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알렉싼드라 꼴론따이(Александра М. Коллонтай)

해제: 정호영(회원), 번역: 서의윤(회원)

 

 

힘 있는 여성은 심리적으로 가부장제를 넘어섰다. 법적으로도 가부장제는 끝났다. … 힘 있는 여성이 억압에서 벗어난 지는 역사적으로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절대 스스로 복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공격의 칼끝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그 칼이 향할 곳이 어딘지를, 그것이 남녀 양성의 깊은 소외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 힘 있는 여성은 시대에 뒤처진 현재를 과감하게 뛰어넘는다. 아직은 다른 서사가 불가능해 보였기에 이른바 약한 성이 자신에게 떠맡기듯 부여한 피해자의 지위에 매달렸던 변화의 몇십 년은 지나갔다. … 힘 있는 여성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의 가능성이다. 왜 우리는 이 가능성을 붙들지 않는가?1)

 

 

[차례]

 

해제

1.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 (낙후된 의식으로서의) 가부장제

2. 사이보그가 될 것인가. 피해자가 될 것인가?

  – 도나 해러웨이 선언과 정희진의 페미니즘

  – 안드레아 드워킨이 이스라엘에게서 배운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

  – ‘드워킨/이스라엘의 피해자 권력 휘두르기’에서 벗어나기

3. 맑스주의 여성론

  –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 엥겔스가 제시한 여성해방의 해법

  –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4. 정희진의 페미니즘과 맑스주의는 대의에서 같이 갈 수 있는가?

5. 남자, 일상의 고역을 나누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우는 동지

  – 벨 훅스의 ‘남자, 투쟁을 함께하는 전우’

  – 벨 훅스,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을 비판하다

6. 여러분은 젊고 서로를 사랑한다.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유일한 나라가 됐다

  – 여러분은 젊고 서로를 사랑한다.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 덧붙이는 글 1. 1987년 한국의 맑스주의자 김지해,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다

* 덧붙이는 글 2. 꼴론따이는 볼쉐비끼 페미니스트/사회주의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공산주의와 가족(1920년)

1. 러시아 혁명이 가져온 변화

2. 가족은 변한다

  – 새로운 것과 낡은 것

  – 자본주의 멍에로 여성은 비틀거린다

  –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해체되었다

  –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여성의 “금손”

  –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여성 가내 노동과 경제

  – 자본주의가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 가족은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는다

  – 공산주의는 여성을 가내 노예제로부터 해방시킨다

3. 아이들의 양육은 국가가 책임진다

  – 자본주의에서의 자녀의 양육

  –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가족에서 공동체로 넘어간다

  – 공산주의에서의 자녀 양육

  –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이 진정 슬픔의 연속이었다고 해서 결혼을 두려워하지 마라

4. 평등한 두 구성원 간의 자유결합

  – 애정과 동지애로 이루어진, 둘 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노동자인 그들의 결합

  – 성매매라는 끔찍한 저주는 끝날 것이다

  – 노동자 어머니에게는 나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이 있다

  – 노동자들의 국가는 남녀 간의 새로운 관계를 필요로 한다

 

* 덧붙이는 글 3. 자유결합(free union)

 

 

해제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만 너무 매몰되어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를 고민하는 문제의식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고전을 읽은 이유는 고전이 써졌던 시기 즉 문제가 처음 발생했던 시기로 돌아가서 당시의 문제의식을 돌아본 후, 우리가 현재를 보는 문제의식을 점검하기 위해서이다. 고전으로서 룩셈부르크, 꼴론따이를 읽는 이유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여성 문제가 무엇인가 원점에서부터 사고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고전으로서의 꼴론따이와 현대의 베스트셀러인 정희진을 같이 읽어 나가면서 현재의 여성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가 정희진을 선택한 이유는 정희진이 가장 대중적인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희진은 페미니즘 ‘업계 용어(jargon)’를 남발하지 않고 독자들이 그 주장을 알 수 있게 하는 글을 쓰기 때문이다. 정희진이 한국 페미니스트들 중 가장 많은 대중적인 인지도와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정희진의 글이 가진 이런 장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구성된다. (1)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가부장제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개념을 비판하고 (2) 급진 페미니즘의 방향들을 짚어본 후 비판하고 (3) 맑스주의 여성론이 급진 페미니즘과 같이 갈 수 있는가 고민할 것이다. (4) 벨 훅스 등의 ‘남자, 투쟁을 함께 하는 전우’라는 의식을 가진 페미니즘의 주장을 돌아보고 같이할 지점을 찾을 것이다. (5) 그리고 마지막으로 꼴론따이의 고전인 “공산주의와 가족”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서 현재 우리 상황을 보고자 한다.

이 글은 고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쓰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어떤 하나의 완결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들에서 우리가 짚어보아야 하는 지점들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1.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 (낙후된 의식으로서의) 가부장제2)

 

한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여성운동’으로 무조건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이외에도 또 다른 여성운동이 있다면 ‘페미니즘≠여성운동’이 된다. ‘페미니즘=여성운동’이라는 이 공식을 깨기 위해서는 페미니즘/부르주아 여성운동에 대한 또 다른 여성운동인 맑스주의 여성운동/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이 필요하다. 급진 페미니즘 비판의 핵심은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개념이다.

급진 페미니즘에서 쓰이는 가부장제 개념은 역사에서의 가부장제 개념―가장(家長)이 경제적 생산 단위인 가족을 통제하는 제도―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자본주의에서는 봉건제까지만 존재했던 가부장제는 더 이상 사회 경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상에서 우리가 가부장제를 말할 때는 가부장제가 남긴 봉건적 잔재로서의 낙후된 의식으로서의 ‘성차별주의’를 가부장제라고 부를 뿐이다. 일상적으로 쓰는 가부장제를 정확히 쓴다면 낙후된 의식으로서의 ‘(심리적) 가부장제’가 될 것이다.3) 여기에서부터 맑스주의와 급진 페미니즘의 여성해방 해법은 달라진다.

가부장제를 “물적 토대를 갖춘 고유한 억압 체계로 보든, 이데올로기적 측면으로 보든, 가족 내에서 남편ㆍ아버지가 아내ㆍ자식들에게 행사하는 특권으로 보든, 자본주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억압-재생산, 성별 분업 구조, 가족, 여성폭력 등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규정”이라고 섞어 버려서도 안 된다. 가부장제를 “물적 토대를 갖춘 고유한 억압 체계”, “자본주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성억압-재생산, 성별 분업 구조, 가족, 여성폭력 등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규정”으로 보는 것은 태초부터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다는 몰역사적 급진 페미니즘만의 가부장제론일 뿐이다. 심리적 가부장제, 즉 성차별주의라는 말을 써야 되는 자리에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로 대체해 버리려는 시도는 급진 페미니즘과 그 아류인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오래된 전략이다.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삼는’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벨 훅스 등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 벨 훅스 등의 페미니스트들의 가부장제 개념은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가 아니라 우리도 상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제도화된 성차별주의’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별도로 자세히 쓰겠다.)

급진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성차별주의’ 즉 가부장제가 붕괴되고도 낡은 사회적 의식으로 남아 있는 (심리적) 가부장제가 아니라, 남성의 여성의 ‘생식에 대한 생물학적 지배’4)로 본다. 정희진은 “여성혐오는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5)되었다고 한다. 정희진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은 태초부터 남자가 가진 “권력이 차이를 구성”6)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정희진의 이 주장은 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성행한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이론’, 즉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은 남성이 임신, 출산을 하는 여성의 육체를 태초부터 지배하면서 시작된다는 주장을 근거로 나온 것이다. 80년대에 국내에서도 이미 맑스주의 입장에서 접근한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이론 비판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비판을 읽어보자.

 

급진주의적 여성운동론자들은 사회 내의 어떠한 차별보다도 성차별과 그 억압에 일차적 관심이 있고 이 기준으로 사회를 보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회는 성적으로 계급화된 억압 구조의 모습으로 비친다. 이 사회는 남성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이라는 하나의 계급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 그중에서도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남성에 의한 여성억압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여성의 적은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최초의 피지배계급이었으며 여성억압은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실제로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사회에 존재해 왔으며 계급 구조가 변화해도 존속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여성억압 체제를 ‘가부장제(patriarchy)’라고 불렀다. 이들에게 가부장제는 심리적ㆍ문화적 현상으로서 전 역사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며, 이 가부장제의 물적 기초는 여성의 성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통제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여성 문제의 핵심은 여성이 어머니이기를 강요당하는 것과 남성의 성적 노예라는 것, 그리고 여성의 육체를 남성이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것이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들의 공격 목표는 억압적 성관계와 사회관계를 창출하는 가족이 된다. 이들은 가족의 파괴를 주장하며 여성은 여성을 억압하는 가정에서 뛰쳐나와 성관계의 평등을 위해 레즈비언이 된다든가, 출산통제권을 여성이 가진다든가, 나아가 과학의 발전으로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여성 문제 해결의 근본 방안이라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등으로 여성의 몸 밖에서 출산이 가능해지면 여성의 해방도 가능하다는 것이다.7)

 

정희진은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이론을 근거로 “남성과 여성은 적대적 모순 관계인데 섹스를 합니다. 이게 바로 이성애 제도죠. 그 때문에 섹스가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겁니다. 적과의 동침 때문에…”8)(강조는 인용자. 이하, 인용문에서의 강조는 모두 인용자의 것이다)로 나아간다.

 

적대적 모순 관계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섬멸하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는 관계이다. 이성애 제도를 넘어서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적대적 모순 관계를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남성거세 결사단 선언문(SCUM, Society for Cutting up Men)”(1967년)이다.8)

 

이제 남자(또는 여자)의 도움 없이도 아이를 낳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시대가 왔다. 오직 여자아이만을 선별해서 낳는 것도 가능해졌다. 우리는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 남자를 살려두는 일 따위는 재생산이라는 의심스러운 목적을 위해서도 필요 없다. 남자는 생물학적 재앙이다. Y(남자) 유전자는 불완전한 X(여자) 유전자로, 불완전한 염색체 쌍을 가졌다. 다시 말해 남자는 불완전한 여자다. 유전자였을 때부터 발육부진에, 걸어 다니는 지진아다. 남자라는 것은 결함이 있다는 뜻이며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남자다움이란 결핍성 질환이다. 남자는 감정적 절름발이다. …. SCUM은 커플을 부숴버릴 것이다. 이성애(남자-여자) 커플들에 맞서 그들이 어디에 있든 헤어지게 만들 것이다. SCUM은 SCUM의 남성 보조국에 속하지 않은 모든 남자를 죽일 것이다.9)

 

로저 에버트 감독의 1996년작 영화 포스터.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I shot Andy Warhol )≫10)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를 없애자’라고 외칠 때는 ‘태초부터 남성은 여성의 생식에 대한 지배를 기반으로 여성을 약탈했다. 남성계급을 타도하자’라는 의미로 남성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이 가부장제를 일반적으로 쓰는 의미의 성차별주의라는 의미로만 알고 ‘옳소’라고 따라 외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남녀 관계를 적대적 모순 관계로 보는 급진 페미니즘은 남성=가해자, 여성=피해자로 보며, 피해자가 남성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으로 ‘생존자/피해자’ 철학을 가지는 길로 나아갔다. 남녀 관계를 적대적 모순 관계로 보는 입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피해자화를 이데올로적 자원으로 하는 운동에서 피로감을 느낀 페미니스트들은 아예 남성과 관계를 가지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리기도 했다.

 

 

 

2. 사이보그가 될 것인가. 피해자가 될 것인가?

 

도나 해러웨이 선언과 정희진의 페미니즘

정희진이 ‘인류가 성취한 모든 지성이 집약’되었다고 격찬11)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의 책 ≪해러웨이 선언문≫를 우선 읽어보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는 (1) 페미니즘 운동의 “순수성 및 그와 결부된 피해자됨(victimhood)”을 유일한 통찰 근거로 생겨난 피해를 반성하고 (2) “사이보그 선언문―20세기 후반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반려종 선언―개, 사람 그리고 소중한 타자성”을 발표하여 “피해자됨”의 페미니즘 운동을 넘어설 것을 제안한다. 이성애를 넘어서서 사이보그(“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가 되거나 다종 가족12)을 구성하는 전략으로 이성애를 넘어설 것(“아기 대신 친족을 만들자!”13))을 제안하였다. “반려종 선언―개, 사람 그리고 소중한 타자성”은 도나 해러웨이와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인 카옌과의 딥 키스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이성애/‘적과의 동침’의 대안을 제시한다.

 

사이보그는 인간의 둘레에 장벽을 쳐서 다른 생명체와 인간을 서로 격리하는 것을 나타내기는커녕, 거북하고 짜릿할 만큼 단단한 결합을 암시한다. 수간(獸姦, bestiality)은 현재의 혼인 교환 주기에서 새로운 지위를 지닌다.14)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은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적 자원’으로 하여 권력을 구성하려는 페미니즘 운동을 벗어나고자 ‘사이보그 되었음/되기’를 선언한다.

 

이 경로는 타고난 여성(Woman born)이 아니라, 다른 현재 시제의 사생아 사이보그,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적 자원으로 삼기를 거부하며 진짜 삶을 살고자 하는 여성들(women)을 통과한다.15)

 

다른 모든 유형의 지배를 포함하는 억압, 결백한 피해자라는 순수성, 자연에 더 가깝게 뿌리내린 자들의 지반 같은 “우리의” 특권적 위치에서 정치의 근거를 마련할 필요에서 벗어난 사이보그의 시점에서, 우리는 강력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 페미니즘과 맑스주의는 억압들의 위계, 그리고/또는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순수하며 자연과 더 닮은 잠재적 위치에서 혁명 주체를 구성하라는 서구의 인식론적 정언명령에서 좌초해 왔다. 공통 언어에 대한, 또는 적대적인 “남성적” 분리에서 보호해 주겠다는 본원적 공생에 대한 본원적 꿈을 꿀 수 없는 대신 최종적으로 특권화된 읽기나 구원의 역사가 없는 텍스트의 놀이 속에 쓰여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세계 속에 완전히 속해 있다는 인식은 정치의 근거를 정체성이나 전위당, 순수성, 어머니 역할에서 찾을 필요에서 해방시켜 준다.16)

 

그러나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순수하며 자연과 더 닮은 잠재적 위치에서 혁명 주체를 구성’하는 피해자 되기를 거부하는 올바른 출발점에서 출발한 사이보그 선언은 결국에는 ‘전위당, 순수성, 어머니 역할’을 포기해 버리고 현실 운동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업계인 학술계에 사이보그와 반려종들과 다종 가족을 구성하는 상상 속으로 옮겨 갔다. 해러웨이는 학술연구자로서 자신의 상품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해러웨이 선언문≫의 3부인 “반려자들”는 캐리 울프와 도나 해러웨이의 4시간에 걸친 대담 녹취록이다. “반려자들”을 보면 자신들의 업계인 ‘지식상품 시장’에서 그동안 잘 나가던 지식상품(푸코, 생명정치 등)과 향후 트렌드, 현재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는 지식상품에 대해서 ‘업계 용어(jargon)’로 즐겁게 수다 떠는 것을 볼 수 있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은 현재의 과학적 수준에서는 현실화될 수 없다. “사이보그 선언”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삼는’ 피로감에서 벗어나고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도나 해러웨이가 ≪스타트렉(Star Trek)≫의 팬, SF 소설의 애독자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나온 ‘문학 작품’이다. “반려자들”은 대담자 두 사람이 읽었던 SF 소설들로 이야기들을 풀어 나간다. 도나 해러웨이는 스타트렉이 자신에게 준 영감을 털어놓는다. 해러웨이의 선언들을 문학 작품으로 보더라도 사이보그가 되는 것이 성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김보영ㆍ박상준은 도너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을 테크노포비즘이라고 칭하고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의 낙관성에 대해서 비판을 가한다.

 

그럼 결론을 내려 볼까요? 봉봉이 아까 물었죠? 인간이 자신의 몸을 기계로 바꿀 수 있게 되거나 기술로 성별을 바꿀 수 있게 되면 성 역할이 어떻게 될지 차별이 사라질 수도 있고 반대로 심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터넷이 정보를 평등하게 퍼뜨리면서 차별을 없애 준 면이 있다면, 더 심하게 만든 면도 있는 것처럼 그래요. 하지만 우리는 늘 역사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노력해야죠.17)

 

도나 해러웨이는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적 자원으로 삼는’ 것을 거부하고 ‘문학 작품’인 “사이보그 선언문―20세기 후반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와 “반려종 선언―개, 사람 그리고 소중한 타자성”을 쓴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이다. 그러나 정희진은 현재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를 존경하고 있지만 여성학을 처음 시작할 때는 도나 해러웨이가 아닌 안드레아 드워킨에게서 글쓰기를 배웠다.

 

안드레아 드워킨이 이스라엘에게서 배운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

정희진은 여성학을 공부할 때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삼는’ 드워킨을 외워버렸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서구의 급진주의(radical) 페미니즘 사상은 급진적(急進的)이라기보다 발본적(拔本的)이라는 뜻이다. 이 사상은 사적인 영역,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되었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공/사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가부장제의 근본 뿌리를 이론화했다는 뜻이다. 이후 본질주의라는 비판을 받긴 했지만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건너뛰고서는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남성이 여성의 몸을 통제, 지배, 착취한다는 사실이 이들의 노력으로 증명되었다. 성 역할, 이성애, 결혼제도, 성/인신매매, 성폭력, 살인의 연속선이 밝혀진 것이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 안드레아 드워킨의 <포르노그래피―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은 과소평가된 고전이다. 이 책은 ‘잠재적 가해=일상적 폭력’의 내용과 구조, 역사를 파헤친다. 서양사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제2의 성>에 비견할 만하다. 내가 처음 여성학을 공부할 때 외워버린 책이다.18)

 

이와 같이 정희진의 출발은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적 자원으로 삼는’ 것을 거부하는 해러웨이가 아니라, 페미니즘에 쓰이는 희생자, 생존자라는 개념을 대중화시킨 급진 페미니스트인 안드레아 드워킨이다. 10살 때부터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듣고 자라나고 1988년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유대인인 드워킨은 이스라엘에게서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적 자원으로 삼는’ 것을 배우고 실천했다.19) 이 책을 내기 전부터 이미 드워킨은 유대인과 여성을 연결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정희진이 여성학을 처음 공부할 때 외워버린 책 ≪포르노그래피≫(1981년)를 펼쳐보자.

 

두 가지 특성―유대인과 여성―이 중요한 것은 성적 기억의 반향력이 강하다는 점에 있다. 새디스트의 성적 승리감을 환기시키는 것은, 유대인 여자의 이미지―숨고, 도피하고, 체포되고, 죽는 것―이다. 그녀는 그의 성적 기억이다. 그의 새디즘은 모든 남자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 기억은 성적 사실로 인식되지 않고, 남자의 욕망으로 인식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두렵다. 그 대신에 여자가 그것을 원하고, 여자들은 모두 그것을 원한다고 여자 측에 원인을 전가한다. 유대인이 자발적으로 소각로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20)

 

안드레아 드워킨이 이스라엘에게서 배운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를 여성운동에 도입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안드레아 드워킨은 이스라엘의 ‘피해자’ 권력 휘두르기 전략―홀로코스트를 전면에 내걸고 팔레스타인 점령과 학살을 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조금이라도 하면 ‘반유대주의자’로 단죄를 함으로써 사회에서 매장시켜버리는 것21)―을 페미니즘에도 적용했다. 드워킨이 이스라엘에게 배운 방법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성운동 내부에서 90년대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가 이미 비판한 바 있다.

