을 최대한 조용하게 도입”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A를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A를 감추고 있어”라고 말한다면, 일반적인 경우 사람들은 그 사람이 제 정신일까 의심할 것이다. 그런데 저들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앞서 본 것처럼 정확히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스딸린의 “레닌주의의 제문제”는,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스딸린이 자신의 이전 논리를 감추고 새로운 논리, 정반대의 논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 대한 일부 반박은 이미 앞에서 진행했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약 그것을 개정한 이유가 감추어야 할 오류에 있었다면, 스딸린이 이전의 논리를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인용할 이유가 없다.

그럼 스딸린이 자신의 입으로 그 구절을 정확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자. 동시에 그 구절의 시대적 의미는 무엇이었는지를, 또한 이것이 그러한 의미 속에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어떻게 점차 명확한 문구로 정립되어가는지도 살펴보자.

길지만 모두 인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팜플렛 “레닌주의의 기초”(1924년 5월, 초판)는 일국에서 사회주의 승리의 문제에 관한 두 가지 정식을 담고 있다. 그 첫 번째 것은 다음과 같다.

“이전에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선진 국가, 또는 최소한 대다수 선진적인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 행동이 필요하다는 가정 아래서 일국에서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관점은 더 이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 이 모든 것은 개개 국가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필연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17)

이 테제는 매우 올바르며 어떤 논쟁도 필요 없다. 그것은 다른 국가에서 혁명이 동시에 승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공상적이라고 여기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과 정면 대립된다.

그러나 팜플렛 “레닌주의의 기초”는 두 번째 정식도 담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일국에서 부르주아 권력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수립은 아직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의 중요한 과제인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는 여전히 완수되어야만 한다. … 특히 러시아와 같은 농업국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 선진적인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력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두 번째 정식은 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자들 즉, 다른 국가에서의 승리가 없는 상태에서 일국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보수적인 유럽 앞에서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던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정면 대립되었다.

이러한 정식은 그 당시(1924년 5월) 그런 정도—오직 그런 정도라면—로 충분했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이러한 영역에서의 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이 당내에서 극복되고 다른 문제, 즉 외국의 도움 없이 우리나라의 노력으로 완전히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을 때 두 번째 정식은 명백히 불충분하고, 따라서 부정확한 것이 되었다.

이 정식의 결함은 무엇인가?

그 결함은 그것이 두 가지 다른 문제를 하나로 합친 데 있다. 즉, 그것은 일국의 노력에 의한 사회주의의 건설의 가능성 문제(그 대답은 긍정적이다)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선 국가가 여러 나라에서의 혁명의 승리 없이, 간섭으로부터 결국 구질서의 복구로부터 완전히 보장될 수 있는가의 문제(그 대답은 부정적이다)를 합친 것이다. 이것은 이 정식이 일국의 노력에 의한 사회주의 사회의 조직이 불가능하다(물론 그것은 오류이다)고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팜플렛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전술”(1924년 12월 9일)에서 정식을 수정하여 올바르게 만들었다. 나는 그 문제를 두 개—부르주아적 질서의 복구에 맞선 완전한 보장의 문제와 일국에서 완전한 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의 문제—로 분리시켰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여러 국가 프롤레타리아트와 ‘공동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낡은 질서의 복구에 맞선 완전한 보장’으로 취급함으로써 그리고 둘째, 레닌의 팜플렛 “협동조합에 관하여”를 근거로 우리가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다는 논의의 여지없는 진실을 내세움으로써 성취되었다.

자본주의 안정화와 관련하여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승리의 문제를 검토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노력에 의한 사회주의의 건설은 가능하며 필연적이기도 하다고 간주한, 유명한 14차 당협의회(1925년 4월)의 결의 ‘코민테른과 러시아 공산당(볼)의 임무’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정식화였다. (앞의 강조는 인용자, 뒤의 강조는 원문대로)18)

 

이상으로 스딸린이 “정반대의 논조”인 “일국사회주의론”을 도입하기 위해, 이전 글을 “삭제”하고 “모순”되는 새로운 내용을 넣었다는 말은, 완전한 왜곡이고 사기임이 증명되었다. 즉, 조․중․동 같은 수구보수언론들처럼 앞뒤를 자르고 문장을 자의적으로 인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딸린이 말하고 있는 전체 내용을 검토해보면, 우리가 앞서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았듯이 스딸린의 논조는 변하지 않았으며, 새롭게 도입되었다는 “일국사회주의론”은 초판과 제2판에 공히 존재하고, “삭제”하고 “조용히 도입했다”는 말과는 전혀 다르게 스딸린은 이전의 정식을 정확하게 다시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검토해야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저들에 의해 왜곡되고 매도당하고 있는 소위 스딸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셋째에서 아직 언급하지 못한 나머지 부분이며, 넷째를 구성하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를 검토하기 위해, 스딸린의 “레닌주의의 제문제”를 조금 더 살펴보아야 한다.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나타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승리의 문제와
 사회주의의 궁극적 승리에 관하여
 

