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레닌주의와 수정주의. 사회주의 이론과 실천의 근본 문제*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것의 조직적인 형식과 경제적인 실체)

 

V. A. 튤킨(V. A. Tyulkin) |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공산주의 혁명당**의 제1서기,**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공산주의 혁명당(Russian Communist Workers’ Party-Revolutionary Party of Communists). RCRP-RPC의 저널 ≪쏘련(Soviet Union)≫의 대표 M. V. 포포프(M. V. Popov) | 철학박사, 교수, 노동아카데미 기금 의장, ≪쏘련≫의 대표

 

번역: 제일호 (노사과연 부산지회 회원)

 

* ≪국제 공산주의 평론(International Communist Review )≫ 제3호에 실린 글이다. 원문은 다음을 참조하라. (http://www.iccr.gr/en/news/Leninism-and-Revisionism.-In-the-Fundamental-Questions-of-Theory-and-Practice-of-Socialism-The-dictatorship-of-the-proletariat-its-organizational-form-and-economic-entity)

 

**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공산주의 혁명당(Russian Communist Workers’ Party-Revolutionary Party of Communists).**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공산주의 혁명당(Russian Communist Workers’ Party-Revolutionary Party of Communists).

 

 

2009년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촉진하는 노동자 아카데미 기금은 ≪레닌주의의 주요 개념≫ 모음집을 출판하였으며, 그 책에는 사회현상에 대한 계급적 접근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레닌의 주요한 견해가 포함되었다.1) 이 모음집에 익숙해지는 것은 쏘련 공산당 20차 대회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주요 쟁점에 대해 수정주의적 입장을 취했던 쏘련 공산당(CPSU) 지도자들의 변절과 배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입장은 대부분 이어지는 당의 해산과 나라의 파괴를 예정했던 소련공산당 강령에 들어갔다. 위의 언급은 이 글에서 증명된다. 필자들은  현재의 기회주의자들과 변절자들에 의해 제출되는 대부분의 꾸며낸 이야기, 변명과 “현대의” 주장들이, 제2 인터내셔널 기간과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권력의 설립 기간에 기회주의자들과 맑스주의를 왜곡하는 자들에 대한 레닌의 투쟁의 시기에 레닌에 의해 오래전에 반박되었다는 사실에 특별한 주의를 두려고 노력했다.

 

 

국가의 계급적 성격

 

모든 국가가 계급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맑스주의의 ABC이며 레닌은 끊임없이 그것을 강조했다. 그의 글 “경제적 무질서의 문제에 대한 소부르주아적 입장”이라는 글에서 레닌은 “국가가 어떤 계급에 봉사하는지와 국가는 어떤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가를 분명히 하는 것”에 대해 썼다.2) 그리고 그의 저서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맑스에 따르면 국가는 계급지배의 기관이다”는 것을 강조했다.3) 그의 글 “임박한 파국,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서 레닌은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묻고 다음과 같은 답을 주었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조직이다.”4) 그의 글 “볼세비키는 국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서 레닌은 동일한 생각을 설명한다: “친애하는 인민들이여, 국가는 계급적 개념이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행사하는 폭력의 기관 혹은 도구이다.”5) 1919년 1월 20일 제2차 전 러시아 노동조합 대회의 보고에서, 레닌은 더욱 단호히 강조했다: “단지 하나의 대안이 있으며 있을 수 있다: 눈 먼 바보들에게 사용되고, 모든 측면에서 맑스주의와 사회주의를 완전히 배반한 사람들만이 그 놀음을 하는 제헌의회, 모든 종류의 선거제도, 민주주의와 유사한 부르주아적 사기에 의해 위장된 부르주아 독재인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인가?”6) 그러므로 레닌이 발전시킨 러시아공산당(볼)(RCP(b))의 강령이 다음과 같이 분명히 기술하는 것은 논리적이다: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숨겨 왔던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반대하여 쏘비에뜨 정부는 어떠한 국가라도 계급적 성격의 불가피성을 공공연하게 인정한다. 이 계급적 성격은 사회의 계급으로의 분열이 일체의 각각의 국가 권위와 더불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존재할 것이다.”7) “꼴차끄(Kolchak)에 대한 승리에 즈음하여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소책자에서, 레닌은 가장 강력한 용어로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강조한다: “지주와 자본가들의 독재(즉, 철의 지배) 혹은 노동계급의 독재.

중간의 길은 없다. 잘못된 책으로 잘못 교육을 받은 귀족, 지식인들 그리고 소소한 신사계급의 자손들은 중간의 길을 꿈꾼다. 세상 어디에도 중간의 길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도 없다. 부르주아 독재(인민의 정부, 제헌의회, 자유 등에 관해 꾸며진 사회혁명당원들과 멘세비키의 수사에 의해 가면을 쓴)인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인가. 19세기의 전체 역사로부터 이것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절망적인 멍청이이다.”8)

 

 

사회주의 국가의 본질

 

1918년 1월 12일(25일) 제 3차 전러시아 노동자, 병사, 농민 대표자 소비에뜨 대회에서, 인민위원회 보고에서 레닌은 말했다: “민주주의는, 지금 공식적인 사회주의의 선두에 서있고 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된다고 주장하는 진정한 사회주의에 대한 모든 반역자들이 옹호하는 부르주아 국가의 형태이다. 혁명이 부르주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때까지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지했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의 진전 속에서 사회주의의 최초의 신호를 보자마자,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확고하고 결의에 찬 입장을 취했다.”9) “소비에뜨 권력의 성공과 어려움”이라는 소책자에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부한 불운한 공산주의자들을 간단히 조소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물론 우리는 폭력에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우리는 그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부르주아 독재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들이라고 말하며 비웃는다. 그와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은 멍청이들이거나 너무나도 정치적으로 무지하여 그들이 연단을 말할 것도 없고 어떠한 모임 근처에 오는 것도 그들에게는 불명예일 것이다.”10) 레닌은, 1919년 4월 3일 노동자와 붉은 군대 대표자의 모스끄바 소비에뜨 특별회기 회의에서 소비에뜨 공화국의 국내와 국제 정세에 대한 보고에서 같은 생각을 옹호했다: “부르주아 독재인가 아니면 노동계급의 권력과 완전한 독재인가; 중간의 길은아무 쓸모가 없고 어떤 것도 그것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11)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1. “사회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을 그것의 논리적인 결론으로 가져가지 않기 때문이다. (Cf. Marx, 1852.)

프롤레타리아독재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 새로운 형태에서의 연속이다. 그것이 문제의 요점이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별한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는 홀로 계급투쟁을 계속 수행한다.

