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한국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

 

문영찬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장

 

 

 1. 머리말

 

지금 우리 운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회자된 지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그러한 위기를 타개할 전망이 명확히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의 연합전술을 구사하여 진보민중진영의 독자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고 8ㆍ90년대 운동의 성과를 무화(無化)시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주의 진영의 정치적 무능력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한국에서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작년 6ㆍ2 지방선거와 올해 4ㆍ27 보궐선거는 한국에서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운동의 전진은 단 한치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모든 운동이 부르주아적 전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 거기에 더해 사회주의 세력은 선전집단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한 현실, 이러한 현실은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을 확보하여 그러한 전망 하에 자신의 모든 활동을 배치하고 투쟁을 조직해야만 새로운 전진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난 80년대의 투쟁이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진압 이후로 다시 거세게 타올랐던 것은 바로 변혁의 전망을 제기했었기 때문이다. 70년대의 운동과 다르게 단순한 반정부운동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기초하여 사회변혁의 전망을 제기하고 변혁운동으로 거듭났기에 80년대는 투쟁의 시대, 진보의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 2010년대의 현실이 투쟁의 시대, 진보의 시대, 변혁의 시대가 되지 못하고 후퇴의 시대, 반동의 시대, 개량주의의 시대가 된 것은 바로 변혁의 전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론적 수준과 정치적 활동에서 과학성과 건강성이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은 크게 보아 쏘련의 붕괴와 무관하지 않다. 쏘련 붕괴 후로 불어닥친 청산주의를 아직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그에 따라 변혁을 꿈꾼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변혁을 꿈꾸는 사람조차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하고 뜨로츠끼주의의 신기루에 휩싸여 있거나 아니면 민주적 사회주의 정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변혁의 전망을 찾기 위해서는 20세기 사회주의, 특히 쏘련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이다. 이를 기초로 21세기 초 한국 사회에서 변혁의 전망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주의가 과연 무엇인지,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사회의 건설의 주역인지, 변혁의 성격과 동맹의 문제, 전술의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2.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와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먼저 사회주의 자체가 과연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쏘련의 붕괴, 중국의 자본주의화로 인해 착취의 폐지가 사회주의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거나 소유의 변경은 중요하지 않다거나 아니면 계획이든 시장이든 생산력만 발전시키면 그것이 사회주의라거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쏘련은 아예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고 하는 혼란된 주장들이 판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과연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를 다시 정립하고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해 엄정히 평가하고 그로부터 실패의 원인과 교훈을 끌어내는 것은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단지 논리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이었고 따라서 논리와 역사를 통일시키는 것을 통해 사회주의가 과연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가 과거의 사회주의와 다른 점은 사회주의를 단지 공상적으로 꿈꾸는 것을 넘어서고 사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사회의 현실적 변혁의 전망과 경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 운동의 최고 강령에 해당하는 ≪공산당 선언≫에서는 자신들의 목표를 단 한마디로 제기한다. 즉, “사적 소유의 철폐!”가 모든 요구를 집약시키는 핵심 요구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사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사회의 변혁은 관념의 변화가 아니라 물질적 삶의 변혁이 핵심이라는 것, 물질적 삶의 변혁은 생산관계의 변혁을 의미한다는 것, 자본주의에서 그것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노동해방을 이루고 생산수단 앞에서 만인의 평등을 이루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사적 소유의 철폐를 핵심 강령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의 근원은 사적 소유라는 것, 따라서 사적 소유의 철폐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달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요구가 최고 강령으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맑스주의 운동은 과거의 사회주의와 다르게 사회주의를 공상에서 과학으로 전화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쏘련을 비롯한 20세기 사회주의는 이러한 ≪공산당 선언≫의 강령과 정신을 충실히 수행하고 착취의 폐지, 노동해방을 달성했었다. 뿐만 아니라 해방된 생산력은 거대하게 발전하였고 무상의료, 무상교육, 주택의 보장, 문화혁명을 통한 문화와 예술의 신장, 각 민족의 평등, 파시즘의 분쇄, 식민지체제의 붕괴 등을 끌어내었다. 이는 20세기가 쏘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즉 20세기의 인류사는 사회주의 진영 대 제국주의 진영의 대립과 모순에 의해 규정되었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쏘련의 붕괴, 중국의 자본주의화로 인해 지금 세계의 진보는 멈추어 있고 세계사는 반동의 시기를 경과하고 있다. 그러면 쏘련은 왜 붕괴했고,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과연 사회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쏘련은 10월 혁명 후 어려움을 겪었으나 곧 극복하고 자본주의에 포위된 가운데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농업 집단화의 경우 자발성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농민의 반발이 있었으나 이러한 오류를 빠르게 시정하고 극복하여 1930년대 말까지 사회주의 건설에 성공한다. 이 시기에 착취가 전면 폐지되었고 계획경제의 우수성으로 인해 거대한 경제건설이 이루어졌고 실업이 일소되고 문맹이 일소되었다. 그리고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각종의 사회복지제도가 도입되었다. 뿐만 아니라 계획경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후반, 1950년대 초반에 소비재의 가격이 체계적으로 인하되어서 인민의 구매력을 높여주었는데 이는 노동생산성 향상의 결과가 자본가의 이윤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 전체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것으로서 사회주의 생산관계가 착취를 폐지하고 사회주의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히 쏘련은 히틀러의 나찌의 침공을 받아서 2,000만 명 이상이 희생되는 가운데에서도 전인민이 단결하여 결사항전을 하였고 이는 인민전쟁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쟁에서 쏘련의 승리는 파시즘의 궤멸을 가져왔고, 쏘련은 동유럽을 해방하고 중국혁명을 지원하여 2차 대전 후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성립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이리하여 역사는 전반적인 진보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제국주의 진영은 냉전을 개시하여 반공노선을 강화한다. 그 결과 발생한 한국전쟁에서 우리 민족 전체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휴전선 이남에서 반공체제가 성립하였다. 그러나 세계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어서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서 식민지 체제가 붕괴하였고 베트남 전쟁에서 미제국주의는 결정적으로 패배한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사가 진보의 시대를 경과하고 있을 때 사회주의 진영 내부에서 수정주의가 발생하여 세계사의 역전이 시작되었다. 수정주의의 최초의 발생은 흐루쉬쵸프에 의한 스딸린에 대한 비판, 정확히 말하면 탄핵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이 반발하고 이는 중-쏘 국경에서의 무력충돌로까지 발전한다. 이후 쏘련과 중국은 각자의 길을 가고 세계 사회주의 진영은 분열되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파탄을 맞게 된다.

