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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과학의 귀환
오늘 폭로도서는 로쟈가 6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소개한 스피노자에 대한 도서들이고 폭로문서는 당연하게 로쟈의 바로 이 서한문인데 이전에도 이미 비판한 바 있지만 비 과학이 과학을 방해하는 사건들을 너무나 자주 경험하는 세상입니다. 이번 달에 출간한 도서는 ‘스피노자의 귀환’이고 이 도서의 출간으로 인해 다른 두 스피노자에 관한 도서들도 소개했는데 다른 두 도서는 모두 스티븐 내들러의 저서들인 ‘스피노자’와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입니다. 후자는 너무나 확연하게 소위 68 운동 류 의 ‘근대비판’을 제목에서부터 포함한 도서이고 전자 역시도 이의 서론이거나 연장선상의 도서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 시기에서의 스피노자의 문제는 신학을 완전하게 떨치지 못한 잔재를 반복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들이 근대의 대안으로 내 놓은 것은 아니 대안도 아니지만 신학의 시대로의 귀환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모 인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으니 낯선 일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여전한 관념론의 재생산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스피노자 역시 이 분이 살 당시인 화란/네덜란드 변혁기에는 나름대로의 한계를 반영하면서도 종교와 철학의 분리와 같은 당대의 시대적 과제를 수행한 측면도 존재했지만 이미 작금의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한 그리고 과제 역시도 한참 좌 향 이동한 시대에 이런 것들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비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피노자(비록 스피노자만이 이러한 것은 아니지만)에게는 너무나 많은 극복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고 현 시기의 필요한 학문을 형이상학으로 보는 것인데 그야말로 어이없는 도피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로쟈는 서한문에서 ‘괴테와 스피노자’라는 주제에의 관심을 표명했는데 이 점에서는 괴테의 문학들을 일독하면서 한 것으로 적고 있지만 핵심은 비근대 그리고 신학으로의 역행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한문서의 다른 도서들은 당연하게 올해 노서아/러시아 변혁 만 1세기인 만큼 노서아/러시아 문학에 대한 도서도 언급했는데 엠마뉘엘 카레르의 ‘노서아/러시아 소설’과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이 작곡가의 한 작품에 대한 평론은 이전에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의 생을 주제로 한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 이언 매큐언의 소설로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재구성한 ‘넛셀’ 그리고 인문서적들로 ‘실크로드(비단길) 세계사’와 그 유명한 ‘아라비아 로렌스(1888 ~ 1935)’, 로마사와 카이사르 관련 도서 등 다수를 서양 관계로 제시했고 한국 현대사는 어제그제 10일 봉기 30주년을 기념해 몇 몇 권의 한국 현대사에서의 민주주와 관련한 도서들을 제시 했습니다. 이외에는 성과 관련한 과학도서들과 이 오덕 선생님의 글쓰기(작문)를 위시한 글쓰기(작문) 도서들을 소개했고 문서의 최 말미엔 허먼 멜빌의 그 유명한 ‘모비딕’을 제시하면서 종결 했습니다. 무엇보다 스피노자의 도서를 소개하면서도 소개에 그친다고는 해도 어디에서도 극복대상임을 전제로 한 문구를 찾아볼 수 없는데 이 점은 심각하게 이상을 실현하는 역량을 구성하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 시기의 모순은 한 편에서는 과학 변혁에 대한 재조명을 넘어선 일부에서의 재건의 움직임도 시작했지만 여전하게 아니 더 거세게 방향감각을 상실한 사조, 조류들의 활개도 많습니다. 정확히 이들은 방향감각을 상실 했다기 보다는 퇴행적인 방향을 현 시기의 대안으로 보는 것이 맞고 무엇보다 과학변혁에 대한 공격만은 다른 대형 극복 대상 조류들과 마찬가지인 행동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년은 마극사/마르크스 탄생 만 2세기이지만 또 패배했던 독일변혁 발발 만 1세기이고 오늘 날 극복대상인지 오래인 68 변혁의 만 반 세기인 해이기도 해 강렬한 승패의 교차를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68 사조들을 너무나 많이 조우할 수 있는데 이 로쟈의 서한문이 소개한 도서들을 위시한 스피노자 관련의 서적들은 이 사조들을 강하게 포함하면서 동시에 형이상학과 신학의 시대로의 후퇴를 범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피노자의 생존 시기는 신학의 중압감이 거대한 시기라면 현 시기는 다른 중압감이 거대한 시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이 중압감을 반영이상으로 내면화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과거 로마에 대한 것 역시도 오늘날의 관점에서의 파악으로만 보기에는 여전한 기시감을 감지할 수 있는데 바로 한국사 전반이 3 ~ 5개의 반 천년(500년) 전 후 이상의 수명을 지닌 왕조들이 20세기 까지 연속한 역사와 유사한 순간이 저 로마의 제국시기인데 이러한 지점에서 본다면 중세를 넘어 고대로까지 그야말로 후퇴에는 제동 없이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물론 원시시대에까지 도달한다면 다시 생산시설, 수단의 독점폐지를 주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너무나 어이없는 형이상학의 포획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점은 과학 변혁 사상, 사조, 조류, 주의, 이념의 재건 속도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쟈가 스피노자에 대한 도서들을 포함해서 다수 도서들을 소개한 ‘6월의 읽을 만한 책’의 주소는 제시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http://blog.aladin.co.kr/mramor/9390555