 

여성을 섹스의 대상으로만 취급할 수 있는 권리가 남성에게 있기 때문에, 남성의 사회 지배가 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또 이러한 남성의 권리는 인류 역사의 초기에서 그 원천을 찾아볼 수 바로 강간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강간, 성희롱, 포르노, 폭력행위(구타와 상해)들은 한 세트가 되어 여성에 대한 폭력 자체를 부추기고 있고,22) 매춘과 스트립쇼는 말할 것도 없고 성과 관계된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밖에 없다. 남자들의 성 본능을 바꾸도록 강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을 수정하고 법정에 제소해야 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이와 같은 생각에 대해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은 반기를 들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출판, 영화 등의 검열과 내용 삭제를 낳게 하고, 성적 자유를 짓밟아 버리고, 남성에 대한 전쟁 선포와 같다고 하면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심하게 반대했다.23) 이런 반대 의견에 의해 더욱더 자극받아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은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가게 되었고, 이 새로운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각인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녀의 ‘희생자 철학 ’은 그런대로 버티어 나갔다. 그녀는 여성을 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생존자에 비유하기를 망설이지 않았으며, 남성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단어는 그 후 많은 작가들의 저서에 등장하게 된다. … 이제는 어떤 한 여성이 열등감을 느낀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자신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갖게 한 대상을 금지시킬 수 있게 되었다. 고전 문학과 영화도 여기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영화나 문학 작품에 대해 어떤 여성이 고소를 하게 되면(자신에게 그 작품이 여자로서의 열등감을 느끼게 한다는 이유로),그 작품은 출판 또는 상영이 금지가 된다.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베티 프리단에서부터 아드리엔 리치를 거쳐 케이트 밀레트까지) 이 터무니없는 검열에 대해 강력하게 반기를 들고일어났다.24)

 

2017년 페미니스트 제사 크리스핀도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를 거론한다.

 

안전이 목표가 되는 순간, 그리고 우리가 충분히 당할 만큼 당했다는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위협을 찾아 주변 환경을 살피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짜증나는 일을 극도의 공격이라고 혼동하기 쉽다. 경계 태세가 높을 때는 친구도 적처럼 보인다. 그리고 안전과 보호를 요청하는 일은 당신 자신의 상황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모든 것은 훨씬 더 복잡하다. 범죄나 대립, 혹은 그저 의견 차이가 있을 때도, 이를 단순화하는 방법은 한 사람을 공격자, 다른 사람을 피해자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다. 피해자라는 꼬리표에는 이점이 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귀 기울여주고, 관심과 연민이 쏟아질 것이다. 피해자라고 선언되는 순간, 당신은 휴식을 취하며 회복할 시간도 얻을 수 있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용감한 행동이다. 그렇게 동정을 얻으니 사람들이 피해자 입장에 서고 싶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것이 이렇게 수많은 이들이 피해자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이유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며 거짓 회고록을 쓰는 사람들이나 대도시 갱 멤버라고 주장하는 교외 출신 백인 소녀들, 아메리칸 원주민인 척하는 백인 남성들, 단지 병원에서 관심을 받으려고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 엄마들처럼 말이다.25) (강조는 인용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며 거짓 회고록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여성도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성운동이 이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에게서 배운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를 하면, 여성운동으로서는 여성운동 전체의 신뢰성을 즉각 떨어뜨리게 된다. 크리스핀은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경고한다.

 

결국 여자들도 그런 종류의 거짓말을 한다. 복수에서부터 관심을 얻기 위해서까지 거짓말할 이유는 많다. 일부 여자들은 지독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의 신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자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거짓 고발 하나하나가 그 주장을 뒷받침한 우리의 신뢰성마저 즉각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 다시 한 번 이전에 말한 내용을 반복하겠다. 남자들은 우리의 빌어먹을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순수함과 결백을 주장함으로써 일부 남성들이 여성과 겪는 문제에 과잉보상 해선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의 비인간성에 대처하는 옳은 방식은 우리가 좀 더 훌륭하고 정직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일부 여성들이 하는 형편없는 짓거리,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 그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하는 거짓말들을 시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의무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납득시키는 게 아니다. 그들이 믿기를 바라는 무언가를 믿게 하려고 그들이 듣고픈 얘기를 해주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통제다. 우리의 의무는 인간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전술했듯이 우리는 복수하고픈 우리의 욕망을 인식해야 한다. 진정 오늘날은 아마도 처음으로 남성에 맞선 여성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시대이므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 가능성을 어떻게 활용할지 주의해야 한다.26)

 

1981년 ≪포르노그래피≫가 출판된 후 페미니즘 내부에서 드워킨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10년 뒤인 1991년 드워킨은 강간에 관한 소설 ≪신에게는 딸이 없다≫27)를 출판하여 자신을 비판한 페미니스트들을 반유대주의자로 규정해 버린다. 드워킨은 ‘자신의 견해와 다른 여자들에게는 철저히 무자비하다.’28) 그동안 자신이 한 주장을 소설로 형상화한 본문의 앞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붙여서 자신과 목소리가 다르면 나치와 같은 가해를 하는 ‘반유대주의자’로 판결을 내린다. “안드레아가 아닌 나로서: 프롤로그”와 “안드레아가 아닌 나로서: 에필로그”에서는 자신과는 의견이 다른 페미니스트의 외장을 쓴 채 그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척하다가, 자신을 반대한 페미니스트들을 ‘반유대주의자/가해자’라고 공격한다.

 

지식층 여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나와 같은 부류인 여자들과 자유를 위해 싸운다. 뻔뻔스러운 비명은 혼란만 준다. 사나운 여자는 설득력이 없다. …. 난 소리치지 않을 것이다. 여긴 화장터가 <아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특정 시기에 유럽의 특정한 장소에 있었던 유대인이 아니란 말이다. 우리는 화장터로 떠밀려 들어가고 있진 않다. 질질 끌려서, 부추김을 받고, 유혹이나 위협을 받아 들어가진 않는다. 우린 화장터에 들어가 있지 <않다>. 과격파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 충성심, 그리고 물론 사랑이라는 정당한 구속을 인식했던 투쟁 정신이었다. 호전적인 멍청이들은 넌더리가 난다.29)

 

과격파들이 거리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미치는 반면 학교에서는 우리의 영향력이 커진다. 진지한 과격파들이라면 거리에 속해 있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나는 여성의 경험에 대해서 매개적 언어, 뉘앙스, 애매성의 가치를 적용시키며 특히 강간과 매음에 역점을 두고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유대인 대학살에 관해서 쓸 계획은 없다. 그러나 엘리 위즐과 그의 동료 크베치의 단순한 이론에 점차적으로 신경이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종신 교수직을 받은 후에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창조적인 삶에서 대학살 그 자체의 가치를 증언하기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논문을 한 편 쓸지도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강간이나 다른 <나쁜 일들>에 관해 독선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내 영역 밖에서 정치를 가장한 도덕주의를 지켜나가 주길 바란다.30)

 

드워킨은 자신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을 사나운 여자, 과격파로 몰고 있지만, 그들은 유대인 대학살을 부정―“여기는 화장터가 아니다”―하거나, 유대인 학살에 침묵하기―“유대인 대학살에 관해서 쓸 계획은 없다”―로 한 반유대주의자들와 똑같다고 비난을 한 것이다. 드워킨은 이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반남성 선동에 대해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반유대주의자라고 공격을 한 것이다. 이 책 본문의 마지막은 남자들을 죽일 태세가 된 자신인 ‘안드레아 1호’를 여성들이 따를 것을 선동하면서 끝난다.

 

목구멍이 찢어지지만 않았어도 노래를 부를 텐데. 강간만 당하지 않았어도 네 마음은 영원히 기쁨에 넘쳐 뛸 텐데. 밤이다. 난 남자의 얼굴을 까부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전쟁을 선포했다. 내 가명은 안드레아 1호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더 있다.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용기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31)

 

드워킨은 “이스라엘에게서 배운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로 이렇게 계속 글쓰기를 하다가 2000년에 ≪희생양: 유대인, 이스라엘, 여성해방(Scapegoat: The Jews, Israel, and Women’s Liberation)≫을 낸다.

 

드워킨은 이 책에서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개념을 가져와서 페미니즘의 ‘생존자’ 개념을 급진적 여성운동의 이론으로 정리를 하였다. 드워킨은 유대인과 여성을 사회의 희생양으로 부각시킨다. 드워킨은 여성과 유대인을 아리안 남성의 활력에 기생해서 사는 기생충으로 규정된다고 하였다. 이제 미소지니(misogyny)32)와 반유대주의는 동일한 것이 되었다.33) 이 책에서 피해자(victim)는 100여 번, 홀로코스트 용어인 생존자(survivor)는 90번 넘게 나온다.

이 책이 나온 2000년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게릴라 소탕을 명분으로 레바논 남부를 침략해서 22년간 점령하다가 물러난 해이다. 그동안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 학살이 충분히 드러났지만, ‘이스라엘인/유대인’인 드워킨은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철저히 무시한다. 드워킨은 이스라엘이 ‘반유대주의’를 어떻게 전대미문의 학살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드워킨은 페미니즘이 “이스라엘에게서 배운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를 따라 하라고 비열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사

 

‘드워킨/이스라엘의 피해자 권력 휘두르기’에서 벗어나기

페미니스트 크리스핀은 ‘피해자 사고방식’이 가지는 위험성을 비판한다.

 

피해자 사고방식과 비인간화 관점이 섞이면 위험하다. 이제는 우리가 박해를 가하는데도, 박해받고 비인간화된 피해자는 우리 자신이라는 절대적 확신까지 있다. 이런 피해자 사고방식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없도록 우리를 방어해 준다. 그건 분명 우리를 위한 보호막이다. 우리의 괴물들이 ―자신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숙고할 필요도 없도록― 우리가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몰아갔던 것과 매우 유사한 방식이다.34)

 

수세기 동안, 여성의 안전은 선전 도구로 이용되었다. 잔혹행위를 저지르고 싶다면 당신이 없애버리고 싶은 그 사람들이 당신의 여성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를 이야기하라. 이는 (백인 여성을 난폭하게 다루고 상처 입히는 무서운 검은 손이 그려진 포스터를 이용한) 반이민법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 침공 추진에까지 이용된 방법이다. 탈레반의 여성억압 때문에 많은 페미니스트가 그 전쟁을 지지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아프간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그들 중 상당히 많은 수를 죽였고, 그들의 일상을 더 불안전하고 더 끔찍하게 만들었다.35)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다.36) 1970년대 한국에서는 미니스커트 단속을 했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 것을 생각하면 현재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고통은 이슬람교에서 온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37)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위해서 서구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쟁을 지지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더 나쁘게 될 뿐이었다. 쏘련과 우호적인 관계(“쏘련의 지배 아래 있던”이라고 주류 언론들이 표현하는)에 있으면서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던 아프가니스탄은 외면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와 아프가니스탄 남성들에게 모든 원인을 돌린다. 여성들이 눈만 내놓는 부르카를 입고 다니면서 남성들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하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은 서구의 전쟁과 서구 급진 페미니스트의 지지로 만들어진 지옥이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2018년 10월 시리아 북쪽 도시 카미실리에서 미인대회가 열렸다. 미인대회가 열릴 수 있던 것은 아사드 타도를 내건 서구, 터키, 사우디, 이스라엘의 충견인 시리아 반군, 다에쉬들이 시리아 내전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시리아 반군과 화이트 헬멧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시리아가 또 하나의 아프가니스탄이 되었다면 미인대회가 아니라 부르카를 입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쿠르드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의 사상을 따르는 이들은 이 미인대회를 반여성적이라 비판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여성을 전형화하는 것 아니냐는 또 다른 비판이 이어졌다.38) 이게 세속주의 국가 시리아에서의 로자바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이다.

 

서구 대형 NGO인 국제 앰네스티와 그를 따르는 단체들은 시리아에서 아사드 반군이라는 명분으로 활동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학살에 함께했던 화이트 헬멧을 지지하였다.39) 화이트 헬멧이 시리아에서 도망쳐 나올 때 그들을 보호해준 병력은 이스라엘군이었다.40) 그러나 화이트 헬멧과 국제 앰네스티를 따라 ‘평화 집회’를 하던 이들은 이에 대해서 완전하게 입 다물었다. 국제 앰네스티는 터키가 시리아의 아프린을 침략한 와중에서도 로자바 혁명을 전쟁 범죄로 몰고갔다. 국제 앰네스티는 로자바 혁명을 지키는 여성 전사들을 포함한 쿠르드 게릴라들은 언제나 전쟁 범죄자들로 비난하였다. 국제 앰네스티 같은 서구 대형 NGO를 추종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서구 대형 NGO 추종이 긍정적인 경우도 있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가 시작될 때 BDS에는 문화 반대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BDS를 반대하던 평화운동가들이 국제 앰네스티가 BDS 운동을 하자 바로 돌아서서 BDS 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국제 앰네스티가 시리아 반군과 화이트 핼멧을 지지하자 서구 대형 NGO 추종으로 같이 따라간 것은 결국 서구와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세계 여성운동의 새 장을 연 로자바 혁명41)을 파괴하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화이트 핼맷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면서도 로자바 여성 혁명은 높이 산다고 말하는 평화활동가는 얼마나 위선적인가?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도 한번 돌아보자.

 

트위터에 사진을 올린 덴마크 언론인 쇠렌슨은 폭음이 들리면 구경꾼들이 박수를 친다며 이곳을 ‘스데롯 극장’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사진 속 여인을 자세히 보면 폭격 구경이 즐거운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인들이 폭격 구경을 위해 앞자리를 원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사진을 본 전 세계 네티즌들도 “살인이 한낱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등 비난을 쏟아냈습니다.42)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으로 죽은 팔레스타인 여성과 언덕에서 맥주 마시며 영화 보듯 ‘가자 공습’을 보고 있는 이스라엘의 여성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학살과 점령을 덮어버리는 이스라엘의 ‘반유대주의’ 앞에서는 너무나 공허하다.43)

 

페미니즘 운동에 이스라엘의 ‘피해자’ 권력 휘두르기에서 운동 방법을 가져온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과는 입장이 다른 페미니스트들인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나 제사 크리스핀의 비판에 귀 기울어야 할 것이다. 2016년 5월에도 안드레아 드워킨의 ≪포르노그래피≫를  ‘과소평가된 고전’이라고 격찬했던 정희진은 ‘피해자’로서 여성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여성운동의 한계를 밝히면서 입장을 바꾸었다.

 

성별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성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어떠한 사회 문제도 젠더나 계급, 나이 등 한 가지 모순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44)

 

여성 정체성의 정치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걸려든다면, 즉 피해는 여성의 본질이며 여성은 피해자로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여성은 또다시 보편성(universal)으로 묶이게 된다. 이것이 페미니즘 사상사에서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이 그토록 비판받았던 이유이다.45)

 

애초부터 여성을 개인에서 배제하면서 출발한 근대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변모하여 이제 개인으로서 여성을 호출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여성들은 이에 대한 응답을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생존을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동원하라는 명령 속에서, 이들은 ‘피해자 카드’를 꺼내들었다. 피해도 자원이 되는 세상에서 여성의 피해자화는 남성 사회도 여성도 ‘환호’할 만한 자원이다. 약자는 사회가 자신을 타자화해도 분노하지만, 스스로를 타자화할 때 얻는 이익이 있다는 것도 안다. 특정한 조건에서는 후자의 경우가 개인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게다가 현재 한국 사회 전반의 약자 혐오 문화와 언어의 인플레이션, 자극적 언설은 ‘성공적인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 나는 ‘신자유주의 시대 페미니즘의 나아갈 길’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한 사람이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다만, 나는 현재 상황을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망은 안주하지 않는 삶에서 온다. 자기만족은 희망이 아니라 헛된 바람이다. 바닥을 치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지점에서 시작하기. 이것이 절망만이 가진 가능성이다. 근거 없는 희망보다 생산적인 절망이 필요하다.46)

 

아마도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정희진이 해러웨이의 ≪해러웨이 선언문≫을 ‘인류가 성취한 모든 지성이 집약되었다’고 격찬한 것은 정희진은 해러웨이로부터 ‘피해자’로서 여성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운동의 유효성이 다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희진의 변화와는 별개로 정희진으로부터 ‘드워킨’을 배운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드워킨’을 실천하고 있다.

 

정희진은 한 ‘인문학 캠프’에서, 정희진의 표현에 의하면 ‘한눈에 봐도 똑똑해 보이는 여학생’이 페미니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와 나누면서 갈등을 만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자,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여성주의가 아니라 가부장제라 답했다고 한다.47) 그러나 정희진의 이 답은 좋게 말하면 동문서답이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정희진은 이론조차도 남성의 이론과 여성의 이론으로 나눈 뒤 옳고 그름을 말해 왔다. 한 예로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보자.

 

언어와 물질의 분리는 남성 중심적 사유이다. 많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여성주의자들도 가정하고 있는 여성운동과 여성주의 지식을 대립시키는 사고방식은 서구 근대성의 산물이다. 운동과 언어 사이의 이원론, 위계적 사고는, “이제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앞으로 철학은 세계를 변혁할 것이다”라는 맑스의 테제를 비판 없이 수용한 결과다. 이 테제는 맑스주의의 남성 젠더 따라서 변혁이론으로서의 한계를 어김없이 고백한다. 맑스주의와 맑스주의가 저항하고자 하는 세계관은 어떤 차원에서는 일종의 쌍생아인데, 이들은 모두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는 하나(‘과학’)이며 그 외의 생각은 ‘이데올로기’라는 관점을 공유한다. 즉, 지배 세력이든 피지배 세력이든 정치적 주체는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의 입장에서 구성된 참ㆍ거짓만이 존재할 뿐, ‘다른’ 입장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48)

 

정희진에게 이론에 대한 비판은 이렇게나 쉽다. 맑스주의는 남성 중심적 사유의 이론이라고 분류하는 것만으로 맑스주의는 틀렸다고 바로 결론이 났다. ‘한눈에 봐도 똑똑해 보이는 여학생’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정희진과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여성주의가 아니라고 인문학 캠프에서 강의하는 정희진이 일관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정희진은 안드레아 드워킨에서 현재 지식상품 시장의 최신 트렌드인 ‘성차보다는 다양성, 정체성을 다루는 3세대 페미니즘’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정희진의 독자들 대다수는 지식상품 시장 종사자도 아니고 일상에 바쁜 생활인들이다. 정희진처럼 3세대 페미니즘을 학습하고 방향을 새로 잡아갈 시간은 없다. 많은 여성들이 과거의 정희진에게 영향을 받는다. 정희진이 냉소를 보내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나대는 인간들’49) 중 많은 여성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들이 ‘냉소’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정희진은 한 번이라도 공개적으로 제대로 과거 자신이 쓴 글들에 대해서 비판을 한 뒤, 자신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희진 스스로도 급진 페미니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3. 맑스주의 여성론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맑스주의 또한 정희진과 같은 페미니스트들 못지않게 남성이 “여성의 몸을 남성을 위한 용기(用器)로 취급하는 것”50)을 비판하고 있다. 그렇지만 맑스주의는 태초부터 남성이 여성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정의는 몰역사적이라고 비판한다. 엥겔스는 남녀가 평등했던 원시 공산주의가 사유재산의 발생으로 붕괴되는 과정에서 모계권이 붕괴되었다 하였고 이를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불렀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의 시작을 과학적으로 밝혔다.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자는 가정에서도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어 여자는 자기의 존귀한 지위를 상실하고 노비로,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순전한 산아도구로 전락했다. 여성의 이와 같은 굴욕적인 처지는 특히 영웅시대의, 특히 고전시대의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노골적이었는데, 나중에 점차 경감되어 그럴듯하게 꾸며졌으며, 때로는 조금 완화된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그러한 처지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확립된 남성 독재의 최초의 산물은 당시 발생하고 있던 가부장제 가족이라는 중간 형태이다.51)

 

이러한 모순은 모계권의 몰락과 남성의 혈통가문, 그리고 부계상속권으로 넘어감으로써 그 해결책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러한 혁명은 인간들이 체험한 것 중 가장 절실한 것이다. 이로써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가 시작되었고, 계속되는 발전 과정에서 여자는 남성에 의해 멸시당하고, 노예화되고, 남자의 욕망의 노예이자 아이 낳는 단순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52)

 

맑스주의는 태초부터 남성의 지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유재산의 발생으로 계급이 발생하면서 동시에 가부장제도 발생하였다고 본다. 사유재산이 발생하기 전인 씨족 제도, 즉 원시 공산주의에서는 남녀는 평등하였다.