쏘련은 흐루쉬쵸프, 브레즈네프 하에서 수정주의의 길을 걷는데 흐루쉬쵸프 하에서 정치와 사상에서 수정주의를 보인다. 전인민당, 전인민국가라는 노선이 그러한 수정주의를 집약한 것인데 이는 과학적 노선을 보증하는 노동자계급의 당이라는 성격을 폐기한 것이었고 또 전인민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왜곡하여 변질시킨 것이었다. 이를 통해 쏘련 내에서는 시장경제를 도입하자는 견해, 생산관계는 중요하지 않고 생산력 발전이 중요하다는 생산력주의 등 수정주의가 거세게 자라났다. 후루시쵸프 하의 이러한 수정주의는 브레즈네프 하에서 경제에서의 수정주의로 확대된다. 1965년 수상 꼬쉬낀의 주도로 경제개혁이 실시되는데, 국유기업에 자본주의적 이윤제도의 도입, 기업의 독립채산제, 상여금 등 물질적 유인의 강화 등이 핵심이었고 이러한 ‘개혁’을 기초로 1967년 도매가격이 일제히 인상된다. 이러한 일련의 경제개혁은 사회주의 생산관계에 위배되는 자본주의적 경제개혁이었고 이를 통해 쏘련 경제는 서서히 침몰하여 브레즈네프 말년인 1970년대 후반에는 경제가 완전히 균열하게 된다. 꼬쉬낀 개혁은 개별기업으로 하여금 자본주의적으로 운영하라는 지시에 다름 아니었고, 그리하여 사회주의 생산관계와 개별기업의 자본주의적 운동이 끊임없이 충돌했던 것이었다. 1980년대에 등장한 고르바쵸프는 개혁을 내세웠으나 문제의 원인을 잘못 찾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구호 아래 자본주의적 인간형을 내세워 쏘련을 붕괴시킨다.

한편 중국의 경우 쏘련의 수정주의에 반발하여 1960년대에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계속혁명 노선을 대중노선과 결합시킨 문화대혁명은 국제적으로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운동이었고, 국내적으로는 자본주의의의 길을 걷는 주자파(走資派)에 대한 투쟁이었다. 나아가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모순인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의 해결을 도모한 것이라는 점에서 당시 세계사회주의 운동의 명운을 좌우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중국노동계급의 미성숙, 문화대혁명 과정에서의 좌편향 등이 겹치면서 모택동 사후 권력 전체가 등소평 등 주자파에게 넘어가고 이후 중국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다.

중국의 자본주의화는 크게 4단계로 나누어진다. 먼저 1978년 주자파가 권력을 장악한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부터 1980년대 초까지 쏘련의 꼬쉬낀 개혁과 유사한 개혁을 하는데 이는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절충하는 것이었다. 2단계는 1980년대를 말하는데, 농업에서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해체하고 농업을 다시 소농체제로 복귀시킨다. 이때 농ㆍ공ㆍ상ㆍ학ㆍ병을 통일시킨 공동체였던 인민공사를 해체한다. 인민공사는 농촌에서 시작한 중국혁명의 특성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었고 농업과 공업을 결합시킨 일종의 농공복합체로서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단위였는데 이를 타격한 것이었다. 이후 3단계는 1990년대로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선언하고 공업과 도시에서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해체하고 국유기업을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로 전환시킨 것이었다.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은 다시 피착취자로 전락하고 1990년대에 걸쳐 수천만 명의 국유기업 노동자가 해고된다. 4단계는 2000년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때 중국은 WTO에 가입하여 명실상부하게 자본주의 사회로 공인받고 이후 중국의 무역이 급성장한다. 그리고 2007년 사유재산 보호법이 시행되어 중국의 자본가계급은 경제적 지배계급에서 정치적 지배계급으로 발돋움한다.

이러한 중국의 자본주의화 과정은 사회주의라는 위장막을 가진 채 진행된 것이었는데 이것을 합리화한 것이 등소평 이론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사회주의를 폐기하고 자본주의로 전화함에 있어서 등소평은 실용주의, 절충주의를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그 결과 심지어는 사회주의의 본질을 바꾸기도 했는데 등소평은 ‘공동부유’를 사회주의의 본질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잘못된 생산력주의자의 사고를 보여주는데, 맑스에 의해 공산주의가 ‘각 개인의 개성의 발전이 사회전체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라고 정식화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이와 같이 20세기 사회주의는 20세기 초중반에 힘차게 진보의 길을 걸었으나 내부에서 수정주의가 발생하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붕괴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이 장벽에 부딪히고 끝내는 붕괴와 변질로 귀결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90년대 이후 세계사는 다시금 전면적인 반동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고, 세계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로서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공격, 약소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의 공격으로 점철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로부터 어떠한 교훈을 이끌어내야 하고 또 어떻게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을 끌어내야 하는가? 이것은 왜 사회주의 사회에서 수정주의가 발생하는가,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모순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고 또한 21세기 사회주의를 전망하기 위해서 20세기 사회주의에서 계승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쏘련에서 수정주의가 발생한 근본원인에 대해 그리스 공산당의 테제는 2차 대전 후 생산력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가운데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발전하는 생산력에 걸맞게 계속하여 개선하지 못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개선한다는 것은 국유기업과 국가의 관계, 국유기업과 국유기업의 관계, 국유기업과 집단농장의 관계 등을 개선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여기에 더해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모순으로서 등장하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이의 해결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하는데 쏘련에서는 이를 정확히 포착하지 못했고 공장경영층, 전문가층, 관료들을 중심으로 수정주의의 토대가 쌓여갔던 것이다. 이러한 내부적 문제에 더해 냉전을 개시한 제국주의의 압력이 쏘련 내에 작용하여 제국주의와의 힘겨운 대결을 회피하고 타협적 노선을 유발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쏘련 붕괴의 원인 혹은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 원인을 보면, 직접적으로는 1965년의 꼬쉬낀 개혁으로 말미암아 이후 쏘련 경제가 파탄에 직면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사회주의 원리와 자본주의 원리는 절충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회주의 생산관계는 상품-화폐 관계가 전면화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상품-화폐관계가 전면화되면 그것은 사회주의 생산관계와 충돌하여 사회주의 사회를 파탄으로 이끈다는 것 등이다. 꼬쉬낀 개혁은 상품으로서 성격이 없는 국유기업의 생산물에 상품적 성격을 의식적으로 부여한 것이었고 그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이윤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고 불법적인 사영경제, 지하경제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결국은 파탄을 불러왔던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측면에 더해 흐루쉬쵸프의 전인민당, 전인민국가론이 비판될 필요가 있다. 무당파적인 전인민당이라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당, 무산계급의 당이라는 공산당의 전위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쏘련의 사회주의 건설은 나침반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사회로 이행의 과정에서 국가가 소멸하고 당이 소멸하기 전까지는 무산계급의 당, 노동자계급의 당으로서 공산당이라는 성격이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전인민국가는 완전히 잘못된 것인데 착취계급이 소멸되어 더 이상 억압이 없다는 의미로 전인민국가를 내세운 것이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다. 계급사회의 잔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 도시와 농촌의 대립이 존재하고 또 상품-화폐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국가의 필요악적 성격을 완전히 승인하는 데 반해 전인민국가는 국가의 필요악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따라서 국가의 소멸을 준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관료주의의 토대가 되는 이론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전인민국가 노선의 쏘련에서 국가기구는 대규모로 팽창했다.

