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료] 임금에 대하여

신재길 | 교육위원장

 

 

 

* 이 글은, 지난 7월 10일 노동전선 사무실에서 진행된 노동전선 기획 강좌: 경제무식자 불온한 경제학을 만나다의 4강 강의 자료이다.

 

 

1. 임금의 본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건이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노동력도 상품으로 매매되고 있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고 자본가는 산다. 노동력도 상품으로 매매되는 만큼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격을 가진다. 노동력의 가격이 임금이다. 노동력이란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노동 능력이다.

 

노동자는 이러한 노동력을 시간으로 판다.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파는 경우에 노동력은 사람의 몸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몸에서 빼내어 팔 수 없다. 그렇다고 자기 몸을 파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판 다음에는 자본가의 공장에 가서 자본가를 위해 자기의 노동력을 소비한다. 노동력의 소비가 노동이다. 노동자와 자본가 간에 매매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다.

 

따라서 임금은 노동의 가격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이다.

 

그러나 노동력의 가격은 실제 관계를 왜곡하는 변형된, 은폐된 형태로 나타난다. 자본가들은 임금은 노동의 대가이고 이윤은 자본의 기여분이라고 왜곡한다. 왜곡은, 노동력의 가격을 노동의 가격으로 생각하는 지점에 있다. 한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8시간의 노동을 해 주고 임금으로 8만 원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경우에 8만 원은 노동의 가격이지, 노동력의 가격은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만약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격이 아니라 노동의 가격이라면 노동이 상품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은 상품으로 될 수 없다. 이를 우리는 기계와 기계가 작동하는 기능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자본가는 기계를 살 수 있으나 기계의 작동하는 기능을 살 수는 없다. 기계의 작동 기능을 기계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살 수는 있으나 노동은 살 수 없다. 이처럼 노동이란 상품으로 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가격을 가질 수도 없다.

 

또한 임금이 노동의 가격이라고 한다면 노동자는 자기가 일한 만큼 전부 값을 받은 것이 된다. 예컨대 노동자가 하루에 8시간 일하고 8시간분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된다. 그렇게 되면 자본가는 아무런 잉여가치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자본가도, 자본주의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자본가가 공장을 차려 놓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을 하는 목적은 잉여가치를 얻자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력을 사지만 절대로 노동자가 노동한 만큼의 보수를 지불하지 않는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은 노동의 가격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이다.

 

그러면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이 노동의 가격인 것처럼 나타나는가? 그것은 첫째로 노동자가 노동을 다한 다음에야 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노동력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보수인 것처럼 보인다.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표면적으로는 조립공, 용접공, 전기공 등의 일정한 유용한 노동으로서 나타난다. 노동자의 노동에 의해서 새로운 가치(이것은 노동력의 가치보다 크다)가 창출되었다는 사실은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비로소 확인된다. 둘째로 임금은 노동자가 일한 시간의 길이나 그가 생산한 생산물의 수량에 따라 계산되고 지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자기가 받는 임금이 자기가 수행한 전체 노동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임금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전체 노동 중에서 잉여노동에 대하여는 아무런 보수도 지불하지 않고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임금형태가 노동의 가격인 것처럼 나타남으로서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으로의 노동일의 분할에 대한 모든 흔적이 지워지는 것이다. 노동자의 전체 노동에 지불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 자본주의적 착취형태의 특수성이 있다. 노동이 그 지불된 부분과 미지불된 부분으로 분할된다는 것을 지워 버리는 임금형태는 착취관계를 은폐한다.

 

 

2. 노동력 재생산과 자본제적 생산관계의 재생산

 

자본주의적 생산이 존속하고, 확대되기 위해서는 임금 노동자가 재생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들이 먹고 입고 살아야 한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가르쳐야 한다. 노동자는 그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며 먹고살 수 있어야 재생산된다. 임금의 정체, 본질은 여기에 있다. 임금이란 노동자 가족이 먹고사는 비용이다. 즉 임금이란 노동자 가족의 생계비이고, 노동력의 재생산비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확대재생산 체계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재생산 비용도 노동자의 유지 비용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증식 비용도 포함된다.

 

사실,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의 존재와 그 재생산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절대적 조건인 것처럼, 노예의 존재와 그 재생산은 노예제가 존속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다. 노예는 노동에 대해서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착취만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예들의 경우에도 사실은 그들의 노동생산물의 일부를 노예 자신과 자식들의 재생산을 위해서 돌려받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를 가리켜 임금노예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점에서의 동일성 때문이다. 임금이 이런 상태를 왜곡한다는 점은 위에서 본 대로이다.