먼저 스딸린이 “레닌주의의 기초”의 초판과 제2판의 일부 문장, 즉 “사회주의의 중요한 과제인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는 여전히 완수되어야만 한다”(초판)를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농민을 지도하여 뒤따르게 한 연후에야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비로소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해야만 한다”(제2판)로 수정한 이유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이것을 포함하여 그의 기본적인 논지는 “레닌주의의 기초” 각 판이 모두 동일하다. 따라서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 말하고 있는 의미에서 보자면, 이것의 수정은 초판에서 말한 “완수되어야 하는”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직화”의 조건을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수정은 당시 쏘련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필수적 조건인 ‘노농동맹’을 명확하게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이를 둘러싼 치열한 계급투쟁, 그리고 당내 투쟁을 반영한 것이다. 이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 등의 여러 저작들을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바이다.

이러한 당시의 상황들로 인해, 이 정식은 1924년 가을에 출판된 “레닌주의의 기초” 제2판에서는 보다 정확하게 표현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19)

나아가 1924년 12월20)에는 이 점을 보다 명확하게 정식화 시키는데, 그 이유는 앞의 인용처럼, 이 정식이 그 당시의 조건에서는 “명백히 불충분하고, 따라서 부정확한 것이 되었”21)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스딸린은 이 정식에 담겨있는 두 가지 의미를 말한다. 그것은 “일국의 노력에 의한 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 문제”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선 국가가 여러 나라에서의 혁명의 승리 없이, 간섭으로부터 결국 구질서의 복구로부터 완전히 보장될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이 정식에는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있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보면, “레닌주의의 기초”의 첫 번째 정식과 두 번째 정식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 당내 일부에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반대파의 흐름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스딸린은 이 정식을 두 개의 문제—일국에서 완전한 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의 문제와 부르주아적 질서의 복구에 맞선 완전한 보장의 문제—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정식은, 14차 당대표자회의(1925년 4월)의 결의 “코민테른과 러시아 공산당(볼)의 임무”로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이후 스딸린은 14차 당대표자회의의 결과를 보고하며,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 내용은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이렇게 수록되어 있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리의 문제에 대해 그 팜플렛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계급의 지도 아래 농민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이다. … 왜냐하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서 … 모든 내적 난관들을 극복하고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공산당(볼) 14차협의회 사업결과”)”

 

사회주의의 궁극적 승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씌여져 있다.

“사회주의의 궁극적 승리는 간섭에 대한, 따라서 복고에 대한 완전한 보장이다. 왜냐하면 어떤 심각한 복고 시도도 오직 외부로부터의 상당한 지원, 오직 국제적 자본의 지원으로써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우리 혁명에 대한 지원, 더 나아가 최소한 몇몇 나라에서의 노동자들의 승리는 간섭과 복고 시도에 맞서 최초로 승리한 나라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며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같은 책)” (강조는 원문대로)22)

 

명확하지 않은가? 스딸린은 최초의 정식들을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이렇게 명확하게 다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스딸린은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승리의 가능성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우리나라의 내적 힘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가능성, 다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선행적 승리 없이도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고 다른 나라 프롤레타리아트의 동조와 지지에 힙 입어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그 권력을 활용할 가능성을 뜻한다.

그러한 가능성이 없다면 사회주의의 건설은 전망이 없는 건설이며 사회주의가 완전히 건설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건설이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완전히 건설할 수 있다는 확신 없이, 우리나라의 기술적 후진성이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극복할 수 있는 장애라는 확신 없이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러한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대의에 대한 불신, 레닌주의로부터의 이탈을 뜻하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의 혁명의 승리 없이는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궁극적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최소한 많은 국가에 혁명이 승리하지 않고서는 간섭과 부르주아적 질서의 회복에 대해 충분히 보장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의의 여지  없는 테제를 부인하는 것은 국제주의로부터의 이탈, 레닌주의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게 된다. (강조는 원문대로)23)

 

이상이 “레닌주의의 기초”, “10월 혁명과 러시아공산주의자들의 전술”, “러시아 공산당(볼) 제14차 대표자회의의 사업결과”, “질문과 답변”에서 말하고 있는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승리의 문제와 사회주의의 궁극적 승리의 내용과 관계이고, 동시에 이를 종합하고 있는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 말하고 있는 그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레닌주의의 제문제≫라는 논문집을 관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 노학연은 또 다른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스탈린이 1924년에 세계사회주의 혁명전략을 일국사회주의론으로 변질시키기 시작했다면, 1926년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는 자신의 일국사회주의론을 최종적으로 변형하고 수정했다. 여기서 스탈린은 소련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련에서의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 가능성은 세계혁명의 문제와 관련이 없으며, 단지 제국주의의 위협으로 소련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만 다른 나라들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24)

 

그리고 존 몰리뉴도 이렇게 말한다.

