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 한국 사회에서 민족 문제의 성격

문영찬 | 연구위원장

 

 

* 이 글은 2019년 6월 8일 대구 현대사상연구소의 쎄미나에서 발표된 글을 수정ㆍ보완한 것이다.

 

 

1. 민족 운동의 역사적 형성과 전개

 

민족 문제는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부터 수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그리고 20세기 초에 제국주의가 발생, 발전하면서 식민지의 민족 해방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해방 투쟁과 맞물리면서 역사 발전의 주요한 원천이었다. 그리고 21세기 지금도 이란, 베네수엘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등 제국주의의 억압에 시달리는 약소민족들의 현실이 전개되고 있고, 한국의 경우 특수하게 분단 체제하에서 민족적, 계급적 억압이 중층적으로 전개되며 여전히 통일적인 민족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제국주의의 억압 아래에 놓여 있다.

민족 운동은 자본주의 형성기에 태동했다.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 사회에서는 민족이라기보다는 아(亞)민족 혹은 종족의 형태로 존재했었는데, 자본주의 형성기에 비로소 민족 국가가 성립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경우 19세기 전반기만 해도 통일적인 민족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독일은 수많은 작은 공국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러한 나라의 분열 상태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통일적인 민족 국가 형성의 요구가 강화되었던 것이다. 19세기까지 서유럽의 경우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민족 국가의 형성이 완료되었다. 19세기의 이러한 민족 국가를 수립하려는 운동, 민족 운동은 그 성격이 부르주아적인 것임은 명백하고 그 주요 추진력도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민족 운동은 유럽적인 범위를 벗어나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한다. 세계 곳곳의 식민지, 혹은 반(半)식민지에서 민족 해방 운동이 발생, 발전한 것이다. 레닌은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 자결권 테제를 제기한다. 약속민족들, 그리고 식민지들의 독립적인 민족 국가 형성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레닌의 테제는 20세기 민족 해방 운동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것이었다. 레닌은 약소민족들의 독립 국가 형성은 그 성격이 부르주아적 성격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승인하고 있다. 즉, 민족 자결권 자체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민족 자결의 권리를 승인함을 통해 제국주의 민족의 노동자계급과 식민지, 약소민족의 노동자계급 간의 진정한 연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실현이 가능함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레닌의 이러한 민족 자결권 테제는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로 인해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고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운동과 식민지, 약속민족들의 민족 해방 운동이 제국주의에 맞서서 동맹을 결성하는 전략으로 발전했다. 20세기의 무수한 민족 해방 투쟁의 성격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지형과 전략에 의해 결정되었다.

약소민족들의 민족 운동은 20세기 전반에는 중국, 인도, 터키, 조선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들 민족 운동은 사회주의 쏘련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하였다. 그리고 2차 대전에서 사회주의 쏘련이 승리하고 중국 혁명이 성공함에 따라 세계 식민지 체제는 붕괴의 길을 걷고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많은 독립 국가들이 형성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에 맞선 노동계급 운동과 민족 해방 운동의 동맹이라는 전략은 의연히 관철되고 있었다.

쏘련이 붕괴된 후에 제국주의가 강화되면서 약소민족들에 대한 억압이 다시금 강화되고 있는데 그 형태는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침공, 시리아, 리비아에 대한 제국주의의 개입, 베네수엘라, 이란에 대한 미 제국주의의 억압 등등 21세기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자본 축적을 위한 원료의 획득, 시장의 확대 등을 목적으로 제국주의적 억압과 개입을 강화하고 있으며 또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세력, 제국주의에 맞서 자주적 길을 가고자 하는 반제국주의 세력들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놓고 있다.

