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조합운동*의 위기에 대해

 

김태균 | 노사과연 회원

 

* 본 글에서는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 ‘노동자운동’ 각각의 개념의 차이점에 대해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하기보다는 노동자 대중조직의 운동이라는 의미에서 노동조합운동으로 통칭해 사용하겠다.

 

 

머리말

 

1990년 1월 쏘비에트공화국연방에 해체되었다. 자본가계급의 독재 국가인 자본주의 사회와는 다른 노동자계급의 독재국가, 계급 소멸의 당면 과제를 가지고 출범한 사회주의 국가의 종주국 쏘련이 해체되었다.

당시 한국은 1987년 6월 투쟁과 함께 곧 이어 전개된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확장된 민주주의 영역에서 2년여 세월 동안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서는 쏘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역사와 이에 대한 이론에 대한 연구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20세기 러시아의 혁명을 이끌었던 레닌의 말처럼 한국의 선진 활동가 또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노동자 대중을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이 속에서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적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교육 및 조직화 사업과 진행했다. 또한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당 건설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한 세기를 풍미했던 사회주의가 해체되어 가는 시점에서 시작된 한국 노동조합 운동1)이 이제는 20여 년이 흘러오고 있다.

87년 투쟁에 이어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결성, 95년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결성 그리고 진보정당 건설로 이어지는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는 수많은 열사들의 투쟁과 이름 없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진 활동가 그리고 이 땅에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7년 7월 5일 울산의 현대엔진에서 시작된 7-9 노동자 대투쟁은 임금인상 요구, 노동조건 개선, 민주노조 쟁취 요구로 압축되었다. “민주노조 건설하여 민주노동사회 건설하자”라는 구호로 압축되었던 노동자 대투쟁은 “선 농성 후 교섭”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교섭력을 확보하는 아주 정당한 투쟁 방식을 가지고 전개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이제는 모든 선진 활동가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도 “위기”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필자 또한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위기적 상태”라는 점에서 동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20여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위기적 상태”로 진단을 받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위기”라 함은 기존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급격하게 퇴보하는 상황이나 또는 파국을 맞을 만큼 위험한 고비 등을 이르는 말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객관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변화를 통해 조응해야 하는 주체적 조건이 변화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조응으로 인한 상태 또한 “위기”라 칭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의 상태는 상술한 바대로 어떠한 급격한 변화를 동반했기에 “위기”라 칭하고 있는 것인가?

이에 본 글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걸어왔던 20여년의 역사를 통해 노동자 대중의 상태의 변화와 노동조합의 변화 그리고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 대중에게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교육 및 조직화 사업과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체인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의 토대 구축 마련 사업의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상태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현재의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상태를 “위기적 상태”로 규정하면서 그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고자 한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본 글에서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의 상태를 비교 분석하기 위한 역사적 범주를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시기 구분을 하였다. 본 글에서 사용된 주요 데이터는 노동부나 혹은 통계청 통계자료를 주로 사용하였다. 물론 노동부와 통계청에서 제출하고 있는 각종 자료들은 노동조합 운동을 폄훼하거나 혹은 그 파괴력을 축소하고자 통계 내용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사용된 통계 내용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본 글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어 작성되었다.

우선 첫 번째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의 개념 규정에 대한 내용이다. 자본주의라는 계급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함께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으로서 노동조합운동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 맑스주의에 입각하여 간단하게 규명하였다. 간단하게 규명한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본 글의 주제가 노동조합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는 글이 아니라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한국노동조합 운동이 위기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위하여 지난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재까지 노동부 및 통계청의 주요 데이터와 선행 연구자들의 연구 자료를 중심으로 “위기적 상태”에 대해 분석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위기적 상태 분석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노동자 대중의 상태 분석과 전노협과 민주노총으로 이어져 온 노동조합 운동의 상태를 분석하였다.

노동자 대중의 상태와 노동조합의 상태 분석을 위하여 지난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재까지 ① 노동조합 조직 변동 ② 임금 변동 ③ 노동시간 변동 ④ 고용 및 실업률 변동 ⑤ 비정규직 변동 ⑥ 쟁의행위(파업) 변화 추이 등을 주요 데이터로 분석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하여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 대중에게 교육 및 조직화 사업과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체인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의 토대 구축 마련을 위하여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행했던 과정에 대한 분석을 위하여 지난 87년 이후 현재까지 주요 투쟁에 대한 한국노동조합 운동의 논의 과정과 대응 방안에 대한 추적을 통해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위기적 상태”를 진단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석의 결과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상태가 “위기적 상태”인가 혹은 그러하지 않은가에 대한 필자의 결론을 실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을 “위기적 상태”인지 그러하지 않은지에 대한 진단은 결국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 분석을 통해 “진단”을 하고 “진단” 결과 이를 고칠 수 있는 “대안”까지 모색함으로써 한국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진단 작업”이 마무리 된다.

이에 본 글은 현재의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위기적 상태”로 진단을 하고 이에 대한 원인과 그로부터 대안까지 모색 나름 제출하였다.

 

 

1. 노동조합 운동이란?

 

1)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이다

 

맑스는 그의 저서 “노동조합—그 과거, 현재, 미래”에서 다음과 같이 노동조합에 대해 규정을 하고 있다.

 

자본이 집적된 사회적 힘인데 반하여 노동자들이 당장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개인적인 노동력뿐이다. 따라서 노자 간의 계약이 공정한 조건에 기초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질적인 생활수단 및 노동수단의 소유와 살아 있는 생산력을 대립시키고 있는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공정함이란 있을 수 없다. 노동자 쪽이 당장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회적인 힘은 그들이 다수라는 것뿐이다.

… 노동조합은 처음에는 자본의 전제적인 명령과 싸우고, 제거하거나 혹은 하다못해 억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단순한 노예의 지위 이상으로 노동자를 끌어 올리는 계약 조건을 쟁취하려고 하는 노동자의 자생적인 시도에서 발생했다.2)

 

즉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자는 애초부터 공정한 흥정이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다수라는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자본과 맞서 싸우고 노예의 지위 이상으로 노동자들을 끌어 올리는 계약 조건을 쟁취하기 위한 자생적인 시도에서 노동조합이 발생했다고 규정을 하였다.

또한 레닌은 “노동자의 조직은 무엇보다 먼저 직업별 조직이어야 하고, 둘째로 가능한 한 폭넓은 것이어야 하며, 셋째로 조건이 허락하는 한 공개적이어야 한다”3)고 노동조합의 조건을 이야기하였다.

결국 맑스 혹은 레닌에 의하면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조직이며, 그들의 사회적 힘인 다수(多數)를 통해 그들의 경제적 이해와 요구를 쟁취하기 위하여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것이다.

 

2) 노동조합 운동의 임무
– 노동조합 운동의 경제적 임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운동의 임무는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이해와 요구에 복무하는 길이다. 이 부분에 대해 맑스의 말을 들어보자.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목표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일상투쟁에서 자본에 의한 끊임없는 침해를 격퇴하는 수단에, 한마디로 말해서 임금과 노동시간의 문제에 한정되었다. 노동조합의 이러한 활동은 정당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4)

맑스는 또한 그의 저서 “노동조합—그 과거, 현재, 미래”에서 노동조합의 임무를 노동자계급의 임금인상과 노동시간의 문제로 규정을 하고 이러한 노동조합 운동의 임무에 대해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까지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또한 맑스는 이러한 노동조합운동의 경제투쟁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을 개발하는 수단이라 규정5)하였다.

또한 레닌은 그의 유명한 글 ≪무엇을 할 것 인가≫에서 “경제투쟁을 위한 노동자 조직은 노동조합 조직이어야 한다”고 하여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임무 중 한 가지인 경제투쟁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였다.

 

–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적 임무

그러나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임금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및 노동조건의 개선 등 경제투쟁만을 위한 조직이 결코 아니다.

엥겔스는 “공정한 하루의 노동에 대한 공정한 하루의 임금”6)이라는 글에서 “임금인상과 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한 투쟁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조합의 모든 활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 즉 그것은 매우 필요하고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좀 더 높은 목적, 즉 임금 제도의 완전한 폐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라 하였다.

즉 엥겔스는 노동조합의 경제적 투쟁인 임금인상과 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한 투쟁이 매우 필요하고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좀 더 높은 목적인 임금제도의 완전한 폐지를 위한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노동조합 운동의 역할과 임무에 있어 경제투쟁뿐만이 아니라 정치투쟁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또한 맑스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운동은 물론 자신들의 손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노동자계급의 예비적인 조직화가 어느 정도 진전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경제투쟁 자체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7)고 하여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획득이라는 궁극적 목표는 노동자계급의 노동조합 운동의 임무인 경제투쟁 그 자체로부터 생겨난다고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레닌은 “노동자계급의 궁극적 목표인 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정치운동의 예비적 조직화가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경제투쟁 그 자체로부터 발생한다”는 맑스의 말을 이어 받아 “노동계급은 오로지 그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는 단지 노동조합 의식만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노동자들 사이에는 사회민주주의적 의식성이 존재 할 수 없기에 외부로부터 노동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8)라는 말을 통해 선진 노동자들의 의식적 조직화의 필요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레닌은 같은 글에서 정치투쟁의 개념을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의 개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노동계급의 노동 조합주의적 정치활동은 노동계급의 부르주아적 정치활동으로 규정하면서 노동조합주의적 대 정부 투쟁에 대한 한계를 분명히 하였다.

