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레닌주의여 영원하라*

 

≪홍기≫** 편집부

번역: 부산지회 연구팀

 

* 출처: 레닌주의여 영원하라. 제3판. 북경: 외국어판, 1960; pp. 1-55. 이 글은 ≪홍기≫ 제6호(1960년 4월 16일자)에 실린 것이다. 사본: Marxists.org, 2010. HTML Markup: 후안 파하르도(Juan Fajardo), marxists.org, 2010년 4월.

 

**≪홍기(Red Flag)≫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발행하는 격주발행의 잡지다. 편집부 번역: 부산지회 연구팀

 

 

레닌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며

 

I

 

올해 4월 22일은 레닌 탄생 90주년이다.

 

레닌 탄생 1년 뒤인 1871년은 영웅적인 봉기였던 빠리꼬뮌이 있었다. 빠리꼬뮌은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시도에 있어 그 첫 번째 총연습이라는 위대하고 유례없는 세계사적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었다. 꼬뮌이 베르사유로부터의 반혁명적 공격의 결과로 패배하기 직전에 맑스는 말했다: 

만약 꼬뮌이 파괴된다면, 투쟁은 단지 연기될 뿐이다. 꼬뮌의 원칙들은 영원하며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원칙들은 노동자계급이 해방될 때까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1)

꼬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맑스에 의하면, 노동자계급은 기존의 국가기구를 단순히 접수하여 이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부르주아지의 군사적 관료기구를 분쇄하기 위해, 그리고 부르주아 독재를 대체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하기 위해, 혁명적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편으로 맑스주의자들과 또 다른 편에서 기회주의자들과 수정주의자들 사이의 노선을 나누는 것은 정확하게 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맑스와 엥겔스의 사후에 꼬뮌의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 기회주의자들과 수정주의자들에 맞서 철저히 단호한 투쟁을 한 사람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레닌이었다.

빠리꼬뮌이 이루지 못한 대의는 46년 후 위대한 10월 혁명에서 레닌의 직접적 지도하에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러시아 쏘비에트의 경험은 빠리꼬뮌의 경험의 연장이며 발전이었다.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계속적으로 자세히 상술되고 러시아 혁명이라는 새로운 경험의 관점에서 레닌에 의하여 풍부해진 꼬뮌의 원칙들은 처음으로 지구의 1/6에서 살아있는 현실이 되었다. 꼬뮌의 원칙들은 영원하며 파괴될 수 없다는 맑스의 말은 완전히 옳은 것이었다.

새로 태어난 쏘비에트 국가를 질식시키려는 시도 하에서, 당시 러시아에서 반혁명분자들과 결속한 제국주의의 앞잡이들은 쏘비에트 국가에 대항하여 무장간섭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영웅적인 러시아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은 외국의 강도들을 쫓아버렸으며, 자국에서의 반혁명적인 반란을 꺾어버리고 세계 최초의 위대한 사회주의 공화국을 공고하게 했다.

레닌의 기치 아래, 그리고 10월 혁명의 기치 아래, 새로운 세계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시작되었고,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밝았다.

10월 혁명 동안 레닌의 목소리는 전 세계에 빠르게 울려 퍼졌다. 마오쩌뚱 동지가 해석했던 것처럼, 중국 인민의 반제반봉건운동인 1919년 5ㆍ4 운동은 “그 시대의 세계혁명의 요청과 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요청으로 탄생하게 되었다.”2)

레닌의 요청은 옳기 때문에 강력하다. 제국주의 시대라는 역사적 조건하에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반박할 수 없는 일련의 진실들을 밝혔다.

레닌은 소수의 자본주의 열강들의 금융자본의 과두제, 즉 제국주의자들이 자국의 인민 대중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들을 식민지와 종속국으로 만들면서 전 세계의 인민들을 억압하고 약탈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제국주의 전쟁은 제국주의 정치의 연장선이다. 세계전쟁은 세계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원자재와 투자처를 찾기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과 세계를 재분할하려는 그들의 다툼 때문에 시작된다. 세계에 자본주의-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의 원천과 가능성은 존재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인민 대중이 전쟁의 원천을 이해하도록, 평화를 위한 투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레닌은 제국주의가 독점적이고 기생적이거나 썩어가는 소멸해가는 자본주의이고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마지막 단계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야라고 단언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은 분명히 개량주의적 방법이 아니라 혁명적 방법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해방운동은 식민지들과 종속된 국가들에서의 민족해방운동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 이 동맹은 모든 식민지들, 종속국에서 봉건제도와 매판반동분자들과 제국주의자들의 동맹을 분쇄할 수 있고, 따라서 확실히 세계 도처에서 제국주의 체제를 끝장낼 것이다.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경제적, 정치적 발전법칙에 비추어, 레닌은 자본주의가 각각의 국가에서 극도로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한 국가 또는 몇몇 국가에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며, 동시에 여러 나라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한 국가 또는 몇몇 국가에서 사회주의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항한 마찰과 제국주의적 파괴행위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투쟁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투쟁은 전체 역사적 시기를 포괄할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제국주의자들의 공격 위험에 대비하여 끊임없는 경계를 유지해야 하며, 그 위험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혁명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이다. 레닌은 포괄적이고 예리한 방법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근본문제,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혁명적 수단에 의해 부르주아 독재라는 국가기구를 분쇄하는 것에 의해 확립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한편에 프롤레타리아트와 다른 한편에 농민층과 모든 다른 근로인민 사이의 특별한 유형의 동맹이다; 그것은 새로운 조건하에서 다른 형태 속에서 계급투쟁의 연속이다; 그것은 지속적인 투쟁을 수반하는데, 이 투쟁은 착취계급들의 저항에 반대하고 외국의 침략과 구사회의 세력들과 전통들에 반대하는 피비린내 나고 냉혹한, 폭력적이고 평화로운, 군사적이고 경제적인, 교육적이고 행정적인 것이다. 이런 피할 수 없는 투쟁을 완강하고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전선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없다면, 인민 대중 전체를 참여시키지 못한다면, 사회주의도 없을뿐더러 사회주의의 더 이상의 승리도 없을 것이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수행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확립되고 강화되고자 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가 기회주의와 완전히 절연하는 그들 자신의 진실한 혁명적 정당, 즉 공산당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당은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 정당의 강령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모든 피억압 근로인민들이 계급투쟁을 수행하도록, 프롤레타리아 규율을 세우도록, 사회주의에서 나아가 공산주의라는 마지막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다. 이 정당은 반드시 대중들과 같은 편이 되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대중들의 창조적 주도성을 매우 중시해야 한다; 이 정당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건설에서뿐만 아니라 혁명에 있어서 대중들에게 철저히 의존해야 한다.

이러한 진실들은 10월 혁명 전후 레닌에 의해 끊임없이 설명되었다. 그 시대 전 세계의 반동주의자들과 속물들은 레닌에 의해 밝혀진 이러한 진실들이 두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현실적 삶에 있어서 이러한 진실들이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는 것을 보고 있다.

 

 

 

10월 혁명 이후 40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거대한 새로운 변화들이 전 세계에서 발생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건설에 있어 위대한 업적들을 통해, 쏘련은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뒤떨어졌던 짜르 체제하의 러시아를 세계에서 최고로 발달된 기술을 가진 국가로 변화시켰다. 경제적, 기술적 도약에 의해 쏘련은 기술력에 있어 유럽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앞서 있고, 미국보다도 앞서 있다.

쏘련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위대한 반파씨즘 전쟁에서의 위대한 승리는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에서 제국주의의 사슬을 깨부쉈다. 위대한 중국인민혁명의 승리는 중국 본토에서 제국주의의 사슬을 깨부쉈다. 한 무리의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들이 생겨났다. 쏘련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는 전체 사회주의 진영은 지구 전체 면적의 1/4과 전 세계 인구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주의 진영은 현재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에 반대하면서 독립적인 세계경제체제가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총 산업생산물가치는 현재 세계 총 산업생산물가치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곧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의 총 산업생산물가치를 능가하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 식민지체계는 붕괴하고 있다. 투쟁은 당연히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대체로 민족해방운동의 폭풍은 날마다 확대되는 규모로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를 휩쓸고 있다. 사물은 그것의 대립물로 발전하고 있다; 인민들이 한 걸음씩 약함에서 강함으로 전진하고 있는 반면, 제국주의자들은 한 걸음씩 강함에서 약함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한동안 존재했던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성은 오래전에 이미 끝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세계경제체제의 형성과 함께, 자본주의 세계시장은 매우 위축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첨예해졌다. 자본주의의 주기적인 경제공황은 더 이상 예전처럼 매 10년 전후의 주기로 발생하지 않고 매 3-4년의 주기로 발생한다. 최근에, 미국 부르주아지의 몇몇 대표자들은 미국이 10년 동안 3번의 “경제 침체”를 겪었음을 인정했으며, 그들은 1957-58년의 침체를 극복한 바로 직후인 지금 새로운 “경제 침체”의 징후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 공황들 사이의 간격이 짧아지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다가가고 있다는 그 이상의 신호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발전에 있어서의 불균등성은 이전보다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점점 줄어들고 있는 영토로 위축되어가고 있는 것과 동시에, 미 제국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영국, 프랑스 그리고 다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시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들을 잡아채 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 의해 이끌어지는 제국주의 국가들은 10년 이상 군비를 확대하고 전쟁준비를 해 왔으며, 그동안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서독과 일본 군국주의가 그들의 이전의 적인 미국의 도움에 의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제국주의 서독과 일본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대한 아귀다툼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 그들의 “전통적 우애”에 대해 다시 한 번 지껄이고 있으며, “워싱턴을 출발점으로 하는 소위 본-도쿄 축”을 위한 새로운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서독 제국주의는 뻔뻔스럽게 외국의 군사기지를 찾고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 내의 쓰라린 분쟁들을 악화시켰고, 동시에 사회주의 진영과 모든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들에 대한 위협을 고조시켰다. 현재의 상황은,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독일 군국주의의 부활을 지원했던, 1차 세계대전 이후와 비슷한데, 결과는 다시 “제 발등 제가 찍기(picking up a rock only to drop it on their own feet)”가 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제국주의자들의 세계 긴장고조는 그들이 강하다는 신호가 아니라 그들이 약하다는 신호이며, 정확히 자본주의 체제의 전례 없는 불안정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세계 지배에 대한 그들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미 제국주의자들은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사보타지와 전복에 욕심 사납게 의존할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의 위협”에 반대한다는 구실 아래 여러 국가들에서 혁명을 진압하는, 그들 자신이 부여한 세계경찰의 역할 속에서 세계 곳곳에 그들의 군사기지를 세우고, 중간지대를 점령하고 군사적 도발을 수행한다. 모든 사람이 “뭔가라도 던져(Throw something at it)”라고 외치는 동안 거리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쥐처럼, 미 제국주의자들은 어디서나 부딪혀 멍들고, 그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모든 곳에서 인민의 혁명적 투쟁의 새로운 고조를 일으킨다. 이제 심지어 그 자신들도 쏘련이 앞장서고 있는 사회주의 세계의 증가하는 번영과는 대조적으로 “세계열강으로서 미국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고대 로마의 쇠퇴와 몰락만을 볼 수 있다”고 혹자는 말한다.

