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 (상) ― 아우프헤벤 저, 오세철 ‘역’,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중심으로

 

채만수 ∣ 노사과연 소장

 

 

서. 예비지식

   ― ‘좌익공산주의자들’로서의 자질에 대하여

 

지난 봄 어느 날 열린, ≪노동사회과학≫ 제5호를 기획하기 위한 편집회의는 오세철 교수께서 ‘번역’ㆍ출간하신 ≪소련은 무엇이었나≫1)를 비판적으로 다루어달라는 임무를 나에게 부여하였고, 당연히 나는 그 임무를 기꺼이 인수했다. 뜨로츠끼주의 및 소위 자율주의 등과 더불어 좌익공산주의는 화려한 혁명적 언사로 무장하고 노동자계급 운동 속에 침투해 있는 악질적 반쏘ㆍ반공노선의 주요한 일부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에 대한 비판은 노동운동의 올바른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해 복무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피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문제의 책(―그래, 어쨌든 ‘책’의 형태를 띠고 있으니 ‘책’이라고 부르자―)을 주문하여 받아보았는데, 맨 처음 언뜻 든 생각은 ‘부피에 비해 책값이 너무 비싼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펼쳐 불과 두세 쪽을 읽자마자 그건 정말(?) 경조부박한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곤 흥미와 긴장(?), 그리고 투지(?)가 밀려왔다. 한국 좌익공산주의 운동의 지도 중심이신 ‘역자(譯者)’ 오세철 교수께서 “옮긴이의 말”을 이렇게 끝맺고 계셨기 때문이다.

 

“현실 사회주의”를 아직도 혁명의 허상으로 붙들고 있거나, 스탈린주의를 교조로 삼는 사람들이 맑스주의자들이라면, 이 글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자.

 

내용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까지 앙칼진 주문(注文)으로 역자서문을 끝맺을 수 있겠는가! 책값이 다소 비싼들 대수냐!

소위 좌익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오세철 교수에 대해서도 그 정치적ㆍ계급적 성향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어떠할 것이라고는 물론 익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서슬 퍼렇게 주문하고 나오실 줄은 사실 몰랐고, 그리하여 사뭇 긴장(?)했다. 그리고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왜냐? 단 한 페이지를 ‘읽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을 요하고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데다, 그렇게 힘 들여 ‘읽어도’ 나의 사고능력, 나의 사고방식, 나의 뇌기능으로는 도저히 그 내용을 이해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 불능의 이유? 그것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편집회의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어떤 형태로든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에서 ‘원문’을 내려 받아 읽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는 이는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나와 우리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주요 활동가들은 뜨로츠끼주의자들이나 좌익공산주의자 등으로부터, ‘스딸린주의자(들)’로, 어쩌면 필시 ‘구제 불능의 스딸린주의자(들)’로 낙인 찍혀 있다. 연구소의 다른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를 참으로 ‘영광스러운 낙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저들이 사람은 알아볼 줄은 아는군! ― 저들이 악의와 적의에 차서 매도해대는 내용의 ‘스딸린주의’, 그러한 내용의 ‘스딸린주의’란 물론 저들이 저돌적으로 돌진하며 대가리를 처박아대고 있는 풍차이거나 허깨비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나나 우리가 저들 자신과는 참으로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나와 우리 연구소는 이렇게 ‘(구제 불능의) 스딸린주의자(들)’로 찍혀 있고, 이는 오세철 교수님께서도 능히 알고 계신 사실일 것이기에 교수님의 저 서슬 퍼런 주문도 ‘상당 부분’ 분명 나와 우리를 겨냥한 것일 터인데, 그렇다면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먼저 오 교수님께 “교수님의 주문을 접수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라는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다. 분명 ‘구제 불능의 스딸린주의자’로 판단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 서슬 퍼러움 속에서도 ‘…하지 말라’는 표현 대신에 동지적인 언어로, 즉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자”고 하셨기 때문에 그 죄송함은 더 하다.

그런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자”? ― 수사적(修辭的) 이유가 아니라면, 사실은 나는 이 말에 신경을 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은, 쏘련 사회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고 왜장치고 있는 저쪽이지, 나나 우리 연구소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 “부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마시지요!”

오 교수의 주문의 요체는 물론, “스탈린주의를 교조로 삼는 사람들이 맑스주의자들이라면, 이 글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이다.

이 글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 ― 오 교수는 이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번역’ㆍ출간하면서 “이 글의 입장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면서”2) 운운하시지만, 사실은 “이 글”의 “분석”을 전적으로 참으로 “훌륭한”3) 그것으로 받아들이며 탄복하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서슬 퍼런 주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다?! 누가 보더라도 반(反)쏘 일념에 제정신을 놓은 자(들)이 아니고는 도저히 “이 글과 같은 분석”, 즉 왜곡과 날조, 음해, 궤변으로 가득 찬 ‘분석’을 내놓을 수가 없는데! 그리고 나아가, 정치적 혹은 계급적 노선을 떠나서라도, 치매나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거나 그와 유사한 특이한 뇌질환 혹은 뇌기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그런 ‘분석’은, 즉 자신이 바로 몇 줄, 몇 페이지 앞에서 주장한 것을 천연덕스럽게 뒤에서 뒤집고, 바로 뒤에서 뒤집을 말을 앞에서 주장하곤 하는 그러한 자가당착적ㆍ정신착란적 ‘분석’은 도저히 내놓을 수가 없는데!

아무튼 ‘Aufheben’, 즉 ‘지양(止揚)’ 그룹이 화려한 혁명적 언사로 쓰고 있는 이 책 ≪소련은 무엇이었나≫는, 노동자계급이 해방을 향해서 전전하기 위해서는, 그들 그룹이야말로, 나아가 좌익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Aufheben, 즉 지양(止揚)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글 전체를 통해서 웅변하고 있다. 글 전체를 통해서 그렇게 웅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일일이 지적하고 분석ㆍ비판하기 위해서는 몇 권의 분량의 지면이 필요한데, 사실은 그럴 만한 가치도 필요도 없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그 중 몇 가지를 지적하여 비판하는 것으로 끝내기로 한다.

 

오세철 교수의 ‘번역’본(本)을 접하여 나의 사고능력, 나의 사고방식, 나의 뇌기능으로는 도저히 그 내용을 이해조차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이제는 밝혀야 하겠다.

‘책’의 앞표지 속 날개에는 “옮긴이 : 오세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943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졸업. 노스웨스턴(Northwestern)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직행동, 사회심리학, 사회학 분야의 공부를 하고, 1975년에 조직행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심리학’, ‘한국사회변동과 조직’ 등의 강의를 맡고 있다.

민중회의, 민중정치연합, 정치연대, 노동자의힘(준)의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운영위원과 사회실천연구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이하 생략. 그리고 그 후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를 거쳐 지금은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노혁추)’의 지도적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 인용자]

 

그리고 “옮긴이의 말”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고, ‘옮긴이’의 추종자 중의 한 사람인 출판인은 그 ‘책’의 뒤표지에 이를 다시 그대로 내세워 강조하고 있다.

 

이 글 제4부 전반을 번역하고 있는 뜨거운 여름, 긴급 체포영장을 가지고 경찰들이 집에 쳐들어왔고, 서적 등을 압수했는데 이 번역물도 포함되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바람에 압수된 사본을 겨우 돌려받았고, 나머지 글의 번역을 끝낼 수 있었다. 감회가 깊다.4)

 

감회 깊을 수밖에 없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 교수께서 손수 번역하여 출간한다는 사실을 이렇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학력과 경력을 가지신 분이 그렇게 감회 깊게 번역한 글을 나는 사실상 전혀 해득조차 할 수 없었다.

왜냐?

본문의 첫 문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책’ 전반(全般)에 걸쳐 오역과 비문(非文) 천지였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수의 문장들은 원문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번역’되어 있었다. ‘어느 한 문장치고 오역이 아니거나 비문이 아닌 문장을 거의 찾기 어렵다’고 하면 물론 약간의 과장이 되겠지만, ‘어느 한 문단치고 오역이 아니거나 비문이 아닌 문단을 거의 찾기 어렵다’고 말하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러니 특이한 뇌기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본문의 첫 문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책’ 전반(全般)에 걸쳐 오역과 비문(非文) 천지이기 때문에 그것을 일일이 지적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지만, 그리고 앞으로 논의를 진행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곳에서 그 오역과 비문들이 지적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오역 몇 개를, 가히 코미디성의 오역 몇 개를 예시해보기로 하자. ‘오역과 비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설마 그렇게까지야?!’, ‘악의에 찬 모함과 매도 아닌가?!’하고 성급하게 분노할 독자가 혹시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 1] 원문: “The crisis of the left that followed the collapse of the USSR has not escaped communists or anarchists.” [“쏘련의 붕괴에 따른 좌파의 위기는 공산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이라고 해서 비켜가지 않았다.” 혹은, “공산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이라고 해서 쏘련의 붕괴에 따른 좌파의 위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오 교수의 ‘번역’: “소련 몰락 이후 좌파의 위기는 공산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5)

 

[예 2] 원문: “But not only was the wage an inadequate carrot, management lacked the stick of unemployment. Under capitalism the threat of the sack or redundancy is an important means through which management can discipline its workforce and ensure its control over production. In the USSR, however, the state guaranteed full employment. …” [“그러나 임금이 불충분한 당근이었을 뿐 아니라, 경영자에게는 실업이라는 채찍이 없었다. 자본주의 하에서 해고(sack), 즉 잉여인력의 정리(redundancy)라는 위협은 경영자가 노동자들을 징계할 수 있고 생산에 대한 통제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쏘련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다. …”]

 

오 교수의 ‘번역’: “그러나 임금은 부적절한 당근일 뿐 아니라 경영층은 실업이라는 채찍이 부족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약탈[sack의 ‘번역’?: 인용자] 또는 내분[redundancy의 ‘번역’?: 인용자]의 위협은 경영자가 작업장의 규율을 강화하고 생산통제를 보증하는 주요 수단이다. 그러나 소련에서 국가는 완전고용을 보증했다. …”6)

[예 3] 원문: “Lacking both the carrot of money-wages and the stick of unemployment, management was unable to gain full control of the workers’ labour. From this Ticktin concludes that, although the workers may have been paid what at first sight appears as a wage, in reality they did not sell their labour-power since the workers retained a substantial control over the use of their labour.” [“화폐-임금이라는 당근과 실업이라는 채찍이 없었기 때문에 경영자는 노동자들의 노동을 완전 통제할 수 없었다. 이로부터 틱틴은, 노동자들이 첫눈에 임금으로 보이는 것을 지급받고는 있었지만,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을 사용하는 데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들은 노동력을 팔지 않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오 교수의 ‘번역’: “화폐-임금의 당근과 실업의 채찍 없이 경영자는 노동자의 노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었다. 이것으로부터 틱틴은 노동자가 임금으로 지급받지 않는다면, 실제로 노동의 사용에 대한 충분한 통제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력을 팔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7)

 

[예 4] 원문: “… the USSR was not so much in transition to socialism as in transition to capitalism.” [“… 쏘련은 사회주의로 이행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었다.”]

 

오 교수의 ‘번역’: “… 소련은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아닌 것처럼 사회주의로의 이행도 아니었다.”8)

 

[예 5] 원문: “Yet, if this was the case, did this not imply that the countries of Eastern Europe had now become degenerated workers’ states like the USSR?”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는 동유럽 국가들이 이제 쏘련처럼 타락한 노동자 국가가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오 교수의 ‘번역’: “그렇다면 동유럽의 국가들이 소련처럼 타락한 노동자국가가 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지 않은가?”9)

 

[예 6] 원문: “Bukharin is better known for the right wing positions he took in the twenties. Up to ’21 he was however a leading figure of the left of the party, in many ways closer to European Left communists than to Lenin’s very Russian perspectives.” [“부하린은 그가 1920년대에 취한 우익적 견해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1921년까지는 그는 당내 좌파의 지도적 인물이었고, 레닌의 러시아적인 시각보다는 유럽의 좌익공산주의자들에 더 가까웠다.”]

 

오 교수의 ‘번역’: “부하린은 1920년대에 그가 취한 우익의 입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코민테른 가입) 21개 조건 때까지 그는 당 좌익의 지도적 인물이었고 레닌의 러시아적 전망보다는 유럽의 좌익공산주의자들에 더 가까웠다.”10)

 

“Up to ’21…”이 “(코민테른 가입) 21개 조건 때까지…”?! ― 참으로 상상력(!)도, 상상력(!)도 풍부하시다!!!

오세철 교수께서 자신이 “훌륭한 글”로 극찬하면서 “이 글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일갈하고 계신 바로 그 글을 이렇게 제멋대로 엉망진창 ‘번역’하시고 계신 것은, 분명 그 자신이 그 글을 바로 그렇게 제멋대로 엉망진창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아주 특이한 독해(讀解)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 “훌륭한 글”의 저자들, 즉 아우프헤벤(Aufheben) 역시 그 독해법이 특이하기는 결코 오 교수님 못지않다. 그리하여,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이렇게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 좌익공산주의란 바로 그러한 특이한 독해법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감히 말하자면, 이런 ≪소련은 무엇이었나≫와 같은 글을 써대고, 또 그런 글에 그토록 오만한 “옮긴이의 말”을 붙여 출판할 수 있는 자질이야말로 혹시 부르주아 사회과학 강단이 요구하는 자질, 그리고 특히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자질이 아닐까?

참고로, 번역과 관련한 오세철 교수의 다른 발언 하나를 소개하는 것도 흥미가 없진 않을 것이다. 오 교수께서는 당신을 ‘편저자’로 명시하고 있는 한 ‘책’의 “편저자 서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기 편집된 글을 통하여 “좌익공산주의”를 체계적으로 이해하여 혁명적 맑스주의 진영 내의 활발한 토론과 논쟁 그리고 올바른 실천투쟁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레닌 말년의 논쟁적 글 「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에서[원문대로!] “소아병”이라는 오역으로 세계공산주의 운동의 좌파를 폄하하고 왜곡한 역사를 바로 잡는 것도 공산주의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11) (강조는 인용자.)

 

필시 “Left-Wing” Communism: an Infantile Disorder(1920)의 “an Infantile Disorder”를 “소아병”으로 오역하여 “세계공산주의 운동의 좌파를 폄하하고 왜곡”했으며, 그리하여 그 오역을 “바로 잡는 것도 공산주의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특유의 문투로 표현하신 것일 터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에는 먼저 ‘오역’ 여부를 떠난 의문이 있다. 다름 아니라 ― 과연 오 교수나 ‘소아병’이라는 번역이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좌익공산주의자들께서는 문제의 “Left-Wing” Communism: an Infantile Disorder를 읽어보시기는 하셨는지? 그리고 문제의 이 저서뿐 아니라 “Comment on the Behaviour of the ‘Left Communists’(좌익공산주의자들의 행동거지에 대한 논평)”(1918)이나 “‘Left-Wing’ Childishness and the Petty-Bourgeois Mentality(‘좌익’의 어린애 같은 짓거리와 그 소부르주아적 정신상태)”(1918), “Session of the All-Russia C.E.C., April 29, 1918(전체 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회의, 1918. 4. 29)”(1918) 등등,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주장과 행태에 대한 레닌의 여러 글들은 읽어보셨는지?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이유는, 만일 그들이 이 글들을 읽어보았다면, 결코 “「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에서 ‘소아병’이라는 오역으로 세계공산주의 운동의 좌파를 폄하하고 왜곡한 역사” 운운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아적 무질서”를 “소아병”으로 오역(!)해서 “세계공산주의 운동의 좌파를 폄하하고 왜곡”해온 게 아니라, 레닌의 글들의 내용 그 자체가 ‘좌익 공산주의(자들)’이 응당 받아야 할 혹평 바로 그것이고, 그에 대한 경멸과 조롱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바로 그 문제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에서 소위 ‘좌익’ 혁명가들을 정당하게도 이렇게 단죄하고 있다.

 

혁명에 대하여 ‘좌익’ 혁명가들이 야기한 그것보다도 더 나쁜 어리석음, 더 큰 해악은 전혀 생각해낼 수조차 없다!12)

 

아무튼, ‘소아병’이라는 말 자체가 아무리 ‘존심’ 상하게 들렸더라도, “an Infantile Disorder”는 “유아적 무질서”로 번역되어야지 “소아병”으로 번역해온 것은 오역이며 “세계공산주의 운동의 좌파를 폄하하고 왜곡한” 것이라는 불평에 이르면, 앞에서 얘기한 ‘좌익공산주의자’로서의 그의 특이한 ‘번역’, 특이한 정신 상태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disorder’라는 단어에 ‘무질서’, ‘혼란’, ‘혼돈’ 등의 뜻이 있으니까 ‘an Infantile Disorder’는 ‘유아적 무질서’로, 혹은 “하나의 유치한 혼돈”13)으로 번역해야 한다? 그렇다면, 바로 그 disorder라는 단어에는 ‘질병’이라는 뜻도 있는데, 그리하여 더구나 ‘an Infantile Disorder’ 그것을 ‘소아병’이라고 번역해야 글의 전반적인 내용과 일치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오역이란 말인가?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은 그가 ‘소아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오역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바로 그 특이한 사고방식, 그 특이한 정신 상태이다. 왜냐하면, 당연히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또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레닌은 그 글을 결코 영어로 썼거나, 그리하여 “… an Infantile Disorder”라는 영문의 제목을 붙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것은 러시아어로 씌었고, 영어의 “… an Infantile Disorder”는 그것으로부터의 번역어이다. 그렇다면, ‘오역’ 운운하기 전에 애초의 표현을 찾아 확인했어야 하는 것이고, (나처럼) 러시아어를 모르더라도, 예컨대 일어나, 독일어나, 불어나, … 기타 등등의 번역을 먼저 확인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의 행동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참고로 그 부분 러시아어의 원래 표현은 “Детская болезнь”이고, 따라서 일본어 번역은 “小兒病”, 독일어 번역은 “die Kinderkrankheit”, 불어 번역은 “La maladie infantile”, 스페인어 번역은 “La Enfermedad Infantil”, 중국어 번역은 “幼稚病”, … 등등이다. 물론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두가 다 “소아병”이다. 그런데, 오 교수 등 한국의 좌익공산주의자들, 자칭 ‘혁명적 공산주의자들’만이 유독 ‘소아병’이라는 번역은 오역이라고 주장한다. 분명 그들의 심리 저 밑바닥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자격지심(自激之心)의 발로일 터! 흥미롭지 아니한가?!

 

한편, ≪소련은 무엇이었나(What was the USSR)≫의 ‘원문’과 오세철 교수의 ‘번역본’을 대조해보면, 독자들은 또한 오 교수의 ‘큰 통’에도 놀라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

“옮긴이의 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번역에서 본문과 각주에서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극히 일부분의 내용(특히 제1부)은 번역자가 제외시켰다.14) [원문대로!]

 

 그러나 제2, 제3, 제4부에서도 “극히 일부분”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번역’(?)에서 제외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제1부에서는 원문의 절반가량이, 정말로 절반가량이 제외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모두가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극히 일부분”이란다! 그러니, 그 ‘큰 통’에 놀라고 탄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실은 오 교수께서 무엇인가를 ‘번역’에서 제외한 것은, 그것들이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와 의도ㆍ목적이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극히 일부분의 내용”을 제외시킨다는 핑계 하에 사실은 독자의 반응을 고려하면서 무언가를 각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을 만한 곳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히 일부분”을 제외한 다음 예를 보자.

 

[예 1] 오세철 교수는 원문,

 

In Leninist mythology the clear sighted Lenin split with the Russian Social Democratic Party on the question of organisation and by so doing created a line of revolutionary Marxism that foresaw and would be immune to the betrayal of revolution that both the Mensheviks and European social democrats would fall prey to. However, as both Debord and Dauve, has pointed out, Lenin was always a loyal Kautskyist – even when he accused his master of betrayal. [원문대로!]

 

에서 “In Leninist mythology the clear sighted”를 ‘제외’시키고, 즉 “레닌주의적 신화에 의하면 선견지명이 있는”을 ‘제외’시키고, 이를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레닌은 조직문제에 대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당과 분리하고 멘셰비키와 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두가 희생이 된 혁명의 배신을 당할 염려가 없는 혁명적 맑스주의의 노선을 만들었다. 그러나 드보르와 도브(Debord and Dauve)가 지적한 대로 레닌은 항상 그의 반역의 주인을 비난할 때 충실한 카우츠키주의자였다.15)

 

그가 “In Leninist mythology the clear sighted”를, 즉 “레닌주의적 신화에 의하면 선견지명이 있는”을 ‘제외’시킨 것은 정말 그것이 그 자체로서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혹시, 그렇지 않아도 “… 레닌은 그 배신의 거장을 비난할 때조차 언제나 충실한 카우츠키주의자였다”16)는 근거 없는 적의(敵意)를 드러내고 있는데, 거기에 “레닌주의적 신화에 의하면 선견지명이 있는”하고 적의를 실어 비꼬고 있는 부분까지가 번역되면 분명 수많은 독자로부터 받게 될 ‘경계’를 고려한 ‘각색’은 아니었을까?

