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스딸린에 반대하여 쏘련공산당이 취한 조치들에 대하여 ― 흐루쇼프 동지와 해외의 다른 동지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쉬브다스 고쉬(Shibdas Ghosh)*1)

 ∣ 인도사회주의자단결중심(SUCI)** 중앙위원회 서기장

번역: 제일호(노사과연 부산지회 회원)

 

 

[편집자 주] 인도 사회주의자 단결중심은 낯선 조직이고 또 그 조직에서 쓴 이 글은 1962년에 발표된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번역하여 싣는 것은 이 글이 자료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진영은 1956년의 흐루쇼프의 스딸린 탄핵을 기점으로 분열되기 시작했고 사회주의 진영 전체의 하강이 시작되었다. 즉, 20세기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스딸린 문제는 사활적인 쟁점으로 작용하는데 바로 이 글은 이러한 쟁점에 대해 나름대로 명확한 입장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 따르면 1962년 당시 세계 공산주의 운동진영은 반흐루쇼프와 반스딸린 경향으로 분화되어가는 중이었다. 이에 대해 필자인 고쉬는 일정하게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즉, 흐루쇼프가 제기했던 개인숭배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스딸린의 공적과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이 글에서 제출한 것이다. 1962년 당시는 전 세계에서 흐루쇼프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또 자신의 노선에 반대하는 각국의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들 모두― 공산당 지도부를 전복시키기도 하는 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쉬는 용기 있게 흐루쇼프의 스딸린 탄핵이 문제가 있고 스딸린의 공적도 인정되어야 하며 스딸린 탄핵으로 인해 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 사상적 혼란이 일어나고 있고 세계 사회주의 진영이 분열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공산주의진영의 지형이 이 글에서는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쏘련 붕괴의 원인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흐루쇼프가 수정주의자라는 것이 일정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보면 고쉬의 입장은 일정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즉, 당시 고쉬는 흐루쇼프의 스딸린 탄핵이 수정주의적 전환의 출발점, 자본주의로 복고의 시작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는 당시 정보의 한계, 공산주의운동에서 객관적인 지형의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고쉬의 글의 한계로 작용하는 것이다.

고쉬는 스딸린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정립하기 위한 요소로서 흐루쇼프에 의해 제기되었던 3가지 쟁점을 논하고 있다. 첫 번째는 개인숭배의 문제, 두 번째는 관료주의의 문제, 세 번째는 스딸린의 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의 문제였다. 개인숭배의 문제에 대해 고쉬는 흐루쇼프의 문제제기를 수용하고 있다. 즉, 스딸린에 대한 개인숭배가 있었으며 그것은 심지어 “역겨운” 것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숭배의 발생원인을 나름대로 추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민주집중제의 왜곡이라는 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고쉬는 구체적으로는 권위에 대한 의식과 권위주의가 혼동되었다는 점을 개인숭배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스딸린의 강한 개성이 권위를 가져왔는데 이에 대해 권위에 대한 존중을 넘어서는 권위주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쉬는 1962년에 이 글을 발표했고, 중국공산당은 1963년에 스딸린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관점을 발표하는데 중국공산당의 관점은 고쉬의 관점과는 다르다. 중국공산당은 개인숭배라는 흐루쇼프의 제기가 실은 지도자를 탄핵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고 개인숭배라는 접근은 민주집중제에 있어서 지도자의 역할과 권위를 탄핵하는 것으로서 민주집중제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하고 있다. 실제로 개인숭배라는 방법의 접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숭배를 구실로 흐루쇼프가 스딸린의 30년간의 노선을 부정하고 수정주의를 전면화한다는 점에서 고쉬의 접근보다는 중국공산당의 접근이 진실에 보다 가까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권위에 대한 잘못된 태도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데 이는 민주집중제를 당시의 조건에 맞게 다듬고 구체화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고쉬가 접근하고 있는 두 번째의 쟁점은 관료주의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 고쉬는 스딸린의 개인적 책임이 아니라는 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딸린은 관료주의를 탄핵하고 반대해왔지만 실제로는 관료주의에 의해 둘러 쌓여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흐루쇼프가 제기했던 관료주의의 문제에 대해 고쉬는 약간은 수동적인 방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쏘련 사회에 대한 분석이 일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특히 뜨로츠끼주의자들의 관료주의에 대한 반대 소동을 비판하는 점에서 본다면 고쉬의 접근은 부정확하다. 사회주의에서 관료주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주의의 본질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자궁에서 태어나 그 유물을 물려받고 있다는 점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관료주의와 사회주의에서 관료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성질과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관료주의의 극복은 자본가 국가권력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수립,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확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 관료주의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라는 모순이 국가라는 상부구조에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며 그에 따라 이러한 모순의 점진적 극복, 예를 들면 문맹의 퇴치, 인민의 행정에의 참여의 확대, 지배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훈련과 통치능력의 제고를 통해 극복되는 것이다. 즉, 뜨로츠끼주의와 같이 관료주의 타도를 위한 정치혁명이라는 관점을 맑스-레닌주의는 취하지 않는 것이다. 흐루쇼프는 스딸린이 마치 관료주의를 옹호한 듯이 탄핵했지만 스딸린 시대는 쏘련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관료주의와의 치열한 투쟁의 기간이었다. 특히 1937년 숙청은 소위 ‘거물급 관료주의자’를 대중적 비판을 통해 대대적으로 솎아 내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는 흐루쇼프의 전인민국가와 브레즈네프 하에서 관료주의는 급속히 성장했고 특권층을 의미하는 노멘끌라뚜라라는 현상이 자리 잡기도 했다. 따라서 흐루쇼프가 스딸린을 관료주의의 명목으로 탄핵한 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세 번째로 고쉬가 다루고 있는 쟁점은 스딸린의 권력 남용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이다. 이 쟁점에서 고쉬는 스딸린을 전면적으로 옹호하고 흐루쇼프를 비판하고 있다. 숙청의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음은 스딸린 스스로 당대회에서 인정한 적이 있고 무고한 희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스딸린의 고의가 아니며 나아가 범죄로 규정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흐루쇼프가 스딸린을 탄핵한 1956년 20차 당대회에서의 비밀연설문은 스딸린의 잔혹한 악행에 대한 고발로 가득 차 있다. 흐루쇼프의 비밀연설문에만 의존하면 스딸린은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이기는커녕 한 사람의 공산주의자로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흐루쇼프의 비밀연설이 음모적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현실의 스딸린은 레닌 사후 뜨로츠끼주의, 부하린주의에서 맞서서 거대한 사회주의 건설을 이루었고 나아가 나찌 독일에 맞서 파시즘을 궤멸시켰고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성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전 세계 민족해방투쟁을 지원하여 제국주의의 식민지 체제가 붕괴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즉, 당시 스딸린은 객관적으로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라는 거대한 위치였는데 흐루쇼프의 비밀연설문은 스딸린을 음모적 방식으로 전면 탄핵한 것이었다. 이렇게 음모적 방식으로 스딸린을 탄핵한 흐루쇼프가 이후 전면적으로 수정주의의 길을 걸어갔다는 점을 볼 때 이는 스딸린의 30년간의 노선에 대한 탄핵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는 고쉬조차 스딸린의 공적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흐루쇼프에게 공개적으로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쉬의 글에서 한계적 측면보다는 오류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관한 것이다. 즉, 스딸린 시대에 쏘련의 대외정책에 세계공산주의 운동이 지배되었다고 하면서 흐루쇼프도 똑같은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이는 흐루쇼프가 자신의 노선을 세계의 각국 공산당에게 강요하려는 것에 대한 반발로서는 옳은 것이지만 스딸린 시대에 있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해서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스딸린 시대에 쏘련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였다. 따라서 세계노동계급의 이익은 쏘련의 유지와 발전에 대해 긴밀히 연동되어 있었고 실제로 쏘련은 꼬민떼른을 통해 각국의 사회주의 운동과 혁명을 지원했던 것이다. 각국 공산당의 역량이 미약했던 시절에 스딸린을 중심으로 하는 쏘련 공산당이 일정하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조건에 맞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였던 것이다.

또한 고쉬의 글에서 인도공산당에 대한 고쉬의 비판은 신중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현재 인도에는 여러 갈래의 공산당이 있다. 이들에 대한 검토는 차후의 과제인데 고쉬의 사회주의 단결중심(당)과 여타의 인도 공산당과의 관계는 연구를 거쳐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고쉬의 글은 이러한 한계와 일정한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데 1962년 당시의 세계정세, 특히 세계공산주의 운동의 지형을 반영하고 있고 스딸린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정립하기 위해서 어떠한 쟁점들을 통과해야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차례

 

1. 동지들에게

2. 공산주의자 세계에서의 차이

3. 공개된 논쟁적인 토론의 필요성

4. 이 편지가 공개서한인 이유

5. 어떠한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6. 소위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설명

7. 개인숭배의 근본원인

8. 집단지도체제는 단지 위원회의 결정이 아니다

9. 극단적인 민주화 작업에 대한 이해

10. 지도자의 지도적인 역할을 부정하는 경향

11. 가치를 인정하는 방법

12. 개인숭배를 근절하는 수단들

13. 공산당을 지도하는 것에 대한 혼란

14.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강령에 대한 쏘련의 외교정책

15. 똑같은 잘못된 과정, 똑같은 맹목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16. 잘못의 요인 ― 사상적인 수준의 저하

17. 수정주의 경향

18. 국제공산주의자포럼 앞에 놓여진 “ 권력남용”과 관련된 사실들

19. 공산주의는 휴머니즘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20. 스딸린 ― 거대한 공산주의 지도자

21. 스딸린 ― 평화공존이론의 설계자

22. 스딸린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시기가 왔다

23. 개인적으로 스딸린 혹은 책임 있는 행정 관료에 대하여

24. 시대적 요인들에 대한 고려

25. 스딸린의 동지들이 한 역할

26. 공산주의운동을 새로운 승리로 이끌자

 

흐루쇼프가 쏘련공산당(CPSU)과 국가의 지도력을 강탈하고 개인숭배와의 싸움이라는 이름으로 스딸린 동지를 모욕한 이후의 스딸린 동지에 대한 평가

 

흐루쇼프 동지2)와 해외의 다른 동지들에게

 

 

1. 친애하는 동지들

 

흐루쇼프동지의 지도하에 쏘련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는 스딸린의 역할을 평가하기로 결정했지만, 제20차전당대회의 그 결정이 있기 전에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스딸린의 역할을 절대 옳고 비판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 이후 이루어진 이 평가의 시작은 쏘련공산당 제22차 전당대회의 결정에서 평가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결정들은 이후 쏘련(USSR)에서 채택된 다양한 조치들 그 자체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 사실상 공공의 기억으로부터 스딸린을 지우기 위해 의도된 모든 것들. 그가 쓴 저작들의 출판은 금지되었습니다. 그의 저작들로부터의 인용을 용의주도하게 피했습니다. 그와 연관되고 그의 이름이 새겨진 도시들과 시골마을들, 공원들과 거리들, 집단 농장들, 너무나 많은 다른 기관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의 초상화들과 동상들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그의 몸을 레닌-스딸린 묘에서 제거하였고, 지금은 레닌 묘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는 쏘련공산당의 현재 지도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위의 조치들이나 혹은 다른 유사한 조치들에 대한 지시가 스딸린에 의해 빠져들게 된 반(反)공산주의 경향들과 실행들을 맹렬히 반대하고 마침내 근절시키겠는 것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의 내용은 주로 일반적으로 개인숭배의 실행에 대한 것이며, 특히 스딸린-개인숭배의 실행에 대한 것입니다. 스딸린을 격하시킨 또 다른 혐의들은 당내 민주주의의 침해, 당원들과 행정 관료들에 대한 관료주의의 확립과 성장, 끝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은 결과를 초래한 권력의 남용에 대한 것입니다.

