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중국의 국제적 역할

 

엘리쎄오스 바게나스(Elisseos Vagenas)

 ∣ 그리스 공산당 중앙위원, 공산당 국제부문 책임

번역: 문영찬(노사과연 연구위원장)

 

 

새로운 세계적 세력(global power)으로서 중국의 부상은 전 세계에 걸쳐 분석가들과 일반적인 노동자들에게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관심은 러시아에서 1917년 10월에 시작했고 또 전 세계에 걸쳐 일련의 중요한 사회정치적 투쟁과 혁명들―그 가운데에는 중국혁명이 있다―을 초래했던 사회혁명의 시대를 이해하고 있는 정치적으로 각성된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더 강렬하다. 중국의 권력의 부상과 관계된 관심은, 그 권력의 증대가 붉은 깃발 하에 이루어지고 또 중국 공산당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쏘련에서 반혁명의 ‘교훈들’ 중의 하나는 공산주의자들이 쏘련 공산당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모든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에 충실하게 남아 있으면서, 맑스-레닌주의 이론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기 자신의 원천으로부터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발전과 경험을 연구해야만 하고 이것들에 관계된 자기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려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공산당은 국제공산주의 운동과 공산주의자들의 전략을 강화시킨다는 것을 목표로 국제공산주의 운동 내에서 비판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 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의 원칙과 사회주의 건설의 법칙으로부터의 일탈과 맞서고 있는데, 동시에 상이한 접근방식을 갖고 있는 공산당들과 쌍무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기초 위에서 그리스 공산당은 계속하여 중국 공산당과 쌍무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발전들을 따라가면서 한편으로는 공개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쌍무적으로-역자] 중국 공산당에게 표명하는 자신의 평가를 형성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리스 공산당은 이미 17차 대회(2005년)에서부터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관계들의 팽창에 주목했다. 그 시기 이후로 이 경향은 재차 강화되었고 훨씬 더 분명해졌다.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 국제적 위치에 관한 발전들

 

중국의 경제적 힘의 증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중국이 일본을 따라잡고 지금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의 경제규모1)가 되었고 동시에 2010년에 독일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의 수출국이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2009년 1월-10월의 기간 동안에 중국은 9,570억 달러어치의 생산품을 수출했다.2) 수출은 중국의 거래의 80%를 차지한다.3) 중국은 182개 나라에 5만여 종의 상이한 생산물을 수출하고 있고 이들 나라 중 80개국은 중국과 무역협정과 상호협력 의정서에 서명했다. 중국의 기본적인 무역 파트너는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일본, 미국, EU 나라들)인데 그들은 중국의 대외무역 거래의 55%를 차지한다.4)

지난 20년간에 걸쳐 일어난 변화들을 반영하는 하나의 사실은 1993년에는 중국이 석유를 수출했지만, 오늘날은 중국이 석유를 수입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2009년에는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양이 미국의 수입량과 맞먹을 정도라는 것이다.

2010년에 억만장자의 목록[해당 나라에서 억만장자의 수-역자]에서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의 위치를 차지했는데(130명), 그들의 재산[세계의 억만장자들의 재산-역자]은 일 년 만에 222%가 증가했다. 또한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1,000명은 그들의 부를 일 년 만에 30% 증가시켰다―4,390억 달러에서 5,710억 달러로5). 우리는 또한 이들 자료들을, 중국공산당이 30년 동안 공개적으로 추구했던 ‘부자가 되라’는 정책의 결과로서 현대 중국에서 수억 명의 노동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비참함과 착취를 설명하는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도 있다. 우리는 중국상공인연합회의 평가에 따라서, 중국의 텔레비전에 나온 대로, 다음을 언급할  것이다: 세계에서 500대 독점[기업-역자]들의 8.5%(43개 회사들)가 중국의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미국의 독점들은 중국의 그것들과 비교할 때 이윤의 크기에서 2배이지만 그러나 현재의 경향은 중국의 독점[기업-역자]들이 미국의 그것들보다 개별적으로 더 이윤을 내고 축적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6)

공식적인 통계는 또한 2004년부터 2010년의 기간 동안에 중국에서 개인기업들의 숫자가 81% 증가했고 오늘날은 중국에서 개인기업들의 수가 359.6만개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7) 500대 개인기업의 이윤은 2009년에 23.27% 증가했다.8)

동시에 중국의 국가독점[기업-역자]들과 나란히 이들 회사들은 국제적 경쟁을 증가시켰다. 이 회사들 중 117개는 해외에서 481개의 투자 계획에 참가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225억 2천 7백만 달러를 투자했다.9) 2009년에 중국의 직접투자 총액은 세계적으로 565.3억 달러(세계 투자의 5.1%)에 달했는데 중국은 세계투자자의 목록에서 5위를 차지했다.10)

중국의 경제적 권력의 부상은 일련의 국제적인 은행들(HSBC, 도이치 은행, 시티그룹과 같은)로 하여금 사업에서 거래를 위하여 달러 대신에 위안화를 사용하도록 자극했다.11)

동시에 2010년 9월에 중국은 30억 달러의 미국 채권 취득을 증가시켜 867억 달러에 달하였는데 일본을 앞질러서 미국 채권의 최대 외국인 소유자로서 위치를 유지하였다.12) 그에 더하여 중국은 500억 달러어치의 채권을 구매하기 위하여 IMF와 협정에 서명했다.13)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가능한 한 많은 천연자원을 통제하려는 중국의 바람인데, 중국 회사들이 그 통제를 늘려가고 있다. 아프리카는 이러한 활동의 중심이다. 다음의 것이 특히 특징적이다: 1990년의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무역은 전체적으로 약 5-60억 달러였는데 2003년에는 이것이 180억 달러로 증가했고 2008년에는 1,000억 달러에 달했다.14) 오늘날 중국은 거의 모든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의미 있는 경제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잠비아와 콩고 민주공화국(DRC)의 구리 벨트에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차이나타운이 존재한다. 수단은 중국시장에 대한 주요한 석유공급자의 하나가 되었다: 일일 60만 배럴의 수단의 석유가 중국으로 보내진다. 중국 총수입의 1/3은 아프리카로부터인데 앙골라, 에쿠아도리알 기니, 그리고 수단이 최대 공급자이다. 그에 더하여 차드, 나이지리아, 알제리아 그리고 가봉이 중국에 석유를 공급한다.

아프리카 나라들의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과 교환하여 중국은 이들 나라들에서 산업 기반시설뿐만 아니라 도로 기반시설과 항구에 그리고 (학교 건물, 병원, 주택과 같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하여 필요한 기반시설에 투자한다. 중국 회사들은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그들의 항구와 철도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중국회사들은 에디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에서 그리고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또한 많은 프로젝트에 관계하고 있다.

천연자원에 대한 베이징의 탐색은 아프리카에 한정되지 않고 더 가까운 지역에도 뻗치고 있다. 그것은 미얀마에서 광산과 다른 천연자원들(목재, 보석)에 대한 중요한 투자를 하고 있다. 미얀마의 국가 계획 및 발전 장관에 따르면, 2008/2009 회계연도에 외국의 직접 투자가 이전 연도에 비해 6배가 늘었는데(1억 7천 300만 달러에서 9억 8천 5백만 달러로), 이 투자 중에 87%는 중국의 것이었다. 어떤 평가에 따르면 미얀마 경제의 약 90%가 중국 자본에 의해 지지된다.

