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 노동자계급과 민주주의

 

 

문영찬 | 연구위원장

 

 

* 이 글은, 현장실천ㆍ사회변혁 노동자전선이 주최한 노동전선 정치학 강좌 중 지난 11월 13일에 있었던 민주주의 주제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고대 사회에서 민주주의

 

고대 원시공동체 사회는 씨족 사회로서 계급 분열이 없었고 따라서 국가도 없었다. 이 사회는 씨족 전체의 의사에 기초하여 사회를 운영하였는데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지만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 사회와 분리된 정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 제도를 민주주의라고 불러야 할 이유도 없었다. 즉, 민주주의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는바 그것은 이미 사회가 다수와 소수로 분열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원시공동체 사회는 그러한 다수와 소수로의 분열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씨족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관습과 전통에 따라 대내적, 대외적 관계를 처리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최초로 출현한 것은 사회가 노예와 노예주라는 계급으로 분열되고 이러한 계급 분열이 치유될 길이 없게 되어 국가가 출현한 이후부터였다. 고대 그리스는 노예제 사회였는데 노예, 자유민 평민, 귀족 등이 계급으로 존재했다. 이러한 그리스 시대의 정치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적 연구를 집약하여 ≪정치학≫을 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 체제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정권을 가진 자가 한 사람이냐, 소수자냐, 민중 전체냐에 따라 정체는 왕정, 귀족정체, 혼합정체로 구분된다. 이 세 가지 정체가 왜곡된 것이 참주정체, 과두정체, 민주정체다.1) 여기서 참주정체는 폭군 등의 통치를 말하는 것이고, 과두정체는 일부 소수의 정치적 지배를 말하며, 민주정체는 다수 민중의 정치적 지배를 말한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정체를 일종의 왜곡된 정체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에서 민주정체는 당시 상황에서 정상적인 정체 혹은 정치가 아니라고 파악되었던 것이다.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시각을 가졌던 것일까?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중의 결의에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2)이라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관점을 가지는 것은 당시 민중들이 비록 자유민이지만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결의를 이끌어 내는 데 있어서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통치를 법의 지배로 파악하는데, 법의 지배와 민중의 정치는 상호 충돌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데 그는 노예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파악하고 또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자연스러운 것라고 파악한다. 이러한 시대적 한계에 기초하여 그는 국가의 발생 또한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는데 안정적이고 원만한 정치는 법에 기초해야 하지만 민중은 그러한 법의 지배에 있어서 통치자보다는 피치자에 적합하다는 시각을 보이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 사회는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 도시 국가마다 정체가 달랐다. 귀족정치, 민주정치, 왕정 등 각각 달랐는데 이러한 정체의 차이는 그 사회의 계급적 구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한 사회가 노예와 노예주로 분열된 사회에서 자유민만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은 근본적 한계가 있었고 부자와 빈자, 귀족과 평민의 대립에 기초하여 사적 소유의 크기에 따라 정치적 지배계급이 결정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2.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출현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출현과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 출현은 같은 맥락이 아니었다. 자본가들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이윤 획득의 자유, 소유권의 자유, 자유 경쟁이었다. 그에 따라 자본가들은 자유주의를 내세우며 봉건 지배계급과 투쟁하였고 그들의 기치는 국가로부터 소유권을 핵심으로 하는 개인의 자유의 확보였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가 지배적이 되었을 때 그 사회는 자유, 평등, 우애의 사회가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이라는 형식적 평등에 그친 채,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수탈을 하는 사회임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발생 초기인 19세기 초에 이미 오웬, 생시몽, 푸리에 등의 공상적 사회주의가 나타나기도 했다. 자본의 착취의 자유! 자본 간의 무한 경쟁!이 현실적인 사회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노동조합 차원에서 단결하기 시작했고 이후 정치적으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1840년대 영국의 노동자계급의 차티스트 운동은 노동자에게도 참정권을 달라는 운동이었다, 그 이전까지 선거권은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이 있는 남성에게만 해당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티스트 운동의 전개는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후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들(남성)에게 점차적으로 선거권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민주주의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대립한다고 인식하였으며 대중의 민주주의에 맞서 자유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주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방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통치자들이 이해관계상 일반 대중들과 대립하는 독자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필요한 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 이것은 곧 선거를 통해 일시적 통치자를 뽑자는 새로운 요구로 발전했다. … 권력에 대한 제한은, 이해관계상 민중과 늘 대립하는 통치자 측에 대항하는 방책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통치자와 민중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3) 이러한 존 스튜어트 밀의 인식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서 하나의 대세가 되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 자체가 만들어 내는 노동자계급의 발전이 대중 스스로 통치자를 뽑는 단계로 발전했고 통치자와 민중이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의 도입은 자본가계급의 고유의 요구가 아니었고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계급 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자본가계급 그리고 그들의 이데올로그인 존 스튜어트 밀은 대중의 힘을 제어하여 개성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논지를 편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성의 자유로운 발전이야말로 행복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4)라고 주장하면서 개성에 적대적인 하나의 큰 세력5) 즉, 대중의 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대중의 힘, 즉 대중의 민주주의에 맞서서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을 지켜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와 같이 19세기 현실에서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자본가계급은 민주주의에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의 발전이 자본주의하에서 필연적임을 인식하고 노동자계급을 체제 내화하는 방향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19세기 중반 이래 형성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점은 개성의 발전과 대중의 민주주의를 대립시키는 자유주의적 관점의 올바름 여부이다. 자유주의는 대중의 등장이, 민주주의의 등장이, 노동계급의 등장과 그들의 영향력이 개성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부르주아적 관점, 자본가계급적인 관점일 뿐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개성의 발전은 대중적 민주주의의 발전과 대립하지 않는다. 정반대로 노동자에게 있어서 개성의 발전은 대중의 민주주의 혹은 계급적 단결에 기초해서만 가능하다. 개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과 물질적 조건은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투쟁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하의 노동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19세기 후반부터 자유경쟁 자본주의로부터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는데 이 이후에는 자본가계급은 더 이상 자유의 기치를 내거는 것이 아니라 지배를 원하게 되었으며, 점차 반동적인 이데올로기를 폈으며 정치적으로는 파시즘이 등장하게 되었다.