 

… 스탈린은 왜 1924년에 일국사회주의론을 도입했는가? 그것은 명백히 1923년의 독일 혁명 실패와 그에 뒤이은 자본주의 상대적 안정화에 대한 대응(패배주의적 대응)이었다. 안 그래도 세계혁명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스탈린은(그는 볼셰비키 지도자들 가운데 우물 안 개구리로는 단연코 1인자였다) 독일혁명 실패를 계기로 세계혁명을 완전히 버린 자식 취급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스탈린이 예로부터의 국제주의를 지지한다는 입에 발린 말을 뚝 그치게 된 이유 … 관료들은 국제혁명이라는 모험으로 골머리를 앓게 되는 일 없이…25)

 

노학연이 말하고 있는 “1924년”의 문제는 앞서 충분히 검토된 듯하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고 있는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대한 비판은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 위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스딸린은 “레닌주의의 제문제”를 통해 기존의 정식을 명료화했는데, 이 중 사회주의의 궁극적 승리에 관한 문제를 “간섭과 부르주아적 질서의 회복에 대한 보장의 문제”로 강조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소련에서의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 가능성은 세계혁명의 문제와 관련이 없으며, 단지 제국주의의 위협으로 소련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만 다른 나라들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인가? 그리고 스딸린은 정말로 “세계혁명을 완전히 버린 자식으로 취급”하고, 이로써 “국제주의를 지지한다는 입에 발린 말을 뚝 그쳤”는가? 이제 이 문제를 검토해보자. 이것은 우리가 앞서 말한 넷째 문제와 연결된다.

 

 

‘일국사회주의론’은 세계 혁명을 배신하고 있는가?

 

존 몰리뉴는 충실한 뜨로츠끼의 추종자답게, 스딸린에 대한 악의적인 언사를 쉴 틈 없이 퍼붓고 있다. “안 그래도 세계혁명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스딸린, “우물 안 개구리로는 단연코 1인자”인 스딸린 운운. 그런 그에게 스딸린이 뭐라고 말한들 그것이 제대로 들릴 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말들을 ‘악의적․고의적 왜곡’으로 그리고 그러한 ‘왜곡의 재생산’으로 규정했다.

다만, 노학연의 경우에는 쏘련과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한국의 상황이 이러한 풍토를 만들었다는 뜻에서 ‘무지에 의한 왜곡’으로 규정했다. 이것은 노학연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의 활동가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알고 있는 진실이, 사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짓말 혹은 왜곡이라는 것을 보다 상세히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서 우리는 스딸린이 “레닌주의의 제문제”를 통해 사회주의의 궁극적 승리에 관한 문제를 “간섭과 부르주아적 질서의 회복에 대한 보장의 문제”로 강조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을 일면적으로 그리고 왜곡된 시각에서 본다면, “소련에서의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 가능성은 세계혁명의 문제와 관련이 없으며, 단지 제국주의의 위협으로 소련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만 다른 나라들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필요하다”고 오해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 두 가지 점만 분명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앞서 말한 것처럼 “레닌주의의 제문제”는 ≪레닌주의의 제문제≫라는 논문집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논문집 속의 글들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둘째, 노학연이 언급하고 있는 부분 그리고 우리가 검토했던 부분은 “레닌주의의 제문제” 중 “6장 일국에서 사회주의 승리의 문제”에 있는 것들이다.

역순으로 검토해보자. 우리가 검토했던 6장에서 스딸린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는 여기서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뜨로츠끼-지노비예프 분파의 논리를 비판하고, 그것이 가능하고 필연적임을 증명하고 했다.

따라서 여기에서 그는, 쏘련의 사회주의의 건설 문제를 중심으로 그것과 세계혁명의 관계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는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건설은 가능하고 그것의 완전한 최종적 승리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를 잊은 채, 이것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노학연과 같은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다.

노학연의 주장과는 다르게 나아가 몰리뉴의 말과는 전혀 다르게, 스딸린은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 세계혁명과 국제주의에 대해 분명하고 정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문제를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과의 관계 속에서 주장하고 있다. “레닌주의의 제문제”를 통해 “일국에서 사회주의 승리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인용된 모든 글들의 전체 내용에는,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승리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혁명”과 “국제주의”가 이것과의 관련 속에서 분명하고 정확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다만, 6장에서는 그것의 ‘제목’처럼, 뜨로츠끼-지노비예프 분파의 논리를 비판하고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고 필연적임을 증명하고자, 그 중 이 주제에 필요한 부분만을 인용한 것이었다.

