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공산당 및 노동자당 20차 국제회의에서: 그리스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디미트리스 코촘파스(Dimitris Koutsoumpas)의 연설

 

번역 : 제일호 │ 부산지회 회원

 

 

20년 전 우리 당의 주도로 국제회의가 처음 시작된 도시, 여기 아테네에서 열리는 제20차 공산당 및 노동자당 국제회의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 여러분 앞에 서있는데 한 세기의 삶과 활동을 마감한 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 공산당(the KKE)의 명예롭고 영웅적인 100년을 정당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모든 인류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인 목숨 자체를 바쳤던, 우리 당의 영웅적이고 명예로운 죽음의 발자취를 따라 결의에 차서, 역동적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은 비합법의 조건, 박해, 처형, 투옥 및 억압의 석기 시대 동안 그리고 지난 44년의 부르주아적 합법성의 세월 동안 계급투쟁의 모든 전환들을 커다란 결단력으로 견뎌냈습니다.

당은 1991년의 반혁명의 커다란 역사적 반전 기간을 거쳐 오늘날까지 계속 위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당은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얻었습니다. 재편성의 가파른 길을 한 걸음씩 오르고 있습니다.

반혁명의 승리를 이끈 원인을 추적하고 있고, 1996년 최초의 심의에서부터, 20세기 사회주의 건설 과정의 전복의 총체적 원인들에 대한 18차 당 대회에서의 이러한 노력의 집단적인 문서화에 이르기까지, 주요하게는 쏘련의 경험에 기초하여 연구하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100년의 전체 기간의 이 장엄한 과정을, 승리와 패배, 도약과 역전, 실수와 약점들, 뿐만 아니라 비길 데 없는 영웅주의와 결합시키기 위해 역사 기록 보관소의 문서들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열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동지들,

반동과 기회주의의 사이렌이 역사의 종말, 노동계급과 그 운동의 종말에 대해 노래하는 만큼, 삶 자체가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은 조만간 자신의 역사적인 역할, 역사적인 사명의 도전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즉,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최종적인 폐지와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의 건설.

이것은 노동계급이 집중화된 산업생산과 관련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위대한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입증된, 집단성, 의식적인 규율, 탁월한 인내와 같은 미덕이 뻗어 나오고 있습니다.

파리 코뮌과 10월 혁명은 우리의 투쟁에 영감을 주는 빛나는 예들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쳤고, 우리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100년 동안 행진해 나가면서 무수한 어려움을 견뎌낸, 우리나라의 수천 명의 노동 남성과 여성들처럼.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그리스 노동 운동의 몸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전투들이 있습니다.

가르침들, 긍정적인 것들과 그 과정의 약점들이 있는데 그에 대해 우리는 노동자의 전위라는 관점, 거친 계급투쟁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노동계급은 자연발생적으로 이 지위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 즉 의식적이고 조직된 전위의 혁명 이론과 활동으로써 이 지위를 성취합니다.

 

동지들,

혁명적인 강령의 존재, 맑스-레닌주의의 세계관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고수, 새로운 유형의 당의 형성의 원칙들,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정교화된 연구는 부정할 수 없는 현대의 무기가 됩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이점을 줍니다: 그러나 쟁점은 우리가 그것들을 우리의 일상 활동과 노력에서 창의적으로 그리고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하는가 입니다.

당면 요구들을 위한 노동자 투쟁의 가치와 이것들에 대한 당의 역할을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평가의 기준은 정치적 의식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이것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발전의 기준은 당 건설을, 직장에서 그리고 당의 대열의 사회적 구성, 연령 구성 및 여성 참가의 측면에서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당의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수준을 높이는 데 있어서 꾸준한 발전뿐만 아니라 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하여 정치국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에게 정치적 지도를 제공하고 그들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그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하나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복잡한 일상의 과제들이 우리를 주요하고 기본적인 과제, 즉, 당이 준비되어 있도록 하기 위해, 전환점들과 갑작스런 선회의 시기에 당이 기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당이 주요한 목표를 놓치지 않으면서 시의 적절하게 예측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항상 갖기 위해, 기층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것에서 멀어지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특수한 객관적 조건, 우리의 의지와 욕망과, 우리 자신의 개입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조건을 평가하면서 주체적인 요인을 판단하는 능력을 각 개인이 얻지 못한다면, 우리가 사업의 과정을 충분히 살피는 것, 필요한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실수와 누락을 관찰하고 교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스의 그리고 국제적인 경험은 또한, 혁명적 정세의 조건이 창출되고 노동계급이 권력을 빼앗아 장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영향력과 힘은, 투쟁에서 그 전위적인 전투적 활동, 당의 책임 있는 활동, 당의 사심 없음 그리고 그 공헌과 헤아릴 수 없는 희생과 일치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민을 향한 당의 예측과 경고가 확증되어 왔다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노동계급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 있을 때만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것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창출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 공산당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의식의 발전에 공헌하는 데 있어 자신의 책임성을 수동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당이 투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의 약점, 단점, 실수의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자본주의의 조건 하에서 사회주의 의식이 지배적일 수 있다는 환상을 품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당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요구들, 자신의 활동의 결과에 대한 비판과 자기 비판적 검토는, 부르주아 정당들―자본주의 체제의 한계 안에서 투쟁하는 것을 선택했거나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개혁될 수 있다고 대중에게 선언한 정당들―과 동일한 관점으로부터, 동일한 기준으로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 공산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장, 대도시 중심,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지역에서 끈이 확대되고 집중적으로 심화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급적 본질을 은폐하고,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 계급이라는 두 개의 기본적 계급 사이의 구분선을 숨기는 계급 본질을 은폐하는 성격 규정과 이데올로기적 발명들을 거부합니다.

