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본론≫의 논리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채만수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장

 

 

I

 

현대의 발달한 자본주의를 독점자본주의, 나아가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 규정하고, 그러한 자본주의로서의 특수성과 그 구조, 운동법칙을 규명하는 것. 그것은 예전에는, 적어도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론적으로 사실상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과거에도 독점자본주의론 내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도전’ 혹은 부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그에 대한 ‘도전’이나 부인이 없었기는커녕, 그 ‘도전’과 부인은, 그것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철저한 무지에서 유래하는 것이든,1) 예컨대 뜨로츠키주의자들의 그것처럼 종파주의적인 동기와 목적에서 유래하는 것이든, 자못 유서 깊다. 하지만 무지에서 유래하는 그것은 바로 그것이 무지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그리고 종파주의에서 유래하는 그것은 또한 바로 그 종파주의,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그 극악한 반쏘‧반공주의 때문에, 그들 ‘도전’과 부인은 사실상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지언정 어떤 설득력이나 영향력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지하는 것처럼, 쏘련이 해체되고 반동의 시대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이론적 상황, 전통 역시 도전 아닌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예전에는 무시되고 기껏해야 조롱의 대상이었던 반쏘 뜨로츠키주의자들이 ‘보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부분적으로 정치적 세를 획득해가면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그들의 ‘도전’과 부인 역시 무시와 조롱으로부터 구제되어 시민권을 획득해가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주지하는 것이지만, 뜨로츠키주의자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레닌과 따라서 레닌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그리고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수호자”2)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독점자본주의론 내지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반(反)레닌(주의)적인 것이고, 나아가 반맑스(주의)적인 것이 된다. 이론사적으로 고도로 발전한 20세기 자본주의를, 예컨대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서의 제국주의≫(1917, 이하에서는 간단히 ≪제국주의론≫으로 표기한다)에서 ‘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로 명확히 규정한3) 것도,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규정을 정립한 것도, 주지하는 것처럼, 레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이론은 반레닌(주의)적 이론, 나아가 반맑스(주의)적 이론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당연히 다음과 같이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째로, 레닌 자신이 고도로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를 ‘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고, 또 독점자본주의 하의 전반적인 위기로부터 국가독점자본주의 개념을 명확히 정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명시적으로든 암암리에든, 부정하는 정치적‧이론적 집단이 레닌(주의)의 계승자일 수 있는가? ―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 답은 질문 그 자체에서 지극히 명확할 것이다.

둘째로, 그러면 현대 자본주의를 ‘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고,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도출하는 것은 ≪자본론≫의 논리에, 따라서 맑스(주의)에 반하는 것인가?4) 아니면, 무지에서든 종파주의적 동기와 목적에서든,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명시적으로든 암암리에든, 부인하는 것이 ≪자본론≫의 논리에, 따라서 맑스(주의)에 반하는 것인가? ― 이에 대해서 간단히 고찰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II

 

참고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맑스(-레닌주의)를 가장한 맑스(-레닌주의)의 파괴 수법에 대해서 얘기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역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드러난 적(敵)보다는 은폐된 적이 대개는 더 위험한 것이다. 드러난 적은 그에 대한 경계심과 적개심, 그리고 투쟁심을 자극하지만, 은폐된 적은 무방비 상태를 이용하여 파괴해오기 때문이다. 맑스주의, 혹은 맑스-레닌주의, 혹은 노동자계급운동 내의 은폐된 적은 맑스주의자임을, 혹은 맑스-레닌주의자임을 자임하는 반맑스주의자들, 반맑스-레닌주의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맑스주의 혹은 맑스-레닌주의를 파괴‧해체하는 여러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수법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맨 먼저, 레닌과 스탈린을 분리하고 ‘레닌(주의)은 맑스주의를 계승‧발전시키고 있지만, 스탈린(주의)은 그것을 사칭‧부정‧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뜨로츠키주의를 비롯한 모든 반쏘‧반공주의는 명시적으로 이를 공유한다.

다음에는, 맑스‧엥겔스와 레닌을 분리하고, 레닌(주의)은 맑스‧엥겔스(주의)적 이론과 정치‧실천적 전통에서 (많은 부분이) 일탈해 있다거나 그 많은 부분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물론 사람과 집단에 따라 명시적으로 혹은 부정직하게 암암리에. 소위 ‘좌익 공산주의자들’이나 소위 ‘스피노자-맑스주의’ 또는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명시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펴는 데 비해서, 레닌주의의 진정한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뜨로츠키주의자들은 부정직하게 암암리에 이러한 주장을 실천하는 자들이며 그만큼 더 위험한 자들이다.5) 널리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얘기지만, 이들 뜨로츠키주의자들은 그야말로 “뜨로츠키(주의)에 레닌(주의)의 의상(衣裳)을 입히려는” 자들, 그리하여 레닌주의의 이름으로 레닌주의를 파괴(하려)하고 있는 자들이다. 저들이 지난날 극악한 반쏘주의의 태도를 취하고 고수했던 것은 단순히 소위 반‘스탈린주의’에서만 유래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6)

그 다음에는, 맑스로부터 엥겔스를 분리하여, 맑스는 정당하나 엥겔스는 많은 부분에서 오류라고 주장한다. 이 단계 수법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김호균 교수가 1992년에 “맑스주의 발전을 위한 시론”(≪창작과 비평≫ 1992년 여름호 수록)이란 글에서 보여준 바 있다.

