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21세기 이데올로기 지형과 노동자계급의 과제

 

문영찬 │ 연구위원장

 

 

머리말

 

올해는 맑스가 탄생한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맑스 탄생 이후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거대한 발전이 있었고 또한 수많은 곡절이 있었다. ≪공산당선언≫의 발표로 시작된 과학적 사회주의 운동은 파리꼬뮨, 러시아 혁명을 거치며 맑스주의가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이데올로기임을 입증해 왔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있었던 쏘련 등 사회주의진영의 붕괴는 맑스주의는 틀린 것이라는 주장을 강화해왔고 세계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전일적으로 지배받는 상황을 가져왔다.

그러나 2007년의 세계대공황의 발발은 다시금 맑스주의를 불러내오고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발전법칙을 해명하고 있는 것은 맑스주의뿐이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맑스주의는 20세기와 달리 아직은 노동자계급 운동의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고 운동은 여전히 조합주의, 청산주의, 신좌파 이데올로기, 뜨로츠끼주의 등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대공황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전일적 지배를 파괴했지만 맑스주의가 아직은 그 대안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맑스주의는 쏘련 붕괴 전까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 특히 노동자계급 다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그것은 맑스주의가 노동자계급의 삶과 처지, 그리고 희망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모순과 발전법칙을 해명하는 과학적 이론이었다는 점에 있다. 즉,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담지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과학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맑스주의는 그렇게도 광범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현재의 맑스주의의 위상은 무덤에 묻혔다가 가까스로 다시금 세상에 나온 형국이다. 그리고 현재 맑스주의는 수많은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와 경쟁하면서 자신의 올바름을 실천과정을 통해 스스로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대공황에 의해 헤게모니를 상실했지만 그러한 상황이 곧바로 맑스주의의 전면적 부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경쟁 상황이 창출된 것이다. 이른바 이데올로기 차원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면 세계적 차원에서 그리고 한국적 차원에서 이데올로기 지형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노동자계급 운동에서 이데올로기의 위상, 당건설 전망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과제 등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세계적 차원의 이데올로기 지형

 

1)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파탄

 

쏘련 붕괴 뒤 한동안 ‘역사의 종언’이 외쳐졌었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경쟁이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되었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은 자본주의가 심각한 내적, 외적 모순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2007년 세계대공황이 발발했을 때 이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서서히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최근에 들어서 자본주의세계는 유럽과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극우 극우이데올로기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의 발생은 197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을 시작으로 하는 것이다. 20세기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영국에서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계급에게 일정한 양보를 해야 했던 상황에서 대처가 집권하자 국유화산업들을 사유화하고 노동자계급을 공격하여 자본의 이윤율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대처가 이러한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사회주의국가들이 내부적으로 수정주의로 방향전환을 하면서 세계 사회주의진영이 중국과 쏘련의 대립과 분열, 그리고 내적인 경제침체를 겪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영국의 대처는 세계적 차원의 역관계의 변화를 간파하고 과감하게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 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세계의 유행이 되어 미국의 레이건 또한 국내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으며 이러한 정책은 IMF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대한 수탈로 이어졌다. 그리고 쏘련이 붕괴되면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로 변형되면서 세계적 차원의 제국주의 질서를 규정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미국이 존재하면서 이른바 팍스 아메리키나가 외쳐졌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2007년 세계대공황이 발발하면서 서서히 마감하게 되었다. 대공황 발발 당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미국이 무너지고 있다’고 비명을 질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을 대공황의 구렁텅이에서 구출한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이 약 600조원에 달하는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일으키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막대한 수요를 불러왔고 이에 따라 세계경제는 서서히 대공황의 충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미국은 양적 완화 등을 통해 막대한 돈을 풀었는데 이는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이용하여 자국의 모순을 세계전체에 전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공황 자체는 온전히 극복된 것이 아니며 그것을 불러왔던 모순들은 새로운 공황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 속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파탄되었다. 먼저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데올로기로서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EU의 위상이 흔들리며 EU 각국에서 EU의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반동성, EU 질서의 반민중성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유럽통합의 빛이 바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럽 각국에서는 극우이데올로기가 득세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자유주의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반동세력이 극우이데올로기를 무기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스스로 세계화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있다.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가 미국 자본의 이익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우며 부상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중국은 트럼프에 대항하여 스스로 세계화의 수호자임을 천명하고 있다.

 

2)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의 부상

 

현재 중국은 미국, 유럽연합과 더불어 세계 3대 경제체로 부상했다. 매년 6%정도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속도라면 10여년 후에는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 외교정책을 변경하여 ‘온건하고 신중하게 전진한다’는 방침에서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내세우며 세계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몽은 중국의 꿈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중화민족의 부흥을 제창하는 것이다. 일대일로는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으로 통하는 길과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로 통하는 길을 묶어서 대규모 시설투자를 일으키는 것으로서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구대륙에서 중국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행보에 대해 미국이 반발하면서 중국과 미국은 현재 무역전쟁의 격랑에 휩싸여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경제적 차원에서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파탄을 보여주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대립이 경제적 영역을 넘어서서 군사, 외교, 정치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과거 중국은 미국의 헤게모니에 맞서 다극화(多極化)를 주장했었다. 즉, 세계는 미국의 단일패권이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주요 지역이 각각 하나의 중심을 갖는 질서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다극화 전략은 미국의 패권에 맞서는 중국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하고 나서 중국은 미국주도의 세계화전략에 편승하여 경제성장을 이루는 길을 걸어왔고 나아가 2007년 대공황의 발발 이후에는 중국이 G2로 부상함에 따라 적극적으로 세계화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입장이 되었다. 일대일로 또한 세계화 이데올로기를 중국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중국은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세계에 전파하는 길을 걷고 있는데 예를 들면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설립하여 문화를 매개로 한 영향력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또 아프리카에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 아프리카와 중국은 상호 최대의 무역국이 되었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경우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데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을 빌려서 이 항구와 중국의 국경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를 건설하여 중국의 인도양과 중동과의 연결지점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행보를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중국몽과 일대일로, 나아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일컫는 것으로서 중국인민들을 통합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구호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중국에서 쇠퇴하면서 일종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써 내부적 통합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대일로는 세계적 차원에서 중국의 헤게모니를 확대하는 것이며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세계에 전파하는 고리이기도 하다.