 

씨족 제도에는 지배와 예속이 있을 수 없다는 데에 그 위대성과 동시에 한계가 나타나 있다. 씨족 제도 내부에서는 권리와 의무 사이에 아직 어떤 구별도 없다.53)

 

남녀는 각각 자기의 영역―남자는 삼림에서, 여자는 집에서―에서 주인이다. 각자는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사용하는 도구의 소유주이다. 즉 남자는 무기, 수렵 및 어로 도구의 소유주이며, 여자는 가구의 소유주이다. 가정 살림은 원시 공산주의적 원칙에 따라 몇 개의 가족, 종종 많은 가족에 의해 운영된다. 공동으로 만들어 이용하는 것은 공동재산이 된다.54)

 

맑스주의는 원시 공산주의, 남녀가 평등하던 시대55)는 사유재산의 발생으로 씨족이 붕괴되면서 나온 부족의 시대에 가부장제가 발생하면서 끝났다고 본다.

 

가축 떼와 기타 새로운 재부의 출현과 더불어 가족 내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무언가를 구해 오는 것은 언제나 남자의 일이었다. 여기에 필요한 수단은 남자가 만들었고, 또 그것은 남자의 소유였다. 가축 떼는 생계를 위한 새로운 획득수단이었다. 처음에는 가축을 길들이고 다음에는 그것을 사육 관리했는데, 이것은 남자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가축은 남자의 것이며, 가축과 교환해 얻은 상품과 노예들 역시 남자의 것이었다. 이제 획득한 모든 잉여는 남자의 것이었다. 여자는 잉여의 소비에는 가담했지만, 그것에 대한 소유권은 없었다. ‘사나운’ 전사와 사냥꾼은 집에서 여자 다음가는 자리에 만족했지만, ‘조금 더 온화한’ 목축민은 자기의 재부를 뽐내고 첫 번째 자리에 올라서면서 여자를 두 번째 자리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여자는 불평하지 못했다. 가족 내의 분업은 남녀 간의 재산분배를 규정했다. 가족 내의 분업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직 가족 밖에서의 분업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족 내 분업이 기존의 가정 내 관계를 완전히 전복시켰다. 전에는 가정에서의 여자의 지배를 보장해 주었던 바로 그 원인, 즉 여자가 가사노동에만 종사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가정에서 남자의 지위를 보장해 주었다. 여자의 가사노동은 이제 남자의 생활필수품 획득에 비해 그 의미를 상실했다. 남자의 노동이 전부였고, 여자의 가사노동은 보잘것없는 부차적인 것으로 변했다.56)

 

엥겔스가 제시한 여성해방의 해법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는 남성이 임신, 출산을 하는 여성의 육체를 태초부터 지배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보면, 여성해방의 해법은 달라진다. 엥겔스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의 시작을 위와 같이 밝힌 후 다음과 같이 여성해방에 대한 해법의 과정을 제시한다.

 

여성의 해방, 남녀의 평등은 여자가 사회적 노동에서 배제되어 사적인 가사노동에만 종사하고 있는 한 불가능하며, 또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이미 여기서 명백해진다. 여성의 해방은 그들이 사회적 규모의 생산에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또 그들이 돌보아야 할 가사가 아주 적을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57)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꼴론따이는 맑스주의의 이러한 전통 위에 서 있다.58)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은 가족의 발전사를 사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간결하게 역사적으로 정리한 후, 공산주의에서 가족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 연설이다.

 

 

러시아 혁명 이전 짜르가 다스리는 러시아는 신정일치 사회로 혼인식뿐만 아니라 부부 등록도 교회에서 했다. 당연히 여성 입장에서는 이혼은 불가능하였다. 1917년 볼쉐비끼 혁명이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1918년 교회나 종교의 권위로부터 가족과 결혼을 해방시켜 시민법에 의한 결혼을 공식화했고 이혼 또한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가족법은 신정일치 국가의 결혼 제도를 완전히 붕괴시켜 버렸다.59) 볼쉐비끼가 봉건적 결혼 제도를 붕괴시킨 것은 자본주의적 결혼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사회주의에 걸맞는 제도가 제시되어야 했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꼴론따이는 1918년 11월 제1차 전 러시아 여성 노동자ㆍ농민 대회에서 공산주의하에서 가족의 변화에 대한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은 “공산주의와 가족”이라는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공산주의와 가족”은 시민법의 도입으로 러시아의 봉건 결혼 제도가 붕괴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러시아 여성 노동자ㆍ농민에게 공산주의 사회에서 가족의 전망을 보여 주고자 하였다. 꼴론따이는 공산주의는 여성을 가내 노예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며 아이들의 양육은 국가가 책임지기에 구체제의 결혼 제도는 사라지고 평등한 두 구성원 간의 자유결합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러시아 여성 노동자ㆍ농민 앞에서 하는 연설임에도 불구하고 양육에 관련하여 ‘부모’라는 말을 반복 강조하여 사회주의하에서는 가족 내에서 아이를 책임지는 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꼴론따이는 내전으로 파괴된 경제 재건을 위해 시작된 신경제 정책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1923년에 소설 ≪붉은 사랑≫을 썼다. 러시아 혁명 직후 내전 시기 쓴 소책자 “공산주의와 가족”에서 제시된 꼴론따이의 사상은 소설 ≪붉은 사랑≫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바샤의 아이 아버지가 되었을 무정부주의자와 파트너로서의 관계는 끝이 났다. 신경제 정책이 진행되면서 파트너의 부르주아 의식, 혁명에 대한 불철저함이 드러났다. 신경제 정책의 도입은 내전 시기 전시 공산주의하에서의 의무 노동에서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결과를 낳았다. 꼴론따이의 단편 소설인 “자매”는 일자리를 박탈당한 여성들이 자신을 부양할 남편을 찾거나 성매매를 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신경제 정책은 사회주의의 오래된 주제였던 가사 노동의 사회화 시도 역시 폐기했다. 이러한 위기하에서 꼴론따이는 이런 문제들을 타개하고자 ≪붉은 사랑≫을 썼던 것이다.

 

≪붉은 사랑≫에서 바샤의 친구인 그루샤는 바샤의 ‘임신, 출산, 양육’을 걱정하지만 주인공 바샤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임신, 출산, 양육의 문제는 더 이상 가족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가족에서 공동체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야 해, 살아야 한다고”라고 혁명적 낙관성을 가지는 것이 볼쉐비끼로서의 자신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꼴론따이의 ≪붉은 사랑≫은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려다가 일상에서 반복되는 싸움에서 지쳐서, 신경제 정책 시기 실세였던 네프맨인 무정부주의자에게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무정부주의와의 관계를 끝내면서 볼쉐비끼로서의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다시 알게 된다. 바샤는 그 지긋지긋한 공동체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붉은 사랑≫은 바샤의 친구인 그루샤가 아버지도 없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바샤에게 묻자 바샤가 다음과 같이 답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건 정말 그래. 하지만 어떻게 아이를 혼자서 키울 거니?”

“나 혼자서라고? 조직이 길러줄 거야. 우리는 탁아소를 세울 거야. 너도 거기 데리고 가서 일하게 할 거야. 너도 아이들을 좋아하잖아. 그렇게 되면 그 애는 우리들의 아기가 되는 거지. 누구나 아이를 갖는 셈이지.”

그들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지금은 나는 서둘러 짐을 꾸려야 해, 그루샤. 기차가 아침에 떠나거든. 내일부터 일을 나가야 해.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챙길 참이야. 스쩨빤 알렉세예비치는 나를 축복해 줬어. 일로 돌아오라고! 그루샤, 그때의 그 기쁨을 알겠지?”

그녀는 그루샤의 두 손을 꼭 쥐었다. 두 사람은 아이들처럼 방 안에서 춤을 추었다. 마네킹을 넘어뜨릴 뻔 했다.

그들은 커다란 소리로 웃었다. 아래층 정원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살아야 해, 그루샤, 살아야 한다고.”60)

 

 

4. 정희진의 페미니즘과 맑스주의는 대의에서 같이 갈 수 있는가?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 끝내기’61)라는 대의에서 같이 갈 수 있는 부분들은 존재하는가? 정희진의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해법을 들어보자.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보육원 의무교육화≫는 맞는 말 같아 보이지만, 비현실적 주장이다. 왜 아이를 국가가 키워야 하는가? 나는 이 진부한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왜 남성들은 아이를 “키우겠다”, “키워야 한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는가. 왜 그들에게 육아는 언제나 남(여성, 국가, 사회)의 일인가. 말할 것도 없이 육아는 사회의 책임이다. 그러나 남녀에 따라 다르다. 이제까지 여성의 일생은 육아와 맞바꾸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주장이 실현되려면, 모든 남성이 최소 10년 이상은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 전까지 국가는 절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육아에서 국가보다 남성 개인의 인식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국가는 남성을 ‘따라갈’ 뿐이다. 육아가 여성운동의 의제인 것 자체가 잘못이다. 육아는 남성의 성 역할이 되어야 한다. 남성도 여성이 겪는 육아와 모성으로 인한 죄의식, 스트레스, 자기 분열, 커리어 포기 경험을 겪어야 한다.

육아와 가사를 전적으로 여성에게 떠넘기면서도 엄마들을 ‘맘충(mom蟲)’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미소지니 문화에서 육아 인프라는 절실하다. 그러나 정책과 예산을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가 ‘육아로 고통 받는’ 남성 대중의 압력을 받지 않는 한, 질 좋은 보육원은 공약에 머물 것이다. 여성주의 경제학자 낸시 폴브르의 지적대로 육아와 가사 노동은 ‘아웃소싱’이 어려운 분야다. 집안일은 연속적이라 교대와 의사소통, 합의가 쉽지 않고 여러 사람이 분담하기 힘들다. 한 사람이 일정 시간 일한 이후, 순서를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다. “벌써 빨래 돌렸니? 안 돌려도 되는데”, “찌개가 쉬도록 뭐했냐”, “왜 그걸 버렸어? 쪄서 먹으면 되는데”… 가사일도 이러한데 육아는 24시간 지속적 돌봄 노동이다.62)

 

정희진의 글의 전체 맥락이 아니라 ‘모든 남성이 최소 10년 이상은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라는 주장만 집중해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주장만 보게 되면 정희진이 ‘남자가 군대를 가니까 여자도 군대를 가면 양성평등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에 대한 ‘미러링’을 하는 것으로 읽게 된다.

정희진은 “여성주의는 남성과 대립하고, 남성을 대체하고, 남성에 대항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제안하는 사유이다. 여성주의는 가부장제의 반(反)담론(counter discourse)이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다양한 인식자의 위치를 드러내고, 그 입장과 조건을 경합하는 사유이다”63)라고 주장하였다. 정희진이 “병영을 통해서 성평등을 이룬다는 발상 자체가 남성 중심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면, 남자도 똑같이 당해 보라는 의미에서 ‘모든 남성이 최소 10년 이상은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라고 주장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희진이 국가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진부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국가가 맡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희진은 남성들의 원망(願望)에 따라서 국가 권력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급진 페미니스트이기에 “국가보다 남성 개인의 인식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고 이들이 바뀌지 않는 한 국가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은 총자본의 이해를 반영한다. 개별 자본의 이해를 넘어서서 총자본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서 개별 영역의 재생산을 넘어서서 대립되는 정책을 구상, 시행한다. 국가 권력은 남성 개인들에 의해서 바뀌지는 않고 총자본의 이해에 따라서 바뀐다. 그렇더라도 보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짜내기 위해서 자본주의가 남성에게 강요하고 있는 성차별주의를 남성이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남성이 양육을 여성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자본주의 노예 상태에 있다면 국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희진의 임신, 출산, 양육의 문제에서 ‘남성 개인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희진이 가정 폭력에 대해서 쓴 글들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한국 사회에서는 때리는 남편이 가정파괴범이 아니라, 폭력에서 탈출하는 피해 여성이나 이들을 돕는 여성운동가가 가정파괴범이다”64)라고 한 날카로운 지적들과 ≪아주 친밀한 폭력―여성주의와 가정 폭력≫65)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희진의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계급 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권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급진 페미니즘에서 나온 ‘남성이 바뀌면 국가가 바뀐다’는 것과 같은 몰역사적인 주장들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해러웨이는 이성애를 거부하고,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에도 지쳐버린 후 수간으로 넘어갔다. 정희진은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론에 기반하여 남녀 관계를 적대적 모순 관계로 봤지만, 급진 페미니즘 내의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을 거부하는 것은 해러웨이와 동일하다. 그러나 해러웨이 선언 수준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적 분위기에서는 해러웨이 선언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한국의 좁은 지식상품 시장에서 해러웨이의 담론상품은 시장성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정희진이 해러웨이와 같이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에서 피곤해진 상태에서 해러웨이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남성에 대한 냉소일 것이다.

 

“남성도 가부장제 구조의 희생자”라는 식의 언설은 남성을 자기 변화가 불가능한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안전과 성숙을 위해 한국의 남성 문화, 한국 남성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한국 남성에게 국가 안보나 생계 부양의 책임을 요구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사실 역사상 한국 남성은 ‘보호자 남성’이라는 성 역할을 수행한 적이 없으며,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남녀와 상관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인간들이 ‘나대는’ 사회가 가장 위험하다. 그러니 이제 남성들도 ‘거울’ 앞에 섰으면 한다. 자신을 보라. 자신을 알고, 남에게 폭력과 피해를 주지 말라.

남성에게 가부장제 사회의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소모적인 긴장을 유발할 뿐이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성 역할’은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이다. 남성 사회의 변화, 이것이 진정한 미투 혁명이다.66) (강조는 인용자.)

 

급진 페미니즘으로는 남성은 변화되지 않으며 남성들을 더 성차별주의자가 될 뿐이다. 남성의 변화를 위해서 페미니스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면, 우리는 급진 페미니즘이 아니라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가 ‘남자, 투쟁을 함께 하는 전우’라고 선언한 것 등에 귀 기울여야 한다.

 

 

5. 남자, 일상의 고역을 나누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우는 동지

 

벨 훅스의 ‘남자, 투쟁을 함께하는 전우’

벨 훅스는 반남성적 태도를 페미니스트의 중심 입장으로 정하려고 시도했던 “레드 스타킹 선언서”를 비판한다. “레드 스타킹 선언” 3절은 우리도 자주 접해서 아주 ‘친숙한(?)’ 내용이다.

 

우리는 우리를 억압하는 행위자는 바로 남자들임을 확인한다. 남성우월주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본적인 지배의 형태이다. 그 밖의 모든 형태의 착취와 억압(인종차별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은 남성우월주의의 확장이다.67)

 

벨 훅스는 이러한 반남성 정서에 반대한다. 벨 훅스는 하층계급 남성들의 ‘한 인간이 사랑할 수 없을 때 그 영혼을 좀먹는 끔찍한 공포’68)로 여성혐오를 하게 되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신들이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소유하는 특권과 힘이 있다고 믿도록 사회화된 빈곤층 혹은 노동자계급의 남자는 이런 특권이 그의 삶에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남자는 자신이 배웠던 남성성의 개념, 그리고 그 개념에 맞는 행동을 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 사이의 모순에 관해 미국의 어떤 남성 집단보다도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졌다. 사회가 ‘진짜 남자’라면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던 특권이나 권력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늘 ‘상처’ 입었고 정서적 흉터가 생겼다. 따돌림 당하고 좌절하고 화가 난 그들은 어쩌면 여자를 공격하고 학대하고 억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지원하고 영속시킨다고 해서 궁극적인 이득을 얻어내지는 못한다.69)

 

벨 훅스는 ‘남성도 가부장제 구조의 희생자’로 본다. 벨 훅스는 수많은 남성들의 영혼이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에 말살되어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한다.

 

미국 대다수 남성들은 자기 정체성이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설령 가부장제에 매달린다고 해도 그것이 문제의 일부라는 사실을 감지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자리가 없고, 일한 만큼 보상도 받지 못하고, 여자들이 더 많은 계급 권력을 쥐는 상황에서 돈 없고 힘없는 남자들은 자기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쉽지 않다.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는 결코 자신의 약속을 책임지지 못한다. 수많은 남성들은 가부장제의 약속이 실은 불의와 지배에 뿌리를 두며 약속이 지켜진대도 자기네를 영광에 이르도록 해주지 않는다는 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해방적 비판에 참여하지 않고 있기에 괴로워한다. 남성들이 애초에 그들의 영혼을 말살해 버린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의 사고방식을 되새기며 해방운동을 맹비난하는 동안 그들의 마음은 소년 시절에 그랬듯이 길을 잃고 헤맨다.

소년과 남성을 보듬어 안으면서, 소녀와 여성이 꿈꾸는 모든 권리를 소년과 남성도 누려야 한다고 요구하는 페미니즘 남성성을 수용하는 페미니즘이라면 미국 남성들을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다. 특별하게도 페미니즘적 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삶을 돌보고 긍정하는 방식으로 정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페미니즘 남성성이 널리 인정받는 세상을 만드는 법을 보여줄 새로운 전략, 새로운 이론, 길잡이가 꼭 필요하다.70)

 

벨 훅스는 남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수사법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전혀 없고 오히려 기존의 성차별주의를 더 강화한다고 한다고 말한다.