 

[예 2] 오세철 교수는 또한 원문,

 

For the bourgeoisie, expropriation by either the proletariat or by a Stalinist bureaucracy made little difference. The threat of communism was the threat of Communism. To the minds of the Western bourgeoisie the class struggle had now become inscribed in the very struggle between the two world superpowers: between the ‘Free World’ and the ‘Communist World’. [“부르주아지에게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징발이든 스탈린주의적 관료제에 의한 그것이든 별 차이가 없었다. … (‘번역’이 생략된 부분으로 뒤에서 그 뜻과 ‘제외’된 이유를 보자)… 서방 부르주아지의 마음에 계급투쟁은 이제 바로 두 개의 세계적 초강대국들 사이의 투쟁, 즉 ‘자유세계’와 ‘공산주의 세계’(쏘련) 사이의 투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에서 “The threat of communism was the threat of Communism”를 ‘제외’시키고,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부르주아지에게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전유이건 스탈린 관료주의에 의한 전유이건 별 차이가 없었다. 서구 부르주아지의 마음에는 계급투쟁이 두 개의 세계 강대국 사이의 투쟁, 즉 ‘자유세계’와 ‘공산주의세계’ 사이의 투쟁으로 각인되었다.17)

 

역시, “징발” 혹은 “수용(收用)”으로 번역해야 할 expropriation을 “전유”로 번역하고 있는 따위의 오역은 문제 삼지 말자. 그런데 오 교수가 “The threat of communism was the threat of Communism”를 ‘제외’시킨 이유 혹은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공산주의의 위협은 공산주의의 위협이었다”로, 의미 없는 동어반복밖에는 안 되니까? 필시 아닐 것이다. “The threat of communism was the threat of Communism”는, “공산주의의 위협은 공산주의의 위협이었다”가 아니고, “공산주의의 위협은 바로 쏘련의 위협이었다”는 뜻이며18) 따라서 그렇게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그는 그것을 ‘제외’시켰을 것이다. 물론 ‘번역서’가 온통 오역투성이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번역되어야 함을 그가 미처 몰랐을 가능성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제외’시킨 것이 그러한 무지에 의한 것이든, 숨겨진 의도에 의한 각색이든, 모두가 좌익공산주의자로서의 특이한 자질의 표현임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참고로, 방금 인용한 문단 끝에는, 즉 “…between the ‘Free World’ and the ‘Communist World’.”에는 다음과 같은 후주(後註)가 붙어 있는데 이 역시 오 교수는 ‘번역’하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년 동안 서유럽 전체가 동유럽 블록 쪽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고, 바로 그 공포 때문에 미국의 부르주아지가 산산이 부서진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에 수십억 달러를 마샬 원조라는 형태로 퍼부었다는 것은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오 교수가 이 후주를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후주는 명백히, 저자들의 의도야 무엇이었든, 제2차 대전 후 수년 동안 서유럽 각국의 노동자계급이 쏘련을, 즉 스딸린 지도 하에 쏘련에 건설된 사회체제를 지지ㆍ지향하여 혁명투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미국이 수십억 달러의 마샬 원조를 유럽에 퍼부은 것도 바로 이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좌익공산주의자들로서의 저자들은 물론 당시 서유럽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으로 지지ㆍ지향한 이 체제가 결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는 전제 하에, 즉 그것은 ‘국가 자본주의로서의 스딸린주의 체제’였다는 전제 하에 이러한 발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자’ 오세철 교수로서는 아무튼 서유럽 각국의 노동자계급이 스딸린과 스딸린 지도 하에 건설된 쏘련을 혁명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이 후주를 ‘번역’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후주를 번역하지 않은 이유를 달리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좌익공산주의자들’로서의 저자들이, 당시 서유럽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으로 지지ㆍ지향한 이 체제는 결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는 전제 하에, 즉 그것은 ‘반동적인 국가 자본주의로서의 스딸린주의 체제’였다는 전제 하에 위와 같은 발언을 했을 것이라는 것은, 그들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제2차 대전 말에는: 인용자] 제1차 대전 말에 유럽을 휩쓸었던 거대한 혁명의 물결은 되풀이 되지 않았고, 노동자 운동에 대한 스딸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통솔력도 약화되지 않았다. 정반대로 제2차 대전을 통해서 스딸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19)

그런데 이 발언은 이 또한 치매증적 혹은 정신분열증적이고 사기꾼스럽다. 즉 ‘좌익공산주의자적’이다.

왜냐하면, 우선 첫째로, “[제2차 대전 말에는] 제1차 대전 말에 유럽을 휩쓸었던 거대한 혁명의 물결은 되풀이 되지 않았(다)”는 발언은, 오 교수가 번역하지 않은 후주의 내용과도, 그리고 “[제2차 대전 말에도] 스딸린주의…의 통솔력[은] 약화되지 않았(고)” “정반대로 제2차 대전을 통해서 스딸린주의…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발언과도 정면으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물론 제2차 대전 후 서유럽의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으로 지지ㆍ지향했던 체제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반동적인 국가 자본주의로서의 스딸린주의 체제’였다면, 그리하여 당시 서유럽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사실은 혁명적 투쟁이 아니라 반혁명 투쟁이었다면, 저들의 발언 사이에 모순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서유럽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당시의 서유럽 노동자계급을 그렇게 매도하고 모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을 위시하여 쏘련을 ‘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하는 자들뿐, 그러한 악의적 반쏘ㆍ반공주의자들뿐이다!

둘째로는, 노동자 운동에 대한 서유럽 사민주의의 통솔력은,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제2차 대전을 통해서(from the Second World War)” 강해진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제2차 대전을 통해서는 독일이나 일본, 이탈리아 같은 패전국들뿐만 이 아니라 사민주의를 포함한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 전체가, 저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그리고 바로 오 교수가 ‘번역’하지 않은 후주가 간접적으로 웅변하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혁명적 물결 속에서 심각한 체제 위기에 몰렸다. 서유럽의 사민주의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은, 오 교수가 ‘번역’에서 ‘제외’했던 미국의 거대한 마샬 원조와 그것을 통한 노동자계급의 체제 내로의 포섭ㆍ매수,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행시킨 냉전, 즉 극악한 반공ㆍ반쏘 모략극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뜨로츠끼주의자들과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이 냉전, 즉 극악한 반공ㆍ반쏘 모략극의 가장 비열하고 간교한 주역의 일부였고 지금도 그렇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자.

 

 

I. 좌익공산주의자들 대 뜨로츠끼주의자 틱틴

  ―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자기 부정, 혹은 ‘자기 증명’,
     그리고 저들의 반쏘ㆍ반공 경쟁이 누설하는 쏘련에 대한 진실

 

앞에서 나는 오세철 교수의 ‘번역본’을 가리켜 “그래, 어쨌든 ‘책’의 형태를 띠고 있으니 ‘책’이라고 부르자”라고 했다. 독자들은 이제 내가 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원문도 왜곡과 날조, 음해, 궤변으로, 그리고 자가당착으로 가득 차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 원문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법 긍정적 의의가 있는 글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즉, 뻔히 들여다보이는 왜곡과 날조, 음해, 궤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아가, 정신병자적 횡설수설로 앞에서 한 말을 뒤에서 부정하고, 뒤에서 부정할 말을 앞에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즉 자기 부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하여 바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정신세계가 어떠한지 공개적으로 ‘자기 증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게다가, 저들은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자기 부정, ‘자기 증명’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들의 의도와 목적에 반해서, 쏘련이 사실은 어떤 사회였는가의 일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저들의 글 ≪소련은 무엇이었나≫가 갖는 최대의 긍정적 의의, 저들이 의도하지 않은 최대의 의의일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엄청 쎄다. ― 그래도 내가 이긴다!’
   ― 좌익공산주의자들의 틱틴 평가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필자들은 제2부에서 틱틴(Hillel Ticktin, 1937- )이라는 ‘듣보잡’ 뜨로츠끼주의 경제학 교수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소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이론을 물리쳤기 때문에, 틱틴의 이론은 쏘련을 자본주의적이라고 이해하는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되어 있다.

그 강점은 그것이 쏘련의 경험적 현실을 주목하고, 쏘련이 처한 계급투쟁의 구체적 형태들을 고찰하는 데에 있다.20)

 

우선, 보통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라면 이 서술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정도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 즉, ① 그간 쏘련의 사회성격을 두고 그것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이론과 자본주의적이라고 보는 이론이 팽팽히 맞서 왔다. → ② 그런데 틱틴의 이론은, ‘쏘련의 경험적 현실을 주목하고, 쏘련이 처한 계급투쟁의 구체적 형태들을 고찰하는’ 그 강점 때문에, 쏘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이론을 물리쳤다. → ③ 그 때문에 틱틴의 이론은 ‘쏘련을 자본주의적이라고 이해하는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제 쏘련을 자본주의적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대신에 틱틴의 이론에 따라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사고와 기질은 우리들 보통 사람들의 정상적인 그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강점”이니, “자본주의적이라고 이해하는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이니 하면서 틱틴과 그 이론을 잔뜩 추켜세워 놓고선, 그 다음엔 바로, 자신들이 방금 뱉은 말(―즉 “쏘련을 자본주의적이라고 이해하는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이라는 말―)과의 논리적 맥락이야 어떠하든, 즉 정면으로 충돌하든 말든, 그래도(!) 자신들의 ‘쏘련=자본주의’론이 옳다고 주장한다. ― “우와아~, 그 친구 진짜 무~지 무지 쎄에~던데?! 그 친군 정말 아무도 몬 이길꺼야! 내도 겨~우 이겼다!”

우리는 마땅히 저들이 어떤 언어의 마술, 논리의 요술로 자신들이 그토록 높이 평가하고 있는 틱틴의 이론을, 즉 ‘쏘련을 자본주의적이라고 이해하는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을 분쇄해 가는가를 보아야 할 것이다.

 

 

틱틴의 쏘련론: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

 

그런데 그 전에 잠깐 여기에서, 틱틴의 쏘련론(Ticktin’s theory of the USSR)이란 것이 도대체 어떤 내용과 성격의 것이기에 저들이 그토록 그것을 높이 평가하는가를 보자.21)

저들이 소개하는 바에 의하면, 저들이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틱틴의 쏘련론은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Russia as a Non-mode of Production)”론, “그 자체 뜨로츠끼의 이론도 그에 대한 국가자본주의론적 대안도 능가한다고 볼 수 있는”22) 그런 이론이다.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Russia as a Non-mode of Production)! ― 즉, 쏘련은 뜨로츠끼나 ‘제4인터내셔날’ 등 뜨로츠끼 정통파들23)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타락한 노동자 국가’, 즉 타락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주의인 국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국가)자본주의도 아니라는 것이다!

저들 스스로가 소개하는 바에 의하면 틱틴의 쏘련론은 분명 이렇게 ‘쏘련은 자본주의 사회’, ‘쏘련은 자본주의 국가’였다는 저들 스스로의 주장을 부정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우선 그것을, 물론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쏘련을 “자본주의적이라고 이해하는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이라고까지 극찬한다!

도대체 왜?

그것은, 무엇보다도, 틱틴 그는, 쏘련이 어떤 형태든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쏘련은, 그것이 ‘타락한 노동자 국가’였던 아니든, 사회주의 사회, 사회주의 국가였다는 주장 역시 “물리치고 있다(dispose of)”고, 혹은 “능가한다(go beyond)”고, 그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틱틴의 이론 그것이, ‘쏘련=국가자본주의’론의 숙적(宿敵)인 ‘쏘련=(타락한) 노동자 국가, 혹은 (타락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론을 물리쳤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뜨로츠끼주의자들의 내부에서조차 그러한 “쏘련=‘타락한 노동자 국가’, 즉 ‘타락한 사회주의 국가’”의 이론을 논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역시 자신들의 주장과 경쟁관계에 있는 토니 클리프(Tony Cliff)의 ‘쏘련=국가자본주의’ 이론도 물리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들 문제를 둘러싸고 뜨로츠끼주의자들 상호 간에 어떻게 진흙탕 개싸움을 벌이고 있는가는 여기에서의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의 대상은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이 뜨로츠끼주의자 틱틴과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이다. 그 역시 진흙탕 개싸움이긴 마찬가지이지만, 편집회의에서 나에게 부여된 임무의 일부이기에!

다만, 우리의 주제로 넘어가지 전에, 틱틴이 자랑하고,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 역시 그 개념 자체로서는 비판하지 않고 있는, 아니 높이 평가하고 있는, 이른바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Russia as a Non-mode of Production)라는 규정 그 자체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자.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Russia as a Non-mode of Production)! ― 재미있지 않은가?!

지금 자신들이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문제는 도대체 러시아가, 쏘련이 어떤 생산양식의 사회, 혹은 어떤 경제적 사회구성의 사회인가이다. 아니,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저들이 광분하고 있는 것은, 뜨로츠끼와 제4인터를 위시한 정통 뜨로츠끼주의자들의 경우 쏘련이 ‘타락한 사회주의 사회’라는 것을, 그리고, ‘신뜨로츠끼주의자들’24)이든, 좌익공산주의자들이든, 소위 ‘국가자본주의자론자들’은 쏘련이 어떤 의미, 어떤 형태의 사회주의 사회도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틱틴의 이른바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Russia as a Non-mode of Production) 이론은 바로 이러한 광분과 광분, 반쏘 열정과 반쏘 열정의 은밀한 야합이 낳은 흐물흐물한 괴물이다.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Russia as a Non-mode of Production)라는 ‘이론’은 사실은 러시아 즉 쏘련이 비(非)생산양식으로서의 생산양식이라는 주장이다. 비생산양식으로서의 생산양식! 틱틴이 아닌 틱틴!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아닌 좌익공산주의자들! 틱틴과 그 ‘이론’을 높이 평가하는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이것을, 허무 개그, 즉 내용 없는 익살ㆍ재담으로 재잘거리고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진지하고 근엄하게 과학적 연구의 성과라며 내놓고 있다. 사실은 그래서 최고의 개그가 되는 것이지만!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개그 아닌 개그가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담론에서는, 특히 반동기의 ‘진보적인’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담론에서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예컨대, 최근에 와서는 청중들이 너무나 식상해 하기 때문에 상당히 목소리가 낮아졌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진보적인’ 부르주아 강단을 지배해오다시피 했던,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포스트맑스주의’니 하는 따위의 개그를 보라. 자신들의 입장을 ‘탈(脫)모더니즘’이니, ‘탈(脫)맑스주의’니 하고25) 정립(定立)하는 것인데, 그것은 실제로는 반정립(反定立)일 뿐, 즉 부정의 규정일 뿐, 적극적인 자기정립, 자기규정이 거기에는 없다. 이는 마치 ‘반공(反共)’, ‘반공주의’가 반정립이고, 부정의 규정일 뿐, 적극적인 자기정립, 적극적인 자기규정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반공’ㆍ‘반공주의’가 그러한 것처럼, ‘탈(脫)모더니즘’이니, ‘탈(脫)맑스주의’니 하는 것 역시 사실은 거기에 적극적인 자기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음흉하게 은폐되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변호론이 부정직하고 수줍게, 음흉하게 은폐되어 있을 뿐이다.26)

그런데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Russia as a Non-mode of Production)라는 ‘이론’은 어떤가? 그것은 쏘련이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설마 쏘련이 노예제나 봉건제, 원시 공산제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단지 ‘비생산양식으로서의 생산양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야말로 공허하고 공허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허하기 그지없는 ‘이론’을 생산ㆍ자랑하고, 또 어쨌든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부르주아 강단과 좌익공산주의자들 같은 사람들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다시 우리의 주제, 즉 틱틴에 대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투쟁으로 가보자.

 

 

몇 개인지 모를 혓바닥

 

쏘련에 대한 틱틴의 논의와 그에 대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비판’에는 정말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다. 쏘련에서 ‘임금’이나 ‘고용’이라는 것이 무엇이었으며, 생산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권한은 어떠했는가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과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사고ㆍ논리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우선,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사고ㆍ논리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를 보자.

우리는 앞에서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저자들, 즉 좌익공산주의자들이 틱틴의 ‘쏘련론(theory of the USSR)’을 가리켜 “쏘련을 자본주의적이라고 이해하는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이라고 극찬하며 “그 강점은 그것이 쏘련의 경험적 현실을 주목하고, 쏘련이 처한 계급투쟁의 구체적 형태들을 고찰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그러면서도, 바로 그 다음에는 곧바로 “그래도 내가 겨~우 이겼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저들은 틱틴 이론의 “강점은 그것이 쏘련의 경험적 현실을 주목하고, 쏘련이 처한 계급투쟁의 구체적 형태들을 고찰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 바로 그 다음 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쏘련을 기능부전(機能不全)의 체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는, 틱틴이 그의 ‘정치경제학’의 범주들을 계급투쟁과 관련짓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가 쏘련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27) (강조는 인용자.)

 

틱틴의 이론의 “강점은 … 계급투쟁의 구체적 형태들을 고찰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는, “틱틴이 그의 ‘정치경제학’의 범주들을 계급투쟁과 관련짓고 있지 않(다).” ― 이것이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언어다.

그런데 몇 페이지를 넘기면 바로 그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역시 다시 이렇게 말한다.

 

≪쏘련에서의 위기의 기원≫에서 틱틴은, 쏘련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세 개의 주요 집단과 계급들, 즉 엘리트와 인텔리겐차, 노동계급을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틱틴은 곧, 쏘련의 말기에 추구되었던 글라스노스트와 뻬레스뜨로이까 정책의 배후에 있던 사회적ㆍ정치적 세력들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계급분석은, 그것으로 쏘련에서의 정치정세의 전개를 일부 설명하는 데에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서 ‘쏘련의 정치경제학’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28)

 

“강점은 … 계급투쟁의 구체적 형태들을 고찰하는 데에 있다” → “‘정치경제학’의 범주들을 계급투쟁과 관련짓고 있지 않(다).” → “계급들…을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 정책의 배후에 있던 사회적ㆍ정치적 세력들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 “그러나, 그러한 계급분석은 … 그 자체로서 ‘… 정치경제학’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 이것이 바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현란한 언어다. 그 혓바닥이 과연 몇 개인지?!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자본론≫

 

그런데 이렇게 지껄여댄 다음 (문단도 바꾸지 않고) 바로 이어서 하시는 말씀은 이렇다.

 

실제로, 분명 틱틴이 그렇게 하듯이, 만일 우리가 맑스의 ≪자본론≫을 ‘정치경제학의 본보기’로 삼는다면, 분명한 것은, 계급분석은 정치경제학의 결과여야지 그 전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29)

그리고 이 문장에는 이런 후주―오세철 교수의 ‘번역서’에는 각주―가 붙어 있다.

 

맑스의 ≪자본론≫에는 계급의 문제는 제3권의 바로 끝까지 제시되어 있지 않다.30)

 

“맑스의 ≪자본론≫을 ‘정치경제학의 본보기’로 삼는다면, 분명한 것은, 계급분석은 정치경제학의 결과여야지 그 전제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맑스의 ≪자본론≫에는 계급의 문제는 제3권의 바로 끝까지 제시되어 있지 않다.”(!!!…) ― 이것이 바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인식, 자질, 기질 바로 그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맑스는 ≪자본론≫ 제1권 제2편에서 ‘계급분석’도 전제하지 않고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를 논하고, ≪자본론≫ 전체를 통해서 가히 수도 없이 자본가와 노동자, 소생산자, 지주 및 그들의 소득범주들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을 좌익공산주의자들이게끔 하는 특이한 독해법이고, 특이한 사고이다! 그리고 번역 대상의 사실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극히 일부분”이라고 ‘번역’에서 제외시키면서도 “맑스의 자본에서 계급의 문제는 제3권 끝까지 제시되지 않는다”며, 문제의 주까지 번역해 붙이는 오세철 교수의 독해법이자 사고이기도 하다!

물론 저들에게도, “맑스의 ≪자본론≫에는 계급의 문제는 제3권의 바로 끝까지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좌익 소아병자들에게 ‘소아병’이라는 번역은 오역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즉, 영한사전에서 ‘disorder’를 찾으면 ‘무질서’ㆍ‘혼란’ㆍ‘혼돈’이라는 뜻이 있고, 그것이 한국의 좌익 소아병 환자들에게는 ‘소아병’이라는 번역이 오역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듯이, ≪자본론≫ 세 권 전체의 목차를 다 들여다봐도, 제3권의 마지막, 그러니까 제3권 제7편 제52장에야 “계급들”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저들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즉 “만일 우리가 맑스의 ≪자본론≫을 ‘정치경제학의 본보기’로 삼는다면, 분명한 것은, 계급분석은 정치경제학의 결과여야지 그 전제여서는 안 된다”며, “맑스의 ≪자본론≫에는 계급의 문제는 제3권의 바로 끝까지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인 것이다!