그는 “지난 세기 80년대에 들어 독일사민당에서는 농민문제를 둘러싸고 심한 대립양상”이 나타났는데, “이때 농민논쟁에서 엥겔스는 폴마르(Vollmar) 등에 의해 대변되던 소농존속→소농보호 노선에 맞서서 소농소멸→소농설득을 주장했는데 이 엥겔스의 입장이 훗날 ‘맑스‧레닌주의’의 공식입장”으로 되었다며, 엥겔스의 이 “소농소멸→소농설득” 노선, 즉 소농소멸론 혹은 소농몰락론을 “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타당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오류”,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매도하고 있다.7) 흥미 있게도 그는,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의 농업인구가 1870년대에는 평균 49.4%였는 데 비해 1930년에는 35.9%, 1981년에는 6%였다”8)며, 바로 자신이 스스로 소농의 소멸‧몰락을 통계로 예증하면서 그렇게 엥겔스의 소농소멸론 혹은 소농몰락론을 그렇게 “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타당성이 없”는 “역사적 오류”, “중대한 오류”로 규정하는 광대극을 벌이고 있다.9)

그러나 맑스주의 혹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파괴공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역시 주지하는 바이지만, 그것은 더 나아가 맑스 자신, 혹은 맑스의 사상‧이론 그것을 ‘청년 맑스(의 것)’와 ‘후기 맑스(의 것)’로 나누고, 청년 맑스의 사상‧이론은 휴머니즘 즉 인간주의의 전범(典範)인 데 반해서 후기 맑스의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사‧경직된 나머지 휴머니즘은 빛이 바래고 메마른 이데올로기만 남았다는 식으로 ‘비판’한다.

아무튼, 맑스주의 혹은 맑스-레닌주의를 지지‧실천한다고 주장하면서 독점자본주의론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자본론≫의 연장선상에서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의 일탈로 간주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내부’로부터의 맑스주의, 맑스-레닌주의의 파괴수법의 하나이다.

 

 

III

 

≪자본론≫에는, 특히 맑스 자신의 손에 의한 그 서술에는 독점자본이나 독점자본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서술이 별로 없다. 그리고 이것이 독점자본주의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주장의 ‘논거’, 혹은 무기이다.

그런데 ≪자본론≫, 특히 맑스 자신에 의한 그 서술에 이렇게 독점자본, (국가)독점자본주의 등에 대한 서술이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서술이 거의 없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하고 ‘비판’하는 논거나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자본론≫은 공상의 산물도, 역술적 예언서도 아니다. 그것은 당시 현존하던 자본주의적 생산과 그 생산양식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구명한 이론적‧과학적 분석서이다. 그리고 ≪자본론≫과 특히 맑스에 의한 그 서술에 독점자본이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서술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것도 다름 아니라 바로 그 때문이다. 맑스가 ≪자본론≫(과 그 원고들)을 저술했던 1850년대 및 60년대에는 독점자본과 경쟁의 독점으로의 전화(轉化)는 아직 예외적이거나 단지 맹아적이었다. 즉, “맑스가 ≪자본론≫을 썼을 때에는 자유경쟁은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들에게 있어서 ‘자연법칙’처럼 보였다.”10) 그 때문에 당시 독점이나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해서 ‘그 구체적 내용’을 상술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어서, 역술가의 직분이었을지는 몰라도, 결코 과학자의 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본론≫에 그 서술이 거의 없다고 해서 그것을 ‘논거’‧무기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하고 내치는 것은 ≪자본론≫을 과학적 저서가 아니라 사실상 역술서로 간주하고자 하고, 맑스를 과학자가 아니라 공상가‧역술가로 간주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나 하는 짓인 것이다.

그런데 20세기로 접어들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구조와 운동법칙에는 거대한 변화가 발생한다. 이제는 자유경쟁 대신에 독점자본과 독점자본가 단체들이 주요 산업과 국가, 그리고 국제적인 경제‧정치질서를 지배하게 되고,11) 이 새로운 자본주의로서의 독점자본주의, 즉 “제국주의의 기본적 경제적 특질들의 연관과 상호관계”12)를 구명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게 대두되게 된다. 그리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몽상이나 공상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필요에 대한 실천적이고 과학적 정신의 응답이었던 것이다.13)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론≫에는 이렇게 그것이 저술된 시대적 조건 때문에 독점자본에 대한 서술은 예외적이고, 독점자본주의나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서술은 사실상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바로 그 ≪자본론≫의 논리와 서술 속에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의 운동 그것이, 즉 “자본주의적 생산 그것에 내재적인 법칙”14)이, 혹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15) 그것이 자유경쟁 그것의 독점으로의 전화‧이행을 필연적으로 예정‧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분적으로는 앞에서 이미 인용한 곳이지만, 레닌은 이렇게 쓰고 있다.

 

반세기 전에 맑스가 ≪자본론≫을 썼을 때에는 자유경쟁은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들에게 있어서 ‘자연법칙’처럼 보였다. 맑스는 자본주의를 이론적 그리고 역사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자유경쟁은 생산의 집적을 낳고, 이 집적은 그 발전의 일정 단계에서는 독점으로 귀결한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관학(官學)은 이 맑스의 저서를 묵살이라고 하는 수단으로 매장하려 하였다. 하지만 바야흐로 독점은 사실이 되었다.16)

 

여기서 우리는 물론 맑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면, 그는 우선 사회적 총자본의 수많은 개별자본으로의 분열에 대해서 서술한 후 이렇게 얘기한다.

 

이러한 다수의 개별자본으로의 사회적 총자본의 분열, 또는 그 부분들의 상호 반발에 대해서는 이 부분들의 흡인(Attraktion)이 반대로 작용한다. 이것은 이미 생산수단이나 노동지휘의 단순한 축적과 같은 의미의 집적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자본들의 집적이고, 그것들의 개별적 독립의 해소이며,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로부터의 수탈이며, 소수의 보다 거대한 자본으로의 다수의 보다 작은 자본의 전화(轉化)이다. 이 과정을 첫 번째 과정으로부터 구별하는 것은 이 과정은 단지 이미 존재하여 기능하고 있는 자본의 배분의 변화를 전제할 뿐이며, 따라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범위는 사회적 부의 절대적인 증가 또는 축적의 절대적인 한계에 의해서 제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 쪽에서 자본이 하나의 수중에서 거대한 덩어리로 부풀어 오르는 것은 다른 쪽에서 많은 수중으로부터 자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축적 및 집적과는 구별되는 집중이다.17)

 

