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시타 이사오(山下勇男) | 사회주의 이론연구
번역 : 임덕영(편집위원)
[역자 주]
이 글은 야마시타 이사오의 “中国 ‘社会主義市場経済’の転換点―中国共産党十八期三中全会の総路線”(≪社會評論≫ 제178호, スペース伽耶)을 번역한 것이다.
현대 중국에 대한 접근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일중(日中) 간, 혹은 그보다 폭넓은 아시아 제 국민 간 관계에 가로놓인 역사인식의 문제이며,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노동자계급의 해방사업의 관점에서 분석, 검토하고, 그 교훈을 비판적으로 섭취하기 위한 이론적 탐구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전자의 해결뿐 아니라 후자의 과제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마주해가야 하는, 이중의 책임을 지고 있다.
필자는 본지(≪社會評論≫: 역자) 제167호(2011년 가을)에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파악하는 관점: ‘개혁ㆍ개방’ 30여년을 거친 중국 ‘사회주의’의 변모”1)를 투고한 바 있다. 이번 글은 말하자면 그 후속편에 해당한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관심은, 중국은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하는 이원론에 어찌되었던 경사되기 마련이다. 필자는 중국 ‘사회주의’에 대해 점점 더 회의적ㆍ비판적이 되어가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반혁명이 승리하였다고 단정하고 만족하는 입장에는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해 왔다. 성에 차지 않다고 느껴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급하게 답을 구하기보다는, 일단은 사태의 추이를 신중하게 충분히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고도성장의 종언과 구조문제의 부상
먼저 중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가 ‘개혁ㆍ개방’ 정책 30여 년의 실천을 거친 지금, 어떠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어떠한 국면에 위치해 있는가를 개관해두자.
중국은 ‘개혁ㆍ개방’ 정책을 시작한 이래, 무엇보다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채용한 이래, 경제건설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왔다. 2008년 리먼쇼크 이전은 두 자리 수의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달성하였으며, 2010년에는 일본을 추월하여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지위를 일궈냈다. 2030년에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 예측되기도 하였다.
서기 2000년까지 ‘소강사회(小康社会)’(조금은 여유가 있는 사회, 일단은 생활형편이 중요하다는 뜻)을 실현할 목표를 세웠을 때, 중국의 당과 정부가 근거한 것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기회’가 객관적으로 주어졌다는 세계정세 인식이었다. 이 인식이 갖는 위험성은 2008년 리먼쇼크 이후 현실적 문제로 중국의 앞길을 가로막아 섰다. ‘기회’와 함께 ‘위험성’의 존재 또한 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림1]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추이이다[≪아사히(朝日)≫ 2013. 10. 19.]. 두 자리 수의 안정적인 초고도 성장은 2007년으로 끝나고, 이와 더불어 중국의 경제ㆍ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상의 문제들이 일거에 분출했다. 중국경제는 2009년에 V자형의 급속한 회복을 보여준다. 금융파탄이 실질경제에 영향을 주고, 중국의 경제성장을 지탱해온 수출의 대폭 감소를 커버하기 위해 자극제로서 투여된 4조 위안(약50조 엔) 규모의 정부지출(공공사업)이 효과를 발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중국경제의 왜곡을 한층 더 심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림2]는 명목 GDP에 대한 총고정자본 형성(건설자본투자와 민간설비투자, 주택투자의 합계)과 수출 기여도를 나타낸 것이다. 총고정자본형성 비율은 45%를 넘어섰다. 수출은 2006년을 정점으로 하강곡선을 그리며 30%대를 밑돈다. 두 비율은 GDP의 75%를 점한다. 그만큼 가계지출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총고정자본 형성에 과도하게 의존한 뒤틀린 경제구조가 형성되었다. 중복투자ㆍ중복건설의 폐해가 예전부터 지적되고는 있으나, 중국경제는 이로 인해 만성적인 과잉생산ㆍ과잉재고를 동반한 악순환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림2] 축적되는 과잉 재고
(중국 명목GDP에서 차지하는 총고정자본형성과 수출 비율)
4조 위안(元)이나 되는 경기자극책이 오래 지속될 리 없다. 이후 제성장률은 하강곡선을 그리고 7% 중반대의 추이를 보이게 되었다. 이 숫자 자체는 2011년 4월부터 시작된 제12기 5개년 계획이 내건 조심스런 목표치, 7.5%와 일치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선진국’이 모두 0-2%의 성장률에 머물러 있는 현재, 그러한 성장세는 여전히 경이적인 고도성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근 2014년 1-3월기 7.4%, 4-6월기 7.5%는 7%대의 성장을 사수[리커창(李克強) 총리]하기 위하여, 2009-10년과 같은 대규모 경제대책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철도망의 정비라는 한정적인 재정적 부양책으로 달성된, 상당히 무리수를 동반한 수치인 것 또한 사실이다.
