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김해인(노동사회과학연구소 교육위원장)

 

 

 

[필자의 말] 이 글은 맑스-레닌주의 국가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문제가 지금 우리에게는 순수한 이론적 문제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주제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 방향을 둘러싼, 소위 ‘중-쏘 논쟁’에서는 첨예한 실천적 문제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성격, 기간 등을 설정하는 문제는, 그 사회가 사회주의발전의 어떤 단계에 있으며, 따라서 사회 발전을 위한 당면 목표와 방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실천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주제는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실천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다.

동시에 이 문제는 현실사회주의 사회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는 부분이다. 기존의 여러 연구자들이 현실사회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즉 쏘련을 위시한 현실사회주의를 부정하기 위해 이 주제를 연구하기도 하였다는 점을 밝혀둔다. 현실사회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는 청산주의의 주요한 근거들이 이 주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실천하는 이들에게 이 주제가 여전히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글은 그러한 연구들을 직접적으로 인용‧반박하고 있지는 않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에 관한 맑스-엥겔스, 레닌, 스딸린, 모택동의 이론을 통해 이들을 간접적으로 반박하고 있다.1)

이상의 점들에서, 이 주제가 단지 이론적 문제만이 아닌, 동시에 실천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 대한 활발한 논쟁이 진행되기를 바라며,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실천하는 이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들어가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우선 자신을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부르주아 계급과의 투쟁에서 그들을 쓰러뜨리고,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권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렇게 획득한 정치권력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전 사회에서 억압의 기반이 되었던 제 조건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기반을 창조한다. 이 시기가 바로 이행기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1. 계급들의 존재는 생산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들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 2.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된다는 것; 3. 이러한 독재 자체는 단지 모든 계급의 지양으로 가는, 그리고 계급 없는 사회로 가는 이행기를 이룰 뿐이라는 것…(강조는 원문대로)2)

 

…모든 현실의 프롤레타리아 당은 항상 계급정책, 독자적 정당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을 제일의 조건으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투쟁의 당면 목표로 설정하였다…(강조는 인용자)3)

 

그리고 레닌은 여기에, 이 주제에 관한 중요한 원칙을 더하고 있다.

 

맑스의 이론에 있어 주된 것은 계급투쟁이라고 흔히 말해지고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단지 계급투쟁만을 인식하는 사람은 아직 맑스주의자라고 볼 수 없으며, 그들은 여전히 부르주아적 사고와 부르주아적 정치적 영역 내에 머물고 있다…맑스주의를 계급투쟁론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맑스주의를 축소시키며 왜곡하고, 그것을 부르주아지가 받아들일만한 그 무엇으로 환원시키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계급투쟁에 대한 인식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확장하는 사람만이 맑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강조는 원문대로)4)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을 죽은 개 취급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운 사람이 아니라면, 이상의 부분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한다. 특히 이 문제가 실제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를 건설한, 현실사회주의 사회에 관한 문제들과 연결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맑스주의는 도그마가 아니다. 맑스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 역사와 현실에서 발생했고 일어나는 계급투쟁의 과정을 면밀히 고찰하며, 자신의 견해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맑스와 엥겔스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발전된 형태를 실제로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1871년 3월부터 5월까지의 짧은 기간에 존재했던 노동자 정부,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던 ‘빠리 꼬뮌’이 전부였다(물론 맑스는 그 기간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자신의 ‘국가론’을 한층 발전시켰다5)).

따라서 현실사회주의에서 이 문제는 기존의 이론을 나침판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 이것은 자신의 발로 한 발 한 발 전진해 나가야 하는 문제였다. 그러한 전진은 현실사회주의를 건설했던 인민들의 노력과 지도자인 레닌, 스딸린, 모택동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글에서는 이 주제에 관한 맑스-엥겔스의 견해를 분석하고, 이후 레닌, 스딸린, 모택동으로 이어지는 이론적 발전을 검토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현실사회주의의 전진에 따라, 그것에 조응하는 이론적ㆍ실천적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6)

 

 

1. 맑스-엥겔스의 견해

 

가. 맑스-엥겔스의 초기 저작에서의 국가론의 발전7)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검토하기에 앞서, 이 주제와 관련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는 어떠한 발전 과정을 겪었는지, 그들의 초기 저작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맑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1843년 10월-12월 집필, 1844년 발표)에서 프랑스에서의 부분적 혁명과 정치적 혁명에 대비하여, 독일에서의 근본적 혁명, 인간적인 해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독일의 특수한 상황(어떤 하나의 계급이 사회의 부정적 대표자로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독일 부르주아지의 무능함 등)을 분석한 결과였다. 맑스는 따라서 독일에서는 이러한 한계 등으로 인해, 부분적이고 단계적인, 정치적 혁명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한 번에 인간의 높이까지 뛰어올라야 할 보편적 해방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독일 해방의 적극적 가능성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발견하고 있다. 1843년 독일에서의 혁명을 사고하기 시작했던 맑스는 처음에는 이처럼, 정치적 혁명과 사회적 혁명8)을 구분하고 있다.9)

하지만 바로 다음 해에 <<전진>>에 발표한 기사(기사 “프로이센 왕과 사회 개혁. 한 프로이센 인이”에 대한 비판적 평주들, 1844년 7월 집필, 1844년 8월 10일 발표)에서, 그는 일반적으로 정치적 혁명의 필연성을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혁명은 낡은 사회를 해체한다; 그런 한에 있어서 그 혁명은 사회적이다. 모든 혁명은 낡은 권력을 전복한다; 그런 한에 있어서 그 혁명은 정치적이다…사회적 영혼을 지닌 정치적 혁명은 합리적이다. 일반적으로 혁명― 기존 권력을 전복하고 낡은 관계들을 해체하는 것 ―은 하나의 정치적 행동이다. 그런데 혁명 없이 사회주의는 성취될 수 없다. 사회주의가 파괴와 해체를 필요로 하는 한에 있어서 사회주의는 정치적 행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조직적 활동이 시작되는 지점, 사회주의의 자기 목적, 영혼이 출현하는 지점에서 사회주의는 정치적 베일을 벗어 던진다.10)

여기서 맑스는 정치적 혁명의 필연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인용의 마지막 문장에서 보이는 것처럼 정치적 혁명과 사회적 혁명의 연관을, 후에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통일적으로는 사고하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는 그가 아직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정치권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상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1)

이러한 발전 과정을 거쳐 1845년부터 1846년 경 맑스와 엥겔스가 함께 저술한 <<독일이데올로기>>에서는, 명확하게 정치권력 장악에 대한 인식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배를 추구하는 모든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우처럼 비록 그들의 지배가 모든 낡은 사회 형태 전체와 지배 일반의 폐지의 조건이 된다고 할지라도, 자기 계급의 이해를 다시 보편적인 것― 정치적 지배를 추구하는 모든 계급은 최초의 순간에는 이것을 지향해야 한다 ―으로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강조는 인용자)12)

 

1846년 12월 말부터 다음 해 4월초까지 집필된 것으로 알려진 맑스의 <<철학의 빈곤>>에서는 사회적 토대와 정치권력의 관계가 보다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것은 <<독일이데올로기>>를 집필하며, 토대와 상부구조와의 관계, 역사 발전의 동력 등을 포함하고 있는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 명확하게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길지만 관련 부분을 모두 인용한다.

 

이것은 낡은 사회가 전복된 이후에 새로운 정치권력으로 요약되는 새로운 계급 지배가 있게 될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제3신분, 즉 부르주아 계층의 해방의 조건이 모든 신분들 및 모든 계층들의 폐지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 계급 해방의 조건은 모든 계급의 폐지이다.

노동 계급은 자신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낡은 부르주아 사회를 계급들 및 계급들의 적대를 배제하는 연합으로 대체할 것이다. 정치권력이란 정확히 부르주아 사회 내의 적대 관계의 공식적 요약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적대 관계는 계급 대 계급의 투쟁이며, 이 투쟁이 최고의 표현에 도달했을 때 그것은 총체적 혁명이 된다. 게다가, 계급 대립에 기초해 있는 한 사회가 최후의 결말로서 격렬한 모순에, 백병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놀랄 만한 일인가?

사회적 운동이 정치적 운동을 배제한다고 말하지 말라. 동시에 사회적 운동이지 않은 정치적 운동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들 및 계급들의 적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태의 질서 속에서만 사회적 진화가 정치적 혁명이기를 중단하게 된다. 그때까지는, 즉 사회의 모든 전반적 개조의 전야에는 사회 과학 최후의 말은 항상 다음과 같을 것이다: “전투냐 죽음이냐: 피에 얼룩진 투쟁이냐 멸망이냐. 문제는 그렇게 엄정하게 제기된다.”(조르쥬 상드)13)

 

계급 적대에 근거한 정치권력은 계급들 및 계급 적대가 소멸하면 사라진다. 그리고 그 때까지의 투쟁은 정치적이며, 사회적이다. 우리는 위의 인용문에서 주제와 관련된 맑스의 사고가, 이전의 서술(특히, 1844년의 <<전진>>의 기사와 비교해 보라)에 비해 훨씬 구체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아직 계급의 소멸과 관련된 이행기 문제, 그리고 그 기간의 노동자 권력,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사고를 1947년 말의 저작들인 “공산주의자들과 칼 하인?”과 <<공산당 선언>>에서 찾을 수 있다. 엥겔스는 1847년 10월에 <<브뤼셀 독일어 신문>>에 기고한 “공산주의자들과 칼 하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문명국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라는 필연적 결과로 귀착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는 모든 공산주의적 방책들의 첫 번째 전제이다…(강조는 인용자)14)

 

그리고 엥겔스가 기초하고, 맑스와 엥겔스가 함께 집필한 <<공산당 선언>>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우선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해야만 하며, 국민적 계급으로 올라서야 하며, 스스로를 국민으로서 정립해야만 하기 때문에…(강조는 인용자)15)

 

우리는 이미 앞에서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 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의 쟁취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 도구들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신속히 생산력들의 양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발전 과정 속에서 계급적 차이들이 소멸되고 모든 생산이 연합된 개인들의 수중에 집중되면, 공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본래 의미에서의 정치권력이란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한 계급의 조직된 폭력이다. 만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필연적으로 계급으로 단결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를 지배 계급으로 만들고, 또 지배 계급으로서 낡은 생산 관계들을 폭력적으로 폐기하게 된다면, 그들은 이 생산 관계들과 아울러 계급 대립의 존립 조건들과 계급 일반을 폐기하게 될 것이고, 또 이를 통해 계급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배도 폐기하게 될 것이다.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가 나타난다.(강조는 인용자)16)

 

이상을 통해, 우리는 이 주제에 관련한 맑스와 엥겔스의 사고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의 주제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문제에 관한 그들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검토해 보자.

 

 

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 또는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언급을 넘어서, 명확하게 ‘프롤레타리아 독재(Diktatur des Proletariats)’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48년부터 49년의 혁명 이후이다. 이것은 아래와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사회주의는 혁명의 영속 선언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독재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독재는 계급차별 일반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계급차별이 근거하고 있는 전체 생산 관계들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생산 관계들에 조응하는 전체 사회적 연관들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사회적 연관들로부터 기인하는 전체 이념의 변혁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 경과점(Durch- gangspunkt)이다.(1849년-1850년 10월 집필)17)

 

…1. 계급들의 존재는 생산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들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 2.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된다는 것; 3. 이러한 독재 자체는 단지 모든 계급의 지양으로 가는, 그리고 계급 없는 사회로 가는 이행기를 이룰 뿐이라는 것…(1852. 3. 5. 집필)18)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차별 일반의 철폐로 가기 위한” 또는 “모든 계급의 지양으로 가는, 그리고 계급 없는 사회로 가는” 이행기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는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함께 등장하는 것이 계급차별, 계급차이, 계급의 지양, 계급철폐, 계급차별이 근거하는 전체 생산 관계 등인데, 이러한 것들과 이행기 및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간 설정 문제, 국가소멸의 문제 등이 연결되어,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관한 논쟁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특징 및 성격 등에 관한 문제 중 일부분을 먼저 다루기로 하자.

 

 

1)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성립 및 성격

 

맑스와 엥겔스는, 혁명이란 기존의 국가권력을 단순히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철저히 파괴하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게 창출되는 권력이 바로 새로운 노동자 정부,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1848년부터 49년의 혁명(그 연장선에서 루이 보나빠르뜨의 집권까지)의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정립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혁명은 철저하다. 혁명은 아직 연옥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혁명은 차근차근 자기 일을 수행한다. 1851년 12월 2일까지의 혁명은 준비 작업의 전반부를 완료했고, 지금은 후반부를 완료하고 있다. 혁명은 처음에 의회 권력을 완성함으로써 그것이 전복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 지금, 혁명은 집행 권력을 완성시키고 있다. 그것을 그 가장 순수한 표현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그것을 고립시키고 있다. 그것을 유일한 표적으로 세워놓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혁명이 자신의 모든 파괴력을 이 집행 권력을 향해 집중시키기 위해서이다…모든 변혁들은 이 기구를 파괴하는 대신에 그것을 완성하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배권을 다투던 당파들은 이 거대한 국가 건물의 점유를 승리자의 주요 전리품으로 간주하였다.(1851년 12월-1952년 3월 25일 집필)19)

 

그리고 그들은 1971년의 빠리 꼬뮌을 거치며, 이러한 자신들의 견해를 확고하게 재천명한다.

 

…당신이 나의 <<브뤼메르 18일>>의 마지막 장을 보면 발견할 것이지만, 나는 프랑스 혁명의 다음 시도는 더 이상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관료적-군사적 기구를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때려부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것이 대륙에서의 모든 현실적 인민 혁명의 전제 조건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영웅적인 빠리의 당 동지들의 시도이기도 합니다…20)

 

지난 25년 동안 상황이 아무리 많이 변했다 하더라도, 이 <<선언>>에 개진되어 있는 일반적 원칙들은 크게 보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완전히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저기 몇몇 군데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우선 2월 혁명의 실천적 경험 및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처음으로 2개월간 정치권력을 장악했던 빠리 꼬뮌의 실천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강령은 몇몇 군데에서 오늘날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특히 꼬뮌은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 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동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프랑스 내전. 국제 노동자 협회 총평의회의 격문>>, 독일어판, 19면을 보라.)…(강조는 인용자)21)

이처럼 그들은 1848년부터 49년의 혁명의 경험(그 연장선에서 루이 보나빠르뜨의 집권까지), 그리고 빠리 꼬뮌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노동자 권력은 기존의 국가 기구를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맑스는 빠리 꼬뮌의 경험을 분석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모습을 더욱 구체화했다. 사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풍부한 내용은 빠리 꼬뮌의 실천적 경험을 분석하며 나온 것이다. 그것 가운데 몇 가지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입법과 행정의 통일 ▲선출된 관료의 보수가 노동자 평균 보수를 넘지 않음 ▲모든 직책의 소환 가능(구속적 위임제) ▲자발적 중앙집권화 등등.22)

여기까지가 사실, 국가와 혁명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사고의 발전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살펴본 것이다. 처음에 정치적 혁명과 사회적 혁명을 구분했던 것으로부터 정치권력의 문제에 접근하고,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사고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나아가기까지, 그리고 그것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까지를 살펴본 것이다. 지금부터는 우리의 주제에 관한 그들의 이론을 중점적으로 검토해보자.

 

 

2)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기간 설정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부분은 그것의 기간 설정 문제와 국가 소멸의 문제이다. 기간 설정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단순히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행기로 본다는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사회주의 발전의 어느 단계에 놓여 있고, 그래서 그 사회의 발전을 위한 중점적인 방향과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설정하는 중요한 실천적 문제이다. 따라서 흐루쉬쵸프의 스딸린 비판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했던 중-쏘 논쟁은, 논쟁이 진행될수록 이 문제로 그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맑스와 엥겔스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 살펴보자.

 

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과제

 

노동자 계급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급으로 단결하고, 정치적으로 자신을 조직해서, 자본가 계급을 쓰러뜨리고, 그들의 국가기구를 분쇄해야 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되었다. 그렇지만, 자본가 계급을 타도했다고 해서, 그 날 바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완성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시작하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이행의 시기가 필연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때의 정치권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그들이 말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모든 계급의 지양으로 가는, 계급 없는 사회로 가는 이행기이며, 이러한 계급차별이 근거하고 있는 전체 생산 관계와 이 생산 관계들에 조응하는 사회적 연관들의 철폐로 가기 위한, 그리고 이 사회적 연관들로부터 기인하는 이념들의 변혁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 이행기이다.23)24)

따라서 이행기의 당면 과제는 이러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생산 관계를 바꾸어내는 것, 즉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것이 되어야한다. 맑스는 인터내셔널 창립 7주년에 즈음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꼬뮌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다. 꼬뮌은 계급 지배의 새로운 형태를 수립할 수 없었다. 모든 노동수단(means of labour)들을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이전하고 그를 통해 일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모든 개인들이 생활을 위해 노동하게 함으로써 억압의 현존하는 조건들을 파괴할 때, 계급지배의 유일한 기초와 억압은 제거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성취되기 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할 것이며, 그 첫 번째 조건은 프롤레타리아 군대였다…(강조는 인용자)25)

 

맑스는 여기서, 모든 노동수단을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이전하는 것, 즉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것, 그래서 계급지배의 유일한 기초를 제거하고, 모든 일할 능력이 있는 모든 인민들이 보편적으로 노동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 이행기의 임무라고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기간 설정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 맑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말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이다. 길지만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관련 부분을 모두 인용한다.

 

생산 수단을 공유 재산으로 하는 것에 기초를 둔 조합적 사회 내부에서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생산물들을 교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생산물에 사용된 노동이 이 생산물의 가치로, 즉 그 생산물이 보유하고 있는 어떤 물적 특성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반대로 개인적 노동이 더 이상 우회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총노동의 구성 부분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그 모호한 의미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는 ‘노동 수익’이라는 말은 모든 의미를 잃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관계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거꾸로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이며, 그러므로 그 모태인 낡은 사회의 모반이 모든 면에서, 즉 경제적, 윤리적, 정신적으로 아직도 들러붙어 있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이에 걸맞게 개별 생산자는 자신이 사회에 주는 것을― 공제 후에 ―정확이 돌려받는다…그는 어떤 형태로 사회에 준 것도 동일한 양의 노동을 다른 형태로 되받는다.

상품 교환이 같은 가치물의 교환인 한, 여기서는 분명히 상품 교환을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가 지배한다.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데, 그 이유는 변한 사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동 이회에는 어떤 것도 줄 수 없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 소비 수단 이외에는 어떤 것도 개별적인 소유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 생산자들 사이의 소비 수단의 분배에 관해 말하자면, 상품 등가물의 교환에서와 동일한 원리가 지배하여, 어떤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은 다른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과 교환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평등한 권리는 여전히― 원리상 ―부르주아적 권리이며, 상품 교환에서는 등가물의 교환이 평균적으로만 존재하고 개별적인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는 반면에 원리와 실제가 이제는 서로 머리채를 쥐고 싸우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와 같은 진보에도 불구하고, 이 평등한 권리에는 아직도 부르주아적 제한이 들러붙어 있다. 생산자의 권리는 그의 노동 제공에 비례한다; 평등의 요체는, 평등한 척도인 노동으로 측정된다는 데 있다…이것은 어떠한 계급 차이도 승인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각각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폐단은, 오랜 산고 끝에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방금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권리는 사회의 경제적 형태와 이 형태가 제약하는 문화 발전보다 결코 더 높은 수준일 수 없다.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서, 즉 개인이 분업에 복종하는 예속적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도 사라진 후에;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차적 생활 욕구로 된 후에;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조합적 부의 모든 분천이 흘러넘치고 난 후에― 그때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편협한 한계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게 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26)

 

맑스가 말하고 있는 공산주의 사회의 경제적 특징은 “생산 수단을 공유 재산으로 하는 것에 기초를 둔 조합적 사회”이다. 이는 그것의 첫 번째 단계나 높은 단계에서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첫 번째 단계에서는 “그 모태인 낡은 사회의 모반이 모든 면에서 아직도 들러붙어 있는 공산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개별 생산자는 자신이 사회에 주는 것을 ― 공제 후에 ― 정확히 돌려 받는다”, 즉 “소비 수단의 분배에 관해 말하자면, 상품 등가물의 교환에서와 동일한 원리가 지배”한다. 하지만 그 사회에서도 생산 수단은 분명하게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 소비 수단 이외에는 어떤 것도 개별적인 소유로 넘어갈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 역시 생산 수단은 그 형식이 국유의 형식이든, 집단적 소유의 형식27)이든, 그 누구의 개인적 소유물 즉 사적 소유물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산 수단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것은, 이전 사회에서 생산 수단의 소유에 따른 계급차이― 그것이 자본가이든, 노동자이든, 농민이든 ―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회에서는 생산 수단의 소유를 둘러싼 어떠한 계급차이도 없으며, “각각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두 “노동자”이다. 다만 그들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분업에 따른 것이며, 이것은 사회의 의식적인 노력과 생산력의 발달에 힘입어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사회에서는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 위의 인용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바이다.