“이미 형성되어 있는 자본들의 집적”, “그것들의 개별적 독립의 해소”와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로부터의 수탈”, “소수의 보다 거대한 자본으로의 다수의 보다 작은 자본의 전화”, 그것은 바로 독점자본과 그 사회적 지배의 확립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점자본과 그 사회적 지배의 확립이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과 경쟁의 법칙의 관철, 즉 필연적 운동임을 다음과 같이 개괄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들의 집중 또는 자본에 의한 자본의 흡인의 법칙들을 여기에서 전개할 수는 없다. 사실을 간단히 시사해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경쟁전은 상품을 저렴하게 함으로써 수행된다. 상품이 저렴한 것은,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노동의 생산성에 달려 있는데, 이것은 그러나 생산의 규모에 달려 있다. 보다 큰 자본이 그리하여 보다 작은 자본들을 타도하는 것이다. 나아가 기억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전함에 따라서 어떤 사업을 그 정상적인 조건 하에서 경영하기 위해 요구되는 개별자본의 최소크기가 증대한다는 점이다. 보다 작은 자본들은 그리하여 대공업이 아직 산발적으로 혹은 불완전하게밖에 점령하고 있지 않은 생산영역으로 밀려난다. 여기에서 경쟁의 치열성은 적대하는 자본들의 수에 비례하고 그들 자본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경쟁은 언제나 다수의 소자본가들의 파산으로 끝나고, 그들의 자본은 부분적으로는 승리자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부분적으로는 몰락한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자본주의적 생산과 더불어 하나의 전적으로 새로운 힘, 즉 신용제도가 형성되고, 그것은 처음에는 축적의 겸손한 조력자로서 은밀히 숨어들어와 사회의 표면에 크고 작은 양으로 흩어져 있는 화폐수단을 보이지 않는 실[絲]을 통해서 개별자본가들이나 결합된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끌어넣는데, 그러나 이윽고 그것은 새롭고 무서운 경쟁의 무기로 되고 마침내는 자본의 집중을 위한 거대한 사회적 기구로 전화된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이 발전함에 따라 바로 그와 같은 정도로 경쟁과 신용이, 즉 이 두 개의 가장 강력한 집중의 지렛대가 발전한다. 그와 나란히 축적의 진전은 집중 가능한 소재, 즉 개별자본을 증대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확대가, 여기에는 사회적 욕망을, 저기에는 과거의 자본의 집중에 의해서만 실현 가능한 거대한(gewaltig) 산업기업의 기술적 수단을 만들어낸다. 오늘날에는 그리하여 개별자본의 상호 흡인력과 집중 경향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한 것이다.18)

 

“간단히 시사해둔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함에 따라 경쟁과 신용에 의한 자본의 집중이 필연적임을 맑스는 이렇게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는 이러한 집중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총괄한다. (아주 장문의 인용이지만, 그렇게 인용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자본의 본원적 축적, 즉 자본의 역사적 발생은 결국 무엇으로 귀착될까? 그것이 노예나 농노로부터 임금노동자로의 직접적인 전화(轉化)가 아닌 한, 결국 단순한 형태변화가 아닌 한, 그것은 오직 직접생산자의 수탈, 즉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의 해소를 의미할 뿐이다.

사회적, 집단적 소유의 대립물로서의 사적 소유는 오직 노동수단 및 외적인 노동조건들이 사적개인들에게 속하는 곳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 사적개인들이 노동자인가 비노동자인가에 따라서 사적 소유도 그 성격이 달라진다. 얼핏 보아 이 사적 소유가 보여주고 있는 무한한 색조(色調)는 단지 이 양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중간상태들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소경영의 기초이고, 소경영은 사회적 생산과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확실히, 이 생산양식은 노예제나 농노제 및 기타의 예속적 관계 하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번영하고, 자체의 모든 정력을 발휘하고, 충분한 전형적 형태를 취하는 것은 오직 노동자가 자신이 취급하는 노동조건의 자유로운 사적 소유자인 경우, 즉 농민은 자신이 경작하는 밭의 사적 소유자, 수공업자는 그가 노련하게 다루는 도구의 사적 소유자인 경우뿐이다.

이 생산양식은 토지나 기타 생산수단의 분산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생산수단의 집적을 배제함과 동시에 같은 생산과정 내부에서의 협업이나 분업, 자연에 대한 사회적인 지배나 통제, 사회적 생산력의 자유로운 발전도 배제한다. 그것은 오직 생산 및 사회의 협소한 자연발생적 한계와만 양립할 수 있다. 이 생산양식을 영구화하려고 하는 것은, 펙꾀르(C. Pecqueur)가 올바르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전반적인 중용(中庸)을 명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정한 높이에 달하면 이 생산양식은 자기 자신을 폐기할 물질적 수단을 만들어 낸다. 이 순간부터 사회의 태내에서는 이 생산양식을 질곡으로 느끼는 힘과 정열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이 생산양식은 폐기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폐기된다. 그것의 폐기, 즉 개인적이고 분산적인 생산수단의 사회적으로 집중된 생산수단으로의 전화, 따라서 다수인의 왜소한 소유로부터 소수인의 대량 소유로의 전화, 따라서 광범한 인민대중으로부터의 토지와 생활수단 그리고 노동 도구의 수탈, 인민대중으로부터의 이러한 가공스럽고 가혹한 수탈이야말로 자본의 전사(前史)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는 수많은 폭력적인 방법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 가운데 단지 획기적인 것만을 자본의 본원적 축적의 방법으로서 고찰하였다.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은 가장 무자비한 만행으로써, 그리고 가장 비열하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야비하고 가장 가증스러운 열정의 충동 하에서 수행된다. 자신의 노동에 의해서 획득한, 말하자면 개개의 독립적인 노동개체와 그 노동조건의 결합에 기초한 사적 소유는, 타인의 노동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자유로운 노동의 착취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의해서 구축(驅逐)된다.