“나무만 보면, 숲을 보지 못한다!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손가락만 본다!”

바로 이 말이, 이 경우에 정확하게 해당된다.

그럼 스딸린은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먼저 우리가 이미 보았던 글을 다시 인용하자. “레닌주의의 기초”이다.

 

그러나 일국에서 부르주아 권력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수립은 결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농민을 지도하여 뒤따르게 한 연후에야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비로소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획득할 것이라는 것을 뜻하는가? 즉, 이것은 오직 일국의 힘만으로 사회주의를 공고히 하고, 간섭에 반대하고 또한 필연적으로 복고에 대항하여 최종적으로 그 나라를 완전히 보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것을 위해서는 적어도 여러 국가에서의 혁명의 승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들의 혁명을 진전시키고 지원하는 것은 승리한 혁명의 필수적 과제이다. 그러므로 일국에서 승리를 거둔 혁명은 스스로를 자급자족하는 실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앞당기는 지원세력이나, 수단으로 간주해야 한다.

레닌은 “모든 나라의 혁명을 진전시키고 지원하고 일깨우기 위해 일국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행하는 것이 성공한 혁명의 과제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간결하게 표현했다(Lenin Works, Vol. 23, p. 32526)). (강조는 인용자)27)

 

“레닌주의의 기초”가 항상 “레닌주의의 제문제”와 함께 출판되었음은 이미 말한 바 있다. 다음으로 “10월 혁명과 러시아공산주의자들의 전술”(1924년 12월 17일28))의 일부분을 보자.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레닌의 혁명이론은 단지 문제의 이러한 측면[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인용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세계혁명의 발전에 관한 이론이다[“레닌주의의 기초”를 보라-스딸린의 주].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는 자기만족적이니 과제가 아니다. 일국에서 승리한 혁명은 스스로 자기만족적인 실체가 아니라 원조자로서, 즉 모든 국가에서 혁명의 승리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국에서, 현재 러시아의 경우에서 혁명의 성공은 제국주의의 불균등 발전과 점진적인 쇠퇴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계혁명을 위한 출발점이자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 필경, 세계혁명은 혁명의 결과로써 수많은 신생국들이 제국주의 국가체제로부터 탈출함으로써 발전될 것이며, 한편 이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제국주의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지원받을 것이다. 탈출한 최초의 나라, 최초로 승리한 나라가 이미 다른 나라의 노동자와 노동대중들에 의해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지원이 없다면 그것은 유지될 수 없다. 확실히 이러한 지원은 증가하고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승리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더욱 충분히 강화되면 될수록, 이 나라가 세계혁명을 더욱 멀리 진전시키는 토대로서, 제국주의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는 지렛대로 전화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세계혁명의 바로 그 발전과 또 다수의 신생국들이 제국주의로부터 탈출하는 바로 그 과정은 그만큼 더 빠르고 충분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최초의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여러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합치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진리인 한, 세계혁명의 전개는 최초의 사회주의 나라가 다른 모든 나라의 노동자와 노동대중들에게 바치는 원조가 효과적이면 효과적일수록 더 한층 빠르고 철저해질 것이다.

… 10월 혁명의 세계적 의의는 그것이 제국주의체제의 파괴를 목표로 함에 있어서 일국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시발점이라는 사실과 또 그것이 제국주의 나라의 대해 속에 출현한 사회주의의 최초의 중심지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세계혁명의 첫 번째 단계이자 그 발전의 진전을 위한 강력한 기초를 이룬다는 사실에 있다.

… 실제로 10월 혁명은 다른 나라의 혁명으로부터 지원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서의 혁명 역시도 세계 제국주의를 타도하는 목표를 가속화하고 진전시키기 위해서 10월 혁명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강조는 원문대로)29)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과 세계혁명의 관계를 이렇게 말하고 있는 “10월 혁명과 러시아공산주의자들의 전술”의 이 장의 제목은 “4. 세계혁명을 위한 시발점이자 그 전제조건으로서 10월 혁명”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보다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위해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수록되어 있는 또 다른 글을 보자.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운명에 대해(4장)” 다루고 있는 “러시아 공산당(볼) 제14차 대표자회의의 사업결과”에는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 자본가들에게 포위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는 자체의 힘으로 노동계급과 농민 간의 내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며 자기 나라에 사회주의 경제를 조직하며 자본의 전복을 위하여 투쟁하는 주위의 나라 노동계급을 원조하기 위하여 무력을 창설할 수 있으며 또 창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30)

 

다음으로 스딸린이 1925년 6월 9일, 스웨르들로프 대학에서 한 연설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검토해 보자.