 

 

2. 한국에서 민족 운동의 태동과 전개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에서 민족 운동의 태동은 1894년에 발생했던 동학 농민들의 봉기였다. 일제에 대한 저항, 농민들에 대한 봉건적 수탈에 대한 저항이었던 동학 농민 혁명은 그 성격이 반제 반봉건 운동이었다. 이에 대해 조선의 봉건 지배 계급은 일제와 연합하여 농민 봉기를 진압하였고 그 이후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조선에서는 일제에 반대하는 의병 운동이 일어났으나 일제에 의해 진압되고 조선은 1910년 공식적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런데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2년이 지난 1919년에 조선의 민중들은 다시금 일제에 반대하고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는 봉기를 일으켰는데 그것이 3ㆍ1 봉기이다. 이 봉기에서는 두 갈래의 흐름이 있었는데 하나는 민족주의 흐름이었고 하나는 민중적 흐름이었는데 후자의 흐름은 이후 조선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민족 해방 운동으로 발전한다. 이후 조선에서는 노동쟁의, 농민의 소작쟁의 등 계급적인 운동이 발전하고 조선 공산당의 결성과 와해가 반복되는 등 끊임없이 해방 운동이 전개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이러한 해방 운동은 사회주의 쏘련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었는데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일제에 맞서는 무장 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1945년 2차 대전이 쏘련의 승리로 끝나고 일제가 패망함에 따라 조선은 독립적인 민족 국가 형성의 길로 갈 수 있는 전망을 획득했다. 그러나 조선의 북쪽은 쏘련군이 진주하고 남쪽은 미군이 진주함에 따라 복잡한 정세가 전개되었다.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한 분할 점령은 이후 쏘련과 미국 간에 냉전이 시작됨에 따라 정치적 분단으로 전화된다. 미국은 조선 민중의 분단에 대한 반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분단국가의 수립을 강행하고 이러한 대립은 1950년의 한국(조선) 전쟁으로 이어진다. 한국(조선) 전쟁은 분단국가 체제를 공고화한 것이었는데 이후 한국 사회는 미국의 신식민지가 되어 미 제국주의가 세계 사회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전초 기지가 되었다.

 

 

3. 분단 체제가 제기하는 민족적 과제

 

분단 체제의 성립과 공고화는 조선 민족의 의사에 반하는 제국주의적 성격의 억압이었고 그것은 전쟁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분단 체제하에서 남쪽의 한국 사회는 장기간 파시즘의 억압에 놓였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가혹한 착취와 수탈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는 끊임없는 정치적 불안정의 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한국의 민중들은 억압 체제에 맞서 4ㆍ19 혁명, 유신 반대 투쟁, 광주 민중 봉기, 6월 항쟁 등 가열찬 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질식되어 역사의식을 박탈당해 왔던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은 분단이 미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 미제는 분단에 대한 민중들의 반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는 것, 한국(조선) 전쟁은 그러한 모순의 폭발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분단 체제는 한국 사회에서 민족적 과제가 미완의 과제라는 것을 제기하는 것이다. 즉, 한국 사회가 미 제국주의를 극복하여 자주성을 회복하고 또 남과 북이 통일되는 민족 국가 수립을 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적 과제는 레닌이 제기한 민족 자결권 테제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민족 자결의 권리가 독립적인 민족 국가 수립의 문제였듯이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분단에서 비롯되는 민족적 과제 또한 부르주아적 성격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즉, 분단 체제가 제기하는 민족적 과제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성격의 문제이다. 이 점을 혼돈하면 민족 통일의 과제를 한국에서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미루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PD파 일부에서 이러한 혼란된 주장을 과거에 제기한 바 있는데 이는 민족적 과제의 계급적 성격을 혼동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자주성의 회복, 민족 통일, 통일된 민족 국가의 수립 자체는 한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하지 않은 상태,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가능한 것이며 그 자체로 사회주의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는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보아도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 문제가 하나의 과제로 제기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분단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등의 억압하에 놓여 있고 분단 체제, 그리고 미 제국주의의 억압이 노동자계급의 해방 투쟁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길을 가리키는 사회주의 사상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재갈이 물려 있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집결체로서 사회주의 전위 정당은 국가보안법을 극복해야만 형성과 유지, 발전이 가능한 것이 지금의 조건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분단의 극복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 하고 남북문제에 있어서, 미제에 반대하는 투쟁에 있어서, 부르주아들과 소부르주아들의 주도성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문제라는 쟁점에 적극 개입하여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을 발휘해 가야 한다.

