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 임의로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스튜어트 몬로의 타계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7-09-25 08:26
조회
464

오늘 전할 부음은 벌써 지난 7일 타계한 스튜어트 몬로(1938. 6 . 15 ~ 2017. 9. 7)의 부음으로 독립 영화감독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좌파 진영의 영화감독하면 연상할 수 있는 켄 로치와 같은 사람들이 20세기의 변혁을 왜곡하면서 유명세를 알렸다면 고인은 ML주의 운동을 고수한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독립 영화를 제작한 영화감독으로 오히려 변혁 운동가로 활동한 분 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만 2년 전부터 지난해에는 꽤 많은 ML(M)주의 변혁 운동가들이 타계했는데 RCPB(ML)역시도 이러한 활동가들의 서거로 이전에도 활동가의 공백을 경험한 바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 비해서 볼 때 신규의 변혁 운동가, 활동가의 충원은 꽤 지체한 상황이었는데 잠시 아랍권 일부 등의 변혁 국면 정도를 제외하면 여전히 신규의 활동가의 충원은 지속적으로 요원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고인의 부음을 전한 RCPB(ML)의 문서는 지난 7일 목요일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해 그 동안 고인이 심장질환으로 투병한 사실을 진술했고 그이 가족들과 동료들 등에게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어 고인의 이력을 기술했고 고인은 브리스톨 대학에서 드라마를 런던 영화 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했는데 1970년경엔 이미 RCPB(ML)의 선구적인 기구와 조우했고 이때에도 영화를 제작 중 이었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고인은 영화로만은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없는 사실도 각성했고 정치적으로 헌걸찬 활동을 했습니다. 이어서 문서는 1981년 그의 아내인 샬럿과 결혼했고 샬럿은 당의 변혁 운동가이면서 동시에 보건 분야 업무에 종사한 것으로 기술했습니다. 연결해서 샬럿이 작성한 고인에 대한 문구를 제시했고 고인이 1970년대 초반에 ML주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와 기소당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이 부분의 문장들에서 당시 1970년대 초반의 상황을 역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영국에서도 이 시기의 활동은 그렇게 자유로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작금에도 소위 애국법과 같은 법안이라는 명칭의 체제를 조우할 수 있습니다. 고인은 문서를 의거하면 남 런던에서 여러 차례 선거전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고 노동 계급과 노동조합의 주최자로 당에 참가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의료에 관해서도 기술했는데 고인의 부인인 샬럿을 중심으로 참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현 시기 NHS에 대한 공격과 관련해서도 부인과 고인의 업적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노동자, 무산자 국제주의를 위한 고인의 참여를 강조했고 교체한 단락에서는 이러한 운동의 참가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영상의 제작을 포기하지 않은 사실도 강조, 피력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5세기(20년) 동안 독립 영화 제작자로 활동한 사실과 그의 영화가 거대한 범위를 포괄하고 그의 영화의 다른 특징도 기술 했습니다. 또 고인이 당과 국제주의를 위한 영화들을 직접 제작했지만 그의 주제는 앞 선 기술처럼 다수의 범위를 포괄했습니다. 이어서 문서는 최근의 영화를 통해서 루이스 햄 병원을 구출하기 위한 투쟁에 중심을 맞춘 사실과 의료 용역의 미래까지 보위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 역시도 투쟁했던 진주 의료원 보위 투쟁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문서는 이에 연결해서 다음의 문장으로 고인의 영화에 대해서 추가 기술했고 지난해 몰리 대학에서 1일 영화제를 개최한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문서는 말미로 향하면서 고인의 활동가로서의 자세를 기술했고 고인이 인생에 대한 열정과 역사의 소명에 응답하고 이전의 지향을 재검토하고 지속적으로 진보하고자 노력하는 탐구정신을 지녔다고 기술했습니다. 이 외에도 고인의 다른 자세들을 지속 기술하면서 문서를 종결했는데 영화, 드라마의 감독으로서도 물론 다른 활동으로도 계속적으로 투쟁을 한 사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최근 영화로 역시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영화를 기억하는 데 고인 역시도 최근까지 영화작업을 한 바 있어 너무나 큰 대비를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인이 역시 투쟁을 벌이던 시기는 독일에서 이전 KPD(독일 공산당)을 금지한 사건을 겨우 극복한 시기였고 70년대의 국면에서 다른 변혁 정치세력에 재공격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고인 역시도 이 시기의 생애를 살았고 헌걸찬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고인의 활동 영역엔 문화적인 영역의 상당한 비중을 지니고 있고 이는 독립 영화 제작자를 수행하면서 노동자의 문화의 형성에 기여한 측면도 역시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이 문화는 감독의 손을 거치면서 과학 변혁의 국제주의의 성격도 지녔는데 고인이 운동의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다수의 대표단들에서 정치생활을 통해 참가한 사실도 이를 웅변합니다. 노동자의 문화는 예전에 폭로했던 로쟈의 문서에서 확인한 대로 이미 1950년대 후반이면 하강기를 걷던 시기였고 고인은 이 하강기의 투쟁을 주도 했습니다. 최근의 활동가들이 사망하는 원인에는 고인처럼 지병으로 인한 상황이 너무나 많은데 내부의 건강도 활동영역의 일부인 상황입니다. 그리고 부음 문서마다 작성했듯이 신규 활동가의 충원도 너무나 절실하지만 현 시기의 각개약진, 각개전투 상황에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스튜어트 먼로의 부음 소식의 문서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http://www.rcpbml.org.uk/wwie-17/stuart_in_memoriam.htm

 

전체 0

연구소 일정

3월

4월 2024

5월
31
1
2
3
4
5
6
4월 일정

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6

일정이 없습니다
7
8
9
10
11
12
13
4월 일정

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0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3

일정이 없습니다
14
15
16
17
18
19
20
4월 일정

1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0

일정이 없습니다
21
22
23
24
25
26
27
4월 일정

2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7

일정이 없습니다
28
29
30
1
2
3
4
4월 일정

2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0

일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