 

 

2. 공산주의자세계에서의 차이

 

또한 개인숭배와 싸우는 수단으로서 위에서 언급한 조치들에 대해서 만큼이나 흐루쇼프의 지도하에 쏘련공산당이 행한 스딸린의 가치에 대한 상대적인 평가에 대해서도 여러 공산당들 사이에 커다란 차이점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차이들은 이미 다양한 형태와 표현으로 명백해졌습니다. 흐루쇼프가 진전시킨 노선에 경도된 몇몇의 공산당들은 스딸린의 명예를 완전히 더럽히거나 혹은 기껏 그를 일반당원의 지위로 격하시키려고 그들마다의 나라에서 작업 중입니다. 쏘련공산당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스딸린의 시대에 이루어진 기계적인 지지를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스딸린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때문에, 다른 몇몇의 공산당들은 반(反)흐루쇼프 경향을 발전시켜왔고 다른 극단으로 치달아왔습니다. 후자그룹의 더 맹렬한 행위는 흐루쇼프가 스딸린에 대하여 어떤 말을 했든지 간에 혹은 어떤 행동을 했든지 간에 탄핵을 하며 흐루쇼프의 초상화를 태울 정도까지 멀리 나아갔습니다. 흐루쇼프의 노선에 일반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현재의 변화된 상황에 일치시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역시 있습니다. 전적으로 그들은 사상적인 혼란 속에서 앞으로는 공산주의운동을 지도하는 동안 지도력의 중심을 어떤 하나의 국가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하나의 중심보다도 더 많이 두어야 한다는 요구를 부각시켜왔습니다. 이 모든 징후와 표현들은 전 세계 공산주의운동이 오늘날 심각한 사상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논의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 사상적인 위기는 너무나도 커다란 위기라서 한편으로는 알바니아, 쏘련을 포함한 몇몇의 다른 사회주의국가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와 사회주의의 위대한 진지에 속하는 모든 국가들 사이에 외교적인 관계들의 노골적인 불화를 초래했습니다. 현재의 공산주의운동을 지배하고 있는 심각한 사상적인 혼란이 제때에 올바르게 해결되지 못한다면 결국 전 세계 역사에서 새로운 현상이 발생할지 모르며, 바로 그때는 여러 국가들의 공산주의자들이 전 세계 공산주의 사회의 설립을 위한 빠른 발걸음을 하고 그들 사이의 동맹을 더욱더 공고히 하는 대신에 서로에게 멍텅구리 짓을 하고 전 세계 공산주의 사회의 소중한 이상을 깨닫기 위한 행진을 방해하는 것을 인민들이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우려가 알바니아와 다른 몇몇 사회주의국가들 사이에서의 최근의 외교적인 관계의 불화라는 상황과 그것으로부터 귀착된 불행한 사건들 속에서 전적으로 배제되어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그러한 상황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3. 공개된 논쟁적인 토론의 필요성

 

우리가 심사숙고한 관점에서 보면, 공산주의운동이, 스딸린의 가치에 대한 상대적인 평가의 문제와 그에 대해 쏘련공산당이 채택한 조치들에 대하여 여러 공산당들 사이에서의 차이점들을 부인하는 것은 명확하게 해로운 것입니다. 자기망상의 타조 같은 정책은 상황을 악화시킬 것입니다. 이 주제와 연관된 모든 문제들은 비판적인 조사를 통하여 이루어져야합니다. 차라리 그것은 여러 공산당들과 인민대중들이 참여한 공개된 논쟁적인 토론의 형태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그러한 공개된 논쟁적인 토론에 의해서만이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사상적인 차이점들이 날카로운 돋을새김 속에서 명백하게 되어 질 수가 있고 그런 후에 정확하게 해결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급과 대중들을 교육하는 레닌주의적인 방식인 것입니다; 역시 그것은 계급과 대중들로부터 배우는 방식이기도합니다. 사상적인 작업들에서는 그 차이점을 회피하는 수단으로서 중도(via media)의 발견도 없어야 하며, 차이점에 대한 어떤 겉치레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확고한 사상투쟁만이 사상적인 혼란의 안개를 걷어낼 수 있고 공산주의운동을 정확한 길로 되돌릴 수 있으며, 그것에 의해 공산주의운동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칙과 관계된 이러한 특별한 점에서는, 극비정책(hush hush)이 결코 장려되어져서는 안 됩니다. 스딸린에 관하여 흐루쇼프의 지도아래 쏘련공산당이 채택한 정책에 대한 공개된 논쟁적인 토론과 그에 더하여 공산세계의 다양한 반응들이 결국 공개된 균열을 발생시키지도 모르는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동맹의 약화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이해했던 동지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산주의자의 단결에 대한 일반적인 사상은 우리들의 이러한 우려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단결은 너무 약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아서 비판과 자아비판에 대한 레닌주의의 원칙이 스딸린에 관한 흐루쇼프 정책의 문제에서와 그에 더하여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다양한 반응들에 대한 공개된 논쟁적인 토론의 형식에서 객관적으로 실행되어지자마자 그 우려는 카드꾸러미처럼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쉽게 깨어지는 것이 단결이라면 그것은 전혀 공산주의자의 단결이 아닙니다. 그리고 단결은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단결의 성격과 특징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를 둔 진정한 공산주의자의 단결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레닌의 전 생애는 우리들에게 단결의 약화와 균열뿐만 아니라, 그가 실천한 공개적이며 솔직하고 자유로운 논쟁적인 토론과 타협하지 않는 사상적인 투쟁이 항상 여러 공산주의당들 사이의 단결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강화하는 건전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모든 논쟁적인 사안들을 상이한 공산당들의 밀실모임의 네 벽 속에서 제한을 하는 레닌 사후의 실천들과 추구되었던 극비정책(hush hush)은 상이한 공산당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부족에 대해 적지 않게 책임이 있습니다. 올바른 이해의 건강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기존의 정책과 관행은 폐기되어져야합니다.

 

 

4. 이 편지가 공개서한인 이유

 

스딸린의 상대적인 평가와 일반적으로 개인숭배, 특히 스딸린 숭배와 싸우기 위해 흐루쇼프의 지도아래 쏘련공산당이 채택한 조치들에 집중하면서, 전 세계 공산주의세력의 긴요한 부분으로서 인도사회주의자단결중심(SUCI)은 오늘날 전 세계 공산주의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사상적인 위기에 대해 게으른 방관자로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당은 일찍이 언급된 관점에 대해 한편은 지지를 하고 다른 한편은 반대를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제에 대한 형식적인, 교조적인, 기계적인 접근은 문제들을 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판적인 분석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절박한 필요성에 대한 응답과 지금 공산주의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사상적인 위기를 극복하기위한 투쟁을 위해 우리의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탠다는 혁명적인 열망에 의해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형제공산당들과 특히 흐루쇼프 동지 앞에서 문제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의무라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가 공개서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편지가 동지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을 바라고 믿습니다.

 

 

5. 어떠한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주요 주제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반(反)흐루쇼프 혹은 반(反)스딸린적인 편견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고려하지 말아줄 것을 열렬히 호소합니다. 스딸린을 불필요하게 찬미하거나 혹은 더럽히려고 해서가 아니라 공산주의운동의 단점과 결점을 없애고 공산주의운동을 강화하기 위하여, 스딸린이 지도한 기간 동안에 발생했던 일들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일반적인 개인숭배와 ―특히 스딸린숭배― 공산주의운동을 현재의 사상적 혼란과 위기로 몰고 온 역겨운 사상과 실천을 탄생시켰고 양육시켰던 근본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힘든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접근은 스딸린이라는 인간과 싸우는 관점으로부터가 아니라 공산주의운동에서 개인숭배의 근본원인을 뿌리째 뽑겠다는 공공연한 목적의 관점으로부터 나와야합니다.