 

[스딸린은 먼저, 다른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하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으며 또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한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공회전을 하며 자연생장성의 의사에 굴종하며 그리하여 점차 속류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로 변질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인용자]

둘째 위험으로 넘어가자.

이 위험은 국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믿지 않으며, 그 승리를 믿지 않으며, 식민지 및 예속국에서의 민족해방운동에 대하여 회의적 태도를 취하며, 다른 나라 혁명 운동의 지지가 없이는 우리나라가 세계 제국주의를 막아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혁명이 적어도 수개 국에서 승리하지 않는 한 무력 간섭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가 종국적인 것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또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는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의 혁명을 발전시키며 지지하는 수단으로 되여야 한다는 국제주의의 초보적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민족주의와 변질로 통하는 길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주의적 정책을 완전히 청산하는 길이다. 왜냐하면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세계혁명 운동이라는 하나의 전일체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운동의 시초인 동시에 종결로 보면서 우리나라를 위하여 다른 나라를 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 다른 한편 오직 철저한 국제주의에 기초해서만, 오직 10월 혁명의 대외 정책에 기초해서만 최초에 승리한 나라가 세계혁명 운동의 기수의 역할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 대외 정책에서 극도로 저항을 피하고 민족주의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명백히 최초에 승리한 나라를 고립시키며 붕괴케 하는 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제 혁명에 대한 전망을 잃는다는 것은 민족주의와 변질의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다.31)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면 스딸린이 “소련에서의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 가능성은 세계혁명의 문제와 관련이 없으며, 단지 제국주의의 위협으로 소련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만 다른 나라들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는가? 아니면 그것을 완전히 통일적이고 변증법적인 관계로 보았는가?

앞서 우리가 살펴본 대로, 그것의 답은 후자임이 명확하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과 세계혁명의 통일’, 바로 이것이 스딸린이 “레닌주의의 기초”에서부터 이후까지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소위 “일국사회주의론”의 의미이다.

그런데 스딸린의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한 저들의 왜곡이 완전히 엉터리였음 폭로된 지금, 스딸린이 국제혁명에 대해 말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완전한 사기임이 드러난 지금, 이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스딸린이 처음 했던 자신의 말들을 삭제하고 숨기고 일국사회주의론을 주장하며 국제주의를 배신했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폭로된 지금, 저들이 피신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일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말뿐이고, 실제로는 세계혁명을 국제주의를 배신하지 않았냐?” 우리는 이제 이 문제로 넘어가야한다.

 

 

세계사회주의 운동에서의 쏘련의 역할과 의의

 

그런데 세계사회주의 운동에서의 쏘련의 역할과 의의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 글의 목적이 소위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한 뜨로츠끼주의자들의 왜곡을 다루고자 한 것이고, 검토 범위를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본래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 같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이 글이 본래 목적한 바를 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훨씬 복잡하고 방대하고 상대한 내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점에 대해 간략하게만 언급하기로 한다.

실제로 스딸린과 쏘련은, 세계혁명을 배신했는가?

그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스페인 내전이다. 단지 이것만을 밝혀둔다. 1) 스페인 내전을 실질적으로 지원했고, 지원할 수 있었던 유일한 국가는 쏘련이었다. 2) 스페인 내전에서 POUM의 활동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비판은 당시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32) 3) POUM의 활동에 대한 뜨로츠끼주의 내부의 비판과 논쟁 역시 잘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중국 혁명이다. 이에 대해서는 마오쩌둥의 다음의 언급이 중요할 듯하다.

 

누가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중요한 공장의 설계와 장비를 주었는가? 미국이 우리에게 주었는가 아닌가? 영국이 우리에게 주었는가 아닌가? 그들 모두는 주지 않았다. 쏘련만이 이렇게 했는데 왜냐하면 그것만이 사회주의 국가이고 우리의 동맹국가이기 때문이다. … 쏘련과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것, 일체의 사회주의 국가와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기본방침이고 기본적 이익이 존재하는 것이다.33)

 

그리고 중국혁명의 전개 과정과 쏘련의 지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문헌들이 제출되어 있다.34)

다음으로 조선에 대한 문제가 있다. 이것은 이 글의 범위를 상당히 넘어서는 주제이기 때문에, 참조할 만한 문헌 소개 정도로 그친다.35)

그 외, 쿠바‧베트남‧제3세계에서의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거대한 지원이 있다.

그런데 사실 뜨로츠끼주의자들이, 그 중 특히 국제사회주의자(IS)들이 핵심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동유럽 사회주의에 관한 문제이다.

토니 클리프는 이렇게 주장한다.