중국의 이러한 부상은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내적 근거를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두고 있다. 개혁, 개방을 내세우며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결합을 도모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은 현재 중국의 내적, 외적 정책의 근본이며 실제로 이것이 현재의 중국의 부상을 가져온 요인이다. 그런데 중국의 세계적 차원에서 부상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의 부상을 또한 가져오고 있다. 한편으로 사회주의를 견지하는 모습과 다른 한편으로 유연하게 자본주의 세계와 결합하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모습은 하나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주요 대기업이 대부분 국유기업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신자유주의에 지친 자본주의 세계의 많은 대중들을 혹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사실상 중국식의 자본주의화의 길이다. 왜냐하면 사적 유물론에 따를 때 한 사회의 질,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상부구조가 아니라 생산관계의 문제인데 생산관계 차원에서 중국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적 기업, 민영기업이 생겨나고 있고 이들 민영기업 중 주요한 것은 어느덧 독점자본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국유기업 또한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자본축적을 하는 상황이다. 이 모든 경제활동은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회사법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에서 토대에 해당하는 영역, 경제활동과 그 관계는 이미 자본주의화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 계급분열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고 이른바 빈익빈부익부, 그리고 소득격차는 미국 등 자본주의국가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부상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를 예단할 수는 없다. 중국이 미국의 압력을 이겨내고 지속적으로 부상할 것인지는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등 전반적 영역이 얽혀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 차원에 국한하여 본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파탄을 한 상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의 이데올로기적 부상은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핵심은 과연 사회주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사회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덩샤오핑 스스로가 사회주의 본질론을 제기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해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사회주의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은 하나의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중국의 부상 추세를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대응을 준비해가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사회주의 본질론 뿐만 아니라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전반적 평가, 그리고 중국이 참여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세계질서에 대한 평가 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3) 사회민주주의의 쇠퇴

 

사회민주주의는 ≪공산당선언≫의 발표 이후 과학적 사회주의가, 맑스주의가 하나의 대중적 운동으로 성장하면서 이름붙여진 것이다. 19세기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당의 성공은 사회민주주이라는 이름을 대중화하였고 이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이때까지는 사회민주주의가 과학적 사회주의, 혁명적 사회주의와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의 시기에 평화로운 발전을 경과하면서 사회민주주의는 내부적으로 개량주의화되었는데 결정적으로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가 득세하면서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과학성과 혁명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당들이 전쟁에 찬성하면서 공식적으로 변절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들의 변절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반대, 볼쉐비키 노선에 대한 반대를 통해 공식화되었는데 이는 레닌과 카우츠키의 논쟁을 통해 표면화되었다.

사회민주주의당은 독일에서 1차 대전 후 혁명적 상황이 전개되자 혁명을 진압하는데 앞장섰는데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들에 의해 살해당했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당은 1차 대전 후 공개적으로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좌익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이 부흥과 안정적인 경제성장의 길을 걸을 때 이들은 개량주의노선을 걸으면서 소위 복지국가노선을 이끌었다. 이를 통해 사회민주주의는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좌익의 역할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을 개량화하여 체제 내에 묶어 두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대처, 레이건 등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는데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이들은 영향력의 일정한 회복을 이루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등의 전성기가 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쏘련 붕괴 뒤 역사의 종언이 회자되고 팍스 아메리카나가 운위되던 시대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민주주의는 2007년 세계대공황이 발발하자 쇠퇴의 길을 걷는다.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상황에서 자본가계급은 개량주의를 유지하는 것보다 보다 강경한 반동적 입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은 2007년 대공황 이후 재정위기에 몰리면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타협체제로서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부상한 것이 인종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이데올로기였다. 최근에는 헝가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 극우세력이 정권을 잡았거나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정도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제1차 대전에서 전쟁에 찬성하여 노동자계급을 배신한 후로 독점자본의 충실한 좌익이 되었었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은 주로 유럽에 국한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개량주의는 세계 각지에서 수탈한 잉여가치를 노동자계급의 상층부에 나누어주어 이들을 매수하는 것을 기초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 사회민주주의가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한 곳은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세계 각지의 민족해방운동과 노동운동에서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맑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논리적으로 보면 유럽만의 현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즉,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지역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의 본질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계급타협 체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이 계급타협을 필요로 할 때, 그리고 그것을 저지할 만큼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가 굳건하지 않을 때 사회민주주의는 새로운 형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은 한국에서 특히 중요한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후 제국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선진자본주의에 버금가는 경제성장을 이룬 곳은 한국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한국에서 계급타협체제가 시도될 경우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4) 2007년 세계대공황 이후 맑스주의 이데올로기의 부활

 

2007년 세계대공황이 발발했을 때 부르주아 언론들은 ‘미국이 무너지고 있다’고 탄식했었다. 이후 미국 월가에서도 맑스의 ≪자본론≫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맑스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아니라 세계대공황은 자본주의의 영원성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국의 부상은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이데올로기적 파탄을 말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중국은 결코 신자유주의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새로운 상황의 발생을 의미했다. 기존의 이데올로기는 무너지고 있는데 새로운 대안적 이데올로기는 부상하거나 지배적이 되지 못하고 수많은 이데올로기들이 각축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기존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유럽의 경우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미국의 경우 트럼프정권이 등장하여 스스로 세계화 논리를 부정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자본주의세계는 이렇게 기존의 논리로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는데 그것이 아직은 자본주의를 넘어서야만 한다는 논리로 발전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는 이른바 사상의 자유시장의 상황, 춘추전국시대의 상황이 되고 있다.