과거 4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발생했던 변화들은 사회주의와 함께 모든 것들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반면에 제국주의는 날이 갈수록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는 위대하다. 그 시대의 주요한 특징은 사회주의의 세력이 제국주의의 세력을 능가했다는 것이며, 세계의 각성되고 있는 인민들의 세력이 반혁명의 세력을 능가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의 정세는 레닌 시대 이후 명백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변화들은 레닌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맑스주의를 방어하고 맑스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동안 레닌에 의해 드러난 진실들과 그가 발전시킨 모든 이론들을 더욱더 명확하게 확인시켜주었다.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레닌은 맑스주의를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고, 모든 피억압계급들과 인민들에게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노예화와 빈곤을 진정으로 떨쳐 버릴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40년은 전 세계에 레닌주의의 승리의 40년이었고, 레닌주의가 전 세계 인민들의 가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길을 찾았던 40년이었다. 레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가 확립된 국가들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계속 승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억압인민들의 투쟁에 있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승리를 거두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레닌주의의 승리는 모든 세계 인민들에게 갈채를 받는 것과 동시에 제국주의자들과 모든 반혁명분자들의 증오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자들은 레닌주의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대중의 혁명 의지를 마비시키기 위해 레닌주의에 대해 가장 야만적이고 비열한 공격들과 중상모략들을 개시했다. 더군다나 노동운동 속에서 동요하는 사람들과 변절자들을 육성하고 활용했고, 그들이 레닌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거세하도록 지도했다. 19세기 말에 맑스주의는 여러 가지 반맑스주의적 경향들을 완패시켰고, 노동자운동 도처에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유력한 지위를 얻었다. 그때 베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맑스의 가르침을 더 수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레닌주의가 제국주의와 모든 종류의 반혁명들에 맞서 맹공을 퍼부으면서 노동자계급과 모든 피억압계급들 그리고 전 세계의 민족들을 이끄는 데 있어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을 때, 티토로 대표되는 현대 수정주의자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레닌의 가르침(그것은 현대의 맑스주의의 가르침이다)을 수정하는 데 앞장서 왔다. 1957년 11월 모스끄바에서 열린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산당과 노동자당 대표자들 모임의 선언에서는 다음의 내용이 지적되었다. “부르주아 영향력의 존재는 수정주의의 내적인 근원이다. 반면에 제국주의자의 압력에 대한 굴복은 그것의 외적인 근원이다.” 옛날의 수정주의는 맑스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증명하는 것을 시도했던 반면에, 현대의 수정주의는 레닌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증명하는 것을 시도한다. 모스끄바 선언은 말했다:

현대의 수정주의는 맑스-레닌주의의 위대한 가르침을 더럽히려고 노력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선언하며, 사회진보에 있어 그 중요성을 상실했다고 단언한다. 수정주의자들은 맑스주의의 혁명적인 정신을 없애고 노동자계급과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근로인민들 사이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침식하려고 노력한다.

 

선언의 이 문구는 정확하게 말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현재의 상황이다.

맑스-레닌주의의 가르침들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가?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 전쟁과 평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건설에 대한 레닌의 통합적인 전체적인 가르침들은 여전히 풍부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그 가르침들이 여전히 유효하고 풍부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일부에 대해서만 언급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전체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가? 우리는 대개 레닌주의가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기의 맑스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승리의 시기의 맑스주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여전히 옳은 것인가? 레닌의 애초의 결론들과 레닌주의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개념들이 유효성과 올바름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가 레닌이 오래전에 분쇄해버렸고 오래전부터 실제의 삶에서 불명예스럽게 파산해버렸던 수정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의 결론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이 질문들에 직면해 있으며,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한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제국주의자들과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불합리함을 철저히 폭로해야 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하고. 그들이 일시적으로 현혹시켰던 대중들을 일깨워야 하며, 더 나아가 대중들의 혁명 의지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미 제국주의자들, 많은 나라들에서 부르주아지의 공공연한 대표자들, 티토 도당으로 대변되는 현대 수정주의자들과 우파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세계 인민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기 위해 “맑스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레닌주의도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라는 그들의 헛소리를 확인하려는 시도 속에서 동시대 세계정세의 완전히 왜곡된 그림을 그리고자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한다.

지난해 말 티토의 연설은 현대 수정주의자들이 “새로운 시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오늘날 전 세계는 국가들이 편안하고 조용하게 그들의 내부적 건설 과업에 전념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는 새로운 문제들―전쟁과 평화라는 문제가 아니라 협동, 경제 그리고 다른 문제들―이 의제에 오르고, 경제적 협력과 연관되며 또한 경제적 경쟁이 문제가 되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3)

이 변절자는 우리 시대가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이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승리의 시대라는 맑스-레닌주의의 일관된 이해를 부정하는 시도를 하면서 세계에서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의 문제를 완전히 제거한다.

그러나 전 세계의 현 상태는 진정으로 어떤 상태인가?

제국주의 국가들의 착취당하는 사람들과 억압받는 인민들이 “편안”할 수 있는가? 제국주의의 억압하에 있는 식민지와 반식민지의 모든 민족들이 여전히 “편안”할 수 있는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군사개입이 “평온”하게 되었는가? 미 제국주의자들이 여전히 우리나라의 대만을 점령하고 있을 때, 우리의 대만 해협에 “평온함”이 있겠는가? 알제리와 아프리카의 많은 다른 국가들의 인민이 프랑스, 영국 그리고 다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군사적 억압들에 종속되어 있을 때, 아프리카 대륙에 “평온함”이 있겠는가? 미국이 폭격, 암살, 전복에 의해 쿠바의 인민혁명을 좌초시키려고 할 때, 라틴 아메리카에 “평온함”이 있겠는가?

“(국가들이) 그들 내부의 건설 과업에 헌신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건설”을 의미하는가? 우리 모두는 오늘날 전 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국가들이 있고 성격상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체제를 가진 두 종류의 국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 세계체제에 속하며,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속한다. 티토는 제국주의자들이 자기 국가들의 인민들을 억압하고 전 세계의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군비확장의 “내부 건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민의 행복을 증진하고 지속적인 세계 평화를 위한 사회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내부 건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가?

전쟁과 평화라는 문제는 더 이상 쟁점이 되지 않는가? 그것은 제국주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착취체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전쟁의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제국주의와 착취체제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허용되더라도 전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사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끊임없이 중단되지 않고 전쟁이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민족해방운동을 억압하는 제국주의 전쟁들과 많은 나라들에서 혁명들에 반대하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개입전쟁은 전쟁이 아닌가? 이런 국지전들이 세계전쟁으로 발전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국지전들은 여전히 전쟁이 아닌가? 핵무기들로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재래식 무기들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사용하는 전쟁은 전쟁이 아닌가? 미 제국주의자들이 군비확장과 전쟁준비에 미국의 1960년 예산의 거의 60%를 할당하는 것은 미 제국주의 측의 호전적 정책이 아닌가? 서독과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은 인류를 새로운 세계전쟁의 위험에 직면하게 하지 않을까?

어떤 종류의 “협력”을 의미하는가? 자본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협력”인가? 식민지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제국주의자들과 식민지와 반식민지 민족들의 “협력”인가? 자본주의 국가들의 민족들에 대한 억압과 민족해방전쟁에 대한 억압 속에서 제국주의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자본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 국가들의 “협력”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소위 “새로운 시대”에 대한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앞서 말한 쟁점들에 대해 레닌주의에 도전하는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인민 대중과 독점자본가들 사이의 모순, 식민지와 반식민지 민족들과 제국주의 침략자들 사이의 모순, 사회주의 체제와 제국주의 체제 사이의 모순,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과 호전적인 제국주의 블럭 사이의 모순, 그 모든 모순들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상이한 “시대들” 사이의 차이들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어 왔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 시대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단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꾸며내며 애매모호함으로 변죽만 울리는 한 가지 방식이 있다. 이것은 노동자운동에서 제국주의자들과 부르주아들이나 수정주의자들의 오래된 수법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의 도처의 상황과 관련한 특정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엄격하게 과학적 정의들을 내리며, 그리하여 각 시대의 본질을 밝힌다. 이것이 바로 모든 진지한 마음을 가진 맑스주의자들의 방식이다.

시대를 구분하는 특징들에 대해 레닌은 말했다:

… 우리는 여기에서 거대한 역사적 시대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든 시대에 때때로 전진하고 때때로 후퇴하는 분리되고 부분적인 운동들이 있을 것이다. 운동의 평균적인 유형과 평균적인 속도로부터 다양한 일탈들이 있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성공적으로 어떤 주어진 시대의 역사적 운동들이 발전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계급이 이러저러한 시대에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지, 그 시대의 중심적 내용과 그 시대의 주요 발전방향, 주어진 시대의 역사적 상황의 주요 특징을 결정하는지 알 수 있고 알고 있다.

단지 이러한 기준에 의해서만, 즉 무엇보다 먼저 다른 “시대”의 근본적 차이점(그리고 상이한 나라들의 역사에서의 개별적 에피소드가 아니라)을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전술을 올바르게 내올 수 있다…4)

 

레닌이 여기에서 언급한 바대로, 한 시대는 그 시대에 어떤 계급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 시대에 어떤 계급이 그 시대의 발전의 주요내용과 주요방향을 결정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시한다.

맑스의 변증법에 충실한 레닌은 계급관계를 분석하는 관점으로부터 단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맑스주의는 일상생활의 수만 가지의 사실들 속에서 그 자신들을 명백하게 표현하는 계급적대와 계급투쟁에 의해 ‘이해관계’를 판단한다”5)라고 주장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맑스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우선 어떤 계급과 어떤 계급의 운동이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가능한 진보의 주인(主因)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주어진 구체적 순간, 주어진 구체적 상황에서 역사적 과정들의 객관적 내용들을 고려하는 데 있다…6)

 

레닌은 우리가 “사회 일반” 또는 “진보 일반”에 관해 모호하게 이야기할 게 아니라 계급분석의 기초에 대한 구체적 역사발전과정을 연구해야 한다고 항상 요구했다. 우리 맑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책을 단지 몇몇 스쳐지나가는 지나가는 사건들이나 아주 미미한 정치적 변화들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역사적 시기의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의 전반적인 상황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것은 맑스주의자들의 기본적인 이론적 입장이다. 새로운 계급변화의 시기,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레닌이 인류의 희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에 달려있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위대한 혁명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스스로 준비해야 하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은 이러한 입장에 굳건히 서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10월 혁명 후, 1918년에 있었던 러시아공산당(볼셰비끼) 제7차 대회에서 레닌은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상품생산의 발전, 자본주의로의 이행 그리고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로의 전화라는 일반적 기초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 그것에 의하여 우리는 이론적으로 사회주의를 배반하지 않았던 그 누구도 우리를 몰아내지 않을 입지를 차지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동일하게 불가피한 결론이 뒤따른다: 사회혁명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 모든 맑스주의자들이 깊이 고려해야할 것을 여전히 요구하는 결론, 바로 레닌의 결론이다.

우리의 시대가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승리의 시대라는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공식은 반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현재의 위대한 시대의 기본적 특징을 완벽히 올바르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주의가 이 위대한 시대의 혁명적 맑스주의의 연속과 발전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론과 정책이라는 공식은 논박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위대한 시대에 모순들―노동계급과 독점자본 간의 모순,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모순, 식민지와 반식민지 국가들의 민족들과 제국주의자들 간의 모순,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를 거둔 사회주의 국가들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모순―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레닌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닌주의는 우리의 승리의 기치가 되었다. 그러나 일련의 혁명적 맑스주의의 공식과는 반대로, 티토주의자들이 말하는 “새로운 시대”에는 제국주의가 없고, 프롤레타리아 혁명도 없으며, 말할 것도 없이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론과 정책도 없다. 간단히 말해 그것들과 함께, 우리 시대의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의 근본적 주안점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고, 레닌주의의 근본문제를 놓치고 있으며 레닌주의도 놓치고 있다.