중국 회사들은 중동에서, 특히 이란에서 활동적인데, 그곳에서는 알루미늄의 생산을 위한 단 하나의 산업 복합체 건설에서의 투자(110,000의 생산을 위하여)가 5억 1천 6백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란은 중국에 대한 석유 공급자로서 사우디아라비아와 경쟁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석유 공급자는 베네주엘라이다. 중국은 이 나라에서 석유 시추의 발전을 위하여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2004년에 베네주엘라는 하루에 12,000배럴의 석유를 중국에 팔았고 2006년에는 하루에 20만 배럴을 팔았고 이 양은 2011년에 50만 배럴로 증가될 것으로 계획 중이다. 이 석유는 베네주엘라의 원유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새로운 공장에서 처리된 후에 중국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이 석유는, 지금은 중국기업의 이해에 의해 통제되고 있고 중국의 투자계획에 따라서 베네주엘라로부터의 탱크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다시 디자인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것이다. 중국은 베네주엘라를 경제적으로 ‘묶기’ 위하여 광산시추, 농업 그리고 통신의 부문에서만이 아니라 베네주엘라의 사회간접시설의 발전을 위하여 90억 달러어치의 상업협정에 서명했다.

중국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천연자원에 대한 중요한 접근을 할 수 있었다. 2010년 8월에 중국과 동시베리아의 자원을 연결시키는 파이프 라인이 개통되었다. 처음으로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매년 1,500만 톤의 석유를 수입하게 되었고 이 양은 미래에 배가될 예정이다.

그에 더하여 중국은 300억 입방미터의 용량이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의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여 카스피해의 천연자원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다. 동시에 매년 630억 입방미터를 수송하는 두 개의 새로운 가스 파이프 라인의 건설을 위하여 러시아의 ‘가스프롬’과 협상중인데 이는 러시아로부터 남유럽으로 통하는 ‘남쪽의 흐름(South Stream)’을 통하여 수송되는 가스의 양에 필적하는 것이다. 그에 더하여 중국은 오늘날 카자흐스탄에서 추출되는 가솔린의 23%를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군사적 힘의 증가

 

최근에 중국은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과 같이, 자신의 군사력을 의미 있게 강화시키는 과정을 지속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군사력은 세계에서 가장 그 수가 많은데 2백 30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대로 오늘날 중요한 것은 군대의 크기가 아니라 현대 무기체계와 유연하고 잘 무장된 군사력의 획득이다.

2010년에 중국은 군사비를 7.5% 증가시켜, 5321억 위안(779억 달러)15)에 달하는데 이는 러시아의 연간 군사비보다 약 25%가 많고 미국의 그것에 비해 1/10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이 2010년에 군사비로 쓴 실제 액수가 두 배가 될 것이고 1,5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고 2006년 이후 4년 기간 동안에 중국의 군사비는 4배가 되었다16)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오늘날 중국은 434개의 핵탄두17)와 1,500개의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2,800킬로미터의 사정거리이며 20개는 4,750킬로미터의 사정거리이고 4개의 미사일은 12,000킬로미터의 사정거리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잠수함을 갖고 있는데 탄도미사일을 가진 핵잠수함을 보유한 5개 나라 중의 하나이다. 2007년에 중국은 (미사일로) 자신의 위성 중의 하나를 요격했는데 그리하여 우주에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신의 우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중국은 7,580대의 탱크와 144척의 전함, 거의 1,700여대의 전투기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데 그 전투기 중 500대는 4세대이며 2018년까지는 제5세대 전투기를 작전에 투입할 예정이다. 중국은 무기를 수입하고 있지만 무기체계의 특허를 구매하고 또한 그것들을 단순히 복제함에 의해 많은 현대 무기들을 제조하고 있다. 곧 중국은 자신의 첫 번째의 항공모함을 획득할 것이다.

중국의 사회과학원의 보고에 따르면 중국은 그것의 방위비, 군사력의 규모 그리고 그들의 장비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2위이다.18) 결론적으로 중국은 현 시점에서 미국의 군사력에 비교될 수 없을지라도, 중국은 핵무기의 최초의 타격에 대한 이론적인 억제반응(예를 들면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능력)의 문제에 관하여 미국에 뒤처질 지라도, 동시에 중국은 군사력의 영역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어내었다. 이 점을 미국이 지나칠 수는 없다― 이 점은 관련 당사자의 보고와 그들의 전문가의 출판물에서 주목되고 있다.

 

 

국제 조직에서 위상의 강화

 

중국은 그 설립 때부터 UN의 회원국이었고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이다. 중국은 UN의 예산에서 2000년 0.995%에서 2006년 2.053%로 UN에 대한 기여를 늘려왔고 1988년에 UN의 ‘평화유지군’에 대한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때 이후로 중국은 많은 UN ‘평화유지군’(라이베리아,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아이티, 수단, 레바논 등)에 참가해왔고 6,000명이 넘는 ‘평화유지군’을 유지하고 있다.19)20) 중국의 국방장관은 한 연설에서 중국이 전체적으로 2010년에 10,000명의 병사들로 24개의 평화유지 임무에 참가했고 중국이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중에서 ‘평화유지임무’에 가장 활발하다고 했다.21)

중국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함께 2001년에 ‘상하이 협력기구’(SCO)를 구성했는데 그것은 비록 매년 대규모의 군사연습을 수행하지만, 군사적 ‘블록’으로 간주되지 않고 주요하게는 그 지역 나라들의 경제적 협력과 정치적 안보를 증진시키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 중앙아시아와 같은 대규모의 자원이 있는 지역에 달라붙는 것의 중요성을 드러내는데 이는 지난 20년 동안 제국주의 상호 간의 경쟁관계에서 불화의 원천이 된 것이었다. 동시에 중국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주도로 1989년에 설립된 ‘아시아 태평양 협력기구’(APEC)에 1991년 이후 참가해왔다. 21개의 나라가 APEC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 나라들에는 전 세계 인구의 40%가 살고 있고 세계 GDP의 54%가 산출되고 세계무역의 44%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나라들의 포럼(G8은 업저버로서 그리고 G20은 정멤버로서)에 참가해왔고 동시에 어떤 특별한 조직이 없는 채로 BRIC 나라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과 협력하고 있는데 그 나라들은 국제적인 상호 간의 세력관계 속에서 지위 상승을 꾀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G20에서 서로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참가하고 있고 동시에 UN 내의 그들의 활동에서 또한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국제적인 제국주의 체제에서 중국의 위치와 역할에 관한 평가

그것의 경제적 위치에 관하여

 

1. 중국은 특히 1980년대부터 계속하여 자신의 경제를 국제적인 자본주의 시장과 연결시켜왔다. 이것은 중국의 지도부에 의하여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격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가진, 그곳에 투자할 능력이 있는 자본가들을 위하여 높은 이윤율을 낳는 대규모 ‘공장’으로서 세계 자본주의 속의 역할에 능동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2. 이러한 방향으로의 변화의 결과로서, 중국은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 즉, 미국, 일본, EU에 의해 포용되어 왔는데 세계적 수출국가로서 그들에 의존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국제 제국주의 체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의존과 상호의존의 이러한 관계는 중국이 미국의 채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표현된다.