 

노동자가 그 노동력의 재생산비, 즉 생활비(생계비)를 획득하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한다는 것은 이제 노동력이 자본의 요소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력이 자본의 요소로 됨으로써 자본은 상품, 즉 가치를 가진 생산물을 창조할 수 있다. 자본가는 다시 노동자를 고용할, 따라서 노동력을 구매할 자본 부분을 재생산하고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노동자는 자본에 의해서 고용되어 생산과정에서 자본가를 위해서, 상품이나 잉여가치 곧 자본의 이윤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가 자신을 인적인 생산요소로서 재고용할 재원, 즉 가변자본도 함께 생산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획득하는 것은 사실은, 자본가의 상품과 잉여가치 즉 이윤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자본관계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그 자체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3.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규정하는 요인들

 

노동력의 재생산비, 즉 임금의 크기는 무엇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노동력의 재생산비, 즉 임금의 크기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들의 양과 그 가치, 곧 그 생활수단들의 가격에 의해서 결정된다. 생활수단이란 의식주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필수적인 생활수단의 가치에 의해 결정되며, 종국적으로는 이 생활수단들에 체화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60년대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값싼 라면을 들여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의식주라는 단순한 물리적인 요소 외에 노동력의 가치에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인들이 큰 역할을 한다. 간단한 예로 10년 전만해도 스마트폰은 생활수단에 들어가지 않았고 30년 전만해도 자가용은 사치품으로 생활수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자동차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생활 필수 수단이 된 것이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영화나 문화예술 관람도 해야 하고, 여행도 1년에 한두 번은 가야 힐링이 된다. 뿐만 아니라 취미활동도 해야 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다.

 

노동력의 가치(임금)는 탄력적이다. 잉여가치에만 눈이 어두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일을 시켰으면 한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자본가는 반드시 일정한 임금을 노동자에게 주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노동할 능력을 유지해야 계속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하에서 임금이 내려간다고 해도 한없이 내려갈 수는 없다. 여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게 된다. 이 한계를 임금의 최저한계라고 한다. 임금의 최저한계는 노동자가 겨우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이다.

 

임금에는 최저한계와 함께 그 이상 더 올라갈 수 없는 최고한계가 있다. 임금의 최고한계는 노동력의 가치이다. 자본가들은 절대로 노동력의 가치보다 더 지불하지는 않을 뿐 아니라 노동력 가치조차 지불하지 않으며 최저한계 이하로까지 끌어내리려고 애쓴다. 임금이 최저한계로 내려가면 노동자의 건강은 파괴되고 급속히 쇠약해지며 사망률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임금을 인하하려는 것을 반대하며 나아가서 임금 인상과 사회보험, 노동보호의 실시, 노동일의 단축 등을 위해 투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 수준은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역량 관계와 그들 간의 치열한 계급 투쟁에 의해서 결정된다. 임금 인상을 위한 노동자의 투쟁이 맹렬하고 그들의 세력이 강하면 임금은 점차 그 최고한계로 접근하게 되고 반대로 노동자의 투쟁이 약하고 자본가의 세력이 강하면 임금은 점점 최저한계 또는 그 이하로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임금을 어느 정도 받는가 하는 것은 그들이 임금 인상을 위해 얼마나 완강하게 투쟁하는가에 달려 있다.

 

 

