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 임의로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마이클 자이페르트의 타계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7-10-10 07:36
조회
690

오늘 소개소식은 만 3개월 전인 지난 7월 19일 타계한 마이클 자이페르트(1942. 6. 30 ~ 2017. 7. 19)의 부음으로 고인은 1984 ~ 5 년간의 대처(2013. 4. 8 사망)연간에 광산 투쟁을 지원한 바 있습니다. 이 당시의 투쟁은 꽤 격렬했었지만 이내 말비나스/포클랜드(/ 이전은 아이연정/아르헨티나 의 호명, 이후는 영국의 호명) 분쟁의 승기를 업은 대처의 승리로 일관한 바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차로 운동차원에서 붕괴를 향해가던 시기답게 쓰라린 패배를 거듭했었는데 고인 역시 이 시기의 투쟁을 지원했고 법률적인 지원을 했습니다. 문서에는 가디안의 연결주소를 두어 이를 참고한 사실을 고지했습니다. 문서는 NUM(광산 노동자 연합)을 지원했던 고인의 사망소식을 알리면서 시작해 대처 시기의 파업당시의 광부의 지도자인 아서 스카질의 언사를 인용해서 ‘노동자 계급은 진정한 전사를 잃었고 나는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고 기술했습니다. 마이클의 회사(법률회사/로펌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음)인 자이페르트 시들리 & 코는 노조뿐만이 아닌 영국 정부의 무자비한 보복으로 고통받는 광부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무료 법률자문을 한 바 있습니다. 한국의 박 훈 변호사와 남아공의 아브람 피셔와 유사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노동자의 변호사’들과 같은 역할로 보면 무방합니다. 이어서 문서는 가디안에 등재한 고인의 사망기사(제인 딜라이턴, 8월 10일)를 분석했습니다. 첫 번째로 마거릿 대처가 광부들에 대한 모든 수단을 사용한 점을 폭로했고 마이클이 NUM을 보호하기 위한 한계에 도달한 사실과 대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수득한 사실을 폭로, 지적했습니다. 이 장면은 누군가들의 투쟁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들 이었습니다만 고인은 많은 지원을 해 NUM을 보위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습니다. 연결해서 광부들은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만 1년 여 간을 파업한 사실과 자이페르트 시들 리가 무료로 법률지원을 제공한 사실과 와핑(영국 런던 서부의 지역 명) 논쟁의 주목할 만한 출판자로 선보인 사실도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헌신적인 주의자였던 고인이 지난 반세기 동안 좌파(정확하게 과학 변혁 좌파)의 주요 인물 이었던 점을 부각했고 고인의 참여는 고인이 현명하고, 무제한이(아낌없이 주)고, 신뢰할 수 있는 조언을 한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다음절에서 문서는 고인이 국제주의자인 점과 남아공 해방 운동의 강력한 후원자인 사실을 기술했고 실례를 제시했습니다. 상에서 잠시 아브람 피셔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남아공 현지에서 아브람 피셔가 활동했다면 과거 영연방의 식민모국에서는 고인이 활동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의 실례로 문서는 ANC의 지도자의 망명생활에 대한 조언을 한 예를 들었고 런던에서 발생했던 ANC 지도자의 납치 음모에 대해서 직접 남아공 정부를 고소, 고발한 사실을 강한 예로 제시했습니다. 고인 역시 반 아파르트헤이트를 권고했고 그 생존을 보장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들은 역시 우리들에게도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은 사건들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익숙한 사건들의 기시감을 볼 수 있습니다. 작금의 시기에 더 절실해진 국제주의 운동의 실례를 이렇게 해서도 확인한 상황인데 너무나 많은 그리고 절체절명의 시기에서조차 파편화를 실감해 온 상황들은 너무나 많은 격세지감을 확인하는 장면들속에서 더욱 빛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서는 고인이 지난 1985년 NUM의 명예 조합원이 된 사실과 이로부터 만 9년 후 1994년 이미 지난 만 4년 전에 고인이 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취임식때 ANC로부터 초청받은 사실을 고지했고 다시 만 12년 후 지난 2006년 HSSL(할데네 사회주의 변호사 협회; 한국은 민변을 연상하면 가능?)의 부회장을 지낸 사실 등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최 말미에 고인의 부인인 카롤리네 콘란과 여동생 수잔, 동생 로저 등에 조의를 표하는 사실을 명시했습니다. 무엇보다 또 한 사람의 활동(& 혁명)가가 사망하면서 또 한 번의 20세기의 변혁이 저무는 순간입니다. 노서아/러시아 변혁 만 1세기를 앞두고 상당수의 활동가들이 타계를 하는 상황인데 올해만도 지난 1월에 3명 이상 타계한 데 이어서 지난 7월에 또 한 활동가가 타계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이 점에서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활동가들을 발굴해야 하는 임무를 지녔는데 이전부터 언급해 왔던 것처럼 이 작업은 다소 느린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인이 지원한 그리고 투쟁한 시기는 20세기의 변혁의 등불이 꺼져가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활동해왔지만 이미 40세의 무렵에서 그 국가를 위시한 온 세계의 변혁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한 정세는 역부족의 정세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은 변혁운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현 시기에 다시 마극사/마르크스의 부활 기운이 있는 상황은 고인이 투쟁하던 시기의 난국을 넘어설 가능성과 잠재성을 지니고 있고 변혁이 미래인 상황은 고인의 활동 역시 그 기여를 인정받을 시기의 도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 시기의 과제들 중에 고인도 실천했던 국제주의를 재건하는 과제도 존재합니다.
Lalkar의 지난 7월 19일 타계한 마이클 자이페르트(1942. 6. 30 ~ 2017. 7. 19)의 부음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http://www.lalkar.org/article/2738/obituary-michael-seifert

 

전체 0

연구소 일정

3월

4월 2024

5월
31
1
2
3
4
5
6
4월 일정

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6

일정이 없습니다
7
8
9
10
11
12
13
4월 일정

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0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3

일정이 없습니다
14
15
16
17
18
19
20
4월 일정

1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0

일정이 없습니다
21
22
23
24
25
26
27
4월 일정

2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7

일정이 없습니다
28
29
30
1
2
3
4
4월 일정

2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0

일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