3. 중국이 경제적으로 강화되는 한, 그것의 원료자원과 연료에 대한 필요는 증가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에너지원의 통제에 대한 제국주의 상호 간의 경쟁은 지구적 수준에서 첨예해지고 있다.

레닌이 썼듯이 “자본가들은 세계를 분할하는데, 어떤 특별한 악의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도달한 집적의 정도가 그들로 하여금 이윤을 획득하기 위하여 이러한 방법을 채택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자본에 비례하여’, ‘힘에 비례하여’ 분할하는데 왜냐하면 상품생산과 자본주의 하에서 어떤 다른 분할의 방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은 경제적 및 정치적 발전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다.”22)

시장에서의 몫을 위한 경쟁은 특별히 격렬하다. 이것은 미국에서 정치-경제적 써클들이 그 통화가 인위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고 간주되는 나라들에 반대하여 제재를 가하는 법률을 제기하려는 노력에 의해 드러나는데 이는 그들의 수출이 가격경쟁력을 갖도록 하고 또 이런 방식으로 시장에 대한 통제를 획득하고 그들의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다음의 주장들이 위에서 대략 언급한 것에 대해 반박이다.

a. 쏘련 또한 외부적인 경제적 관계들을 가졌다는 주장.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떠올려야만 한다: 쏘련의 무역 거래의 절반 이상은 상호경제원조회의의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관계였다. 쏘련의 거래의 거의 1/3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던 석유와 천연가스와 관계되었는데, 그것의 수출을 늘리고 가장 발전된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기는 방향으로의 전환은 소위 ‘평화공존’과 ‘평화적 경쟁’이라는 기회주의적 관점에 의해 인도되어 1960년대 이후에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에조차 쏘련은 미국 채권의 1/3을 소유하지 않았고 또한 자본을 수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하여 쏘련이 피라에우스와 트리아시오의 항구를 구매할 수도 있다는 것은 누구도 떠올리지 않았다! 사실들은, 오늘날의 중국과 어떤 사회주의 나라, 가령 쏘련 같은 나라와의 질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b. 때로 우리가 어떤 부분들로부터 듣기를,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과 비교하여 중국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에서 그들의 천연자원의 약탈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간접시설(도로, 건물, 편의시설, 병원, 학교 등)을 창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 목적은 중국 스스로가 주장하듯이 이들 나라들이 “그들의 사회간접시설의 발전을 증진시키고 기업 협력을 도모하는”23) 것이다. 중국은 덜 발전된 나라들에서 발전된 나라들로의 모든 수입의 50.1%를 흡수하고 있는데24) 이들 나라로부터 중국으로의 생산물의 수입에 대한 의무들의 감축을 위하여 개발도상국에서 특별한 의료 프로그램과 이들 나라의 행정관리들의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은 낮은 금리의 대부를 제공하고 있다. 위의 사례는 ‘사회주의’ 중국과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어떤 사람들은 제기한다.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과 비교할 때 중국이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 활동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그것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열강들은 유사한 ‘인도주의적’이고 ‘교육적인 프로그램들’을 덜 발전된 나라들에서 발전시키고 있는데 예를 들면 EU는 2008년까지 아프리카에서 최대의 도움을 주는 스폰서였고 상업적인 파트너였다)25)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일 지라도 본질적으로 이 측면은 중국의 활동의 궁극적 목표를 변경시키지 못한다. 그 목표는 이들 나라에서 중국의 투자의 촉진, 이곳에서 활동하는 중국 자본의 ‘통로’의 촉진, 즉 자본의 축적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이 활동은, 예를 들면 노동력의 교육을 위해 필요한 기반시설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기반시설(도로, 항구, 공항, 건물)이 있을 때 도움을 얻는데 그것들은 사업이 기능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다. 중국 은행들에 의해 제공되는 낮은 이자의 대부 혹은 중국이 이들 나라의 수출을 흡수하는 것은, 그 국제적 위치의 강화를 추구하는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과 블록을 만들려고 중국이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국제적 조직들(UN, WTO 등)에서(우리는 이후 이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그들을 정치적 동맹으로 흡수하려는 목적으로 그들과 관계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이들 나라에서 중국자본의 침투를 위하여 보다 좋은 조건을 보증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균형추로서 중국의 승격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대열 내에서 중국에 대한 점증하는 관심은 지역적 및 지구적 수준에서 중국의 ‘부상’에 의해 야기된 세력들의 상호관계에서의 격변과 변화들이 과거 쏘련에 의해 수행되었던 역할, 즉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새로운 ‘균형추’의 창출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역사적 선례

 

과거의 어떤 사실들을 떠올리는 것은 중요하다. 쏘련이 존재했던 동안, 중국의 외교정책은 쏘련에 맞선 미국의 그것과 협조적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20차 당대회에서 쏘련공산당의 기회주의적 전환에 대한 비판으로서 표출되었다. 처음에는 중국 공산당이 공개적으로 혹은 본질적으로 그것의 입장과 실제적으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 알고 있다. 그것의 불일치는 후에 공개화되었는데 중-쏘 국경분쟁에 의해 자극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은 여러 공산당들에게 일정한 충격을 주었는데 ‘평화공존’이라는 틀 내에서 제국주의 열강들과 ‘영구적인 평화와 경쟁’에 관련되는 입장으로 쏘련이 기회주의적으로 빠져든 것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차 당대회 이후 중국 공산당은 기회주의적 입장들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제한하지 않았는데 그러나 많은 경우들에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과 쏘련에 대한 관계에서 적대적인 입장을, 미국과의 협조의 입장을, 세계혁명운동의 이해에 반하는 입장을 초래한 전략을 선택했다. 중국 공산당은 ‘3개의 세계’에 관련된 분석에 기초하여 나아갔다: ‘제1세계’는 ‘초강대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물론 쏘련은 ‘사회제국주의 열강’으로 딱지 붙여졌다). ‘제2세계’는 초강대국들의 부유한 동맹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제3세계’는 중국을 포함한 발전도상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사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민의 혁명적 국가권력에 대해 쏘련이 준 국제주의적 도움과 관련된 중국의 태도이다.