극우의 반공주의,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민족주의 등을 비롯하여 기본소득론, 뜨로츠끼주의 등이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각각 자신의 지분을 요구하고 행세하고 있다. 그리고 맑스주의는 이들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으며 좀처럼 노동자계급의 다수를 획득하는 상황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첫째, 그것은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맑스주의가 그동안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결과 많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인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에 대한 공격이었다. 계급투쟁의 무기로서 혁명의 대수학이라 불린 변증법은 부르주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쏘련이 무너지기 전에는 유럽적 차원에서, 쏘련이 무너지고 난 후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변증법을 매장하고자 했다.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세계관을 상실하고 또 계급투쟁의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힘을 쓸 수 없는데 이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의 의식적인 공격의 결과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을 복구하고 또한 변증법을 논리학의 차원에서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맑스주의가 과학적 사회주의임에도 현재 노동자계급의 다수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가 미친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영향이 아직 크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현재 운동을 지배하는 것은 맑스주의 혹은 맑스-레닌주의가 아니라 이른바 신좌파적 논리이다. 이 사회에 대한 계급적 접근과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을 부정하는 신좌파는 여성, 환경, 인권, 장애인, 성소수자 등 자본에 의해 억압받는 사회 각 영역에서 투쟁들을 발전시키고 그것들을 무매개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하나의 전략으로 사고하고 있다. 유럽의 아도르노 등에 의해 시작되고 68혁명에 의해 대중적으로 확산된 이러한 신좌파적 논리가 계급투쟁 개념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맑스주의는 운동의 현실적 다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신좌파적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운동의 전략이 제출될 때만 맑스주의는 전면적 부활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하나의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20세기 사회주의의 문제에 있어서 이제는 전면적 평가가 이루어져서 20세기 사회주의가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운동에 자산이 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한 정식화된 입장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당의 건설 전망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맑스주의는 내부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통일성을 다져가면서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서서히 회복해 가는 상황이다. 그리스 공산당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세계 각국의 공산당, 노동자당의 합동회의가 열리면서 이데올로기적 통일성을 다져나가고 있다. 이 흐름은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청산주의에 반대하고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공헌을 긍정하면서 그 한계와 오류를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흐름은 레닌과 스탈린의 이데올로기적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스탈린을 매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정당한 평가를 시도하는 것은 21세기의 맑스-레닌주의의 흐름이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정확한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스탈린을 청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질서와 그 이데올로기에 전면적으로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역사의 공과를 전면적으로 평가한다는, 어렵지만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 이데올로기는 세계대공황에 의해 저절로 부활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과학으로서 추구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쟁점들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답이 제출될 때 비로소 대중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각종의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현재의 세계질서에 대한 평가, 자본주의 발전의 현 단계와 그 모순들, 계급 대립구도 등에 대해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러한 이론적 쟁점들을 현실의 운동으로 전화시킬 때, 비로소 맑스주의 이데올로기는 전면적 부활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2. 한국 내의 이데올로기 지형

 

1)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문재인 정권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재벌중심의 성장에 대해서는 혹은 재벌체제에 대해서는 일체의 비판과 개혁의 전망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끊임없이 절충을 하면서 나름의 부르주아 정치를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문재인 정권의 모습은 그의 선행자인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연장선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권은 IMF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리해고와 파견법 등 비정규직의 도입을 이루어냈다. 노무현 정권은 그 연장선상에서 비정규직의 전면화를 이루어냈다. 이와 같이 한국내의 자유주의세력은 세계적 차원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받아 안아서 그것들을 한국에 부식하고 적용하는데 충실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집권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이루어놓은 바탕에 기초한 것이었고 그것들을 심화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의 위상과 역할은 이로부터 도출된다. 즉,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부식시켰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것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동력을 얻고 밑으로부터 대중의 반발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 세력의 구도는 실제로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고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대중에게 나름의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라고는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자유주의세력의 영향력이 광범한 이유는 이전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반동적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 소위 적폐청산이 대중적 호소력이 있다는 것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갖는 세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에 있다.

자유주의세력은 사회주의 세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의사가 없다. 국가보안법의 존재로 인한 반사이득을 자유주의세력은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심지어 박근혜정권이 그 합법성을 부정한 전교조에 대해서조차 이들은 합법성의 부여를 망설이고 있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보면 자유주의세력은 한국의 독점자본의 좌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역할은 민주주의의 외양을 취하면서 한국자본주의의 발전 즉, 독점자본의 축적과 지배의 강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2) 반공주의(극우 이데올로기)

 

한국사회는 분단 이후 분단질서에 의해 규정받으면서 정치, 경제적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분단질서를 상징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의 존재인데 이는 분단질서 수호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반도 북쪽에 존재하는 이북은 한반도 남쪽에 존재하는 한국의 국민들에게는 금단의 땅이었고 사고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국가보안법은 지금도 한국의 국민들에게 이러한 반쪽 사고를 강요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회운동의 영역에서도 자기검열의 기제가 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파시즘적 독재는 이러한 분단질서에 기초한 것이었고 분단질서 속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독점자본과 미제국주의의 요구의 산물이었다. 21세기 지금도 여전한 이러한 파시즘적 논리, 반공주의는 한국사회가 분단사회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분단질서 속에서 미제와 독점자본이 의도하는 자본주의 발전은 그 자본주의를 매장하는 사람까지 만들어 냈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자계급의 존재였다. 자본주의 발전에 의해 광범하게 창출되는 노동자계급의 존재는 한국사회에서 민주화투쟁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자유주의세력의 집권 이후에도 노동자계급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의 확장과 진보의 기본적 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공주의는 스스로 진화해왔는데 전두환, 노태우 때까지의 조악한 반공주의는 자유주의세력의 집권 하에서 밑으로부터의 반공주의,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반공주의로 진화해왔다. 과거에 자유총연맹이라는 단체의 결성이 있었고 최근에는 아스팔트 극우의 등장 등이 그러하다. 박근혜의 탄핵국면에서 등장한 태극기 집회는 한국판 파시스트 돌격대이다. 이들의 존재는 나름의 대중운동의 외양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인데 촛불시위와 박근혜 탄핵에 대한 반동세력의 대응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반공주의는 나찌의 반공주의, 처칠의 반공주의적 냉전, 미국의 반공주의 등 다양한 역사를 거쳐 왔는데 한국의 반공주의의 특징은 그것이 분단질서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이북에 대한 사상적, 정치적 접근을 차단하고 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민중들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한 상태에서 한국의 반공주의는 미국의 한국 민중에 대한 신식민지적 지배와 독점자본의 지배를 파시즘적으로 보장하는 역할을 했다.