 

… 이것은 ‘신민주주의 체제들’에서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사실 이들 혁명은 스탈린주의자들이 민족통일, 부르주아지와의 연정, 수백만 독일 근로자들과 그 가족의 추방을 가져온 국수주의 등에 기초하여 이끈 것이다. 이 정책들은 그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수레바퀴에 기름을 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 만일 사회혁명이 동유럽 나라들에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 없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미래의 사회혁명들에서도 과거의 사회혁명들처럼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투쟁은 하지만 지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신민주주의 체제들’이 노동자 국가라고 가정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그 원칙에서 부르주아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인민에 대한 사기에 기초한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신민주주의 체제들’이 노동자 국가라면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실현시킨 것이 된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말이다. 1억 4천만 인민이 사는 나라에서 최초의 노동자 국가가 확립되기까지 파리꼬뮌 이후 47년이 지났다. 그런데 다수의 나라들이 추가로 노동자 국가가 되는 데는 4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폴란드‧유고슬라비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체코슬로바키아가 그들 나라의 7천5백만 인민을 새로 추가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발틱 연안 국가들, 동부 폴란드, 베사라비아를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소련에 합병된 이들 나라에는 2천만 인민이 살고 있었다.) 동양에서는 6억 인민이 살고 있는 중국이 더해졌다. 이들 나라가 노동자 국가라면 마르크스주의는 도대체 무엇이며 제4인터내셔널은 왜 있어야 하는가? ‘신민주주의 체제들’이 노동자 국가라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회주의 혁명은 “그 자신을 의식하는 역사”라고 말한 것은 논파당한 셈이다. …(강조는 인용자)36)

 

이것은 동유럽 내부의 계급투쟁을 완전히 무시한 언사이다. 이는 마치 동유럽에서는 아무런 계급투쟁이 없었고, 아무런 반나찌투쟁이 없었고, 단지 쏘련군에 의해 혁명이 이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진실은 어떠한가? 동유럽의 계급투쟁과 반나찌투쟁이, 쏘련의 지원으로 보다 신속히 그리고 충분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진실에 보다 가깝지 않은가? 혁명의 과정이 너무나 빨라서 문제라는 토니 클리프를 어떻게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수호자”37)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상으로 세계사회주의 운동에서 쏘련이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점은, 정반대의 의미로 표현되고 있지만 제국주의자들 자신의 입으로도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대개 쏘련의 붕괴 원인 중 하나를 쏘련이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라고 꼽는다. 그런데, 저들이 말하는 그 ‘거대한 제국’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세계 사회주의․공산주의 블럭이며, 그것의 의미는 쏘련이 그들의 혁명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회주의 건설에도 엄청난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쏘련은 1985년 국내 경제 상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당시 액수로 연간 10-20억 달러를 폴란드에 지원하고 있었다.38) 또한 필자가 MBC의 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본 것이지만, 쏘련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민중에 대한 지원을 위해 연해주 일대에서 벼농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이것과 자국의 과잉 농업생산품의 해결을 위해, 밀과 옥수수를 대량으로 한국에 보냈던 미제국주의와 비교해 보라. 이 양자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것이, 쏘련의 국제주의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쏘련이 국제주의를 추구하는 현실적 과정에서, 일정한 오류가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오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오류들이, 그것 전체의 성과와 의의를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가며

 

우리는 이상으로 ‘일국사회주의론’을 왜곡하는 저들을 주장을 충분히 비판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저들 뜨로츠끼주의자들 중 국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다함께(정확히는 그 전신인 IS)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을 함께 보자. 그리고 이것을 우리가 위에서 검토한 스딸린의 견해와 비교해보라.

 

사회주의는 한 나라에서 건설될 수 없다. 노동자 국가는 결코 한 나라에서 무한정 살아남을 수 없다. 물론 노동자 국가가 세계 자본주의가 가하는 압력에 맞서 한동안 버틸 수는 있다. 마치 노동자들이 공장 검거나 한 산업 도시에서 일으킨 봉기를 잠시 동안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조만간 혁명이 확산되지 않으면 혁명은 패배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가 고립된 노동자 국가보다 강력한 상태로 남아있다면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으로 혁명은 박살날 것이다. 또는 강력한 경제적 압력과 함께 군사 개입을 협박받음으로써 결국 혁명 국가가 자본주의의 기준에 따라 자본주의와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내몰릴 것이다. 이것은 자본 축적을 위한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뜻한다.

만약 후자와 같은 변종이 생긴다면, 1920년대 후반 러시아에서 그랬듯이 새로운 착취 계급이 자본 축적의 대리인으로 등장하고 내부의 반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39)

 

일국에서의 혁명은 다른 나라의 혁명 없이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혹은 국가자본주의로 즉, 또 하나의 자본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들의 주장이다. 이 명제의 전자는 뜨로츠끼주의자들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고, 후자는 뜨로츠끼의 ‘영구혁명론’을 끝까지 전개시킨 클리프에 의해 발전된 생각이다.

