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자본주의 ‘최후’의 시대, 계급적 노동 운동으로 새로운 전망을 열어 나가자!

 

알파고(AlphaGo)의 시대?

2016년 3월,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전 세계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곧이어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역전당하는가?”,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같은 기사와 책들이 쏟아졌고,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가치 만들어야”, ≪인공지능 세계에서 살아남기≫와 같은,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서 “경쟁력”(?!)을 갖추라는, “창의성”(?!), “소통ㆍ공감”(?!)이 필요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조언(?!)을 담은, 기사와 책들도 넘쳐 났습니다.

그런데 바둑은 고도의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알파고의 개발사 딥마인드도 바둑으로 알파고의 ‘창의성’을 시험한 것입니다. 이후 알파고는 2017년 5월 커제 9단과의 대결에서 3전 전승을 거두는 등, ‘68승 1패’라는 전적을 남기고 바둑계를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알파스타(AlphaStar)라는 이름으로, ‘현대의 바둑’이라 불리는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진출해, 공평성을 위해 사람과 같은 조건으로 시야 및 속도에 제한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99.8%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개 ‘창의성’ 하면, 예술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데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DeepDream)이 그린 그림이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되고, 예일대가 개발한 인공지능 쿨리타(Kulitta)가 작곡한 음악은, 유명 작곡가의 음악과 구분이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2016년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하는 ‘호시 신이치 SF 문학상’에 응모한 1400여 편 중 1차 심사를 통과해, 엄청난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소통ㆍ공감’ 능력에 대해서도 말씀드리자면, 2018년 구글이 발표한 듀플렉스(Duplex)는 “사람과 구분되지 않게 만들어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알 권리, 프라이버시 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과 이로 인해 발생할 전화 사기 등 사회적 범죄 가능성”을 우려할 정도로, 사람의 목소리로, 사람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수준으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챗봇(Chatbot)’이라는 형태로 사람과 대화하는 인공지능은 이미 상용화되어 있고, 그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창의력, 소통ㆍ공감이 요구되는 분야의 상황이 이러한데, 단순ㆍ반복 작업이 주된 분야의 상황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무인ㆍ자동ㆍ스마트 공장이 늘어나고 있고,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시험 운행 중이며, 인공지능이 암 진단과 처방을 하고, 전국 지하철에서 무인 매표가 전면화된 것처럼, 철도ㆍ버스 등에서도 무인 발권기의 설치가 급증하고 있으며, 키오스크(Kiosk)라는 무인 주문기를 도입하는 식당ㆍ카페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채용 과정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농업, 제조업, 물류유통업, 판매서비스업 등, 생산 및 재생산의 모든 영역에서 무인자동화는 빠른 속도로 도입전면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2만 명 근무하던 중국 공장, 로봇 투입 뒤 100명만 남아”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달고 있는 2015년 3월 14일자 ≪중앙일보≫의 기사를 보면,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20년 후 미국의 일자리 47%가 소멸된다’고 했고, 토머스 프레이 미국 다빈치 연구소장은 ‘2030년 일자리 20억 개가 사라진다’고 밝혔다”고 소위 ‘전문가’들의 전망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명망가’들, 예를 들면 ≪사피엔스≫라는 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유발 하라리는 2016년 한국에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앞으로 30-40년 후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는 세계가 올 것”이라며, “거의 대부분의 직업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위 ‘전문가’, ‘명망가’들의 말대로 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장의 내 삶도 그렇지만, 우리 자식들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전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래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본의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인류가 거쳐 온 수백만 년의 역사상 최초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의 대상과 도구가 되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박탈된 사회입니다. 사람은 생산수단을 가지고 노동한 결과로 나오는 것들을 먹고, 입고, 사용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생산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자본가들)에게, 자신의 노동할 수 있는 힘(노동력)을 팔아서, 생활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한편,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 즉 자본가들은 노동하지 않고도, 생산수단의 소유자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입니다.

그런데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자본주의적 생산)하는 이유는, 생산물(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을 자기가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아 그로부터 이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상품의 판매를 둘러싼 자본가들 간의 경쟁이 사활적으로 벌어집니다.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이 같은 자본의 경쟁 과정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또 승리하기 위해, 저들은 노동자들을 더 가혹하게 착취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소위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이 바로 이러한 것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본 간의 끊임없는 경쟁 과정에서 전면 무인화자동화로까지 고도화된 생산력은, 결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조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인ㆍ자동화 기기들과 경쟁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하락할 수밖에 없고(대규모의 실업과 만연한 빈곤), 이 같은 인민 대중의 극도로 제한되는 소비 수준과 엄청나게 상승하는 생산력 수준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미 겪었고, 겪고 있는, 또 더 확대된 규모로 겪을 수밖에 없는, 세계적 규모의 대공황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빌 게이츠, 엘론 머스크, 마크 주커버그 같은 억만장자들까지 나서서, 그리고 밀턴 프리드먼,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도 나서서, ‘로봇세’ 도입을 주장하고, ‘기본소득’ 같은 것으로 대중의 소비 수준을 최소한도라도 유지시켜야 한다,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대!