그리스 공산당은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방향을 취하도록 투쟁하고 있고 그리고 그 방향에서,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계급과 인민의 중간층의 모든 부문의 투쟁을 연결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노력의 목표는, 협소하게 노동조합의 대중 투쟁에서 전위로서가 아니라 혁명적인 전위로서의 노동계급을 실천적으로 고무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대규모로 대중적 의미의 사회적 동맹을 드러내기 위해, 중간층의 인민 부문을 가능한 한 대규모로 노동계급과의 결합된 행동과 동맹으로 견인하는 것.

우리는 경제 공황의 빈번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그리스에서 노동운동과 그 동맹들이 상대적 후퇴, 환멸, 그리고 상대적 침체의 국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계급적 지향의 대중성 약화와 부패의 경향이,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에 있던 쏘련과 다른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복구되기 이전에, 오랜 기간에 걸쳐, 주요하게는 사회-민주주의적인 지배로 인해 발전해 왔습니다.

유로꼬뮤니즘은, 자신의 오른 손에 사회 민주주의를 든 서유럽 자본주의가, 노동조합 운동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노동조합 운동의 점진적인 후퇴, 심지어 그것의 타락을 초래하게 하는 기본적인 통로로서 작용했습니다. 그렇지만 투쟁들이, 세력들의 상호관계와 관련하여 긍정적인 차이들―그와 정반대되는 것이 유럽적 수준에서 발생했습니다―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음에도 발생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노동 남성과 여성들의 의미 있는 부분. 인민 대중들이 “피로를 느끼거나” 실망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노동조합 투쟁이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부분은, 어느 시점에 야만적인 조치가 끝나고, 위로부터 어떤 변화가 발생할 것을 기대하면서, 물론 헛되이 기다리기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요구를 축소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합니다. 이 끈들은, 자신의 생애의 첫 걸음부터 노동자, 종업원, 가난한 자영업자, 농부들인 사람들과 “묶여져 있으며”, 물론 직장에서는 결정적으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에서는, 자본가를 일자리를 공급하고 수입을 분배하는 사람으로 간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경제와 정치 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당들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두려움과 환상, 냉담함과 실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지는, 자본주의 체제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노동 계급의 혁명적인 역할에 대한 지식의 결여를 통해 표현됩니다. 이미 수립된 의회주의의 환상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국제공산주의 운동은 일정한 책임이 있는데, 우리 당이 부르주아 의회의 다수당과 정부에 대한 참여 혹은 지지와 관련하여 여러 번에 걸쳐 부르주아적인 동화(同化 assimilation)의 네트워크로부터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데올로기적 작업과 계몽은, 단지 현재의 쟁점들에만 기초하여, 혁명 전략의 일반적인 슬로건들과 입장들―생동감과 투쟁성 없이, 발전들에 기초하여 그것들을 풍부히 함이 없이―을 반복하는 형태로 발생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목사의 설교처럼 우리의 입장을 다른 당들에 대한 자세 혹은 일반적 비판의 형태로 제기한다면 어느 누구도 끌어 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당들이 일정한 길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자발적인 책임과 희생의 제공을 요구하는 완전히 다른 길―더욱이 이 모든 것을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반혁명의 승리의 시기에 수행하는―을 향하고 있는 정세에서 그러한 우리의 입장은 근거를 잃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과정은 사회주의를 향한 그리스 공산당의 전략적 목표의 필요성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증거를 제공하는 반면, 역사 자체는 그리스 공산당의 전략의 견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수준에서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의 교정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전략의 정교화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요구합니다. 더 광범한 노동자 대중의 활동과 발전을 위한 안내자로서 공산주의적 전위가 이것을 진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주아주의(bourgeioism)의 스킬라[Scylla, 역자 주, Messina 해협 이탈리아쪽 해안의 큰 바위. 〖그리스신화〗 이 바위에 살던 머리 6개, 다리 12개 달린 여자 괴물]와 개량주의와 기회주의의 카리비스[Charybdis, 역자 주, 〖그리스신화〗 바다의 소용돌이를 의인화한 여자 괴물]를 극복해 내고 투쟁과 정치적 발전에서 지속적인 활동, 일상적인 활동상을 당이 똑바로 유지해 가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경계를 풀 수 있도록 허락해주지 않는데, 왜냐하면 오늘날 활동 조건과 요구가 특히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강령적인 정교화와 특히 정치적 입장은 계급적 적들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에 의한, 당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기회주의의 주창자들은, 1990-91년 기간 동안―당시 그들은 반혁명의 승리가, 공산주의 운동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거”하거나 혁명적 사회주의의 본질이 거세된 어떤 맑스주의적 사상들을 제기할 수 있는 황금의 기회라고 믿었습니다―사용되었던 무디고 도발적인 언술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공격은 교활하고 또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2012년부터 계속하여, 기회주의는, 부정적인 선거 결과와 SYRIZA의 갑작스런 부상을 둘러싼 우려와 불안을 자신들의 주요 무기로 이용하여 우리에게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주요하게는 SYRIZA가 반인민적인 공격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희망의 노선을 가지고, 기회주의자들은 아마도 “좌파적인” 정치 세력들의 정부를 통해, 정치적인 정부 차원의 협조, 개혁들 그리고 유로존(Eurozone)에로부터의 가상의 출구의 노선으로, 그리스 공산당을 끌고 들어가려고 시도했습니다. 기회주의자들은, 그리스 공산당의 노선과 당헌에서 협조를 향한 이러한 움직임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난했습니다―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진 선거에서 그리스 공산당이 손실을 기록했던 시기에. 기회주의는 세력들의 부정적인 상호 관계 때문에 이러한 선택이 요구된다고, 그것은 이러한 관계를 변화시킬 발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러면서 그리스 공산당이 전술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물론 그 시점에서 SYRIZA가 제국주의적 중심들과 수립한 긴밀한 관계는 충분히 폭로되지 못했습니다.