이 전화과정이 낡은 사회를 폭과 깊이에 있어서 충분히 분해해 버리자마자,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로 전화되고 그들의 노동조건이 자본으로 전화되자마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자기발로 서게 되자마자, 노동은 한층 더 사회화되고 토지 및 기타 생산수단은 더 한층 사회적으로 이용되는 생산수단으로, 곧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전화되며, 그리하여 사적 소유자의 가일층의 수탈은 새로운 형태를 취한다. 이제 수탈되는 것은, 더 이상 스스로 경영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많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이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에 내재적인 법칙이 작용함으로써, 즉 자본의 집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한 자본가가 많은 자본가들을 때려죽인다. 이러한 집중, 즉 소수 자본가에 의한 다수 자본가의 수탈과 나란히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가 더욱더 대규모로 발전하고, 과학의 의식적인 기술적 적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공동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노동수단으로의 노동수단의 전화, 생산수단을 결합된 사회적 노동의 생산수단으로서 사용함으로써 얻는 모든 생산수단의 절약이 발전하며, 모든 민족의 세계시장 망 속으로의 편입과 그에 따른 자본주의 제도의 국제적 성격이 발전한다. 이 전화과정의 모든 이익을 가로채고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가 줄어듦에 따라서 빈궁, 압박, 예속, 타락, 착취의 규모가 증대하지만, 그러나 또한 끊임없이 팽창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 자체의 기구에 의해서 훈련되고 결집되며 조직되는 노동자 계급의 반항도 역시 증대한다. 자본의 독점은 그와 함께 그리고 그 아래에서 개화한 이 생산양식의 질곡으로 된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 외피는 파열된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최후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수탈자들이 수탈된다.19) (강조는, 인용자)

 

즉,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에 내재적인 법칙이 작용함으로써, 즉 자본의 집중에 의해서”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의 수탈, 즉 자본의 독점이 이루어진다고 명확하게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이 “자본의 독점은 그와 함께 그리고 그 아래에서 개화한 이 생산양식의 질곡으로”되며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여 “그 외피는 파열된다”고,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최후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고도 명확히 얘기하고 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우리의 당장의 주제를 약간은 넘는 내용이지만, 참고로 맑스의 서술은 이렇게 이어진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생기는 자본주의적 취득양식, 따라서 또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개인적인 사적 소유의 첫 번째 부정(否定)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하나의 자연사적인 필연성으로써 그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그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은 사적 소유를 재건하지 않지만,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에 기초하여 개인적인 소유를, 즉 협업과 토지의 공동점유 그리고 노동 자체에 의해서 생산된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에 기초한 개인적 소유를 재건한다.

자신의 노동의 기초한, 개인들의 분산된 사적 소유의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로의 전화는 물론, 사실상 이미 사회적 생산경영에 기초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사회적 소유로의 전화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길고 어렵고 가혹한 과정이다. 거기에서는 소수의 탈취자에 의한 인민대중의 수탈이 이루어졌지만, 이번에는 인민대중에 의한 소수의 탈취자의 수탈이 이루어진다.20)

 

레닌이 “제국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 사회혁명의 전야이다”21)라고 말하는 것도, “자본주의로부터 보다 높은 사회-경제 체제로의 과도기” 혹은 “자본주의로부터 보다 높은 체제로의 과도”22)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자본론≫ 제1권에서의 얘기이다. 그러나 물론 경쟁의 독점으로의 필연적 전화‧이행은 제1권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제3권에서도 물론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특히 이 제3권은 1865년 이전에 그 원고들이 집필되었지만 엥겔스에 의해서 1880년대 후반에서 1890년대 전반(前半)에 걸쳐서 편집되었기 때문에, 엥겔스가 맑스주의의 방법과 정신에 따라 그간의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과 그 구조변화를 반영한 보완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누군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맑스와 엥겔스를 분리하고, 엥겔스는 그 ‘잘못된 편집’과 ‘보완’을 통해서 맑스의 본래의 저작을 훼손시켰다고 본다면, 그거야 그의 자유겠지만 말이다.

우선,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이 독점의 기업형태는 거대 주식회사인 바, 이 거대 주식회사화의, 방금 보았던 역사적 의의를 맑스는 다시 이렇게 확인하고 있다.

 

주식회사에서는 기능은 자본소유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따라서 또한 노동도 생산수단과 잉여노동의 소유로부터 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최고의 발전의 결과야말로 자본이 생산자들의 소유로, 그러나 더 이상 개별적인 생산자들의 사유로서가 아니라 결합된 생산자인 그들의 소유로서의, 직접적인 사회의 소유로서의 소유로 재전화(再轉化)하기 위한 필연적인 통과점이다. 그것은 다른 면에서는 지금까지는 아직 자본소유와 결합되어 있는 재생산과정 상의 일체의 기능이 결합노동자들의 단순한 기능으로, 사회적 기능으로 전화하기 위한 통과점인 것이다.23)

 

그리고 맑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보다 덜 발달한 단계에서는 아직 무언가 의미가 있는 관념들도 여기에서는 전적으로 무의미해진다. 성공도 실패도 여기에서는 그 결과는 자본의 집중으로 되고, 따라서 최대 규모의 수탈이 된다. 수탈은 여기에서는 직접적 생산자로부터 소(小)자본가와 중(中)자본가 그것에까지 미친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출발점이다. 이 수탈의 실행은 이 생산양식의 목표이고, 더욱이 결국은 모든 개인으로부터의 생산수단의 수탈이다. … 그런데 이 수탈은 자본주의 체제 그것 속에서는 … 소수자에 의한 사회적 소유의 취득으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신용은 이들 소수자에게 더욱 더 사기꾼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소유는 여기에서는 주식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운동이나 이전은 전적으로 [증권: 인용자]거래소[에서의: 인용자] 투기의 결과가 되고, 거기에서는 작은 고기는 상어에게 삼켜져버리고 양은 거래소 늑대에게 삼켜져버린다.24)

 

그리고 엥겔스는, ≪자본론≫ 제3권의 원고가 집필된 1865년까지의 상황과 제3권 그것이 최초로 출판되는 1890년대 중반까지 사이의 상황의 변화를 이렇게 쓰고 있다.