 

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기간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행기의 과제와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분석함으로써, 그것들 간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의 지양으로 가는, 계급 없는 사회로 가는 이행기이며, 이를 위해 계급차이의 기초인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것, 그래서 모든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노동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는 “생산 수단을 공유 재산으로 하는 것에 기초를 둔 조합적 사회”이며, 이를 통해 “각각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두 “노동자”인 사회, 즉 계급차이가 사라진 사회이다. 따라서 맑스와 엥겔스가 말한 이행기는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한 기간, 다시 말하면 생산수단이 공유된, 그래서 계급이 없어진 사회를 준비하는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엥겔스가 말년에 저술한 <<임금노동과 자본>>의 1891년판 서문을 보면, 이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새로운 사회체계가 가능한데 거기에서는 오늘날의 계급차이가 소멸되며, 또 거기에서는― 아마 약간의 곤란은 있으나 그러나 어쨌든 도덕적인 면에서는 대단히 유익한 이행기를 지나 ―거대한 기존 생산력을 계획적으로 이용하고 가일층 발전시킴으로써 사회 성원 모두가 누구에게나 평등한 노동의무에서 생활수단, 향락수단, 일체 육체적 및 정신적 능력을 발전시키고 발휘시키는 수단을 더욱더 충분히 공동으로 처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가 이 새로운 사회체계를 전취하려는 결의에 더욱더 충만 되고 있다는 것은 대양의 양쪽에서, 내일로 임박한 5월 1일과 5월 3일의 일요일이 그것을 증명할 것이다.(강조는 인용자)28)

 

여기서 엥겔스는 분명하게 이행기를 지나, 거기에서는 계급차이가 소멸되고, 사회 성원 누구나 평등한 노동의무가 있으며, 기존의 생산력을 계획적으로 이용하고 가일층 발전시킴으로써, 개인들의 능력이 더욱 발전하며, 점점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타 강령 비판”의 다른 부분을 보자.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die Periode der revolutionären Umwandlung)가 놓여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상응하는 정치적 이행기가 있으니, 이때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29)

 

지금까지의 검토를 바탕으로, 이 인용문의 절반은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 인용문은 앞에서 언급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를 설정하고 있는 맑스의 “고타 강령 비판”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저작에서 언급되고 있는 공산주의 사회는 그 첫 번째 단계나 높은 단계나 공통적으로 “생산 수단을 공유 재산으로 하는 것에 기초를 둔 조합적 사회”이며, 이를 통해 “각각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두 “노동자”인 사회, 즉 계급차이가 사라진 사회이다. 따라서 이 문장을 통해 우리가 설정한 이행기의 기간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를 포괄하는 “공산주의 사회” 사이의 기간이다.30)

하지만 이에 상승하는 정치적 이행기, 이때의 국가,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부분은 아직 정확하게 해명되지 않았다. 이 부분까지 해명되어야 ‘이행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종합적인 사고가 가능하며, 이에 대한 정확한 상을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3) 국가의 사멸 혹은 지양에 관한 문제

 

우리의 주제와 관련된 논쟁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또 다른 부분이 바로 국가 사멸의 문제이다. 맑스주의는 국가의 본질이 계급 지배의 도구이며, 계급 억압의 도구라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따라서 생산수단의 공유와 더불어 계급이 사라지면, 그것의 억압 기구인 국가도 자연적으로 소멸하게 된다.

그런데 맑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 시기에 상응하는 정치적 이행기…이 때의 국가”31)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일종의 국가인 것이다. 물론 잘 아는 바와 같이, 그것은 소수의 지배 계급이 다수의 피지배 계급을 억압했던 지금까지의 국가가 아닌, 다수의 지배계급이 소수의 부르주아지를 억압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 즉 노동자 계급 자신의 국가이다.

그렇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일종의 국가라면, 생산수단이 공유되고, 계급이 사라지면, 그것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들어보자. 길지만 필요한 저작들을 다수 인용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 도구들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신속히 생산력들의 양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발전 과정 속에서 계급적 차이들이 소멸되고 모든 생산이 연합된 개인들의 수중에 집중되면, 공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본래 의미에서의 정치권력이란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한 계급의 조직된 폭력이다. 만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필연적으로 계급으로 단결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를 지배 계급으로 만들고, 또 지배 계급으로서 낡은 생산 관계들을 폭력적으로 폐기하게 된다면, 그들은 이 생산 관계들과 아울러 계급 대립의 존립 조건들과 계급 일반을 폐기하게 될 것이고, 또 이를 통해 계급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배도 폐기하게 될 것이다.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가 나타난다.(강조는 인용자)32)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무정부라는 말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목적인 계급의 폐지가 일단 달성되면, 대다수인 생산자를 얼마 되지 않는 소수인 착취자들의 멍에 아래 붙들어매는 데 이용되는 국가권력은 소멸할 것이며, 정부의 기능은 단순한 관리 기능으로 전화할 것이다…(강조는 인용자)33)

 

…그렇게 되면 계급차이와 특권은 자신들을 발생시킨 경제적 토대와 함께 사라질 것이며, 사회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으로 전화할 것이다. 타인의 노동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과거지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 자체와 구별되는 어떠한 정부나 국가 권력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강조는 인용자)34)

 

…계급 폐지 및 그에 따른 국가 폐지로의 이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필연성에 관한 독일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견해…(강조는 인용자)35)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가는 생산수단의 공유와 더불어, 계급차이ㆍ계급의 폐지와 더불어 소멸한다. 사회는 더 이상 억압의 도구인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산수단이 그것이 국유의 형태든 집단적 소유의 형태든, 사회적으로 공유되었다고 해서, 그래서 계급차이가 소멸되었다고 해서, 칼로 무 자르듯 그 날 바로 국가가 사라진다는 것이 가능할까? 맑스주의는 과학이다. 즉 철저하게 현실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고찰해서, 이론화한 것이며,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전망할 수 있는 것이다. 계급의 소멸과 함께 계급 지배의 도구인 국가는 ‘즉시’ 사라진다는 사고는 공상가들, 망상가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그와는 정반대로 맑스주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 권력을 장악하여 생산 수단을 우선 국가 소유로 전화시킨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자기 자신을 지양하며, 그리하여 모든 계급 차이와 계급 대립을 지양하고, 그리하여 국가로서의 국가도 지양한다…억압해 두어야 할 사회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자마자, 계급 지배와 아울러, 이제까지의 생산의 무정부 상태에 기초한 개체의 생존을 위한 투쟁과 아울러, 그로부터 생겨난 충돌과 폭행이 제거되자마자, 진압할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특수한 억압 권력인 국가를 필요한 존재로 만들었던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국가가 실제로 사회 전체의 대표자로서 취하는 최초의 행동―사회의 이름으로 생산 수단을 점유 획득하는 것―은 동시에 국가로서의 최후의 자립적 행동이다. 사회 관계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개입은 한 분야 한 분야에서 차례로 불필요하게 되어 나중에는 저절로 잠들게 된다. 사람들에 대한 통치 대신에 물건들의 관리와 생산 과정의 지휘가 등장한다. 국가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멸한다…(강조는 인용자)36)

 

…국가란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억압 기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이는 민주공화제에서도 군주제에서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국가는 기껏해야 하나의 악에 불과한 바, 계급적 지배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악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꼬뮌과 마찬가지로,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 상태에서 성장한 한 세대가 국가의 이 모든 폐물을 내던질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한 가장 신속하게 이 악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이 독재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싶은가? 빠리 꼬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였다.(강조는 인용자)37)

 

이처럼 국가는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이름으로 생산 수단”이 “점유 획득”된 후, 즉 생산 수단이 공유된 후, 그래서 계급 억압의 기구가 필요하지 않게 된 후, “국가 권력의 개입은 한 분야 한 분야에서 차례로 불필요하게 되어 나중에는 저절로 잠들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 상태에서 성장한 한 세대”의 몫이다. 그들이 “국가의 이 모든 폐물을 내던”지 될 것이다. 이것이 맑스주의가 말하고 있는, ‘국가 소멸’이다.

이렇게 맑스와 엥겔스는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국가를 이야기하며, 그 소멸의 시기를 생산수단이 공유되고 그래서 계급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어느 시기, 즉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의 어느 국면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의 사고 속에서 ‘국가 사멸’의 시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38) 앞서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계급차별 일반의 철폐”, “이 계급차별이 근거하고 있는 생산 관계들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행기임과 더불어, “이 생산관계들에 조응하는 사회적 연관의 철폐”, “이 사회적 연관들로부터 기인하는 이념의 변혁”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 이행기39)라고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전 사회의 토대를 변혁시킴과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기인하는 상부구조 또한 변혁해야 하는 필연적 경과점인 것이다.

또한 그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를 “모태인 낡은 사회의 모반이 모든 면에서, 즉 경제적, 윤리적, 정신적으로 아직도 들러붙어 있는” 공산주의 사회라고 이야기했었고, 이와 같은 폐단은 “권리는 사회의 경제적 형태와 이 형태가 제약하는 문화 발전보다 결코 더 높은 수준일 수 없”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 가서야 “완전히 극복”40)될 수 있다고 했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의 사고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토대의 변혁뿐만 아니라, 상부구조(사실 국가도 상부구조의 하나이다)의 변혁까지 완수해야 하며, 이러한 변혁이 완수되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때가 바로, 사회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접어드는 시점이라는 그들의 견해를 발견할 수 있다. 엥겔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사회 질서의 도입과 함께 국가는 저절로 해소되며 소멸된다고…국가는 사람들이 투쟁에서, 혁명에서, 적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기 위해 쓰는 일시적인 장치일 뿐이기 때문에…프롤레타리아트가 여전히 국가를 사용하는 한, 그것은 자유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자유가 화제로 될 수 있게 되자마자 국가로서의 국가는 현존하기를 중단합니다…(강조는 인용자)41)

 

이 문장은 위와 같은 그들의 사고 속에서 파악되어야, 그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그들의 사고를 레닌의 해석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42)

그런데 우리는 앞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기간 설정 문제에서 그것이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이는 그것을 사회구성체적 의미, 즉 토대의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그리고 앞의 ‘국가의 사멸’ 문제에서는, 그것의 정치적 의미 등 상부구조적 측면을 고찰하였다. 이렇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는 이 두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주의 발전의 각 단계에서의 경제적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토대와 상부구조 간의 모순, 상부구조 사이의 모순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4) 자본주의로부터 방금 생겨난 공산주의

 

그런데 맑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낸 공산주의 사회43)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방금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44)45)

 

이 역시 이행기의 두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 먼저 그것을 사회구성체적 측면, 즉 토대의 측면에서 고찰해 보자. 이때의 이행기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철폐하고, 생산수단을 공유하며, 그것에 기반하고 있는 계급차이를 폐지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기간이다. 따라서 이행기는 단일한 사회구성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생산수단이 공유된 새로운 사회구성체로 이행하는 기간46)47)인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를 거쳐 막 생겨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는, 이제 막 생산수단의 공유가 확립된 사회, 이제 막 새로운 사회구성체로 접어든 사회이다. 즉, 맑스의 표현대로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방금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이행기는 필연적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하루아침에 철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관계를 폐절하고, 그것을 국유의 형식 혹은 집단적 소유의 형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건설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쏘련에서는 1917년부터 36년까지 19년의 기간이 걸렸으며, 중국에서는 1949년부터 56년까지 7년의 기간이 걸렸다.

두 번째로 그것을 상부구조적 측면에서 고찰해 보자. 이러한 의미에서 이행기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로의 이행기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를 포괄한다.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는 생산수단이 공유화되고, 계급차이가 사라진 사회이지만, 여전히 전(前)사회의 모반이 남아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가 생산수단이 공유되어 있는 동일한 사회구성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것 간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는 이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로, 방금 생겨난 사회’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모택동의 ‘이행기=사회주의론’과 ‘사회주의에서의 계속 혁명론’의 사고가 맑스와 엥겔스의 그것에서 이미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

 

이상에서 검토한 것을 기초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도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즉,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이행기는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이며, 그것은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계급 지배의 기초인 기존의 생산 관계를 철폐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필연적 시기이다. 그것은 사회구성체에 의한 엄밀한 단계 구분에서 보면,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완료되는 시점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전화된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는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동일한 사회구성체이다.48)

이에 상응하는 정치 형태를 본다면, 프롤레타리아는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 기구를 파괴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이때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이다. 그것은 생산수단의 공유에 따른 계급의 폐지와 더불어, 계급 억압의 기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후, 점차 소멸하게 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끝나는 시점이 바로,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가 시작되는 시점이며, 나아가 이행기=사회주의라는 견해가 이미 그들의 사고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관점은 레닌의 견해를 검토하며,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위의 그림에서는 레닌을 통해 확인될 수 있는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일단 점선으로 표시해 두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① 맑스와 엥겔스가 말하고 있는 이행기는 사회구성체의 발전의 측면에서 고찰하면, 생산수단의 공유에 따른 계급의 폐지와 더불어 종결된다.

②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치권력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와 더불어 하루아침에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소멸에는 또 다른 일정기간이 필요하다.

③ 이 기간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토대를 변혁함과 동시에 상부구조도 변혁해야 한다는 것’49)과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의 차이’를 통해,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④ 그 결과 그들의 견해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끝나는 시점이 바로,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가 시작되는 시점이며, 나아가 이행기=사회주의라는 견해가 이미 그들의 사고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⑤ 이러한 견해는 맑스와 엥겔스에 대한 레닌의 해석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이 사회구성체의 변화 단계로서의 이행기와 정치적 상부구조로서의 이행기를 종합적으로 사고한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를 이렇게 사고할 때만이, 각 단계에 맞은 경제적 목표를 올바르게 설정할 수 있으며, 동시에 토대와 상부구조 간의 모순, 상부구조 사이의 모순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나침판으로 하여, 여기에 사회주의 건설에서의 발생했던 현실적 관계, 국제적 관계 등에 대한 사고가 더해져,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에 관한 맑스주의의 이론은 더욱 발전하게 된다.

 

 

[보론] 이행기에 대한 맑스-엥겔스 사고의 기초

 

1) 세계 혁명에 관한 맑스-엥겔스의 사고

 

맑스와 엥겔스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세계성에 근거하여, 세계 혁명을 사고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를 사고했던 것이다. 세계 혁명에 관한 그들의 언급을 들어보자.

 

…이것 없이는 1. 공산주의는 단지 하나의 지역성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며, 2. 교류의 힘들 자체도 보편적 힘들, 그리하여 견딜 수 없는 힘들로서 발전할 수 없을 것이고, 향토적ㆍ미신적인 ‘상황’에 머무르고 말 것이며, 그리고 3. 교류의 모든 확장이 지역적 공산주의를 폐지할 것이다. 공산주의는 경험적으로는 오직 주된 민족들의 ‘일거의’ 또한 동시적인 행동으로서만 가능하며, 이는 생산력들의 보편적 발전 및 그와 결부된 세계적 교류를 전제로 한다.(강조는 인용자)50)

 

…이 혁명은 어떤 한 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답: 아니다. 대공업은 세계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이미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 특히 문명화된 민족들을 상호 연결시켜서 어느 한 민족도 다른 민족에게서 일어나는 일과 무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혁명은 결코 일국적인 혁명이 아니라 모든 문명국들에서, 즉 적어도 영국, 아메리카, 프랑스, 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난 혁명이게 될 것이다…공산주의 혁명은 하나의 세계 혁명이며, 따라서 또한 세계적 지반을 가지게 될 것이다.(강조는 인용자)51)

 

…그리고 낡은 영국은 세계전쟁에 의해서만 전복되는 바, 이 세계전쟁만이 조직된 영국의 노동자당인 차티스트 당에게 그들의 거대한 억압자들에 맞서는 성과 있는 봉기를 위한 조건들을 제공할 수 있다. 차티스트들이 영국 정부의 꼭대기에 서 있을 때―그 순간에야 비로소 사회 혁명은 공상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옮아간다. 그런데 영국이 끼어든 유럽의 어떤 전쟁도 세계전쟁이다. 세계 전쟁은 이딸리아에서처럼 캐나다에서도, 프로이센에서처럼 동인도에서도, 도나우 강변에서처럼 아프리카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유럽의 전쟁은 프랑스에서의, 승리를 거두는 노동자 혁명의 최초의 결과이다.

프랑스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봉기, 세계전쟁―이것이 1849년의 내용 목차이다.52)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세계성에 근거해서 세계혁명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동시에 지금까지의 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이것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그 때까지 유럽에서의 혁명은 한 나라에서 시작해서 주변으로 확산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맑스와 엥겔스가 말하고 있는 ‘동시적’이라는 의미이다. 어떤 혁명이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같은 날짜 같은 시각에 동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극히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머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것이다. 이처럼 맑스와 엥겔스가 ‘동시적 세계혁명’이라 말하고 있는 것은, 대공업으로 인해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까지의 유럽 혁명의 경험이 그것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이렇게 사회주의 혁명은 주요한 공업국에서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확산되어 세계적 지반을 가지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1917년 10월, 사회주의 혁명은 1차 대전이라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전쟁의 한 가운데서 일어났으며, 비록 그것이 영국, 프랑스, 독일, 아메리카 등의 주요 공업국에서는 아니었지만, 자본주의의 모순이 결절된 약한 고리, 러시아에서 시작되어, 독일ㆍ헝가리ㆍ오스뜨리아 등의 유럽과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아시아의 여러 국가로 혁명의 파장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0월 혁명은, 러시아만을 남긴 채 다른 나라에서 패배하였고, 쏘련은 세계 혁명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우선 적들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했다.53) 그들은 자신이 가장 힘든 시기에도 독일 혁명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모든 힘과 자원을 제공할 것을 천명하였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프롤레타리아가 대내외의 억압자들과 투쟁할 수 있도록 식량과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러시아 노동자ㆍ농민의 의무라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54) 이후에도 쏘련은 세계 혁명의 과업을 위해, 수많은 식민지ㆍ반(半)식민지 국가를 지원하였으며, 또한 반파시즘 투쟁에서도 선두에 섰다. 일부에서는 스페인 내전기의 공화국 정부에 대한 쏘련의 지원을 폄훼하고 있으나, 혁명 스페인을 지지하고, 군사적으로 지원했던 유일한 나라가 쏘련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55) 쏘련의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었고, 쏘련이 대(對)독일전쟁에 승리를 거둔 2차 대전 이후, 이러한 노력과 세계 각국 인민의 힘을 바탕으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거대한 블록으로 형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자본주의와 대결해야 했고, 제국주의와의 대결에 자신의 많은 역량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맑스와 엥겔스가 사고했던 세계혁명과는 또 다른 양상이었다. 이러한 외부적 환경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는, 맑스와 엥겔스의 이론을 넘어 현실에 정확히 조응되어야 했다. 제국주의와의 대결 속에서의 이 문제를 진지하게 사고하고, 이것을 발전시켰던 사람이 현실사회주의 건설의 지도자 스딸린이었다. 우리는 이 지점을 ‘스딸린에 의한 이론의 발전’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 농업 및 농민 문제에 관한 맑스-엥겔스의 사고

 

맑스와 엥겔스는 많은 저작에서 농업의 문제와 농민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었다. 그들의 생각은 자본주의에 의해 소경영의 농업은 이미 파괴되고 있으며, 이러한 몰락하는 소농들에게 사회주의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사회주의자가 자신들의 편이라는 것,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회주의자와 손을 잡아야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농업 프롤레타리아트와는 강고하게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몰락을 목도하고 있는 소농에게 기계적 대규모 농업의 이점을 보여준다면, 이미 대규모하고 있는 농업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농업부문의 사회적 소유는 순탄하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들은 이러한 사고에 기초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서 중요한 부분인 농업부문의 사회적 소유의 문제, 농촌과 도시 간의 문제, 농민과 노동자 간의 문제, 농업과 공업 간의 문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간의 문제 등을 사고했고,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향해 사회가 발전해가면서, 분업이 점차 지양될 것이고, 그에 따라 이러한 문제들은 지양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와 관련해서 맑스와 엥겔스의 사고를 읽을 수 있는 몇 부분을 인용해 보자. 먼저 그들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더불어, 토지 국유화와 대규모 경작은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사회의 경제적 발전, 인구의 증가와 집중, 자본주의적 농업가로 하여금 집단적이고 조직된 노동을 농업에 응용하고 기계나 그와 유사한 발명품들에 의지하도록 강요하는 바로 그 상황 등이 점점 더 토지 국유화를 하나의 ‘사회적 필연’으로 만들고 있으며…우리가 지니고 있는 과학적 지식과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기계 등등의 농업 기술 수단들은 토지를 대규모로 경작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적으로 응용될 수 없다.56)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형태의 발전은 농업에서의 소경영의 생명력을 절단하였다; 소경영은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하고 쇠퇴해 갔다…사회주의 정당이 정권을 쟁취하는 일은, 가까운 장래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이 당은 우선, 도시에서 농촌으로 가야하며, 농촌에서 하나의 권력을 형성해야 한다…57)

 

노동자들은 농촌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러한 계획에 반대해 한다. 그들은 몰수한 봉건적 소유를 그대로 국유지로 만들어 그것을 노동자 집단 농장으로 전화시키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 노동자 집단 농장을 연합 농촌 프롤레타리아트가 대규모 경작의 모든 이점을 이용하여 경작한다면, 동요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들의 한가운데에서 공동 소유의 원리가 확고한 기초를 얻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자들이 농민과 연합하듯이 노동자들은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와 연합해야 한다.58)

