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입시철 단상

배은주|회원

이 땅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건, 학부모로 산다는 건…

12월, 새벽 6시 반. 현관문을 열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몸이 절로 움츠려들었다. 하늘엔 아직 달이 휘영청 하고, 별들은 간밤보다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셋째가 옷을 다시 여미고 어두운 새벽길에 발을 내딛었다. 학교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안쓰럽다.

얼마 전 전국모의고사를 보고 와서 저조한 성적 때문에 속상해 한 딸이다. 아이는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으며 온실 속의 화초였다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셋째는 일반 중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대안학교를 2년 정도 다니다가 1년은 혼자서 지내며 검정고시를 치르고,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것인데, 그간 자신이 보낸 그 시간을 두고 스스로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다. 특히나 대안학교에 다니며 입시공부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학생들을 불쌍하게만 봤는데 그것은 세상을 몰라도 너무도 몰라 생긴 교만이었다고 울먹였다. 대안학교에서 배운 체험활동들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세상이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도 감상적이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너무나도 치열해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이 성적으로 대학은 갈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막연하고 자괴감마저 든다고 하였다. 나는 딸애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길게 토닥이지는 않았다. 아이는 이미 학교교육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아이는 지금 21세로 대학 2년생이다. 큰 애는 중3 때, 친하게 지내던 학교친구들한테서 집단폭행을 당했다. 머리와 허벅지 안쪽 같은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집중적으로 맞았다. 아이는 며칠 동안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평소 정장을 잘 입지 않는 나와 남편은 정장을 차려입고 학교를 찾아갔다. 학생주임교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딸애를 두고는 우리 부부에게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투로 위협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이 학생은 평소 지각도 많이 하고… 치마도 규정보다 짧게 입고 다니고… 문제가 좀 있어요!” 그에게 나는 딱 한 마디만 했다. “그럼, 그런 학생은 맞고 살아도 당연하다는 말씀입니까?” 

큰 애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성적으로 그냥저냥 중학교를 나왔고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대학을 왜 가려 하는지, 별 생각이 없었던 아이는 그야말로 대학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줄 몰랐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이미 대학졸업장을 손에 쥐고서 살아 온 우리 부부의 안정된 삶에서 비롯하는 것일지 모른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친정동생은 학벌로 인한 차별대우와 사회적 편견에 아직도 괴로워하고 분노할 때가 많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학벌콤플렉스라며 동정 아닌 동정을 하곤 했다. 미안하다). 아이가 도자기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어 보여서 차라리 공방을 다니며 감각을 잘 익히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방을 차리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라며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대학을 선택했고 자유전공학부를 거쳐 결국엔 세라믹디자인을 전공으로 택했다. 거의 1년 반 정도를 방황하다가 최근에서야 비로소 자기 전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둘째 아이는 고3으로 한 달 전 대입수능시험을 봤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수학을 잘 못하는 친구들에게 시간을 내어 ‘동갑내기 과외’도 해 주었다. 자연스레 장래희망으로 수학선생을 꿈꾸었다. 이번 대학수시전형에도 수학과를 지원했으나 평소보다 수능성적이 낮게 나와 최저등급을 맞추지 못해 원하는 대학은 갈 수 없게 되었다. 정시는 더 바늘구멍이라 이번 입시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아이는 겉으로는 태연해 보인다. 입시에 쏟은 시간과 열정에 비해 결과는… 아, 이 얼마나 허망한가.

아이들 못지않게 나또한 지치고 피곤했다. 어느 날 아침엔, 이 지겨운 입시전쟁에서 나도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셋째와 중1인 막내가 남아있지 않은가 (대학을 꼭 가야되느냐 마느냐는 논외로 하자). 사람들이 내게 입버릇처럼 하던 인사말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아이고, 아직 한참 남았네요.”. “바깥양반이 많이 버셔야겠어요.”, “우리 집은 이제 다 끝나서 신경 쓸 게 없어요.”…

그렇다. 사실 아이들은 자라고 금세 학생의 신분을 벗는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식교육과 관련해서 이렇다 저렇다 수많은 긍정과 부정의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며 잘못된 교육정책의 수정을 위해 애쓰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자식의 입시완성과 더불어 손에서 털어내어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선대가 이루어낸 업적 혹은 미결로 남겨진 문제점들은 후대의 몫으로 남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모든 역량을 다해 열중하던 사안에 대해 이토록 싸늘해지는 것일까. 그것을 넘어서면 또 다른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일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음모가 있는 건 아닐까.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전문가들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교육에 대해서는 다시는 입에 올리고 싶지 않게, 되돌아보고 싶지도 않게, 진저리가 쳐지도록, 그렇게 가혹하고 잔인한 교육정책을 만드는 건 아닐까. 그 음모라는 게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어 우리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혹, 아닐까?