기회주의는 물론 사회적 토대를 갖고 있는데 확대된 노동귀족층의 형성이 그러하고 국유기업들의 팽창으로 인해 봉급을 받는 과학자, 예술가, 교육자, 대중 매체의 노동자들을 광범하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계급적 적과의 타협, 체제 내에서의 정치적 해결책의 추구, 노동운동 내에서, 노동계급의 당내에서의 기회주의를 향한 경향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회주의를 반대하는 싸움은 세력들 상호관계 간의 계급투쟁의 모든 기간과 모든 국면에서 당의 혁명적인 노동계급적 성격을 보존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공산당들의 탈공산주의화에 대한 예방은 바로 이 투쟁으로부터, 그것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일관성과 그 능력으로부터 시작하고 그것의 조직적 일관성을 통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적인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은, 공산당이 과도기적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관리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때, 심지어 공산당이 공식적인 합의에 의해 구속되지 않거나 혹은 공산당이 자신의 독자성을 유지한다고 선언했을 때조차도, 이미 자신들의 손을 묶어버렸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서로 된 책임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것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법칙들은 정치적 협정들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1944년과 1989년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당의 단기간의 참가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경제와 정치 간의, 모든 경제적 및 정치적 현상 간의 관계, 예를 들어, 하나의 스캔들, 혹은 새로운 당의 출현 등과 같은 것에 기초하여 모든 사회적 문제를 사고하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들과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의 필요성―이것은 오늘날 노동계급의 커다란 부문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리고 이 점은 설명될 수 있습니다.)―사이에 하나의 구분선이 그어지게 됩니다.

경쟁하는 사회 세력들의 입장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은 자본의 근본적인 모순의 첨예화에서 발견됩니다: 한편으로는, 생산의, 가장 중요한 생산력으로서 노동의, 인간의 사회화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생산물의 개인적인 전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그 체제의 모든 모순과 갈등의 근원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의 강령을 규정해야만 하는 축입니다.

확실히, 자본주의 체제의 이 모순은 노동계급 전체에 의해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사회 전체의 조직은 역사적으로 우월하고 따라서 대체될 수 없다는 입장을 채택합니다.

그것은, 고용주 및 국가 폭력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조작―교육, 대중 매체, 교회, 부르주아 정당의 기구, 그리고 지방정부 및 반(半)국가 조직(예를 들어, 비정부 기구(NGO))과 같은 대중과 연결되는 국가 기구―을 통해서, 심지어 체제에 동화되고 있는 노동조합 조직들(예를 들어, GSEE, ADEDY)을 통해서조차, 부과되는 자본주의 권력의 한 측면입니다. 노동계급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조작은, 그것의 왜곡된 정치의식과 부르주아 정당에 대한, 혹은 최초에는 자신들의 대열로부터 생겨나지만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 정당이 되는 정당들에 대한 정치적 애착에서 반영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력들의 정치적 상호관계는 모든 점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를 반영하며, 예를 들면 선거 과정을 결정하는 부르주아의 권력 기관들―그 중에서 의회―에서 계급 지배를 표현하며, 자기 자신의 기관을 구성합니다.

세력들의 상호관계에서의 실제적인 변화는 부르주아 권력의 약점으로 인해 노동계급의 중요한 부분이 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 조작의 끈을 끊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력의 상호관계 문제는 적어도 공산당에 대해서는 비혁명적 조건 하에서 노동계급의 정치 의식의 성숙 과정에 의해 결정되지만, 또한 자본, 독점체들, 부르주아 정치 체제, 입법부, 합법적이고 억압적인 구조들, 지배적인 교육적, 종교적 그리고 도덕적 개념들, EU와 나토라는 제국주의적인 국제적 연합들에 대한 폭로와 충돌을 멈추지 않고 있는 노동계급-인민 세력은 공산당의 주위에 결집했습니다.

주체적인 요인인 우리 당의 결과들, 우리 당의 경과와 효율성에 대한 필수적인 비판적 및 자기비판적인 검토는,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에 있던 나라들에서 반혁명의 승리를 수반한 극적으로 부정적인 방향 전환이 발생했던 계급투쟁의 국제적인 세력들의 상호관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물론 공황들, 전쟁들, 경쟁들을 수반하는 자본주의의 지배에서의 균열은 축적되고 있으며, 공산주의 운동의 부분에 준비태세를 요구하는 새로운 조건, 가능성들에 대한 전망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계급투쟁의 진전, 긍정적인 발전의 추진력은 속임수, 혹은 “전술적” 움직임들, 혹은 소위 숙명론적인 리얼리즘, 혹은 선거 득표율에 대한 분개, 혹은 아마도 혁명적인 “순간들”과 “사건들”로 운동을 대체하는 것에 달려 있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전위적 노동자들이 인민 세력을 조직하기 위한, 조직화되고 방향 잡힌 개입들에 달려 있습니다.