반공주의는 사회주의세력의 존재를 원천 부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사상의 자유를 비롯한 자유주의 또한 부정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이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사상의 자유시장의 논리에 따라 사상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비해 반공주의는 사상의 자유시장 논리를 거부한다. 따라서 이들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이다. 박근혜가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저질렀던 억압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정, 사상의 자유에 대한 부정이었다.

이들 반공주의 세력은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한국자본주의의 한 축으로 작동할 것이다. 이 세력은 결코 저절로 없어지거나 선거를 통해 사멸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제국주의와 독점자본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전일적으로 관철할 세력은 중요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서는 한국사회의 진보의 전망 속에서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을 통해서 극복해야 할 것이다.

 

3)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

 

한국사회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내걸었던 다양한 세력들은 사멸의 길을 걸었다. 한국 내의 반공주의가 사회민주주의 이념조차도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과거 진보당 사건 등이 그 예이다. 80년대 이후에는 맑스-레닌주의 운동을 청산하면서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주대환이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했던 것이 그러한 사례이다. 최근에는 강신준이 ‘두 개의 마르크스’를 주장하면서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강신준은 쏘련의 붕괴로 맑스주의는 실패한 맑스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2007년 대공황 이후 맑스가 돌아오고 있는데 실패한 맑스와 돌아온 맑스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러시아 혁명 직후 카우츠키와 레닌의 논쟁을 고찰하면서 러시아는 사회주의건설의 물적 조건이 결여된 상태에서 사회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독재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강신준은 사회주의의 조건으로 생산력과 민주주의를 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그럴듯하다. 맑스야말로 생산력의 발전이 사회주의를 초래한다고 했으며 민주주의는 모든 맑스주의자가 동의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신준이 들고 있는 것은 러시아 혁명의 길이 아니라 카우츠키의 길이다. 무엇인가 왜곡되고 비틀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신준의 실패한 맑스라는 규정 혹은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쏘련에 대한 비판은 피상적이면서 부르주아적 관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생산력의 문제는 상대적인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일정하게 발전하여 노동자계급이 창출될 때, 그리고 자본주의적 우클라드가 여타의 우클라드보다 지배적이 될 때 사회주의 혁명의 물질적 전제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쏘련은 소농민이 다수인 농업사회였지만 자본주의적 우클라드가 강력했고 또 사회발전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물질적 전제가 존재했다고 보아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쏘비에트 권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쏘련 사회가 독재였다는 주장은 한편으로 악선동으로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을 자극하는 것인데 강신준이 결여한 것은 민주주의와 독재의 변증법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레닌과 카우츠키의 논쟁에서 전면적으로 다루어진 바가 있다. 맑스주의는 자본가계급을 분쇄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무계급사회로의 이행기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존재를 공공연히 승인한다. 부르주아들이 현실적으로는 독재를 하면서 외양적으로 민주주의를 취하는 것과는 달리 이론적으로, 정치적으로 맑스주의는 일관된 주장을 한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선거 시기에만 민주주의를 느낄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신의 생활 전반에서는 항상 자본가의 독재와 마주해야 하고 또 관료주의와 마주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가 없는 세상을 만든 볼쉐비키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의 거대한 진전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가 계급에게 있어서는 수탈과 독재를 의미하였다. 모든 계급에게 공평한 민주주의는, 계급을 떠난 민주주의는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계급의 소멸로 인민들의 정치적, 사회적 참여가 광범하게 이루어질 때 특별히 민주주의라고 수식될 필요가 없어지며 민주주의는 국가의 소멸과 더불어 소멸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민주주의를 하나의 역사적 과정, 역사적 개념으로 보는 것이 올바르다. 따라서 역사적인 계급적 질서 속에서 민주주의를 사고하는 것이야 말로 과학적 접근인 것이다. 이 점이 레닌의 카우츠키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었다.