…이와 마찬가지로 농촌노동자들은,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주요 노동 대상인 토지 자체를 대농민들의, 그리고 이들보다 더 큰 봉건 영주들의 사적 점유로부터 빼앗아 사회적 소유로 전화시키고 그것을 농촌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을 통해 공통의 계정으로 경작할 때에만, 자신들이 처한 끔찍한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바젤 국제 노동자 대회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결의에 다다른다: 토지 소유를 공동의 국민적 소유로 전화시키는 것은 사회에 이익이 된다. 이 결의는 주로, 대토지 소유 및 이와 연관되어 대농장 경영이 존재하고 이 대농장에 한 사람의 주인과 수많은 날품팔이들이 존재하는 나라들을 위해 작성되었다…59)

 

이상의 글을 통해, 앞에서 이야기했던 맑스와 엥겔스의 사고를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럼 현실 사회주의, 특히 쏘련에서 그것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러시아에서 볼쉐비끼는 앞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보여준 것처럼, 강고한 노농동맹에 입각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였고, 그러한 연대를 위해, 그리고 그렇게 연대한 소농을 적으로 돌리는 국영 농장의 건설을 전면화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먼저 집단화의 방식으로 농업부문의 사회화를 달성했다. 그리고 국영트랙터배급소(Machine Tractor Station, MTS)를 통해 그것의 기계화를 진행시켜 나가며, 대규모 농업과 기계화의 우수성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그러한 성과로 1928년 1.7%에 불과하던 국경 혹은 집단농장의 비율이, 1938년에는 95.5%에 달하고 있으며, 그것의 경작하는 농지의 면적은 총 농지 면적의 99.3%를 차지하게 되었다.60)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매우 조심스럽고 험난한 과정이었으며, 이러한 농업의 문제는 이후 쏘련의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여전히 애로점으로 작용했다. 사회적 소유의 형태가 국유와 집단화의 형태로 나누어져 있음61)으로 해서, 이들 사이의 모순으로부터 상당한 문제들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전 사회의 소유의 두 가지 형태와 노농동맹의 문제가 결합되어 발생한 문제이기에, 그것의 발생은 어떻게 보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고, 문제는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 모순의 원인인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지양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순들 가운데 농촌(농민, 농업)과 도시(노동자, 공업) 간의 문제, 정신노동과 육체노농 간의 문제 등은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에 따르면, 사회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즉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수록 지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후 수정주의자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모순을 지양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기계화의 주요한 조직을 MTS를 폐지하고, 중요한 계획의 통제 메커니즘을 없애버렸다. 이후 농ㆍ공산업의 독립채산제를 실시하고, 종국에는 1991년 12월, 농지개혁에 관한 ‘긴급조치’를 공포함으로써 국영농장과 집단농장을 해체하고, 그 토지를 공매하기 시작했다.62) 이것은 맑스와 엥겔스가 사고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의 전개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점들을 들어, 일부에서는 쏘련에서 사회적 소유가 완성되지 못했고, 따라서 쏘련은 잘해야 이행기일 뿐이고, 사회주의의 단계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쏘련뿐만 아니라, 현실에 존재했던 그리고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렇다고 왜장치고 있다. 그들은 현실의 사회주의가 왜 그러한 방법을 택하고, 그 길을 갔는지 전술한 이유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맑스와 엥겔스가 생산 협동조합의 의의와 한계를 다양한 기회를 통해 이야기했다는 점 또한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63)

또한 “농업, 광업, 제조업, 한마디로 모든 생산 부문들은 점차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조직될 것”이며, “생산 수단의 국민적 집중은, 공동의 합리적인 계획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들로 구성된 사회의 자연적 기초가 될 것”64)이라고 말한 것 역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고 속에서 그들은 공산주의 사회를 “생산 수단을 공유 재산으로 하는 것에 기초를 둔 조합적 사회”65)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이 생산 수단 사회화의 가장 주요한 방식으로 국유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생산 수단 사회화의 방식을 국유에만 한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인 것이다. 농민 문제에 관한 엥겔스의 언급들을 보자.

 

…중요한 것은, 우리는 협동조합적 소유와 경영으로의 전환을 통해서만 농민들의 가옥 소유와 경작지 소유를 구원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강조는 인용자)66)

 

…우리는 사회 전체에 환원된 대농장들을, 그것들을 현재 경작하고 있고 또한 협동조합으로 조직되게 될 농촌 노동자들에게 사회 전체의 통제 하에 이용할 수 있도록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강조는 인용자)67)

 

이것은 엥겔스가 소농과 농업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들과 이것에 비추어, 우리는 “생산 수단을” 국유의 형식으로 집단적 소유의 형식으로 “공유 재산으로 하는 것에 기초를 둔 조합적 사회”68)를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그것이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면, 당신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맑스주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2. 레닌의 견해

 

가. 레닌의 <<국가와 혁명>>

 

1) 집필의 배경과 내용

 

<<국가와 혁명>>은 1916년 가을부터 1917년 초까지 망명 중이었던 쮜리히 도서관에서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을 연구한 성과인 <<맑스주의 국가론>>을 기초로, 1917년 8월에서 9월 사이 임시정부의 탄압으로 피신 중이었던 핀란드의 오두막에서 집필되었다.

당시는 러시아에서 혁명이 진행 중이었던 상황이었고, 사회주의 혁명이 목전에 있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레닌에게 국가의 문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문제는 당면한 실천적 문제였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의 초판 서문(1917. 8.)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국가와 프롤레티라아 독재에 관한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당의 입장 문제는 정치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대중이 자본의 멍에를 벗어던지기 위해 가까운 장래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대중에게 설명하는 문제로서 그 이상 아무 것도 필요치 않을 정도로 화급한 성격의 문제이다.69)

 

레닌은 이 저작에서 카우츠키, 베른슈타인 등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된 맑스주의 국가론을 복원하고, 국가의 본질, 폭력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성격과 내용,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국가사멸의 경제적 토대에 대해 풍부하게 논의하며, 맑스와 엥겔스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 대한 레닌의 견해를,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국가와 혁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폭력혁명론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분석하며, 부르주아 국가는 그들이 ‘기존의 국가기구의 분쇄’를 말한 것처럼, 폭력혁명을 통해 폐지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반면에 노동자 계급의 국가,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소멸하는 것이라고 명확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레닌이 이 같은 맑스주의의 기본적인 사상을 재차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에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이 거세되고, 국가기구를 평화적으로 인수해서 개조할 수 있는 것처럼 사고하는 것이 사회주의 진영에 팽배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이러한 기본적인 사상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지금 우리 운동 진영의 한 쪽에서 이러한 사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르주아 국가는 ‘사멸’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폭력혁명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 국가(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의해서)로 대체된다…폭력혁명 없이 부르주아 국가를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할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 국가, 즉 국가일반의 폐지는 사멸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70)

 

지난 촛불정국에서 우리는 ‘비폭력’이라는 구호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위에서 인용한 레닌은 말은 그들의 왜장질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폭력’에 관한 엥겔스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문: 사적 소유의 폐지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가능하게 될 것인가?

답: 그렇게 되면 좋을 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은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덜 반대할 것이다.71) 공산주의자들은 일체의 음모가 무익할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이 의도적으로 또 자의적으로 일으켜지는 것이 아니며, 혁명들이란 언제 어디서나 개별적인 당파들이나 계급 전체의 의지 및 지도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는 정세의 필연적인 결과들이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그들은, 거의 모든 문명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이 폭력적으로 억압되고 있으며 공산주의자의 반대자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혁명을 목표로 전력투구하는 셈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일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로 인해 마침내 혁명으로 내몰리게 된다면,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지금 말로써 옹호하는 것 못지않게 행동으로써 프롤레타리아들의 과업을 옹호할 것이다.(강조는 인용자)72)

 

…나는 현재 상황에서 노동자가 오로지 부르주아지에 대한 증오와 폭동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인간성을 구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앞에서 수많은 예로 입증하였고 또 다른 예를 들어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다…(강조는 인용자)73)

 

 

나.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

 

레닌은 이행기의 기간 문제에 있어서, 맑스와 엥겔스가 설정했던 바와 동일하게,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설정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풍부하고 다양한 정치적 형태”들이 있지만, 그 본질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74)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같은 의미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정치적인 이행기’ 없이는 불가능”한데, 그 시기의 “국가”는 “단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일 수밖에 없다”75)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착취자들의 반동적인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외에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76)

그런데 여기서 레닌은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민주주의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가?77)라고 물으며,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에 민주주의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길지만 논의의 전개를 위해 모두 인용한다.

 

…공산주의로의 이행시기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최초로 착취자와 소수에 대한 필연적이 억압과 더불어서 인민을 위한, 대다수를 위한 민주주의를 창조하게 될 수 있으며, 그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되면 될수록 빨리 그 민주주의는 필요 없게 되면서 스스로 사멸되어 버릴 것이다.(강조는 인용자)78)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동안에도 억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억압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착취하던 소수에 대한 착취당하던 다수의 억압이다. 억압을 위한 특수한 장치이며 기구인 ‘국가’가 아직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도 이행하고 있는 국가이다. 그것은 이전까지의 단어가 지녔던 의미로서의 국가가 아니다…대다수인 인민을 다 포괄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것과 그것이 함께 보조를 맞추므로 억압을 위한 특수한 기구의 필요성은 점차 사라져 갈 것이다.(강조는 인용자)79)

 

대다수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 그리고 무력에 의한 억압, 즉 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의 자유를 배제하는 것―이것이 곧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변화된 민주주의이다.

오로지 공산주의 사회에서, 즉 자본가들의 저항이 완전히 분쇄되고 자본가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고 계급이 없는 사회(다시 말해서 사회적 생산수단과 관련짓고, 그에 따라서 사회의 구성원들을 구분짓는 것이 사라진 때)에서, 바로 그 때에 이르서야만 ‘국가는…존재하지 않게 되고’, ‘자유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오로지 그 대야 그 어떠한 단서조항도 붙지 않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해지고 실현될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 때에야 민주주의는 사멸되기 시작할 것이다…그 때에 이르면 인민들은 무력 없이도 그리고 강압이나 복종이나, 국가라고 불리우는 강압을 위한 특수기구가 없이도 그러한 규칙들을 준수하는 데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80)

 

…오직 공산주의만이 국가를 완벽하게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억압받는 사람이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으며―하나의 계급이라는 의미에서의 ‘그 누구도’, 즉 대중의 어느 일정 부분에 대항하여 체계적인 투쟁을 벌이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81)

 

위와 같이, 레닌은 민주주의의 문제와 국가 사멸의 문제를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레닌의 견해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럼 레닌은 ‘국가 사멸’의 문제를 어떻게 사고하고 있을까?

 

 

다. 국가 사멸의 조건

 

1)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 관한 레닌의 견해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의 입장과 동일하게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맑스가 개념 규정한 ‘최초의’, 또는 보다 낮은 국면의 공산주의 사회란 바로 위와 같은 사회, 즉 자본주의라는 모태에서 나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고, 또한 그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아직도 구사회의 모반이 남아 있는 사회를 말한다.

생산수단은 이제 더 이상 개인들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그 때에 생산수단은 전체 사회에 속하게 된다.(강조는 인용자)82)

 

즉, 그 사회는 구사회의 모반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생산수단의 소유제도와 관련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평등이 실현”83)된 사회이며, “모든 시민들은 무장된 노동자로 구성된 국가의 고용원으로 전화”된, 즉 “모든 시민들은 전국적인 단일 ‘신디케이트’의 고용원이나 노동자”가 된 사회이다. “자본가들” 역시 여기에서는 “고용원으로 전화”되었다. 따라서 인민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란 “그들이 동등하게 일해야 하며, 적절한 양의 노동을 분담해야 하고, 동등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전부”84)인 사회, 이것이 레닌이 말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이다.

레닌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서 생산수단의 공유와 더불어, 계급은 폐지되고 모든 사람은 동등한 노동자가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사회주의)에서 국가는 사멸하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맑스는 인간 사이에는 불가피하게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주 견실한 입장에서 고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을 사회전체의 공동재산으로 단순히 이전시킨다는 것(일반적으로 ‘사회주의’라고 불리우는)만으로는 생산물이 ‘수행한 노동의 양에 따라’ 분배되는 한 계속해서 지배적으로 남아 있는 ‘부르주아적 권리’라는 불평등과 분배의 결함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그래서 (흔히 사회주의라고 불리우는) 공산주의 사회의 첫째 국면에서는 ‘부르주아적 권리’가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는다…85)

 

더 이상 그 어떠한 자본가들과 계급들도 존재하지 않게 되면 국가도 사멸하게 되며, 그 결과 그 어떠한 계급도 억압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부르주아적 권리에 대한 보호가 여전히 존재하고 실질적인 불평등이 인정되는 한, 국가는 아직 완전히 사멸한 것이 아니다. 국가가 완전히 사멸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공산주의가 필요하다.(강조는 인용자)86)

 

위의 두 인용문을 연결해서 읽어보자.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생산수단을 공유화한다는 것만으로는 부르주아적 권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며, 부르주아적 권리에 대한 보호가 여전히 존재하고 실질적인 불평등이 인정되는 한, 국가는 완전히 사멸한 것이 아니다. 즉,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사회주의)에서 국가는 완전히 사멸하지 않는다. 이것이 앞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에서 레닌의 해석을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한,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럼 레닌은 어떤 점에서 맑스와 엥겔스의 이론으로부터, 이러한 견해를 명확하게 도출해 낼 수 있었는가?

 

 

2) 국가 사멸의 조건

 

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의 차이

맑스의 “고타 강령 비판”을 통해, 우리는 그가 말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들 사이에는 일단 공통점이 있다. 둘 모두 “생산 수단을 공유 재산으로 하는 것에 기초를 둔 조합적 사회87)라는 것이다. 즉, 양자는 동일한 사회구성체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해 둘 것은 그들의 공통점만큼, 그들의 차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에서 ‘국가 소멸’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먼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는 “자기 자신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이며, 그러므로 그 모태인 낡은 사회의 모반이 모든 면에서, 즉 경제적, 윤리적, 정신적으로 아직도 들러붙어 있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따라서 “개별 생산자는 자신이 사회에 주는 것을— 공제 후에 —정확히 돌려받는”데, “그는 자신의 노동 이외에 어떤 것도 줄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사회에 주었던 것은 자신의 개인적 노동량”이며, 이를 기준으로 “개별 생산자들 사이의 소비수단의 분배”에서 “상품 등가물의 교환에서와 동일한 원리가 지배”한다. 즉, “어떤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은 다른 형태의 동일한 만큼의 노동과 교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회는 여전히 부르주아적 권리가 남아 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인데, 권리는 사회의 경제적 형태와 이 형태가 제약하는 문화 발전보다 결코 더 높은 수준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이다.

그런데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사라지고, “노동이 일차적인 욕구”가 되며, “개인들이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조합적 부의 모든 분천이 흘러 넘치”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에서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권리가 극복되고,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분배 받는 사회가 된다.

이상이 공산주의의 두 국면의 차이인데,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권리는 사회의 경제적 형태와 이 형태가 제약하는 문화 발전보다 결코 높은 수준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적 권리가 극복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생산력이 더욱 발전해야 하며, 그로부터 분업이 지양되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지양되어야 하며, 이러한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노동이 일차적 욕구가 되어야 한다. 즉, 생산수단의 공유만으로 부르주아적 권리를 극복할 수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높은 생산력의 발달과 그것에 조응하는 상부구조의 변혁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맑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전 사회의 토대를 변혁함과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기인하는 상부구조도 변혁해야 하는 필연적 경과점’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 국가 사멸의 조건에 관한 레닌의 견해

 

이러한 과정 속에서 레닌은 국가사멸에 관한 그의 견해를 도출하고 있는데,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이와 관련한 장의 제목을 ‘국가사멸의 경제적 토대’라고 정했을 만큼, 이러한 조건을 선차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경제적 토대이며, 생산력의 발전이다. 사실 부르주아적 권리가 여전히 잔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생산력이 그것을 제거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러한 생산력의 미발달로 인해, 분업이 잔존하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잔존하며, 여타의 제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레닌은 이것들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국가의 완전한 사멸을 위해서는, 정신노동과 육제노동 간의 대립이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근대의 사회적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 중의 하나― 더구나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로의 단순한 전환이나 자본가들로부터의 단순한 몰수에서는 즉각적으로 제거될 수 없는 근원 ―가 사라지는 공산주의의 보다 높은 단계라는 경제적 토대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몰수는 생산력이 고도의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자본주의가 이제껏 이러한 발전을 방해해왔던가를 알게 되고, 이제껏 축적된 기술수준을 바탕으로 얼마만큼 진전이 이뤄질 수 있는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자본가들에 대한 이러한 몰수가 필연적으로 인간사회의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이러한 발전이 진행될 것인가와, 얼마나 빨리 노동의 분업에서 깨쳐 나오고,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대립을 없애고, 노동을 ‘삶의 제일 욕구’로 전환시키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며, 알 수도 없는 것이다.88)

 

여기에 생산력의 미발달과 그로 인해 노동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생활을 위한 의무로 되어 있는 상태, 그리고 그러한 제약 때문에 여전히 부르주아적 권리가 잔존하고 있는 상태 또한 말해져야 한다. 레닌은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서 국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서,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서’라는 규칙을 그 사회가 완전히 접수할 때, 다시 말해서 인민들이 사회적 교류의 기본 규칙들을 준수하는 데 익숙해질 때, 그리고 그들의 노동이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노동할 만큼 아주 생산적으로 되었을 때, 국가는 완전히 사멸하게 될 것이다.89)

 

이렇게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는 “아직 경제적으로 충분히 완성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적이 전통과 유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따라서 “첫째 국면에서의 공산주의는 ‘부르주아적 권리의 편협한 지평’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소비재의 분배에 관련하여 부르주아적 권리는 불가피하게 부르주아 국가의 존재를 전제”하게 된다. 왜냐하면, “권리란 권리의 기준에 대한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장치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한 동안 부르주아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는 없지만 부르주아적 국가도 계속해서 남”90)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레닌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르주아적 권리”로 인해,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보호할 동안에 노동과 생산물의 분배에 있어서 평등을 보호할” 국가의 “필요성이 여전히 남게”91)되며, “‘보다 높은’ 국면의 공산주의가 도래하기까지는, 노동정책과 소비정책에 대한 사회와 국가의 최고로 엄격한 통제가 요구”된다. 이것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바로 “무장한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국가”92)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레닌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되었던 국가 소멸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문제에 관한 레닌의 언급을 살펴보자.

 

모든 사회구성원, 또는 적어도 대다수가 국가를 자신들이 관리하도록 배우게 되고, 이 작업을 자신들의 손으로 하게 되고, 극소수 자본가와 자본가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무리들과 자본주의에 깊숙이 매수된 노동자들을 조직적으로 통제하게 되는 순간부터―바로 이 순간부터 그 어떠한 종류의 정부도 그 필요성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민주주의가 완전해지면 완전해질수록 민주주의가 불필요하게 되는 순간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무장한 노동자들로 구성되고 ‘더 이상 고유한 의미로서의 국가’도 아닌 ‘국가’가 점점 민주적으로 될수록 점점 더 급속하게 모든 형태의 국가는 사멸되기 시작한다.(강조는 인용자)93)

 

여기에서는 우리가 앞에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로 살펴보았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미성숙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여기에는 중요한 부분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극소수 자본가와 자본가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무리들94)과 자본주의에 깊숙이 매수된 노동자”의 존재이다. 물론 레닌은 생산수단의 공유와 더불어 계급은 소멸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것에 조응하는 상부구조가 변혁되지 않음은 누차 이야기했었다. 바로 여기에서 레닌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95)

이상에서 레닌이 어떤 점에서 국가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며, 국가의 완전한 사멸은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을 선차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생산력의 발달이며, 그리고 이에 조응해서 분업이 지양되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의 지양되며, 노동이 삶의 제일의 욕구로 될 때,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부르주아적 권리가 극복될 때, 비로소 국가는 사멸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위에서 보듯이, 이러한 것을 선차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생산력의 발달이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확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상부구조는 다시 토대에 영향을 미치며, 상부구조 간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생산력만 발달한다면 마치 분업이 지양될 수 있을 것처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지양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이렇게 사고하게 된다면, 우리는 생산력주의, 수정주의로 빠지게 된다.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는 주요하게 생산력의 차이와 그에 따른 제 결과로 구분되지만, 즉 생산력이 1차적 구분점이지만, 그것에 따른 제 결과들, 상부구조의 문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해서 급속하게 생산력을 높여야 하지만, 그에 수반되는 분업의 문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과의 대립, 농촌과 도시의 문제 등도 의식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에서 그것의 사회구성체적 의미와 상부구조적 의미를 동시에 파악할 때만이 올바른 노선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라. 레닌의 견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 관한 레닌의 견해를 도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레닌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① 레닌은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기에 생산수단의 공유와 계급의 폐지가 이루어진다. 즉, 국가존립의 조건은 사라진다.