4. 자본주의 발전에 따르는 실질임금의 저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아서 얻은 화폐로 겨우 목숨을 유지한다. 그런데 노동자의 생활 형편을 알기 위해서는 임금을 명목임금과 실질임금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명목임금이란 화폐로 표현한 임금을 말한다. 이것은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판 노동력의 값으로 받은 화폐액이다. 이것만 가지고서는 노동자의 실지 생활 형편을 알 수 없으며 그것을 알자면 실질임금을 따져 보아야 한다. 실질임금이라 노동자가 임금을 가지고 구입한 생활수단의 양으로 표시된 임금을 말한다.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알기 위해서는 명목임금의 크기와 소비수단의 가격 수준과 편의시설의 요금 수준, 노동자가 내는 각종 세금과 집세 등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명목임금이 2배로 높아졌다 하더라도 소비자 가격과 편의시설의 요금, 집세 등이 2배 이상으로 높아졌다면 생활 수준은 도리어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실질임금은 부단히 낮아진다. 그것은 첫째로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불리한 조건으로 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실업자가 더욱더 늘어났다. 기계의 발달에 의한 노동력의 대체에 기인한다. 4차 산업의 도래는 이를 극한까지 몰아갈 것이다. 자본가는 이것을 이용하여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의 임금마저 더욱 낮춘다. 그리고 실업자가 늘어간다는 것은 노동력의 공급이 그 수요를 능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노동력의 가격이 더욱더 그 가치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노동력이라는 상품 가격의 특징이다. 다른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에 대한 시장의 수요와 공급관계에 의하여 움직이면서 결국은 가격과 가치가 일치하게 된다. 그런데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언제나 공급이 수요보다 많기 때문에 그 가격(임금)은 가치보다 항상 낮다. 그것은 실업자가 존재하며 생산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성인 남자 대신에 여성 노동과 아동 노동이 광범히하게 채용되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또한 같은 노동을 한 경우에도 여성과 아동에게는 성인 남자들보다 매우 낮은 임금을 지불한다. 이러한 사정은 성인 남자의 임금 수준을 낮아지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생산에 기계를 도입함에 따라 생산 공정이 단순해져서 기능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적어진다. 이에 따라 기능 노동자들도 대다수는 무기능 노동자의 처지에 굴러떨어지게 되고 그들의 임금도 낮아진다. 여기에 비정규직의 광범위한 확산은 임금 저하를 더욱 가중시킨다. 이리하여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임금은 날로 저하되며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더 강화된다. 둘째로 실질임금이 저하되는 것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소비품의 가격이 등귀하고 각종 서비스 요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하에서는 소비품의 가격이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는데 임금은 도저히 그것을 따라서지 못한다. 이는 불환지폐 씨스템인 현대 자본주의의 일반적 현상이다. 셋째로 자본주의하에서는 각종 세금이 날로 증대되며 집세가 오르기 때문에 실질임금이 저하된다.

아래 [그림1]을 [그림2]의 정규직 평균 임금과 비교해 보자. 전세 자금이 2002년 기준 약 8,000만 원이다. 이것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고 저축한다면 약 31개월 걸려야 모를 수 있는 금액이다. 중소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는 47개월 정도 걸린다. 2014년에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그것이 42개월 정도로 늘어났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경우 67개월 정도로 늘어났다. 항상 통계를 다룰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절대적 상태를 나타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통계 수치가 현실의 감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다만 그 경향성만을 보자. 아래의 통계 그래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경향적으로 주거비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즉 임금 상승률보다 주거비 상승률이 더 가파르게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실질임금의 저하를 나타낸다.

 

 

 

 

5. 부르주아 임금론과 그에 대한 비판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이며 임금의 크기는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에 대한 수요 공급관계, 그리고 임금 인상을 위한 노동자의 투쟁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임금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부단히 저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그릇된 임금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이른바 임금 기금설, 사회적 임금론, 조절적 임금론 등이다. 임금 기금설에 의하면 일정한 시기 일정한 사회에 있어서는 노동자에게 지불할 일정한 임금 기금이 있는데 매개 노동자는 기금 중에서 일부를 임금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결국 임금으로 지불된 금액이 고정되어 있으므로 노동자 수가 증가하면 그만큼 매개 노동자가 받게 되는 임금액은 적어지며 또 일부 노동자의 임금액이 인상되면 그만큼 다른 일부 노동자의 임금액은 감소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부단히 떨어지는 것은 피하지 못할 일이니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을 그만두라는 반동적인 이론이다.

 