저들이 ≪자본론≫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좌익공산주의자들로서의 저들의 특이한 독해법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재미있는 대목도 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론≫에서 맑스는 부(富)가 ‘상품의 거대한 집적’으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즉각적인 출현[이 ‘즉각적인 출현’은 오세철 교수의 ‘번역’으로부터 차용했다!]으로부터 시작한다. 맑스는 그러고 나서 개별상품을 분석하여 그것이 두 개의 모순적인 측면, 즉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했다.31)

 

저들이 읽는 ≪자본론≫엔 제1권의 제1편과 제2편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는 모양이다.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에 대한 쏘련 노동자들의 저항?
   ― ‘악마적 스딸린주의 체제’의 일면들 (1)

 

진흙탕 개싸움의 한 양상을 보여주었는데, 이제 저들이 개싸움을 벌이면서 뜻하지 아니하게 보여주는 쏘련 사회의 일면들, 즉 ‘악마적 스딸린주의 체제’의 일면들을 보기로 하자.

저들은 말한다.

 

아마 틱틴의 가장 유망한 출발점은, 심지어 쏘련을 가장 적게 비판하는 관찰자들에게까지도 명백한, 특유의 낭비의 문제이다. 이 낭비의 문제는, 쏘련 경제가 생산할 수 있는 양은 계속 증대했지만, 그와는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상점에는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소비재들이 지속적으로 부족했다는 데에서 명확해졌다.

스딸린 치하에서의 급속한 공업화 이후 쏘련은 공업제품의 절대적 생산 수준에서 세계 어느 나라와도 경쟁할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었다. … 그러나 주로 농민적인 사회에서 공업화된 사회로의 놀라운 변화에 수반한 재화 생산량에서의 그러한 거대한 진전과 나란히, 대부분 인민의 생활수준은 아주 천천히 성장했다. 1950년대 이래 소비재 산업의 생산을 크게 우선시하려는 시도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대다수는 쏘련이 소멸할 때까지 계속 기초 소비재의 심각한 부족을 겪었다.

… 생산과 소비 간의 이러한 거대한 불일치 … 그 이유는 명백히 쏘련 경제 체제에 특유한 거대한 낭비에 있었다.32)

 

스딸린 치하에서의 급속한 공업화로 공업의 생산량이 계속 증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연한 낭비 때문에 쏘련 인민의 대다수는 지속적으로 소비재의 심각한 부족에 시달렸다는 얘기다. 그러면 이렇게 거대한 낭비가 발생하게 되는 원인 혹은 이유를 저들과 틱틴은 어떻게 설명할까?

 

러시아 산업은 거대한 양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이 생산의 많은 부분이 표준 이하였다. 실제로 생산물의 상당량이 쓸모가 없을 정도로 표준 이하였다. 쏘련처럼 일체화되고 자급자족적인 경제에서는 산업 생산의 일련의 고리를 형성하는 각 산업의 생산물들이 다음 산업의 도구나 기계, 원료로 투입되었기 때문에 그 결함 생산의 문제는 더욱 증폭되었다. …

그 결과 낭비는 갈수록 더 많은 양의 노동과 자원을 집어 삼켰다.33)

사실 여부를 차치하면, 적어도 형식논리상으로는 소위 결함 생산이 증대될 수밖에 없었던 산업상의 연관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을 들어보자.

 

이는,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을 도입하는 데 대한 기존 공장들에서의 저항과 더불어, 산업연관의 맨 마지막 고리에 있는 소비재의 생산을 약간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필요한 투입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양의 노동과 자원이 중공업에 투하되어야 함을 의미했다.34) (강조는 인용자.)

 

일단, 적어도 형식논리 그 자체로서는 그렇고 그렇다고 치자. 소비재 생산의 원료 및 설비가 되는 중공업 생산물이 대체로 엉망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그 중공업 생산을 크게 증대시키지 않고서는 그 중에서 실제로 유효하게 생산에 투입될 원료 및 기계설비 등을 추려내기가 어려웠다, 뭐 대강 그런 얘기일 터이니까 말이다. (다만 하나. 저들의 주장 혹은 논리대로라면, 그렇게 아무 쓸모없이 표준 이하로(“substandard”) 생산된 것들이 어마어마한 양에 달했을 터인데, 그렇다면 그것들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에 대한 뒷얘기가 전혀 없지만!)

자,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에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을 도입하는 데 대한 기존 공장들에서의 저항”!? 도대체 누가 저항했던 것이며, 왜 저항했다는 말인가?

저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언외에 넌지시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스딸린주의 체제’, 쏘련 체제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저항이었다고! ― 이것이 저들의 반쏘ㆍ반공 이데올로기 조작술의 하나다! 그리고 저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왜 저항했는가는! ― 이것도 저들의 이데올로기 조작술의 하나다!

사실 저들은, ‘기존 공장들에서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을 도입하는 데에 노동자들이 도대체 왜 저항했단 말인가’ 하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들은 결코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저들의 주장이 결코 사실이 아니며, 노동자들이 저항할 동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스딸린 지도 하의 쏘련에서는 그랬다. 아니, 당시 노동자들은 저항하기는커녕, 거꾸로 산업생산을 그 양에서뿐만 아니라 그 질에서도 발전시키기 위해서 분투했다. 그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당시 쏘련의 노동자들은 저항할 동기가 아니라 거꾸로 사회주의 조국을 사랑하고 그 발전을 위해 헌신할 강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근하게, 당시 쏘련의 노동자 대중, 인민 일반에게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강한 사랑ㆍ애착과 헌신이 없었다면, 제2차 대전의 대(對)나찌 전쟁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사실 쏘련에서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의 도입에 저항할 어떤 동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먼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 기업에서 벌어지곤 하는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을 도입하는 데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주지하는 것처럼, 그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이 유발하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의 자본주의적 충용이 유발하는 과잉인구, 고용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쏘련에는 그러한 고용불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앞에서도 본 것처럼, 저들 스스로 “쏘련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다”35)고 확언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나중에 다시 논의하게 되겠지만, 어떤 이유든 “쏘련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대하여 상당한 통제를 행사할 수 있었”36)으며,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는 데에서의 주요 관심은 그 노동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37)고 저들은 말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을 상당히 통제할 수 있었고, 이때 노동자들의 주요 관심은 그 노동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 이것이 바로 저들이 명시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는 쏘련 노동자들의 고용 및 노동과정에서의 역할 및 관심에 대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과 상황 속에서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의 도입에 대한 노동자들의 태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저항이었을까? 환영ㆍ추구였을까?

저들은 “저항”이었다고 쓰고 있다. 쏘련에서 도입하려고 시도했던 그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이란 것이 아마, 노동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그것이 아니라, 거꾸로 노동생산력을 저하시키고, 따라서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새로운 기술, 새로운 생산방법의 도입에 따른 실업의 위험도 없는 노동자들이, 더구나 노동과정을 통제하며 그 노동을 취소화하는 데에 주요 관심을 가진 노동자들이 그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의 도입에 저항했겠는가?!

 

 

쏘련 노동자들의 ‘임금’, 혹은 쏘련 노동자들의 노동력 ‘판매’
   ― ‘악마적 스딸린주의 체제’의 일면들 (2)

 

한편 저들은 쏘련에서의 이른바 ‘결함 생산’, 혹은 왜 불량품이 발생하는가를 억지 논증하는 과정에서, 쏘련에서의 노동자들의 ‘임금’의 본질 혹은 성격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 논쟁에서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사실들, 즉 논쟁의 당사자들이 모두 사실 그 자체로서 전제하고 인정하는 사실들도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을 도입하는 데에 대(해)” 노동자들이 저항했다는 저들의 주장이 허위임을, 즉 노동자들이 그에 저항할 이유와 동기가 없다는 것을 직접적ㆍ간접적으로 입증해준다.

하지만 물론 이 논쟁에서 중요한 점은 쏘련에서의 노동자들의 ‘임금’의 본질 혹은 성격 그 자체의 문제이고, 따라서 쏘련에서도 노동자들은 그 노동력을 판매하였는가 하는 문제, 즉 쏘련은 과연 자본주의 사회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선 들어보면,

 

물론 틱틴은 쏘련에서, 재화가 사고 팔렸던 것처럼, 노동자들이 형식적으로는 임금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가 볼 때 이것은 노동력이 실질적으로 판매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틱틴이 왜 이렇게 생각했는가를 이해하려면, 쏘련에서의 임금과 화폐에 대한 그의 개념을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부를 획득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닐지라도, 가장 주요한 수단은 화폐이다.[허허!] 노동자에게 있어 화폐는 임금의 형태를 취한다.[얼씨구!] 하지만 소련에서 화폐는, 따라서 임금은 노동자들이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는 충분하거나 유일한 수단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재화와 써비스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길게 줄을 서 기다릴 시간이나 국가와 당 기구의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과 연줄 및 영향력[즉, 빽], 암시장과의 거래 같은 다른 요소들이 필요했다.[이 진하디 진한 악의!!!] 주택이나 유아 보육, 교통과 같은,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들 가운데 커다란 비율이 무료로 공급되었거나 [그에 대해] 높은 보조금이 지급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러한 요소들은 러시아의 노동자에게 있어 임금은, 서방의 노동자에게 있어서의 임금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임금은 진짜 임금이라기보다는 연금과 같은 것이었다고 결론지울 수 있을 것이다.38) (밑줄과 굵은 글자로의 강조는 인용자.)

두 문단으로 이루어진 위 인용문과 관련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첫째, 첫 번째 문단의 “쏘련에서, 재화가 사고 팔렸던 것처럼, 노동자들이 형식적으로는 임금을 받았다…지만, 그러나 … 이것은 노동력이 실질적으로 판매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명제는,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저자들인 ‘아우프헤벤’이 파악하는 틱틴의 견해라는 것.

둘째, 두 번째 문단의 내용은, “사실. [쏘련 노동자들의] 임금은 진짜 임금이라기보다는 연금과 같은 것이었다고 결론지울 수 있을 것이다”라는 명제까지를 포함하여, 역시 ‘아우프헤벤’이 파악하는 틱틴의 견해이자, 그 서술의 형식과 맥락으로 미루어, 명백히 ‘아우프헤벤’ 자신이 승인하는 ‘사실들’이기도 하다는 것. ― 다만, 그리고 또 바로 그 때문에, 앞으로 보게 되는 것처럼, 좌익공산주의자들인 ‘아우프헤벤’은, 틱틴이 주장하는 바의 이 ‘사실들’ 그 자체를 부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실들’의 비(非)자본주의성을 부정하기 위해서, 즉 그 자본주의적 성격을 입증하기 위해서 분투한다.

한편, 위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틱틴은, 그리고 좌익공산주의자들도, 쏘련의 노동자들은 두 가지 방식을 통해서 ‘필요한 것들(needs)’을 획득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첫째로는 (형식적인) 임금을 통해서, 그리고 둘째로는 “다른 요소들”을 통해서.

그런데 이 ‘다른 요소들’ 가운데 저들에 의해서 먼저 강조되는 것은, “길게 줄을 서 기다릴 시간이나, 국가와 당 기구의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과 연줄 및 영향력[즉, 빽], 암시장과의 거래”이다!

그것이 과연 진짜였겠는가, 진짜였다면 어느 정도까지가 진짜였을까 하는 것을 독자들은 의당당 저들의 저 진하디 진한 악의, 진하디 진한 적의에 비추어 가늠해보고 있을 터이다.

물론 쏘련에 그러한 현상이 부분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쏘련에 부분적으로 존재했다던 그러한 현상은 사실은, 지금 저들이 악의를 가지고 공격해대고 있는 소위 ‘스딸린주의’ 즉 맑스-레닌주의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어쩌면 제국주의자들이 그렇듯이 저들 역시 내심 상대적으로는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을 것임에 분명한, 반(反)스딸린(주의)적 흐루쇼프 정권 이후 수정주의가 강화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저들은 그러나 자신들의 ‘반(反)스딸린주의’적 주장을 약화시킬 그러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다문다. 그렇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

그런데, 저들은 엉겁결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주택이나 유아 보육, 교통과 같은,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들 가운데 커다란 비율이 무료로 공급되었거나 [그에 대해] 높은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a large proportion of the workers’ needs were provided for free or were highly subsidized ― such as housing, child-care, and transport.)

 

이는, 저들의 끝없는 악선전을 들으면서 가끔은 깜박 잊기도 하지만, 사실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저들이 빠뜨려 먹었지만, 쏘련에서는 교육이나 보건의료도 무료로 제공되었다는 사실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바로 인간 지옥의 ‘스딸린주의’ 독재체제의 실상의 일면이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을 도입하는 데에 대(해)” 저항할 수밖에!? ― 그리고 제국주의, 독점자본, 그리고 그 이데올로그들과 함께 좌익공산주의자들이 반쏘ㆍ반공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 즉 인간 지옥의 ‘스딸린주의’ 독재체제 하에서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들 가운데 커다란 비율이 무료로 공급되었거나 [그에 대해] 높은 보조금이 지급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저들의 노는 꼴을 더 보도록 하자.

 

자본주의 하에서는 임금은 개별노동자에게는 그들의 노동의 가격으로 나타난다[서당개 풍월!]. 개별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할수록 더 많이 받는다[정말?]. 그 결과 임금은 각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서 일하게 하는 직접적인 인쎈티브로 작용한다. 쏘련에서는 임금은, 연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쏘련 노동자에게 있어 훨씬 취약한 인쎈티브였다.39)

이 역시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저자들이 소개하고 있는 틱틴의 견해지만, 동시에 그들 저자 또한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들이 위 인용문 중의 “… 직접적인 인쎈티브로 작용한다” 뒤에, (오세철 교수는 역시 “군더더기나 불필요한 극히 일부분”으로 간주하여 ‘번역’에서 제외시키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후주를 달아 그것을 보완하고 있는 데에서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개별노동자는 평균이나 기준(norm)보다 더 열심히 혹은 더 오래 일함으로서 더 많이 벌 수 있다. 하지만, 그 개별노동자의 동료들이 그대로 따라한다면(follow suit), 노동의 평균 혹은 기준이 증대하여 그 개별노동자의 임금은 곧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까지 떨어질 것이다.40)

 

아무튼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뜨로츠끼주의자 틱틴도, 그리고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도 모두 쏘련에서의 임금은 사실은 ‘노동(력)의 가격’으로서의 본래적 임금이라기보다는 “연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우리의 상식과 과학으로는 쏘련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게 된다.

그러나 뜨로츠끼주의자와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아무리 쏘련에 대한 악의와 적대를, 그리고 사실 그 자체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쏘련은 비(非)자본주의 사회였다’고 인정하는 것은, 즉 위 사실로부터의 틱틴의 추론을 그냥 용인하는 것은 결코 좌익공산주의자들의 기질도 도리도 아니다. 그리하여 몇 페이지 뒤에 가면 시퍼런 칼을 빼들고 나서는데,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가 본 것처럼, 틱틴의 쏘련 분석의 핵심은, 쏘련의 노동자들이 비록 자신들의 노동의 생산물로부터는 소외되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는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언뜻 보면 임금처럼 보이는 것을 지불받았지만, 자세히 고찰하면 노동자들이 받은 것은 사실은 연금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는 것이었다].41)

 

이 문단은 순전히 다음 논의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인용했지만, 그래도 문제를 지적하자면, 쏘련의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팔지는 않았다”는 말은 진실이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노동의 생산물로부터는 소외되었(다)”는 말은 저들 반쏘ㆍ반공주의자들의 악의적 주장일 뿐이다. 쏘련이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이나 소위 ‘국제사회주의자들’(국내의 ‘다함께’)의 악의적 주장의 허위성을 꿰뚫어본 후에야 동의할 수 있는 얘기이겠지만, 쏘련이라는 국가도, 그 국가가 소유한 생산수단도 모두 노동자계급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 아무튼 저들이 뭐라고 지껄이는지 계속 들어보자.

 

아무튼, 자본주의적 범주들을 쏘련에 적용하는 것을 배척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임금 형태를 쏘련에 존재했던 그것과 비교ㆍ대조하려 하면서, 틱틴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부에 존재하는 임금형태의 대단한 복잡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 하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들에게 팔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개별자본가들에게도 개별노동자에게도 이러한 노동력의 판매는 임금 형태 속에서는 노동력의 판매 그것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의 판매로서 나타난다. 말하자면, 그의 노동력의 가치(즉, 상품들에 일체화된, 노동할 능력을 재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가치)에 따라서 지불받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서 수행하는 노동시간에 따라서 지불받는 것처럼 나타난다.42)

틱틴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부에 존재하는 임금형태의 대단한 복잡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즉 틱틴은 임금 형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 거짓이고, 모함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본 것처럼, 자신들이 소개한 틱틴의 말에 이미 그것들이 (보다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고, 거기에다 자신들 스스로 (오 교수가 ‘번역’에서 제외시킨) 후주까지 달아 동의ㆍ보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들은 왜 이런 거짓과 모함으로 문제를 장황하게 다시 얘기하는 것일까? 물론, 그 다음에 그들로서는 무척 중요한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얘기는 우리에게도 물론 다른 의미에서이지만 무척 중요하다. 다음은 앞의 인용문에 바로 이어지는 문단이다.

 

그리하여, 임금 형태와 그 진짜 내용 ―즉, 노동력의 판매― 사이에는, 만일 노동자들에게 지불되는 임금이 노동자계급[원문대로!]의 노동력을 완전히 재생산하기에 불충분하다면 분명해질지도 모르는 잠재적 모순이 존재한다. 이러한 것이 일어날지 모르는 두 개의 가장 주요한 상황이 있다. 첫째, 어떤 개별자본가가, 어떤 개별노동자가 ‘생활임금’을 버는 데에 충분한 시간들을 제공하려 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둘째, 그 개별자본가는 그 개별노동자를 재생산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그 노동자가 노동자들의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교육하기에는 불충분한 임금을 지불할지 모른다. [여기까지 명사의 단수형, 복수형까지 최대한 그대로 구분하여 번역했다.] 이 경우, 그 개별자본가는 장기적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하기에 불충분한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43)

 

레닌 식으로 예기하자면 분명 ‘벼룩 잡기’이지만, 그 자체로서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저들이 왜 구태여 이런 벼룩 잡기를 하는가 하는 것인데, 바로 다음 문단에서부터 슬슬 그 마각을 드러낸다. 이렇게.

이들 두 경우 모두 개별자본가의 이해는, 전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재생산을 요구하는 자본 일반의 이해와 충돌한다. 이는 물론 실업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이윤을 가져다줄 일거리가 없다면 개별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데에 거의 관심이 없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은,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 실업자들이라는 산업예비군―고용되지 않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 결과는 개별자본과 사회적 자본 간의 이해의 충돌을 극복하기 위해서, 때로는 노동계급 자체로부터의 압력 하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가 확립된 것은 바로 이러한 요청(imperative)을 통해서였다. 의료, 무상의 국가 교육 그리고 복지수당은 모두 노동계급을 사회적으로 재생산하는 데에 있어서의 임금 형태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도입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44)

그리하여 자본주의 하에서는, 단순히 노동시간에 대한 지불인 임금과 노동자와 그 가족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키기 위한 지불로서의 임금 사이에 언제나 긴장이 가로놓여 있다. 그 결과, 자본주의 하에서는 노동계급의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증하기 위한 지불은 언제나 임금뿐 아니라 수당들과 현물 지불들로도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쏘련은 사회적 자본의 요구들이 가장 중요해져 개별자본의 요구들을 완전히 포괄하는 극단적인 예로서 나타날 뿐이다.45)

 

참으로 흥미롭다.

뜨로츠끼주의자 틱틴은, 소련에서는 “주택이나 유아 보육, 교통과 같은,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들 가운데 커다란 비율이 무료로 공급되었거나 [그에 대해] 높은 보조금이 지급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러한 요소들은 러시아의 노동자에게 있어 임금은, 서방의 노동자에게 있어서의 임금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리하여 “사실, 임금은 진짜 임금이라기보다는 연금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도,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그러한 사실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동일한 사실을 두고 ‘신뜨로츠끼주의자’ 틱틴은, 바로 그 때문에 쏘련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비생산양식으로서의 생산양식’의 사회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로서는 쏘련이 비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저들은 동일한 사실을 두고 이렇게 맞받아친다. 자본주의 하에서도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증하기 위한 지불은 언제나 임금뿐 아니라 수당들과 현물 지불들로도 구성되어 있(고)”, 쏘련은 완전히 그 “극단적인 예”일 뿐,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일견 그럴 듯한 반론이다.

보다시피, 반론의 주요 논거는 ‘개별자본(가)의 이해’와 ‘자본 일반의 이해’ 혹은 ‘사회적 자본의 이해’의 충돌이다. 그렇다면 과연 저들이 문제로 삼는 시기의 쏘련, 특히 1930년대 이후의 쏘련에 ‘개별자본(가)’라는 경제적 범주가 존재했느냐고 물어야 하겠지만, 그래봤자, 저들의 행태에 비추어 보면, 저들과는 합의의 결론에 달할 수 없는 지루한 논쟁만 유발할 것이다.