이 경우에서 중국은 미국에 의해 형성된 세력들의 ‘블록’의 한 부분이었는데, 새롭게 수립된 인민의 정부에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일으키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가장 반동적인 사회-정치적 세력들에게 자금지원을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그리고 기타 세력들과 함께였다.26)

1980년에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하여 CIA의 전술과 관계된 1992년 7월 19일자 ≪워싱턴포스트≫의 한 기사에서는 중국이 CIA에게 무기를 팔았고 더 적은 양의 무기를 파키스탄에게 기증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동시에 기사는 강조하고 있다: “어느 정도로 중국이 역할을 했는가는 그 전쟁의 최상급의 비밀 중의 하나이다.”27) 이 기사에는 또한 중국이 반혁명세력들의 강화를 위해 주었던 무기의 유형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예는 베트남 해방투쟁의 기간 동안에 베트남의 투쟁하는 인민에 대한 중국의 태도이다. 중국은 베트남을 지지하기 위한 연합된 행동의 조직을 위한 쏘련의 제안을 거절했다. “베이징은 미국의 침략자들에 대해 베트남의 영공을 폐쇄하기 위한 쏘련의 제안을 거절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쏘비에뜨 군용기의 사용을 위하여 중국의 남부에 공항을 제공하는 것을 거절했는데 그것은 베트남을 방어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당국자들은 쏘련으로부터 베트남 민주공화국으로의 군사장비와 전문가들의 수송을 봉쇄했다.”28) 후에는, 제국주의자들로부터 그 나라의 해방 몇 년 후인 1979년 2월 17일에 중국은 베트남에 대한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1979년 2월에 중국의 부주석인 덩샤오핑의 워싱턴 방문이 있었는데 그는 “베트남에 대한 피의 교훈을 줄” 필요에 대해 연설했는데 서구나라들로부터 무기의 제공을 약속한 미국의 정치가들에게 박수를 받았다.29) 30일간의 전투 후에 베트남을 침략했던 60만의 중국군대는 6만의 병사, 300대의 탱크, 그리고 100문의 중포와 박격포를 잃고 철수해야만 했다.30)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기간 동안 중국과 미국 간에는 다양한 수준에서 많은 접촉이 있었다. 1979년 11월 4일에 한 공식적으로 ‘누설된’ 문서가 ≪뉴욕타임즈≫에 공개되었는데 거기에는 “적군[쏘련군-역자]에 대한 장애를 형성하기”31) 위하여 ―언급된 대로― 500억 달러로 평가되는 중국인민해방군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가 있었다고 언급되어 있었다. 그에 더하여 미국 국방성의 연구개발 책임자인 윌리엄 페리가 1980년에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그는 미국 정부가 “다양한 종류의 이중 목적의 물품과 군사장비를 위한 400여 허가 출원의 수출을 승인했고 이것들은 지구물리학 컴퓨터들, 중수송장비들, C-130 수송기 그리고 치누크 헬리콥터들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32)는 것을 알렸다.

또 하나의 예는 앙골라 내전에서 중국이 취한 입장인데, 거기에서 중국은 앙골라 인민공화국을 침략했던 남아프리카의 인종주의적 군대와 함께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전투했던 지방의 반동세력을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앙골라 인민공화국은 쏘련으로부터 무기와 군사적 고문관에 의해, 그리고 남아프리카 세력과 국내의 반동적 세력의 분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자발적으로 싸웠던 수천의 꾸바 자원자들에 의해 지지되었다.33) 오늘날 CIA의 비밀해제된 문서에 의해 폭로되었듯이, 이 기간 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독특한 형태의 ‘협조’가 있었는데, 심지어 앙골라에서 수행되었던 군사적 작전들을 포함하는 것이었다.34)

 

 

오늘날의 상황

 

현재로 돌아가자. 오늘날,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전과 지배와 더불어, WTO와 같은 제국주의 조직에의 그것의 참가와 제국주의 체제에의 동화와 더불어, 그것의 입장은 제국주의 열강들과 다르지 않다. 중국이 미국과 가지는 불일치는 어떤 것이나 ‘전리품의 분할’과 관련되어 있는데, 반면에 노동권의 문제에 대한 ‘조화’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시장경제의 ‘미덕’을 위하여 감소되고 있고 또한 지도적인 제국주의 열강들의 독점들의 어떤 것이라도 침해하는 국가들에 반대하는 것이다.

하나의 예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중국의 태도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중국은 자신에 대한 석유의 기본적인 공급자 중의 하나인 이란과의 긴밀한 경제적 협력을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협력에도 불구하고 2010년 9월에 중국은 러시아와 더불어 미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6개 그룹’)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의 문제에 대해 연합했는데, 이란이 물러서서 핵 프로그램과 관련된 UN안전보장이사회의 조건들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일찍이 2010년 6월에 중국은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나라에 반대하는 새로운 제재에 대해 동의했다.35)

두 번째의 예는 코소보와 관련한 중국의 입장이다. 중국과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이 코소보를 아직 공식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이 발칸반도에서의 NATO의 공격에 반대하는 일관되고 결정적인 입장을 가지지 않았고 반면에 중국이 평화유지임무에 대한 투표―NATO가 지도적 역할(악명 높은 KFOR)36)을 하고 후에는 중국이 경찰력을 보냄에 의해 NATO의 작전에 참가했다―에서 기권했다는 것이 주목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2010년에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헤이그 국제재판소의 비열한 결정이 있었다. 일부 재판관들은 이 매우 중요한 결정에 관하여 다른 입장을 가졌다. 이리하여 러시아, 슬로바키아, 브라질, 그리고 모로코 출신의 재판관들은 코소보의 합법화에 반대했는데,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멕시코 출신의 재판관들은 찬성했다. 공개된 문서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중국의 재판관은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소수민족들과 관련된 다른 논쟁들의 선동을 위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발칸반도에서의 경계선의 변화를 추구하는 이 매우 중요한 결정에 참가하지 않았다.37) 베이징에게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고 다른 이사국들이 그 승인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알바니아의 호소가 그 뒤에 이어졌다.38)

세 번째의 예는 2010년 10월에 중국의 수상 원자바오가 그리스를 방문한 것이다. 그리스 의회에서의 연설에서 중국 수상은 중국이 견고한 유로화를 지지한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통일된 그리고 강력한 유럽이 세계의 발전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그리고 덧붙이기를 그는 “그리스가 대외부채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재정적자를 감축하고 자신의 경제발전을 위한 전망을 여는 것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39) 이 두 언급 속에서 중국의 수상이고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인 그는, 재정적자를 감축한다는 구실 하에 그리스에서 노동력의 비용을 감축하기 위해 난폭하게 반인민적인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는 PASOK의 사회민주주의 정부에 대한, EU라는 유럽의 제국주의 중심에 대한 자신의 나라의 지도부의 지지를 요약한 것이었다.