② 하지만 그것만으로 국가는 사라질 수 없다. 여기서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의 논의를 면밀하게 분석하며, 맑스와 엥겔스가 이야기했던 것을 정확한 의미로 되살리고 있다. 그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의 차이점에서 그것을 찾고 있는 것인데, 즉 그것의 생산력의 차이와 그로부터 여전히 존재하는 부르주아적 권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의 상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미성숙 등으로 인해 여전히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사회주의)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시점이 바로 공산주의가 높은 단계로 들어선 시점이며, 국가가 소멸한 시점이다. 즉, 국가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발전에 따라 소멸되는 것이며, 그것이 소멸된 시점이 바로 높은 단계에 공산주의에 들어선 시점인 것이다. 이것이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해석한 레닌의 관점이다. 따라서 맑스와 엥겔스의 그림에서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여기서는 명확하게 실선으로 표시되었다.

③ 그런데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레닌의 견해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중심에 맞추어서 보면, 그가 말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간은 정확하게 ‘이행기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사회주의)’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행기의 문제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중심으로 두고 본다는 것은 토대에서 발생한 상부구조를 중심으로 본다는 것이고, 토대와 상부구조의 모순, 상부구조 사이의 모순을 중심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의 이행기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공산주의)로 가는 기간일 것이다.96)

④ 이상을 종합하여, 이행기의 문제는 생산수단을 공유화하고, 계급을 철폐하는 경제적 측면과, 사회주의 단계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부르주아적 권리,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대립, 전사회로부터 잔존하는 찌꺼기들(부르주아적 정신, 자본가적 습성, 이러한 것들로부터 나오는 계급은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계급대립, 반동음모 등)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 그러면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측면97)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견해는 분명 맑스와 엥겔스에서 찾을 수 있고, 그것을 더욱 명확하게 해 놓은 것이 레닌임을 앞의 분석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

 

 

마. 이론가이자, 정치가로서의 레닌

 

하지만 많은 이들이 레닌의 이러한 해석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며, 레닌 스스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레닌은 어떤 글에서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를 어떤 글에서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어떤 글에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까지를 이행기로 이야기하는 듯하다가, 또 어떤 글에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까지를 이행기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전술한 이행기의 두 측면을 종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레닌이 최고의 이론가이자 동시에 최고의 실천가, 정치가였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일 것이다. 다음의 글을 보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일정한 과도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이 과도기는 이들 두 개의 사회경제제도의 특징과 특질을 하나로 결합하고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즉 이 과도기는 사멸해 가고 있는 자본주의와 생성되어 가고 있는 공산주의 사이의 투쟁의 시기, 다시 말해 패배하기는 하였지만 완전히 절멸되지 않은 자본주의와, 생성되기는 하였지만 아직 매우 미약한 단계에 있는 공산주의 사이의 투쟁의 시기이다.98)

 

여기서 레닌은 공산주의를 하나의 사회구성체의 측면에서 보고 있다. 즉, 여기서 ‘공산주의’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를 포괄’하는 의미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과도기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로 가는 이행기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앞에서 확인 바와 같다.

그런데 아래의 글에서 레닌은 우리가 여러 번 그의 입장을 확인 바와 전혀 다르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에서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아닌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수정주의자 흐루쉬쵸프가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많이 인용한 글로 알려져 있다.99)

 

우리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이상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려면 국가가, 즉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승인해야 한다. 강제의 형식은 그 혁명적 계급의 발전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예컨대 장기간에 걸친 반동적인 전쟁의 유산과 같은 특수사정에 따라서, 그리고 또 부르주아지나 소부르주아지의 반항형태에 따라서 결정된다. 따라서 쏘비에트 (즉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개개인이 독재자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원칙적인 모순도 전혀 없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부르주아 독재와 다른 점은, 전자가 다수의 피착취자를 위하여 소수의 착취자에게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독재를― 개인을 통해서도 ―실현시키는 것은 단지 피착취 근로대중만이 아니라, 이런 대중을 역사적 창조활동에로 지향케 하며 그것을 위해 궐기하도록 만들어진 조직(쏘비에트 조직은 이런 조직에 속한다)이기도 하는 점이다.(강조는 인용자)100)

 

그러므로 맑스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한 시기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강조는 인용자)101)

 

여기에서 우리는 정치가로서의 레닌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그는 누누이 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존재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소멸하는 때가 높은 단계로 공산주의가 들어선 시점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글은 이러한 목적에서 씌어진 것이다. 우리는 레닌의 글을 읽을 때, 이러한 점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이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에 관한 레닌의 견해를 검토하였다. 이제 스딸린과 모택동에 의한 이론적 발전을 검토해보자.

 

 

3. 스딸린에 의한 이론의 발전102)103)

 

가. 사회주의 체제의 완전한 승리,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

 

스딸린은 1936년 헌법을 통해,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확립되었음을 선언한다. 이것은 19년에 걸친 장기간의 과정이었고, 그야말로 그 사회 지도자들과 인민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런 까닭에 국민경제의 모든 영역에서의 사회주의 체제의 완전한 승리는 현재 하나의 사실이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폐지되고 근절된 반면 생산의 도구 및 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가 우리 쏘비에트 사회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로서 확립되었다는 것을 뜻한다.104)

 

그리하여 스딸린은 쏘련이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 들어섰음을 선언하였다.

 

우리 쏘비에트 사회는 주요하게는 사회주의를 성취하는 데 이미 성공했다; 우리 쏘비에트 사회는 사회주의 체제를 창출했다, 다시 말해 맑스주의자들이 다른 말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또는 낮은 단계라고 부르는 것을 해냈다. 그러므로, 주요하게 우리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 사회주의를 성취했다…105)

 

이제 사회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한 시대의 주요한 목표인 생산수단의 공유화는 달성되었었다. 이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 즉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가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앞서 이행기의 문제를 사회구성체의 측면과 상부구조의 측면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때, 그것의 정확한 상을 잡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우리는 이것을 바로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양자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즉, 모든 시기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로 나아갈 때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즉,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이 시기의 주요한 임무가 있지만,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발전 등 위한 노력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다. 스딸린은 1936년 U.S.S.R. 헌법 초안에 관한 연설106)에서 “강령은 주로 미래를 다루고, 헌법은 현재를 다룬다”며, ‘헌법 초안의 주요한 특징적 측면들’에서 쏘련이 성취한 것들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길지만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모두 인용한다.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은 쏘련에서 자본주의 체제는 청산되었으며 사회주의 체제가 승리하였다는 사실로부터 나아간다.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의 주요한 기초는 그 주요한 기둥이 이미 성취되고 실현된 것들― 토지, 임야, 공장, 작업소, 그리고 그 밖의 생산 도구 및 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 착취 및 착취 계급들의 폐지; 대다수의 빈곤 및 소수의 사치의 폐지; 실업의 폐지; “노동하지 않는 자는 또한 먹을 수도 없다”는 정식에 따라 모든 능력 있는 시민들의 의무적이고 명예로운 의무로서의 노동; 노동할 권리 즉 모든 시민들이 고용을 보장받을 권리; 쉬고 여가를 즐길 권리; 교육의 권리 등등 ―인 사회주의의 원칙이다. 새로운 헌법의 초안은 이러한 것들과 이와 유사한 사회주의의 기둥들에 의지한다. 초안은 그것들을 반영하며, 그것은 법률로 구체화된다.(강조는 인용자)107)

 

새로운 헌법 초안의 다섯 번째 특징적인 면은 그것의 일관되고 철저한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부르주아 헌법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한 그룹의 헌법은 시민의 권리의 평등과 민주주의적 자유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거나 또는 실제로 무의미하게 만든다. 다른 그룹의 헌법은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광고하기까지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유보조항을 달고 이러한 민주주의적 권리 및 자유를 완전히 절단하는 제한을 규정한다108)…쏘련의 헌법 초안이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그러한 유보조항과 제한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이다…이 사실로 인해, 모든 시민들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사회에서의 모든 시민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재산 상태, 민족적 뿌리, 성, 직위가 아니라 개인적 능력과 개인적 노동이다.(강조는 인용자)109)

 

마지막으로, 새로운 헌법 초안의 특징적인 면이 아직 한 가지 더 있다. 부르주아 헌법은 이러한 권리들의 실행을 위한 조건, 그것들을 실행할 기회, 그것들이 실행될 수 있는 수단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시민의 공식적 권리를 진술하는 데에 그 자체를 제한시키는 것이 보통이다…시민의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지주와 농민 사이의 진정한 평등은, 만약 전자가 사회의 부와 정치적 비중을 가지는 반면, 후자가 둘 다를 박탈당한다면, 전자가 착취자인 반면, 후자가 피착취자라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한다. 또 다른 한 편: 부르주아 헌법은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 모든 자유는 만약 후자가 집회를 위한 적합한 평지, 훌륭한 인쇄소, 충분한 양의 종이 등에 접근할 수 없다면 노동계급에게 단지 공허한 소리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다.

새로운 헌법의 초안이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시민들의 공식적 권리를 진술하는 데에 그 자체를 제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권리들의 보장물, 이러한 권리들이 실행될 수 있는 수단을 특별히 강조한다는 사실이다…초안은 민주주의적 자유를 단지 공포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물질적 방책을 규정함으로써 그 자유를 입법적으로 보장한다…(강조는 인용자)110)

 

위의 인용문들을 통해, 우리는 쏘련에서 앞서 말한 이행기의 두 측면이 정확하게 종합적으로 사고되어, 정책에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측면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이 누차 강조했던 바와 같이, 공산주의 첫 번째 단계에서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행해 나아갈 때도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며, 핵심적인 부분이다. 스딸린은 이 부분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주요하게는 이러한 것들이 1924년부터 1936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에 우리의 경제의 영역에서 일어났던 변화이다. 쏘련의 경제에서의 이러한 변화들에 조응하여 우리 사회의 계급구조 역시 변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지주 계급은 내전의 승리적 결말의 결과로서 이미 근절되었다…공업의 영역에서의 자본가 계급은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농업의 영역에서 쿨락 계급은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상업의 영역에서의 상인과 부당 이득자는 존재하기를 멈추었다. 이런 까닭에 모든 착취 계급이 현재 근절되었다.111)

 

하지만,

 

노동계급이 남아 있다. 농민계급이 남아 있다. 인텔리겐챠가 남아 있다.112)

 

생산수단이 공유된 사회에도 여전히 계급이 남아 있다? 스딸린은 어떤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그룹들이 이 시기 동안에 어떠한 변화도 겪지 않았고 그 그룹들이 그것들이 예전에, 자본주의의 시기에 존재했던 것과 동일하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예를 들어, 쏘련의 노동계급을 보라…생산의 도구 및 수단이 자본가들로부터 인수되어 국가, 그 지도적 세력이 노동계급인 국가에 양도되었다. 따라서 노동계급을 착취할 수 있는 자본가 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우리의 노동계급은 생산의 도구 및 수단을 박탈당하고 있기는커녕 반대로 전체 인민과 공동으로 그것들을 소유한다…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의 노동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로 불리울 수 있는가? 명백히, 그럴 수 없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 계급을 분쇄하고 자본가들로부터 생산의 도구 및 수단을 인수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발생시키는 생산의 조건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쏘련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해방을 위한 이러한 조건을 이미 일으켰다고 말해질 수 있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게 말해질 수 있고 또 말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쏘련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생산의 도구 및 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립하여 쏘비에트 사회를 공산주의로 가는 길을 따라 지도하고 있는 전적으로 새로운 계급으로, 쏘련의 노동계급으로 변신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쏘비에트 농민은 전적으로 새로운 농민이다. 우리나라에는 농민들을 착취할 수 있는 어떠한 지주와 쿨락, 상인과 고리대금업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농민은 착취로부터 해방된 농민이다. 나아가 우리의 쏘비에트 농민, 그 압도적 다수는 집단농장의 농민이다…우리의 농민 경제는 사적 소유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노동의 기초 위에서 성장해 온 집단적 소유에 기초한다…쏘비에트 농민은 전전으로 새로운 농민, 인류의 역사가 이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농민이다.

…인텔리겐챠 역시 이 시기 동안에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우리의 쏘비에트 인텔리겐챠는 바로 그 뿌리를 노동계급과 농민에 근거하고 있는 전적으로 새로운 인텔리겐챠이다…113)

 

여기에서 스딸린은 경제에 변화들에 조응하여, 변화된 계급구조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노동계급, 농민계급은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그것과 동일한 의미로서의 그러한 계급이 아니다. 그가 이 부분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그토록 이야기했던 바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의 차이, 바로 그것이다.

스딸린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그것의 생산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황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여전히 분업이 지양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즉 노동자와 농민, 인텔리겐챠 사이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위와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생산수단의 공유와 더불어 누구도 착취할 수 없지만, 분업에 따른 그들이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스딸린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해 생산력을 발달시키면서, 동시에 그로부터 발생되고 있는 이러한 한계점들을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계급으로 구성될 수 없는 인텔리겐챠114)를 이 부분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즉, 이 삼자의 차이는 분업에 따른 차이이고, 스딸린은 이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115)

이것이 스딸린이 맑스와 엥겔스, 레닌이 말하고 있는 이행기의 두 측면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모두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음을 보자.

 

무엇보다도 먼저 헌법 초안의 1항에 대한 수정에 관해서. 거기에는 네 가지의 수정이 존재한다. 일부는 일부가 “노동자와 농민의 국가”라는 말을 “노동 인민의 국가”라는 말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사람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국가”라는 말에 “그리고 노동 인텔리겐챠”라는 말을 추가할 것을 제안한다. 세 번째 그룹은…“쏘련의 영토에 거주하는 모든 인종과 민족의 국가”라는 말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네 번째 그룹은 우리가 “농민”이라는 말을 “집단농장 농부” 또는 “사회주의 농업 근로자”라는 말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수정들이 대책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것들이 채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헌법 초항의 1항은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가? 그것은 쏘비에트 사회의 계급적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우리가 알고 있듯이, 쏘비에트 사회는 두 계급, 노동자와 농민으로 구성된다…(강조는 인용자)116)

 

스딸린은 이렇게 그 사회의 현실에 정확히 기초해서 그의 사고를 전개시키고 있다. 그의 이러한 점은 흐루쉬쵸프 등 수정주의자들과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1961년 10월 개최된 쏘련 공산당 22차 대회에서, 흐루쉬쵸프는 발달된 사회주의 국가인 ‘쏘련은 전인민의 국가이며, 당은 전인민의 당’이라고 선언했다.117)

스딸린의 그의 말년의 저작인 “L .D. 야로쉔꼬 동무의 오류에 관하여”(1952년)에서 앞서 말한 지점들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재천명하고 있다. 즉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를 위해서 생산력의 발달이 필수적인 전제이지만, 이것만으로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야로쉔꼬를 비판하며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 역시 이후 수정주의자들의 ‘생산력주의’와 대비되며, 그의 정확한 관점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길지만 이 문제 대한 맑스-레닌주의의 관점을 완전하게 대변하고 있는 글임으로, 중요한 부분을 모두 인용한다.

 

야로쉔꼬 동무는 우리가 단지 생산력의 합리적인 조직화를 확보해야 하며, 우리는 풍부한 생산을 획득하여 공산주의로 넘어갈 수 있으며 ‘각자로부터 그의 노동에 따라’라는 정식으로부터 ‘각자에게 그의 필요에 따라’라는 정식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심각한 오류이며, 사회주의 경제 법칙에 대한 이해의 완전한 결여를 드러낸다. 사회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야로쉔꼬 동무의 인식은 너무도 초보적이고 미숙하다. 그는 풍부한 생산물도 사회의 모든 요구를 망라할 수 없으며 또한 ‘각자에게 그의 필요에 따라’라는 정식으로의 이행도 집단농장, 그룹, 재산, 상품유통 등과 같은 경제적 요인들이 유효하게 남아 있는 한 일어나게 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야로쉔꼬 동무는 우리가 ‘각자에게 그의 필요에 따라’라는 정식으로 넘어갈 수 있기 전에 우리는 그 과정에서 노동이 사회의 관점에서 단지 생활을 지탱하는 수단으로부터 생활의 최고의 필요로 전환되고 또한 사회적 소유가 사회라는 존재의 신성하고 불가침적인 기초로 전환되기 될 사회의 경제적‧문화적 재교육의 많은 단계들을 통과해야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공산주의로의 진정한, 선언적인 것이 아닌 길을 닦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의 선행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생산력의 신비스러운 “합리적인 조직화”가 아니라 생산수단의 생산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비율의 확대와 더불어 모든 사회적 생산의 지속적인 확대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두 번째로, 집단농장에 유리하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모든 사회에 유리하게 수행되는 점진적인 이행이라는 수단에 의하여 집단농장 소유를 공적인 소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점진적인 이행이라는 수단의 의하여 상풍생산을 중앙 정부 또는 일부의 다른 사회경제적 중심이 사회를 위하여 사회적 생산의 전체 생산물을 통제하게 되는 생산물 교환체제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세 번째로, 사회의 성원들이 사회발전의 적극적인 대리인일 수 있게 하는 데 충분한 교육을 받을 지위, 자유롭게 자신들의 직업을 선택하고 현존하는 노동 분업, 어떤 하나의 직업으로 인해서 그들의 생활에 전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지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사회의 모든 성원들에게 자신들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전면적 발전을 확보해 줄 사회의 문화적 진보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선행 조건들이 완전하게 충족된 이후에만, 노동이 사회성원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귀찮은 것으로부터 ‘생활의 최고의 필요’(맑스)로 전환될 것이고, ‘노동이 부담 대신에 기쁨이 될 것이며’(엥겔스), 사회적 소유가 사회의 모든 성원들에 의해 사회라는 존재의 신성하고 불가침적인 기초로서 간주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이것은 하나의 경제, 사회주의 경제 형태로부터 또 다른 더 높은 경제, 공산주의적 경제 형태로의 근본적인 이행일 것이다.118)

 

 

나. 사회주의에서의 모순에 관한 스딸린의 견해

 

이와 같이 스딸린은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며, 동시에 생산수단이 공유된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점이 해결되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즉, 그 사회에서 어떠한 모순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 모순들을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해 나갈 때, 사회가 공산주의를 향해 한 발 한 발 전진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그 사회의 모순에 집중에서, 그것에 대한 스딸린의 견해를 검토해보자.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그것들은 노동계급과 농민 사이의, 이들 계급과 인텔리겐챠 사이의 경계선이 지워지고 있으며 낡은 계급적 배타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러한 사회적 그룹들 사이의 거리가 꾸준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로 그것들은 이러한 사회적 그룹들 사이의 경제적 모순이 쇠퇴하고 있으며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들은 그 그룹들 사이의 정치적 모순이 또한 쇠퇴하여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강조는 인용자)119)

 

반면에 생산관계가 완전히 생산력의 성격에 조응하는 경우는 쏘련의 사회주의 국가경제이다. 여기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는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에 완전히 조응하기 때문에, 경제적 위기라든가 생산력의 파괴는 있을 수 없다.(강조는 인용자)120)

 

…여기서는 생산과정에서의 인민 상호 간의 관계가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들 간의 동지적 협동과 사회주의적 상호협조로 특징지어진다. 왜냐하면 생산과정의 사회적 성격이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적 생산은 과잉생산에 의한 주기적 공황이나 그에 수반되는 불합리를 모른다. 따라서 생산력은 가속도로 발전한다. 왜냐하면 그에 상응하는 생산관계가 그러한 발전의 여지를 충분히 제공해주기 때문이다.(강조는 인용자)121)

 

그는 사회주의에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조응하고 있고, 사회적 그룹 사이의 경제적‧정치적 모순이 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공산주의 건설을 향한 그들의 방향이 올바르고, 그것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정책을 사용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스딸린은 다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쏘비에트 정부는 자신이 현존하는 경제 법칙을 이른바 파괴하고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격과 필연적으로 조응할 수밖에 없는 경제 법칙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것을 완수했다…그것은 국민경제의 균형 잡힌 발전이 법칙은 우리의 계획 기관이 사회적 생산을 올바르게 계획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능성이 현실성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것이다.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경제 법칙을 연구하고, 그것을 완전히 습득하고, 충분한 이해와 더불어 그것을 적용하는 법을 배우고, 그러한 계획을 이 법칙의 요구들을 완전하게 반영하는 것으로서 편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제 법칙의 요구들이 우리의 다년간의 그리고 5년간의 계획에 의해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122)

 

국민경제의 균형 잡힌, 비례를 이루는 발전의 법칙이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경제 법칙이라고 말해진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국민경제의 균형 잡힌 발전과, 이 법칙의 다소간 충실한 반영인 경제계획은 만약 어떤 목적으로 경제발전이 계획되는지 알려지지 않거나 또는 그 목적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그것들 자체로서는 아무 것도 산출할 수 없다. 국민경제의 균형 잡힌 발전의 법칙은 오직 경제발전이 계획되는 목적이 존재할 때에만 바람직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이 목적은 위에서 상술된 대로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경제법칙에, 그 필요조건들의 형태에 고유한 것이다. 따라서 국민경제의 균형 잡힌 발전의 법칙은 오직 그 작용이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경제 법칙에 의지할 때에만 그 완전한 범위에서 작용할 수 있다. 경제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오직 두 조건이 준수될 때에만 긍정적인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 a) 그것이 국민경제의 균형 잡힌 발전의 법칙의 필요조건들을 올바르게 반영할 경우, 그리고 b) 그것이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경제법칙의 필요조건들에 적합할 경우.(강조는 인용자)123)

 

야로쉔꼬 동무는 그가 사회주의 아래에서는 사회의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때 잘못을 범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현재의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성장에 완전히 조응하고 그것이 7리그[laegue: 거리의 단위, 3마일] 걸음을 내딛게 하는 것을 도우고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그것에 안이하게 의존하여 우리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생산관계의 발전이 생산력 발전에 뒤처지고 뒤처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모순은 확실히 존재하며 또한 존재할 것이다. [올바른] 정책을 제시할 때, 이러한 모순은 적대성으로 성장할 수 없으며, 사회의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충돌에 이르는 사태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만약 우리가 야로쉔꼬 동무가 권고하는 것과 같은 잘못된 정책을 집행하게 되면 사태는 달라질 것이다. 그 경우에 충돌은 불가피하며, 우리의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더 한 층의 발전에 심각한 제동기가 될 것이다. 지도기관의 임무는 그러므로 초기의 모순을 즉각적으로 발견하여 생산관계를 생산력의 성장에 적응시킴으로써 그 모순을 해결하고 용해시키는 시기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강조와 괄호는 인용자)124)

 

이처럼 스딸린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사회는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조응하고 있고 사회적 그룹 사이의 경제적‧정치적 모순이 사라지고 있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의 발전 법칙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올바른 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이러한 모순이 해결될 수 있고 사회는 발전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즉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 모순은 적대적 모순으로 전화할 것이고, 사회의 발전은 심각하게 지체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의 문제에 대한 스딸린의 견해이다.