하지만 우리는 저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만 먹어야 하는, 그래서 죽지 못해 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이며, 더군다나 ‘생산의 주인’인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자본가들에게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행동으로 열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저들은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습니다: “로봇은 궂은일을 시켜도 불평하지 않고, 노조를 만들어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화장실도 안 가고 1년 365일 24시간 일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를 협박합니다: “현대자동차 노사 외부 자문위원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생산기술 변화로 향후 자동차 제조업 인력이 최소 20%에서 최대 40%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이러한 변화에 노사가 협력하지 못하면 공멸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한국경제≫, 2019. 10. 6.), “톨게이트 수납원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나 … 큰 도전을 감당하지 못하고 진다면, 회사가 없어질 수도 있다.”(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1차적직접적으로는,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저들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고 싸워야 합니다. 저들 역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억압과 착취를 강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투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최소한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고,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싸움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하에서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은 지금 우리에게 더욱 가혹한 억압과 착취, 대규모의 실업과 만연한 빈곤을 가져다주고 있고, 우리는 현재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매일매일 투쟁해야 하지만, 우리가 생산수단의 주인이 되는 사회, 즉 사회 전체가 함께 생산하고 분배하는 사회에서는, 지금의 생산력은 그리고 그 사회에서 더욱 발전할 생산력은, 우리에게 자아실현을 위한 여유로운 시간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물질적정신적 생활의 향상 및 복지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투쟁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조직을 확대강화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에서 억압ㆍ착취받는 노동자계급의 처지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 사회를 바꾸는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역할임무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를 넘어서는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사회, 즉 사회주의 사회로의 전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조직적 성장과 계급 의식의 성장을 기반으로, 조직적정치적으로 단결해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제국주의 세력과 (독점)자본가계급에 전면으로 맞서 싸울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의 승리도 당연히 중요시해야 하지만, 동시에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 의식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을 흐리고 있는, 각종 부르주아소부르주아 기회주의개량주의와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한국 노동 운동은 아래에서부터 그리고 위에서부터 혁신되어야 하고, 계급적 노동 운동을 지향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전평, 전노협으로 이어지는 계급적 노동 운동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계승ㆍ발전시켜야 합니다.

 

매년 11월, 우리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전국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태일 열사 정신과 더불어, 1945년 11월 5일 창립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와 1917년 11월 7일(구력 10월 25일)의 러시아 사회주의 대혁명 정신도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11, 노동 해방의 깃발, 붉은기를 휘날리며 힘차게 진군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 봅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자본주의 최후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계급적 노동 운동으로

새로운 전망을 함께 열어 나갑시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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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4개의 댓글

  • 누군가(사회주의자)는 사상, 주의를 전면에 내걸지 않은 것을 가지고 문제삼았던데 아직 사상, 주의를 전면에 건 기구는 물론 이에 유사할 기구조차 구비하지 않은 시점입니다. 이는 좋게 보더라도 20세기의 1920년대인지 1930년대인지의 프로핀테른 운동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 같은 글의 다른 링크
        http://lodong.org/wp/archives/12082
        에는,
        아래와 같이 댓글을 달아두셨습니다.
        참고로 올립니다.

        “이렇게도 좋은 문서를 저들 사회주의자는 사상, 주의를 제목에 명기하지 않았다고 문제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과거 20세기의 1920년대인지 1930년대인지의 프로핀테른 운동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바로 조직 노총 어디에도 이를 실행할 만한 역량은 물론 내건 기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부에는 당연히 이를 사상, 주의로의 가교로서의 역할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이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스코프스키 님이 비판하고 있는 사회주의자의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참조하시구요..

        “돌려서 말하지 말자―계급적 노동운동이 아니라 사회주의 노동운동이다!”
        http://socialist.kr/lets-tell-the-socialist-labor-movement/

        앞서 댓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이 기사가,
        내용을 보지 않고, 제목(?)만 보는 비판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또한 사회주의자 기사 본문에는, “사실 이 말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도 어려운 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class oriented
        class oriented movement
        class-oriented movement
        class-oriented labor movement … 등등…
        적지 않게 쓰는 말인데…
        이것도 참 요상한 비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제목만 보고, 내용은 보지 않은 비판이네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서는~~ㅡㅡ;;

    당시 유인물을 배포하며, ‘사회주의자’ 분들이랑 잠깐이나마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돌아가서는 이런 얼토당토 않은 비판을 비판이랍시고~~

    본문을 보면, “이 사회를 넘어서는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사회, 즉 사회주의 사회로의 전망을 가져야 합니다”,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문장으로도 이렇게 떡하니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회주의를 이야기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계급적 운동 운운하고 있다는 비판을 어떻게~~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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