사회적 임금론 또는 사회적 분배론 역시 그러한 반동적 주장의 하나이다. 이 이론의 주장자들은 노동력이 상품이라는 것을 거부하며 노동력의 가치가 임금의 기초로 된다는 것을 부인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임금이란 사회생산물에 대한 노동자의 몫이라는 것이며 그 몫의 크기는 노동생산성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의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임금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노동생산성의 성장이 오직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데만 유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노동자에게도 유리한 듯이 꾸며대고 있다. 노동생산성이 증대한다는 것은 동일한 노동시간에 더 많은 사용가치(생산물)가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위 노동생산물의 가치(가격)는 노동생산성의 증대에 비례해서 감소한다. 예를 들어 어떤 생필품을 생산하는 데 지난 1년 동안 노동생산성이 10% 증대했다고 하면, 그 상품의 가격은 이제 1년 전 가격의 1.1분의 1이 된다. 지난해 가격에 비해서 약 10%가 저렴해지는 것이다. 어떤 상품의 가격이 1년 전에 10,000원이었다면 이제는 10,000원×1/1.1=9,090원이 된다. 이는 명목임금이 같다면 실질임금이 인상되는 결과가 나온다. 즉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노동생산성이 증대하는 만큼 증대한다는 결론이다. 이 경우 실질임금을 노동생산성이 중대한 만큼 올리기 위해서 다시 화폐임금을 올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생산성 임금제론자들은 고맙게도 여기에 다시 노동생산성 증대만큼 임금을 올려준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플레이션과 생산성 증대의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성 증대는 착취율의 증가로 나타나고, 상대적 빈곤화를 낳는다. 생산성에 인플레이션을 반영한다고 해도 생산성 증대의 핵심은 노동자의 노동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요소에 크게 좌우된다. 땅을 팔 때 100명이 하는 일을 포크레인로 하면 1명이면 충분한 이치이다. 이런 자본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노동생산성을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의 노동강도을 높이고 임금 인상을 제한하기 위한 술책이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생산성 증대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이 이론의 반동성은 첫째로 자본가들에게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해 주기 위하여 노동자로 하여금 노동생산능률을 높이는 데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하자는 것이며, 둘째로 임금노예의 처지에 있는 노동자가 자본주의 제도에서도 자기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듯한 환상을 가지게 하자는 것이며, 셋째로 노동자들로 하여금 투쟁의 화살을 자본주의 제도 그 자체를 전복하는 데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제도를 그대로 보존하는 조건에서 생산물의 분배에만 관심을 돌리게 하자는 데 있는 것이다.

 

임금에 관한 반동적 부르주아 이론의 다른 하나는 소위 조절적 임금론이다. 이 이론의 기본 내용은 임금 수준은 부르주아 국가의 노동법과 기업가와 노동조합 간의 협정에 의해서 조절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옹호자들은 자본주의 국가가 임금을 조절하는 의의를 강조하며 노자 간의 협정에 의한 임금 조절을 찬양하고 있다. 이 이론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실시되고 있는 임금 동결 정책을 옹호하며,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마저 막아 버리고 그것을 노자 협조로 바꾸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회자되고 있는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경제의 침체를 회복한다는 구실로 임금 수준을 동결시키고 있으며, 임금은 단지 협약에 의한 노사정 간의 합의 방식에 의해서 규정되어야 한다고 설교하고 있다.

 

부르주아 임금론은 그 주장이 아무리 다양하다 하더라도 본질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다. 이 이론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첫째로 임금의 본질을 은폐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임금이 노동력의 가격임을 거부하면서 임금을 노동에 대한 지불로 규정한다. 둘째로 임금을 규정하며 생산물에 대한 분배 방식을 규정하는 것을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관계로부터 분리시키며, 생산수단을 자본가들이 소유하고 있는 조건에서도 마치 공정한 분배가 가능한 듯이 주장한다. 셋째 임금의 크기에 영향을 주는 제 요인들을 왜곡하고 있다. 이리하여 부르주아적 임금 이론의 주장자들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기가 노동하여 생산한 전체의 생산물을 임금의 형태로 받는 듯한 환상을 가지게 하려고 애쓰며,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임금이 증가하면 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된다고 설교한다. 자본주의 국가와 독점자본가들이 실시하고 있는 임금 정책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득해 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이 중 임금 기금설에 기반한 공공상생연대기금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6. 변형된 임금 기금설―일자리연대기금(공공상생연대기금)

 

임금 기금설은 J. S. 밀에 의해 정식화되었다. 이는 사회에는 임금 지불에 충당해야 할 일정액의 임금 기금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노동자 수로 나눈 것이 바로 평균 임금이라고 주장하는 학설이다. 임금 기금이란 자본 중에서 노동의 고용에 지불되는 부분이다. 이 학설이 실질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임금 기금은 생활수단 특히 식료품의 가격이다. 임금의 최소 하한을 임금 총액으로 미리 설정하는 반동적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임금 인상 투쟁은 쓸모없게 된다. 이 이론의 주요 결점은 노동과 자본이 상호 독립적인 크기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회적 총자본은 물론 노동력 구매를 위해 지출되는 자본도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증가한다. 자본주의 조건하에서 총임금 기금은 모든 노동자의 개인적 임금 총계이다. 물론 임금 총계가 개인적 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임금이 임금 총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를 정식화한 밀조차 이 이론의 오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비과학적 이론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 이론이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속에서도 명시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암묵적으로 전제되고 있다. 소위 일자리연대기금(공공상생연대기금)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임금 기금설에 기초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로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일부 보존하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기저에는 대기업 정규직 고임금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저임금의 원인이라는 임금 기금설이 자리 잡고 있다.