끝으로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견지될 때 세계사회주의 운동과 국가는 진보의 길을 걸었지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파탄되었을 때 세계사회주의 진영은 분열되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사회주의 운동이 성공하고 사회주의 건설이 순조롭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반드시 엄격하게 견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여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 혹은 상(像)을 그려본다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생산관계가 확립된 후로는 기본모순은 여전히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지만 주요모순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라는 것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정신노동자도 대접받지만 육체노동자도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하고 정신노동이 고도화되고 육체노동이 고도화되고 나아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끊임없이 상호침투하는 과정을 통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은 서서히 극복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관료주의의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뜨로츠끼주의자들은 스딸린 관료주의를 반대하는 정치혁명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료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에서 관료주의는 뿌리가 다르고 따라서 해결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관료주의는 자본가계급의 지배, 특히 독점자본가들의 지배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국가 자체가 독점자본가의 이해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관료주의가 발생하는 것이고 따라서 관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가계급을 타도하는 사회혁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에서 관료주의는 성격이 다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관료주의의 뿌리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국가라는 상부구조에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에서 관료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이는 뜨로츠끼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정치혁명의 문제가 전혀 아닌 것이다. 레닌은 일찍이 사회주의에서 관료주의에 대해 정치혁명이 아니라 문맹의 퇴치, 인민대중의 국가 관리에의 참여 등이 이루어질 때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점진적인 길을 택하는 것으로서 뜨로츠끼의 주장과는 대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과 더불어 도시와 농촌의 대립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도시와 농촌의 대립의 극복은 사회주의 사회를 재편할 수밖에 없다. 농업과 공업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농공복합체가 사회의 기본단위로 성장할 것이다. 쏘련에서도 1950년대에 농공복합체가 광범하게 출현했었고 중국에서도 인민공사는 일종의 농공복합체였던 것이다.

한편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인 사회주의에서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한편으로 생산력의 발전을 기초로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업과 농업에서 생산관계의 개선과 재편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즉 농업에서 생산력 발전의 결과 협동조합적인 집단농장이 공업과 같이 국유, 즉 전인민소유로 전화하고 다른 한편에서 공업에서 생산력 발전의 결과 제품의 가격이 체계적으로 인하되는 경향이 지속되면서 상품-화폐관계는 사회주의에서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이행의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소멸할 것이다. 그리고 상품-화폐 관계의 소멸과 더불어 상품교환의 법칙인 가치법칙도 최종적으로 소멸할 것이다.

 

 3. 세계체제의 현 단계

 

이와 같이 20세기는 세계사회주의 진영과 제국주의 진영 간의 대립이 규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진영 대립이 20세기 세계사를 규정하는 근본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쏘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화로 인해 세계사는 역전되었고 지금은 반동의 시대를 경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체제에 대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규정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면 1990년대 이후 세계체제의 근본적 성격은 무엇이고 그 특징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진영 대립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영대립의 한 축이었던 제국주의적 지배만이 세계를 규정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남아 있는 이북과 쿠바 등 극소수 사회주의 국가의 존재는 이미 세계사를 규정하는 지배적 요인이 아닌 것이다.

둘째, 현 단계 세계체제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공격, 약소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의 공격을 특징으로 한다. 제3세계는 물론이고 제국주의 국가 내부에서까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는 극도로 공격받고 있다. 이러한 공격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가 설명된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즈형 국가독점자본주의가 파산한 후에 자본주의의 구원자로 등장한 것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후기형태라 할 수 있다. 19세기 자유경쟁자본주의가 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했지만 일면 진보적 성격을 가졌다면,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전형적인 반동적 이데올로기이고 심지어 계급타협을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와도 배치되는 이념이다. 현재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국가의 경제 개입이 극도로 강화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는 그 타당성이 의심받고 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세계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이다. 또한 현 단계 세계체제는 약소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의 공격을 특징으로 한다. 1990년대 초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 발칸 민족들에 대한 NATO의 공격,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이북에 대한 미국의 압박 등 쏘련 붕괴 뒤의 세계체제는 제국주의 전횡의 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극심한 반동의 시대라는 것이다.

셋째, 현 단계 세계체제는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물론 자본주의 자체가 항구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이지만, 1990년대 이후의 세계는 특히 극도의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무한경쟁’이라는 표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강요하는 세계화 속에서의 무한경쟁은 현 단계 세계체제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특히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공격을 통해 그 소비능력이 급격히 위축되고 반대로 자본의 착취의 자유는 고삐가 풀려서 과잉생산 경향이 심화됨으로써 결국 소비와 생산의 모순이 극대화된 결과 발생한 최근의 세계대공황은 현 단계 세계체제의 불안정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유럽 재정위기는 유럽연합 체제 자체, 유로화 체제를 붕괴위기로 몰아넣고 있는데 이는 지역적으로 발생하는 불안정성의 하나의 표지이기도 하다.

넷째, 현 단계 세계체제는 빠른 변동성을 특징으로 한다. 세계무역기구인 WTO가 결성되어 미제국주의의 세계패권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 대한 저항이 심해져서 WTO가 급격히 약화되는 현상, 그리고 미국의 패권이 세계를 지배하고 미국의 신경제가 소리 높이 외쳐지다가 일순간 거품처럼 무너지는 현상, 미국에 대항하는 세력으로서 중국의 급격한 부상, 유로화 체제가 성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로화 체제 자체가 붕괴위기로 몰리는 현상 등 현 단계 세계체제는 매우 빠른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데 그 기초는 중국의 부상에서 보여지듯이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이다. 사적 소유로 인해 생산의 무정부성이 불가피한 자본주의에서 세계적 차원에서 그것이 빠른 변동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체제에 대해 그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개념이 많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현 단계 세계체제를 정확히 드러내지 못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세계화라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결합한다고 해서 현 단계 세계체제의 본질이 드러나지는 않는 것이다. 이는 케인즈주의가 20세기 당시의 세계체제의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세계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의미하는 것 이상이 아니며 실제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하고 현 단계 세계체제를 규정하는 과학적 지표가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진영대립의 소멸, 극심한 반동적 성격, 불안정성, 빠른 변동성 등을 포괄하는 세계체제 규정이 새롭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제국주의 단일체제’라는 규정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는 진영대립의 소멸을 담고 있고 제국주의 ‘단일’체제로 인한 극심한 반동성을 설명할 수 있고 제국주의의 전일적 지배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정성과 빠른 변동성을 담지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의 세계체제는 초기에 미제국주의의 거의 전일적인 지배로 시작되었다. 이를 알리는 것이 미제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었다. 이후 우루과이라운드의 결과로 성립한 WTO의 결성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했음에도 미제국주의에 대립하는 세력들이 상대적으로 성장했는데 무엇보다도 EU의 결성이 그러했다. 그리고 중국의 부상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남미 국가들의 미제에 대한 반대도 심화되었다. 그리고 중동에서 미제에 반대하는 반미운동도 여전히 거세다. 이와 같이 아직까지는 미제가 세계전체에 대해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으나 그에 대립하는 힘들이 상대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지금의 세계체제는 세계화가 소리높이 외쳐지지만 반대로 블록화의 경향이 심화되고 있기도 하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NAFTA 결성, EU의 결성, 그리고 각종 FTA 협정의 체결이 그러하다. 이러한 블록화의 경향은 겉으로는 세계화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제국주의의 이익이라는 점에서는 통일되어 있다. 그리하여 블록화와 세계화는 제국주의 단일체제의 각각의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사회주의 변혁을 추진해야 할 한국 운동의 대외적 조건이다. 이러한 세계체제에 조응하는 투쟁을 벌일 때만, 세계체제와의 연관성 속에서 한국자본주의의 현실을 이해할 때만 과학적인 변혁노선의 수립이 가능한 것이다.