 

 

6. 소위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설명

 

개인숭배가 집단지도라는 맑스-레닌주의의 개념에 상반되는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스딸린의 삶의 후반기에 이러한 반(反)맑스주의적인 개인숭배가 당의 일상에서 자랐고, 발전했고 그리고 지배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역시 인정됩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운동에 헤아릴 수 없는 해가 되어왔다는 것은 똑같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관점들과 연관되는 한에 있어서는 쏘련공산당의 흐루쇼프와 다른 지도자들과의 불일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개인숭배의 근본원인을 밝히고 공산주의운동에서 그것의 유해한 결과를 헤아리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어떤 부분으로부터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의견에서 잘못된 것에 대한 세 가지 설명과 마주쳤습니다. 그것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숭배의 원인을 분석할 때, 어떤 동지들은 ‘스딸린의 부정적인 자질’이 전적으로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분석은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개인적인 특성과 자질을 물질적인 조건이나 객관적인 과정과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비과학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 부정적인 자질은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자질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있어 개인이 가진 부정적인 자질의 단순한 존재가 결점들에 이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부정적인 자질이 성격의 특징을 지배하게 될 수 있는 것은 단지 적당한 환경 아래에서일 뿐입니다. 쏘련공산당이라는 공산당에서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이바지하는 이러한 적당한 환경이 없었다면, 그의 강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스딸린은 완전히 개인숭배를 실행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연루시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스딸린의 부정적인 자질’이 그의 성격의 특징을 지배하게 될 수 있었던 환경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쏘련공산당의 지도적인 집단에 있었던 그의 동료들의 역할을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고 스딸린의 개인적인 역할과 비교하여 쏘련공산당과의 관계 속에서 상이한 공산당 지도자들의 역할을 조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그의 부정적인 자질로서 쏘련공산당의 현재의 지도자들에 의해 상표가 붙여지고 있는 스딸린의 성격의 특징들은, 부정적인 자질이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부르주아 휴머니스트의 도덕적 가치와는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공산주의자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기초에 입각한 과학적인 조사를 요구합니다. 불행하게도, 쏘련공산당의 현재의 어떤 지도자도 이러한 조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습니다. 스딸린을 방어하기 위한 열정에서 그가 무엇을 했던지 간에,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를 내부의 위험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스딸린이 일해야만 했던 시대의 특수한 환경들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스딸린이 개인숭배의 관행과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수반되는 다른 죄악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동지들이 있습니다. 이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진지한 맑스주의자는 없습니다. 그것은 맑스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세대의 변절자들이 맑스주의를 내세워 모면하려고 시도했던 경제결정론의 불합리한 개념에서 탄생한 저속한 유물론입니다. 동일한 환경 아래에서, 당은 정확히 움직이거나 혹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의 활동을 단지 주어진 시간에 획득되는 객관적인 환경의 결과로서 설명하는 것은 주관적인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고, 대중추수주의(tailism)와 경제결정론을 실행하는 것이고, 숙명적인 필연성의 개념으로 가라앉는 것입니다.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을 그 나라의 사회-경제적인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몇몇의 사람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집니다. 한 부분은 의심할 바 없이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낮은 의식수준 때문에 그들은 객관적인 조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주관적인 역할을 최소화하며 공산주의운동의 유해에 대해 경제결정론을 무의식적으로 되새김질합니다. 또 다른 부분은, 사회주의 체제를 침식하려는 불쾌한 동기에 의해 영감을 받아, 특수하게는 쏘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대하여, 일반적으로는 공산주의에 대하여 중상적인 선전을 수행하려는 수단으로서 그 쟁점[개인숭배-역자]을 활용하려는 사회민주주의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동지들이여 위의 세 가지 분석 중에서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의 원인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원인을 정확히 발견하고 결연하게 싸우지 않는다면 개인숭배가 근절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숭배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요?

 

 

7. 개인숭배의 근본원인

 

전 과정을 통해서 거대한 성장, 발전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스딸린 시대 동안의 공산주의운동은 대체로 오염되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심각한 단점과 결점들로부터 고통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왔습니다. 우리의 의견으로는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의 근본원인은 정확하게 이 단점들과 사상적인 결점에 있습니다. 이것들이 무엇일까요?

스딸린의 지도기간 동안에 권위의식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적인 이해가 권위주의와 혼동되어졌다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연구입니다. 이 혼란이 사상적인 영역에서 개인숭배의 씨앗을 심어왔다는 것입니다.

의심할 바 없이 맑스-레닌주의에는 역시 권위의식이 작용합니다. 그러나 이 권위의식은 권위와의 투쟁을 가로막고, 맹목적인 권위의 수용에 기초를 두고, 권위를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비판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궁극적으로 권위를 신성화하는 권위주의와는 일반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한 맹목적인 권위의식은 권위의식에 대한 변증법적인 이해와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권위에 대한 이러한 의식은 단결을 강화하고 권위를 강화한다는 바로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권위와의 투쟁―적대적이지 않은―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동은 상이한 공산당들 사이에서 형식적인 관계가 변증법적인 관계를 대체할 때 수단이 되었고 민주집중적인 세계공산주의 조직을 기계적으로 집중화된 세계기구로 타락시키는 것을 결과했습니다. 그것[이러한 혼동-역자]은 또한 개별 공산당들에서도 내부적인 반응이 나타나게 하고 있습니다; 집단 전체의 지도자와 당의 나머지 사람들의 투쟁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한마디로 사상투쟁은 당의 일상에서 사실상 사라져버렸습니다. 당 자체에 사상투쟁과 ‘논쟁적인 토론’이 없다면 민주집중제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기초한 중앙집권제의 실천으로 객관적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는데,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득세하면 그것은 하부의 평당원들과 계급으로부터 고립된 상부의 관료적인 지도를 탄생시킵니다; 변증법적인 사고과정은 기계적인 사고과정으로 대체되고 지도자들과 평당원들, 계급 사이의 변증법적인 관계는, 주동자의 역할을 하는 지도자들은 지령을 내리고 평당원들과 계급은 이것을 맹목적이며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기계적인 관계로 대체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지도자들과 평당원, 계급 사이에 토론이 벌어졌을 때 토론은 당 자체의 ‘논쟁적인 토론’을 보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지도자의 관점만 설명하는 수단이 되어져버립니다. 이러한 환경 아래에서 당에 강력한 개성을 가진 사람의 존재는 그 사람 주위를 중앙집권화시키는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을 육성합니다. 반면에 그런 강력한 개성을 가진 사람의 부재는 당내에 여러 집단들의 형성이라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나 관료주의는 항상 두 가지의 경우 모두 상부에 존재하고 작용을 합니다. 여러 집단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당의 지도력이 여러 집단들 사이의 조정과 타협을 통해서 모양을 갖추게 되고 형식적인 당의 단결은 단결의 유지를 위해 평당원과 계급에게 반제국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운동들이라는 인본주의적인 호소를 함으로써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말할 필요도 없이 형식화된 기능적인 지도는 맑스-레닌주의 집단지도체제의 개념에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스딸린의 강력한 개성과 결부된 권위의식에 대한 기계적인 이해가 일반적으로 개인숭배, 특히 스딸린-숭배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고 봅니다.

 

 

8.집단지도체제는 단지 위원회의 결정이 아니다

 

개인숭배에 대한 책임이 있는 몇몇 동지들의 토론에서, “당내 민주주의”와 “집단지도체제”들과 같은 어휘들은 그런 방식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데 약간의 결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당내 민주주의와 집단지도체제의 사상은 레닌주의자들의 당 조직의 원칙인 민주집중제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민주집중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중앙집권제의 융합입니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단지 부르주아적 사회질서의 반영일뿐인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만합니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자유주의적인 조항을 가진 가장 형식적으로 민주적인 규약조차도 당내에 민주집중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민주집중제의 성공은 당 집단 내에서의 ‘논쟁적인 토론’을 보장하기 위한 당원들의 필수적인 사상의 수준에 주로 의존하고 당원들의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적인 혁명적인 역할에 의존합니다.

권위주의가 완전히 지배하고 당에 실질적인 사상투쟁과 사상의 상호작용이 없는 경우에는, “당 기구들의 주요 문제들에 대한 토론과 결정”이, 아무리 집단적인 지도력을 위해 불가피하더라도, 바로 그 자체에 의해 집단적인 지도력을 수립되지는 않습니다. 부르주아정당에서도 역시 “당 자체의 주요문제들에 대한 토론과 결정”은 발생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근거로 하여 지각 있는 사람들 중에서 집단지도체제가 부르주아정당에서 작용한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민주집중제가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기초한 중앙집권주의의 관행 속으로 퇴보해버린 근로인민의 계급정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당들의 “주요문제들에 대한 토론과 결정”은 기껏해야 위원회의 결정에 좌우될 것입니다.

집단적인 지도력[집단지도체제-역자]은 단지 위원회의 결정이 아닙니다. 당원들의 집단적인 지식의 형태 안에 있는 사회적 의식이 바로 집단적인 지도력입니다.

 

 

9. 극단적인 민주주의 작동에 대한 이해

 

더 일찍이 언급된 몇몇 책임 있는 동지들의 토론에서, 매우 잘못된 경향이 자주 발견됩니다. 과거의 맹목적인 권위의식은 반대의 의식 ― 권위의식 그 자체를 버리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물에 대해 순진하게, 단순하게 반응하는 부르주아적인 방식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 즉시 싸우지 않는다면, 낮은 의식의 공산주의자들의 부분에서, 근본적으로 맑스-레닌주의에 반대될 뿐만 아니라 권위의 가장 썩은 유형, 즉 다시 말해서 당 생활에서 반권위의 미사여구의 포장 아래에서 개인독재를 수립하는 미묘한 수단인 극단적인 민주주의자들의 무정부주의 사상을 발전시키기가 쉽습니다. 지도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도를 의미합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도 대신에 일반적인 용어들로 집단지도체제를 말하는 사람들은 당을 잡다한 군중들이 모인 장소로 떨어뜨리려고 노력합니다.

집단지도체제는 항상 구체적인 형태 속에서의 지도를 의미합니다.

 

 

10. 지도자의 지도적인 역할을 부정하는 경향

 

권위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경향에 휩쓸린 몇몇의 공산주의자들은 심지어 지도자의 지도적인 역할을 인정하는 것마저 거부하고 있습니다. 쏘련의 제22차 전당대회의 보고서에서 흐루쇼프는 말했습니다; “당의 지도를 받고 있는 쏘련의 인민들은 그들의 노동과 영웅적인 투쟁으로 사회주의의 건설에서 위대한 전진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파시즘에 대항하여 싸운 위대한 애국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개인숭배의 시대에 당과 인민들의 모든 성취와 성공이 한 사람의 공으로 돌려졌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바로 스딸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도자에 대한 불필요한 찬양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장려되지 않아야만 하는 것은 완전한 사실입니다; 지도자의 신격화는 공산당에서 제거되어져야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도자와 다른 한편으로는 당과 인민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강조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미성숙한 당원들로 하여금 지도자의 지도적인 역할을 최소화하게 만들 수도 있는 위험으로 가득 차게 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 즉, 심지어 스딸린의 신격화라는 불합리한 정도에까지 이르는 불필요한 찬양의 버릇이 공산주의자들을 다른 극단으로 밀어붙이지 않도록 합시다. 스딸린 숭배 시대의 ‘만세 만들기’ 경향이 권위의식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 그리고 지도자의 지도적인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똑같이 잘못된 경향으로 대체되지 않도록 합시다. 개인의 역할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당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개인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산당의 모든 당원들이 똑같은 수준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부정확한 것입니다. 당원들의 수준에 있어 차이가 존재하는 한, 지도자와 집단적인 전체의 나머지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도 틀림없이 존재합니다. 이 차이는 지도자의 지도적인 역할의 기초입니다. 지도자와 다른 당원들 사이의 이 구분을 잊어버리는 것은 자기기만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지도자의 진보된 수준까지 일반적인 당원들을 상승시켜야하는 과업의 막대함에 대해 우리가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누군가 당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민주주의라는 무정부주의적인 사상, 미묘한 방법을 변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당은 단지 당원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당은 단지 당 조직들의 총계가 아닙니다. 당은, 동시에 이 조직들의 하나의 체계,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 속으로의 융합을 나타냅니다. 당의 지도자는 인간의 신체에 있는 신경의 중심이 점하는 것과 같은 위치를 점합니다. 지도자의 지도적인 역할에 대해 인정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에서 신경의 중심을 나머지와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가장 낮은 당의 단위에서조차도 소위 세 당원의 각각의 세포가 모두 똑같은 지위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포에 있어 세 구성원의 단순한 존재는 그것을 당 자체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세 구성원 중의 하나가 지도자가 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의 추종자가 될 때, 그것은 비로소 당 기구가 됩니다. 세포인 당원들의 집단적인 지식은 당의 지도자를 통해서 그 자체를 표현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지도력의 표현이 없다면 하나의 기구는 당 기구가 되지 않습니다. 당 조직의 이 원칙은 당의 가장 낮은 단위인 세포로부터 당의 가장 높은 단위인 중앙위원까지 작용을 합니다. 지도자의 지도적인 역할을 버리고 권위주의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권위의식을 증오하는 경향은 공산당을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인 전투를 수행할 능력도 없고 대중을 권력으로 지도할 능력도 없는 사회민주당 수준으로 조직적으로 하강시키는 것입니다.

