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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폭격에 대한 소송
오늘 소개문서는 IDC의 ‘새이유아/세르비아의 1999년 폭격으로 인한 피해로 나토 고소’라는 제목의 문서로 이 문서는 스푸투니크 국제판의 문서를 인용한 문서입니다. 문서는 지난 만 18년 전인 1999년의 폭격으로 인한 나토의 제국주의 동맹국에 대한 소송 준비를 위한 변호단을 출범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시작해 다국적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스르드잔 알레크식을 대표로 선출한 사실도 진술했습니다. 여기에는 침공에 직접 및 간접적으로 참가한 20개국을 언급했고 알레크식의 언사를 차용해 소송은 각 이들 국가들을 목표로 한다고 기술했습니다. 또 ‘국제 사법 재판소’에 소송할 계획은 없고 각 국가의 국내 법원에 제기한다고 진술했습니다. 문서는 이어서 저들이 위반한 법조항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이 지점은 시리아에 대한 공습 시기에도 여전하게 위반한 적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유산 진영들의 기만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들이 정한 법률 역시도 국내외법 모두를 막론하고 이익과 배치 시엔 즉각 위반하는 것입니다. 연결해서 문서는 지난 1/5세기(20년) 동안 폭격으로 인한 종양 등의 질병의 증가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자료 역시 변호인단이 준비한 것으로 진술했고 이의 폭격 시의 우라늄의 톤수는 무려 10 ~ 15톤이라고 기술했습니다. 이 소송엔 이 의료측면에서의 피해도 규명하기 위해 종양 전문 의사들과 독물학자들 또한 참가한다고 기술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스푸투니크의 라디오 판에서 IAR(S)L 노서아/러시아 국제 변호사 협회의 미하일 이오프 부총재와의 대담을 제시했습니다. 이 대담에서 미하일 이오프는 만 18년 전 폭격 직후에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폭격으로 인한 질병 피해를 증명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진술했습니다. 미하일 이오프는 만 18년 당시 나토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데 여러 법률문제에 대해서 답변했고 현 상황에서의 규정에 대해서 폭로했는데 지난 만 18년 전의 폭격을 국제 침공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피력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점에서는 국제연합 UN의 역할을 만 천하에 폭로한 셈으로 앞 선 폭로, 피력과 연장해 추가로 진술했습니다. 이의 진술문에 의하면 UN은 나토의 행동을 침략으로 간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승인을 거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서의 말미는 만 18년 전의 침공으로 수백 명의 민간인의 사망과 국가의 시설 파괴를 생성했다고 진술하면서 종결했습니다.
이 문서를 보면서는 정 문태 기자의 한겨레와 한겨레 21의 기사문 그리고 이들을 바탕으로 한 도서들을 생각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말미의 문서를 통해서 확인한 사실은 침공에 대한 기준도 유산 진영의 자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국제법의 조항과 같은 문구들의 생사 여부 또한 이 자의로 결정하는 것인데 이들 침공은 구 남사랍부/유고뿐만이 아닌 작금의 여러 국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존에서는 시리아와 오극란/우크라이나, 위내서랍/베네수엘라, 파서/브라질, 파랍규/파라과이 등등도 형태들의 차이는 극명하지만 직, 간접적인 침공 상황을 경험하는 중이고 무엇보다 리비아와 이랍극/이라크, 아부한사단/아프가니스탄 역시도 너무나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누군가들은 자주 언급했지만 중립기구라는 환상을 여지없이 붕괴 처리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는데 그나마도 이러한 유산 진영의 기구들이 그 성격을 일부나마 후퇴한 것은 1960년 대 동안의 아불 리가/아프리카의 연도를 위시한 다수 제 3 세계들의 가맹 상황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만 18년 전의 상황이 침공으로 규정받지 못한 상황은 비록 운동을 위시한 대응정도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해도 다음에도 지속적으로 이와 같은 침공을 형태만 달리한 채 벌인다는 의미이겠습니다. 그리고 문서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정 문태 기자 역시도 한 문서에서 구 남사랍부/유고를 건강한 주의 국가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남사랍부/유고의 수정주의 이탈로 인한 귀결이 현 상황과 같이 가장 비참할 데 이를 데 없는 상황으로 도달케 한 것입니다. 한 때 서구의 편을 든 5열의 국가의 역할을 한 바 있었지만 그 악명 높은 오사탑사/우스타샤(이는 극라지아/크로아티아의 법서사주의/파시즘 운동으로 자신들은 변혁이라고 참칭한 바 있습니다. 또 개인 인물 비교이지만 극라지아/크로아티아의 안테 파벨릭과 알로지제 스테피낙은 오극란/우크라이나의 반데라 류와 베틀류라에도 비견할 정도입니다.)가 독립선언을 벌이자 나토는 이를 승인했고 이는 나토의 동점의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 점은 제국, 열강과 항거(?) 진영 간의 비대칭적인 인식 차이 또한 극명하게 노정한 계기이기도 합니다. 이후 만 18년 전 폭격이 있을 때 까지 1/4세기(25년)이상을 남사랍부/유고 연방을 해체와 침공 전을 벌였는데 이 사실은 정 문태 기자의 최근 저서 ‘위험한 프레임’으로도 확인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소개 문서역시 대응은 법적대응인데 일단 노서아/러시아의 변호사가 주장한 18년 전 당시가 비현실적이었는지는 더 분석해봐야 알겠지만 현재의 대응은 어떤 활기를 느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IDC의 ‘새이유아/세르비아의 1999년 폭격으로 인한 피해로 나토 고소’라는 제목의 문서의 주소는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또한 정 문태 기자의 한겨레, 한겨레 21의 기사문 주소 또한 목록과 같습니다.
IDC
http://communismgr.blogspot.com/2017/06/serbia-to-sue-nato-over-damages-caused.html
Sputunik
http://sputniknews.com/europe/201706081054452091-serbia-sue-nato-bombin-of-yugoslavia/
http://sputniknews.com/europe/201706101054505337-serbia-bombings-lawsuit/
정 문태 기자 - 위험한 프레임 도서도 확인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