 

 

 4. 한국자본주의의 발전과정

 

한국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세계체제에 의해 규정된 것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분단의 결과 생겨난 것이었고 이에는 미제국주의의 영향이 압도적이었고 이는 한국전쟁에서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1950년대에는 미제의 한국에 대한 원조가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힘이었고, 이는 1960년대에 차관이라는 형태로 변경되었지만 이를 통한 예속성의 고리는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자본주의는 1970년대에 주요한 변화를 겪는데, 세계적 차원에서 석유위기와 두 차례의 경제공황의 결과 재래식 중화학 공업이 한국에 이전되어 한국의 산업구조가 변모를 겪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구조의 변화는 국내의 연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수출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1979년 세계공황의 결과 수출이 저조하자 한국자본주의 자체가 위기에 처하고 이는 부마항쟁과 박정희 정권의 몰락으로 귀결된다. 이와 같이 한국자본주의는 미제에의 예속이라는 세계체제와의 연관 속에서 이해할 때만 정확한 파악이 가능하다.

1980년대의 한국경제는 초반에는 공황의 뒤처리에 매달리다가 1986-88년의 3저 호황을 계기로 위기를 넘긴다. 그전까지 외채위기에 시달리던 한국경제는 3저 호황을 통해 외채위기를 극복하고 비약한다. 그리하여 산업구조는 다시 한 번 변모를 겪는데, 경공업 위주에서 중공업 위주로, 그리고 재래식 중공업이 고급화되고 첨단산업인 전자산업을 하청받아 생산하는 상황이 된다. 이는 국제분업구조에서 한국자본주의의 한 단계 상승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외채위기 속에서 IMF의 지배를 받아 몰락의 길을 걸은 중남미와 차별되는 것으로 이 시기를 통해 아시아 NICS는 중남미와 차별되는 분화의 길을 겪는다.

그리고 한국은 OECD에 가입하게 되고 자본자유화 등을 단행하는데 이로 인해 1997년 외환위기의 싹이 자라게 된다. 자본이 자유화되자 독점자본들은 종금사 등을 통해 해외의 단기자본을 차입하여 투자를 확대하게 되는데 90년대 중반 수출이 침체하게 되자 급격히 무너지는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외환위기는 투자과잉의 상태에서 수출이 어려움을 겪자 주요 독점자본이 부도에 몰리고, 그것이 금융위기로 확대되어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국가의 통제력이 상실되면서 발생했던 것으로서 일종의 과잉생산 공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경제, 즉,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축적양식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폭로한 것이기도 했다. 예속의 심화를 통해 축적의 고도화를 이루어온 한국자본주의가 그 논리 자체의 결과로 무너졌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배계급은 내수를 강화한다거나 중소기업을 육성한다거나 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예속의 가일층 심화의 길을 간다. IMF의 구조조정으로 금융이 전면 자유화되어 미제 금융자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고 주요 독점자본들은 외국자본 특히 미국자본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고 이는 외국자본의 국내 독점자본의 주식 지분 보유로 나타난다.

여기서 예속의 문제를 조금 더 고찰하면 한국자본주의가 그 경제적 토대에서 제국주의에, 특히 미제국주의와 일본제국주의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예속의 심화를 통해 축적의 고도화라는 길을 걸은 것이 여러모로 확인된다. 즉 자본의 재생산과정, 다시 말하면 자본, 시장, 기술의 면에서 한국자본주의의 예속성이 두드러진다. IMF로 인해 자본의 면에서 예속성은 가일층 심화되었고, 시장의 면에서 예속성은 한국의 무역의존도가 국내총생산의 9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기술의 예속성에서는 자본재의 수입비중이 갈수록 확대되는 것을 통해 드러나는데, 특히 일본으로부터 자본재의 도입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이는 한국자본주의가 일부 독점자본을 중심으로 고도의 기술을 실현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중위의 기술을 특화하는 상태에서 예속의 심화를 통해 축적의 고도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는 한국자본주의의 미국 경제에의 통합을 의미하는 한미 FTA가 비준을 앞두고 있는데, 이는 신식민지주의의 완결판이며 예속의 심화를 통한 축적의 고도화라는 한국자본주의의 발전법칙을 확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자본주의는 미제와의 연관, 세계체제와의 연관 속에서 고찰할 때만 그 운동법칙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예속성 혹은 신식민지라는 규정과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을 통일시켜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운동세력은 이에 대해 통일된 입장을 갖고 있지 못하다. NL파는 예속성이라는 점만 파악하고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측면을 무시한다. 이는 민족감정을 앞세워 반제투쟁이라는 점만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의 결과 성장하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대립, 예속독점자본과 전 민중의 대립이라는 계급대립을 외면하는 것이다. 한편 이와 정반대로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현실만 천착하고 예속성이라는 세계체제와의 연관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가 그러하다. 이들은 혁명을 규정하는 것은 일국 내의 자본주의 발전 정도라는 일반론에 치우쳐 예속 혹은 종속의 강화냐 약화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실토하는 것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들어선 이후로는 일국내의 자본주의 발전 정도에 의해 직접적으로 혁명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약한 고리’에서 혁명이 발생한다는 것을 말했다. 이러한 레닌의 문제의식은 일국 내의 혁명을 세계체제와의 연관 속에서 파악할 것을 요구하는데, 노정협은 이러한 레닌의 문제의식을 무시하고 여전히 일국내의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에 의해 직접적으로 혁명이 규정된다고 사고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속성을 무시하면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미제국주의의 규정성을 외면하고 정치적 상부구조에서 미제의 문제, 한국의 현실적 지배구조를 무시하게 된다. 나아가 노정협은 정치와 군사에서 예속성은 인정하지만 경제적 토대에서 예속성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중대한 오류이다. 눈에 보이는 군사동맹, 정치적 예속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하더라도 경제적 예속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한국자본주의의 발전 법칙 즉, 예속의 심화를 통한 축적의 고도화라는 것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정협의 논리를 따를 때 한국에서 미제국주의의 축출은 경제적 토대에서의 변혁, 즉 사회혁명을 통하지 않고서도 가능하다는 논리가 된다. 즉 미군이 철수하고 정치에서 불평등 조약을 일정하게 수정하면 그것 자체가 미제국주의를 축출한 것이 되는데, 이는 매우 안이한 태도이며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노정협은 경제에서의 예속을 부정한 결과 경제에서의 혁명, 즉 사회주의 혁명이 제국주의 축출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게 된다. 이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사회주의 변혁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따라서 전략적인 측면에서 노정협은 사회주의 혁명의 막대한 동맹군을 상실하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예속성의 고리, 신식민지의 인정, 세계체제와 연관 속에서 한국자본주의를 파악해야 하고 나아가 예속성과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을 통일시키는 변혁론을 세워야 하고 그것은 80년대 운동의 성과로 정립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는 구식민지와 신식민지의 차이로서 신식민지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의 길이 일정하게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나아가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의 길로서 ‘예속의 심화를 통한 축적의 고도화’라는 정식을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속성과 한국자본주의 발전을 통일시키는 것이 좌편향과 우편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5. 한국계급투쟁의 역사와 변혁의 성격의 전환