 

 

4.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민족적 과제

 

미제에 의해 형성된 분단국가 체제하에서 한국 사회는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 과정은 다음의 말로 요약된다. 즉,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이에 대해 한국의 자본가계급은 득의양양하지만 한국 자본주의는 생산력만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를 무덤에 매장할 매장인까지 광범위하게 창출했다. 한국 자본주의 발전이 배태하는 한국 노동자계급의 발전!

미제의 신식민지 체제는 과거의 구식민지 체제와 달리 신식민지 사회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용인하거나 적극 육성하여 예속적인 지배 계급을 창출하여 이들을 통해 간접 지배하는 방식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국가 권력은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 형성되는 예속 자본가계급과 한국의 노동자계급 및 민중과의 적대의 비화해성의 결과 형성, 발전해 온 것이다.

이러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의 결과 한국 사회의 계급 구성에서 노동자계급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과거 한국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 등 소부르주아들은 그 비중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인간 해방을 달성해야만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고 다른 모든 계급을 해방시켜야만 자신이 해방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한 형성은 한국의 사회 운동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주도성의 물적 토대가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 사안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은 약하고 소부르주아적 관점의 주도성이 큰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쏘련이 붕괴하고 난 후 노동자계급이 이데올로기와 정치 노선에서 공황의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사회주의의 기치가 꺾이고 자본가계급의 정규직, 비정규직 분할 전략에 노동자계급은 지속적으로 밀려 왔다. 그리고 노동 운동의 상층부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과실을 향유하며 개량주의 노선을 추구해 왔는데 이 또한 노동자계급에서 변혁적 관점의 쇠퇴를 반영하는 것이다. 둘째는 앞서 분단 체제가 제기하는 민족적 과제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민족 문제의 특수성이 한국의 사회 운동, 특히 노동계급 운동에 왜곡되게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사회 운동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는 분단 문제, 민족 문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변혁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의 결여의 반영이다. 그리고 지배 계급이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분단 체제를 유지, 강화하는 현실은 민족 문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입장이 성립, 발전하는 것을 방해해 왔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 노력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는 쏘련 붕괴 이후의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인 변혁적 관점의 공백 상태를 종식시켜야 한다. 이는 쏘련 붕괴에 대해 해명하는 것을 기초로 사회주의의 기치를 재정립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 이론적,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노동자계급의 변혁 전략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둘째는 분단 문제, 민족 문제에 대해 소부르주아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입장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물적 조건, 객관적 조건은 주어져 있다. 노동자계급이 한국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현실은 민족 문제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이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객관적 토대이다. 노동자계급은 민족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야 하는데 민족 문제의 객관적 성격이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서지 않는 부르주아적 성격이라는 점,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민족 통일로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 문제의 해결, 민족 통일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중대한 정치적 조건의 하나라는 점 등을 명확히 하면서 자신의 주도성을 세워 가야 한다.

민족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은 한편으로 민족 문제에 대해 명확한 이론적 분석과 정리를 이루어 내는 것, 다른 한편으로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 한-미 동맹 등을 축으로 하는 억압적인 분단 질서와 정치적으로 투쟁하는 것을 통해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미제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결집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관철시켜야 한다.

 

 

5. 민족 문제의 전략적 성격

 