2. 국가는 단지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무기일 뿐이다. 특별한 종류의 곤봉, rien de plus![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다: 편집자]”12)

1921년 3월 27일 전 러시아 운송노동자 대회의 연설에서 레닌은 다시 한 번 그 문제는 “이것인가 저것인가(either-or)”의 문제로 제기된다고 설명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계급은 그것이 홀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했다. 그것이 프롤레타리아독재의 개념에 대한 본질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한 계급이 단독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리고 “보통선거를 통한 대중적인 동의에 의한 인기 있는 정부”에 관한 말로 다른 계급이나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을 때만 의미를 지닌다. 당신들 모두는 그 주제에 대해 장황하게 말하고 싶어 하는 매우 많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당신들은 프롤레타리아들 사이에서 그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을 깨닫고 있고 그들이 공화국의 근본적인 법인 그들의 헌법에서 그러한 것을 매우 많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13) 그의 소책자, “현물세”에서 레닌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게 강조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의 지배자가 아니라면 동시에 사회주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것은 또한 ABC이다.”14)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개념, 대상 그리고 역사적인 경계

 

그의 글 “낡은 기와의 붕괴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기와를 위한 싸움”에서 레닌은 썼다: “독재가 시사하고 의미하는 것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전쟁의 국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적들에 반대하는 군사적인 조치의 투쟁의 국가이다.”15) 그것과 함께 그의 글 “헝가리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인사”에서 그는 강조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본질은 오로지 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혹은 주로 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주된 특징은 근로인민들의 선진적인 분견대, 그들의 전위, 그들의 유일한 지도자, 그 목적이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사회의 계급으로의 분열을 폐지하고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근로인민으로 만들고 그리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위한 기초를 제거하는 것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화와 규율이다.”16)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계급들의 폐지는 길고, 어렵고 완강한 계급투쟁을 요구하는데 그러한 투쟁은 자본가 지배의 타도 후에, 부르주아국가의 파괴 후에,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수립 후에 계급투쟁은 사라지는 것(낡은 사회주의와 낡은 사회민주주의의 저열한 대표자들이 상상하는 것처럼)이 아니라 단지 그것의 형태만을 바꾸고 많은 측면에서 그렇게 된다.”17) 그의 소책자 “위대한 시작”에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다음과 같은 정의를 제출한다: “우리가 라틴어이고 과학적이고 역사철학적인 용어인 “프롤레타리아독재”를 더 단순한 언어로 번역을 하면,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의미한다:

단지 하나의 명확한 계급, 즉 일반적으로 도시 노동자들, 공장노동자들과 산업노동자들만이  자본의 멍에를 벗어버리는 투쟁에서, 그것을 실제로 수행함에서, 승리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체제를 창조하는 작업에서 그리고 계급의 완전한 폐지를 위한 전체적인 투쟁에서 전체 근로인민과 피착취 인민대중을 이끌 수 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유일한 과학적인 구분은 첫 번째 용어는 자본주의에서 솟아나오는  새로운 사회의 최초의 단계를 의미하는 반면에 두 번째 용어는 그 다음의 더 높은 단계를 의미한다는 것을 삽입구로 지적해두자.)

“베른(Berne)”의 황색 인터내셔널이 저지른 실수는 그 지도자들이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적 역할을 단지 말로서만 받아들이고 그것을 그 논리적인 결론에까지 사고하기를 두려워한 것이다. 그들은 특히 부르주아를 겁나게 하고 절대적으로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필연적인 결론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역시 계급투쟁의 기간이며, 계급투쟁의 기간은 계급들이 제거되지 않는 한 필연적이고, 계급투쟁의 기간은 자본의 타도에 뒤이어지는 시기에 있어서 특히 격렬하고 특히 특유하게 형태상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권력을 장악한 후에도 계급투쟁을 멈추지 않고 계급이 철폐될 때까지 물론 다른 환경 하에서, 다른 형태로 그리고 다른 수단으로 계속된다. 

그렇다면 “계급의 폐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사회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로 인정하지만, 결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의 중요성에 대해 사고하지 않는다. 계급들은 역사적으로 결정된 사회적 생산 체제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지위, 생산수단에 대한 그들의 관계(대부분의 경우에 법으로 고정되어 있고 공식화되어 있는), 노동의 사회적 조직에서의 그들의 역할,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차지하는 사회적 부의 몫의 정도와 그것을 획득하는 양식에 의해 서로간에 상이한 사람들의 커다란 집단들이다. 계급들은 일정한 사회적 경제 체제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상이한 지위로 인해 그중의 하나가 다른 집단의 노동을 전유할 수 있는 사람들의 집단들이다.  

분명히 말해서, 계급들을 완전히 폐지하기 위해서는, 착취자들, 지주들과 자본가들을 타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의 소유권을 폐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모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의 구별을, 뿐만 아니라 도시와 시골 사이의 구별을 폐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아주 장기간의 시간을 요구한다.”18) 그의 글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대의 경제와 정치”에서 레닌은 계속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경계를 정하고 사회주의 전체 국면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충격을 강조한다: “사회주의는 계급의 폐지를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을 폐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왔다. 그러나 계급들은 한 번의 타격으로 폐지될 수는 없다. 

그리고 계급들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시대에도 남아 있고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독재는 계급들이 사라질 때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없다면 계급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계급들은 남아 있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대에 모든 계급은 변화를 겪는데 계급들 사이의 관계 역시 변화해왔다. 계급투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다른 형식을 취할 뿐이다.”19) 레닌이 그의 책 “좌익공산주의: 소아병”에서 모든 국가들의 공산주의자들과 미래세대의 공산주의자들을 위해 이 형식의 목록을 특별히 작성했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구사회의 세력들과 전통들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투쟁—유혈적이거나 무혈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평화적이거나, 군사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교육적이거나 행정적이거나—을 의미한다.”20) 사회주의 하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들과 전통들에 반대하는 첨예한 계급투쟁이 존재한다. 처음에 이 투쟁은 “소부르주아근성”에 반대하고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의 계급들과 계층들의 대표자들의 부분에서 소부르주아적인 표현들에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이 투쟁은 사회로부터 가장 좋은 것들과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사회로부터 얻으려고 하면서 사회에 대하여는 가능한 한 적은 것과 최선의 것이 아닌 것을 주려고 하는 소부르주아적인 열망에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투쟁은 노동계급, 당 자체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과 관계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얼마나 오랫동안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3차 대회에서 보고된 러시아 공산당의 전술에 대한 테제들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이 질문에 답을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투쟁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들과 새로운 무기들을 가지고 계급투쟁을 계속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급들이 존재하는 한, 한 나라에서 전복되었을지라도 부르주아지가 국제적인 규모로 사회주의에 대한 공격을 10배로 강화하는 한, 이 독재는 필수적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투쟁의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21) 그리고 1921년 7월 5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3차 대회에서 러시아 공산당의 전술들에 대한 보고에서 강조되어진 것처럼, “사회주의의 목표는 계급을 폐지하는 것이다.”22)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은 공산주의의 최초의 국면 전체,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의 전체 기간을 포함해야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조직적 형식

 