 

 

11. 가치를 인정하는 방법

 

이 관계에서, 또 다른 점이 명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스딸린에게 당과 인민의 업적과 승리를 귀속시키는 것이 쏘련공산당, 붉은 군대, 쏘비에뜨 인민들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 그리고 스딸린에 의한 그들의 믿음의 찬탈, 즉 바로 위에서 인용된 흐루쇼프의 말 속에서 함축되어 있는 암시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공산주의자에게 당, 계급과 대중들이 활동 중일 때만이 지도자의 지도적인 역할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런 암시를 의미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역할을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현재 쏘련공산당의 지도자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레닌이 전 세계에서 첫 번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고 말할 때, 그 말이 그가 혼자서 그 일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레닌에게 당과 인민의 업적과 승리를 귀속시키는 것이 볼쉐비끼 당의 영웅적인 역할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심지어 당과 인민의 모든 신뢰가 레닌의 강탈에 의해 이루어졌습니까? 공산주의자에게 그것은 이러한 것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볼쉐비끼 당의 지도자 그리고 10월 혁명의 설계자로서 레닌의 지도적인 역할을 인정하는 단순한 표현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 없이는, 한 공산주의자가 자신의 사상적 수준을 높이고 해방을 위한 투쟁을 결코 지도할 수 없는 뛰어난 동지의 가치를 인정하는 방법입니다. 쏘련공산당, 붉은 군대, 쏘비에뜨 인민들에 의해 성취된 위대한 애국전쟁에서의 승리와 사회주의 건설의 위대한 전진에 대해 스딸린에게 신뢰를 귀속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 속에서 이해되어져야합니다.

 

 

12. 개인숭배를 근절하는 수단들

 

그러므로 개인숭배의 위험은 지도자에게 칭찬을 바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칭찬의 크기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권위의식은 개인숭배의 위험에 대한 책임이 없습니다.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호의적인 환경을 야기하는 것은, 맹목적인 권위의식 즉, 권위주의와, 바로 집단전체의 지도자와 집단전체의 나머지 사람들 사이의, 전체로서의 지도력과 당의 나머지 당원들 사이에서의 변증법적인 관계의 부재이고 민주집중제가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기초한 중앙집권제의 실천으로 퇴보입니다.

맹목적인 권위의식이 남아있다면, 당의 지도자와 당기구의 나머지 당원들 사이의 변증법적인 관계는 그 부재가 두드러지고 그리고 민주집중제 대신에 형식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중앙집권제의 실천이 계속됩니다. 그 다음 “당 기구에서 주요문제에 대한 토론과 결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숭배를 탄생시킨 환경은 강력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경이 강력하게 남아 있으므로 해서 역겨운 개인숭배는 틀림없이 남을 있을 것인데 아마도 낡은 형식으로가 아니라 어떤 혹은 다른 형식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개인숭배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개인숭배의 문제는 개인에 의해 실행되어질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의 환경아래에서 위원회에 의해 더 교묘한 형식으로 더 잘 실행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숭배의 뿌리를 뽑고 그것의 유해한 효과를 제거하는 유일한 수단은 권위의식에 대한 기계적인 이해를 영원히 떨쳐버리는 것이고, 그것을 권위의식에 대한 변증법적인 이해로 대체하는 것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기초한 중앙집권제의 관행을 막는 것이고, ‘논쟁적인 토론’을 보장할 수 있는 범위까지 동지들의 사상적인 수준을 상승시킴으로써 당내에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수립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개인숭배의 성장과 발전에 이바지한 환경을 제거하는 대신에, 흐루쇼프와 쏘련공산당의 다른 지도자들은 스딸린이라는 사람과 싸우는 데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가 더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시키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그 개인과 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경우에는 개인숭배의 관행으로 고발된 사람이 오래전에 죽었기 때문에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단지 개인숭배 그리고 개인숭배를 생기게 했던 환경은 남아있습니다. 스딸린은 위대한 혁명가였습니다. 행정부와 당 기구로부터 관료주의와 좌익소아병을 뿌리 뽑기 위한 그의 밝게 울리는 외침, 스딸린과 당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과시하는 작품에서 과거의 주인이었던 수다쟁이들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풍자와 게으른 수다쟁이들의 당을 깨끗이 정리하려는 그의 결정―이 모든 것들은 쏘련공산당의 제17차전당대회의 보고서에 구체화되어 있습니다―은 여전히 우리의 귓전을 울립니다. 그런 증명된 혁명주의자들의 지도자가 거꾸로 격하가 되어져버린 것은 얼마나 슬픈 결말입니까! 그것은 몰락입니다! 스딸린의 삶은 정직하지도 않고 성실하지도 않은 맑스주의자들의 언명에 대한 단정을 다시 한 번 보여주지만 최종분석에서 사건의 진행을 결정하는 과정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잘못된 과정은 ―정직과 성실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우리를 수렁에 빠뜨립니다. 스딸린의 삶은, 지도자에 대한 우리들의 맹목적인 충성과 지지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격화한 지도자도 역시 몰락시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합니다.

 

 

13. 지도적인 공산당에 대한 혼란

 

맹목적인 권위의식은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도 역시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전 세계 공산주의운동을 지도하기 위해 필요한 변증법적인 과정은 전 세계 공산주의운동에서 공산당의 지도적인 역할을 강조해야하는 시기에 완전히 무시되어버렸습니다. 쏘련공산당의 역사에서 스딸린이 차지한 위치는 쏘련공산당과 다른 공산당들 사이의 관계의 원형으로서 봉사하였습니다. 똑같은 맹목적인 권위의식이 여기에서도 역시 변증법적인 권위의식을 대신하여 작용했습니다. 그 결과 주동자(Prime Mover)에 대한 똑같은 기계적인 개념이 공산당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이끌었습니다. 모든 문제들을 결정했던 것은 바로 쏘련공산당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공산당들의 사업은 쏘련공산당의 입장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지도적인 공산당에 대한 이러한 사상은 맑스-레닌주의와는 성질이 다른 것입니다.

전 세계 공산주의운동에서 지도적인 공산당에 대한 사상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지도적인 당의 변하지 않는 영구적인 지도를 전제로 하지는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지도적인 당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당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간에 무조건 받아들이는 맹목적 수용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지도적인 공산당에 대한 사상은 성격상 적대적이지 않는 투쟁을 전제로 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변증법적인 과정을 이해하는 데 객관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도적인 공산당이 가진 사상과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어떤 특별한 문제에 있어서 정확한 노선이 지도적인 당보다도 다른 당에 의해 진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한 경우 그것이 특별한 문제에 대한 집단적인 지도를 표현하기 때문에 모든 당은 그 특별한 당의 노선을 받아들입니다. 물론 이것이 그런 식으로 해서 지도적인 공산당의 지위를 바꾸지는 않고, 지도적인 공산당으로서의 지위는 아주 많은 다른 요인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특별한 당이 지도적인 당이 되도록 만들지도 않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전 세계에서 첫 번째 사회주의 국가의 창설자로서, 그 나라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로서, 거대한 과학, 기술, 그 나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다른 많은 자원들을 가진 전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우두머리로서, 쏘련공산당은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지도적인 공산당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그것은 오랫동안3) 계속 누릴 지위입니다. 그러나 이 논의할 여지가 없는 사실은 모든 문제들을 결정하고 노선을 공식화하는 것이 바로 쏘련공산당이고 다른 공산당들은 이것들에 대해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바로 이러한 일이 스딸린이 지도하던 시기에 발생하였고, 이것은 대부분의 공산당들을 쏘련공산당의 가신의 지위로 떨어뜨렸습니다. 그것은 집단적인 지도체제의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변증법적인 사고의 과정을 위태롭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쏘련공산당과의 작은 차이 혹은 모든 차이에 대해 반(反)쏘비에뜨 입장이며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포기라고 상표를 붙이는 건강하지 못한 경향을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이 가장 부정확한 것입니다. 맑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정신이라는 기본 교리에 의해 지도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산당도 그 문제에 대해 다른 공산당들과 심지어 쏘련공산당과 명확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어떤 상상의 나래에 의해 그 차이점이 반(反)쏘비에뜨와 반(反)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로서 특징지어질 수는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낡은 경향이 공산주의세계에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전 세계 공산주의자 포럼의 조치들과 결정들이 명확히 아닌, 스딸린에 대한 쏘련공산당의 제22차 전당대회가 채택한 조치들과 결정들과의 불일치를 알바니아 노동당의 경우에 반(反)쏘비에뜨주의와 반(反)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로서 상표를 붙일 수 있습니까? 단지 형식주의로부터 고통 받고 있고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단결의 유지와 관련된 복잡한 변증법적인 과정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만이 쏘련공산당의 어떤 결정과의 약간의 차이를 반(反)쏘비에뜨주의와 반(反)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차이와 반대를 혼동하고 있고, 집단적인 지도체제는 사상투쟁의 포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상의 상호교류와 변증법적인 투쟁 과정을 통하여 작용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통일은 형식적이며 기계적인 관계에 기초를 두지 않고 그들 사이의 차이는 역시 적대적인 성질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관계는 부르주아의 인본적인 도덕적 가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명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기초한 “통일-투쟁-통일”의 변증법적인 원칙에 의해 지배되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혁명과 전 세계 공산주의사회의 설립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목적에 의해 공고히 됩니다.