 

여기서 한국에서의 변혁에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기초하여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진 계급적 지형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계급대립이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따라 변혁의 성격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에서 계급투쟁의 역사를 개괄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계급대립지형의 변화는 계급투쟁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역사는 계급투쟁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ㆍ19 항쟁과 5ㆍ16 쿠데타, 그리고 이어지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립, 한-일 협상 반대투쟁, 3선 개헌 반대투쟁, 유신 반대투쟁, 그리고 부마항쟁과 박정희 정권의 몰락, 광주항쟁과 전두환 정권의 폭압, 6월 항쟁 등까지, 즉 1980년대까지 기본적인 계급대립은 군사파쇼를 내세운 예속독점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의 투쟁의 역사였다. 여기에 중간에서 반파쇼 투쟁을 하며 권력의 분점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있었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반제반파쇼 민족민주변혁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 변혁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배신과 반동부르주아지와 자유주의부르주아지 간 보수대연합의 성립으로 유산된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등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집권에 성공하였고 이를 계기로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중소자본의 대표자에서 독점자본의 한 분견대로 변신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급대립지형의 문제이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반동부르주아지와 노동자계급 및 민중을 한편으로 하고 중간에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있던 지형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지형으로 변화되었는데, 즉 반동부르주아지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연합을 한편으로 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 블록을 한편으로 하는 대립적 지형이 창출되었고 그 중간에 소부르주아 상층을 중심으로 하는 개량주의 블록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형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사회주의 변혁, 착취와 수탈의 종식을 요구하고 있고, 반동부르주아지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연합은 반혁명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고, 참여연대 등의 시민운동 세력으로 대표되는 소부르주아 상층 혹은 소부르주아 우파는 체제 내 개량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계급대립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은 변혁의 성격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민족민주변혁의 시대가 아니다. 자본가계급 전체에 대항하는 투쟁, 반자본주의 투쟁이 지금 투쟁의 성격인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으면, 사적 소유를 공격하지 않으면 변혁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노동자계급 이외의 민중 부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노동자 이외의 민중 부분은 소부르주아지일 수밖에 없는데, 소부르주아 상층은 자본주의 하에서 계급적 상승을 꾀할 수 있지만 소부르주아 하층은 고통스럽게 몰락의 길을 걷고 있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열로 편입되거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이다. 빈농과 소농, 나아가 중농으로 구성되는 농민들, 도시빈민들, 영세상인들이 바로 이러한 소부르주아 하층으로서 민중을 구성하는 부분들인 것이다. 이들은 소부르주아적 성격이 있으나 사회주의의 전망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사회주의 변혁에 동참할 수 있는 세력이고 사회주의 건설에서 민중으로서 기꺼이 참여할 세력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사회주의 변혁과 사회주의 건설의 지도적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의식에서 소부르주아성이 있고 또 현실적 단결의 정도에서 노동자계급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오직 노동자계급이 지도할 때만 이들은 사회주의 변혁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당면 변혁이 사회주의 변혁이라는 점에서 민중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이렇게 변화가 필요하다. 즉 과거 8ㆍ90년대에는 민중들이 반제반파쇼 의식으로 조직되기만 해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민중들을 변혁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사회주의적 의식을 전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민중들의 고된 삶의 근본원인은 자본가계급의 지배라는 것, 우선적으로 가장 강대한 자본가인 독점자본가들을 타도하고 민중권력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이들에게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급대립구도의 변화는 당면 변혁의 성격을 바꾸고 있고 이제는 사회주의 변혁에 걸맞게 이념, 조직 등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여기서 운동진영의 다수파인 NL파의 인식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다. NL파는 위와 같은 계급대립구도의 변화 자체를 부정한다. 이들은 미제를 축출하는 반제 투쟁을 일차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미제가 축출되지 않은 현실에서 계급대립구도가 변화되었다고는 사고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김대중, 노무현 등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집권이 갖는 계급대립구도 변화의 의미를 이들은 간과하는 것이다. 다만 6ㆍ15 선언 등 민족적 과제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는 등의 의미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들은 여전히 당면의 변혁을 미제를 축출하는 민주주의 변혁으로 사고하고 있고 이는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론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즉 이들의 사고의 비현실성, 비과학성으로 말미암아 이들은 8ㆍ90년대의 변혁성을 상실하고 실천적으로 개량주의 세력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한 사회의 변혁을 파악함에 있어 계급대립구도의 파악이 갖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변화되는 계급대립구도를 정확히 파악할 때만 올바른 전략의 설정이 가능하며 변혁의 과제를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이다.