어떠한 국가라도 그 본질은 지배계급의 독재이다. 동시에 이 독재는 정치적인 삶의 표면에서 거의 공개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독재의 각각의 유형(그것의 모든 일탈들과 일시적인 후퇴와 함께)은 일정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견고한 형식을 갖고 있다. 조직적인 형식으로서 이러한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은 특정 계급의 독재를 위해 적절할 것이다. 이 형식은 주어진 계급의 독재와 조응하고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이러한 계급의 독재의 유지를 지탱한다. 부르주아 독재의 내재적인 즉, 고유한 조직적인 형식은 지역적인 지역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 선거에 기초한 의회민주주의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직적인 형식은 공장(factory and plant)의 원칙에 따라서 선출된 쏘비에뜨 권력이다. 1919년 3월 4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1차 대회에서 발표한 그의 글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테제와 보고”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낡은 즉, 부르주아적인 민주주의와 의회제는 잘 조직되어 있어서 정부 기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소외되었던 사람들은 바로 노동인민대중들이었다.  쏘비에뜨 권력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대조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어서 노동인민들이 국가 기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것이 역시 국가의 쏘비에뜨 조직 하에 입법부와 행정부를 결합하고 생산 단위들—공장—에 의해 지역적인 선거구들을 대체하는 것의 목적이다.”23)

꼴차끄(Kolchak)에 대한 승리에 즈음하여 노동자 농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레닌의 소책자에서 언급되어진 것처럼, “쏘비에뜨 권력,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재가 실천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24) 레닌은 “쏘비에뜨 정부의 당면 과제”라는 그의 글에서 레닌은 명시적으로 강조한다: “쏘비에뜨 권력은 단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직적인 형식일 뿐이다.”25)

부르주아지의 독재의 조직적 형식(그것의 가장 견고한 수정—부르주아 민주주의—으로써)과 회의체(즉, 쏘비에트들)의 형식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직적인 형식에 대한 분석은 언급된 독재들의 견고성과 기능이 객관적인 토대들에 의해 제공된다는 것을 설명한다. 권력의 구조는 이러한 객관적인 토대들에 기초한다. 부르주아 독재의 형식으로서 의회 민주주의의 구조는 자본가들의 화폐적 자원과 사적인 자본주의적 소유의 기관들에 기초한다. 의회 민주주의의 구조는 사회에서 지배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사회적 존재가 그 의식을 결정함에 따라)를 이용한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공장에서 노동계급의 노동의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객관적인 자기 훈련에 기초한다. 이러한 공장들은 쏘비에뜨의 선거 단위들(지구들)이 된다. 이것은 명목적인 것(title)에 관한 것이 아니라 쏘비에뜨 권력(노동계급의 독재를 보장하는 권력)에 특징적인 권력의 조직 형식에 관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직적인 형식의 권리포기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위협이다

 

쏘비에뜨들은 노동의 집단적인 원칙에 따라서 공장들에서 형성된 노동계급의 파업의 기관과 자기 정부의 기관들로서 1905년 이바노보-보즈네센스끄(Ivanovo-Voznesensk)에서 나타났다. 쏘비에뜨들은 그 당시에 공장들에서 선출되었다. 1917년 쏘비에뜨들은 러시아 전역에서 다시 발생하였다. 쏘비에뜨들의 구성원칙은, 공장들에서 대표자들의 선거가 노동 집단주의의 방향에서 쏘비에뜨 대표의 활동들을 통제할 가능성과 그들의 소환과 대체의 실현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공장들에서 대표자의 선출이다. 이 원칙은 레닌에 의해 8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러시아 공산당(볼)(RCP(b))의 강령에서 정식화되었다: “쏘비에뜨 국가는 또한 선거 단위와 국가의 기초적인 단위가 지역적인 지구가 아니라 생산 단위(공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확립함으로써 국가 기구와 대중들을 결속하게 한다.”26)

이 강령의 조항과 반대로, 1936년에 (새로운, 아마도 더 “민주적인” 헌법의 채택과 관련하여) 지역적인 원칙에 기초한 선거로의 이행이 발생했다. 선거의 이러한 지역적인 원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의 전형적인 요소이다. 이 원칙은 인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대표자들을 소환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1936년 헌법의 채택에 기인하는 소위 민주주의의  확대에 대하여 그 당시에 스딸린이 발표했던 성명들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쏘비에뜨,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부터 의회적,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로 이행을 향한 한 걸음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더 정확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회적,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는 형식적 평등을 의미하고 실제적 불평등을 무시한다. 이전의 착취계급의 성원들에게 선거권의 형식적인 1회용의 확대는 그 민주주의를 실제적으로 확대할 수는 없었다. 쏘비에뜨 민주주의(근로 인민들의 민주주의)는 일체의 착취의 제거에 기인하여 역사적 무대에서 이전의 착취계급의 성원들의 점진적인 철수를 기초로 점진적으로 전(全)인민들의 선거에 다가간다. 공장들에서 노동 집단들을 통한 선거의 원칙(그러한 원칙은 쏘비에뜨의 특징적인 원칙이다)의 포기와 지역적인 지구 원칙에 부합하는 선거로의 변동은 퇴행과 같은 뜻이다. 그것은 쏘비에뜨에서 의회주의로 퇴행이고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약화이다.

레닌이 러시아 공산당(볼) 2차 강령을 준비하는 동안 쏘비에뜨 형식의 포기의 가능성을 단지 상황의 압력과 적 세력 하에 투쟁에서의 전반적인 후퇴의 결과로서 간주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그러한 포기를 노동자의 민주주의(프롤레타리아나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운동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러시아 공산당(볼) 7차 대회의 당명과 당 강령의 변경에 대한 결의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강령의 정치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식으로서 그리고 파리 꼬뮨이 시작했던 전 세계 노동계급 혁명의 성취들의 연속으로서, 새로운 유형의 국가, 쏘비에뜨 국가에 대한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하고 포괄적인 정의에 있다. 그 강령은 우리 당이 투쟁의 과정이 일시적으로 우리를 우리의 혁명이 지금 지나왔던 이 역사적인 단계로 되돌아가게 한다면 심지어 부르주아 의회제의 활용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고 모든 상황 하에서도, 당은 민주주의의 견지에서 가장 고도의 국가의 유형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의 형식으로서, 착취자의 멍에의 폐지와 그들의 저항에 대한 억압의 형식으로서 쏘비에뜨 공화국을 위해 진력할 것이다.”27)

모든 것이 명백한 것 같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로의 한 걸음이 이루어졌다. 그 때 이후로, 노동 집단으로 조직된 유권자들의 믿음을 배신했던 대표들을 소환할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청산되었기 때문에, 관료주의와 출세주의에 의한 국가 기구의 더욱더 강력한 오염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당과 국가의 기구가 흐루쇼프 같은 사람들과 고르바초프 같은 사람들을 키운 것은 또한 이러한 과정의 틀 내에서였다. 국가기구는 공동의 이익에 비해 그들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었던 출세주의자들과 관료주의자들의 토양이 되었다. “쏘비에뜨”라는 명칭은 남아 있었지만 쏘비에뜨의 본질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그것의 고유한 조직적 형식을 빼앗기고서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노동 집단에 기초한 선거의 원칙이제거된 후에, 권력기구(그것은 여전히 “쏘비에뜨”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은 단지 노동집단과 여전히 연계된 요소들에 의해서만 제공될 뿐이었다. 이 연계는 노동집단이 입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을 통해서, 대표자들이 노동집단에 때때로 하는 보고를 통해서, 당에 의해 쏘비에트의 파견단의 규율을 통해서 발생했다. 이 연계는  또한 당 파견단의 프롤레타리아적인 성격에 기초하여 관성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스딸린(레닌의 관 앞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겠다고 맹세했으며 평생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싸웠던)의 시대에서조차 반(反)노동자적 다수파가 당 중앙위원회에서 점차 세력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들 반(反)노동자적 다수파 기회주의는 수정주의로 진화하면서 스딸린 사후에 국가의 계급적인 성격을 바꾸려고 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맑스주의의 포기