그러나 비극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운동이 직면하고 있었던 거의 모든 주된 문제들에 대해 정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딸린에 의해 영도된 국제 공산주의 지도력이 형식주의적인 사고 과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비(非)변증법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사고 과정을 그리고 똑같은 방법론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맑스-레닌주의로부터의 근본적인 일탈의 위험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14.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강령에 대한 쏘련의 외교정책

 

형식주의적인 사고 과정 때문에, 국가적 평면으로부터 방향지워지는 쏘련공산당의 외교정책과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혁명 강령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는 혼란이 지배합니다. 대부분의 공산당들은 그 두 가지를 단일한 것으로 그리고 동일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것은 총체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쏘련의 외교정책과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혁명 강령은 서로를 보완하고 전 세계 사회주의질서를 수립한다는 공통의 이해관계 속에 있지만 두 가지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쏘련 외교정책의 목표는 사회주의 세력을 강화하는 것, 제국주의-자본주의 사이에 보다 넓고 보다 깊은 적대를 야기하는 것, 제국주의 전쟁에서 덜 모험적인 진영을 더 모험적인 진영으로부터 떼어놓는 것, 평화를 방어하고 유지하는 것, 그것에 의하여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성장, 발전과 성공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들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혁명 강령의 목표는 여러 국가들의 성공적인 혁명을 위한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식민지나 반(半)식민지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들에 있는 공산당들의 의무는 그들마다의 국가에 이 일반적인 지침을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쏘련공산당의 외교정책을 위해 채택된 수단들이나 혹은 국제공산주의자포럼의 일반적인 지침에 대해 앵무새 같이 반복된 암송을 하는 것은 그들의 과업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변증법은 우리들에게 특수와 보편의 모순을 연구하라고 가르칩니다. 진지한 공산주의자들은 국제공산주의자포럼의 일반적인 정책이 여러 국가들에 있어서 다르게 적용되어져야하는 일반적인 지도원칙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국가들마다 다른 구체적인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하고 다른 객관적인 환경을 가진 여러 국가에 일반적인 지도원칙의 구체적인 적용을 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맑스주의의 정신입니다. 이것들이 없다면 맑스주의는 교조가 되어버립니다. 국제프롤레타리아혁명의 일반적인 강령과 주어진 국가의 특별한 혁명 강령 사이에 모순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다른 여러 국가들의 환경의 차이 때문입니다. 이 특수와 보편 사이의 모순을 보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은 형식주의의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 특수와 보편 사이의 모순이 전 세계 공산주의자포럼에 의해 채택된 일반적인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혁명 강령과 주어진 국가의 공산당의 특수한 혁명 강령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쏘련의 외교정책과 주어진 국가의 공산당의 혁명 강령 사이에는 비(非)적대적인 성격의 모순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만이 오로지 과학적입니다. 특수와 보편 사이의 모순에 대한 이해와 쏘련공산당의 외교정책과 그들마다의 국가의 혁명 강령 사이의 모순에 대한 이해는 스딸린이 지도하던 시기에 대부분의 공산당들을 로봇의 수준으로 떨어뜨려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로봇의 힘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국가는 자기들의 국가에서 전 세계혁명의 일반적인 정책을 결코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가 없고 대중들을 혁명과 권력으로 지도할 수가 없습니다. 인도 공산당의 역사는 그런 로봇과 같은 활동들의 역사입니다. 국제공산주의자들의 지도는 이러한 사건들의 상태에 대한 책임져야할 결점들로부터 면제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상이한 공산당들의 주의를 공산주의운동의 결점에 대해 돌리려고 노력할 때마다, 인도공산당(the Communist Party of India)을 우리가 비판을 했기 때문에 우리의 말은 귀머거리에게 하는 말이 되어버렸는데 인도공산당의 역사는 맑스-레닌주의로부터 끊이지 않는 근본적 일탈의 연속이었고 최근 중국-인도 영토분쟁의 문제에 대해 인도라는 자본주의국가의 우두머리인 판디트 네루(Pandit Nehru)를 지지하는 민족적인 국수주의 입장입니다. 우리가 비(非)공산주의자라고 가정(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형식적인 이해에서 탄생되고 인도 공산당의 비열한 정치선전에 의해 강화된 완전히 부정확한 가정)하더라도, 우리의 말을 고려해보는 것에 무슨 해로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레닌은 그의 계급의 적들에게서조차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슬프게도 우리는 배움에 대한 레닌주의자적인 자질이 지금 엄청날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관련 속에서 우리는 덧붙이고 싶은데 맑스-레닌주의의 살아있는 정신과는 정반대로, 공산주의자들은 입장의 정확성과 정당성의 기초 위에서가 아니라 사안의의 배후에 있는 조직적인 힘에 대한 고려 위에서 어떤 사안의 공과를 판단하는 특히 부르주아적인 습관을 발전시켜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이 레닌에 의해 고무되지 않았더라면 독일의 스파르타쿠스 그룹은 강력한 독일사민당에 반대하여 레닌으로부터 받았던 아낌없는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 세계 공산주의운동에서 개인숭배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지도적인 공산당으로서 쏘련공산당의 역할은 모든 주제에 대한 전 세계 공산당의 지도가 쏘련공산당과 함께 변함없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되어져서는 안 됩니다; 쏘련공산당과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국제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형식적인 결론을 국제공산주의자포럼의 집단지도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명백히 쏘련공산당의 사상에 대한 투쟁과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통일-투쟁-통일”의 변증법적인 관계에 기초를 둔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변증법적인 이해로 대체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이 변증법적인 접근에 대한 어떠한 징후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5. 똑같은 잘못된 과정, 똑같은 맹목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과거에 스딸린이 맹목적으로 ‘신과 같은 사람(半神)’의 수준으로 격상이 되어진 것처럼 현재에도 역시 그는, 공산주의운동이 그의 시대에 앓았던 질병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스딸린’으로서 맹목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쏘련공산당과 스딸린이 영도한 국제공산주의의 지도력이 절대 오류가 없고 비판 위에 있는 것이라고 간주되어지고 쏘련공산당의 결정과의 모든 차이는 반(反)공산주의, 반(反)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로서 비난을 받은 것처럼 현재에도 역시 흐루쇼프의 지도는 절대 오류가 없고 비판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간주되어지고 흐루쇼프의 지도하에 있는 쏘련공산당의 결정과의 차이는 반(反)공산주의, 반(反)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고 상표가 찍히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접근, 전망과 사고과정의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권위의식에 대한 똑같은 맹목, 사고과정과 운동과정에 있는 똑같은 비(非)변증법적인 방법론, 스딸린의 지도기간 동안 일반적인 개인숭배와 특히 스딸린숭배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책임이 있는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똑같은 형식적인 이해는 지금도 여전히 작용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국제공산주의자들의 지도에 대해 우리들이 호소하는 바는 스딸린 시대의 이러한 단점과 결점들이 극복되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 쪽으로 정확한 과정이 채택되어지도록 합시다. 이 과정의 부재 속에서 개인숭배를 탄생시켰던 근본 원인과 환경을 제거하지 않으면서 레닌주의의 원칙과 집단지도 체제의 관행을 다시 수립하기를 바라는 것은 순진한 것입니다. 스딸린숭배를 대신하여 역겨운 숭배와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시도가 확실히 자리잡으려 하는데 그것들은 아마도 중앙위원회에 대한 숭배, 지도적인 공산당에 대한 숭배 혹은 심지어 흐루쇼프에 대한 숭배일 것입니다. 이 가능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하여 무관심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진지한 공산주의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16. 잘못의 요인 ― 사상적인 수준의 저하

 

그러나 결국 무엇이 이러한 오류들로 이끌었을까요? 여러 공산당들이 권위의식과 권위주의에 대한 변증법적인 이해를 하는 데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왜 그들은 민주집중제를 대신한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기초한 중앙집권제의 관행을 탐지하지 못했을까요? 어떻게 그들은 “통일-투쟁-통일”의 변증법적인 원칙을 포기할 수 있었고, 대신에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통일에 대한 형식적인 이해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왜 그들은 지도적인 공산당이라는 사상을 각각의 주제나 모든 주제에 대한 지도적인 공산당의 변치 않는 영구적인 지도라는 사상과 혼동하였을까요? 우리의 의견으로는, 이 모든 오류들은 대체로 공산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의식수준이 상당히 저하된 것의 결과였습니다. 레닌 사후 기간 동안 식민지, 반(半)식민지와 자본주의국가들에서의 공산주의운동이 조직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해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발전 그 자체가 공산주의자들의 사상적인 의식수준이 공산주의운동의 조직적인 발전과 같을 정도의 비율로 역시 상승하였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사상적인 의식수준은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오류들은 그것을 명확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운동의 조직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상적인 의식수준의 저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레닌은 그의 일생에서 이 현상을 강조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들에 따르면, 공산주의운동에서 일반적인 의식수준의 저하는 주로 두 가지 요소 때문에 발생합니다. 첫째, 삶과 계급투쟁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들의 다양성에 직면했을 때, 레닌 사후 기간 동안 두드러졌던 자연과학의 엄청난 전진과 보조를 유지하면서 이루어져야만 했었던 맑스-레닌주의의 철학적인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결함에는 아주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할 바 없이 간단한 예에 의해 증명되어질 수 있는 진실은 사실입니다. 현재의 개인주의적인 현상과 부르주아적인 자유의식이, 선진적 나라들에서 계급투쟁이 발전하는 길에 있어서 사상적인 영역에서 완고한 장애물들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상황은, 프롤레타리아의 도덕적인 가치 의식에 대비하여 인본주의자들의 도덕적인 가치 의식을 비판적으로 토론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권위 있고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작업도 레닌 사후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둘째, 속담에 나오는 애꾸눈의 사슴처럼, 아주 광범위하게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운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와서 그들 스스로가 주로 조직 활동을 하는 데 바쁜 수백만 명의 젊은 공산주의자들의 의식 수준을 상승시키기 위한 당 내부의 사상투쟁을 수행하는 중요한 과업을 무시했습니다. 공산주의운동의 빠르고 거대한 성장과 발전에 자기만족을 하는 인도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심지어 이론에 대한 반감을 확대시켰습니다. 그들이 계급과 평당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에 대한 충성과 실제적인 의무에 대한 맹목적인 수행입니다. 우리는 다른 국가에서의 지배적인 환경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도에서 보아온 것으로부터 볼 때 그리고 전에 언급된 잘못들의 원인을 분석해볼 때, 공산주의운동의 조직적인 발전에 대한 동일한 자기만족감이 그리고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업신여기고 당과 당의 실천적 사업에 대한 당원들의 충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동일한 경향이 모든 나라에서 작동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사상투쟁을 이렇게 무시한 결과로서, 의식수준의 저하는 우리나라(인도)에서 너무나도 커서 오늘날의 삶과 환경이 직면하고 있는 더욱더 새로운 문제들의 다양성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의식수준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심지어 레닌시대의 수준조차 거의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공산주의운동의 성장과 발전의 많은 부분은 현재 진행되는 제국주의의 부패, 식민지와 반(半)식민지에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의 인도주의적인 호소, 선진적 나라에서의 인민에 대한 자본주의의 착취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감정,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의 우월성 덕분이라는 것은 더욱더 인정되어야합니다. 지금 공산주의운동에 합류하여 그것을 강화하고 있는 전 세계 인민들 모두가 그들의 의식적인 공산주의자로서의 확신에 의해 공산주의운동에 이끌리고 결합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그들 중의 극소수만이 공산주의운동에서 강철같이 단련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이 지배하는 한, 일반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의식수준을 고양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삶, 사상과 조직의 모든 문제들을 감싸 안고 있는 철저한 사상투쟁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것입니다.