결국, 경제투쟁을 위한 노동자 조직은 노동조합이며 이와 달리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은 노동조합과는 별도로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체인 혁명가 조직(당)이 필요하며, 노동조합은 이러한 혁명가 조직(당)에 의해 지도되고, 노동조합으로 광범위하게 조직된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의식의 조직화 사업과 함께 혁명가 조직(당) 건설의 토대를 구축하는 정치적 임무가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정치적 임무는 경제적 임무인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한계를 뛰어넘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으로 조직된 노동자 대중을 사회주의적 의식으로 재조직화 하고 혁명가 조직(당) 건설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정치적 임무는 선진 활동가들의 의식적 결합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2.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

—경제투쟁의 주체로서의 노동조합 운동의 임무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운동이 무엇이고 노동조합 운동의 임무가 무엇인가를 먼저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운동의 위기에 대한 판단은 노동조합 그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나 혹은 노동조합 그 존재의 임무에 대한 집행 상황에 대한 위기 여부를 판단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노동조합이란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이고, 노동조합 운동의 임무란 노동자계급의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건 개선 등 경제투쟁의 주체로서의 경제적 임무와 함께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획득이라는 정치투쟁을 위한 투쟁 주체의 조직화로 규정9)된다.

이에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란 우선 첫 번째로 노동조합 자체의 존재 규정 즉 현재의 노동조합이 한국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으로서의 자기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노동조합으로 얼마만큼 조직화 되어 있는가라는 점이다. 즉, 노동조합 조직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면 그 원인이 어떠하던지 한국노동조합 운동이 위기라고 진단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노동조합의 경제적 임무인 경제투쟁에 대한 자기 임무 수행의 문제이다. 노동조합이 당연히 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거나 혹은 어떠한 이유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적 임무 즉,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 대중을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새로운 사회로의 전화를 위한 목적의식적인 교육 및 조직화 사업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당 건설의 토대 구축 사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적 상태”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필자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상태에 대한 진단을 위하여 시기적 구분을 한국노동조합 운동의 역사의 큰 획을 그렸던 지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재까지로 규정하고 비교 분석했다. 또한 각각의 비교 분석에 있어 여러 가지 데이터가 존재하겠지만 본 글에서는 간단하게 ① 노동조합 조직 변동 ② 임금 변동 ③ 노동시간 변동 ④ 고용 및 실업률 변동 ⑤ 비정규직 변동 ⑥ 쟁의행위(파업) 변화 추이 등 6가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노동자 대중 및 노동조합의 상태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의 정치적 임무에 대해서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재까지 한국 노동조합운동에서 주요한 쟁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주요 데이터는 비록 한계는 있으나 노동부 및 통계청의 주요 데이터를 중심으로 사용했으며 노동조합운동 내부의 주요 쟁점 관련해서는 전노협과 민주노총 그리고 관련 서적과 노동단체에서 발행된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중심으로

1987년 6월 항쟁 이후 곧 바로 전개된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노동조합 운동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87년 7월 5일 울산 현대엔진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과 파업 투쟁을 시작으로 투쟁은 현대그룹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후 8월초부터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전개되었고,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87년 7-9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되었다. 1987년 8월 하루 평균 83건의 파업 투쟁이 전개되었으며 7월과 8월, 9월 즉, 3개월 사이에 전개된 쟁의는 총 3,311건이나 되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 사회 노동자 대중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노동자 대투쟁이 있기 전인 1986년 2,658개에 불과했던 노동조합수가 88년 말 두 배를 훌쩍 넘긴 5,598개로 조직되었으며 또한 1,036,000 명이었던 1986년의 노동조합원수가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인 1988년 1,707,000 명으로 70여만 명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이 새롭게 노동조합으로 결합하였다. 조직률 또한 16.8%에서 19.5%로 성장했으며 가장 최고조인 1989년에는 19.8%까지 조직률을 보이기도 하였다.

(표1) 노동조합 조직현황에서도 확인이 되듯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재까지 최고의 노동조합 조직률을 보인 연도는 전교조가 출범한 1989년이다. 1989년 말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의 수는 7,861개이며 노동조합원수는 1,932천명으로 19.8%의 조직률을 보였다.

 

(표1) 노동조합 조직 현황                 

단위: 개/천명/%

년도

노조수

노조원수

조직률

비   고

86

2,658

1,036

16.8

7-9월 노동자 대투쟁

87

4,086

1,267

18.6

 

88

5,598

1,707

19.5

 

89

7,861

1,932

19.8

5월 전교조 출범

90

7,698

1,887

18.4

1월 전노협 건설

91

7,656

1,803

17.2

 

92

7,531

1,735

16.4

 

93

7,147

1,667

15.6

6월 전노대 출범

94

7,025

1,659

14.5

 

95

6,606

1,615

13.8

민주노총 출범

96

6,424

1,599

13.3

노사관계위원회

97

5,733

1,484

12.2

IMF 외환위기

98

5,560

1,402

12.6

노사정위원회,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도입 파견근로제 도입, 교사의 단결권 허용.

99

5,637

1,481

11.9

 

00

5,698

1,527

12.0

 

01

6,150

1,569

12.0

 

02

6,506

1,606

11.6

 

03

6,257

1,550

11.0

 

04

6,017

1,537

10.6

 

05

5,971

1,506

10.3

 

06

5,889

1,559

10.3

비정규직법 제정.

07

5,099

1,688

10.8

 

08

4,886

1,666

10.5

 

09

4,689

1,640

10.1

 

10

4,420

1,643

9.8

전임자 임금 지급 관련 폐지

11

5,120

1,720

10.1

 

12

5,177

1,781

10.3

 

10)

1987년 이후 1989년까지 성장을 해온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989년을 최고조를 이루고 그 이후 서서히 하락을 하다가 1998년 정리해고제 입법화 이후 약간의 상승률(97년 12.2%에서 98년 12.6%)을 보이다가 다시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10년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관련한 법률 조항 폐지 이후 최초로 조직률이 한자리 수인 9.8%를 보이다가 다시금 10%대에서 주춤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수, 노동조합원수, 조직률로만 보면 한국 노동조합 운동에 있어 급격하게 데이터상의 변화를 보여 온 경우는 없으며 전체 조직률이 10%에 머물고 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안정적(?)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비중을 나타내는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면서 10%대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북유럽 국가들의 노조 조직률이 평균 70%를 상회하고 있으며 2012년 OECD 가입국 34개 국가 중 한국 노동조합 조직률이 최하위권인 30위를 차지한 통계를 보면 한국의 노동자 대중의 노조 가입률이 바닥권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급격하게 노조 조직률이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20여 년 동안 지속적인 하락과 함께 세계 최하위권의 노조 조직률을 보이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그리고 비정규직, 살인적 노동강도 등과 함께 한국 노동자 대중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2)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임금인상을 중심으로

임금인상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으로서는 가장 기본적인 자기 임무이다. 물론 임금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투쟁은 자본주의 사회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된다.

한국에서 임금인상은 대부분 기업별 교섭에서 결정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에는 임금인상 관련한 단체교섭의 노동자 주체가 형성되지 못했거나 설사 노동조합이 존재 하더라도 대등한 조건에서 임금인상 관련한 단체교섭이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임금인상 관련한 단체교섭이 하나의 제도나 관행으로 정착되지는 못하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외침 속에 선 파업 및 농성에 돌입11)하면서 농성과 파업이라는 교섭력의 우위 속에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단체교섭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 87년 한해에는 실질임금이 전년도에 비해 7.1% 인상이 되었으며 특히나 공동임금인상투쟁본부를 전국적으로 구성하고 공동 임투를 전개한 1989년은 11.8%라는 실질임금인상률을 쟁취하기도 하였다. 1989년 5.7%라는 높은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11.8%라는 실질임금인상률을 쟁취한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표2)에서 나타나듯이 전반적으로 임금인상율이 한자리 수에 머무르고 있으며 민주노총 합법화 이후 처음 치룬 임금인상 투쟁인 2000년에 쟁취한 5.3% 실질임금 인상률을 제외하고는 3%내 미만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표2) 물가상승 및 임금인상률 비교표 

단위: %

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명목임금

인상률

실질임금

인상률

비      고

86

2.8

8.2

5.4

 

87

3.0

10.1

7.1

노동자 대투쟁

88

7.1

13.5

6.4

 

89

5.7

17.5

11.8

공동임금인상투쟁본부-공동임투전개

90

8.6

9.0

0.4

전노협 건설

91

9.3

10.5

1.2

 