과도한 수출 의존, 투자 편중의 경제구조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인식, 그리고 그러한 경제구조를 변혁할 필요성은, 거슬러 올라가면, 2010년 10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7기 제5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이하: 17기 5중전회)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제기되었다(본지 제167호 졸고2)). 여기에서는 발전전략(경제성장 패턴)의 전환, 내ㆍ외수 전략 조정(내수의 진흥), (자원ㆍ환경문제의 첨예화에 대응하는) 에너지 효율의 향상으로 정식화되었다. 저임금을 무기로 한 노동집약적 가공무역형 경제구조로부터의 탈각, 산업구조의 전환 및 고도화는 중국의 경제발전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인식되었다. 그 전환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가오는 ‘중소득국(中所得国)의 함정’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중국에서 최종 조립되어 미국으로 수출되는 아이폰 3G의 총비용 중, 중국의 몫은 고작 3.6%에 지나지 않는다(≪エコノミスト≫ 2011. 12. 6.). 일본 33.9%, 독일 16.8%, 한국 12.8%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분산 생산된 부품이 중국에 집약되어 최종적으로 조립되어 미국으로 수출된다. 중국에서 임금이 상승하면, 다국적 기업은 구태여 중국에서 조립할 필요가 없게 되며, 다른 저임금 국가로 이전하면 된다. 중국은 ‘선진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후발도상국과의 경쟁에도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자본축적을 위해서는 노동력의 확보가 필수불가결하다. 중국의 경우 자본축적의 대전제인 노동력, 맑스가 말하는 “인간착취재료” 즉 “상대적 과잉인구”는 돈벌이를 위해 일시적으로 농촌을 떠나온 사람들(농민공)과, 마찬가지로 농촌을 떠나와 장래에는 도시에 정주(定住)할 “더 이상 돌아가야 할 고향이 없는” 청년들의 공급에 의존했다. 이러한 노동력 공급원에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다양하게 예측되어 왔다. 중국에서는 한 자녀 정책의 영향도 있어서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16세부터 64세까지의 이른바 생산연령 인구는 2015년에 정점에 달한다. 후술할 당 17기 3중전회에서 한 자녀 정책의 부분적 완화(부부 각각이 한 자녀로 태어난 경우, 낳을 수 있는 아동 수를 2명까지 인정한다)가 제출된 것은 이러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수년 동안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중소득국(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해왔다. 교도통신사 ≪세계연감 2014≫에 따르면, 2012년 중국의 1인당 GDP는 5,680달러(이 수치는 출전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이다. “중진국의 함정”이란 “발전도상국이 빈곤상태에서 벗어나 중진소득 수준까지 달한 상태에서 경제가 정체되어 그 후에 선진국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지칭한다”(아시아개발은행의 정의). 일종의 경험칙(經驗則)이 아닐까? 최근에는 중국의 문헌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과 정부도 이를 의식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GDP 규모에서 일본을 앞지르고, 이윽고 미국도 추월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더라도 1인당 GDP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여부는 당 17기 5중전회가 내건 경제구조 전환의 성패에 걸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츠비시 UFJ 모건 스탠리 증권 수석 경제학자로 일하다, 일본대학 교수로 전직한 미즈노 카즈오(水野和夫)의 책 ≪자본주의의 종언과 역사의 위기≫(集英社新書, 2014. 3.)가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역사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미즈노의 인식은 그 방법론과 상관없이 흥미롭지만, 결론의 바보스러움은 제목만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혁명주체의 형성과 그 투쟁이 없는 한 절대 “종언”되지 않는다. 미즈노가 몽상하고 있는 자본주의 “종언” 후의 “새로운 경제사회”는, 그의 주관과는 관계없이, 적나라한 착취와 수탈이 위세를 떨치는 한층 더 야만적인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책 속에서 미즈노가, 중국의 1인당 GDP가 일본과 비슷한 현재의 4배에 도달하는 경우에 발생할 자원 공급 면에서의 애로를 지적한 점, 그리고 제국주의가 신흥국 경제를 세계시장에 편입시킨 결과 ‘선진국’이 일찍이 향유할 수 있었던 저렴한 1차산품의, 1990년대 말 이후의 가격 폭등을 실마리로 한 시산(試算)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시장과 자원의 분할을 둘러싼 자본들 간의 격렬한 투쟁이 확산되고 있는 현재, 중국의, 그리고 신흥국의, 일본 수준의 1인당 GDP 달성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존속 자체를 뒤흔들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난맥상을 초래한 자유방임 시장경제화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중국공산당 중앙 문건 1992년 제2호)의 발표(1992년 2월), 그것을 이어받아 같은 해 10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4회 전국대표대회(이하 14전대회)가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채택한 출발점에서 중국공산당은 “시장경제”를 수미일관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때가 있다[국무원발전연구센터ㆍ사회과학원 공동편집, ≪중국경제≫ (원제(原題)≪사회주의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종합법령, 1994. 6.]. “매크로 컨트롤(거시적 통제: 편집자)”과 같은 근대경제학(부르주아 경제학) 용어가 당과 정부의 문헌에 자주 등장하게 된 것도 그 즈음부터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중국경제의 현실은, 시장경제(자본주의경제)를 수미일관 순육(馴育)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으며, 도대체 자본주의를 순육할 수 있다는 인식을 근본부터 반문해야 할 것이다.