목표는 가장 전위적인 노동 남성과 여성들로 당의 대열을 확대하는 것, 연령의 견지에서 당의 갱신, 당에 조직화되는 여성의 수의 증가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인민의 계층과 농부, 자영업자, 봉급을 받는 과학자와 예술가들로부터 지도적인 활동가들을 모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투쟁의 시기에 있는지 혹은 정체의 시기에 있는지 상관없이 체계적인 전문화된 작업을 요구합니다. 또한 당 대열에서의 증가가 자동적으로 더 강력한 투쟁을 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두 가지 사이에 연관성은 있지만, 이것은 결합된 과제들, 기준 및 수단과 함께 체계적으로 그리고 조직화된 방식으로 촉진되는 것이지 자연발생적으로나 기계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개의 적대하는 계급 간의 힘의 상호관계에서 실제적인 변화는 충돌하고 있는 노동계급 당과의 대규모 연대로 그리고 부르주아 기구들, 부르주아 기관들 및 그들의 정부 부분의 가시적인 약화, 기능에서의 무능력으로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세력들의 부정적인 국제적 상호관계는, 국제적 수준에서 계급투쟁이 반자본주의적이고 반독점적인 방향을 취하면서, EU의 전략적 선택에 기초하는 위기로부터의 정치적 탈출구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면서 발전하는 정도에 따라 공격받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본의 예비 세력을 제한―그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만큼―하는 것, 자본의 기회를 제한하는 것, 피해를 입히고 반격과 자본의 타도를 위해 세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당의 힘을 구축하는 것은 기준의 결합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것의 어떤 것은 다른 것에 비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노동운동을 재편할 필요성, 반독점, 반자본주의 사회적 동맹의 촉진,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위한 투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동맹들과의 결합된 방향과 행동의 수준에 대해 우선적인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동맹의 수준과 정도는 각각의 국면에서, 소부르주아 층, 그들의 동요에 의해 가해지는 압력을 노동운동이 견뎌내는 능력에 의해 판단될 것이다.

또 다른 기준은 고용주와 국가의 위협, 폭력, 자본주의의 경제 공황, 제국주의 전쟁의 조건 하에서 인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당의 전략에 의해 결정되는 일상적인 투쟁의 꾸준한 전투성은 조만간 열매를 맺게 될 훌륭한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의 그리고 이어지는 선거 투쟁에 직면하여, 우리 자신의 공세적인 구호는, 우리가 이미 촉진해 왔던 것, 즉, 자본주의의 경제 공황 혹은 그리스 자본주의의 상승 반전의 조건 하에서, EU로의 응집이 강화되거나 약화되거나 하는 조건 하에서, 부르주아 정책들, 유로존의 일방통행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반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그리스 공산당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입니다.

노동조합운동의 재편성은 계급운동, PAME―노동계급과 그 운동을 위한 과거 수십 년 간의 최대의 성과이며, 노동자의 전투에서, 사회적 동맹의 촉진에서 올바른 방향을 이끌고 있는―의 가일층의 강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 재편성은, 지도력에서 그리고 첨예한 문제들을 둘러싼 투쟁의 조직화에서 세력들의 상호관계에서의 변화와 또한 관련이 있는데, 일관된 계급세력이 다수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것은 노동조합 조직체, 그 운동에서 대중적인 조직화와 참가를 위한 필요성을 이해한다는 문제와,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에서 어떤 투쟁 노선이 지배적일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운동, 일반적으로는 인민의 운동은, 그것이 대중운동이고 따라서 중립적 입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통치, 권력이라는 쟁점에 관한 입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견해는, 부르주아 세력과 기회주의 세력들에 의해 그릇되게 이해되고 지시되고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것들에 대한 중립성은 계급 협조, 사회적 협력,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월성의 승인, EU의 일방통행의 논리를 의미합니다. 자본가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의 테크노라트 대표자들은, 아마도 노동자들이 많은 정당 혹은 모든 정당에 속한다는 것이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투쟁들이 정치적으로 지도되고 있고 위험하고 분열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정치화’라는 의미의 내용은 정치화의 목표와 관련이 있는데 그 핵심은 자본의 권력의 타도입니다.

노동 인민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단결을 선택해야만 하는지, 아니면 노동자들의 인민 권력을 위한 단결을 선택해야만 하는지는 잘못된 딜레마인데 그것은 투쟁을 침식하고 패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투쟁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노동계급의 다수가 정치적 의식이 높으면 높을수록, 어떤 것이 악화되는 것을 막거나 혹은 어떤 더 좋은 것을 획득하기 위하여 당면한 문제들을 둘러싸고 투쟁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아집니다.