예컨대, 저들의 서술 중에 “중앙 계획의 실제의 실행은 각 개별기업의 경영진에게 이관되어야 했다”46)(the actual implementation of the central plan had to be devolved to the management of each individual enterprise)라는 구절이 있다. 그렇다면 이 ‘각 개별기업의 경영진’은 우리의 판단으로는 중앙의 계획을 이관 받아 실행하는 주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에서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개별자본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존재이다. 하지만, 그 행동양태에 비추어 저들은 필시, 거두절미하고 ‘각 개별기업의 경영진’이라는 말만을 내세우면서, ‘봐라, 소련에도 개별기업, 즉 개별자본과 개별기업 경영진이, 즉 개별자본가가 있지 않았느냐’ 하고 대들고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자들이 바로 저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별자본가의 이해는, 전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재생산을 요구하는 자본 일반의 이해와 충돌” 운운하며, 다만 “쏘련은 사회적 자본의 요구들이 가장 중요해져 개별자본의 요구들을 완전히 포괄하는 극단적인 예로서 나타날 뿐”이라는, 즉 그리하여 쏘련은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것을 그 자신들도 익히 알 것이기 때문이다.

 

 

쏘련에서의 고용 혹은 실업의 문제
   ― ‘악마적 스딸린주의 체제’의 일면들 (3)

 

한편, 저들은 이 ‘개별자본가의 이해와 자본 일반의 이해의 충돌’에 관해 처음에는, 앞에서 보았듯이 ‘벼룩 잡기’를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들이 보기에도 조금은 민망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지, 나중에는 실업문제를 들어 그 충돌과 국가에 의한 그 해결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설명 과정에서 저들은 참으로 중요하고 본질적인 의의를 갖는 얘기를 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렇게,

 

하지만 사회적 자본은,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 실업자들이라는 산업예비군―고용되지 않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는 유지되어야 한다.

 

“실업자들이라는 산업예비군―고용되지 않은 노동력”, 그것도 “임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대량의 산업예비군의 존재와 그 ‘유지’는 실제로 자본주의적 생산이 유지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다! 그래서 좌익적 언사로 위장된 반공주의자들로서의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조차 “…필요하고, 이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쏘련에서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저들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게 하면, 앞에서도 본 것처럼, 이렇다.

 

자본주의 하에서 해고(sack), 즉 잉여인력의 정리(redundancy)라는 위협은 경영자가 노동자들을 징계할 수 있고 생산에 대한 통제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쏘련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다.47) (강조는 인용자.)

 

쏘련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다.” ― 전후 문맥상 이는 분명 틱틴의 견해이자 동시에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발언이다.

저들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별자본의 이해와 달리 사회적 자본의 입장에서는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 실업자들이라는 산업예비군―고용되지 않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는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여 복지수당 등을 지급한다. 역시 저들에 의하면, “하지만, 쏘련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다.” 그런데도, 또 다시 저들에 의하면, 쏘련은 역시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 ― 이것이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논리다!

이 ‘완전고용’의 문제와 관련하여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틱틴이 인정하듯이, 현대 자본주의는 생산의 폭넓은 국유화와 가격 관리, 복지의 급여와 사회적 임금을 수반하고 있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동안 자본주의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책임(commitment)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한 자본주의로서 현대 자본주의는, 특히 제2차 대전 이후 수년 동안은, 쏘련에서의 그것들과 두드러지게 유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48)

 

“현대 자본주의는 생산의 폭넓은 국유화와 가격 관리, 복지의 급여와 사회적 임금을 수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동안 자본주의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책임을 유지” 운운. ― “현대 자본주의”가 쏘련과 “두드러지게 유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억지를 쓰기 위한 참으로 비루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수작이다.

“현대자본주의”의 “생산의 폭넓은 국유화와 가격 관리”는, 저들 비열한(卑劣漢)의 눈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쏘련의 그것,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의 그것과는 그 규모도 그 성격도 본질적으로 다르다.49)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이른바 “복지의 급여와 사회적 임금”은, 앞에서 저들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 실업자들이라는 산업예비군―고용되지 않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는 유지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동안 자본주의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책임(commitment)을 유지할 수 있었다”? ―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실업 통계란 것이 가장 극우적인 언론조차 그것이 과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냐를 물을 만큼 그 기준 자체가 가소로운 것인데다가,50) 저들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책임을 유지했다”는 고용 상태 자체가 엄청난 규모의 실업을 수반한 그것이었음은 저들도 부정하지 못한다. 저들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운운해야 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실업 때문이었다.

현대 자본주의의 이른바 ‘복지국가’와 과거의 쏘련은 그 특징이 “두드러지게 유사”하긴커녕, 조금도 유사하지 않다! 그 목적ㆍ취지와 본질부터가 전혀 극과 극이다.

 

 

쏘련 노동자들의 노동과정 통제
   ― ‘악마적 스딸린주의 체제’의 일면들 (4)

 

그건 그렇다 치고, 저들 뜨로츠끼주의자와 좌익공산주의자들 간에 계속되는 논쟁을 들여다보자.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와 관련한 이 논쟁 과정에서 확인되는 사실들은, 저들이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는 ‘스딸린주의 체제’ 하에서 소련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무권리 상태에 있었는가, 특히 생산현장, 즉 공장에서 얼마나 사실상 ‘자본가로서의 관료들’, ‘자본가로서의 경영자들’의 지배에 신음했는가를 보는 데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행여라도 있을지 모를 오해를 차단하기 위해서’(?) 미리 확인해둘 사항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여기에서, 그리고 물론 틱틴과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논의와 고찰에서 그 대상으로 되어 있는 쏘련의 노동과정은, 결코 수공업적 혹은 매뉴팩춰적 생산의 그것이 아니라, 기계제 대공장의 그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이 그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곧바로 쏘련 사회의 성격 문제, 즉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였느냐, 사회주의 사회였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계제 대공장의 생산에서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의 소재(所在)가 그 생산, 따라서 그 사회의 성격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도 명백하다.

 

자본은 계속해서 노동력을 상품으로 포섭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이는 노동과정 그 자체 속으로 그대로 지속된다(… and this continues right into the labour process itself). 노동과정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 간의 투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중심적이다. 생산 현장에서의 노동계급의 힘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추진력으로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한 자신들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생산방법을 혁명하도록 강제 당한다.51)

 

실제로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한 자신들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생산방법을 혁명하도록” 하는 자본가들에 대한 그러한 강제가 바로 산업혁명의 추진력이었으며,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과정에 대해 사실상 일체의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것, 즉 노동자들이 자본에 실질적으로 포섭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면, 앞에서 언급되었던 소위 ‘결함 생산’의 문제, 노동력 판매 여부의 문제를 다루면서 저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튼, 틱틴에게 있어 쏘련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력을 팔지 않았고, 따라서 자신들의 노동을 양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양도했다고 틱틴은 주장한다. 자신의 노동 생산물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는 데에서의 주요 관심은 그 노동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경영진은, 노동과정의 최후의 생산물을 소유하긴 했지만,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과정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배자들(elite)은 경제의 총생산물의 생산을 통제하지 못했고, 이와 함께 자신들을 부양하는 데에 필요한 잉여생산물의 생산도 통제하지 못했다.52) (강조는 인용자.)

틱틴이 쏘비에뜨 체제의 근본모순의 기초를 두는 것도 바로 이것에 있다. 한편에는 잉여생산물의 축출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증대된 생산에 대한 지배자들의 요구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그 노동을 최소화하려는 노동계급의 생산과정에 대한 부정적 통제가 있었다. 이 모순은 결함 생산에서 해결되었다.53) (강조는 인용자.)

 

쏘련에서는 경영진은 노동과정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고(management lacked full control over the labour process),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통제했다(the workers … exercis(ed) their control over their own labour)! 쏘련에서는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계급의 부정적 통제가 있었다(…stood the negative control of the working class over the labour process)! ― 바로 이것이, 다름 아니라, 언제나 악의적이고 적대적인 시각으로 쏘련, ‘스딸린주의 체제’를 바라보는 한 뜨로츠끼주의자와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발언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발언은 어쩔 수 없이 더 계속된다. 이렇게,

 

한편에서는 중앙 계획에 의해 세워진 야심찬 생산 목표에,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계급의 권력에 직면하여, 기업의 경영진은 … 노동자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54) (강조는 인용자.)

 

저들에 의하면,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계급의 권력에 직면하여, 기업의 경영진은 … 노동자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만큼 쏘련의 노동자들은 철저한 무권리 상태에 있었다!

쏘련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고, 또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대한 상당한 통제권을 행사했음을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이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들의 다음과 같은 궤변―그러나 우리에게는 중대한 사실을 누설ㆍ확인해주는 궤변―에서도 명확하다.

 

쏘련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대하여 상당한 통제를 행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들이 그들의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기 때문에 경영과 관련하여 노동자들이 예외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누렸으며, 노동과정 내부에서 상품 형태로의 노동력의 완전한 포섭에 저항할 수 있었다는 것만을 의미해야 한다.55)

 

이렇게 저들은 여기에서도 우선, “쏘련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대하여 상당한 통제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쏘련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다”, 또 그리고 쏘련에서는 “경영과 관련하여 노동자들이 예외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누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언해주고 있다.

쏘련에서는 ‘스딸린주의적 관료주의’ 때문에 노동자들이 철저한 무권리 상태, 철저한 무기력 상태에 있었다는 식의,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 자신이나 뜨로츠끼주의자들,56) 그리고 소위 자율주의자들을 포함한 사실상 모든 반쏘ㆍ반공주의자들의 악의적 선전이 모두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음(!)을 저들은 이렇게 스스로 확언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궤변은 또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이라는 자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 자들인가,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논증하는 인간들인가, 어떤 이론적 소양을 가진 자들인가를 보여주는 무척 흥미 있는 자료이다.

우선, 저들은 “노동과정 내부에서 상품 형태로의 노동력의 완전한 포섭” 운운한다. 이런 발언은 당연히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노동력이 노동과정 내부에서 상품 형태로 포섭된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노동력이 노동과정 내부에서 상품 형태로 포섭된다”? ― 이는 실로 시장 바닥에 좌판을 벌이고 목청 높여 싸구려 만병통치약을 파는 어릿광대 같은 ‘맑스주의자’, 즉 좌익공산주의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인식이다.

“노동과정은” 그것을 “단순하고 추상적인 계기에서” 고찰하면, “사용가치들을 생산하기 위한 합목적적인 활동이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연적인 것의 취득이며, 인간과 자연 간의 물질대사의 일반적 조건이고, 인간생활의 영원한 자연조건이며, 따라서 이 생활의 어떠한 형태로부터도 독립적이며, 오히려 인간생활의 모든 사회형태들에 똑같이 공통적이다(vielmehr allen seinen Gesellschaftformen gleich gemeinsam).”57) 자본주의적 생산이라고 해서 ‘노동력이 노동과정 내부에서 상품 형태로 포섭’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노동과정이” “자본가에 의한 노동력의 소비과정으로서 이루어지게”58) 하는 노동력의 판매, 즉 저들의 표현에 의하면 ‘노동력의 상품 형태로의 포섭’은, 노동과정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즉 (노동력) 상품의 유통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노동자 “그가 자본가의 작업장에 들어간 순간부터”, 즉 노동과정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의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따라서 그것의 사용 즉 노동은 자본가에게 속하고”59)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이 속한 자본가의 통제 하에 노동한다.”60)

그런데 저들은, 뜨로츠끼주의자 틱틴도, 좌익공산주의자들인 아우프헤벤(Aufheben)들도 모두, “쏘련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대하여 상당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확인하고 있다. 물론 “상당한”이니, “…할 수 있었다”느니 하며 상대화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쏘련에서의 노동자들의 무권리 상태를 입증하려고 광분하는 반쏘주의자들의 발언임을 감안하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규모의 공동적ㆍ사회적 노동의 특징을 고려하면, 이러한 상대성은 여기에서는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저들의 발언에서 중요한 것은 “쏘련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을 통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의 “독자적인 현상들(eigentümliche Phänomene)”61) 중의 하나인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이 속한 자본가의 통제 하에 노동한다”는 현상과 정면으로 모순된다. 즉,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이 확언하고 있는, 소련에서의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 혹은 “경영과 관련하여 노동자들이” 누린 “예외적으로 유리한 지위”는, 자신들이 입증하려고 하는 것, 즉 쏘련은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버리기는커녕, 그 모순된 사실이 자신들의 견해를 입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간단히 지적하면서 “좌익공산주의 대 힐렐 틱틴”을 끝맺기로 하자.

하나는,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틱틴은 자본주의를 그 순수하고 순혈한 형태 속에 19세기 중엽의 짧은 기간에 한정하고 있다.62)

이렇게 되면, 결국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식견으로는 19세기 중엽 짧은 기간 자본주의는 “순수하고 순혈(純血)한 형태(pure and unadulterated form)”, 오 교수의 번역에 따르면, “순수하고 완전한 형식”을 띠고 있었던 것이 된다. 필시 ≪자본론≫의 분석 대상이 된 19세기 중엽의 영국 자본주의를 염두에 둔 발언일 것이다. “순수하고 순혈한 형태”란, 분석과 일반화를 위하여 맑스가 추상화한 결과가 아니고, 과연 당시의 영국 자본주의 그 자체가 그랬던 것일까?

사실상 “19세기 중엽 짧은 기간” 자본주의는 “순수하고 순혈(純血)한 형태”였다고 보는 저들의 발언이 다름 아니라 틱틴에 대한 다음과 같은 ‘비판’을 아퀴 짓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틱틴은 경제학 범주들의 구체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63)

 

다음엔, 저들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많은 무정부주의자들과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해왔듯이, 러시아 혁명은 결코 한 번도 성공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었다.64)

 

그래! 많은 무정부주의자들과 좌익공산주의자들이, 그리고 사실은 그들만이, 그렇게 주장해왔다. 그리고 좌익공산주의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소위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굉장히 많은 면에서 그렇게 무정부주의자들(anarch-ists)과 그 견해와 주장을 같이한다. 결국 좌익공산주의자들 그들은 그러한 구제불능의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자들이다!

 

 

II. 러시아 혁명과 좌익공산주의

 

주지하듯이 뜨로츠끼주의와 좌익공산주의는 극악한 반쏘ㆍ반공주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치적 동맹자로서 서로 상대방에게 반쏘 영감을 경쟁적으로 불어넣고 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 두 집단은 각각 뜨로츠끼주의자로서의, 그리고 좌익공산주의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상호 대립하고 있다. 예컨대, 뜨로츠끼주의자들의 경우, 앞에서 보았듯이, 57개의 분파로 나뉘어 서로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고, 그 중에는 자칭 국제사회주의자들 혹은 한국의 ‘다함께’처럼 쏘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집단들조차 있는데, 그들은 그러한 극심한 분파주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좌익공산주의자들로부터 구분하여 뜨로츠끼주의자로서 규정하고 있고, 좌익공산주의자들 역시 뜨로츠끼주의자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이 극악한 반쏘ㆍ반공주의자들을 서로 대립적인 두 진영으로 가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뜨로츠끼주의와 좌익공산주의

 

≪쏘련은 무엇이었나≫의 저자들은 이 점을 아주 명확히 하고 있는데, 다름 아니라, 10월 혁명과 그 결과 수립된 사회ㆍ경제ㆍ정치 체제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바로 이 양자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뜨로츠끼주의자들은 10월 혁명을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으로, 그리고 그에 의해 수립된 체제를 사회주의, ‘노동자 국가 체제’로 보고,65) 다만 레닌 사후에, 특히 1928년 이후에 ‘스탈린(주의)의 반혁명’에 의해서 그것이 ‘타락한 노동자 국가’, 혹은 ‘국가자본주의’, 혹은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로 ‘타락’ 혹은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서, 좌익공산주의자들은, 10월 혁명은 노동자들에 의한 혁명처럼 보였지만,66) 그 이후 수립된 체제는 처음부터 ‘국가자본주의’였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많은 무정부주의자들과” 더불어 “좌익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러시아 혁명은 결코 한번도 성공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었다(the Russian Revolution was never a successful proletarian revolution).” 바로 1917년 10월 혁명 이후 1928년까지의 쏘련의 체제 성격에 대한 규정의 차이와 그 때문에 발생하는 이론ㆍ논리 구성의 차이가 이 두 극악한 반쏘ㆍ반공주의 집단을 가르며 대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어느 시기부터의 쏘련을 ‘타도해야 할 체제’로 매도하는가가 양 집단을 가르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쏘련 매도의 시기를 다르게끔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쏘련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꼬민떼른 성립 후 그 내부에서 세계혁명의 전략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책 ‘경쟁’에서 그들이 패배한 시기의 차이이다. 쏘련을 중심으로 얘기하자면, 좌익공산주의자들이 등장하고 패배하게 된 것은 10월 혁명 직후, 특히 브레스뜨 강화조약의 체결(1918. 3.)을 둘러싼 논쟁의 시기부터 신경제정책(NEP)의 도입(1921. 3.)을 둘러싼 논쟁의 시기였다. 그리고 당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주요 투쟁 대상은 레닌이었다. 그에 비해서 뜨로츠끼주의자들이 결정적으로 패배하게 된 것은 레닌(1870-1924. 1.) 사후 1927년까지의 시기였고, 그들의 주요 투쟁 대상은 스딸린이었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쏘련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정과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국제주의 운동에서 패배한 것이 이렇게 10월 혁명 직후부터 꼬민떼른 초기에 걸친 시기였고, 당시 그들의 주요 투쟁 대상이 레닌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바로 그 시기부터 쏘련을 타도 대상, 즉 몹쓸 사회로 매도하고 있으며, 레닌과 레닌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당연히 그 계승자인 스딸린에 대해서 극도의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수세대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 투사들을 악몽처럼 짓눌러온 레닌주의(Leninism … that had weighed like a nightmare on generations of socialists and working class militants)”67) 운운하고 있다. 뜨로츠끼주의에 대한 저들의 다음과 같은 발언과 태도도 레닌과 레닌주의에 대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적의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뜨로츠끼주의에게 있어 레닌주의는 제2인터내셔날에 대한 혁명적 대안이며, 뜨로츠끼주의는 스딸린주의에 대항하는 레닌주의의 혁명적 연속이었다. 공산주의 좌파의 존재는 이러한 상(像)을 위협하고 있다. 그것은 뜨로츠끼주의가 스딸린주의에 대한 유일한 맑스주의적 반대가 결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사실은, 앞으로 보게 되듯이, 그것은 뜨로츠끼주의가 과연 ‘혁명적’ 반대였는지 아닌지 묻고 있다.68)

 

“그것은 뜨로츠끼주의가 스딸린주의에 대한 유일한 맑스주의적 반대가 결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 뜨로츠끼주의나 좌익공산주의를 맑스주의(적)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뜨로츠끼주의자들이나 좌익공산주의자들 자신의 주관적 규정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이러한 발언은 그들 양자가 ‘스딸린주의’에 대하여 공동의 전선을 펴고 있음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적대적으로 묻고 있다. “뜨로츠끼주의가 과연 ‘혁명적’ 반대였는지 아닌지”? 다름 아니라, “뜨로츠끼주의는 … 레닌주의의 혁명적 연속이었다”(?)는 것이 그 적대의 이유이다. 저들 스스로 (혁명적) 맑스주의라고 자임하는 것이 그렇듯이, 뜨로츠끼주의가 “레닌주의의 (혁명적) 연속”이라는 것 또한 저들의, 특히 뜨로츠끼주의자들의 자임 그것, 혹은 부당한 주관적 재단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적대와 극찬
   ― ‘현실 사회주의’의 유례없는 반노동자성, 반혁명성 (1)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10월 혁명 후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즉 쏘련의 유례없는 반(反)노동자성과 반(反)혁명성을 이렇게 폭로한다.

 

[10월 혁명 후에: 인용자] ‘공산주의적’이라는 단어는, 모든 반대파에 대한 가혹한 억압을 동반한, 생산수단의 국가 통제 체제와 결합되었다. 전 세계의 노동자 운동은 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모델에 의해서, 그리고 그에 순응하는 당들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이들 체제와 당들의 역할은,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이 이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죽이는 것이었다.69)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에 의하면, 쏘련 체제와 쏘련을 지지하는 전 세계 공산당, 노동자당들의 “역할은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이 이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죽이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쏘련 체제는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ordinary capitalist repression)”보다 그만큼 더 훨씬 억압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들 공식적인 공산당들로부터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러시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한 집단이 좌익공산주의자들 즉 ‘공산주의적 좌파’였다”!70)

그러면 10월 혁명 후 쏘련에서는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보다 더 억압적인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혹은 어떤 “악몽”이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 투사들을 짓눌러온” 것일까? 몇 가지만 확인해보자. 물론 마땅히 치매환자와 같은, 그리고 정신분열자와 같은 사고를 하는 저들 자신의 발언을 통해서!

맨 먼저, 우리는 이미 앞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인했다. 우선 한편에서,

 

뜨로츠끼: “산업의 관리자는 초(超)관료주의적으로 되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의 관리에 관한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영향력을 상실했다. 성과급 임금, 어려운 물질적 생존조건, 이동의 자유의 부재(不在)로, 모든 공장 생활을 파고드는 가공할 경찰의 억압으로, 노동자가 스스로 자유로운 노동자임을 느끼기는 참으로 힘들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뜨로츠끼주의자 틱틴과 좌익공산주의자들인 아우프헤벤: 소련에서는 “주택이나 유아 보육, 교통과 같은,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들 가운데 커다란 비율이 무료로 공급되었거나 [그에 대해] 높은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쏘련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대하여 상당한 통제를 행사할 수 있었다.” 쏘련에서는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다.” 쏘련에서는 “경영과 관련하여 노동자들이 예외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누렸다.”

