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 임의로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분란/핀란드 역에서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7-05-19 08:45
조회
503

오늘 폭로문서는 참세상의 ‘분란/핀란드 역에서’ 로 이 문서는 원래 아각빈 매체/자코뱅 매거진의 문서인데 바로 만 1세기 전 그 분께서 귀환하신 바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 문서입니다. 물론 ‘분란/핀란드 역으로’는 만 9년 반 전에 출간한 에드먼드 윌슨과 유강은 역의 저서인데 역시 당시 봉인열차를 타고 들어올 상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문서는 그 분이 봉인열차를 타고 들어온 상황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2월 변혁(실제는 3월 5일의 변혁; 이는 너무나도 유명하게 노서아/러시아에서 구력을 사용한 것으로 인해 날짜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이후 일시 안정을 찾은 상황이었던 것으로 진술했고 다시 4월 시위를 언급하면서 여전하게 활력이 존재하는 것으로 언급했습니다. 이어서 2월 변혁으로 탄생한 임시정부의 조각과정을 기술했고 소유애/소비에트의 결성 과정도 서술했습니다. 그리고 맹십유기/멘셰비키들이 소유애/소비에트를 주도한 사실도 언급했고 이들의 극히 한계적인 역할을 언급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3월 말에 도달하면서 2월 변혁의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를 진행한 사실과 80만이 광장으로 행진한 사실 등을 언급해 만 1세기 전 가장 거대한 규모의 집회를 연 사실도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문서는 탁락자기/트로츠키의 얼마 전에 재간한 저작 ‘노서아/러시아 혁명’ 도 인용했고 맹십유기/멘셰비키들의 2중 행동들을 추가 폭로했습니다. 연결해서는 1914년의 이전의 장면들을 기술했고 이어서 그 분의 귀환과 4월 명제(테제)를 연달아 기술했습니다. 4월 명제(테제)를 보면 소위 치머발트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데 대부분 우리가 아는 변혁적인 기구라고만 사고했던 치머발트회의가 좌파와 다수파로 분할한 사실은 이 문서에서 거의 처음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이후 문서는 밀류코프와 서한에 대해서 상당부분 기술했고 이어 4월 20일과 21일에 대해 기술했는데 21일 포이십유기/볼셰비키 주도의 최초의 봉기를 진술했습니다. 코르닐로프 역시 이 부분에서 처음 기술했고 밀류코프와 연결한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이 점은 밀류코프의 가장 퇴행적인 성격을 알 수 있는 내용이고 이후 이 자의 정변 시도를 도괴한 포이십유기/볼셰비키의 공적을 노정하면서 주도권을 확립해 나간 우리들이 아는 내용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문서는 말미로 향하면서 4월 위기의 진정을 언급했고 임시정부가 구치코프와 밀류코프의 사임 이후 연정구성을 제의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문서의 최종은 4월 위기의 경과의 결과를 기술하면서 종결했습니다.
문서는 참고 도서들을 말미의 주석에 기술했는데 이 도서 목록엔 무엇보다 ML(M) 주의의 도서 및 문서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들 기획 문서 역시도 CPGB(ML) 등에서 발행한 서적들을 통한 교정을 요하는 사실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치머발트 파에 대한 내용은 무엇보다 충격이었는데 그 동안은 이들을 일군의 변혁 파들이라고만 간주했을 뿐 사회혁명당과 같이 좌파와 다수파 또는 비좌파로 분할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사실들을 위시한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그리고 그 분께서 3주나 포이십유기/볼셰비키들을 설득한 사실 등을 제외하고서는 오늘 날 ML(M) 주의 시각에서 새로이 찾아야 할 사실들도 있습니다. 이는 현 시기에 현존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벼리는 것을 전제한 것으로 무엇보다 지난 세기의 올가미들을 제거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 기획물 역시도 과학 변혁의 주의의 재건 성공이전을 반영하듯 사상, 주의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는데 비록 무오류는 아니었으나 올바른 무산 중심으로 보기만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점은 정규의 과학 변혁에 입각한 매체의 역할을 은연중에라도 시사한 것과 동의어인 상황입니다. 위기 역시도 이제까지 알고 있던 7월 위기 외에 4월 위기도 존재한 셈인데 4월 위기의 해결은 7월 상황의 일종의 예행연습으로 볼 수 있고 두 번 모두 포이십유기/볼셰비키가 중심으로 부상하는 것을 촉진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지난 2(3)월 변혁 이후의 임시정부의 성격을 전환한 것인데 당시가 여전한 세계 제 1차 대전 중인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무산 변혁을 주도하기 전 까지는 여전하게 전쟁이든 무엇이든 유산 진영의 이득을 위해서는 그대로 진행하고 있던 사실을 웅변합니다. 이 점은 이미 이전의 불란서/프랑스(1789 ~ 99)와 영국(1649 ~ 60)등에서도 증명한 바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대부분 우리들이 (유산 진영의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서 1789년의 변혁을 올바른 변혁으로 배워왔지만 실제로는 1792년 9월(올해는 이 변혁의 2(1/4)세기 즉 225주년을 도달합니다.)의 사건을 통해서 매체명인 아각빈/자코뱅의 변혁을 성취하고 이 역사를 만 2년 여간 진행한 사실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영국의 일부의 ML당 즉 NCPB(신공산당)와 같은 곳을 통해 확인 가능한데 이 시기는 오히려 화란/홀란드/네덜란드와 상호 변혁 전쟁을 벌인 시기입니다. 이것들만 보더라도 무산 변혁을 도달하고 나서 전쟁을 위시한 반 무산적인 것들이 소멸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세상의 ‘분란/핀란드 역에서’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52&aid=0001957761

 

전체 0

연구소 일정

3월

4월 2024

5월
31
1
2
3
4
5
6
4월 일정

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6

일정이 없습니다
7
8
9
10
11
12
13
4월 일정

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0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3

일정이 없습니다
14
15
16
17
18
19
20
4월 일정

1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0

일정이 없습니다
21
22
23
24
25
26
27
4월 일정

2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7

일정이 없습니다
28
29
30
1
2
3
4
4월 일정

2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0

일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