그것은 서로 간에 분리되지 않는 전략과 전술의 문제인데 전술은 전략의 유연성 측면에 의해 결정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항과 반격에 대한 분위기는 보편적으로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존재합니다: 그것은 체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 그리스 공산당과 그리고 현존하고 있으면서 그 운동에서 우리와 나란히 서 있는 급진적인 세력들 덕분에 파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세력들의 상호관계가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오랜 경험과, 그것이 배웠던 교훈들과, 또한 동화(同化)의 덫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과 결합되어 있는, 그리스 공산당의 전진적인 추진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에는 확실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정으로 우월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최종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모든 나라에서, 모든 대륙에서 동일한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 우리의 인민, 세계의 민족들, 국제 노동계급에 대한 신뢰의 맹세입니다. 노사과연

 

번역 : 제일호 │ 부산지회 회원

 

 

20년 전 우리 당의 주도로 국제회의가 처음 시작된 도시, 여기 아테네에서 열리는 제20차 공산당 및 노동자당 국제회의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 여러분 앞에 서있는데 한 세기의 삶과 활동을 마감한 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 공산당(the KKE)의 명예롭고 영웅적인 100년을 정당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모든 인류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인 목숨 자체를 바쳤던, 우리 당의 영웅적이고 명예로운 죽음의 발자취를 따라 결의에 차서, 역동적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은 비합법의 조건, 박해, 처형, 투옥 및 억압의 석기 시대 동안 그리고 지난 44년의 부르주아적 합법성의 세월 동안 계급투쟁의 모든 전환들을 커다란 결단력으로 견뎌냈습니다.

당은 1991년의 반혁명의 커다란 역사적 반전 기간을 거쳐 오늘날까지 계속 위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당은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얻었습니다. 재편성의 가파른 길을 한 걸음씩 오르고 있습니다.

반혁명의 승리를 이끈 원인을 추적하고 있고, 1996년 최초의 심의에서부터, 20세기 사회주의 건설 과정의 전복의 총체적 원인들에 대한 18차 당 대회에서의 이러한 노력의 집단적인 문서화에 이르기까지, 주요하게는 쏘련의 경험에 기초하여 연구하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100년의 전체 기간의 이 장엄한 과정을, 승리와 패배, 도약과 역전, 실수와 약점들, 뿐만 아니라 비길 데 없는 영웅주의와 결합시키기 위해 역사 기록 보관소의 문서들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열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동지들,

반동과 기회주의의 사이렌이 역사의 종말, 노동계급과 그 운동의 종말에 대해 노래하는 만큼, 삶 자체가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은 조만간 자신의 역사적인 역할, 역사적인 사명의 도전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즉,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의 최종적인 폐지와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의 건설.

이것은 노동계급이 집중화된 산업생산과 관련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위대한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입증된, 집단성, 의식적인 규율, 탁월한 인내와 같은 미덕이 뻗어 나오고 있습니다.

파리 코뮌과 10월 혁명은 우리의 투쟁에 영감을 주는 빛나는 예들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쳤고, 우리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100년 동안 행진해 나가면서 무수한 어려움을 견뎌낸, 우리나라의 수천 명의 노동 남성과 여성들처럼.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그리스 노동 운동의 몸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전투들이 있습니다.

가르침들, 긍정적인 것들과 그 과정의 약점들이 있는데 그에 대해 우리는 노동자의 전위라는 관점, 거친 계급투쟁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노동계급은 자연발생적으로 이 지위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 즉 의식적이고 조직된 전위의 혁명 이론과 활동으로써 이 지위를 성취합니다.

 

동지들,

혁명적인 강령의 존재, 맑스-레닌주의의 세계관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고수, 새로운 유형의 당의 형성의 원칙들,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정교화된 연구는 부정할 수 없는 현대의 무기가 됩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이점을 줍니다: 그러나 쟁점은 우리가 그것들을 우리의 일상 활동과 노력에서 창의적으로 그리고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하는가 입니다.

당면 요구들을 위한 노동자 투쟁의 가치와 이것들에 대한 당의 역할을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평가의 기준은 정치적 의식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이것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발전의 기준은 당 건설을, 직장에서 그리고 당의 대열의 사회적 구성, 연령 구성 및 여성 참가의 측면에서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당의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수준을 높이는 데 있어서 꾸준한 발전뿐만 아니라 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하여 정치국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에게 정치적 지도를 제공하고 그들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그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하나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복잡한 일상의 과제들이 우리를 주요하고 기본적인 과제, 즉, 당이 준비되어 있도록 하기 위해, 전환점들과 갑작스런 선회의 시기에 당이 기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당이 주요한 목표를 놓치지 않으면서 시의 적절하게 예측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항상 갖기 위해, 기층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것에서 멀어지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특수한 객관적 조건, 우리의 의지와 욕망과, 우리 자신의 개입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조건을 평가하면서 주체적인 요인을 판단하는 능력을 각 개인이 얻지 못한다면, 우리가 사업의 과정을 충분히 살피는 것, 필요한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실수와 누락을 관찰하고 교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스의 그리고 국제적인 경험은 또한, 혁명적 정세의 조건이 창출되고 노동계급이 권력을 빼앗아 장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영향력과 힘은, 투쟁에서 그 전위적인 전투적 활동, 당의 책임 있는 활동, 당의 사심 없음 그리고 그 공헌과 헤아릴 수 없는 희생과 일치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민을 향한 당의 예측과 경고가 확증되어 왔다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노동계급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 있을 때만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것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창출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 공산당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의식의 발전에 공헌하는 데 있어 자신의 책임성을 수동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당이 투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의 약점, 단점, 실수의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자본주의의 조건 하에서 사회주의 의식이 지배적일 수 있다는 환상을 품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당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요구들, 자신의 활동의 결과에 대한 비판과 자기 비판적 검토는, 부르주아 정당들―자본주의 체제의 한계 안에서 투쟁하는 것을 선택했거나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개혁될 수 있다고 대중에게 선언한 정당들―과 동일한 관점으로부터, 동일한 기준으로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 공산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장, 대도시 중심,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지역에서 끈이 확대되고 집중적으로 심화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급적 본질을 은폐하고,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 계급이라는 두 개의 기본적 계급 사이의 구분선을 숨기는 계급 본질을 은폐하는 성격 규정과 이데올로기적 발명들을 거부합니다.