 

반남성 정서는 많은 가난한 노동자계급 여성들, 특히 유색인 여성을 페미니즘 운동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이 여성들은 자신들이 부르주아 백인 여성보다는 인종이 같고 계급이 같은 남성들과 공통점이 더 많다는 사실을 삶에서 직접 경험으로 알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여성들이 접하는 고통과 고충을 알고 있지만, 남성들이 접하는 고통과 고충 역시 알고 있다. 그리고 남성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 성차별에도 불구하고 흑인 여성들은 인종차별 반대 투쟁에 똑같이 공헌했으며 현대 흑인 해방운동 이전에 있었던 투쟁에도 빈번히 참여했다. 흑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들의 공헌을 인정했다. 해방을 위한 집단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한데 묶는 특별한 끈이 있었으며 흑인 여성과 흑인 남성은 이 특별한 끈으로 하나가 됐다. 그들은 정치적 연대라는 경험에 대해 알고 있었다.71)

 

지금까지 남자를 적으로 간주한 페미니즘의 수사법에는 긍정적 의미는 거의 없었다. 대다수 남성들은 비록 삶에 이득이 없더라도 성차별과 성차별적 억압을 영속화하고 유지시키도록 사회화됐다. …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남성이 행한 여성학대를 도덕성 붕괴ㆍ광기ㆍ비인간화의 표출이라기보다는 마치 특권의 행사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성차별주의 이데올로기는 남성을 세뇌시켜서 여성에게 행사하는 폭력이 아무 이득이 없는데 이득이라고 믿도록 만든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가들 역시 남성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왜곡된 권력관계나 자기행위에 대한 전반적 통제력 부족, 감정의 무력함, 극단적 비이성, 그리고 많은 경우 완전한 광기를 표출한 것이라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남성은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이런 불안스러운 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남자들이 여성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특권과 동일시하도록 세뇌당하는 한, 그들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나 타인에게 입힌 피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변화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72)

 

벨 훅스가 말하는 것은 남성 전체를 ‘적’/‘잠재적 성범죄자’으로 보는 입장 등을 바꾸지 않는 한, 남성 일부는 ‘여성혐오’에 빠져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벨 훅스가 남성을 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벨 훅스의 가부장제 개념이 제도화된 성차별주의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벨 훅스의 페미니즘은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개념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페미니스트들이 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남성우월주의(male chauvinism)’와 ‘성차별주의(sexism)’라는 용어 대신 ‘가부장제(patriarchy)’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가부장제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여성과 남성 모두가 분명하게 인식하길 바랐다. 현대 페미니즘의 전성기 동안 대중문화에서 그 단어 자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반남성 행동주의자들은 성차별적 남성 행동주의자들만큼이나 가부장제라는 시스템과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강조하는 데 전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남성은 전능하고 여성은 무능하며 모든 남성은 억압적이고 여성은 늘 피해자라는 개념이 자동적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여성들은 성차별주의가 지속되는 것의 책임을 오로지 남성에게만 돌리면서 가부장제에 대한 자신들의 충성심, 권력에 대한 자신들의 욕망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배자가 되려는 자신의 갈망을 피해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감췄다. 많은 선구적인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처럼 나 역시 남성의 착취와 억압에 질린 여성들이 내세운 개념, 즉 남자들은 ‘적’이라는 잘못된 개념에 이의를 제기했다. 일찍이 1984년에 나는 ≪페미니즘―주변에서 중심으로≫라는 책에 “남자, 투쟁을 함께하는 전우”라는 제목의 장을 실어서 페미니스트 정책의 옹호자들이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지속되는 책임을 모두 남성에게만 돌리는 어떤 미사여구에도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73)

 

벨 훅스는 정희진을 보고 왜 남성중심주의가 지속되는 책임을 왜 남성에게만 돌리느냐고 묻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사람들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라는 간결한 정의를 읽고 또 읽어서 그 의미를 깨우치기를 바랐다. 나는 이런 식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하는 게 마음에 들어 10년도 더 전에 쓴 ≪페미니즘―주변에서 중심으로≫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정리했다.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못 박는 정의라 마음에 든다. 또한 이 정의는 성차별주의가 문제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이렇게 콕 집어서 말해주는 덕에 여자든 남자든 태어날 때부터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게끔 사회화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사회화 때문에 여자도 남자만큼이나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74) 그리고 이는 남성중심주의를 두둔하거나 정당화한다기보다 페미니즘 사상가들이 이 운동을 단순히 남녀 대립 구도로 인식하는 건 순진하고 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제도화된 성차별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가부장제를 철폐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방식과 정신부터 바꾸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을 버리고 그 자리에 페미니즘적 사고와 행동을 들이지 않는 한, 우리 모두가 성차별주의를 영구화하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75)

 

정희진은 벨 훅스의 질문, 남성중심주의가 지속되는 책임을 왜 남성에게만 돌리느냐고 묻고 있는 이 질문에 언제 답할 것인가? 정희진에게 중요한 것은 3세대 페미니즘의 선두에 서는 것보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닐까?

 

벨 훅스,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을 비판하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삼는’ 피로감에서 벗어나고자, 도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가 되고 다종 가족을 꿈꾸었지만, 벨 훅스는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삼는’ 페미니스트들을 아예 거부한다. 그들은 성차별주의를 강화할 뿐이기 때문이다. 벨 훅스는 이러한 페미니즘을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white supremacist capitalist patriarchy)와 한 짝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며 이러한 페미니즘을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주류 세력인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의 입장에서는 반남성주의 노선을 취하지 않거나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에 중점을 두지 않은 페미니즘 이론을 억압하는 편이 득이었고 개혁적 페미니스트들도 이들의 목소리를 지우려 애썼다. 개혁적 페미니즘은 그들에게 계층 이동의 수단이었다. 그들은 일터에서 남성중심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났고 좀 더 주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성차별주의가 여전히 만연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기존 체계 내에서 최대한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이 거부한 궂은일은 착취당하는 종속된 하층계급 여성들이 떠맡을 터였다. 그들은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여성들의 종속을 수용하고 오히려 이와 결탁함으로써 기존 기부장제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성차별주의와도 동맹을 맺은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남성과 대등한 대우를 받으며 일한대도, 가정에서는 대등하길 원할 때만 권리를 요구하는 이중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바란다. 레즈비언이라면 직장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는 특혜를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계급 권력을 이용해 남성과 거의 혹은 전혀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생활을 꾸릴 수도 있다.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성의 수만큼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을 낳았다. 별안간 페미니즘에서 정치성이 서서히 옅어졌다.76)

 

여성을 (차별적인 법률을 개정하거나 차별철폐 조처를 통해) 보상받아야 할 젠더 평등의 ‘피해자’로 해석하는 데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다보니, 여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에서 우선 내면화된 성차별주의부터 직시해야한다는 주장은 힘을 잃고 말았다. 여성들은 연령을 불문하고 남성중심주의나 젠더 평등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분노하기만 하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내면화된 성차별주의를 직시하지 않은 채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배반하곤 했다.77)

 

여성해방주의자들은 모든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남성에게는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할 책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지 않았다. 여성해방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은 모두 여성을 혐오하는 강한 억압자, 즉 적이었고 여성들은 억압받는 자, 즉 희생자였다. 자유주의자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식의 과장된 설득으로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 기존의 남녀 간의 근본적 갈등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생각, 즉 여성에게 권리를 주면 당연히 남성은 손해를 입는다는 생각에서 남녀의 입장이 뒤바뀌었을 뿐이었다.78)

 

다시 살펴보면 ‘적으로서의 남자’를 강조한 것은 남녀 간의 관계를 개혁시키고 남녀가 함께 노력하여 성차별을 탈학습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빗겨나간 것이 분명하다.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한 부르주아 여성들은 남녀 간의 근원적인 양극화의 개념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평등한 권리를 획득하는 데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들은 남성을 적으로, 여성을 희생자로 묘사하는 데 엄청난 공을 들였다. 또한 그들은 일단 똑같은 몫의 계급특권을 갖게 되면 남성과의 연대를 걷어치울 수 있는 여성 집단이었다. 그들의 궁극적 관심은 성차별적 억압을 제거하려는 투쟁이 아니라 똑같은 몫의 계급특권의 획득이었다. 남성에게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남자가 없는 여성으로서 그들에게 기회의 평등이 요구된다는 생각을 과장했다.79)

 

벨 훅스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80) ‘혁명’을 그의 책에서 계속 꺼내고 논하고 있지만 맑스주의적 의미가 아니라 ‘제도화된 성차별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가부장제를 깨뜨릴 의식 혁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급진 페미니즘이 남성에게 보내는 냉소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비판한다.

 

남성과 접촉을 멈춤으로써 성차별을 거부할 수 있다는 분리주의자 개념은 부르주아 계급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81)

 

벨 훅스와 같이 ‘남자, 투쟁을 함께하는 전우’를 인정하는 페미니즘은 맑스주의와 같이 성차별주의를 허물 수 있을 것이다. 벨 훅스와 같은 페미니스트들과 맑스주의자들은 체제 변혁과 의식 혁명이 같이 가야 제도화된 성차별주의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같이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태초부터 여성은 억압받고 있다는 몰역사적 입장을 가지고 모든 남성을 적으로 보는 급진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은 꼴론따이의 말대로 “남성들을 일상의 고역을 나누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우는 동지”로서 본다. 남성들과 함께 투쟁한다. 그렇기에 ‘남자’를 (심리적) 가부장제를 같이 깰 ‘투쟁을 함께 하는 전우’로 보는 벨 훅스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과 같이 간다.

 

 

6. 여러분은 젊고 서로를 사랑한다.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유일한 나라가 됐다

2018년 8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출생 통계(확정)’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82)은 0.98명으로 출생 통계를 작성한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7년 기준 OECD 통계에서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적었다.

정부는 1차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발표한 2006년부터 12년간 152조 원 이상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지만 이 기간 합계출산율은 1.13명에서 0.98명으로 감소했다.83)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합계출산율은 혼인율과 기혼 여성 출산율에 의해 결정되는데 기혼 여성 출산율은 2005년 1.22명에서 2014년 1.46명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혼인율은 하락했다. 혼외출산율이 2.1%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한국에서 출산율을 높이려면 혼인율을 높여야 한다.84) 정희진도 이를 알고 있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출산의 원인은 저출산이 아니다. 여성들의 결혼 기피와 만혼이다. 기혼 가정 출산율은 1.9명으로 2명에 육박한다. 결국 저출산의 원인은 여성들의 의식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한남’들의 행태와 고실업 지속 상태다.85)

 

혼인율은 전적으로 소득에 비례한다. 김유선의 보고서를 보면 첫째, 남성은 임금 수준이 가장 낮은 1분위(하위 10%)는 기혼자 비율이 6.9%로 가장 낮고, 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10분위(상위 10%)는 기혼자 비율이 82.5%로 가장 높다. 둘째, 여성은 4분위를 저점으로 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기혼자 비율이 높다. 즉 4분위(하위 40%) 기혼자 비율은 28.1%고, 10분위(상위 10%) 기혼자 비율은 76.7%로 가장 높다. 남녀 모두 혼인과 임금 수준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86) 쉽게 말하자. 임금 수준에 따라 결혼 확률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정희진의 저 가설을 받아들이면, 돈을 잘 버는 것과 여성들의 의식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비례하는 것이다.

 

모든 남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계급 간에도 다르고 세대 간에도 다르다. 억압받고 착취받고 있는 남자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그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뒤틀린 (심리적) 가부장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벨 훅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르주아 백인 여성들, 특히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특권층 백인 남성이 계급특권을 똑같이 나눠 갖기를 거부하는 것에 질투하고 분노했다. … 모든 남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동일한 것은 아니며, 가부장제는 계급과 인종의 특권이나 착취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사실, 모든 남자가 성차별에서 똑같은 수혜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적극적으로 주목시키지 않았다. 부르주아 백인 여성은 성차별에 희생되는 경우가 많기는 했지만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유색인 남성들보다는 더 힘이 있고 특혜를 받았으며, 덜 착취되고 덜 억압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당시 많은 백인 여성해방주의자는 억압받는 남성 집단의 불운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인종특권 및 계급특권을 행사하는 그들은 그에 걸맞게 억압받는 남자들의 삶의 경험에 관심을 가질 가치가 없다고 여겼고, 그들의 삶을 외면했으며, 동시에 자신들이 착취와 억압에 지속적으로 일조했다.87)

 

한국의 노동계급은 남녀 모두 노동력 재생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력 재생산비는 노동자 개인이 다음 날 일할 노동력을 육체에 ‘재충전’시키는 것과 다음 세대에도 노동력이 공급될 수 있도록 가족을 이루고 출산, 양육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다음 날 일할 노동력을 자신의 육체 내에 ‘재충전’시키는 것조차 힘들기에 다음 세대의 노동력 공급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88) 여성들이 성차별주의로 억압받고 있고 남성들이 아직도 성차별 의식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계급 남녀가 결혼을 못 하는 이유를 ‘여성들의 의식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한남’들의 행태’에만 책임을 돌리는 페미니즘은 남녀가 같이 투쟁으로 돌파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의 문제를 남녀 간의 성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월급 500만 원을 받는 남녀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사랑하고 결혼하는데, 최저임금을 받는 남녀들, 일자리를 구하는 남녀들은 SNS에서 성별을 걸고 하는 전쟁을 매일매일 벌이고 있다’는 것이 더 이상 농담만은 아니다. ‘워마드’ 여성은 남성을 ‘한남충(韓男蟲)’,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남성은 ‘번식탈락충’이라 조롱하고, 명품백을 ‘한남퇴치용품’이라고 하고, ‘안티 페미’ 남성은 여성을 ‘멧퇘지(메갈리아+돼지)’, ‘삼일한(3일에 1번 때려야 한다)’으로 비하하고 있는 한 세상이 바뀔 가망은 없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남자 페미니스트의 존재를 부정한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는 태초부터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것으로 믿는 급진 페미니스즘에서는 남자는 생물학적 이유에서 아예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생물학적 이유에서 남자 페미니스트는 존재할 수 없기에, 남자 페미니스트를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은 뿔 달린 날개 있은 말인 ‘유니콘’이라고 칭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보자. 스스로를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를 완전하게 받아들이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있다고 한다면 그가 페미니스트로서 해야 할 일은 남성인 자신을 죽이는 자살이다.

 

태초부터 남성계급이 여성계급을 생식에 대한 생물학적 지배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억압하고 있다는 급진 페미니즘이 여성운동의 전부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적대적 모순 관계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성차별주의를 함께 변화시켜가야 한다는, 즉 벨 훅스가 제시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다음은 결혼한 남녀 페미니스트가 성차별주의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 비혼주의자였고, 가부장제도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임신이나 출산이 내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임신 중에도 내가 아들을 낳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임신 16주가 지나 의사가 아이 성별을 ‘아들’이라고 알려주었을 때 잘못 보신 것 같다고, 다시 확인해 달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나의 페미니즘은 얼마나 폭이 좁았던가. …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병원과 자본, 국가 권력 시스템 속에 그저 기계 부품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서 임산부, 양육자, 그리고 아이는 아주 좋은 돈벌이 대상이었다. … 일부 페미니스트들에게 기혼 유자녀 여성인 나는 ‘가부장제의 부역자’였고, 내 아들은 ‘한남 유충’이었다. 종일 육아와 가사노동을 하는 남편은 ‘라테파파’라는 달콤한 칭송과 ‘한남’이라는 혐오 사이를 오가야 했다.

끊임없이 분류당하고 원하지 않는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두가 모두를 혐오하고 무시했다. 참고 견디기 어려웠다. 나, 남편, 아이 모두 벗어나야 했다.

나와 남편은 이런 상황 속에서 조금이나마 덜 미안하기 위해, 덜 힘들기 위해 수많은 대화와 고민을 했다. 그러한 선택이 쌓이고 보니 그게 다 페미니즘이었다. 둘 중 누구도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거나 굳이 인식하지 않았지만, 혐오와 차별을 알아차리고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가 아닌 개인적인 욕구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게 바로 ‘페미니즘’이었다.89)

 

심리학자 타브리스는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다’라고 한다. 타브리스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월경 전 증후군’ 등의 여성의 비정상성을 강조하는 잘못된 논리를 파헤치며 사회가 여성성을 양육, 의존성, 수동성, 가정적인 특성과 직결시키면서 여성을 무능력한 존재로 전환시키고 시켜버린 것을 비판한다. 그리고 여성우월주의 역시 남성우월주의처럼 병리적이며 극복해야할 이분법에 근거한 관점으로 비판한다. 여성들도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문화페미니즘이나 에코페미니즘 등의 이론에서 ‘여성=자연, 평화 vs 남성=문화, 폭력’의 대립 항으로 보고 우월성에 있어서 양자택일을 하는 식으로 접근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 반대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불변하는 성격으로 간주하는 전반적인 경향은 남성과 여성이 살아가는 맥락의 중요성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일상생활에서 남성과 여성은 모두 때때로 (예를 들어 아이들과 함께 놀 때나 자기 어깨에 기대어 우는 친구를 달래줄 때) “여성스러운” 방식으로 행동하며 이따금씩 (예를 들어 승진을 놓고 경쟁을 할 때) 남녀 모두 “남성스러운”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나은 양극화된 대립물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보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 모두가 양쪽을 모두 “행하고 있다”는 점을 잊게 된다.90)

 

여성과 남성은 같이 (심리적) 가부장제/제도화된 성차별주의를 같이 넘어서야 한다. 다행히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나윤경 원장은 20대 남성으로 호명되는 이들이 왜 ‘페미니즘에 반발하는가’에 대한 진단을 내렸다. 남성에게 그 책임을 다 돌리면서 냉소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남성성을 제도적으로 학교 교육 현장에 편입하지 못한 시스템의 실패라는 것이다.

 

나윤경(54)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지난 3일 인터뷰에서 “남성성이 학교 교육 현장에서 (잘 길러지도록) 제도적으로 편입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해진 분량과 마감시한을 요구하는 ‘수행평가’를 예로 들며 “한국 사회가 시스템을 갖춰가면서 (평가기준 등이) 여성성에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남성적인 특징은 소외되기 쉽다고 봤다.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교육방식이나 평가기준이 다양하지 않으니 “남자아이들에게 여자아이는 ‘우수한 존재’일 뿐이고, 여성차별은 억지 주장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최근에야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앞서 지난달 27일 열린 취임 1돌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진단을 내린 적이 있다. 능력주의를 맹신하고, 다양성을 보장하거나 존중하는 대신 차별을 정당하게 여기는 사회가 된 것은 “시스템의 실패”이자 “기성세대의 실수”라고 했다. 최근 ‘양평원’의 변화도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언어를 개발하고 이를 위한 성교육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91) (강조는 인용자.)

 

지배 이데올로기는 피지배계급에게 경쟁과 차별을 정당하게 여기도록 만들어서, 피지배계급을 최대한 착취하고 피지배계급의 체제에 대한 분노를 피지배계급 내의 서로 간의 증오로 전환되도록 만들고 있다. 일하는 남성과 여성이 무엇과 싸워야 되는지를 모르게 만드는 모든 것들은 중단되어야 한다. 다른 성별에 대해서 냉소를 퍼붓는 것도 중단되어야 한다.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고통받은 노동계급들끼리 성별을 걸고 서로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 다음 날 일할 노동력을 육체에 ‘재충전’시키는 것도 힘들고, 그조차도 못 하는 실업 상태에서 일자리를 간절히 찾고 있는 힘든 이들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남성 노동자계급과 여성 노동자계급은 함께 나아가야 한다. 노동운동의 계급적 운동으로의 복원이 절실하다.