 

 

17. 수정주의 경향

 

물론 삶, 사상과 조직이 직면하고 있는 더 새로워진 문제들의 견지에서  맑스-레닌주의의 풍부화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맑스-레닌주의의 풍부화는 맑스-레닌주의의 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맑스-레닌주의와 공산주의운동을 위한 스딸린의 봉사와 헌신에 대한 인정이라는 기초 위에서만 오로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수정주의로 가라앉을 모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형제 공산당들을 대신하여 우리가 말하기에는 거북살스럽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관한 그들의 말에서, 혁명의 일반적인 법칙에 대한 그들의 개념에서, 두 체제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정책의 적용에 대한 그들의 접근에서, 알바니아 노동당과 알바니아 사회주의 국가에 반대하여 그들이 취한 조치들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탈스딸린주의라 하는 스딸린에 관하여 그들이 채택한 수단들에서, 현재의 쏘련공산당의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같은 현존하는 국제적인 정세의 평가에서 드러나고 있는 중인 경향은 수정주의로 가라앉을 위험성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우리의 필수적인 의무라고 느낍니다. 동지들이여, 현재의 국제적인 정세는 제국주의-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전복할 수 있는 전례가 없는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턱에 있습니다. 시간의 필요성이 이 기회들을 붙잡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잘 이 기회들을 이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우리의 의식을 날카롭게 하는 대신에 사상적인 혼란 속에서 헤매고 있고, 우리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전 세계 공산당을 설립하는 쪽으로 빠른 발걸음을 내딛는 대신에 그것을 약화시키고,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산당들이 의회주의적인 망상들을 쫓아내버리는 것을 도와주고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산당들이 의회주의적인 당으로 되어가는 것을 점차적으로 줄이는 그런 방법 속에서 행동하는 대신에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산당들이 의회주의적인 망상으로부터 고통 받는 것을 허락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정세에 대해 우리는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빨리 극복되면 될수록, 더욱더 좋습니다. 우리 모두 이 일에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바쳐야 하겠습니다.

 

 

18. 국제공산주의자포럼 앞에 놓여진 “권력남용”과 관련된 사실들

 

개인숭배의 실행에 대한 책임과 결과적으로 그를 격하시킨 당내 민주주의의 모독과는 별개로, 스딸린은 수많은 결백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결과를 초래한 권력남용의 죄로 속박되어왔습니다. 제22차 전당대회의 흐루쇼프의 보고서에서 그는 이 불행한 사건들의 몇 가지를 암시하였습니다. 이것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최종연설에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숭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이것은 너무나도 간략한 진술입니다. 왜냐하면,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이 아무리 충격적이라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도 아주 잘 실행될 수 있는 개인숭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숭배는 더 깊은 기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스딸린 시대 동안에 반(反)국가 활동의 혐의로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습니다. 심지어 스딸린 자신도 쏘련공산당 제18차 전당대회의 보고서에서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제18차 전당대회의 그의 보고서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발견합니다; “숙청이 중대한 실수를 동반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예상되었던 것보다 많은 실수들이 있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대규모숙청의 방법에 의존할 필요성을 더 이상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3년-1936년 사이에 일어난 숙청은 불가피한 것이었고, 대체로 그것의 결과는 유익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에서 이러한 불행한 사건들에 대한 은폐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스딸린은 이러한 측면에서 저질러진 실수들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을 전당대회에 상정하였고, 당으로 하여금 취해진 조치들의 온당함을 확신시켰고, 그의 입장을 명확하게 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기대되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경우에서 정의(正義)에 대한 중대한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딸린이 그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얼마만큼 책임이 있는지와 권력의 참호 속에 있었던 관료들이 어느 범위까지 그 과도함에 죄가 있었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스딸린은 대량학살을 저질렀다는 죄로 개인적으로 속박되어있습니다. 당의 지도자와 행정기구의 수장으로서 스딸린이 앞의 실수들에 대해 미리 주의를 했어야 했고 그것들을 점검했어야 했던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범위까지 그는 직무유기죄가 있는 것이고 너무나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한 데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개인적인 피의 복수에 대한 죄로 고발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서로 다른 것입니다. 스딸린이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스딸린이 고의로 권력을 남용했다는 사실들에 의해 실증될 수 있는 어떤 증거가 없다면, 그 사실들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정확히 해석하는 데 도달하기 위해서 그 사실들은 국제공산주의자포럼 앞에 제시되어져야만 합니다. 의심할 바 없이 사실들은 아주 중요하지만 사실들을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국주의-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똑같은 사실들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바로 사실들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부터 나옵니다. 인도에서 인도 부르주아들에게 돈으로 고용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야단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쏘련에서는 과학적으로 역사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사실들에 대한 믿음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그들의 목적에 맞는 방식으로 역사를 다시 씁니다. 스딸린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그는 쏘련의 역사가들에게 역사를 그의 이익에 맞게 쓰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스딸린은 죽었고 흐루쇼프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역사가 쓰여 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신사계급의 진정한 아들들―그중 일부는 단과대학(colleges)과 종합대학(universities)에서 역사학 강사이고 교수이지만 그 단어의 타당한 의미에서 역사가는 아닙니다―은 역사를 연대기와 혼동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단지 사실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동시에, 역사는 그 사실들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양극에 떨어져 서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에 반대하는 특수하게는 쏘련에 반대하는 부르주아 고용인들의 비방적인 캠페인을 저지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또한, 신빙성을 분명히 하고 타당하고 한결같은 해석에 도달하기 위해서, 국제공산주의자포럼이 조사한 ‘스딸린에 의한 권력남용의 경우들’과 관계되는 모든 사실들을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제22차 전당대회에 흐루쇼프에 의해 상정된 사실들로부터 우리가 그의 결론과는 다른 결론들에 도달한다고 말하기에는 거북살스럽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나중에 계속 다룰 것입니다. 사실들에 대한 해석이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다르다면, 이 사실들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것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하기위해 국제공산주의자포럼 앞에 이 사실들이 제시되어져야하는 것은 더욱더 피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딸린은 단지 쏘련공산당만의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 세계 공산주의운동의 스승이었고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스딸린의 평가와 연관된 어떠한 질문도 쏘련공산당만의 유일한 관심사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른 공산당들에게도 같은 관심사입니다. 스딸린과 관련하여 쏘련공산당 22차 전당대회에 의해 채택된 조치들은 보다 큰 중요성을 띠고 있는데 왜냐하면 첫째로, 그것은 탈스딸린주의라는 취지를 갖고 있는데 이것의 결과로서 현재의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이해, 즉 말하자면 뜨로츠끼주의-티토주의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그것에 대한 스딸린의 공헌에 도전하는 한다는 사실 때문이고.

둘째로, 흐루쇼프가 그 조치들을 쏘련의 네 구석[쏘련사회-역자]에 한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치들을 상이한 나라들에서 각각의 공산당들의 도움으로 실행하려고 결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딸린이 저지른 과도함들’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들을 알기 전에, 구체적인 사실들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전에,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에 도달하기 전에, 각국의 공산당들이 쏘련공산당이 채택한 조치들을 맹목적으로 지지해야해야만 한다는 것을 각국의 공산당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스딸린에 대한 맹목성이 개인숭배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맹목성이 계속되도록 허용될 수는 없습니다.

 

 

19. 공산주의는 휴머니즘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개인에 대한 적절한 평가는 그 사람의 단점과 결점에 대한 정확한 평가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봉사와 헌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요구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이상할 정도로 흐루쇼프는 22차 전당대회의 그의 보고서에서 언급하기를 “스딸린이 당과 공산주의운동에 위대한 봉사를 했다는 믿음이 주어져야 하고 그를 적절히 평가해야 합니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의 진행에서 스딸린의 위대한 봉사를 언급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스딸린의 ‘부정적인 자질’에 대한 설명만 들었습니다.

부정적인 자질로서 특징지어지는 스딸린의 자질에 대해서는 아직은 공산주의자 윤리에 대한 타당한 이해에 기초하여 의심의 여지없이 확립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양한 자료에서 나온 보고서들을 모을 수 있는 한, ‘스딸린이 저지른 과도함들’의 경우들을 상정하는 방식, 전당대회가 ‘폭로’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제18차 전당대회에서 스딸린 자신이 언급했기 때문에 그것은 폭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심리적인 동요는 제22차 전당대회의 대표자들 중 공산주의 윤리로 강철같이 단련된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충분한 표시라는 것이 우리의 느낌입니다. 그들은 거의 대개가 인본주의적인 도덕적인 가치들에 의해 이끌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소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동지들이여,

공산주의자의 도덕은 내용과 성격 둘 다 인본주의자의 도덕적인 가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사회의 연대기에서, 인본주의는 최후의 단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압제적인 부르주아 사상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생기 있는 공기입니다. 그러나 사회진보의 행진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가치에 대한 의식은 인본주의에서 그것의 정점을 발견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는 휴머니즘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단지 인본주의의 도덕적 가치들의 잿더미 위에서 공산주의자의 도덕적 가치들은 성장하고 번성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공산주의자 윤리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가지고서야 스딸린의 성격의 많은 특성들이 정확하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문주의자의 도덕적 가치들로 판단한 스딸린의 성격의 많은 특성들은 부정적인 성격의 자질로서 나타나곤 했던 것입니다.