2014년은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에 해당한다. 중국공산당은 이를 기념하여 덩샤오핑의 공적을 찬양하는 캠페인을 개시했다.
8월 20일에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최고간부 전원이 참석한 좌담회가 열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연설을 통하여 “덩샤오핑 동지가 그린 사회주의 현대화의 청사진을 현실화하자”고 호소하였다. 당 중앙문헌연구실이 편집한 ≪덩샤오핑 문집≫(1947-74년)과 전기(傳記)(1904-74년)가 발간되었다. 중앙텔레비전은 연속드라마 “역사의 전환점 속의 덩샤오핑”(전체 48회)을 방영하기 시작했다(≪신문적기(新聞赤旗)≫ 2015. 8. 24.).
덩샤오핑의 평가는 나중에 다루겠지만, 일찍이 덩샤오핑에게 부여된 “개혁ㆍ개방과 현대화 건설의 총설계사(總設計師)”(논설위원 논문 “민족진흥의 정신적 지주”, ≪인민일보≫, 1994. 8. 22.)라는 존칭은 “거의 농담”[다바타 미츠나가(田畑光永) ≪덩샤오핑의 유산―이심(離心)ㆍ유동(流動)의 중국―≫, 岩波新書, 1995년]에 지나지 않아서, 자유방임(làissez-fáire)를 조장하고 모든 경제행위를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였을 뿐이었다. 공인된 이기적 이익 추구가 초래한 중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위기적 상황이 이를 무엇보다도 웅변하고 있다.
농민으로부터 토지― 국유와 집단소유에 의한 토지사용권 ―를 몰수하여 부동산업자에게 매각하여 조달한 지방정부의 자금이 2014년 1-6월에만도 2조 1060억 위안(약 35조 엔)에 달한다. “2013년도 지방재정 프라이머리 밸런스(기초적 재정수지=행정서비스에 사용하는 정책경비를 그해 그해의 세수(稅收)로 조달하고 있는가 어떤가를 보여주는 지표)”[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全人代)) 제2차 회의, 2014. 3.]에 따르면, 지방정부의 세입총액은 11조 7157억 위안, 그 가운데 지방 차원의 수입이 6조 8970억 위안(57%)이기 때문에, 뇌물과 부정축재의 온상으로까지 되어 있는, 부동산업자에의 토지(사용권) 매각수입에 의존하는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지방정부의 세입총액에서 점하는 중앙정부로부터의 이전지출(移轉支出; 일본의 지방교부세 교부금에 해당)은 4조8037억 위안, 결국, 지방정부에 재정자주권이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 여기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중앙정부는 최근 들어 겨우 기채권한(起債權限)의 일부를 지방정부에 양도하는 실험을 시작하였는데, 지방정부의 간부는 토지매각 이익을 자신의 업적을 중앙에 내보이기 위해 사용해왔다. 토지수용(土地收用)에 대한 농민의 반항은 해를 거듭할수록 격렬해지고, 간부를 규탄하여 쫓아내는 등, 2012년에는 그러한 “집단적 사건”이 20만 건(중국정부는 2006년 이후 발표를 중지. 그 이후는 중국인 연구자들의 추계)에나 달했다.