그리스 공산당은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방향을 취하도록 투쟁하고 있고 그리고 그 방향에서,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계급과 인민의 중간층의 모든 부문의 투쟁을 연결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노력의 목표는, 협소하게 노동조합의 대중 투쟁에서 전위로서가 아니라 혁명적인 전위로서의 노동계급을 실천적으로 고무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대규모로 대중적 의미의 사회적 동맹을 드러내기 위해, 중간층의 인민 부문을 가능한 한 대규모로 노동계급과의 결합된 행동과 동맹으로 견인하는 것.

우리는 경제 공황의 빈번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그리스에서 노동운동과 그 동맹들이 상대적 후퇴, 환멸, 그리고 상대적 침체의 국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계급적 지향의 대중성 약화와 부패의 경향이,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에 있던 쏘련과 다른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복구되기 이전에, 오랜 기간에 걸쳐, 주요하게는 사회-민주주의적인 지배로 인해 발전해 왔습니다.

유로꼬뮤니즘은, 자신의 오른 손에 사회 민주주의를 든 서유럽 자본주의가, 노동조합 운동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노동조합 운동의 점진적인 후퇴, 심지어 그것의 타락을 초래하게 하는 기본적인 통로로서 작용했습니다. 그렇지만 투쟁들이, 세력들의 상호관계와 관련하여 긍정적인 차이들―그와 정반대되는 것이 유럽적 수준에서 발생했습니다―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음에도 발생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노동 남성과 여성들의 의미 있는 부분. 인민 대중들이 “피로를 느끼거나” 실망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노동조합 투쟁이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부분은, 어느 시점에 야만적인 조치가 끝나고, 위로부터 어떤 변화가 발생할 것을 기대하면서, 물론 헛되이 기다리기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요구를 축소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합니다. 이 끈들은, 자신의 생애의 첫 걸음부터 노동자, 종업원, 가난한 자영업자, 농부들인 사람들과 “묶여져 있으며”, 물론 직장에서는 결정적으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에서는, 자본가를 일자리를 공급하고 수입을 분배하는 사람으로 간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경제와 정치 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당들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두려움과 환상, 냉담함과 실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지는, 자본주의 체제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노동 계급의 혁명적인 역할에 대한 지식의 결여를 통해 표현됩니다. 이미 수립된 의회주의의 환상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국제공산주의 운동은 일정한 책임이 있는데, 우리 당이 부르주아 의회의 다수당과 정부에 대한 참여 혹은 지지와 관련하여 여러 번에 걸쳐 부르주아적인 동화(同化 assimilation)의 네트워크로부터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데올로기적 작업과 계몽은, 단지 현재의 쟁점들에만 기초하여, 혁명 전략의 일반적인 슬로건들과 입장들―생동감과 투쟁성 없이, 발전들에 기초하여 그것들을 풍부히 함이 없이―을 반복하는 형태로 발생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목사의 설교처럼 우리의 입장을 다른 당들에 대한 자세 혹은 일반적 비판의 형태로 제기한다면 어느 누구도 끌어 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당들이 일정한 길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자발적인 책임과 희생의 제공을 요구하는 완전히 다른 길―더욱이 이 모든 것을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반혁명의 승리의 시기에 수행하는―을 향하고 있는 정세에서 그러한 우리의 입장은 근거를 잃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과정은 사회주의를 향한 그리스 공산당의 전략적 목표의 필요성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증거를 제공하는 반면, 역사 자체는 그리스 공산당의 전략의 견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수준에서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의 교정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전략의 정교화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요구합니다. 더 광범한 노동자 대중의 활동과 발전을 위한 안내자로서 공산주의적 전위가 이것을 진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주아주의(bourgeioism)의 스킬라[Scylla, 역자 주, Messina 해협 이탈리아쪽 해안의 큰 바위. 〖그리스신화〗 이 바위에 살던 머리 6개, 다리 12개 달린 여자 괴물]와 개량주의와 기회주의의 카리비스[Charybdis, 역자 주, 〖그리스신화〗 바다의 소용돌이를 의인화한 여자 괴물]를 극복해 내고 투쟁과 정치적 발전에서 지속적인 활동, 일상적인 활동상을 당이 똑바로 유지해 가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경계를 풀 수 있도록 허락해주지 않는데, 왜냐하면 오늘날 활동 조건과 요구가 특히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강령적인 정교화와 특히 정치적 입장은 계급적 적들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에 의한, 당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기회주의의 주창자들은, 1990-91년 기간 동안―당시 그들은 반혁명의 승리가, 공산주의 운동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거”하거나 혁명적 사회주의의 본질이 거세된 어떤 맑스주의적 사상들을 제기할 수 있는 황금의 기회라고 믿었습니다―사용되었던 무디고 도발적인 언술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공격은 교활하고 또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2012년부터 계속하여, 기회주의는, 부정적인 선거 결과와 SYRIZA의 갑작스런 부상을 둘러싼 우려와 불안을 자신들의 주요 무기로 이용하여 우리에게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주요하게는 SYRIZA가 반인민적인 공격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희망의 노선을 가지고, 기회주의자들은 아마도 “좌파적인” 정치 세력들의 정부를 통해, 정치적인 정부 차원의 협조, 개혁들 그리고 유로존(Eurozone)에로부터의 가상의 출구의 노선으로, 그리스 공산당을 끌고 들어가려고 시도했습니다. 기회주의자들은, 그리스 공산당의 노선과 당헌에서 협조를 향한 이러한 움직임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난했습니다―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진 선거에서 그리스 공산당이 손실을 기록했던 시기에. 기회주의는 세력들의 부정적인 상호 관계 때문에 이러한 선택이 요구된다고, 그것은 이러한 관계를 변화시킬 발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러면서 그리스 공산당이 전술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물론 그 시점에서 SYRIZA가 제국주의적 중심들과 수립한 긴밀한 관계는 충분히 폭로되지 못했습니다.