중국 지도부는 그리스 정부와 다수의 협정에 서명했는데 이는 그리스의 금권정치의 어떤 부분에 대한 이윤의 원천을 만든 것이었고 그 이상이 아니었다. 악명 높은 중국의 50억 불 투자는 중국의 조선산업에 기여하는 그리스의 선주들을 위한 전쟁에서의 총알 이상이 아니었고 그리스를 통하여 유럽 시장으로 더 침투하려는 자신의 목표 이상이 아니었다. 중국의 독점[자본-역자]들과 어떤 그리스의 회사들에 의한 조선 시설과 항구, 철도의 관련된 건설, 사용, 작동은 인민의 필요를 희생하여 불균등한 발전을 첨예화할 것이다. 반인민적인 정책들과 결합된, 중대한 사회기반시설에서 자본의 활동의 팽창과 강화는 감축된 노동권과 훨씬 값싼 임금의 노동자를 초래할 것이다. 올리브 기름 수출은 그것을 통제하는 대기업가들에게만 유리하고 가난한 농민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인데 그들의 처지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방문은 중국의 투자(또한 카타르, 이스라엘 등의 투자) 덕분으로 발전이 있을 것이고 이어서 GDP가 증대하고 그리하여 자본가들의 식탁에서 인민에게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있을 것이라고 인민층이 믿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사회-민주적인’ PASOK 정부에 의해 이용되었다. 과정의 현실은 대자본에 유리한 발전을 감소시키지 않고, 또한 인민의 가난과 실업을 감소시키지 않는, 위기로부터의 자본주의적 탈출의 전망에 대해 우리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생산 능력을 침식하고 그것을 위험한 제국주의적 경쟁에 끌어들이는 발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그리스 인민의 투쟁에 대한 중국의 ‘국제주의적 공헌’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중국 공산당은 당분간 ‘공산당’이라는 자신의 타이틀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 긴밀한 연계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2009년에 중국 공산당은 베이징에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 ‘상이한 발전모델, 녹색경제의 모델’이라는 주제로 연합 세미나를 조직했다. PASOK과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의장인 G. 파판드레우는 그의 연설에서 “오늘의 쎄미나에 의해 입증되는 양 측에서의 더 한 층의 관계의 강화에 대한 인터내셔널의 바람”40)을 표현했다. 또한 2010년 7월에 그 회동 기간에 PASOK과 중국 공산당 간에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틀 내에서 더 폭넓은 협력’의 문제가 논의되었다.41)

2009년에 세계에서 중국의 위치를 다루고 있는 ≪중국은 행복하지 않다≫42)라는 책이 중국에서 출판되었다(세 달 만에 그 책은 70만 부가 팔렸고 후에는 수백만 부가 팔렸다). 그 내용 중에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우리는 세계의 지도력을 떠맡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주장하기를, 왜냐하면 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지구의 천연자원을 더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중국은 지구적 지도력을 떠맡아야 한다. 또한 중국의 군대가 그것의 국경을 넘어서서 그 나라의 주권을 옹호해야만 하는데 중국이 ‘근본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그것들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43) 말하자면 그것은 중국 자본이 활동하는 지역에서 중국 군대의 기동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이, 주요한 군사적인 국제 해상항로를 통제하려 시도하면서, 소위 ‘해적에 맞선 전쟁’(최근의 중국수상의 그리스 방문 동안에 그리스 정부와 중국 간에 서명된 “공동성명”44)에서 그리스 정부는 중국해군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그리스 선박들을 보호한 데 대해 중국에 감사를 표했다)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만 한다.

앞서 언급한 책에는 중국을 위한 “생활공간에 대한 필요”에 관한 논의가 있는데 그것은 “위대한 중국민족에 의해 경작되어야만 하는” 시베리아의 광대한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다.45)

이러한 책이 오늘날 중국에서 중국 공산당의 승인 없이 출판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누구나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 ≪인민일보≫가 쓴 다음의 것을 보아야만 한다: “명백히 중국은 러시아의 극동지역을 자신의 근본적인 영향력 하에 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모스끄바를 경각시키지 않는 방식으로이다. 이러한 영향력의 힘은 중국인 이주자들의 광범한 규모의 쇄도에 기초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러시아인들의 갑작스런 ‘중국화’에 기초할 것이다. … 어느 화창한 날에 심각한 위기가 있을 것이고 모스끄바의 약화된 정치적 및 군사적 힘에 직면하여 이들 러시아인들은 그들 자신의 정부가 아니라 베이징으로 향할 것이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 러시아의 극동은 중국의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46)

위에서 언급한 것과 함께, 우리는 2010년 8월 초에 베트남 국방장관 응구엔 프웡 응가가 다음과 같이 진술을 한 것을 되새겨야만 한다: “베트남은 중국이 즉각적으로 베트남의 주권에 대한 침해를 멈출 것을 요구한다.”47) 에너지 매장자원이 있는 남중국해에서 ‘회색지대’가 출현했고 분쟁지역이 생겼다.

물론 경쟁의 틀 내에서 협력의 ‘축들’과 ‘반(反)협력의 축들’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정치적 적수에 대해 … “공산주의자”라는 냉엄한 고발을 습관적으로 했던 이탈리아의 수상 베를루스코니가, 2015년까지 두 나라 간의 무역을 1,000억 달러로 배가하고 유럽으로 통하는 전략적 ‘입구’를 구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영원의 도시’를 방문한 중국 수상을 기념하여 ‘공산주의적인’ 붉은 색으로 로마의 콜로세움을 밝힌 것을 볼 수 있었다.48)

 

 

국제 조직들에서 힘의 균형을 변화시키기 위한 러시아, 인도, 브라질과의 협력

 

최근에 중국은 BRICs라고 알려진, 자신들의 국제적 위치를 상승시키려고 하는 나라들(브라질, 러시아, 인도)과 협조와 협력을 발전시키고 있고 뿐만 아니라 상하이 협력기구(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이전 쏘비에뜨 공화국들과 함께)와 같은 지역적 연합에서 협력관계-동맹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동맹과 협력관계들이 미국의 ‘일극적인 세계’에 반대하는 타격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일극적인 세계’는 존재했던 적이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2차 대전 직후의 시기에 첫 번째의 자리를 요구하고, 쏘련이 지도적 역할을 했던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이끄는 미국과 더불어, 국제 제국주의 체제 내에 분화가 언제나 존재했었다. NATO-OECD와 바르샤바 조약-상호경제원조회의 간의 투쟁은 계급투쟁이었다. 쏘비에뜨 권력의 타도와 쏘련의 해체 이후에 제국주의 상호 간의 모순들은, 이것들에서 미국이 지도적 역할을 하는 그 힘 때문에 강화되었다. 동시에 불균등한 자본주의 발전 때문에, 미국, EU 그리고 일본과 더불어, 천연자원에 대한 몫과 그들의 수송로와 시장을 획득하고자 하는 새롭게 부상하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떠올랐다. 이것은 오늘날 부르주아 매체와 분석가들에 의해 ‘다극적 세계’로서 그리고 ‘일극적 세계’의 종말로서 제기된다. 이 동안에 자본주의적 위기의 발발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 세력들의 상호관계에서 격변을 가속화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세계를 더 평화롭고 혹은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자본-노동 간의 모순이, 국민적, 지역적 그리고 지구적 수준에서 해결되지 않는 한, 새롭게 부상하는 열강들이 새로운 시장과 천연자원에 대한 자본의 욕구에 의해 추동되는 한, 우리는 근본적인 변화들을 맞을 수 없다. 국제적인 제국주의 체제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국가들은 쏘련이 과거에 했던 역할을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독점[자본-역자]들을 위한 추가적인 이윤의 기초 위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국에 대하여서도 진실이며 중국이 붉은 기를 사용하고 지배적인 당이 ‘공산주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부정될 수는 없다.