 

이상의 것을 맑스가 쓰고 나서, 주지하는 것처럼, 주식회사의 2곱, 3곱을 나타내는 새로운 산업경영형태가 발전해 왔다. … 요컨대, 예부터 찬미되어온 경쟁의 자유는 마침내 종말에 달해서 그 공공연하고 불명예스러운 파산을 스스로 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어떤 나라에서나 일정한 부문의 대산업가들이 생산의 조절을 위한 카르텔을 결성함으로써 그렇다. … 더욱이 몇몇 경우에는 일시적으로는 국제카르텔까지도 만들어졌다. … 그러나 이러한 생산의 사회화 형태로도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개개의 사업회사의 이해의 대립은 너무나도 자주 이 형태를 깨부수고 경쟁을 재현시켰다. 거기에서 생산규모가 그것을 허용하는 몇몇 부문에서는 이 사업부문의 총생산을 집중하여 통일적인 관리기관을 가진 하나의 대(大) 주식회사를 만들게까지 되었다. … 이리하여 … 독점이 경쟁을 대신하고, 사회 전체에 의한, 국민에 의한 장래의 수탈을 위해서 가장 편리하게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25)

 

이상의 것이 집필된(1865년) 이후 … 특히 두 가지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는, … 둘째로는, 생산을 조정하기 위한, 따라서 또 가격과 이윤을 조정하기 위한 대(大) 생산부문 전체의 공장주들의 카르텔(트러스트)이다.26)

 

나아가 엥겔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따른 변화를 반영하여 ≪자본론≫ 제3권을 보완하고자 했던,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유고 “증권거래소”에서, ≪자본론≫ 제3권이 집필된 “1865년에는 아직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속에서 제2차적 요소였던” 증권거래소의 역할의 변화를 서술하고 있다. 즉, 그 증권거래소가 어떻게 제조업뿐 아니라 철도, 상업, 은행 기타의 신용기관, 농업부문 등 모든 산업부문에서 자본을 집중시키고 있는가를, 어떻게 독점의 지배를 확립시키고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론≫ 속의 독점에 대한 그다지 많지 않은 이상과 같은 서술들을 보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의 하나는 맑스의 서술과 엥겔스의 그것은 내용상 서로 통일되어 있으면서도 그 서술의 구체성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다름 아니라, 독점에 관한 맑스의 서술은 주로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한 법칙의 작용‧관철로서의 그것에 관한 것이고, 그 때문에 그 서술은 대단히 추상적인 그것임에 비해서, 엥겔스의 그것은 아주 사실적‧구체적이고 예증적이다.

그리고 과학적 사회주의의 두 창시자 사이의 독점에 대한 이러한 서술의 차이는 당연히 그 두 사람이 각각 독점 그것에 대하여 서술한 역사적 시점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맑스는, 앞에서 인용했던 레닌의 표현을 빌면, “자유경쟁이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들에게 있어서 ‘자연법칙’처럼 보였”던 1860년대에 그것에 대해서 서술했고, 엥겔스는 “아직 그것은 예외에 불과”하고, “아직 강고하지 않고, 아직 과도적인 현상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카르텔이 광범하게 발전하고”, 엥겔스 자신의 표현이지만, “주식회사의 2곱, 3곱을 나타내는 새로운 산업경영형태” 혹은 “몇몇 부문에서는 이 사업부문의 총생산을 집중하여 통일적인 관리기관을 가진 하나의 대(大) 주식회사를 만들게까지 되었”던 1873년의 공황 이후, 특히 1890년대에 그것에 대해서 서술했던 데에서 그 서술의 구체성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야말로, 맑스주의적 분석이, 그리고 그 창시자인 맑스와 엥겔스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며, 역사적 즉 변증법적이며, 실천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27) 그리고 그것은 간접적으로, 사실상 모든 산업부문과 국가, 세계정세 자체가 독점자본의 지배하에 있고, 전반적이고 항상적인 위기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지켜내기 위해서 국가가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오늘날에 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하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매도하는 자칭 맑스주의자,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몰역사적 즉 반변증법적이며, 비실천적인가를, 간단히 말해서 얼마나 반맑스주의적, 반맑스-레닌주의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이렇게 독점의 문제는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문제, 역사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서술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들의 후기 저술들, 특히 엥겔스의 그것들에 나타나게 된다. 예컨대 이렇다.

 

독일에는 두 개의 제철소, 도르트문더 유니온(Dortmunder Union)과 쾨니히스 운트 라우라휘테(Königs- und Laurahütte)가 있고, 그 각각이 국내의 모든 수요에 응할 수 있습니다. 그와 나란히 무수한 소기업들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기에서는 보호관세는 완전히 무의미합니다. 여기에서는 외국시장의 정복만이, 따라서 자유무역만이 도움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파산입니다. 제철공장주들 자신이 보호관세를 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지금 이미 그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것처럼 과잉제품을 외국에 헐값에 투매하기 위해서 하나의 트러스트[Ring], 즉 국내시장에 독점가격을 강요할 음모로 결합했을 때뿐입니다. 이 트러스트의 이익을 위해서, 이 독점적 음모의 이익을 위해서 황제(Kayser)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28)

 

독일 사회민주당 의원인 베벨(August Bebel)에게 의회 활동의 원칙과 관련한 조언으로 보낸 이 편지에는 1879년에 벌써 독일의 철강 트러스트[Ring] 및 그 음모와 국가(=황제)의 야합이 실천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1891년에는 서술에 결정적인 진전이 이루어지는데, 엥겔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제4판의 서문에서 “이 판에서는 다양한 조그만 수정들이 가해졌는데, 비교적 중요한 보완은 두 곳에만 이루어졌다”며, 그 중의 하나를 “그 동안에 중요해진 ‘트러스트’라는 새로운 생산형태에 관해서”29)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는 애초에 ≪반뒤링론≫(1878년)과, 그에 기초하여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초판(1880년) 이래 자본주의적 생산이

 

어떤 발전단계에 달하면, 이 형태30)조차도 이미 충분하지 않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공식적 대표자인 국가가 그것들의 지휘를 떠맡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라고, 원칙적‧추상적으로 서술되어 있던 부분을 다음과 같이 수정‧보완한다.