대학입시제도, 치열한 정글의 법칙

우리 부부가 자식들에게 보다 넓고 깊은 경험을 갖게 하지 못하고 한편 보다 과감하지 못했던 탓인지, 부모를 보고 자라는 아이 넷 모두는 대학이 아닌 다른 도전적인 길을 찾지 못했다. 둘은 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하나는 아직 확실하게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역시 대학진학을 희망한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우리 집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이 땅의 대학진학율은 80%를 넘는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대학진학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치열한 입시제도에 곧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대로 가정소득이 높은 집 자식일수록 학력이 높다는 것은 실증된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훨씬 좋은 대우와 보수를 받는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가난한 집 부모들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그리고 안정된 직업, 직장을 구하기 위해 기를 쓰고 만만치 않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되기를 바란다기보다 더 이상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을 받쳐주는 것이다. 고등학생의 경우 한 과목당 사교육비가 적어도 40만 원 정도하고 한 학생이 대체로 두세 과목의 사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제 개천에서 절대 용이 나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용의 그림자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시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은 가정경제와 성적의 관계에 통계적 수치를 들이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환상을 심어주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어냈다는 인간승리 스토리를 빠뜨리지 않는다. 올해는 자연계수능 만점자를 미화시켰다가 기사에 실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 해명하는 촌극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입시전형은 또 어떤가. 대입전형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어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차라리 전형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이것을 특화한 입시컨설팅 업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지금 성황리 영업 중이다. 정작 학생들을 직접 대면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유명한 컨설턴트를 ‘모셔다’ 학생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대입전략전술 강연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 입시컨설팅회사는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을 등에 업고서 갈피를 못 잡는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쏠쏠한 특수를 누리고 있다. 시험문제도 꼬고 또 꼬아 가능한 학생들이 풀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입시전형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알아먹지 못하게 해야 한다.

현행 입시에서 수시는 6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전형료는 대부분 65,000원인데 학생들은 대개가 6군데를 다 지원한다. 그렇다면 한 가정에서 수시전형료만도 40만원을 지출한다. 9월에 둘째가 수시전형을 위해 원서를 냈을 때, 문득 대학들이 수시전형료로 얼마나 걷어 들이는지 궁금해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둘째가 지원한 모 대학 수학과의 경우, 수시로 8명을 뽑는데 무려 699명이 지원해 전형료는 무려 약 4,500만 원이었다. 이 학교는 단 3일 만에 2014년도 전체 수시전형료로 약 28억 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을 손에 쥐었다. ≪아시아경제≫ 9월 15일 자 기사에 의하면, 올해 수시 1회 차 마감 결과, 수도권 26개교에 지원한 인원만 해도, 중복 지원을 포함했겠지만, 85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수시에 들어간 비용은 대략 554억이 넘는다. 554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학부모의 지갑에서 대학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다. 이미 대학은 입시를 통해 이렇게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놀랍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은 12월말에 다시 한 번 벌어질 것이다. 정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대학으로서는, 황금알을 낳는 이런 복잡한 입시전형을 마다할 이유가 무에 있겠는가. 이렇게 쉬운 장사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이른바 일류대의 경우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선점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과연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교육정책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받고는 있는 것일까. 아니 이 땅에 일관된 교육정책이나 교육철학이 있기나 한 것일까.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교육감과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은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킨다고 평가했다. 최근 박근혜정권의 ‘행복교육, 미래인재양성’의 교육정책추진에 대해 김성곤 교육감은 단적으로 “참 걱정스러운 정부”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핵심공약들은 후퇴되거나 파기 수준에 이른 것도 있기 때문이다.

차별 없이 교육받을 권리

가계를 위협하는 높은 사교육비, 그리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채무자로 만들어 버리는 높은 등록금 등에 대해 교육당국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것조차 뒤집는 기막힌 정권이다. 공교육은 그 책임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적으로 전가함으로써 빈부격차사회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대학은 학생의 교육열망에 부응해서 지성을 키워주어야 하는 곳이어야 하지만 이미 대학은 지성의 전당으로서의 빛을 상실한 지 오래고 자본의 논리로 운영되는 기업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이른바 일류사립대의 대학유보금은 조 단위이며 신촌에 있는 두 개 대학은 각각 6조, 7조 이상이다. 대학중심의 입시제도와 대학서열화의 철폐의지가 전혀 없는 공교육시스템은 곧 자본주의의 첨병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제 26조에서는 모든 사람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초등교육과 기초교육은 무상이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오늘 이 땅의 교육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확대되어 있긴 하지만 평등한 교육환경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한 가정의 경제형편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능력 있는 부모 밑에서 분별력 있는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우위를 점유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점차 교실로부터 도태되고 있다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유아에서 십대 후반까지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대학, 그곳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정진한다. 왜 그렇게 달려야 하는지 서로 묻지 않는다. 보다 좋은 자리를 점유해야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공교육에서 내쳐진 사람들의 서글픈 본능이다. 그러나 단지 서글픈 본능만 있으랴. 소수에게 집중되고 저들이 누리고 있는 그 성역을 부수기 위해서라도 배우는 것이다. 공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기를 쓰고 배우는 것이다. 가난한 학부모에게서 나오는 그 피 같은 돈이 그저 헛되게만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초등교육에서 고등교육까지 차별 없이 교육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은 꿈에 불과할까. 그런 철학에 토대를 둔 변혁적인 교육정책은 정녕 실현 불가능한 것일까.

셋째가 저 새벽길을 걸으며 소수에게 집중된 힘에 대항하는 에너지를 안으로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져 고개를 들어 그저 다시 한 번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벽별이 저토록 맑고 깨끗하고 찬란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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