스딸린이 많은 오류들을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류들은 그 자체가 스딸린의 부정적인 성격의 자질을 널리 퍼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사건과 연관된 모든 문제들을 결정하기 위해 국제공산주의자포럼에 전체 사건을 상정하는 데 우리가 호의를 보이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스딸린이 그의 삶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손안에 거대한 권력을 집중시켰고 많은 경우에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했던 거대 권력을 남용했다는 것을 현재 우리가 가정함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은 단지 전 세계 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로서의 그의 활동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쏘련공산당의 지도자로서의 그의 활동들의 주변만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20. 스딸린 ― 거대한 공산주의 지도자

 

레닌처럼 수정주의자들과 중도파들에 반대하는 스딸린의 투쟁 속에서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맑스주의 이론이 왜곡과 삭제로부터 보호되었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혁명 시대의 역사적인 경험을 일반화함으로서 맑스주의에 찬란한 공헌을 하였다는 것과 역시 뜨로츠끼주의자들과 부하린주의자들에 반대하는 그의 투쟁 속에서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맑스-레닌주의 이론이 왜곡과 삭제로부터 보호되었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와 전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더 넓은 붕괴의 시대의 역사적인 경험을 일반화함으로서 맑스주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레닌주의의 제 문제에 관한 스딸린의 작업들, 민족문제에 관한 그의 공헌들, 언어학의 문제에 관한 그의 공헌들,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문제에 관한 그의 공헌들, 특히 혁명적인 군사과학에 관한 그의 공헌들은 혁명적인 과학의 보물들입니다. 쏘련공산당의 현재 지도자들이 그의 작품들을 출판하는 것을 거부함에 의해 객관적으로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위대한 공산주의 지도자로서의 스딸린의 지도적인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은 그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억누르는 것입니다.

사실은 현재 우리가 사회민주주의, 뜨로츠끼주의와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레닌주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스딸린 덕분입니다.

뜨로츠끼는 자신이 레닌주의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레닌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스딸린과는 다른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뜨로츠끼의 추종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레닌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레닌을 권위자로서 받아들입니다; 그들이 다른 것은 레닌주의에 대한 스딸린의 해석입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스딸린이 해석한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공산주의자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레닌주의에 대한 스딸린의 이해는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입니다. 이 이해가 공산주의운동을 현재의 위치까지 가져왔습니다.

물론 공산주의운동은 더 새로운 문제들과 발전이라는 경험의 견지에서 더욱 풍부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딸린이 확립한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존속할 것이며 더 큰 발전과 진보의 과정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지도할 것입니다. 정말로 그의 선구자들인 맑스, 엥겔스, 레닌처럼, 스딸린도 역시 맑스-레닌주의의 권위자입니다. 스딸린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그의 권위를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레닌주의에 대한 그의 해석을 거부하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미래의 세대들에게,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정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뜨로츠끼주의자들과 부하린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스딸린이 수행한 끊임없는 투쟁의 장(중요한 업적)은 어둡고 검은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고 미래의 세대들은 이론적으로 강철같이 단련되어지는 기회를 박탈당할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반혁명 사상이 맑스-레닌주의로 통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고, 공산주의운동의 이론적인 토대는 후퇴를 경험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객관적으로 레닌의 왕관을 빼앗아버릴 것입니다.

 

 

21. 스딸린 ― 평화공존이론의 설계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론가로서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운동의 유능하고 실천적인 조직가로서, 스딸린을 맑스, 엥겔스, 레닌 사이에서 기억해야합니다. 레닌이 전 세계에서 첫 번째 사회주의국가(쏘련)를 설립하였다면, 그 사회주의국가를 평화와 사회주의의 최후의 거점으로서 강화시킨 사람이 바로 스딸린이었습니다. 레닌이 제3인터내셔널을 설립하였다면, 스딸린의 지도는 이 유아조직이 강력한 모양을 갖추도록 하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게다가, 인민민주주의의 설립을 위한 투쟁을 이끌었던 것은 바로 스딸린의 지도였습니다. 전례가 없는 성장과 발전에 대한 신뢰와 식민지, 반(半)식민지, 자본주의국가들에서의 공산주의운동의 성공을 이끌었던 것도 스딸린의 지도였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결점, 단점과 결과적인 후퇴가 그의 지도에 나란히 존재합니다. 의심할 바 없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체제의 평화로운 공존이론의 씨를 뿌렸던 사람은 바로 레닌입니다.

그러나 이 씨에 이론으로서 구조를 주고 이 이론이 심지어 쏘련의 외교정책이 움직이는 중심점이 되도록 만든 사람은 바로 스딸린이었습니다.

이론으로서 두 체제의 평화로운 공존의 사상을 수립하고 쏘련의 외교정책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했기 때문에, 반(反)혁명계급의 협력자로서 뜨로츠끼진영의 추종자들에 의해 고발을 당한 것은 레닌이 아니라 바로 스딸린입니다. 그러나 평화공존이론과 실천의 창설자로서의 스딸린의 역할을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체제의 평화공존이론의 설립자는 흐루쇼프이고 평화공존이론과 실천을 믿지 않고 두 체제의 적대를 주장하는 스딸린의 추종자들에 반대하여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도 흐루쇼프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선전활동 역시 아주 교묘하게 수행되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현재 쏘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현재의 세계정세에 대한 스딸린의 분석, 두 체제의 평화공존이론에 대한 스딸린의 고심작들, 이 이론의 기초위에서 스딸린이 연역한 쏘련의 외교정책, 너무나도 많은 그 밖의 공헌들을 재생산하고 추종하며 되풀이하고 있지만 스딸린에 대한 어떠한 인정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들에게 공산주의윤리와 맞지 않는 것 같이 보입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 지도자의 우월성뿐만 아니라 동지의 우월성을 인식하는 것은 우월성을 인정한 사람을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다른 일들에 있어서 우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공산주의자로서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을 도와줍니다. 우쭐해진 자존심으로부터 고통 받는 사람은 허영심과 자부심이 강하게 되고 개인숭배의 희생자로 떨어집니다. 그와 유사하게, 다른 사람들이 수행한 역할을 일부러 최소화하는 사람은 역시 역방향으로부터 개인숭배를 실천합니다. 실질적으로 당과 공산주의운동에서의 스딸린의 위대한 봉사를 당연히 인정해야하는 것을 억누르는 것이 이러한 일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쏘련공산당의 지도자들에게 스딸린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스딸린이 단지 쏘련공산당의 여러 지도자들 중의 한 명이었습니까? 아니면 그가 동지들 위의 우두머리이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습니까? 공산주의운동에서 그가 수행한 역할이 동시대의 다른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그것과 동등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그가 그의 시대의 공산주의운동의 다른 모든 지도자들의 지도자로서 탁월한 역할을 했습니까? 의심할 바 없이 그는 단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점들을 지적하고 이 단점들에 반대하여 공산주의자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과 그를 일반적인 공산주의자로 묘사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것입니다. 그 노력이 스딸린을 일반적인 능력을 가진 공산주의자로 보여주기 위한 편견이라는 것 외의 다른 무슨 이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노력은 현실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혁명적인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쏘련공산당의 살아 있거나 죽은 지도자들 중에서 다른 누가 단점을 가진 스딸린보다도 레닌의 곁에 더 가까이 있었는지를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공산주의자의 활동들은 항상 혁명의 필요성에 의해 발동되어야 합니다. 스딸린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혁명의 필요성에 무슨 소용이 됩니까? 모든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이 바라는 것은 개인숭배의 근본원인이 제거되어져야 하는 것, 반(反)공산주의 활동의 유산이 제거되어져야 하는 것, 반(反)공산주의 활동의 유산이 미래의 공산주의운동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효과적인 조치가 취해져야하는 것, 일반적인 공산주의자들이 적절한 교육을 통하여 단점을 뺀 스딸린과 같은 훌륭한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들을 하기 위해 스딸린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것이 필요할까요? 아니면 공산주의자들이 스딸린의 성격의 긍정적인 자질들을 더욱더 키워나가야만 하는 것이 긴급할까요?

 

 

22. 스딸린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시기가 왔다

 

공산주의운동을 위한 스딸린의 봉사에 대해 완전히 명예를 더럽히는 것을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그의 봉사는 폭넓게 인정받았고 언급되었기 때문에 현재 이것들을 언급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미꼬얀(Mikoyan) 동지4)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몇 년 전 인도에 있었을 때, 이러한 논리를 전개했다고 지역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주장은 구체적으로 문제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결코 지지할 수가 없습니다. 요점은 스딸린의 봉사가 과거에 언급되었던 것만큼 자주 언급되어져야하는가 혹은 그렇지 않아야하는가가 아닙니다; 요점은 스딸린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스딸린과 그의 봉사에 대한 빈번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스딸린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개인숭배와 특수하게는 스딸린숭배의 영향력이 널리 퍼지고 있는 분위기에서 스딸린의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스딸린의 가치에 대한 모든 평가는 스딸린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 의해 흐릿하게 되어져버렸습니다. 공산주의운동에 있어 그의 봉사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분위기가 이 맹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그래서 지금 스딸린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배경에서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요점은 아주 나쁜 경향이 스딸린의 명예를 더럽히기 위한 조치들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경향은 한 지도자와 스승의 어떤 단점이 발견되지 않는 한 지도자와 스승에게 복종하지만, 그에게서 어떤 단점이 드러나자마자, 그를 비난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는 지도자는 단점이 없다는 관념, 지도자에게 맹목적이게 되고 개인숭배의 실행을 위한 도로를 포장하는 바로 그 위험한 관념이 고유한 것입니다.