92

6.2

6.5

0.3

 

93

4.8

5.2

0.4

정부-한국노총 임금가이드 제시

94

6.3

7.2

0.9

철도, 지하철노조 공동파업투쟁

95

4.5

7.7

3.2

민주노총 출범

96

4.9

7.8

2.9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

97

4.4

4.2

-0.2

김영삼 정권의 IMF 양해각서 합의

98

7.5

-2.7

-10.2

김대중 정권 기업 구조조정

99

0.8

2.1

1.3

민주노총 합법화

00

2.3

7.6

5.3

 

01

4.1

6.0

1.9

대우차 정리해고 분쇄 투쟁 전개

02

2.8

6.7

3.9

 

03

3.5

6.4

2.9

화물연대 총파업/열사정국

04

3.6

5.2

1.6

 

05

2.8

4.7

1.9

 

06

2.2

4.8

2.6

 

07

2.5

4.8

2.3

이랜드-뉴코아 투쟁

08

4.7

4.9

0.2

미국 금융위기 발발

09

2.8

1.7

-1.1

 

10

3.0

4.8

1.8

유럽 재정위기 발발

11

4.0

5.1

1.1

 

12

2.2

4.7

2.5

 

13

1.3

3.5

2.2

 

* 임금인상률은 노동부의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 전수 대상

* 임금총액 기준임

* 소비자물가상승률이란 소비자물가지수의 전년대비 변화율로서 물가상승에 대한 대표적인 지표임.

* 소비자물가상승률 = [(금년도 소비자물가지수 ÷ 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 – 1] × 100.

* 실질임금인상률 =  명목임금인상률 – 소비자물가상승률

* 86-97년까지 명목임금인상률은 한국노동연구원의 [2013년도 임금실태조사] 재인용.

12)13)

특히 김영삼 정권이 한국노총과 함께 전국적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임금억제 정책을 전개했던 1993년에는 실질임금 인상률이 0%대를 보였으며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김영삼 정권의 IMF 양해각서 합의와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으로 인해 97년도에 실질임금인상률이 -0.2%를 보이다가 급기야 1998년도는 명목임금인상률이 -2.7%에 7.5%라는 높은 물가인상률로 인해 사상 최초로 -10.2%의 실질임금인상률을 보였다. 97년, 98년 IMF 당시 현장에서 노동조합 간부들은 “이번 교섭은 임금인상을 반납하지 않고 명목임금을 동결만 해도 선방(?) 하는 것이다”라는 자조석인 말이 떠 돌 정도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로 90년 이후 근 10여 년 동안 1%대 한 자리 수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실질임금인상률은 한국 노동자 대중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는 실례인 것이다.

필자는 위에서도 지적을 했듯이 “위기”라 함은 급격한 변화를 동반했을 때 “위기”이다. (표2)처럼 10여 년 동안 1%대 한자리수의 실질임금인상률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한국 노동조합 운동을 단기적 “위기 상태”로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싶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노협과 민주노총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의 임금인상 투쟁이 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임금 인상 투쟁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록 급격한 하락이나 상승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급격한 변화를 동반한 “위기적 상태”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의 물가를 따라 잡는 임금인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면적 위기” 상태라 진단함이 보다 솔직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3)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중심으로

흔히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분석할 때 임금의 수준과 더불어 노동시간, 노동 강도 등을 주요 분석의 요소로 삼는다. 그리고 이러한 각 요소는 각각의 분석 보다는 각 요소가 하나로 연계될 때 노동자의 삶의 전체적 상태를 보여준다.

필자는 위 글에서 비록 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는 노동부 혹은 통계청의 통계 자료를 인용했지만 저들조차 전체적 상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들의 통계자료가 한국 노동자들의 저임금의 실상을 보여 주고 있음을 (표3)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다.

시간당 임금의 수준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최소한의 비용조차 담보가 안되는 조건이라면 당연하게도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임금수준을 낮추던지 혹은 장시간 노동시간에 시달리던지 혹은 동일한 시간 내 많은 생산량을 생산하는 살인적 노동 강도에 시달리는 것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진리이다.

역시나 한국의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시간에 허덕이고 있음은 간단한 통계 자료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한국의 취업 노동자의 연간 총 노동시간은 2011년 현재 모든 OECD 가입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이다. OECD 회원국 연 평균 1,765시간에 반해 한국의 경우 2,090시간으로 325시간을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한주에 40시간을 일을 한다고 가정 한다면 OECD 평균 국가보다 8.1주, 50여일 더 일을 하고 있는 꼴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해 법정 노동시간이 규정되고 있다. 1953년 주당 48시간을 명시했던 근로기준법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인 1989년 주당 44시간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이 되었고 이후 2003년 주40시간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법정 노동시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표3) 노동시간, 노동일수의 변화 추이

                         (단위: 시간)

 

월간

근로일수

월간

근로시간

주당

근로시간

비고

 

1987

24.9

225.4 

53.9

노동자 대투쟁

출처: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에 종사하는 상용근로자에 대한 분석결과임

* 87-98년까지 월간근로시간 데이터는 노동부의 “2003 근로시간 실태조사” 재인용.

1988

25.0

221.8 

51.3

 

1989

24.7

213.7 

49.7

주44시간 관련 근기법 개정

1990

 

209.5 

48.2

 

1991

 

208.2 

48.9

 

1992

 

206.5 

47.9

 

1993

24.6

206.4 

47.5

 

1994

 

205.9 

47.4

 

1995

 

207.0 

47.7

 

1996

 

205.6 

47.3

 

1997

 

203.0 

46.7

IMF

1998

 

199.2 

45.9

 

1999

24.5

206.6

47.6

 

2000

24.6

204.8

47.2

 

2001

24.4

202.5

46.6

 

2002

24.0

199.6

46.0

 

2003

23.9

198.2

45.6

주40시간 관련 근기법 개정

2004

23.7

197.2

45.4

 

2005

23.2

195.1

44.9

 

2006

22.7

191.2

44.1

 

2007

22.3

188.4

43.4

 

2008

21.5

184.8

42.6

 

2009

21.5

184.4

42.5

 

2010

21.5

184.7

42.5

 

2011

21.5

182.1

41.9

 

2012

21.3

179.9

41.4

 

2013

21.1

178.1

41.0

 

 

(표3)에서 노동시간의 변동 추이를 보면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꾸준히 노동시간이 줄어  들었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는 시간 당 임금의 문제와 연동해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이겠지만 단순화하여 보더라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객관적 현실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이 존재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성과로 임금을 유지 혹은 인상하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는 달리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성과라기보다는 작업 공정의 변화나 혹은 생산 설비 등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불변자본의 증대 등 기술혁명의 변화로 인해 동일한 생산량을 생산하면서도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끊임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물론 보다 세밀한 연구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임금을 인상 시키면서 동시에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즉,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성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표2) 임금인상률 관련한 도표를 보면 확연히 알 수가 있다. 임금 수준은 지속적으로 저하되면서 노동시간이 점진적으로 단축된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성과로 임금수준을 높이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보다는 장기간 한자리 수의 실질임금 인상률과 세계 최장 노동시간 등을 고려할 때  생산설비 등 기술혁명 등으로 인해 동일하거나 혹은 그 보다 더 많은 생산량을 생산하면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점진적으로 단축 되고 있다는 해석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표3)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노동시간이 지속적으로 단축되고 있으며, 단축의 추이가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노동시간의 변화 추이가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상태 즉 “위기”적 상태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노동시간이 점진적으로 단축되고는 있으나 표2)처럼 실질임금수준이 점차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상태와 맞물려 세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비추어 장시간 노동이라는 점에서 한국 노동자 대중의 상태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의 상태는 최소한의 노동자 대중의 경제적 이해와 요구조차 중장기적으로 수렴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할 수가 있다.

 

4)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실업률을 중심으로

생산수단의 소유로부터 배제되고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여 판매해야만 그에 대가로 받은 임금을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있어 노동력의 판매 과정 즉, 취업 혹은 채용 혹은 고용의 과정은 생존의 문제이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고용의 문제는 고용에 대한 질의 문제 즉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그리고 적절한 임금수준 및 노동 강도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한 고려를 전제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본 글에서는 최소한의 내용을 보기 위하여 노동부 혹은 통계청의 실업률 관련한 통계 데이터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상품의 가격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된다는 아담스미스를 중심으로 한 고전 경제학파들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모든 노동자들이 100% 노동시장에서 완전하게 고용이 된다는 점이다. 이와는 달리 케인즈 학파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피하게 3%대 실업률을 보일 수밖에 없으며 3%대의 실업률이면 완전고용 상태이며, 자본주의의 전성시대로 대호황 상태라 이야기 하고 있다.

표4]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한국의 실업률은 3%를 유지하고 있다. 케인즈의 말대로라면 한국의 고용상태는 완전고용 상태이며 대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는 상태이다. 과연 그런가?