 

 

3. 맑스-엥겔스의 민주주의론

 

맑스와 엥겔스는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처음에는 혁명적 민주주의자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 빚어지는 민중들의 참혹한 현실과 결합하면서 점차적으로 계급의 철폐, 사적 소유의 철폐를 내세우는 공산주의자로 변모한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명한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 쟁취6)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맑스와 엥겔스의 민주주의관을 집약하고 있는 표현인데 맑스와 엥겔스에게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 쟁취는 곧 노동자계급이 지배계급으로 올라서는 것을 의미하였다. 노동자계급이 지배계급으로 올라선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정치적 지배를 실현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맑스와 엥겔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 도구들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신속히 생산력들의 양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7) 이와 같이 맑스와 엥겔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는 권력 쟁취의 문제였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는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맑스와 엥겔스의 관점은 지금 시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과 일정한 차이가 있다. 흔히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해 정치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선거권 등등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자유는 권력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본질은,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를 쟁취한다는 것은 그러한 정치적 자유를 넘어서서 정치권력 자체를 쟁취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다수의 지배를 의미할 때, 노동자계급이라는 다수의 지배는 정치권력의 획득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맑스와 엥겔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권력의 문제로 파악했던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형식적 이해를 넘어서서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짚을 점은 앞서 열거한 정치적 자유들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자유들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본질, 권력 쟁취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 쟁취를 위한 수단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심지어 엥겔스는 부르주아들이 반동파에 굴복하는 경우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한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노동자당에 남아 있는 방도는, 부르주아적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권리에 대한 선동과 같은 부르주아지가 저버린 선동들을 부르주아의 뜻에 상관없이 추진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 이러한 자유들 없이는 노동자당 자신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없다; 노동자당이 이러한 투쟁을 벌이는 것은 자신들 본래의 생존 요소, 자신들의 숨을 쉬는 데 필요한 공기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8) 이것은 노동자계급과 그 당이 정치권력을 향한 길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정치적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위의 자유들은 민주주의적 권리들로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주의적 권리들은 자본주의 틀 내의 권리이며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내용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권리들은 노동자에게 무기가 되지만 반대로 그것들은 부르주아들에게 있어서도 지배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자본가계급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지배는 다른 형태의 지배보다도 강력한데 이에 대해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오직 이러한 형태[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태: 필자]에서만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양대 부분이 단결할 수 있고, 따라서 이 계급의 특권적 일 분파의 통치 대신에 이 계급 전체의 지배를 일정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9) 자본가계급은 사적 소유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내적 적대를 가질 수밖에 없고 다양한 분파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통치 형태는 이들 부르주아 계급들의 다양한 분파들을 단결하게 하고 그들이 계급 전체로서 통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미국에서 부르주아지가 공화당과 민주당의 협력을 전제로 하는 부르주아 독재라는 점, 한국의 경우에 있어서도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격렬한 분파 투쟁을 하면서도 자본가계급 전체의 이해에 있어서는 일치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계급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며, 누구의 민주주의인가, 어느 계급의 민주주의인가라는 접근이 성립하는 것이다.