 

 

23. 개인적으로는 스딸린 혹은 책임 있는 행정 관료들

 

이제 ‘스딸린의 권력남용’의 예들로서 흐루쇼프가 인용한 경우에 대해 살펴봅시다. 우리 모두는 실수와 범죄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 ‘스딸린의 권력남용’이 범죄동기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결코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제22차 전당대회는 그런 어떠한 자료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흐루쇼프처럼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계산된, 범죄적인, 모험주의정책이었습니다”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흐루쇼프가 언급한 경우들은, 흐루쇼프가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는 다른 개연성이 있는 설명들을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스딸린의 시대에는 관료들이 행정적 기구의 참호 속에 있었다는 것은 모두에 의해 받아들여집니다. 스딸린이 관료주의를 아주 싫어했었던지 간에 (그가 관료주의를 싫어한다는 증거는 제17차전당대회의 보고서에 있는 관료주의에 대한 그의 비난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관료주의에 둘러싸이게 되었고 일상적인 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관료주의에 의존해야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도 이 관료주의에 기인했을는지 모릅니다. 스딸린은 행정의 수장으로서 형식적인 방법으로 그가 인정한다는 인상을 주었을는지 모릅니다. 제22차 전당대회에서의 흐루쇼프의 최종연설에서 흐루쇼프가 진술한 사실들은 그 상황에 대한 이 해석을 확실하게 해줍니다. 흐루쇼프가 언급한 야끼르(Yakir), 쓰바니드제(Svanidze),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봅시다. 심지어 흐루쇼프에 의하면, 그들은 당과 스딸린에 아주 충성스러웠습니다. 그들 중의 한명은 스딸린의 가까운 친척이었고 모두가 그와 가까운 동지들이었습니다. 스딸린에 대한 충성이 너무나 대단해서 총살을 당할 때, 야끼르(Yakir)는 소리쳤습니다: “당이여 영원하라; 스딸린이여 영원하라.” 그의 스딸린에 대한 충성심은 스딸린에게도 알려졌습니다. 스딸린은 개인적인 고려에 의해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의 충직한 동료를 총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쉽게 그들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형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망 소식이 그에게 전해졌을 때 심지어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흐루쇼프는 이 사실을 스딸린의 잔인성을 증명하는 추가적인 무기로 이용했습니다. 스딸린의 이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한 행위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 그의 가깝고 충성스런 동지들의 사형선고를 인정했던 것과 그들의 죽음을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 스딸린은 그들이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행정기관의 보고서에 기초하여 완전히 수긍하였고 진정한 혁명정신 속에서 그는 그의 의무를 다하였습니다. 인본주의자는 그 행위에서 표현된 성격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혁명가들에게 혁명의 필요성은 최고의 것이 됩니다; 인본주의자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삶을 살아갈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랑, 애정, 개인적인 관계, 우정, 기타 등등은 혁명가에게는 혁명의 필요성에 종속되어집니다. 만약 혁명의 필요성이 가장 가까운 동지의 사형집행을 요구한다면 혁명가는 최고로 만족스럽게 그 일을 합니다.

그 일이 흐루쇼프에게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은 스딸린이 혁명의 필요성을 고려하여 야끼르(Yakir), 쓰바니드제(Svanidze), 수족과 같은 그의 동료들의 사형선고를 인정했다는 사실인 듯합니다. 그의 판단이 행정 관료로부터 그들에 관해 받은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 오염되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경우에 그것은 실수이지 범죄는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단지 있음직한 일에 대한 설명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스딸린이 명령을 내려야했고 그에게 충성스럽고 충직한 동지들에 대한 사형선고에 대하여 즐거워해야 했는지에 관하여 어떠한 설명도 제공될 수가 없습니다.

 

 

24. 시간적인 요인들에 대한 고려

 

우리는 왜 단점들이 그 당시에 당 내외부에 널리 퍼졌던 힘든 객관적인 상황이라는 배경 위에서 무시되어질 수가 없는지에 대하여 이미 설명했습니다. 시간적인 요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또한 역시 정확하지 않은 것일 겁니다. 독일군 총참모부(the German General Staff)가 붉은 군대(the Red Army) 내부에 약간의 간첩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밀정보부의 문서가 있었습니다. ― 지금은 날조된 것으로 입증된 한 문서는 그 당시에는 날조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파시스트들과 제국주의자들은 쏘련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국가 내의 반(反)혁명분자들은 그들의 머리를 쳐들어 올리려고[반혁명을 획책하려고-역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출세주의자들과 심지어 직접적으로 적대적인 분자들이 당내로 침투했습니다. 그들 중의 몇 사람은 심지어 당에서 높은 지위를 겨우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위기의 순간에는 적을 추려 뽑아내기 위하여 강력하고 빠른 조치를 취해야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많은 범죄자들과 함께 약간의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쏘련공산당의 지도자들은, 특히 스딸린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필수적인 주의가 그 당시에 부족했던 것이 지금 밝혀지고 있습니다. 필수적인 주의의 부족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필수적인 주의의 부족이 위기의 순간에 역시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얼마나 충격적이든지 간에 시간적인 요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를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명 20년간의 사회주의의 더 큰 전진과 강화를 경과한 후 쏘련공산당의 또 다른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서 헝가리 반(反)혁명을 억압할 당시에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죄목을 흐루쇼프 개인에게 뒤집어씌운다고 가정해봅시다. 잔인한 행위의 죄목을 흐루쇼프 개인에게 뒤지어 씌우는 것이 올바른 것이겠습니까? 강조해서 말하면 ― 아닙니다. 혁명이 위험에 처하는 위기의 순간에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을지라도 폭력이 반(反)혁명을 분쇄하도록 적용해야합니다. 쏘련에서 사회주의를 방어하고 강화하기 위한 스딸린의 깊은 관심은 나중에 무고한 사람으로 입증되었던 사람들을 처벌한 법령들에 작용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경우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그를 범죄자로 특징지을 수는 없습니다. ― 그것은 선의의(bona fide) 실수입니다.

 

 

25. 스딸린의 동지들의 역할

 

마지막으로, 또 다른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공산주의자는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판과 자아비판에 대한 레닌주의적인 원칙이 정확하게 실천되고 있는 중입니까? 만약에 스딸린이 독단적으로 행동했고, 당내민주주의를 위배했고, 개인숭배를 실행했고, 권력을 남용했다면, 과연 그의 동지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때 그의 동지들은 그 일을 당에 통지하고 그에게 죄수복을 입혔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때 흐루쇼프, 미꼬얀, 스딸린의 다른 동지들은 정확하게, 용기 있게 그들의 역할을 다했습니까? 현재 쏘련공산당의 지도자들 중에서 스딸린 시대에 당이 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도록 만들기에는 너무 약한 일반당원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중앙위원회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들이 간절히 바랐고 진지하게 시도했었다면, 그들은 스딸린을 올바르게 고쳐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감히 스딸린을 반대하지 못했다면(혁명이 일어났을 때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나쁜 성격의 특징은 비겁함입니다), 그들은 적어도 그의 오만함을 부채질하는 것은 멈추었어야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은 스딸린을 신성화하는 합창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이것은 스딸린과 같은 노력하는 혁명가의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데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스딸린의 손안에 거대한 권력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쏘련공산당의 현재의 지도자들이 정확하게, 용기 있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스딸린에게 권력을 준 것은 바로 당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더라면 당은 그로부터 모든 권력을 뺏을 수 있었습니다. 왜 그 상황을 당에 통지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까? 부르주아 언론은 이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출판했습니다. 흐루쇼프가 ‘스딸린의 권력남용’의 경우를 묘사하고 있을 때, 한 대의원 대표가 흐루쇼프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것을 들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까?”라고, 눈에 띄지 않은 상태로 질문했습니다. 흐루쇼프는 그 목소리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질문을 던진 동지의 이름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 대의원 대표는 감히 일어나지 않고 흐루쇼프에게 그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분별력이 용기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는 격언을 생각하면서, 그 대의원 대표는 계속 눈에 띄지 않은 상태로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극적인 멈춤과 침묵의 몇 분이 지나간 후, 흐루쇼프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진 동지가 지금 하고 있는 중인 행동을 정확히 했습니다.” 그렇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보도가 얼마나 진실과 거리가 먼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전당대회 대표자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슬픈 논평입니다. 뿐만 아니라 흐루쇼프의 재치 있는 응답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도, 그것은 질문에 대한 응답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이 바로 ‘스딸린의 권력남용’의 전반적인 문제를 입수할 수 있는 사실들에 기초하여 재조사하고, 이 문제에서 스딸린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동지들을 조사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26. 공산주의운동을 새로운 승리로 이끌자

 

우리가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리는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들에게, 특히 흐루쇼프 동지에게 쏘련공산당이 이끌고 있는 사회주의진영에 속한 형제공산당들이 던지는 한 마디의 비판으로서 우리들의 이 조사를 고려해줄 것을 다시 호소합니다. 우리는 스딸린의 가치에 대한 상대적인 평가의 문제에 대한 사상적인 영역에서 공산주의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혼란의 크기에 깊은 우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혼란을 극복하고 여러 공산당들 사이의 단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면, 스딸린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산주의운동을 개인숭배의 근본원인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 스딸린숭배의 유산을 제거하는 것, 여러 다른 공산당들 사이에서 상호관계의 변증법적인 이해를 기초로 해서 여러 다른 공산당들 사이에 더 밀접한 단결을 달성하는 것, 공산주의교육으로 동지들을 강철같이 단련시키는 것, 공산주의교육에 의해 공산주의운동을 공고히 하는 것과 강화시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중요한 과업입니다. 세계정세는 지금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진행을 가속화시키는 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지도에 있어서 충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충만한 자신감이 의식으로 솟아오르기를, 사상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사상적인 혼란을 제거하기를, 공산주의운동을 새로운, 더욱더 새로운 승리로 이끌기를 바랍니다.

 

 

당신들의 진정한 동지

인도단결중심 중앙위원회 서기장
쉬브다스 고쉬

 

작성 일자: 1961년 11월 16일부터 18일까지

발행: 1962년 3월 1일

 


1)*  쉬브다스 고쉬(Shibdas Ghosh, 1923-1976). 인도의 공산주의 운동가이자 정치가. 인도사회주의자단결중심(Socialist Unity Centre of India)의 창립자이며 중앙위원회의 서기장을 역임하였다. 영국령 인도의 다카(Dhaka)지역에서 중하위층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3세 때에 그의 마을 학교를 떠나 인도의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아누쉴란 사미티(Anushilan Samity)에 합류하였다. 아주 이른 나이에 마나벤드라나스 로이(Mabendranath Roy)의 사상에 이끌리어 1940년에 새로이 창설된 혁명적사회주의자당(Revolutionary Socialist Party)에 합류하였다. 1942년에 Quit India운동에 결합하였고 나중에 체포되어서 3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여기에서 그는 맑스-레닌주의를 공부하였다. 나중에 니하르 무케르지(Nihar Mukherjee)와 같은 몇 명의 동지들과 함께 1948년에 인도사회주의자단결중심(Socialist Unity Centre of India)을 창립하였다.

 

대표적인 출판물로는 ≪왜 인도사회주의자단결중심(Socialist Unity Centre of India)이 인도에서 유일한 진정한 공산주의당인가≫, ≪공산주의자진영의 자아비판≫, ≪쏘련공산당의 제20차전당대회의 보고서에 대하여≫, ≪몇 가지 경제문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호소≫, ≪꾸바의 위기가 해결되어졌던 방식에서 나타난 몇 가지 문제점들≫ 등이 있다.

 

2) 그 후에 배신자로 돌아 섰다.

 

3) 수정주의자들이 나중에 쏘련공산당의 지도력을 빼앗았다고 이미 진술하였다.

 

4) 그 후에 배신자로 돌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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