다음 아래 그림 [OECD 주요국 실업률]을 보면 한국의 경우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시간과 살인적 저임금에 시달리지만 완전고용의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으며, 한국이 세계 주요 국가들보다 일자리가 많고 고용이 잘 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그러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그 어느 분도 실업률 관련해서 정부의 통계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실업률 관련한 통계를 내는데 있어서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착시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통계청에서 고용율이라 함은 “총취업자 / 노동 가능 인구(15세 이상인구)”로 계산을 한다. 마찬가지로 실업률 관련해서는 “실업률 = 실업자 / 경제활동인구 (= 노동 가능 인구 – 비경제활동인구)”로 계산을 한다. 문제는 실업률을 계산함에 있어 분모 역할을 하는 경제활동인구 중 비경제활동인구를 가능하면 적게 산정14)함으로써 실업률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째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러 저러한 문제가 있는 실업률 관련한 변화 추이를 정리해 본 자료가 (표4) [취업자 수, 실업자 추이]이다.

(표4)를 보면 IMF 시절인 1998년과 99년도를 제외하고는 일정하게 실업률이 2-3%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표4) 취업자 수. 실업자 추이*

단위: 만명, %

 

취업자

증감

실업자

실업률(%)

청년실업자

청년실업률(%)

1990

52.5

45.4

2.4

29.0

5.5

1991

56.4

46.1

2.4

31.4

5.4

1992

36.0

49.0

2.5

33.3

5.8

1993

22.5

57.1

2.9

38.3

6.8

1994

61.4

50.4

2.5

32.4

5.7

1995

56.6

43.0

2.1

26.3

4.6

1996

43.9

43.5

2.0

26.4

4.6

1997

36.1

56.8

2.6

32.2

5.7

1998

-127.6

149.0

7.0

65.5

12.2

1999

35.3

137.4

6.3

57.4

10.9

2000

86.5

91.3

4.1

40.2

7.6

2001

41.6

89.9

4.0

41.3

7.9

2002

59.7

75.2

3.3

36.1

7.0

2003

-3.0

81.8

3.6

40.1

8.0

2004

41.8

86.0

3.7

41.2

8.3

2005

29.9

88.7

3.7

38.7

8.0

2006

29.5

82.7

3.5

36.4

7.9

2007

28.2

78.3

3.2

32.8

7.2

2008

14.5

76.9

3.2

31.5

7.2

2009

-7.2

88.9

3.6

34.7

8.1

2010

32.3

92.0

3.7

34.0

8.0

2011

41.5

85.5

3.4

32.0

7.6

2012

43.7

82.0

3.2

31.3

7.5

2013

38.6

80.7

3.1

33.1

8.0

* 취업자 증감은 전년동기비 /

* 청년실업자 및 청년실업률 연령 기준: 15-29세

15)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비경제활동인구의 통계수치에 대한 사기성을 제외하더라도 일정하게 실업률 혹은 고용율이 유지가 되면서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문제는 한자리 숫자의 실질임금인상률과 세계 최장의 장시간 노동시간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 대중의 상태를 전제로 할 때 실업 혹은 고용의 문제는 단지 노동력 판매 그 자체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노동력을 적정한 수준의 대가를 받고 팔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살펴 볼 수가 있다. 추이의 급격한 변화 여부라는 지점에서는 실업률 혹은 고용률의 변화가 “위기적 상태”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악조건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태라 규정할 수가 있다.

 

5)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로 진단하는 많은 이들이 앞 다투어 그 근거로 이야기 하는 부분이 바로 비정규직 문제이다. 우선적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이 정부로부터 시작해서 노동조합 운동 진영까지 각 계급별로 다양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계가 가지고 있는 정치경제학적 의미는 계급의 착취구조를 옹호하고 계급 착취로부터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은폐하고 엄폐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당연하게 자본주의 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자본가 계급에게 있어 비정규직 관련한 통계 자료가 가능하면 적게 산정이 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노동조건이 악화되어 있음을 자본가 계급 스스로 폭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어째든 통계청의 통계 자료인 (표5)를 보면 96년 김영삼 정권의 파견법 날치기 통과와 98년 IMF 시절 김대중 정권의 정리해고제 도입 이후 한국 사회 노동시장은 급속하게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변화해 왔으며 이는 통계청의 자료만을 근거로 하더라도 전체 임금 노동자 중 30%가 넘는 비율이며 또 다른 분석16)으로는 55%를 넘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표5) 비정규직 고용 동향  

단위: 천명, %

년도

임금

근로자수

정규직수

비정규직수

비정규직비율

비고

96

 

 

 

 

파견법 날치기 통과

97

 

 

 

 

 

98

 

 

 

 

정리해고법 통과

99

 

 

 

 

 

00

 

 

 

 

 

01

13,540

9,905

3,635

26.8

 

02

14,030

10,191

3,839

27.4

 

03

14,149

9,542

4,606

32.6

 

04

14,584

9,190

5,394

37.0

 

05

14,968

9,486

5,483

36.6

 

06

15,351

9,894

5,457

35.5

비정규직법 통과

07

15,882

10,180

5,703

35.9

 

08

16,104

10,658

5,445

33.8

 

09

16,479

10,725

5,754

34.9

 

10

17,048

11,362

5,685

33.3

 

11

17,510

11,515

5,995

34.2

 

12

17,734

11,823

5,911

33.3

 

13

18,240

12,295

5,946

32.6

 

* 임금근로자=경제활동인구-실업자-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무급가족종사자)

* 비정규직근로자=한시적 근로자(기간제근로자 포함) ∪ 시간제근로자 ∪ 비전형근로자

** 한시적 근로자: ‘고용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분류한 비정규직이며,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자 또는 정하지 않았으나 계약의 반복갱신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근로자와 비자발적 사유로 계속 근무를 기대할 수 없는 자로 나눠짐

** 시간제근로자: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분류한 비정규직이며, 근로시간이 짧은 근로자(파트타임근로자)

** 비전형근로자: ‘근로제공방식’을 기준으로 분류한 비정규직이며, 파견근로자, 용역근로자, 특수형태근로자, 가정 내 근로자(재택, 가내), 일일(호출)근로자로 분류됨

17)

굳이 김유선 연구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통계청의 데이터만 보더라도 한국의 노동시장은 임금 노동자 중 반수 가까운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제 비정규직의 문제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자본가 계급에게 있어서는 안정적인 임금인하의 수단이 되었다. 전체 임금 노동자 중 반수에 가까운 사람에 대해 노동력 구매 대금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싼 값으로 지불해도 된다는 점은 아주 달콤한 유혹인 셈이다. 이에 반해 노동자계급에게 있어 비정규직의 문제는 그나마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장시간 노동시간과 저임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항상적 고용불안에 떨게 만드는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어째든 (표5)를 통해 확인이 가능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를 떠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시장 내 반수에 가까운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급격한 변화를 전제로 한 “위기적 상태”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도 비정규직 문제가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상태를 “위기적 상태”로 규정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십년이 흐른 97년 IMF와 함께 시작된 비정규직 확산은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을 전면적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상태 진단 즉 “위기적 상태”로 규정함에 있어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전반적 상태를 규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는 점에서 적극적 고려가 필요하다.

 

6)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쟁의행위를 중심으로

자본주의란 토지, 공장, 도구 등이 소수의 토지소유자와 자본가에 속하는 반면, 인민 대중은 재산을 전혀 소유하지 못하거나 아주 적게 소유하며 자신이 노동자로서 고용되지 않을 수 없는 사회 체제를 말한다. … 공장소유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단지 그들 자신과 가족들이 겨우 생존할 만큼의 임금만을 지불한다. 반면 노동자들이 이러한 양을 초과하여 생산하는 모든 것은 이윤으로 공장 소유자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 노동자는 고용주와 거래하며, 임금을 둘러싸고 투쟁한다.18)

 

레닌에 의하면 노동자는 자신의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의 대가인 임금을 둘러싸고 고용주와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한다고 하면서 투쟁의 방식은 개별이나 개인이 아니라 집단 혹은 노동자 상호간의 단결을 전제로 한 투쟁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또한 레닌은 자신의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대가인 임금을 더 받기 위한 흥정 혹은 교섭력을 높이기 위하여 파업을 전개하지만 파업 그 자체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의 바로 그 본성에서 일어나는 파업은 노동계급의 바로 그 사회체제에 대한 투쟁의 시작을 의미한다19)”고 하였다. 그러면서 레닌은 같은 책에서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고용주들의 힘과 노동자들의 힘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고 하였고 또한, 자본가뿐만 아니라 정부와 법률의 본질에 대해 눈 뜨게 해준다고 하였다. 또한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단결을 가르쳐 주고 그들이 단결했을 때 자본가들에 대항하여 투쟁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레닌은 파업은 단지 투쟁의 수단의 하나이며, 단지 노동계급 운동의 한 측면이라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개별적인 파업으로부터 전 근로인민을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발전할 때, 전국적으로 단결할 때 모든 근로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 노동자 당을 건설할 때 그때 비로소 파업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였다.