과연 그런가?

앞서의 [그림2]에서 볼 수 있듯이, 대기업 노동자 임금은 2002년에 비해 2014년에는 약 1.83배 올랐고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은 약 1.69배 올랐다. 그래프에 없지만 비정규직 임금에서는 이 증가 비율이 훨씬 떨어진다.

그럼 그동안 1인당 국민소득은 얼마나 증가했을까?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2년 1인당 국민소득은 1,593만 원이고 2014년에는 2,938만 원이다. 약 1.84배 증가했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상승도 1인당 국민소득 증가에 조금 못 미치고 있다. 즉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제 성장의 정당한 자기 몫을 어딘가에 빼앗기고 있다. 그러나 그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많이 올랐지만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율에는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아도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임금의 원인이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 때문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로 조직화되어 투쟁함으로써 국민소득 증가율만큼을 근근이 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 분배되어야 할 국민소득 증가분은 어디로 갔을까?

[그림3]을 보자.

 

 

[그림3]을 볼 때 기업총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앞서고 있고 가계소득증가율은 경제성장률에 뒤지고 있다. 가계소득은 임금소득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원래 경제 성장과 기업소득 그리고 가계소득의 증가율은 같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악화되지 않는다. 한국은 1997년 이전까지는 경제성장률과 기업소득증가율 그리고 가계소득증가율이 거의 같았다. 그러나 1997년 이후 기업소득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웃돌고 가계소득증가율은 경제성장률보다 낮다. 이는 경제 성장으로 커진 파이의 대부분을 기업이 가져갔다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는 [그림4]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내유보액의 증가로 나타났다.

 

 

[그림4]에서 볼 수 있듯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으로 돌아가야 할 몫이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즉 기업이윤으로 축적되어 있다.

 

그럼 임금소득(근로소득) 내에서의 차이는 어떨까?

자본가들은 임금소득 상위 10%를 주로 언급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이 상위 10% 내외에 포진하여 있기 때문이다. 임금소득 상위 10%와 하위 90%를 비교하여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전략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위 1%나 상위 0.1%의 임금소득 추이는 어떨까? 전문경영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소득 추이 통계는 거의 발표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해서 [그림5]를 보자.

 

 

[그림5]에서 주의해서 볼 것은, (2)로그 눈금 그래프의 기울기이다. 로그 눈금 그래프의 기울기는 증가율을 보여 준다. 각 선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각각 소득 상위 10%, 5%, 1%, 0.5%, 0.1%, 0.05%, 0.01%를 의미한다. 위에서 2번째인 상위 5%를 기점으로 아래 최상위로 갈수록 기울기가 가파르다. 이는 최상위로 갈수록 임금소득이 급격히 증가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위에서 상위 10% 내외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소득 증가율이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과 거의 비슷했음을 보았다. 이와 비교하여 볼 때, 최상위 1%의 임금소득 증가율은 국민소득 증가율을 훨씬 상회함을 알 수 있다.1)

 

결론적으로 대기업과 대기업 임원들이 하위 90%의 임금 몫을 착취한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그나마 국민소득 증가율만큼이라도 임금소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조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임금 구조의 불평등을 해소할 길은 대기업 정규직의 소위 유연화가 아니라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투쟁이라는 점이다.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은 노동계급의 선봉대이다. 그러나 선봉대만으로 자본과 맞서 이길 수 없다. 뒤에 광범위한 후비대가 지원해 주어야 한다. 지금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의 임무는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일자리연대기금은 자본가와 연대하는 것이다. 일자리연대기금이 아니라 비정규직 연대투쟁기금이어야 한다. 노동자가 양보할 것은 없다. 노동자는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


1) 김낙년, 한국의 소득불평등, 1963-2010: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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