권력을 믿고 변변한 보상도 하지 않고 농민을 토지에서 폭력적으로 추방하는 소행은 자본주의 발생기(發生期)의 “본원적 축적”(맑스 ≪자본론≫ 제1권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24장 “이른바 본원적 축적”)을 방불케 한다. 제1차 국공합작(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의 항일민족통일전선, 1924년-27년)이 장개석의 배신으로 무너진 후, 농촌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농민 주체의 토지투쟁으로서 전개된 중국혁명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분출하는 모순들, 격동의 전조
중국정부의 융자규제가 걸려 있는 은행을 우회하는 금융거래, 이른바 “쉐도우뱅킹(shadow-banking; 그림자 금융)”의 출현과, 그 규모의 단기간 내의 급성장은 금융행정의 결함을 드러내었다. 대출채권을 소액화한, 만기가 2주에서 반년 정도이며 운용이율이 예금이자를 웃도는 5% 전후인 “이재상품(理財商品, 금융상품)”이 팔리기 시작하였으며, 여러 가지 시산(試算)이 있지만, 신탁회사가 조성한 것을 포함하면 2012년까지 29조 위안(약 470조 엔)이라고도 하고 36조 위안이라고도 하는 규모까지 팽창했다. 이렇게 하여 모인 자금은 “지방융자평대(地方融資平台)”라고 불리는, 지방정부가 출자한 투자회사를 경유하여 지방정부의 차입금으로 모습을 바꿔 은행융자를 받기 힘든 중소기업이나 개인에 대부되었고 부동산시장으로도 흘러들어갔다. 특히 신탁회사가 조성한 “신탁”의 일부는 다단계 판매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왕지(王吉) “중국의 금융의 현황 ―‘그림자 은행’ ‘이재상품’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2013. 10.). 일반적으로 타산성이 의문시되는 융자처에서의 불량채권화가 신용수축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할 정도의 규모로까지 (이재상품이: 편집자) 팽창해버렸다. 2014년 1월부터 2월에 걸쳐 일부 지방에서 이재상품의 이자지불 정지가 발생하고, 3월에는 장쑤성(江蘇省) 옌청시(塩城市)의 사양농상은행(射陽農商銀行)에서 예금인출 소동이 벌어졌다.
인터넷 상에서 대출자와 차용자를 중개하는 “인터넷 금융”도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인터넷 통신판매 대기업 ‘알리바바’를 운영하는 ‘워어바오(余額宝)’는 2013년 6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단 7개월 만에 총액 2500억 위안, 고객 5000만 명을 모았다. 전체적으로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은감회)의 감독은 면밀하지 못하고 현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여, 금융행정이 뒤를 쫓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중앙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은행의 설립과 예금ㆍ대출 금리의 자유화를 통해 도태(淘汰)를 촉진하는 정책으로 대처하려 하고 있다(3중전회 결정, 후술).
일본의 경제 저널리즘은 “그림자 금융”의 급속한 확대를 들어 “중국판 서브프라임 위기”(≪エコノミスト≫ 2013. 7. 16.)라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재상품은 서브프라임론(sub-prime loan)의 증권화 상품과 달리 국내에서만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고, 또 심계서(審計署, 일본의 회계검사원에 해당)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6월 현재 정부 채무는 중앙정부 12.5조 위안, 지방정부 17.9조 위안으로 합계 30.7조 위안(약 350조엔, GDP대비 40%)이며, “선진국”의 재정적자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빈부 격차가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 간부의 부패가 바닥없는 늪과 같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우선 부자가 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옳다는, 이른바 “선부론(先富論)”을 제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유방임의 시장주의를 실천하면, 빈부 격차는 저절로 확대된다. 그것은 1992년에 “개혁ㆍ개방” 정책을 가속화한 이후 22년이 지나면서 실천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국가통계국이 1월 20일에 발표한 2013년 지니 계수(0-1사이에서 변동하며, 1에 가까울수록 격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0.473으로, 사회의 불안정화를 나타내는 경계치 0.4를 10년 연속 넘어섰다. 게다가 이 수치 자체를 의문시하는 다른 연구가 있다. 예를 들어, 베이징대학 중국사회과학조사센터는 7월에 독자적인 조사 및 분석에 기초한 “중국민생발전보고 2014”를 발표했고, 이 발표를 중국 정부의 뉴스사이트인 “중국망(中国網)”이 전했다. 보고는, 2013년의 지니 계수가 0.73에 달했다는 것, “최상위 1%의 부유한 가정이 전국의 1/3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 “최하층 25%의 가정이 보유하는 재산은 전체의 1%에 불과하다”라고 전하면서 사회적 부의 극단적인 편재(偏在)에 경종을 울렸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실시, 농민의 사회제도적 불이익의 해소를 위한 도시와 농촌의 2중호적의 단계적 축소, 3농(농민ㆍ농촌ㆍ농업)문제의 중시에서 볼 수 있는 농민의 소득향상을 위한 정책적 노력 등, 개량주의적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지고는 있다. 노동력 부족을 배경으로 노임도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세수(稅收)에서 점하는 소득세의 비율이 낮고, 누진과세에 의한 소득재분배 기능은 제한되어 있다. 당내외에서 저항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인지, 상속세조차도 아직까지 실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세법상 결함은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부패의 박멸과 정당(整党)운동의 전개
당을 좀먹는 부정ㆍ부패 문제는 이미 한시의 유예도 허용될 수 없을 정도이며, 정권기반 그 자체를 흔들 정도로 심각해져 버렸다. 시진핑 지도부가 위기감을 더하면서 불퇴전의 결의로 문제에 대처하고 있음은, 현직 정치국원으로 충칭시(重慶市) 당서기이자 18전대회(2012년 11월)에서 정치국 상무회의 입성이 확실시되고 있던 보시라이(薄煕来)를 당적 박탈하고 형사고발한 데에 이어, 적발(摘發)이 전(前)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국유기업에 강한 영향력을 지닌 저우융캉(周永康)과 그 주변인들에 미치고 있다는 것에서도 충분히 엿보아 알 수 있다.
