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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주의의 공습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8-07-25 07:08
조회
580

오늘 소개문서는 IDC의 약필보 포라자 철탁/요시프 브로즈 티토(1892. 5. 7 ~ 1980. 5. 4)에 대한 폭로문서로 문서 자체는 만 7/10세기(70년) 여 전의 문서인데 당시에 이미 연결주소를 제시한 바 있는 희랍/그리스의 12월 사건(데케므브리아나)와 희랍/그리스 침공 전의시기에 작성한 문서입니다. 이미 기 제시했던 위키백과의 항목에서도 이의 배반을 기술했는데 이로 인한 당대 변혁 역사의 왜곡은 이후에서도 시정하지 못했습니다. 즉 거듭해서 그 국가에서 남방 해양으로의 연결을 실패한 상황인데 1970년대 중반의 희랍/그리스의 민주 변혁기나 1980년대 초반 이란의 회교변혁으로의 퇴락의 상황으로 종결하면서 이후 1987년 애새아니아/이디오피아에까지 진출한 변혁을 최종으로 만 2년 후부터 시작한 동구권 붕괴로 인해서 거의 지난 06년까지의 1/6세기(17년)을 경과한 퇴락으로까지 연결했습니다. 물론 이의 상황에서는 만약에 당대 부통령이었던 아력산대 (뇌가) 난과유기/알렉산드르 랑코비치 ‘레카’(1909. 11. 28 ~ 83. 8. 19/20)가 집권했다면 희랍/그리스에서의 변혁은 다른 상황이었을 수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철탁/티토의 후과는 작금까지 너무나 거대한 상황으로 이의 폭로문서는 오늘 날에도 너무나 유효할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수정주의의 발호의 교훈을 확인하는데도 유용한 문서입니다. 남사랍부/유고와 관련한 역설을 추가 기술하면 지난 20세기의 중반에는 문서에서도 폭로한 서구, 제국, 열강을 위한 배반을 행한 바 있다면 20세기 후반 구 남사랍부/유고의 붕괴 후 새이유아/세르비아는 나토의 폭격을 받은 바 있는데 이는 너무나 비극적인 역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배반을 만나지 않았어도 이러한 역사를 조우했을지는 다소 의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의 자신은 물론 당대의 이웃에게도 너무나 큰 위험을 잉태, 전파한 셈입니다. 다만 이후 다른 희랍/그리스나 이란과 같은 곳을 개창했다면 또 달랐을 수는 있습니다만 한 시기의 봉쇄는 이후시기에도 타개하지 못한 상황들을 추가 호출했습니다. 문서는 니코스 자하리아디스(1903. 4. 27 ~ 73. 8. 1)의 문서로 고인은 1931 ~ 56 까지 KKE의 총서기를 지낸 사실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1946 ~ 9 년간의 소위 전항에서 기술한 12월사건(데케므브리아나)과 희랍/그리스 침공전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본문으로 도입해 혁명 운동에 1944년 12월 영국의 개입에 직면했고 승리를 향한 가혹한 노정의 심각한 고난에 처했다고 기술했는데 과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등에서의 온사돈 구길이/윈스턴 처칠(1874. 11. 30 ~ 1965. 1. 24)의 이면의 역사로 이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는 좋게 보더라도 흑 역사라는 점인데 이것은 소시민의 관점으로 계급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게 제국, 열강의 침공자임을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 이의 시기는 세계 제 2차 대전의 막바지로 투쟁하는 국가들의 결속을 다져야 하는 시기인데 이러한 기간 중에 침공을 한 것은 저들 연합국에 속하는 서구, 제국, 열강들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문서는 10분지 1 경국과 영국의 제국주의자들이 희랍/그리스의 퇴행 진영을 지원한 사실을 폭로했고 이들의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희랍/그리스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노력을 하는 사실을 폭로했는데 이는 현 시기에도 군사 기지의 문제를 위시한 잦은 충돌의 모습을 목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의 모습은 누구들에게도 너무나 몸에 감기듯 생생한 이상의 야만적인 장면이었는데 이들의 의도에 조응을 한 철탁/티토의 역할로 말미암아 한 번의 변혁의 교두보를 망친 사건으로 인해 장래의 역사의 손실을 경험한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문서는 군주 - 법서사주의/파시즘의 상황을 연속 폭로, 기술했고 소위 퇴행 세력들의 상황들을 폭로했습니다. 문서는 이들을 기술하면서 철탁/티토의 배반의 노정 과정의 군주 - 법서사주의의 구명 적 역할을 폭로했는데 수정주의의 유해성의 역사들 중 상당하게 야만적인 역사를 목도한 상황입니다. 또 문서는 철탁/티토의 배신을 등에 비수를 꽂은 사건으로 표현했는데 너무나 야만적인 배반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서는 연결해서 KPJ(남사랍부/유고 공산당)의 입장과 새이유아 애국주의/세르비아 쇼비니즘에 대해서도 폭로했는데 역시 전자의 수정주의적인 문제적인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당의 수정주의적인 문제적인 인식은 투쟁국가에서는 남사랍부/유고가 서구, 제국, 열강에서는 10분지 1 경국 등지에서 볼 수 있었는데 둘 모두 너무나 혁명운동에는 배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다만 생략표기를 한 것으로 보아 온라인화하기 전의 원문은 상당히 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철탁/티토의 새살낙니기/테살로니키(오늘 날에도 자주 투쟁을 벌이는 도시들 중 한 곳으로 그 동안의 KKE의 투쟁과 관련해 소개를 드린 바 있습니다.)의 점령을 제국, 열강들이 소원한 사실을 폭로했고 남사랍부/유고로의 마기돈/마케도니아 인들의 대량 이주 등을 기술했습니다. 이후 문서는 1943년 이후의 KKE의 상황들을 기술했고 남사랍부/유고의 KPJ와도 투쟁을 벌인 즉 분열의 역사를 폭로,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이후에도 철탁/티토와 KPJ의 배반을 기술, 폭로했고 이후의 역사들과는 달리 승리를 확신하면서 종결했습니다.
기지의 사실이었지만 철탁/티토의 배반의 장면들은 구체적인 문서를 통해서 확인하니 더 엄청났는데 당 KPJ마저도 너무나 큰 오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KPJ가 당명을 교체한 것은 이의 과정들의 축적의 결과이고 남사랍부/유고는 난과유기/랑코비치의 재임기 정도를 제외하면 또한 이와 같은 수정주의의 역사의 점철과 타 변혁국가들까지도 오염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위키백과의 철탁/티토주의항목은 추가로 노동자 자주경영의 소 항목을 기술했는데 우리들의 이야기까지 기술하고 있어 사상, 주의의 변질의 종말점이 어디까지인지 너무나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소 항목중에서 아이연정/아르헨티나의 것은 이전에 폭로한대로 한 변혁정당건설 기구(구 노건투)조차도 적극적으로 가능성의 증거로 소개한 바 있었습니다.
IDC의 약필보 포라자 철탁/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배반에 대한 폭로의 문서의 주소는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이외에 노정신에서 난과유기/랑코비치를 기술한 문서의 주소 또한 제시 주소 목록과 같고 위키백과의 관련 및 참고 항목들의 주소들 또한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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