 

 

4. 레닌의 민주주의론

 

레닌은 러시아에서 현실적으로 민주주의 혁명을 이끌었고 또 사회주의 10월 혁명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하여 레닌은 풍부하고도 정교하며 또 계급적으로 일관된 민주주의론을 세울 수 있었다. 레닌의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의 첫걸음은 계급의 존재와 민주주의의 연관에 대해서였다. 만일 상식과 역사를 우롱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 계급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순수 민주주의에 관해 말할 수 없다는 것, 즉, 우리는 단지 계급적 민주주의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은 명백하다.10)순수 민주주의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라는 형식적 접근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 현실은 계급 분열과 대립의 전개 과정인데 계급적 이해관계를 떠난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레닌의 주장이다. 레닌이 이와 같이 주장하는 것은 카우츠키가 러시아 혁명에 대해 민주적 방법이 아니라 독재적, 폭력적 방법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현실의 쏘비에트 정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적 정권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민주주의의 문제가 정면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이에 대해 레닌은 계급적 내용을 떠난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맞받아친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80년대 운동은 독재와 민주주의의 대립 구도였다. 독재는 악이었고 민주주의는 선이었다. 그런데 운동의 발전은 변혁 운동의 태동, 사회주의 운동의 태동을 가져왔는데 그것은 운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 대립의 문제, 주체의 문제를 사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초보적, 피상적 운동을 넘어서서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실현하고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계급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접근, 민주주의 운동의 발전은 사회주의 운동으로 이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레닌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시사적이다. 여기에서 엥겔스는 지속적인 민주주의가,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로 이행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흥미 있는 경계선에 도달했다.11) 이 언급은 엥겔스가 파리 꼬뮨을 분석하는 내용을 검토하는 것인데 파리 꼬뮨에서 민주주의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관철이 사회주의적 내용에 도달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계급의 철폐라는 사회주의적 내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지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계급의 폐지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의 민주주의 운동이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지향과 사회주의 운동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레닌은 민주주의 문제와 사회주의 문제의 긴밀한 연관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면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레닌의 분석에 대해 접근해 보자. 민주주의에 대한 레닌의 분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국가의 문제와 민주주의의 문제를 통일시켜 파악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과 동일하지 않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승인하는 하나의 국가, 다시 말해서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항하여 강제력을 체계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대중의 한 부류가 여타 다른 부류에 대하여 권력을 체계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하나의 조직체 이상이 결코 아닌 것이다.12) 여기서 레닌은 민주주의를 곧 국가라고 정식화하고 있다. 즉, 민주주의는 결코 추상적인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강제력을 행사하는 국가라고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레닌의 정의는 심원한 의미를 띠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민주주의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을 강제하는 국가권력이 없을 때 그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 말잔치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의 민주주의는 곧 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맑스주의에서 노동자계급의 국가는 곧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한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의 국가는 독재적 성격과 민주주의적 성격이 동시에 있는 것이며 이 모순되는 두 측면의 통일이 곧 노동자계급의 국가의 본질인 것이다. 이 점을 조금 더 상세히 파헤쳐 보자.