 

 

다. 국가 사멸에 관한 스딸린의 견해

 

스딸린은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견해를 바탕으로, 국가의 ‘사멸’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이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그냥 사멸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가 사멸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의 발달이 필수적인 동시에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이 말한 바대로, 전 사회의 찌꺼기들과 그 찌꺼기들로부터 나오는 제 관계를 청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잔재들을 박멸하게 위해 오히려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력한 국가권력을 통해, 생산력의 발달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전 사회의 잔재들을 몰아낼 때, 비로소 국가는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모순이요, 맑스의 변증법을 완전히 반영하는 모순”이라고 스딸린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국가의 사멸을 주장한다. 반면에 우리는 그와 함께 오늘날까지 존재해 온 모든 국가권력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가장 강대한 권력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강화를 주장한다. 국가권력 사멸을 위한 조건을 준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권력의 가장 고도한 발전― 이것이 맑스주의적 정식이다. 이것은 ‘모순되는가.’ 그렇다. ‘모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순은 살아있는 모순이요, 맑스의 변증법을 완전히 반영하는 모순이다.125)

 

어떤 동무들은 계급의 폐지, 무계급사회의 건설 및 국가사멸에 대한 테제를 건달과 안일을 위한 변명꺼리로, 계급투쟁이 소멸되며 국가권력이 약화된다는 반혁명적 이론을 위한 변명꺼리로 이해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 당과 아무런 공통성도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변절자이거나 혹은 당으로부터 쫓아내야할 기회주의자들이다. 계급의 폐지는 계급투쟁의 소멸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투쟁의 강화로써 달성되는 것이다. 국가의 사멸은 국가권력을 약화시켜서가 아니라, 사멸하여 가는 계급들의 잔재를 박멸하며, 아직 청산될 날이 멀었으며 또 빠른 시일 내로는 청산되지 않을 자본주의적 포위에 대항하여 국방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국가권력을 최대한으로 강화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126)

 

스딸린은 현실 사회주의의 건설을 담당한 지도자였다. 그는 제국주의의 포위 속에서, 이와 대결하며 새로운 세상,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서 ‘이행기에 대한 맑스-엥겔스 사고의 기초’에서 충분히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부분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사고했던 것과 현실 사회주의의 실제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검토했었다. 제국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문제,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소멸’의 문제에 관한 스딸린의 이론적 발전이 전개된다. 그는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이 말한 국가소멸의 조건에 더해, 제국주의의 포위 속에서 그 조건을 사고한다. 이것이 바로 맑스주의가 도그마가 아니며, 그것은 항상 현실의 조건 속에서 그것을 반영하고, 그것을 토대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스딸린의 말을 들어보자.

 

때때로 다음과 같이 묻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착취계급이 청산되었고 국내에 적대계급이 더는 없으며 진압해야 할 사람들이 없다. 따라서 국가가 더는 필요하지 않으며 그것은 없어져야한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사회주의 국가가 사멸되도록 힘쓰지 않는가, 어째서 우리는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가, 국가제도의 이 폐물을 전부 집어던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혹은 이렇게도 묻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착취계급이 이미 청산되었고,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우리는 공산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국가에 관한 맑스주의 학설은 공산주의에 가서는 어떠한 국가도 없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사회주의 국가가 사멸되도록 힘쓰지 않는가? 국가를 고대 박물관에 넘겨줄 때가 오지 않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국가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학설에 있는 일부 명제를 정직하게 암송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또한 이 동무들이 그 학설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 학설의 일부 명제가 어떠한 역사적 조건에서 나왔는가를 연구하지 못하였으며, 그리고 특히 오늘의 국제적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자본주의가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질문은 또한 간첩‧살인자‧해독분자를 우리나라에 파견하며, 또 우리나라를 군사적으로 침공할 좋은 기회를 엿보려고 애쓰고 있는 부르주아 국가와 그 기관들의 역할과 의의를 과소평가하고,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사회주의 국가를 수호하는 데 필요한 우리 사회주의 국가와 그 군사기관, 징벌기관 및 정탐기관의 역할과 의의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과소평가한 죄는 위에서 질문한 동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죄는 어느 정도 우리 모두에게, 예외 없이 모든 볼쉐비끼들에게 다 있다…127)

 

이로부터 사회주의 국가 일반의 운명에 대한 엥겔스의 일반적 정의를 사회주의가 개별적인 한 나라에서 승리한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경우까지 확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이 나라는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사회주의의 전취물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잘 훈련된 군대와 잘 조직된 징벌기관과 강력한 정보기관을 자기 관할 하에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며, 아주 강력한 자기의 국가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128)

 

엥겔스는 자기의 ‘반뒤링론’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후 국가는 사멸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에 기초하여 우리 당내의 염불장이들과 독경주의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이후 당이 우리 국가의 조속한 사멸과 국가기관의 해체 및 상비군의 폐지에 대한 대책을 취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쏘련의 맑스주의자들은 현재의 세계정세를 연구한 데 기초하여, 사회주의 혁명이 오직 한 나라에서만 승리하고 다른 모든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그러한 자본주의적 포위 하에서, 혁명에서 승리한 나라는 자기의 국가, 국가기관, 정보기관, 군대를 약화시킬 것이 아니라 여러모로 강화시켜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쏘련의 맑스주의자들은 엥겔스의 정의가 모든 나라 또는 대다수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 승리를 염두에 둔 것으로, 사회주의가 개별적인 한 나라에서 승리하고 다른 모든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그러한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129)

 

스딸린은 이렇게 제국주의와의 대결에 있는 사회주의에서 왜 국가는 여전히 필요하며, 오히려 일정한 부분은 더 강화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쏘련에서는 국가 권력이 강화되었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라고 외치는 자130)들에게는, 위의 인용문에서 스딸린이 그런 자들을 비판한 것과 똑같은 말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의 우리에게, 이렇게 역사와 현실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상상 속에서 이러한 주장들을 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해악적인지 분명하게 말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앞에서 스딸린의 견해들을 검토하며, 맑스주의가 이론적인 도그마가 아니라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풍부하게 적용되며, 발전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러한 쏘련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경험을, 상상 속 이론적 잣대에 맞추어 그것도 눈금도 맞지 않는 불량품 자에 맞추어 재단하고, 쏘련 사회주의가 잘못된 것이라고,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쓰레기통으로 처넣어 버려버린다면131), 우리는 74년의 그러한 역사적 경험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쏘련은 어떠한 노력을 했고 어떤 정책을 펼쳐나갔는지, 부족하지만 앞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스딸린은 현실사회주의를 건설하면서, 그 구체적인 현실에 맞추어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사상을 보다 명확하게 발전시켜나갔으며, 특히 제국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문제 속에서 국가 소멸의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지 못했던 이전의 사회주의자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현실의 조건에 맞추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에 관한 학설은 스딸린을 거치며, 한 층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모택동에 의한 이론의 발전

 

가. 중국혁명의 지도자

 

모택동은 1893년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신해혁명기에 혁명군에 복무하였고,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베이징과 후난성 등지에서 운동을 계속하다가, 1920년부터 후난성 창사에서 교사로 생활했다. 1922년 중국 공산당 창립대회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 후난성의 대표로 제1차 중공전국대회에 참석하였다. 1928년에는 공농홍군 정치위원이 선출되었고, 1930년에 홍군 제1방위군 군사위원 겸 공농혁명위원회 주석이 되었다.

1934년 10월, 중국혁명 아니 세계혁명의 역사에 길이 기록될 홍군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홍군이 장정에 오른 지 2개월 반이 지난 1935년 1월 15일부터 17일까지, 당 중앙 정치국은 귀주의 준의에서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132)하였다. 회의에서 모택동은 기존의 단순방어 중심의 진지전을 비판하고, 올바른 군사노선을 제시하였다. 이 회의를 통해, 모택동은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었고, 이때부터 당을 실질적으로 지도하게 된다. 그의 노선에 따라 홍군은 ‘운남, 귀주, 사천의 광대한 지역에 새로운 쏘비에트지구 근거지’를 수립한다는 목표를 두고, 장정을 계속하게 된다. 1935년 11월, 연안에 도착하기까지 1년여 동안 홍군은 1만2천km의 행군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각 마을에서 대중 집회를 열고,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가난한 농민에게 나누어 주는 등 사회주의를 알려 나갔다. 장정이 끝났을 때, 홍군을 직접 본 수많은 중국 인민들은 공산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중국공산당은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치고, 이후 국민당과의 내전을 거쳐, 1949년 10월 마침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하게 된다. 공화국에서 모택동은 국가주석 겸 혁명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이렇게 모택동은 중국 혁명을 실질적으로 지도하며, 그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중요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성과들을 남기고 있는데, 1937년 7월과 8월에 각각 씌어진 그의 대표작 <<실천론>>과 <<모순론>>은 현재까지도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한 중요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저작들은,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 관한 그의 견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에 관한 모택동의 견해133)

 

1) 중국에서의 사회주의 생산관계의 확립과 중-쏘논쟁

 

1953년, 중국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제1차 5개년 계획을 시작하였다. 그들이 최초에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서는 “약 3차에 걸친 5개년 계획이 필요”134)할 것으로, 즉 1967년 정도에 가서야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확립될 수 있을 것으로 상정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쏘련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경험과 중국 인민들의 노력이 더해져, 1955년경에 이르면 그것이 조기에 달성되고 있었고, 1956년에는 사회주의 생산관계가 기본적으로 확립135)되게 된다. 이 시기에 즈음하여 중국 공산당은 1차 5개년 계획의 성과를 총괄하며, 흐루쉬쵸프의 사회주의 건설론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당시의 상황은, 1955년 10월 11일 열린 중국공산당 제7기 중앙위원회 6차 확대총회에 대한 모택동의 다음의 말을 통해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논의가 맹렬히 제기되었다. 이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어서 우리 당의 총노선은 과연 정확한 것인가라는 문제를 둘러싼 대토론이었다. 이 전(全)당적인 대토론은 농업협동화의 방침에 관한 문제로부터 야기된 것으로 동무 여러분들의 토의도 이 문제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 토론에서 언급된 측면은 대단히 넓어서, 농업, 공업, 교통, 운수, 재정, 금융, 무역, 문화, 교육, 과학, 의료, 위생 등 제 부분의 사업은 물론 수공업과 자본주의 상공업의 개조, 반혁명의 진압 그리고 군대 및 외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이 언급되었다.136)

 

그리고 중국이 흐루쉬쵸프 노선에 대해 가졌던 의구심이 기우가 아니었음이, 1956년 2월 개최된 쏘련 공산당 제20차 대회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20차 대회는 당시 쏘련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향을 채택하는 대신에, 모든 원인을 스딸린과 스딸린 개인숭배의 문제로 돌려버리고, 경제에 있어서는 ‘급속한 소비성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137)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쏘련의 입장을 철저하게 비판했고, 이렇게 중-쏘논쟁138)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중국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모택동은 <<‘중국 농촌에 있어서의 사회주의의 고조’에 대한 평가>> 1958년 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중국 농촌에 있어서의 사회주의의 고조’에 대한 평가>>라는 책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1955년 9월과 12월에 씌어졌다. 그 중의 일부는 아직도 그 의미를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1955년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결전하여 기본적으로 승리를 거둔 해라고 씌인 부분이 있다. 이러한 표현은 타당하지 않다. 1955년은 생산관계의 소유제적 측면에서 기본적인 승리를 거둔 해이지만, 생산관계 이외의 측면에서는 아직 기본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지 못하며 완전한 승리 또한 거두고 있지도 못하다. 오직 이 문제는 금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1956년의 시점에서 국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않았고, 또한 같은 해에 국내에서 대중의 적극성을 약화시키는 ‘폭동’ 사건이 일어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이 두 측면에서의 예기치 않았던 사건은 모두 광기에 가까운 우파의 공격에 기름을 부어 주는 꼴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가 얻은 교훈은 사회주의 혁명도 사회주의 건설도 순풍에 돛단 상태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우리는 국제, 국내의 양 측면에서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큰 곤란에 대처하여야 할 자세를 견지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강조는 인용자)139)

 

위의 문장은 1958년에 씌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1956년 어떤 상황 하에서 중국 공산당이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1955년부터 시작되었던 중국 공산당의 이러한 모색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는가를 큰 틀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 스딸린으로 이어지는 이론적 발전을 정확하게 계승하고 있다. 즉, 생산관계의 측면에서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그것은 완전한 승리가 아니며, 그 이외의 측면 역시 동일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순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임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모택동과 중국 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를 정통적으로 계승한 관점에서 말로만 맑스-레닌주의를 외쳐대는 수정주의자 집단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2) 공산주의 건설의 새로운 방향의 기초

 

모택동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937년 이미 모순의 문제에 관한 훌륭한 책을 지은 바 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사회를 모순 관계에서 파악하고, 그 속에서 주요한 모순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왔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사회주의 사회의 성격과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중국의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그것의 방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를 맑스-레닌주의적 관점에서 정확하게 설정하고 있다.

흐루쉬쵸프의 스딸린 비판에 대한, 1956년 4월 5일자 <<인민일보>>의 논평을 보자.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어떠한 모순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고방식이 있다. 모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변증법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각각의 사회에 내재하는 모순의 성질은 서로 동일하지 않으며 따라서 모순의 해결 방식 또한 서로 동일하지 않다 할지라도, 사회는 항상 간단없는 모순의 존재 가운데 발전해 간다. 사회주의 사회 역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가운데에서 발전하여 간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든 공산주의 사회에서든 기술의 혁신, 사회제도의 혁신 등의 현상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점차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이 같은 혁신이 없다면 사회의 발전은 정지되고 사회는 전진할 수 없게 될 것이다.140)

 

그리고 동년 4월 25일에 발표된 모택동의 강론 “10대 관계에 대하여”는, 이러한 그의 관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강론은 1956년부터 수개월에 걸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공업, 농업, 운수, 상업, 재정 등 34개 부문에 대한 보고를 듣고, 그것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종합한 것이다. 모택동은 여기에서 중국 사회주의에서의 10가지의 모순을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①중공업과 경공업, 농업의 관계 ②연해 공업과 내륙공업과의 관계 ③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관계 ④국가, 생산단위, 생산자 개인의 관계 ⑤중앙과 지방의 관계 ⑥한족과 소수민족과의 관계 ⑦당과 당 외의 관계 ⑧혁명과 반혁명의 관계 ⑨옳고 그름의 관계 ⑩중국과 외국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0가지 종류의 관계는 모두 모순이다…우리의 임무는 이들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것이다.141)

 

즉, 중요한 것은 모순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고, 올바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택동은 그러한 모순을 처리하는 당과 국가의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142)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본다면 이미 강고한 토대를 구축한 사회주의 국가에 있어서도 생산관계와 상부구조와의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결함적 고리가 있을 수 있고 당과 국가의 정책, 활동의 방법과 기풍에도 또한 이런저런 치우침이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정될 수 있는 것이다.143)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인민 내부에는 여전히 모순이 존재하고 있고, 이들 모순의 존재야말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인정할 용기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회에도 여전히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의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기에 망설이게 되고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게 된다. 이들은 모순을 끊임없이 올바로 처리하고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내부의 통일과 단결이 나날이 강화되어 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인민, 그 중에서도 우선 간부들에게 이 점을 설명하고 사람들이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 또한 올바른 방법에 의해 이와 같은 모순을 처리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144)

이처럼 중국에서 공산주의 건설의 새로운 노선을 사고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에서의 모순의 문제이다. 모택동은 이것에 기초해, 자신의 관점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그럼 사회주의 사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순이 존재하고 있는가? 모택동의 견해를 들어보자.

 

 

3) 사회주의 사회에 모순에 관하여

 

가) 사회주의 사회의 기본적 모순

 

모택동은 맑스-레닌주의를 계승하며, 사회주의 사회의 기본적 모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모순은 역시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상부구조와 경제적 토대와의 모순이다. 다만 사회주의 사회에 있어서 이들 모순은 구사회에 있어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상부구조와 경제적 토대와의 모순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성질과 상황을 구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현재의 사회제도는 구시대의 사회제도와 비교하면 몹시 뛰어난 제도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구제도가 극복되어졌을 까닭도 없을 것이며 신제도가 생성되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145)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구사회와 근본적으로 상이한 성질과 상황”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앞서 ‘사회주의에서의 모순에 관한 스딸린의 견해’에서 살펴보았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사회주의에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조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올바로 처리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이 지점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밝혀놓고 있는 것이다.

 

나) ‘인민 내부의 모순’과 ‘적과 인민의 모순’

 

(1)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두 가지 모순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모순에 관한 모택동 이론의 핵심은, 그것을 ‘인민 내부의 모순’과 ‘적과 인민의 모순’으로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것들의 성격을 해명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모순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먼저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은 자본주의의 그것과 기본적으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고 말한다.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은 구사회의 모순,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은 격렬한 적대와 충돌로 되어 격렬한 계급투쟁으로 발현된다. 이 모순은 자본주의제도 그 자체에 의해서는 해결 불가능하며 오직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서만 그 해결이 가능하다.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으로 오히려 그 반대로 적대성을 내재하지 않는 모순이며 사회주의제도 그 자체를 일관하여 끊임없이 해결되어 가는 모순이다.146)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것의 성격이 적대적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앞의 검토들을 통해 알고 있다. 이상의 것들을 전제하고 모택동은 사회주의 사회에는 두 종류의 상이한 모순이 있으며, 이것의 처리 방법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앞에는 두 종류의 사회적 모순이 있다. 즉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과 인민 내부의 모순이다. 이 두 종류의 모순은 전적으로 성질이 다른 모순이다.147)

 

그것들은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148)

 

(2) 인민 내부의 모순

 

그 중 인민 내부의 모순을 먼저 검토해 보면, 그것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모순, 농민계급 내부의 모순, 지식인 내부의 모순, 노동자계급과 농민계급과의 모순, 노동자ㆍ농민과 지식인 사이의 모순, 노동자계급 및 그 외 근로인민과 민족부르주아계급 사이의 모순, 민족부르주아계급 내부의 모순’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의 이익, 집단의 이익, 개인의 이익 사이의 모순, 민주와 집중과의 모순, 지도와 피지도와의 모순, 일부 국가기관 요원의 관료주의적 태도와 대중과의 모순’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인민 내부의 모순은 인민 이익의 근본적 일치를 토대로 하는 모순이다.149)

그런데 이러한 인민 내부의 모순은 사회의 발달에 따라 항상 변화한다.150) 그리고 여기에서 근로인민 사이의 모순은 비적대적인 반면에,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 사이의 모순은 적대적인 면과 비적대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151) 모택동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인민 내부의 모순의 카테고리 안에 근로인민과 민족부르주아지의 모순이 포함되어있다. 대체로 이 둘 사이의 계급투쟁은 인민 내부의 계급투쟁이다. 왜냐하면 중국 민족부르주아지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시기에, 혁명적이고 우호적인 면이 그들의 성격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시기에, 그들은 일면에서는 이윤을 위해 노동자계급을 착취하는 반면, 헌법을 지지하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다. 민족부르주아지는 제국주의자, 지주, 관료자본가들과는 다르다. 민족부르주아지와 근로인민 사이의 모순은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모순이고,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적 조건들에서는 두 계급들 간의 적대적 모순이 만약 적절하게 다루어진다면, 비적대적인 것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것을 적절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들과 연합하는 정책을 추구하지 않고, 그들을 비평하고 교육하는 정책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혹은 민족부르주아지가 이러한 우리들의 정책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근로인민과 민족부르주아지 사이의 모순은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으로 전화될 것이다.(강조는 인용자)152)

 

인민 내부의 모순은 인민 이익의 근본적 일치를 토대로 하는 비적대적 모순이다. 그런데 이 중,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 사이의 모순은 그것이 적절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든 적대적 모순, 즉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으로 전화될 수 있다. 그럼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은 어떠한 것인가?