현대 수정주의자들은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에 그들이 “새로운 시대”라고 부르는 것에 맑스와 레닌에 의해 발전된 “예전의 개념들”은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티토는 말했다: “우리는 교조주의자들이 아니다. 맑스와 레닌은 달에 가는 로켓과 핵폭탄과 위대한 기술진보를 예견하지는 못했다.”7) 교조주의자가 아니라고. 그래 좋다. 누가 그들이 교조주의자들이 되길 원하는가? 그러나 맑스-레닌주의를 위하여 교조주의에 반대하는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교조주의를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실제로 맑스-레닌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티토는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사회발달에 미치는 영향의 문제에 대해 사적 유물론의 견해로부터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은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있다. 이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현대 수정주의자들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용하여 맑스-레닌주의를 바람에 날려버리려는 헛된 시도로 이 문제에 대해 일부러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과학기술에서 쏘련의 성과들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쏘련의 성과들은 위대한 10월 혁명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눈에 띄는 성과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에 있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들은 세계 평화를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새로운 여건하에서, 티토가 말한 것처럼, 맑스와 레닌이 “예견하지 못했다”는 “달에 가는 로켓, 핵폭탄 그리고 위대한 기술 진보에 의해” 맑스-레닌주의 사상체계가 흔들렸던가? 맑스-레닌주의적 세계관, 사회역사적 전망, 도덕적 전망 그리고 다른 기본적 개념이 소위 진부한 “도그마”이고 계급투쟁의 법칙이 앞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맑스와 레닌은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고, 물론 최근 세계의 기술진보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을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결국 자연과학과 기술발전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어떤 징조가 될까? 맑스와 레닌은 이것이 오로지 새로운 사회혁명의 전조가 될 것이며, 분명히 사회혁명의 퇴조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맑스와 레닌 두 사람 모두 자연을 정복하는 데 있어 새로운 발견들과 자연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환호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엥겔스는 “칼 맑스의 묘지 옆에서의 연설(Speech at the Graveside of Karl Marx)”에서 말했다:

맑스에게 있어 과학은 역사적으로 역동적이고 혁명적인 힘이었다. 그가 아마도 아직은 실천적인 적용을 예견하는 것이 아직은 불가능했을 것 같은 몇몇 이론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을 얼마나 큰 기쁨으로 환영했는가. 그 발견이 산업에서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역사의 발전에서 즉각적인 혁명적 변화들을 수반했을 때, 그는 아주 다른 종류의 기쁨을 경험했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왜냐하면 맑스는 다른 무엇보다도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관점으로부터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관점으로부터, 자연의 정복에 있어서의 모든 새로운 발견들을 항상 생각했다.

 

빌헬름 리프크네히트(Wilhelm Liebknecht)는 “맑스의 회상(Remini-scences of Marx)”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맑스는 혁명을 질식시켰다고 상상한 유럽의 반동을 조소하였고 자연과학이 새로운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전의 세기에 세계를 혁명화했던 증기 왕(King Steam)[역자 주: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그의 통치의 종말로 가고 있는 중이었고 또 다른 비교할 수 없이 더 위대한 혁명가가 그의 자리를 차지했는데, 그것은 바로 전기의 불꽃이었다.

…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경제혁명에는 정치혁명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치혁명은 단지 경제혁명의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맑스가 이러한 과학과 역학의 진보를 논의한 방식에서, 세계에 대한 그의 개념과 특히 그가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인 개념을 명명했던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여전히 지녀왔던 어떤 의심은 봄의 햇살 속의 눈처럼 녹아내려 버렸다.

 

이것이 바로 맑스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서 혁명의 숨결을 느꼈던 방식이다. 그는 과학과 기술의 새로운 진보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사회혁명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맑스의 견해에서, 자연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세계에 대한 전체적인 맑스주의 개념의 입장과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인 개념의 입장을 더욱더 강화하고 그리고 확실히 그 입장을 흔들지는 않는다.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싸움에서 억압받는 국가들의 입장을 더욱더 강화하고 확실히 그 입장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맑스처럼, 레닌도 역시 사회체제에서에서 혁명의 문제와 연관하여 기술의 진보를 조망하였다. 그러므로 레닌은 “증기의 시대는 부르주아의 시대이고, 전기의 시대는 사회주의의 시대이다”라는 생각을 가졌다.8)

제발 맑스와 레닌의 혁명정신과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혁명을 배신하고 있는 부끄러운 태도 사이의 차이를 주목하시기를!

계급사회에서, 제국주의 시대에, 맑스-레닌주의자들만이 계급분석의 관점으로부터 기술의 발전과 이용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체제가 진보적이고 인민들의 이익을 대표하기 때문에 평화로운 국가의 건설과 자연의 정복에 봉사하기 위해 핵에너지와 로켓공학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러한 새로운 기술들을 정복하면 할수록,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러한 새로운 기술들을 빠르게 개발하면 할수록, 사회주의 국가들은 인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회적인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이라는 목표에 더 훌륭하게 도달할 것이고 제국주의 전쟁을 저지하기 위한 힘을 더 강화할 것이며 전 세계 평화를 방어할 가능성을 더 증가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국가 인민들의 복지를 위해 전 세계 인민들을 위한 평화라는 이해 속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은 어디에서 가능하든지 간에 더욱더 인민의 복지에 봉사하는 그러한 새로운 기술들을 정복해야 한다.

현 시기 사회주의 쏘련은 분명히 새로운 기술들의 발전에서 더 우월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달에 도달한 로켓이 자본주의가 가장 발전된 국가인 미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쏘련에 의해서 처음으로 발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바로 사회주의 국가만이 새로운 기술들의 대규모 발전을 위한 끝없는 전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제국주의 체제는 반동적이고 인민들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에게 적대적인 공격과 자국의 인민들에게 적대적인 협박을 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 치명적인 무기들을 만들기 위해 그러한 새로운 기술들을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그러한 새로운 기술들의 출현은 단지 사회적인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의 자본주의적인 관계 사이의 모순을 새로운 단계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본주의를 영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국가들에서의 인민들의 혁명과 낡고 범죄적이며 식인종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파괴를 더 자극하는 것이다.

미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은 전쟁 위협을 하고 전 세계를 공갈하기 위해 원자폭탄과 같은 무기들을 이용한다. 그들은 미 제국주의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는 그 어떤 누구라도 파괴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티토 도당은 이 노선에 호응한다; 티토 도당은 대중들 사이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이 핵전쟁의 공포를 확산시키는 것을 그만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티토 도당 내부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의 공갈 협박과 그들의 맞장구치는 소리는 단지 현실 정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지만 각성한 인민들을 위협할 수는 없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세계의 역사에서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 바로 인민 대중이라는 것을 항상 견지해 왔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 전쟁 동안과 그 이전에 한동안 중국의 약간의 인민들 사이에서 한 가지 유행하는 이론이 있었는데, 그 이론은 “무기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라는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이 이론으로부터 중국의 무기들은 낡았고 기술은 후진적인 반면에 일본의 무기들은 새롭고 기술은 발전했기 때문에, “중국은 불가피하게 정복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오쩌뚱 동지는 그 당시에 출판된 “지구전에 관하여(On the Pro-tracted War)”라는 그의 저작에서 그러한 말 같지 않은 소리에 대하여 반박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했다: 중국에 적대적으로 공격하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은 그것이 반동적이고 정의에 어긋나며 대중적인 지지가 부족하여 부정의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다; 일본에 저항하는 중국 인민들의 전쟁은 그것이 진보적이고 정의로우며 넘치는 지지를 받기 때문에 확실히 승리할 것이다. 마오쩌뚱 동지는 전쟁에서 힘의 가장 풍부한 원천은 대중들에게 있었고 깨우치고 단결된 인민 대중에 의해 조직된 인민의 군대가 전 세계에 걸쳐 무적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이것이 바로 맑스-레닌주의의 테제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맑스-레닌주의 테제의 승리였고 “민족의 종속 이론”은 패배로 끝이 났다. 2차 대전 후, 무기와 장비가 더 우세했던 미국 침략자들에 맞서 싸운 조선 전쟁에서 조선과 중국 인민들의 승리는 다시 한 번 더 이 맑스-레닌주의 테제를 실증하였다.

깨우친 인민들은 항상 무기가 우월한 반동들에게 저항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발견하고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할 것이다. 이것은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도 그러했고, 현재의 역사에서도 그러하며, 미래의 역사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군사 기술에서 사회주의 쏘련이 획득한 우위와 미 제국주의자들의 핵무기 독점 상실의 결과로, 전 세계의 인민들과 미국 인민들의 깨우침의 결과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의 금지에 관한 협정에서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협정에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호전적인 제국주의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전 세계 사회주의 국가들과 평화를 사랑하는 인민들은 핵무기의 금지와 파괴를 위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견고하게 지지한다. 우리는 항상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여 싸우고 핵무기의 금지를 위해, 세계 평화의 수호를 위해 싸운다. 더 광범위하고 집중적으로 이 싸움이 수행되어지면 질수록, 호전적인 미국과 다른 제국주의자들의 야비한 얼굴들이 더 완전하고 철저하게 드러나고 우리는 전 세계의 인민들 앞에서 이 제국주의자들을 더 고립시킬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손을 묶어버릴 가능성은 더 커지고 그것은 세계 평화라는 대의에 더 큰 이득이 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만약 우리가 전쟁을 도발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위험성에 반대하는 우리의 경계를 풀어버린다면, 만약 우리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국가들의 인민들을 깨우치도록 노력하지 않고 인민의 손을 묶는다면, 그때 제국주의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전쟁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며 불가피한 결과는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을 도발하는 위험성의 증가일 것이다.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완전한 준비 부족이나 부적절한 준비 때문에 인민들은 전쟁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재빨리 받아들일 수 없을는지도 모르고 그 결과 전쟁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을 할 것인가 아닌가가 우리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들의 참모장이 아니다. 모든 국가의 인민들이 현대식 무기들을 소유한 사회주의 진영과 함께 그들의 경각심을 더 높이고 철저히 준비를 하는 한, 미국과 다른 제국주의자들이 핵무기 금지에 관한 협정에 도달하는 것을 거부하고 감히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을 도발함으로써 인민들의 의지를 무시하고 행동할지라도 그 결과는 전 세계 인민들에 의해 포위된 이 괴물들의 아주 빠른 속도의 파괴일 뿐이며 소위 인류의 전멸은 확실히 아니다.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은 많은 국가의 인민들(미국과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인민들을 포함해서)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범죄와 같은 전쟁 도발에 일관되게 반대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이 많은 국가의 인민들에게 그러한 희생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이 보여준 것처럼 그러한 희생은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제국주의의 파편 더미 위에서, 승리한 인민들은 자본주의 체제보다 수천 배 높은 문명을 아주 빨리 창조할 것이며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진실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할 것이다.

결론은 다음과 같을 수밖에 없다: 당신들이 핵에너지, 로켓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어떤 방식으로 보든지 간에, 현대의 수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핵에너지, 로켓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레닌이 지적했던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대라는 기본적인 성격을 변화시킨 것은 없다.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가 저절로 부서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관련된 제국주의 국가들 내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식민지와 반식민지에서의 민족 혁명에 의해 전복될 것이다. 현대의 기술적인 진보는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를 그것의 운명으로부터 구할 수는 없고 단지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새로운 조종을 울릴 뿐이다.