그에 더하여 우리가 BRICs 나라들의 협력에 대해, 혹은 ‘상하이 협력기구’의 그것들에 대해, 혹은 중국, 인도 그리고 러시아의 외무장관들이 달성한 협조에 대해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이것이 제국주의적 현실의 단지 한 측면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 뒤에는 이들 열강들 간의 격한 경쟁관계와 모순들의 측면이 있는데 예를 들면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자원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 간의 모순, 혹은 러시아의 극동 등에 대한 중국의 야심이 그러하다. 동일한 것이 중국과 인도 간의 관계에도 진실인데, 그들 간에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 국경문제(예를 들면 2010년 8월에 인도는 중국과의 국경을 재강화하기 위해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에 두 개의 부대를 보냈다49))는 별도로 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헤게모니를 위한 격렬한 경쟁이 또한 존재한다. 잘 알려진 대로 인도 국방성은 2009년과 2010년에 중국군대의 현대화와 관련해, 인도군에 상응하는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반복된 회의를 열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50)

미국과의 관계를 변경시키는 흐름은 또한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 내에서 발전하고 있는데 그 선두에는 브라질이 있다. 이렇게 이들 나라들은 중국, 러시아, 인도 그리고 EU와 관계를 강화시키고자 한다. 경쟁과 협력은 제국주의 세계에서 공존하는데, 그곳에서는 상호의존과 동맹의 형성이 경쟁관계와 반동맹과 함께 나아간다.

동시에 중국이 미국의 ‘일극체제’에 대한 브레이크의 역할을 한다고 간주하는 모든 이들은 중국이 2001년에 공개적으로 소위 ‘테러와의 전쟁’과 UN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1373/2001을 지지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인데 그것은 ‘테러리즘’이라는 구실 하에 제국주의 침략을 제도화했다. 물론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는데, 2002년의 공산당ㆍ노동자당 국제회의(62개 공산당 참석)는 “9.11 사건은 또한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을 선언한다는 구실로 자유와 인민의 권리에 반하는 전례 없는 공격에 착수하는 것에 대한 알리바이가 되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세계화에 반대하여 그리고 국제 조직들(IMF, 세계은행, WTO, EU 등)에 의해 취해진 인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들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모든 저항운동을, 제국주의 간섭과 전쟁에 반대하고 NATO에 반대하는 반제국주의 운동들을, 뿐만 아니라 독재와 파시즘 정권에 반대하는 어떠한 사회적 및 민족적 해방운동과 투쟁들에라도 테러리스트라고 딱지 붙인다.”51)고 주장했다.

 

 

‘개발도상의’ 나라들과 중국의 동맹

 

1986년 7월 20일에 중국은 GATT(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에 가입하려는 바람을 공식적으로 표명했고 2001년 12월 11일에 GATT를 계승하여 구성된 세계무역기구(WTO)의 143번째 회원이 되었다.

WTO 내에서 중국은 지구적인 제국주의 체제에서 존재하는 제2의 모순들을 강조했다. 중국공산당 16차 대회에 대한 그의 보고에서, 장쩌민은 “북과 남 사이에서의 발전의 차이”에 대해, 뿐만 아니라 “발전된 나라들로부터의 경제적, 과학기술적 및 여타의 패권의 압력”에 대해 연설했다.52) 어떤 평가에 따르면 중국은 항상적으로 개발도상국들의 대표이고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맡고자 했다는 것이다.53)

중국이 경제적으로 국제적인 위치를 증진시킨 것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지도부는 중국을 ‘개발도상국’으로 표현하려 한다.54) 이러한 주장은 세 가지 입론에 입각해 있다. A) 2008년에 중국의 1인당 GDP는 단지 3,300 달러로서 세계에서 104번째이다. B) 중국의 13억 인구 중에서 7억 이상이 농민이다. C) GDP에서 중국의 공업, 농업, 서비스업의 비율은 49%, 11%, 40%이다; 반면에 자본주의적 발전의 보다 높은 수준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공업과 농업이 낮은 비율이다. 2009년에 GDP 증가에서 공업에서 9.5%, 서비스업에서 8.4% 그리고 농업에서는 단지 4.2%가 증대였다.

UN과 OECD의 서열은 미심쩍고 중국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중국을 그 지도부가 ‘개발도상국’으로 딱지붙이는 것도 그러하다. ‘개발도상의’ 자본주의 경제라는 이 현상은 중국의 동부와 서부 간의 심각한 불균등에 기인한다. 보다 정확한 모습은 그 나라의 동부와 관련된 적절한 자료에 의해 주어질 것이다.55) 그리고 물론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진실인 것은 또한 발전된 동부에 대해서도 진실이다: 소수의 수중으로 생산수단의 집중과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과 유사한 불균등한 자본주의 발전을 하는 다른 열강들(예를 들면 인도)과의 동맹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매우 후진적인 사회들과 동일한 위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진성’이라는 이름하에 ‘애국적 환영(幻影)’이 창출되고 있는데 그것은 노동운동, 공산당들, 다른 급진적 세력들이 당분간 계급투쟁을 잊고 다른 사회를 건설하고 ‘그들 나라의 국제적 위치를 강화하는’ 일에 몰두하도록 함정에 빠뜨리도록 하는 노력에 이용되고 있다. ‘민족적 발전’에 대한 추구는 종종 선택적인 ‘반제국주의’와 결합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 화력을 ‘제국’으로서 성격지우는 미국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그리고 아마도 서유럽의 일부 강력한 국가들에도 집중한다. 소위 ‘황금의 억만장자’(OECD에 속하는 가장 발전된 30개의 나라들) 이론은 이러한 논리 내에서 작동하고 있는데 그것은 나라 당 다양한 재화의 1인당 소비를 기본적인 규정적 기준으로 삼는다.

동시에 발전된 나라와 발전도상국의 나라 간의 특징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심지어 미국과 같이 가장 부유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조차 인민층 사이에서 대중적인 궁핍과 가난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는 것이다. 또한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 소위 발전된 나라들에서 보다 훨씬 더 뻔뻔스러운 방식으로 대규모의 부유함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맑스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진실이다. “한 나라가 세계시장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생산성이 있을수록, 그 임금은 더 높아질 것이다. 영국에서는 명목임금만이 아니라 실질임금이 대륙에서보다 높다. 영국의 노동자는 더 많은 고기를 먹는다; 그는 더 많은 필요를 충족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산업 노동자에게만 적용되지 농업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 노동자들의 생산성에 비하여 그들의 임금은 (다른 나라에서 지불되는 임금보다) 높지 않다.”56)

만약에 공산주의 세력들이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의 연대의 슬로건을 포기하고 세계의 “북-남”으로의 분열 혹은 “황금의 억만장자”라는 생각을 지지하게 된다면, 그들은 소위 ‘민족적으로 향하는 자본’ ― 즉, 스스로 지구적인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더 나은 위치를 추구하는 그들 나라의 부르주아 계급(혹은 그것의 일부분)과의 ‘통일’의 덫에 쉽게 빠질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공산주의자로서 그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에 관한 중심적인 레닌주의 테제를 수정하는 것인데 거기에는 전적으로 자본주의의 반동적인 시대를 언급하고 있고 그리고 이어서 세계시장에서 그들의 힘이 어떠하든지 간에 모든 자본주의 사회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개발도상국들’의 지도자로서 스스로를 표현하기를 추구하는 중국의 입장은 국제공산주의 운동 내에서 이러한 혼미와 혼란의 창출에 기여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러한 노력의 지도자가 ‘공산주의’라는 타이틀을 품고 있는 당에 의해 다스려지는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에 대한 소위 불가피한 ‘개방’