단지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파업,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각각의 개별적 파업이 전체 근로 인민을 위한 파업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할 때 노동자계급의 “파업”은 실질적 의미를 가진다는 레닌의 말은 지난 87년 한국 노동조합 운동이 전개한 파업 투쟁에 대해 단순히 전개된 파업 투쟁이 양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행했던 파업투쟁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도 분명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표6) 노사분규 쟁의행위 관련                

단위: 개/천일

 

노사

분규

건수

파업

(근로손실)

일수

비고

87

3,749

6,947

한국노동운동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 투쟁 전개

인간답게 살고 싶다.

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

88

1,873

5,400

 

89

1,616

6,351

 

90

322

4,487

전노협 건설

91

234

3,271

 

92

235

1,527

 

93

144

1,308

 

94

88

1,484

 

95

85

392

 

96

85

893

96-97 노동자 투쟁 /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

97

78

445

 

98

129

1,452

IMF 경제위기. 고용안정 투쟁

99

198

1,366

 

00

250

1,894

 

01

235

1,083

 

02

322

1,580

 

03

320

1,299

 

04

462

1,199

 

05

287

848

 

06

138

1,201

 

07

115

536

 

08

108

809

 

09

121

627

 

10

86

511

 

11

65

429

 

12

105

933

 

13

72

638

 

* 96-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은 통계청 산정 기준상 제외함.

* 우리나라 통계청의 파업(노사 분규) 관련 산정 기준은 파업 발생 이후 1일(8시간)이 지나면 공식적인 노사분규(파업)로 간주한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정치적 이유로 인한 파업(노사분규)은 공식적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이러한 통계 산정 기준이다 보니 96년 김영삼 정권의 노동악법 날치기 통과에 반대한 96-97 노동자 파업 투쟁은 공식적 파업 투쟁으로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또한 간접 파업 참가 노동자에 대한 포함 여부인데 한국의 경우 이러한 경우에도 파업 참가자로 간주하지는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앞 라인에서 파업을 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뒤 라인이 조업을 못하는 경우 파업 참가자 통계에서 제외를 하는 경우이다.

20)

그러나 본 글에서는 파업 투쟁의 내용을 떠나 단지 수치상으로 표현되는 파업 투쟁의 양을 중심으로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위기 상태를 진단해 보겠다. (표6)을 중심으로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파업 건수의 변화 추이를 보면 1987년 3,749건에 노동손실일이 6,947천일이 되면서 한국 노동조합운동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파업과 노동손실일을 기록하였다. 87년 최고조를 이룬 파업건수가 점차 축소되다가 96-97년 투쟁을 계기로 다시금 파업건수가 늘어났다. 이러한 파업건수의 변화는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 투쟁과 열사정국을 거치면서 2004년 다시금 높은 수의 파업건수를 기록하고 다시금 점차적으로 축소되어 가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

단순하게 파업건수 및 노동손실일수를 근거로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 상태를 진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요 정치적 시기에 파업 건수 및 노동손실일수가 늘어났었다는 점을 보면 여전히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현장투쟁은 끊임없이 전개되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3.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

— 정치투쟁의 주체로서의 노동조합 운동의 임무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이해를 중심으로 한 경제투쟁의 임무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역사적 필연성과 더불어 이를 수행할 노동자계급의 정당 건설의 토대 구축이라는 정치적 임무가 존재한다.

이러한 정치적 과제를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의 개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노동계급의 노동조합주의적 정치활동은 노동계급의 부르주아적 정치활동이라고 규정한 레닌의 말처럼 노동조합 운동이 노동자 대중의 경제적 이익 즉 임금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노동조건 개선만을 위한 대정부 투쟁은 여전히 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위기적 상태”에 대한 진단에 있어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재까지 전개된 노동조합운동의 활동의 과정에서 과연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임무 즉,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목적의식적 조직화 사업과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토대 구축을 위한 사업을 올곧게 전개해 왔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한국노동조합 운동의 “위기적 상태”를 진단해 보자.

 

—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에서 나타난 주요한 쟁점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쉼 없이 달려온 한국노동조합 운동은 역사의 과정에서 몇몇 주요한 논쟁의 지점21)을 가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전노협 건설의 과정에서 나타난 소위 제2노총 건설 관련한 논쟁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곧이어 건설된 민주노총의 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논쟁이다. 민주노총 건설의 과정에서 나타난 논쟁은 주요하게 민주노총 조직형태에 대한 논쟁과 함께 소위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 등으로 표현되는 노동조합 운동의 방향성을 가지고 전개된 논쟁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김영삼 정권시절부터 시작된 사회적 합의주의 관련한 논쟁이다. 노개위 혹은 노사정위원회로 표현된 사회적 합의주의 관련한 노동조합운동 진영 내부의 논쟁이다. 그리고 네 번째로 “일어나라 코리아”로 표현된 진보정당 건설 관련 논쟁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관련한 논쟁이다.

본 글에서는 각각의 논쟁 지점에 대해 간단하게 논쟁의 과정을 되짚어 보면서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임무를 올곧게 수행했는가 하는 점에 대한 평가를 통해 “위기적 상태”를 진단해 보겠다.

 

1)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전노협 건설 과정에서

 

87년 6월 항쟁과 곧 이어 전개된 7, 8, 9 노동자 대투쟁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최소한의 요구이면서 절박한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 대중과 전두환, 노태우 정권타도라는 목표를 가진 선진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운동 일반으로 결합했음을 의미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인해 성장한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88년 쟁의시기집중 등 공동의 임금인상을 위한 투쟁의 경험과 함께 전국적 노동법 개정 투쟁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공동의 실천을 기반으로 한 지노협 건설에 박차를 가했고 드디어 1990년 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건설하게 되었다.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을 앞당기는 전노협’이라는 붉은 깃발은 조직 건설의 과정에서부터 공동투쟁을 통한 신뢰가 전제되었으며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노동이 해방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향점을 분명히 하면서 출발 한 것이다. 이러한 전노협 건설의 과정에서 논의의 쟁점이 되었던 것은 한국노총의 문제였다.

논쟁의 주요 내용을 단순화해 보자면 우선 첫 번째로 한국노총의 민주화론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국노총의 해체 및 즉각적 제 2노총 건설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건설을 위한 과도적 과정으로서 전노협 건설론이다.

세 가지 쟁점은 결국 극단적 좌우에 대한 논쟁의 과정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전노협 건설로 논쟁이 마무리되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전노협 건설의 과정에서 나타난 첫 번째 주장은 바로 한국노총의 민주화론이다. 노총 와해론으로 불리는 이 주장은 노총 내부의 민주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노동해방이라는 노동조합 운동의 방향성 정립 보다는 노동운동 내부의 통일을 최우선적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두 번째가 제 2노총 건설론이다. 한국노총에 대한 타도를 전제로 민주노총 및 노동단체들이 모여 즉각적으로 제 2노총을 건설하고 경제투쟁의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임무와 정치투쟁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정당의 임무를 하나로 모아 건설되어지는 제2노총에서 수행하자는 식의 좌익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전노협 건설론이다. 한국 노총에 대한 입장은 노총민주화론이며 이를 위해 노총 상층연대 및 폭로를 통한 고립화 전술이었다. 또 다른 한 축으로는 노동조합 운동과 노동자계급운동과의 역할과 관계를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노협 건설론은 앞의 두 가지 입장으로 표현되는 좌우익의 극단적 편향성을 극복하고 전노협의 조직적 성격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의를 가진다.

결과론적으로 전노협은 두 번째 안과 세 번째 안을 수렴하면서 건설이 되었다. 그리고 건설의 주체는 대공장 중심이 아니라 70년대와 80년 초ㆍ중반 투쟁을 힘있게 전개했던 전자와 섬유 등 여성 중심 사업장과 제조업 사업장 그리고 중소영세 사업장 중심으로 투쟁하는 단위가 중심이 되어 건설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논쟁의 과정22)이 조직건설의 주체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노협 건설의 과정에서 전개된 쟁점의 내용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노협이 출범하고 이후 민주노총이 출범한 95년 직전까지 투쟁을 책임졌던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현 주소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결과론적으로 두 번째 안과 세 번째 안을 공히 수렴하면서 전노협이 건설 되어 졌던 역사적 과정을 보면 두 번째 안 즉, 극좌적 편향까지 전노협 출범의 과정에서 함께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극좌적 편향은 결국 현재의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규명함에 있어 또 다른 원인으로 이후 발전하게 된다.

 

2)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주요한 조직적 과제로 출범한 노동해방, 평등사회를 앞당기는 전노협은 90년 출범과 동시에 91년부터 공동투쟁과 투쟁을 통한 조직건설 논의가 진행 되었다. 이 논의의 결과로 93년 6월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총련 등 4개 조직이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를 구성하였다.

