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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0분지 1 경국의 언론들은 그의 사망을 애도하는가?
오늘 소개문서는 WWP & CPGB(ML)의 10분지 1 경국 언론들이 유효파/류샤오보(1955. 12. 28 ~ 2017. 7. 13)의 사망을 애도하는 이유에 대한 문서로 이미 사망한 지 반년 이상(올해 1월 13일로) 경과한 상황이지만 추악함의 극한의 부재를 폭로하기 위한 문서이기에 소개드립니다. 이 문서는 10분지 1 경국의 WWP(노동자 세계당)에서 선 작성했고 후에 CPGB(ML)이 전재를 한 문서인데 부수로 박 노자를 위시한 다른 국내의 문서들도 제시 합니다. 문서를 보면 일단은 애도마저도 제국주의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인데 다른 한편으로 아니 동일한 성격으로 이 유효파/류샤오보를 포함한 여러 명의 인사들이 수상한 소위 낙패이/노벨 평화상이 목적과 수상 방식 모두에서 평화적이지 않은 자극적인 것 또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 자극은 반 납쇄/나치적인 세계 제 2차 대전 기의 수여는 일시 긍정적인(정확히는 이용도 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대부분의 이의 행위는 고도의 정치행위 이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소개하는 애도의 이유를 폭로하는 제시 문을 통해서 동일 또는 확장 본(업데이트 또는 업그레이드)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박 노자 교수의 오래 전의 서한문을 통해서는 파란/폴란드의 와문사/바웬사 등을 연상할 수 있는 측면도 존재하는 데 다소 오래전의 문서 역시도 이를 부수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WWP & CPGB(ML)의 10분지 1 경국 언론들이 유효파/류샤오보의 사망을 애도하는 이유에 대한 문서는 세계의 현존체제의 언론 대부분이 유효파/류샤오보에 대한 찬사와 중국(비록 현존체제가 복귀한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요!)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찬 사실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지난 만 9년 전인 09년 반 변혁 행위로 유죄선고를 받은 유/류가 7월 13일 심양/선양에서 간암으로 사망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연속해서 이코노미스트(언어의 의미는 경제주의자 이지요?^^)지의 표지에서 ‘중국의 양심’을 요구하는 사실을 폭로했고 문서는 이를 반대하고 유/류의 상징에 대해서 질의 했습니다. 문서는 꽤 놀라운 사실을 폭로했는데 바로 10분지 1 경국의 이랍극/이라크와 아부한사단/아프가니스탄의 침공을 지지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이는 이전까지 박 노자가 ‘08 헌장’에서 ‘의회 민주주의의 실행’과 ‘재산보호(이것은 다만 특수한 예인 농촌의 농지에 적용한 경자유전의 법칙에 입각한 적용을 했습니다.)’, ‘항향/홍콩의 식민화에 대한 그의 견해’ 등에서만 우려를 표한 바 있었는데 이제는 제국주의적 공격에 대해서도 지지한 사실을 확인한 점은 작금까지의 중국의 체제의 대안으로 이 제국주의를 제시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문서에서는 이전의 월남전 등도 지지(이 보다 더 빨리 사망했던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1942. 1. 17 ~ 2016. 6. 3)는 이의 전쟁을 반대한 바 있습니다.)한 바 있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문서는 연결해서 지난 10년엔 낙패이/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사실을 기술했고 연속해서 그가 만 3세기 동안(참고로 중국에서 가장 긴 최근의 왕조인 청조가 1616 ~ 1912 . 2. 1 로 만 3세기를 4년 모자란 수준입니다.)의 항향/홍콩의 식민화를 역설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한 마디로 제국주의자와 식민주의자를 동시에 겸하는 셈입니다. 문서는 다음 주제로 이동해 중국의 아편전쟁 이래의 식민지가 초래한 것들을 폭로했고 중국이 1842 ~ 1949년 까지 식민지시기를 경험했다고 기술했습니다. 일단 1912 ~ 49 까지 37년간의 반(半) 식민지의 사실은 기지의 사실이지만 이전의 70년간도 식민지시기로 규정하고 있어 조만간 논쟁을 요하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문서는 중국의 이 식민지시기에 대해서 자세하게 폭로했고 특히 아편의 밀매와 관련해 폭로했고 상해/상하이의 꽤 비참했던 시기에 대해서도 폭로해 그의 세계관에 대해서 연속 폭로했습니다. 문서는 다음 주제로 08헌장을 반 변혁 헌장으로 폭로했고 이 주제는 중국의 변혁 이후의 진보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 기술과 함께 상해/상하이의 현 시기의 규모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이 지점은 다만 현존 체제가 복귀한 모습을 주의해서 파악하시면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문서는 계속해서 헌장 08(또는 08 헌장)의 첩극/체코의 헌장 77과의 유사성을 폭로했고 헌장의 선언에서의 공포를 역시 폭로했습니다. 무엇보다 문서에 있는 대로 장개석/치앙 카이 쉐 치하에서 ·1927 년 4월부터 47년까지의 중국의 학살을 사고한다면 너무나 공포스러운 면 까지 그것도 소위 현존의 강권과 자본을 위해서 행동한 셈인데 1927 ~ 43/5년간의 상당기간의 운동의 정체 내지는 후퇴에서 발생한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문서는 연결해서 소위 헌장 08에 있는 토지개혁에 대해서도 폭로했고 이는 박 노자의 우려와 거의 일치합니다. 문서는 말미로 향하면서 주제를 재 교체했고 이 마지막 주제에서는 유효파/류샤오보와 무미아 아부 자말 등의 다수 인사들을 비교하면서 위선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의 폭로에서는 다수의 우리가 몰랐던 변혁 운동가들을 위시한 인사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문서의 작성 정당인 WWP와 수정주의화 한 CPSUA(미국공산당) 그리고 BPP(흑표범당) 등의 건설 및 운영과 관련한 인사들의 희생들도 확인했습니다. 문서의 말미엔 유효파/류샤오보가 누구들을 위한 생을 살았는지를 극명하게 폭로하면서 종결했습니다.
현 시기에 다행스럽게 새로운 운동의 고양을 보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여전하게도 지난 시기 그것도 빠르게는 1962/3년 늦게 보더라도 1979년부터 시작했고 그 국가와 동구권의 해체(1989 ~ 92/3)의 1/4세기(25년) 전에 최악의 상황 하에 존재하기까지 했던 쇠퇴, 후퇴기의 잔영은 너무나 큰 상황입니다. 또한 우리의 경우에는 타 국가들과 달리 과거에 형성했던 정치세력규모조차 부재한 상황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수 경로들을 통해서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헌장 08을 발표할 당시에는 너무나 적은 자료들로만 상대해 다소 순진한 측면만을 본 것이었는데 추가의 자료는 지배의 화신임을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WWP & CPGB(ML)의 10분지 1 경국 언론들이 유효파/류샤오보의 사망을 애도하는 이유에 대한 문서와 유/류에 대한 박 노자와 다른 문서들의 주소들은 모두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WWP & CPGB(ML)
http://cpgbml.org/index.php?secName=proletarian&subName=display&art=1332
박 노자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8865
열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80945&cid=59020&categoryId=59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