 

여러분은 젊고 서로를 사랑한다.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서 룩셈부르크92)나 꼴론따이의 여성해방에 관한 글을 소개한 것은 (1) 페미니즘이라는 여성에 관한 특정 이념이 여성론 전체인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것을 풀고 (2) 부르주아 여성들이 주도해 온 페미니즘 이외에도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이 주도하는 여성해방론인 맑스주의 여성론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맑스주의 여성이론은 현재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이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거론한 맑스주의 여성이론에 대한 정리는 ≪철학사전≫에 나온 ‘가족’ 항목을 그대로 옮겨도 무난할 것이다.

 

가족(家族). [라]familia [독]Familie [영]family [프]famille.

혼인, 동일 혈통, 공동의 자손 등을 토대로 형성되는 인간의 사회적, 생물학적 생활 공동체. 이것의 내용과 형식은 역사적으로 소유 관계를 통해 결정된다. 가족의 형태는 사회적 발전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변화해 왔다. 원시 사회 내에서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에 기초하고 있던 <군혼가족>으로부터 <대우혼 가족(對偶婚家族, Paarungsfamilie)>이 생겨났고 이것은 결국 <일부일처 가족>으로 대체되었다. 일부일처 가족은 사유재산 및 사유재산을 둘러싸고 생겨난 경제적 이해관계에 근거한다. 노예제 사회와 봉건제 사회에서는 그것이 주로 남자의 특수한 경제적 지위 및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가부장적 가족 형태를 띠었다. 그 후 자본주의는 가부장적 가족 형태를 해체시켰지만 남자의 경제적, 법적 특권은 부르주아 가족 내에서도 여전히 보존되었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는 무산자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를 통해 경제적 이해관계에 근거하지 않고 배우자의 애정에 기초하는 보다 높은 형태의 가족의 경제적 기초를 만들어 낸다.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가 그 경제적 기초로 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배우자 상호 간의 애정이 점점 더 중요한 가족 수립의 모티브가 되어 가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의 가족은 일부일처 가족의 보다 높은 형태이며 그 안에서는 여성의 완전한 동등권이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보장된다. 사회주의 사회는 광범위한 사회 프로그램을 통하여 사회주의적 가족의 창출을 촉진하며 특히 기혼 여성들과 어머니들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여성들이 사회 내에서 그들이 갖는 동등한 입장을 더욱더 공평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인격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가족 속에서 갖는 그들의 과제, 특히 어머니로서의 과제와 직업 활동을 성공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는 목표 아래 꾸준한 노력이 경주된다. 질적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하나의 긴 과정이며 그것은 구태의연한 습관과 전통에 대항하는 단호한 투쟁을 필요로 한다.93)

 

구태의연한 습관과 전통에 대항하여 단호하게 투쟁하자. 우리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여러분은 젊고 서로를 사랑한다.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을 살아라. 행복을 포기하지 말아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이 진정 슬픔의 연속이었다고 해서 결혼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자녀를 갖기를 겁내지 말아라. 사회는 더 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며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기뻐한다. 자녀들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의 자녀는 배고프지도 추위에 떨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꼴론따이, “공산주의와 가족”.)

 

 

* 덧붙이는 글 1. 1987년 한국의 맑스주의자 김지해,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다

 

현재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은 ‘선진국’에서 60년대 말과 70년대에 나온 급진 페미니즘이다. 강단 일부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급진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있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 또한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론의 핵심은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급진 페미니즘과 논쟁하고 있을 뿐이다. 60년대 말과 70년대에 나온 급진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맑스주의의 근본적인 비판은 1980년대에도 이미 있었다. 굳이 외국 자료를 읽지 않고서도 지금 당장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노동자의 책(http://www.laborsbook.org/) 여성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국내에서 나온 맑스주의 여성론의 연구 성과들과 번역들이 오래전부터 업로드되어 있었다.94) 1987년 제3 세계 한국의 맑스주의자 김지해는 다음과 같이 제국의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실천적 수준은 아주 일천한 상황이긴 하지만 각 부문에서 맹아적 형태를 보이면서 질적 비약을 향한 시도가 힘차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론적 논쟁은 이에 비해 비역사적이고 관념적 수준에 머물러 있어 실천을 위한 무기로서 즉 실천론으로서의 자기정립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중체계론의 압도적 영향하에서 아직도 ‘성’이냐, ‘계급’이냐 하는 기원과 본질에 관한 인식론적 차원의 논쟁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고, 실천론의 정립이라는 과제에는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해방의 주체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생존권투쟁이나 정치투쟁을 통하여 정치적 사회적 해방을 갈망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론적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분단과 6ㆍ25로 인하여 여성운동의 경험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운동 수준의 협애함 때문이기도 하다. 70년대 말부터 비로소 시작된 우리나라 여성운동에서의 이념적 시도는 미국 이중체계론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1975년 “세계여성의 해”의 이념적 기반이기도 한 이 논리는 미국의 진보적 여성운동에 의해 주도되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제3 세계 여성운동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입장으로서의 비동맹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계급만의 문제도, 성만의 문제도 아닌 여성해방이념을 제시하고, 제3 세계 식민지의 여성과 선진제국주의의 여성들이 여성으로서는 공동의 운명이고 세계적인 자매애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하면서 제3 세계 여성운동의 혁명성을 왜곡ㆍ축소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95)

 

김지해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맑스주의 여성론으로 오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중체계론’으로 번역하고자 제안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맑스주의에서 왜곡되게 가져온 피상적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한 축과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라는 또 다른 축으로 구성된 이중체계로 구성되어, 맑스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철폐’라는 슬로건하에 계급적 운동인 것으로 거짓 포장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Socialist Feminism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사회주의적 여권주의’가 되나 수많은 오해의 여지가 있으므로 ‘이중체계론’으로 번역하기로 한다. 그것은 오해의 여지뿐 아니라 선진제국의 여러 이론적 분파 중 하나의 분파에 불과한 것이 마치 계급적 (계급운동) 성격을 명확히 띤 것처럼 잘못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Socialist Feminism은 논리상 이중체계론으로 구성되어있는 하나의 이론적 조류에 불과하며 세계사적 보편성은 결여되어 있다.96)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피상적인 자본주의 비판은 몰계급적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같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가사 노동 가치화 방안’ 같이 일상에서 쓰는 ‘가치’란 말과 경제학에서 쓰는 ‘가치’를 악의적으로 혼동시켜서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을 가로막는 비과학적인 주장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에 의해 통렬하게 비판받은 바 있다.

 

뮤직홀 댄서가 그 다리로 고용주의 주머니를 채워 주는 것이 생산적인 일이며, 프롤레타리아 여성들과 어머니들이 집 안에서 하는 그 모든 힘든 일들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잔인하고 미친 것처럼 들리지만 그만큼 현재 우리의 자본주의 경제가 보여 주는 잔인함과 미친 짓에 정확하게 대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잔인한 현실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바라보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첫 임무이다.97)

 

몰계급적 노동운동이 지속되는 한 여성운동을 빙자한 이런 주장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여성, 최후의 식민지”라는 문학적 모티프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의 축적≫을 접합하려는 마리아 미즈 등의 시도98)는 국내에서는 새로운 이론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80년대의 이론이다. 그리고 맑스주의 입장에서의 이에 대한 비판은 이미 80년대에 완료되었다.99) 현재 국내에서 새로운 이론인 것처럼 나온 페미니즘적 자본축적론들은 80년대 완료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없다. 로자 룩셈부르크를 왜곡하여 페미니즘적 자본축적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맑스주의의 비판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벨 훅스 등의 페미니스트들이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삼는’ 급진 페미니즘 비판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비판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페미니즘적 자본축적론도 맑스주의의 비판에는 대처할 수 없기에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 미즈 등의 맑스주의 페미니스트는 이후 에코페미니즘으로 발전해 나갔다.100) 마리아 미즈의 에코페미니즘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방글라데시 농촌 여성들이 힐러리보다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1995년 4월, 북경 유엔 세계여성대회가 개최되기 몇 달 전에 당시 미국의 영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 그녀는 익히 들어왔던 대로,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Grameen Bank) 프로젝트 성공신화의 현장을 몸소 목격하게 되었다. 그라민 은행의 소액대출사업은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상황을 눈에 띄게 향상시켜왔다고 들어왔던 터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들이 정말 이 소액대출로 힘을 얻게 됐는지 알고 싶었다. 그라민 은행과 개발 지원 기관들에 따르면 ‘여성이 힘을 얻는다는 것’은 여성 자신이 벌이를 하고 있고 어느 정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방글라데시 농촌마을인 마이샤하티를 방문하여 그곳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들은 대답하기를, “네,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의 수입이 있어요. 소, 닭, 오리 같은 ‘자산’도 가지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들이 학교에도 다닌다고 말했다. 클린턴 부인도 만족스러워했다. 마이샤하티의 여성은 분명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다음 그들이 힐러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힐러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패리다 액터는 마이샤하티의 여성들과 힐러리 사이에 오고 간 질문과 대답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파(자매님), 당신은 암소가 있나요?”

“아니오, 나는 암소가 없어요.”

“아파, 당신은 자신의 소득이 있나요?”

“네, 전에는 제 소득이 있었어요. 하지만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으로 이사 오고 난 뒤에 나는 일을 그만뒀어요.”

“당신은 아이가 몇 명 있나요?”

“딸 한 명이요.”

“아이를 더 낳고 싶은가요?”

“네, 나는 한두 명 정도 더 낳고 싶지만, 우리 딸 챌시와도 지금 충분히 행복하답니다.”

마이샤하티의 여성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바라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불쌍한 힐러리! 그녀는 소도 없고, 자신의 소득도 없고, 딸도 하나밖에 없다네.” 마이샤하티 여성들의 눈에 비친 힐러리 클린턴은 결코 힘이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를 불쌍하게 여겼다.101)

 

그러나 마리아 미즈의 에코페미니즘은 서구 자유주의에 뿌리를 둔, 개발도상국 현실에 대한 뇌내망상이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한 그라민 은행이 성행한 방글라데시의 냉혹한 현실을 보자.

 

시장 주도의 마이크로파이낸스와 아마티아 센(Amartya Sen)류의 개발경제학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빈곤 일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방글라데시의 경제 성장률이 아닌 빈곤이 얼마나 일소되었는가를 보는 것을 먼저 검토해 보도록 하자.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 the International Food Policy Research Institute)가 발행하는 다양한 차원의 통계툴을 사용하여 기아 상황을 보여 주는 세계기아지수(GHI, Global Hunger Index)로 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GHI가 30 이상이면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황이고, 20에서 29.9 사이면 위험한 상황이고, 10에서 19인 경우에는 심각한 상황이다.

 

Rank

Country

1990

1996

2001

2012

11

Angola

41.9

39.9

33.0

24.1

12

Bangladesh

37.9

36.1

27.8

24

15

India

30.3

22.6

24.2

22.9

24

Cambodia

31.8 

31.5 

26.0 

19.6

28

North Korea

15.7

20.1

20.1

19

33

Zimbabwe

18.6

22.3

21.3

17.3

[표1] 2012 Global Hunger Index,

International Food Policy Research Institute

 

[표1]을 보면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세계 언론에서 위기 상황이라고 자주 보도되는 짐바브웨와 이북의 기아 상황보다 나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위험한 상황’으로 약간 호전되었을 뿐이고 이북이나 짐바브웨보다 기아 상황이 심하기에 빈곤이 일소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무리가 있다. 이에 대해서 다른 국가와의 비교가 아닌 자체 내 시간상 변화를 보면 상대적으로 발전했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도 무리가 따를 것이다. 1990년과 2012년의 기아지수 향상 수치를 비교해 보자. 앙골라는 41.9–24.1=17.8, 방글라데시는 37.9-24=13.9, 캄보디아는 31.8-19.6=12.2이다. 방글라데시와 비슷하게 향상된 캄보디아나 방글라데시보다 나은 성장률을 보인 앙골라의 경우에는 빈곤 일소의 사례 국가로 논의되지 않는다. 이들 국가의 빈곤으로 인한 기아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위험한 상황’에 있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방글라데시만이 빈곤 일소의 사례 국가로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기아에 시달리는 이북이나 짐바브웨가 기본 식량의 해결이 아닌 요구르트 사업을 해서 빈민사업을 하겠다면 ‘밥도 못 먹는 주제에 무슨 요구르트를 빈민에게 주는 것을 논의하느냐’라고 바로 비판이 이어지겠지만, 그라민 다농의 요구르트 사업은 사회적 기업의 모범 사례로 전 세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도의 빈곤 문제는 인도의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방글라데시는 무엇 때문에 빈곤 문제가 일소되고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102)

 

방글라데시의 빈곤 문제가 일소되었다고 알려진 것은 서구의 대형 NGO들과 에코페미니스트들이 대대적으로 기아로 허덕이는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사회적 경제 구축으로 힐러리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선전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을 지나던 고난의 행군 시기의 이북보다 방글라데시가 더 기아율이 높았는데도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암소 타령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 인식 수준을 가진 이들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론을 제대로 이해를 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마리아 미즈 등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은 대안 경제 시스템으로 ‘자급 경제’를 창안했다. 필요한 재화를 노동, 화폐 등과의 교환하자는 것인데 그들 나름의 사회적 경제론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사회적 경제론은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지옥으로 가는 길목의 동반자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하위 파트너로서 봉사하고 있다.103)

이 대목에서 읽으면서 벨 훅스가 떠오르지 않는가. 흑인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의 어머니 같은 하층계급 여성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먹여 살릴 돈을 벌기 위해 백인 마나님 ‘베티 프리단’의 집에서 집안 살림 일을 할 때, ‘베티 프리단’은 ‘집안 살림에서 벗어나 집 밖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으라’는 ≪여성성의 신비≫를 쓰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는 에코페미니즘을 서구의 진보적인 사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1987년 여성 맑스주의자 김지해는 백인 중산층 여성학자들에게서 나온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했다. 왜 우리는 1987년 한국의 맑스주의자 김지해의 고민, 말하자면 제국의 중산층 백인 여성들의 계급적 입장에서 나온 페미니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지금도 여전히 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제국주의/모국’의 사상적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신적 ‘식민지’ 상태에 있는가?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던 맑스주의 여성론은 왜 잊혔는가?

계급적 입장의 노동운동의 쇠퇴에 그 원인이 있다. 페미니스트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이 시작되려면 무엇보다도 계급적 관점의 노동운동이 자리를 찾아야 한다. 협동조합이 노동조합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 등이 횡행하는 것과 마리아 미즈 등의 에코페미니즘이 같이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계급적 입장의 노동운동의 쇠퇴로 페미니즘이 사회주의ㆍ맑스주의ㆍ유물론을 이름에 붙여서 만든 사회주의 페미니즘, 맑스주의 페미니즘, 유물론 페미니즘이 맑스주의 여성론을 지우고 그 자리에 들어왔다. 이와 관련된 우리의 생각은 로자 룩셈부르크 해제에서 이미 쓴 바 있다.

 

페미니스트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이 시작되려면 무엇보다도 계급적 관점의 노동운동이 자리를 찾아야 한다. 계급적 관점의 노동운동이 성장을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은 굳이 이론적 논쟁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진영인 사회주의 페미니즘ㆍ맑스주의 페미니즘ㆍ유물론 페미니즘과 차별성을 드러낼 것이다. 계급적 노동운동이 성장하는 만큼, 몰계급적 운동과 그에 동반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ㆍ맑스주의 페미니즘ㆍ유물론 페미니즘은 퇴조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 페미니즘ㆍ맑스주의 페미니즘ㆍ유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보다는 계급적 운동의 복원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104)

 

 

* 덧붙이는 글 2. 꼴론따이는 볼쉐비끼 페미니스트/사회주의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클라라 체트킨, 알렉싼드라 꼴론따이, 로자 룩셈부르크 등의 맑스주의자들은 페미니즘을 비판하였다. 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1세대 페미니즘은 부르주아 여성들만의 참정권을 원하는 운동이면서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라는 구호 등을 걸고 전체 여성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부르주아 여성들의 위선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남성들의 특권’에 맞선 투쟁에서 암사자처럼 구는 부르주아 여성들 대부분은 참정권을 얻게 되면 보수적이고 성직자적인 반동 진영으로 순한 양 떼처럼 몰려갈 것이다”105)라고 격렬하게 페미니즘을 비판하였고, 이는 실제 사실이 되었다. 부르주아 여성 참정권 운동인 1세대 페미니즘이 부르주아들의 체제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이 쓴 역사서에서도 나오는 평가이다.106) 지금 시대의 페미니즘은 참정권이 운동의 쟁점이 아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전 인민에게 참정권을 주는 법률을 정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여성들도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을 계기로 전 세계 여성들은 대부분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107)

 

페미니즘도 또한 이러한 시대에 맞추어서 변형이 되면서 ‘맑스주의와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강단 페미니스트 중에서 맑스주의를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대중화되면서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유물론 페미니스트, 맑스주의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면서 자신들의 기원을 클라라 체트킨, 알렉싼드라 꼴론따이, 로자 룩셈부르크로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이 여성 맑스주의 혁명가들을 ‘호명’한다고 해서 이들을 맑스주의로 여길 수는 없다. ‘볼쉐비끼 페미니즘’이란 용어도 클레멘츠가 1979년 꼴론따이를 지칭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용어이다.108) 그러나 꼴론따이가 이를 안다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유물론 페미니즘, 맑스주의 페미니즘이 유물론이나 맑스주의는 아니지만 사회주의일 수는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도 스스로를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109)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 전통110), 빅토리아 시대의 자유주의에 기원을 둔 영국 노동당111)의 코빈, 미국 민주당의 샌더스의 사회주의도 사회주의이다. 도나 해러웨이도 미국에서는 ‘자본주의’ 비판이 혹시라도 나올까 보아 ‘자본주의’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도 금지된 분위기라고 분명하게 알려 준다.

 

DH: … 미국에서는 자본주의를 언급할 수조차 없어요.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반역 행위로 받아들여지죠. 정말로 웬만한 곳에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에요!

CW: 이건 결국―.

DH: 본인이 자본주의자여도, 자본주의자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없어요. (둘 다 웃음.)

CW: 그렇죠,그렇죠. 그냥 “경제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죠, 당연한 것처럼.112)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코빈과 샌더스의 사회주의라면 사회주의 페미니즘ㆍ유물론 페미니즘ㆍ맑스주의 페미니즘이 내세우는 사회주의 또한 사회주의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사회주의, 유물론,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적 의미의 사회주의나 유물론이나 맑스주의는 아니다. 페미니즘 이론들이 나온 ‘선진국의 사회주의’는 맑스주의가 아니다. 단적인 예로 미국 민주당 샌더스의 사회주의는 한국 의료보험 정도를 미국에 입법화시키기 위한 사회주의이다. 우리는 코빈과 샌더스의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적 요구를 담고 있다면 폄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맑스주의적 의미의 사회주의라고 호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페미니즘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비판을 한 것은, 그들의 ‘사회주의’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급진 페미니즘과 공유하고 있는 반동적인 가부장제론 때문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철폐’를 외치는 것을 우리는 반대한다. 태초부터 여성이 남성을 억압했다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그 가부장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 가부장제는 ‘행복할 권리’가 있는 인민들이 성이 다른 것을 넘어서서 “일상의 고역을 나누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우는 동지로서 함께 투쟁”하는 것을 막고 있다.

 

 

 

공산주의와 가족(1920년)*

 

* 내용 파악의 용이함을 위하여 꼴론따이가 나누어 놓은 문단들에 소제목들을 달았다.

