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건 펜입니까, 칼입니까

― 대한언론인상을 수상하신 ≪한국일보≫ ‘강철원’ ‘정재호’ 기자에게 ―

임이화|내란음모 조작사건 구속자 한동근(새날의료생협이사장)씨 부인

저는 이번에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구속된 구속자의 가족입니다. 이 황당하면서도 가혹하고 무서운 얘기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요.

지난 20일 ≪한국일보≫ 기사에 난 두 분의 사진을 봤습니다. 대한언론인상을 수상하셨더군요. 그 상이 어떤 상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지만 두 분이 자랑스레 웃고 있는 사진을 보니 영광스런 상인 것 같더군요. 그러나 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날부터 매일 잠도 오지 않더군요. 어쩌면 지난 8월 28일 영문도 모른 채 국정원에 의해 남편이 끌려간 바로 그때의 고통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는 것 같았습니다.

두 분에게도 가족이 있으십니까?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십니까… 내란음모 조작으로 구속된 제 남편은 좋은 사람입니다. 아니 훌륭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잘 살 수 있는 길을 일찌감치 버리고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을이 건강해야 개인도 건강할 수 있다며 지역에서 의료 협동조합을 만들고 주말도 없이 헌신해오며 주민건강과 건강약자를 돕기 위해 힘써왔습니다. 또한 집에서는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 바보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날때면 아들과 함께 블럭놀이를 하고 자전거를 태워주고 일부러 비 맞으며 동네산책도 하는 자상하고 다정한 아빠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맛있는 걸 대하면 가족들을 먼저 떠올리고 해마다 여름이면 꼭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여행을 가는 듬직하고 다정한 아들이기도 합니다. 어린 아들에게 단 한번 큰소리로 혼내는 법도 없고 그 흔한 무기장난감 하나 쥐어주지 않는 평화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남편을 어느 여름날 국정원은 내란음모를 했다며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은 채 데려갔습니다. 그들이 두고 간 영장에는 내란이니 총기무장이니 인명살상이니 하는 영화 속 얘기같은 현실감없는 내용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아무죄도 없는 사람을 데려갔으니 금방 나오겠지 하던 생각은 곧바로 쏟아지던 무지막지한 언론 보도에 의해 공포스러운 현실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마녀사냥식 언론공세… 그 시작은 ≪한국일보≫ 였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녹취록… ≪한국일보≫도 국정원도 서로 출처를 밝히지 못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상한 상황.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낸 공포는 대한민국을 마녀사냥의 광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도의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죄인처럼 살아가야 했으니까요.

한 낮에도 구속자 가족의 차에 커다랗게 페인트로 간첩차라고 낙서테러가 가해지고, 사람들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방적인 얘기만 해대는 뉴스를 보며 이성은 마비되고 당장이라도 공개사형을 시킬 것처럼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매일 퇴근 후 저녁이면 아이와 함께 나가던 산책도 더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밤에라도 혹시나 또다시 국정원이 쳐들어오지 않을까… 누군가 테러를 하지 않을까… 어린 아들을 누가 해치지 않을까, 현관문을 아무리 잠궈도 공포가 쉬 가시질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시던 연로하신 시어머니는 아예 전화기를 꺼놓으셨고 바깥나들이를 아예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 먹고 가신 미용실에서 사람들이 뉴스에 나온 아들을 보며 “저것들 다 사형시켜 버려야 되” 하는 말을 들으시고는 참았던 눈물을 밤새 토해내셨습니다. 사건 후 큰 충격으로 버티기가 힘들던 저와 아이는 함께 병원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부담스럽다며 거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얼마전 추운 겨울밤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다가 집 앞에서 서성이는 낯선 그림자를 보고 후미진 곳으로 숨었다가, 추워서 집에 가고 싶다고 우는 어린 것의 입을 틀어막으며 꼭 안고 있어야 했던 공포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어쩌면 기자로서의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로의 할 일… 먼저 묻고 싶습니다. 지금 들고 있는 게 펜입니까 칼입니까….36년전 인혁당사건을 아십니까? 그 억울하고 한 맺힌 죽음 앞에 언론의 할 일은 뭐였을까요. 한순간에 독재권력에 의해 가장을 잃은 가족들이 학대와 공포를 당할 때 언론은 어디에 있었나요? 독재자를 위시한 학살자들과 함께 칼을 휘두르고 있었던 게 언론 아니었나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요. 달라야죠. 어린아이 목에 새끼줄로 간첩이라 달아놓고 총살 놀이를 하던 그 무자비한 야만의 시대와는 달라야죠. 제 눈엔 언론이 지금 들고 있는 건 칼입니다. 36년전 그때 묻은 피가 아직도 낭자한 권력의 칼입니다.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한국일보≫가 제일 먼저 칼을 휘두른 마녀사냥은 무자비하게 벌어졌습니다. 누구든 마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그 칼로 내리칠 기세였지요. 아무도 진보당의 편에 서길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들은 피하거나 부정하거나 아예 입을 다물거나…그 중의 하나였지요. 그러나 이정희 대표가 말한 대로 3개월이면 밝혀질 진실이었습니다. 재판이 열리자 그 과정에서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록은 272여 곳 심하게 왜곡돼 있어 검찰 스스로가 수정했고 녹취록 원본 파일은 어이없게도 국정원이 지웠다고 했습니다.

또한 국정원이 조작한 이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이성윤은 남편의 27년지기 친구입니다.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시간…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중세 마녀사냥이 이루어지던 시절, 자신이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를 마녀로 만들어야만 하던 시절을 보는 듯 했습니다. 이성윤의 “내 생각에는 내란이다” “내가 추측하기에는 이석기 의원이 총책이다” “20년 넘게 운동판에 있어 본 나의 감으로 저 사람은 RO다”라는 거짓 증언만이 난무하였습니다.

오락가락하는 그 사람을 보며 부정한 권력 앞에 일개 개인은 그게 누구든 언제든 도구처럼 부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겠지요. 바로 ≪한국일보≫ 기자, 바로 당신들 같은 언론 말입니다.

≪한국일보≫ ‘강철원’ ‘정재호’ 기자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그 녹취록 기사는 상을 받을 만한 것이었습니까? 그 녹취록 기사를 근거로 한 여론재판은 정당한 것입니까? 그 녹취록 기사를 근거로 한 정당해산은 정당한 것입니까? 만일 정당하다면 계속 칼을 들고 휘두르십시오. 그러나 정당하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펜을 들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 세우는 데 힘을 보태세요.

지금 다시 한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당신들이 휘두르는 건 …. 펜입니까…. 칼입니까.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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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댓글

  • 힘든 일도 묵묵히 하시며 길러 주신 부모님과 저를 보며 옳고 그름을 익히는 두 딸들을 생각하며 옳곳게 살아 보자는 결심으로 소위 잘 나가는 두곳 직장을 훌훌 털어버리고 육체 노동을 하며 적은 수입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밥벌이도 당당하게 하여야 거룩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두 기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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