한국 사회의 당면 변혁의 성격은 무엇인가? 1980년대 변혁의 성격은 민족민주적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었음은 당시 운동 세력 상당수가 동의하는 보편적 인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변혁의 성격은 1980년대와는 본질적으로 달라졌다. 1980년대는 파쇼 권력을 타도하고 미 제국주의를 축출하는 혁명을 달성하고 그것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ㆍ전화시킨다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당시와는 계급 대립 구도가 변화하였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적대와 대립은 지금은 완연히 성숙한 상태이다. 80년대는 반동 부르주아 계급 대 노동자계급 및 민중의 대립이 기본 축이었고 그 중간에 자유주의 세력이 동요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019년 지금의 계급 대립 구도는 반동 부르주아지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로 구성되는 자본가계급 대 노동자계급 및 민중의 대립이 기본 축이며 그 중간에 소부르주아 개량주의 세력이 위치한다. 이러한 계급 대립 구도의 변화는 한편으로 자본가계급의 힘의 강화를 보여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저항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이러한 계급 대립 구도의 변화는 한국 사회에서 당면 변혁의 성격이 사회주의 변혁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 조건, 계급 대립 구도가 변화한 상황에서 민족 문제, 민족적 과제는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민족 문제의 성격, 민족적 과제는 자본주의의 틀을 넘지 않는 부르주아적인 것임은 분명하다. 현 단계에서 민족적 과제는 미제를 극복하고 자주성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한-미 동맹의 분쇄, 주한미군의 철수 등을 핵심으로 하여 한국 사회에 대한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통일을 가로막는 제반의 장치를 해체하는 것(국가보안법은 이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며 한국의 인민들이 이북에 대해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다), 분단 체제에 기초한 반공 이데올로기 등을 분쇄하는 것 등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그 자체로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면 당면 변혁에 있어서 민족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우선, 민족 문제의 해결은 당면 변혁인 사회주의 혁명의 추진 과정에서 달성해야 하는 것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민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국가보안법 등 민주적 과제가 미진하다고 해서 당면 변혁이 사회주의 변혁임이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당면 변혁의 전략적 성격은 민족민주적 과제를 포함하는 사회주의 변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반대로 민족적 과제의 수행이 그 자체로 부르주아적 틀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단순한 전술적 과제인 것은 아니다. 즉, 민족적 과제의 수행은 단순히 정세의 변화에 의해 규정되는 과제의 성격을 넘어선다. 미제의 신식민지적 지배를 극복하는 것, 민족 통일의 과제를 달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도정에서 중대한 전략적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선전, 선동의 자유의 확보를 가능하게 하며, 또 남과 북의 민족 간 적대의 종식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의 강화에 있어서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게 민족민주적 과제의 실현이 사회주의 변혁을 가로막고 있는 둑을 무너뜨리고 또 사회주의 변혁의 추진이 민족민주적 과제의 실현에 추동력을 주는 것, 이러한 상호 작용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당면 변혁의 성격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차적 중요성이 있고 핵심적 관건이 되는 것은 사회주의 변혁의 추진인데 그것은 지금의 계급 대립 구도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남과 북의 민족 간 적대가 종식되고 민족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노동자계급의 해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입장에서는 통일이 곧 노동자계급의 해방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북이 사회주의 사회라고 해도 남과 북의 통일이 남쪽에서의 계급의 폐지로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한 계급 투쟁을 요구하는 새로운 과정이 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민족적 과제는 사회주의 변혁의 과제에 종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노동자계급은 당변 변혁에 있어서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 선동의 노력을 한시도 멈추어서는 안 되며 사회주의의 기치를 정립하는 것을 기초로 사회주의 정치의 영역을 개척하고 넓혀 가야 한다.

이렇게 민족민주적 과제와 사회주의 변혁은 긴밀한 연관 속에 놓여 있다. 따라서 민족적 과제에 대해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들과 소부르주아들의 주도성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오류가 된다. 부르주아들은 민족 문제를 자본의 시장의 확대 문제로 바라보고 소부르주아들은 민족 통일의 문제를 지상 과제로 삼으면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문제를 뭉개 버리고 계급 화해를 조장하고 노동자계급에게서 변혁성을 거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계급이 민족 문제에 대해 적극 대응하지 않는 것은 오류이다. 그것이 아니라 미제에 대해 반대하고 분단 질서에 반대하는 투쟁은 지금의 계급 대립 구도에서는 사회주의 변혁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은 민족 문제의 영역에서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주도성을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각인을 찍어 가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계급 대립 구도에서 민족적 과제의 수행은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에 입각할 때만 변혁적 성격을 띨 수 있다.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이 거세된 채로 전개되는 민족적 과제의 수행은 자본가계급에 봉사하는 것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지금의 운동에서 NL 중 상당수의 통일 운동이 자유주의적인 문재인 정권의 헤게모니에 끌려가는 것은 그 통일 운동이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과 결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해방의 기치, 사회주의 변혁의 기치를 다시 들어야 하며, 그를 기초로 민족적 과제의 실현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민족적 과제가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에 입각하여 수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20세기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 해방의 과제는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과 통일될 때만 성공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적 과제의 수행에 앞장섬으로써 자신의 해방의 길, 사회주의 변혁에 다가설 수 있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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