 

 

(3)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과 모순 해결의 방법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은 인민 내부의 모순과는 정반대로, 계급적 이해의 근본적인 대립을 기초한 모순이다. 그래서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은 본질적으로 적대적 모순이다.153) 따라서 모택동은 이 모순은 인민 내부의 모순처럼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억압적이고 폭력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억압과 폭력이 바로 ‘독재’이다. 따라서 ‘독재’는 인민의 적에게만 적용되는 것일 뿐이다. 이 ‘독재’는 노동자 계급과 그 지도하의 인민에 의한 독재인데, 자기 자신을 자신의 힘으로 억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인민은 사회주의에 의해 발전된 민주주의를 향유하며, 인민에 의해 저질러진 죄는 ‘독재’가 아닌, ‘법’의 적용을 받는다. 모택동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농동맹에 기초해서, 노동자계급이 지도하고 있는 인민민주주의 독재 국가이다. 독재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것의 첫 번째 기능은 내부적으로, 즉 반동적 계급과 요소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에 저항하는 이러한 착취자들을 억압하기 위한, 우리의 사회주의 건설을 좌절시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을 억압하기 위한, 다른 말로 내부의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확실한 반혁명분자들을 체포하고, 재판하고, 형벌에 처하는 것, 그리고 일정한 시기 동안 지주와 관료자본가들로부터 그들의 투표권과 언론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의 독재 영역에 들어간다. 공공의 질서와 인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도둑, 사기꾼, 살인자, 방화범, 범죄 집단, 그리고 공공의 질서를 심각하게 교란시키는 다른 악당들에 독재가 행사는 것이 필요하다. 독재의 두 번째 기능은 외부의 적154)들에 의해 우리나라가 전복되거나 막고, 일어날 수 있는 외부의 적들의 침략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차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들에 관한 것이 외부의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독재의 임무이다. 이 독재의 목적은 우리 인민 모두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그들은 평화롭게 노동에 몰두할 수 있으며, 중국을 현대적 산업과 농업, 과학과 문화를 지닌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 수 있다. 누가 독재를 행사하는가? 당연히, 노동자계급과 그 지도하에 있는 전체 인민이다. 독재는 인민 내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인민은 그들 자신에게 독재를 행사할 수 없으며, 또한 한 부분의 인민이 다른 부분의 인민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인민들 중에 범법자는 법으로 처벌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민의 적을 억압하기 위해 독재를 행사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민들 사이에 적용되는 것은 민주집중제이다.(강조는 인용자)155)

 

인민 내부에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 등등의 모든 자유가 주어진다.156) 그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민주집중제이다. 하지만 적들에게는 강력한 독재가 적용된다. 이것이 사회주의에서 발생하는, 두 가지 모순의 성격 차이에 따라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위의 말들을 종합해 본다면, 모택동이 그 둘의 모순 중 어느 것을 그 사회의 주요한 모순으로 규정하고 있을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다)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모순

 

모택동은 이렇게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에 관한 문제를 분석하며,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모순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주의적 개조가 소유제의 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완수되었고, 혁명시기에 있어서의 대규모적이고 격동적인 대중적 계급투쟁은 종결되었지만 이미 타도된 지주와 매판계급의 잔존분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부르주아계급 또한 존재하고 있다. 소부르주아계급은 이제 겨우 개조되기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계급투쟁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계급투쟁, 각 정치 세력 사이의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이데올로기 투쟁 등등은 지금도 여전히 굴곡을 이루며 투쟁하고 있고 때로는 매우 격렬한 양상을 띠기조차 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자신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세계를 개조하고자 하고 부르주아 계급 역시 자신들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세계를 개조하고자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승패를 건 투쟁은 아직 판가름되지 않은 것이다.157)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수정주의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혁명이 기본적인 승리를 거둔 뒤에도 사회의 일각에서는 여전히 자본주의 제도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이 있고 이들은 사상의 측면을 포함하여 모든 측면으로부터 노동자 계급에 대한 투쟁을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의 상황 하에서 수정주의자들이야말로 그들의 최대의 조력자인 것이다.158)

 

이상 살펴본 것처럼, 모택동은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 스딸린으로 이어지는 이론적 발전을 정확하게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모순과 그것을 해결하는 문제에서는 그 이론의 발전을 이루고 있다. 그는 ‘모순’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사고함으로써, 생산수단의 공유와 더불어 이행기가 종결되는 것이라는 사고를 거부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계급투쟁을 그 사회의 주요한 모순으로 인식해, 이후 그가 주장하는 바의 ‘사회주의사회에서의 계속 혁명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맑스와 엥겔스가 처음 이 문제를 사고했을 때, 사실 그들 내부에 이미 존재했었던 생각이었다. 그들은 생산수단의 공유와 더불어, 사회구성체적 의미로서 사회는 변화되었지만, 즉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가 성립되지만, 그것은 여전히 생산력 발전의 문제와 여전히 남아 있는 분업의 문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 등으로 인해, 아직 자본주의의 경제적, 윤리적, 정신적 모반이 남아 있는 공산주의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이행기는 생산수단의 변혁과 더불어 그것의 상부구조까지 변혁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말했고, 이상의 변혁들이 종결되는 시점이, 즉 이전 사회의 모반― 사실 여기에 ‘국가’도 정확히 포함되는 것이다 ―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점이, 바로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행기=사회주의’라는 모택동의 정식은 이미 맑스주의의 창시자들의 사고 속에 있었던 것이고, 모택동은 중국 혁명의 현실을 분석하며 그것의 모순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었던 맑스주의의 창시자들과 레닌, 스딸린의 그러한 견해를 다시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것을 모순의 관점에서 더욱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4)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새로운 방향의 정립

 

모택동이 이 문제를 사고하며 내린 결론은 위에서 말한 ‘이행기=사회주의’와 ‘사회주의사회에서의 계속 혁명론’이다. 이 결론을 얻기 위해, 그는 사회주의 사회의 모순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사고했으며, 이를 위해 국가 주석직159)을 사임하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했다. 그에게 그리고 중국에게,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 방향을 설정하는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의 얻어진 성과인, 위의 결론이 담긴 글들을 함께 읽어보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는 맑스주의의 창시자들과 레닌, 스딸린의 견해를 종합하고 있는 것임으로 일독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 길지만 대부분을 인용한다. 먼저 ‘이행기=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글이다.

 

맑스와 레닌은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사이에는, 모든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로의 과도기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의 시기가 있다고 보았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그 과도기 기간 가운데 수립되어 강고, 강화되며 또한 이 기간 가운데에서 점차 사멸에 이르는 변증법적 과정을 밟는다.160)

 

이것의 의미는, 그것이 ‘사회주의사회에서의 계속 혁명론’과 결합될 때 분명해진다.

 

사회주의 사회는 매우 긴 역사적 단계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또한 계급과 계급투쟁이 존재하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 길의 투쟁이 존재한다. 따라서 경제전선에 있어서(생산수단의 소유제에 있어서)의 사회주의 혁명만으로는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충분하며 경제전선 이외의 정치전선과 사상전선에 있어서도 철저한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다. 정치, 사상의 영역에 있어서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승리를 위한 투쟁은 매우 긴 시간을 통해서 해결 가능한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이 역사적 단계에는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를 견지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최후까지 완수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부활을 방지하여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고 공산주의에로 이행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강조는 인용자)161)

 

사회주의 사회는 상당히 장기에 걸치는 역사적 단계이다. 사회주의라는 이 역사적 단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계급,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이 존재하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 길의 투쟁이 존재하며, 자본주의 부활의 위험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투쟁의 장기성과 복잡성을 인식하여, 이에 대한 경계심을 고취하여야만 하며 사회주의 교육 또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의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처리하여야 하며 적과 인민 사이의 모순과 내부의 모순을 올바로 구별, 처리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같은 사회주의 국가는 그 반대측면으로 변질하게 되고 다시금 자본주의가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매년, 매월, 매일 마음속에 새겨두고 비교적 명확한 인식을 갖고 맑스-레닌주의의 노선을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162)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공산당은 각종 수정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 계급투쟁은 불가피하게 당내에 반영되게 되고 국외의 제국주의의 압력과 국내의 부르주아 계급의 영향은 당내에 수정주의 사상을 발생시키는 사회적 근원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국내외의 적대계급과 투쟁함과 동시에 당내의 각종 기회주의적 사상경향을 경계하고 끝까지 반대하여야만 한다.163)

 

이것에는 당내의 수정주의가 어떠한 사회적 근원에 의해 발생되었는가를 명확하게 서술되고 있고, 공산주의의 건설을 위해서는 그것과 끝까지 싸워야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그들의 견해를 ‘규약’ 제1장에 명확하게 새겨놓았다.164)

사회주의 사회는 상당히 장기에 걸치는 역사적 단계이다. 이 역사적 단계에 시종해서 계급, 계급모순, 계급투쟁이 존재하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개의 길의 투쟁이 존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부활의 위험성이 존재하며 제국주의와 현대수정주의에 의한 전복과 침략의 위협 또한 존재한다. 이들 모순은 맑스주의의 계속혁명의 이론과 이에 지도되는 실천에 의해서만 그 해결이 가능하다.165)

 

이상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 관한 모택동의 이론적 발전이다. 그의 견해는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었던, 맑스-레닌주의의 그것을 되살려내고 있으며, ‘모순’의 측면에서는 그것을 한 층 더 발전시켜 놓았다. 그의 견해는 스딸린에 의한 이론적 발전과 마찬가지로, 현실 사회주의 내부의 모순, 그리고 제국주의와의 대결 속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외부와의 모순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고찰하여 그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또한 큰 의의가 있다. 그들의 이론을 흐루쉬쵸프, 유소기, 등소평, 그리고 지금의 각종 수정주의자들의 그것과 비교해 보라. 말로만 맑스주의자, 맑스-레닌주의자166)라고 왜장치는 자들의 쓰레기더미 속에서, 그들의 이론은 수 백 캐럿의 다이아몬드처럼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다. 사회제국주의: 중-쏘논쟁에서의 중국의 오류

 

이렇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서 모택동과 중국 공산당은 올바른 관점을 견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그것은 그들이 중-쏘논쟁을 통해서 쏘련을 비판한 것 속에서 발생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그들의 비판은 정당했다. 하지만 이것은 모택동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인민 내부의 모순이어야 했고, 비적대적인 모순이어야 했다. 물론 그의 사고에서 비적대적인 모순도 적대적으로 전화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명확하게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하고 있는 사회를, 그 사회를 지도하고 있는 당의 노선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쏘련에서 관료가 부르주아계급으로 전화되었으며, 경제가 사회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화되었고, 종국에 사회제국주의 국가’167)가 되었다고 비판한 것이 온당했던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온당’의 문제를 넘어서 생산관계가 사회화된 사회를 자본주의168)라고 하는 것은, 사회구성체에서의 생산관계의 선차성에 대한 완전한 오류169)이며, 쏘련을 이렇게 ‘자본주의 국가’ 나아가 ‘제국주의국가’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이 그것에 적대하겠다는 것이며, 그러한 적대는 종국에 가서 국제공산주의운동을 두 진영으로 분리시켜버렸다. 이것은 제국주의와의 대결 속에 있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힘을 몇 배로 약화시켜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들의 비판은 정당했다. 쏘련의 ‘수정주의자’들이 ‘수정’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적대적인 것으로까지 밀어붙였고, 그것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분열로 작용했다. 이것이 그들이 범한 큰 오류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오류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중국은 자신들의 수정주의 노선으로 인해, 그들이 쏘련을 향해 쏘았던 ‘자본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라는 화살이, 그것과 똑같은 이름표를 달고 정확하게 자신을 향해 겨누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는 그들이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170)

 

 

나가며

 

지금까지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것은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 스딸린, 모택동으로 이어지는 이론적 발전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러한 발전은 맑스주의가 도그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현실에 기초해 사고하고, 그로부터 미래에 대한 전망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한 맑스주의가 여타의 다른 사회주의들처럼 단지 이론만으로 남겨지지 않았고, 현실의 실천 속에서 특히, 사회주의 혁명과 현실사회주의의 건설 속에서, 이론과 실천의 종합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즉, 이러한 실천적 경험을 거치며,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의 과학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던 것이다(동시에 그것이 진정으로 사회와 물질의 발전 법칙을 설명하고 있는 과학이기 때문에, 그러한 실천을 통과했었던 것이다).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숨겨지고, 왜곡되었던 맑스와 엥겔스의 국가론을 복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고 속에서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가려져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들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스딸린은 이러한 레닌의 성과를 계승하여, 이것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강조하고, 그것에 현실 사회주의의 건설 경험을 통해 얻어진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들을 추가한다. 특히 국가소멸의 문제 중 주요하게, 제국주의의 포위 속에서 현실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문제, 즉 제국주의와의 대결 문제를 포함시킨다. 모택동은 수정주의자들이 왜곡시킨 사회주의 건설론을,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모순의 문제와 그것의 해결에 관한 입장에서 반박하며, 맑스-레닌주의의 국가론, 사회주의 건설론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밝혀놓았다. 그는 특히, 그가 사고의 기초로 삼았던 사회주의에서의 모순에 관한 문제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 관한의 이론적 그리고 실천적 발전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문제에 연관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는 이러한 이론적 발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이론적 발전의 역사임과 동시에, 그 사회의 건설자들에게는 실천적 지침의 발전이었고, 그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그러한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맑스는 그 다음 단계의 정치형태를 발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조심스럽게 프랑스 역사를 관찰하고, 그것을 분석하고, 그리고 소위 부르주아 국가 기구의 파괴를 향해 움직여나갔던 1851년 이후의 결론을 내리는 것에 자신을 한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혁명운동이 돌발했을 때 맑스는…그 혁명과정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발견했던 정치형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171)

 

이것이 맑스가 국가의 문제를 연구했던 태도이며, 방식이다. 그는 문제를 역사 속에서, 현실의 관계 속에서 사고했다. 그는 상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앞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혁명의 각 시기를 거치며 그것의 경험을 종합하고, 자신의 견해를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은, 그것의 대강(大綱)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자료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럼 우리가 건설하고자하는 새로운 사회는 어떻게 건설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했었던 사람들처럼, 최초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시작했던 사람들처럼, 맑스와 엥겔스가 보여주고 있는 대강(大綱)의 설계도를 보면서, 최초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를 그대로 답습하며 그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70년 이상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아직도 힘든 조건 속에서 그러한 건설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그래서 그러한 조건 속에서도 사회주의 건설의 경험을 축적해나가고 있는 국가들이 있다. 우리가 그들이 한 발 한 발 전진했었던(하고 있는) 사회주의 건설의 경험을 곧장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어디에다 집터를 정하고, 철근을 박을지, 시멘트와 모래는 몇 대 몇의 비율로 섞을지, 양생은 얼마나 오래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모른 채, 일단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철근을 박고, 콘크리트를 들이붓는다면 그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가 청산주의와의 투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청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버린 것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며’, 같은 의미로 자신들이 취하고 있는 것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를 먼저, 있는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고, 그 속에 어떤 모순이 존재했고, 이 모순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그리고 어떤 점에서 오류를 범했는지를 근본적으로 고찰한 후, 우리가 나갈 바의 지향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사물과 사회를 고찰하는 맑스주의의 방식이다!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역사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현실 사회주의는 하나의 고정된 상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발전과 지체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전진했던 사회이다. 우리는 그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토대와 상부구조가 조응하며 발전했던 시기의 상태와 그것이 조응하지 못하고 정체되었거나 심지어 퇴조했던 시기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찰해야 할 것이다. 즉, 각 시기에서의 모순과 모순의 해결 방식, 그러한 상승과 퇴조가 발생했던 원인 등을 그 시기별로 고찰하고 그 시기들 간의 연관 관계를 파악한 후, 최종적으로 그것을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그것의 온전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할 때만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무슨 괴물 보듯 잘해야 폐물(廢物) 보듯 하고 있는 지금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더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주제를 정리하며, 처음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이 글의 처음에 이렇게 말했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우선 자신을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부르주아 계급과의 투쟁에서 그들을 쓰러뜨리고,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권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렇게 획득한 정치권력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전 사회에서 억압의 기반이 되었던 제 조건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기반을 창조한다. 이 시기가 바로 이행기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이 글은 이 사실을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의미에 인용한 바로 다음의 글.

 

…모든 현실의 프롤레타리아 당은 항상 계급정책, 독자적 정당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을 제일의 조건으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투쟁의 당면 목표로 설정하였다…(강조는 인용자)172)

 

이것은 ‘노동자의 정치적 조직화’를 제일의 조건으로 할 때만, ‘사회주의 혁명’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노동자의 정치적 단결, 계급적 단결이 혁명의 전제 조건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세상을 향하는 길의 첫 걸음’이다. 그런데 엥겔스의 현실은 이미 제일의 조건은 충족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당면의 목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당이 없다!

이런 우리의 현실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우리가 당면의 과제로 설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노동자 계급 전위당의 건설! 이것이 우리의 당면 목표이다!

 


 

1) 이 연구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다른 글을 통해 발표할 계획이다.

 

2) MEW, Bd. 28, S. 508; K. 맑스, “바이데마이어에게 보내는 편지”(1852. 3. 5., 런던), <<맑스-엥겔스 저작선집>>(이하, <<저작선집>>) 제2권, 박종철출판사, 1992, p. 497.

 

3) MEW, Bd. 18, S. 267; F. 엥겔스, “주택문제에 대하여”, <<저작선집>> 제4권, p. 244.

 

4) V. I. 레닌, <<국가와 혁명>>, 논장, 1988, p. 49.

 

5) K. 맑스, <<프랑스 내전>>(<<저작선집>> 제4권)을 참고하라.

 

6)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에 있어, 현실사회주의의 발전과 국제관계 등의 현실에 조응하여 맑스-엥겔스의 이론을 계승‧발전을 시킨 것이, 레닌, 스딸린, 모택동의 그것이라면, 그와는 반대로 현실적 관계에 조응하지 못한 잘못된 이론과 정책이 흐루쉬쵸프, 유소기 등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 노선

   이라고 생각한다.

 

7) 맑스-엥겔스의 초기 저작을 그들의 견해가 ‘자기해명’된 <<독일이데올로기>>까지로 보거나, 혹은 자신들의 견해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제출된 <<공산당선언>>까지로 보는 견해가 있다. 초기저작에 관한 연구는 일부에서 제기하듯, 청년 맑스와 완숙한 맑스를 기계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맑스와 엥겔스가 급진적 민주주의자로부터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창시자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견해와의 투쟁 속에서, 또 계급투쟁의 발전 속에서 그것을 고찰하고, 이론화하며, 발전했던 것이다. 이것은 비단 그들의 초기저작에서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맑스와 엥겔스의 견해는 도그마가 아니다. 그들은 현실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진정한 후계자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8) 맑스의 저작에서 나타나는(특히, 초기 저작에서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사회, 시민사회의 개념은 공적 영역 즉 정치적 영역과 구분되는 사적 영역, 개인들의 경제적 이해의 영역이다. 이와 같은 용법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정치적 혁명이란 국가권력에 관계된 혁명이며, 사회적 혁명이란 경제의 영역에 관련된 혁명이다(맑스의 ‘시민사회’에 대한 개념은 <<독일이데올로기>>(<<저작선집>> 제1권)의 p. 259를 참조하라).

 

9)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 (<<저작선집>> 제1권) 중 pp. 11:28- 14:9를 참조하라.

 

10) MEW, Bd. 1, S. 409; K. 맑스, “기사 ‘프로이센 왕과 사회 개혁. 한 프로이센 인이’에 대한 비판적 평주들”, <<저작선집>> 제1권, p. 22.

 

11) 이상의 내용은, “‘프로이센 왕과 사회 개혁. 한 프로이센 인이’에 대한 비판적 평주들”(<<저작선집>> 제1권) 중 pp. 21:24-22:27을 참조하라.

 

12) MEW, Bd. 3. S. 34; K. 맑스ㆍF. 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저작선집>> 제1권), p. 213.

 

13) MEW, Bd. 4, SS. 181-182; K. 맑스, <<철학의 빈곤>>(<<저작선집>> 제1권), p. 296.

 

14) MEW, Bd. 4, S. 317; F. 엥겔스, “공산주의자들과 칼 하인?”, <<저작선집>> 제1권, p. 307.

 

15) MEW, Bd. 4, S. 479; K. 맑스ㆍF. 엥겔스, <<공산당 선언>>(<<저작선집>> 제1권), p. 418.

 

16) MEW, Bd. 4, SS. 481-482; <<저작선집>> 제1권, pp. 420-421.

 

17) MEW, Bd. 7, SS. 89-90; K. 맑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저작선집>> 제2권, p. 94.

