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레닌주의의 제 문제(2)(쏘련 공산당(볼쉐비끼) 레닌그라드 조직에 드림)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1. 레닌주의의 정의

2. 레닌주의의 주요 문제

3. “영구” 혁명 문제

4.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5.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에서의 당과 노동계급

6.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에 관한 문제

7.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를 위한 투쟁

 

 

4.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부르주아 혁명과 구별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특징은 무엇인가?

부르주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차이는 5가지로 귀착된다.

 

1) 부르주아 혁명은 대개 자본주의 질서가 일정 정도 이미 만들어져 형태를 갖춘 조건에서 시작되었다. 이 형태는 혁명이 공공연히 진행되기 이전에 봉건 사회의 태내에서 자라나고 성숙한 자본주의적 경제 형태이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미 만들어진 사회주의적 경제 형태가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조건에서 시작된다.

 

2) 부르주아 혁명의 기본 임무는 권력을 장악하여 그 권력을 이미 존재하는 부르주아 경제에 맞추는 데 있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기본 임무는 권력을 잡은 후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데 있다.

 

3) 부르주아 혁명은 대개 권력을 장악하면 완성된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단지 혁명의 시작일 뿐이다. 권력은 낡은 경제를 개조하고 새 경제를 조직하는 추진력으로 이용된다.

 

4) 부르주아 혁명은 한 착취자 집단의 권력이 다른 착취자 집단의 권력으로 대체되는 데 국한된다. 그래서 낡은 국가 기구를 파괴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모든 착취자 집단을 권력에서 제거하고 모든 근로자와 피착취자의 대표인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한다. 그래서 낡은 국가 기구를 파괴하고 그것을 새 국가 기구로 대체하지 않고는 혁명을 수행할 수 없다.

 

5) 부르주아 혁명은 오랫동안 수백만 피착취 근로대중을 부르주아 주위에 묶어 둘 수 없다. 바로 그들이 피착취 근로자들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피착취 근로자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튼튼한 동맹으로 묶어세울 수 있으며 묶어세워야만 한다. 그래야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기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다음은 이에 대한 레닌의 주요 테제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르주아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의 기본적 차이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봉건주의에서 생겨난 부르주아 혁명에 대해 말하자면, 새로운 경제 조직이 낡은 질서의 태내에서 점차적으로 형성되어 봉건 사회의 모든 측면을 변경한다는 점이다. 부르주아 혁명 앞에는 단 하나의 임무, 즉 종래 사회의 속박을 일소, 폐기, 파괴하는 일만이 있다. 모든 부르주아 혁명은 이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부르주아 혁명에 요구되는 모든 것을 수행한다. 즉 자본주의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은 완전히 다른 상황에 있다. 역사의 우여곡절로 인해 후진적인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시작되면 후진적일수록 낡은 자본주의 관계에서 사회주의 관계로 이행하기가 더욱 어렵다. 여기에는 파괴의 임무에 더하여 전대미문의 곤란한 새로운 임무, 즉 건설의 임무가 더해진다. ([레닌 저작집] 제22권, p. 315.)

 

레닌은 계속한다.

 

1905년의 위대한 실험을 경험한 러시아 혁명의 창조적인 인민이 1917년 2월에 이미 쏘비에트를 창설하지 않았더라면, 쏘비에트는 10월에 결코 권력을 장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공은 운동이 수백만 대중을 포함하는 조직 형태를 갖추었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갖추어진 형태가 쏘비에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정치적 영역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승리의 행진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권력 형태는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몇 가지 법령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쏘비에트 권력을 혁명 초기 수개월 동안의 맹아적 상태에서 러시아 국가에 설립되어 합법적으로 승인된 형태, 즉 러시아 쏘비에트 공화국으로 전환시키는 일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제22권, p. 315.)

 

레닌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나 엄청나게 어려운 두 가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문제는 초기 몇 개월 동안 우리 혁명이 승리한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같은 책.)

 

첫 번째로 모든 사회주의 혁명 앞에 나서는 국내적 체제 구축의 문제이다. 사회주의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과 다른 점은 후자는 자본주의적 관계가 이미 형성돼 있었던 반면 쏘비에트 권력―프롤레타리아 권력―은 넘겨받을 만한 사회주의적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데 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발달된 자본주의 형태라도 엄밀히 말해 고도의 소규모 공업 부분만을 포괄할 뿐이며 농업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대기업의 관리 책임을 조직하고, 전 국가 경제기구를 하나의 거대한 기구, 즉 수억의 인민이 단일한 계획으로 지도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제적 유기체로 전환시키는 것 등은 우리의 어깨 위에 놓인 엄청난 체제 구축의 문제였다. 현재의 노동 조건 하에서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내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만세식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같은 책, p. 318.)