2013년에는 차관ㆍ성장(省長)급 간부 31명이 적발되었다. 그것은 예년의 5배나 되었다. 18전대회 이후 2014년 7월까지 34명의 중앙 및 지방 간부가 조사를 받았으며, 40명의 국유기업 간부가 적발되었다. ≪검찰일보≫가 보도한 과거 적발 건수가 2002년 202건, 2007년 360건이었으므로, 이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일본에 보도되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014년 3월, 제12기 전인대회 제2차 회의와 전국정치협상회의(공산당과 민주당파들로 구성된 통일전선조직. 기능은 정책제안에 한정되어 있다) 폐막행사인 확대공작회의에서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이 말했다는 당의 현황인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중국공산) 당원은 8,340만 명이지만, 불합격당원이 전체의 7할, 5,815만 명이다. 특히 악질적인 415만 명은 당원자격을 박탈한다”고, 숫자를 들며 “정당(整党)”(당의 대열의 정리ㆍ정돈)의 철저화를 호소하였다. 필자는 이를 월간지 ≪선택(選擇)≫을 통해 알았다. 이 보도만이라면 보도의 신빙성을 의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 아이치(愛知)대학 국제중국학연구센터의 카가미 미츠유키(加々美光行)가 “시진핑 체제의 행방”이라는 이름의 강연을 한 기록(≪정황(情況)≫ 제4기, 2013년 7ㆍ8월호)를 접하여 중국공산당에 정보 루트를 가진 카가미가 완전히 동일한 발언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읽고, 보도의 신빙성을 확신했다. 문제는, 특히 악질적인 부적격당원 415만 명의 제거를, 당 내의 저항을 극복하며, 어디까지 철저하게 할 수 있는가에 있다. 만약 이에 실패한다면, 공산당의 통치의 정당성(정통성)을 추궁당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카가미는 강연 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당원수는 기업경영자(자본가)의 입당에 길을 열어준 “세 개의 대표”(중국공산당은 중국의 선진적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요청을 대표하고, 선진적 문화의 전진방향을 대표하며, 인민의 근본적 이익을 대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를 제창한 장쩌민(江沢民)이 1992년 총서기에 취임한 이후 현저하게 증가하여, 절정(絶頂)인 1997년도에는 연간 1000만 명이나 증가하였다. 당원의 질은 어쩔 수 없이 저하되었을 것이다. 청년 입당자의 비율이 높다는 것에 나타나 있듯이, 그들 대부분은 취직에 유리하기 때문 등, 실리적인 타산으로 입당했다. 카가미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당원인지 여부를 물어본 바, 5명 중 2명이 당원이었다. 그들은, “맑스의 맑 자도 모르고, ‘공산당 선언’과 같은 짧은 글도 읽은 적이 없다”고 카가미는 말하고 있다. 당원수의 도를 넘은 팽창은 당을 입신출세의 도구로 바꾸고, 당내에 부패를 만연시키는 온상이 되었다. 자유방임의 시장경제화하에서 부패는, 일어날 것이 일어난, 의문의 여지없이 구조적인 것이었다.
“개혁의 전면적 심화”라는 총노선
2013년 11월 개최된 당 18기 3중전회는 22년간에 걸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실천을 통해서 표면화된, 이후의 전진을 가로막는 요인들, 그 타개를 위한 기본방침을 심의ㆍ결정하였다. 3중전회의 결정을 관통하는 기본노선은 시장화와 국제화, 즉 신자유주의의 철저화였다.
2012년 2월에 세계은행과 국무원 발전연구센터의 공동 보고서 “2030년의 중국”이 공표되었다. 그것은 수많은 처방전을 제시한 가운데, 중국의 금후의 경제발전에 가로놓인 애로로서 국가독점(국유기업)의 폐해를 들며, “개혁”을 촉구했다. 3중전회에서 “공유제”는 어떻게 다루어졌는가? 결과는, 공유제의 견지, 그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는 한편, 국가독점 분야에 대한 비국가자본의 주식 보유와 같은 형태의 참여가 제창되고, “혼합소유경제”라는 방향성이 제기되었다.