레닌은 파리 꼬뮨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꼬뮨은 타도된 국가 기구를 대신해서 오로지 보다 강화된 민주주의를 실시하게 된다. 즉 상비군의 폐지와 선출되고 국민 소환에 복종하는 관료가 바로 그것이다.13) 이러한 레닌의 언급은 민주주의가 곧 국가가 되는 사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즉, 상비군을 폐지하고 그것을 인민 다수의 무장력으로 대체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확장인 동시에 새로운 국가의 성립을 의미한다. 군대, 무장력은 국가권력의 핵심인데 그 핵심에서 민주주의의 성립은 곧 새로운 국가의 성립이며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곧 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왕에 의해 임명되는 관료제를 폐지하고 인민에 의해 선출되고 소환되는 관료로 대체한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확장인데 그 관료는 곧 국가 기구의 일부를 구성하는 요소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도 민주주의는 곧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레닌의 접근은 민주주의에 대한 추상적 이해를 벗어나서 민주주의에 대한 현실적 접근, 유물론적 접근을 보여 주는데, 이렇게 보면 어떠한 민주주의인가는, 곧 어떠한 국가인가와 같은 말이 된다. 혹은 누구의, 어느 계급의 민주주의인가는, 곧 어느 계급의 국가인가와 같은 말이 되는 것이다.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민주공화국에서 부(富)의 힘이 보다 명료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부의 힘이 이제 더 이상 정치적인 기구의 결함이나 자본주의의 정치적 외피의 결함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자본은 이제 자신의 세력을 아주 확실하고 견고하게 구축하는바, 부르주아 민주공화국에서는 사람이 누구로 바뀌든, 정부 조직, 당이 어떻게 변화하든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이 자본을 동요시킬 수 없는 것이다.14) 이와 같은 레닌의 언급은 앞서의 맑스의 언급과 같은 맥락인데 민주공화국이라는 외피하에서 자본가계급의 분파들은 단결하여 자본의 전일적 이익을 관철시키게 되며 따라서 인물, 당들의 변화에 좌우되지 않고 안정적인 지배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한국 사회에서도 확인되는데, 과거 1980년대의 군사 독재하에서보다 민주화되었다는 지금이 자본가들의 이익 관철에서는 더욱더 철저하고 강화된 형태라는 점이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가계급 지배의 안정된 형태인 것이며 오히려 그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반동적 부정, 극우파의 득세는 자본가계급의 지배가 약화되고 있다는 징표에 다름 아닌 것이다.