 

 

 6. 변혁의 단계 설정의 필요성

 

이와 같이 8ㆍ90년대와 달라진 계급대립구도는 당면 변혁의 성격을 사회주의 변혁으로 규정짓는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계급대립구도를 하나의 도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역사에 근거하여 역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추상적으로는 자본주의인 한 사회주의 변혁의 가능성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8ㆍ90년대 변혁의 성격이 사회주의 변혁이 아니라 반제반파쇼 민주주의 변혁이었던 것은 현실적인 지배세력이 반동부르주아지였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사회주의적 과제의 실현은 일정하게 유보되고 반동부르주지의 타도, 이들의 권력인 파시즘의 타도에 집중했고 이를 실현하여 사회주의 변혁으로 성장전화하는 길을 걷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계급대립구도의 파악을 단지 하나의 도식을 설정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을 정리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기초로 사회주의 변혁을 추진하는 우리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 변혁과 이를 위한 새로운 계급대립구도의 설정은 8ㆍ90년대의 민족민주변혁이 유산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이 불철저하게 개량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에 기초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관건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계급대립에서 중요한 계급적 역관계, 전략 설정에서의 특수성의 문제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사회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이 불철저하게 개량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파시즘이 혁명적 방식으로 제거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결과 파쇼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살아있고 파시즘의 후계세력이 광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변혁이 민주주의의 확장으로서만 가능하다고 보면 사회주의 변혁을 추진할 민주주의적 토대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러한 점이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 변혁의 특수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당면 변혁의 성격이 사회주의 변혁임에도 불구하고 일거에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사회주의 변혁에서 단계를 나누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1단계의 사회주의 변혁은 자본가계급 전체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지배세력이고 가장 강대한 자본가인 예속독점자본들을 타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속독점자본을 타도하고 몰수하여 국유화하고 민중에게 의료, 교육, 주택 등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사회주의 혼합경제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의 자본가권력을 타도하고 민중권력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 민중권력은 더 이상 자본가의 권력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체는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1단계의 사회주의 변혁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매우 중요하고 민중권력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강화함을 통해 2단계 사회주의 변혁의 과제를 수행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전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2단계의 사회주의 변혁에서는 중소자본가를 포함한 생산수단에 대한 일체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농업에서(그리고 또한 영세상업의 상당부분에서) 협동조합화를 달성하여 집단적 농업(상업)을 건설해야 한다.

이렇게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를 나누는 것은 우리 사회 계급투쟁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변혁의 단계 설정은 전략의 문제인데 이는 계급간의 관계를 기초로 엄정하게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도식과 교조주의를 거부하는 것, 구체적 역사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함을 말한다.

 

 

 7. 민주적 과제, 민족적 과제의 해결 전망

 

한국 사회주의 변혁의 특수성은 1단계와 2단계로 나누어진다는 것만이 아니다. 1단계의 한국 사회주의 변혁은 유산되었던 지난 시기의 민족민주변혁이 해결하지 못했던 민주적 과제와 민족적 과제를 사회주의 변혁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 파시즘의 후계세력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데 파시즘의 세력이었던 반동부르주아지 세력은 여전히 한나라당에 집결되어 의회의 다수파, 행정부 수장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파쇼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있어서 사회주의 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전위당은 여전히 건설되지 못하고 있고 사회주의 세력은 정파의 상태로 산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민주적 과제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과거 민족민주변혁의 시대에 민주적 과제의 의미는 파쇼권력을 타도하고 민중의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고 이를 위해 민중권력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회주의 변혁을 추진함에 있어서 부딪히는 민주적 과제는 좀 더 정교화될 필요가 있다. 레닌은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이는 사회주의 변혁은 오직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레닌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다수 민중의 지배라든가 혹은 다수결 같은 것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수 민중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강제력 즉, 국가라고 민주주의를 파악했던 것이다. 이러한 레닌의 인식을 따를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힘의 신장의 문제이고 그것은 권력의 문제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불철저하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한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민주적 과제의 의미를 사회주의적 과제와 연관하여 파악할 필요가 있다. 민주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는 어떠한 관계인가? 민주주의는 지금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이다. 즉 부르주아적 틀 내에서의 민주주의이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유지하기 위한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확대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힘의 신장으로 귀결된다는 것인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자본가계급은 대부분 반동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의 민주주의의 신장은, 설령 그것이 부르주아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확대를 지지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양적 확대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의 전환이라는 질적 과제를 또한 동시에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오직 프롤레티리아 독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다시 한 번 민주주의와 국가권력의 긴밀한 통일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혼신의 노력과 투쟁을 통해 차츰 해방의 길로 접근할 수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와 독재를 대립시키는 견해가 속물적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혁명의 길이 아니라 민주적 길을 통해 사회주의로 접근해야 한다는 소리도 낡아빠진 닳고 닳은 구호라는 것도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다. 노동자계급의 기치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변증법이고 독재를 통한 민주주의 확보이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를 확보한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지배계급으로 조직된다는 것이고 이는 자본가들의 반혁명에 대한 진압과 독재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면 변혁에서 민주적 과제는 과거 민족민주변혁의 유산이 남긴 과제를 해결하는 것임과 동시에 사회주의를 위한 토대를 닦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확대를 향해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제기해야 하고 그를 위해 변혁이라는 질적 전환이 있어야 함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편 과거의 민족민주변혁의 유산은 당면의 사회주의 변혁에 민족적 과제의 해결을 부과하고 있다. 민족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 민중이 겪는 고통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족적 과제의 해결은 사활적인 것이다.

민족적 과제로서는 미제에 의한 한국 민중에 대한 신식민지 지배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군을 철수시키고 각종의 불평등하고 예속적인 조약을 폐지해야 하며, 이러한 군사, 정치적인 과제와 더불어 한국에서 지배적인 제국주의 자본을 몰수하고 국유화하여 민중의 것으로 돌려야 한다. 또한 미제의 신식민지 지배로 인해 발생한 남과 북의 분단이라는 문제를 제국주의 반대, 민족적 이익의 수호라는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민족문제의 해결의 핵심은 미제국주의를 한국 민중의 힘으로 축출하는 것이다. 과거 민족민주변혁의 시대에는 미제를 축출하고 민중권력을 수립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여기에서 필요했던 것은 반제의식이었고 여기에는 민족부르주아지도 동참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민족부르주아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즉 이 사회를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예속독점자본에 대해 중소자본의 대부분이 하청계열화되어 있어 중소자본의 민족적 성격은 상당부분 잠식된 상태이다. 나머지 중소자본들도 해외에 진출한다든가 수출에 의존한다든가 하여 중소자본 중에서 민족자본가라 불릴 수 있는 부분은 극히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예속의 심화를 통한 축적의 고도화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법칙은 이제는 중소자본가에게까지 관철되고 있어서 민족자본가는 NL파의 소망과는 달리 거의 무시해도 좋을 상황이 된 것이다. NL파는 중소자본가 대부분을 민족자본가라고 보고 심지어 현대와 같이 이북과 교류하는 독점자본가까지 민족자본의 범주에 넣고 있지만 이는 현상만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현대의 경우 독점자본의 이북 사회주의에 대한 능동적 작용으로, 민족자본으로서가 아니라 독점자본으로서의 자신감의 발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이 민족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계급적 지형의 문제이다. 따라서 민족적 과제의 해결은 더 이상 민족부르주아지라는 자본가계급에게 의존할 수 없고 오직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힘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과거 민족민주변혁 시대와 달리 이제는 민족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주의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족적 과제의 해결은 미제국주의를 축출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를 위해서는 정치, 군사, 경제의 총체적 영역에서 변혁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은 사회주의 변혁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이제는 민족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사회주의 변혁이 필요한 것이다. 거꾸로 당면의 사회주의 변혁은 민족적 과제의 수행 없이는 불가능하다. 민족적 과제의 수행을 당면 사회주의 변혁의 과제로 설정하는 것의 정치적 의미는 광범한 민중, 나아가 민족적 역량을 당면 변혁에 동참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적 과제의 수행을 통하여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의 하나가 가능하다. 즉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축적구조 자체가 변경되는 것이다. 예속의 심화를 통한 축적의 고도화를 끝장내고 민족적 자립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기초한 경제의 건설이 과제로 되는 것이다. 즉 민족문제의 해결은 경제에서의 변혁으로 궁극적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당면 변혁에서 민족적 과제와 민주적 과제는 한편으로 지난 민족민주변혁의 유산이 남긴 과제를 실천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당면의 사회주의적 과제를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민족적 과제와 민주적 과제를 당면 사회주의적 과제와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당면 변혁의 특수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를 위해 조직하고 동원할 역량을 광범하게 획득하는 길이기도 하다.