 

18) MEW, Bd. 28, S. 508; K. 맑스, “바이데마이어에게 보내는 편지”(1852. 3. 5., 런던), <<저작선집>> 제2권, p. 497.

 

19) MEW, Bd. 8, SS. 196-197; K. 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저작선집>> 제2권, pp. 380-381.

 

20) MEW, Bd. 33, S. 205; K. 맑스, “쿠겔만에게 보내는 편지”(1871. 4. 12., 런던), <<저작선집>> 제4권, p. 425.

 

21) MEW, Bd. 18, SS. 95-96; K. 맑스ㆍF. 엥겔스, “공산당선언 1872년 독일어판 서문”, <<저작선집>> 제1권, pp. 369-370.

 

22) 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은 K. 맑스, <<프랑스 내전>>(<<저작선집>> 제4권)을 참조하라.

 

23) MEW, Bd. 7, SS. 89-90; K. 맑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저작선집>> 제2권, p. 94.

 

24) MEW, Bd. 28, S. 508; K. 맑스, “바이데마이어에게 보내는 편지”(1852. 3. 5., 런던), <<저작선집>> 제2권, p. 497.

 

25) K. 맑스, “인터내셔널 창립 7주년 기념 연설”, MECW, Vol. 22, p. 634; MEW, Bd. 17, S. 433.

 

26) MEW, Bd. 19, SS. 19-21; K.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저작선집>> 제4권, pp. 375-377.

 

27)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소유를 사회화하는 방식에 대해,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국유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는 타인의 노동에 기초한 사적소유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 즉 소생산자들의 소유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타인의 노동에 기초한 사적소유는 직접적으로 국유화를 진행할 수 있지만, 자기 노동에 기초한 소생산자들의 소유에는 국유화의 방식뿐 아니라, 집단화의 방식 그리고 집단화를 통한 국유화의 방식 등 다른 경로를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맑스의 다음의 말을 참조할 수 있다(인용한 글 전체의 논지에서 맑스는 토지의 국유화를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인용한 문장은 다른 경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인용자가 강조한 부분―‘가장 적절한 방법’ 그리고 ‘연합들’이 복수인 점을 주목하라―에서 그러하다).

 

  “농업, 광업, 제조업, 한마디로 모든 생산 부문들은 점차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조직될 것이다. 생산 수단의 국민적 집중은, 공동의 합리적인 계획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들(associa- tions, Assoziationen)로 구성된 사회의 자연적 기초가 될 것이다. 이것이 19세기의 거대한 경제적 운동이 지향하는 목표이다.”(강조는 인용자) (MEW, Bd. 18, S. 62; MECW, Vol. 23, p. 136; K. 맑스, “토지 국유화에 관하여”, <<저작선집>> 제4권, pp. 155-156.)

 

28) F. 엥겔스, “임금노동과 자본 1891년판 서문”, MEW, Bd. 22, S. 209.

 

29) MEW, Bd. 19, S. 28; K.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저작선집>> 제4권, pp. 385-386.

 

30) 이후 맑스가 말한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는 사회주의로, 높은 단계는 공산주의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이행기-사회주의-공산주의’의 단계를 설정하는 것을 쏘련의 ‘소과도기’론이라고 하고, ‘자본주의-이행기=사회주의-공산주의’의 단계를 설정하는 것을 중국의 ‘대과도기’론이라고 한다. 즉, 모택동의 대과도기론은 사회주의 전부를 이행기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입장은 현실적으로 굉장한 의의가 있는 주장이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맑스와 엥겔스의 입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해명하지 않은 정치적 이행기의 문제를 인식한다면, 이 주장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31) MEW, Bd. 19, S. 28; K.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저작선집>> 제4권, p. 385.

 

32) MEW, Bd. 4, SS. 481-482; K. 맑스ㆍF. 엥겔스, <<공산당선언>>(<<저작선집>> 제1권), pp.420-421.

 

33) MEW, Bd. 18, S. 50; K. 맑스ㆍF. 엥겔스, “인터내셔널의 이른바 분열”, <<저작선집>> 제4권, p.148.

 

34) MEW, Bd. 18, S. 62; MECW, Vol. 23, p. 136; K. 맑스, “토지 국유화에 관하여”, <<저작선집>> 제4권, pp. 155-156.

 

35) MEW, Bd. 18, S. 266; F. 엥겔스, “주택문제에 대하여”, <<저작선집>> 제4권, p. 242.

 

36) MEW, Bd. 19, S. 223-224; F. 엥겔스,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저작선집>> 제5권), pp. 469-450; F. 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반 뒤링)>>(<<저작선집>> 제5권), pp. 308-309.

 

37) MEW, Bd. 22, S. 199; F. 엥겔스, “칼 맑스의 ‘프랑스에서의 내전’ 독일어 제3판 서설”, <<저작선집>> 제6권, pp. 335-336.

 

38) 사실 이 부분이 ‘프롤레타리아독재와 이행기’ 문제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것은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의 차이에서 명확하게 도출된다.

 

39) MEW, Bd. 7, SS. 89-90; K. 맑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저작선집>> 제2권, p. 94.

 

40) MEW, Bd. 19, SS. 19-21; K.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저작선집>> 제

4권, pp. 375-377.

 

41) MEW, Bd. 34, SS. 128-29.; F. 엥겔스, “베벨에게 보내는 편지”(1875. 3. 18/28., 런던), <<저작선집>> 제4권, p. 458.

 

42) 레닌은 <<국가와 혁명>>을 통해, 당시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된 맑스주의 국가론을 되살리고 있는데, 그 중에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에 관한 부분이다. 우리는 레닌을 통해, 국가 사멸의 문제에 관한 맑스-엥겔스의 이론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3) MEW, Bd. 19, S. 20; K.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저작선집>> 제4권, p. 375.

 

44) MEW, Bd. 19, S. 21; <<저작선집>> 제4권, p. 377.

 

45) 여기에서 ‘바로’, ‘방금’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은 독일어의 ‘eben’이다. 이 단어는 미제국주의의 영향력으로, 우리가 독일어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어로 표현하자면, even, just, now의 의미이다.

 

46) 이러한 의미에서 이행기는 사회의 대부분의 생산관계가 사회적 소유로 된 시점, 즉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이후 용어로 사회주의)가 확립된 시점까지를 이행기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이행기의 경제적 당면 목표가 설정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기 중에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다른 우클라드를 구축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즉 사회의 지배적인 경제 체제가 된다면, 그 때부터 사회주의 사회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엄밀한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구분에서의 엄밀함이 실천에서의 올바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실천에서 이러한 구분이 일정한 의미가 있다면, ‘사회주의’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레닌의 예를 들어보자. 레닌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지배적인 경제 체제로 되지도 못한 시기에, “우리 시대의 주요 임무”에서 독일군의 침략에 맞서 “우리가 향하는 애국의 전쟁은 사회주의 조국을 위한, 조국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내전기에 쓴 “좌익적 유아성과 소부르주아성에 관하여”에서는 “반드시 사회주의 조국을 방위하여야 한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말들은 경제적인 의미에서만 판단한다면, 엄밀하지 않고 정확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인민들에게 호소한 것은 정치적 상황을 정확하게 고려한 것이며, 따라서 올바른 실천인 것이다. 이렇게 넓은 의미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과 더불어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성립했을 때, 그것을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사회주의 사회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반면에 흐루쉬쵸프의 ‘전인민의 당’, ‘전인민의 국가’, ‘발달한 사회주의’론을 보라. 사실 그들이 소과도기론을 내세우며 엄밀하게 경제적 시기를 구분한 것은, 당시 자신들의 사회가 이미 고도의 사회주의 단계에 있으며,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완전하게 확립되었기 때문에, 생산력의 발달에 힘입어 곧 공산주의 사회로 접어들 것이라는 사고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들의 생산력 수준을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그래서 생산재 부문의 생산력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급속하게 소비재 생산을 늘리는 오류를 범했다), 정치적 상부구조가 토대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했다. 당시의 국제관계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상부구조가 토대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인식했다면, 그러한 관계 속에서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고, 사회주의ㆍ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당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확한 역할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단계론에 입각하여, 이미 사회주의가 확립되었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이제 그들에게는 계급모순은 완전히 사라졌으므로, 그들의 당은 ‘전인민의 당’이며 그들의 국가는 ‘전인민의 국가’라는 선언을 하게 되었다. 나아가 생산력의 발달을 위해서라면 자본주의적인 방식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경향은 사회주의와 시장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갔고, 고르바쵸프에 이르면 실제로 시장경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모택동의 대과도기론, 즉 ‘이행기=사회주의’론은 이러한 토대와 상부구조 간의 모순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등장했다. 즉, 사회주의 단계에서도 인민 내부의 모순과 적과 인민의 모순은 언제든지 발생하며, 비적대적 모순이라도 모순의 해결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적대적 모순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회주의사회에서의 계속혁명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 즉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은 정확하다. 하지만 상부구조가 토대에 다시 영향을 주며, 상부구조 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맑스주의가 발견한 법칙이다. 즉, 상부구조인 정치적인 부분을 정확하게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 단계 구분에서만 엄밀함을 추구할 때, 실천적으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행기의 문제는 토대와 상부구조가 통일적으로 사고되어야만, 그것의 올바른 상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47) 주 46)의 내용 중 전인민의 당, 전인민의 국가 노선은 쏘련공산당 제22차 대회에서 최초로 주장되었다. 1961년 10월 31일, 쏘련공산당 제22차 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국내의 발전이라는 과제에서 보면 쏘련에서는 더 이상 긴요하지 않게 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로서 태어난 국가는 오늘의 새로운 단계에서 전체 인민의 국가, 전체 인민의 이익과 의지를 표현하는 기관으로 되었다…쏘련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하고 쏘비에트 샤회의 통일성이 강화된 결과, 노동자계급의 공산당은 쏘비에트 인민의 전위, 즉 전체 인민의 당으로 되었다…”(바만 아자드,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노사과연, 2007, pp. 113, 117에서 재인용) 그리고 생산력의 발달을 위해서라면 자본주의적인 방식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고들은 이러한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다. “자본가의”, “서방측의”, “훌륭한 모범”이나 “유익한 경험”을 “배워서”, “도입하여야한다.” (쏘련 공산당 제22차 당대회(1961년 10월 18일)에서의 새로운 강령에 대한 흐루쉬쵸프의 보고; 江副敏生, <<사회구성체이행논쟁>>, 세계, 1986, p. 63에서 재인용) 이것은 쏘련의 현실과 국제관계를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한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이러한 수정주의자들의 오류는, 이 글 전체를 통해 비판되고 있다.

 

48)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와 높은 단계는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동일한 사회구성체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들의 공통점만큼 그들의 차이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레닌의 견해에서 상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49) 상부구조는 토대에 기인한다. 하지만 토대가 변혁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바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토대에 기인해서 발생했던 상부구조는 상당기간 존재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 생산 관계들에 조응하는 전체 사회적 연관들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사회적 연관들로부터 기인하는 전체 이념의 변혁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 경과점”이라는 맑스의 말 속에서,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완료된 이후에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왜 끝나지 않는가, 즉 또 다른 일정기간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50) MEW, Bd. 3, S. 35; K. 맑스ㆍF. 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저작선집>> 제1권), p. 215.

 

51) MEW, Bd. 4, SS. 374-375; F. 엥겔스, “공산주의의 원칙들”, <<저작선집>> 제1권, pp. 333-334.

 

52) MEW, Bd. 6, S. 150; K. 맑스, “혁명운동”, <<저작선집>> 제1권, p. 511.

 

53) 세계혁명과 일국사회주의론을 대립적으로 사고하는 일부의 경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양자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통일적인 것이다. 사회주의는 상식적으로 한 나라 혹은 일부의 국가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혁명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어간다는 것이 맑스와 엥겔스가 말하고 있는 바이다. 이것을 대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은, 스딸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이 세계혁명을 배신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뜨로츠끼가 끝까지 세계혁명을 사수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독일혁명의 가능성이 사라진 시점에서 마지막까지 세계혁명을 위해서, 세계혁명의 진지를 버릴 수 있다는 뜨로츠끼의 생각은 모순적이며, 오히려 모험적이고, 공상적이며, 패배적이다. 스딸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은 쏘련 일국에서만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의 정세 속에서 지금은 세계혁명의 진지를 확고하게 구축해야하는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쏘련이 모험적으로 계속적인 전쟁을 수행했다면, 어렵게 구축한 진지조차 다시 부르주아지에게 넘겨주는 꼴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세계 혁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 양자를 통일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그의 저작을 통해서, 즉 말뿐만 아니라 세계 혁명을 위한 쏘련의 실천이 증명하고 있다. 그러한 실천의 결과로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블록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54) Bunyan, James, Intervention, Civil War and Communism in Russia, April -December 1918, Johns Hopkins Press, 1936, pp. 151-152(M. 리브만, <<레닌주의연구>>, 미래사, 1987, p. 407에서 재인용).

 

55) 한국에는 이러한 관점의 연구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Progressive Labor Party, “스페인 내전(1936-1939)의 교훈”(<<정세와 노동>> 제32호(2008년 2월), 노사과연)을 참조하라. 이 문제에 관해 보다 중립적인 입장에 서 있는 빈센트 나바로 역시, 우리에게 스페인 내전에 관한 영화로 잘 알려진 켄 로취의 ‘랜드앤프리덤’을,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반공주의 영화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Vincente Navarro, “Fascism and Antifascism: Yesterday and Today”, Monthly Review, Vol. 47, No. 8, 1996년 1월, p. 18).

 

56) MEW, Bd. 18, SS. 59-60; MECW, Vol. 23; K. 맑스, “토지 국유화에 관하여”, <<저작선집>> 제4권, pp. 153-154.

 

57) MEW, Bd. 22, S. 486; F. 엥겔스,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 문제”, <<저작선집>> 제6권, p. 402.

 

58) MEW, Bd. 7, S. 252; K. 맑스ㆍF. 엥겔스, “동맹에 보내는 중앙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 <<저작선집>> 제2권, p. 124.

 

59) MEW, Bd. 16, SS. 399-400; F. 엥겔스, “독일 농민 전쟁 제2판 서문”, <<저작선집>> 제3권, p. 162.

 

60) 헬무트 알트리히터, <<소련소사 1917~1991>>, 창작과비평사, 1997, p. 228의 <표8>에서 재인용.

 

61) 이 양자는 국유의 형태로 수렴해 가고 있었다. 쏘련의 해체 직전에는 집단농장과 국영농장의 비율이 거의 비슷해졌으며(집단농장 약 26,000개, 국영농장 약 23,000개), 그 경작 면적에 있어서는 국영농장이 집단 농장을 압도하고 있었다(집단농장의 평균 경작지 면적 6,100ha, 국영농장의 평균 경작지 면적 20,000ha).

 

62) 1990년의 현재, 집단공장과 국영농장은 전체 농지의 95%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전체 농업 생산의 73%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것의 비율이 최대치였던 시기에 비하면, 수정주의자들의 정책으로 인해 이미 그것의 비율이 상당히 줄어든 것이었다. 하지만 쏘련이 해체된 이후인 1992년에는 집단적 소유의 농장은 전체 농경지 중 35% 밖에 차지하지 못했고, 전체 농업 생산의 23% 밖에 담당하지 못했다.

 

63) 다음을 참고하라. MEW, Bd. 16, SS. 11-12; K. 맑스, “국제노동자협회 발기문”, <<저작선집>> 제3권, pp. 10-13. 맑스는 당시 현실에서의 생산 협동조합 운동이 일정한 의의는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하나의 섬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고,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 둘러싸여, 종국에는 파괴될 운명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맑스는 그러한 경로 대신에,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전취한 힘으로 생산관계들을 전면적으로 변혁할 것을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맑스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당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생산 조합들, 그것이 전사회화된다면, 즉 사회적 통제에 기초해 사회적으로 연합되고, 기존의 생산관계를 파괴해서 그것이 주요한 생산관계가 된다면, 그게 바로 공산주의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러한 사회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협동조합을 통해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그러한 것을 전면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맑스는 그것을 전취할 과학적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64) MEW, Bd. 18, S. 62; MECW, Vol. 23, p.136; K. 맑스, “토지 국유화에 관하여”, <<저작선집>> 제4권, pp. 155-156.

 

65) MEW Bd. 19, SS. 19; K.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저작선집>> 제4권, pp. 375.

 

66) MEW, Bd. 22, S. 500; F. 엥겔스,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 문제”, <<저작선집>> 제6권, p. 419.

 

67) MEW, Bd. 22, S. 504; <<저작선집>> 제6권, p. 423.

 

68) MEW, Bd. 19, S. 19; K.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저작선집>> 제4권, pp. 375.

 

69) Lenin Collected Works, Vol. 25, p. 388; V. I. 레닌, <<국가와 혁명>>, 논장, 1988, p. 14; <<국가론 노트>>, 두레, 1990, p. 10.

 

70) 같은 책, pp. 34-35.

 

71) 그들은 심지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 당이 국가 권력을 갖게 되자마자, 당은 공업에서의 공장주와 꼭 마찬가지로 대토지 소유자를 수탈해야 한다. 이 수탈에 대해 보상이 따르느냐 여부는, 대부분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권력을 갖게 될 당시의 상황과 특히 대토지 소유자 신사분들 자신들의 태도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보상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허용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무리로부터 모두 사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가장 값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셈일 것이라는 의견을 맑스는 나에게— 그것도 여러 번! —말한 바 있다.”(MEW, Bd. 22, SS. 503-504; F. 엥겔스, “프랑스와 독일의 농민 문제”, <<저작선집>> 제6권, p. 423.)

이렇게 그들은 평화적인 방법의 사용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지배계급이 그들의 권력을 순순히 내놓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당연히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72) MEW, Bd. 4, S. 372; F. 엥겔스, “공산주의의 원칙들”, <<저작선집>> 제1권, pp. 330-331.

 

73) MEW, Bd. 2, S. 430; F. 엥겔스,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처지>>(<<저작선집>> 제1권>>), p. 154.

 

74) V. I. 레닌, <<국가와 혁명>>, p. 51.

 

75) 같은 책, p. 108.

76) 같은 책, p. 110.

77) 같은 책, p. 108.

78) 같은 책, p. 112.

79) 같은 책, pp. 112-113.

80) 같은 책, p. 111.

81) 같은 책, p. 113.

82) V. I. 레닌, <<국가와 혁명>>, 1998, p. 115.

83) 같은 책, p. 123.

84) 같은 책, pp. 124-125.

85) 같은 책, pp. 116-117.

86) 같은 책, pp. 117-118.

 

87) MEW, Bd. 19, S. 19; K.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저작선집>> 제4권, 1995, p. 375.

 

88) V. I. 레닌, <<국가와 혁명>>, pp. 118-119.

 

89) 같은 책, p. 119.

90) 같은 책, pp. 121-122.

91) 같은 책, p. 117.

92) 같은 책, p. 120.

93) 같은 책, p. 125.

 

94) 여기서 언급되는 극소수의 자본가는 이 문장의 바로 앞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모든 자본가들이 고용원으로 전화”되었다는 것과 배리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극소수의 자본가는 이미 생산수단은 박탈되었지만, 여전히 자본가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전(前)자본가이다. 레닌이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를 언급하고 있는 다음의 문장을 보면 그 의미는 명확해진다. “모든 시민들은 전국적인 단일 신디케이트의 고용원이나 노동자가 되”었다.

 

95) 그런데 이 문제는 사실 제국주의의 포위와 그것과의 대결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했던, 스딸린과 모택동에게 보다 핵심적인 문제였다(레닌이 <<국가와 혁명>>을 집필했던 시기는 1917년 8월에서 9월사이로 아직 사회주의 혁명 전이었다. 또한 레닌은 제국주의와의 전쟁과 간섭전쟁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 나갔지만, 그것은 생산수단이 공유된 사회를 건설하는 첫걸음을 뗀 시기였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첫 번째 단계를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회 내부의 생산관계는 개조되었지만, 외부는 여전히 그들의 적이었다. 즉, 여기에서 레닌은 극소수 자본가를 말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자본가는 극소수가 아니었다. 그들의 외부는 제국주의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맑스주의의 이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96) 이 점에 대해는 모택동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97)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측면을 선차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토대이다. 하지만 이 측면이 다시 토대에 영향을 미치며, 이들 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98) V. I. 레닌, “Economics And Politics In The Era Of 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江副敏生, <<사회구성체이행논쟁>>, 1986, p. 35에서 재인용.

 

99) 흐루쉬쵸프 수정주의자 집단은 전인민의 당, 전인민의 국가 노선을 추구하며, 레닌의 이렇게 말한 글들을 인용한다. 아래 인용한 글에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기간에 한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단계에 들어선 쏘련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시대를 끝내고, 전인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100) V. I. 레닌, “The Immediate Tasks of the Soviet Government” (1918). <<국가와 혁명>>, p. 168에서 재인용.

 

101) V. I. 레닌, “Greetings to the Hungarian Workers”(1919). 江副敏生, <<사회구성체이행논쟁>>, 1986, p. 37에서 재인용.