 

중국공산당과 다른 세력들은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점차적인 강화를 세계화에의 참가로서 증대해왔다: “오늘날 점차적으로 세계화되는 세계에서 중국은 나머지 세계와 고립되어 발전할 수 없고 또한 세계는 번영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57) 그러나 세계시장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생산 간에 생산물의 상호교환이 있는 시장, 어떤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그 이름하에 선진 자본주의에서 임금수준이 오늘날 공격을 당하고 있는 소위 ‘세계화’라는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물론 “공산당 선언”에도 “세계시장”에 대한 언급들이 있다: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의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반동배에게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부르주아지는 공업의 발밑에서 그 민족적 기반을 빼내가 버렸다. 오래 된 민족적 공업들은 파멸되었고, 또 나날이 파멸되어 가고 있다. 이 공업들은, 그 도입이 모든 문명국가들의 사활문제가 되고 있는 새로운 공업들에 의해, 즉 더 이상 현지 원료를 가공하지 않고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의 원료를 가공하는, 그리고 그 제품이 자국 내에서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륙에서 동시에 소비되는 공업들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 국산품에 의해 충족되었던 낡은 욕구들 대신에 새로운 욕구들이 등장했는데, 이 새로운 욕구들은 그 충족을 위하여 아주 멀리 떨어진 나라들 및 풍토들의 생산물들을 요구한다. 낡은 지방적 및 민족적 자급자족과 고립 대신에 민족들 상호간의 전면적 교류와 전면적 의존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물질적 생산에서나 정신적 생산에서나 마찬가지이다. 개별 민족들의 정신적 창작물은 공동재산이 된다. 민족적 일면성과 제한성은 더욱더 불가능하게 되고, 많은 민족적, 지방적 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 문학이 형성된다.”58)

국제시장에서 ‘중국의 참가’가 국제적인 세력의 상호관계에 기인하는 강요되는 상이한 경제들 사이에서 상품들의 강제적인 교환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통하여 중국에서 축적되고 있는 자본의 수출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은 무엇보다도 집적된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중앙의 계획에, 그리고 외국무역의 국가독점과 같이 1918년 4월에 수립된 그 국제적 경제관계에서 상응하는 경제적 조치들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NEP(어떤 사람들은 현 시대의 중국을 언급하면서 NEP를 인용하고 싶어 한다)라는 조건 하에서조차 국가독점은 증대하는 자본주의 경향들과 맞서는 보루로서 훨씬 더 중요해졌다. 레닌은 부하린과의 논쟁에서 외국무역에서 독점의 중요성을 옹호했다. 스딸린은 후에 “우리의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의 부속물로 변형되지 않기 위해서 인민경제의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해 계획되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고 “그것은 자본주의경제의 부속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의존한다”고 하였다.59)

스딸린은 1926년 12월 13일에 열린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집행위원회의 7차 전체회의에 대한 폐막연설에서, 쏘련이 자본주의 나라들과 경제적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신화를 분쇄했다. 그는 이러한 관계들 속에서 존재하는 상호의존을 언급했는데 이러한 유형의 상호의존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 틀 내에서의 한 나라의 경제의 동화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60) 말하자면, 비(非)동화는 중앙의 계획을, 외국무역과 은행체계에서 국가독점을, 그리고 산업의 사회화를 요구한다. 중국의 현실은 NEP 동안의 쏘련의 그것과 전적으로 다르다. 중국에서는:

a. 외국무역에서 독점이 전혀 없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수천 개의 외국 회사들은 중국 수출의 최대치를 점하고 있고 그 과정은 그들의 이윤의 실현가능성에 기초한 그들의 계획에 의존하고 있고 중앙집중화된 계획경제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b. 440개의 사적인 외국은행들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들은 중국 국가은행의 지분 중 적어도 10%를 획득했고 그리고 2005년 이후로 국내의 사적인 은행부문이 발전했다.61)

c. 산업의 중요한 비율이 사적이거나 혹은 사적으로 되고 있고(주식회사들의 형태로), 사적 부문은 GDP의 70%를 생산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d. 중국의 입법은 특히 경제적 및 상업적 부문에서 WTO의 도움과 지구적인 자본주의 경제의 규범 덕분으로 충분히 조화되고 있다.

 

 

후기

 

결론적으로, 중국에서 자본주의 관계들의 지배는 오늘날 하나의 사실인데, 자본주의적 성격이 그 상징들 속에서 반영될 정치체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그리고 상부구조의 모든 요소들의 더 큰 순응을 천천히 혹은 빠르게 초래할 것이다. 계급모순들의 강화가 성숙할 것이고 그리하여 자본주의 권력에 반대하여 자기 자신의 당에 의해 대표되는 혁명적 노동운동에 대한 필요가 성숙될 것이다.

 

 

≪공산주의 평론(Communist Review)≫ 제6호(2010)에 실림.

 


 

1) “황색거인의 위협”, http://www.paraskhnio.gr/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435:2010-09-06-100051&catid=13:paraskhnioston-kosmo&Itemid=8

 

2) “중국은 지금은 세계 최대의 수출국가이다”, http://www.eurocapital.gr/index.php/permalink/5287.html

 

3) http://sino.by/analitics/109-analitics

 

4) http://o-kitae.ru/sovremennaya-ekonomika-kitaya/16.html

 

5) “중국의 억만장자들의 성공의 철학”, http://www.buffett.ru/investments/?ID=3293&print=Y

 

6) “중국과 세계에서 최대 회사들”, http://russian.cntv.cn/program/news_ru/20100906/102640.shtml.

 

7) “중국에서 개인소유 기업의 수자가 350만을 초과했다.” http://www.ttservice.by/index.php?name=news&op=view&id=4

 

8) “올해에 500대 최강 개인기업들은 5가지 특수한 성격을 갖고 있다”, http://russian.china.org.cn/exclusive/txt/2010-09/01/content_20841263.htm

 

9) Ibid.

 

10) “중국은 2009년에 세계에서 5번째로 큰 투자자였다”,  http://www.bfm.ru/news/2010/09/06/kitaj-v-2009-godu-stal-pjatym-krupnejshiminvestorom-v-mire.html

 

11) “세계 경제: 중국의 사이클”, http://www.warandpeace.ru/ru/reports/vprint/51067

 

12) “미국: 중국에 의한 미국 채권의 취득”, http://www.capital.gr/NewsPrint.asp?id=1048344

 

13) “중국이 세계에서 앞으로 나아가다”, http://www.chaskor.ru/article/kitaj_poshel_po_miru_18811

 

14) “원료 자원의 일소(clean-up)”, http://www.expert.ru/printissues/expert/2009/40/resursnuy_pylesos. 이 부분에서 이어지는 통계는 이 기사에서 나온 것이다.