맑스주의의 주요 개념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하기 위한 일종의 포화의 준비가 20차 당 대회에서 마련되었다. 흐루쇼프의 수정주의자 그룹의 노력에 의해 스딸린의 지도하에서 이루어졌던 긍정적인 모든 것들이 중상모략적으로 의문시되었다. 이 흐루쇼프의 수정주의자 그룹은 또한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 대한 맑스주의의 핵심 조항들을 수정을 기도했다. 그러나 러시아 공산당(볼)의 레닌의 강령l 여전히 유효하였고 그에 따라 흐루쇼프의 지지자들은 맑스-레닌주의의 본질 자체를 제거해버릴 수 있는 다른 강령에 의한 이 강령의 대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최종 승리에 대한 테제(공산주의자들, 노동계급과 모든 근로 인민들에게 긴장을 풀게 하고 동원해제시키는 테제)가 22차 당 대회에서 쏘련 공산당(CPSU) 서기장 흐루쇼프에 의해 “쏘련 공산당 강령에 대하여”라는 보고에서 채택되었다.28) 계급투쟁은 사회주의로의 이행 기간에만 단지 한정된다는 내용이 보고에서 진술되었다.29) 보고 전체를 통하여,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의 한 국면으로서 이해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분리된 구성체로서 이해되었다. 그에 따라 계급 없는 사회의 최초의 국면에서 계급의 완전한 폐지라는 전형적인 사회주의적 목표 대신에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가 제기되었다. 동시에 순전히 반(反)맑수주의적, 수정주의적 목표가 선언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국가로부터 “인민의 국가로.””30) 다음과 같은 진술이 이루어졌는데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쏘련의 노동계급은 공산주의를 건설한다는 과업에 기초하여 자기 자신의 주도 하에 그것의 독재국가를 인민의 국가로 변화시켰다. …어떤 계급의 독재에도 기초를 두고 있지 않은 국가를 형성한 것은 처음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더 이상 필수불가결하지 않다.”31) 그 계급의 전위라는 레닌의 정당 개념과는 모순되게, 당은 역시 노동계급의 정당이 아니라 전 인민의 당이라고 선언되었다.

이 수정주의적인 개념들은 당 대회에서 저항을 받지 않았다. 당 대회는 만장일치로 수정주의적이고 본질적으로 반(反)레닌주의적이며 반(反)맑스주의적인 강령을 채택하였다. 이 강령에 따르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자신의 역사적인 사명을 충족시켰고 내적인 발전의 목표라는 견지에서 쏘련에서 불가피성에 종지부를 찍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서 출현하였던 국가는 이 새롭고 현대적인 단계에서 인민의 국가가 되었다… 당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계급의 독재는 국가가 사멸해버리기 전에 불가피하다는 것에 종지부를 찍었다.”32) 더 자세히 이 입장을 평가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레닌으로 되돌아 가보자.

그의 책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모든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러한 국가가 계속하여 존재하는 한), 낡은 국가 기구를 파괴할 필요성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라는 목적을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 기구를 창조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그 국가(노동계급의 무기이자 노동계급의 정치적인 지배를 보장하는 수단인 국가)가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권력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준수되어져야 하는 많은 규정들을 발전시켰다. 이 저서와 또한 “국가에 대한 맑스주의”라는 노트에서, 레닌은 국가가 오로지 계급의 완전한 폐지와 더불어서만 사멸한다는 사고(즉, 계급이 존재하는 한,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계급의 기구로서 국가는 역시 존재한다)를 명확하게 추구한다. 그는 “마침내 국가가 사회 전체의 진정한 대표가 되었을 때, 국가는 그 자체가 필요 없게 만들어 버린다”는 국가에 관한 엥겔스의 사고를 인용하고 발전시켜 나간다.33) 의혹을 품은 모든 사람들, 주저하고 우유부단한 모든 사람들에게 마치 대답을 하는 것처럼, 레닌은 강조한다: “계급투쟁에 대한 인식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하는 사람만이 맑스주의자이다. 그 점이 바로 맑스주의자와 보통의 소부르주아(물론 대부르주아도) 사이의 가장 근원적인 구별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맑스주의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인식이 시험되어야 하는 시금석이다.”34) 그의 저작 “국가: 1919년 6월 11일 스베르들로프(Sverdlov) 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레닌은 “전 인민을 위한 자유를 구호로 선언하고 국가가 전 인민의 의지를 표현한다고 선언하며 국가가 계급 국가임을 부인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국가라고 지적한다.35)  

흐루쇼프의 수정주의자 그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그것이 없으면 사회주의의 공산주의로 발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독재)라는 쟁점에 대해 당과 인민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기만하면서 생산과 사회의 발전의 목표들을 변경시켰다. 위의 내용은 더 자세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사회주의적 생산의 목표

 

역사의 본질, 사회의 진보는 사회의 전 성원의 충분한 복지와 자유로운 전면적인 발전으로의 운동일 것이다.

원시공동체 공산주의 시기에 이 본질은 생산력 발전의 결여로 인해 극히 제한된 방식으로만 나타났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긴급한 필요를 만족시키고 이용 가능한 자원에 기초하여 그리고 부족체제에 기초하여 요구들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예제 시대에 노예들은 인간으로서 간주되지 않았다. 노예제 시대 동안 생산은 지배계급의 성원들—노예 소유주—의 번영의 이익과 전면적인 발전을 위해 발전되고 있었다.

봉건제 시대에 그것은 대체로 증가하고 있던 봉건 영주들의 복지와 전면적인 발전이었다. 농민과 장인들은 그들의 욕구의 다소 열악한 충족에 만족해야만 했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의 목표는 잉여가치와 이윤의 생산이다. 그러한 생산은 자본가들의 복지와 전면적인 발전의 증가를 초래한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필요에 대한 만족을 자본의 자기팽창을 계속하기 위해 요구되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정도로 제한한다. “러시아 사회주의민주노동당(RSDWP) 강령의 정교화를 위한 자료”에서 레닌이 적었던 것처럼, 자본주의 하에서 “끊임없이 더욱 사회화된 노동이 되고 있는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은 인구의 무시할만한 소수에 의한 이 발전의 모든 중요한 이득의 독점화를 수반한다. 사회적 부의 성장은 사회적 불평등의 성장과 나란히 진행하여 나간다; 재산 소유자계급(부르주아지)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간의 격차는 성장하고 있다.”36)