강신준은 100년 전의 카우츠키의 논리를 끄집어내고 있지만 그것은 낡은 사회민주주의 타령에 불과하다. 그는 쏘련의 붕괴에 대해 결코 청산주의적 입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실패한 마르크스’라는 구실 하에 20세기 사회주의가 이루었던 거대한 성과, 그리고 인류 사회에 끼친 공헌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21세기의 사회주의 운동을 위한 역사적 교훈은 전혀 끌어낼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강신준은 청산주의의 하나의 표현에 불과하며 단지 2007년 대공황이 가져온 맑스주의의 부활이라는 현상에 대한 분열된 인식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면 사회민주주의와 비슷하면서도 구별되는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해 살펴보자. 한국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는 일정한 저변을 갖고 있다. 쏘련의 계획경제의 실패에 대한 대응으로 민주적 계획경제를 주장하고 있는 점 등이 민주적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유물론적인 실사구시의 관점이 결여된 도식적인 것이다. 쏘련에서 계획경제가 왜 실패했는가라는 구체적 문제를 추상적인 민주주의의 개념을 통해 해명하려 시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관점은 계획경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계획경제는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공업의 국유화와 농업의 집단적 관계 등 사회주의 생산관계가 성립함에 따라 실시되는 경제형태이다. 즉, 계획경제라는 개념 자체는 사회주의 생산관계에서 우러나는, 필연적인 경제형태이다. 사회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생산의 무정부성이 제거된다는 것, 그리고 이윤의 추구가 아니라 인민의 복지의 발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계획경제이다. 그에 따라 계획경제는 개념 자체가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생산관계는 자본가계급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노동자계급의 광범한 민주주의적 참여를 불러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민주적 계획경제를 주장하는 논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계획과 비교하면서 계획에 대해 민주적 계획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사회주의적 성격이 담보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계획경제는 밑으로부터 광범한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한 경제이다. 그것도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주인으로서의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해진다. 계획에 대해 관료주의적 계획만 상정해서는 계획경제의 입안과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쏘련의 계획경제가 1960년대를 기점으로 파탄나기 시작했던 것은 계획에서 민주적 성격이 점차 사라지고 국유기업이 이윤추구의 단위로 변질됨에 따라 계획 자체가 관료주의화되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쏘련에서 자본주의적 경제개혁이 실시되기 이전에 국유기업은 공장장 책임하에 단독관리제를 실시했지만 그것은 경영의 전문성을 고려한 것이지 결코 정치적 관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업에서 주인은 노동자 대중이었고 이는 당조직과 공장위원회(공장 쏘비에트(쏘련), 공장의 노동자대표자대회(중국))를 통해 담보되었었다. 그러나 1965년의 코시긴 개혁으로 인해 기업에서 이윤추구가 제일차적인 목표가 된다. 이에 따라 기업에서 노동자는 소외되고 노동자는 기업의 지배권을 서서히 잃게 되었다. 공장장 등 기업의 지배층과 그 위의 국가관료가 실질적인 지배권을 갖는 것으로 계획경제의 성격이 서서히 변화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계획경제에 민주성이 사라지면 계획경제의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결국은 계획경제가 파탄난다는 점을 쏘련의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민주적 계획경제라는 개념은 계획경제의 본질에 대해 매우 피상적인 이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주적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주의라는 개념 앞에 ‘민주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는 것은 사회주의에서 알맹이를 제거하고 껍데기만 남기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부정은 노동자계급 스스로 자신의 권력의 핵심적 의미와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가계급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하는 사회주의, 단지 이상만 꿈꾸는 사회주의에 지나지 않게 된다. 레닌은 혁명의 근본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라고 한 바 있다.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할 때만, 자본가계급의 저항을 분쇄할 때만 사회주의는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의 독재없이 자본가권력 나아가 자본가계급이 폐지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것은 국가의 본질에 대한 매우 비과학적인 견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국가권력은 계급지배의 도구라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계급사회가 출현한 이래 수천년에 걸친 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이 폐지될 때, 자본주의 복고의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계급지배의 도구라는 성격이 불필요하게 되기 때문에 국가는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복고의 가능성이 사라지기 전까지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서 유지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에 대해 매우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는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입장에서 사회주의를 사고하고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달콤한 개념을 꿈꾼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현실 속에서 발전한다는 것이 진실이다.

 

4) 민족해방의 경향들

 

이들은 1980년대에 반제국주의, 반미의 기치를 들었던 세력들이다. 당시에 이들의 반제 경향은 변혁지향적이었고 운동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한국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이들은 점차 체제내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이들은 사실상 부르주아 민족주의와의 경계가 모호한 지경이 되었다. 따라서 민족해방의 경향을 논하기 전에 먼저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부르주아적 의미에서 민족주의는 19세기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발생했다. 이탈리아, 독일 등 민족국가 수립의 과제를 안고 있던 나라들에서 민족주의는 당시 진보적인 역할을 했고 그 결과 각각의 민족국가가 성립되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민족주의는 세계 각지에서 민족해방운동의 발전의 결과 고양되었다. 20세기 초, 중반의 민족주의는 19세기와 달리 러시아 혁명의 결과 사회주의 운동과 동맹을 맺는 민족주의가 되었다. 그리하여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주의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운동, 식민지에서 민족해방운동의 동맹이 이루어졌다. 이들 동맹이 겨냥하는 것은 제국주의 세력이었다.

한국에서 1980년대 탄생한 민족해방 경향은 바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발생한다. 그에 따라 한국에서 민족해방 경향은 강한 사회주의 지향을 가진다. 이들은 쏘련이 붕괴하면서 사회주의 지향을 점차 상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하여 이들에게서는 사회주의적 경향과 부르주아 민족주의적 경향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분단질서에 대항하고 미제국주의에 맞서는 것은 진보적인 것이지만 이들은 노동운동에 있어서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찬성하여 계급협조의 길을 걷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따를 때 그것은 결정적으로 노동대중의 계급의식을 흐리고 계급투쟁의 전열을 교란하는 것이 된다. 또한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는 그것은 조합주의의 강화로 귀결되고 있다. 이들은 사회주의적 내용을 선전, 선동하지 않으며 통일만을 강조하는데 그에 따라 노동대중의 계급의식을 강화하지 못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강화로 귀착되고 있다. 조합주의는 노동운동에 있어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이들이 사회주의적 내용을 갖지 못하는 것과 조합주의의 강화는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진보성 즉, 반제, 민족해방, 통일의 지향에 대해서는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지만 이들의 한계와 오류 즉, 비계급적, 몰계급적인 측면, 계급화해, 계급협조의 측면에 대해서는 비판이 필요하다.