 

 

 8.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의 강령수립을 위하여

 

이렇게 당면 사회주의 변혁의 성격과 과제를 구체화하고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기초로 우리는 주체에 대한 판단의 문제로 넘어갈 수 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노동자계급의 상태와 농민의 상태, 노동운동의 문제와 농민운동의 문제이다.

지금 노동운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아니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나가고 있지만 그러한 현실을 타개할 방책은 제출되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위기를 당면한 사회주의 변혁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 노동운동 위기의 현상은 무엇이고 그 원인은 무엇인가? 노동운동의 위기에서 가장 극적인 것은 부패의 문제이다. 노조운동 상층부가 썩어가면서 부패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뇌물수수 문제, 성 문제 등이 그러한 부패의 문제이다. 여기에 더해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노동운동의 전투성이 사라지고 노동운동 전체가 거대한 이권운동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의 문제, 착취의 폐지 문제, 노동해방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지 오래이며, 단지 당장의 교섭에서 얼마나 실리를 따낼 것인지가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주체가 약화되자 자본과 이명박 정권의 공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파업을 했다고 만 명이 넘는 조합원을 징계한 철도공사는 노동자에게 있어서 지금이 전두환 시절보다 더 혹독한 독재의 시대임을 말하고 있다. 최근의 타임오프 공세로 인해 노조운동의 기본대오가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 또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이렇다 할 투쟁을 하기는커녕 최소한의 방어태세도 갖추지 못하고 자본의 공세에 대해 노동자대중을 방치하는 배신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 모두 노동운동 위기의 현주소이다.

그러면 이러한 노동운동의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진보신당과 전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의 분할을 그 원인으로 꼽고 그에 따라 정규직이 임금을 양보하여 비정규직에 나누어주자는 사회연대전략을 내세운 적이 있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 원인을 노동자계급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실은 자본가계급의 관점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으로 노동운동의 위기를 타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노동운동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이 노동운동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고 전투성을 갉아먹고 있는가? 기존 노동운동이 3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로 나뉘어 노동운동의 지도부, 민주노총의 지도부 자리를 놓고 경합한 것이 벌써 10여년이 넘고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은 이들 3파를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노동운동의 다수파인 국민파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기치를 들고 나왔다. 이들의 문제는 자신들의 노선 자체에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 자체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기치 자체가 자본가들이 용인하는 한도 내에서만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은 노동운동 내의 부르주아 세력이라 할 수 있다. 개량주의의 진원지인 이들을 타격하지 않고서는 노동운동의 재건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중앙파는 어떠한가? 중앙파는 전노협의 전통을 계승하고 나름대로 전투성을 보이고 건강한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중앙파는 국민파와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파와 타협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중앙파 또한 개량주의 세력으로 전락하였고 이들이 바로 사회연대전략이라는 허황된 노선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중앙파가 이렇게 타락한 것은 스스로 사회변혁의 전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회구성체라는 접근 자체는 이제 의미가 없다는 둥, 생태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는 둥 사회주의의 본질을 치고 들어가지 못하고 개량주의의 아류로 전락한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그러면 마지막 남은 현장파는 어떠한가? 이들로부터 그간 전투적 조합주의의 기풍이 흘러나왔고 이들을 구성하는 선진노동자들이 그동안 노동운동을 그나마 지탱해온 힘이었다. 그러나 전투적 조합주의만으로 버티는 것은 당연히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 또한 사회변혁의 전망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에 따라 현장파 또한 실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고 현장파를 구성하는 현장조직들이 과거의 투쟁부대에서 이제는 조합집행부 장악을 위한 디딤돌로 변질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장파의 한계는 전투적 조합주의에 머물고 사회변혁의 전망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들 3파가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한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변혁의 전망을 제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노동운동 전체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갖고 있지 못하고 노동운동 자체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덫에 걸린 것이 노동운동의 위기의 진정한 원인인 것이다. 그에 따라 노동운동의 전투성이 급속히 사라지고 개량주의가 판을 치면서 노동해방의 기치가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빚어진 사태는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이라는 문제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노동운동을 하는 3파가 모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구성하는 노동운동 전체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고 이는 지금까지의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보아야 한다. 문제의 핵심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덫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문제의 해결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적 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된다. 이는 노동운동의 이념 전체가 변경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즉 민주노조라는 이념, 민주주의를 토대로 하는 전투적 노동운동의 수명은 다한 것이고 이제는 노동운동 전체가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재편되어야만 활로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의 전환은 민주노조운동을 청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적 노동운동이라는 질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계승되어야 한다. 즉 민주노조라는 이념과 역사성, 투쟁성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발전되어야 하는 문제이지 기존의 노동운동을 청산하는 문제는 전혀 아닌 것이다.

