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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 운동가들의 태도
오늘 폭로 서한문은 그 분의 도서 ‘사회주의와 전쟁’의 서평 서한문으로 이의 서한문은 예전에 로쟈의 서한문과 함께 폭로한 바 있는 중국 변혁을 비극이라고 지칭한 도서 ‘중국 혁명의 비극’을 언급한 바 있는데 작금의 중국과 과거 변혁기의 중국을 동일시한 오류부터 시작해 다수의 오류로 점철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국주의를 규정하는 기준 역시도 다소는 논란을 내포했을 수 있는데 그 분의 도서를 평론하면서도 평론의 주의적 정신은 너무나도 그 분과는 정 반대라고까지 할 수 있는 어조를 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과거 참고로 소개했던 박 노자의 문서까지 원용하면 대중성의 집착 내지는 물신화라고까지 할 수 있는데 아직도 고무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물신화를 완전하게는 소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부의 국가, 지역에서는 오히려 이런 물신화 진영에 대해서 더 인기가 높은 상황도 존재하는데 너무나 배반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승리에 대해서 그 전 보다는 더 높은 자신감을 지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하게 올바른 즉 과학 변혁의 사상, 주의의 지도와는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은 극복의 과제로 잔존이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기회주의는 그 분 당시에도 살아있어 역시 저작들(이들 중 현 시기 발행저작은 최근 역자 후기로 논란을 생성한 ‘맑시즘의 희화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입니다.)로 이들을 폭로한 바 있었는데 오늘 날의 시기에 있어서 거대한 후퇴 등의 다수의 반영으로 여전하게 이들이 발호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현 시기의 지속 생성중인 제국, 열강 진영에 의한 비극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이들을 극복해야 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들이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이는 그 분의 도서를 위시한 모/마오의 실천론 & 모순론의 한 종류의 번역 본 등에서도 이미 조우한 지젝의 요설과 같은 서평들인데 비약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서평 서한문은 지난해의 그 유명한 날(정확히 해당 사건의 발생으로부터 만 38년 후의 일자; 2017년 12월 12일) 작성 문서로 현 시기와는 일정정도 정세차이를 내포한 시점입니다만 현 시기의 우리들의 생활공간의 상황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중국에 대한 규정을 내렸습니다. 이의 구절은 일단 규정보다는 선 문장에서 내세운 전제들의 문제들이 더 큰데 대립의 종류들을 협소하게 규정한 점으로 인해서 나중에도 실체에 접근하기 더 어려워진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속류 화를 접하는 시점인데 이의 문제들을 이미 도처에서 볼 수 있고 이 역시도 속류 화의 실체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서는 연속해서 그 분의 언사를 제시했는데 이미 속류 적인 전제들을 제시한 것은 다소에서 오류로 볼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문단을 교체해 소위 당시의 6개의 강대국의 상황들을 기술했고 이는 식민화의 실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만 2년 전(현재 이 문서를 작성한 시점에서!)의 중국의 상황을 10분지 1 경국에 대립해 기술했고 문단을 교체해 중국이 변혁 체제가 아닌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비약을 발생하고 있는데 과거의 변혁과 무리하게 연결했습니다. 이는 이 서한문뿐만이 아닌 다수의 문서에서 범하고 있는 오류이고 이의 지점은 누군가들의 언사대로의 공식에 맞추어서 변혁을 했어야 이들의 오류로 오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자신들의 언사로 자신들이 극복 대상임을 너무나 명쾌하게 자기 폭로한 언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지난 만 10년 전(이 역시도 이 문서를 작성한 시점에서! 입니다.)의 상황은 너무나 문제적인 상황인데 이는 4대 현대화를 위시한 소위 생산력 (지상)주의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애초의 변혁과는 무관하거나 오히려 역행적인 사조, 조류의 발호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결정적으로 그 국가의 지난 만 27년 전 붕괴 시의 GPCR에 대한 공격으로 고착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서는 주제를 교체해 도래할 시점에서의 소위 비극 사건들의 성격에 대해서 기술했는데 그 분에 대한 오독도 이 정도면 극히 심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패배한 누군가의 아동들(소위 키즈)에 대해서는 언급, 기술하기 너무나 쉽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누군가들의 아동들에 대해서는 언급, 기술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라고는 해도 꽤 심한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 평론을 하면서도 정신의 실종 아니 유산 진영에 포박한 정신을 조우한 셈입니다. 이 점은 ‘냉전’을 폭로한 그리고 과거 그 분의 도서들 중 한권을 번역했던 누군가(정확하게 그 분의 저서 ‘좌익 소아병’을 번역하신 바 있는 김 남섭)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명령의 대상 역시도 변혁 체제의 탈을 쓴 위장국가들에 더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 점들은 하위적인 KKE도 언급, 기술, 폭로한 바 있는 신 식민지 국가들이나 다른 열강 진영 등에 더 강조해야 하는 내용임에도 역시나 속류적인 기회주의를 노정했습니다. 서평 서한문에는 분명 서평대상의 그 분의 저서를 원용했지만 사용은 이처럼 오용으로 점철하고 있습니다. 이 즈음에서 너무나도 쉽게 도래할 비극적 상황에서도 일방적인 상황만을 규정한 점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고무적인 분위기의 존재도 무엇보다 과학 변혁의 세력의 가시적인 존재상황이라면 분명하게 우리들 편으로 달라졌겠습니다만 가장 빠르게는 이미 1950년대 중반 아니 1940년대 최 후반 이래로 이는 점진적으로라도 탈선해 왔습니다. 이의 결과가 바로 오늘날에도 간간 이상은 목도할 수 있는 투쟁하는 소수와 투쟁에서 멀어진 중수 이상의 상황인데 이로 인해 세력 상황에서의 다수화의 지체를 조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수화의 지체 요인들 중 가까이서 찾는다면 바로 이와 같은 어조의 문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의 도서 ‘사회주의와 전쟁’의 서평 서한문으로 그 분의 정신과는 너무나 어긋난 속류적인 서평 서한문의 문서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연기만 차있는 빈깡통들이 너무 많습니다.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WRAK-5&id=115
그렇긴 하지요... 무엇보다 환경조건은 사고 자체를 하지않은 의지론만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역사들 참 ** 하지요... 다른 국가들에 다 존재하는 정당들 조차도 법률 위반을 묻는 세상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