 

두 번째 커다란 어려움은 … 국제적 문제였다. 우리가 매우 쉽게 께렌쓰끼 도당에 승리할 수 있었고, 또 매우 쉽게 권력을 확립했으며,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토지의 사회화와 노동자의 지배에 대한 법령을 통과시켰던 것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매우 쉽게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럽게도 당시 조성된 정세가 잠시 동안이나마 국제 제국주의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국제 제국주의는 자본의 모든 힘과 고도로 조직된 군사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진짜 힘이며, 국제 자본주의의 진짜 요새이다. 이런 국제 제국주의는 어떤 경우나 조건에서도 쏘비에트 공화국과 병존할 수 없다. 그 객관적 지위와 그 안에 체현하고 있는 자본가계급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상업적 연결, 국제적인 금융 관계 때문에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 점이 러시아 혁명의 최대의 어려움, 최고의 역사적 문제이다. 즉 국제적 임무를 해결할 필요성, 국제적 혁명을 호소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제22권, p. 317.)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본질적 특징이자 기본적 의미이다.

이러한 낡은 부르주아 질서의 근본적인 변혁이 폭력 혁명 없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없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이러한 혁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틀 내에서 부르주아지에 순응하면서 평화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이 나갔거나 정상적인 인간의 이해력을 상실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난폭하고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가 더욱 강력하고 절대적으로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당분간 오직 한 나라에서만 승리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적대적 자본주의 나라들에 포위되어 있고 국제 자본이 그 나라의 부르주아지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피억압계급의 해방은 폭력 혁명 없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지배계급이 만들어 낸 국가 권력 기관을 파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제21권, p. 373.)

 

여전히 사적 소유가 존재하더라도 즉 자본의 지배와 멍에가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우선 주민의 대다수가 프롤레타리아 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게 하라. 그럴 때에만 당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이고 또는 권력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 이것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하는 말이다. 이들은 자칭 사회주의자라고 부르지만 실은 부르주아지의 충복일 뿐이다. (제24권, p. 647.)

 

우리는 말한다. (쓰딸린의 강조.)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먼저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자본의 멍에를 부수고, 부르주아 국가 기관을 분쇄하라. 그럴 때에만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착취자들을 착취하여 대다수의 비프롤레타리아트 근로대중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그들의 동조와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책.)

 

레닌은 계속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민의 대다수를 자기편으로 획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국가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다음으로 쏘비에트 정권을 세우고 낡은 국가 기관은 분쇄해야 한다. 그래야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즉각적으로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 타협주의자들의 지배, 권위, 영향을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다. 셋째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착취자들에 대한 착취를 통해 대다수 비프롤레타리아트 근로대중의 경제적 요구를 혁명적 방법으로 충족시킴으로써 그들에 대한 부르주아지와 부르주아 타협주의자들의 영향력을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 (같은 책, p. 641.)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특징이다.

이와 관련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기본 내용이라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본 특징은 무엇인가?

 

레닌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투쟁의 끝이 아니라 계급투쟁이 지속되는 새로운 형태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승리하고 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비록 패배했지만 완패하지는 않아 소멸되지 않은, 저항을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저항을 강화하는 부르주아지에 반대하여 수행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다. (제24권, p. 311.)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보통 선거에 의한 대중적 정부, 비계급적 정부와 혼동하는 것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계급은 자신이 혼자서(쓰딸린의 강조)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의 한 부분이다. 이 개념은 한 계급이 자기가 단독으로 권력을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며 또 보통 선거에 의해 수립되고 전 인민에 의해 신성화된 대중의 정부라는 말로 자타를 기만하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제26권, p. 286.)

 

그러나 이것은 한 계급의 권력, 즉 다른 계급과 권력을 나누지 않으며 나눌 수도 없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자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계급의 피착취 근로대중으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그들과 동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이러한 권력, 한 계급의 권력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소부르주아 계급의 근로대중, 주로 근로 농민 대중과 특수한 형태의 동맹을 맺어야만 견고하게 수립되고 행사될 수 있다.

 

특수한 형태의 동맹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다른 비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근로대중과 동맹은 한 계급의 독재라는 사상과 완전히 모순되지 않는가?

 

이것이 특수한 형태의 동맹이라는 것은 동맹의 지도력이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점에 있다. 이것이 특수한 형태의 동맹이라는 것은 국가의 지도자,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의 지도자가 하나의 당, 프롤레타리아 당, 공산주의자들의 당으로서 다른 당과 지도력을 나누지 않으며 또한 나눌 수도 없다는 점에 있다.

 

생각 그대로, 모순은 겉보기에 불과하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근로인민의 전위인 프롤레타리아트와 수많은 비프롤레타리아 계층의 근로인민(소부르주아지, 소경영자, 농민, 인쩰리겐찌야 등) 또는 이들의 대다수와 맺는 계급 동맹의 특수한 형태이다. 이 동맹은 자본에 반대하는 동맹, 자본의 완전한 타도와 부르주아지의 저항 및 자본의 복원 시도에 대한 완전한 진압을 목적으로 하는 동맹, 사회주의의 최종적 수립과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동맹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특수한 상황, 즉 격렬한 내전이라는 상황 속에서 성립된 특수한 종류의 동맹이다. 이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들과 사회주의에 대해 동요하는 동맹자들과의, 어떤 때는 중립세력(이 경우에는 동맹은 투쟁에 대한 협정 대신에 중립에 대한 협정이 된다)과의 동맹이다. 또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른 계급들 사이의 동맹이다. (쓰딸린의 강조.) (제24권, p. 311.)