 

 

IV

 

현대의 세계정세에 관한 그들의 불합리한 주장들과 맑스-레닌주의의 계급분석 이론과 계급투쟁 이론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그들의 불합리한 주장을 전개하면서, 현대 수정주의자들은 폭력, 전쟁, 평화공존 등과 같은 일련의 문제들에 관한 맑스-레닌주의의 근본 이론들을 전적으로 뒤엎으려고 시도한다.

수정주의자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맑스주의자가 되기를 원하는 선량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어떤 새로운 역사적인 현상에 직면하여 혼란스러워하고 그 결과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약간은 있다. 예를 들어, 그들 중 몇몇은 핵을 통한 공갈 협박이라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정책의 실패가 폭력의 종말을 표시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불합리성을 완전히 논박하면서 이러한 선량한 의도를 가진 인민들이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는 것 역시 도와야 한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레닌은 ≪국가와 혁명≫이라는 그의 책에서 이 질문에 관하여 아주 많은 언급을 했다. 국가의 출현과 존재는 그 자체로 일종의 폭력이다. 레닌은 엥겔스의 다음과 같은 설명을 소개했다:

… 그것(이 공권력은)은 단지 무장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부속 기구, 감옥과 모든 종류의 강압적인 기구들로 구성된다…

 

레닌은 우리들이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의 국가, 즉 부르주아 독재의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국가를 구별해야 하고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의 폭력, 즉 반혁명적인 폭력과 혁명적인 폭력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혁명적인 폭력이 존재하는 한 그것에 반대하는 혁명적인 폭력은 반드시 존재한다. 혁명적인 폭력 없이 반혁명적인 폭력을 쓸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착취계급이 권력을 잡고 있는 국가는 반혁명적인 폭력, 바로 착취계급의 이익을 위해 피착취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특별한 힘이다. 제국주의자들이 핵무기와 로켓들을 보유하기 이전이나 그들이 이 새로운 무기들을 보유한 이후에나, 제국주의 국가들은 항상 국내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억압하고 해외에서는 식민지 국가와 반식민지 국가의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특별한 힘이었으며 항상 그러한 폭력 기구였다; 제국주의자들이 이 새로운 무기들을 사용하도록 강제당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민의 국가와 그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상태가 제국주의 국가를 전복하고 대체할 때까지 제국주의 국가는 당연히 제국주의의 폭력 기구들로서 남아 있을 것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현 시대의 자본주의-제국주의자들이 창조했던 것과 같은 그러한 대규모적이고 그러한 완전히 야만적인 폭력적인 힘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십수 년을 통하여, 미 제국주의자들은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이전보다도 백배나 더 야만적인 박해 수단을 채택하였으며 그 결과 본국의 노동계급의 뛰어난 아들들, 흑인과 모든 진보 세력들을 짓밟았다; 뿐만 아니라, 미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이 전 세계를 그들의 폭력적인 지배 아래 두려고 의도했다는 것을 처음부터 죽 뻔뻔스럽게 선언을 해 오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폭력적인 힘들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며, 동시에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역시 그들의 폭력적인 힘들을 강화하기 위한 경쟁에 가담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이끄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오만한 군대의 증강은 전례가 없이 심상치 않은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 동안에 나타났다. 제국주의자들이 미친 듯이 그들의 군사력의 확장을 최고로까지 끌어올리면 올릴수록, 그것은 바로 그들이 그들의 운명에 더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더욱더 의미한다. 이제 약간의 미 제국주의자들의 대리인들조차도 자본주의 체제의 불가피한 절멸의 징후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운명에 더 가까이 가고 있기 때문에, 제국주의자들 스스로가 그들의 폭력을 끝내겠는가?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이 그들이 조직했던 폭력을 자발적으로 버리겠는가?

과거와 비교했을 때, 제국주의자들이 더 이상 폭력을 탐닉하지 않는다거나 탐닉의 정도가 줄어들고 있는 중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레닌은 오래전 많은 기회를 빌려 그러한 질문에 대답을 했다.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는 그의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제국주의는 항상 폭력과 반동으로의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혁명 후,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라는 그의 책에서, 레닌은 특히 역사를 상세히 기술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독점자본주의의 이전과 독점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사이의 차이를 비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19세기의 70년대에 정점에 도달했던 독점 이전의 자본주의는 기본적인 경제적 특성들(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전형적이었던) 때문에 평화와 자유에 대해 상대적으로 애착을 가진 것으로 구분된다. 20세기에 최종적으로 성숙한 제국주의, 즉 독점자본주의는 기본적인 경제적 특성들 때문에 평화와 자유에 거의 애착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구분되며 모든 곳에서 군국주의의 최대치의 그리고 보편적인 발전에 가장 큰 애착을 가진 것으로 구분된다.

 

물론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새롭게 탄생하여 국가의 경제력이 아직 새롭고 불충분할 때인 10월 혁명 초기에 이러한 말들을 했다. 반면에 우리가 이미 묘사했던 바대로, 40년 이상이 경과하면서 쏘비에트 국가 그 자체와 전 세계의 모습은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였다. 그러므로 쏘련의 힘, 사회주의 세력의 힘과 평화 세력의 힘 때문에 제국주의의 성격이 변하였고 그 결과 앞서 말한 레닌의 테제들이 진부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혹은, 제국주의의 성격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가 더 이상 폭력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견해들은 현실의 정세에 조응하는 것일까?

전 세계 사회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 속에서 분명히 우위를 차지하였다. 이 위대한 역사적 사실은 전 세계에서 제국주의적 폭력의 위치를 약화시켰다. 그러나 이 사실이 제국주의자들이 그들 국가의 인민들을 다시는 결코 억압하지 않고 외부적인 확장과 공격적인 활동에 다시는 결코 종사하지 않게 할 것인가? 이 사실이 제국주의자들의 호전적인 집단들이 이제부터는 “도살자의 큰 칼을 버리고” “소를 사기 위해 칼을 팔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이 사실이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군수품 생산자와 판매자들의 그룹을 앞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로 변화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들에 모든 진지한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직면하고 있고 깊은 심사숙고가 요구된다. 이 질문들이 정확히 조망되고 다루어지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프롤레타리아적인 대의의 성공 혹은 실패와 인류의 운명에 관하여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전쟁은 가장 첨예한 형식의 폭력의 표현이다. 한 가지 유형은 내전이고, 또 다른 유형은 외국과의 전쟁이다. 폭력은 항상 가장 첨예한 형식인 전쟁으로 언제나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부르주아지의 전쟁은 평상시의 부르주아 정치의 연장인 반면에, 부르주아지의 평화는 부르주아 전시 정치의 연장이다. 부르주아지는 인민에 대한 지배와 외국과의 투쟁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전쟁과 평화라는 두 가지 형식을 항상 교대로 채택한다. 소위 평화의 시기에는, 제국주의자들은 체포, 구금, 중노동, 대학살 등과 같은 폭력의 형식에 의해 피억압계급들과 민족들을 다루기 위한 무장력에 의존한다. 반면, 동시에 그들은 국내에서는 인민들의 혁명을 억압하기 위해, 해외에서는 약탈을 수행하기 위해, 외국의 경쟁자들을 압도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에서 혁명을 근절하기 위해, 역시 가장 첨예한 형식의 폭력―전쟁―을 이용하려고 준비한다. 혹은 그렇지 않다면, 국내에서의 평화는 해외에서의 전쟁과 함께 나란히 존재한다.

10월 혁명 초기에, 제국주의자들은 쏘련에 적대적인 전쟁의 형식으로 폭력에 의존했는데, 그것은 제국주의 정치의 연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제국주의자들은 쏘련을 공격하기 위해 대규모 전쟁의 형식으로 폭력을 이용했는데,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정치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제국주의자들은 상이한 시기에는 쏘련과 평화공존이라는 외교관계를 역시 수립하였는데, 물론 그것 역시 특수한 상황하에서의 또 다른 형식에서 이루어진 제국주의 정치의 연장이었다.

정말로 평화공존에 관한 몇 가지 새로운 질문들이 이제 떠올랐다. 강력한 쏘련과 강력한 사회주의 진영과 직면했을 때, 제국주의자들이 쏘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을 공격한다면 그들의 소원과는 달리 히틀러가 그러했듯이 그들의 절멸을 재촉할 것인지 혹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가장 심각한 결과들을 불러올 것인지를 어쨌든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평화공존” ― 이것은 단지 10월 혁명 다음에 이어진 사회주의 국가들의 출현 후에 떠올랐던 새로운 개념이다. 그것은 레닌이 10월 혁명 전 예측했던 상황하에서 형성된 새로운 개념인데, 그때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주의는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처음에 일국이나 몇 개의 국가들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반면에 다른 국가들은 한동안 부르주아 국가나 부르주아 이전의 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9)

 

이 새로운 개념은 위대한 쏘비에트 인민들이 제국주의자들의 무장 간섭을 물리친 후 레닌이 진전시킨 개념이다.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제국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쏘련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려고 하지 않았다. 제국주의자들은 단지 쏘련에 대한 간섭 전쟁이 실패한 후에, 수년간의 실질적인 무력 도발의 시도가 있은 후에, 쏘비에트 국가가 그 대지 위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후에, 쏘비에트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일정한 힘의 균형이 모양 갖추어지고 난 후에, 어쩔 수 없이 쏘련과 “공존”하였다. 1920년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제국주의 세력들과 나란히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을 획득하였는데 그들은 지금 우리와 무역 관계를 시작할 것을 강제당하고 있다.10)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와 제국주의 사이에서 일정 기간 동안의 평화공존은 전적으로 투쟁을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차 대전 전, 쏘련에 대한 독일의 공격이 있기 전인 1920-1940년은 제국주의와 쏘련 사이의 평화공존의 기간이었다. 이 20년의 기간 동안, 쏘련은 평화공존에 충실했다. 그러나 1941년 히틀러는 더 이상 쏘련과 평화공존을 유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독일의 제국주의자들은 약속을 어기고 쏘련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을 도발하였다. 위대한 쏘련이 주된 힘이었던 반파씨스트 전쟁의 승리 덕분에, 전 세계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평화공존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더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구상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 제국주의자들은 쏘련과 전 사회주의 진영 주위 어디에나 군사기지들과 미사일 기지들의 망을 세웠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의 영토인 대만을 점령하고 있는 중이고 대만 해협에서 우리에 대한 군사적인 도발을 계속해서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조선에서 무장 간섭을 수행하였는데, 그들은 조선 땅에서 조선과 중국 인민들에 대한 대규모 전쟁을 벌였다. 그 전쟁은 단지 그들이 패배한 후에야 휴전 협정을 가져왔다 ―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들은 조선 인민들의 재통일을 방해하고 있다. 그들은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전쟁에서 프랑스 제국주의 점령군에게 무기를 공급하였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들은 베트남 인민들의 재통일을 방해하고 있다. 그들은 헝가리에서 반혁명적인 반란을 꾀하였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들은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다른 곳에서 국가를 전복하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시도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사실들은 레닌이 1920년 2월 미국의 특파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바대로이다: 평화의 문제에 관하여, “우리 편에 장애는 없다. 장애는 미 제국주의자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자본가들이다.”11)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외정책은 평화정책일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체제는, 우리가 전쟁이 필요하지 않다고, 절대적으로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전쟁을 시작해서도 안 된다고, 이웃 국가의 영토를 단 1인치라도 점령해서는 안 되고 점령할 수도 없다고, 결의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로, 중화인민공화국은 평화적인 대외정책을 일관되게 고수해 오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도와 버마라는 두 개의 이웃하고 있는 국가와 함께, 잘 알려진 평화공존 5개 원칙을 공동으로 발의를 했다; 그리고 1955년 반둥회의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과 함께 평화공존 10개 원칙을 채택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산당과 정부는 흐루쇼프 동지가 이끄는 쏘련의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정부에 의해 수행되었던 평화를 위한 활동들을 지난 몇 년간 일관되게 지지해 왔는데, 쏘련의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정부의 이러한 활동들이 전 세계의 여러 민족들 앞에 사회주의 국가들의 평화적인 대외정책의 견고함을 가일층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민족들이 제국주의자들이 새로운 세계전쟁을 도발하는 것을 예방하고 지속적인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57년 모스끄바 회의의 선언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평화의 대의는 우리 시대의 강력한 세력들에 의해 유지된다: 쏘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확고한 진영; 반제국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고 사회주의 나라들과 함께 광범한 평화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들; 국제적 노동계급과 무엇보다도 그것의 전위인 공산당들; 식민지와 반식민지 민족들의 해방운동; 여러 민족들의 대중적인 평화운동; 중립을 선언한 유럽 국가들의 민족들,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들과 새로운 전쟁계획에 확고하게 저항하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중들. 이러한 강력한 세력들의 동맹이 전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세력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한, 평화공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고, 혹은 형식적으로는 핵무기 금지에 관한 합의 도출을 포함하여 평화공존에 대한 여러 가지 협정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전 세계 민족들의 열망에 완전히 부응하는 훌륭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서조차도, 제국주의 체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폭력의 가장 첨예한 형태인 전쟁은 전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레닌이 기회주의와의 싸움에서 반복하여 설명하고 지지했던 정의,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정의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선언한 유고슬라비아의 수정주의자들의 묘사12)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레닌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올바르다고 믿는다: 전쟁은 착취체제의 불가피한 결과이고 제국주의 체제는 현대 전쟁의 원천이다. 제국주의 체제와 착취계급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종류의 전쟁들이 계속 발발할 것이다. 그 전쟁들은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세계 재분할을 위한 전쟁들이나 또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피억압 민족들 간의 침략과 반침략의 전쟁들, 제국주의 국가들 내에서의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간의 혁명과 반혁명의 내전들 혹은 물론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 국가들을 공격하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스스로를 방어해야만 하는 전쟁일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전쟁은 특정한 계급들의 정치의 연속을 대변한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절대적으로 부르주아 평화주의의 진창으로 빠져서는 안 되고, 맑스-레닌주의자들은 모든 종류의 전쟁을 평가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급적 분석의 방법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가 따라야 하는 정책들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뿐이다.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군사 강령”이라는 그의 논문에 써 놓은 바대로: 이론상으로, 모든 전쟁이 다른 수단들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일 것이다.