 

 

1. 러시아 혁명이 가져온 변화

 

공산주의가 도래해도 가족은 계속 존재할 것인가? 가족은 지금과 같은 형태를 유지할 것인가?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많은 여성들이 곤란해 하며 남성 노동자들에게 역시 걱정거리인 질문들이다. 삶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바뀌고 있다. 낡은 버릇과 습관은 사라지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가족의 삶 전체가 새롭고 낯선 데다가 “괴이하게” 보일 수도 있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노동자 여성이 이러한 질문들을 곱씹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쏘비에트 러시아에서 이혼이 더 쉬워졌다는 사실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인민위원회의가 1917년 12월 18일에 발표한 법령에 따르면 이혼은 더 이상 부유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며, 이제부터 노동자 여성은 몇 달, 심지어 몇 년간 청원을 넣어야 때리거나 술을 먹고 상스러운 행동으로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남편과 가까스로 떨어져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상호 간 합의에 의한 이혼이 마무리되는 데는 1주일이나 2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이렇듯 쉬워진 이혼을 반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 특히 남편을 “생계부양자”로 섬기는 여성들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여성들은 여성들이 남성 개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안에서 원조를 구하고 찾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2. 가족은 변한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남성이 중심이 되고 여성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기존의 가족, 여성이 자신만의 의지와 자신만의 시간, 자신만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전형적인 가족은 우리 눈앞에서 바뀌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려할 필요는 없다. 익숙한 것들이 결코 바뀌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무지뿐이다. “그러하였으니, 그리하리라”는 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과거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읽어 보기만 해도 모든 것은 바뀌기 마련이며 고정되어 있거나 불가침의 것인 어떤 관습이나 정치 집단, 그리고 도덕적 원칙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 속에서 가족의 구조는 여러 번 바뀌었다. 한때 가족은 오늘날의 가족과는 상당히 달랐다. 확대가족이 규범이었던 시대에는 어머니가 자녀들과 손주들, 그리고 증손주들로 구성된 가족을 이끌었고, 이들은 함께 살면서 함께 일했다. 또 다른 시대에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지배적이었고, 이런 경우 아버지의 뜻이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들에게는 법과 같았다. 러시아 농촌 마을에 가면 여전히 오늘날에도 그러한 가족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통하는 가족생활의 풍습과 관습들은 도시 프롤레타리아 계층과는 다르다. 노동자들이 잊은 지 오래인 그런 규범들을 시골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가족의 구조와 가족생활의 관습은 나라마다 다르다. 뚜르크나 아랍, 페르시아와 같은 민족들 사이에서는 남성이 여러 명의 부인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있다. 여성들이 몇 명의 남편들을 가질 수 있는 부족들이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우리는 젊은 여성은 결혼 전까지 처녀일 것이라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지만, 어떤 부족들에서는 많은 연인들이 있었다는 것이 자부심이 되고 여성들이 그 수만큼의 팔찌로 팔다리를 장식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놀랍고 또 부도덕하게까지 보일 수 있는 많은 관행들을 그 민족들은 정상이라고 여기며, 또 그 민족들은 우리의 법과 관습을 “죄악”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가족은 변화하고 있으며 시대에 뒤쳐지고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지고 남녀 간의 새로운 관계들이 발전해 간다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가족 체계의 어떤 면이 시대에 뒤떨어지는지를 알고 노동자와 농민계급의 남녀 사이에서 어떤 관계들이 최선이며 어떤 권리와 의무가 새로운 노동자의 러시아에서 삶의 조건과 가장 조화를 이룰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과 함께 갈 수 있는 것들은 유지하되, 낡고 뒤쳐진 것들, 저주받은 복종 및 지배의 시대와 지주 및 자본가들의 시대에서 나온 것들은 착취 계급과 기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나 가난한 자들의 적들과 함께 쓸어버려야 한다.

 

자본주의 멍에로 여성은 비틀거린다

도시나 농촌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익숙해져 있는 가족의 유형은 이렇듯 과거의 유산이다. 교회 혼인을 기반으로 하는 고립되고 견고하게 짜인 가족이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똑같이 필요했던 시대가 있었다. 가족이 없었다면 누가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고, 길렀겠는가? 누가 아이들에게 조언을 했겠는가? 지난날에는 고아가 된다는 것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운명이었다. 기존의 가족 안에서는 남편이 돈을 벌어 아내와 자녀들을 부양한다. 아내의 역할은 집안일을 하고 최선을 다해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지난 몇백 년 사이에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나라들, 고용 노동을 쓰는 공장과 회사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에서 이러한 관례적인 가족 구조는 해체되어 왔다. 가족 삶의 관습과 도덕률들은 삶의 전반적인 조건이 변함에 따라 함께 변하고 있다. 가족 삶에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은 무엇보다 여성 노동의 보편적인 확산이다. 기존에는 남성들만이 생계부양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러시아 여성들은 지난 오십 년 혹은 육십 년 동안 (그리고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좀 더 긴 기간 동안) 집안과 가족 테두리 밖에서 유급 노동을 구해야만 했다. “생계부양자”의 임금이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에 비해 부족해지면서 여성들도 돈을 벌어야 했고 공장 문을 두드려야 했던 것이다. 매년 집 밖으로 나가 일용직 노동자, 판매원, 점원, 세탁부, 하녀로 일하는 노동자계급 여성들의 수가 증가했다. 통계에 따르면 1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전인 1914년에 유럽과 미국에서 스스로 생계를 꾸리던 여성들의 수는 약 6백만 명이었고, 전쟁 중에 이 수치는 상당히 증가했다. 이런 여성들의 거의 절반이 기혼자들이다. 그들이 처해 있을 가족의 삶이 어떠한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내이자 어머니가 하루 최소 8시간을 나가서 일하고 통근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10시간씩 집 밖에 나가 있는 “가족의 삶”이란 게 어떠하겠는가? 그러한 여성들의 가정은 방치되어 있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보살핌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며 그곳의 모든 위험에 노출된 채로 자라난다.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노동자인 여성은 그러한 역할들을 수행하기 위해 마지막 기운까지 짜내야 한다. 여성들은 남편과 동일한 시간 동안 공장, 인쇄소에서, 영업소에서 일해야 하고, 그러고 나서도 시간을 내서 집안일을 하고 자녀들을 돌봐야 한다. 자본주의는 여성들에게 압도적인 짐을 지웠다. 자본주의로 인해 여성들은 집안일을 하고 자녀들을 돌보는 일이 전혀 줄지 않은 채로 임금 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여성들은 이러한 삼중고 아래에서 비틀거리며 고통받고 항상 눈물에 젖어 있다. 여성들에게 삶이 쉬웠던 적은 없으나, 공장 생산이 한껏 발달한 이 시대 자본주의의 멍에 아래에 있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 여성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절박하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은 해체되었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일터로 나가게 되면서 가족은 해체된다. 부부가 서로 다른 시간에 일을 하고 아내가 자녀들을 위해 제대로 된 식사를 준비할 시간조차 없는데 무슨 가족의 삶이 가능하겠는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하느라 아이들과 단 몇 분도 같이 있을 수 없는데 무슨 가족의 삶을 논하겠는가?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 안에 있으면서 가사일을 돌보았고 자녀들은 그런 어머니의 주의 깊은 눈초리 아래 그 곁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자 여성은 아침 일찍 공장의 종이 울리면 서둘러 나가고, 저녁에 다시 종이 울리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가장 손이 필요한 집안일부터 정신없이 매달린다. 그러면 다시 그 다음 날 일할 시간이 되고, 여성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결혼한 노동자 여성에게 삶이란 노역장만큼이나 고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 간의 유대가 느슨해지고 가족이 해체되기 시작한 것도 당연하다. 가족을 한데 묶어주던 상황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은 가족 구성원들이나 나라 전체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고 있다. 기존의 가족 구조는 이제 단순한 장애물일 뿐이다. 예전에는 가족이 어떻게 그토록 단단할 수 있었을까? 첫째, 남편이자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부양자였기 때문이고, 둘째, 가족경제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며, 셋째, 자녀들이 양친에 의해 양육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존 형태의 가족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살펴보았듯이 남편은 더 이상 유일한 생계부양자가 아니다. 직장에 나가는 아내 역시 임금을 받는다. 여성은 자신의 생계를 꾸리고 자녀를 부양하며 남편을 부양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제 가족은 사회의 일차적인 경제 단위로 아이들을 부양하고 교육시키는 기능만을 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가족이 이 모든 임무에서도 놓여날 것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여성의 “금손”

도시와 시골에서 가난한 계층의 여성들이 평생을 집 안에서만 보냈던 시대가 있었다. 여성은 문지방을 넘어선 세상에 대해 알지 못했고 대개는 그것에 대해 알고자 하는 바람도 없었다. 어쨌든 집 안에서도 할 일은 산더미 같았고 그 일은 대부분 가족에게도 국가 전반에게도 가장 필요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과거의 여성은 현대의 노동자 및 농민 여성이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했지만, 그런 요리, 빨래, 청소, 수리 외에도 모직물과 아마포를 잣고, 천과 의복을 짜고, 양말을 뜨고, 레이스를 달고, 여건이 허락하면 온갖 절임과 잼과 기타 겨울용 보존 식품을 만들고 초를 만들었다. 과거의 여성이 했던 모든 일들을 전부 다 나열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은 그렇게 살았다. 오늘날에도 철로나 큰 강에서 떨어진 오지에 가면 이런 삶의 방식이 여전히 존재하며 가정의 안주인은 대도시나 산업화된 지역의 노동자 여성들이 오래전에 걱정을 그만둔 그런 온갖 일들에 치어 살고 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여성 가내 노동과 경제

우리 할머니 세대에는 이 모든 집안일들이 필요하고 유익했다. 그런 일들로 인해 가족의 안녕이 보장되었던 것이다. 집안의 안주인이 바쁘게 지낼수록 그 농부나 기능공의 가족은 더 잘살 수 있었다. 국가 경제 역시도 가정주부의 활동에서 이익을 얻었다. 여성이 국을 끓이고 감자를 요리하는 것에서 (즉 가족의 즉각적인 필요만을 만족시키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천과 실, 버터 등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상품 가치를 가진 것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은 농부든 노동자든 간에 “금손”을 가진 아내를 얻기 위해 애썼다. 그러한 “가내 노동” 없이는 가족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과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남는 것은 가까운 시장에서 내다 팔 수 있는) 천과 가죽과 모직물을 만드는 데 더 많은 노력을 들일수록 나라 전체의 경제적 부도 더 커졌기에 국가 전체의 이익이 걸린 일이었다.

 

자본주의가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기존에 가족의 품 안에서 만들어지던 것들이 이제는 작업장과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기계가 아내를 대체한 것이다. 어떤 가정주부가 애를 써서 초를 만들고 모직물을 잣고 천을 짜겠는가? 이 모든 물건을 바로 옆에 있는 가게에서 살 수 있다. 과거에는 모든 여성들이 양말을 떴으나 오늘날 어떤 노동자 여성이 양말을 직접 만들려고 하겠는가? 무엇보다 그럴 시간이 없다. 시간은 돈이고, 누구도 그런 비생산적이고 불필요한 방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게에서 살 수 있는데도 집에서 오이를 절이거나 다른 보존 식품들을 만들려고 하는 노동자 여성들은 거의 없다. 가게에서 파는 제품들이 집에서 만든 것보다 질이 떨어지고 정성이 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노동자 여성에게는 그러한 집안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기운도 없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여성은 고용된 노동자이다. 그러므로 우리 할머니 세대의 눈에는 집안일이 없는 가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지만 현대의 가족경제에서 점차적으로 모든 집안일들이 제외되어 가고 있다. 전에 집 안에서 만들어졌던 것들은 이제 공장에서 노동자 남성과 여성들의 집약적인 노동으로 생산된다.

 

가족은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는다

가족은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는다. 소비를 할 뿐이다. 집안일이라고는 청소(바닥 청소, 먼지 떨기, 물 데우기, 램프 관리하기 등)와 요리(저녁 식사 준비하기), 그리고 가족이 쓰는 아마포와 천을 빨고 관리하는 일(꿰매고 수선하기)만이 남아있다. 이는 어렵고 진 빠지는 일들로,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노동자 여성의 남은 시간과 기운을 전부 뺏어간다. 하지만 이 일은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 우리 할머니들이 했던 일들과는 차이가 있다. 위에서 말한 그 네 가지 일들은 여전히 가족을 한데 유지해 주는 기능을 하지만 국가 경제에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 일들은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거나 나라의 부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주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집 안을 청소하고 매일 아마포를 빨고 다리고, 옷가지를 정리하고, 간소한 재료가 허락하는 한 마음에 드는 요리를 하면서 보낼지라도 어떤 가치도 만들어 내지 못한 채로 하루를 마친다. 그 모든 노력을 들였다고 할지라도 여성이 만든 것은 어느 하나 상품으로 간주될 수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천 년을 산다 할지라도 매일이 하루 같을 것이다. 선반에는 새로 털어 내야 할 먼지가 쌓일 것이고 남편은 항상 굶주린 채로 집에 귀가하며 아이들은 신발에 진흙을 잔뜩 묻히고서 집에 올 것이다.

 

공산주의는 여성을 가내 노예제로부터 해방시킨다

여성의 일은 점점 공동체 전체에게 불필요해져 가고 있다. 생산적이지 않은 것이다. 개별 가정은 죽어 가고 대신 사회 안에서 집합적으로 집안일들이 처리된다. 노동자 여성이 아파트를 치우는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아침에 방을 청소해 주는 게 직업인 남성들과 여성들을 배정해 줄 수 있다. 부유층의 아내들은 이렇듯 짜증나고 피곤한 집안일들로부터 일찍이 해방되었다. 왜 노동자 여성들은 계속해서 그 짐을 지고 있어야 하는가? 쏘비에트 러시아에서는 노동자 여성 역시도 과거에 아주 부유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것과 같은 편안함과 가벼움, 위생과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여성이 얼마 안 되는 자유 시간마저 요리를 하느라 애를 쓰고 저녁을 준비하느라 부엌에서 보내게 하는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공공 식당과 공동 주방을 조직할 것이다.

자본주의하에서도 그러한 시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반세기 동안에 유럽에 있는 모든 대도시의 식당과 카페 숫자가 마치 가을비가 온 후 버섯이 자라나듯 매일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두둑한 지갑을 가진 사람들만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여유가 있는 반면에, 공산주의에서는 모두가 공동 주방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 여성은 더 이상 빨래의 노예가 되거나 양말을 짜고 아마포를 손질하느라 눈이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그저 매주 중앙 세탁소에 가져갔다가 나중에 깨끗하게 다림질된 옷가지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이로서 또 하나의 일이 줄게 된다. 특별 수선소들로 인해 노동자 여성들은 옷을 수선하면서 보냈던 시간에서 해방되어 독서를 하고 회의나 콘서트에 참가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 언급했던 네 가지의 집안일은 공산주의가 승리하면서 사라질 운명이다. 그리고 노동자 여성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공산주의는 여성을 가내 노예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든다.

 

 

3. 아이들의 양육은 국가가 책임진다

 

자본주의에서의 자녀의 양육

하지만 집안일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자녀를 돌볼 일이 남아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도 노동자 국가는 가족을 대신하게 될 것이고, 혁명 전에는 각각의 부모들이 떠안았던 일을 사회가 점차적으로 가져가게 될 것이다. 혁명 전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더 이상 부모들의 임무가 아니게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부모들은 자녀의 지적인 발전에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의무들이 남아 있다. 아이들을 먹이고, 신발과 옷을 사 입히고, 아이들이 때가 되면 자신의 생계를 꾸리고 늙은 부모를 봉양할 수 있는 숙련되고 정직한 노동자가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는 노동자 가정은 거의 없다. 노동자들이 받는 낮은 임금으로는 아이들을 충분히 먹이지 못하고,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 필요한 관심을 쏟을 만한 자유 시간도 부족하다. 가족은 아이들을 양육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아이들은 길에서 자란다. 우리 선조들은 가족생활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자녀들은 가족생활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게다가 가족은 부모들의 적은 임금과 위태로운 직업에 재정적으로 기대고 있고, 이로 인해 자녀들은 열 살이 채 안 된 나이에 독립적인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돈을 벌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게 되고 부모들의 잔소리와 조언은 더 이상 규율이 되지 못한다. 부모들의 권위는 약해지고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게 된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가족에서 공동체로 넘어간다

집안일이 서서히 사라져 가듯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 역시 점차적으로 사라져서 결국에는 사회가 그 온전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 자본주의 체제 속의 아이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가족에게 있어서 무겁고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인 경우가 너무 많았다. 공산주의 사회는 부모들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쏘비에트 러시아에서는 공공교육 및 사회복지 인민위원회(the Commissariats of Public Education and of Social Welfare)에서 벌써 가족의 일을 상당히 덜어주고 있다. 우리는 유아들을 위한 집들, 고아원, 유치원, 보육원, 아동 병원과 아픈 아이들을 위한 보양지들을 갖추고 있다. 식당들, 학교 무료급식, 교과서와 따뜻한 옷가지, 신발의 무료 배급도 제공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가족에서 공동체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가족 내에서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일은 (a)유아 돌보기, (b)어린이 양육, (c)아이들 교육,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초등학교에서의 아이들 교육, 그리고 이후 중고등 학교와 그 이상의 교육 기관들은 국가의 책임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놀이터와 유치원, 놀이 집단 등의 공급을 통해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더 잘 조직될수록, 사회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서 가족이 더 많이 놓여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부르주아 사회는 가족이 해체되는 수준으로 노동자계급의 이해가 충족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자본주의는 여성이 노예가 되고 남편은 아내와 자녀의 안녕을 책임지는 기존의 가족 유형이 노동계급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축소시키고 노동자들의 혁명적인 정신을 약화시키기 위한 최고의 무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가족을 돌보는 데 짓눌려서 자본과 타협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이 굶주리게 되면 어떤 조건에도 합의를 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이 진정으로 사회적, 국가적 일이 되지 못한 이유는 지주들, 부르주아 계급이 그것에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에서의 자녀 양육

공산주의 사회는 자라나는 세대의 사회적 교육을 새로운 삶의 기초적인 측면으로 여긴다. 협소하고 옹졸하여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만 관심을 갖는 기존의 가족은 “새로운 인간”을 교육할 능력이 없다. 반면에 놀이터와 정원, 보육원, 그리고 기타 편의 시설들에서는 아이들이 자질을 갖춘 교육자들의 지도 아래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며, 여기서 아이들은 의식 있는 공산주의자로 자라나서 협동과 동지애, 상호부조,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필요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럼 부모들은 더 이상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에 책임을 지지 않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가? 여러분은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 걷는 법을 배우는 아주 어린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의 관심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공산주의 국가는 노동자 어머니를 돕기 위해 나선다. 더 이상 어떤 여성도 혼자가 아니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국가는 미혼이든 기혼이든 상관없이 모든 어머니들이 젖먹이 아이를 키우도록 지지하고 모든 도시와 마을에 산부인과, 탁아소, 그리고 그런 종류의 기타 시설들을 설립하여 여성들이 사회 안에서 노동과 모성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이 진정 슬픔의 연속이었다고 해서 결혼을 두려워하지 마라