동시에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이 시작된다. 그것은 지배계급에 속하는 사회구성원들의 발전으로 진보를 제한하는 것에 반대하는 투쟁이고, 역사의 본질이 드러나고 생산의 진정한 목적이 사회 전 성원들의 완전한 복지와 전면적인 자유로운 발전이 되는 공산주의 사회의 창조를 위한 투쟁이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WP) 2차 당 대회를 위해 준비된 위원회의 당 강령 초안에서 사회주의적 생산의 목표는 “전체로서의 사회와 그 사회의 개별적 성원들 양자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사회적 생산과정의 계획된 조직화로서 정식화되었다. 레닌은 이것에 반대한다: “정확하지 않다. 그러한 “만족”은 자본주의에 의해서도 또한 “주어진다.” 그러나 사회의 전 성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평등한 정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37) “플레하노프의 제 2차 강령초안에 관한 노트”에서 그는 적었다: “또한 문단의 끝이 올바르게 표현되지 않았다: “전체로서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의 개별적 성원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사회적 생산과정의 계획된 조직화.” 그것은 충분하지가 않다. 그러한 종류의 조직화는 아마도 트러스트들에 의해서도 제공될 것이다. “전체로서 사회에 의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규정일 뿐이고(왜냐하면 이것은 계획과 그러한 계획에 대해 누가 책임지는가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사회의 성원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기에는 단순하지 않은데 사회의 전 성원들의 완전한 복지와 자유로운, 전면적인 발전을 보장한다는 목표가 첨가되어야 한다.”38) 최종적으로 레닌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WP) 2차 대회에 의해 승인된 강령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는 것을 확보했다: “생산수단과 유통수단의 사적 소유를 각각의 사회의 소유에 의해 대체하고 사회의 전 성원들의 복지와 전면적인 발전을 위해 사회적인 생산과정의 계획된 조직화를 도입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혁명은 사회의 계급들로 분할을 제거할 것이고 억압받는 인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39)

이 강령의 목표의 견지에서 볼세비끼 당은 러시아 노동계급을 승리적인 사회주의 혁명으로 상승시켰다. 당의 제2차 강령을 만들어내는 동안 레닌이 새로운 강령에 동일한 목표 즉, 제1차 강령에 기록되었고 수행되면 계급의 완전한 제거 즉, 완전한 공산주의로 이끄는 목표를 집어넣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고 간주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러시아공산당(볼) 8차 전당 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은 사회주의 생산의 목표를 정확히 1차 강령의 어구로 재생한다. 즉: “생산 수단과 유통 수단의 사적 소유를 각각의 사회의 소유로 대체하고  사회의 전 성원들의 복지와 전면적인 발전을 위해 사회적인 생산과정의 계획된 조직화를 도입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의 사회혁명은 사회의 계급들로 분할을 제거할 것이다.”40)

이것은 당 강령에서 노동계급(공산주의사회의 설립자)에게 주어졌고 당이 노동계급의 독재를 보장해주는 노동계급의 당으로 남아 있는 한 당 강령에 남아있을 공산주의 생산의 진정한 목표를 과학적으로 발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목표는 쏘련 공산당(CPSU)의 22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제 3차의, 수정주의적 당 강령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그것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필요의 만족으로 대체되었는데 복지 혹은 인민의 발전, 특히 전면적인 발전이 끊임없이 성장하는 필요의 만족으로 축소될 수 없는 것임에도 그러했다. 필요를 만족시켜주는 것만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의 제거 혹은 계급의 폐지를 이끌 수 없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3차 당 강령은 공산주의 하에서 “전체 사회경제의 계획된 조직화의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하였고 사회 구성원들의 커지는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물질적인 자원과 노동력의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사용이 보장되었다”고 기술했다.41) 사회의 노동하는 성원들—그들의 발전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이 사회의 선택된 구성원들(사회의 그러한 선택된 사회의 구성원들은 나중에 과두정치의 지배자들이 되었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노동력으로 전환되었다. 그것은 생산의 목표로부터 사회의 전 성원의 발전의 제거였는데 이는 생산의 목표에 대한 강령의 정의를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로부터 위장되게 떼어내는 것이었다. 수정주의자들의 3차 강령은 기술한다: “사회주의의 목표 — 인민들의 커지는 물질적 및 문화적인 필요의 더욱더 완벽한 만족.”42) 처음 대충 훑어보았을 때는 사회주의에 대한 이 정의가 아름다운 것 같다. 동시에 이 정의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사회주의의 목표는 과학적 사회주의자들의 창시자들에 의해 정의되었듯이 계급 제거이다. 계급의 그러한 제거는 필요의 만족을 포함하지만 그러한 만족으로 축소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계급의 제거는 일체의 모든 필요가 만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선적으로 그것은 완전한 복지의 보장, 사회의 전 성원들의 자유롭고 전면적인 발전, 일체의 사회적 불평등의 제거를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와 사회주의 목표의 포기는 국가의 계급적인 성격을 바꾸었다. 국가는 노동계급의 이익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대에는 노동계급의 이익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여겨졌다. 그 점이 국가의 소유가 서서히 사회적 소유의 형식이 되는 것을 멈추고 있던 이유였다. 이 소유는 공적 소유를 실질적으로 통제했던 사람들—당과 국가의 최고위 관료들—의 사적 소유의 독특한 형식으로 점차 변형되어가고 있었다. 이리하여 당과 국가의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 엘리트들이 전체 사회의 소유를 전유하는데 성공했다. 이 엘리트들은 또한 이러한 소유를 분할하고 전유하고 그 결과의 몫을 사유화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건들을 창출하는데, 그리고 사유화를 “전 인민”의 국가의 법률에 부합하게 공식화하는데 성공했다. 위의 일들은 옐친 시대에 고르바초프의 부추김을 받으면서 발생하고 있었다 — 처음에는 수정주의자들의 “시장으로의 운동”이라는 구호 하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공개적으로 “가자 사유화로!”라는 반공산주의 구호 하에서. 이 과정은 악명 높은 수정주의적 “전인민의 국가”를 포함하고 그것을 강화시켰던 “발전된 사회주의”라는 수정주의적 개념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지지를 받았다.

22차 당 대회에서 맑스주의의 주요 사상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 생산의 목표와 사회주의의 목표를 쏘련 공산당이 포기한 것은 당과 국가 그리고 나라의 파괴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고 초래했다(공산주의적 소수파에의 적극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위의 포기는 변절자인 쏘련 공산당 엘리트들의 잘못이었을 뿐만 아니라 레닌주의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대신에 당의 수정주의자 엘리트의 말을 인용과 구호를들 진심으로 배우고 신뢰하였던 당원들의 잘못이었다. 그리고 그리하여 일관된 공산주의세력은 기회주의자들, 수정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해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극복할 수 없었다. 위의 내용은 이전의 쏘련 공산주의자들에게만이 아니라 현대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들에게도 교훈이다. 그것은 전 세계의 노동운동 및 공산주의운동에게도 교훈이다.

 

비상품성, 사회주의 생산의 직접적인 사회적 성격

이 문제는 결국 이것이 그들 계급의 권력을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 이유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의적절하다. 이 문제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는다면 그들이 무엇을 하여야 할까의 문제이다. 쏘련 공산당의 잘못과 쏘련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실행으로부터 나온 결론들이 내려지는 것은 어떤 범위까지일까? 경제에서 무엇을 건설해야하고, 어떻게 이것을 건설해야할까?