 

102) 여기서부터는 현실 사회주의 건설의 지도자였던, 스딸린과 모택동의 견해를 검토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가 맞물리면서, 이를 반영한 각종 청산주의와 기회주의적 풍조가 만연해 있다. 이로 인해 현실 사회주의 건설의 지도자였던 그들의 견해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부득이하게 그들의 견해를 전혀 왜곡하지 않은 채 그들의 견해를 보여주는 방식, 즉 저작 인용 방식을 많이 사용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가려져있던 혹은 왜곡되어 있던 그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103) 이 장에서는 스딸린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 문제에 관한 이론적 발전을 검토할 것이다. 스딸린은 쏘련 사회주의의 실질적 건설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사실 이 문제는 쏘련 사회주의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주.1>에서 이 부분에 관한 것은 별도의 글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이 부분과 관련되는 문제들은 그 글을 통해 다루어질 것이다. 주요한 쟁점들은 이런 것들이다. 쏘련에서의 가치법칙, 임금노동 관계의 존재 여부, 쏘련에서의 루블의 의미 등. 따라서 이 글에서는 관련 주제에 관한 스딸린의 이론적 발전 중 일부분을 보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국가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104) Stalin Works, Vol. 14, Red Star Press, 1978, p. 156; J. V. 스딸린, “U.S.S.R. 헌법 초안에 관하여”, <<스딸린 선집>> 제2권, 전진, 1990, p. 94.

 

105) Stalin Works, Vol. 14, p. 164; <<스딸린 선집>> 제2권, p. 99.

 

106) 위의 “U.S.S.R. 헌법 초안에 관하여”가 바로 그 연설이다. 그 연설은 1936년 11월 25일, 소비에트 8차 특별 대회에서 행해졌다.

 

107) Stalin Works, Vol. 14, pp. 165-166; <<스딸린 선집>> 제2권, p. 101.

 

108) 스딸린이 부르주아 헌법에 대해 말한 이 부분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헌법을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09) Stalin Works, Vol. 14, pp. 168-169; <<스딸린 선집>> 제2권, pp. 102-103.

 

110) Stalin Works, Vol. 14, pp. 169-170; <<스딸린 선집>> 제2권, p. 103.

 

111) Stalin Works, Vol. 14, pp. 156-157; <<스딸린 선집>> 제2권, p. 94.

 

112) Stalin Works, Vol. 14, p. 157; <<스딸린 선집>> 제2권, p. 94.

 

113) Stalin Works, Vol. 14, pp.157-160; <<스딸린 선집>> 제2권, pp. 94-96.

 

114) “…인텔리겐챠는 결코 하나의 계급인 적이 없으며, 또한 결코 하나의 계급일 수가 없다. 인텔리겐챠는 그 구성원이 사회의 모든 계급들 사이에서 충원되는 하나의 계층이었고 또한 하나의 계층으로 남아있다.”(Stalin Works, Vol. 14, p. 183; <<스딸린 선집>> 제2권, p. 113.)

 

115) 스딸린은 그의 말년의 저작 <<U.S.S.R.에서의 사회주의 경제적 문제들>>(1952년)에서 하나의 장을 전체를 이 문제에 할애하고 있다. 그 장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도시와 농촌 사이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의 폐지,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구별성의 근절’. 이상을 통해, 그가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6) Stalin Works, Vol. 14, pp. 182-183; <<스딸린 선집>> 제2권, p. 113.

 

117) “흐루쉬쵸프의 과도기론과 이를 발전시킨 사회주의 사회 이론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후르쉬쵸프의 강령 초안 보고에 대한 토의를 총괄한 가운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일찍이 토의과정에서부터 적지 않은 반대의견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흐루쉬쵸프 자신이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전인민의 국가론’에는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 흐루쉬쵸프는 이 보고 속에서 이들은 ‘교조주의’적 입장에 서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러한 동지들은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객관적 정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국가라고 한 맑스, 엥겔스와 레닌의 학설을 멋대로 왜곡시켜 해석하여 “이 학설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고 격렬히 비판하고 있다(흐루쉬쵸프의 인용은 “쏘련 공산당 제22차 당대회(1961년 10월 18일)에서의 새로운 강령에 대한 흐루쉬쵸프의 보고” 중에서).”(江副敏生, <<사회구성체이행논쟁>>, 1986, p. 64) 이런 것을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누가 객관적 정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맑스주의를 왜곡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상의 검토를 통해, 이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18) J. V. 스딸린, “L. D. 야로쉔꼬 동무의 오류에 관하여”, <<스딸린 선집>> 제2권, pp. 280-283.

 

119) Stalin Works, Vol. 14, pp. 160-161; J. V. 스딸린, “U.S.S.R. 헌법 초안에 관하여”, <<스딸린 선집>> 제2권, p. 97.

 

120) J. V. 스딸린, <<사적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두레, 1989, pp. 64-65.

 

121) 같은 책, p. 72.

 

122) J. V. 스딸린, “U.S.S.R.에서의 사회주의의 경제적 문제들”, <<스딸린 선집>> 제2권, pp. 230-231.

 

123) 같은 책, pp. 258-259.

 

124) J. V. 스딸린, “L.D.야로쉔꼬 동무의 오류에 관하여”, <<스딸린 선집>> 제2권, pp. 281-282.

 

125) Stalin Works, Vol. 12,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1954, p. 381; J. V. 스딸린, “Political Report of the Central Committee to the Sixteenth Congress of the C.P.S.U.(B.)”. <<국가와 혁명>>, p. 197에서 재인용.

 

126) Stalin Works, Vol. 13, p. 215; J. V. 스딸린, “The Results of the First Five-Year Plan”. <<국가와 혁명>>, p. 197에서 재인용.

 

127) Stalin Works, Vol. 14, pp. 411-412; J. V. 스딸린, “중앙위원회 사업에 관한 쏘비에트연방공산당(볼) 18차 대회 보고”, <<스딸린 선집>> 제2권, pp. 197-198.

 

128) Stalin Works, Vol. 14, pp. 416-417; <<스딸린 선집>> 제2권, p. 201.

 

129) J. V. 스딸린, “홀로포프 동무에게”(1950). <<국가와 혁명>>, pp. 199- 200에서 재인용.

 

130)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이러한 입장을 가진 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주.1>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른 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비판할 계획이다. 다만, 이 글이 그것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일정한 부분에서 이러한 주장들이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이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131) 이것이 우리 사회의 수많은 청산주의자들의 입장이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외에는 수많은 맑스-레닌주의 경향의 그룹이 존재하고, 수많은 노동자당, 공산당들이 새로운 세계로의 과학적 전망을 가지고, 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해외의 경향 중 가장 해악적이고 반동적인 국제사회주의(IS), 뜨로츠끼주의(FI 등), 좌익공산주의(ICC 등) 등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리고 이로 인해 해외의 경향이 이러한 것들뿐인 줄 잘못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분단이라는 특수성과 이로 인한 국가의 폭압,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반공주의 때문에, 또 이러한 조건들과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해 만연되었던 각종 수정주의, 청산주의가 아직 극복되지 못했던 이론적 기반 때문에, 그러한 경향들을 중심으로 해외의 것들이 소개되었고,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향은 하루 빨리 극복되어야 한다.

 

132) 이 회의가 곧 준의회의(遵義會議)이다. 준의회의에 참가한 정치국 위원은 6명, 후보위원은 4명, 홍군 총사령부와 각 군단의 책임자는 10명이었다. 그리고 꼬민테른의 주중국 군사고문이었던 이덕도 회의에 참가했다. 회의는 3일간의 토론을 거쳐, ‘중앙의 적군(敵軍) 제5차 위초(圍剿)에 반대에 관한 총괄적인 결의’를 발표했다. 회의에서 모택동은 기존의 전술인 ‘단순한 군사적인 방어노선’을 비판했다. 이것은 꼬민테른의 군사고문이었던 이덕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대회에서 모택동이 ‘쏘련과 꼬민테른의 노선에 반대하고, 당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다’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이는 오해이며, 준의회의는 꼬민테른를 옹호한다는 대전제 아래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준의회의의 결의는 꼬민테른의 지시에 대해 모두 긍정했으며, 꼬민테른 1933년 10월의 전보, 1933년 2월의 전보와 1934년 6월 25일 전보 등에 대해서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회의는 단지 군사지휘에 관한 문제만을 비평했으며, 4중전회 이래의 정치노선 문제를 비판한 것이 아니었다(向靑, <<꼬민테른과 중국혁명의 관계사>>, 고려원, 1992, pp. 204-213의 “왕명과 이덕의 군사지휘의 실패,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의 지도권 확립”을 참조).

        참고로, 위초(圍剿)란 ‘포위토벌’을 말한다.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군은, 중국공산당의 홍군을 괴멸시키기 위해 1930년 12월부터 1934년 10월까지 5차에 걸쳐 포위토벌을 감행했다. 특히 1933년 8월부터 시작된 5차 위초에서 국민당군은 수십만 개의 토치카(콘크리트로 만든 진지)와 70만 명의 병력으로 중앙쏘비에트인 서금지역 주변을 포위하고, 그 포위망을 점점 좁혀가는 작전을 썼다. 70만의 대군에다 전차, 전투기까지 동원된 대대적인 포위토벌에 의해 서금지역의 생필품 및 의약품의 사정은 점차 열악해져 갔고, 거기에다 적의 공격에 대항한 홍군의 제5차 반위초(反圍剿)의 전술적인 오류로 인해 홍군은 계속 패배했다. 서금의 입구까지 국민당군에게 함락 당한 상황에서, 홍군은 서금을 버리고 대탈출을 감행, 역사적인 대장정의 길에 오르게 된다.

 

133) 모택동의 견해에 관한 많은 부분은, 江副敏生, <<사회구성체이행논쟁>>에 근거했다.

 

134) <<중화인민공화국 국민경제발전 제1차 5개년 계획, 1953-1957>>, 1955, p. 18. 江副敏生, <<사회구성체이행논쟁>>, p. 76에서 재인용.

 

135) 여기서 ‘기본적인’ 확립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다음과 같은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주의제도는 이제 겨우 힘차게 일어나고 있을 뿐으로 아직 완전히 완수된 것도 아니고, 또한 완전한 토대를 구축한 것도 아니다. 상ㆍ공업의 공사합영기업에서는 여전히 자본가가 정액 이자를 취함으로써 착취가 존재하고 있고, 이를 소유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기업은 아직 완전히 사회주의적 성질의 것은 아닌 것이다. 농업생산협동조합, 수공업생산협동조합도 일부는 여전히 반(半)사회주의적 성질의 것이며, 완전히 사회주의화된 협동조합에서조차도 소유제에 관한 개개인의 문제는 더욱더 해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Selected Works of Mao Tsetung, Vol. 5, Foreign Languages Press, Peking, 1977, p. 394; 모택동, “인민 내부의 모순을 올바로 처리하는 문제에 대하여”(1957. 2. 29. 최고국무회의 제11회 확대회의의 보고강연); 江副敏生, 같은 책, p. 131에서 재인용)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자본가는 ‘인민 내부의 모순’과 ‘적과 인민의 모순’을 이야기 할 때 명확하게 해명되겠지만, 민족부르주아지이다. 민족부르주아지가 상당기간 잔존하고 있는 상황은 이해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일본제국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혁명을 수행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회적 통제 하의 공사합영기업이라는 형식이 사회의 특수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쏘련이 전사회의 사적소유의 두 형태를 토대로 국유화와 집단화의 방식으로 사회화를 달성했듯이 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중국은 농촌에서는 농업합작화, 농촌인민공사 등의 방식으로 소유를 사회화하였고, 도시에서는 공기업은 ‘몰수’, 사영공상기업은 ‘공사합영’, 개인수농업은 ‘합작화’의 방식으로 사회화를 추진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방식이었고, 국가는 공유제의 비율을 계속 증대시켜나갔다. 이렇게 그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그리고 발전을 향한 의식적인 노력으로 인해, 이러한 현실은 점차 지양되어갔다.

 

136) 모택동, “농업협동화에 대한 변론과 당면의 계급투쟁”. 江副敏生, 같은 책, p. 82에서 재인용.

 

137) 그것은 문제의 원인을 완전히 잘못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그 해결 방안도 완전히 돌팔이 의사의 처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의 심각한 오류와 그 결과들은, 바만 아자드,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노사과연, 2007)의 “제3부 사회주의 위기의 주체적ㆍ내부적 요인”을 참고하라.

 

138) 흐루쉬쵸프의 스딸린 비판에 대한 반비판으로 시작된 중-쏘논쟁은, 스딸린 비판의 문제에서 그 범위를 넓혀가 이후에는 전쟁과 평화, 평화공존의 문제 등의 국제관계와 사회주의 사회의 성격과 건설 방향을 둘러싼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필자는 이 논쟁의 많은 부분에서 중국의 입장이 올바른 노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큰 오류가 있는데, 이 점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139) 모택동, “‘중국 농촌에 있어서의 사회주의의 고조’에 대한 평가”. 江副敏生, 같은 책, p. 83 에서 재인용.

 

140)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서”. 江副敏生, 같은 책 p. 114에서 재인용. 이 논평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의 토의에 기초해 작성된 것이다. 이 논평은 모택동의 견해를 정확하게 대표하고 있는 글이다.

 

141) 모택동, “10대 관계에 대하여”. 江副敏生, 같은 책, pp. 78-79에서 재인용.

 

142) 이것을 스딸린이 야로쉔꼬를 비판하며 했었던 말과 비교해 보라. 거기에서 스딸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도기관의 임무는 그러므로 초기의 모순을 즉각적으로 발견하여 생산관계를 생산력의 성장에 적응시킴으로써 그 모순을 해결하고 용해시키는 시기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J. V. 스딸린, “L. D. 야로쉔꼬 동무의 오류에 관하여”, <<스딸린 선집>> 제2권, p. 282.)

 

143)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재론”, <<인민일보>>, 1956. 12. 29.(이 논평 역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의 논의 결과물이며, 모택동의 견해가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는 글이다); 江副敏生, 같은 책, pp. 78-79에서 재인용.

 

144) Selected Works of Mao Tsetung, Vol. 5, p. 393; 모택동, “인민 내부의 모순을 올바로 처리하는 문제에 대하여”(1957. 2. 29. 최고국무회의 제11회 확대회의의 보고강연); 江副敏生, 같은 책, pp. 108-109에서 재인용.

 

145) Selected Works of Mao Tsetung, Vol. 5, p. 393; 江副敏生, 같은 책, p. 117에서 재인용.

 

146) Selected Works of Mao Tsetung, Vol. 5; 江副敏生, 같은 책, p. 117에서 재인용

 

147) Selected Works of Mao Tsetung, Vol. 5, p. 384; 江副敏生, 같은 책, p. 120에서 재인용.

 

148) Selected Works of Mao Tsetung, Vol. 5, p. 386.

 

149) 같은 책, pp. 385-386.

 

150) 모든 부분이 그렇겠지만, 여기에서 민족부르주아지와 관련된 부분을 언급해 둔다.

 

151) Selected Works of Mao Tsetung, Vol. 5, p. 385.

 

152) 같은 책, p. 386.

 

153) 같은 책, p. 385.

 

154) 이 부분은 스딸린에 의해 누차 강조된 바 있는 바로 그것이다. 모택동 역시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한 모순으로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이 지점을 반영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를 사고하는 것이, 현실에 기반해 그것을 고찰하고, 그 전망을 제시하는 맑스주의자의 관점일 것이다.

 

155) Selected Works of Mao Tsetung, Vol. 5, p. 387.

 

156) 같은 책, p. 387.

 

157) 같은 책, p. 409; 江副敏生, 같은 책, pp. 131-132에서 재인용.

 

158) Selected Works of Mao Tsetung, Vol. 5, pp. 411-412; 江副敏生, 같은 책, p. 132에서 재인용.

 

159) 모택동은 1958년 2월 중국공산당 제8기 중앙위원회 제6회 총회에서 국가 주석직을 사임한다. 그것은 다음 해 4월 제2기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제10회 회의에서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160) 1963년 6월 14일 제출된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에 대한 제안”. 이 제안은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1963년 3월 30일의 서한에 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답서이며, 모택동이 기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江副敏生, 같은 책, p. 89에서 재인용.

 

161) <<인민일보>>, <<홍기>> 편집부, “흐루쉬쵸프 사이비 공산주의와 그 역사적 교훈”(1964년 7월 14일). 이것은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공개서한에 대한 중국측의 마지막 정식 반론이다. 江副敏生, 같은 책, pp. 89-90에서 재인용.

 

162) 모택동, “중국공산당 제8기 중앙위원회 제10회 대회(1962년 9월)의 연설”. 江副敏生, 같은 책, p. 87에서 재인용.

 

163) 江副敏生, 같은 책, p. 88에서 재인용.

 

164) 현실의 역사는 중국 공산당이 체계화한 이러한 노선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이 점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모택동의 사망 후 당과 국가의 실질적 지도자는 모택동에 의해 숙청되었던 주자파(主資派)의 대표 등소평이 된다(그는 1973년 복권되었으나, 76년 다시 숙청되고, 다음 해 다시 복권된다). 그리고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의 등소평 노선이 확정되고, 1979년 4월에는 ‘조정/개혁/정돈/향상’의 소위 ‘신팔자’ 방침을 채택함에 따라 모택동의 ‘계속혁명론’은 폐기되고, 중국은 생산력주의, 수정주의의 노선을 걷게 된다. 이 시대를 지배한 사상이 그의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부터 부자가 되라’는 ‘선부론’과, ‘어떤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이었다. 자본주의든, 시장이든 마음껏 활용하겠다. 그것이 우리를 부유하게 할 수 있다면, 즉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면! 이것이 중국 역사의 현실이며, 동시에 쏘련의 역사이다. 우리는 이러한 통탄의 역사를 뼈까지 골수까지 새겨놓아야 한다!  

 

165) “중국공산당 규약” 제1장 총장. 중국공산당 제9회 전국대표대회(1969년 4월)에서 채택되었다; 江副敏生, 같은 책, p. 90에서 재인용.

 

166)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정통 맑스-레닌주의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뜨로츠끼주의의 오류는 본지(<<노동사회과학>> 창간호)에 번역ㆍ소개되고 있는 “뜨로츠키주의란 무엇인가?”를 정독해보길 권한다.

 

167)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분열시켜 그 힘을 약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에게 반쏘ㆍ반공 선전의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168) 쏘련의 ‘생산수단이 사회화’되어 있다는 것은 뜨로츠끼주의자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뜨로츠끼는 쏘련의 생산수단은 사회화되어 있지만, 관료들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의미에서 ‘타락한 노동자 국가’, ‘변질된 노동자 국가’, ‘관료적 왜곡이 있는 노동자국가’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스딸린을 비롯한 ‘테르미도르 반동배’들만 몰아내면, 쏘련은 다시 사회주의로의 정상적 궤도에 접어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사실 스딸린을 몰아내고,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쏘련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주장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러한 일을 위해, 쏘련에서의 테러, 사보타지를 지시하고, 심지어는 군사적 행동까지 계획하고 있었다(이 점에 대해서는 <<정세와 노동>>에 번역ㆍ연재되고 있는 마리오 소사의 글들을 참조하라). 그들 경향 사이에 한 가지 차이점이 있는 것은, 뜨로츠끼적 경향 중 국제사회주의자(IS) 그룹은 이러한 뜨로츠끼의 견해를 부정하고, 한 발 더 나아가 토니 클리프가 제창한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가자본주의론이라는 것 자체가 우습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얼마나 비과학적인가! 그런데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은 그러한 우습고도 비과학적인 그것들 중에서도 가장 이론적 헛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니 클리프가 처음 주장했던 ‘국가자본주의론’의 내용 중 일부는 이미 IS 그룹 내에서도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 있을 정도이니, 다른 경향에 의한 난도질과 비판은 말해봐야 무엇하겠는가? 입만 아프겠지만 언급하면, 이것도 상당수다. 왜냐하면 그것의 이론적 방패는 너무도 약하기 때문이다!

 

169) 물론 상부구조가 다시 토대에 영향을 주며, 상부구조 사이에도 그러하다. 이러한 종합적인 관점에서 모택동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이행기의 문제를 사고하고 있음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70) 중국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사회가 아니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상당부분 붕괴되었고, 사유화되었다. 생산관계가 사회주의에 기반해 있지 않고, 말로만 맑스-레닌주의를 계승하는 지도부가 있는 사회, 이 사회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이 사회는 남아있는 사회화된 생산수단을 바탕으로, 그 지도부와 대결하고, 사회주의를 향한 궤도에 다시 올라야 하지 않을까(동시에 이미 그 지도부가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지도부와의 대결을 빌미로, 더 오른쪽으로 가려는 세력들의 준동도 억제되어야 한다. 즉, 이 양자가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려는 방향은 왼쪽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을 통해 우리는 쏘련이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정확하게 기초해 있었다는 점에서, 이 양자의 전혀 다른 성격을 볼 수 있다.

 

171) V. I. 레닌, <<국가와 혁명>>, 1988, pp. 73-74.

 

172) MEW, Bd. 18, S. 267; F. 엥겔스, “주택문제에 대하여”, <<저작선집>> 제4권, 1995, p. 244.

 

김해인 편집출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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