전노대 구성이후 민주노총의 건설 과정에서 논쟁 구도가 마련된 것은 소위 전노협 강화론 또는 전노대 강화론 이였다. 동시에 논쟁의 중심에 있지는 못했지만 기존의 전노협 사업에서 함께 했던 선진 활동가들의 조직인 노동단체들이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23)되었다. 전노대에서 결정한 4개 조직 공동의 사업이 각 지역으로 내려오면 결국 전노협 지역조직인 지노협에서 구체적 지역 실천을 전개하는데 당시 지노협의 상태는 지노협 가입 노동조합뿐만이 아니라 지역의 노동단체들과 공동의 실천을 전개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전노대 시절 논의의 한축이었던 전노대 중심의 민주노총 건설 논의는 결국 지역의 공동실천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중앙단위의 관료적 조직 통합만을 주문하는 안이기도 하였다.

또한 민주노총 건설의 과정에서 논의의 중심에 서야 할 전노협이 전노협 출범과 동시에 자본가 계급과 정권의 집중적 탄압에 의해 조직 사수 및 전국적 전선을 쳐야 하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역할 등으로 인해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또 다른 원인으로 존재하였다.

이러한 민주노총 건설의 과정에서 논쟁은 민주노총 출범 직전인 94년 전노협 위원장 선거에서 전노협 1안과 2안 그리고 업종회의안24)으로 가시화 되면서 구체적 논쟁이 전개되었다. 전노협 1안은 전노협 중심의 95년 공동임투의 성과를 모아 민주노총을 건설하자는 안이었고, 이에 반해 2안과 업종회의안은 전노대 건설을 통한 민주노총 건설안으로 압축할 수가 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전노협 1안을 중심으로 제기했던 전노협 중심은 자본과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한편으로는 전노협을 사수해야 하는 투쟁적 과제와 더불어 전국 노동자계급의 전선을 책임져야 하는 조직적 과제와 맞물리면서 논쟁에 힘 있게 참여하지 못했다. 결국 전노협 마지막 위원장 선거에서 나타난 각 논쟁의 주장은 여전히 2014년 한국 노동조합운동 진영 내 주요 논쟁의 지점으로 남아 있다. 노동해방 평등세상을 앞당기는 전노협의 이름이 상징하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민주노총 건설의 과정에서 해소되면서 민주노총이 출범하였다. 민주노총이 출범하면서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 여러 가지 논의의 쟁점이 치열한 토론과 실천의 과정에서 대중들에게 확인되었다기보다는 조직 결성의 문제로 집중화되면서 논쟁과 논의의 긴장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민주노총 출범과 동시에 논쟁이 잠복하는 결과를 낳았다.

필자는 현재의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상태를 분명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전노협 이후 전노대 그리고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 논의가 되었던 각 주장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각각의 주장의 차이가 민주노총 건설 이후 어떠한 형태로 각 주장들이 발전되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논의와 논쟁이 조직 건설의 과정에서 긴장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논의의 핵심이 잠복하고 있다가 주요 시기마다 다른 이름으로 쟁점이 형성되면서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상태를 “위기적 상태”로 내몰고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3)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사회적 합의주의 논쟁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불리는 경제적 토대, 사회적 하부구조에 의해 상부구조가 결정되어진다. 노동자로부터 생산된 이윤을 어느 계급이 가져 갈 것인가 라는 치열한 계급투쟁의 과정이 그 사회 전반을 규정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사이에 두고 전개되는 계급투쟁은 결국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힘의 관계 속에서 쟁취되어지는 산물일 수밖에 없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가 생산한 이윤을 안정적으로 획득하고 나아가 이러한 자본주의 계급 모순을 은폐하고자 총 노동과 자본가계급의 국가권력 그리고 총 노동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구조를 요구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도 자본가 계급에 의한 사회적 합의구조는 노태우 정권 시절부터 시작이 되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 한국노총과 더불어 행했던 총액임금제 합의 구조가 한국형 사회적 합의구조이며 이는 이후 93년 김영삼 정권의 노-경총 산업평화체제 선언으로 이어졌고, 96년 김영삼 정권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 이어 97년 IMF 이후 김대중 정권에 의해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위원회로까지 발전하였다. 이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참여와 탈퇴를 반복하면서 04년 노사정위원회 대신 노사정 대표자 회의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 노동조합운동 진영은 활용론에서부터 조건부 참여론 그리고 불참론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합의구조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논쟁과는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현장의 투쟁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참여와 탈퇴를 반복하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사회적 합의구조 활용론자들은 사회적 합의 구조에 참여하여 자본과 정권의 본질을 분명히 폭로하고 이를 통한 현장 조직화의 계기로 삼자는 주장이었다. 이에 반해 조건부 참여론은 다양한 주장이 있었으나 대표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전제가 최우선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총 노동과 총 자본의 중앙 통제적 조직이 존재하고 국가권력이 사민주의 혹은 친노동정권이 존재하는 조건에서나 사회적 합의구조에 참여해야 하며 현재의 한국의 상태는 조건이 성숙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불참론은 사회적 합의 구조가 노리는 것은 바로 노동조합 운동의 체제내화이고 작금의 정세에서 자본가 계급이 행하고자 하는 임금인하, 노동 강도 강화, 노동조건의 저하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동의를 강요하는 착취의 기제이기에 참여할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전노협 시절 노태우 정권의 총액임금제 사회적 합의 구조나 민주노총 건설 직전인 94년 노-경총 임금 가이드라인 합의 구조에 대해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전면적인 투쟁으로 대응을 했다. 총액 임금제 분쇄로 전노협을 사수하고자 했던 전국의 수많은 현장 투쟁이 그리고 노-경총 임금 가이드라인 분쇄를 위한 전해투의 한국노총 점거 투쟁과 전국적으로 전개된 한국노총 탈퇴 투쟁은 95년 민주노총 건설의 내용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구조가 한국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쟁점으로 논쟁이 되었던 시기는 바로 민주노총이 출범하고 97년 IMF 이후 98년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면서부터 이다. 98년 민주노총이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이후 98년 2월 회의에서 정리해고제 및 민주노총 합법화 등을 합의하면서 노사정위원회 참여 여부가 현장에서 쟁점으로 형성이 되었고 곧 이어 2월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 참여에 대한 책임을 들어 지도부가 총 사퇴하면서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 하게 되었다. 이후 6월 개최된 2기 노사정위원회에 민주노총은 전술적 참여를 근거로 재참여를 결정하고 노사정위원회에 복귀를 하였고 그 이듬해인 99년 2월 다시금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를 탈퇴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개편25)이라는 내용으로 다시금 각종 의결 단위에서 사회적 합의 구조 참여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구조 관련한 쟁점은 여전히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상황이다.

 

4)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진보정당 건설 논쟁 과정에서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적 임무인 새로운 사회에 대한 조합원 대중들을 상대로 한 교육 및 조직화 사업과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체인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 사업이라는 점에서 87년 전후로 1985년 구로에서 전개된 구로지역 연대동맹파업 투쟁을 들 수 있다. 비록 지역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전개된 투쟁이지만 지역의 노동조합 및 노동 및 시민사회 단체와 학생운동까지 결합한 연대투쟁이며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적 임무를 일정정도 수행한 투쟁이었다.

이후 대중정치조직을 지향하며 결성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1985년 전국노동자 민중민주민족통일 헌법쟁취위원회(전노삼민통) 결성,  1986년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인노련) 결성, 1986년 5.1 인천 항쟁, 1986년 서울남부지역노동자연합(남노련)결성, 1986년 제헌의회 그룹사건, 1987년 노동자해방투쟁동맹(노해동) 결성,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결성, 1987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내부에서 민중정당 결성, 민중후보 지지그룹 및 비판적 지지 그룹 논쟁, 1987년 인민노련 탈퇴파들이 인천지역노동자연합준비위(인준위) 결성, 1987년 민중후보 백기완 선생 선거운동 전국본부(백선본) 출범. 1987년 민중정당결성전국추진위원회 결성, 1988년 민중의 당 창당, 한겨레 민주당 창당, 1988년 전국노동운동단체연합(전국노운협) 결성.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결성, 1989년 전민학련 건설을 위한 서울지역 민주주의 학생 연맹(서민학련)결성,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결성26)등의 조직 건설 사업 및 투쟁 사업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계급 대중의 노동조합이 안정화되기 전까지의 선진 활동가 중심의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임무에 대한 실천 과정27)이다.

87년 투쟁의 성과로 건설된 90년 전노협은 전노협 투쟁의 시기인 1990년부터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전까지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론에 대해서 공식적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고 또한 전노협과는 별도로 진행된 선진 활동가들의 당 건설 움직임에 대해서도 조직적 행보를 함께 하지는 못했다.

결론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임무 관련해서는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 국민승리 21 결성 과정의 논쟁으로부터 시작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95년 출범과 동시에 96년-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면서 97년 3월 대의원 대회에서 “민주노총은 대중적 합의를 바탕으로 노동자가 적극 참여하고 각계각층의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세력과 함께 하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실현하고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철저히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 건설의 토대를 구축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1997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바 있는 “98년 지자체선거 대거 진출 → 98-99년 정당건설 → 2000년 국회 원내 진출”을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화 사업을 힘차게 전개해 나간다”고 결정했다.