중국공산당의 공식 문서는 3중전회만이 아니라 원래 추상적이며,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국유자본운영회사”의 설립이나 (정부가 주식의 과반을 지배하는) 국유기업의 “국유자본투자회사”로의 개조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필자는 이것을 국유기업의 지주회사(持株會社)로의 이행이라고 이해했다. 이것이 올바른 이해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 목적은 무엇인지, 솔직히 말해 모르겠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형태로서 우끄라이나 상공에서 자사의 비행기가 격추된 말레이시아항공의 경우가 있다. 이 회사는 주식의 69%를 국영 투자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사건 뒤 이 회사는 명실상부한 국유하에서 경영의 개선을 꾀할 방침이라고 보도되었다.
국유기업이 이권의 소굴로 변해버렸으며, 게다가 민간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국진민퇴(国進民退)]이 있으며, 필시 이를 강하게 인식했기 때문일 터인, 국유자본에 의한 사회보장기금의 충실화나, 공공재정에 대한 국유기업의 상납비율을 2020년까지 30% 증강하는 방침이 제시되었다.
3중전회의 결정에서 여기가 사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정부기능의 전환”이다. 2013년 3월 제12기 전인대 제1차 회의에서 수상으로 취임한 리커창(李克強)은, 회의종료 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정부기능의 전환”을 다음과 같이 예고했다. “우리는 장사(壮士)가 살기 위하여 상한 팔을 잘라버리는, <부분을 희생시켜 대국(大局)을 지킨다>고 하는 각오가 있으며,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에 옮기며. … 오늘의 개혁 계획의 핵심은 정부기능의 전환으로, 물론 행정간소화ㆍ권한위임이다. … 기능전환은 정부와 시장, 사회의 관계를 정리하고 정비하는 것이다. 시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시장에 한층 더 맡기고,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에 맡기며, 정부가 관리해야 할 것은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화사≫=≪중국통신≫, 2013. 3. 17.). 리커창의 예고는 3중전회의 결정에 완전히 계승되었다. 정부기능의 전환, 철저한 시장화의 일환으로서, 가격결정에서의 정부의 역할을 공공사업ㆍ공익서비스 등 “자연독점” 분야에 한정하는 방침이 새롭게 내세워졌다.
또 하나의 축은 “대내ㆍ대외 개방의 상호촉진”이다. “네거티프 리스트(negative list) 방식3)에 의한, 다양한 시장주체의 진입규제 완화”가 여기에 추가된다. “금융업의 대내ㆍ대외 개방의 확대”, “민간자본에 의한 금융기관의 설립”,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금의 조달방법을 은행융자(간접금융)에서 주식이나 사채 등의 발행으로 바꾸는 “직접금융의 비율 제고”, “금융 이노베이션의 장려”, 세계적 결제통화 랭킹 7위인 “인민위안(人民元)의 국제화” 등이 열거되어 있다. 주식이나 채권 등의 투기적 거래에 의한 이득 획득이 주류가 된, 썩을 대로 썩어빠진 자본주의의 세계표준에 중국경제를 적응시키려는 방침을 볼 수 있다. “금융 이노베이션의 장려”가 금융공학이라는 사기적(詐欺的) 수법을 구사한 채권의 증권화, 금융상품의 조성ㆍ판매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바야흐로 상식에 속한다. 왜 이러한 모방을 굳이 하는 것인가?
[그림3ㆍ표1] 상하이자유무역시험구 개요
상하이 자유무역구의 주요 개방책
업계명 |
주요 개방책 |
은행 |
민영자본과 외자금융기관의 합자은행 설립 |
|
중국 은행에 의한 오프쇼어 업무 |
해운 |
합작회사의 외자출자비율 규제완화 |
인터넷 |
외자계 기업의 인터넷 서비스 부분 개방 |
게임 |
외자기업의 국내에서의 게임기 판매 |
신용조사 |
외자계 기업의 신용조사회사 설립 |
여행 |
합작회사의 설립과 대만 이외의 해외여행 업무 |
인재소개 |
합작회사의 외자출자 비율의 규제완화 |
오락 |
외자 단독출자의 오락시설 개설 |
교육 |
합작경영에 의한 교육, 기술교육기관 |
의료 |
외자 단독출자의 의료기관 설립 |
중국정부는 3중전회의 노선을 선취하는 형태로 2013년 10월 29일, “개혁의 전면적 심화”를 상징하는 “상하이자유무역시험구(區)”를 개설했다(그림3, 표1). (또한: 역자) 2013년 10월 현재 상하이 이외에 6개 시(市), 1개 성(省)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상하이의 경우, 업종은 금융ㆍ운수를 제외하면, 광의의 서비스업이 그 대상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연해부(沿海部)에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그 효과를 확인한 뒤 주변으로, 더 나아가 내륙부로 확대해 간 동일한 수법이 상정(想定)되어 있음을 본다.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일체화됨으로써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자본주의 비판의 치명적 결여
필자는 이번 글의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2006년 세계무역기구(WTO) 가맹으로 중국경제가 세계경제에 편입되었다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편입되는 길을 선택하게 된 필연적이라고도 할 만한 사항들을 목격하였다. 거기에서는 자본주의의 부패한 현 국면의 또 하나의 특질을 중국의 자본수출(走出去) 동향에서 여실히 볼 수 있었다.