 

까메네프는 자신의 교육 보고서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이와 같은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독재는 한 계급과 다른 계급의 동맹이 아니다. (쓰딸린의 강조.)

 

까메네프는 여기서 주로 나의 팜플렛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의 한 구절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단지 노련한 전략가가 용의주도한 수완으로 교묘하게 선택한 정부의 상층 기관이 아니다. 주민의 한 부분이나 다른 부분의 지지에 적절하게 의거하는 것도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근로 농민 대중 간의 계급 동맹이다. 자본주의 전복과 사회주의의 최종 승리를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를 조건으로 하는 계급 동맹이다.1)

 

나는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식화를 온전히 견지한다. 왜냐하면 이 정의는 방금 인용했던 레닌의 정의와 완전히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독재는 한 계급과 다른 계급의 동맹이 아니다라고 하는 까메네프의 아주 단정적인 주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레닌의 이론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고 단언한다.

 

나는 연합의 사상,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동맹 사상, 이 동맹 내에서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사상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만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다음과 같은 레닌의 테제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만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한 오직 농민과의 연합만이(쓰딸린의 강조)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구할 수 있다. (제26권, p. 238.)

 

또 다음과 같은 레닌의 테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독재의 최고 원칙(쓰딸린의 강조)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지도적 역할과 국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다. (같은 책, p. 460.)

 

레닌은 독재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인 착취자들을 억압한다는 목표를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재의 과학적인 개념은 법률이나 규칙에 전혀 방해받지 않고, 직접적으로 폭력의 사용에 의거하는 완전히 무제한적인 권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25권, p. 441.)

 

독재란 ―까제츠 선생들, 이 점에 주목하시오― 법률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의거하는 무제한적인 권력을 의미한다. 내전의 시기에 승리한 모든 권력은 오직 독재일 수밖에 없다. (제25권, p. 436.)

 

그러나 물론, 독재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하더라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오직 폭력의 사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독재란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독재가 오직 폭력의 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과거의 조직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노동 조직을 의미한다. (제24권, p. 305.)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 단지 착취자들에 대한 폭력의 사용만은 아니며, 폭력의 사용이 주된 것도 아니다. 혁명적 폭력 사용의 경제적 기초, 즉 그 효과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에 비하여 보다 고도한 노동의 사회적 조직을 대표하고 만들어 내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본질이다. 이것이 힘의 원천이며 공산주의의 필연적인 완전한 승리를 보장한다. (제24권, pp.335-336.)

그 본질[즉, 독재의 본질: 쓰딸린]은 근로대중의 선진 부대이고 그 전위이며 유일한 지도자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과 규율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목적은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되는 것을 폐지하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근로인민으로 되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모든 착취의 기반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은 단번에 성취될 수 없다.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상당히 긴 과도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산의 재조직은 지난한 길이기 때문이며, 생활의 모든 영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소부르주아적 부르주아적 사업 방식의 막대한 관습적 힘은 오직 오랜 기간 강고한 투쟁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맑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 시기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과도기라고 말한 이유이다. (같은 책, p. 314.)

 

이상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특징이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세 가지 기본 측면이 나온다.

1) 착취자들을 억압하고, 나라를 방어하며, 다른 나라 프롤레타리아트와 연대를 강화하고, 세계 혁명의 발전과 승리를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정권을 사용하는 것.

2) 피착취 근로대중을 부르주아지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이들과 프롤레타리아트와의 동맹을 강화하며, 이들을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 끌어들이며, 이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적 지도를 보장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정권을 사용하는 것.

3) 사회주의를 조직하기 위해, 계급을 폐지하기 위해, 계급 없는 사회 즉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 정권을 사용하는 것.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 세 가지 측면의 결합이다. 이 세 가지 측면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유일한 특징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이와 반대로 자본주의가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세 가지 특징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진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왜곡할 위험성이 생긴다. 오직 이 세 가지 측면이 함께 결합될 때에만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 완전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여러 시기가 있으며 특수한 여러 형태와 다양한 사업 방법이 있다. 내전 시기의 특징은 독재의 폭력적 측면이 부각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전 시기에 건설 사업이 전혀 수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건설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내전을 수행할 수는 없다. 한편 사회주의 건설 시기의 특징은 독재의 평화적, 조직적, 문화적 사업과 혁명적 법제 등이 부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건설 시기에 독재의 폭력적 측면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억압 기관, 군대 및 기타 조직들은 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건설 시기인 지금도 역시 필요하다. 이런 기관들이 없다면 독재는 건설 사업을 전혀 보장할 수 없다. 당분간은 혁명이 겨우 한 나라에서만 승리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에 포위되어 있는 동안 무장 개입의 위험이 있고 이로부터 오는 온갖 결과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1) [역자 주] J. 쓰딸린,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 ≪정세와 노동≫ 제141호(2018년 3월), p. 48.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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