노동자 어머니들은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공산주의는 부모들에게서 자녀들을 갈라놓거나 아기를 어머니의 젖에서 떼어놓을 생각이 없으며 가족을 부수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할 계획도 없다. 그런 게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의 목표는 그와는 다르다. 공산주의 사회는 기존의 가족 유형이 해체되어 가고 있으며 가족을 사회 단위로 받치고 있던 모든 기존의 기둥들이 제거되어 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가정 경제는 죽어 가고 있고 노동계급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충분한 물품과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부모와 아이들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는 노동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젊고 서로를 사랑한다. 모두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을 살아라. 행복을 포기하지 말아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이 진정 슬픔의 연속이었다고 해서 결혼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자녀를 갖기를 겁내지 말아라. 사회는 더 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며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기뻐한다. 자녀들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의 자녀는 배고프지도 추위에 떨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아이들을 돌보고 자녀와 그 어머니 모두에게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지원을 보장한다. 사회는 아이들을 먹이고, 기르고, 교육할 것이다. 동시에 부모들은 원한다면 자녀들의 교육에 꼭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모든 의무를 떠안으면서도 부모됨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부모들에게서 그것을 앗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공산주의 사회의 계획이며, 이를 가리켜 가족을 강제적으로 해체한다거나 부모 자식 사이를 강제적으로 갈라놓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4. 평등한 두 구성원 간의 자유결합113)

 

애정과 동지애로 이루어진, 둘 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노동자인 그들의 결합

사실은 명확하다. 기존의 가족 유형은 명이 다했다. 가족은 국가가 강제적으로 파괴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국가는 가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족 경제는 더 이상 이득이 되지 않는다. 가족은 노동자가 더 유용하고 생산적인 노동을 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 가족 구성원들 역시 가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녀를 기르는 것은 가족이 할 일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더 공동체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 간에도 기존의 관계 대신에 새로운 관계가 발달하고 있다. 애정과 동지애의 결합, 공산주의 사회 속에서 평등한 두 사람, 둘 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노동자인 그들의 결합이 그것이다. 여성들은 더 이상 가정에 묶여 있지 않고 가족 내의 불평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양육해야 할 아이들을 데리고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할 일도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편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의존한다. 여성은 남편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원조를 구한다. 여성은 더 이상 자녀들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노동자들의 국가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것이다. 결혼에서는 가족의 삶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물질적 계산의 요소들이 전부 빠지게 될 것이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두 사람 간의 결합이 될 것이다. 그러한 결합은 자신들과 주변 세상을 잘 알고 있는 노동자 남녀에게 가장 완전한 행복과 최상의 만족을 약속할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들에게 과거에 있었던 부부 간의 노예제 대신에 동지애로 인해 끈끈한 자유결합을 제공한다. 노동 조건이 바뀌고 노동자 여성의 물질적인 안정이 확보되고 (실제로는 사기일 뿐이지만 소위 파기할 수 없는 혼인이라고 불리는) 교회가 맺어줬던 결혼이 아니라 연인이자 동지인 남녀의 자유롭고도 솔직한 결합이 등장하면, 성매매는 사라지게 된다.

 

성매매라는 끔찍한 저주는 끝날 것이다

인류에게 오점이고 굶주린 노동자 여성들에게 재앙인 이 해악의 뿌리는 상품 생산과 사유재산이라는 기관에 있다. 이러한 경제 형태가 대체되면, 여성을 사고파는 일도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여성들은 가족이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두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여성을 가내 노예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어머니됨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마지막으로는 성매매라는 끔찍한 저주를 끝장내는 이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반길 일이다.

 

노동자 어머니에게는 나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이 있다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여성이라면 “이 아이들은 나의 아이들이고 내 모든 모정을 이 아이들에게 쏟겠다. 저 아이들은 너의 아이들이고 내 관심 밖이며 그 애들이 굶거나 추위에 떠는 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나는 다른 애들을 신경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기존의 독점적 태도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동자 어머니라면 너의 아이들과 나의 아이들을 구분하지 말고, 오직 우리의 아이들,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들의 자녀들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국가는 남녀 간의 새로운 관계를 필요로 한다

노동자들의 국가는 남녀 간의 새로운 관계를 필요로 한다. 어머니와 자녀들 사이의 협소하고 배타적인 애정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가족의 아이들 모두로 확장되듯이, 여성의 노예화에 기반을 둔 파기할 수 없는 결혼은 사랑과 상호 존중으로 맺어진 노동자 국가의 평등한 두 구성원 간의 자유결합으로 대체된다. 개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족 대신에 노동자들의 위대한 보편 가족이 발전하여,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든 노동자들이 동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남녀 간의 관계가 가질 모습이다. 이렇듯 해로운 관계에서는 인류에게 상업적인 사회에서는 몰랐던 사랑의 기쁨, 자유롭고 진정한 사회적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사랑의 모든 기쁨을 보장할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밝고 건강한 아이들과 강인하고 행복한 젊은이들이 감정과 애정에 있어서 자유롭기를 원한다. 새로운 결혼 관계에서 볼 수 있는 평등과 자유, 그리고 동지애의 이름으로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 남녀들이 인류 사회를 재건하는 일에 기꺼이, 신념을 가지고 뛰어들기를 요청한다. 그래서 인류 사회를 보다 더 완전하고, 더 공정하고, 개인들에게 걸맞는 행복을 더 많이 보장해 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러시아에서 나부끼는 사회 혁명의 붉은 깃발을 높이 들어올리고 있으며, 인류가 수 세기 동안 원했던 이 땅 위의 천국에 더 가까워왔음을 알리고 있다.

 

 

* 덧붙이는 글 3. 자유결합(free union)

 

자유결합에 대해서 참고할 수 있는 선행 연구가 담긴 단행본으로는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이 있다. 이 책은 ‘여성해방론=페미니즘’이라는 오해를 하게 된 데 기여를 한 책들 중 하나이다. 이 책은 1세대 페미니즘이 등장하기 이전인 19세기 초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이나 맑스주의 여성론조차도 ‘페미니즘’으로 모두 묶어버렸다. 이런 불철저성은 의도된 것이다. 이 책 자체가 사회주의 페미니즘 입장에서 써졌기에 여성운동의 전통을 자신들이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많은 내용이 맑스주의를 왜곡하고 있더라도 ‘자유결합’에 관해서는 참조할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콜론타이가 주장한 자유결합은 당시 볼세비키들의 비판과는 달리 성적 방종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콜론타이가 여러 저술들에서 반복적으로 제기한 주제들 중 하나가 바로 ‘신여성’(New Woman)이었는데, 신여성은 물질적이거나 감정적인 종속을 단호히 거부하는 여성, 즉 경제적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여성이다. 자유결합은 이처럼 독립적인 여성과 남성 간의 결합으로서, 성적 욕망의 무절제한 분출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자율성이 전제되는 새로운 남녀 간의 결합을 뜻하는 것이었다. 콜론타이가 ‘날개 달린 에로스’(winged Eros) 또는 ‘승화된 에로스’(Eros transfigured)로 표현한 자유결합은 이성에 대한 성적 매력에 근거하지만, 단지 육체적 쾌락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에 근거한 정신적 교류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함과 동시에 여성이 ‘사랑의 포로’가 되는 상태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콜론타이는 자유결합과 더불어 ‘독신’의 권리를 제기했다. 독신의 권리는 성적 결합이 여성에게 의무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 그것을 선택할 수 있고 또한 여성이 남녀관계 속에서 점차 종속적이 될 때 자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그 관계를 해체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했다. 독신의 권리는 ‘날개 달린 에로스’가 ‘날개 없는 에로스’(wingless Eros)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권리였던 것이다.

콜론타이는 평등한 두 당사자의 상호 존중과 사랑에 기초하는 결합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동지가 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전망했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사랑이 지배적인 한 ‘보편적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형성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콜론타이가 주장한 자유결합은 개별적인 남녀 간의 결합을 넘어서 새로운 공동체적 윤리를 지향하는 것이었다.114)

 

자유로운 결합을 ‘성적 충동 해소의 급진적인 발상’으로 여기게 된 것은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과 관련이 있다. 푸리에는 지속적인 사랑이 인간 본성에 반한다고 보았다. 현재의 결혼 제도는 앞으로는 경제적 이유로 결혼이 이루어지고 뒤로는 간통과 성매매로 뒷받침되는 억압적 제도라 보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다양한 성애를 허용하는 사회를 제안했다.115) 성애에 근거하여 일부일처제, 독신, 그 외 다양한 성적 실천들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생시몽 사후 생시몽과 관계없이 푸리에의 영향을 받은 생시몽주의자들의 1830년대 열정적인 성적 실험의 시기를 거친 뒤 생시몽주의 여성들 다수는 결국 자유결합을 기각했다. 이러한 기각은 부분적으로 ‘신도덕법’을 주장한 앙팡탱과 그의 동료들이 자유분방한 성적 관계에 몰두하면서도 그로부터 초래된 임신에 대해서는 이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아 운동 내 많은 여성들이 아이들을 혼자 기르도록 방치된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116) 이런 역사적인 이유로 볼쉐비끼조차도 꼴론따이가 ‘자유결합’에 대해서도 논하기 시작하자 오해를 했을 것이다. 레닌이 “레닌과 클라라 체트킨의 여성 문제에 대한 대화”에서 성욕 충족을 물 한 컵 마시듯이 해소하면 된다는 ‘물 한 컵 이론’을 비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운동에서의 자유결합을 성적인 방종으로만 연결할 이유는 없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맑스의 딸인 엘러너 맑스(Eleanor Marx), 클라라 체트킨, 로자 룩셈부르크, 꼴론따이 등이 실천한 자유결합은 체제의 법이나 종교로 규제가 없더라도 결혼을 대체하는 하나의 ‘사실상의 제도’로 안정적인 결합을 의미했다. 꼴론따이는 자신의 자유결합을 자화상으로 소설로 형상화한 바 있다. 꼴론따이의 단편 소설 “세 세대의 세 가지 사랑”에서 할머니와 손녀 사이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꼴론따이의 모습일 것이다. 꼴론따이가 “공산주의와 가족”에서 논한 자유결합은 자본주의하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동지들 간의 자유결합을 사회주의하에서 자유결합의 맹아적 한 형태로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1) 스베냐 플라스푈러, ≪힘 있는 여성≫, 장혜경 역, 나무생각, 2018, pp. 7-8.

 

2) 맑스주의 고전에서 가부장제 개념은 엄밀한 역사적 개념으로만 쓰이고 있다.

 

3) 시드라 레비 스톤, ≪내 안의 가부장: 여성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 백윤영미ㆍ이정규 역, 사우, 2019. 이 (심리적) 가부장제는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4) 김민예숙, “옮긴이의 말”(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김민예숙ㆍ유숙렬 역, 꾸리에, 2016, p. 346.).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가부장제 이론에 대해서 한 쪽으로 요약이 되어 있다.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 이론은 60년대-70년대 초의 급진 페미니즘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80년대에 번역되었던 급진 페미니즘 서적들이 재번역되고 있다.

 

5) 정희진, “혐오는 대칭적이지 않다”, ≪경향신문≫, 2016. 6. 12.

 

6)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13, p. 53. ≪페미니즘의 도전≫은 2005년 초판이 나왔으며 한국에 급진 페미니즘이 대세로 자리를 잡는 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일 것이다.

 

7) 이승희, “여성문제의 본질과 형태”(윤한택ㆍ조형제 외, ≪사회과학개론≫, 백산서당, 1987, p. 197.).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개념을 비판한 이 인용 문구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1980년대 한국의 맑스주의 여성론 연구는 급진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남성거세 결사단 선언문”(1967),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1970), 다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1985)을 이미 읽고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요한 페미니즘 선언문들은, 한우리 기획ㆍ번역, ≪페미니즘 선언≫, 현실문화, 2016. 급진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비판에 대한 필독서로는, 빈프리트 쉬바르츠(Winfried Schwarz)ㆍ알마 슈타인베르크(Alma Steinberg), “가부장제의 역사적 성격”(W. 쉬바르츠 외, ≪사적 유물론과 여성해방≫, 엄명숙ㆍ강석란 역, 중원문화, 1990.)을 보라.

 

8) 정희진ㆍ서민ㆍ손아람ㆍ한채윤ㆍ권김현영ㆍ손희정ㆍ홍성수, “1강. 톰과 제리는 적대관계지만 섹스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교유서가, 2018, p. 20.

 

9) 밸러리 솔래너스, “남성거세 결사단 선언문”, ≪페미니즘 선언≫, 한우리 기획ㆍ번역, 2016, pp. 173, 220.

 

10) 총을 겨누고 서 있는 급진 페미니스트의 사진이나 이미지는 바로 이 SCUM 솔래너스에 대한 오마주이다. 솔래너스는 부르주아 문화계에 들어가려다가 실패하자, 과대망상으로 앤디 워홀을 총으로 실제 쏘아서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11)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역, 책세상, 2019의 뒤표지 추천사.

 

12) 도나 해러웨이, 같은 책, p. 117.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인 반려종들과 구성한 가족을 의미한다.

 

13) 같은 책, pp. 314, 367.

 

14) 같은 책, p. 24.

 

15) 도나 해러웨이, “사이보그 선언”, 같은 책, p. 76.

 

16) 같은 책, p. 75.

 

17) 김보영ㆍ박상준,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 2019, p. 93. “Chapter 3. 자기가 믿는 성별이 진짜 성별이다―젠더에 대한 SF적 상상”은 페미니즘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이 책은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자들”처럼 SF 소설들과 영화를 논하면서 대담을 이어간다. “반려자들”에서는 지식상품 판매자들의 세계를 엿볼 뿐이지만, 이 책은 SF가 우리가 사는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수작이다.

 

18) 정희진, “[정희진의 어떤 메모] 잠재적 가해자?―<포르노그래피>, 안드레아 드워킨 지음, 유혜연 옮김, 동문선, 1996”, ≪한겨레≫, 2016. 5. 27. <http://hani.co.kr/arti/opinion/column/745775.html>

 

19) Andrea Dworkin, “preface”, Scapegoat: The Jews, Israel, and Women’s Liberation, The Free press, 2000, p. x.

 

20) 안드레아 드워킨, ≪포르노그래피≫, 유혜연 역, 동문선, 1996, p. 231. 안드레아 드워킨은 페미니스트들이 장악한 사법 제도를 원했다. 포르노에 관해서는 외설법 제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을 했다지만 국가검열 강화의 논리는 제공해 주었다. 현재 한국에서도 https 접속 차단, 유튜브에서 국가검열을 강화하자는 운동의 원류를 따져 보면 안드레아 드워킨이다. Catharine A. MacKinnonㆍAndrea Dworkin(ed.), In Harm’s Way: The Pornography Civil Rights Hearing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7. 안드레아 드워킨으로 시작된 급진 페미니스트 등은 극우 기독교들과 하나의 팀이 되어 움직여서 트랜스젠더에 반대한다. Jay Michaelson, “Radical Feminists and Conservative Christians Team Up Against Transgender People”, Daily Beast, 2018. 4. 23. <https://www.thedailybeast.com/radical-feminists-and-conservative-christians-team-up-against-transgender-people>

 

21) 슐로모 산드, ≪유대인, 불쾌한 진실≫, 알이따르 역, 훗, 2017. 슐로모 산드는 에릭 홉스봄의 역사방법론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이데올로기적 자원화하여 대내외적으로 피해자를 명분으로 권력을 구성해 가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22) “chapter. 7”(Catharine A. MacKinnon, Feminism unmodified: discourses on life and law, Harvard University Press, 1987.)의 인용문에 붙은 주석

 

23) “5장. 성을 사유하기: 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위한 노트”, “12장. 성적 거래: 주디스 버틀러의 게일 루빈 인터뷰”(게일 루빈, ≪일탈―게일 루빈 선집≫, 임옥희ㆍ조혜영ㆍ신혜수ㆍ허윤 역, 현실문화, 2015.)의 인용문에 붙은 주석. 인용자가 필자의 주석에 덧붙이면, 루빈은 성에 긍정적인 페미니스트(sex-positive feminist)에 속하며 주디스 버틀러 등과 같이 퀴어 이론을 주도하고 있다. 루빈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여성이 남성을 섬멸해야 한다고 보는 적대적 모순 관계로 보지 않는다. 루빈은 이 책 “11장. 오도된, 위험한, 그리고 잘못된: 반포르노그래피 정치에 대한 분석”에서 “페미니즘적 인식에서 우러나온 포르노그래피가 나올 여지가 충분”(p. 523)하다고 보며 “반포르노 이데올로기는 자신들의 모든 입장 표명을 통해 성 정치에서 진보적 목소리로서의 여성운동을 훼손”(p. 526)했다고 본다.

 

24)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잘못된 길―1990년대 이후의 급진적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조성애ㆍ나애리 역, 중심, 2005, pp. 27-28.

 

25) 제사 크리스핀,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색다르고 과감한 페미니스트 선언≫, 유지윤 역, 북인더갭, 2018, pp. 174-175. 제사 크리스핀이 이스라엘과 급진 페미니니즘을 연결해서 서술한 것은 근거가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을 펼치면 추천하는 저자로 이스라엘의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에 쓰는 ‘마법사의 돌’인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이스라엘 역사학자 슐로모 산드가 나온다. 슐로모 산드와 드워킨을 같이 읽으면 드워킨이 이스라엘에게서 어떻게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를 배웠는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26) 제사 크리스핀, 같은 책, pp. 170, 173.

 

27) 안드레아 드워킨, ≪신에게는 딸이 없다≫, 이혜경 역, 고려원, 1996. 번역서에서는 너무나 끔찍한 장면들은 “문화적 충격을 고려해” 삭제하고 번역되었다.

 

28) 드워킨ㆍ웬디ㆍ스타이너,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남자들과의 전쟁”, 같은 책, p. 397.

 

29) 드워킨, “안드레아가 아닌 나로서: 프롤로그”, 같은 책, pp. 13-14.

 

30) 드워킨, “안드레아가 아닌 나로서: 에필로그”, 같은 책, p. 389.

 

31) 같은 책, pp. 379-380. ‘목구멍이 찢어지지 않았다면’이란 표현이 나온 것은 당시 포르노그라피 논쟁에서 중심에 있던 포르노 배우 린다 러브레이스와 그녀가 출연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영화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1972년)와 관련이 있다. 린다 러브레이스는 포르노 배우를 그만두고 반포르노 운동을 했다. Lovelace Linda, Ordeal: An Autobiography, Citadel Press, 1980. Lovelace Linda, Out of Bondage, Lyle Stuart Inc, 1980. Out of Bondage는 글라리아 스타이넘이 서문을 썼다.

 

32) 정희진이 ‘여성 혐오’로 번역되는 미소지니를 번역하지 않고 쓰겠다는 의도를 이 글에서는 일단 따라가기로 했다.

 

33) Andrea Dworkin, Scapegoat: The Jews, Israel, and Women’s Liberation, p. 90.

 

34) 제사 크리스핀,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색다르고 과감한 페미니스트 선언≫, p. 105.

 

35) 같은 책, pp. 166-167.

 

36) http://www.barnorama.com/afghanistan-1970s/

 

37) 주류 언론에 의해서 왜곡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대해서는 사사키 타츠오의 ≪아프가니스탄 4월 혁명≫을 참조하라. 이 책은 2009년 1월부터 ≪정세와 노동≫에 번역ㆍ연재되었다.