 

15) “펜타곤이 중국의 증대하는 군사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http://www.bbc.co.uk/russian/international/2010/08/100817_cnina_military_report_pentagon.shtml

 

16) “펜타곤: 중국은 계속하여 군사력을 증가시키고 있다”, http://www.voanews.com/russian/news/world-news/US-China-military-2010-08-16-100809179.html

 

17) “중국의 총체적 힘”, http://www.journal-neo.com/?q=node/488

 

18)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다”, http://vpk.name/news/35274_voennyii_potencial_kitaya_zanimaet_vtoroe_mesto_v_mire.html

 

19) 중국 상무성의 러시아어 웹사이트로부터의 통계, http://russia.mofcom.gov.cn/article/subject/zhongguo/lanmufff/200803/20080305410262.html

 

20) ≪인민일보≫, http://russian.people.com.cn/31521/6980549.html

 

21) Yian Jiechi, “중화인민공화국은 더욱더 발전에 관심을 쏟고 있고 더욱더 책임을 지고 있다”, 2010년 2월 5일, Munich에서의 연설, http://russian.people.com.cn/31520/6889574.html

 

22) V. I. Lenin,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 Collected Works, Vol. 27, Synchroni Epochi, pp. 378-379.

23) 아테네의 중국 대사관의 웹사이트로부터, http://gr.chinaembassy.org/eng/xwdt/t261536.htm

 

24) ibid.

 

25)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정책과 그것들의 충격에 관한 2008년 4월 23일의 유럽의회의 결의”, 2007/2255(INI)(2009/C 259E/08).

 

26) Nikita Medkovitch,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의 재정적 측면(1979-1989)”, http://afghanistan.ru/print/?id=18319

 

27) Steve Coll, ≪CIA의 숨은 아프간 전쟁의 승리의 해부≫, 워싱턴포스트, 1992년 7월 19일자, http://emperors-clothes.com/docs/anatomy.htm

 

28) A. S. Voronin, ≪베트남, 독립, 단결, 사회주의≫, Synchroni Epohi, pp. 96-97.

 

29) A. S. Voronin, ≪베트남의 오늘≫, nea biblia, p. 109.

 

30) ibid.

 

31) 통합된 안내(Consolidated Guidance) 8호, ≪뉴욕타임즈≫ 1979년 11월 4일자 A1면에서 요약.

 

32) Jonathan Pollack, ≪연합정치의 교훈: 중국-미국의 안보관계≫, RAND Corporation, 산타모니카, 1984, p. 70.

 

33) S. LavrenovㆍI. Popov, “지역전쟁과 분쟁들에서 쏘련”, http://militera.lib.ru/h/lavrenov_popov/index.html

 

34) http://www.arlindo-correia.com/gleijeses4.pdf

 

35) 신문 ≪Imperisia≫, 2010년 9월 23일자, http://www.imerisia.gr/article.asp?catid=12337&subid=2&pubid=61921147

 

36) “코소보에서 군사력(KFOR)”, http://tosyntagma.antsakkoulas.gr/afieromata/item.php?id=395

 

37) http://www.rian.ru/world/20100722/257443658.html

 

38) http://www.hellasontheweb.org/2010-04-05-22-20-08/2010-04-06-12-08-05/785-2010-09-01-20-11-24?tmpl=component&print=1&layout=default&page=

 

39) Athens News Agency-Macedonian News Agency

 

40) http://www.inews.gr/news/1/iper-prasinis-anaptixis-simfonoun-sosialistiki-diethniskai-kommounistiko-komma-kinas.htm

 

41) http://www.pasok.gr/portal/resource/contentObject/id/b334bc62-b685-4619-8b73-b72f8e76276a

 

42) 그것의 온전한 제목은 다음과 같다: ≪중국은 행복하지 않다. 하나의 중요한 시대, 중요한 목표 그리고 내부적 및 외부적 격변≫, Chiansou Zenmin Tsoumanse(이곳은 정치적, 철학적 그리고 문학적 서적들을 출판한다), 2009년 3월. 그 저자들은 5명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와 작가들이다: 송 샤오준(중앙 텔레비전 채널 ‘펑완’의 군사 분석가), 왕시아오뚱, 송치앙(≪국제 사회연구 저널≫의 대표편집자), 리우양(저널리스트, 경제, 문화, 정치적 쟁점에 대한 미디어 해설자).

 

43) “중국의 군사적 힘”, 2010년 8월 26일, http://www.odnagdy.com/2010/08/blog-post_9626.html

 

44) “중국과 그리스 간의 확대되는 전략적 협력의 심화에 대한 공동성명”, http://greek.cri.cn/161/2010/10/04/42s4914.htm

 

45) “왜 중국은 러시아와 불화하는가”, http://kp.ru/daily/24313/506551

 

46) “중국은 더욱더 러시아의 극동에 이끌리고 있다.”. http://world.people.com.cn/GB/1030/6677024.html. 러시아어로의 번역은 http://www.inosmi.ru/world/20080130/239263.html

 

47) “중국의 이웃들이 그들일 할 수 있는 한 스스로를 무장시키고 있다”, http://www.ng.ru/world/2010-08-10/7_vietnam.htm

 

48) “이탈리아가 … 붉은 콜로세움으로 중국을 환영하다”, http://www.euro2day.gr/news/world/125/articles/607508/ArticleNewsWorld.aspx

 

49) “인도가 중국과의 국경에 두 개의 부대를 보냈다”, http://www.warandpeace.ru/ru/news/vprint/50479

 

50) “인도는 중국에 대응하여 군사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http://flot.com/nowadays/concept/opposite/indiareadiesforchinafight/index.php?print=Y

 

51) “공산당ㆍ노동자당 국제회의에서의 성명”, 아테네, 2002. http://www2.rizospastis.gr/story.do?id=1320825&publDate=2002-06-26%2000:00:00.0

 

52) “중국공산당 16차 대회 보고”, http://russian.china.org.cn/news/txt/2002-11/19/content_2050838.htm

 

53) A. Liukin, “중국의 “비전”과 러시아의 미래”, http://www.mgimo.ru/news/experts/document151024.phtml

 

54) “중국: 경제발전 속도에서의 증대”, 2010년 3월, http://www.imperiya.by/economics2-7364.html

 

55) 중국 영토의 약 10%를 차지하는 동부지역에 인구의 80% 이상이 살고 있다. 출처: 러시아 지리웹사이트: “중국에 대한 묘사”, http://geo-tour.net/Asia/china.htm

 

56) K. Marx, ≪잉여가치론≫ 2부, Synchroni Epohi, p. 13.

 

57) 아테네 중국 대사관의 웹사이트, http://gr.china-embassy.org/eng/xwdt/t261536.htm

 

58) K. MarxㆍF. Engels, “공산당 선언”, Synchroni Epohi, pp. 29-30.

 

59) J. V. Stalin의 논문, “정치경제학 안내서에 관한 논의”(1941년 1월)로부터( Richard Kosolapov, “스딸린 동지가 토론에 참여하다”, ≪정치경제학 안내서에 관한 논의≫(1941년 1월 29일), paleia, 모스끄바, 1995, pp. 161-168에서 재인용.)

 

60) J. V. Stalin,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집행위원회 7차 전체회의에 대한 폐막연설”, Collected Works, Vol. 9, pp. 132-136.

 

61) “중국의 금융시장”, http://www.globfin.ru/articles/finsyst/china.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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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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