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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재등장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7-06-05 08:30
조회
470

오늘 폭로문서는 소위 신의 재등장에 대한 로쟈의 서한문으로 제목은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입니다. 일단 이 제목은 최근의 간행도서에서 온 제목으로 서한문에 있는 내용처럼 테리 이글턴이 만 5년 전인 2012년 노팅엄 대학에서 한 강연을 토대로 저작한 도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도서는 다음 달 중순 경 로쟈가 직접 인문학 특강에서 강연한다고 합니다. 테리 이글턴에 대해서는 예전에 MLPD에서 비판한 바 있지만 슬라보예 지젝과 알랑 바디우 등등의 부류들에 대해서는 비판 분량이 적은 편이고 무엇보다 저작이 이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빈한한 탓에 이것도 역시 빈한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신의 재등장은 과거 신학으로의 회귀와 같은 것도 연상할 수 있겠는데 이 점은 이미 한국에서는 이 진경에게서 그리고 해외의 최근의 저자들에서는 마이클 샌델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신의 사망(죽음)’의 명제는 이미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제로 유명한데 소위 ‘신의 사망’이든 ‘회귀(돌아옴)’이든 모두 극복대상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노사과연의 부르주아 적, 소부르주아 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에 테리 이글턴은 목록에 오르지 않았는데 이 둘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여기에까지 도달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신학마저도 회귀를 운운하는 사실은 거대한 퇴행으로 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 청산주의의 강한 영향중에서도 가장 강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강의 서평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고지했고 이어서 강의와 관련한 벽보를 제시한 다음 강의 도서와 테리 이글턴의 이전의 저작 ‘신을 옹호하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문서는 후기 편을 제시했고 후기 편에는 전항에서 언급한 것처럼 테리 이글턴의 최신 저작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에 대한 성격을 기술했고 테리 이글턴을 ‘영국의 저명한 마극사/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이자 당대 최고의 문학 비평가’로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에 대한 비판은 MLPD에서 과거에 한 바 있고 무엇보다 이 테리 이글턴 역시도 슬라보예 지젝, 알랑 바디우 등등과 함께 극복대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한문의 후기를 계속 의거하면 최근작 도서는 신이 소멸하면서 발생한 위기에 대해서 논한다고 기술했는데 그야말로 비 과학의 서막 이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저자가 어떻게 신이 18세기의 합리주의에서 생존해 신앙 또는 신뢰의 실종시대인 우리시대에 극적으로 재등장했는지를 보고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상 극복대상임을 커밍아웃 이상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서한문의 최 말미는 이러한 주장과 생각을 검토하고 음미해 보는 것으로 특강의 취지를 진술하면서 종료했는데 일반적으로 검토와 음미는 당연한 절차이지만 이미 지난 시대에 지양한 것을 이제서 이와 같은 것을 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부분은 청산주의를 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신의 사망(죽음)’ 명제(테제)는 니체와 쇼펜하우어 등에 대한 비판과 함께 지젝, 이진경 등에 대한 비판도 함께 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테리 이글턴의 이것들 역시도 수 세기 전 극복한 신학을 21세기에 반복하는 것인데 이것을 재생산하는 환경은 이제까지 많은 문서들에서 그랬듯이 너무나 많은 반복대상들을 대치한 상황임도 재각성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소위 극복대상의 복귀의 문제는 비록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오류를 인정한다고는 해도 이들의 주장이 옳을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이는 더 옳을 수 없는 주장들입니다. 신의 사망(죽음)이 아닌 무엇보다 마극사/마르크스주의의 미 부활로 인한 문제는 너무나도 크고 그나마 신의 소멸로 인해서 발생한 위기보다 주의의 미 부활로 인한 문제는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위기를 생성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혼란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작금의 이 폭로 예처럼 지식인들이 20세기에 대한 청산주의로 후퇴했고 또 청산주의는 물론 유산 주의들을 보위하고 있고 이와 같은 신학마저 부활하는 길로 빠져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를 위시한 무산자들의 문화를 찾아보기 힘든 환경도 이를 증험하는 데 현존의 체제는 **(이 부분의 형용은 각자에게 일임합니다!)하게도 바로 이런 상황마저 확대 재생산하는 장치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이 소위 신마저 복귀를 들먹거리는 장면에서는 인본주의(휴머니즘)의 폐기마저 주장하고 있는데 처음 시작한 후퇴에서 생성한 연쇄적 후퇴로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물론 인본주의(휴머니즘)은 이미 근세의 완숙기(대략 17 ~ 8세기로 16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중엽까지의 장기의 종교동란을 마치고 난 후의 절대 왕정 기와 같은 시기)에만 도달하더라도 이미 그 진보성을 상실합니다. 그럼에도 이는 폐기가 아닌 지양이고 무엇보다 이 주의의 탄생은 인간 중심의 세계로의 전화를 의미하는 데 이들에 있어서는 소위 대세적 영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로쟈의 서한문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의 주소는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그리고 참고한 노사과연의 문서들의 주소 또한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로쟈

 

http://blog.aladin.co.kr/mramor/9357760

 

노사과연

 

니체와 쇼펜하우어 비판

 

http://lodong.org/wp/?p=5121

 

슬라보예 지젝 비판

 

http://lodong.org/wp/?p=6424

 

이 진경 비판

 

http://lodong.org/wp/?p=6687

 

그리고 이전의 이 진경의 선언에 대한 비판

 

http://lodong.org/wp/?p=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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