 

이 발언들은, 앞에서 본 것처럼, 모두 우리가 지금 검토하고 있는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제2부 비생산양식으로서의 러시아’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다. 참으로 이렇게 10월 혁명 후 쏘련에서는, “주택이나 유아 보육, 교통과 같은,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들 가운데 커다란 비율이 무료로 공급되었거나 [그에 대해] 높은 보조금이 지급되었(을)” 만큼,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대하여 상당한 통제를 행사할 수 있었(을)” 만큼,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했(을)” 만큼, “경영과 관련하여 노동자들이 예외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누렸(을)” 만큼,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보다 더 억압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나 쏘련이라는 체제가 얼마나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이 이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죽”였는가에 대한 보다 더 생생하고 웅변적인 증언, 그것도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 자신의 증언은 그들의 ≪소련은 무었이었나≫의 ‘제1부 뜨로츠끼와 국가자본주의’ 중 ‘제1절 뜨로츠끼의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서의 쏘련론’에 기록되어 있다.

그 책 ‘제1부’ ‘제1절’에서의 이 기록은, 쏘련 체제의 “역할은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이 이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죽이는 것이었다”는, ‘제3부 좌익공산주의와 러시아 혁명’에서의 단죄와 더 없이 수미일관한(!), 즉 더 없이 좌익공산주의자들다운 증언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글쓰기에서라면 도저히 허용되기 어려울 만큼) 길게 인용한다. (참고로, 오 교수님의 ‘번역’본에는 여러 곳이 오역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절반가량이 ‘번역’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렇게 제외되어 있는 부분은 궁(弓)괄호({})로 묶어서 구별해 둔다. 그리고 강조는 모두 인용자인 나의 것이다.)

 

서론

{아무리 비판적으로 그리 하였다 하더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진보적’이었던 것으로서 쏘련을 옹호하려고 해왔던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은 지금은 쉽다. 하지만 반(半)세기 이상 ‘쏘련을 옹호하는 것’은 거의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 중심적인 문제였고, 일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는 중대사이다. 이것의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혁명이 과거 수세대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 전사(戰士)들에게 끼쳤음에 틀림없는 심심(甚深)한 충격(profound impact the Russian Revolution must have had on previous generations of socialists and working class militants)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한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1) 러시아 혁명

{러시아 혁명이 당시 노동계급 운동에 끼쳤던 심심한 충격을 상상하는 것은 아마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제국의 노동 대중들은 대전(大戰)의 한복판에서 봉기하여 가공할 짜르 경찰국가를 전복시켰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유럽 전체를 유례없는 규모의 전쟁 속으로 몰아넣었고, 노동계급을 더욱더 전쟁과 빈곤에 빠뜨리는 것 말고는 거의 다른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때에} 러시아 혁명은 평화와 번영이라는 진정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열어젖뜨렸다. 근로인민이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는 사상에 코웃음을 치던, 그리고 공산주의는 어떤 점에서는 ‘인간 본성’에 반한다는 근거로 그 실현 가능성을 부인하던 모든 냉소가(冷笑家)들을 이제, 바로 그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 중에 있는 노동자 국가라는 생생한 본보기로 논박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 볼쉐비끼의 혁명적인 그러나 규율이 있는 정치는 제2인터내셔날의 의회주의적 사회주의의 책략 및 타락과 확연히 대비되었다. {국제주의를 선언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2인터내셔날의 개량주의적 사회주의 정당들은 예외 없이 모두 자기 나라 지배계급의 꽁무니에 도열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 세대의 노동계급 전체를 전쟁이라는 지옥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유럽을 휩쓴 혁명적 물결과 함께 {수십만 명이} 볼쉐비끼 모델에 기초하여 새로 결성된 공산당들로 {모여들었고}, 모스끄바가 지휘하여 새로 결성된 제3인터내셔날 속에서 단결했다. 애당초부터 제3인터내셔날의 주요 임무는 쏘련에 대한 지원을 구축하는 것이었고, 볼쉐비끼 정부에 대한 주요 서방 열강 측의 더 이상의 무력간섭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결국 당시에는 러시아의 방어가 곧 사회주의의 방어라는 것이 자명하게 보였음에 틀림없다.

 

(2) 1930년대와 제2차 세계대전

{1930년대에는 제1차 대전 후 유럽을 휩쓸었던 혁명운동들이 거의 패배하기에 이르렀다.} 파시즘이 발흥하고 {한 세대 이내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즉각적인 사회주의 혁명의 희망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것이 쏘련의 매력을 감소시키지는 않았다. 정반대로 쏘련은 자본주의 서방의 절망 및 침체와 대조되면서 희망의 봉화(烽火)로 우뚝 섰다.

자본주의는, 그 모두가 다 모든 사람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게 될, 전기, 세탁기, 진공청소기, 자동차, 라디오, 그리고 심지어 텔레비전의 발전으로 생산 역량을 전례 없이 발전시켰지만, 세계를, 수백만 명을 실업과 빈곤에 빠뜨리는 전례 없는 경제 침체 속에 몰아넣었다. 시장(市場) 세력들의 무정부 상태에 의해 야기된 이러한 경제 침체와는 확연히 대조적으로, 쏘련은 후진적인 러시아 경제를 일변시키고 있던 합리적인 중앙 계획의 놀라운 가능성들을 보여주었다. 스딸린의 5개년 계획들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사회주의적 계획’의 명백한 성과들은, 경제 침체라는 함정에 빠진 노동계급의 마음뿐 아니라, 이제 자본주의에 대한 모든 신뢰를 상실해버린, 갈수록 더 많은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마음에도 호소력이 있었다.

{물론 애당초부터 쏘련은 부르주아 선전 기구가 만들어내는 거짓말들과 왜곡에 시달려왔고, 쏘련에 대한 헌신적인 지지자들은, 그들이 노동계급이든, 아니면 지식인들이든, 스딸린 하의 숙청과 정치재판에 대한 보도들을, 사회주의와 쏘련 모두를 불신하도록 만들려는 또 다른 시도로 어렵지 않게 치부해버렸다.} 설령 그 보도들이 기본적으로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필경 수억의 인민에게 혜택이 될, 그리고 자본주의를 전복함으로써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 하는 생생한 본보기를 나머지 세계에 보여주고 있는 거대하고 극적인 경제적ㆍ사회적 일대 변화를 위해 지불할 작은 대가로 보였다. {부르주아 언론은 소수 개인의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징징거렸지만, 스딸린은 미래의 빈곤과 기아로부터 수백만 명을 해방시키고 있었다.}71)

 

이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좌익공산주의자들, 곧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저자들 자신의 발언이다! 결코 반어적 발언도, 빈정거림도 아니다! 아주 진지하게 전개하고 있는 발언이다!

믿기는가?! 저들의 또 다른 발언에 의하면, 쏘련의 역할은 얼마나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이 이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죽이는 것”이었던가?! 레닌주의는 얼마나 “수세대 동안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 투사들을 짓눌러온” “악몽”이었던가?!

 

 

1939년의 쏘련-독일 불가침조약

 

그러나 물론 여기에서 그친다면 저들은 결코 좌익공산주의자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렇게 이어가며 좌익공산주의자들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당당히 증명한다.

 

{물론 좌익 모두가 ‘엉클 조(Uncle Joe)’ 스딸린의 상냥함에 포획된 건 아니었다.} 볼쉐비끼 정부의 본래 지도자의 대부분의 숙청과 추방, 히틀러와의 불가침조약에서 절정에 달한 대외정책의 우왕좌왕, 제3인터내셔날을 통해 여러 공산당들에 강요된 정책의 반전들, 1937년 스페인 혁명의 배신, 이 모두가 스딸린과 쏘련을 의심하게 만들었다.72)

 

참으로 장하고 장하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이여! 그 악의적 과장,73) 무지, 혼란, 그리고 “스페인 혁명의 배신” 같은 파렴치를 극한 역사의 위조조차도!

저들이 말하는 쏘련과 스딸린의 “스페인 혁명의 배신”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는 조금 뒤에서 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우선, “히틀러와의 불가침조약”에 대해서부터 보자.

당시 나찌 독일의 대대적인 전쟁 도발, 따라서 쏘련 침략은 누가 보기에도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남은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였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독일과 어떤 나라 간에, 따라서 또 독일과 쏘련 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건곤일척의 전쟁, 즉 피차가 모두 그 흥망 자체를 걸어야 하는 전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엔 독일과의 전쟁이 불가피함을 알면서도 그 전쟁을 늦추며 시간을 벌기 위해서, 1938년 9월의 뮌헨협정을 통해서 체코를 진상하면서까지 쏘련을 침략하라고 히틀러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독점자본들 역시 사회주의 쏘련을 침략하여 파괴하고 궤멸시키도록 히틀러를 부추기며 대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이제는 주지의 사실이 된, 당시의 정세였다.

따라서 그 건곤일척의 전쟁에서 패망하지 않기 위해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야 했고, 뿐만 아니라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그 전쟁의 개시를 늦추며 시간을 벌어 군비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당시 쏘련이 처한 상황이었다. 1939년의 독쏘 불가침조약은 그렇게 해서 맺어진 쏘련의 고육지책이었고, 사실 외교적 성과였다.

그런데 그러한 외교적 성과가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절정에 달한 대외정책의 우왕좌왕”으로 보이는가 보다. 하기야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 결코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아닐 터이니, 끝내 그렇게들 살다가 가실 수밖에!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레닌과 레닌주의는, 앞에서 본 것처럼, “수세대 동안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 투사들을 짓눌러온” “악몽”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다르다. 그리하여, 아직 고립되어 있고, 국제적 제국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아직 강력하지 못한 사회주의 국가가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전쟁의 위협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를 레닌으로부터 들어보자.

우선 레닌은, 독일ㆍ오스트리아ㆍ헝가리ㆍ터키 등 제1차 대전의 동맹국들과 신생 사회주의 러시아 간의 전쟁을 끝내게 한 브레스뜨-리또프스끄 강화조약(Brest-Litovsk Peace Treaty)의 체결이 “이미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갈등을 더욱 첨예하게 했다”74)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는 이 조약의 체결을 반대했고, 그것이 체결된 후에도 앙앙불락하던 좌익공산주의자들을 향하여 레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 그것[즉, 강화의 체결이 제국주의 열강 간의 갈등을 더욱 첨예화시킨 것: 인용자]이야말로 사실이다. 그것이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강화 체결의 반대자들이 객관적으로 제국주의자들의 노리개이자 그들의 함정에 빠진 자들인 이유이다. 왜냐하면, 국제적 제국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국제적인 사회주의 혁명, 더욱더 많은 나라들을 포괄하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한, 제국주의자들 상호 간의 갈등이 이들을 더욱 약화시키고 다른 나라들에서의 혁명을 더욱 앞당길 때까지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전쟁하지 않는 것, 그 전쟁을 회피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어떤 한 나라에서 (특히 뒤떨어진 나라에서) 승리한 사회주의자들의 직접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진리(diese einfache Wahrheit)를 우리 “좌익”은 1월에도, 2월에도 그리고 3월에도 이해하지 못했다. …75) (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우리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지금도 바로 “이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객관적으로 제국주의자들의 노리개가 되어”, 혹은 “그들의 함정에 빠져”, 혹은 필시 그 가운데 어떤 자들은 어쩌면 제국주의자들의 비열한 앞잡이가 되어, “히틀러와의 불가침조약에서 절정에 달한 대외정책의 우왕좌왕” 운운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오세철 교수께서 그 ‘분석’을 극찬하며 번역하고 있는 이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더 없는 장점은 그 저자들이, 그리고 물론 그 번역자도,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모른 채 스스로가 스스로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서술을 이렇게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쏘련의 역할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고, 그것도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만이 아니었다. 1940년에 독일과의 불가침조약이 일단 끝나자76) 쏘련은 반파시즘의 기치 하에 전쟁에 돌입할 수 있었고77) 히틀러를 궁극적으로 패배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78) {유럽 전역의 지배계급들이 파시즘에 공감했고, 프랑스의 경우 점령 독일군과 협력한 반면에} 공산당들은 파시즘을 패배시키는 데에 조력한 레지스땅스와 빨치산 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 결과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에서 공산당들은, 대부분의 매국노적인(Quisling) 부르주아 정당들과는 대조적으로, 애국적 반파쇼 운동의 투사들임을 주장할 수 있었다.}79)

 

아, 저들은 얼마나 훌륭하게 증언하고 있는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즉 쏘련과 “그에 순응하는 당들의 역할”이 얼마나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이 이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죽이는 것”이었는가를 말이다!

이렇게 저들 스스로 나찌 독일과 파시즘을 패퇴시키는 데에서의 쏘련의 역할뿐 아니라 기타 공산당들의 역할, 그 영웅적 투쟁을 증언하고 있다. 그 때문에 다른 한편에서 저들이 “제3인터내셔날을 통해 여러 공산당들에 강요된 정책의 반전들” 운운하는 악의의 헛소리들에 대해서는 새삼 언급할 가치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실 “… 정책의 우왕좌왕”이니, “정책의 반전들”이니 하는 발언들은 그야말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특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책을 변환해야만 하게끔 하는 구체적 현실들, 객관적ㆍ주체적 조건들의 변화를 주목하는 것은 결코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자질일 수 없으며, 오직 그 앙상하디 앙상한 ‘원칙’, 즉 교조만이 언제나 저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쏘련과 스딸린은 1937년에 스페인 혁명을 배신했다?

 

저들이 “… 1937년 스페인 혁명의 배신, 이 모두가 스딸린과 쏘련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운운에 대해서도 약간의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쏘련과 스딸린이, 그리고 그들의 ‘지령을 받는’ 스페인 공산당이 “1937년에 스페인 혁명을 배신했다”는 주장은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정부주의자들, 즉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기도 하고, 뜨로츠끼주의자들 대부분의 주장이기도 하다. 진실은 무엇일까?

저들이 밑도 끝도 없이 쏘련과 스딸린이, 그리고 그들의 ‘지령을 받는’ 스페인 공산당이 “1937년에 스페인 혁명을 배신했다”고 주장할 때, 저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필시 일반적으로 “스페인 내전 속의 내전”80)으로 알려진 ‘5월 사건(May Days)’일 것이다. 따라서 이 ‘5월 사건’의 배경과 원인, 그 경과ㆍ귀결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저들은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 1937년 스페인 혁명의 배신, 이 모두가 스딸린과 쏘련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운운하고 있다. 이는, 스페인 현대사에 대한 다수 대중의 자세한 지식ㆍ정보의 부족을 기화로 자신들의 일방적 관점을 기정사실화하려드는 이데올로기 조작이다.

공화주의적 인민전선 정부에 적대하여 1936년 7월 파시스트 프랑코 장군이 일으킨 반란ㆍ반혁명으로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주지하는 것처럼, 유럽에서의 제2차 대전의 사실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파시즘과의 건곤일척의 전쟁이었다. 이 스페인 내전과 ‘내전 속의 내전’이라는 문제의 ‘5월 사건’의 의의를 일본의 두 역사책의 기술(記述)을 통해서 들여다보기로 하자.

혹시 독자에 따라서는 ‘스딸린주의적 시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식의 오해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리 밝혀두자면, 이 두 권의 책을 이용하는 것은 단지 그것들이 지금 내 수중에 있다는 극히 편의주의적인 이유뿐이다. 그 저자들은, ‘스딸린주의적’이긴커녕, 자신들이 제시하는 역사적 사실과도 상반되게, “스페인 공산당에 대한 쏘련의 영향이 강화됨에 따라서 스딸린의 숙청이 이 나라에도 도입되어 공화국 측의 분열을 한층 크게 했다”81)거나 “당시 꼬민떼른의 체질이 일괴암적(一塊岩的 [즉 한 덩어리의 바위 같았던])이었던 것과, 스페인 공산당이 정치지도에서 쏘련 공산당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에 의해서 스딸린의 ‘숙청’이 스페인에 도입되어 스페인의 반(反)프랑코 세력 내부에 치명적인 분열이 생기고, 결국엔 반프랑코 투쟁을 패배로 이끌게 된다”82)라고 쓸 만큼, 즉 그러한 상투적인 반쏘ㆍ반공 선전을 그대로 옮겨놓을 만큼 정치적ㆍ이념적으로 오히려 반쏘ㆍ반스딸린적 성향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내전이 발발할 당시의 스페인의 정세는 대략 이러했다.

 

[스페인에서는] 오랫동안 독재에 의해서 지탱되어온 왕정이 무너진 후 1931년 말에 제2공화정이 발족했다. 하지만, 주민 3명 가운데 1명은 문맹, 토지소유자의 경우 2%가 경지(耕地)의 반절 이상을 점유하는 반주변(半周邊) 국가에서, 더욱이 세계공황의 중압(重壓) 하에 민주주의를 키우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공화파와 사회당의 연립으로 구성된 공화국 정부는 남녀보통선거를 실시하고, 국가와 교회를 분리했으며, 군대를 개혁 혹은 완화하면서 농지개혁에도 몰두했다. 이에 대해서 지주ㆍ자본가ㆍ성직자ㆍ장교 등 전통적 엘리트 사이에 위기감이 높아지고, 팔랑헤당(Falange) 등 반(反)공화주의 급진우익정당이 결성되었다. 1933년의 총선에서는 독일에서의 나찌의 집권에 고무되어 우익이 진출하여 내각에도 참여했다. 이에 마드리드나 북부 공업지역의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대항했으나, 그 실패는 공화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폭넓은 통일전선 결성의 필요를 통감하게 했다. 당시 이 나라의 노동전선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ㆍ사회당ㆍ공산당ㆍPOUM(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뜨로츠끼파)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였다. 험준한 산악으로 구획되어 있는 지역마다의 고립성, 신앙심이 돈독한 농민의 전통, 근대 스페인 국가의 사회로부터의 단절 등의 요인은 스페인 노동자들을, 국가를 중시하는 맑스주의보다도 모든 권위나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아나키즘에 향하게 했다. 하지만 노동전선 통일의 중추가 된 것은 여기에서도 사회당과 공산당의 협력으로서, 여기에 기타 좌익이나 공화파가 참가하여 1936년 1월에, 프랑스보다 약간 뒤늦게, 인민전선협정이 성립되고, 2월의 총선거에서 이 파가 대승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보수파는 민주주의의 승리에 반란으로써 대응했다. 1936년 7월 식민지 모로코에서 시작된 프랑코 장군의 쿠데타에 본국의 반동세력이 호응하여 곧 국토의 3분의 1이 그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유럽의 반주변국 스페인은 또한 그 내부에도 중심과 주변이라는 중층적 구조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식민지 모로코에서 반란을 일으켜 모로인 부대[모로코 현지인으로 편성된 식민지 군대]를 선두로 삼아 본토에 침략한 프랑코의 반혁명은 본토에서도 주민의 정치의식이 뒤떨어진 농업지역에서 우선 근거지를 획득했다. 이에 대해서 수도(首都)나 공업지역을 확보했던 공화파의 입장은 처음엔 결코 불리하지 않았다. 이 형세를 역전시킨 것은 중심적 파시즘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개입이었다. 양국은 8만이 넘는 병력과 대량의 무기나 자금을 스페인에 투입했고, 공군과 해군도 직접 도시폭격이나 함포사격에 참가했다.83) (강조는 인용자.)

 

독일의 프랑코에 대한 경제원조는 약 5억4,000만 마르크로 추정되고 있고, 독일이 스페인에 보낸 병력은 약 1만 명이었다. 한편 이탈리아는 독일 원조액의 2배에 달하는 약 68억 리라의 경제원조를 제공하고, 스페인에 약 7만2,000명의 병력을 보냈다. 또 사라자루 독재 하의 포르투갈은 프랑코를 지지하여 국토를 독일ㆍ이탈리아 군과 군수품의 수송로로서 제공했다.84)

 

그러면 독일과 이탈리아가 “프랑코를 원조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독일의 공군 사령관 괴링이 후에” 술회한 것처럼,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85)였다.

아무튼 이렇게 독일과 이탈리아의 개입으로 프랑스 내전은 국제전으로 되고, 특히 공화주의적 인민전선 정부가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리게 되었는데, 그에 대한 각국, 특히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국가들의 태도와 대응은 어떠했는가?

 

이 형세[공화파가 결코 불리하지 않았던 형세: 인용자]를 역전시킨 것은 중심적 파시즘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개입이었다. 양국은 8만이 넘는 병력과 대량의 무기나 자금을 스페인에 투입했고, 공군과 해군도 직접 도시폭격이나 함포사격에 참가했다. 이에 대해서 영국은 불간섭정책을 취하여 파시즘의 국제협력을 묵인했고, [당시 인민전선 정부가 집권하고 있던: 인용자] 프랑스도 이에 질질 끌려갔다. 유독 쏘련만이 병사와 무기를 보내 공화국을 지원했다.86) (강조는 인용자.)