 

5) 기본소득론

 

기본소득론은 한국 현실에 기반해서 성립했다기 보다는 2007년의 세계대공황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처방 중의 하나를 수입한 것이다. 공황의 발생의 근본원인은 과잉생산이지만 이에 대해 자본가계급은 과잉생산을 공황의 원인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수요의 부족을 공황의 발생 원인으로 보고 유효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전 국민에게 일종의 소득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것을 착안했던 것이다. 이러한 착상이 마치 진보적인 것인 양 한국에 수입되어 운동진영의 일정 부분은 이러한 기본소득론을 주장하고 있다.

기본소득론은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사회주의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따른 성과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의 능력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소득은 각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가 무상으로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를 취득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즉, 자본가의 소득은 착취의 결과이지만 사회주의에서 소득은 노동에 따른 것이다. 또한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높은 단계에서는 어떠한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에서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 사회이다. 여기서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 것과 기본소득은 유사한 점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필요에 따른 분배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것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의 발전에 필요한 부분을 수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최저생계비를 의미하는 기본소득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다. 즉, 자본주의에서 기본소득은 필요에 따른 분배라고 규정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으며 미래의 공산주의사회에서 소득은 사회전체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 즉 노동에 기초하는 것이며 그 기초 위에서 사회와 개인의 전면적 통일의 표현으로서 필요에 따른 분배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의미하지만 그것의 현실적인 결정은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다. 또 자본가들은 공황에 임하여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을 비롯하여 경제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통해 공황을 극복하려 한다. 이런 자본가계급이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은 공상에 가까운 것이다. 또한 그것은 공황에 대한 자본가들의 사고의 비과학성을 보여주는데 운동진영이 기본소득 운운하는 것은 그러한 자본가의 공상적 사고를 이식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결과적으로는 계급투쟁 전선을 교란하는 것이다.

 

6) 뜨로츠끼주의

 

뜨로츠끼주의는 쏘련 붕괴 뒤 마치 대안적인 이데올로기인 양 한국사회에 수입되었다. 그러나 뜨로츠끼주의 자체는 좌편향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비과학적인 이데올로기이다. 그런 뜨로츠끼주의가 한국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획득한 것은 전적으로 쏘련 붕괴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외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즉, 스탈린주의의 한계와 오류로 인해 쏘련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가 운동에 일천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또한 사회주의를 견지했던 사람들이 뜨로츠끼주의에 경사된 것은 또 다른 면이 있는데 이들이 뜨로츠끼주의를 수용한 것은 지적인 게으름과 기회주의적인 면 때문이었다. 즉, 이들은 뜨로츠끼주의를 수용하는 것을 통해 쏘련 붕괴라는 세계사적 격변이 주는 정치적, 이념적 과제를 회피하는 사실상의 청산주의, 좌익적 청산주의의 길을 걸은 것이다. 맑스-레닌주의가 아니라 뜨로츠끼주의가 참된 혁명적 길이다라는 간단하고 손쉬운 지적인 자기기만!

그러나 뜨로츠끼주의는 올바른 사회주의 건설론은 고사하고 현실의 계급투쟁에 있어서 숱한 오류로 범벅이 된 이론이고 이데올로기이다. 뜨로츠끼는 러시아 혁명에 있어서 레닌과 끊임없이 부딪혔었다. 뜨로츠끼는 1905년부터 러시아혁명의 성격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규정하는 좌편향을 보였는데 그는 10월 혁명 후에 레닌이 자신의 혁명론을 수용했다고 하는 사기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또한 뜨로츠끼는 볼쉐비키 혁명 후에 노동조합 논쟁에서 노동조합의 군사화를 주장했다. 이는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의 관료화를 주장한 것으로서 쏘련의 사회주의 건설을 망치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1920년대 뜨로츠끼의 사회주의 축적론은 농민을 수탈하여 사회주의공업화를 하자는 것이었는데 농업 집단화의 물적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그러한 공업화는 노농동맹을 파괴하는 것으로서 사회주의 건설은커녕 쏘비에트 권력의 존재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또한 뜨로츠끼는 당에서 자신의 세력이 소수화되자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하여금 가두시위를 감행하게 했는데 이는 스스로 당의 질서를 깨고 나오는 것으로서 공식적인 반당행위를 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뜨로츠끼에 대한 처벌과 추방은 그러한 행위의 당연한 결과였는데 추방 후에도 뜨로츠끼는 지속적으로 반쏘련 행동을 했었다. 이러한 뜨로츠끼의 행적은 운동에 대해 조금만 진정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보면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 판단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그러한 뜨로츠끼가 마치 쏘련 붕괴 후에 대안인 양 비쳐진 것은 한국의 운동의 역사의 일천함이 일정한 요인이 된다. 1980년대를 통해 다시 소생한 한국의 변혁운동은 곧바로 쏘련 붕괴라는 격변 속에서 방향을 상실했고 그 틈을 뜨로츠끼주의가 파고들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뜨로츠끼주의는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은 물론 현실의 계급투쟁에서 아무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조류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에서, 운동의 전술에서 뜨로츠끼는 좌편향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러한 좌편향은 현실의 전선과 운동의 대오를 교란하고 결과적으로 자본가계급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뜨로츠끼주의의 허울을 걷어내고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를 이루어내고 정식화하는 것을 통해 사회주의 패배의 역사를 향후 변혁의 승리를 위한 자산으로 전화시켜 내야 한다.