[표2]는 중국의 대외집접투자 잔고(2005-2011년)의 국가ㆍ지역별 톱10이다. 1국 2제도(一國二制度)를 시행하는, 1위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기 때문에 대내직접투자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홍콩을 제외하면 1위는 버진제도(Virgin Islands),4) 2위는 케이맨제도(Cayman Islands)5)가 된다. 말하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는 택스헤이븐(tax haven; 조세 회피처)들이다. 문제는, 일단 조세 회피처에 투자된 자본의, 진짜 행선지이다.
[표2] 중국의 대외직접투자누계잔고 톱10 (2005-2011년 스톡)
(단위: 백만 달러, %)
자료: ≪2011년도 중국대외직접투자통계공보≫
[표3]은 미국에 진출한 (설립 준비 중도 포함) 중국계 IT기업 12개 회사의 상장처와 등기처를 보여주고 있다(≪エコノミスト≫ 2014. 4. 29.). 상장을 한 9개 회사 모두가 케이맨제도에 등기되어 있다. 세금 회피처에 등기하여 과세를 면제받으며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 개별자본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자본가적 기업이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어서, 예컨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을, 아니 세계를 대표하는 IT기업이 이러한 구조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중국 기업만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라도 해야 할 것인가?
[표3] 미국에 상장된 중국 IT 주요기업 (시가총액순)
(주) 4월10일 시점, 푸킨 (상하이) 업무자문유한공사 및 어세스프라이트 감수처)
(출처) 불름버그, 각회사 발표 자료로부터 편집부 작성
이런 사항을 규명해가다 보면, 중국공산당이 현대자본주의의 본질과 그 역사적 지위를 이론적으로 어떻게 이해ㆍ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심에 부딪히게 된다. “사회주의 초급단계” 규정(1987년, 13전대회, 자오쯔양(趙紫陽) 보고)은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경제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우산과 같은 단계”(윌리엄 힌튼 ≪대역전: 덩샤오핑 농업정책의 실패≫, 亜紀書房, 1991)로 타락해버렸다. 이는, 잘못된 자본주의관(觀)과 자본주의 비판의 결여가 건설되어야 할 사회주의의 상(像)도 왜곡하고 잃어버리는 구체적인 현상이 아닌가?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언급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필자는, 자본주의 세계와의 사이에 용이하게 넘을 수 없는 벽을 구축하는 것이 사회주의 건설의 전제라는 식으로, 값싸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의 포위ㆍ봉쇄를 견디며, 어쩔 수 없이 양보ㆍ우회 정책을 채용하고 있는 사회주의 조선ㆍ쿠바의 고투(苦鬪)를 필자는 연대와 공감으로써 지켜보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두에 걸쳐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ㆍ소멸되고, 제국주의 세계지배가 한층 더 강화된 결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전진과 후퇴를 포함한 복잡한 과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이상, 그 부정적 영향, 폐해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영향과 폐해를 최소한에 머물게 하며 노동자 인민의 생명의 보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공산주의자라면 최저한의 의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개혁ㆍ개방” 정책 30여 년의 실천은 최전성기에 탄광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6천 명에 달한 노동재해나, 화학공장이 흘려보내는 폐수로 인한 건강피해의 다발이나 공기오염 등,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해악을 제거할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한, 미 점령하의 독점자본 부활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일본 자본주의의 추이와 겹친다. 거기에서 필자는, 자본주의의 “문명화 작용”이라는 세례를 통과하지 않으면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는 속류 유물사관의 나쁜 적용을 본다.