기회주의는 물론 사회적 토대를 갖고 있는데 확대된 노동귀족층의 형성이 그러하고 국유기업들의 팽창으로 인해 봉급을 받는 과학자, 예술가, 교육자, 대중 매체의 노동자들을 광범하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계급적 적과의 타협, 체제 내에서의 정치적 해결책의 추구, 노동운동 내에서, 노동계급의 당내에서의 기회주의를 향한 경향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회주의를 반대하는 싸움은 세력들 상호관계 간의 계급투쟁의 모든 기간과 모든 국면에서 당의 혁명적인 노동계급적 성격을 보존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공산당들의 탈공산주의화에 대한 예방은 바로 이 투쟁으로부터, 그것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일관성과 그 능력으로부터 시작하고 그것의 조직적 일관성을 통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적인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은, 공산당이 과도기적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관리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때, 심지어 공산당이 공식적인 합의에 의해 구속되지 않거나 혹은 공산당이 자신의 독자성을 유지한다고 선언했을 때조차도, 이미 자신들의 손을 묶어버렸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서로 된 책임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것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법칙들은 정치적 협정들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1944년과 1989년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당의 단기간의 참가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경제와 정치 간의, 모든 경제적 및 정치적 현상 간의 관계, 예를 들어, 하나의 스캔들, 혹은 새로운 당의 출현 등과 같은 것에 기초하여 모든 사회적 문제를 사고하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들과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의 필요성―이것은 오늘날 노동계급의 커다란 부문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리고 이 점은 설명될 수 있습니다.)―사이에 하나의 구분선이 그어지게 됩니다.

경쟁하는 사회 세력들의 입장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은 자본의 근본적인 모순의 첨예화에서 발견됩니다: 한편으로는, 생산의, 가장 중요한 생산력으로서 노동의, 인간의 사회화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생산물의 개인적인 전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그 체제의 모든 모순과 갈등의 근원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의 강령을 규정해야만 하는 축입니다.

확실히, 자본주의 체제의 이 모순은 노동계급 전체에 의해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사회 전체의 조직은 역사적으로 우월하고 따라서 대체될 수 없다는 입장을 채택합니다.

그것은, 고용주 및 국가 폭력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조작―교육, 대중 매체, 교회, 부르주아 정당의 기구, 그리고 지방정부 및 반(半)국가 조직(예를 들어, 비정부 기구(NGO))과 같은 대중과 연결되는 국가 기구―을 통해서, 심지어 체제에 동화되고 있는 노동조합 조직들(예를 들어, GSEE, ADEDY)을 통해서조차, 부과되는 자본주의 권력의 한 측면입니다. 노동계급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조작은, 그것의 왜곡된 정치의식과 부르주아 정당에 대한, 혹은 최초에는 자신들의 대열로부터 생겨나지만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 정당이 되는 정당들에 대한 정치적 애착에서 반영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력들의 정치적 상호관계는 모든 점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를 반영하며, 예를 들면 선거 과정을 결정하는 부르주아의 권력 기관들―그 중에서 의회―에서 계급 지배를 표현하며, 자기 자신의 기관을 구성합니다.

세력들의 상호관계에서의 실제적인 변화는 부르주아 권력의 약점으로 인해 노동계급의 중요한 부분이 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 조작의 끈을 끊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력의 상호관계 문제는 적어도 공산당에 대해서는 비혁명적 조건 하에서 노동계급의 정치 의식의 성숙 과정에 의해 결정되지만, 또한 자본, 독점체들, 부르주아 정치 체제, 입법부, 합법적이고 억압적인 구조들, 지배적인 교육적, 종교적 그리고 도덕적 개념들, EU와 나토라는 제국주의적인 국제적 연합들에 대한 폭로와 충돌을 멈추지 않고 있는 노동계급-인민 세력은 공산당의 주위에 결집했습니다.

주체적인 요인인 우리 당의 결과들, 우리 당의 경과와 효율성에 대한 필수적인 비판적 및 자기비판적인 검토는,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에 있던 나라들에서 반혁명의 승리를 수반한 극적으로 부정적인 방향 전환이 발생했던 계급투쟁의 국제적인 세력들의 상호관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물론 공황들, 전쟁들, 경쟁들을 수반하는 자본주의의 지배에서의 균열은 축적되고 있으며, 공산주의 운동의 부분에 준비태세를 요구하는 새로운 조건, 가능성들에 대한 전망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계급투쟁의 진전, 긍정적인 발전의 추진력은 속임수, 혹은 “전술적” 움직임들, 혹은 소위 숙명론적인 리얼리즘, 혹은 선거 득표율에 대한 분개, 혹은 아마도 혁명적인 “순간들”과 “사건들”로 운동을 대체하는 것에 달려 있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전위적 노동자들이 인민 세력을 조직하기 위한, 조직화되고 방향 잡힌 개입들에 달려 있습니다.