 

약탈과 억압이라는 목적을 위해, 제국주의는 항상 두 가지 전술을 사용했다: 전쟁이라는 전술과 “평화”라는 전술; 따라서 모든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들은 제국주의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역시 두 가지 전술을 사용해야 한다: 제국주의의 기만적인 평화를 폭로하고 진정한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전술과 제국주의가 전쟁을 촉발한다면 제국주의자들의 부정의한 전쟁을 끝장내기 위한 정의의 전쟁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전술.

한마디로, 전 세계 민족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는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거짓말들을 철저히 분쇄해야 하고 폭력, 전쟁과 평화공존의 문제들에 관한 맑스-레닌주의의 관점들을 견지해야 한다.

유고슬라비아 수정주의자들은 폭력에 대한 고유한 계급적 성격을 부정하고, 그로 인해 혁명적 폭력과 반혁명적 폭력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워버린다; 그들은 전쟁에 내재된 계급적 성격을 부정하며, 따라서 그들은 정의의 전쟁과 부정의한 전쟁의 근본적인 차이를 지워버린다; 그들은 제국주의 전쟁이 제국주의 정치의 연속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또 다른 세계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제국주의의 위험성을 부정하고, 착취계급을 제거한 이후에야 비로소 전쟁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부정하고, 뻔뻔스럽게도 미 제국주의의 지도자인 아이젠하워를 “냉전을 종식시키고 서로 다른 정치 체제 사이에서 평화적인 경쟁을 하는 지속적인 평화를 수립하기 위한 초석을 놓은 사람”이라고 부른다;13) 그들은 평화공존의 조건들 하에서, 여전히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 등의 분야에서 복잡하고 첨예한 투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유고슬라비아 수정주의자들의 이러한 모든 주장들은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제국주의의 전쟁 정책에 도움이 되고 있다.

 

 

V

 

현대 수정주의자들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평화적인 대외 정책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국내 정책과 혼동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이한 사회체제를 가진 국가들 간의 평화공존이 다음을 의미한다고 즉,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평화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국가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부르주아와 제국주의자들과의 “평화공존”에 들어가고 프롤레타리아트와 모든 피착취계급들이 그들이 계급사회에 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잊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주장들은 역시 맑스-레닌주의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목표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보호하는 것이며,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나머지 모든 근로인민들을 영구적으로 자본주의적 노예 상태에 가두려고 시도한다.

상이한 국가들 간의 평화공존과 다양한 국가들에서 인민혁명은 그 자체로는 두 가지의 상이한 것이며 한가지 그리고 동일한 것이 아니다; 두 개의 상이한 개념이며 한 개의 개념이 아니다; 두 종류의 상이한 문제이며 한 종류의 그리고 동일한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평화공존이란 국가들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혁명이란 각각의 국가 내에서 피억압 인민들에 의한 억압계급들의 타도를 의미하며, 반면에 식민지와 반식민지의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외국의 억압자들, 즉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는 문제이다. 10월 혁명 이전에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평화공존이라는 문제 자체가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국가의 민족들이 그들 국가에서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자신의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한 종류의 혹은 다른 종류의 혁명을 일정에 올렸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민족 혁명의 문제가 존재했었다.

우리는 맑스-레닌주의자들이다. 우리는 항상 혁명이 각각의 민족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항상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스스로에게 의존할 수 있을 뿐이고, 어떤 국가의 인민들의 해방은 자신들의 각성과 그 국가에서의 혁명의 성숙에 의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혁명은 수출될 수도 수입될 수도 없다. 그 어떤 누구도 외국의 인민들이 혁명을 수행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누구도 “벼의 새싹을 잡아당김으로서 그것들이 자라는 것을 돕는 것”과 같은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외국의 혁명이 일어나도록 할 수 없다.

레닌은 1918년 6월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그것을 잘 보여주었다:

혁명이 협의에 의해 명령에 따라 외국에서 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거나 앞잡이들이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두 가지의 혁명을 경험했다. 우리는 혁명이 명령이나 협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혁명은 수천만의 인민들이 더 이상 낡은 방식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발생한다.14)

러시아 혁명의 경험뿐만 아니라 중국 혁명의 경험 역시 이것의 가장 훌륭한 증거 중의 하나가 아닐까? 중국 공산당의 지도하에 우리 중국인민들 또한 몇 번의 혁명을 경험했다. 제국주의자들과 모든 반동들은 정신병자와 같이, 우리의 혁명이 해외로부터의 명령에 의해서나 협의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항상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전 세계 인민들은 우리의 혁명이 해외로부터 수입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민들이 낡은 중국에서 계속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제국주의의 공격에 직면한 사회주의 국가가 어쩔 수 없이 방어전쟁을 수행하고 반격을 시작하도록 강제되었을 때, 쏘련이 히틀러에 대항한 전쟁에서 한 것처럼 자신의 국경을 넘어서 해외에서 적들을 뒤쫓고 제거하는 것은 정당화될까? 그것은 완전히 정당화되고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전적으로 올바르다. 공산주의자들의 엄격한 원칙들에 따라, 사회주의 국가들의 그러한 작전들은 제국주의가 그들 국가들에 대한 침략전쟁을 시작했을 때로 전적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외국 군대의 침략을 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주의 국가들은 군대를 국경선 너머로 결코 보내지 않고, 결코 보내서도 안 되며, 결코 보내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군대는 정의를 위해 싸우기 때문에, 이 군대가 외국 군대에 반격을 가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하는 경우, 그 군대가 어디를 가든지 간에 그 군대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효과를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때조차도, 그 군대가 가는 장소들과 국가들에서 인민혁명의 발생과 사회주의 체제의 수립은 여전히 그곳 인민 대중들의 의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혁명 이념의 전파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이 이념이 혁명의 결실을 맺는 것은 주어진 국가의 특수한 환경하에서 인민 대중들의 노력을 통해서일 뿐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대에서 진실일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혁명 시대에도 변함없이 진실이다. 다양한 국가들의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혁명의 시대에 그들의 복음서로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받아들였으며, 반면에 다양한 국가들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맑스의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그리고 레닌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와 ≪국가와 혁명≫ 등을 복음서로 받아들인다. 시기가 바뀌고 계급이 바뀌면 이데올로기도 바뀌고 혁명의 성격도 바뀐다. 그러나 혁명적 국면이 무르익었을 때, 혁명에 대한 염원이 존재한다면 그 어떤 누구도 어떤 국가에서의 혁명을 저지할 수 없다. 결국은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를 대체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독립된 객관적인 법칙이다. 반동들이 역사의 수레바퀴의 전진을 아무리 막으려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혁명은 조만간 일어날 것이고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한 사회의 또 다른 사회로의 대체에도 적용된다. 노예제는 봉건제로 대체되었고 그 다음 봉건제는 자본주의 체제로 대체되었다. 이것들 역시 인간의 의지와는 독립된 법칙들을 따른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들은 혁명을 통해 수행되었다.

저 악명 높은 옛날의 수정주의자, 베른슈타인이 한때 말했다. “고대 로마를 기억해 보라. 일을 하지 않았지만 잘사는 지배 계급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계급은 약해졌다. 그러한 계급은 차차로 자신들의 권력을 넘겨주어야 한다.”15) “약해진” 계급으로서 노예소유주들은 베른슈타인이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었고, 현대의 미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확고한 몰락이라는 확실한 사실을 숨길 수 없다. 하지만 뻔뻔스러운 자칭 “역사학자”였던 베른슈타인은 노예소유주들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넘겨준”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지배는 장기적이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노예 혁명에 의해 전복되었다는 고대 로마 역사의 기본적인 사실을 은폐하는 것을 선택했다.

혁명은 피억압계급에 의한 혁명적 폭력의 사용을 의미하며, 혁명은 혁명전쟁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르주아 혁명뿐만 아니라 노예 혁명에도 해당된다. 레닌은 그것을 잘 설명했다:

역사는 어떠한 피억압계급도 독재의 시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즉 정치권력의 장악과 착취자들에 의한 가장 필사적이고 격렬한 저항을 힘에 의해 억압하지 않고서는, 권력을 획득한 적이 없고 획득할 수도 없다고 가르친다. … 부르주아지는 … 선진국에서 일련의 반란과 내전을 통하여 그리고 왕, 봉건주의자, 노예소유주들과 그들의 복고의 시도를 힘에 의해 억압하는 것을 통하여 권력을 잡게 되었다.16)

 

왜 일은 이런 식으로 일어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때, 우리는 다시 레닌을 인용해야 한다. 첫째,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 세계 어느 지배계급도 투쟁 없이 물러난 적이 없다.”17)

둘째, 레닌이 설명했듯이: “반동계급들은 보통 최초로 폭력과 내전에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최초로 ‘의사일정에 총검을 들이대는’ 사람들이다. …”18)

 

이것에 비추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레닌을 인용해야 한다. 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어보자:

역사에서 어떠한 위대한 혁명도 내전 없이 수행된 적은 없었고 내전 없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진실한 맑스주의자는 없다.19)

 

여기의 레닌의 이 말들은 아주 명확하게 그 질문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레닌으로부터의 인용이 있다:

사회주의가 평화롭게 탄생했다면 ― 하지만 자본주의의 신사 분들은 사회주의가 그렇게 평화롭게 탄생되도록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 방식으로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설령 전쟁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자본주의의 신사 분들은 여전히 그러한 평화로운 발전을 막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했을 것이다. 심지어 평화적으로 시작되었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위대한 혁명도 반혁명적인 부르주아지에 의해 시작되었던 필사적인 전쟁으로 끝이 났다.20)

 

이것 역시 아주 명확하게 설명되고 있다.