 

38) “Beauty contest in northern Syria harshly criticized by Kurdish authorities”, Kurdistan 24, November 19, 2018.

 

39) Vanessa Beeley, “The White Helmets, Alleged Organ Traders & Child Kidnappers, Should be Condemned Not Condoned”, Global Research, January 26, 2019.; 정호영, “시리아 반군의 편에 선 화이트 핼멧. 화이트 헬멧의 보고를 그대로 전달하는 국제 앰네스티 등은 서구 제국주의와 중동 독재국가들의 전쟁도구들이다”, ≪해방세상≫ 제22호(2018년 6월), 감옥인권운동 해방세상.

 

40) “Syria conflict: White Helmets evacuated by Israel”, BBC, July 22, 2018.; “Israel Aids Evacuation From Syria of Hundreds of ‘White Helmets’ and Families”, The New York Times, July 22, 2018.

 

41) 압둘라 외잘란, 삶을 해방시키기: 여성 혁명, 로자바 사회 협약, ≪압둘라 외잘란의 정치 사상―쿠르드의 여성 혁명과 민주적 연합체주의≫, 정호영 역, 훗, 2018. 로자바 혁명의 사상적 기반은 압둘라 외잘란이다. 압둘라 외잘란은 여성의 자유가 고국의 자유보다 소중하다는 구호를 운동의 전면에 내걸었다. 그리고 이 말이 삶 그대로인 여성이 있다. 사키네 잔시즈(Sakine Cansiz)다.

  남성 압둘라 외잘란과 함께 PKK를 설립한 여성 사키네 잔시즈의 ≪내 전 인생은 투쟁이었다(Mein ganzes Leben war ein Kampf )≫, Mezopotamien Verlag란 자서전이 있다. 이 책의 영어 번역본은 Sakine Cansiz, Sara: My Whole Life Was a Struggle, Pluto Press, 2018로, 자넷 비엘(Janet Biehl)이 번역을 맡았다. 머레이 북친 생전에 북친과 공동 작업을 했던 자넷 비엘은 로자바 혁명을 알리는 데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나, 중동의 특수한 지형 속에서 나온 압둘라 외잘란의 사상을 자신의 스승인 북친의 아류로 규정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어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이 운동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쿠르드계 캐나다 영화감독 자이네 아키올이 2017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장미의 땅: 쿠르드의 여전사들(Gulîstan, Land of Roses)≫를 볼 것을 권한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는, 이 다큐멘터리 감상으로 ‘2019년 맑스주의 여성론 세미나’를 시작했다.

 

42) “극장처럼 폭격 구경…이스라엘 비난 쇄도”, ≪연합뉴스≫, 2014. 7. 17.

 

43)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여성 3만 명 “평화협상 타결” 촉구 대행진”, ≪매일경제≫, 2017. 10. 19. 이스라엘 민간단체 ‘평화를 행하는 사람들’는 이스라엘 내에서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이스라엘 여성들의 연대를 명분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에게 평화 협상을 촉구하는 여성 집회를 연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로부터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하고 있는데도, 팔레스타인도 비폭력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면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가 잘못했다는 식의 선전으로 활용되어 이스라엘에게 면죄부를 준다.

 

44) 정희진, ≪낯선 시선―메타젠더로 본 세상≫, 교양인, 2017, p. 14.

 

45) 정희진,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와 페미니즘”(권김현영ㆍ루인ㆍ정희진ㆍ한채윤ㆍ<참고문헌 없음> 준비팀,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권김현영 엮음, 교양인, 2018. p. 218.).

 

46) 같은 책, pp. 235-236.

 

47) 정희진, “머리말”, ≪낯선 시선―메타젠더로 본 세상≫.

 

48)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pp. 87-88.

 

49) 정희진,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 운동”(권김현영ㆍ루인ㆍ정희진ㆍ한채윤, ≪미투의 정치학≫, 정희진 엮음, 교양인, 2019, p. 107.).

 

50)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p. 127.

 

51)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김대웅 역, 두레, 2012, pp. 94-95.

 

52) 같은 책, p. 339.

 

53) 같은 책, p. 276.

 

54) 같은 책, p. 277.

 

55) 모권제를 여성이 남성을 지배했던 시기로 보아서는 안 되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했던 시기로 보아야 한다.

 

56) 엥겔스, 앞의 책, pp. 281-282.

 

57) 같은 책, p. 282.

 

58) 꼴론따이의 생애와 연표에 대해서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ㆍ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콜론타이의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ㆍ세계 여성의 날≫, 서의윤 역, 좁쌀한알, 2018의 역자 해제와 연표를 참조하라.

 

59) 꼴론따이와 가족법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경ㆍ권현정ㆍ김숙경ㆍ오현미ㆍ정인경,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도서출판 공감, 2003, pp. 134-136.; B. 판스워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신민우 역, 풀빛, 1986, p. 152.

 

60)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콜론타이,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 정호영 역, 노사과연, 2013, pp. 289-290.

 

61) ‘성평등’이라는 용어 자체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 끝내기’에 대해서도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을 정희진이 하고 있어서 이 글에서는 이런 표현을 썼다. 정희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권김현영 등,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정희진 엮음, 교양인, 2017.). 정희진이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이러한 글은 성 역할의 기대와 고정 관념을 폐지하는 3세대 페미니즘 논쟁의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62) 권김현영 등, 같은 책, pp. 53-55.

 

63) 같은 책, p. 12.

 

64)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p. 137.

 

65) 정희진, ≪아주 친밀한 폭력―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교양인, 2016.

 

66) 정희진,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 운동”(≪미투의 정치학≫, p. 107.).

 

67) 벨 훅스, ≪페미니즘≫, 윤은진 역, 모티브북, 2010, p. 119. (한우리 기획ㆍ번역, ≪페미니즘 선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68) 벨 훅스,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남성, 남성성, 그리고 사랑≫, 이순영 역, 한솔수북, 2017, p. 28.; 최현숙, ≪할배의 탄생: 어르신과 꼰대 사이, 가난한 남성성의 시원을 찾아≫, 이매진, 2016. ‘가난한 남성성의 시원’은 태초부터 있던 몰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다.

 

69) 벨 훅스, ≪페미니즘≫, p. 127.

 

70)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이경아 역, 문학동네, 2017, pp. 168-169.

 

71) 벨 훅스, ≪페미니즘≫, p. 120.

 

72) 같은 책, pp. 130-131.

 

73)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pp. 61-62. 벨 훅스는 스스로를 급진적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급진 페미니즘과는 궤를 완전히 다르게 간다. 이 인용구에서의 가부장제는 다음 인용구에서 논해지는 (심리적) 가부장제, 벨 훅스의 용어로는 ‘제도화된 성차별주의’를 의미한다.

 

74) 벨 훅스는 자신의 성장사를 회고하면서 어머니가 오빠와 자기를 차별화면서 (심리적) 가부장제를 재생산하는 것을 생각해 낸다. 벨 훅스는 여성 또한 남성과 같이 (심리적) 가부장제를 깨기 위해서 변화되어야 된다고 한다. 벨 훅스, “1장. 사랑할 줄 아는 남성 구함”, 같은 책.

 

75) 같은 책, pp. 18-19. 이런 맥락에서 같이 서 있는 페미니즘 책이 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김명남 역, 창비, 2016.;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엄마는 페미니스트―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황가한 역, 쏜살 문고, 2017.

 

76)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pp. 32-33, 43.

 

77) 같은 책, p. 43.

 

78) 벨 훅스, ≪페미니즘≫, p. 118.

 

79) 같은 책, p. 132.

 

80) 맑스주의 흑인 여성운동에 관해서는 다음 책을 보라. Carole Boyce Davies, Left of Karl Marx: The Political Life of Black Communist Claudia Jones, Duke University Press, 2008. 이 책의 제목은 클라우디어 존스가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의 맑스 왼쪽에 묻혀 있는 데서 나왔다.

 

81) 벨 훅스, ≪페미니즘≫, p. 132.

 

82)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이다. 아주 단순화시키면 남자와 여자가 둘이 결혼해서 대략 두 명을 낳으면 인구가 유지가 된다고 볼 수 있는 숫자이다.

 

83) “세계 유일 ‘출산율 0명대’ 한국…올해 신생아 30만 명도 흔들린다”, ≪동아일보≫, 2019. 8. 29.

 

84) 김유선, “저출산과 청년일자리”, KLSI ISSUE PAPER 제8호(2016. 11. 8.), p. 5.

 

85) 정희진, “저출산 시대, 여성 징병제 논란…여성이 군대 가면 평등해질까”, ≪여성신문≫, 2017. 7. 12.

 

86) 김유선, 앞의 글, p. 11.

 

87) 벨 훅스, ≪페미니즘≫, pp. 118-119.

 

88) “미혼 여성 절반이 희망하는 향후 배우자의 소득은 300만-4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혼 남성의 향후 배우자 희망 소득은 200만-300만 원이었다. 결혼 의향은 남성이 더 높았으나 대부분은 주거 문제 등의 이유로 결혼을 미루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혼 여성 80%는 신혼집을 마련할 때 비용 일부를 부담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전액 부담할 뜻이 있는 비율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청년층 주거특성과 결혼 간의 연관성 연구’ 보고서(변수정ㆍ조성호ㆍ이지혜 연구위원)에 따르면, 2018년 8월 31일-9월 13일, 만 25-39세 미혼 남녀 3002명(남성 1708명, 여성 12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미혼 여성 절반, 배우자 소득 300-400만원 희망…“신혼집 비용 부담 의향 있어”, ≪쿠키뉴스≫, 2019. 5. 3.; “청년 68%, “집 때문에 결혼 못 합니다””, KBS NEWS, 2019. 6. 25.; “‘첫 내 집 마련’ 나이 평균 43.3세…집값 38%는 대출로”, ≪동아일보≫, 2019. 6. 24.; ““자기야 연립 전세부터 신혼 시작하자” 이 말에 결혼 깨졌다”, ≪중앙일보≫, 2019. 7. 13.)

 

89) 엄마페미니즘탐구모임 부너미,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결혼한 여자들의 페미니즘≫, 민들레, 2019, pp. 236, 239-242.

 

90) 캐롤 타브리스,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 히스테리아 역, 또하나의문화, 1999, p. 324.

 

91)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나윤경 원장 “20대 남성들 ‘페미니즘’ 반발 이유 최근에야 이해했죠””, ≪한겨레≫, 2019. 7. 10.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901335.html>. 이런 교육 현장의 문제를 담은 책은,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 ≪소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서의윤 역, 좁쌀한알, 2019.;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잘못된 길―1990년대 이후의 급진적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pp. 171-174.

 

92) 서의윤 번역ㆍ정호영 해제, “로자 룩셈부르크의 여성론”, ≪정세와 노동≫ 제152호(2019년 6월).

 

93)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역, ≪철학소사전≫, 1990(Manfred BuhrㆍAlfred Kosing, Kleines Worterbuch der Marxistisch-Leninistischen Philosophie, 1979)의 ‘가족’ 항목.

 

94) 고전으로는, 맑스ㆍ엥겔스ㆍ레닌ㆍ스탈린, ≪여성해방론≫, 조금안 역, 동녘, 1988.;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 이순예 역, 까치, 1990.; 클라라 체트킨, ≪클라라 체트킨 선집≫, 조금안 역, 동녘, 1986.; 레닌, ≪레닌의 청년여성론≫, 편집부 역, 함성, 1989.

  사회주의권 여성에 관해서는, 헬렌 버제스, ≪소비에트 여성은 말한다. 우리의 삶, 우리의 꿈≫, 여성한국사회연구회 역, 앎과함, 1989.; 양계조ㆍ가원남, ≪새로 태어난 여성―중국 창녀개조사≫, 김하림 역, 한마당, 1990.; 클로디 브로이엘, ≪하늘의 절반―중국의 혁명과 여성해방≫, 김주영 역, 동녘, 1985.

  여성운동사로는, 김지해 엮음, ≪세계여성운동 1―사회주의 여성운동≫, 동녘, 1987.; 김지해 엮음, ≪세계여성운동 2―민족해방 여성운동≫, 동녘, 1987.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 자원으로 삼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으로는, 제사 크리스핀,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색다르고 과감한 페미니스트 선언≫, 유지윤 역, 북인더갭, 2018.;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잘못된 길―1990년대 이후의 급진적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조성애ㆍ나애리 역, 중심, 2005.; 벨 훅스의 거의 모든 책들 그중에서도, 벨 훅스, ≪페미니즘≫, 윤은진 역, 모티브북, 2010.;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이경아 역, 문학동네, 2017.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는, W. 쉬바르츠 외, ≪사적 유물론과 여성해방≫, 엄명숙ㆍ강석란, 중원문화, 1990가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사회주의 페미니즘 비판은 김민재ㆍ이지완ㆍ황정규,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해방, 2019가 있다. 이 단행본의 2부에는 최근의 정체성 정치, 상호교차성 개념에 대한 비판이 있고, 3부 ‘페미니즘 책을 비판하다’에서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의 필독서들인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에 대한 비판이 잘 나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천연옥, “서평.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와 ≪여성론≫을 읽고”, ≪전선≫ 제112호. <https://classfighting.blogspot.com/2019/09/112.html>.; 조남수, “계급투쟁의 역사가 아닌 남성과 여성의 투쟁의 역사로 바뀌어야 하는가?”, ≪전선≫ 제111호. <https://classfighting.blogspot.com/2019/07/111_28.html>

 

95) 김지해, “이 책을 내면서”(김지해 엮음, ≪세계여성운동 1―사회주의 여성운동≫, 동녘, 1987, p. 3.).

 

96) 인용하고 있는 위 구절의 ‘이중체계론’에 대한 주석을 그대로 인용한다. 번역어의 문제가 가져다주는 혼란 중 가장 큰 문제는 페미니즘이 여성해방론, 여성론으로 번역되어 온 관행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주의 페미니즘(Socialist Feminism)은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으로 번역되어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맑스주의 여성론으로 오해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97) 서의윤 번역ㆍ정호영 해제, “로자 룩셈부르크의 여성론”, ≪정세와 노동≫ 제152호(2019년 6월), p. 102.

 

98) Maria MiesㆍVeronika Bennholdt-ThomsenㆍClaudia Von Werlhof, Women: The Last Colony, Zed Books, 1988.

 

99) 현재까지 국내에서 나온 맑스주의 여성론 책들 중에서 고전을 제외하고는 최고의 책은 ‘W. 쉬바르츠 외, ≪사적 유물론과 여성해방≫, 엄명숙ㆍ강석란 역, 중원문화, 1990’이다. 이 책의 ‘안겔리나 죄르겔(Angelina Sörgel)의 “재생산영역에서의 여성노동”’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축적론을 왜곡하여 ‘이용’하는 이론들을 비판하고 있다.

 

100) 반다나 시바ㆍ마리아 미스, ≪에코페미니즘≫, 손덕수ㆍ이난아 역, 창비, 2000.; 정호영, “몬산토 반대 운동은 인도 농업의 나아갈 길인가―반다나 시바 비판”, EMERICs, 2014. <http://www.emerics.org/mobile/column.do?action=detail&brdctsno=130631>. 에코 페미니즘 전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반다나 시바 외, ≪신성한 씨앗≫, 정홍섭 역, 좁쌀한알, 2017. 반다나 시바의 몬산토 반대와 그에 따른 토종 씨앗 보존 운동은 절실하게 필요한 운동이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론에만 머물면 더 큰 구조적인 문제를 못 볼 수가 있다.

 

101) 마리아 미즈ㆍ베로니카 벤홀트-톰젠,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힐러리에게 암소를≫, 꿈지모(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 역, 동연(와이미디어), 2013, pp. 23-24.

 

102) 정호영, “마이크로 파이낸싱―방글라데시 vs 인도”, 한국인도사회연구회 학술대회 발표문, 2013. 10.

 

103) 정호영,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 화폐운동 논의 속에서 사라진 국가”, ≪기쁨과 희망≫ 제12호.; 정호영, “남아시아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실상―품위 있는 발전은 가능했던가?”, EMERICs, 2013. <http://www.emerics.org/mobile/column.do?action=detail&brdctsno=125172>

 

104) 서의윤 번역ㆍ정호영 해제, “로자 룩셈부르크의 여성론”, p. 87.

 

105) 같은 글, p. 100.

 

106) Richard J. Evans, The Feminists: Women’s Emancipation Movements in Europe, America and Australasia 1840-1920, Routledge, 1977, p. 240. 이 책의 번역서는 리처드 에번스, ≪페미니스트―비교사적 시각에서 본 여성운동 1840-1920≫, 정현백 역, 창비, 1997. 이 책의 옮긴이는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이다.

 

107) 양성평등 교재를 보니,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부르주아 여성들의 참정권만을 요구했다는 사실, 러시아 혁명이 전 세계 참정권에 관해 가져온 변화 등에 대해서는 알려주고 있지 않았다. 이해진, “3. 역사상 가장 긴 싸움, 여성 참정권운동을 이끈 사람들”, ≪청소년을 위한 양성평등 이야기(개정판)≫, 파라주니어, 2016.

 

108) 이미경ㆍ권현정ㆍ김숙경ㆍ오현미ㆍ정인경,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p. 131.

 

109) 조국 ““난 자유주의자, 동시에 사회주의자”…김진태와 사상 공방”, ≪한겨레≫, 2019. 9. 6.

 

110)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 정홍섭 역, 좁쌀한알, 2018. 이 사회주의는 빅토리아 시대의 자유주의에 뿌리를 두었다. 자유주의가 공동체를 논하더라도 공동체와 개인을 별개로 보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 엥겔스가 이러한 자유주의 색채를 가지고 있던 진정 사회주의의 공동체 개념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는 각 개인에게 목적이 아니라 오직 수단일 수 있을 뿐이며 또 그래야 한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자들과 칼 하인쩬”,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1권, 박종철출판사, pp. 314-315.)

 

111) Richard Seymour, “chapter 3. Labour Isn’t Working: Whatever Happened to Social Democracy? ‘The advanced wing of Liberalism’”, Corbyn: The Strange Rebirth of Radical Politics, Verso, 2016. 영국 노동당이 독일 사회민주당과는 다르게 맑스주의와 관계가 없으며, 빅토리아 자유주의에 그 기원을 둔 것을 알 수 있다.

 

112)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pp. 299-300. DH는 도나 해러웨이, CH는 캐리 울프이다.

 

113) 글의 말미에 있는 “덧붙이는 글 3. 자유결합(free union)”을 보라.

 

114) 김숙경, “페미니즘의 역사: 개관”(이미경ㆍ권현정ㆍ김숙경ㆍ오현미ㆍ정인경,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도서출판 공감, 2003, pp. 49-51.).

 

115) 샤를 푸리에,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 외≫, 변기찬 역, 책세상, 2007.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푸리에를 소개한 최초의 단행본임에도 불구하고, 맑스나 엥겔스가 존경했던 사회운동가로서의 푸리에의 면모가 아니라 다양한 성애를 주장한 성해방론자의 면모에 초점을 맞추어 편집된 책이다.

 

116) 이미경ㆍ권현정ㆍ김숙경ㆍ오현미ㆍ정인경,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p. 96.; 다마에, “3부. 4장. 4. 공상적 사회주의와 여성”, ≪여성해방사상의 흐름≫, 김희은 역, 백산서당,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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