전자든 후자든, 일국에서의 혁명과 세계혁명의 관계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패배주의이고, 모험주의이고, 나아가 국제혁명에 대한 배신 아닌가? 앞서 우리가 살펴본 스딸린의 입장과 비교해보라.

어느 것이 맑스주의적이고, 레닌주의적이고, 변증법적이고, 실천적이며, 따라서 올바른 주장인가?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다했다. 이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끝으로 스딸린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스딸린의 말은, 정확하게 우리가 비판한 자들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 또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우리는 10월 혁명을 수행함으로써 이미 자기의 혁명적 사명을 다 하였다. 이제는 만사가 국제혁명에 달렸다. 왜냐하면 서구의 노동계급이 먼저 승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야 혁명가로서는 엄밀히 말해서 이제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다 아는 바와 같이 1923년 독일 혁명 전야에 우리나라의 일부 청년 학생들은 “러시아에서는 혁명가로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 책을 버리고 독일로 가서 혁명을 해야겠다”고 하면서 책을 버리고 독일로 떠나려고 한 일이 있었다.

… [이것은: 인용자]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입장, 즉 청산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 … 그것을 세계혁명이라는 좌익적이며 ‘무섭게 혁명적인’ 언사로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어떤가? 러시아에서는 혁명가로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자. 다른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하기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으며 또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리고 선진 국가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는 앞으로 10 내지 20년 지연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여 과연 자본주의에 포위되어 있는 환경에서 활동하는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그 경제의 사회주의적 요소와의 결사적인 투쟁을 중지하는 데 동의하고 세계혁명이 승리할 때까지 수수방관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해 보면 그것은 전혀 맹랑한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부당한 것으로서 거부되었을 때, 우리의 … “무서운 혁명가들”이 해야 할 일로서는 무엇이 남겠는가?40)

 


 

1) L. 뜨로츠끼, “<보론> ‘일국사회주의’ 이론”, ≪배반당한 혁명≫, 갈무리, 1995, p. 289; 이것은 IBT의 한국어 홈페이지(http://www.bolshevik.org/hangul/Trotsky-writings/revolutionbetrayed.ht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 스파르타쿠스 동맹(Spartacist League), “날조를 일삼는 스탈린 일당 재판(再版)”, Workers Vanguard, 1973. (http://www.bolshevik.org/hangul/publications/Stalin%20school%20of%20falsification%20revisited.htm를 참조하라.) IBT는 이 스파르타쿠스 동맹에서 분리된 조직이다. IBT와 스파르타쿠스 동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스파르타쿠스동맹(SL)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http://www.bolshevik.org/hangul/publications/whatever%20happened%20to%20the%20SL.htm)를 참조하라.

 

3) J. 몰리뉴,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 책갈피, 2005.

 

4) 물론 이들 이외에도 뜨로츠끼의 주장들에 근거해, 쏘련을 비판하고 있는 수많은 국제적 조직들이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뜨로츠끼 경향의 국제적 조직만 해도 20개가 넘는다. 그들은 서로 간의 노선차이에 의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분열을 야기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을 ‘타락한 노동자국가’로 규정하든,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든, ‘관료적 집산제’로 규정하든, 기타 등등으로 규정하든, 즉 어떤 근거에서든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5) 노동해방학생연대, “일국사회주의는 가능한가”, ≪활동가≫ 제3호, 2007. 3. 7. 지금은 노동해방학생연대가 해산되었지만 이 글의 논지와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단체(들)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이 글이 한국에서 뜨로츠끼의 주장이 자칭 뜨로츠끼주의자들을 넘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인용한다.

 

6) ≪쁘라브다≫ 96호, 97호, 103호, 105호, 107호, 108호, 111호(1924년 4~5월)에 게재.

 

7) J. 스딸린,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관하여”, ≪레닌주의의 기초‧레닌주의의 제문제≫, 두레, 1990, p. 220; “레닌주의의 문제에 관하여”, ≪스탈린 선집≫ 1, 전진, 1988, p. 231; Stalin Works, Vol. 8,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Moscow, 1954, p. 65.

 

8) J. 스딸린, “레닌주의의 기초”, ≪레닌주의의 기초‧레닌주의의 제문제≫, p. 58; “레닌주의의 기초”, ≪스탈린 선집≫ 1, p. 98; Stalin Works, Vol. 6, 1953, pp. 110-111.

 

9) V.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10) J. 스딸린, 같은 글, pp. 58-59; 같은 곳; Stalin Works, Vol. 6, 같은 곳.