 

어떤 발전단계에 달하면, 이 형태조차 이미 충분하지 않게 된다. 동일한 산업부분에 속하는 국내의 대생산자들은 서로 결합하여 ‘트러스트’, 즉 생산의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연합체를 만든다. 그들은 생산해야 할 총량을 결정하여 그것을 자신들 사이에 할당하고, 이리하여 미리 결정된 판매가격을 강제한다. 하지만, 이러한 트러스트는 불황이 닥치면 대개는 곧바로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바로 그 때문에 트러스트는 한층 더 집적도가 높은 사회화로 내몰린다. 한 산업 전체가 단 하나의 거대한 주식회사로 바뀌고, 국내에서의 경쟁은 이 하나의 회사의 국내의 독점에 자리를 내준다. 이는 바로 1890년에 영국의 알칼리 생산에서도 일어난 일인데, 48개의 대공장 전체가 합병해버렸기 때문에, 이제 이 생산은 자본금 1억2000만 마르크의, 통일적으로 운영되는 단 하나의 회사의 손으로 경영되고 있다.

트러스트에서는 자유경쟁은 독점으로 전화되고, 자본주의 사회의 무계획적인 생산은 닥쳐오는 사회주의 사회의 계획적인 생산에 항복한다. 이는 확실히 당장은 아직 자본가의 이익으로 된다. 여기에서는 그러나 착취가 손에 쥘 듯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그것은 와해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인민도 트러스트에 의해 지휘되는 생산, 이자 표나 끊는 소수의 도당에 의한 전체에 대한 노골적인 착취를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든, 트러스트가 있든 없든,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의 공식적 대표자인 국가가 생산의 지휘를 떠맡지 않을 수 없게 된다.31)

 

여기에서는 19세기 말엽이 되면 이미 주요 산업에서 트러스트와 함께 독점을 위한 기업의 합병이 발생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즉, 독점자본주의가, 그리고 나아가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그 모습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엥겔스는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주요한 생산과 그 지휘를 떠맡게 되는 국가의 역할과 그 계급적 성격에 대해서 엥겔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주식회사와 트러스트로의 전화도, 국가소유로의 전화도 생산력의 자본으로서의 속성을 지양하지 않는다. 주식회사와 트러스트의 경우 이는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명확하다. 그리고 근대 국가는 다시 노동자들이나 개별 자본가의 침해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일반적인 외적 조건들을 유지하기 위해 부르주아 사회가 만들어낸 조직일 뿐이다. 근대 국가는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기관, 자본가들의 국가, 관념상의 총자본가이다. 근대 국가가 생산력을 더 많이 자신의 소유로 떠맡을수록, 그것은 더욱더 현실적인 총자본가로 되고, 그것은 국민(Staatsbürger)을 더 많이 착취한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노동자로, 프롤레타리아로 남는다. 자본관계는 지양되지 않고, 오히려 정점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그 정점에서 그것은 전복된다. 생산력의 국가소유가 충돌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해결의 형식적 수단, 즉 해결의 손잡이(Handhabe der Lösung)는 그 안에 숨기고 있다.32)

 

엥겔스의 이러한 서술은 자본주의의 현대의 상황을 명쾌히 밝혀주고 있고, 당연히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기본적 지침이 되고 있다.

참고로, 맑스의 ≪자본론≫ 그 자체 속에서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서술은 찾아지지 않는다. 구태여 작은 실마리를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서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일정한 영역들에서 독점을 출현시키고, 그리하여 국가의 간섭을 유발한다.33)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은 일전한 발전단계에서 독점을 출현시키고, 이 독점의 출현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간섭, 국가의 개입을 불러온다고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IV

 

이상에서 우리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야말로 ≪자본론≫의 논리, 그 변증법적 방법론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러한 논리, 방법론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 즉 경쟁의 독점으로의 전화, 독점자본 그것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지배력의 강화를 파악‧서술해온 엥겔스와 레닌의 작업이야말로 얼마나 과학적이고 실천적인가를 보아왔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것도 독점자본의 지배와 착취의 강화, 독점자본 지배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기능의 강화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전개되고 있는 대공황 속에서 독점자본과 국가의 이러한 기능, 착취는 더할 나위 없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일찍이 엥겔스가 지적한 것처럼 파산에 직면한 거대 독점자본체들을 국가가 떠맡고 있을 뿐 아니라, 각국이 문자 그대로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독점자본에 쏟아부어 자본주의적 생산 그것의 전반적‧최종적 붕괴를 막고 있다. 이는 물론 최종적 붕괴를 지연시킬 뿐인 미봉이다. 그리고 그렇게 미봉하기 위해서 오늘날 이른바 PIIGS로 불리는 저 유럽의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뿐 아니라 사실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등 자본주의 주요 국가들 자신이 사실상 파산에 직면해가고 있고, 그 부담을 국민 대중에 전가함으로써 저항과 투쟁, 그에 대한 억압이 주요 국가의 일상적인 정치적 풍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지극히 의문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하는 것은 맑스주의자임을, 나아가 맑스-레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일부 경향의 논자들 사이에 일종의 합의로 되어 있는 바, 다름 아니라 바로 반쏘주의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서 그들이 왜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하는지는 자명해진다. 다름 아니라 종파주의적 동기와 목적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타가 공인하는 것처럼,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과거 쏘련에서 ‘국정 이데올로기’이다시피 할 정도로 지배적인 견해였고, 바로 그러한 사실이 저들로 하여금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종파주의적 동기와 목적에서 독점자본주의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거부하는 한, 그들은 스스로 무지와 혼동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어서 현대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한 어떤 과학적 분석, 과학적 인식의 가능성도 스스로 봉쇄하는 것이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저 뜨로츠키주의자, 혹은 ‘국제사회주의자’ 정성진 교수가 비근한 예의 하나이다. 그가 공황을 분석하면서 “사회적 축적구조와 그 붕괴” 운운하는 소부르주아적 헛소리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34)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는, 공황과 산업순환을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의 관철로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에 내재한 모순의 폭발로서 설명하는 대신에, 다음과 같이 “사회적 축적구조”라는 “자본축적에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서 설명한다.