최근에 이 쟁점은 계속하여 러시아와 해외에서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관심거리가 되었고 또 이 쟁점은 공산주의 운동을 나누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스웨덴식 사회주의”의 솔직한 변호자들과 자본주의의 개선을 말하는 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그들 자신을 맑스주의자와 공산주의자라고 계속해서 부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말할 것이다. 그러한 맑스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한편으로는 소위 “시장 사회주의”(그것은 “중국식 시장 사회주의”라고 최근에 더욱더 자주 불리어지고 있다)에 대한 많은 지지자들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또한 계속해서 우리 귀에 들리는 실용주의자와 현실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후자는 정통 공산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생산의 비상품적 성격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보라!. 그들은 말한다. 시장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따라서 시장경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사실 시장은 자본주의 하에서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그러므로 지금이 우리는 자본주의 하에서 상품의 성격과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와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의 건설의 과정에서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하는 바로 그 시간이라고 믿고 있다.

일찍이 1차 및 2차 볼세비끼 강령(러시아 공산주의 노동당(RCWP)의 강령에서는 물론이고 뿐만 아니라)에서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사회의 성격은 다음의 말로 묘사되었다: “이 사회의 주요 특성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기초한 생산의 상품적인 특성이다. 이 관계들은 재화의 생산수단과 유통수단의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부분이 개인들의 한 작은(머릿수라는 견지에서)계급에 의해 소유되고 있고 반면에 인구의 거대한 다수가 그들의 경제적인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계속해서 혹은 주기적으로 팔아야 하는 즉. 그들 자신이 자본가들에게 고용되고 그들의 노동으로서 사회의 상층 계급을 위한 수입을 창조해야만 하는 프롤레타리아들과 반(半)프롤레타리아들로 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43)

즉, 자본주의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품 생산이다. 그 점과 함께 플레하노프 강령의 2차 초안에 대한 관찰에서 레닌은 언급된 강령 조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 강령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충분히 발전된 상품 생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상품 생산“은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이전에 존재한다.”44)

즉,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Vladimir Ilyich Lenin)은 자본주의가 상품 생산의 발전의 결과라는 것을 특정했다. 그의 많은 저작들에서 레닌은 상품생산은 그 발전 속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불가피하게 자본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다

상품은 교환을 목적으로 하여 생산된 것이다. 상품 생산은 상품들의 생산, 가치의 생산이다. 자본주의 상품 생산은 자본가들(생산수단의 소유자들, 소매 판매망들, 금융자본과 다른 존재 형태에서의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하여 잉여가치,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재화를 판매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상품 생산(이것은 자본주의 상품 생산을 포함한다)에서 규제적 역할은 그것의 기본 법칙—가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법칙은 자본을 감독하고 결과적으로 상품 생산을 가장 이윤이 남는 분야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사회주의 생산의 목표는 자본의 이윤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목표는 사회의 이익의 만족이다. 위에서 언급된 러시아 공산당(볼)과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RCWP)의 강령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생산 수단과 유통 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각각의 사회의 소유로 대체하고 사회의 전 성원들의 복지와 전면적인 발전을 위해 사회적 생산과정의 계획된 조직화를 도입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혁명은 사회의 계급으로 분할을 제거하고 억압받는 인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리하여 그것은 사회의 한 부분에 의한 다른 부분에 대한 모든 종류의 착취를 끝장낼 것이다.”45)

사회주의 생산의 본질, 핵심은 가치 법칙이 아니라 사용가치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사회의 전 성원의 완전한 복지의 제공과 전면적인 발전을 목표로 한다. 사회의 전 성원의 완전한 복지와 전면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오로지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계획과 관리의 집중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며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계획과 관리의 집중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는 정치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확립에 의해 보장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위의 내용은 분리된 사적인 생산자들의 시장의 자기 조절을 통해서는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위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비록 맑스뿐만 아니라 엥겔스와 레닌도 “상품-화폐 관계들”이라는 용어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을 지라도 화폐와 많은 소위 상품-화폐 관계들이 형식적으로 사회주의 하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다. 외적인 상품 형식들과 명칭들의 이러한 사용이 사회주의적 생산이  그것의 본성에 따른 상품 생산이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 의해 사용되는 법정 지폐들(treasury notes)은 정치경제학적인 의미에서 화폐가 아니다. 이 법정 화폐들은 생산량과 소비되었던 필요한 노력의 양의 부가적인 간접적 측정수단이고 그것들은 회계단위와 계획단위의 역할을 한다. 사회주의 하에서 화폐는 재고 조사의 기능과 직접적인 사회의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기능이 수행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1928년 채택된 코민떼른 강령이 기술한 것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시장 관계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은 경제활동의 자본주의 형식들과 방법들(평가 계정, 현금 지불, 판매와 구매, 신용, 은행 등)은 사회주적 타도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이 균형추는 더욱더 큰 범위에서 일관되게 사회주의적인 유형의 기업들 즉, 경제의 사회주의 부문에 봉사한다.”46)

시장 사회주의의 지지자들은 대개 신경제정책(NEP)을 상기한다. 그들은 신경제정책이 사회주의에 관한 우리의 시각의 근본적인 수정이라고 말했던 사람은 바로 레닌이었다고 말한다. 잠시 여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 초기 기간 동안 신경제정책은 (일시적인 후퇴로서) 상품 생산과 유통을 위한 증대된 자유를 의미했다. 특히 증대된 자유는 농민들과 사회주의 국가 부문 사이에서 상품의 유통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레닌은 이 증대된 자유가 사회주의 경향과 자본주의 경향 사이의 투쟁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부하린의 책 “이행기의 경제학”은 다음과 같은 테제를 담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의 조직적인 경향과 농민의 상품-무정부적인 경향 사이에서의 잠재적이거나 혹은 다소 공개적인 투쟁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레닌은 그 내용에 주를 달았다: “다음과 같이 말해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주의 경향과 농민의 상품-자본주의 경향 사이에서라고.”47) 여기에서 레닌은 또한 다음과 같은 부하린의 분석을 지지한다: “도시에서 경제의 유형을 위한 주요한 싸움[권력의 장악 후에: 편집자]은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그것은 또한 시골에서도 다수 자본가들의 패배로 끝이 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다른 형식들로 재생되고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 계획(사회화된 노동을 체현하는)과 상품의 무정부 상태, 흩어진 소유의 대상들과 시장의 뒤죽박죽을 체현하는 농민들의 투기적인 방탕함 사이의 투쟁 속에서 재생되고 있다.” 레닌은 “바로 그거야!”라는 간단한 말로 위의 사고를 평가했다. 그러고 나서 레닌은 다음과 같은 부하린의 진술을 지지했다. “그러나 단순 상품경제는 정확히 자본주의 경제의 싹이기 때문에, 위에서 묘사된 경향들의 투쟁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투쟁의 연속이 될 것이다”는 [부하린의 기술에 대해 레닌은: 편집자] “맞다. 그리고 그것은 “무정부 상태” 보다는 낫다”고 썼다.48)