 

11)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는 없으나, 내용상으로 보아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한다면 이렇게 추정해 볼 수는 있겠다. 그해 5월에 출판된 책은 금방 절판되었고, 새로운 상황을 반영한 제2판이 가을에 출간되었다. 왜 이러한 수정이 필요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는 뒤에서 서술하기로 한다.

 

12) 두 구절 사이에, 레닌의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Left-Wing Communism: an Infantile Disorder≫(1920)에서의 인용문이 있다.

 

13) J. 스딸린, 같은 글, pp. 56-57; 같은 글, p. 97; Stalin Works, Vol. 6, pp. 109-110.

 

14) J. 스딸린, 같은 글, p. 58; 같은 글, p. 98; Stalin Works, Vol. 6, pp. 110-111.

 

15) J. 스딸린,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관하여”, 같은 책, p. 158; Stalin Works, Vol. 8, p. 12.

 

16) J. 스딸린, 같은 글, pp. 157-158; Stalin Works, Vol. 8, p. 11.

 

17) 스딸린의 두 정식은 앞서 여러 차례 인용했기 때문에, 다시 전문을 인용하지는 않는다. 아래도 마찬가지이다.

 

18) J. 스딸린, 같은 글, pp. 219-222; Stalin Works, Vol. 8, pp. 64-67.

 

19) 스딸린이 “정반대의 논조”인 “일국사회주의론”을 도입하기 위해, 이전 글을 “삭제”하고 “모순”되는 새로운 내용을 넣었다는 말은, 완전한 왜곡이고 사기라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 즉,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과 필연성은, 이미 초판에서 말한 것이고 제2판에서도 공히 언급되고 있다. 제2판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여 그것의 승리의 필연적 조건인 ‘노동동맹’에 강조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레닌주의의 기초”에서의 수정의 전부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검토할 내용은, 스딸린의 이후 저작들에서 이것이 어떻게 명료화되었는가이다.

 

20) J. 스딸린,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전술”(1924년 12월 9일).

 

21) J. 스딸린, “레닌주의의 제문제에 관하여”, p. 221; Stalin Works, Vol. 8, p. 66.

 

22) J. 스딸린, 같은 글, pp. 223-224; Stalin Works, Vol. 8, p. 68.

23) J. 스딸린, 같은 글, pp. 225-226; Stalin Works, Vol. 8, pp. 69-70.

 

24) 노학연, 같은 글.

 

25) J. 몰리뉴, 같은 글.

 

26) V.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27) J. 스딸린, “레닌주의의 기초”, pp. 58-59; Stalin Works, Vol. 6, pp. 110-111.

 

28) 스딸린은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 이 글을 인용하며, 12월 9일자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전진에서 번역한 ≪스탈린 선집≫에는 12월 17일로 되어있다. 여기서는 인용문을 가져온 대로 12월 17일로 표기한다.

 

29) J. 스딸린, “10월 혁명과 러시아공산주의자들의 전술”, ≪스탈린 선집≫ 1, pp. 185-188; ; Stalin Works, Vol. 6, pp. 415-420.

 

30) J. 스딸린, “러시아 공산당(볼) 제14차 대표자대회의 사업결과”; Stalin Works, Vol. 7, 1954, p. 115.

 

31) J. 스딸린, “질문과 답변”; Stalin Works, Vol. 7, pp. 169-171.

 

32) PLP, “스페인내전의 교훈”, ≪뜨로츠끼주의란 무엇인가?≫, 노사과연, 2009를 참조하라.

 

33) 마오쩌둥,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관하여”, ≪노동사회과학≫ 제3호(2010. 5.), p. 430.

 

34) 특히, 다음을 참조하라.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중국혁명과 스탈린 트로츠키 논쟁”, ≪노동자정치신문≫ 제55호; “중국혁명과 모택동 논쟁”, 제56호.

 

35) 전국노동자정치협회, “(특별기획)한국전쟁, 남북전쟁인가? 계급내전인가?— 사노련 국가자본주의의 몰역사성과 몰계급성, 반동성”, ≪노동자정치신문≫ 제53호.

 

36) 토니 클리프, “부록Ⅰ 소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본 트로츠키의 정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소련 국가자본주의≫, 책갈피, 1993, pp. 289-290.

 

37) 정성진, “토니 클리프”, ≪이론≫ 제2호(1992년 가을호), p. 202.

 

38) 피터 시바이처, ≪레이건의 소련붕괴전략≫, 오롬, 2006, p. 332. 쏘련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내부적 원인과 외부적 원인을 함께 따져서 검토해야 한다. 이 책은 그 중, 제국주의의 외부적 공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39) 국제사회주의들(IS), ≪사회주의는 어떤 사회일까≫, 1995, pp. 18-19.

 

40) J. 스딸린, “질문과 답변”; Stalin Works, Vol. 7, pp. 167-168.

 

김해인 편집출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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