이와는 별도로 전국연합은 6월 임시대의원 대회에서 97년 대선 방침을  “전국연합은 <反신한국당, 민주개혁>의 기치 아래 폭넓게 민주연합을 구축하고 이를 대표하는 “우리 후보”를 추진하되 “우리 후보”는 “국민후보”를 지향해야 한다. 전국연합은 민주노총 등 민족민주진영의 힘을 결집하여 우리후보를 내부적으로 준비하는 것과 함께 광범위한 민주세력을 결집하는 활동을 힘 있게 벌여가야 한다. 민족민주진영은 공동의 선거기구(가칭: 민주개혁국민연합)를 제안하고 여기에 민주세력을 결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후보”를 추대한다,” 로 결정을 하였다. 또한 진보정치연합은 7월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 “1. 진보정치연합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최대의 조직적 과제인 진보정당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적극 참가한다. 선거 참여의 일차적 목표는 진보정당 건설의 물질적 기초와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는 데 있다. 2. 진보정치연합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계, 진보적인 정치단체, 시민사회단체 등 폭넓은 민주진보세력과 굳건한 연대와 협력을 토대로 국민후보 운동을 전개한다. 3. 국민후보는 근본적인 정치개혁, 재벌경제의 타파, 참된 사회복지의 실현, 남북 평화체제의 구축 등 양심적인 다수 국민의 희망을 대변해야 하며, 선거에서 확인된 국민의 지지를 기초로 진보적인 정치세력화를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4. 진보정치연합은 폭넓은 민주진보세력과 함께 조속한 시일 내에 국민후보 운동을 위한 공동의 선거기구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로 결정을 하였다.

이러한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그리고 진보정치연합의 결정에 근거해서 97년 9월 “국민후보 추대와 국민승리 21(가칭)준비 위원회”가 발족식을 가지며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역사 속에 노동조합운동 진영이 직접 참여하는 정당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국민승리 21은 출범과 동시에 소위 “일어나라 코리아, 국민후보론, 종이정당론 ”등에 대한 논쟁이 내부 논쟁이 진행되었다. 어째든 국민승리 21은 이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졌으며 08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의 분당, 12년 민주노동당, 국민 참여당, 새진보 통합연대 등과 함께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이어 졌다. 애초의 국민승리 21과 함께 하지 않았던 흐름은 97년 청년진보당 창당, 99년 노동자의 힘 발족, 2001년 사회당 창당 등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위와 같이 각각의 당 내부의 논쟁은 당 내부에서 진행이 되었으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 운동진영에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관련한 주제에 있어서 국민승리 21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만 논의가 진행되었다. 국민승리 21에서는 위에서도 지적을 했듯이 종이정당론이나 국민 후보론 등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었고 이후 민주노동당 관련해서는 진보 정당 지지 관련한 내용이었다. 민주노총에서는 민주노동당을 공식적으로 지지 결정한 반면 이에 대한 다양한 이견들이 제출이 되면서 “한 개의 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배타적 지지 방침”에 대한 정치 방침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로 인해 결국 민주노총 내에서는 “배타적 지지 방침”에 대한 논쟁이 수면 아래로 내려갔으나 여전히 이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며 이와는 별도로 부르주아 제도 정당 사업이 노동자계급정당 사업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논의와 논쟁이 민주노총 내에서 제기되지 못함으로 인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표현된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임무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5)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위기적 상태인가?
— 비정규직 투쟁 관련한 논쟁 중심

 

96년 12월 날치기 통과 되었던 파견법 개악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은 전반적으로 비정규직의 확산과 이를 어떻게 투쟁의 주체로 세워낼 것 인가? 라는 지점에 대한 노동조합운동 진영의 논쟁의 과정을 통해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상태를 분석해 보자.

비정규직 투쟁의 포문을 열어 제낀 곳은 96년 김영삼 정권에 의해 날치기로 파견법이 통과된 이후 96-97 노동법 관련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과 맞물려 전개된 98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조의 투쟁이었다. 이후 99년 재능교사노조를 중심으로 한 학습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투쟁과 재능교사 투쟁은 00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폭발적 투쟁의 시작이었다. 2000년 서울대 시설 관리 노동자들의 투쟁, 동우공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길병원 제니엘 노동자들의 투쟁, 대상 식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 투쟁, 그리고 이랜드와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동 투쟁. 2001년 한국통신계약직 노조의 투쟁, 전국건설운송노조투쟁, 캐리어사내하청노조 투쟁. 2002년 한진 관광 면세점 노동자들, 하나로 테크놀로지, LG 화학 사내하청인 남성기업노동조합 노동자들의 투쟁, 여수지역건설노조의 투쟁, 2003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조 투쟁, SK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들의 투쟁,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울산), 금호타이어 사내하청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등 사내하청노조 건설 투쟁, 화물연대 노조의 물류를 멈추는 투쟁, 이용석 열사 투쟁,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 박일수 열사 투쟁, 금호타이어의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투쟁, 현대차 비정규직 독자 파업 투쟁, 2005년 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3사, 그리고 하이닉스-매그나칩,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대우자동차 창원공장 등이 불법파견을 위한 공동투쟁 등 매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항상적이며 끈질기게 전개되었다.

비정규운동의 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고민의 지점은 계급적 단결의 어려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연대의 문제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투쟁의 요구의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의 분할 및 비정규직 내의 직접고용과 간접고용 등에 의한 분할 등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 정책에 대한 계급적 대응 방안에 대한 한국노동조합 운동의 대응은 비정규직 투쟁의 발전 정도와 함께 그 위기의 폭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투쟁 관련한 논쟁은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건설의 과정과 맞물려 진행된 조직화 주체의 문제였다.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구조에서 비정규직을 조직할 것인가? 혹은 그와는 달리 비정규직 조직화 주체의 별도 건설을 통한 조직화 방안인가이다. 여전히 현재도 남아있는 쟁점이고 쟁점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장은 투쟁을 하고 있다.

 

 

맺음말

 

노동조합은 그 목표가 결코 좁디좁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억눌리고 있는 수백만의 사람의 전반적인 해방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라는 확신을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새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28)

 

필자는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의 상태를 규명하고자 우선적으로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노동조합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선행 연구자들의 연구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에서 피착취 계급인 노동자 대중의 대중조직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노동자 대중의 경제적 이해 즉 임금 및 노동시간 그리고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기업단위 자본가뿐만이 아니라 자본가계급과 국가 권력을 상대로 투쟁하는 경제적 임무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이다. 이와 동시에 노동조합은 새로운 사회로의 건설을 위해 노동자 대중을 계급적으로 조직하고 교육하는 그리고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체인 노동자계급 정당의 토대를 구축하는 정치적 임무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상태는 노동조합의 2가지 임무 즉 경제적 임무와 정치적 임무에 대한 평가를 통해 그 상태를 규명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상태 규명을 통해 “위기적 상태”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

노동조합의 경제적 임무 관련해서 본 글은 87년 7, 8, 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되어가는 과정 즉 노동조합 조직률을 노동부가 통계청의 통계 자료를 근거로 분석했다. 분석의 결과 “위기”라 규정할 만큼 심각하게 조직률이 떨어졌던 역사는 없었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점진적으로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노동자의 경제적 임무 관련해서는 실질임금인상률과 노동시간의 변동에 대한 추이, 고용 및 실업률 변동, 비정규직 확산 관련한 통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의 파업(쟁의)수 관련한 변동 추이를 살펴보았다. 이 또한 노동조합의 조직률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변동을 보였다기보다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점진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급격한 하락이나 변동을 보였다기보다는 노동조합 조직률, 임금수준이나 노동시간 그리고 비정규직의 문제 등에 있어서 세계 최악의 조건을 보였고 이 또한 노동부나 통계청의 통계 자료라는 점을 고려할 시 그 체감의 정도가 매우 큼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노동조합의 경제적 임무 이외의 정치적 임무 관련해서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에서 주요한 쟁점과 관련해서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주체들이 어떠한 판단을 하였는지를 분석해 보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조직적 결실을 본 전노협의 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쟁점, 그 이후 전노대와 민주노총으로 이어져 가는 조직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논쟁, 코포라티즘으로 불리는 사회적 합의주의 관련한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태도와 대응 방안, 국민승리 21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분열된 진보정당으로 가는 노동자 정치 세력화 주제 관련한 논쟁과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조직화 관련한 논쟁 등을 통해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태도와 판단에 대해 분석을 통해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현 상태를 진단했다.