 

사회적 축적구조(social structure of accumulation)라는 개념은 그 창안자인 고든(D. M. Gorden)에 따르면 “자본축적을 위한 개별 자본가의 선택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경제적 환경” 혹은 자본축적에 “외부적인 환경”으로 정의되며, 이 환경이 안정적이고 우호적일 때 자본가는 생산적 투자를 늘리고 그 결과 호황이 도래한다. 즉 자본축적이 이뤄지는 제도적 환경이 사회적 축적구조이며, 이 사회적 축적구조가 순조롭게 기능할 동안은 호황이 지속되고 사회적 축적구조가 붕괴하면 불황이 발생한다.35)

 

참으로 대단히 명쾌하고 훌륭한 과학적인 분석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반대로 서술하면 왜 안 되는 것일까? ― “호황이 지속되는 동안은 사회적 축적구조가 순조롭게 기능하고, 불황이 발생하면 사회적 축적구조가 붕괴된다”고.

 


 

1) 예컨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때 우리 사회에서 자칭 “≪자본론≫ 전문강사”로 행세했던 송태경은, 자본주의의 발전단계는 ‘생산의 범주’에 의해서 구분되어야 하는데, 레닌은 ‘독점‧비독점’이라는 ‘유통의 범주’로 자본주의의 발전단계를 구분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단정한다. 이에 대한 비판은,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전면개정판), 노사과연, 2006, pp. 474-476 참조.

 

2) 정성진,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책갈피, 2005, p. 11.

 

3) 레닌은 그의 ≪제국주의론≫의 제1장 “생산의 집적과 독점체”를 사실상 “독점! 이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최신의 국면’의 마지막 언어이다”(레닌,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서의 제국주의≫[≪レーニン全集≫ 제22권, 大月書店, 1972], p. 241)라는 문장으로 끝맺고 있다. 그리고 제7장 “자본주의의 특수단계로서의 제국주의”에서는 보다 간결하게 “제국주의란 자본주의의 독점적 단계이다”(p. 307)라고 언명하고 있다.

 

4) 당시 극적으로 전개되던 대공황과 관련하여 2009년 1월 9일에 진보전략회의가 주관한 한 토론회에서, 평소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국제사회주의’(IS)적 뜨로츠키주의자인 정성진 교수는 실제로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맑스의 ≪자본론≫의 논리와 모순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명확히 한 바 있다.

 

5) 우리 연구소에서 꾸준히 뜨로츠키주의의 본질과 죄악상을 폭로하는 작업을 벌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6) 그러나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들의 악의적인 조어(造語)인 ‘스탈린주의’란, 그것을 굳이 정의하자면, 다분히 반스탈린(주의)적인 일부 논객들도 동기야 어떻든 솔직히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맑스-레닌주의의 다른 이름, 맑스-레닌주의 그것을 부정직한 방법으로 공격하고 중상하기 위한 이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즉, 저들이 이른바 ‘스탈린(주의)’를 공격할 때 그것은 이미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 “본론을 시작하면서 우선 용어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는 다른 것인가?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사상을 가리키고, 스탈린주의는 스탈린의 사상을 가리키는가? 그런데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용어는 스탈린의 지휘 하에 그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상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름에 기대어 스탈린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는 동의어이다.”(이성백, “스탈린주의 철학 비판”,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편, ≪마르크스주의 연구≫ 2005년 제2권 1호, 한울, pp. 71-72.) ― “문제는 유물론에 있다. 레닌의 그것은 천박한 이원론적 사상, 즉 물질과 정신의 철두철미한 이원론에 근거한 천박한 반영론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오늘날까지 아무런 반성도 없이 이어져온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것에 레닌적 사고가 그 주요한 내용으로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왔다는 데에 변증법적 유물론의 비극이 담겨 있는 것이다. … 이러한 교조주의적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은 서구로 전파되면서 ‘코민테른 자체 내의 적대적인 철학적 경향’을 구성한 루카치, 코르쉬 그리고 다른 서구 공산주의자들의 저작들과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은 전전(戰前)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내의 두 혁명적 경향들 간의 최초의 진정한, 그리고 직접적인 철학적 논쟁으로 된다. … 구사회주의권이 해체되었으나 그 이데올로기적 잔재가 아직 미청산된 현재로서, 구소련권의 마르크스-레닌주의(사실상의 스탈린주의) 철학의 극복이 또다시 새롭게 우리의 과제로서 다가오는 시점…”(문국진, “현대철학에서의 헤겔과 마르크스”, 같은 책, pp. 268, 270.) 그런데 이렇게 두 사람 모두 ‘맑스-레닌주의=스탈린주의’로 규정하고 있지만, 첫째로, 이성백의 경우 ‘맑스-레닌주의’란 맑스와 레닌에 이름만 기댄, 따라서 맑스와 레닌의 사상‧이론과는 다른 스탈린주의, 스탈린의 지배수단임―그러한 한에서 이성백은 맑스‧엥겔스‧레닌으로부터 스탈린을 분리하고 있다―에 비해서 문국진의 경우 맑스-레닌주의는 레닌에 의해서 왜곡되고 잘못 해석된 맑스주의, 즉 레닌주의―그러한 한에서 문국진은 맑스와 엥겔스로부터 레닌을 분리하고 있다―라는 점, 둘째로, 이성백의 경우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맑스-레닌주의: 인용자]은 … 어떤 수정이나 비판도 용인될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진리의 지위가 부여”되고, “하나의 종결된 철학체계로 교조화”(이성백, 같은 글, p. 70)되어 있었다고 파악―그러한 한에서 이성백은 극우의 반쏘‧반스탈린 선전을 전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하는 반면, 문국진의 경우 그것은 “진정한, 그리고 직접적인 철학적 논쟁”의 한 당사자였다고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7) 김호균, “맑스주의 발전을 위한 시론”, ≪창작과 비평≫ 1992년 여름호, pp. 264-265.

 

8) 김호균, 같은 글, p. 261.

 

9) 김호균 교수의 이 글에 대한 보다 자세한 비판은, 구광숙‧채만수, “현대자본주의 하 농업문제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하여”, 경제사회연구회 편, ≪경제사회연구≫ 제2권 제1호 (1995년 1‧2월), pp. 75-97 참조.