 

7) 신좌파 이데올로기

 

신좌파 이데올로기 또한 쏘련 붕괴 뒤 한국의 사회운동에 수입된 것이다. 푸코 등을 핵심으로 하는 신좌파의 논리는 저항은 하지만 전망은 없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사고가 그동안 약 20여년에 걸쳐 운동에 깊이 스며들어 왔고 그에 따라 지금은 활동가들이 스스로 전망이 없다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신좌파의 논리는 어이없을 정도로 취약한 것이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기존의 운동 논리를 타파할 것을 주장한다. 68운동에서 서유럽 공산당들이 보여준 무력하고 관료주의적인 행태에 대한 반발로 맑스-레닌주의가 아닌 새로운 운동 노선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폐기를 주장하면서 노동운동 중심의 운동이 아닌 여성, 환경, 인권 등 여러 부문운동들의 연합으로서 운동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전형적으로 푸코에게서 나타난다. 그는 사회에 대한 계급적 접근을 부정하면서 사회 곳곳에 뻗치고 있는 권력의 섬세한 그물망을 기존의 운동이 보지 못함을 비판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과학에 대한 반대, 과학의 권위에 대한 부정을 수행하면서 변증법을 부정하고 변증법에 대한 대안으로서 자본에 의해 억압받고 배제되는 여러 부문들의 연합을 전략의 논리로서 제출한다. 이리하여 신좌파의 논리는 완성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푸코의 주장은 이중적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사회 곳곳에 뻗치고 있는 권력의 섬세한 그물망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서유럽에서 자본주의 발달로 말미암아 강화되고 있던 자본주의 국가를 폭로하는 것으로서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사회에 대한 계급적 접근을 부정하고 변증법을 부정한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었다. 그를 통해 운동은 과학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변혁의 전망을 갖지 못하는 저항이 되었다. 사실 변증법을 부정한 결과 제출된 여러 부문 운동의 무차별적 연합의 논리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변혁의 전략은 헤게모니 세력, 동맹군, 지지세력 등등 여러 세력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의 결과 도출되는 것이다. 변증법 자체를 부정하여 제 세력의 상호연관에 대한 접근을 막아버리면 운동에서 과학적인 노선, 전략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폐기를 수용하고 무차별적인 부문운동의 연합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러한 신좌파의 논리는 푸코 등 서유럽 철학이 소개되면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낯선 것이 되었다. 이들은 저항은 하지만 전망은 없는 것이고 그것은 더 이상 계급투쟁이라 불릴 수 없는 것이었다. 푸코 스스로 맑스주의의 계급적 접근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신좌파의 논리는 계급투쟁을 해체한다는 현실적인 정치적 의미가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신좌파의 탄생 자체가 서유럽 공산당의 오류, 쏘련의 수정주의화로 인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 이들은 현실적인 저항을 수행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과학적 노선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실천을 통해, 연대를 통해, 이들의 비과학적인 면모를 교정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8) 맑스-레닌주의

 

1980년대 운동이 부활하고 변혁운동이 재탄생함에 따라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비약이 이루어졌다. 주변부자본주의론 등이 득세하다가 밀려나고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소개되면서 한국사회가 미제국주의의 신식민지라는 점 등이 명확하게 정식화되었다. 또한 일본의 운동권의 자료들을 소화하는 단계를 넘어서 맑스와 레닌의 저작들을 직접 접하면서 운동진영의 이데올로기는 맑스-레닌주의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운동은 노동자계급의 당건설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쏘련의 붕괴 등 세계사적 격변은 갓 태어난 한국의 변혁운동을 시련으로 몰고 갔고 운동진영은 청산주의가 지배적이게 되었다.

약 20여 년의 기간 동안 청산주의가 득세하고 운동은 이데올로기적 방향을 상실한다. 극소수만이 맑스-레닌주의의 기치를 지켜오게 되었다. 그런데 운동은, 변혁운동은 이데올로기가 살아나지 못하면 질곡에 처하게 된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정세를 해석하고 그에 대처하면서도 그것들을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소화하고 지양해가는 것이 운동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적 방향의 상실은 변혁운동에 있어서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에게 있어 식량공급이 끊긴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를 가져왔던 것이다.

한편 세계적 차원에서는 맑스-레닌주의는 소생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스 공산당의 경우 1990년대 격렬한 내부투쟁을 거치며 청산주의를 당에서 극복하고 당적 대오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2007년 공황 이후에는 서서히 대중적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그리스 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를 명확히 하면서 그것의 현재적 내용을 풍부하게 넓혀가고 있다.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의 많은 공산당과 노동자당들이 맑스-레닌주의의 대오에 합류하고 있다.

그리스 공산당은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를 정식화하는 작업을 끈질기게 수행하고 있다. 특히 스탈린에 대한 평가에서 청산주의를 반대하면서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공헌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 맑스-레닌주의는 여전히 일천한 상황이지만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평가에서 큰 방향에서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 그러한 한국의 맑스-레닌주의는 이데올로기적 원칙을 견지하면서 현실의 이론적 쟁점과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해가고 전선의 요구를 받아 안아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이루어가는 것, 그에 기초하여 변혁의 전망과 당건설의 전망을 세우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하고 있다.

 

 

3. 노동자계급 운동 발전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의 위상

 

노동자계급의 발전은 일직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발전과 쇠퇴, 그리고 호황기와 경제 침체기, 공황기에 노동운동은 큰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서서 사회주의 운동과 정당운동의 영역에서는 이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직접적 투쟁의 영역의 ‘외부로부터’ 발생하여 노동자계급 내부로 도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의식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내부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즉,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해는 화해할 수 없다는 의식, 자본주의는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며 사회주의 사회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다는 의식,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공공성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지배도구라는 의식은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으로는 담보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레닌은 사회주의 의식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외부로부터’ 도입되는 것이라고 규정한 바가 있다. 그리고 레닌은 사회주의 의식은 국가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모든 계급들의 상호관계로부터만, 그것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의 영역으로부터만 생겨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정당으로 조직되기 전까지 노동자계급은 진정한 의미의 계급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최초에는 조합적인 경제투쟁의 과정에서 단결의 의미와 중요성을 습득한다. 이러한 의식은 당장의 임금보다 단결의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식으로 발전한다. 노동자계급은 경험을 축적할수록 이러한 최초의 단계를 넘어서서 정치투쟁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와 투쟁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은 아직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정치를 한다고 해도, 노동조합이 정치투쟁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곧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비화해성을 각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자계급은 온갖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와 투쟁하면서 노동자 대중을 획득하는 길을 걷게 된다. 그러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선진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비로소 사회주의 당건설의 전제가 마련된다.