위대한 10월 혁명은 이러한 레닌의 명제들이 진실이었다는 가장 좋은 구체적인 증거이다.

중국 혁명도 역시 그러하다. 그 어떤 누구도, 중국의 인민들과 중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중국 공산당의 지도하에 전국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국가권력을 획득했던 것은 22년간의 쓰라린 내전을 겪고 난 후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 후 서구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르쳐 준다: 자본가 신사 분들이 국가권력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통제를 하지 않고 그들의 하수인들―배신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통해 지배할 때조차도, 이 비열한 변절자들은 부르주아의 명령에 따라 확실히 언제든 부르주아적인 백위대(White Guards)의 폭력을 은폐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사들을 피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준비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독일에서 있었던 방식이다. 패배했을 때, 독일의 대부르주아지는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국가권력을 넘겨주었다. 권력을 잡자마자 즉각 사회민주주의 정부는 1919년 1월 독일 노동계급에 대한 유혈적인 탄압을 단행했다. 레닌이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의 뛰어난 대표자들”이며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불후의 지도자들”이라고 불렀던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어떻게 그날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폭력의 결과로서 피를 흘렸는가를 상기하자. 다음과 같은 레닌의 말들 역시 상기하자.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이 변절자들―소위 “사회주의자들”―이 저지른 “이 비열하고 뻔뻔스러운 살인들!”21) 과거의 자본주의 세계나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 모두의 이 모든 유혈적인 사건들에 비추어, 옛날의 수정주의자들과 그들의 현대의 아류들이 입에 오르내리는 “자본주의의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인 성장”에 관한 모든 허튼소리를 검토해 보자.

우리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심지어 평화로운 발전의 가능성이 존재했을 때조차도, 평화적인 이행 정책을 채택하는 것을 거부할 것인가? 아니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다시피, 과학적 공산주의의 위대한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엥겔스는 유명한 저작인 ≪공산주의의 원칙들≫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사적소유가 평화적 수단에 의해 폐지될 수 있는가?”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랄 수도 있다. 물론 공산주의자들도 결코 이것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음모들이 헛될 뿐만 아니라 유해한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혁명이 누군가 바라는 것처럼 마음대로 고안되고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혁명은 언제 어디에서나 현존하는 조건들의 필연적인 결과였으며 그 조건은 각각의 당과 전체 계급의 의지와 지도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거의 모든 문명국가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이 폭력적으로 진압되고 있는 중이고 이런 방식으로 공산주의의 적들이 혁명을 위하여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이 글이 쓰여진 지 100년이 넘었건만 우리가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그 얼마나 신선한가!

우리는 또한 러시아의 2월 혁명 후 한동안, 그 시대의 특정한 조건의 관점에서, 레닌이 혁명의 평화적인 발전 정책을 채택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이것이 “혁명의 역사에서 이례적으로 드문 기회”22)라고 생각했으며 이 기회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러나 부르주아 임시정부와 백위대들은 혁명의 평화적인 발전 가능성을 망쳐버렸고 뻬뜨로그라드의 거리들을 7월에 평화적인 대중 시위에서 행진을 하던 노동자와 병사들의 피로 물들여 버렸다. 그리하여 레닌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발전의 평화적인 경로가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비평화적이고 가장 고통스런 경로가 시작되었다.23)

 

우리는 또한 일제의 침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 전쟁의 결말 후에 국가 전체의 인민들 사이에 평화에 대한 폭넓고 열렬한 갈망이 있었을 때, 우리 당이 국민당과의 평화협정을 맺어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 중국의 사회, 정치개혁을 수립하려고 노력하였으며 1946년 국민당과 국내의 평화 달성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국민당 반동들은 전체 인민들의 의지에 도전하면서 이 협정을 찢어버렸고, 미 제국주의의 도움을 받아 전국적인 규모의 내전을 발발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중국 인민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혁명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결코 평화적인 개혁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의 경계심을 늦추거나 인민의 군대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준비하였고 인민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전쟁을 도발한 자들은 쓰라린 패배의 열매를 맛보게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쟁취하여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인민들에게 가장 큰 이득이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러한 가능성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 될 것이다. 레닌이 말했던 바대로, 사회주의 혁명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혁명의 평화적인 발전”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 기회를 단단하게 움켜쥐어야 한다. 그러나 레닌이 말했듯이, 이러한 종류의 기회는 “혁명의 역사에서 극히 드문 기회”이다. 어떤 한 국가에서 어떤 지역의 정치권력이 혁명세력에 의해 포위되거나 전 세계에서 한 자본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들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 그러한 경우에, 혁명의 평화적인 발전을 위한 기회들의 더 큰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라 할지라도, 혁명의 평화적인 발전을 유일한 가능성으로 간주해서는 결코 안 되며, 따라서 동시에 다른 가능성, 즉 혁명의 비평화적인 발전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중국 본토의 해방 후, 노예소유주들과 농노소유주들이 지배했던 어떤 지역들은 절대적으로 우세한 인민들의 혁명세력에게 포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쥐도 막다른 곳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다”는 오래된 중국 속담이 말하듯이, 한 줌도 되지 않는 가장 반동적인 노예소유주들과 농노소유주들은 마지막 발악을 하였는데, 그들은 평화적인 개혁을 거부하고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폭동이 진압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회주의 체제의 개혁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야만적인 사람을 잡아먹는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이전에 결코 없었던 철저한 무장을 하고 있을 때, 현대의 수정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제국주의가 자기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들, 억압받는 국가들을 향해 아주 “평화적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따라서 2월 혁명 후 레닌이 말했던 “혁명의 역사에서 극히 드문 기회”가 향후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억압받는 인민들을 위하여 정상적인 국가 상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따라서 레닌이 “드문 기회”라고 언급했던 것을 차후에 자본주의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쉽게 이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관점들이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이 진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지배계급의 군대는 무엇보다도 우선 자국의 인민들을 억압하는 데 이용된다. 오로지 자국의 인민들을 억압하는 것을 근거로 해서 제국주의자들은 다른 국가들을 억압할 수 있고 침략을 도발할 수 있으며 부정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자국의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반동적인 군대를 유지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레닌은 1905년 혁명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상비군은 외부의 적들보다 내부의 적들에 대해 더 사용된다.”24) 이 명제는 착취계급이 지배하는 모든 국가들,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유효할까? 그 당시는 유효했지만 지금은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견해로는, 이 진리는 여전히 반박할 수 없고 사실들은 이 명제의 타당성을 점점 더 확증하고 있다. 엄격히 말해서, 어떤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라도 이것을 명확하게 보지 못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해방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혁명의 문제를 부르주아 국가의 기구를 박살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레닌은 맑스의 ≪프랑스의 내전≫에서 중요한 구절을 인용했다: “1848년-1849년 혁명 후, 국가권력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전국적인 전쟁 엔진이 되었다.” 반노동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주요 기구는 바로 상비군이었다. 그러므로, “… 꼬뮌의 첫 번째 포고는 … 상비군을 진압하는 것과 상비군을 무장한 인민들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

그러므로 마지막 분석에서, 이 질문에 달라붙는 데 있어서, 우리는 맑스가 선언했듯이, 영원하고 파괴될 수 없는 빠리꼬뮌의 원칙들로 되돌아가야 한다.

19세기의 70년대에 맑스는 영국과 미국을 예외로 두었는데, 이 두 국가에 관한 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인” 이행의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왜냐하면 군국주의와 관료제가 그 당시에 이 두 국가에서 아직 많이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는, 레닌이 제기했듯이, “맑스가 제기한 이 조건은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이 두 국가는 “오늘날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 종속시키고 모든 것을 자신들의 발밑에 두고 짓밟는 관료적-군사적 기구라는 모든 유럽의 불결하고 유혈적인 늪 속으로 완전히 빠져버렸”25)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레닌이 그 당시의 기회주의자들과 벌였던 논쟁의 초점 중 하나였다. 카우츠키로 대변되는 기회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하기 위한,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혁명적인 무장력과 무장혁명에 반대하기 위한 시도를 하면서, 이것을 맑스의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왜곡하였다. 레닌은 카우츠키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인 독재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폭력이다; 그리고 맑스와 엥겔스가 반복적으로 자세히 설명했던 바대로, 그러한 폭력에 대한 필요성은 특히 군국주의와 관료제의 존재에 의해 창출된다. 그러나 맑스가 관찰했던 19세기의 7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기구들이다(지금 이 제도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물론 존재한다).26)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장혁명의 수단에 호소할 것을 강제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맑스주의자들은 항상 평화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져오고자 해 왔다. 채택할 수 있는 평화적인 길이 있는 한, 맑스-레닌주의자들은 그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력하고 군사적-관료적인 억압기구를 소유할 때, 부르주아지의 목적은 바로 이 길을 막는 것이다.

위의 인용은 1918년 11월 레닌에 의해 쓰여졌다. 지금의 형편은 어떠할까? 레닌의 말들이 역사적으로 유효했지만, 현대의 수정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듯이, 현재의 정세는 자본주의 국가들, 특히 미국이 이끄는 몇 안 되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거의 예외 없이 그들의 군사적-관료적 억압기구와 특히 그들의 군사기구들을 미친 듯이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1957년 11월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산당과 노동자당 대표자들의 모스끄바 회의 선언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지배계급은 결코 자발적으로 권력을 양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레닌주의는 가르쳐 주고, 경험은 이를 확인시켜 준다. 이런 경우에 고통의 정도와 계급투쟁의 형태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의 압도적 다수의 의지에 대해 반동적인 집단들의 저항에, 사회주의를 위한 이런저런 투쟁의 단계에서 힘을 사용하는 이 집단들에 달려있다.

 

이것은 레닌 사후에 몇십 년간의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 경험을 새롭게 요약한 것이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평화적인 변혁을 수행하려 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부르주아지가 그러한 평화적인 변혁을 받아들이느냐 않느냐이다. 이것이 바로 레닌의 추종자들이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따라서 평화적인 이행에 관하여 공허한 말로써 인민의 혁명적 의지를 무력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현대의 수정주의자들과는 정반대로,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인 이행 가능성의 문제는 특정한 기간에 각 국가에서의 특수한 상황들에 비추어서만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가 평화적인 변혁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일방적이고 근거 없이 자신의 사상, 정책과 자신의 전체 사업의 기초를 세우는 것을 결코 허락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대안들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는 혁명의 평화적인 발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혁명의 비평화적인 발전이다. 이행이 무장봉기를 통하여 수행될 것인지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 수행될 것인지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평화공존의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각 나라의 내부적인 사안이며 특정한 기간에 그 국가의 계급 세력들의 상대적인 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며, 그 국가의 공산주의자들 스스로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정책의 문제이다.