우리는 레닌이 상품 생산의 즉각적인 철폐의 문제를 결코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한다. 그는 그 주제가 생산의 상품적인 특성, 생산의 상품적인 특성으로부터의 도피를 극복하는 것이고 사회주의 사회의 생산에서 언급된 상품의 특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항상 강조했다. “오직 생산물들이 상이한 독립적인 작업들의 결과라는 것은 각각이 상품들로서 서로 마주하게 한다”라는 맑스의 입장에 기초했기 때문에,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의 목표에 대한 그의 이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의 폐지, 그것들의 공적 소유로의 전환, 그리고 모든 성원들의 완전한 복지와 자유롭고 전면적인 발전을 보장한다는 것을 목표로 자본주의적인 상품생산을 전체로서 사회에 의한 물품 생산의 사회주의적인 조직화에 의해 대체하는 것.”49)

그리고 이행 기간 동안인 1921년 작성된 “지방 쏘비에뜨 조직들에게 보내는 노동자 방위 위원회의 지시들”에서 레닌은 “사회주의 공장들에서 만들어지고 농민들이 생산한 식량들과 교환되는 재화들은 정치경제학적인 용어의 의미에서 상품들이 아니다; 어쨌든 그것들은 상품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상품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상품이기를 멈추고 있다”라고 강조했다.50)

사회주의 경제의 건설 동안에 조차 상품 생산을 극복한다는 이 사고를 레닌은 부하린의 책에 대한 그의 언급에서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데 부하린의 다음과 같은 생각을 자신의 학습노트에 적어놓음으로써 그렇게 했다: “생산물은 생산의 무정부적인 기초에 대한 항상적인 —임의적이 아닌— 사회적 연계가 있는 한에서만 보편적인 범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생산과정의 비합리성이 사라지는 정도로(즉, 의식적인 사회의 규제자가 뒤죽박죽을 대체하는 정도까지) 상품은 생산물이 되고 그것의 상품적인 성격을 잃어버린다.” 레닌은 기록한다: “정확하다!” 그러나 부하린의 결말에 레닌은 쓴다: “전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생산물”이 아니라 다소 다른 무엇인가가 된다. ETWA[거칠게 보면: 편집자]: 시장을 통하지 않고 사회의 소비로 가는 생산물이 된다.”51)

시장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신경제정책(NEP)의 예를 사회주의를 상품경제로서 이해하는 소위 레닌의 전환으로 인용한다. 그들은 마치 레닌이 NEP를 시장으로의 필수적인 잠정적 후퇴로 간주하지 않고 마치 그것을 NEP를 목표와 전망으로 사고했다는 듯이 묘사하려고 노력한다. 그들 중의 가장 영리한 사람들은 NEP와 사회주의적 시장에 대한 약간의 소위 레닌주의적인 방법론을 창조했다. 그러나 첫째, NEP는 방법론이 아니라 정책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NEP를 도입한 레닌과 볼세비끼들은 자본주의 요소들의 허가에서 그들의 후퇴를 인정했다 — 그들은 NEP를 사회주의 생산에 고유한 특성의 발전으로 부르지 않았다. 둘째, 사회주의 경제로의 이행의 시기에 고유한 시장 요소들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들이 NEP의 시기에 발전되고 있었다. 특히 그것들은 국가계획위원회(Gosplan)였고 국가조달기관(Gossnab)이었으며 대규모 제조산업이었다. 또한 전기화(電氣化) 계획이 발전되고 있었다. 즉. 상품의 물리적인 양(명칭에 따르면, 그러나 본성에  따르면 더 이상 상품이 아닌)이 증가하고 있었지만 사회주의 생산의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성격이 확장되고 있었고 생산의 상품적인 성격을 가일층 극복하기 위한 전제조건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스딸린은 실천적으로 생산의 상품적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한 레닌의 정책—사회주의를 향한 생산의 이행기 동안 생산의 상품적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 사회주의 생산에 직접적인 사회적 생산의 특징들을 제공하는 정책—을 시종일관 추구했다. 스딸린은 “쏘련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제문제”라는 그의 저작에서 이 문제에 관한 기본 사상들의 윤곽을 그렸다. 특히 스딸린은 다음과 같이 사회주의 경제의 목표를 정식화하였다: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경제 법칙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법칙의 본질적인 특징과 요구는 무엇인가?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경제 법칙의 본질적인 특징과 요구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다: 가장 현대적인 기술을 기초로 한 사회주의 생산의 끊임없는 성장과 개선을 통해 전 사회의 항상적으로 성장하는 물질적 및 문화적인 필요들의 최대의 만족을 보장하는 것.”52) 이와 같이 스딸린은 전 사회의 이익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명확한 우선점이 되어야 함을 명백하게 강조했다.

그와 함께 스딸린은 그의 분석을 그의 “맑스주의적”의 관점뿐만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사실들의 객관적인 평가에 기초하였다. 스딸린은 경제에서 자본주의적인 요소들의 복고를 방지하고자 목표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보증을 검토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스딸린은 상품생산이 완전히 성숙된 자본주의 상품경제와 시장으로 이동(이것은 쏘련에서 결국 시행되었다)할 경향과 욕구를 창조한다는 것을 다소 과소평가했다.

스딸린은 사회주의 하에서 가치법칙은 규제적인 의미에서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부분적으로, 특히 소비재 생산 영역에서 작동한다고 진술했다. 후자의 진술은 논의의 여지가 있다. 결국 가치법칙은 자본주의의 기본법칙이므로 가치법칙은 사회주의의 법칙이 될 수 없다. 엥겔스는 그의 저서 “반뒤링론”에서, “가치법칙은 상품생산의 기본법칙이다. 그러므로 가치법칙은 상품생산의 최고 형태—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법칙이다”라고 지적했다.53) 사회주의 경제에서 생산의 상품적인 특징은 그러한 특징의 직접적인 사회적 본성에 대한 거부이다. 이 특징은 사회주의(덜 발전된 공산주의의) 궁극적인 공산주의로의 발전 과정 속에서 극복되어야만 할 자본주의의 잔재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주의 경제의 발전은 그것의 직접적인 사회의 본성의 강화와 생산의 상품적인 특징을 극복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혁명의 환경이 무엇이든지 간에, 공산주의자들이 후퇴와 타협을 받아들여야만 하든지 간에 궁극적 목표 — 생산의 상품적인 특성을 극복하고 생산의 사회주의적인,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성격으로의 이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명확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 경제는 국가권력이 직접적인 사회의 생산으로서 경제의 조직화를 간주했던 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961년 흐루쇼프의 지도력에 의한 사회주의의 근본들—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 대한 포기와 1965년의 경제개혁은 사회주의 경제와 사회주의적 관계에서 부정적인 경향들의 점진적으로 축적의 과정을 낳았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위의 내용은 사회적인 질서를 바꾸었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준비를 시작한 것이었다.

현대의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쏘련에서 경제는 직접적인 사회적 생산에 기초했었다. 쏘련에서의 삶과 현대의 환경을 비교해볼 수 있는 오늘날, 위의 내용은 특히 분명하다. 쏘련의 시민들은 공적 소비 자금을 통하여 소비재의 절반 이상을 받고 있었다(현재의 가격에 기초하여 계산해보면). 그리고 약간의 중요한 필수품들이 충족되고 있었던 것은 거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위의 내용은 다음을 포함한다: 무상의 주택(긴 줄에 도 불구하고), 냉수와 온수, 전기, 빵, 의료와 교육, 공공운수와 더 많은 것들.