 

10) 레닌, 같은 책, p. 229.

 

11) “독점체의 역사를 기본적으로 총괄하면 다음과 같다. (1) 1860년대와 1870년대 ― 자유경쟁의 최고의 극한의 발전단계. 독점체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맹아에 불과하다. (2) 1873년의 공황 이후. 카르텔이 광범하게 발전했지만, 아직 그것은 예외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직 강고하지 않고, 아직 과도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3) 19세기 말의 호경기와 1900-1903년의 공황. 카르텔은 모든 경제생활의 기초의 하나가 된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전화했다.”(레닌, 같은 책, p. 232.)

 

12) 레닌, 같은 책, p. 224.

 

13) “나는 이 소책자[=≪제국주의론≫: 인용자]가 현재의 전쟁과 현재의 정치를 평가할 때에 그것을 연구해두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경제문제, 즉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의 문제를 독자가 이해하는 데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레닌, 같은 책, p. 216. [초판 서문의 마지막 구절])

 

14)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790.

15) 같은 책, S. 789.

16) 레닌, 같은 책, pp. 229-230.

17)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654.

18) 같은 책, SS. 654-655.

19)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S. 789-791.

20) 같은 책, S. 791.

21) 레닌, 같은 책, p. 223.

 

22) “자본주의는 오직 그 일정한, 대단히 높은 발전단계에서만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된 것이어서, 자본주의의 몇 가지 기본적 특질이 그 대립물로 전화하기 시작했을 때, 또한 자본주의로부터 보다 높은 사회-경제제도로의 과도기의 특징들이 모든 영역에서 형성되고 드러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주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에 의한 자본주의적 경쟁의 대체다. 자유경쟁은 자본주의와 상품생산 일반의 기본적 특질이며, 독점은 자유경쟁의 정확한 대립물이다. 그런데 이 자유경쟁은 대규모 생산을 만들어내고, 소규모 생산을 구축하며, 대규모 생산을 훨씬 더 대규모의 생산에 의해서 대체하고, 생산과 자본의 집적을, 그 속에서 독점―카르텔, 신디케이트와 트러스트, 그리고 그것들과 융합하여 수십억을 주무르는 10여개의 은행들―이 성장했고 또한 성장하고 있는 지점으로까지 이끌어간다. 그러나 동시에 독점은, 자유경쟁으로부터 발생하면서도, 자유경쟁을 일소하지 않고, 그 위에 그것과 나란히 존재하며, 그럼으로써 수많은 아주 예리하고 격렬한 적대와 마찰, 갈등을 낳는다. 독점은 보다 높은 체제로의 과도이다.”(레닌, 같은 책, pp. 306-307.)

 

23) ≪자본론≫ 제3권, MEW, Bd. 25, S. 453.

24) 같은 책, SS. 455-456.

25) 같은 책, SS. 453-454.

26) 같은 책, S. 130. 주 16.

 

27) 1860년대에 맑스는 “이러한 자본들의 집중 또는 자본에 의한 자본의 흡인의 법칙들을 여기에서 전개할 수는 없다”며, “사실을 간단히 시사해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가령 어떤 하나의 사업부문에서 집중이 극한에 달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 부문에 투하되어 있는 모든 자본이 단일한 자본으로 융합해버리는 경우일 것”(≪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655)이라고 말하고 있고, 1890년에 엥겔스는 그것을 받아, “최근의 영국이나 미국의 ‘트러스트’는 이미 이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며,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의 사업부문의 적어도 대경영의 전부를 사실상 독점권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주식회사로 합하려 하고 있기 때문”(같은 책, SS. 655-656, 주 77b)이라고 말하고 있다.

 

28) “엥겔스가 라이프찌히에 있는 베벨에게”(편지), 1879. 11. 24. (런던), MEW, Bd. 34. S. 424.

 

29)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제4판(1891)에의 서문”, MEW, Bd. 22, S. 210.

 

30)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리킨다. ― “힘차게 성장하는 생산력들이 자신의 자본으로서의 성질에 이처럼 저항하고 자신의 사회적 본성을 승인하라고 이처럼 더욱 강력하게 강요함에 따라 자본가계급 자신은 점점 더 자본관계 내에서 대체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이 생산력들을 사회적 생산력들로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산업의 호황기에는 신용을 무제한 팽창시킴으로써, 그리고 파산 자체가 자본주의적 대기업을 와해시킴으로써, 우리가 각종 주식회사에서 보는 바와 같은 대량의 생산수단의 사회화 형태를 촉진한다. 이러한 생산수단과 교통통신수단 중에는, 예컨대 철도처럼 애초부터 그 규모가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이와 다른 어떤 자본주의적 이용 형태도 취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의 변혁≫, MEW, Bd. 20, SS. 258-259., 최인호 역,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이하, ≪선집≫), 제5권, 박종철출판사, 2005, pp. 305-306.;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MEW, Bd. 19, S. 220., 최인호 역,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 ≪선집≫ 제5권, p. 465.)

 

31)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MEW, Bd. 19, SS. 220-221., 최인호 역,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선집≫ 제5권, pp. 465-466.; 엥겔스, “반뒤링론을 위한 자료 ― ≪반뒤링론≫ 본문의 보완 및 수정”, MEW, Bd. 20, S. 617.

 

32) ≪공상에서 과학으로 사회주의의 발전≫, MEW, Bd. 19, S. 222., 최인호 역,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 ≪선집≫ 제5권, p. 467.

 

33) ≪자본론≫ 제3권, MEW, Bd. 25, S. 454. 참고로, 여기에서 “그것은”은 독일어 원문에서는 문법상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부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지양”하는 “모순”을 가리키고 있으나, 일본의 ‘자본론번역위원회’는 문맥으로 보아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최고의 결과’, 즉 ’주식회사‘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자본론번역위원회 역, ≪자본론≫ 10, 新日本出版社, 2004, p. 760)고 지적하고 있고, 나 역시 그러한 지적에 동의한다.

 

34) 정성진, 같은 책, pp. 125-151 참조.

 

35) 같은 책, p. 125.

채만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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