 

 

VI

 

10월 혁명 후인 1919년, 레닌은 제2 인터내셔널에서 얻은 역사적인 교훈에 관해 토론을 했다. 그는 말했다. 제2 인터내셔널 기간 동안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성장은 “폭넓은 것이었지만, 혁명적 수준에서 일시적인 하락과 기회주의의 힘의 일시적인 증가라는 희생을 치렀는데, 이것은 끝내 이 인터내셔널의 불명예스러운 붕괴를 초래했다.”27) 기회주의란 무엇인가? 레닌에 따르면, “기회주의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근본적인 이익을 희생하는 데 있다.”28)

혁명적 수준에서 하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기회주의자들은 대중들이 그들의 관심을 하루하루의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추도록 유도하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이며 총체적인 이익을 잊어버리도록 유도하려고 모든 수단을 다하여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의회투쟁의 문제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이며 전체적인 이익에 비추어 고려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닌은 우리들에게 의회투쟁의 한계에 관해 말했지만, 또한 협소한 시각의, 분파주의적인 오류들에 반대하여 공산주의자들에게 경고했다. 그의 잘 알려진 저서, ≪좌익공산주의, 소아병≫에서 레닌은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명료하게 밝히면서 어떠한 상황하에서 의회에 대한 보이코트가 옳은지 어떠한 상황하에서 의회에 대한 보이코트가 옳지 않은지를 보여주었다. 레닌은 모든 프롤레타리아 당은 필수적인 의회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산당 당원들이 혁명에 대한 공허한 말들에만 관여하고 필수적인 의회투쟁을 인내심을 갖고 수고를 아끼지 않고 사업하려 하지 않고 피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고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에 해만 끼칠 수가 있다. 동시에 레닌은 의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던 몇몇 유럽 국가들의 공산주의자들의 실수를 비판했다. 그는 말했다:

의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유치함은, 현실적으로 그들이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도망치고 어려움에 대해 그들의 눈을 닫아버리고 단순한 말들로써 어려움을 무시하고 있을 때, 그러한 “단순하고” “쉬운”, 아마도 혁명적인 방법으로써 노동계급운동 내부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영향력과 싸운다는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있다.

 

왜 의회투쟁에 관여하는 것이 필수적일까? 레닌에 따르면, 그것은 노동계급운동 내부에서 부르주아지의 영향력과 싸우기 위해서이고, 혹은 그가 다른 곳에서 지적했듯이, “바로 노동계급의 후진적인 층을 교육하기 위해서이며, 바로 미발전되고 짓밟히고 무지한 농민대중들을 일깨우고 계몽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대중들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수준을 높이는 것이고, 의회투쟁과 혁명투쟁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표준을 낮추지 않고 혁명투쟁으로부터 의회투쟁을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다.

대중들과 일치하면서도 혁명의 표준을 낮추지 않는 것 ― 바로 이것이 레닌이 우리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에서 확고하게 고수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던 근본원칙이다.

의회투쟁에 참여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부르주아 의회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가져서는 안 된다. 왜? 부르주아지의 군사적-관료적 국가기구가 침해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한, 노동계급의 당이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의회에서 가장 커다란 당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의회는 단지 부르주아 독재를 위한 장식품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국가기구가 침해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한, 부르주아지는 자기들의 이익의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필요할 때 의회를 해산할 수도 있고, 의회에서 가장 커다란 당인 노동계급의 당을 소수로 전락시키기 위해 다양한 공개적 및 비공개적인 속임수들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선거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을 때조차도 의회에서 의석을 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의회에서 투표의 결과로 부르주아 독재 그 자체에서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고, 노동계급의 당이 의회에서 많은 표를 얻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주의로의 평화로운 이행을 위해 의회에서 법안을 채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일련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경험은 오래전에 이 점을 완전히 증명해 주었고, 2차 대전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에서의 경험은 이 점에 대해 신선한 증거를 제공했다.

레닌은 말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민의 다수를 그들의 편으로 끌어오지 못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승리할 수 없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지배를 하고 있는 동안 선거에서 다수의 표를 모으는 것으로 이것을[다수의 획득을: 역자] 한계지우거나 조건지우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거나 노동자들을 속이는 것이다.29)

현대의 수정주의자들은 레닌의 이 말들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눈앞의 생생한 현실들은 레닌의 이 말들이 어떤 국가에서도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에게 비록 쓰지만 여전히 가장 훌륭한 처방약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혁명적인 표준들을 낮춘다는 것은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적인 표준들을 낮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치투쟁을 경제투쟁의 수준으로 낮춘다는 것을 의미하고, 혁명투쟁을 의회투쟁의 한계 내로 완전히 제한하는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시적인 이익을 위해 원칙들을 팔아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 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서 레닌은 이미 “맑스주의의 전파는 이론적인 표준들을 어느 정도 낮추는 것을 동반하였다”는 문제에 주의를 돌렸다. 레닌은 “고타 강령”에 대한 편지에 포함된 맑스의 의견을 인용했는데 거기에는 우리가 운동의 실천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정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우리가 결코 원칙을 팔아먹어서는 안 되고 결코 이론에서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런 후에, 레닌은 지금까지 거의 모든 공산주의자들에게 잘 알려진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혁명이론 없이 혁명운동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기회주의의 유행을 좇는 설교가 실천 활동의 가장 협소한 형태로 흡수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때에 아무리 강하게 주장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계시인가! 러시아에서 전체 혁명운동은, 바로 위대한 레닌이 이끌었던 볼셰비끼 당이 확고하게 떠받쳤던 이러한 혁명적인 맑스주의적 생각의 인도 하에 1917년 10월 승리를 거두었다. 중국 공산당 역시 두 가지의 경우에서 위에서 언급된 문제에 관해서 경험을 얻었다. 첫 번째는 1927년 혁명적 시기 동안이었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연합전선에 대해 천두슈(진독수, Chen Tu-hsiu)에 의해 그 당시에 채택된 정책은 공산당이 지지해야 원칙과 입장으로부터의 이탈이었다. 그 정책은 공산당이 원칙에 있어 국민당의 수준으로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결과는 혁명의 패배였다. 두 번째 경우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전쟁 시기 동안이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맑스-레닌주의의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했고, 일본에 대항하는 전쟁에 대한 자세에서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의 원칙상의 차이점을 폭로하였으며, 공산당은 그러한 태도에 관하여 국민당에 원칙에서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왕밍(왕명, Wang Ming)으로 대변되는 우파 기회주의는 십년 전 천두슈가 했던 실수를 반복했고, 공산당을 원칙에서 국민당의 수준으로 낮추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우리 전(全)당은 우파 기회주의자들과 대논쟁을 벌였다. 마오쩌뚱 동지는 말했다:

… 만약 공산주의자들이 원칙에서 이러한 차이를 망각한다면, 그들은 반일본 전쟁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없고, 그들은 저항에 대한 국민당의 편향된 접근을 교정하는 데 무력할 것이고, 그들은 스스로를 그들의 원칙을 포기하는 지점까지 떨어뜨릴 것이며 그들의 당을 국민당의 수준으로까지 저하시킬 것이다. 그것은 민족혁명전쟁과 조국의 방어라는 신성한 대의에 적대적인 범죄가 될 것이다.30)

 

민족 혁명 통일전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에서 우리 당의 입장이 공고화되고 확장되었던 것은, 바로 우리 당 중앙위원회가 원칙의 문제에 관하여 가장 사소한 것에서도 양보하는 것을 거부하고 국민당과 우리 당의 통일전선에서 통일과 투쟁의 정책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전쟁에서 인민들의 힘은 강화되었고 확장되었으며,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전쟁의 결말 이후 장개석에 의해 도발된 대규모 공격을 분쇄하고 위대한 인민혁명에서 전국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중국 혁명의 경험을 통해 판단해 보았을 때, 우익적 일탈의 오류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와 정치적인 협력을 시작할 때 우리 당에서 발생하는 것 같고, 반면에 “좌익적” 일탈의 오류들은 이 두 계급이 각각 정치적으로 분리되었을 때 우리 당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중국 혁명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우리 당은 또한 많은 경우에서 “좌익” 모험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수행했다. “좌익” 모험주의자들은 맑스-레닌주의의 입장으로부터 중국의 복잡한 계급관계들을 정확하게 다룰 수가 없었다; 그들은 상이한 역사적인 시기들에서 상이한 계급들을 향한 상이한 올바른 정책들을 어떻게 채택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단순하게 통일 없는 투쟁이라는 잘못된 정책을 따랐다. “좌익” 모험주의의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중국 혁명이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동일하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레닌주의의 관점에 따라, 어떤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라도 혁명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맑스-레닌주의의 보편적인 진리를 자신의 나라에서 혁명의 구체적인 실천과 통합하는 데 능숙하고, 상이한 시기에 혁명이 누구를 반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주요 세력과 동맹을 조직하는 문제와 누구에게 의존해야 하며 누구와 연합해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결정할 수 있는 진정으로 맑스-레닌주의적인 당을 가져야만 한다.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 당은 자신의 계급의 대중들과 농촌 지역의 반(半)프롤레타리아트, 즉 광범한 빈농 대중들에게 밀접하게 의존해야 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도하는 노농동맹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이 동맹의 기초 위에서, 상이한 시기에 상이한 나라들의 특수한 조건들에 따라, 단결하는 것이 가능한 모든 사회세력과 단결하고, 근로인민과 연합하는 것이 가능한 모든 비(非)근로인민과의 통일전선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렇게 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상이한 단계들에서 혁명의 승리라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의 수정주의자들과 부르주아지의 어떤 대변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인 당이 없이도, 위에서 언급된 그러한 당의 일련의 정확한 정책들이 없이도 사회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인민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완전히 허튼소리이며 순전한 사기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은 그 당시에 상이한 종류의 “사회주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부르주아 “사회주의”, 봉건적 “사회주의” 등등. 지금은 맑스-레닌주의의 승리와 자본주의 체제의 부패의 결과로, 다양한 국가들에서 인민 대중들의 점점 더 많은 숫자가 사회주의로 돌아서고 있는 중이고, 훨씬 더 많은 잡다한 종류의 “사회주의들”이 몇몇 국가들의 착취계급들 사이에서 등장했다. 엥겔스가 말했던 바대로, 이러한 소위 “사회주의자들”은 또한 “자본과 이윤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그들의 다양한 보편적 만병통치약과 모든 종류의 잡동사니들을 통해 사회적 남용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노동운동의 바깥에 서 있었고”, “오히려 ‘교육받은’ 계급들에게서 지지를 구했다.”31) 그들은 단지 “사회주의”라는 간판을 내세웠을 뿐이며 실질적으로 자본주의를 실천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인 원칙들을 확고하게 고수하는 것과 혁명의 표준들을 낮추려는 일체의 경향에 반대하는, 특히 수정주의와 우파 기회주의에 반대하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수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현재의 세계 평화를 지키는 문제에 관해서는, 이데올로기적인 논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거나 혹은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에는 더 이상 어떠한 원칙적인 차이도 없다고 선언하는 사람들도 역시 약간은 있다. 이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적인 표준들과 정치적인 표준들을 부르주아지와 사회민주주의의 표준들로 낮추는 것과 같다. 그러한 진술을 하는 사람들은 현대의 수정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맑스-레닌주의의 입장으로부터 이탈했다.