 

미합중국은 스페인 전쟁에 대해서는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프랑코는 그 석유의 4분의 3 정도를 미국의 석유자본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었다.87)

 

결국 쏘련과 스딸린은 그렇게 스페인 혁명을 배신했다! 주지하는 것처럼, 당시 쏘련은 아직 신생 사회주의 국가, 그것도 누가보기에도 임박한 나찌 독일의 침략에 대비하여 시급히 경제와 군비를 건설ㆍ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었다. 그러한 조건에 있던 쏘련과 스딸린은 스페인 공화국 정부를 이렇게 지원했다.

 

마드리드가 프랑코 군에 의해서 공격받기 시작한 10월 23일, 쏘련 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지금이야말로 [영국이 주도했던: 인용자] 불간섭협정이 두세 개 참가국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유린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즉, 반란군에 대한 무기의 공급자가 제재받지 않고 있다”고 선언하며, 스페인 공화국 정부에 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할 권리를 회복시킬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쏘련 정부는 불간섭 협정에 의해 구속받지 않고 스페인에 무기를 수출한다고 선언했다. 쏘련은 마침내 8월에 1,200만 루블의 신용을 스페인 공화국 정부에 제공하고, 나아가 10월 27일 쏘련 노동자들로부터 모금하여 4,739만 루블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쏘련 전차(戰車)는 10월 29일에, 비행기가 11월 11일에 내전 중의 스페인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

쏘련이 스페인에 보낸 무기는, 쏘련의 발표에 의하면, 군용 비행기 806기, 전차 362대, 장갑자동차 120대, 대포 1555문이었다. 이러한 무기원조는 쏘련이 스페인 공화국에 판 것이었다.88)

 

그런데 국제전화한 스페인 내전에서는, 쏘련(과 카르데나스의 멕시코)을 제외한 ‘자유민주주의’ 열강들이 ‘불간섭 협정’으로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의 무기수입을 봉쇄하면서 “파시즘의 국제협력을 묵인”하고 있었던 반면에,

 

프랑스ㆍ영국ㆍ미국 등 많은 나라들로부터 민간의 지식인이나 노동자들이 반(反)파시즘의 정열에 불타 스페인에 모였다. 총 3만에서 4만에 이르는 국제의용군(International Brigades) 청년들이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고, 또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공화국 지원 모금에 응했으며, 마드리드 공방전의 뉴스에 일희일비했다. 국가를 뛰어넘은 반파시즘 연대의 고리는 정부보다도 우선 민중의 마음속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이에 앞서 1936년 10월 말 프랑코는 마드리드에 100km까지 진군하여 수도의 함락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시민은 이 도시를 이후 2년 반 동안이나 사수하고 있었다.89)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절체절명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문제의 ‘5월 사건’이 발생했고, 그것을 들어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이나 뜨로츠끼주의자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쏘련과 스딸린의 스페인 혁명 배반’ 운운하고 있다. 그 ‘사건’의 성격과 전후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전이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 인민전선 내부의 세력의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래의 설명 역시,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스딸린주의적’이기는커녕, 반쏘ㆍ반스딸린적 성향이 농후한 바로 그 자료에 기초한 것이다.

 

처참한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인민전선 내부에서도 세력의 소장(消長)이 두드러졌으며, 가장 약진한 것은 공산당이었다. 이 당이 프랑코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제일 중시하여 성급한 사회혁명을 피하고, 공화파와의 협력을 중시한 것, 일괴암적 조직을 가진 이 당이 군사적으로 유능했던 것, 나아가 쏘련이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원조한 유일한 나라였던 것 등이 공산당의 세력 신장을 도왔다.90)

 

이 서술 속에는 혁명적 정당이 어떻게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가가 사실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있다. 다름 아니라, 바로 정세 그것이 요구하는 전술ㆍ전략 바로 그것이다! 이 문제는, 저들의 ‘배신’ 운운과 관련하여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약간은 보다 상세한 서술도 들어보자.

 

내전이 발생한 이후 공화국 내에서 가장 세력을 키운 것은 공산당이었다. 본래 공산당은 그 조직이 엄격한 당이고, 군사적으로 능률적이었던 것, 또 쏘련이 공화국을 원조하고, 꼬민떼른이 국제의용병의 조직에 열심이었던 것이 스페인 공산당이 그 세력을 키우는 데에 기여했다. 인민전선 측에 섰던 정규군 군인들 중에도 군사적 능률이라는 관점에서 공산당을 지지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내전 발생시 약 2만 명이었던 공산당이 1937년 여름에는 3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혹은 1936년 봄에는 5만, 1937년 여름에는 100만 명이었다는 설도 있다).

내전이 발생하자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 파시스트로부터의 민족해방을 위해서 싸운다고 하는 노선을 표명했다. 당시의 공산당은 우선 프랑코와의 전쟁, 및 프랑코 배후에 있는 독일ㆍ이탈리아와의 전쟁에 승리를 거두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공산당은 정당이나 조합의 민병을 일원적인 지도 하에 두는 데에 노력하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성급한 혁명을 배제하고 정부나 공화파와의 제휴를 강화했다. 공산당원의 급격한 증가도, 노동자계급으로부터보다도, 군인이나 지식계급으로부터의 입당이 많았다.91)

 

물론 아나키스트들이나 뜨로츠끼주의자들이 공산당의 이러한 세력신장을 그냥 지켜보고, 또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할 리가 없다. 그것은 그들의 기질이 아니다. 그래서 ‘내전 속의 내전’, ‘5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이에 대해서 통제를 혐오하는 아나키스트들은 정규군의 건설에 반대했고, 공산당이 주장하는 공화파와의 제휴나 인민전선의 여러 정파들과 노동조합을 일원적 지도 하에 두는 것에도 반대했다. 이리하여 공화국 정부 내에서 공산당과 아카키스트ㆍPOUM의 대립이 격화되고, 내전 말기에는 두 파가 피로써 피를 씻는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92)

 

역시 보다 상세한 서술을 보자. (어쩔 수 없이 인용이 길어지는 것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공산당과 대조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것이 아나키스트였다. 아나키스트는 카탈루냐와 아라곤 지방에서 ‘자유주의’를 위한 ‘아나키스트 혁명’을 실행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라곤에서는 농업과 공업의 ‘집산화’가 추진되고 있었다. 이 방식에 의해서 소기업이나 수공업자의 소자산, 농민의 토지가 몰수되고, 평등임금ㆍ화폐의 폐지 등도 이루어졌다. 민병에 계급은 없었다. 일요일에는 전투도 쉬었다. 그것은 아나키즘 사회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에게는 군사기술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민병제를 고집하여, 일원적인 정규군의 건설에 반대한 아나키스트들은 군사훈련을 받지 않고 군사규율을 혐오하는 민병을 전선에 보내 희생자의 수를 많게 했다. 교회를 불사르는 데에 대량의 휘발유를 소비하여 수송용의 휘발유가 부족해진 일도 있었다.

민병조직을 고집하는 또 하나의 세력에 POUM이 있었다. POUM은 꼬민떼른이나 스딸린에 반대하는 맑스주의 당이었기 때문에 아나키즘과는 명백히 달랐지만, 군대문제에 관해서는 반공산당의 입장에서 아나키스트들과 일치해 있었다. POUM은 자본주의적 반동인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방법밖에 없다며, 무산사회(無産社會)의 모델이 될 민병을 ‘부르주아적’인 군대로 바꾸는 데에는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POUM 조직은 국지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었고, 대중적인 넓이를 갖지 못했다.

공산당의 군대의 일원화 주장과 아나키스트들이나 POUM의 민병 유지 주장의 대립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이 점에서 수상이었던 라르고 카바예로(Francisco Largo Caballero)는 정서적으로는 아나키스트나 POUM의 주장에 가까웠지만, 현실적으로 쏘련이나 외국 공산당의 지지를 얻고, 무기원조의 통로로서 유력해진 스페인 공산당에 어느 정도는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6년 말 스딸린은 라르고 카바예로에게 편지를 보내 농민ㆍ중소부르주아지ㆍ공화파, 특히 아사냐(Manuel Azaña y Díaz, [인민전선 정부의 대통령직에 있던 공화주의자: 인용자])를 아군으로 삼도록 권고했다. 또한, 외국의 재산을 지키도록, 외국으로부터 공산주의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아울러 권고했다. 라르고 카바예로는 UGT(Unión General de Trabajadores, [사회당 계열의 노동총연맹: 인용자])나 CNT(Confederación Nacional del Trabajo, [바로셀로나 중심의 스페인 아나키스트 계열의 ‘전국노동자연맹’: 인용자])에 의한 공업이나 농업의 집산화를 정지시켰다. …

1937년 바르셀로나에서는 아나키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PSUC)93) 간의 대립이 격렬해지고, 폭력사건이나 암살사건이 일어났다. 이 즈음 공화국의 네그린(Juan Negrín López) 재무장관은 아나키스트 민병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국경의 세관을 정부의 손에 넣기 위해서 경비병을 출동시켰다. 이 사건으로 8명의 아나키스트가 살해되었다고 한다.

1937년 5월 3일 PSUC의 당원으로 카탈루냐 주정부의 치안부장인 로드리게스 살라스(Eusebio Rodríguez Salas)가 바르셀로나 전화국을 시찰했다. 전화국의 노동자는 거의가 CNT의 멤버였고, 아나키스트들이 전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국의 종업원은 로드리게스에게 발포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것이 CNTㆍPOUM 노동자들의 반정부 시가전으로 확대되어 바르셀로나에는 스페인 내전 속의 내전이 전개되었다. 5월 3일 밤 CNT와 바르셀로나 주정부 사이의 교섭이 정체되어 있는 가운데 바르셀로나 시가의 조합이나 정당본부의 지붕에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아나키스트들이나 POUM은 카탈루냐 주정부로부터의 PSUC 각료의 파면을 요구하면서 정부나 공산당, PSUC 건물을 공격했다. 라르고 카바예로 내각의 아나키스트 각료는 총격의 중지를 호소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 총격전에서 1,000명 정도가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월 5일, 카탈루냐 주정부 수상 루이스 콤파니스(Lluís Companys)는 PSUC의 각료를 주정부에서 퇴진시킴으로써 CNT와 휴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날 밤, 새로 각료로 지명된 카탈루냐 UGT의 간부 안토니오 쎄세(Antonio Sesé)가 살해되자 발렌샤(Valencia) 중앙정부의 태도가 굳어졌다. 6일, 수명의 정부돌격대와 해군이 발렌시아로부터 바르셀로나로 출동했다. 아라곤 전선으로는 막 공산당에 가입한 군인 포사스(Sebastián Pozas Perea)가 파견되어 아나키스트ㆍPOUM 민병을 무장해제시켰다. 5월 8일 CNT는 정전(停戰)을 선언했다.94)

그리고는 당연히 이 ‘내전 속의 내전’에 대한 책임추궁이 뒤따랐다.

이것이, 쏘련과 스딸린에 대해서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일본의 역사가들을 통해서 본, 저들 좌익공산주이자들과 뜨로츠끼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는 “스페인 혁명에 대한” 쏘련과 스딸린의 “배신”의 전말이다.

이들의 ‘배신’이 얼마나 치떨리는 그것이었는가는 반파시즘 투쟁에 목숨을 걸고 각국에서 스페인으로 달려왔던 국제여단(International Brigades)의 전사(戰士)들, 즉 외국인의용군들이 입증해주었다. 그들은 1938년 10월에 인민전선 정부의 네그린(Juan Negrin López) 수상이 국제연맹에 그 철수를 요청하고 해산을 명령할 때까지 그 ‘배신자들’을 지지하며, 그 ‘배신자들’과 함께 반파시즘 전쟁을 수행했던 것이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온 링컨여단(Abraham Lincoln Brigade)의 많은 전사들은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온 편지에서 CNT와 POUM의 행태와 반란에 대해서 진한 증오를 표하곤 했다는 글을 언젠가 읽은 적이 있지만, 당장 수중에 그 자료가 없어 전거를 댈 수 없는 게 유감이다.

아무튼,

 

[1938년] 11월 15일 바르셀로나에서 국제여단의 송별식이 거행되었다. 이때 스페인 공산당의 돌로레스 이바루리(Isidora Dolores Ibárruri Gómez, [‘La Pasionaria’(정열의 꽃)이라는 애칭으로 더욱 유명한 스페인 내전의 여성투사. 1942년에서 1960년까지 스페인 공산당 총서기. 이후 1989년 11월 사망 시까지 스페인 공산당 명예의장: 인용자])는 이별의 연설에서 국제여단의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당신들은 역사입니다. 당신들은 전설입니다.”95)

 

 

쏘련 및 각국 공산당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지지
   ― ‘현실 사회주의’의 유례없는 반노동자성, 반혁명성 (2)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현실 사회주의’, 즉 쏘련이, 따라서 레닌 지도 하의, 그리고 스딸린 지도 하의 쏘련이 얼마나 반노동자적이었으며, 얼마나 반혁명혁적이었는가에 대한 저들의 증언, 혹은 고발은 1950년대로 계속된다. 다만 지금부터는 행간에 보다 더 좌익공산주의자들다운 진한 악의를 실어서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서반구의 이의 없는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쏘련에서는(in the USSR) 이제 강력한 적수(rival)를 만났다. 쏘련은 더 이상 서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한 세계자본축적의 주변에 있는(at the periphery of world capital accumulation centred in Western Europe and North America) 고립된 후진국이 아니었다. 1930년대 스딸린 하에서의 급속한 공업화가 쏘련을 주요한 공업ㆍ군사 강국으로 바꾸었고, 전쟁으로 유럽의 절반이 쏘련의 통제 하에 남았던 것이다. 1949년의 중국 혁명으로 이제 인류의 3분의 1 이상이 ‘공산주의의 지배’ 하에(under ‘Communist rule’) 살았다!96)

 

우리는 앞에서 오 교수가 “The threat of communism was the threat of Communism”를 ‘번역’에서 제외시킨 것은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공산주의의 위협은 공산주의의 위협이었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위협은 바로 쏘련의 위협이었다”는 뜻이기 때문임을 지적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1949년의 중국 혁명으로 이제 인류의 3분의 1 이상이 ‘공산주의의 지배’ 하에(under ‘Communist rule’) 살았다”며, ‘공산주의의 지배’에 따옴표를 붙여 적고 있고, 또 공산주의를 대문자 C로 시작하고 있다.

무슨 뜻일까?

당연히 다들 짐작하겠지만, “소위 공산주의의 지배”라는 뜻이고, 나아가서는 “소위 공산주의 쏘련의 지배”라는 뜻이다. 즉, 쏘련도, 동유럽도 그리고 중국도 공산주의, 즉 사회주의임을 표방했지만, 결코 어떤 의미에서도 공산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니었고 자본주의였으며, 더구나 동유럽과 중국이 그러한 ‘소위 공산주의 쏘련의 지배’ 하에 살았다는 뜻이다!

“소련은 더 이상 … 세계자본축적의 주변부…” 운운하는 것도 물론 마찬가지의 ‘좌익공산주의자적’ 악의를 전달하고자 하는 어법이다. 1930년대 스딸린 지도 하의 공업화를 통해서 쏘련이 초강대국 미국에 필적하는 강대국이 되었고, 쏘련의 이데올로기적ㆍ경제적ㆍ군사적ㆍ정치적 지지ㆍ지원에 힘입어 중국이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이제 인류의 3분의 1 이상이 ‘공산주의의 지배’ 하에 살게” 된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지만, 그 혁명을, 그 사회를 공산주의 즉 사회주의 혁명으로, 사회주의 사회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은 좌익공산주의자들 자신이 그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야만 앞으로도 계속 ‘혁명적ㆍ좌익적’ 상투어들을 동원해가며 노동자 계급을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혼란과 분열 속으로 몰아넣고, 그리하여 제국주의 지배에 봉사할 수 있을 터이니까!97)

저들이 그렇게 쏘련이나 동유럽, 중국 등등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어떤 자본주의 국가들보다도 더욱 반동적인 국가들로 주장하는 것을 ‘좌익공산주의자적 악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단지 ‘스딸린주의적 견해’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릴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는 흥미 있는 논리상의 문제가 숨어 있다. 다름 아니라, 만일 저들이 자신들의 저서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통해서 쏘련이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사회였음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혹은, 간단히 저들의 그러한 주장이 거짓임이 입증된다면, 저들이 여기에서 쏘련 등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모두가 사실은 사회주의 쏘련 등에 대한, 스딸린에 대한 찬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미 앞에서 쏘련 사회의 성격을 둘러싼 뜨로츠끼주의자 틱틴과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논쟁을 고찰하면서, 저들의 어떤 면에서 쏘련이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입증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았지만, 그리고 우리는 물론 뒤에서 저들이 쏘련 등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망발인가를 입증하겠지만,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당장 여기에서의 과제는 아니다. 그리하여 여기에서는 참고로 다만 하나의 견해를 소개하는 것으로 머물자.

쏘련 붕괴의 원인을 연구한 미국의 두 학자들,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과는 달리 스스로 “혁명가입네”하고 떠들지 않는 역사가와 노동경제학자는 이제는 해체ㆍ붕괴된 쏘련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착취와 불평등, 탐욕, 빈곤, 무지, 불의를 넘어 보다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쏘련의 종말은 당황스러운 손실을 의미했다. 쏘련 사회주의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고,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적 질서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맑스가 규정한 사회주의의 진수(essence of socialism)를 체현하고 있었고 ― 부르주아적 소유와 ‘자유시장’, 자본주의적 국가를 타도하고, 그것들을 집단적 소유와 중앙계획, 노동자 국가로 대체한 사회였다. 더 나아가, 그것은 모든 시민을 위한, 특히 공장과 농장의 근로인민을 위한 전례 없는 수준의 평등과 안전, 의료, 주거, 교육, 고용, 문화를 성취했다.98)

 

이 두 저자는 이어서 “쏘련이 성취한 것들을 간략히 개관(槪觀)하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잃었는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며, 그 성과들을 열거하고 있지만,99) 여기에 그것들을 나열할 여유는 없다.

다시, 쏘련 체제와 공산당들의 역할이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이 이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죽이는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장문의 증언을 들어보자.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요람인 서유럽 대부분에 걸쳐서 모스끄바의 직접적 영향력 하에 있는 공산당들이나, 민감하게 러시아에 공감하는 주목할 만한 좌익적 조류를 가진 사회민주당들이 거의 집권 직전에 있었다. {영국에서는 48%의 득표로 다수가 된 최초의 노동당 정권이 등장했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전후(戰後) 선거에서 공산당이 3분의 1 이상을 획득하여, 고도로 비례적인 투표제도를 도입함으로써만 그들의 집권을 막을 수 있었다.}100)

 

영국의 노동당을 포함한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주지하는 것처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모두 독점자본가계급 ‘좌익’의 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서유럽 여러 국가의 공산당들은 바로 사회민주당들의 그러한 반동적 타락에 대한 혁명적 노동자들의 대항ㆍ대응 조직이었다. 적어도 흐루쇼프가 스딸린 격하운동을 벌이고, 그를 계기로 혁명적 노동자 국제주의에 심각한 혼란과 분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리고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 역시 이를 모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위 인용문에서 “모스끄바의 직접적 영향력 하에 있는 공산당들이나, 민감하게 러시아에 공감하는 주목할 만한 좌익적 조류를 가진 사회민주당들” 운운하는 데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도처에서, 공산당과 사민당을 단지 상대적으로만 구별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쏘련과 그 우당인 공산당들을 반동적으로 타락한 서유럽의 사민당들과, 즉 독점자본가계급의 정당들과 사실상 동일시하여 중상ㆍ매도하려는 ‘좌익공산주의자적’ 악의에서!

그러나 아무튼 위 인용문은 “바로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요람인 서유럽 대부분을 통해서 모스끄바의 직접적 영향력 하에 있는 공산당들이 … 거의 집권 직전에” 있었을 만큼, 그들 공산당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지지가 광범했음을101) 증언하고 있다. 계속 들어보자.

 

{게다가, 호황이 전쟁 직후의 재건기(再建期)를 지나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는 미국이나 유럽 자본가계급 지배집단 내의 거의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지난 세계대전에 이은 기간이 결국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기껏해야 십이삼 년간의 호황 이후에는 필시, 계급투쟁을 재점화시킬 또 다른 불황, 1930년대에 겪었던 사회적 양극화가 뒤따를 터였다. 그런데 공산당들은, 그리고 그들의 좌익 동맹자들은 이제 그러한 사회적 긴장을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102)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앞에서 본 것처럼, 분명 1917년 10월 혁명의 결과 수립된 “쏘련 체제와 그에 순응하는 정당들의 역할은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이 이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죽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저들은, 195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103) “공산당들은, 그리고 그들의 좌익 동맹자들은 이제 그러한 사회적 긴장을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공산당들은, 그리고 그들의 좌익 동맹자들은” 왜, 어떻게 해서 그러한 입장에 있을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도 또한 저들의 좌익공산주의자다운, 즉 앞에서 한 말 모르고, 뒤에서 하는 말 모르면서 마구 지껄여대는 정신병자적인 논리 전개가 흥미롭지 아니한가?!

