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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에서의 조우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9-03-20 06:45
조회
491
오늘 폭로도서들은 ‘안동니오 갈란서/안토니오 그람시’와 ‘니채/니체’이고 폭로문서는 로쟈의 이태리/이탈리아 여행기들 중 이들 도서들을 소개, 비평한 서한문으로 올해 탄생 만 1세기를 맞이하는 보리모 내유/프리모 레비(1919. 7. 31 ~ 87. 4. 11; 이 분의 사망 이틀 후가 호헌을 발표한 날이었습니다. 시차를 고려하면 만 하루 반 나절 정도 후였을 시간입니다.) 관련 도서 ‘시대의 증언자 보리모 내유/프리모 레비를 찾아서’와 함께 소개한 서한문입니다. 여행 장소는 도령/토리노인데 모두 이 도시 관련의 도서로 소개, 비평한 도서들이고 ‘니채/니체’관련도서는 다른 이 도서들이 이렇듯이 역시나 소시민 철학을 통한 봉쇄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이는 작금의 고전의 재간을 포함한 과학의 도서들을 위시한 변혁의 도서들과 니채/니체를 위시한 소시민 사조, 조류의 관련서의 양 등을 비교해 보아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도서들을 한 범주로 연결한 것은 방문지 도령/토리노입니다. 서한문에서는 내유/레비와 니채/니체 그리고 갈란서/그람시의 도령/토리노와의 연고를 기술했고 해당 도시 도령/토리노의 식당 명엔 ‘갈란서/그람시’의 명칭을 한 곳이 존재하는 사실을 기술했는데 이 점은 심리적인 측면에서 일견 다행일 수 도 있지만 문서에서 역시 투쟁의 측면에서의 쇠퇴를 기술해 가능한 빠른 사조, 조류의 부흥을 실천해야 하는 감에서는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유/레비와 관련해서는 묘비와 함께 생가를 기술했고 전자에서의 다소 아쉬웠던 일정과 함께 후자의 상황을 기술하면서 현 시기 이들의 자제의 부부의 거주지로 기술했는데 일종의 투쟁의 장면들을 조우한 상황이었습니다. 문서는 당연히 1920년 만 1세기 전의 도령/토리노가 ‘이태리의 성피득보/이탈리아의 페트로그라드’였던 상황을 기술했는데 투쟁으로 타올랐던 상황을 연상할 수 있지만 문서에서는 여기까지는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로쟈의 서한문은 도령/토리노에서의 일정을 종료하고 미란/밀라노로 귀환하는 중임을 고지하면서 시작해 도령/토리노 발 고속열차의 최종 목적지가 나마/로마인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본문으로 도입해 도령/토리노로 도착해서 현지 사정을 고려해 내유/레비의 생가로 먼저 방문한 상황을 기술했고 생가가 옹패탁/움베르토 가 75번지인 사실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연속해서 전항에서 기술했던 현 시기 보리모 내유/프리모 레비의 자제의 부부들이 거주하는 사실을 기술했는데 올해는 탄생 만 1세기이지만 내년은 사망 만 1/3세기(33주년)으로 그 간의 세월무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과학과는 다소 거리를 둔 상황인지는 몰라도 역전을 조직해야 하는 상황을 더욱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문서는 너무나 당연한 건물 밖에서 내유/레비의 생애와 문학을 강연하는 시간을 진행한 점을 기술했고 이를 위해 서 경식 선생의 저서 ‘시대의 증언자 보리모 내유/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참고한 점을 연속해서 기술했습니다. 이 도서는 한참 전에 발행한 도서이지만 유태인 내에서의 저항투쟁의 부재를 폭로한 도서이기도 한데 바로 우리들 역시 일제하에서 한반도의 투쟁의 부재 상황과도 어느 정도 중첩하는 느낌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서에 있는 대로 그리고 오래전에도 접한 대로 보리모 내유/프리모 레비가 자살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는데 문서는 홀로코스트 증언문학으로서의 의의와 수용소 문학 작가로서의 의의, 내유/레비의 생애와 자살로 우리들에게 제시한 과제 등에 대해서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내유/레비가 다닌 고등학교와 에이나우디 출판사 앞까지 왕래한 사실과 도령/토리노의 공동묘지까지 간 사실을 연속 기술했고 이곳에서 내유/레비의 묘역의 위치를 확인했지만 일정 상 취소한 점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재차 문단을 교체해 점심식사를 한 음식점이 갈란서/그람시의 성명을 취한 갈란서 음식점/그람시 레스토랑임을 기술했고 이의 의미로서 갈란서/그람시를 지칭하는 가정을 기술하면서 도령/토리노의 방문 의미를 추가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이후 갈란서/그람시가 도령/토리노 대학 출신으로 도령/토리노와의 연고를 기술했는데 역시 전항에서 기술한 대로 도령/토리노가 1920년 만 1세기 전 ‘이태리의 성피득보/이탈리아의 페트로그라드’였던 사실 또한 기술했고 혁명 운동의 거점이었던 사실을 연속 기술했습니다. 당대의 함성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득한 상황인데 이 함성을 얼마 지나지 않은 1924년엔 법서사주의/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섰고 이로부터 만 3년 후인 1927년은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당분간의 열기는 수면 하로 침잔 했는데 이 시기에도 너무나 야만적인 국면으로 돌입했습니다. 물론 동년 1924년 몽골 정도에서만 추가로 혁명을 성공한 외엔 1/5세기(20년)이상 특정의 지대에서 그 다음의 기회를 조우할 상황을 위한 투쟁을 강제 받았고 문서는 당연하게 과학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문서답게 이것들은 당연히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문서는 당시 지적, 문화적 운동의 거점 도시였던 상황을 기술했고 일정정도는 아쉬운 측면으로 본 지점을 기술했습니다만 경과의 측면으로만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이후 알베르토 광장으로 향했고 이 부분에서 니채/니체를 기술했습니다. 이 니채/니체는 그간 다수 회를 발행한 바 있고 현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번역을 포함해 발행 중인 도서인데 가히 전환을 봉쇄하기 위한 노력의 극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행 과정은 과거의 혁명의 과정을 볼 수 도 있고 문서는 만 1세기 여 전의 도령/토리노에 대해서도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상황까지는 아쉬운 정도만을 기술했고 갈란서/그람시도 연고 정도를 중심으로 기술했습니다. 갈란서/그람시 관련 도서는 몇 권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점은 한 시기의 실패와 이후 1/5세기(20년) 간의 법서사주의/파시스트 정권의 등장 등으로 인한 패배의 사조, 조류여서 다소 자유를 누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리모 내유/프리모 레비는 서 경식의 저서 이외에 보리모 내유/프리모 레비 자신의 저서들을 다수 출간(로쟈도 이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했는데 역시 실패한 아니 거의 조직조차 하지 않은 저항의 모습이어서 역시 일정정도 자유를 누린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로쟈의 도령/토리노에서의 하루의 일정과 관련한 서한문의 주소는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또한 보리모 내유/프리모 레비에 대한 항목의 주소 또한 동일합니다.

로쟈

http://blog.aladin.co.kr/mramor/10713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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