평화를 위한 투쟁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상이한 두 종류의 투쟁이다. 이 두 종류의 투쟁을 적절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오류이다. 물론, 평화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구성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것에는 부르주아 평화주의자들 역시 포함된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데,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는 데, 평화공존을 지지하는 데, 핵무기를 반대하는 데 최전선에 서 있다. 이러한 운동에서 우리는 많은 복잡한 사회그룹들과 함께 일을 할 것이고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협정들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노동계급 당의 원칙들을 떠받쳐야 하고, 평화를 위한 우리의 투쟁에서 우리의 정치적인 표준들과 이데올로기적인 표준들을 낮추거나 평화를 위한 우리의 투쟁에서 우리 자신들을 부르주아 평화주의자의 수준으로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바로 동맹과 비판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말뿐인 “평화”는 제국주의의 전쟁 준비를 거짓말로 얼버무릴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오래전 레닌이 반박했던 옛날 기회주의자들의 “초제국주의”에 다시 동조하여 노래를 부를 의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들에서의 인민혁명을 제거하기 위해 다른 두 체제를 가진 국가의 평화공존에 관한 우리의 정책을 왜곡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부끄럽고 악명 높은 진술을 했던 사람은 바로 옛날의 수정주의자인 베른슈타인이었다: “운동이 모든 것이다, 최종 목적은 아무것도 아니다.” 현대의 수정주의자들은 그와 유사한 진술을 한다: 평화운동이 모든 것이다, 그 목적은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평화”란 전적으로 어떤 역사적 상황하에서 제국주의자들이 받아들일 수도 있는 “평화”로 제한되며, 그들이 말하는 “평화”란 것은 여러 국가의 민족들의 혁명적인 표준을 낮추고 그들의 혁명의지를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세계 평화의 수호를 위해, 평화공존 정책의 실현을 위해 싸운다. 동시에, 우리는 억압받는 국가들의 반제국주의 혁명전쟁들과 자신들의 해방과 사회적 진보를 위한 억압받는 민족들의 혁명전쟁들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혁명전쟁은 정의의 전쟁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는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가 현대 전쟁의 근원이라는 레닌의 테제를 대중들에게 계속해서 설명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대체하는 것이 우리 투쟁의 최종 목표라는 맑스-레닌주의적 테제를 대중들에게 계속해서 설명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 원칙들을 대중들에게 결코 숨겨서는 안 된다.

 

 

VII

 

우리는 제국주의 체제의 붕괴가 더욱더 가속화되고 있고 전 세계 인민들의 승리와 그들의 각성이 끊임없이 진전하고 있는 위대한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국가들의 민족들은 지금, 이전보다도 훨씬 더 운이 좋은 상황에서 살고 있는데 왜냐하면 10월 혁명 이래로 40여 년 동안 인류의 1/3이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억압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해방시켰고 지속적으로 국내의 평화로운 삶이 실제적으로 수립된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을 설립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류의 운명에 관해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며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평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그 날을 크게 앞당길 것이다.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의 최전선에서 그리고 전체 사회주의 진영이 위대한 쏘련이 될 때까지, 레닌과 쏘련 공산당이 지도하는 쏘비에트의 노동자와 농민들에 의해 창조된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는 행진하고 있다. 레닌의 이상은 쏘련에서 실현되었다; 오래전부터 사회주의는 건설되어왔고 지금은 흐루쇼프 동지가 이끄는 쏘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쏘련 정부의 지도하에 공산주의의 광범위한 건설이라는 위대한 시기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용감무쌍하고 엄청난 재능이 있는 쏘련 노동자들, 농민들, 지식인들은 공산주의 건설이라는 장대한 목표를 위한 그들의 투쟁에서 위대하고 새로운 노동의 고양을 가져왔다. 우리 중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중국의 인민들은 레닌주의의 조국, 쏘련의 모든 새로운 성취들을 성원한다.

중국 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진리를 중국 혁명의 구체적 실천과 결합하면서, 위대한 인민혁명의 승리와, 레닌의 계획에 따른 사회주의 혁명 및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넓고 공통된 길을 따라 사회주의 혁명을 완전한 완성으로 이끄는 데서 나라 전체의 인민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사회주의 건설의 다양한 전선에서 위대한 승리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레닌의 원칙들에 따라, 중국의 상황에 비추어, 창조적으로 중국의 인민들에게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총노선의 올바른 원칙들, 대약진과 인민공사를 제기했는데, 그것들은 나라 전체에 걸쳐 대중들의 창의적이고 혁명적인 정신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따라서 날마다 우리나라에 새로운 변화들을 가져오고 있다.

레닌주의라는 우리의 공통적인 기치 하에,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아시아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사회주의 건설에서 일사천리로 진보를 이룩하고 있다.

레닌주의는 항상 승리의 기치이다. 전 세계의 근로인민들에게 있어서 이 위대한 기치를 견고하게 붙잡는 것은 진리를 붙잡고 근로인민들 스스로 지속적인 승리의 길을 열어젖히는 것을 의미한다.

레닌은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수정주의자들이 레닌주의,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위대한 기치를 더럽히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과업은 레닌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의 유명한 저작인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이 해방을 위한 다양한 피억압계급들의 과거의 투쟁에서 혁명적인 사상가들과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대해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에 관해 썼던 것을 기억한다. 레닌은 이러한 혁명적인 사상가들과 지도자들이 죽고 난 후, “혁명적 가르침의 본질을 거세하면서, 혁명의 날을 무디게 하고 그것을 저속하게 만들면서”, 왜곡이 계속 이어졌다고 썼다. 레닌은 계속해서 썼다:

현재 노동계급운동 내부의 부르주아지와 기회주의자들은 맑스주의를 “치료하는 일”에 함께 나서고 있다. 그들은 이 가르침의 혁명적인 측면과 혁명적인 정신을 생략하고, 말살하고 왜곡한다. 그들은 부르주아지가 받아들일 수 있고 받아들일 것 같은 내용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칭찬한다.

 

정말 그대로, 현재 우리는, 다시 한 번 미 제국주의자들의 몇몇 대변인들을 다시 직면하고 있다. 그들은 설교자들의 경건한 모습으로 가장한 채, 심지어 맑스가 “19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였다고 선언하며 심지어 맑스가 19세기에 자본주의의 얼마 남지 않은 날들에 관해 예언했던 것이 “충분한 근거가 있고”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설교자들은 계속하여, 20세기의 도래 후, 특히 최근 수십 년 동안, 맑스주의가 올바르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자본주의가 과거의 일이 되었고 존재하기를 멈추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제국주의 설교자들의 그러한 헛소리를 듣고 난 후, 우리는 현대 수정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설교자들이 하는 말들과 똑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대의 수정주의자들은 맑스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짓을 멈추지 않고, 그들은 더 나아가 맑스주의를 발전시킨 맑스주의의 위대한 계승자인 레닌의 가르침마저 왜곡한다.

모스끄바 회의의 선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현재의 가장 큰 위험은 수정주의, 다시 말해서 우익 기회주의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스끄바 회의의 이 판단이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관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민들로 하여금 가장 큰 위험인 수정주의에 대한 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들고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대의에 아주 해롭다. 19세기의 70년대부터 베른슈타인의 예전의 수정주의가 탄생했던 자본주의의 “평화적인” 발전 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제국주의가 어쩔 수 없이 평화공존을 받아들이고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어느 정도의 “국내의 평화”가 존재하는 현재의 상황하에서, 수정주의적 사고가 성장하고 퍼져나가는 것은 매우 용이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계급운동에서 이 가장 큰 위험에 대해 항상 고도의 경계심을 유지해야 한다.

레닌의 제자들이자 레닌주의자들로서, 우리는 레닌의 가르침들을 왜곡하고 흠집을 내는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시도를 완전히 분쇄해야 한다.

레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완전하고 통합된 혁명적인 가르침이다. 레닌주의는 맑스와 엥겔스를 따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사고를 계속해서 표현하는 완전하고 통합된 혁명적인 세계관이다. 이 완전하고 통합된 혁명적인 가르침과 혁명적인 세계관은 결코 왜곡되거나 흠집이 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레닌주의를 왜곡하고 흠집을 내고자 하는 시도들이 단지 종말의 운명에 직면한 제국주의의 마지막 필사적인 투쟁의 선언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쏘련에서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지속적인 승리들 앞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있어 지속적인 승리들 앞에서, 쏘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이 점점 더 공고화되면서,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족쇄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전 세계의 점점 더 각성하는 민족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확고하고 용감한 투쟁 앞에서, 티토와 그 무리와 같은 수정주의자들의 노력은 완전히 헛된 짓이다.

 

위대한 레닌주의여 영원하라!  노사과연

 


 

1) “빠리꼬뮌에 대한 맑스의 연설(Speech by K. Marx on The Paris Commune)”.

 

2)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On New Democracy)”.

 

3) “1959년 12월 12일 자그레브에서 티토의 연설”.

 

4) “잘못된 깃발 아래(Under a False Flag)”.

 

5) “제2 인터내셔널의 붕괴(The Collapse of the Second International)”.

 

6) “잘못된 깃발 아래(Under a False Flag)”.

 

7) “1959년 12월 12일 자그레브에서 티토의 연설”.

 

8) “전(全) 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 사업에 대한 보고서(Report on the Work of the All-Russian Central Executive Committee and the Council of People’s Commissars)”.

 

9)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군사 강령(The Military Program of the Proletarian Revolution)”.

 

10) “우리의 국내와 국외의 정세 그리고 당의 과업들(Our Internal and External Situation and the Party’s Tasks)”.

 

11) “미국의 신문, ≪뉴욕 이브닝 저널(New York Evenings Journal)≫ 특파원의 문제에 대한 대답(Answer to the questions of the Correspondent of the American Newspaper, “New York Evenings Journal”)”.

 

12) 참고. “적극적인 평화공존과 사회주의(Active Co-existence and Socialism)”, 1958년 11월 28일, 유고슬라비아의 나로드나 아르미자(Narodna Armija)

 

13) 참고. “아이젠하워가 로마에 도착하다(Eisenhower Arrives in Rome)”, 1959년 12월 4일, 유고슬라비아의 보르바(Borba).

 

14) “모스끄바의 노조들과 공장위원회들의 제4차 회의(The Fourth Conference of Trade Unions and Factory Committees of Moscow)”.

 

15) 참고. E. 베른슈타인의 기사, “경제적 삶의 다른 형식들(Different Forms of Economic Life)”.

 

16)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제1차 회의(The First Congres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17) “쁘레스냐(Presnia) 지역 노동자 회의에서의 연설(Speech at the Workers’ Conference of Presnia District)”.

 

18)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Two Tactics of Social-Democracy in the Democratic Revolution)≫.

 

19) “예언(Prediction)”.

 

20) “사회교육에 대한 제1차 전(全) 러시아인 회의(The First All-Russian Conference on Social Education)”.

 

21) “유럽과 아메리카의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A Letter to the Workers of Europe and America)”.

 

22) “혁명의 과업들(The Tasks of the Revolution)”.

 

23) “구호에 대하여(On Slogans)”.

 

24) “군대와 혁명(The Army and the Revolution)”.

 

25) ≪국가와 혁명(The State and Revolution)≫.

 

26)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The Proletarian Revolution and the Renegade Kautsky)≫.

 

27) “제3 인터내셔널과 역사에서 제3 인터내셔널의 위치(The Third International and Its Place in History)”.

 

28) “러시아 공산당(볼셰비끼) 모스끄바 조직 활동가들 회의에서의 연설(Speech at the Conference of Activists of the Moscow Organization of the Russian Commun-ist Party(Bolsheviks))”.

 

29) “의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Elections to the Constituent Assembly and 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30) “상하이와 타이완의 몰락 후 반(反)일본 전쟁의 상황과 우리의 과업들(The Situation of the Anti-Japanese War After the Fall of Shanghai and Taiyuan and Our Tasks)”.

 

31) “≪공산당 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의 1890년 독일어 편집 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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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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