경제학과 정치학의 의미에서 사회주의적 과정의 포기가 여전히 공산당이라고 불리어졌던 당과 그 당의 지도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쏘련 공산당 22차 당 대회는 새로운 당 강령을 채택했는데, 당 강령은 주요 조항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필요성을 배제해버렸다. 그리고 쏘련 공산당 28차 당 대회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인정했다. 인민들과 당이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자본주의와 쏘련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고 인민들에게는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당 대회에서였다. 공산주의 주도 운동(the Movement of the Communist Initiative)의 대표자 보고서에서, A. A. 세르게예프(A. A. Sergeyev)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상품시장뿐만 아니라 두 개의 시장이 더 존재한다. 즉, 주식 교환으로 대표되는 사적인 자본 시장과 노동시장. 그래서 함께 받아들여졌을 때, 이 두 시장은 필연적으로 고전적인 자본주의 시장을 탄생시킬 것이다(그러한 자본주의 시장이 조절되는 시장이라고 형식적으로 불리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것으로부터의 탈출구는 없다… 그리고 우리의 인민들과 당 모두 이 페레스트로이카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공산당으로서 당은 사라질 것이다.”54)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바대로, 과학에 의해 이루어진 예측들은 사실이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레닌이 그의 책에서 똑 같은 제목으로 생각했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시장, 생산의 상품적 성격 그리고 상품-화폐 관계들(즉, 자본주의적 관계들)의 발전을 통하여 그리고 유사하게 상이한 종류의 사회적 지향의 시장경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통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생각들은 —최선의 의도와 심지어 가장 애국적이고 가장 신뢰받는 정부의 지도력 하에서조차— 자본주의를 가져올 고르바쵸프주의자들의 길이다. 기회주의와 수정주의는 수많은 양상의 자본주의를 구성한다. 그들은 또한 이러한 양상들에 대한 많은 정당화를 창조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실천은 우리에게 다음을 보여준다. 경제학을 그것의 정치적 기초로부터 분리시키는 것, 정치화된 경제를, 사회주의의 고유한 이론에서 계급적 내용을 박탈하는 경제를 고려하는 것은 오류이고 어리석음이다. 더구나 그것은 노동계급과 관련하여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범해지는 범죄이다. 쏘련에서, 쏘련 공산당 통치의 마지막 기간에 시장사회주의는 건설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본주의가 건설되었다.

레닌의 말을 바꿔서 말하자면, 이러한 시장의 전염병과 싸우는 것이 없이 사회주의적 혹은 공산주의적 선택을 취하는 것에 말하는 것은 단순히 과장되고 기만적인 수사이다.

자 우리의 길을 레닌과, 공산주의의 과학과 일치시키자!

 


 

1) The main idea of Leninism. Lenin on class approach to the analysis of social phenomena / Comp. Dr. Ph. Sc. M. V. Popov. – St.: Polytechnic Univ. Press, 2009. – 311 p. http://rpw.ru/

 

2) Lenin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1964, Moscow, Volume 24, pp. 562-564.

 

3)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25, pp. 381-492.

 

4) Lenin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1977, Moscow, Volume 25, pp. 323-369.

 

5) Lenin’s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Moscow, Volume 26, 1972, pp. 87-136.

 

6)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8, pp. 412-428.

 

7) Lenin, Complete Collected Works, Volume 38, p. 424.

 

8)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9, pp. 552-560.

 

9) Lenin’s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Moscow, Volume 26, 1972, pp. 453-482.

 

10)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9, pp. 55-88.

 

11)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9, pp. 255-274.

 

12)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65, Volume 30, pp. 93-104.

 

13) Lenin’s Collected Works, 1st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65, Volume 32, pp. 272-284.

 

14) Lenin’s Collected Works, 1st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65, Volume 32, pp. 329-365.

 

15) Lenin’s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Moscow, Volume 26, 1972, pp. 400-403.

 

16)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9, pp. 387-391.

 

17)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9, pp. 387-391.

 

18)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9, pp. 409-434.

 

19)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65, Volume 30, pp. 107-117.

 

20) Lenin’s Collected Works, Volume 31, Progress Publishers, USSR, 1964, pp. 117-118.

 

21) Lenin’s Collected Works, 1st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65, Volume 32, pp. 451-498.

 

22) Lenin’s Collected Works, 1st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65, Volume 32, pp. 451-498.

 

23)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28, pp. 455-477.

 

24)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9, pp. 552-560.

 

25)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7, pp. 235-77.

 

26) Lenin, Complete Collected Works, Volume 38, pp. 425–426.

 

27) Lenin’s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Moscow, Volume 27, 1972, pp. 85-158.

 

28) XXII Congress of 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 17–31 October 1961, Verbatim record, M. Gospolitizdat, 1962, Vol. I, p. 151.

 

29) Ibid., p. 166.

30) Ibid., p. 209.

31) Ibid., pp. 210–211, 212.

 

32) XXII Congress of 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 17–31 October 1961, Verbatim record, M. Gospolitizdat, 1962, Vol. III, p. 303.

 

33) Lenin’s Collected Works, Volume 25, pp. 381-492.

 

34) Lenin’s Collected Works, Volume 25, pp. 381-492.

 

35) Lenin’s Collected Works, 4th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2, Volume 29, pp. 470-488.

 

36) Lenin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1964, Moscow, Volume 6, pp. 17-78.

 

37) Lenin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1964, Moscow, Volume 6, pp. 17-78.

 

38) Lenin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1964, Moscow, Volume 6, pp. 17-78.

 

39) Program of the Russian Social Democratic Worker’s Party, adopted at the II Party Congress. Second Party Congress. July–August 1903, Protocols, Moscow, 1959, p. 419.

 

40) Lenin, Complete Collected Works, Volume 38, p. 419.

 

41) XXII Congress of 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 17–31 October 1961, Transcript. Vol. III, M. Gospolitizdat, 1962, p. 274.

 

42) Ibid., p. 238.

 

43) Lenin, Complete Collected Works, Volume 38, pp. 417–418.

 

44) Lenin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1964, Moscow, Volume 6, pp. 17-78.

 

45) Lenin, Complete Collected Works, Volume 38, p. 419.

 

46) The Communist International in the documents. 1919–1932. M. 1933, p. 24.

 

47) Lenin Miscellany, Vol. XI, 1931, 2nd ed., p. 368.

 

48) Lenin Miscellany, Vol. XI, 1931. 2nd ed., p. 370.

 

49) Lenin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1964, Moscow, Volume 6, pp. 17-78.

 

50) Lenin’s Collected Works, 1st English Edition,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65, Volume 32, pp. 375-398.

 

51) Lenin Miscellany, Vol. XI, 1985, p. 388.

 

52) I. V. Stalin. Economic Problems of Socialism in the USSR, 2010, St. Petersburg, pp. 31–32.

 

53) K. Marx and F. Engels, Collected Works, Vol. 20, p. 324.

 

54) XXVIII Congress of 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 2–13 July 1990, Verbatim record. Vol. I, M., Politizdat, 1991, p.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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