결론적으로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상태는 “위기적 상태”임은 분명한데 이 “위기적 상태”가 급격한 변화나 변동에 의한 “위기적 상태”가 아니라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경제적 임무와 정치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즉 노동자 대중의 이해와 요구가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정세를 반전시켜내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점진적 위기 상태”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노동조합 조직률과 임금수준 그리고 노동시간 및 각종 노동조건이 점진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이러한 한국의 노동자 대중의 상태는 전 세계 노동자 대중과 비교해 볼 때 최악의 조건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전노협 그리고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이를 반전시킬만한 그 어떠한 투쟁을 조직하지 못 하였다. 아니,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표6)에서 확인이 되듯이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현장의 파업 투쟁을 하나로 모아내기는커녕 고립,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세계경제위기라는 자본주의의 체제적 위기라는 조건에서도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전노협 건설과정과 민주노총 건설과정, 노사정위원회 논란, 진보정당 건설 논쟁 및 비정규직 조직화 논쟁에서 국가주의, 기업주의에 매몰되는 태도를 보여 왔으며 이러한 주요 쟁점에 대한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태도와 방침이 결국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임무를 방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 노동조합 운동은 그 어느 계기적 사유로 인해 급격한 변화나 변동으로 인한 “위기적 상태”가 아니라 노동조합 운동의 2가지 임무 즉 경제적 임무와 정치적 임무를 방기하거나 혹은 책임 있는 집행의 부재로 나타난 “점진적 위기”이다. 이러한 “점진적 위기”는 계기적 원인의 해소로 인해 결코 해결된 위기 상태가 아니다. 민주노총의 조직 개편이나 혹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노총 임원 선거 관련 직선제 도입, 혹은 계기적 잘못을 행한 단위 사업장이나 총연맹 임원 지도부의 교체 등은 물론 일정한 해소의 토대가 마련될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결코 이로 인해 현재 나타나고 있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점진적 위기” 상태를 반전 시킬 수 있는 방안은 결코 아니다.

결국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의 현 상태를 반전 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시금 새롭게 노동조합운동의 주체들이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운동을 새롭게 건설해 가는 길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라 칭하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위기에서 노동조합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97년 IMF 터지고 금 모으기 운동을 전개했던 자본가계급의 국가 살리기 운동 시절 조합원 가정에 있던 금반지까지 가져오기 운동과 같은 것이 아니라, 1900년 초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의 전쟁터에서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국가의 깃발이 아닌 노동자계급의 깃발을 휘날려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선배 노동자들의 계급적 투쟁의 원칙을 이제 다시금 새롭게 세우는 것이다. 이 길만이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의 “점진적 위기 상태”를 극복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에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난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노동해방의 시각으로 다시금 역사를 평가하고 현재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주요한 투쟁의 지점에서 선진 노동자들의 적극적이고도 활발한 참여를 통해 노동자 대중과 함께 하는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위기 극복 방안을 세우는 것이 바로 현재의 “점진적 위기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1) 필자는 논의의 편의성을 위하여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시작을 1987년 7-9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로 시작되었다고 규정하고 본 글을 작성한다.

 

2) 이경숙 옮김, ≪마르크스, 엥겔스의 노동조합 이론≫, 새길, 1988, p. 78. 재인용.

 

3) 레닌 지음, 김탁 옮김,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저작선 1≫, 전진, p. 251.

 

4) 이경숙 옮김, 앞의 책, 같은 곳에서 재인용.

 

5) 같은 곳에서 재인용.

 

6) 엥겔스, “1881년 5월 7일자 사설”, ≪노동의 기치 1호≫, MEW, Bd. 19, SS. 247-50.

 

7) 이경숙 옮김, 앞의 책, p. 98. 재인용.

 

8) 레닌, 앞의 글, p. 193. 발췌.

 

9) 맑스, “노동조합—그 과거, 현재, 미래”.

 

 

10)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511

 

11) 기사연리포트, ≪7-8월 노동자 대투쟁≫, 민중사, 1987. 9., p. 49.

 

12) 협약임금인상률.

 

13)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909 참고로 필자가 재편집함.

 

14) 비경제활동인구란? 주부, 의무군인, 취업 포기자, 취업준비생 등이 포함되는데, 노동능력이나 노동의사가 없는 인구를 뜻함. 취업 포기자는 노동의사가 없는 경우이고, 취업준비생은 노동능력이 없는 경우로 포함됨. 기혼 여성이라고 다 비경제활동인구가 되는 건 아니다. 취업노동의사 없이 가사노동에만 종사할 경우, 남녀 불문하고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의 비경제활동인구가 매우 많다는 말은 실업률에서 실업자로 분류될 사람이 비경제활동인구로 빠져 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15)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063

 

16)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인 김유선 연구원의 2013년 8월 글을 보라. 이 글에서 김 연구원은 한국의 비정규직의 비율을 통계청의 그것과는 달리 07년 55.8%, 2013년 46.1%의 비율로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상을 폭로하기도 하였다.

 

17)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Search.do?idx_cd=2477&clas_div=&idx_sys_cd=724&idx_clas_cd=1

 

18) 레닌, “파업에 관하여”, 앞의 책, p. 113.

 

19) 같은 글, p. 114.

 

20)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512

 

21) 물론 필자가 선정한 지점 이외에도 많은 논의의 지점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본 글의 물리적 조건이나 작성의 편의성 등을 위해 주요한 지점 몇 가지만 선정을 하였으며 이외의 주요한 논쟁의 지점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를 통해 정리할 것을 약속드린다.

 

22) 본 글에서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전노협 건설의 과정에서 산별노조 건설의 주체로 대공장 중심이냐? 전노협 중심이냐?가 쟁점이 되었다. 이는 전노협을 전국적 조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협소하게 중소영세 사업장의 연대 수준으로 바라보는 경향과 산별노조 건설이 단지 양의 확대만을 통한 조직건설론이라는 문제점을 보여 주었다.

 

23) 전노대와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 노동단체의 배제는 결국 기존의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라 불리는 선진 활동가들이 하나로 모여 한국 노동조합운동을 책임졌다면 이후에는 노동단체라 불리는 선진 활동가들은 제3자로 배제된 상태에서 노동조합 조합원들로만 구성되어 한국 노동조합 운동을 책임지게 되면서 이후 노동조합 운동의 형식적 관료화의 한 원인으로 존재하게 된다.

 

24) 전노협 1안,

– 건설필요성: 대중적 요구 확대 3조5항 등 노동법 개정 가능성, 공동사업추진체의 조직적 한계극복 필요, 민주노조 운동 조직 강화와 시업영역 확대를 위한 조직발전 필요

– 건설 원칙: 전노대와 민주노조 역량의 총결집, 기존 조직의 발전적 해소재편, 자주적ㆍ민주적 노동운동의 역사 계승, 민주노조 운동의 실천 속에서 요구와 과제를 집약시켜나갈 것, 이념과 노선의 구체화, 기업별 노조체제 타파, 산별노조에 기초한 전국적 중앙조직 건설을 지향

– 조직체계: 산업(업종)별 연맹 주축, 지역별ㆍ그룹별 조직을 보조 축으로

– 시기: 임투를 통해 95년 상반기 건설

 

전노협 2안,

– 건설 필요성: 시급한 당면과제인 대중적 요구 즉, 복수노조금지조항 등 노동법 개정 가능성이 지연되면 중간노조 세력이 대두하여 민주노조 운동의 분열 가능성의 증대, 정책적 과제로써 자ㆍ민ㆍ통 등 사회 정치적 과제가 증가, 95년 이후 정치일정에 대한 통일적 방침과 대응 필요성 증대

– 건설원칙: 전노대로 결집한 민주노조 진영을 모태로 하되, 자주적ㆍ민주적 노조를 지향하는 모든 노동조합의 주체적 참여를 최대한 보장할 것, 기업별 체제를 타파하고 산별노조 이행과 전체 노조운동 재편을 통한 통일적 운동 지향

– 조직체계: 업종(산업)별 연맹 주축, 지역협의회 그룹협의회를 횡축으로 건설

– 시기: 임투 전. 95년 2월 건설

 

업종회의 안,

– 건설필요성: 노ㆍ경총 합의, 노총 탈퇴 운동 등 건설을 위한 대중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 상급단체 복수노조 허용 등 노동법 개정 가능성이 높아짐, 또한 95년 이후 정치일정 공동대응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는 시점에서 민주노총 건설이 늦으면 늦을수록 제 3세력 결집 가능성이 나타남

– 건설원칙: 전노대와 중간노조 노총소속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러기에 민주노총의 이념은 참여하려는 노조들이 대부분 합의 가능한 최소강령 수준이어야 함

– 조직체계: 기본구성은 업종ㆍ산업별 조직이 되어야 하며, 지역별ㆍ그룹별 조직은 보조 축이 되어야

– 시기: 늦어도 4월 건설

 

25) 이는 05년 노사정대표자 회의 민주노총 참여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있다.

 

26) 성공회대, ≪한국노동정치/진보정당운동 일지 해설집(1985-2004)≫에서 재인용.

 

27)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위기적 상태 진단을 목적으로 하는 본 글에서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전후로 한 내용을 중심적으로 살펴보지는 않았다. 이 부분의 과제는 별도의 장에서 정리하기로 약속드린다.

 

28) 맑스, “노동조합—그 과거, 현재,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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