끝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전위조직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사회주의 이념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보급하고 노동자계급의 몸체에 혼을 불어넣는 전위조직 없이 민주노조운동의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의 전환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의 노동운동의 돌파구는 전위조직 건설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기초로 노동운동의 강령으로서 노동해방의 의미를 정교하게 다듬고 철저한 민주주의의 달성,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등을 세울 때 노동운동은 자신의 깃발을 정확히 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노동자계급과 더불어 당면 변혁의 주력으로서 농민들을 꼽을 수 있다. 농민 전체가 당면한 사회주의 변혁의 주체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농민들은 대부분 빈곤한 소농, 즉, 빈농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변혁성은 강하다. 빈농의 입장에서 지금의 자본주의는 착취와 수탈의 체제에 불과하다. 농민의 해방은 빈농의 해방을 말하며 그것은 사회주의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한국농업의 현실은 참담하다. 농민 자신들이 버려진 존재라 자조하고 있고 한국의 농업은 시장 개방, 식량자급율의 저하, 높은 생산수단 가격과 낮은 생산물 가격, 농민의 고령화 등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농업현실에 대해 농민들은 80년대에 농민운동의 고양으로 맞섰다. ‘토지를 농민에게’라는 혁명적 구호가 제기되기도 했고 지배계급은 농민운동이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수십조 원의 농촌살리기 정책을 펴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정부의 농업정책 중 유일하게 성공한 것은 시장개방이었고 농업구조조정, 즉 농업에서 자본주의 발전 정책은 다 실패했다. 그에 따라 농민들은 농업자본가와 농업노동자로 분화되는 것이 아니라 탈농하여 노동자 혹은 도시빈민이 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한국농업의 특수성을 말하는 것인데, 한국농업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농업생산력의 정체를 겪고 있고 나아가 시장개방으로 인하여 몰락의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주의 변혁의 동맹자로서 농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민은 단일한 계급이 아니다. 부농, 중농, 소농, 빈농으로 농민을 엄격히 나누어서 보아야 한다. 부농은 자본가적 농민으로서 사회주의 변혁의 동맹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빈농은 사회주의만이 해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변혁의 확고한 동맹자이다. 중농과 소농은 토지를 일정 정도 보유하고 있고 가족 노동력에 의존하여 생계를 꾸리는 계층인데 이들의 특수성은 작지만 토지에 대한 소유자라는 점이다. 이들을 고려하고 이들을 사회주의 변혁의 동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농업강령이 신중하게 채택되어야 한다. 이들의 존재 때문에 토지국유화 강령은 수정되어야 하는데 농지를 제외한 토지의 국유화를 제기해야 하고 농지에 대해서는 ‘토지를 농민에게’라는 구호를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농업의 협동조합화를 제기하여 부농을 제외한 농민 전체를 사회주의 건설의 길로 끌어들여야 한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농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동맹을 기초로 할 때만 농업의 재건이 가능하다. 한편 그간 농민운동의 주력이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전농은 농민해방과 혁명적 방식으로 농업의 재건을 이루는 것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지배에서 벗어난 농업을 꿈꾸면서도 자본주의 타도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시장에서 고립된 섬으로서 자족적인 농업을 꿈꾸는데 이는 공상적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농민운동에 대해 ‘토지를 농민에게’라는 구호와 함께 농업의 협동조합화를 제기하고 이를 위해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사회주의 변혁에 동참해야 함을 설득해야 한다.

 

 

 9. 반독점동맹의 결성문제

 

당면의 1단계 사회주의 변혁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최대의 적은 예속독점자본가계급이다. 이 사회의 현실적 지배자인 이들을 고립시키고 약화시키고 결국은 타도하여 자본을 몰수하고 민중에게 돌리기 위해 반독점동맹을 결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반독점동맹의 결성이 20세기를 통하여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 과제는 매우 지난한 과제임을 알 수 있다. 반독점동맹이 주요 제국주의 국가에서 성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이들 나라의 공산당들이 개량주의화되어 반독점동맹을 부르주아적인 반독점운동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일본 공산당의 경우가 전형적인데, 이들은 독점자본가들의 타도와 몰수, 국유화를 제기하기는커녕 고작 대기업의 전제(專制)에 대한 통제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 공산당은 중소자본가를 인민에 포함시키고 당연히 반독점동맹 세력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일본 공산당이 부르주아화될 대로 부르주아화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도 반독점동맹이 추진되었으나 혁명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 다만 영국공산당(CPB)의 경우 반독점동맹을 추진하면서도 일본공산당과 같이 개량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지 않다. 영국 공산당은 독점자본의 전횡에 시달리는 제 부문의 운동의 결집으로서 반독점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 소수인종운동, 환경운동 등 제반 인민운동의 결집으로서 반독점동맹을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동맹의 조건으로서 노동운동의 지도적 역할을 꼽고 있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노선이라 할 수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사회의 현실적 지배세력은 독점자본이다. 국가의 역할 혹은 국가독점은 사적 독점의 이윤을 떠받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점자본을 타격하고 이들을 고립시키고 나아가 몰수하고 국유화하는 것만이 현실적인 변혁의 경로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자본가국가를 분쇄하고 민중권력을 수립해야 한다.

반독점동맹이 부르주아적 반독점운동으로 용해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필수이다. 이를 기초로 운동으로서 인민들의 결집이라는 사상이 중요하다. 독점자본은 사회의 기생충이라는 것, 이들의 이윤에 대한 탐욕으로 전 사회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 이들을 타도하는 것만이 사회의 제반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것 등의 내용을 구체화하여 반독점동맹의 강령으로 삼아야 한다.

 

 

 10. 결론

 

21세기 초반이라는 반동의 시대에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을 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반동의 힘이 변혁을 꿈꾸는 것조차 강하게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라는 것이 자본의 인민에 대한 요구이고 명령이다. 이러한 삶을 단호히 거부하고 해방을 꿈꾼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도약을 감행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편에 자신의 위치를 두고 이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통해 해방세상으로 전진하고 나아가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운동하는 삶이다.

억압이 강할수록 반작용의 힘도 커지는 것이다. 이는 반동의 시대가 심화될수록 새로운 세상을 여는 변혁의 시대가 가까워짐을 의미한다.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라는 세계사적인 격동을 겪은 인류는 이제 다시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다. 지금의 세계대공황이라는 현실이 인류로 하여금 새로운 사회주의를 꿈꿀 것을 강제하고 있다. 앞으로 닥칠 변혁의 시대, 그리고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은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를 교훈삼아 고도의 수준을 구현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현실 또한 반동의 시대라는 특징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에서 높아지고 있는 긴장은 그러한 시대의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는 변혁의 시대가 가까워짐을 인식하면서 새로이 변혁을 꿈꾸고 준비해 가야 한다. 이는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교훈의 도출, 8ㆍ90년대와 달라진 한국사회의 계급대립구도에 따른 사회주의 변혁에 대한 준비, 노동운동과 제반의 민중운동, 부문운동의 혁신을 준비하고 이 모든 것을 위해 프롤레타리아 전위당 건설을 준비하는 것이다.

8ㆍ90년대 새롭게 시작된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많은 성과를 내었고, 파시즘을 물리치고 운동의 성장을 가져왔으나 쏘련의 붕괴로 인해 맥없이 힘을 잃고 말았다. 이는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이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해 일천했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서 불철저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지난 운동은 프롤레타리아 전위당 건설에 실패했다. 수많은 정파들이 프롤레타리아 전위당 건설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따라서 8ㆍ90년대의 운동을 넘어 전진하는 길은 프롤레타리아 전위당 건설을 성공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양심과 지성, 단결과 전투성을 결집하여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전위당 건설을 성공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그 길에 필요한 조건들을 하나하나 착실하게 준비하는 것이 지금의 운동의 위기를 타개하는 참된 길이다. 원대한 전망을 갖되 운동의 일보전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전위를 꿈꾸는 사람들의 과제이다.                                                                                                               

                                                                                                                              노사과연                                                                                                                                     

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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