또한 부르주아 의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레닌의 언급은 지금의 한국의 현실에서도 시사적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어떠한 자들을 지배계급으로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의회를 통해 민중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입헌군주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주공화국에 있어서 부르주아 의회 제도의 진정한 본질인 것이다.15) 부르주아 사회에서 의회제는 선거라는 외피를 취하지만 선거권의 제약 등 갖은 제약(특히 한국의 경우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대표의 선출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주며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의회는 민중에 대한 또 다른 억압 기관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의회가 통과시키는 수많은 법률은 노동자와 민중의 삶과 존재를 옥죄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며 한국의 경우 2019년 하반기 지금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는 의회에 대해 그런 국회는 필요 없다는 구호가 나오고 있는 정도이다. 이러한 부르주아 의회에 대해 레닌은 파리 꼬뮨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한다. 물론 의회 제도를 벗어난다는 것이 대표 기구나 선거 원칙을 폐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잡화상 같은 대표 기구를 명실상부하게 활동하는 기구로 전환시키겠다는 의미다. 꼬뮨은 단순한 의회가 아니라, 활동하는 행정 기관이면서 동시에 입법 기관이어야만 했다.””16) 의회는 인민에 의해 선거로 선출되지만, 실제 집행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선출되지 않는 관료제를 분쇄하고 그것을 인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꼬뮨, 쏘비에트 혹은 평의회 등을 통하여 입법만이 아니라 집행(행정)까지 담당하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더 충실한 것이다. 부르주아적 의미에서 삼권 분립이니, 권력 기관의 견제이니 하는 것은 일종의 형식 논리인데, 인민에 의한 선출, 통제, 소환, 교체 등이 명확해진다면 권력 분립이라는 부르주아적 논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러면 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심화된 인식을 위하여 민주주의의 소멸의 문제를 살펴보자. 이를 위해 민주주의는 곧 국가라는 점을 기초로 접근할 수 있다. 맑스주의에서 국가의 소멸 문제는 맑스 당대로부터 언급되어 온 오래된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곧 국가라면 미래의 계급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소멸은 곧 민주주의의 소멸을 초래하게 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은 엥겔스의 언급을 인용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반대하는 무리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자유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되자마자 동시에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17) 이러한 엥겔스의 언급은 심원한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국가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필요성의 이유로 자유를 반대하는 세력과의 싸움, 즉, 역사의 발전에 반하는 자본가계급과의 싸움을 들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지배계급으로 올라선 이후, 장악한 정치권력으로써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생산 수단을 탈취하고 자본가계급의 반항을 억압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한 것이다. 즉, 계급을 폐지하고 계급의 완전한 소멸을 목표로 하는 독재가 곧 프롤레타리아 독재인 것이다. 이외에 노동자계급의 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없다. 그리고 계급이 완전히 소멸했을 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 도시와 농촌의 대립 등 계급 사회의 잔재가 완전히 소멸하면 국가는 서서히 스스로 소멸하게 되고 공동체의 기능은 시민 사회 자체 내의 조직들, 대중 조직들이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라 불리며 이루어졌던 갖가지 형태의 정치 조직과 제도들은 민주주의 자체가 하나의 습관이 됨에 따라, 그리고 다수와 소수로의 분열이 필연적이지 않게 됨에 따라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때에 이르러서야만 국가는 … 존재하지 않게 되고, 자유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오로지 그때에야 민주주의는 사멸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 수천 번 동안 반복되어 이제는 고루한 격언처럼 되어버린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인 규칙들을 준수하는 데 점차적으로 익숙해져 갈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18) 민주주의가 습관이 되었을 때, 국가라고 불리는 강압을 위한 특수 기구가 없이도 그러한 규칙들을 준수하는 데에 익숙해져 갈19) 때 민주주의는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닌의 언급을 인용해 보면서 정리해 보자. 민주주의는 평등을 의미한다. 평등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그리고 슬로건으로서 평등이 지니는 의의는 우리가 그것을 계급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해석하게 될 때 비로소 명확해질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단지 형식적인 평등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생산 수단의 소유 제도와 관련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평등이 실현되자마자, 다시 말해서 노동과 임금의 평등이 실현되자마자 인류는 필연적으로 한 걸음 더 발전한 문제, 즉 형식적인 평등에서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라는 실질적인 평등으로 진일보한 문제에 부딪힐 것이다.20) 민주주의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라는 점에서 형식적 평등의 실현이지만 생산 수단의 공유에 기초하는 실질적 평등의 문제, 능력에 따른 노동과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점은 민주주의의 문제를 넘어서며 그것의 해결은 미래 세대의 몫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레닌의 민주주의론은 민주주의는 계급의 문제를 떠나서 논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 실현은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의 장악, 노동자계급의 국가 수립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독재와 민주주의의 연관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측면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측면의 통일이라는 것이며 그에 따라 계급이 완전히 소멸하여 계급적 억압의 필요성이 사라질 때 국가는 소멸하며,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또한 소멸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노사과연

 

 


 

1)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천병희 역, 숨, 2014, p. 151.

 

2) 같은 책, p. 213.

 

3) J. S. 밀, ≪자유론≫, 동서문화사, 2012, pp. 124-125.

 

4) 같은 책, p. 199.

 

5) 같은 책, p. 223.

 

6) K. 맑스ㆍF. 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이하 ≪저작선집≫) 제1권, 박종철 출판사, 1994, p. 420.

 

7) 같은 곳.

 

8) F. 엥겔스, “프로이센 군사 문제와 독일의 노동자 당”, ≪저작 선집≫ 제3권, p. 60.

 

9) K. 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저작 선집≫ 제2권), p. 316.

 

10) V. I.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소나무, 1991, p. 28.

 

11) V. I. 레닌, ≪국가와 혁명≫, 논장, 1988, p. 99.

 

12) 같은 책, p. 104.

 

13) 같은 책, p. 59.

 

14) 같은 책, p. 26.

 

15) 같은 책, p. 63.

 

16) 같은 곳.

 

17) F. 엥겔스, 레닌의 ≪국가와 혁명≫, p. 111.에서 재인용.

 

18) 같은 곳.

 

19) 같은 곳.

 

20) 같은 책, p.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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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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