이러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노동자계급의 운동과 투쟁에 있어서 과학적 세계관을 제공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모순과 운동,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상호 관계에 대한 분석 그리고 사회 변혁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이론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즉, 노동자계급이 과학적으로 이 세계와 사회를 인식하는 것을 돕고 나아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노동자계급이 걸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이러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할 때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데 사회주의당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한 선진적 활동가들의 결합체로 역할하게 된다.

노동자계급 운동의 발전에서 이데올로기의 위상은 20세기 사회주의의 경험과 관련해서도 관찰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당과 국가의 관계가 비판이 되었다. 당이 국가 위에 서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국가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비판한다. 이 비판은 사회주의 사회에 있어서 당과 국가의 본질은 각각 무엇인지를 제기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사실상 당독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도 자연스레 제기되었었다. 이 물음은 역사적으로 1920년대에 지노비예프에 의해 제기된 바가 있었다. 당과 국가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쟁점은 노동자계급의 지도력의 문제와 국가권력의 문제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먼저 국가를 고찰해 보면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서 자본가계급에 대한 억압을 본질로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건설의 주요 도구가 된다. 이 부분에서 도출되는 것은 국가는 강제력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군대를 비롯한 힘, 폭력을 담지하면서 계급적 지배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은 어떠한가? 당은 직접적 폭력의 담지자는 아니다. 당의 본질은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건설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단위라는 점이다. 지도력은 무엇을 기초로 나오는가? 그것은 당이 가진 이데올로기적 내용, 그리고 정치적 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치적 전략은 이데올로기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당의 본질적 기초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즉, 국가와 당의 본질적 차이는 국가는 폭력의 담지자라면 당은 이데올로기, 사상이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에서 당의 역할과 위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즉, 당이 행사하는 지도력의 원천은 이데올로기적 호소력과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에서 나오는 것이며 당은 폭력의 담지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사회의 현실에서 당과 국가의 경계선이 모호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당적인 지도력과 밑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의 민주주의적 참여의 통일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모습일 것이다. 현실의 역사에서 이 점에서 부족했던 측면이 있었다. 이러한 것이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당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쟁점이 지금의 현실에서 갖는 의미는 당 건설에 있어서 관건적인 것, 당건설의 초석은 이데올로기라는 점이다. 당이라는 틀은 하나의 조직적 형식이지만 그러한 당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이데올로기이며 지금의 단계에서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정립하려는 일체의 투쟁은 조직적 측면에서 당의 내용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도출된다.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는 노동자계급의 발전에 있어서 관건적인 것이다. 레닌은 일찍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영역으로서 경제투쟁, 정치투쟁과 나란히 이론투쟁을 놓은 바 있었다. 그러한 3차원의 입체적 투쟁이 이루어질 때 노동자계급의 발전과 변혁이 앞당겨진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물론 이론투쟁이 곧바로 이데올로기 투쟁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론투쟁은 내용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은 관건적인 중요성이 있다. 특히 수많은 이데올로기들이 사상의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춘추전국시대에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은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더해준다.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저절로 정립되지 않으며 이론적 연구를 통해서만 획득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와 투쟁하는 가운데 정립의 길을 걷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론적 연구를 조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적 투쟁을 수행하는 것을 통해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지향해 가야 한다. 나아가 그 기초 위에 현실의 전선이 요구하는 정치적 과제들을 정립하고 수행해나가는 것을 통해 변혁의 전망, 당건설의 전망은 차츰 구체화될 것이다.

 

 

4. 노동자계급의 과제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노동자계급의 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그중 첫째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전선을 교란하는 온갖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그것의 비과학성에 에 대한 비판에만 그쳐서는 안되며 그것의 역사성과 계급성에 대한 폭로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둘째,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다듬고 과학적으로 정립하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맑스-레닌주의는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라는 대격변 속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청산주의와 선을 그어야 하며 뜨로츠끼주의와 같이 역사적 난제를 외면하는 좌익적 청산주의와도 선을 그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현실적 발전 경향 속에서 그 모순의 운동을 드러내며 사회주의의 싹을 발견하고 키우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 맑스주의, 맑스-레닌주의가 전세계의 노동자 대중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떤 교조적 도식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이 아니라 현실의 난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것을 통해 노동자 대중과 깊숙이 결합했던 데서 맑스주의 이데올로기는 위력적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한 길을 이제 21세기의 현실에서 맑스-레닌주의가 걸어야 한다.

셋째,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정립, 이데올로기 투쟁을 당건설 전망과 결합시켜야 한다. 노동자 계급의 이데올로기의 정립 그리고 그 투쟁은 공허한 관념적 투쟁에 그쳐서는 안된다. 만약 이데올로기 투쟁이 관념적 투쟁에 그친다면 그것은 비판의 무기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투쟁은 무기에 의한 비판으로 전화되어야 하며 그것의 유력한 길은 이데올로기 투쟁 속에서 당건설의 전망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당의 혼과 알맹이가 될 이데올로기적 내용을 정립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속에서 당건설의 전망을 구체화해 가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이데올로기를 하나의 추상에서 구체로 전화시키는 것이며 비판의 무기를 무기에 의한 비판으로 전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무산자계급이다. 노동자는 흩어지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단결하면 모든 것이라고 레닌은 말한 바 있다. 그러한 단결을 위한 유력한 무기의 첫 번째는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를 정립하고 이데올로기 투쟁을 전개하는 것을 기초로 경제투쟁, 정치투쟁과 결합된 총체적 투쟁, 동심원적 공격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노동자계급은 다시금 역사적 거인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노사과연         

 

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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