맑스주의의 원리적 재고를
필자는 아래에 덩샤오핑 “남순강화(南巡講話)”(≪エコノミスト≫1992. 4. 21.)의 일절을 인용한다. 이를 읽으면 덩샤오핑이 얼마나 엉터리 사상의 소유자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이 많은가 시장이 많은가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다. 계획경제는 사회주의와 이콜(equal)이 아니다. 자본주의에도 계획은 있다.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와 이콜(equal)이 아니다.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 계획과 시장은 어느 것이나 경제수단이다. 사회주의의 본질은 생산력을 개방하여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착취를 소멸시켜 빈부의 차를 없애며, 마지막으로는 공동의 풍요로움에 도달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이러한 이치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증권이나 주식시장이란 것은 결국 좋은 것인가, 위험한 것인가, 자본주의에 고유한 것인가, 사회주의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인가? 관찰하는 것은 좋으나, 결연히 시도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관찰하여 올바르고, 1, 2년 해보고 옳다면 문을 크게 열면 된다.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
필자는 또한 2009년 11월에 뉴델리에서 개최된 공산당ㆍ노동자당 국제회의에서의 아이핑(艾平)의 “우리들은 사회주의를 전진ㆍ강화ㆍ발전시키려 한다―제11회 공산당ㆍ노동자당 국제회의의 중국공산당의 보고”(≪社會評論≫ 제167호, 2011년 가을)의 한 절을 아래에 인용한다. 이를 읽으면, 그들이 얼마나 경박한 자본주의관의 소유자이며, 유물사관의 공식을 얼마나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인지를 알 수 있다. 아이핑에게 묻고 싶다, 다시 한번 중국 혁명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라고.
“현재, 자본주의적 생산이 성장할 여지는 아직 있으며, 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의 자기조절 능력은 아직 고갈되어 있지 않다. 자본주의의 고유의 모순은 복잡한 운동 속에서 볼 수 있으며, 그것은 어떤 때에는 격렬하고, 또 어떤 때에는 온화하게도 된다. 그 결과,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아직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것은 맑스주의 사상의 일부였다. ‘발전의 여지가 있는 생산력이 모두 발전해 버리기 전에 소멸된 사회질서는 지금까지 없다. 그리고 새로운 고도의 생산관계는, 그것이 존재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이 낡은 사회 태내에서 성숙하기까지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칼 맑스 ≪경제학 비판≫ ‘서문’)”
맑스도, 엥엘스도, 자본주의가 최고도로 발달한 국가로부터 순차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거나, 혹은, 그러한 조건하에서만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그리고 주체적 조건이 성숙한다는 등으로 말한, 바보 같은 사상의 소유자는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이론가임과 동시에, 혁명의 가능성을 현실의 제 모순과 계급투쟁의 진전 속에서 발견하려고 했던 뛰어난 혁명가였다. 그러한 예증은, 예컨대 ≪공산당 선언≫ 1882년 러시아어판 “서문”에서 볼 수 있다.
유물사관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부터, 인류가 경과해온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력”이란 본질적으로 “노동의 생산력”이어서, 어떠한 사회라 할지라도 노동ㆍ생산과정의 주체는 직접생산자(노동자와 농민)이다. 그러나 이 “노동의 생산력”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하에서는 본래의 노동ㆍ생산과정에 대하여 외적인 존재일 뿐인 자본이 이 과정을 포섭ㆍ지배함으로써 “자본의 생산력”으로서 나타난다(≪자본론≫제1권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11장 “협업” 외).
자본 운동의 규정적 동기는 가치증식에 있다.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가는 이윤율의 높이가 결정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하에서 발전하는 “생산력”은 필연적으로 뒤틀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인식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맑스는, 속류 유물론자처럼, 자본주의가 발전시키는 생산력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거나 찬미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본주의가 발전시키는 생산력을 기초로, 거기에서 발생한 왜곡을 시정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는 없다.
맑스ㆍ엥엘스 ≪공산당 선언≫의 “전문”에 이은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계급 공멸(共滅)”의 가능성을 언급한 다음의 단락, 즉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의 장주(匠主)와 직인, 결국 억압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는 항상 대립하며, 때로는 은밀히,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는 투쟁을 해왔다. 그리고 이 투쟁은 언제나 사회 전체의 혁명적 개조로 끝나든가, 그렇지 않으면, 서로 투쟁하고 있는 계급의 공동의 몰락으로 끝났다”는 문장이 그에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조우하고 있는 것은 계급 공멸의 위기 따위가 아니다. 이미 수명을 다한 자본주의가, 글로벌 시장에서 암약하는 한 줌의 금융독점자본의 이익 획득을 위해 노동자 인민을 잘라내고, 생존의 기반을 파괴하며, 인류의 존속 그 자체를 위협하는, 그러한 위기인 것이다.
1) 역자 주: 이 글은, ≪노동사회과학 제5호: 좌ㆍ우익 기회주의의 현재≫ 노사과연, 2012, pp. 138-169에 번역되어 수록되었다.
2) 역자 주: 같은 글.
3) 역자 주: 명단에 열거된 것 외에는 모두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
4) 역자 주: 카리브해 푸에리토리코 동쪽의 섬들. 서쪽의 미국령(領)과 동쪽의 영국령으로 나뉘어 있다.
5) 역자 주: 카리브해 쿠바 남쪽, 자메이카 북서쪽에 있는 섬들. 영국의 식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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