아무튼 저들의 증언을 더 들어보자.

 

서방은 장기적인 경제침체의 전망에 직면했던 반면에, 쏘련과 동유럽의 계획적인 경제성장과 변화에는 전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심지어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도 흐루쇼프는, 스딸린 하에서 중공업이라는 근대적인 경제 기반을 확립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이제 10년 내에 미국의 생활수준을 추월할 수 있도록 그 역점을 소비재 부문 확장으로 바꿀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서방의 많은 관측자들은 이를 완전히 믿었다!}104)

 

여기에서 두 가지. 첫째, “장기적인 경제침체의 전망”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전후 짧은 기간의 호황 후에 실제로 주기적으로 과잉생산 공황에 시달려온 서방의 경제와, 저들 자신의 표현에 의하더라도 적어도 “1960년대 초”까지도, 그리고 실제로는 그 이후 상당 기간까지도 그 “성장과 변화에 전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쏘련과 동유럽의 계획적인 경제”를 저들처럼 다같이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과연 타당할 수 있는가? 둘째, 저들 자신의 표현에 의하더라도 그렇게 적어도 “1960년대 초”까지, 그리고 실제로는 그 이후 상당 기간까지도 그 “성장과 변화에 전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쏘련과 동유럽의 계획적인 경제”가 1970년대 이후, 역시 앞에서 보았던 저들의 표현ㆍ주장대로라면, “기능부전(malfunction)”에 빠졌다. 그렇다면, 진지한 연구자라면 의당 그러한 극적 전환의 계기와 배경ㆍ원인들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그리고 뜨로츠끼주의자들은 과연 그러한 탐구를 하고 있는가? 혹은, 적어도 그 계기와 배경ㆍ원인들을 규명하려는 의사만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 전환을 호재 삼아 ‘1970년대 이후의 기능부전’을 그 이전 시대로까지 투영하며 자신들의 반쏘ㆍ반공 선전 책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무튼 저들은 이렇게 계속한다.

 

{매카시 시대의 반공 마녀사냥에서부터 1980년대 초 레이건의 ‘악의 제국’이라는 수사(修辭)까지 특히 미국에서, 냉전이라는 악의에 찬 반공 편집증의 본래의 기반이 된 것은 바로 이,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라는 전쟁 직후의 현실 속에서 단조(鍛造)된 부르주아지의 암울한 관점이었다.}105)

 

이 서술은, 두 가지만 제외하면, 그야말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그리고 혹시 바로 이 훌륭함 때문에 역자인 오 교수는 이 서술을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극히 일부분” 취급하여 ‘번역’에서 제외한 것은 아닐까?)

그 두 가지란?

하나는, 그렇게, 한편은 그 성장과 변화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음에 비해서 다른 한편은 악의에 찬 반공 편집증에 사로잡힐 만큼 그 관점이 암울했던 것은 결코 주관적인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라 그 두 체제의 성격과 그 운동법칙이 본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침묵으로 이 사실을 은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은 두 체제가 본질적으로 같았다고 강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말하는 그 “악의에 찬 반공 편집증(virulent anti-Communist paranoia)”이란 다름 아니라 바로 ‘악의에 찬 반쏘, 반(反)20세기 사회주의 편집증’이며, 바로 그 때문에 (이른바 자칭 국제사회주의자들[IS]을 포함한 뜨로츠끼주의자들과) 좌익공산주의자들 자신 역시, 매카시나 레이건 무리 못지않게, 심히 앓고 있는 병인데도, 마치 자신들과는 무관한 병인 양 증세를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거나, 짐짓 모른 체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다.

 

 

서유럽의 소위 복지국가 성립의 배경
   ― 그 반쏘ㆍ반공주의적, 자본주의 옹호적 설명

 

1950년대 후반 이후, 그리고 특히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서 더욱 가속도적으로, 약화되어 왔고, 최근에는 대공황과 그에 수반한 ‘재정위기’ 때문에 더욱 급속히 해체ㆍ파괴되고는 있지만, 아무튼 제2차 대전 이후 서유럽과 북유럽에는 소위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체제가 성립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일본 등등 기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도, 서유럽이나 북유럽만큼은 아니더라도, 여러 정도의 복지제도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물론 방금 말한 것처럼 급속히 해체ㆍ파괴되고는 있지만, 국가마다 역시 여러 정도로 그 잔영이 남아 있고, 지금 일부 국가들에서는 그것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복지국가’ㆍ복지제도는 도대체 어떤 배경과 이유에서 확립된 것일까?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그 배경과 이유를 두 가지의 상이한 가락으로, (다만,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번역’자 오세철 교수에 의해서 그 한 쪽이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극히 일부분”으로 처리되어 ‘번역’에서 제외됨으로써 하나의 단일한 가락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번은, 그에 대한 기존의 인식, 적어도 “좌익의 다수(many on the left)”에게는 정설로 되어 있는 인식을 부정(否定)하고 타기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 대략적ㆍ전투적ㆍ냉소적으로. 그리고 다음번엔, 가증스러운 요설(妖說)로 역사를 위조하면서!

순서에 따라서,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이 부정ㆍ타기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 대략적ㆍ전투적ㆍ냉소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이렇다.

 

{두 초강대국 간의 투쟁이 동시에 자본과 노동 간의 최후의 거대한 투쟁이라는 이러한 관념은 좌익의 다수(many on the left)에 의해서도 기꺼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전후(戰後)의 여러 인보사업(隣保事業, settlements) 속에 구체화된 주요한 양보들(concessions106))은 명백히 유럽의, 특히 서유럽의 노동계급이 공산주의(Communism, 즉 쏘련) 쪽으로 넘어갈 거라는 공포 때문에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전후에 복지국가나 완전고용, 쓸 만한 주거 등등에 열심이었던 것은 직접적으로 모두 쏘련 및 그와 동맹한 서방(西邦)의 공산당들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공포 때문이라고 생각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쏘련은 옛 제국주의적ㆍ식민주의적 열강에 대항한,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의 새로운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에 대항한 수백만 피억압 인민의 다양한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3세계 수백만 피억압 인민의 옹호자로 간주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바로 쏘련이었다.}107) (강조는 인용자.)

 

보다시피,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예의 좌익공산주의자적 기질을 발휘하고 좌익공산주의자들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즉 역사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대신에 그것을 왜곡하고 악의적으로 부정하기 위해서, “…였다”라고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대신에, “…처럼 보였다(seemed)”거나, “…이라고 생각될 수 있었던 것이다(could … be … attributed)”, “…간주될 수 있었던(could be seen)” 등으로 냉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생각될 수 있었으며, 그렇게 간주될 수 있었을 뿐, 그 모든 것이 사실도 진실도 아니었으며, 단지 환상이나 착각이었을 뿐이라는 뜻이다. 과연 반쏘ㆍ반공의 좌익공산주의자들답게 말이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소개조차 한국의 좌익공산주의자에 의해서는 필시 ‘주도면밀한 배려’에 의해서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극히 일부분”으로 치부되어 ‘번역’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 긴 문단 전체가 제외되어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인용된 본문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내용이 적어도 서유럽의 “좌익의 다수”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기꺼이 받아들여진” “관념”이기 때문에 저자들로서는 그것을 저렇게 거론하여 비틀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상과 학문에 대한 장기간의 파쇼적 탄압으로 그러한 관념이 별반 존재하지 않는 이 한국사회에서는 비틀어서일지언정 그것을 거론한다는 것 그 자체가 반쏘ㆍ반스딸린주의자들로서는 필시 그야말로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 부분”, 더 정확히는 ‘긁어 부스럼’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을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을 ‘번역’에서 제외시켰을 것이다. 더구나, 인용된 본문에서 조금의 유보도 없이 사실 그 자체로서 소개되고 있는 부분, 즉 “쏘련은 옛 제국주의적ㆍ식민주의적 열강에 대항한,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의 새로운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에 대항한 수백만 피억압 인민의 다양한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운운하는 부분은 특히 번역ㆍ소개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상 및 학문에 대한 장기간의 탄압으로 그러한 사실이 거의 소개되어 있지도 않고, 따라서 그러한 ‘관념’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러한 관점ㆍ관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개하는 것 그 자체가 이 사회에서는 커다란 의의를 가질 저 부분이 어떻게 “군더더기이거나 불필요한 극히 일부분”으로 처리될 수 있겠는가?

아무튼 저들 저자들은 적어도 “좌익의 다수에 의해서도 기꺼이 받아들여진” 그 “관념”과 사실들을 저렇게 냉소적으로 비튼 후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물론, 1950년대 초가 되면 스딸린 지배의 공포와 잔인성은 모두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다수가 전후 인보사업 속에서 쟁취한 개혁들을 수용하면서 개량주의적 사회주의 쪽으로 전향했다. 계속 쏘련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고 또 쏘련에서 명백히 볼 수 있는 계획경제로서의 사회주의라는 개념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러시아 공산주의(Russian Communism)라는 ‘전체주의’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볼쉐비끼적 방법들 및 혁명적 수단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였다. 1970년대의 이른바 유로코뮤니즘의 발흥으로 20년 뒤에는 공산당들 자체가 이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경로를 따라갔다.108)

 

결국은, 노동자계급의 쏘련과 공산당들 지지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서유럽 노동자계급이 혁명운동을 체제 내로 수습하기 위해서 서유럽의 복지제도가 확립되었다는 관념은 환상일 뿐 아니라, 오히려 “1950년대 초가 되면 스딸린 지배의 공포와 잔인성은 모두 부인할 수 없게 되”면서 좌익의 다수가, 나중에는 서유럽의 공산당들까지도 개량주의적 사회주의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 쪽으로 전향해갔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정확히 “쏘련 체제와 그에 순응하는 정당들의 역할은 통상적인 자본주의적 억압이 이제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죽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전향ㆍ변절해간 서유럽의 좌익들에게, 유로코뮤니즘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딸린에게, 쏘련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으로 된다! 과연 좌익공산주의자들답다!

그런데, “물론, 1950년대 초가 되면 스딸린 지배의 공포와 잔인성은 모두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1940년대를 통해서, 문맥상 특히 제2차 대전 후에 스딸린이 누구에게 어떤 공포를 조성했고, 누구에게 어떤 잔인한 행동을 했단 말인가? 쏘련 인민에게? 전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이런 식의 조그만 근거도 없는 악의적 모략은 노골적인 극우 반공ㆍ반쏘 선전ㆍ선동가들에게서도 좀처럼 듣기 어렵다. 주지하는 바이지만, 저들 극우 반공ㆍ반쏘 투사들이 떠들어대는 것은 주로 1930년대에 있었던 숙청과 모스끄바 재판들에 관해서이다. 그러나 저들의 그러한 선전ㆍ선동은 당시 숙청과 재판의 내용과 실상을 악의적으로 왜곡ㆍ과장한 것임에 불과하다는 것은 서방(西邦)에서도 이미 속속 밝혀져 있다. 예컨대, 국내에서도 우리 연구소가 ≪진실이 밝혀지다: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109)이라는 제목으로 엮어 번역ㆍ출간하고 있는, 스웨덴 공산당원 마리오 소사(Mário Sousa)의 글들도 그 중의 일부다.

물론, “물론, 1950년대 초가 되면 스딸린 지배의 공포와 잔인성은 모두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 전혀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물론, 1950년대 초가 되면” 전 세계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지에게 있어 “스딸린 지배의 공포와 잔인성은 모두 부인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전혀 그와 같은 의미로 이러한 발언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사실은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지가 느낀, 그 은밀한 지지자, 그 수호천사로서의 좌익공산주의자들이 느낀 그러한 공포를 저렇게 거꾸로 가증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아무튼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제2차 대전 후 서유럽에 확립된 소위 복지국가는 서유럽 노동자들의 쏘련적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ㆍ지향이나 그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던 혁명운동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그 소위 복지국가는 그러면 어떤 배경과 이유에 의해서 확립되었던 것일까?

저들의 가증스러운 요설(妖說)과 역사 위조를 보자면, 사실은 저 앞에서 지나가듯이 한번 인용했던 부분이지만,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그 배경과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개별자본과 사회적 자본 간의 이해의 충돌을 극복하기 위해서, 때로는 노동계급 자체로부터의 압력 하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가 확립된 것은 바로 이러한 요청(imperative)을 통해서였다. 의료, 무상의 국가 교육 그리고 복지수당은 모두 노동계급을 사회적으로 재생산하는 데에 있어서의 임금 형태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도입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110)

1930년대 대공황과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 환멸을 느껴, 그리고 공황과 침체뿐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 없이 승승장구 발전하고 있는 쏘련을 보면서 사회주의 혁명투쟁에 나선 노동자계급을 체제 내로 회유ㆍ포섭해야 할 절박한 필요에 쫓겨 어쩔 수 없이 확립하지 않을 수 없었던 소위 복지국가의 성립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가증스러운 역사의 위조이고, 이데올로기 조작이다. 이는, “때로는 노동계급 자체로부터의 압력 하에”라는 구절을 삽입했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그러한 가벼운 범죄가 결코 아니다.

저들에 의하면,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별자본과 사회적 자본 간의 이해의 충돌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가 “의료, 무상의 국가 교육 그리고 복지수당” 등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제2차 대전 후 서유럽에 확립된,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복지국가는, 사회주의 쏘련의 존재와 발전, 그리고 그에 의해서 고무된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혁명투쟁의 고양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의해서 예외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그 자체의 내적 요청에 의해서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진한 역사 왜곡도, 이보다 더 진한 자본주의 체제,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변호론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복지제도가 1950년대 후반 이후 사실상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왔고, 1970년대 말엽 이후 신자유주의체제 하에서, 그리고 특히 1990년대 이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급격히 파괴ㆍ해체되어 왔으며, 지금 새로운 대공황을 맞아 특히 그리스ㆍ스페인ㆍ이탈리아ㆍ포르투갈 같은 남부 유럽 국가들에서는 더욱 철저히 파괴되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이유를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이 “개별자본과 사회적 자본 간의 이해의 충돌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          *          *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마라!

그리고 부끄러워할 줄 알라!     <계속>

 


 

1) 아우프헤벤 저, 오세철 역, ≪소련은 무엇이었나: 소련 사회 붕괴와 해체에 대한 분석≫, 빛나는 전망, 2009. 참고로, 원래의 제목은 “What was the USSR? : Towards a Theory of the Deformation of Value under State Capitalism”라는 큰 제목 하의 네 편의 글이며, 그 부제(副題) “Towards a Theory of the Deformation of Value under State Capitalism”을 오세철 교수는 본문에서 “국가자본주의 하의 가치변형 이론을 위하여”, 혹은 “국가자본주의 하의 가치의 불구화 이론을 위하여”라고 번역하고 있다.

 

2) 같은 책, p. 6 (옮긴이의 말).

 

3) “나는 앞으로 낼 책에서 ‘중국은 무엇인가’와 ‘북한은 무엇인가’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고, 그 전에 ‘소련은 무엇이었나’에 대한 긴 글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소련은 무엇이었나’라는 제목의 훌륭한 글을 발견하였다.” (같은 곳.)

 

4) 같은 책, p. 7.

5) 같은 책, p. 15.

6) 같은 책, p. 88.

7) 같은 책, p. 89.

8) 같은 책, p. 102.

9) 같은 책, pp. 48-49.

10) 같은 책, p. 111.

 

11) 오세철 편저, ≪좌익 공산주의: 혁명적 맑스주의 역사와 논쟁≫, 빛나는 전망, 2008, p. 7.

 

12) Der “linke Radikalismus”, die Kinderkrankheit im Kommunismus, (Lenin Werke, Bd. 31, Dietz Verlag, Berlin, 1978, S. 39); 최근에 오세철 교수는 “소련에서의 계급의식과 붉은 파시즘”(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 ≪혁명≫ 창간준비 4호)이라는 글에서, 한편에서는 반쏘ㆍ반공주의자들, 제국주의자들이 날조한 악선전들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 러시아 혁명과정에서 자신들(의 선배들), 즉 좌익공산주의자들과 뜨로츠끼 일파 등 자신들의 반쏘ㆍ반스딸린 동맹자들이 저지르려던 이른바 ‘노동의 군사화’나 노동조합의 경시ㆍ압박 등의 범죄를 레닌과 볼쉐비끼 일반의 그것으로 날조ㆍ전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참으로 좌익공산주의자다운 언동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보기로 하자.

 

13) 한국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또 하나의 근거지 ‘사회실천연구소’의 월간지 ≪실천≫ 제33호(2009년 8월호), p. 159.

 

14) 오세철 역, 앞의 책, 같은 곳.

 

15) 같은 책, p. 110.

 

16) 이 문장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 레닌은 항상 그의 반역의 주인을 비난할 때 충실한 카우츠키주의자였다”로 오역(―하지만 이 정도는 다른 것에 비하면 오역도 아니다!―)되어 있지만, 여기에서 문제 삼는 것은 오역이 아니라 ‘번역’으로부터의 ‘제외’이다.

 

17) 같은 책, p. 19.

 

18) ‘공산주의’를 한 번은 소문자로 communism으로 쓰고, 다른 한 번은 대문자로 Communism로 쓰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19) “([At] the end of the Second World War, …) There was no repeat of the great revolutionary wave that had swept Europe at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 nor was the grip of either Stalinism or social democracy on the workers’ movements weakened. On the contrary, both Stalinism and social democracy emerged from the Second World War far stronger than they had ever been.” 물론(!) 오 교수는 이것도 (제2차 세계대전 말에는)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을 휩쓴 위대한 혁명물결은 되풀이 되지 않았고 약화된 노동자 운동에 대한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장악은 반대로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모두 2차 세계대전 후 예전보다 훨씬 강화되었다”(p. 47)라고 오역과 비문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20) “Having disposed of the theory of the USSR as a ‘degenerated workers’ state’, Ticktin’s theory presents itself as the most persuasive alternative to the understanding of the USSR as capitalist. / Its strength is its attention to the empirical reality of the USSR and its consideration of the specific forms of class struggle it was subject to.”; 참고로, 오세철 교수는 이를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 “타락한 노동자국가론을 정리하면서 틱틴(Ticktin)의 이론은 소련을 자본주의로 이해하는 이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소련의 실증적 실재와 계급투쟁의 구체적 형식에 주목하는데 강점이 있다.” (p. 65.)

 

21) 나는 쓰레기더미마다 일일이 장시간 코를 들이대고 들여다보고 있을 만큼 신경이 강하지도 못하고, 또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다. 따라서 틱틴의 이론에 관한 이하의 서술은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저자들이 ‘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바에 의한 것이다. 우리의 작업을 위해서는 물론 그것으로 충분하다.

 

22) 오세철 역, 앞의 책, p. 66 참조. [참고로, 오 교수의 ‘번역서’를 지시하면서 ‘참조’라고 적는 이유는 서로 번역이 다르기 때문이고, 많은 경우 오 교수의 번역에 내가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 교수의 ‘번역서’에서 해당 부분이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제외’되어 있는 곳을 지시해야 할 경우에는 ‘부근’ 혹은 ‘부근 참조’라고 적을 것이다.]

 

23) 주지하는 것이지만, ‘제4인터내셔날’은 1938년에 뜨로츠끼 주도 하에 그 추종자들, 즉 뜨로츠끼주의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흥미로운 정보에 의하면,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채 8년도 되지 않은 1953년에 …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57개 분파들’로 분열되었다.” (오세철 역, 같은 책, pp. 47-48 참조.) 무려 57개 분파! ― 과연 뜨로츠끼, 뜨로츠끼주의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분열과 ‘우찌게바(內ゲバ!)’ 현상이 아닌가!?

 

24)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쏘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뜨로츠끼주의자들 내부의 그룹을 신뜨로츠끼주의(neo-Trotskist)로 규정한다. 오세철 역, 같은 책, pp. 49 이하 참조.

 

25) 일부 지식인들은 그것을 ‘후기 모더니즘’이니, ‘후기 맑스주의’니 하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단지 ‘부정직한 탈모더니즘’, ‘부정직한 탈맑스주의’, 혹은 엥겔스 식으로 말하자면, 단지 ‘수줍은 탈모더니즘’, ‘수줍은 탈맑스주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26)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고 떠드는 자들 모두가 맑스주의를 소위 모더니즘의 일부, ‘근대주의’의 일부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27) “However, while we acknowledge that the USSR must be understood as a malfunctioning system, we argue that, because Ticktin doesn’t relate his categories of ‘political economy’ to the class struggle, he fails to grasp the capitalist nature of the USSR.”; “그러나 우리는 소련이 역기능적 체제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을 인식하지만, 틱틴이 그의 ‘정치경제학’의 범주를 계급투쟁에 관련짓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소련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이해하는데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오세철 역, 앞의 책, p. 65.)

 

28) 같은 책, pp. 82-83 참조.

 

29) “Indeed, if we take Marx’s Capital as a ‘model of a political economy’, as Ticktin surely does, then it is clear that class analysis must be a result of a political economy not its premise.”; 같은 책, p. 83 참조.

 

30) 같은 곳.