목표는 가장 전위적인 노동 남성과 여성들로 당의 대열을 확대하는 것, 연령의 견지에서 당의 갱신, 당에 조직화되는 여성의 수의 증가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인민의 계층과 농부, 자영업자, 봉급을 받는 과학자와 예술가들로부터 지도적인 활동가들을 모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투쟁의 시기에 있는지 혹은 정체의 시기에 있는지 상관없이 체계적인 전문화된 작업을 요구합니다. 또한 당 대열에서의 증가가 자동적으로 더 강력한 투쟁을 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두 가지 사이에 연관성은 있지만, 이것은 결합된 과제들, 기준 및 수단과 함께 체계적으로 그리고 조직화된 방식으로 촉진되는 것이지 자연발생적으로나 기계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개의 적대하는 계급 간의 힘의 상호관계에서 실제적인 변화는 충돌하고 있는 노동계급 당과의 대규모 연대로 그리고 부르주아 기구들, 부르주아 기관들 및 그들의 정부 부분의 가시적인 약화, 기능에서의 무능력으로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세력들의 부정적인 국제적 상호관계는, 국제적 수준에서 계급투쟁이 반자본주의적이고 반독점적인 방향을 취하면서, EU의 전략적 선택에 기초하는 위기로부터의 정치적 탈출구와 직접적으로 충돌하면서 발전하는 정도에 따라 공격받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본의 예비 세력을 제한―그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만큼―하는 것, 자본의 기회를 제한하는 것, 피해를 입히고 반격과 자본의 타도를 위해 세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당의 힘을 구축하는 것은 기준의 결합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것의 어떤 것은 다른 것에 비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노동운동을 재편할 필요성, 반독점, 반자본주의 사회적 동맹의 촉진,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위한 투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동맹들과의 결합된 방향과 행동의 수준에 대해 우선적인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동맹의 수준과 정도는 각각의 국면에서, 소부르주아 층, 그들의 동요에 의해 가해지는 압력을 노동운동이 견뎌내는 능력에 의해 판단될 것이다.

또 다른 기준은 고용주와 국가의 위협, 폭력, 자본주의의 경제 공황, 제국주의 전쟁의 조건 하에서 인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당의 전략에 의해 결정되는 일상적인 투쟁의 꾸준한 전투성은 조만간 열매를 맺게 될 훌륭한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의 그리고 이어지는 선거 투쟁에 직면하여, 우리 자신의 공세적인 구호는, 우리가 이미 촉진해 왔던 것, 즉, 자본주의의 경제 공황 혹은 그리스 자본주의의 상승 반전의 조건 하에서, EU로의 응집이 강화되거나 약화되거나 하는 조건 하에서, 부르주아 정책들, 유로존의 일방통행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반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그리스 공산당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입니다.

노동조합운동의 재편성은 계급운동, PAME―노동계급과 그 운동을 위한 과거 수십 년 간의 최대의 성과이며, 노동자의 전투에서, 사회적 동맹의 촉진에서 올바른 방향을 이끌고 있는―의 가일층의 강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 재편성은, 지도력에서 그리고 첨예한 문제들을 둘러싼 투쟁의 조직화에서 세력들의 상호관계에서의 변화와 또한 관련이 있는데, 일관된 계급세력이 다수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것은 노동조합 조직체, 그 운동에서 대중적인 조직화와 참가를 위한 필요성을 이해한다는 문제와,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에서 어떤 투쟁 노선이 지배적일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운동, 일반적으로는 인민의 운동은, 그것이 대중운동이고 따라서 중립적 입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통치, 권력이라는 쟁점에 관한 입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견해는, 부르주아 세력과 기회주의 세력들에 의해 그릇되게 이해되고 지시되고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것들에 대한 중립성은 계급 협조, 사회적 협력,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월성의 승인, EU의 일방통행의 논리를 의미합니다. 자본가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의 테크노라트 대표자들은, 아마도 노동자들이 많은 정당 혹은 모든 정당에 속한다는 것이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투쟁들이 정치적으로 지도되고 있고 위험하고 분열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정치화’라는 의미의 내용은 정치화의 목표와 관련이 있는데 그 핵심은 자본의 권력의 타도입니다.

노동 인민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단결을 선택해야만 하는지, 아니면 노동자들의 인민 권력을 위한 단결을 선택해야만 하는지는 잘못된 딜레마인데 그것은 투쟁을 침식하고 패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투쟁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노동계급의 다수가 정치적 의식이 높으면 높을수록, 어떤 것이 악화되는 것을 막거나 혹은 어떤 더 좋은 것을 획득하기 위하여 당면한 문제들을 둘러싸고 투쟁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아집니다.

그것은 서로 간에 분리되지 않는 전략과 전술의 문제인데 전술은 전략의 유연성 측면에 의해 결정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항과 반격에 대한 분위기는 보편적으로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존재합니다: 그것은 체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 그리스 공산당과 그리고 현존하고 있으면서 그 운동에서 우리와 나란히 서 있는 급진적인 세력들 덕분에 파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세력들의 상호관계가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오랜 경험과, 그것이 배웠던 교훈들과, 또한 동화(同化)의 덫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과 결합되어 있는, 그리스 공산당의 전진적인 추진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에는 확실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정으로 우월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최종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모든 나라에서, 모든 대륙에서 동일한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 우리의 인민, 세계의 민족들, 국제 노동계급에 대한 신뢰의 맹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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