 

31) “In Capital Marx begins with the immediate appearance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in which wealth appears as an ‘immense accumulation of commodities’. Marx then analysed the individual commodity and found that it is [원문대로!] composed of two contradictory aspects: exchange-value and use-value.”; “󰡔자본󰡕에서 맑스는 부가 ‘상품의 거대한 축적’으로 나타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즉각적 출현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맑스는 개별상품을 분석하고 그것이 두 가지 모순적 국면, 즉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로 구성됨을 발견했다.” (오세철 역, 같은 책, p. 85.)

 

32) 같은 책, pp. 84-85 참조.

 

33) “Although Russian industry was able to produce in great quantities, much of this production was substandard. Indeed a significant proportion of what was produced was so substandard as to be useless. This problem of defective production became further compounded since, in an economy as integrated and self-contained as the USSR, the outputs of each industry in the industrial chain of production became the inputs of tools, machinery or raw materials for subsequent industries in the chain. … / As a result, waste swallowed up ever increasing amounts of labour and resources.”; “러시아 산업이 엄청난 양을 생산할 수 있지만 이 생산의 대부분은 표준 이하였다. 생산품의 상당량은 표준 이하에서 쓸모가 없었다. 결함 있는 생산의 문제는 소련 같이 통합되고 자족적 경제에서는 생산의 연결고리에서 각 산업의 생산물이 다른 산업의 도구, 기계, 원료가 되면서 더욱 얽히게 되었다. … / 그 결과 낭비는 노동과 자원을 더 요구하면서 부풀어 올랐다.” (같은 책, p. 85.)

 

34) “This, together with the great resistance to the introduction of new technology and production methods in existing factories, meant that huge amounts of labour and resources had to be invested in heavy industry in order to provide the inputs necessary to allow just a small increase in the output of consumer goods at the end of the industrial chain of production.”; “기존의 공장에서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법에 대한 엄청난 저항과 함께 엄청난 노동과 자원은 생산의 산업연관 끝에서 소비재 생산의 조그만 증가를 허용하는데 필요한 투입물을 제공하기 위하여 중공업에 투자되어야 했다.” (같은 책, p. 85.)

 

35) 오세철 역, 같은 책, p. 88 참조.

36) 같은 책, p. 99 참조.

37) 같은 책, p. 89 참조.

 

38) 같은 책, p. 88 부근 참조; 인용문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에 전체를 대조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몇 구절은 대비시켜보자. 오세철 교수께서 어떻게 ‘번역’하고 계신지 보기 위해서. 본문의 인용문 중 밑줄 친 부분의 원문과 오 교수의 ‘번역’은 이렇다. ― “ …  For the worker, money assumes the form of the wage. …  In fact it could be concluded that the wage was more like a pension than a real wage.” 오세철 교수의 ‘번역’: “… 노동자에게 화폐는 임금의 형식을 가정한다. … 사실 임금은 실질임금보다는 연금 같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39) 같은 책, p. 88 참조.

 

40) 원문, 제2부, 후주 14; 하지만 이 후주의 논의는 본문과는 그 추상수준이 다르다. 이 후주가 지적하는 것과 같은 수준, 그러니까 본문에서보다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문제를 지적할 양이었으면, 우선 그 ‘개별노동자’나 그 동료들이 ‘노동력의 가치’를 제대로 받고 있었는가를 우선 문제 삼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 개별노동자가 왜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한 것인지, 그들의 동료는 왜 그를 따라했는지가 해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노동생산력의 증대는 그들이 지불받는 [명목]임금의 크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도 논했어야 할 것이다.

 

41) 오세철 역, 같은 책, p. 96 참조.

 

42) 인용문이 길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도 크지만, 오 교수님의 ‘번역’이 역시 너무나도 특이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문과 대조시켜야 한다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여기 싣는다. ― “However, in his attempt to compare and contrast the form of the wage as it exists under capitalism with what existed in the USSR in order to deny the application of capitalist categories to the Soviet Union, Ticktin fails to gasp the full complexities of the wage-form as it exists within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As we have already noted, under capitalism workers are obliged to sell their labour-power to the capitalists. However, to both the individual capitalist and the individual worker, this sale of labour-power appears in the wage-form as not the sale of labour-power as such but the sale of labour;  that is, the worker appears not to be paid in accordance to the value of his labour-power (i.e. the value incorporated in the commodities required to reproduce the worker’s capacity to work), but in terms of labour-time the worker performs for the capitalist.”; 오 교수님 ‘번역’: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존재하는 임금의 형식과 소련에 자본주의적 범주를 거부하기 위해 소련에 존재했던 것을 비교하고 대조시키는 그의 시도에서, 틱틴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에 존재하는 것 같이 임금형식의 복잡성을 이해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미 우리가 지적한대로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그러나 개별노동자와 개별자본가 모두에게 이러한 노동력의 판매는 노동력의 판매가 아닌 노동의 판매로서의 임금형식으로 나타난다. 즉 노동자는 그의 노동력의 가치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즉 일할 노동자의 능력을 재생산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상품 속에 통합된 가치) 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해 수행한 노동시간이다.” (같은 책, pp. 96-97.) [브라보! 브라보!]

 

43) 여기에서도 역시 오 교수님의 ‘번역’을 원문과 대조시켜야 한다는 충동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 “There is, therefore, a potential contradiction between the wage-form and its real content – the sale of labour-power – which may become manifest if the wages paid to the workers are insufficient to reproduce fully the labour-power of the working class. There are two principal situations where this may occur. First, an individual capitalist may be neither willing nor able to offer sufficient hours for an individual worker to be able to earn a ‘living wage’. Second, the individual capitalist may pay a wage sufficient to reproduce the individual worker but not enough to meet the cost of living necessary for the worker to bring up and educate the next generation of workers. In this case, the individual capitalist pays a wage that is insufficient to reproduce the labour-power in the long term.”; 오 교수님의 ‘번역’: “그러므로 임금형식과 그의 진정한 내용 사이에는 잠재적 모순이 있다. 즉 만일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임금이 노동계급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불충분하다면 표현될지 모르는 노동력의 판매인 것이다. / 첫째, 개별자본가는 개별노동자나 ‘생활임금’을 벌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줄 수도 없고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둘째, 개별자본가는 개별노동자를 재생산하는데 충분한 임금을 줄지 모르지만, 노동자가 다음 세대를 키우고 교육시키기 위해 필요한 생활비를 충분히 주지 않는다. 이 경우 개별자본가는 장기적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불충분한 임금을 지불한다.” (같은 책, p. 97.)

 

44) 같은 책, pp. 97-98 참조.

 

45) 같은 책, p. 98 참조; 참고로 말하자면, 인용문의 “자본주의 하에서는 노동계급의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증하기 위한 지불은 언제나 임금뿐 아니라 수당들과 현물 지불들로도 구성되어 있다(under capitalism, the payments made to ensure the reproduction of the labour-power of the working class is always composed not only of the wage but also benefits and payments in kind).” 중 “benefits and payments in kind”를 오 교수께서 “수당들과 현물 지불들” 대신에 “각종 혜택과 지불”(강조는 인용자)로 ‘번역’하고 계신 것 역시 ‘교수님다운 번역’이라 해야 할 것이다.

 

46) 같은 책, p. 90 참조.

47) 같은 책, p. 88 참조.

48) 오세철 역, 같은 책, p. 101 참조.

 

49) 보다 상세한 논의는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제5판), 노사과연, 2011, pp. 649-677 참조.

 

50) 예컨대, 연합뉴스, “20대 취업 진실은?… 연령대 이동 고려 땐 개선”,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18/2011121800081.html> 참조.

 

51) 오세철 역, 앞의 책, p. 99 참조.

52) 같은 책, p. 89 부근 참조.

53) 같은 책, p. 89 참조.

54) 같은 책, p. 90 참조.

 

55) “The fact that the workers in the USSR were able to assert considerable control over the labour process does not necessarily mean that they did not sell their labour-power. It need only mean that, given the state guarantee of full employment, the workers enjoyed an exceptionally favourable position with regard to management and were able to resist the full subsumption of labour-power to the commodity form within the labour process.”; 오세철 역, 같은 책, p. 99 참조.

 

56) “산업의 관리자는 초(超)관료주의적으로 되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의 관리에 관한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영향력을 상실했다. 성과급 임금, 어려운 물질적 생존조건, 이동의 자유의 부재(不在)로, 모든 공장 생활을 파고드는 가공할 경찰의 억압으로, 노동자가 스스로 자유로운 노동자임을 느끼기는 참으로 힘들다.” (뜨로츠끼, ≪배반당한 혁명≫(1936) 제9장);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원문에는 이 문장을 포함하는 한 문단이 뜨로츠끼로부터 인용되어 있으나, 오 교수의 ‘번역’본(p. 41 중간 부근)에는 제외되어 있다.

57) K. 맑스, ≪자본론≫ 제1권, 제3편, 제5장, 제1절 노동과정. MEW, Bd. 23, S. 198.

 

58) MEW, Bd. 23, S. 199.

59) MEW, Bd. 23, S. 200.

60) MEW, Bd. 23, S. 199.

61) 같은 곳.

 

62) “Ticktin is led to restrict capitalism in its pure and unadulterated form to a brief period in the mid-nineteenth century.”; “틱틴은 19세기 중엽의 짧은 시기의 순수하고 완전한 형식으로 자본주의를 제한하고 있다.” (오세철 역, 앞의 책, p. 100.)

 

63) “Ticktin fails to grasp the reified character of the categories of political economy.”; “틱틴은 정치경제의 범주의 물상화된 성격을 이해하는데 실패한다.” (오세철 역, 같은 곳.)

 

64) 오세철 역, 같은 책, p. 101 참조.

 

65) “… 뜨로츠끼주의자들의 접근은 모두 …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으로서의 러시아 혁명이라는 개념에 기초해 있다.(The Trotskyist approaches … are all based on the conception of the Russian Revolution as being an essentially proletarian revolution …)”; 오세철 역, 같은 책, p. 105 참조.

 

66) “그에 비해서 ‘좌익공산주의적’ 이론들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이 기본적인 가정을 문제 삼을 수 있다…. /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들이 실제로 부르주아 자본가 국가를 타도할 수 있으며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By contrast a consideration of Left Communist theories allow us to question this underlying assumption, … / The Russian revolution seemed to show for the first time that workers could actually overthrow a bourgeois capitalist state and run society themselves.)”(강조는 인용자); 같은 책, pp. 105-106 참조.

 

67) 같은 책, p. 15 부근; 오세철 교수는, 저들 저자들이 레닌주의를 이렇게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 투사들을 짓눌러온 악몽”으로 규정하는 구절이 포함된 문단과 그 전후 상당부분을 ‘번역’에서 제외하고 있다. 제외된 거기에는 “쏘련이 붕괴된 것은 노동자계급이 수세에 있던 때였고,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엎는다는 희망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멀어(more remote than ever) 보였던 때였다”(강조는 인용자)는 문장도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 문장의 의의를 뒤에서 다시 반추하게 될 것이다.

 

68) 같은 책, p. 108 참조; 참고로, “그것은 뜨로츠끼주의가 스딸린주의에 대한 유일한 맑스주의적 반대가 결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It shows that Trotskyism was by no means the only Marxist opposition to Stalinism)”를 오 교수께서는 “그것은 트로츠키주의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유일한 반대임을 더 이상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번역’하고 계시다는 것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69) 같은 책, p. 106 참조.

70) 같은 곳, 참조.

71) 같은 책, pp. 16-17 및 그 부근 참조.

72) 같은 책, pp. 17-18 참조.

 

73) 쏘련에서의 “숙청과 추방”에 대해서는 마리오 소사(Mário Sousa) 저, ≪진실이 밝혀지다: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개역판), 노사과연, 2011 참조.

 

74) 레닌, “‘좌익’ 유아성과 소부르주아성에 대하여”(1918), Lenin Werke, Bd. 27, S. 319; ≪レ-ニン全集≫ 第27卷, 大月書店, 1972, p. 329.

 

75) 같은 곳.

 

76) “1940년에 독일과의 불가침조약이 일단 끝나자”? ― 그 불가침조약은 기한부 조약이었나?!

 

77) 쏘련은 나찌 독일의 침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불가침조약이 끝나자”(!) 이제 “전쟁에 돌입할 수 있었다”?!

 

78) “히틀러를 궁극적으로 패배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가 아니라 “…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 문장의 원문은 이렇다: “Once the non-aggression pact with Germany ended in 1940, the USSR was able to enter the war under the banner of anti-fascism and could claim to have played a crucial role in the eventual defeat of Hitler.” 그런데 오 교수께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1940년 독일과의 불가침 조약이 끝나자 소련은 반파시즘의 기치 아래 전쟁에 개입할 수 있었고 히틀러의 실질적 패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참고로, 쏘련이 나찌 독일과 전쟁에 돌입한 것은, 정확히는 나찌 독일이 쏘련을 침공한 것은 1940년이 아니라 1941년 6월 22일이었다.

 

79) 오세철 역, 앞의 책, p. 18 부근 참조.

 

80) 사이토 다카시(齊藤孝) 편, ≪スペインㆍポルトガル 現代史≫, 山川出版社(東京), 1983, p. 162.

 

81) 시바다 미치오(柴田三千雄)ㆍ기타니 츠토무(木谷勤) 저, ≪세계현대사≫, 山川出版社(東京), 1991, p. 293.

 

82) 사이토 다카시(齊藤孝) 편, 앞의 책, p. 159.

 

83) 시바다 미치오(柴田三千雄)ㆍ기타니 츠토무(木谷勤) 저, 앞의 책, pp. 290-292.

 

84) 사이토 다카시(齊藤孝) 편, 앞의 책, p. 136.

85) 사이토 다카시(齊藤孝) 편, 같은 책, 같은 곳. 그리고 그는 “다음에 독일 공군을 기술적으로 실험하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나찌 독일에게 있어 스페인 내전은 이후에 벌일 제2차 대전을 위한 군사적 시험장이기도 했던 셈이다.

 

86) 시바다 미치오(柴田三千雄)ㆍ기타니 츠토무(木谷勤) 저, 앞의 책, p. 292; 다만, “유독 쏘련만이 … 공화국을 지원했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다. 멕시코의 카르데나스(Lázaro Cárdenas) 정권 또한 소총 20,000정을 보내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사이토 다카시(齊藤孝) 편, 앞의 책, p. 143 참조.)

 

87) 사이토 다카시(齊藤孝) 편, 같은 책, p. 143.

88) 같은 책, pp. 141-143.

 

89) 시바다 미치오(柴田三千雄)ㆍ기타니 츠토무(木谷勤) 저, 앞의 책, pp. 292-293.

 

90) 같은 책, p. 293.

 

91) 사이토 다카시(齊藤孝) 편, 앞의 책, pp. 158-159; 참고로 말하자면,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어서 어이 없게도 예의 “더욱이, 당시 꼬민떼른의 체질이 일괴암적(一塊岩的 [즉 한 덩어리의 바위 같았던])이었던 것과, 스페인 공산당이 정치지도에서 쏘련 공산당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에 의해서 스딸린의 ‘숙청’이 스페인에 도입되어 스페인의 반(反)프랑코 세력 내부에 치명적인 분열이 생기고, 결국엔 반프랑코 투쟁을 패배로 이끌게 된다” 운운하는 반쏘ㆍ반스딸린적 발언이 이어진다. 혹시 저자 사이토 다카시(齊藤孝)는 “내전이 발생하자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 파시스트로부터의 민족해방을 위해서 싸운다고 하는 노선을 표명했다”라든가, “공산당원의 급격한 증가도, 노동자계급으로부터보다도, 군인이나 지식계급으로부터의 입당이 많았다” 따위의 발언이 이 반쏘ㆍ반스딸린적 발언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92) 시바다 미치오(柴田三千雄)ㆍ기타니 츠토무(木谷勤) 저, 앞의 책, p. 293.

 

93) PSUC (Partit Socialista Unificat de Catalunya, 카탈루냐 통일사회당): 1936년 7월에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PSOE) 카탈루냐 연맹과 카탈루냐 공산당(스페인 공산당 PCE의 카탈루냐 지부), 카탈루냐 사회주의자연맹, 프롤레타리아 카탈루냐당 등 카탈루냐 지역 4개의 좌익 그룹이 통합하여 결성한 정당. 카탈루냐 지역에서 꼬민떼른에 가입한 유일한 정당으로서 제2공화국 및 스페인 내전 중에 인민전선 정부 측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http://en. wikipedia.org/wiki/Unified_Socialist_Party_of_Catalonia 참조)

 

94) 사이토 다카시(齊藤孝) 편, 앞의 책, pp. 159-162.

 

95) 같은 책, p. 170.

 

96) 오세철 역, 앞의 책, p. 18 참조.

 

97) 저들 좌익공산주의자들과 그 주변의, 예컨대, NATO의 리비아 침략 찬양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근하게는, 좌익공산주의자들과 뜨로츠끼주의자들의 연합조직인 소위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의 정치 기관지 ≪혁명≫ 창간준비 2호 및 3호에 실린 리비아 사태 관련 글들을 보라. 특히 그 제2호는 리비아 사태를 ‘혁명’으로 규정하면서, 그리고 “반미/반제면 다 우리 편?”이냐면서, 이렇게까지 쓰고 있다. ― “봉기의 성격은 그 지도부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봉기의 전체적 성격이 그 동맹세력(여기서는 서방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결정되는가?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반군 편에 서서 개입했다고 해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에 반대해야 하는가? / 답은 당연히 ‘아니오’이다. 1980년 폴란드에서 노동자 반란이 오로지 레흐 바웬사의 친제국주의에 의해 그 성격이 결정되지도 않았고, 미국 레이건의 연대노조운동(솔리다르노시치) 지원에 의해 결정되지도 않았다. 지도부나 동맹세력의 성격 같은 왜곡 및 굴절 요인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들은 이 위대한 노동자운동을 지지했다.” (양재훈, “왜 사회주의자들은 리비아 혁명을 지지해야 하는가?”).

 

게다가 사회주의자들은 폴란드의 소위 연대노조운동을 지지했다? 정말 어이없는 역사의 날조 아닌가? 그 소위 연대노조운동의 반공주의적 성격 때문에 좌익공산주의자들이나 뜨로츠끼주의자들이야 당연히 그것을 지지했겠지만, 그것을 가리켜 “사회주의자들은 이 위대한 노동자운동을 지지했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히 망발이다. 저들이 그토록 극찬하는 폴란드의 이른바 ‘연대노조운동’의 역사적 역할을 극우 ≪조선일보≫도 이렇게 찬양한다. ― “전 세계에 ‘솔리대리티’라고 알려진 폴란드의 연대 자유노조는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폴란드에 민주화를 가져온 일등 공신이요, 동구 공산권 몰락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단스크(폴란드)=강경희특파원, “폴란드 자유노조 ‘솔리대리티’ 창설 25년”, 2009. 8. 31.)

 

98) Rodger Keeran and Thomas Kenny, Socialism Betrayed: Behind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iUniverse, New York, 2010, p. 2.

 

99) 같은 책, pp. 2-3.

 

100) 오세철 역, 앞의 책, p. 18 부근 참조.

 

101)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요람인 서유럽”은 독점자본의 반(反)공산당 이데올로기 지배하에 있는 사회임을 상기하자.

 

102) 오세철 역, 앞의 책, p. 18 부근.

 

103)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기껏해야 십이삼 년간(at best a dozen or so years)” 후면, 늦어도 1950년대 후반이다.

 

104) 같은 책, pp. 18-19 부근 참조; 참고로 “Indeed, even as the late as the early 1960s Khrushchev could claim, … that having established a modern economic base of heavy industry under Stalin, Russia was now in a position to shift its emphasis to the expansion of the consumer goods sector so that it could outstrip the living standards in the USA within ten years! [실제로, 심지어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도 흐루쇼프는, 스딸린 하에서 중공업이라는 근대적인 경제 기반을 확립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이제 10년 내에 미국의 생활수준을 추월할 수 있도록 그 역점을 소비재 부문 확장으로 바꿀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를 오 교수께서는 “1960년대 초 후르시쵸프는 스탈린 치하의 중공업 기반을 소비재 확장으로 변화시킴으로써 10년 안에 미국의 생활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로 ‘번역’하고 계시다.

 

순전히 농담이지만, 역시 쏘련 역사에 수정주의를 도입ㆍ정착시킴으로써 사실상 쏘련 붕괴의 발단을 제공한 흐루쇼프에 대한 호의인가?

 

105) 같은 책, p. 19 부근.

 

106) 이 ‘concessions’는 주는 쪽,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양보들’이고, 받는 쪽,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인민대중의 입장에서는 ‘특권’ 혹은 ‘이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양쪽의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단어인데, 우리말에서는 그에 정확히 대응하는 단어를 (―그것이 아예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어휘력 부족 탓인지, 아무튼―) 찾을 수가 없었고, 편의상 ‘양보들’로 번역했다.

 

107) 같은 책, p. 19 부근.

108) 같은 책, p. 19 참조.

 

109) 마리오 소사 저, 채만수 감역, ≪진실이 밝혀지다: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개역판), 노사과연, 2011.

 

110) 오세철 역, 앞의 책, p. 9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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